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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벼루 하나가 선비 인생을 바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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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약 230자)
세상만물에는 영혼이 깃든다 하였습니다. 특히 주인의 정성이 오래 쌓인 물건일수록 그 혼이 짙어져, 세월이 흐르면 스스로 말을 하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하지요. 오늘 밤 전해 드릴 이야기는, 삼대를 내려온 오래된 벼루가 어느 날 그만 금이 가 두 조각이 나면서 시작됩니다. 글공부에 막혀 낙방만 거듭하던 가난한 선비의 방에서, 그 부러진 벼루에 깃든 천방지축 도깨비가 툭툭 튀어나와 벌인 기상천외한 소동. 놀리는 듯 도와주고, 어르는 듯 훈계하던 그 귀여운 도깨비가 선비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이야기를, 지금부터 조용히 풀어 드리겠습니다.
※ 1. 삼대를 내려온 벼루가 두 조각 나던 밤
때는 영조 임금 시절, 충청도 보은 땅 외진 산골 마을이었습니다. 마을 끄트머리 돌담 낡은 초가집 하나가 서 있었으니, 그곳이 바로 선비 강도준의 집이었지요. 강도준은 올해 서른하나, 과거를 보겠다며 책상 앞에 앉은 지 어언 열두 해가 되었으나, 번번이 낙방하여 가세는 기울대로 기울어 가고 있었습니다. 쌀독은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였고, 아내 유씨는 남의 집 삯바느질로 간신히 식구들 입에 풀칠을 하던 형편이었지요.
그해 가을, 강도준은 또 한 차례 과거 시험을 치르고 낙방하여 터덜터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집 안에 발을 들이는 순간, 아내의 얼굴은 애써 웃고 있었으나 그 눈가에는 이미 실망의 빛이 서려 있었지요. 어린 아들은 아버지 품에 달려들려다 어머니의 손짓에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늙은 어머니께서는 부엌에서 조용히 한숨만 삼키고 계셨습니다.
'내 이 꼴을 하고 이 집에 돌아와 무슨 낯으로 식구들을 대하는가. 서른하나 먹도록 제 식솔 하나 변변히 먹이지 못하는 이 무능한 위인이 나라는 말인가.'
강도준은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책상 위에는 그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아버지까지 삼대를 내려온 귀한 벼루 하나가 놓여 있었지요. 단양산 자석으로 깎은 검은 벼루였으니, 돌의 결이 비단처럼 고와 한번 먹을 갈면 먹빛이 유난히 진하고 윤기가 돌았습니다. 증조부께서 과거에 급제하셨을 적 쓰신 벼루요, 조부께서도 이 벼루 앞에서 평생 학문을 갈고닦으셨던 것이지요.
강도준은 그 벼루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서러움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할아버님, 증조부님, 이 못난 손자를 굽어살피소서. 두 분께서 쓰시던 이 벼루 앞에서 열두 해를 갈고닦았건만, 저는 어찌 이리도 무재하단 말입니까. 차라리 이 벼루를 보지 않는 것이 면목이 설 듯하옵니다!"
그는 울분에 못 이겨 두 손으로 벼루를 번쩍 들어 책상 위에 쾅 하고 내리쳤습니다. 그 서슬에 벼루가 그만 "쩍!" 하는 소리와 함께 정확히 반으로 쪼개져 버리고 말았지요. 강도준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습니다. 삼대 동안 집안의 보물로 전해 내려온 벼루가, 자신의 한순간의 분노로 두 조각이 나 버린 것이었지요.
"아이고,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조상님들께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인가!"
그는 두 조각 난 벼루를 어찌할 바를 모르고 한참을 어루만지다가, 차마 그것을 책상 위에 그대로 둘 수는 없어 문밖 뒷마당 처마 아래 수북이 쌓인 나뭇가지 옆에 조심스레 내다 놓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방으로 들어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지요. 그날 밤 자시가 넘도록 강도준은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바람이 처마 끝을 흔들며 스스스 소리를 내고, 멀리서 부엉이가 두어 번 길게 울더니, 이내 마당 쪽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토닥, 토닥" 하는 그 작고도 가벼운 발소리가, 점점 그의 방문 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지요.
※ 2. 버려진 벼루에서 기어 나온 주먹만 한 도깨비
"토닥, 토닥, 토닥."
그 소리가 점점 방문 앞까지 다가오더니, 이윽고 방문이 저 혼자 스르륵 한 뼘쯤 열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강도준은 놀라 이불 속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습니다. 등잔불이 바람도 없는데 흔들흔들 춤을 추기 시작했고, 그 불빛 아래 무언가 시꺼먼 것이 방바닥에 떡하니 서 있었지요.
키는 겨우 주먹만 한 것이, 검정 먹빛 같은 몸에 머리에는 조그만 검은 갓을 썼고, 허리에는 붓 한 자루를 칼처럼 질끈 차고 있었습니다. 두 눈은 콩알만 한 것이 반짝반짝 빛나는데, 얼굴은 짓궂게 찡그렸다가 웃었다가 제멋대로였지요. 그 조그만 녀석이 두 팔을 허리에 얹고, 강도준을 올려다보며 당당하게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야, 이 무정한 놈아! 삼대를 섬겨 온 이 몸을 마당 구석에 내팽개쳐 놓다니, 이 무슨 배은망덕한 짓이냐!"
강도준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턱이 덜덜 떨렸습니다.
"네, 네, 네놈은 대체 뭐, 뭐냐! 쥐새끼냐, 족제비냐, 귀신이냐!"
"쥐새끼고 족제비는 개뿔! 내가 바로 네놈 증조부님부터 모셔 온 벼루 도깨비니라! 이름은 묵돌이라 부르거라! 먹 묵(墨) 자에 돌 석(石) 자, 묵돌! 천하에 둘도 없는 내 고귀한 이름이니 잘 외워 두어라!"
주먹만 한 도깨비는 가슴을 떡 내밀며 뻐겼습니다. 강도준은 도저히 믿기지 않아 눈을 몇 번이고 비벼 보았지요.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눈앞의 그 조그만 놈은 분명 살아 움직이는 것이었고, 그 작은 몸에서 검은 먹물 같은 것이 조금씩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내가 낙방의 충격으로 그만 미치고 만 것인가. 혹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하지만 이렇게 또렷한 꿈이 세상에 있을 수 있는가.'
묵돌이는 강도준의 당황한 표정을 보며 까르르 웃었습니다.
"이 양반아, 정신 차려라! 내 지난 백 년간 네놈 조상님들의 먹을 갈고 먹을 머금어 왔느니. 네 증조부께서 장원 급제하실 적 밤샘 공부하시며 쏟으신 땀방울이 내 몸 안에 스며 있고, 네 조부께서 학문을 논하시며 흘리신 그 숱한 먹물이 내 살이 되었다. 그러니 이 몸이 도깨비가 되어 튀어나온 것이 무에 그리 놀랄 일이냐!"
"그, 그렇다면 왜 하필 오늘 밤 튀어나온 것이냐. 지난 삼대 동안 한 번도 얼굴을 내민 적이 없지 않느냐."
묵돌이의 표정이 갑자기 심각해졌습니다. 그는 두 조각 난 자신의 몸, 즉 쪼개진 벼루 조각을 흘끔 돌아보더니 혀를 쯧쯧 찼지요.
"이 양반아, 나는 원래 한 덩어리일 때는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도깨비란 본디 물건이 부서지거나 버려질 때 비로소 혼이 풀려나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니라. 네가 이 몸을 둘로 쪼개어 내팽개치는 바람에, 갇혀 있던 내 혼이 공중에 튀어나와 이 꼴이 된 것이다. 어쩔 테냐!"
강도준은 그만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습니다.
"묵돌아, 아니 묵돌 어르신, 이 못난 후손을 용서하여 주소서. 제가 낙방의 분을 이기지 못하여 그만…."
"됐다, 됐어! 네 눈물 콧물로 내 옷자락 적시지 말고 이리 와 앉아라. 내 오늘 밤 네놈 글공부의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샅샅이 점검해 주마. 내가 이 꼴이 된 이상, 네놈이 급제하기 전에는 다시 벼루로 돌아갈 수도 없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이 같이 한번 해 볼밖에!"
묵돌이는 강도준의 책상 위로 폴짝 뛰어올랐습니다. 그 작은 발로 붓을 툭 차고, 벼루 받침을 쿵 내리치더니, 허리에 찬 조그만 먹 조각을 꺼내 들고는 호기롭게 외쳤지요.
"자, 오늘부터 이 몸이 네 스승이다! 제자 강도준, 스승 묵돌 어르신께 큰절부터 올려라!"
강도준은 얼떨결에 주먹만 한 도깨비에게 이마를 땅에 대고 큰절을 올렸습니다. 그의 기이한 학업 수련이 그렇게, 한밤중 등잔불 아래 시작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 3. 도깨비의 괴상한 글공부 훈련
이튿날 아침, 강도준이 눈을 떴을 때 그는 자신이 간밤에 꿈을 꾼 것이 아닌지 의심부터 했습니다. 그러나 책상 위를 보니, 분명 쪼개진 벼루 두 조각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그 사이에 주먹만 한 묵돌이가 팔베개를 하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지요. 그 모습이 또 얼마나 귀엽고 천연덕스러운지, 강도준은 어이가 없어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이 양반이 잠도 자는구나."
그가 중얼거리자 묵돌이가 한쪽 눈을 번쩍 떴습니다.
"이놈아, 스승에게 이 양반 저 양반이 무어냐! 묵돌 스승님이라 불러라!"
"아, 죄송합니다. 묵돌 스승님."
"좋다, 오늘부터 공부를 시작한다. 네 지금까지 쓴 답안지 한 번 내놓아 보아라."
강도준은 머쓱한 얼굴로 낙방한 시험의 답안 초고를 내밀었습니다. 묵돌이는 그 거대한 종이 위를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글자 하나하나를 살피더니, 갑자기 분통이 터진 듯 발로 종이를 쿵쿵 밟기 시작했지요.
"아이고, 이 답답한 놈아! 이게 무슨 글이냐! 문장은 용이 하늘을 나는 듯 웅장해야 하는데, 네 글은 구렁이가 담벼락을 기는 듯 답답하구나! 논지가 흐릿하고 기승전결이 없는데, 이런 글로 장원을 바라느냐! 네 증조부께서 이 글을 보셨으면 저승에서도 벼루를 던지실 게다!"
"그, 그럼 어떻게 고쳐야 합니까, 스승님."
묵돌이는 허리춤에서 작은 먹 조각을 꺼내어, 쪼개진 벼루 한쪽에 스스로 문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작은 몸으로 먹을 가는 모습이 어찌나 야무진지, 순식간에 짙은 먹물 한 사발이 뽀얗게 올라왔지요. 묵돌이는 그 먹물을 콧김으로 훅 뿌리더니, 강도준의 답안지 위에 휙휙 춤을 추듯 돌아다니며 이곳저곳에 붉은 점을 찍었습니다.
"여기, 이 문장은 처음 세 글자가 너무 약하다. 창을 휘두르듯 기세 있게 시작해야지! 여기, 이 단락은 결론이 부실하다. 마지막에 반드시 '그러므로' 하고 칼로 매듭 짓듯 마무리해야 논지가 선다! 그리고 여기, 이 인용은 적절치 못하다. 공자님 말씀을 붙이려면 앞뒤 문맥과 맞아야지, 아무 데나 쑤셔 넣으면 되겠느냐!"
묵돌이의 지적은 참으로 정확하고 날카로웠습니다. 강도준은 그 지적을 하나하나 받아 적으며 깨달았지요.
'참으로 신기하구나. 이 작은 도깨비가 어찌 이리 문장의 이치를 꿰뚫고 있을까. 삼대 동안 조상님들의 글을 머금어 오면서 저절로 학문의 정수를 익힌 것이로구나.'
그날부터 강도준의 방에서는 밤마다 이상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주먹만 한 묵돌이가 책상 위를 팔짝팔짝 뛰어다니며 호령을 하고, 강도준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글을 쓰는 모습이었지요. 묵돌이는 때로는 강도준의 코끝을 탁 때리며 졸음을 쫓기도 했고, 때로는 글자가 삐뚤어졌다며 먹물을 한 방울 톡 튀겨 얼굴을 새카맣게 만들어 놓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정답이 떠오르지 않아 끙끙대는 강도준의 귀에 대고 "에이, 이 바보야!" 하고 찌렁 소리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스승님, 제발 살살 좀 해 주십시오. 귀가 멍합니다!"
"이놈아, 귀가 멍해야 정신이 번쩍 들지 않겠느냐! 네놈이 열두 해 동안 낙방한 까닭이 다 여기 있다. 이 게으른 놈, 이 산만한 놈, 이 생각이 얕은 놈!"
그 천방지축 꾸지람 속에서 강도준의 글은 날이 갈수록 탄탄해졌습니다. 한 달이 지나자 문장의 기세가 달라졌고, 두 달이 지나자 논지가 선명해졌으며, 석 달째가 되자 드디어 그 글 속에 기개와 품격이 서리기 시작했지요. 동네 서당의 늙은 훈장이 우연히 강도준의 글을 보고는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강 서방, 자네 요즈음 어느 대학자를 스승으로 모셨는가? 이 글이 지난봄의 그 글이 맞는가?"
강도준은 웃으며 말을 얼버무렸지요.
"예, 제게 좋은 스승 한 분이 생겼사온데, 뵙기가 쉽지 않은 분이시라…."
그날 밤에도 묵돌이는 책상 위에 떡하니 앉아 팔짱을 끼고 강도준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 4. 도깨비가 던져 준 수수께끼와 선비의 깨달음
봄이 무르익어 가던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과거 시험이 불과 한 달 앞으로 다가와 있었고, 강도준은 막바지 점검을 하며 밤늦게까지 글을 쓰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날따라 묵돌이가 책상 위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스승님, 어찌 오늘은 저를 꾸짖지 않으십니까? 제 글에 문제가 있어 할 말을 잃으신 것입니까?"
"흠, 네놈의 글은 이제 웬만큼 모양이 잡혔다. 문장도 단단해졌고 논지도 또렷하지. 그런데 한 가지, 꼭 한 가지가 빠져 있구나."
"그게 무엇이옵니까, 스승님?"
묵돌이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별안간 엉뚱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강도준아, 내 오늘 네게 수수께끼 하나를 낼 터이니 풀어 보아라. 잘 들어라. '하나는 둘이 되고, 둘은 다시 하나가 되는데, 그 하나는 처음의 하나보다 훨씬 더 크다.' 이것이 무엇이겠느냐?"
강도준은 한참을 골똘히 생각했습니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하나가 되는데 그 하나가 더 크다니.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답이 떠오르지 않았지요.
"스승님, 이것이 도대체 무엇이옵니까? 바위를 쪼갠 것이옵니까, 과일을 나눈 것이옵니까?"
"어허,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다. 잘 생각해 보아라."
강도준은 사흘 밤낮을 그 수수께끼에 매달렸습니다. 밥을 먹다가도 생각하고, 잠자리에 들어서도 생각했지요. 그러나 답은 쉬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나흘째 되던 날 새벽, 그는 문득 책상 위의 쪼개진 벼루 두 조각을 바라보다가 깨달음의 섬광을 맞았지요.
'아, 그렇구나! 이 벼루가 바로 그 답이 아닌가. 본디 한 덩어리였을 적에는 그저 먹을 가는 돌에 지나지 않았으나, 두 조각으로 쪼개지면서 묵돌 스승님이 깨어나셨고, 이제 이 두 조각이 다시 하나가 되어 내 앞에 있는 것이 처음의 그 한 덩어리보다 훨씬 더 크고 깊은 존재가 되었구나.'
그는 그날 아침 묵돌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스승님, 제가 그 수수께끼의 답을 알 것 같습니다. 답은 바로 이 벼루가 아니옵니까? 그리고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 아니옵니까? 한 번 깨어져 본 사람만이 다시 자신을 모을 때 처음보다 더 큰 그릇이 되는 것 아니옵니까?"
묵돌이의 작은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그는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기뻐 외쳤지요.
"옳거니! 이놈아, 드디어 깨달았구나! 네놈이 지난 열두 해 동안 낙방한 까닭이 바로 그것이다. 네 글은 기교는 좋았으나, 깨어져 본 적 없는 자의 매끄럽고 얄팍한 글이었느니라. 하지만 이제 너는 한 번 무너져 본 자의 깊이를 얻었으니, 이번 시험에서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글이 나올 것이다!"
"스승님, 정녕 그러하옵니까?"
"그렇다! 진정한 글은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깨어진 가슴에서 나오는 법이다. 네가 그날 밤 이 벼루를 내리치며 울부짖던 그 마음, 그 서러움과 그 부끄러움, 그 절박함이 네 글 속에 스며들어야 비로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이 되는 것이야. 글재주만 가지고는 장원 급제를 못한다, 이놈아!"
강도준은 그 말씀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열두 해 동안 자신이 왜 낙방했는지, 왜 글이 허공을 맴돌기만 했는지, 이제야 비로소 깨달은 것이었지요. 묵돌이는 평소와 달리 꾸지람 대신 강도준의 손등을 그 작은 손으로 톡톡 두드려 주었습니다.
"잘 보았다. 이제 네 글에 혼이 담길 차례다. 시험이 한 달 남았으니, 남은 시간 동안 너는 기교를 갈고닦는 것보다 네 마음을 갈고닦아라. 내가 이 벼루 속에서 네 마음을 지켜볼 것이다."
그날부터 강도준은 새로운 사람이 된 듯했습니다. 글을 쓰기 전 반드시 마음을 가다듬고 깊이 생각한 뒤에야 붓을 들었고, 한 문장 한 문장을 자신의 삶으로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써 내려갔지요. 그의 글은 이제 단순히 정확한 글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살아 있는 글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 5. 과거 시험장에 몰래 따라간 도깨비의 요란한 훼방
마침내 과거 시험 날이 밝아왔습니다. 강도준은 새벽같이 일어나 정한수를 떠다 놓고 조상님들께 절을 올렸고, 아내 유씨가 정성껏 지어 준 무명 도포를 갖춰 입었지요. 어머님께서 떨리는 손으로 지어 주신 주먹밥 두 덩이를 봇짐에 넣고, 마지막으로 책상 위의 쪼개진 벼루 두 조각을 조심스레 싸서 봇짐 깊숙이 넣었습니다.
그러자 봇짐 속에서 갑자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불평이 터져 나왔지요.
"야 이놈아! 살살 좀 집어넣어라! 내 머리가 봇짐 솔기에 박혔잖느냐!"
강도준이 깜짝 놀라 봇짐을 다시 열어 보니, 묵돌이가 벼루 조각 사이에서 꾸물꾸물 기어 나와 봇짐 안쪽을 톡톡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스승님, 오늘 시험장에 정말 따라오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만약 남들이 보면 어찌 되옵니까? 도깨비가 시험장에 들어갔다는 말이 새어 나가면 저는 과거 부정으로 몰려 사형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이놈아, 걱정 말거라! 내가 주먹만 한 몸에다 내가 원할 때만 모습을 드러내는 도깨비인데, 네놈 외에 누가 나를 볼 수 있겠느냐. 다만 네 붓이 갈 길을 잃을까 염려되어 따라가는 것이니, 잔소리 말고 봇짐이나 단단히 매어라!"
그리하여 강도준은 묵돌이를 봇짐 깊숙이 모시고 한양 시험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시험장에 도착해 보니 수백 명의 선비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지요. 강도준은 구석 자리에 조용히 앉아 벼루 두 조각을 책상 밑에 슬그머니 놓고, 새로 사 온 작은 벼루에 먹을 갈기 시작했습니다.
시험관이 과제를 발표했습니다. 오늘의 제목은 "치국안민의 도(治國安民之道), 즉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케 하는 길에 대하여 논하라"는 것이었지요. 선비들이 일제히 붓을 들고 글을 쓰기 시작하는 그 순간, 책상 밑에서 작은 목소리가 속삭여 왔습니다.
"강도준아, 이 문제는 내 이미 예상했던 바다. 그러나 너는 절대 평범한 답을 써서는 안 된다. 지금 시험관들의 귀에는 비슷비슷한 글이 수백 장 들어갈 테니,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네 글이 칼처럼 날카로우면서도 땅처럼 두터워야 한다."
"스승님, 제가 어찌해야 하옵니까?"
"쉿, 내 너에게 한 가지 비결을 일러 주마. 너는 먼저 백성의 한숨 소리부터 그려라. 그 한숨이 임금의 귀에 닿지 못하는 까닭을 논하고, 그 다음에 비로소 치국의 방도를 말해라. 머리로 나라를 다스리지 말고 가슴으로 다스리라, 이 한 줄이 네 글의 심장이 될 것이다."
강도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붓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첫 줄을 써 내려가려는 찰나, 묵돌이의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지요.
"아차, 잠깐! 저놈을 좀 봐라!"
강도준이 고개를 돌려 보니, 바로 옆자리의 한 선비가 수상한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선비는 소매 속에서 무언가 종이 조각을 조심스레 꺼내어 책상 아래에서 몰래 베끼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미리 써 온 답안을 숨겨 와서 베끼는 부정행위였지요.
"이놈 봐라, 저런 못된 놈이 있나! 이 몸이 한번 손봐 주마!"
묵돌이는 봇짐 속에서 폴짝 뛰어나오더니, 주먹만 한 몸을 훽훽 움직여 그 부정 선비의 책상 아래로 달려갔습니다. 그는 선비가 몰래 꺼내 놓은 종이 조각을 발로 툭 차서 책상 밖으로 밀어내 버렸지요. 선비가 당황하여 허둥지둥 찾으려 할 때, 묵돌이는 그 종이를 그대로 시험관 쪽으로 훅 날려 보냈습니다. 시험관이 바닥에 떨어진 수상한 종이를 발견하고는 그 자리에서 부정 선비를 적발하여 시험장 밖으로 끌어내는 소동이 벌어졌지요.
강도준은 그 광경을 보며 속으로 혀를 내둘렀습니다.
'묵돌 스승님, 참으로 천방지축이시로구나. 저렇게 돌아다니시다가 누군가 눈에 띄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그러나 묵돌이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봇짐 속으로 폴짝 돌아와서는, 강도준의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됐다, 악인 하나 치웠으니 이제 집중해서 써라! 네 글이 가장 잘 나오는 시간이 바로 지금이다!"
강도준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 다시 붓을 들었습니다. 그의 손끝에서 한 글자 한 글자가 써 내려가지는 동안, 지난 석 달간 묵돌 스승에게서 배운 모든 것이 그의 붓을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했지요. 백성의 한숨 소리로 시작된 그의 글은, 점점 깊어지고 넓어지며 시험장 전체의 공기를 바꾸어 놓을 듯한 기개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 6. 위기의 순간, 벼루 속에서 울려 퍼진 도깨비의 한마디
시험이 절반쯤 진행되었을 무렵이었습니다. 강도준의 글은 거침없이 뻗어 나가고 있었지요. 그는 백성의 고단한 삶을 먼저 그려 내고, 그 한숨이 어찌하여 임금의 귀에 닿지 못하는지를 논하며, 이제 본격적인 치국의 방도를 펼치려는 대목에 이르고 있었습니다. 한창 글이 살아나 붓끝이 춤을 추고 있을 그때, 강도준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지요.
그는 갑자기 머리가 하얘지고 말았습니다. 다음에 무슨 말을 써야 할지, 자신이 무엇을 논하려 했던 것인지, 모든 것이 증발해 버린 듯한 끔찍한 공백이 찾아온 것이었지요. 선비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다는 그 "글 막힘" 현상이, 하필이면 이 중요한 순간에 덮쳐 온 것이었습니다.
'안 된다. 지금 여기서 막히면 안 된다. 지금까지 쓴 글의 흐름이 다 무너지고 만다. 묵돌 스승님, 살려 주소서!'
강도준의 손이 덜덜 떨렸습니다.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고, 붓은 허공에서 공회전만 하고 있었지요. 이마에서 흐른 땀방울이 답안지 위로 톡 떨어져 번지기까지 했습니다. 주변의 다른 선비들은 열심히 글을 써 내려가고 있는데, 그만 혼자 이렇게 굳어 있는 것이 점점 더 초조해졌지요.
바로 그때였습니다. 책상 아래에 놓아 둔 쪼개진 벼루 두 조각에서, 누구도 듣지 못하는 묵돌이의 나직하고도 힘찬 목소리가 강도준의 귀에 울려 퍼졌습니다.
"강도준아, 정신 차려라! 네가 지난 석 달간 이 시험 하나만을 위해 달려온 것이 아니니라!"
강도준이 움찔하며 벼루 쪽으로 귀를 기울였습니다.
"네가 지난 열두 해 동안 낙방하며 흘린 그 눈물, 네 아내가 삯바느질로 지새운 그 밤들, 네 어머님이 부엌에서 삼킨 그 한숨, 네 어린 아들이 아비를 우러러보는 그 눈빛, 그 모든 것을 지금 이 한 장에 담아라! 네가 나라를 논하고 백성을 논하는 이 글은, 바로 네 식구들의 삶이요 네 이웃들의 삶이다! 머리로 쓰지 말고, 그 모든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써라!"
강도준의 눈에 뜨거운 것이 왈칵 솟구쳤습니다. 그 순간, 새벽마다 자신을 위해 상을 차려 주시던 어머님의 굽은 허리가 눈에 선히 떠올랐지요. 등잔 아래 밤늦도록 삯바느질을 하며 자신을 원망 한 번 하지 않던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고, "아버님, 이번에는 꼭 급제하세요" 하고 고사리손으로 절을 올리던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으며, 마을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이웃들의 지친 모습이 한꺼번에 몰려왔습니다.
그 모든 얼굴이 그의 붓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었지요. 막혔던 물꼬가 터지듯, 그의 손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무릇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높은 자리에서 백성을 내려다볼 것이 아니라, 백성의 마당에 내려가 그들의 밥상 앞에 함께 앉아 보아야 하나이다. 밥상에 올라온 것이 나물뿐이라면 그 까닭을 물어야 하고, 그릇이 비어 있다면 그 이유를 살펴야 하며, 그 집의 등잔 기름이 떨어졌다면 왜 떨어졌는가를 헤아려야 하나이다. 치국의 도란 글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의 부엌에 있나이다."
그의 붓끝에서 마치 봇물 터지듯 글이 쏟아져 나왔지요. 치국의 도, 안민의 길, 관리의 도리, 임금의 덕목까지, 강도준의 삶에서 우러나온 진심이 글자 하나하나에 스며들었습니다. 다 쓰고 마지막 마침표를 찍었을 때, 그의 답안지는 한 편의 살아 있는 문장이 되어 있었지요. 단순히 학문의 논리만으로 쓴 글이 아니라, 실제로 가난과 굴욕을 겪어 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묵직한 진실이 그 안에 서려 있었던 것입니다.
시험관이 각 선비의 답안지를 거두어 가는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강도준이 자신의 답안지를 바치자, 답안지를 받아 들던 한 젊은 시험관이 무심코 첫 줄을 읽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지요. 그는 몇 줄을 더 훑어보더니, 놀란 눈으로 강도준을 쳐다보았습니다. 강도준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지요.
시험장을 나서며 봇짐을 챙겨 드는 강도준의 귀에, 묵돌이의 지친 듯하면서도 흐뭇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잘 썼다, 이놈아. 네 평생에 오늘 이 한 편이 가장 빛나는 글이 될 게다. 자, 이제 집으로 돌아가 결과를 기다리자꾸나. 이 몸도 오늘 힘을 많이 썼더니 피곤하구나."
강도준은 봇짐을 꼭 끌어안고 한양 길을 되돌아 내려왔습니다. 이번에는 지난 열두 번의 귀향길과는 전혀 다른, 알 수 없는 평온한 마음이 그의 가슴에 가득했지요.
※ 7. 장원 급제와 두 조각 벼루에 바친 선비의 마지막 예의
고향으로 돌아온 강도준은 평소와 다름없이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묵돌이는 그 사이에도 책상 위를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지요. 때로는 강도준의 어린 아들이 방에 들어올 때면 얼른 벼루 조각 뒤로 몸을 숨겼다가, 아이가 나가면 "야, 너 요즘 아들 녀석이 네 눈을 많이 닮아 간다!" 하며 장난스레 놀려 대기도 했습니다.
보름이 지나자 드디어 한양에서 사람이 내려왔습니다. 마을 입구에 요란한 꽹과리 소리와 함께 관복을 갖춰 입은 사령들이 늘어서고, 그 한가운데 커다란 방이 펼쳐졌지요. 방을 들고 온 사령이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충청도 보은 사는 강도준! 금년 식년시 문과 갑과 장원 급제하였음을 알리노라!"
온 마을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강도준의 어머니는 마당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으셨고, 아내 유씨는 두 손을 모으고 하늘을 향해 절을 올렸지요. 어린 아들은 영문도 모른 채 "아버지 급제! 아버지 급제!"를 외치며 마당을 뛰어다녔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몰려와 강도준의 손을 잡고 축하의 말씀을 건네었고, 동네 훈장님께서도 오셔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기뻐하셨지요.
모든 축하 인사가 끝나고 밤이 깊어졌을 때, 강도준은 조용히 혼자 방에 들어왔습니다. 책상 위에는 쪼개진 벼루 두 조각이 나란히 놓여 있었고, 그 사이에 묵돌이가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지요. 강도준은 그 앞에 단정히 무릎을 꿇고 앉아 큰절을 세 번 올렸습니다.
"스승님, 이 강도준의 오늘이 있기까지 모든 것이 스승님의 은혜이옵니다. 이 은혜를 제가 어찌 갚을 수 있을는지요."
묵돌이는 뜻밖에도 조용한 목소리로 답했습니다.
"강도준아, 이제 내가 네 곁을 떠날 때가 되었구나."
"예? 스승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스승님께서 왜 저를 떠나신단 말씀이십니까!"
"이놈아, 놀라지 말고 내 말을 들어라. 나는 본디 이 벼루 속에 잠들어 있어야 할 혼이었다. 네가 나를 깨어나게 한 것은 네 좌절의 눈물 때문이었느니, 이제 네가 그 좌절을 딛고 일어섰으니 나도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때가 된 것이다. 내가 깨어 있을 까닭이 이제 없어졌지 않느냐."
강도준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스승님, 저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사옵니다. 제발 조금만 더 제 곁에 계셔 주소서. 제가 이제 벼슬길에 오르면 더욱 많은 가르침이 필요하옵니다."
묵돌이는 껄껄 웃으며 강도준의 손등을 그 작은 손으로 톡톡 두드려 주었습니다.
"어리석은 놈아, 내가 너를 떠난다 하였지 이 벼루 속에서 영영 사라진다 하였느냐? 나는 다시 이 두 조각 벼루 속에서 조용히 잠들 것이다. 그러다 네 아들이, 또 그 아들이 언젠가 학문에 막혀 눈물을 흘리는 날이 오면, 나는 다시 깨어나 그 아이에게도 이런 수련을 시켜 줄 것이다. 벼루 도깨비란 그렇게 대대로 한 집안과 함께 가는 존재이니라."
"스승님, 그 말씀 정녕이시옵니까?"
"정녕이다, 이놈아. 다만 한 가지 당부가 있다. 이 쪼개진 두 조각을 결코 버리지 말고, 항상 책상 위에 함께 모셔 두거라. 그리고 네가 벼슬을 하여 높은 자리에 오르거든, 오늘 시험장에서 네가 썼던 그 글의 구절, '치국의 도는 글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의 부엌에 있다'는 그 마음을 절대 잊지 말아라. 높은 자리에 오르면 사람은 대개 제 발밑의 부엌을 잊기 마련이니라."
"명심하겠사옵니다, 스승님."
묵돌이는 책상 위에서 천천히 일어나, 쪼개진 벼루 조각 사이로 폴짝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 작은 몸이 점점 투명해지더니, 이윽고 벼루 속으로 스르르 스며들어 사라졌지요. 그와 동시에, 신기하게도 두 조각 나 있던 벼루가 서서히 맞붙기 시작하더니, 쩍 갈라졌던 틈이 아스라한 금으로만 남고 다시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한 덩어리 벼루 위에 희미한 글자 하나가 떠올라 있었지요. "묵(墨)"이라는 글자였습니다.
강도준은 그 벼루를 품에 안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강도준은 청렴하고 어진 관리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그는 어느 고을에 부임하든 반드시 백성의 부엌을 먼저 찾았고, 그들의 밥상에 무엇이 올라오는지 살핀 뒤에야 정사를 펼쳤지요. 그의 치적이 워낙 훌륭하여 임금께서 직접 그를 불러 치하하시며 벼슬을 거듭 높이셨으나, 강도준은 언제나 고향 집 책상 위에 놓인 그 한 덩어리 벼루 앞에서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훗날 강도준의 아들이 장성하여 과거에 응시하게 되었을 적에, 그 아들의 방에서도 어느 밤 이상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합니다. 토닥 토닥 하고 가벼이 책상 위를 걷는 그 소리. 그리고 주먹만 한 검은 도깨비 하나가 그 아이 앞에 나타나 이렇게 호령했다 하지요.
"야 이놈아! 글이 이 모양이냐? 네 아비가 나를 만났을 때도 이 모양이었으니, 피는 못 속이는구나! 자, 오늘부터 이 몸이 네 스승이다!"
그리하여 묵돌이 벼루 도깨비는 그 집안 대대로 학업에 막힌 자손들을 찾아와 도우며, 유쾌하고도 엄한 스승 노릇을 오래오래 이어 갔다 합니다. 집안의 벼루는 지금도 어느 사당 깊숙한 곳에 고이 모셔져 있다 하며, 그 벼루 한가운데에는 여전히 아스라한 금이 남아 있다 하지요. 세월이 흘러도 그 금은 지워지지 않았으니, 사람의 깨어진 마음을 다시 이어 붙여 주던 그 천방지축 도깨비의 따스한 흔적이 아니겠습니까.
유튜브 엔딩멘트 (약 240자)
오늘 밤 여러분과 함께한 이 한 편의 이야기, 어떠셨는지요. 깨어진 벼루에서 도깨비가 깨어나듯, 우리네 인생도 한 번 무너져 본 뒤에야 비로소 참된 깊이를 얻는다는 옛 어른들의 가르침이 가슴에 스며드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혹 뜻대로 되지 않는 일로 속상하신 분이 계신다면, 그 마음의 금 간 자리에도 언젠가는 따스한 도깨비 하나가 찾아와 줄 것이라 믿어 봅니다. 다음 이야기는 천방지축도깨비 재생목록에서 또 한 편의 유쾌한 도깨비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시옵소서.
썸네일 이미지 프롬프트 (영어, 16:9, 실사, no text)
Photorealistic cinematic 16:9 aspect ratio scene set in a traditional
Korean Joseon dynasty scholar's study room at deep night. On a
low wooden writing desk sits an ancient cracked black inkstone
split into two pieces with a faint golden crack line glowing between
them, placed beside an ornate bamboo brush, a fine bamboo brush
holder, and stacks of old yellowed Korean traditional paper
(hanji) with calligraphy. A tiny fist-sized charming mischievous
Korean dokkaebi goblin stands on the desk - the dokkaebi has
ink-black shiny skin, wears a miniature black traditional Korean
scholar's hat (gat), has bright round glowing eyes filled with
playful wisdom, and carries a tiny writing brush at his waist like
a sword. In the softly blurred background a middle-aged Korean
scholar in his early thirties wearing a simple white hanbok scholar's
robe sits cross-legged, his face showing wonder and awe, watching
the tiny dokkaebi with tears of gratitude in his eyes. Warm amber
candlelight from a single oil lamp illuminates the scene, casting
soft shadows on paper screen doors (hanji). Traditional Korean
ink brush paintings hang on the wall, wooden bookshelves with
old bound books line the side. Mystical, heartwarming, nostalgic
atmosphere blending Korean folklore with scholarly elegance.
Rich colors of warm amber, deep black ink, ivory hanji paper,
soft gold candle glow, traditional muted blue and cream.
Highly detailed photorealistic Korean historical drama aesthetic,
cinematic lighting, no text, no letters, no watermarks,
16:9 widescreen compos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