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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한 농부에게 도깨비 축복 , 돌밭이 금싸라기 옥토된 비밀 『청구야담』

    태그 (1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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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 멘트 (300자 내외)

    "평생 호미질 한번 제대로 못 해본 척박한 자갈밭이 하룻밤 새 문전옥답이 됐다? 에이, 노망난 소리 말라고요? 진짜라니까! 찢어지게 가난해서 하루 세끼 풀칠하기도 버겁던 박 서방이 난데없이 도깨비에 홀려 부자가 된 기막힌 사연! 도대체 그날 밤, 그 돌밭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오늘 밤, 여러분을 그 신비하고도 통쾌한 기적의 술판으로 모십니다. 귀 쫑긋 세우소!"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이라고는 호미 날이 튕겨 나가는 돌덩이뿐인 박 서방. 처자식 굶기지 않으려 새벽부터 밤까지 허리가 휘도록 일해보지만, 나오는 건 한숨과 돌멩이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 날 밤 박 서방의 진심 어린 막걸리 한 사발에 감동한 도깨비들이 나타나 상상도 못 할 기적을 일으킵니다. 가난하지만 착하게 살아온 박 서방의 인생 역전 드라마! 『청구야담』 속 신비로운 이야기가 지금 시작됩니다.

    ※ 찢어지게 가난한 박 서방의 처지와 호미 날도 안 들어가는 절망적인 자갈밭 묘사

    아이고, 어르신들 오셨는가! 식사들은 잡숫고 오셨는지 모르겠네. 자자, 어서들 오시게. 저짝 구석에 앉은 김 영감님도 이리 좀 바짝 다가앉아 보시구려. 날도 궂은데 뜨끈한 아랫목에 지지고 앉아 옛날이야기 한 자락 듣는 것만큼 좋은 게 또 어디 있겠소? 오늘 내가 풀어놓을 이야기 보따리는 말일세, 저기 충청도 깊은 산골짜기, 호랑이도 담배 피우다 길을 잃는다는 두메산골에 살던 박 서방네 이야기여. 아, 글쎄 이 사람이 평생 호미질 한번 제대로 안 들어가는 척박한 자갈밭을 하룻밤 새에 금싸라기 옥토로 바꿨다지 뭔가! 에이, 거짓말 말라고? 허허, 이 사람이 속고만 살았나. 내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끝까지 한번 들어보면 알 것 아닌가. 자, 귀들을 쫑긋 세우고, 침 한번 꼴딱 삼키고! 기가 막힌 사연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보세나!
    이야기는 저기 충청도 어느 이름 없는 산골 마을, 그중에서도 제일 꼭대기에 위태롭게 매달린 초가삼간에서 시작하네. 집 꼬락서니를 좀 보소. 지붕 얹은 볏짚은 썩어서 비만 오면 천장에서 누런 물이 뚝뚝 떨어지고, 문풍지는 다 찢어져서 바람이 불 때마다 귀신 우는 소리를 내는 그런 집이었지. 그 집 주인이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박 서방일세.

    이 박 서방으로 말할 것 같으면, 심성은 비단결같이 곱고 법 없이도 살 양반인데, 지독시리 복도 지지리 없는 사람이었어. 조상님들이 물려주신 땅이라고는 딱 한 마지기, 저 산비탈 꼭대기에 붙어있는 밭뙈기 하나가 전부였거든. 그런데 그 밭이 그냥 밭이여? 아니지, 문제의 그 돌밭이여.
    어느 날 새벽이었지. 닭이 홰를 치기도 전, 시커먼 어둠 속에서 박 서방이 부스스 일어납니다. 문지방을 넘으려는데 방 안에서 자던 아이들이 잠꼬대를 하네. "아부지... 배고파요... 밥 줘...." 그 소리가 비수처럼 박 서방 가슴에 꽂히는구먼. 어제저녁도 맹물에 시래기 몇 가닥 띄운 죽으로 때웠으니 오죽하겠어. 그래도 어쩌나. 가장이 되어가지고 처자식 굶겨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나가서 땅이라도 파야지.
    박 서방이 이 빠진 낡은 호미 하나 달랑 들고 산비탈을 기어올라가는데, 그 걸음걸음이 천근만근이라. 뱃가죽은 등짝에 들러붙었고, 다리는 후들거려서 지팡이 없이는 걷지도 못하겠네.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 겨우겨우 밭에 도착하니, 눈앞에 펼쳐진 꼴이 가관이라. 이건 뭐 밭인지 자갈 무덤인지 분간이 안 가네그려. 흙보다 돌이 더 많은 땅, 호미 날이 들어갈 틈이 없는 땅. 그게 박 서방의 유일한 생명줄이었던 게지.

    "아이고, 내 팔자야. 남들은 호미만 대면 쑥쑥 들어가는 옥토를 파서 쌀독을 채운다는데, 나는 어째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땅만 파면 돌만 나온다냐."
    박 서방이 깊은 한숨을 땅이 꺼져라 내쉬고는, 호미를 들어 땅을 힘껏 내리찍었네. '깡-!' 하는 날카로운 쇳소리가 산골짜기를 쩌렁쩌렁 울리더니, 호미 날이 돌부리에 부딪혀 팅- 하고 튕겨 나가버리네. 그 충격에 박 서방 손아귀가 찌릿찌릿하게 울리고, 손바닥을 펴보니 거친 자루에 쓸려 물집이 잡히다 못해 터져서 붉은 피가 배어 나오는구먼.
    그래도 어쩌겠나. 이 돌들을 골라내야 콩이라도 한 쪽 심고, 팥이라도 한 알 심을 것 아닌가. 박 서방이 아픈 손을 입으로 호호 불어가며 다시 호미질을 시작했어. '깡! 깡! 깡!' 아이고, 소리만 요란하지, 캐내는 건 흙이 아니라 주먹만 한 돌멩이, 머리통만 한 바윗덩어리들뿐이야. 한 식경을 꼬박 매달려서 파낸 돌을 지게에 지고 밭두렁 밖으로 나르는데, 어깨가 빠질 것 같고 허리가 끊어질 것 같더란 말이지. 다리가 후들거려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는지 몰라.
    그렇게 죽을힘을 다해 돌을 나르고 돌아와 보면, 야속하게도 땅속에서 또 다른 돌덩이가 "나 여기 있소~" 하고 시커먼 고개를 내밀고 있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지. 이건 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도 아니고, 파도 파도 끝이 없는 돌밭이라. 해는 중천에 떠서 정수리를 태울 듯이 내리쬐고, 땀은 비 오듯 쏟아져 눈을 뜰 수가 없는데, 박 서방 목구멍은 타들어가고 눈앞이 핑 도는 거여.

    잠시 허리 좀 펴려고 밭두렁에 주저앉았는데, 저 아래 마을, 김 부자네 집 굴뚝에서는 점심 짓는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구수한 밥 냄새가 바람을 타고 여기까지 올라오네. "우리 식구들은 오늘 아침이나 제대로 챙겨 먹었을꼬... 막내 놈은 배고프다고 울지는 않았을꼬..." 박 서방 눈가에 뜨거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구먼. 제아무리 힘센 황소라도 이런 돌밭에서는 사흘도 못 견딜 텐데, 며칠을 굶은 사람 몸으로 이걸 감당하려니 오죽 힘들었겠나.
    박 서방이 애꿎은 호미 자루만 만지작거리면서 하늘을 원망하듯 중얼거렸지.
    "조상님들도 참말로 무심하시지. 물려주시려면 저 아래 김 부자네처럼 비 오면 물 고이고 볕 들면 곡식 자라는 문전옥답이나 좀 주시지, 어찌하여 호미 날도 안 들어가는 이런 몹쓸 땅을 주셔가지고 자손을 이리 고생시키신단 말입니까..."
    서러움이 북받쳐 올라서 땅을 치고 대성통곡이라도 하고 싶은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럴 힘조차 남아있질 않는 거여. 다시 비틀비틀 일어나서 제 머리통보다 큰 돌덩이 하나를 낑낑대며 집어 드는데, 그 무게가 꼭 박 서방이 짊어진 고단한 삶의 무게 같더란 말이지. 아이고, 불쌍한 우리 박 서방, 이 끝도 없는 돌밭에서 언제쯤 허리 한번 펴고 웃으며 살 수 있을꼬. 듣는 내가 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지네그려.

    ※ 고된 노동에 지쳐 막걸리 한 사발에 신세 한탄을 늘어놓다 밭두렁에서 잠든 박 서방

    자, 그렇게 박 서방이 돌과 씨름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서산마루에 걸리고, 사방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네. 온종일 뙤약볕 아래서 호미질을 해댔으니 박 서방 몰골이 오죽하겠나. 흙투성이가 된 얼굴은 땀과 눈물로 범벅이 돼서 얼룩덜룩하고, 옷은 땀에 절어 소금기가 허옇게 피었으니, 누가 보면 영락없는 산짐승 꼴이지. 이제 그만 연장 챙겨서 집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박 서방은 당최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구먼. 빈손으로 터덜터덜 집에 들어가서, "아부지, 뭐 맛난 거 가져왔소?" 하고 물어볼 토끼 같은 자식들 얼굴을 무슨 낯으로 보겠나.
    그때였어. 주섬주섬 옷매무새를 다듬던 박 서방 허리춤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는데, 뭔가 하고 봤더니 아침에 나올 때 마누라가 남몰래 챙겨준 조그만 호리병 하나가 매달려 있네. 짚으로 짠 망태기에 고이 넣어준 걸 깜빡하고 있었던 게지. 뚜껑을 뽕 하고 열어보니, 아이고! 시큼털털하면서도 구수한 냄새가 코를 톡 쏘는 게, 바로 막걸리 아닌가!
    "허허, 우리 마누라가... 제 입에 들어갈 밥 한 숟갈 아껴서 서방 힘내라고 이걸 챙겨줬구먼. 아이고, 못난 서방 만나 고생만 하는 사람인데... 고맙기도 하지."

    박 서방 가슴이 뭉클해지네. 쌀이 없어 술 찌꺼기에 물을 잔뜩 타서 만든 밍밍한 탁주겠지만, 지금 박 서방한테는 임금님이 마시는 옥로주보다 더 귀한 보물인 거여. 박 서방이 밭두렁에 털썩 주저앉아서 호리병을 들어 올렸지. 목이 타들어가니 당장이라도 벌컥벌컥 들이켜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박 서방이 어떤 사람인가. 배는 곯아도 예의범절은 깍듯한 양반 아닌가.
    "아무리 목이 말라도 그렇지, 이 땅의 주인한테 먼저 인사를 올려야지. 그래야 도리인 게지."
    박 서방이 떨리는 손으로 막걸리를 조금 따라서 밭 귀퉁이, 거친 돌 틈에다가 '쪼르륵' 부었네. 메마른 땅이 술을 꿀꺽 삼키는 것 같더구먼. 그러고는 흙투성이 손을 모아 합장을 하고 중얼거렸지.
    "토지신이시여, 터주대감이시여. 제가 비록 가진 건 없어도 마음만은 정성껏 모시려고 하오니, 부디 굽어살피시어 돌 좀 덜 나오게 해주십시오. 제발 우리 식구 굶어 죽지 않게 콩이라도 좀 열리게 도와주십시오. 예?"

    그러고 나서야 남은 막걸리를 입에 가져가 털어 넣는데, 캬! 그 맛이 어떠했겠소. 비록 물 탄 술이라 맹맹해도, 빈 속을 타고 찌릿하게 흐르는 그 서늘한 기운에 온몸의 뼈마디가 녹아내리는 것 같더란 말이지.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술이 뱃속을 뜨끈하게 데워주니, 그제야 살 것 같은 거여. 술이 한 잔 들어가니,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설움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는구먼.
    박 서방이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빈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해대며 주정을 시작했네. 아무도 없는 산골짜기니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겠다, 속 시원하게 한풀이나 해보자는 거지.
    "에이그, 더러운 세상! 퉤!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 물고 태어나서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고 떵떵거리며 사는데, 나는 전생에 무슨 나라를 팔아먹었기에 이 모양 이 꼴로 산단 말이냐! 이놈의 돌밭, 파도 파도 끝이 없는 이 징글징글한 돌덩이들! 너희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다 보니 목이 쉬고, 배에 힘이 빠져서 더는 못 하겠더래. 술기운은 알딸딸하게 오르고, 몸은 물 먹은 솜처럼 천근만근 무거워지는데, 산바람은 솔솔 불어오니 눈꺼풀이 천 냥 만 냥 무거워지는 거여.
    "에라 모르겠다. 잠이나 한숨 자고 가자. 여기서 얼어 죽으면 이 고생도 끝이겠지. 마누라야, 미안하네. 내 오늘은 너무 힘들어서 못 내려가겠네...."
    박 서방이 울퉁불퉁한 밭고랑 사이에 대자로 벌러덩 드러누워 버렸네. 등짝에는 뾰족한 돌멩이가 배기고, 바닥에서는 찬 기운이 올라오는데도, 술기운 때문인지 고단함 때문인지 박 서방은 세상 편안하게 눈이 감기는 거여. 머리 위로는 별이 하나둘 뜨기 시작하고, 풀벌레들이 '귀뚜르르, 귀뚜르르' 하며 자장가를 불러주네.
    그렇게 박 서방은 거친 돌을 베개 삼아, 하늘을 이불 삼아 세상모르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어. 코를 '드르렁~ 푸우~' 하고 골아대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산속에 있는 멧돼지도 놀라서 도망갈 판이라.

    ※ 한밤중 요란한 꽹과리 소리와 함께 나타난 도깨비 대장과의 기묘한 대면

    자, 밤이 깊어 삼경이라. 온 세상이 쥐 죽은 듯 고요한데, 저기 밭고랑에 처박혀 자던 박 서방 코고는 소리만 ‘드르렁~ 푸우~’ 하고 산골짜기를 울리고 있네. 그런데 말일세, 갑자기 저 산 너머에서 이상한 불빛이 번쩍번쩍하더니, 난데없는 소란이 일어나는 거여.
    ‘징- 징- 깽- 깽-!’
    마치 장날 굿판이 벌어진 것처럼 요란한 꽹과리 소리가 들려오고, 땅바닥이 ‘쿠궁- 쿠궁-’ 하고 울리기 시작하는데, 이게 사람 발소리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고, 짐승 발소리라고 하기에는 너무 규칙적인 거라.
    박 서방이 자다가 그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났네. 비몽사몽간에 눈을 비비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아이고 어머니! 이게 웬일인가. 칠흑 같던 밭 한복판에 파란 불덩어리들이 둥둥 떠다니는 게 아니겠어? 하나, 둘, 셋… 아니, 수십 개가 넘는 그 불덩어리들이 박 서방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는데, 그게 바로 말로만 듣던 ‘도깨비불’이었던 거여!

    “으, 으악! 이게 뭐여! 귀신이여, 도깨비여!”
    박 서방이 기겁을 해서 뒤로 자빠지며 엉금엉금 기어가는데, 등 뒤에서 벼락같은 호통 소리가 들려오네.
    “네 이놈!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드러누워 코를 고느냐! 우리 놀이터를 침범한 놈이 누구냐!”
    박 서방이 덜덜 떨며 고개를 돌려보니, 세상에나 만상에나. 집채만 한 덩치를 가진 괴물 하나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거라. 머리에는 뿔이 하나 솟았고, 눈은 부리부리한 것이 등잔불만 하고, 손에는 우둘투둘한 방망이를 들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험상궂은지 오금이 저려 일어설 수도 없네. 그 뒤로 올망졸망한 도깨비들이 떼를 지어 키득키득 웃으며 박 서방을 구경하고 섰네그려.
    “아이고, 도깨비 대감님! 저,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요. 그저 일하다가 너무 고단하여 잠시 눈을 붙인다는 것이 그만…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박 서방이 납작 엎드려 싹싹 비는데, 도깨비 대장이라는 놈이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기 시작해. 개 코보다 더 밝다는 도깨비 코가 움찔움찔하더니, 박 서방 허리춤을 가리키는 거여.
    “음? 어디서 구수한 냄새가 나는데? 이놈, 네 몸에서 나는 냄새가 심상치 않구나. 그 허리춤에 찬 것이 무엇이냐?”
    박 서방이 화들짝 놀라 허리춤을 만져보니, 아까 마시다 남은 막걸리 호리병이 매달려 있네. 도깨비들이 술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호랑이 앞의 토끼마냥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지.
    “이, 이것은… 제 마누라가 싸준 탁주이옵니다만….”
    “탁주? 술이란 말이냐? 오호라, 안 그래도 목이 칼칼하던 차에 잘되었다. 어디 그 맛 좀 보자!”
    도깨비 대장이 그 큰 손을 쑥 내밀어 호리병을 낚아채는데, 박 서방은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라. 이제 저 술을 마시고 나면 나를 잡아먹으려나, 아니면 방망이로 두들겨 패려나, 온갖 무서운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구먼.

    도깨비 대장이 호리병 마개를 ‘뽕!’ 하고 따더니, 냄새를 ‘음

    ’ 하고 깊게 들이마시네. 그러더니 입가에 침을 질질 흘리며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짓는 거여.
    “캬

    냄새 한번 기가 막히구나! 얘들아, 오늘 횡재했다! 인간 놈이 아주 귀한 것을 가지고 있었어!”
    주변에 있던 조무래기 도깨비들이 “대장님, 저도 한 입만요!”, “나도 맛 좀 봅시다!” 하며 우르르 몰려드는데, 그 모습이 무섭다기보다는 어째 철없는 아이들 같기도 하고, 묘~한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하네. 과연 이 도깨비들이 술 한 잔에 박 서방을 살려줄지, 아니면 더 큰 사단이 날지, 아주 손에 땀을 쥐게 생겼어!

    ※ 박 서방의 술대접에 감동한 도깨비들이 벌이는 하룻밤의 신비한 개간 작업

    자, 도깨비 대장이 호리병을 입에 대고 ‘꿀꺽, 꿀꺽’ 들이키기 시작하네. 호리병이 작으니 그 큰 덩치에 간에 기별이나 가겠나마는, 도깨비 대장은 그 맛이 어찌나 좋은지 눈을 지그시 감고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거여.
    “캬~! 좋다! 이승의 술맛이 꿀맛이라더니, 내 평생 이렇게 달달하고 시원한 술은 처음이로다!”
    대장이 입맛을 쩝쩝 다시며 남은 술을 탈탈 털어 마시더니, 빈 병을 아쉬운 듯 바라보는구먼. 옆에서 침만 꼴깍꼴깍 삼키던 졸개 도깨비들이 입을 삐죽거리며 투덜대기 시작해.
    “아니, 대장님 혼자 다 드시면 어떡합니까? 우리는 냄새만 맡으라는 겁니까?”
    “치사하다, 치사해! 인간 놈 잡아먹어 버릴 테다!”
    도깨비들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박 서방에게 다가오자, 박 서방은 기절초풍할 노릇이지. 그때 박 서방 머릿속에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었으니, ‘죽을 때 죽더라도 인심이나 쓰고 죽자’는 거였어.

    “저… 도깨비님들, 비록 술은 다 떨어졌지만, 제가 집에 가면 담가놓은 술이 한 항아리 더 있습니다요. 만약 저를 살려 보내주시면, 내일 밤에 더 맛있는 술과 메밀묵을 쒀서 대접해 드릴 테니, 노여움을 푸십시오.”
    박 서방이 덜덜 떨며 말하자, 도깨비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 얼굴을 쳐다보네.
    “뭐라고? 술 한 항아리에 메밀묵까지?”
    “야, 대장님! 이 인간 놈 말이 사실이라면 죽이기엔 아깝지 않습니까?”
    도깨비들은 워낙에 먹고 노는 걸 좋아하는 족속들이라, ‘술’과 ‘메밀묵’ 소리에 마음이 사르르 녹아버린 게지. 도깨비 대장이 껄껄 웃으며 박 서방 어깨를 툭 치는데, 그 힘이 어찌나 센지 박 서방이 땅속으로 쑥 박히는 줄 알았네.
    “허허, 놈참 기특하구나! 네 마음씨가 저 맑은 탁주처럼 고우니, 내 너를 살려주마. 대신! 우리가 밥값은 해야 하지 않겠느냐? 술을 얻어먹고 그냥 가면 도깨비 체면이 안 서지.”

    “네…? 밥값이라니요…?”
    “우리가 원래 흥이 나면 힘쓰는 걸 좋아하거든. 오늘 밤 이 술기운을 빌려 너에게 선물을 하나 주고 가마. 얘들아! 몸 좀 풀어보자! 이 밭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꼴이 보기 싫으니 싹 다 치워버려라!”
    도깨비 대장의 호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벌어지기 시작했네. 수십 명의 도깨비가 “얼씨구!”, “절씨구!” 추임새를 넣으며 밭으로 뛰어들었어.
    그러더니 그 무거운 바윗덩어리를 마치 수수깡 집어 던지듯 ‘휙- 휙-’ 집어 던지는데, 이건 뭐 사람의 힘이 아니여. 박 서방이 낑낑대며 온종일 파도 못 팠던 집채만 한 바위를, 도깨비 하나가 한 손으로 번쩍 들어 올리더니 저 멀리 산 너머로 ‘뻥!’ 하고 날려 보내네.
    ‘쿠궁! 콰당탕!’
    돌멩이 날아가는 소리가 천둥소리 같고, 먼지가 구름처럼 피어오르는데, 도깨비들은 신이 나서 춤을 추며 일하는 거여.

    “야야, 저기 박힌 돌도 뽑아라!”
    “영차! 어이쿠, 이건 좀 무겁네? 에잇, 받아라!”
    서로 돌멩이를 주고받으며 공놀이하듯 치워대니, 그 많던 자갈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누런 흙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해. 박 서방은 입이 떡 벌어져서 턱이 빠지는 줄도 모르고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지.
    “이게 꿈이여, 생시여… 내 눈앞에서 돌산이 평지가 되고 있네그려….”
    도깨비들의 요술 같은 개간 작업은 밤새도록 이어졌어. 박 서방의 호미질로는 백 년이 걸려도 못 할 일을, 이 신통방통한 놈들이 술 한 잔 기운에 하룻밤 만에 해치우고 있는 것이지. 동이 트기 전, 과연 이 척박한 땅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르지 않는가!

    ※ 날이 밝고 마주한 믿을 수 없는 광경, 자갈밭이 기름진 옥토로 변하다!

    자, 요란하던 밤이 지나고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며 아침이 밝아옵니다. 새벽안개가 자욱한 산골짜기에 다시 고요가 찾아왔네. 박 서방은 어찌 되었느냐고? 밭두렁에 쭈그리고 앉아 밤새 벌벌 떨다가, 새벽녘에야 깜빡 잠이 들었더랬지.
    “으음… 춥다, 추워….”
    박 서방이 부스스 눈을 뜨며 기지개를 켜는데, 온몸이 쑤시는 게 어제 일이 꿈인지 생시인지 몽롱한 거여. “아이고, 내가 미쳤지. 도깨비 꿈을 다 꾸고… 어서 일어나서 또 돌이나 캐야지.” 박 서방이 습관처럼 호미를 찾으며 고개를 돌렸는데, 그 순간!
    “헉…! 이, 이게 뭐여?”
    박 서방 입이 떡 벌어져서 다물어지질 않네. 눈을 비비고 또 비벼봐도, 자기 볼을 꼬집어봐도 눈앞의 광경은 변하질 않아. 어제까지만 해도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 있던 그 징글징글한 돌무더기가 거짓말처럼 싹 사라진 거여! 그뿐인가? 흙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자갈밭이, 세상에나,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검은 흙밭으로 변해있지 뭔가.

    박 서방이 홀린 듯이 밭으로 기어들어가 흙을 한 줌 쥐어보았네.
    “세상에… 세상에… 보들보들한 것이 꼭 밀가루 반죽 같구나….”
    손가락 사이로 스르르 빠져나가는 흙의 감촉이 어찌나 부드러운지, 이건 그냥 밭이 아니라 명주 비단 같아. 도깨비들이 밤새 돌은 다 걷어내고, 어디서 좋은 흙만 퍼다가 섞어놓은 게 분명해. 호미를 들이댈 필요도 없이 손으로만 파도 쑥쑥 들어가는 천하의 문전옥답이 된 것이지.
    “으하하하! 꿈이 아니었어! 도깨비님들이 진짜로 해주고 갔어! 여보! 여보!”
    박 서방이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며 밭을 뒹굴었네. 흙냄새가 구수한 것이 꼭 밥 냄새 같아서, 흙에다가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기 시작하는 거여. 그동안 돌밭에서 흘린 피땀 눈물이 생각나서 울고, 이 기적 같은 현실이 고마워서 우는 거지.
    “천지신명님, 고맙습니다! 도깨비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내 이 은혜는 죽어서도 잊지 않으리다!”

    박 서방은 신발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산비탈을 내달려 집으로 향했어.
    “여보! 얼른 나와 보소! 우리 이제 살았네, 살았어!”
    집에 있던 마누라랑 아이들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뛰어나왔겠지. 박 서방이 식구들을 끌고 밭으로 다시 올라갔을 때, 아침 햇살이 그 밭을 비추는데, 그 검은 흙이 황금가루를 뿌려놓은 듯 번쩍번쩍 빛나더란 말이지. 마누라도 주저앉아 통곡을 하고, 아이들도 덩달아 만세를 부르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짠하고 아름다운지 지나가던 까치들도 넋을 잃고 쳐다봤다지 뭔가.
    자, 이제 돌밭이 금밭이 되었으니 박 서방 인생에도 쨍하고 해 뜰 날이 온 것 아니겠나? 과연 이 밭에서 어떤 곡식들이 자라날지

    ※ 도깨비 덕에 큰 부자가 된 박 서방, 하지만 초심을 잃지 않고 베풀며 사는 삶

    그날 이후로 박 서방네 밭은 마을의 명물이 되었네. 사람들은 그 밭을 두고 ‘도깨비 터’라고 불렀지.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이야. 그 밭에다가는 뭘 심어도 그냥 자라는 법이 없어. 콩을 심으면 콩대가 낭창낭창하게 휘어질 정도로 주렁주렁 열리고, 팥을 심으면 팥알이 굵기가 밤톨만 해.
    어디 그뿐인가? 가뭄이 들어 아랫마을 논바닥이 거북이 등짝처럼 갈라질 때도, 희한하게 박 서방네 밭에는 밤마다 이슬이 촉촉하게 내려서 작물들이 시들지를 않는 거여. 사람들은 “도깨비들이 밤마다 물을 길어다 준다”며 수군거렸지.
    가을 추수 때가 되니, 박 서방네 마당에는 곡식 가마니가 산더미처럼 쌓였네. 예전 같으면 끼니 걱정에 한숨만 쉬던 집구석이, 이제는 쌀독에 쌀이 넘치고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어가. 박 서방은 하루아침에 마을에서 제일가는 알부자가 된 거여.
    보통 사람 같으면 갑자기 돈벼락을 맞으면 눈이 뒤집혀서 거드름을 피우거나, 곳간 문을 걸어 잠그기 바쁠 텐데, 우리 박 서방은 달랐어.

    “여보, 올해 농사가 이리 잘된 것은 다 내 덕이 아니라 하늘의 덕이고 도깨비의 덕이오. 우리만 배불리 먹으면 천벌을 받지 않겠소?”
    박 서방은 곳간 문을 활짝 열었네. 흉년이라 끼니를 거르는 이웃들에게 쌀과 콩을 아낌없이 퍼주기 시작했어.
    “자, 김 영감님. 이거 가져가서 죽이라도 쑤어 드시오. 갚긴 뭘 갚아, 나중에 형편 풀리면 그때나 주슈.”
    “아이고, 칠성네 엄마. 애들 굶기지 말고 이거 좀 가져가.”
    마을 사람들은 박 서방을 ‘박 부자’가 아니라 ‘박 선인(善人)’이라 불렀지. 박 서방은 자신이 배고파 봤기에 배고픈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게야.
    어느 날은 장날에 박 서방이 비단 옷을 해 입고 나갔더니, 사람들이 굽신거리며 길을 비켜줘. 하지만 박 서방은 거만한 표정 하나 없이, 옛날에 같이 고생하던 지게꾼들을 불러다가 국밥에 막걸리를 탕탕 쏘는 거여.

    “허허, 많이들 드시게. 나도 자네들처럼 지게 지고 다닐 때가 엊그제 같은데, 사람 팔자란 게 참 알다가도 모를 일 아닌가. 힘들 내시게나!”
    박 서방의 이런 마음씀씀이가 하늘에 닿았는지, 재산은 퍼주면 퍼줄수록 샘물처럼 솟아나서 더 불어만 가네. 도깨비가 준 것은 비옥한 땅뿐만이 아니라, 박 서방의 넉넉한 마음 그릇을 채워줄 복까지 함께 준 것이지.
    이렇게 착한 부자가 되니, 도깨비들도 얼마나 뿌듯했겠어? 아마 밤마다 밭두렁에 앉아서 박 서방 칭찬을 안주 삼아 막걸리 파티를 벌이지 않았을까 싶네.

    ※ 세월이 흘러도 잊지 않은 도깨비와의 약속, 그리고 이야기가 주는 마지막 교훈

    세월은 유수와 같아서, 어느덧 박 서방 머리에도 하얀 서리가 내리고 허리가 굽은 노인이 되었네. 그 척박했던 돌밭은 여전히 윤기가 흐르는 문전옥답으로 남아 자식들에게, 또 손주들에게 대물림되었지.
    매년 시월 상달, 수확이 끝난 늦가을 밤이 되면 박 서방은 아무리 몸이 아파도 꼭 하는 일이 있었어. 바로 그 산비탈 밭 한가운데에 작은 멍석을 깔고 술상을 차리는 일이었지.
    상 위에는 뭐가 올라갔느냐? 값비싼 산해진미? 아니야.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메밀묵 한 접시와, 맑게 거른 막걸리 한 항아리, 그리고 투박한 돼지고기 몇 점. 딱 그 옛날 도깨비들과 약속했던 그 음식들이라.
    늙은 박 서방이 지팡이를 짚고 술잔을 채우며 허공에 대고 말을 거네.

    “도깨비님들, 잘 계시오? 나 박 서방이오. 올해도 잊지 않고 메밀묵 쑤어 왔으니, 친구들 데리고 와서 한잔하시구려.”
    아무도 없는 캄캄한 밭이지만, 박 서방 눈에는 보이는 것 같아. 젊은 날 자신을 놀라게 했던 그 뿔난 얼굴들이, 이제는 오랜 친구처럼 정겹게 느껴지는 게지.
    “허허, 내 이제 갈 날이 머지않았는데, 갈 때 가더라도 빚은 없어야지. 그때 그 막걸리 한 잔 값으로 평생을 배불리 살았으니, 내 이 은혜를 어찌 다 갚겠소. 그저 고맙고, 또 고맙소.”
    박 서방이 술을 밭에 뿌리자, 잠잠하던 바람이 ‘휘잉~’ 하고 불어와 수수밭을 흔드네. ‘스스스, 스스스’ 하는 소리가 마치 도깨비들이 “그래, 잘 먹겠다, 박 영감!” 하고 대답하는 웃음소리 같아. 박 서방은 그 바람 소리를 들으며 빙그레 미소를 짓네.
    “그래, 그래. 맛있게들 드시게. 내년에도 내 살아있으면 또 옴세.”

    박 서방은 죽는 날까지 그 약속을 지켰고, 박 서방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자손들이 그 뜻을 이어받아 매년 도깨비 제사를 지냈다고 해. 그래서인지 그 집안은 대대손손 망하는 법 없이 부자로 잘 살았다지 뭔가.
    자, 여러분.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뭐겠소? 도깨비가 요술을 부려 부자가 된 게 중요한 게 아니여. 박 서방이 가난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 ‘착한 마음’, 그리고 술 한 잔의 은혜도 잊지 않고 평생을 갚으려 했던 ‘신의’. 그것이 진짜 박 서방을 부자로 만든 비결 아니었겠소?
    돌밭을 옥토로 만드는 기적은 도깨비 방망이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네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르네. 오늘 밤, 여러분 마음속 돌밭에도 따뜻한 막걸리 한 잔 부어보시게.

    유튜브 엔딩 멘트

    "어르신들, 오늘 박 서방과 도깨비 이야기, 재밌게 들으셨소? 듣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훈훈해지는 게, 꼭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숭늉 한 그릇 마신 기분이지요? 세상 살다 보면 내 인생만 자갈밭 같고 힘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박 서방처럼 착하게, 성실하게 살다 보면 언젠가는 쨍하고 해 뜰 날이 반드시 옵니다. 오늘 밤에는 꿈속에서 도깨비 친구 만나서 로또 번호라도 하나 받으시라고 제가 기 팍팍 넣어드리겠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즐거우셨다면, 복채는 '구독'과 '좋아요'로 받겠습니다. 그거 누른다고 돈 나가는 거 아니니께, 꾹 한번 눌러주시구려! 그럼 저는 더 신나고 재미난 이야기 보따리 챙겨서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모두들 강녕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