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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깨비와 거상으로 거듭난 거지『동패낙송』

    거지왕의 정보와 도깨비의 부를 이용하여 여러가지 고난을 거치며, 참한 여자를 만나 결혼 후 대방에 올라 베푸는 즐거움을 누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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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조선 팔도 바닥의 모든 소문은 그의 귀로 모인다! 밥냥이나 동냥하던 거지왕 막동이, 어느 날 막대한 부를 지닌 도깨비와 기상천외한 거래를 하게 되는데... 짚신 대신 비단신을 신고, 깡통 대신 엽전을 쥐게 된 그가 팔도 최고의 거상 '대방'이 되기까지! 온갖 고난과 음모를 뚫고 진정한 사랑과 베풂의 의미를 깨닫는 통쾌하고도 감동적인 거상 탄생기, 지금 시작합니다!

    ※ 1: 저잣거리의 제왕, 거지왕 막동과 그의 정보망

    조선 팔도의 모든 재물과 사람이 물밀듯이 모여드는 한양의 심장부, 운종가 저잣거리. 이른 아침부터 거리는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북적이고 있었다. 비단옷을 겹겹이 뽐내며 팔자걸음을 걷는 양반들, 각지에서 진귀한 특산물을 가득 실어 나르는 우마차의 행렬,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서 목청껏 물건을 파는 장사치들의 외침이 얽히고설켜 거대한 활기를 뿜어냈다. 갓 구워낸 떡의 고소한 냄새와 푸줏간의 비릿한 피 냄새, 그리고 사람들의 짙은 땀 냄새가 한데 뒤섞인 그 혼란스럽고도 역동적인 거리 한가운데를, 한 사내가 기묘할 정도로 여유롭게 걷고 있었다.

    사내의 몰골은 그야말로 형편없었다. 언제 빨았는지 원래의 색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시커먼 누더기를 겹겹이 걸치고 있었고, 듬성듬성 구멍이 난 밀짚모자 아래로는 때에 전 머리카락이 뱀처럼 엉켜 있었다. 허리춤에는 엽전 한 닢 들어있지 않아 바람 빠진 가죽처럼 훌쩍거리는 낡은 전대 하나가 위태롭게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이 잡듯 온몸을 뒤져도 땡전 한 푼 나오지 않을 상거지 중의 상거지였지만, 그의 걸음걸이만큼은 마치 이 거대한 저잣거리 전체를 호령하는 장군처럼 위풍당당했다. 사내의 이름은 막동. 비록 겉모습은 길바닥의 흙먼지와 다를 바 없었으나, 한양 바닥 수백 명의 거지들 사이에서 그는 '왕'으로 통하는 존재였다.

    "형님! 막동 형님!"

    운종가 뒷골목, 매캐한 국밥 냄새가 진동하는 주막 어귀에서 콧물을 훌쩍거리던 꼬마 거지 칠성이가 다급하게 달려와 막동의 땟국물 흐르는 소매를 부여잡았다. 막동은 걸음을 멈추고 품속을 뒤적이더니, 어제 어느 양반댁 제사상에서 슬쩍해 둔 약과 반 쪼가리를 꺼내 칠성이의 새까만 손에 쥐여주며 능청스럽게 웃어 보였다.

    "오냐, 그래. 우리 발 빠른 칠성이 아니냐. 어째, 오늘 아침부터 장터 바닥을 부지런히 쓸고 다니더니, 제법 돈 냄새가 풀풀 나는 굵직한 부스러기라도 주워들었느냐?"

    "헤헤, 약과 달다! 형님, 제가 방금 저기 제일 큰 육의전 송방 뒷문에서 일하는 돌쇠 형한테 기가 막힌 걸 들었구먼요. 글쎄 모레쯤 한양에 들어오기로 했던 개성 상단의 거대한 홍삼 무리가, 송악산 자락에서 악명 높은 산적 떼를 만나서 길이 꽉 막혀버렸대요! 호위 무사들까지 다쳐서 오도 가도 못하고 발이 묶였다지 뭡니까. 모레 아침이면 한양에 풀려야 할 홍삼이 반 토막 났으니, 내일 아침 해가 뜨기가 무섭게 한양 바닥 홍삼 값이 천정부지로 뛸 거랍니다요!"

    칠성이의 말에 막동의 두 눈이 매섭게 빛났다. 허술해 보이던 거지의 눈빛은 온데간데없고,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날카로운 안광이 스쳤다.

    "호오, 개성 상단이 발이 묶였다? 그것 참 아주 재미있는 소식이구나. 잘했다, 칠성아. 아주 큰 건을 물어왔어. 가서 춘식이 형한테 전해라. 오늘 저녁은 이 형님이 장터 왈패들 몰래 국밥 한 그릇씩 돌릴 테니 다들 폐묘로 모이라고 말이다."

    칠성이가 신이 나서 뛰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막동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가만있자... 한양 제일의 약재상들이 모레 들어올 개성 홍삼만 믿고 창고를 비워두었을 텐데, 길이 막혔다면 당장 내일부터 발등에 불이 떨어지겠군. 홍삼 값이 뛴다면 덩달아 기력을 보충할 대체 약재들을 미리 싹쓸이하려고 들 것이 뻔한 이치다. 녹용이나 당귀, 감초 쪽이 덩달아 미친 듯이 들썩이겠지. 돈만 있다면, 아니 단돈 오백 냥만 있다면 당장 지금 시장에 깔린 당귀와 녹용을 모조리 사재기해서 모레 두 배, 아니 세 배의 값을 받고 되팔아 엄청난 이문을 남길 수 있을 텐데... 아쉽게도 내 전대에는 거미줄만 무성하게 치고 있으니,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구나.'

    막동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거지왕 막동의 진짜 무서운 힘은 주먹질이나 구걸하는 솜씨가 아니었다. 한양 바닥 구석구석에 엎드려 있는 수백 명의 거지 떼는 모두 막동의 살아 숨 쉬는 눈과 귀였다. 주막의 허드렛일꾼, 기방의 쓰레기를 치우는 아이, 육의전 뒷마당을 쓸고 닦는 노인까지. 고관대작들과 거상들은 길바닥에 엎드려 동냥하는 냄새나는 거지들을 의식하지 않았기에, 그들 앞에서는 뇌물 장부의 행방부터 상단의 비밀스러운 거래 내역까지 온갖 고급 정보들을 스스럼없이 떠벌렸다. 그 모든 파편화된 소문들은 거지들의 입을 타고 흘러들어 결국 거지왕 막동의 머릿속에서 하나의 거대한 정보망으로 완성되었다.

    막동의 머릿속에는 조선 팔도의 모든 돈과 권력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여주는 투명한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귀하고 천금 같은 정보를 쥐고 있어도, 그것을 굴려 이윤을 창출할 '밑천'이 단 한 푼도 없으니 그저 허공에 흩어지는 뜬구름과 다를 바 없었다.

    그때, 저 멀리서 사람들이 굽신거리며 길을 트는 소리가 들려왔다. 화려한 가마 한 대가 수십 명의 건장한 호위 무사들을 대동하고 지나가고 있었다. 운종가 상권을 쥐락펴락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거상, 김 대방의 행차였다. 가마꾼들이 지나갈 때마다 엽전 꾸러미가 바닥에 떨어졌고, 사람들은 그것을 줍기 위해 개처럼 땅바닥을 기어 다녔다. 막동은 그 광경을 차가운 눈으로 응시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아이고, 하늘도 참으로 무심하시고 세상이 불공평하기도 하지. 저기 저 가마에 올라탄 살찐 돼지 같은 김 대방은 대가리에 든 것도 없고 탐욕만 가득한 위인인데, 그저 부모 잘 만나 막대한 밑천을 쥐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리 떵떵거리며 세상을 호령하고 있지 않은가. 반면에 이 똑똑하고 재주 많은 막동이는, 세상의 모든 이치를 꿰뚫어 보고도 엽전 한 닢이 없어 평생을 구걸이나 하며 깡통을 차야 한단 말이냐. 내 머릿속에 든 이 천금 같은 정보들을 돈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 저깟 김 대방 따위는 내 발밑에 무릎 꿇게 만들 수 있을 텐데. 하늘에서 돈벼락이라도 떨어지지 않는 이상, 이 지긋지긋한 누더기를 벗을 방도가 없으니 참으로 원통하고 분하구나."

    막동의 가슴 속에서는 채워지지 않는 거대한 야망과 지독한 가난에 대한 분노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그저 배불리 먹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세상을 제 발아래 두고 조종해보고 싶은 맹렬한 갈증이 그의 피를 끓게 만들고 있었다.

    ※ 2: 폐묘의 달밤, 도깨비와의 기묘한 거래

    그날 밤, 한양 도성을 벗어난 외곽의 으슥한 북망산 자락. 갈 곳 없는 늙고 병든 거지들과 떠돌이들이 비바람을 피하기 위해 모여드는,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폐묘 앞이었다.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묘지 주변으로는 밤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고, 멀리서 들려오는 부엉이의 낮고 기괴한 울음소리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폐묘 앞 커다란 평상 위에는 십여 명의 거지들이 이리저리 뒤엉켜 코를 골며 곯아떨어져 있었다. 가을밤의 스산하고 날카로운 산바람이 얇은 누더기 사이를 매섭게 파고들었지만, 낮 동안 구걸하느라 지친 그들에게는 추위보다 수마가 더 강했다. 하지만 오직 한 사람, 막동만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한 채 평상 위를 데굴데굴 구르며 뒤척이고 있었다.

    낮에 칠성이가 물어다 준 개성 상단의 홍삼 소식, 그리고 기방 뒷마당에서 주워들은 평양 감사의 은밀한 뇌물 장부 이야기 등, 오늘 하루만 해도 수만 냥을 거머쥘 수 있는 기가 막힌 고급 정보들이 그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이 귀한 소식들을 단돈 한 냥으로도 바꿀 수 없는 자신의 비참한 처지에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아이고, 미치고 팔짝 뛰겠네. 지금 당장 종로약방에 달려가 당귀를 싹쓸이해야 하는데, 내 수중엔 동전 한 닢이 없으니 이를 어찌한단 말이냐.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밑천이 없으니 말짱 도루묵이로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천치였으면 속이나 편했을 것을. 귀신은 뭣 하나, 이 막동이한테 금덩이 하나 뚝 떨어뜨려 주지 않고."

    허공을 향해 원망 섞인 푸념을 내뱉으며 한숨을 푹 쉬던 바로 그때였다.

    스아아아-

    갑자기 주변의 공기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 내렸다. 뺨을 스치던 산바람이 일순간 뚝 멎었고, 평상 위에서 요란하게 들려오던 거지들의 코고는 소리마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차단된 듯한 기괴한 적막 속에서, 막동은 본능적인 위협을 느끼고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묘지 주변으로 파르스름한 불꽃들이 하나둘씩 허공에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묘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도깨비불이었다. 푸른 불꽃들이 빙글빙글 춤을 추며 모여들더니, 짙은 안개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돈이... 그토록 가지고 싶으냐?"

    마치 깊은 동굴 속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서늘하고 기괴한 목소리가 막동의 고막을 찢을 듯 파고들었다.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킨 막동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야말로 지옥의 한 장면 같았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덩치가 집채만 하고, 얼굴은 시뻘건 피를 뒤집어쓴 듯 붉었다. 머리통에는 날카롭고 구부러진 뿔이 두 개 솟아 있었고, 부리부리한 눈에서는 시퍼런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손에는 어둠 속에서도 번쩍번쩍 빛나는 거대한 금방망이가 들려 있었다. 전설 속에서나 듣던, 밤의 지배자 도깨비가 생생하게 살아서 눈앞에 서 있는 것이다.

    "허억! 도, 도깨비...!"

    막동은 너무 놀라 뒷걸음질을 치다 평상 아래로 굴러떨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고, 사시나무 떨듯 온몸이 덜덜 떨렸다. 당장이라도 비명을 지르며 산 아래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다리에 힘이 완전히 풀려 일어설 수조차 없었다. 목소리마저 얼어붙어 끅끅거리는 숨소리만 새어 나왔다.

    '끝났다. 내 인생은 여기서 끝이구나. 부자 한번 되어보지 못하고 이 차가운 산속에서 요괴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신세가 되다니!'

    막동이 눈을 질끈 감고 죽음을 각오하고 있을 때, 도깨비는 가시 돋친 금방망이를 어깨에 턱 걸치며 재미있다는 듯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그 거대한 웃음소리에 무덤가의 오랜 소나무들이 바르르 떨며 나뭇잎을 쏟아냈다.

    "그리 겁먹을 것 없다, 나약한 인간아. 나는 수백 년 동안 이 북망산 자락을 지켜오며 억울한 혼령들을 달래는 도깨비니라. 매일 밤 이곳에서 잠을 청하며 돈타령을 하고 세상을 원망하는 네놈의 시끄러운 푸념을 듣다 못해, 도대체 어떤 놈인지 궁금하여 친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네놈의 이름이 한양의 거지왕 막동이라 했느냐?"

    "예... 예, 그렇습니다만. 어, 어찌 이 미천한 놈의 이름을..."

    도깨비의 어조가 생각보다 부드럽고 호기심에 차 있다는 것을 깨달은 막동은 조금씩 이성을 되찾기 시작했다. 비록 온몸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지만, 그의 타고난 기지와 배짱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고 있었다.

    "내가 듣자 하니, 네놈이 비록 동냥 깡통을 차고 있으나 한양 바닥의 모든 은밀한 소문을 꿰뚫고 있는 거지들의 왕이라지? 세상의 모든 돈줄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안다고 매일 밤 떠들어대지 않았느냐. 사실 나는 땅속에 황금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있으나, 이 깊은 산속에만 갇혀 지내다 보니 인간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 도리가 없어 매일 밤이 지루하기 짝이 없다. 어떠냐? 네가 가진 그 얄팍하고 재미난 귀동냥들을 내게 팔지 않겠느냐?"

    "제, 제 머릿속에 있는 정보들을 말씀이십니까?"

    막동의 머릿속이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 산만 한 덩치의 요괴가 원하는 것이 자신의 목숨이나 영혼이 아니라, 고작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정보'라면? 오히려 이것은 막동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일생일대의 기회일지도 몰랐다. 막동은 무릎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두려움을 애써 억누르며, 운종가의 노련한 거상들처럼 허세를 부리며 당당하게 소리쳤다.

    "저잣거리 아낙네들의 시시콜콜한 소문 나부랭이로 끝날 정보가 아닙니다요, 도깨비님! 육의전 수장 김 대방이 숨겨둔 비자금 창고의 위치부터, 평양 감사가 기생의 치마폭에 싸서 빼돌린 장부의 행방, 그리고 내일 아침 한양의 소금 값이 얼마나 뛸지까지! 이 막동이의 머릿속에는 조선 팔도의 모든 돈과 권력이 은밀하게 움직이는 거대한 지도가 완벽하게 들어있습니다! 이 정보만 있다면 조선의 돈줄을 말려버릴 수도 있지요!"

    막동의 당돌하고 거침없는 언변에 도깨비의 커다란 눈이 호기심과 흥미로 반짝였다.

    "호오, 제법이구나. 요망한 주둥이를 놀리는 솜씨가 아주 마음에 들어. 좋다! 내가 너에게 쓰고도 넘칠 막대한 황금을 밑천으로 대어줄 테니, 너는 그것으로 당장 상단을 꾸려 거상이 되어보거라. 그리고 네가 그 돈을 굴리며 겪는 인간 세상의 추악한 탐욕, 배신, 그리고 그 기상천외한 음모의 이야기들을 매달 보름달이 뜨는 밤마다 이곳에 와서 나에게 들려주면 된다. 이것이 나의 유일한 조건이다."

    도깨비는 품속을 뒤적이더니 묵직하고 거대한 가죽 주머니 하나를 꺼내 막동의 발밑에 툭 던졌다.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땅이 울렸다.

    "이것은 너의 입방정에 대한 선불이자, 상단을 꾸릴 시작에 불과하다. 이 돈으로 네가 입으로 떠든 그 능력을 내 앞에서 직접 증명해 보아라."

    떨리는 손으로 가죽 주머니의 끈을 풀어 속을 열어본 막동은 '헉' 소리를 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주머니 안에는 어둠 속에서도 눈이 멀 것 같이 찬란하게 빛나는, 성인 사내의 주먹만 한 순도 높은 금덩이들이 수십 개나 가득 들어있었다.

    '맙소사... 이, 이게 다 얼마야! 이 정도 금덩이면 운종가의 작은 객주 하나를 통째로 사고도 남을, 아니 조선 팔도를 다 뒤져도 구하기 힘든 막대한 돈이다!'

    황금의 빛에 취해 넋을 잃고 있는 막동을 향해 도깨비의 목소리가 싸늘하고 묵직하게 변하며 경고했다.

    "단, 명심해라, 막동이. 내가 준 금화는 인간들의 땀이 밴 평범한 돈이 아니다. 도깨비의 주술이 걸려있지. 만약 네놈이 얄팍한 욕심에 눈이 멀어 분수에 맞지 않게 돈을 허투루 낭비하거나, 나와의 약속을 어기고 보름달이 뜨는 밤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네가 움켜쥔 그 금화들은 순식간에 맹독을 품은 독사로 변해 너의 심장을 물어뜯어 죽일 것이다. 오직 네 똑똑한 머리와 거지 동생들의 정보망을 이용해 정당하고 지혜롭게 돈을 불려 나가야만 한다. 이제 와서 두려워 달아나려 해도 소용없다. 넌 이미 이 도깨비와 피의 계약을 맺었으니."

    말을 마친 도깨비는 금방망이를 땅에 한 번 거세게 내리쳤다. 눈을 뜰 수 없는 거대한 푸른 연기가 폭풍처럼 일어났고, 도깨비는 흔적도 없이 허공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폐묘 앞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스산한 가을바람만이 불고 있었지만, 막동의 두 손에 꽉 쥐어진 묵직하고 차가운 황금 주머니만이 방금 전의 일이 결코 꿈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막동의 입가에 서서히, 그러나 확신에 찬 결연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하하... 하하하하! 하늘이, 아니 도깨비가 결국 이 막동이를 돕는구나! 내 완벽한 정보망과 도깨비의 막대한 돈이 만났으니, 이제 이 한양 바닥의 재물은 모조리 다 내 것이다! 지켜보라고, 내 기필코 조선 바닥을 쥐락펴락하는 최고의 대방이 되어주마!"

    ※ 3: 도깨비 금화와 거지들의 정보력, 상단을 뒤흔들다

    다음 날 아침, 닭이 울기도 전인 이른 새벽. 늘 폐묘 평상에서 가장 늦게까지 웅크리고 누워있던 막동은 오늘만큼은 누구보다 먼저 눈을 번쩍 떴다. 그는 어젯밤 도깨비에게 받은 가죽 주머니에서 묵직한 금덩이 하나를 조심스럽게 꺼내어 깊은 품속에 단단히 품었다. 나머지 주머니는 폐묘 근처 가장 비밀스러운 땅을 파고 묻어두었다. 누더기를 걸친 겉모습은 여전히 냄새나는 거지였지만, 평소의 흐리멍덩한 눈동자는 사라지고 먹잇감을 노리는 매처럼 날카롭고 매서운 눈빛으로 한양의 심장부, 운종가를 향해 힘차게 걸음을 내디뎠다.

    그가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거지들의 동냥 터가 아닌, 한양 운종가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만상 객주'였다. 중국에서 들여오는 비단부터 팔도의 귀한 약재까지 모두 취급하는 곳으로, 권력형 거상 김 대방 다음가는 세력을 자랑하는 최 행수가 이끄는 상단이었다.

    더러운 흙먼지를 날리며 누더기 차림의 막동이 만상 객주의 높고 으리으리한 대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자, 아침부터 마당을 쓸고 물건을 정리하던 덩치 큰 일꾼들이 코를 틀어막으며 험악하게 삿대질을 해댔다.

    "어허! 이 냄새나는 거지 놈이 아침부터 재수 없게 어디 감히 남의 귀한 객주 마당에 함부로 더러운 발을 들이느냐! 몽둥이찜질을 당하기 전에 당장 썩 나가지 못해!"

    일꾼 한 명이 빗자루를 거꾸로 들고 위협적으로 다가왔지만, 막동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뒷짐을 진 채 당당하게 마당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갔다.

    "행수 어르신을 뵙고자 왔소. 당장 최 행수 어르신께 밖으로 나와보시라 여쭈시오. 천금 같은 돈 냄새를 맡게 해줄 귀인이 왔다고 말이오."

    막동의 뻔뻔하고 기세등등한 태도에 일꾼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놈이 아침부터 단단히 미쳤구나! 네놈이 저잣거리에서 밥통이나 들고 다니던 거지왕 막동이 놈인 걸 내가 모를 줄 아느냐!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우리 대행수님을 찾느냐! 당장 저놈을 끌어내라!"

    일꾼들이 막동의 어깨를 잡아채려던 찰나,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안채에서 고급스러운 비단 두루마기를 걸친 객주 행수, 최 행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걸어 나왔다. 손에는 귀한 상아로 만든 부채를 가볍게 흔들고 있었다.

    "아침 장사도 시작하기 전부터 웬 소란이냐. 아니, 넌 저잣거리 바닥을 기어 다니던 막동이 아니냐? 네놈이 동냥을 할 거면 주방 뒤로 갈 것이지, 무슨 배짱으로 이 본채 앞까지 들어와 나를 찾는단 말이냐?"

    "최 행수 어르신, 모레 아침 개성에서 대규모로 내려오기로 한 홍삼 상단이, 송악산 자락에서 산적을 만나 길이 꽉 막혀버렸다는 소식을 들으셨는지요?"

    여유롭게 부채질을 하던 최 행수의 손이 허공에서 딱 멈추었다. 그의 두 눈이 튀어나올 듯 커지며 막동을 경악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개성 상단이 산적에게 털려 발이 묶였다는 사실은, 어젯밤 늦게 한양의 최고위급 거상들 몇 명 사이에서만 은밀히 전해진 극비 중의 극비 정보였다. 만약 이 소문이 시장에 풀리면 당장 인삼 값이 폭등할 것이 자명했기에 상인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그런데 밥이나 빌어먹는 일개 거지 놈의 입에서 그 정보가 튀어나오다니, 최 행수는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네, 네놈이... 네놈이 어찌 그 은밀한 사실을 알고 있단 말이냐!"

    "저 거지왕 막동이의 귀를 속일 수 있는 헛소문이나 비밀은 이 한양 천지에 단 하나도 없습니다. 행수님도 장사꾼이시니 잘 아시겠지요. 홍삼이 막혔으니 기력을 보충할 다른 대체 약재들을 찾을 것이고, 그 덕분에 내일 해가 뜨면 당귀며 녹용, 감초 값이 미친 듯이 폭등할 것도 뻔한 이치 아니겠습니까?"

    막동은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품속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묵직한 황금 덩어리 하나를 꺼내어 탁자 위에 보란 듯이 쿵! 하고 내려놓았다.

    아침 햇살을 받은 금덩이가 내뿜는 영롱하고도 묵직한 황금빛에, 최 행수는 물론이고 막동을 쫓아내려던 일꾼들의 눈동자까지 모두 휘둥그레졌다. 그것은 평생 구걸이나 하며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거지가 결코 만져볼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아니, 큰 상단을 운영하는 최 행수조차 저렇게 순도 높고 거대한 덩어리 금은 살면서 몇 번 본 적이 없었다.

    "이, 이게 무슨... 진정 진짜 금덩이가 아니냐! 네놈이 도대체 이런 귀한 물건을 어디서 훔친 것이냐!"

    "훔치다니요, 섭섭한 말씀 마십시오. 저를 후원해 주시는 아주 엄청난 전주(錢主)께서 주신 밑천입니다. 말이 길어지면 돈 냄새가 날아가는 법. 이 금덩이를 담보로, 오늘 해가 지기 전까지 한양 바닥 약재상에 깔린 당귀와 녹용을 모조리 제가 매입하겠습니다. 최 행수님께서 제 대리인이 되어 중간에서 거간꾼 역할을 확실하게 해주신다면, 그 수수료로 이 금덩이의 십 분의 일을 섭섭지 않게 떼어 드리지요. 어떠십니까, 이 거래를 잡으시겠습니까, 아니면 다른 객주로 갈까요?"

    거지 누더기를 입었으나 눈빛만은 천하를 호령하는 대방의 기세를 뿜어내는 막동 앞에서, 최 행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정보의 소름 끼치는 정확함과 눈앞에 놓인 막대한 황금 자본. 겉모습만 거지일 뿐, 막동은 이미 거대한 상단의 수장이나 다름없는 그릇을 보여주고 있었다. 장사치의 본능이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속삭였다.

    "좋다... 내 네놈의 기세에 한 번 걸어보마. 당장 일꾼들을 풀어 한양의 당귀와 녹용을 싹 쓸어 모으겠다!"

    이것이 거지왕 막동이 오랜 허물을 벗어 던지고, 거대한 상단의 세계에 첫발을 내디딘 역사적인 거래의 시작이었다. 막동의 정확한 예측대로 다음 날 아침, 개성 홍삼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시장에 퍼지자 홍삼 품귀 현상이 일어났다. 패닉에 빠진 거상들과 약재상들이 다급하게 대체재를 찾았지만, 이미 막동이 최 행수를 통해 한양의 모든 당귀와 녹용을 싹쓸이하여 창고에 가두어버린 후였다.

    이틀 뒤, 약재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던 상인들은 결국 막동이 독점하고 있는 당귀와 녹용을 울며 겨자 먹기로 원래 가격의 세 배, 네 배에 달하는 엄청난 웃돈을 주고 사들여야만 했다. 도깨비가 준 금덩이 하나는 단 며칠 만에 수천 냥의 어마어마한 현금으로 불어났다.

    첫 번째 거대한 승리를 거둔 막동은, 이문을 남긴 돈으로 객주를 빠져나와 가장 먼저 최고급 비단집으로 향했다. 시커먼 누더기를 훌훌 벗어 던지고, 목욕재계 후 화려하고 기품 있는 푸른 비단 두루마기와 가죽신을 차려입었다. 더 이상 저잣거리 뒷골목을 떠돌며 깡통을 차던 구걸꾼의 모습은 없었다. 도깨비의 자본과 거대한 정보망을 양손에 쥔 채, 운종가 상권을 뒤흔들 신흥 상단의 젊은 객주가 혜성처럼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피 튀기는 조선의 상단 세계가 그리 호락호락할 리 없었다. 거대 상권의 파이를 순식간에 빼앗아 간 이 정체불명의 벼락부자를, 오랫동안 권력을 쥐고 흔들던 육의전의 거상들이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리 만무했다. 거대한 시련의 그림자가 막동의 화려한 비단옷 뒤로 서서히 드리우고 있었다.

    ※ 4: 시련의 늪에서 피어난 연꽃, 참한 여인 연화

    도깨비의 금화와 수백 명의 거지가 뿜어내는 거대한 정보망을 양손에 거머쥔 막동의 이름은, 단숨에 거만하고 배부른 거상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며 혜성처럼 한양 저잣거리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길바닥에서 남이 먹다 버린 썩은 무청을 주워 먹으며 동냥 깡통을 차던 꾀죄죄한 거지가, 하루아침에 최고급 비단옷을 휘감고 수만 냥의 거래를 단번에 쥐락펴락하는 신흥 객주의 주인이 되었으니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막동은 도깨비에게 받은 황금을 밑천 삼아, 그리고 한양 구석구석에 거미줄처럼 퍼져 있는 거지 동생들의 정보력을 무기 삼아 연일 승승장구하며 부를 축적해 나갔다. 청나라에서 들여오는 비단 수입의 독점 시기부터, 남부 지방에서 올라오는 소금 배의 정확한 도착 시점까지, 막동의 귀에 들어오지 않는 정보는 이 세상에 없었다. 그는 마치 미래를 내다보는 신선처럼, 가장 완벽하고 정확한 타이밍에 물건을 사들이고 되팔아 막대한 이문을 남겼다. 그의 창고에는 매일같이 쌀과 비단, 엽전 꾸러미가 산더미처럼 쌓여갔다.

    하지만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이며, 고인 물에 돌을 던지면 거센 흙탕물이 일어나는 것이 세상의 이치였다. 기존에 운종가를 주름잡고 있던 거대 상단들, 특히 돈과 권력을 양손에 쥐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상권을 독점하던 육의전의 수장 '김 대방'의 눈에 막동은 눈엣가시를 넘어 반드시 짓밟아 없애야 할 치명적인 위협이었다. 평생을 걸쳐 온갖 암투와 피바람을 뚫고 쌓아 올린 자신들의 철옹성 같은 상권에, 어디서 굴러먹다 온 지 모를 근본조차 없는 거지 출신 놈이 끼어들어 물을 흐리고 막대한 이익을 빼앗아가고 있었으니, 김 대방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깟 거지 발싸개 같은 천한 놈이 감히 내 앞길을 막고 내 돈줄을 끊으려 들어? 감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는 그놈의 숨통을 내가 직접 끊어놓고야 말겠다. 당장 어둠의 왈패들을 풀어 막동이 놈이 전 재산을 털어 사들인 마포 나루터의 쌀 창고에 불을 지르고, 그놈의 수족처럼 움직이는 냄새나는 거지 새끼들을 몽둥이로 두들겨 패서 다시는 한양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쫓아내라!"

    김 대방의 잔혹하고 피비린내 나는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승승장구하던 막동의 상단에 거대한 시련의 폭풍이 몰아닥쳤다. 달빛조차 먹구름에 완전히 가려 유난히도 스산하고 어둡던 어느 늦은 밤, 막동이 도깨비의 금화를 모조리 투자하여 매입해둔 삼남 지방의 최고급 쌀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마포 나루터의 거대 창고에서 갑자기 시뻘건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누군가 고의로 기름을 끼얹고 불을 붙인 것이 분명할 만큼 불길은 순식간에 창고 전체를 집어삼키며 밤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불이야! 창고에 불이 났다! 막동 행수님, 행수님! 쌀 창고가 타고 있습니다!"

    매캐한 연기와 다급한 비명에 놀라 잠옷 바람으로 뛰쳐나온 막동의 두 눈에 비친 것은, 거대한 화염의 혓바닥에 휩싸여 무너져 내리는 자신의 전 재산이자 거상의 꿈이었다. 막동의 수족이었던 거지 출신 일꾼들이 얼굴에 시꺼먼 그을음을 뒤집어쓴 채 양동이에 물을 퍼 나르며 어떻게든 불길을 잡아보려 발버둥을 쳤지만,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번진 거대한 화마를 잡기에는 턱없이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김 대방이 고용한 어둠의 왈패들이 복면을 쓴 채 어둠 속에서 튀어나와, 불을 끄려던 가엾은 일꾼들을 무자비하게 짓밟고 쇠몽둥이로 내리치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형님, 막동 형님! 살려주십시오! 뼈가 부러졌습니다!"

    비명을 지르며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지는 동생들을 보며, 막동은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절규했다. 거센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동생들을 구하려 했지만 왈패들의 발길질에 채여 쓰러지고 말았다. 자신의 얄팍한 욕심과 치기 때문에, 평생을 길바닥에서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며 살아온 불쌍하고 착한 동생들마저 끔찍한 사지로 몰아넣었다는 죄책감이 그의 가슴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다음 날 아침, 잿더미로 변해버린 창고 앞에는 시커먼 연기와 고약하게 타버린 곡식의 냄새만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막동은 넋이 완전히 나간 사람처럼 새까만 재를 뒤집어쓴 채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허공만 응시했다. 도깨비가 주었던 그 막대한 황금도, 조선 최고의 대방이 되겠다는 원대한 꿈도, 모두 저 차가운 잿더미 속에 파묻혀버렸다. 설상가상으로 막동의 상단이 하룻밤 새 완전히 파산했다는 소문이 시장 바닥에 퍼지자, 그에게 돈을 빌려주었거나 물건 값을 받아야 하는 전주와 상인들이 떼거지로 몰려와 당장 빚을 갚으라며 그의 멱살을 잡고 패악을 부리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여기까지인 건가. 잠시나마 비단옷을 입고 호사를 누린 대가가 이리도 참혹할 줄이야. 도깨비가 경고했던 대로, 분수에 넘치는 황금은 결국 내 욕심과 맞물려 이 거대한 재앙을 부른 맹독이 되고 말았어. 내 욕심 때문에 동생들마저 다치고 피를 흘렸으니, 내가 살아서 무엇하겠는가.'

    깊은 절망의 늪에 빠져 스스로 강물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을 생각마저 하며 고개를 떨구던 그때, 시커먼 잿더미와 피비린내 사이로 맑고 청아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다친 분들은 이쪽으로 모시세요. 피가 많이 나니 지혈부터 해야 합니다. 제가 상처를 봐 드리겠습니다."

    환청인가 싶어 힘겹게 고개를 돌린 막동의 시선 끝에, 수수하지만 단정한 옥색 치마를 입고 머리를 단정히 땋아 내린 여인 하나가 보였다. 그녀는 몰락한 양반가의 여식으로, 평소 저잣거리 한구석에서 직접 캔 약초를 팔며 늙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생계를 유지하던 '연화'라는 이름의 낭자였다. 그녀는 매캐한 연기 냄새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끔찍한 잿더미 속에서도 얼굴 찌푸림 하나 없이, 피투성이가 되어 신음하는 거지 일꾼들의 곪은 상처를 정성껏 맑은 물로 씻어내고 자신이 가진 가장 귀한 약재를 아낌없이 발라주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의 깨끗한 치맛자락을 거침없이 찢어 동생들의 부러진 팔다리를 동여매 주는 모습은 마치 지옥에 내려온 관음보살 같았다.

    "아니, 낭자... 낭자처럼 귀하고 고운 분이 어찌 이런 천하고 더러운 놈들의 상처를 직접 만지시는 거요? 옷에 더러운 땟국물과 피가 다 묻지 않소. 우린 평생 구걸이나 하던 거지 놈들이니 그저 내버려 두시오."

    막동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쉰 목소리로 묻자, 연화는 상처를 매던 손을 멈추고 맑고 투명한 눈망울로 막동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천한 목숨이라니요. 세상에 태어난 생명 중에 어찌 귀천이 따로 있겠습니까. 이리도 가엾게 사람이 다치고 피를 흘리는데 어찌 제깟 옷가지 따위가 더러워지는 것을 걱정하겠습니까. 막동 행수 어르신, 하룻밤 새 잿더미가 된 창고를 보며 마음이 무너지고 하늘이 원망스러우시겠지만, 부디 고개를 들어 저 사람들을 똑똑히 보십시오."

    연화의 작고 고운 손끝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간 막동의 눈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들어왔다.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고 절뚝거리는 거지 동생들이, 불탄 쌀가마니 속에서 그나마 멀쩡하게 남은 쌀을 단 한 톨이라도 더 골라내려 까만 재를 뒤집어쓰며 필사적으로 애쓰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처보다 막동의 재산을 조금이라도 건져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재물은 불에 타서 연기가 되어 사라졌을지 몰라도, 막동 어르신을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은 불길 속에서도 조금도 타지 않았습니다. 서방님이 잃어버린 진짜 귀한 밑천은 저 불타버린 쌀가마니가 아니라, 모든 것을 잃은 지금도 어르신 곁에 남아 땀 흘려주는 저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돈은 다시 벌면 그만이지만, 사람의 마음은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법입니다."

    연화의 그 담담하고도 강인한 한마디는 막동의 머리를 거대한 망치로 내리친 듯한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래... 내가 단단히 미쳤었구나. 비단옷을 입고 금화 몇 닢을 만지작거리더니, 내 근본과 본분을 잊어버리고 저 탐욕스러운 상인 놈들과 똑같은 괴물로 변해버렸어. 내 진짜 무서운 힘은 도깨비의 돈이 아니라 나와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저 가엾은 동생들이거늘! 나는 모든 것을 잃은 것이 아니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여전히 쥐고 있었어!'

    막동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연화의 고운 손을 덥석 부여잡았다. 그녀의 따뜻한 체온이 막동의 얼어붙은 심장에 다시 맹렬한 불을 지폈다. 막동은 이 지옥 같은 잿더미 속에서 다시 일어서기로 굳게 결심했다. 단순히 잃어버린 돈을 되찾고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저 착하고 불쌍한 동생들을 지켜낼 튼튼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자신에게 진정한 사람의 가치를 일깨워준 연화 낭자에게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사내가 되기 위해서였다. 막동의 두 눈이 다시금 태양처럼 강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 5: 거상들의 함정과 도깨비의 마지막 안배

    막동이 잿더미 속에서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하는 동안, 막동의 상단을 짓밟은 김 대방은 승리의 축배를 들며 더 잔혹한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 김 대방은 거지 출신의 애송이가 다시는 상단 세계에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그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기 위해, 조선 상업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악랄한 함정을 파놓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백성들의 생존과 직결된 생명줄, '소금'을 이용한 끔찍한 독점 음모였다. 김 대방은 자신이 가진 막대한 자금력과 육의전의 권력을 총동원하여 전국 해안가의 모든 염전과 한양으로 들어오는 소금 배를 돈으로 매수해버렸다. 그리고 한양으로 들어오는 소금 유통의 목줄을 완전히 틀어막아 버렸다.

    소금 공급이 끊기자 한양의 소금 값은 하루가 다르게 천정부지로 솟구쳤다. 밥상에 오를 짠맛이 사라지자 백성들은 맹물에 밥을 말아 먹으며 기력을 잃어갔고,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심지어 소금이 없어 짐승들마저 쓰러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거리에는 소금을 구하지 못해 울부짖는 백성들의 통곡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김 대방은 자신의 은밀한 거대 창고에 산더미처럼 소금을 쌓아두고는, 백성들의 고통을 비웃으며 가격이 열 배, 스무 배로 폭등하기만을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김 대방의 간악한 속셈은 뻔했다. 파산 위기에 몰려 궁지에 빠진 막동이 남은 돈을 영혼까지 긁어모아 이 엄청난 이문이 남는 소금 장사에 뛰어들 수밖에 없도록 유도한 뒤, 막동이 소금을 매입하려 나서는 그 순간, 이미 뇌물을 먹여 매수해둔 관아의 포졸들을 풀어 막동에게 매점매석의 대역 죄를 뒤집어씌울 참이었다. 그리하여 합법적으로 막동을 참수형에 처해 광화문 네거리에 효수하려는 치밀하고도 잔인한 계획이었다.

    "막동 형님! 큰일 났습니다! 한양 바닥에 소금 씨가 완전히 말라버렸습니다! 병자들은 속출하고 백성들이 관아 앞에서 원성을 높이고 있는데, 육의전 김 대방 쪽에서 몰래 남산 밑 비밀 창고에 수만 가마니의 소금을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쌓아두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김 대방 놈이 백성들의 피를 말려 죽일 작정인가 봅니다!"

    막동의 수족인 칠성이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와 이 끔찍한 소식을 전했다. 막동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매섭게 빛났다. 그저 돈을 버는 것이라면 어떻게든 버텼겠지만, 백성들의 생명줄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김 대방의 만행은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악행이었다.

    "김 대방 그 늙고 탐욕스러운 여우 같은 놈이 기어이 선을 넘었구나. 상인의 도리를 잊고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으려 들다니. 일반적인 장사치들의 방법으로는 저 거대한 권력을 꺾을 수 없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 도깨비 어르신과 약속했던 마지막 보름달의 밤이 남아있지."

    그날 밤, 커다란 만월이 하늘 한가운데 둥실 떠오른 으슥한 북망산 자락. 막동은 다시 한번 굳은 결의를 다지며 폐묘 앞을 찾았다. 스산한 밤바람을 가르고 파르스름한 도깨비불이 어지럽게 춤을 추더니, 짙은 안개 속에서 거대한 도깨비가 번쩍이는 금방망이를 어깨에 걸친 채 모습을 드러냈다.

    "허허허! 꼴이 아주 짐승만도 못하게 되었구나, 막동이! 그래, 내가 준 그 어마어마한 금화는 탐욕 속에 다 말아먹고 잿더미에 주저앉은 기분이 어떠하냐? 네가 겪은 인간들의 그 치졸한 다툼과 역겨운 탐욕의 이야기들을 나에게 낱낱이 들려주러 온 것이냐? 아니면 약속대로 네놈의 목숨을 내놓으러 온 것이냐?"

    도깨비는 조롱하듯 껄껄 웃으며 방망이를 바닥에 쿵 내리쳤지만, 막동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하고 바위처럼 단단했다. 그는 도깨비에게 무릎을 꿇고 정중히 절을 올린 뒤,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예, 도깨비 어르신. 어르신의 말씀이 백번 지당하십니다. 저는 참으로 어리석고 멍청한 놈이었습니다. 금덩이를 손에 쥐자 세상이 다 제 발아래 있는 줄 알았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가 그토록 혐오하고 멸시하던 탐욕스러운 거상들과 똑같은 흉측한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르신, 저는 그 모든 것을 잃은 잿더미 속에서 세상의 어떤 금은보화와도 바꿀 수 없는 진짜 귀한 보물을 얻었습니다."

    "호오? 진정 목숨이 아깝지 않은 모양이구나. 그래, 금화를 날리고 얻은 그 대단한 진짜 보물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

    "바로 사람의 마음입니다. 제 욕심 때문에 불길 속으로 기꺼이 뛰어들어준 거지 동생들의 뜨거운 의리와, 저의 썩어빠진 마음의 때를 맑은 물로 씻어준 어느 착한 여인의 따뜻한 손길. 그것이 어르신께서 그 시련을 통해 제게 주신 진정한 가르침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제 개인의 부귀영화가 아니라, 김 대방의 그 간악하고 추악한 음모를 부수고 소금 부족으로 죽어가는 가엾은 백성들을 구하려 합니다. 하오나 저에게는 당장 백성들을 살릴 엽전 한 닢조차 남아있지 않습니다. 제 목숨과 영혼을 담보로,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어르신의 힘을 빌려주십시오."

    막동의 진심 어린 고백과 한 치의 흔들림 없는 결연한 눈빛에 도깨비는 잠시 묘한 침묵을 지켰다. 시퍼런 안광이 막동의 영혼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이내 도깨비의 무섭고 기괴한 얼굴에 깊고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져갔다.

    "하하하! 네놈이 드디어 구걸꾼의 굴레를 벗고 재물의 진짜 무거운 가치를 깨달았구나. 좋다. 돈이란 오로지 나를 위해 움켜쥐면 주인을 물어 죽이는 독사가 되지만, 불쌍한 이를 살리고 세상을 위해 베풀고 나누면 천 마리의 학이 되어 너를 가장 높은 곳으로 날아오르게 할 것이다."

    도깨비는 자신의 거대한 품에서 낡고 허름한 삼베 자루 하나를 꺼내 막동의 품에 툭 던져주었다. 그것은 처음 금화가 들어있던 묵직한 가죽 주머니와는 달리 깃털처럼 가벼운 텅 빈 자루였다.

    "이 자루는 도깨비의 기운이 깃든 요술 자루다. 네놈이 너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이 안에 손을 넣는다면 영원히 텅 비어있는 먼지만 쥘 것이나, 남을 살리고 세상을 베풀기 위한 목적으로 손을 넣는다면 네가 원하는 만큼의 재물이 끝없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가서 네가 깨달은 그 웅대한 뜻을 마음껏 펼쳐 보아라. 이것이 내가 너에게 주는 마지막 안배니라."

    막동은 도깨비의 자루를 가슴 깊이 품고, 눈물을 흘리며 절을 올린 뒤 산을 내려왔다.

    다음 날부터 한양 저잣거리에는 조선 개국 이래 가장 기상천외하고 압도적인 광경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수백, 수천 명의 거지들이 저마다 거대한 등짐을 지고 한양 도성으로 끝없이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그들의 낡은 등짐 속에는 김 대방이 더러운 창고에 꽁꽁 숨겨두었던 것보다 훨씬 질 좋고 눈처럼 하얀 소금들이 가득 차 있었다. 막동이 도깨비의 요술 자루에서 나온 막대한 재물로 전국 팔도의 작고 영세한 염전들을 모두 후원하여 살려내고, 그곳에서 생산된 엄청난 양의 소금을 중간 상인을 거치지 않고 오직 거지 동생들의 발과 땀을 통해 한양으로 직접 실어 나른 것이었다.

    막동은 한양 한복판에 거대한 가마솥 수십 개를 걸고, 가져온 소금을 시중 가격의 반의반 값도 안 되는 그야말로 헐값에 백성들에게 무제한으로 풀어버렸다. 돈이 없어 굶주리는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에게는 아예 소금을 자루째 무료로 쥐여주었다.

    "막동 객주 만세! 거지왕 막동 어르신 만세!"

    백성들은 막동의 이름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환호했고, 한양의 미친 듯이 치솟던 소금 값은 순식간에 바닥으로 폭락하며 안정을 되찾았다. 창고에 산더미처럼 소금을 쌓아두고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기만을 탐욕스럽게 기다리던 김 대방은, 결국 팔지도 못하고 창고에서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 썩어가는 소금 무더기 위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완벽하게 파산하고 말았다. 막동의 백성을 향한 진심 어린 베풂과 거지들의 거대한 결속력이, 탐욕으로 똘똘 뭉친 거대 상단을 소리 없이 완벽하게 붕괴시킨 통쾌한 승리였다.

    ※ 6: 대방에 오른 막동, 나눔의 기쁨과 찬란한 혼례

    김 대방의 완전한 파산과 몰락으로 인해, 그동안 육의전을 중심으로 썩어 문드러져 가던 부패한 상인 세력은 모래성처럼 뿔뿔이 흩어졌고, 한양의 거대한 상권은 완전히 새롭게 개편되었다. 악덕 거상들에게 핍박받던 수많은 중소 장사치들과 평범한 백성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입을 모아 오직 단 한 사람만을 새로운 상단의 수장으로 간절히 추대했다. 그는 바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운종가 뒷골목에서 거적때기를 덮고 자며 동냥을 하던 거지왕, 막동이었다.

    "막동 어르신을 저희의 수장으로 모시겠습니다! 부디 저희 백성들과 상단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십시오!"

    운종가의 내로라하는 상인들이 비단옷을 흙바닥에 끌리게 하며 막동의 앞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어둠 속의 거지왕이었던 막동은 이제 한양을 넘어 조선 팔도의 모든 상권을 쥐락펴락하며 정의로운 상도를 세우는 최고의 자리, '대방'에 찬란하게 오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대방의 자리에 오른 막동의 행보는 이전의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상인들과는 그 궤를 완전히 달리했다. 도깨비의 자루가 가르쳐준 '베풂의 마법'을 깊이 깨달은 그는 가장 먼저 자신이 벌어들인 막대한 이익을 쪼개어 한양 곳곳은 물론 전국 방방곡곡에 거대한 '빈민 구휼소'와 의원을 세웠다. 길거리를 떠도는 늙고 병든 거지들에게 매일같이 따뜻한 고깃국과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했고, 부모를 잃고 오갈 데 없는 가엾은 고아들에게는 서당을 지어 천자문과 글을 가르치고 산통(주판) 튕기는 법을 전수하여 훌륭한 상단의 일꾼으로 키워냈다.

    막동의 이 조건 없는 무한한 은혜를 입은 수만 명의 백성과 거지들은 자발적으로 그의 가장 충실한 눈과 귀가 되어주었다. 조선 팔도 어느 깊은 산골에서 무슨 약재가 부족하고, 어느 포구에 물고기가 남아도는지, 심지어 어느 지역에 비가 오지 않아 흉년이 들 조짐이 보이는지까지, 그 어떤 나라의 관아 파발보다도 더 빠르고 정확한 고급 정보가 매일같이 막동의 귀로 끊임없이 흘러들어왔다. 베풂이 곧 신뢰를 낳고, 그 신뢰가 다시 최고의 정보력이 되어 상단에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는, 막동만의 흠결 없는 거대한 상단 제국이 완성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천하를 얻은 대방 막동에게 남은 단 하나의 가장 소중하고도 가슴 벅찬 일. 그것은 바로 자신이 모든 것을 잃고 가장 참혹한 잿더미의 절망 속에 빠져있을 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자신을 수렁에서 건져내 준 단 한 사람, 연화 낭자와의 혼례였다.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하고 푸른 가을 하늘 아래, 한양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게 지어진 막동의 저택 넓은 앞마당에는 수백, 수천 개의 잔칫상이 끝이 보이지 않게 차려졌다. 최고급 비단옷을 차려입은 고위 관료들과 거상들뿐만 아니라, 낡은 무명옷을 입은 평범한 백성들, 그리고 어제까지 길바닥을 구르던 헐벗은 거지들까지, 신분의 귀천과 빈부의 격차를 완전히 허물어버리고 모두가 한데 어우러져 앉았다. 그들은 막동이 내어놓은 고기반찬과 진귀한 과일, 그리고 맑은 술을 마음껏 마시며 춤을 추고 즐겼다. 막동은 이 거대한 잔치를 위해 도깨비의 요술 자루를 아낌없이 털어내었고, 자루는 세상을 대접하려는 그의 고운 마음씨에 감응하여 끝없이 눈부신 금화와 은화를 폭포수처럼 쏟아내 주었다.

    화려한 활옷을 눈부시게 차려입고 두 뺨에 연지 곤지를 붉게 찍은 연화의 모습은 마치 밤하늘에서 사뿐히 내려온 선녀처럼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막동은 기품 있는 사모관대를 갖추어 입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벅찬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작고 고운 손을 꼭 맞잡았다.

    "연화 낭자, 아니 나의 사랑하는 부인. 부인의 그 맑은 눈빛과 따뜻한 손길 덕분에 이 못나고 어리석었던 거지가 겨우 사람 구실을 하고 마침내 이렇게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날을 맞이하게 되었소. 내 평생 하늘이 두 쪽 나도 당신만을 사랑하며, 그리고 우리 상단에 기대어 사는 모든 가엾은 이들을 내 몸처럼 아끼고 보살피며 정직하게 살겠소."

    연화는 수줍게 고개를 숙이며 막동의 거칠지만 따뜻한 손을 마주 잡았다.

    "서방님, 저는 서방님이 입고 계신 비단옷이나 수만 냥의 재물을 본 것이 아니라, 서방님의 그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한 따뜻한 마음 하나만을 보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천하를 호령하는 대방이 되셨으나, 처음 그 저잣거리에서 굶주린 동생들에게 약과를 나누어주며 웃던 그 정 많고 눈물 많던 거지왕 막동의 마음을 평생 잃지 마셔요."

    두 사람의 아름답고도 영원한 언약 위로 오색찬란한 꽃가루가 눈처럼 흩날렸고, 마당을 가득 채운 하객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와 기쁨의 함성이 한양 하늘을 쩌렁쩌렁 울리며 멀리 퍼져나갔다.

    그날 늦은 밤, 사랑하는 연화를 신방에 고이 눕히고 잠시 시원한 바람을 쐬러 뜰로 걸어 나온 막동은, 밤하늘 한가운데 밝게 빛나는 거대한 보름달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때, 저 멀리 짙은 어둠이 깔린 북망산 자락에서 푸르스름한 도깨비불 하나가 둥실 떠오르더니, 이내 아주 즐겁고 유쾌한 듯 밤하늘을 크게 가로지르며 빙글빙글 춤을 추고는 스르르 사라졌다. 그것은 마치 막동이 스스로의 힘으로 빚어낸 이 통쾌하고도 눈물겹도록 감동적인 인간 세상의 이야기에, 거대한 도깨비가 멀리서 보내는 최고의 찬사이자 따뜻한 축하 인사 같았다.

    동냥 깡통을 차고 배를 곯으며 거리를 헤매던 가난한 거지왕 막동은, 이제 진정한 나눔의 기쁨과 사람의 가치를 아는 조선 최고의 거상이 되었다. 그가 흘린 땀방울과 조건 없는 베풂의 온기는, 그동안 이기심과 탐욕으로 차갑고 팍팍하게 얼어붙어 있던 조선의 저잣거리를 아주 오랫동안 훈훈하고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의 『동패낙송』, 거지왕에서 천하 제일의 거상으로 거듭난 막동이의 통쾌한 인생 역전기, 즐겁게 들으셨나요? 재물은 움켜쥐면 독이 되지만, 나누고 베풀면 천 마리의 학이 되어 날아오른다는 도깨비의 가르침이 긴 여운을 남기는 밤입니다. 여러분의 곁에도 연화처럼 따뜻한 사람, 그리고 나눔의 기쁨이 늘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이야기가 재미있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부탁드리며, 다음번에도 귀가 쫑긋해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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