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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겁 없는 선비와 도깨비의 내기 , 하늘이 내린 복이 쏟아졌다 『청구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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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300자 내외)

    칠흑 같은 밤, 낡은 정자에서 글을 읽던 가난한 이 선비.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짓궂은 도깨비였습니다. "네 간을 빼먹으러 왔다!" 도깨비는 선비를 위협하지만, 선비는 태연히 책만 읽습니다. 오히려 도깨비에게 "그리 심심하면 내기나 하자"고 제안하는데 과연 이 담 큰 선비는 도깨비와의 기묘한 하룻밤에서 무사히 벗어나, 천복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청구야담』에 전해오는 인간과 도깨비의 기묘한 만남. 천사 야담이 들려드리는 이 이야기는, 두려움 대신 지혜를, 분노 대신 포용을 선택한 한 선비의 이야기입니다. 도깨비의 장난에 휘말린 하룻밤이, 그의 인생을 통째로 바꾸는 '천복'의 선물이 됩니다. 지금 시작합니다.

    ※ 도깨비 정자로 향한 선비

    조선(朝鮮) 현종조. 경기도 광주(廣州) 땅, 쇠락한 양반가에 이명원(李明遠)이라는 가난한 선비가 살고 있었다. 이 선비는 비록 가진 것은 없었으나, 그 성품이 대쪽같이 올곧고 배움에 대한 열의가 뜨거웠다. 허나, 가난이라는 것은 참으로 지독한 굴레였다. 그의 집은 비가 새는 낡은 초가삼간이 전부였고, 방 안에는 노모와 어린 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기침을 뱉어냈다. 이 선비는 이 모든 현실을 오직 '과거 급제' 하나로 벗어날 수 있다 믿었다. 그는 밤낮으로 글을 읽었으나, 집안은 너무도 시끄럽고 또 어두웠다. 등잔에 쓸 기름 한 방울이 아쉬워, 그는 매일 밤 달빛을 찾아 집을 나섰다. 그가 향하는 곳은 마을 어귀에서 한참 떨어진, 숲속의 낡은 정자(亭子)였다. 그 정자는 본디 고을 원님이 풍류를 즐기던 곳이었으나, 십수 년 전부터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밤에 그곳을 지난 이들이 홀연히 사라졌다가, 다음 날 엉뚱한 산기슭에서 정신을 잃은 채 발견되곤 했다. 혹은, 한밤중에 정자에서 괴이한 불빛과 노랫소리가 들린다 하여, 사람들은 그곳을 '도깨비 정자'라 부르며 해가 지면 아무도 가까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선비에게는 그런 흉흉한 소문보다, 당장 글을 읽지 못하는 현실이 더 무서웠다. 그는 '설령 귀신(鬼神)이 나온들, 내 가난보다 무섭겠는가. 내 신세가 이리 처량한데, 도깨비가 나온들 나를 비웃고 갈 뿐이겠지.' 그리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낡은 《맹자(孟子)》 한 권을 들고, 쌀쌀한 초저녁 바람을 맞으며 숲으로 들어섰다. 숲은 칠흑처럼 어두웠고, 짐승 울음소리가 음산하게 울렸다. 이윽고, 달빛 아래 희미하게 드러난 낡은 정자. 기둥은 반쯤 썩어 있었고, 마루는 축축한 이끼와 낙엽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 선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루에 좌정(坐定)했다. 그는 품에서 작은 초 한 자루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가 가진 유일한 사치였다. 그는 책을 펼치고, 특유의 낭랑한 목소리로 글을 읽기 시작했다. "맹자왈(孟子曰), 인(仁)은 인지안택야(人之安宅也)요" 그의 글 읽는 소리가, 스산한 밤공기를 가르며 숲속으로 울려 퍼져나갔다. 그는 세상의 모든 시름을 잊고, 오직 성현(聖賢)의 말씀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 짓궂은 손님, 도깨비

    시간이 흘러, 인적이 완전히 끊긴 자시(子時). 달은 구름에 가려 희미했고, 이 선비의 작은 촛불만이 정자를 위태롭게 밝히고 있었다. 그가 한창 글에 몰입해 있을 때였다. '타닥.' 정자 지붕 위에서, 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이 선비는 잠시 멈칫했으나, 그저 산짐승이려니, 혹은 낡은 정자가 바람에 우는 소리려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는 다시 글에 집중했다. "의(義)는 인지정로야(人之正路也)니" 바로 그때였다. '툭.' 이번에는 제법 큰 돌멩이 하나가 그의 책상 위로 떨어졌다. 이 선비는 미간을 찌푸렸다. 산짐승의 짓이라기엔 너무 정확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어두운 지붕을 올려다보았으나, 보이는 것은 썩은 서까래뿐이었다. "뉘신지 모르나, 장난이 과하십니다." 그가 나직이 말하고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리려는 순간. '쿵!' 정자 마루가 통째로 울릴 만큼, 거대한 무언가가 그의 등 뒤에 '내려앉는' 소리가 났다. 이 선비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촛불이 거세게 흔들리며, 방금 전까지 따뜻했던 공기가 순식간에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그리고 짐승의 털 냄새와, 묵은 짚 냄새, 축축한 흙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앞에는, 사람이 서 있었다. 아니,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나, 사람이 아니었다. 키는 장정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고, 온몸은 시커먼 털로 뒤덮여 있었다. 두 눈은 시퍼런 불꽃처럼 이글거렸고, 떡 벌어진 입에서는 짐승의 송곳니가 삐죽 솟아 있었다. 전형적인, 이야기 속의 '도깨비'였다. 도깨비는 이 선비를 내려다보며, 동굴이 울리는 듯한 목소리로 웃었다. "크하하 네 이놈, 이명원! 네 놈의 간(肝)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감히 내 영역인 이 정자에서, 밤늦도록 시끄럽게 떠들어대? 네 놈의 그 싱싱한 간을 오늘 밤 내 요깃거리로 삼아야겠다!" 도깨비는 이 선비의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것은 이 선비가 보통내기가 아님을, 이미 오래전부터 지켜보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도깨비는 이 선비가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거나, 혼비백산하여 도망칠 것이라 예상했다. 그것이 지난 십수 년간 이곳을 찾았던 인간들의 한결같은 반응이었으니까. 허나, 이 선비의 반응은 도깨비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 선비의 호통

    이 선비는 처음엔 분명 놀랐다. 칠흑 같은 어둠 속, 자신의 등 뒤에 나타난 기괴한 존재. 심장이 얼음물에 빠진 듯 철렁 내려앉았고,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눈앞의 존재는 인간의 상식을 벗어난, 썩은 나무뿌리 같은 털과, 시퍼런 불꽃이 이글거리는 두 눈을 가진 마을 사람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그것'임이 분명했다. 그 위압적인 기운만으로도 보통 사람이라면 혼비백산하여 정신을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평생을 '이성(理性)'과 '의(義)'를 공부해 온 선비였다. 그는 공포에 굴복하는 것을, 짐승처럼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것을 죽음보다 더한 수치(羞恥)로 알았다. '저것이 소문으로만 듣던 도깨비로구나. 내 여기서 정신을 잃으면 저 미물(微物)에게 조롱거리가 될 뿐이다. 선비(士)는 칼날 앞에서도 의연해야 하거늘' 그는 자신의 떨리는 다리를 애써 감추고, 오히려 뱃속 깊은 곳, 단전(丹田)에 힘을 모았다. 그리고는 도깨비가 평생 처음 들어보는 '황당무계(荒唐無稽)한' 반응을 보였다. 이 선비는 도깨비의 그 시퍼런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 보았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촛불이 흔들리지 않도록 손으로 바람을 막은 뒤, 방금 읽던 《맹자(孟子)》의 한 구절을 아주 낭랑하게 마저 읽었다. "광거이불유(曠居而弗由)하니, 애재(哀哉)라!" (넓은 집을 비워두고 살지 않으며, 바른 길을 버려두고 가지 않으니, 참으로 슬픈 일이로다!) 이 선비는 '탁!' 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책을 덮었다. 그 소리가, 도깨비의 위협적인 침묵보다 더 크게 정자 안을 울렸다. 그리고는 도깨비를 향해, 마치 공부를 방해하는 무지렁이 어린아이를 꾸짖듯, 벽력(霹靂)같은 '호통'을 쳤다. "네 이놈! 지금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성현(聖賢)의 말씀을 읽고 있는데, 어찌 그리 소란을 피우며 사람의 정신을 산란하게 하는 게냐! 네가 정녕 이 정자의 주인이라 한다면, 손님이 와서 공부를 하거든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거나, 아니면 차라도 한 잔 내오는 것이 예의(禮儀)가 아니더냐! 헌데, 감히 몰래 숨어 돌을 던지고, 이제는 나타나 간(肝)을 빼먹겠다 위협을 해? 네놈은 도깨비 이전에 손님맞이의 기본(基本)도, 염치(廉恥)도 모르는 무뢰배(無賴輩)로구나!" "뭐 뭐라고? 무 무뢰배?" 도깨비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겁에 질려 용서를 비는 대신, 자신에게 '예의'를 운운하며 '호통'을 치다니. 수백 년을 이 정자에서 살면서, 감히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본 인간도 없었거니와, 이토록 당당하게 꾸짖은 자는 더더욱 난생처음이었다. 도깨비는 어이가 없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위엄이 꺾인 것에 분노가 치밀었다. "네 네 이놈이! 지금 죽을 줄 모르고 혓바닥을 함부로 놀리는구나! 당장 네놈의 그 방정맞은 혓바닥부터 뽑아 주겠다!" 도깨비가 솥뚜껑만 한 거대한 손을 들어, 선비의 머리채를 움켜쥐려 했다. 하지만 이 선비는 한 치의 물러섬도, 눈 하나 깜짝함도 없었다. "치려거든 치거라! 내 비록 가난에 찌든 선비이나, 불의(不義)와 무례(無禮)를 보고 굴복하느니, 차라리 네놈 손에 죽어 귀신이 되는 것이 낫겠다! 허나, 내가 죽거든 내 이 억울한 사연과 네놈의 무도(無道)함을 염라대왕(閻羅大王)께 똑똑히 고(告)할 것이다! 저승에 가서도 네놈이 어찌 예의도 도리(道理)도 모르는 천박(淺薄)한 잡귀(雜鬼)인지 만천하(滿天下)의 귀신들 앞에 밝힐 것이야!" 그는 도깨비에게 '저승에서의 소송(訴訟)'을 '협박'으로 하고 있었다.

    ※ 지혜 내기

    도깨비는 그 서슬 퍼런 선비의 기세(氣勢)에, 그만 들어 올렸던 거대한 손을 공중에 멈추고 말았다. 순간 정자 안에는 찬 바람 소리만 감돌았다. 도깨비는 선비를 멍 하니 내려다보았다. '염라대왕께 고해? 잡귀?' 그는 자신의 존재가 모욕당한 것에 분노해야 마땅했으나 그보다 먼저 웃음이 터져 나왔다. "피식 푸하하 크하하하! 이 이 이런 배 밖으로 간이 나온 놈을 보았나! 죽여달라고? 염라대왕께 고하겠다고? 하하하!" 도깨비의 웃음소리는 정자 전체를 뒤흔들었고, 숲속의 짐승들이 놀라 달아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깨비는 본디 인간을 해치는 악귀(惡鬼)라기보다는, 인간의 감정(感情), 특히 '공포'를 먹고 즐기는 짓궂고 변덕스러운 존재였다. 하지만 이 선비에게서는 공포가 아니라 '분노'와 '의연함'만이 느껴졌다. 그는 수백 년 묵은 심심풀이 상대가 아니라, 정말 '재미있는 존재'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네 이놈, 이명원. 내가 이 산(山)에서 수백 년을 살았지만 너처럼 담력(膽力)이 세고 재미있는 인간은 난생 처음 보았다. 좋다. 네놈의 그 쓸개 빠진 간(肝)은 먹어 봐야 영 맛이 쓸 것 같으니 오늘 밤은 특별히 살려" "살려준다니, 당치 않소! 내기를 하세!" "뭐? 또 무슨 꿍꿍이냐!" 선비는 도깨비의 말을 끊고, 오히려 자신이 대화의 주도권(主導權)을 쥐었다. "그렇다. 네놈이 나를 살려주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네놈이 '공평(公平)하게' 내기를 하는 것이다. 내가 이기면, 너는 내가 이 정자에서 과거 급제할 때까지 공부하는 것을 다시는 방해하지 말고 조용히 물러가라. 만약 네가 이긴다면 그때는 내 간이든 쓸개든 네 처분대로 하겠다. 어떠냐?" 도깨비는 시퍼런 눈이 반짝 빛나는 것을 느꼈다. '내기'라니. 무료(無料)하기 짝이 없던 수백 년의 세월 중에 가장 흥미로운 제안이었다. "좋다! 내기라! 크하하! 좋다마다! 무슨 내기를 하겠느냐? 이 썩은 정자를 통째로 들어 옮기는 힘자랑이라도 하겠느냐? 저 아래 마을까지 달리기 시합이라도 하겠느냐? 아니면 둔갑술(遁甲術)이냐? 내가 바위로 변할 터이니 네놈이 날 찾아보겠느냐?" 도깨비가 자신의 시커먼 가슴팍을 둥둥 치며 으스대며 말했다. 이 선비는 그런 도깨비를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 "흥. 그런 무식(無識)한 힘자랑은 산짐승이나 하는 짓이다. 선비(士)는 선비답게 머리(頭)로 승부하는 법. '지혜(智慧)'로 승부하는 법이다." "지혜?" "그렇다. 힘은 너를 당할 수 없으나, 지혜는 너의 그 수백 년 묵은 머리보다 내 젊은 머리가 나을지 어찌 알겠느냐. 내가 지금부터 자네에게 세 가지 수수께끼를 낼 터이니, 자네가 그 중 단 하나라도 답을 맞히지 못하면 내가 이기는 것이다. 만약 세 가지를 모두 맞힌다면 자네의 승리다. 이 공평한 제안을 받아들이겠느냐?" 도깨비는 껄껄 웃었다. 수백 년, 아니 천 년을 살아오며 세상 만물(萬物)의 이치를 꿰뚫고 있는 자신에게 고작 밥도 제대로 못 먹어 삐쩍 마른 인간 선비가 '지혜'로 덤비겠다니. 이것은 내기가 아니라 조롱이었다. "좋다! 좋다마다! 크하하하! 어디 한 번 내어보아라! 이 몸이 네놈의 그 얄팍한 지혜를 어찌 꺾어 주는지 똑똑히 보거라!" 도깨비는 이 내기의 승자가 당연히 자신일 것이라 확신하며, 정자 마루에 떡 하니 다리를 꼬고 앉았다.

    ※ 세 가지 수수께끼

    그렇게 칠흑 같은 어둠 속, 낡고 스산한 정자 안에서 인간 선비와 수백 년 묵은 도깨비의 기묘하기 짝이 없는 '지혜 내기'가 시작되었다. 촛불은 이제 정말 다 타들어가 붉은 촛농 위에서 콩알만 한 빛만 위태롭게 파르르 떨고 있었다. 밖에서는 춥고 축축한 새벽 바람이 불어와 썩은 기둥 틈새를 울리며 마치 귀신 우는 소리를 내었다. 이 선비는 추위도 두려움도 잊은 듯, 침착하게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그의 목소리는 낭랑하게 밤공기를 갈랐다. "첫째, 잘 들으시게.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르면서도 가장 느린 것. 이 세상에서 가장 크면서도 동시에 가장 작은 것.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장 헛되이 낭비(浪費)하면서도 막상 잃고 나면 가장 아쉬워하는 것. 그것이 무엇이냐?" 도깨비는 시퍼런 눈을 굴리며 털 난 턱을 긁적였다. 꽤나 복잡하고 철학적인 질문이었다. 그는 본디 인간의 감정이나 관념(觀念)보다는 물질(物質)에 익숙한 존재였다. "흠 가장 빠르면서 느린 것? 가장 크면서 작은 것? 그야 '번개'가 아니더냐! 번개는 눈 깜짝할 새에 치지만 그 기운은 더디게 오지 않느냐!" 이 선비가 고개를 저었다. "틀렸다. 번개는 그저 빠를 뿐 느리다 할 수는 없지." "그럼 '바람'이다! 바람은 산들바람처럼 느리다가도 태풍처럼 빠르지 않느냐!" "그것도 틀렸다. 바람은 크다 할 수도 작다 할 수도 없지." 도깨비는 점점 조바심이 났다. "에잇! 모르겠다! 모르겠어! 답이 무엇이냐! 시시하게 굴지 말고 어서 말해 보거라!" 이 선비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정답은 '시간(時間)'일세. 시간은 즐거울 땐 화살처럼 가장 빠르고 괴로울 땐 거북이처럼 가장 느리게 가지. 또한 영원(永遠)만큼 크지만 찰나(刹那)만큼 작기도 하다. 그리고 자네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무료함 속에 헛되이 낭비하고 있지 않느냐. 훗날 목숨이 다 되었을 때, 그 낭비한 시간을 가장 아쉬워하게 될 것이고." 도깨비는 "오 그럴싸한데?" 하며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무릎을 '탁' 쳤다. "제기랄! 그깟 시간 따위! 좋다! 하나는 졌다. 두 번째 질문을 내어보아라! 이번엔 네놈의 그 얄팍한 말장난에 속지 않겠다!" 이 선비는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둘째, 이 세상 만물(萬物)을 모두 덮을 수 있으나, 단 한 가지 '이것'만은 절대로 덮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무엇이냐?" 도깨비는 이번에는 자신만만했다. 아까보다 훨씬 쉬운 질문이라 생각했다. "크하하! 그건 너무 쉽지! '하늘'이로구나! 저 거대한 하늘은 이 세상 모든 것을 덮고 있지 않느냐!" 이 선비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틀렸다. 하늘 위에도 하늘이 있고, 하늘이 덮지 못하는 땅 속 깊은 곳도 있으니 어찌 모든 것을 덮는다 하겠는가." "그렇다면 '어둠'이다! 밤이 되면 어둠이 산천초목을 다 덮지 않느냐!" "그것도 틀렸다. 어둠은 작은 촛불 하나도 이기지 못해 덮지 못하거늘." 도깨비는 이제 슬슬 약이 오르기 시작했다. "에잇!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이냐!" 이 선비가 자신의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며 말했다. "정답은 '눈꺼풀'일세." "뭐? 눈 눈꺼풀?" "그렇다. 이 보잘것없는 얇은 살점 하나가 천하(天下)를 덮어 세상을 어둡게 만들 수 있고 만 권의 책도 덮어 버릴 수 있으나, 제 눈 바로 밑에서 자라나는 '욕심(慾心)' 그 한 가지만은 덮지 못하여 늘 화(禍)를 부르지 않느냐." 도깨비는 입이 떡 벌어졌다. 인간들의 그 지독한 '욕심'에 대한 철학(哲學)이 담긴 질문에 말문이 막힌 것이다. "으으 두 개나 졌다니! 네 이놈, 사람 약 올리는 재주가 있구나! 좋다! 마지막 질문이다! 마지막 질문을 맞히면 무승부로 해주겠다! 어서 내어보아라!" 이 선비는 이미 승리를 예감하고, 마지막 쐐기를 박는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은 지식이 아니라 '통찰'을 요하는 것이었다. "셋째, 그렇다면 '너'. 이 수백 년 묵은 도깨비 양반. 네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대체 무엇이냐?" 도깨비는 그 질문에 순간 얼어붙었다. 자신이 무서워하는 것? 그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약점(弱點)을 읊었다. "그 그것이야 당연히 귀신 쫓는 붉은 '팥'이요, 잡귀(雜鬼)를 물리치는 '닭의 피'요, 날카로운 '복숭아나무' 가지가 아니겠느냐! 모든 도깨비가 다 무서워하는 것이다!" 이 선비는 '탁'하고 무릎을 쳤다. "틀렸다! 또 틀렸어! 그것들은 그저 네가 '싫어하는 것'일 뿐,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아니지!" "뭐? 아니라고? 그럼 대체 뭐란 말이냐! 나보다 더 힘센 괴물이라도 있단 말이냐!" 이 선비가 콩알만 해진 마지막 촛불을 '후' 불어 껐다. 정자 안은 완벽한 어둠에 휩싸였으나, 저 동쪽 숲 너머에서 희미한 푸른 기운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이 선비가 그 어둠 속에서 나직이 말했다. "자네가 지금 이 순간 가장 무서워하는 것. 그것은 '팥'도 '닭피'도 아니네. 그것은 바로 '날이 새는 것(새벽)'일세." "자네는 이 내기에서 지는 것도 두렵고, 내가 두 번이나 자네를 이긴 것도 분하지만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저 동쪽에서 '해'가 떠올라 자네가 더 이상 이 정자에 머물 수 없게 되는 것. 그것이 아니 었는가?" 도깨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선비의 말이 정확히 자신의 본질(本質), 어둠(陰)에 속한 존재로서의 근원적인 공포를 꿰뚫었기 때문이었다.

    ※ 패배의 선물, 도깨비 방망이

    어느덧 창호지 밖이 희미하게 밝아오기 시작했다. 숲을 감싸던 칠흑 같은 어둠은 옅은 남색(藍色)으로 변해 있었고, 멀리서 마을의 첫 닭이 '꼬끼오!' 하고 목청껏 우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새벽이 온 것이다. 도깨비는 자신이 졌음을 깨끗이 인정했다. 그는 분노하거나 억지를 부리는 대신, 오히려 아주 유쾌하다는 듯이, 썩은 정자 마루가 무너질 듯 발을 구르며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 졌다! 내가 졌어! 수백 년 만에 고작 핏덩이 같은 인간 선비에게 이 지혜 내기에서 완벽하게 졌다! 이야 너 정말 보통 놈이 아니로구나! 네 놈의 그 간(肝)은 쓸 데 없어도, 그 머릿속 지혜(智慧)는 천하(天下)의 명약(名藥)보다 낫다!" 도깨비는 붉으락푸르락했던 분노의 기색을 완전히 풀고, 이 선비를 진심으로 존경한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본디 악(惡)한 존재가 아니라, 그저 무료(無料)함을 견디지 못하는 영물(靈物)이었던 것이다. "약조(約條)는 약조다. 내가 졌으니, 오늘 이후로 다시는 네가 이곳에서 공부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으마. 아니지, 이제 날이 밝았으니 네놈이 이곳에 올 일도 없으려나? 크하하! 그리고" 도깨비는 자신의 등 뒤에 아무렇게나 메고 있던 낡고 울퉁불퉁한 몽둥이 하나를 풀어 이 선비에게 툭 던져주었다. 그것은 썩은 나무뿌리 같기도 하고, 혹은 오래된 짐승의 뼈 같기도 한, 기괴한 모양새였다. "이것은 내 패배(敗北)의 증표이자, 그대의 그 쓸 만한 지혜에 대한 '선물(膳物)'이다. 받아라." 이 선비가 얼떨결에 몽둥이를 집어 들자, 묵직한 무게와 함께 기묘하게 따뜻한 기운이 손바닥을 통해 전해져 왔다. 도깨비가 말했다. "그것은 겉보기엔 낡은 나무 몽둥이 같아도, 이 몸이 수백 년간 아끼던 '도깨비 방망이'다. 네놈들 인간들이 아주 환장(換腸)하는 물건이지." "도깨비 방망이라니?" "그래. 소원(所願)을 간절히 말하고 땅에 '툭'하고 내리치면 쌀이든 돈이든 무엇이든 이루어질 게다. 아마도?" 이 선비의 눈이 커졌다. 가난한 그에게 이보다 더한 보물은 없었다. "허나 명심해라." 도깨비의 목소리가 갑자기 낮고 엄숙하게 가라앉았다. "그 방망이는 복(福)이 될 수도 독(毒)이 될 수도 있다. 그대의 그릇(器)이 감당할 수 있도록, '단 세 번'만 쓸 수 있도록 내 금(禁)을 걸어 두었다. 그 세 번의 기회(機會)를 어찌 쓰느냐가 바로 네놈의 지혜를 다시 시험하는 길일 게다." 도깨비는 선비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경고했다. "내 비결(祕訣)을 하나 알려주지. 한 번은 '너 자신(自身)'을 위해 쓰고, 한 번은 '네 가문(家門)'을 위해 쓰되 마지막 한 번은 반드시 너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천하(天下)의 백성(百姓)'을 위해 써야 한다. 그리하여야 그 복(福)이 비로소 '천복(天福)', 즉 하늘의 복이 되어 네게 영원히 머무를 것이다. 만약 그 약조를 어기고 세 번 모두 네 놈의 사사로운 욕심을 채우는 데 쓴다면 그 천복(天福)은 다시 재앙(災殃)이 되어 네 모든 것을 앗아갈 것이다. 알겠느냐?" "명심하겠네, 도깨비 양반." 해가 완전히 떠오르기 시작하자, 도깨비의 거대했던 형체는 아침 안개처럼 발끝부터 희미해지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허허 참으로 재미있는 밤이었다, 이 선비. 부디 그 지혜로 그 복을 잘 다스려 보거라" 정자에는 차가운 새벽 공기 속에 이 선비와 낡은 도깨비 방망이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 천복을 얻다

    이 선비는 지난밤의 일이 마치 길고 기묘한 꿈을 꾼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의 손에는 묵직하고도 기묘한 온기(溫氣)를 뿜어내는 도깨비 방망이가 선명하게 들려 있었다. 그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산을 내려와 자신의 낡은 초가집으로 돌아왔다. 방 안에서는 여전히 노모가 차가운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콜록 콜록" 마른 기침을 뱉어내고 계셨다. 어린 동생들은 굶주림에 지쳐 웅크리고 잠들어 있었다. 이 선비는 도깨비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한 번은 너 자신(自身)을 위해 쓰라.' 그는 방망이를 굳게 쥐고 잠시 고민했다. '나를 위해? 그래 내 소원은 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는 것. 허나 그 근본(根本)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는 방망이를 들고 집 앞 마당으로 나가,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내 머리가 트여 천하(天下)의 모든 이치(理致)를 깨닫고, 성현(聖賢)의 뜻을 통달(通達)하여 대과(大科)에 장원급제(壯元及第)하게 해다오!" 그것은 단순히 부(富)를 구하는 것이 아닌, 지혜(智慧)를 구하는 소원이었다. 그리고 방망이로 땅을 '툭'하고 가볍게 내리쳤다. 그 순간, 방망이에서 벼락이라도 맞은 듯 짜릿하고 따뜻한 기운이 솟아 올라 그의 손을 타고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지난 10년간 그토록 어렵고 막막했던 《주역(周易)》의 이치와 《논어(論語)》의 깊은 뜻이 마치 봄날 얼음 녹듯 환하게 풀리기 시작했다. 그의 머리가 수정(水晶)처럼 맑아진 것이다. 그는 더 이상 가난한 선비가 아니었다. 그는 천하의 이치를 꿰뚫는 현자(賢者)가 되었다. 그해 가을, 이 선비는 한양에서 열린 대과에 응시하여, 모두의 예상을 깨고 심사관(審査官)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명문(名文)으로 '장원(壯元)'을 차지했다. 그는 임금의 총애를 받는 젊은 관료가 되어, 홍문관(弘文館)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는 두 번째 소원을 쓸 차례임을 알았다. '한 번은 네 가문(家門)을 위해 쓰라.' 그는 첫 녹봉(祿俸)을 들고 고향 집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낡은 초가삼간 앞에서 그는 방망이를 들었다. "우리 노모께서 남은 여생 병환 없이 만수무강(萬壽無疆)하시고, 내 어린 동생들이 굶주리지 않고 각자 훌륭한 혼처(婚處)를 잘 만날 수 있도록 복(福)을 내려다오!" 그가 땅을 '툭'하고 내리치자,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 노모의 지병이었던 기침이 씻은 듯이 멎고, 건강을 되찾으셨다. 또한 장원급제한 그에게 명망 높은 사대부 가문에서 혼담이 들어와 훌륭한 아내를 맞이하게 되었으며, 그 덕에 어린 동생들도 좋은 배필을 만나 쇠락했던 이(李)씨 가문이 다시 번성(繁盛)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이 선비는 자신의 그 비범한 지혜와 공명정대(公明正大)한 일처리로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며, 마침내 정승(政丞)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더 이상 도깨비 방망이에 의지하지 않아도 될 만큼 모든 것을 이루었다. 바로 그해, 조선 팔도(八道)에 3년 넘게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독한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굶어 죽어 나갔고, 나라 곳간은 바닥을 드러냈다. 임금은 기우제(祈雨祭)를 지냈으나 소용이 없었다. 이 정승(이 선비)은 10년간 궤짝 깊숙이 고이 간직해 두었던 마지막 도깨비 방망이를 꺼내 들었다. '마지막 한 번은 천하(天下)를 위해 쓰라.' 그는 임금이 보는 앞에서, 조정(朝廷)의 모든 관료를 이끌고 광화문 앞으로 나아가, 방망이를 높이 들고 하늘에 외쳤다. "하늘이시여! 이 늙은 신(臣)의 남은 수명(壽命)을 절반 가져가셔도 좋사오니, 제발 이 땅의 굶주린 백성(百姓)을 위해 넉넉한 단비(甘雨)를 내려 주시옵소서!" 그가 마지막 힘을 다해 땅을 '툭'하고 내리치자, 도깨비 방망이는 '쩍'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 나 한 줌의 재로 변해 바람에 흩날려 사라졌다. 그리고 바로 그날 밤, 3년 묵은 가뭄이 해소되는 장대비가 조선 팔도에 쏟아졌다. 이 정승은 도깨비와의 약속을 지켰고, 자신뿐만 아니라 가문과 백성까지 구한 '천복(天福)'을 누리게 되었다. 그는 남은 수명을 빼앗기지 않고, 오히려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어진 정승으로 살다가, 90세가 넘어 잠자듯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청구야담(靑丘野談)』에 실려, '두려움은 지혜로 이기고, 복(福)은 나누어야 비로소 '천복'이 된다'는 교훈 속에 천사 야담의 이야기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 천사 야담이 들려드린 '도깨비에게 홀린 선비' 이야기, 어떠셨나요? 두려운 존재 앞에서 지혜를 잃지 않고, 뜻밖의 복을 얻었을 때도 자신의 욕심이 아닌 천하를 위해 사용한 이 선비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천사 야담은 이처럼 우리 옛이야기 속에 담긴 인간미 가득한 지혜와 감동을 찾아, 시청자 여러분의 마음에 '천사 같은 따뜻한 선물'이 되고자 합니다. 오늘 밤, 이 이야기가 여러분께 포근한 위로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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