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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한 선비와 도깨비 방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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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매일 밤 글공부만 하던 찢어지게 가난한 선비. 처자식의 굶주림을 보다 못해 결국 목숨을 걸고 도깨비가 출몰한다는 야산으로 향합니다! "내 목숨을 걸 테니, 나와 내기를 하자!" 도깨비와의 아찔한 승부 끝에 얻어낸 금은보화.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죠. 도깨비가 금은보화를 주며 내건 상상 초월의 기막힌 조건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 1: 찢어지게 가난한 김 선비의 결심과 도깨비 고개로의 여정

    조선 팔도에서 가난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럽다 못해 통곡을 할 지경인 한양 외곽의 김 선비. 그의 집은 차마 사람 사는 집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만큼 허름하고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 위태로운 낡은 초가삼간이었습니다. 지붕에 이엉을 언제 새로 얹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여, 장마철에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썩은 볏짚 사이로 천장에서 빗물이 구멍 난 옹기처럼 뚝뚝 떨어져 방 안에서도 삿갓을 쓰고 있어야 할 판이었습니다. 게다가 삭풍이 살을 에는 듯 불어오는 혹독한 한겨울에는 숭숭 뚫린 문풍지 사이로 시퍼런 칼바람이 거침없이 들이쳐, 윗목에 떠다 놓은 자리끼 물그릇이 밤새 꽁꽁 얼어붙어 돌덩이처럼 변하기 일쑤였지요. 김 선비는 명색이 뼈대 있는 양반의 자손으로 태어나 평생을 차가운 책상머리에 꼿꼿하게 앉아 사서삼경만 파고들며 벼슬길에 오를 날만 학수고대했건만, 하늘도 무심하시지 번번이 과거 낙방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습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이라곤 여기저기 기워 입어 색이 바랜 낡아빠진 도포 한 벌과, 주린 배를 부여잡고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가엾은 처자식뿐이었습니다.

    "아이고, 내 기구한 팔자야. 하늘 아래 지아비라고 딱 하나 있는 것은 허구한 날 저리 꼿꼿하게 앉아 공자 맹자 타령만 하고 있으니, 당장 내일 아침 어린것들 입에 들어갈 풀뿌리조차 어찌 구한단 말인가. 차라리 내가 남의 집 하녀로 들어가 삯바느질이라도 해야 이 지독한 목숨들을 연명할 수 있으려나 봅니다. 책을 삶아 먹으면 쌀이 나옵니까, 떡이 나옵니까!"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 부엌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깊고 서러운 한숨 섞인 원망은, 김 선비의 앙상한 가슴을 무자비하게 후벼 파는 날카로운 비수와도 같았습니다. 부뚜막에는 며칠째 땔감이 없어 불씨 한 번 지피지 못해 서늘한 냉기만이 감돌았고, 구석에 놓인 쌀독은 쥐조차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 나갈 만큼 바닥을 싹싹 긁어 텅 비어 있었습니다. 불기 하나 없는 싸늘한 방 한구석에서는 며칠을 굶주려 배가 고파 도저히 잠을 이루지 못하는 어린 남매가 얇고 해진 이불 하나를 덮어쓴 채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훌쩍이고 있었습니다. 김 선비는 흔들리는 호롱불 아래서 손에 쥔 논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습니다. 글씨가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습니다.

    '내 이 알량한 자존심과 선비의 체면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당장 내 피 같은 새끼들이 방구석에서 배를 곯아 차갑게 죽어가게 생겼는데, 입신양명이 다 무엇이고 학문이 다 무엇이란 말이냐! 가장으로서 처자식 입에 풀칠조차 못 하는 내가 어찌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가!'

    끓어오르는 자괴감과 분노를 이기지 못한 김 선비는 평생을 목숨처럼 아끼던 낡은 책을 거칠게 방바닥에 내동댕이쳤습니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먼지가 수북하게 쌓인 벽장 깊숙한 곳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더듬거리던 그의 손에 차가운 쇳덩이 하나가 쥐어졌습니다. 그것은 그의 할아버지 대부터 집안에 전해 내려오던, 지금은 녹이 슬고 날이 무뎌져 볼품없어진 낡은 단검 한 자루였습니다.

    그는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해가 지면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시되는 흉흉한 소문을 떠올렸습니다. 마을 뒷산 너머, 산세가 험하고 음기가 강해 대낮에도 장정들이 얼씬하지 않는다는 무시무시한 '도깨비 고개'. 그곳에는 수백 년 묵은 흉악한 늙은 도깨비들이 밤마다 모여 씨름을 하고, 인간의 피를 마시며 요술 방망이로 금은보화를 뚝뚝 떨어뜨리며 내기를 즐긴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무지렁이들이나 믿는 요망한 헛소리라며 일축하고 호통을 쳤겠지만, 벼랑 끝에 몰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김 선비에게 그 무서운 전설은 일확천금을 거머쥐어 처자식을 살릴 유일한 썩은 동아줄로 보였습니다.

    "여보, 내 잠시 다녀올 곳이 있소. 방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아이들을 안고 조금만 기다리시오."

    "아니, 이 깊은 밤에 도대체 어딜 가신다는 말씀이오? 밖에는 지금 사람을 집어삼킬 듯한 눈보라가 치고 있소! 제발 나가지 마시오!"

    불안함에 휩싸인 아내가 선비의 낡은 도포 자락을 붙잡고 눈물로 만류했지만, 김 선비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결연하고 매섭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품속에 차가운 단검을 단단히 품은 그는 아내의 손을 조용히 떼어내고, 눈보라가 몰아치는 캄캄한 밤길로 거침없이 나섰습니다. 얇은 짚신 사이로 스며드는 얼음장 같은 눈밭의 끔찍한 냉기도, 살을 베어내는 듯한 날카로운 칼바람도 처자식을 먹여 살리겠다는 굳은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산길은 짐승조차 다니지 않아 험난하고 스산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흔들리는 앙상한 나뭇가지들은 마치 원귀의 굽은 손아귀처럼 김 선비의 얼굴과 옷자락을 할퀴고 부여잡았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부엉이의 기괴한 울음소리가 귓가를 섬뜩하게 맴돌았습니다. 하지만 김 선비는 두려움을 억누르며, 오직 도깨비를 만나 그 요술 방망이를 빼앗고야 말겠다는 일념 하나로 눈 쌓인 산등성이를 묵묵히 올랐습니다. 그렇게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한참을 오르자,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인 저 멀리 고갯마루에서 소름 끼치도록 푸르스름한 도깨비불 여러 개가 기괴하게 일렁이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 2: 으스스한 도깨비 소굴, 목숨을 건 일생일대의 내기

    푸른 불꽃이 사방에서 기괴한 춤을 추듯 일렁이는 넓고 황량한 공터. 그곳에는 언제 죽었는지 모를 커다란 짐승들의 하얀 뼈와 기괴한 모양의 바위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고, 코를 찌르는 역겨운 피비린내와 짙은 유황 냄새가 진동하여 숨을 쉬기조차 힘들 정도였습니다. 김 선비가 커다란 바위 뒤에 몸을 납작 숨기고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어 상황을 엿보자, 공터 한가운데에는 웬만한 초가집만 한 엄청난 체구에 붉고 거친 피부를 가진 거대한 도깨비 한 마리가 커다란 바위 위에 오만하게 걸터앉아 있었습니다. 도깨비의 머리에는 하늘을 찌를 듯 뾰족하고 시퍼런 뿔이 두 개 솟아 있었고, 부리부리한 눈에서는 불길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으며, 그 거대한 손에는 전설로만 수없이 듣던 번쩍이는 검은 쇠방망이가 묵직하게 들려 있었습니다.

    "크흐흐, 오늘은 이 놈의 산중이 참으로 심심하고 조용하구나. 어디 길을 잃고 헤매는 멍청한 인간 놈 하나 안 지나가나? 내기라도 해서 피를 말려 죽이는 재미라도 있어야 이 긴긴밤을 지새울 터인데 말이야."

    도깨비가 혼잣말을 읊조리는 목소리는 마치 험준한 산 전체가 쩌렁쩌렁 흔들리는 듯한 거대한 천둥소리와도 같았습니다. 바위 뒤에 숨어 그 압도적인 요기를 정면으로 마주한 김 선비는,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극한의 공포에 사시나무 떨듯 온몸의 뼈마디가 부딪히는 소리가 날 정도로 떨렸습니다. 당장이라도 뒤를 돌아 산을 뛰어 내려가고 싶은 본능이 솟구쳤지만, 싸늘한 방구석에서 배를 움켜쥐고 자신만을 기다리고 있을 어린 자식들과 아내의 핏기 없는 얼굴을 떠올리자 기적처럼 두려움이 가라앉았습니다. 김 선비는 덜덜 떨리는 이빨을 꽉 깨물고, 굳은 결심을 한 듯 바위 뒤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와 거대한 도깨비 앞을 당당하게 막아섰습니다.

    "네 이놈, 요망한 도깨비야! 내가 오늘 밤, 너와 일생일대의 내기를 하러 이 험한 산을 넘어왔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깊은 산속에서 갑작스러운 인간의 당돌한 외침이 들리자, 도깨비는 눈을 둥그렇게 뜨며 발밑의 김 선비를 흥미롭다는 듯 내려다보았습니다.

    "오호라? 이게 도대체 무슨 조화란 말이냐. 이 야심하고 추운 밤에, 그것도 살점 하나 없이 뼈만 앙상한 샌님 하나가 겁도 없이 제 발로 호랑이 아가리 속으로 찾아왔단 말이냐? 그래, 좋아! 인간들의 피를 말리는 내기는 언제나 환영이지. 헌데 네놈은 내기에 걸 만한 값어치 있는 물건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이냐? 보아하니 땡전 한 푼 없어 보이는 거렁뱅이 꼴을 하고 있는데 말이다."

    도깨비의 조롱 섞인 비웃음에 김 선비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품속에서 낡고 녹슨 단검을 꺼내 얼어붙은 땅에 콱 꽂으며 목에 핏대를 세우고 소리쳤습니다.

    "나에게 지금 당장 금은보화는 없으나, 내가 가진 가장 귀한 것, 바로 오직 이 목숨 하나뿐이다! 내가 이 공정한 내기에서 진다면 내 목숨을 기꺼이 너에게 내어주어 네놈의 저녁거리가 되게 하마. 하지만 만약 내가 이긴다면, 네놈이 쥐고 있는 그 요술 방망이와 네가 가진 금은보화를 전부 나에게 넘겨라!"

    도깨비는 김 선비의 목숨을 건 당돌하고도 무모한 제안에 어이가 없다는 듯 뱃살을 잡고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크하하하하! 좋다, 참으로 좋다! 하찮은 목숨을 건 내기라, 참으로 오랜만에 피가 끓고 심장이 뛰는구나. 헌데 이 연약한 샌님과 무슨 내기를 한단 말이냐. 힘겨루기로 씨름을 할까, 아니면 밤새도록 술 마시기 대결이라도 할 텐가? 어느 쪽이든 네놈의 뼈도 못 추리게 만들어 주마!"

    "무식하게 힘만 쓰는 요괴와 글을 읽는 선비가 어찌 힘을 겨룰 수는 없는 노릇이고, 지혜를 겨루는 수수께끼로 승부를 내자! 내가 머리를 쥐어짜 내는 문제를 네가 맞히지 못한다면 깔끔하게 나의 승리다!"

    김 선비는 극도의 공포 속에서도 선비의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도깨비의 번뜩이는 눈을 똑바로 노려보았습니다. 평생을 책과 씨름하며 우주 만물의 이치를 탐구해 온 그에게 수수께끼만큼은 그 어떤 요괴와 붙어도 자신 있는 유일한 분야였습니다. 도깨비는 콧방귀를 거칠게 뀌며 들고 있던 쇠방망이를 땅에 쿵 내리찍어 땅을 뒤흔들었습니다.

    "크흐흐, 좋다. 어디 한 번 네놈의 그 얄팍한 머리통에서 무슨 문제가 나오는지 들어나 보자꾸나. 내가 맞히지 못할 문제는 이 세상천지에 없느니라! 단, 내가 정답을 맞히는 즉시 네놈의 목통을 물어뜯어 주마!"

    김 선비는 차가운 밤공기를 들이마시며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는, 자신이 알고 있는 철학적 지식을 총동원하여 가장 기묘하고 난해한 수수께끼를 천천히 던졌습니다.

    "잘 들어라. 아침에는 네 발로 기어 걷고, 점심에는 두 발로 꼿꼿이 걸으며,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 중… 등에는 닿을 수 없는 거대한 산을 업고 입으로는 시뻘건 불을 뿜어내는 것은 과연 무엇이냐?"

    ※ 3: 내기에서 이겨 얻은 금은보화, 그리고 도깨비의 기막힌 조건

    김 선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유만만하던 도깨비의 붉은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앞부분의 '아침에는 네 발, 점심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이라는 구절을 들었을 때만 해도 도깨비는 그것이 인간의 일생을 뜻하는 아주 흔하고 시시한 수수께끼라 여겨 코웃음을 치려 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뒤에 덧붙여진 '등에 거대한 산을 업고 입으로 시뻘건 불을 뿜어내는 것'이라는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기괴한 조건이 붙자, 도깨비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엉키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이 산을 업을 리도 없고 불을 뿜을 리도 만무했으니, 도깨비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혼란에 빠졌습니다.

    "크으으… 네 발에 두 발에 세 발… 그런데 등에 산을 업고 불을 뿜는다고? 거북이냐? 아니면 전설 속의 용이란 말이냐? 아니지, 용이 지팡이를 짚을 리가 없지 않은가!"

    도깨비는 커다란 뿔을 벅벅 긁적이며 차가운 바닥을 쿵쿵 구르고, 애꿎은 집채만 한 바위를 걷어차 산산조각 내며 한참을 끙끙대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날 정도로 머리를 굴렸지만, 수백 년을 살아온 요괴의 단순한 지혜로는 도저히 그 철학적인 비유의 답을 유추해 낼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밤이 깊어 새벽이 다가올 무렵, 도깨비는 씩씩거리며 억울하다는 듯 짐승 같은 괴성을 내질렀습니다.

    "크아아악! 도저히 모르겠다! 도대체 정답이 무엇이냐! 이 세상에 그런 괴상망측한 놈이 존재하긴 한단 말이냐!"

    김 선비는 안도의 한숨을 남몰래 내쉬며 꼿꼿한 자세로 정답을 외쳤습니다.

    "정답은 바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다. 아침, 점심, 저녁의 비유는 흔히 알듯 평범한 인간의 일생을 뜻하는 것이 맞다. 허나, 평생토록 등에 산처럼 거대하고 무거운 탐욕을 짊어지고 살아가며, 남을 시기하고 미워하여 입으로는 끊임없이 분노와 악담의 불을 뿜으며 살아가는 추악한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의 욕망 그 자체 아니더냐!"

    김 선비의 재치 있고 깊은 철학이 담긴 답변에, 도깨비는 무언가에 크게 얻어맞은 듯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무릎을 탁 치며 산이 떠나가라 호탕하게 웃어젖혔습니다.

    "크하하하하! 졌다, 내가 완벽하게 졌어! 과연 평생 글을 읽은 선비다운 기가 막힌 수수께끼로구나. 내 이 산중에서 수백 년을 짐승처럼 살았지만 이토록 교묘하고 정곡을 찌르는 문제는 처음 들어본다. 인간의 뱃속에 들어찬 그 구역질 나는 욕망을 이리도 절묘하게 묘사하다니, 참으로 대단한 놈이다!"

    내기에서 패배를 인정하는 것만큼은 뒤끝이 없는 도깨비는, 약속대로 자신이 들고 있던 번쩍이는 쇠방망이와 바위 뒤에 숨겨두었던 엄청난 양의 금괴가 가득 담긴 무거운 자루를 김 선비의 발밑에 툭 던져놓았습니다.

    "내기는 내기고 약속은 약속이니 이 요술 방망이와 금은보화를 모두 너에게 주마. 이 방망이를 바닥에 두드리며 '금 나와라 뚝딱' 하고 외치면 번쩍이는 금이 쏟아져 나올 것이고, '은 나와라 뚝딱' 하면 은이 나올 것이다."

    김 선비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얼굴로 차가운 방망이와 묵직한 금괴 자루를 품에 꽉 끌어안았습니다. 차가운 쇳덩이의 감촉이 그제야 현실임을 알려주었습니다. 드디어 찢어지게 가난하여 죽음만을 기다리던 비참한 처지에서 벗어나, 남부럽지 않게 떵떵거리며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굶어 죽어가던 처자식에게 따뜻한 이팝나무 고봉밥을 먹이고, 추위를 막아줄 부드러운 비단옷을 입힐 생각에 그의 가슴은 터질 듯이 벅차올랐습니다. 김 선비가 거듭 고개를 숙이며 벅찬 감동을 안고 산을 내려가려던 찰나였습니다.

    갑자기 도깨비의 서늘하고 기괴한 목소리가 그의 등 뒤에서 등골을 오싹하게 울렸습니다.

    "잠깐, 인간. 네놈이 크게 착각하는 것이 하나 있구나. 이 세상에 온전한 공짜가 어디 있겠느냐. 내가 내기에 져서 이 엄청난 물건을 순순히 넘기긴 하나, 그 요술 방망이를 사용할 때마다 네놈이 피눈물을 흘리며 치러야 할 기막힌 조건이 하나 있다."

    김 선비는 심장이 멎는 듯 흠칫 놀라 걸음을 멈추고 뻣뻣하게 굳은 채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도깨비의 눈동자가 아까와는 달리 핏빛으로 붉게 번뜩이고 있었습니다.

    "네가 평생을 바쳐 머릿속에 채워 넣은 그 잘난 '지식' 말이다. 네가 이 방망이를 두드려 탐욕스럽게 재물을 얻어낼 때마다, 네 머릿속에 들어 있는 고상한 학문과 글자들, 그리고 네가 평생 쌓아온 가장 소중한 기억들이 하나씩 영원히 지워질 것이다. 재물이 산처럼 쌓일수록 너는 점점 글을 단 한 자도 읽지 못하는 멍청한 바보가 될 것이며, 끝내 네가 그토록 살리고자 했던 처자식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비참한 짐승 같은 백치가 될 터. 어떠냐? 그래도 이 방망이를 기어코 가져가겠느냐?"

    가슴이 철렁 내려앉다 못해 영혼이 부서지는 듯한 끔찍한 조건이었습니다. 평생 선비로서의 꼿꼿한 자부심과 학문을 목숨처럼 여겨온 그에게 지식과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차라리 숨을 거두는 것보다 더한 참혹한 형벌이었습니다. 하지만 산 아래, 불 꺼진 차가운 방구석에서 자신을 기다리며 굶어 죽어가는 가족들의 야윈 얼굴이 떠오르자 김 선비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며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내 이 알량한 지식 따위가 내 피 같은 가족들의 목숨보다 귀하겠는가. 내가 기꺼이 바보 천치가 되어 남들의 손가락질을 받아도 좋으니, 내 불쌍한 식구들만 살릴 수 있다면 그 어떤 저주라도 기꺼이 감당하겠다!'

    "좋다! 그 무서운 조건, 내가 기꺼이 받아들이마!"

    김 선비는 흔들림 없는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묵묵히 어두운 산길을 내려왔습니다. 그의 손에 쥐어진 방망이는 세상을 다 가진 듯 묵직하고 든든했지만, 어둠 속에서 도깨비가 남긴 조롱 섞인 저주의 말은 그의 가슴 한구석에 지워지지 않는 서늘한 쇳덩어리 같은 응어리로 깊게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탐욕과 저주가 뒤섞인, 되돌릴 수 없는 잔혹한 계약이 시작된 것입니다.

    ※ 4: 벼락부자가 된 김 선비, 그러나 서서히 드러나는 끔찍한 대가

    도깨비 고개를 넘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김 선비의 온몸은 땀과 눈 녹은 물로 흠뻑 젖어 있었지만, 그의 가슴 속은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뜨거운 열기로 펄펄 끓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캄캄하고 냉기가 감도는 방 안,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 서로를 부둥켜안고 쓰러지듯 잠든 아내와 어린 남매의 가엾은 모습을 본 김 선비는 눈물을 훔치며 방문을 굳게 걸어 잠갔습니다. 그리고 품속에서 묵직하고 차가운 요술 방망이를 조심스레 꺼내 들었습니다.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습니다. 그는 떨리는 두 손으로 방망이를 꽉 쥐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방바닥을 향해 가볍게 내리치며 외쳤습니다.

    "금 나와라 뚝딱!"

    그 순간이었습니다. '번쩍' 하는 눈부신 섬광이 어두운 초가집 방 안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혔고, 허공에서 무언가 무거운 것들이 쏟아지는 둔탁한 소리가 났습니다. 눈을 떠보니, 퀴퀴한 냄새가 나던 낡은 장판 위로 어른 주먹만 한 영롱한 황금 덩어리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김 선비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황금을 만져보았습니다. 차갑고도 묵직한, 진짜 황금이 분명했습니다. 미친 듯한 환희에 휩싸인 그는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한번 방망이를 내리쳤습니다.

    "은 나와라 뚝딱! 쌀 나와라 뚝딱! 비단 나와라 뚝딱!"

    방망이가 바닥을 칠 때마다 은괴가 산처럼 쏟아졌고, 윤기가 흐르는 하얀 쌀가마니와 청나라에서 들여온 최고급 비단들이 방 안을 가득 채우다 못해 문풍지를 뚫고 나갈 지경이 되었습니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잠에서 깬 아내와 아이들은 눈앞에 펼쳐진 기적 같은 광경에 비명을 지르며 서로의 볼을 꼬집어 보았습니다. 꿈이 아니었습니다. 허름한 초가삼간은 순식간에 조선 최고의 보물창고로 변해버렸고, 김 선비 가족은 금괴를 껴안고 하염없이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음 날부터 김 선비 가족의 삶은 그야말로 천지개벽하듯 백팔십도 달라졌습니다. 그는 당장 비가 새고 쓰러져가던 초가집을 미련 없이 허물어버리고, 그 자리에 한양 장안에서 제일가는 목수들을 불러모아 으리으리한 아흔아홉 칸짜리 대궐 같은 기와집을 지어 올렸습니다. 마당에는 사시사철 지지 않는 기화요초가 만발했고, 곳간에는 팔도에서 거둬들인 진귀한 산해진미와 쌀가마니가 썩어날 정도로 산더미처럼 쌓였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거친 삼베옷을 벗어 던지고, 왕실에서나 입을 법한 화려하고 부드러운 비단옷을 겹겹이 겹쳐 입게 되었습니다. 수십 명의 하인들이 김 선비의 헛기침 소리 하나에도 땅에 엎드려 굽신거렸고,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가난한 샌님이라며 그를 벌레 보듯 무시하고 조롱하던 마을 사람들은 이제 매일같이 귀한 선물을 바리바리 싸 들고 와 그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아부를 떨기 바빴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을 비웃던 도깨비의 섬뜩한 경고는 결코 헛된 협박이나 허언이 아니었습니다. 으리으리한 기와집에 재물이 산처럼 쌓이고, 매일 밤 기름진 고기와 독한 술로 배를 채우는 생활이 풍족해질수록, 김 선비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아주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들이 모래알처럼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사서삼경의 어렵고 난해한 구절들이 입가에서 맴돌기만 할 뿐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정도였습니다. '피곤해서 그런 것이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증상은 날이 갈수록 무서운 속도로 악화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평생을 바쳐 외우고 썼던 흔한 한자의 음과 뜻마저 까맣게 잊어버려 붓을 쥐고도 멍하니 종이만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과거 시험을 보아 벼슬길에 오르겠다는 꼿꼿한 선비의 꿈은 진작에 산산조각이 나버렸고, 심지어 이제는 친척이 보낸 간단한 안부 서신조차 스스로 해독하지 못해, 글을 아는 하인을 몰래 불러내어 대신 읽어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비참한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책을 펼쳐 보아도, 그 안에 적힌 먹물 글씨들은 그저 검은 개미 떼가 이리저리 기어 다니는 흉측한 얼룩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평생 선비로서의 유일한 자부심이자 자신의 정체성이었던 '학문'과 '글'을 잃어버리자, 김 선비는 극도의 불안감과 자괴감에 시달리며 매일 밤 식은땀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한 번 깊게 맛본 부와 권력, 그리고 사람들의 맹목적인 복종이 주는 달콤함은 독약인 줄 알면서도 도저히 끊어낼 수 없는 유혹이었습니다. 그는 머리가 텅 비어가는 끔찍한 불안감이 엄습할 때마다 미친 사람처럼 골방에 들어가 요술 방망이를 두드리며 금은보화를 꺼냈고, 금괴가 쌓여갈수록 그의 소중한 기억과 지식은 더욱 맹렬하고 잔인한 속도로 갉아먹혔습니다.

    "여보, 영감. 요즘 당신 도대체 왜 이러시오? 방금 전 아침상에서 하신 말씀도 기억하지 못하시고 엉뚱한 소리를 하시고, 며칠 전에 만난 친척 얼굴도 다 까먹어 몰라보시니… 혹여 산에서 무슨 몹쓸 짐승에게 홀렸거나 무서운 병에라도 걸린 것 아니오? 차라리 용한 의원을 불러 진맥을 받아봅시다."

    아내의 걱정 어린 물음에 김 선비는 애써 헛기침을 하며 괜찮다 웃어 보였지만, 그의 썩어 문드러진 속은 이미 새카맣게 타들어 가 한 줌의 재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자신이 어제 점심에 무엇을 먹었는지, 방금 전 자신에게 인사를 한 새로 들인 하인의 이름이 무엇인지조차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세상천지 모든 돈을 다 가졌지만, 그의 영혼은 지독한 치매에 걸린 노인처럼 텅텅 비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화창한 봄날, 김 선비의 남은 이성과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버리는, 끔찍하고도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넓은 마당에서 비단옷을 입고 해맑게 뛰놀고 있는 어린 아들의 모습을 대청마루에서 흐뭇하게 바라보던 김 선비는, 아들에게 다과를 먹으라 부르기 위해 입을 뗐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는 아들을 부르려던 순간, 김 선비의 멍청해진 입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튀어나오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이 하얗게 표백된 것처럼 텅 비어버렸고, 매일같이 부르던 금쪽같은 아들의 '이름'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저기… 애야, 이리 와 보거라. 이리 와서 이 아비 곁에 앉아보거라. 헌데… 네 이름이… 내가 지어준 네 이름이 도대체 무엇이더냐?"

    아버지의 기괴하고 텅 빈 물음에, 신나게 뛰놀던 아들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 낯선 괴물을 보듯 겁에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질을 쳤습니다.

    "아, 아버님… 지금 제게 무어라 하셨사옵니까? 제 이름을… 모르신단 말씀이십니까?"

    공포에 질려 파랗게 질린 아들의 낯선 눈빛을 마주한 순간, 김 선비는 거대한 무쇠 망치로 머리를 수십 번 세게 얻어맞은 듯한 엄청난 충격에 휩싸여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도깨비의 저주가 마침내 가장 끔찍하고 잔혹한 형태로 현실이 된 것입니다. 자신이 그토록 지키려 했고, 목숨을 걸고 가난에서 구해내려 했던 사랑하는 가족의 이름과 얼굴마저 기억하지 못하는 비참한 짐승 같은 바보가 되어버린 자신. 으리으리한 기와집과 창고에 터질 듯 가득 쌓인 금은보화는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저 자신의 영혼을 파먹은 차가운 쇳덩어리에 불과했습니다. 김 선비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짐승처럼 오열했습니다.

    ※ 5: 궁지에 몰린 선비의 깨달음과 조건을 깨기 위한 두 번째 지략

    자신의 모든 기억과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이 완전히 사라져 백치가 되기 전에, 기필코 이 끔찍한 저주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피 맺힌 절박함이 김 선비의 온몸을 거세게 휘감았습니다. 그는 마당에서 짐승처럼 통곡하다 말고, 방으로 뛰어 들어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구석에 처박아둔 요술 방망이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몰래 대문을 나서, 늦은 밤 다시 도깨비 고개를 향해 무겁고 비장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하지만 이번 산행은 처음 도깨비를 만나러 가던 그날 밤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처음에는 찢어지는 가난에서 벗어나 일확천금을 꿈꾸는 두려움 없는 필사의 도전이었지만, 지금은 자신의 파괴된 영혼과 잃어버린 소중한 가족의 기억을 되찾으려는 처절하고도 비통한 사투였습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맨발이 돌부리에 찢겨 피가 흘렀지만, 김 선비는 아픔조차 느끼지 못한 채 귀신에 홀린 듯 산등성이를 기어올랐습니다.

    마침내 푸른 도깨비불이 스산하게 일렁이는 그 끔찍한 공터에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 그 집채만 한 거대한 도깨비가 예의 그 바위 위에 오만하게 걸터앉아 기분 나쁜 웃음을 씩씩 흘리며 김 선비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크흐흐, 또 왔구나, 어리석은 인간. 보아하니 꼴이 말이 아니네. 으리으리한 집에서 고기반찬을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판에, 어찌 눈은 퀭하고 혼이 반쯤 나간 시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느냐. 내 분명 처음 방망이를 줄 때 똑똑히 경고하지 않았느냐? 그 알량하고 추악한 탐욕이 네놈의 머릿속을 남김없이 다 파먹어 버릴 것이라고 말이다!"

    "닥쳐라, 이 요망한 요괴 놈아! 당장 이 끔찍한 저주를 풀어라! 이깟 빌어먹을 방망이는 이제 내게 쓰레기보다 못하니 도로 가져가고, 내 기억과 지식을 원래대로 당장 돌려놓아라!"

    김 선비가 핏대를 세우며 소리치고는 쥐고 있던 방망이를 도깨비의 발밑으로 거칠게 집어 던지자, 도깨비는 비릿한 콧방귀를 뀌며 방망이를 발로 툭 차버렸습니다.

    "어리석고 가소로운 놈. 한 번 입 밖으로 뱉은 말과 피로 맺은 무거운 계약은, 도깨비인 나조차도 함부로 무를 수 없는 명계의 절대적인 법칙이다. 게다가 방망이를 두드려 이미 잃어버린 기억은 허공에 흩어진 연기 같아서, 그 누구도 두 번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 네놈이 스스로 선택한 욕망의 대가이니, 그냥 평생 가족의 이름도 모르는 멍청한 바보 천치로 금괴나 끌어안고 살다 죽어라! 정 이 상황이 억울하고 원통하다면, 다시 한번 네 남은 목숨을 모두 걸고 나와 내기를 하든가!"

    도깨비의 조롱 섞인 말에 김 선비는 기억이 가물가물해지고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흐릿한 정신을 다잡으며 이를 꽉 깨물었습니다. 이미 평생 쌓아온 학문과 지식을 거의 다 잃어버려 텅텅 빈 머리가 된 그에게, 예전처럼 고상한 철학이 담긴 수수께끼로 요괴와 승부할 지혜 따위는 한 줌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지금 도깨비가 수수께끼를 낸다면 꼼짝없이 목숨을 잃을 판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보며 뒷걸음질 치던 아들의 겁먹은 얼굴과 눈물을 흘리던 아내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는 피가 나도록 혀를 깨물며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 내어 가장 원초적이고 기발한 지략을 떠올렸습니다. 인간의 지식이 아닌, 생존을 위한 처절한 본능이 빚어낸 묘수였습니다.

    "좋다! 네놈과 다시 한번 내기를 하마. 하지만 이번에는 머리를 쓰는 수수께끼가 아니다. 내가 지금부터 내 몸으로 직접 하는 행동을, 네놈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따라 하지 못한다면, 완벽한 나의 승리다. 그리고 내가 이기면, 저주를 무를 수 없다 하였으니 그 대신 내게서 빼앗아 간 내 지식과 기억을,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의 이름을 '모두 담은 책'으로 만들어 나에게 주어라!"

    도깨비는 의외의 제안에 흥미롭다는 듯 거대한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세상천지에 힘과 무식한 요술이라면 자신을 따라올 자가 없다고 자부하는 도깨비였기에, 연약하고 바보가 된 인간의 하찮은 몸짓 따위는 눈 감고도 얼마든지 따라 할 수 있다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크하하! 몸으로 하는 내기라? 참으로 재밌구나. 네놈이 팔을 들면 팔을 들고, 춤을 추면 춤을 추면 그만 아니더냐. 좋다, 어디 그 하찮은 뼈다귀로 무슨 재주를 부리는지 한번 지켜보마!"

    김 선비는 도깨비의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품속 깊은 곳에서 집에서부터 몰래 챙겨 온 뾰족하고 날카로운 명주실 바늘 하나를 꺼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도깨비가 채 반응할 틈도 없이, 주저 없이 그 날카로운 바늘로 자신의 허벅지를 있는 힘껏 깊숙이 찔러 넣었습니다. 살갗을 뚫고 근육을 찌르는 끔찍한 고통에 바지춤이 순식간에 시뻘건 피로 붉게 물들어갔지만, 김 선비는 이빨이 부서져라 꽉 깨물며 단 한 마디의 신음조차 내지 않고 독기 어린 눈으로 도깨비를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자, 내 행동을 똑똑히 보았겠지. 이제 네 차례다. 똑같이, 바늘이 허벅지 깊숙이 들어가 피가 나도록 따라 해 보거라!"

    김 선비가 피 묻은 바늘을 뽑아 도깨비를 향해 던지자, 도깨비는 가소롭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그 작은 바늘을 두 손가락으로 건네받았습니다. 그리고는 김 선비가 했던 것과 똑같이, 바늘의 끝을 자신의 허벅지에 대고 있는 힘껏 내리찍었습니다.

    하지만, 도깨비의 피부는 수백 년 동안 산속에서 거친 돌과 나무에 쓸려, 웬만한 무사의 시퍼런 칼이나 날카로운 창으로도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할 만큼 강철처럼 단단하고 두꺼웠습니다.

    "딱!"

    기분 나쁜 파열음과 함께, 도깨비가 힘껏 내리찍은 조그마한 쇳덩어리 바늘은 도깨비의 가죽을 뚫기는커녕, 그 단단함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며 두 동강으로 툭 하고 부러져 땅바닥에 나뒹굴고 말았습니다.

    "아… 아뿔싸…!"

    자신의 손에 남은 부러진 바늘의 잔해를 내려다본 도깨비는 경악하며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얇고 부드러운 살갗을 뚫고 들어간 바늘이, 자신의 몸에는 흠집조차 내지 못하고 부러져버렸으니, 결과적으로 김 선비의 '바늘을 찔러 피를 내는 행동'을 완벽하게 따라 하지 못한 것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천하무적이라 자랑하던 자신의 그 무지막지하게 단단한 피부가, 오히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치명적인 독이자 패배의 원인이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죠.

    허벅지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를 손으로 움켜쥔 김 선비는, 고통 속에서도 환희에 찬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산이 떠나가라 소리쳤습니다.

    "보았느냐! 네놈은 나의 행동을 똑같이 따라 하지 못했다! 이번 내기 역시 완벽한 나의 승리다! 약속은 약속, 당장 내 잃어버린 소중한 기억이 모두 담긴 그 책을 내놓아라!"

    ※ 6: 진정한 부의 의미를 깨닫고 평화를 되찾은 김 선비의 삶

    자신만만했던 행동 내기에서 어처구니없게 패배한 도깨비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분통을 터뜨리며 집채만 한 주먹으로 애꿎은 바닥을 쾅쾅 내리쳤습니다. 산 전체가 지진이 난 듯 거세게 흔들렸지만, 김 선비는 피를 흘리면서도 한 치의 물러섬 없이 꼿꼿하게 서서 도깨비를 노려보았습니다. 요괴의 세계에서도 내기의 규칙과 승패의 결과는 목숨보다 무겁고 엄격하여, 아무리 천년 묵은 도깨비라 할지라도 한 번 맺은 계약을 스스로 어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크으으… 억울하다, 원통하다! 내 수백 년을 살아오며 숱한 요물들과 인간들을 겪어보았지만, 내 가죽의 단단함을 이용하여 나를 속여먹는 이토록 교활하고 독종인 놈은 처음 보는구나! 좋다, 이번에도 내 완벽한 패배를 인정하마! 약속대로 네놈의 그 알량한 머릿속에서 빠져나간 기억들을 모두 모아 책을 만들어 주마."

    도깨비는 분노를 삭이며 허공에 커다란 두 손을 휘젓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기괴하고도 무거운 요괴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공터 한가운데서 시퍼렇고 매캐한 연기가 회오리치듯 피어오르더니, 연기가 걷힌 자리에 두껍고 낡은 고서 한 권이 허공에서 툭 하고 떨어졌습니다.

    "그것이 네놈이 그토록 원하던 네 인생의 잃어버린 기억과 지식들이다."

    김 선비가 떨리는 손으로 피 묻은 바지춤을 부여잡고 다가가 그 고서를 집어 들었습니다. 숨을 죽이고 조심스레 책의 첫 장을 펼치는 순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신비로운 마법이 벌어졌습니다. 책에 빼곡하게 적힌 수많은 글자들과 그림들이 마치 살아 숨 쉬는 생명체처럼 황금빛을 내뿜더니, 김 선비의 두 눈을 통해 머릿속으로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아…!'

    한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던 논어와 맹자의 깊은 구절들이 다시금 입가에 맴돌았고, 자신이 직접 지어주었던 어린 하인들의 이름표,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아내의 다정한 미소와, 토끼 같은 아들과 딸의 이름, 그들과 함께 웃고 울었던 수많은 추억의 장면들이 머릿속에 선명하고 찬란하게 떠올랐습니다. 어둠 속에 갇혀 있던 영혼에 다시 환한 빛이 스며드는 순간이었습니다.

    잃어버렸던 모든 지식과 가족에 대한 벅찬 사랑을 완전히 되찾은 김 선비는, 뜨거운 안도의 눈물을 펑펑 흘리며 차가운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습니다. 책은 빛을 모두 잃고 한 줌의 재가 되어 흩어졌지만, 그의 머릿속은 다시 완전한 인간 김 선비로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 꼴을 바위 위에서 지켜보던 도깨비는 기가 차다는 듯 혀를 끌쯧 찼습니다.

    "쯧쯧, 인간의 마음이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 기껏 일확천금을 손에 쥐어주었거만 그깟 기억 몇 줌에 이리도 목숨을 걸다니. 자, 이제 네놈이 원하던 것을 확실하게 얻어갔으니 거래는 완전히 끝났다. 그 요술 방망이와 네놈이 방망이로 얻어낸 그 모든 금은보화는 네놈에게서 사라져 나의 소유로 돌아올 것이다. 억울해하지 마라!"

    하지만 김 선비는 도깨비의 그 어떤 협박과 재물에 대한 아쉬움의 기색도 전혀 없이, 바닥에 뒹구는 방망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자리에서 털고 일어났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그간의 찌든 탐욕이 벗겨진, 더없이 맑고 홀가분한 미소가 번져 있었습니다.

    "기꺼이 다 가져가거라. 내 식구들의 주린 배를 잠시나마 채워준 것은 고마우나, 내 영혼을 갉아먹고 가족의 이름마저 앗아가는 그 알량하고 저주받은 금은보화 따위는 내 인생에 더 이상 단 한 푼도 필요 없다. 진짜 보물이 무엇인지 깨달았으니, 나는 그것으로 족하다."

    김 선비는 도깨비에게 짧은 목례를 남긴 뒤, 어두운 도깨비 고개를 훌훌 털고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깃털처럼 가벼웠습니다. 밤새 몰아치던 눈보라가 그치고, 산등성이 너머로 찬란하고 붉은 아침 해가 떠오르며 세상을 따스하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마치 김 선비가 새로 얻은 삶을 축복하는 듯했습니다.

    집이 있던 자리에 도착하자, 예상대로 으리으리했던 아흔아홉 칸짜리 기와집과 산더미 같던 비단, 금은보화는 간밤의 신기루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다시 비바람을 겨우 막아줄 예전의 허름하고 낡은 초가삼간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당에 서서 놀라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던 아내와 아이들은, 멀리서 절뚝거리며 다가오는 김 선비를 발견하고는 울음을 터뜨리며 맨발로 달려 나왔습니다.

    김 선비는 피투성이가 된 다리로 달려가 아내와 아이들을 품에 부서져라 꽉 끌어안았습니다.

    "아버님! 아버님께서 돌아오셨군요! 저희를 잊지 않으신 것이지요?"
    "여보, 내가 돌아왔소. 내가 전부 다 기억하오. 우리 예쁜 막내딸 연이, 세상에서 제일 듬직한 우리 아들 돌이… 내가 미쳤었소. 다시는, 내 죽는 날까지 다시는 당신들을 잊지 않겠소. 용서하시오."

    비록 도깨비가 모든 재물을 거두어가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떵떵거리던 부자에서 다시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가난한 신세로 돌아왔지만,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부둥켜안은 김 선비 가족의 얼굴에는 으리으리한 기와집에 살 때보다 수백 배는 더 환하고 진실된 평화로운 웃음꽃이 피어났습니다.

    그 지독하고도 기묘한 하룻밤의 꿈같은 사건 이후, 김 선비는 헛된 일확천금의 망상과, 책상머리에만 앉아 과거에만 매달리던 고루한 헛된 꿈을 완전히 접어버렸습니다. 그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직접 거친 밭을 일구며 흙을 만졌고, 밤에는 마을 아이들을 모아 천자문을 가르치며 정직하게 땀 흘려 일하는 평범한 삶의 위대함을 몸소 실천했습니다. 비록 예전처럼 진수성찬을 먹거나 화려한 비단옷을 입지는 못하여 손발은 거칠어졌지만, 잃어버릴 뻔했던 가족과의 눈물 나는 소중한 추억과, 한 인간으로서의 떳떳한 자부심을 되찾은 그의 마음속은 그 어떤 도깨비의 방망이로도 만들어낼 수 없는 진정한 부와 행복으로 가득 차올랐습니다.

    가난하지만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화목한 초가집의 작은 창문 너머로, 낭랑하고 힘찬 아이들의 글 읽는 소리가 도깨비 고개 너머 저 멀리까지 오래도록 평화롭게 울려 퍼졌습니다.

    엔딩 멘트

    여러분, 재미있게 들으셨나요? 김 선비는 비록 일확천금을 얻어 벼락부자가 되었지만, 가장 소중한 지식과 가족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리는 끔찍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 큰 것을 얻을 때,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더 소중한 것을 잃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세상에 진정한 공짜는 없으며, 땀 흘려 얻은 소박한 행복과 가족과의 따뜻한 추억이야말로 요술 방망이로도 살 수 없는 진짜 보물이라는 사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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