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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집 마당에 나타난 도깨비, 술 한 잔에 반해 방물지게로 쌀과 돈을 퍼다 준 기막힌 동업 《천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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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한양 제일의 풍류객이 전 재산을 탕진하고 기방 헛간으로 쫓겨난 날, 모두가 차갑게 등을 돌렸지만 오직 한 명의 어여쁜 기생만이 몰래 술과 고기를 싸 들고 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녀의 뜨거운 진심이 담긴 그 귀한 술상을, 야심한 밤 마당에 나타난 무시무시한 외눈박이 도깨비에게 대접하게 된 사내! 목숨을 건 배짱과 변치 않는 사랑이 얽혀 어마어마한 금은보화가 방물지게로 쏟아지는 기막힌 인생 역전의 로맨스, 지금 눈앞에 노다지가 펼쳐지는 짜릿한 상상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1: 몰락한 풍류객을 찾아온 헛간의 밤, 그리고 기생의 뜨거운 순애보
흥겨운 가야금 산조의 선율과 낭랑하고 교태로운 기생들의 웃음소리가 높은 담장을 훌쩍 넘어 한양의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었습니다. 오색찬란한 청사초롱 불빛이 대낮처럼 환하게 쏟아지는 화려한 기방의 안채와는 너무도 대조적으로, 인적이 완전히 끊긴 쾨쾨한 뒷마당 헛간에는 썩어가는 짚단 냄새와 시큼한 곰팡내만이 진동하고 있었습니다. 그 어두컴컴하고 뼛속까지 냉기가 서린 헛간 바닥에는, 본래의 색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새카맣게 때가 타고 여기저기 다 해진 낡은 비단 두루마기를 얇은 이불 삼아 덮고 바들바들 떨며 몸을 한껏 웅크린 사내가 있었습니다. 불과 달포 전까지만 해도 이 거대한 기방을 통째로 전세 내어 밤새도록 금가루를 허공에 흩뿌리며 놀던, 한양 바닥에서 돈 쓰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최고의 풍류객 김 서방이었습니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어마어마한 재산을 굳게 믿고 평생을 주색잡기에 빠져 살던 그는, 매일같이 천금을 물 쓰듯 하며 세월의 귀함을 모른 채 방탕하게 보냈습니다. 한창 그가 돈을 뿌리고 다닐 때 기방의 기생들은 그의 비단 옷자락만 살짝 스쳐도 옥구슬이 은반 위를 굴러가는 듯한 간드러진 소리를 내며 온갖 아양을 떨었고, 기방의 실세이자 독사이기로 소문난 행수 기생조차 그를 마주할 때마다 버선발로 황급히 뛰어나와 흙바닥에 이마가 닿도록 납작 엎드려 큰절을 올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거대하고 웅장한 태산이라 할지라도 매일같이 흙을 파내면 결국 흉한 바닥을 드러내고 무너지는 것이 세상의 변치 않는 이치입니다. 결국 3년이라는 짧고도 허망한 시간 만에 조상 대대로 땀 흘려 일구어 물려받은 수만 평의 비옥한 논밭과 으리으리한 기와집, 그리고 곳간을 가득 채우고 있던 수백 냥의 은덩이들까지 모조리 남의 손에 허무하게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화수분처럼 펑펑 쏟아질 줄 알았던 돈줄이 완전히 끊어지고 하루아침에 끼니조차 때울 수 없는 빈털터리 알거지 신세가 되자, 김 서방을 둘러싸고 있던 기방의 인심은 그야말로 한겨울의 얼음장보다 더 차갑고 매섭게 돌변했습니다. 간과 쓸개라도 당장 다 빼줄 것처럼 애틋하게 굴던 행수 기생은 김 서방의 텅 빈 주머니 사정을 눈치채자마자 매몰차게 하인들을 시켜 그를 흠씬 두들겨 패게 한 뒤, 기방 뒷마당 구석에 있는 가장 낡고 쥐가 들끓는 냄새나는 헛간에 던져버렸습니다. 그가 과거에 뿌린 돈이 하도 막대하여 길거리에 내쫓아 얼어 죽게 만들면 한양 바닥에 소문이 흉흉해질까 두려워 베푼, 지독하게 위선적이고 알량한 선심이었습니다.
'내 팔자가 어쩌다 하루아침에 이 지독한 꼴이 되었단 말인가. 불과 달포 전만 해도 저 화려하고 따뜻한 안채의 가장 높은 상석에 거만하게 앉아 천하를 호령하고 있었거늘. 이제는 뉘 집 마당에 묶여 있는 똥개보다 못한 참담하고 비참한 신세가 되어 굶주림에 떨고 있구나. 돈이라는 것이 이토록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도리마저 저버리게 만드는 무섭고 허망한 요물이었더냐.'
김 서방이 뼈저린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짚더미 속으로 파고들던 그 야심한 시각이었습니다. 삐그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헛간의 낡은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더니, 희미한 달빛을 등지고 누군가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들어왔습니다. 놀란 김 서방이 몸을 웅크린 채 고개를 들어보니, 그곳에는 기방에서 가장 미색이 뛰어나고 거문고를 잘 타기로 소문난 어여쁜 기생, 매향이가 서 있었습니다. 그녀는 다른 기생들처럼 돈에 눈이 멀어 가식적인 웃음을 팔던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과거 김 서방이 돈을 흩뿌릴 때도 묵묵히 곁에서 거문고를 타며 그의 따뜻하고 넉넉한 심성을 남몰래 연모해 왔던, 유일하게 진심으로 그를 사랑했던 여인이었습니다. 행수 기생의 무서운 감시의 눈길을 피해 몰래 헛간으로 숨어 들어온 매향의 치마폭에는, 무언가 묵직하고 커다란 보따리가 소중하게 감춰져 있었습니다.
"서방님... 이 누추하고 뼈가 시린 곳에서 어찌 견디고 계시옵니까. 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여 도저히 안채에 머물 수가 없었습니다."
매향이는 짚더미에 쓰러져 있는 김 서방의 참담하고 앙상한 몰골을 보자마자 왈칵 굵은 눈물을 쏟아내며 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그녀의 가늘고 하얀 손이 김 서방의 때 묻고 거칠어진 손을 꽉 부여잡았습니다.
"매향아... 네가 어찌 이곳에 온 것이냐. 행수 어멈에게 들키면 당장 네 머리채가 뽑히고 매타작을 당할 터인데, 어서 돌아가거라. 나는 이제 네 곁에 머물 자격이 없는 빈껍데기일 뿐이다."
"그런 약한 말씀 마시옵소서. 세상 사람 모두가 서방님의 재물만 보고 아양을 떨었을지 몰라도, 저는 서방님의 그 호탕하고 따뜻하신 진심을 은애하였습니다. 서방님이 천금을 호령하던 거부이시든, 헛간에 쫓겨난 알거지이시든 제 마음속 지아비는 오직 서방님 한 분뿐이옵니다."
매향이는 치마폭에 감춰왔던 무거운 보따리를 조심스럽게 풀어헤쳤습니다. 그 안에는 오늘 밤 기방 안채의 큰 잔치에 올리기 위해 특별히 빚어낸, 독하고 그 향기가 천 리를 간다는 최고급 방문주가 가득 찬 술 항아리와, 가마솥에서 푹 삶아져 육즙이 윤기 나게 흐르는 커다란 돼지 뒷다리 고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행수 기생 몰래 부엌에서 목숨을 걸고 훔쳐 온 귀한 음식들이었습니다.
"사흘을 굶으셨다 들었습니다. 어서 이 고기로 허기를 달래시고, 이 독한 술로 뼛속에 스민 한기를 씻어내시옵소서. 제가 어떻게든 제 쌈짓돈과 패물을 몰래 모아서, 서방님을 이 끔찍한 곳에서 빼내어 드릴 터이니 부디 목숨만은 버리지 마시고 옥체 보존하시옵소서.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서방님을 꼭 다시 일으켜 세우겠사옵니다."
그녀의 뜨거운 눈물이 김 서방의 앙상한 손등 위로 뚝뚝 떨어졌습니다. 세상의 모든 인심이 잔인하게 등을 돌린 이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서, 오직 이 연약한 여인만이 목숨을 걸고 자신을 위해 진정한 사랑과 순애보를 바치고 있었습니다. 김 서방의 굳어있던 심장이 뜨겁게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그토록 허망하게 탕진했던 것은 한낱 부서질 재물이었지만,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고 고귀한 보물인 사람의 진심은 잃지 않았다는 사실에 가슴이 터질 듯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김 서방은 매향의 고운 뺨을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반드시 이 치욕을 갚고 그녀를 호강시켜 주리라 뼈저리게 다짐했습니다.
※ 2: 달빛 아래 드리운 거대한 그림자, 외눈박이 도깨비의 기괴한 강림
매향이가 행수 기생에게 들킬 것을 염려하여 눈물을 머금고 서둘러 안채로 돌아간 뒤, 김 서방은 홀로 텅 빈 헛간에 남겨졌습니다. 그의 앞에는 매향이가 목숨을 걸고 훔쳐 온 그 귀하디귀한 방문주 항아리와 큼지막한 돼지 뒷다리 고기가 놓여 있었습니다. 음식을 보자 사흘 밤낮을 굶주려 창자를 쥐어짜던 극심한 허기가 폭풍처럼 밀려왔지만, 김 서방은 선뜻 고기에 입을 대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술과 고기가 아니라, 자신을 향한 한 여인의 뜨거운 피와 눈물, 그리고 목숨을 건 애절한 사랑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이 귀한 음식을 쥐구멍 같은 캄캄하고 냄새나는 헛간 구석에 처박혀 짐승처럼 허겁지겁 뜯어 먹는 것은, 그녀의 고결한 마음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김 서방은 무거운 술 항아리와 고기가 담긴 소반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받쳐 들고, 답답한 헛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습니다. 비록 몸은 비루한 알거지일지언정, 그녀의 사랑이 담긴 이 귀한 술상만큼은 하늘에 뜬 밝은 달을 벗 삼아 대장부답게 당당하게 마시고 싶었던 것입니다.
기방의 뒷마당은 서늘한 늦가을의 밤공기가 날이 시퍼렇게 선 칼날처럼 살갗을 베어낼 듯 차가웠고, 담장 너머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취객들의 소음과 극명하게 대비되어 오히려 소름이 끼칠 정도로 끔찍하게 고요했습니다. 김 서방이 마당 한구석에 있는 낡은 평상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그의 시선이 무심코 텅 빈 마당 한가운데에 머물렀고 그 순간 숨이 턱 막히며 온몸의 뜨거운 피가 일순간에 차갑게 얼어붙는 듯한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마당 한가운데, 수백 년은 족히 되어 굵은 뿌리가 마당 전체를 덮고 있는 거대한 아름드리 고목나무의 짙은 그림자 사이로 웬 거대한 형체가 바위산처럼 우뚝 서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처음에는 그저 짙은 구름 사이로 비치는 달빛이 만들어낸 나무 기둥의 기괴한 그림자이거나, 극심한 굶주림과 정신적 충격에 지친 자신의 나약한 뇌가 만들어낸 헛것을 보는 것이라 애써 위안하며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습니다. 하지만 눈을 크게 비비고 다시 뚫어지게 쳐다보아도 그 끔찍한 형체는 사라지지 않고 분명히 살아서 숨을 쉬며, 마치 어둠 속에서 먹잇감을 탐색하듯 미세하고도 위협적으로 몸을 들썩이고 있었습니다. 사람이라고 하기엔 그 덩치가 웬만한 초가집 한 채를 완전히 가릴 만큼 어마어마하게 거대했고, 짐승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인간처럼 두 발로 꼿꼿하고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이 자연의 상식을 완전히 파괴할 정도로 기괴하고 비현실적이었습니다. 마침 밤하늘을 짙게 덮고 있던 먹구름이 거센 바람에 스르르 밀려나며 둥근 보름달이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었고, 그 정체불명의 형체 위로 창백하고 푸른 달빛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습니다. 달빛에 선명하게 비친 그 끔찍한 괴물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한 순간, 김 서방은 들고 있던 소반을 놓칠 뻔하며 하체의 모든 근육에 힘이 완전히 풀려버려 하마터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기절할 뻔했습니다.
그것은 어린 시절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듣던 전설 속 야담에서나 등장하던, 아니 보통 사람의 나약한 머리로는 도무지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끔찍하고 흉측한 형상의 외눈박이 도깨비였습니다. 사람의 머리통보다 서너 배는 더 크고 투박한 얼굴 이마 한가운데에는, 붉은 핏발이 흉측하게 선 커다란 눈이 단 하나만 툭 불거져 나와 사방을 번뜩이며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귀밑까지 쩍 벌어진 거대한 입 밖으로는 성난 멧돼지의 날카로운 어금니처럼 누런 뿔 두 개가 밤하늘을 찌를 듯 솟아올라 있었고, 떡 벌어진 어깨와 거대한 몸통은 강철 수세미처럼 거칠고 뻣뻣한 짐승의 검은 털로 빈틈없이 뒤덮여 있었습니다. 전설 속에서나 사람의 간을 빼먹는다고 전해지던 그 진짜 도깨비가, 그것도 당장이라도 눈앞의 인간을 산채로 집어삼킬 듯한 잔뜩 굶주리고 성난 몰골로 기방 뒷마당에 강림하여 우뚝 서 있는 것입니다.
도깨비는 무엇이 그리 분통이 터지고 억울한지 어둠 속에서 연신 씩씩거리며 커다란 콧구멍으로 거친 숨결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그 짐승 같은 뜨거운 숨결이 차가운 허공에 닿아 식을 때마다, 공기 중의 수분이 하얗게 얼어붙어 성에가 되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질 정도로 도깨비의 주변에는 소름이 돋을 만큼 서늘한 냉기와 짙은 죽음의 기운이 소용돌이치고 있었습니다. 김 서방은 당장이라도 폐부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자신이 숨어있던 헛간으로 미친 듯이 도망치고 싶었지만, 성대가 완전히 마비되어버린 듯 입을 뻐끔거려도 아무런 소리도 새어 나오지 않았습니다. 발바닥이 차가운 흙바닥에 아예 뿌리를 내리고 얼어붙어 버린 것처럼 단 한 발짝도 떼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아, 이대로 가다간 꼼짝없이 저 요망하고 무시무시한 귀물의 한 입 거리 안주가 되어 뼈와 살이 무참히 씹혀 먹히고 말겠구나. 틀림없이 인간의 피와 살을 파먹으며 수백 년을 살아온 악귀가 분명하다. 아아, 한양 바닥을 호령하던 내 인생이 결국 이렇게 허망하고 끔찍하게 요괴의 밥이 되어 끝이 나는구나. 어차피 이 차디찬 헛간 구석에서 배를 곯다 처절하게 굶어 죽을 목숨, 도깨비의 날카로운 이빨에 산채로 찢겨 죽으나 서서히 굶어 죽으나 지옥으로 가는 것은 매한가지가 아니더냐!'
공포의 밑바닥에서 몸부림치던 순간, 김 서방의 시선이 자신의 두 손에 들려있는 소반 위로 향했습니다. 그곳에는 매향이가 목숨을 걸고 가져다준, 눈물방울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술 항아리와 고기가 있었습니다. 나를 위해 목숨마저 내어놓으려 했던 그 숭고한 여인의 사랑을 확인한 마당에, 이깟 요물 앞에서 벌벌 떨며 볼품없이 잡아먹히는 것은 사내로서, 아니 그녀의 지아비로서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김 서방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과거 한양 바닥을 주름잡으며 세상 무서울 것 없이 호령하던 그 특유의 호탕함과 남다른 두둑한 배짱이 맹렬하게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김 서방은 덜덜 떨리며 주저앉으려는 두 다리에 억지로 힘을 꽉 주어 버티고 서서는, 바싹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흐트러진 호흡을 가다듬었습니다. 그리고는 도망치는 대신 가슴을 활짝 펴고, 어둠 속의 거대한 괴물 도깨비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성큼성큼 다가가기 시작했습니다.
※ 3: 사랑이 담긴 방문주를 귀물에게 내어주며 맺은 사내의 두둑한 배짱
어둠과 고요만이 짙게 깔려있던 기방의 넓은 뒷마당에서, 자신을 피해 도망치기는커녕 도리어 거침없이 다가오는 사람의 인기척을 느낀 도깨비가, 육중한 고개를 홱 돌려 김 서방을 뚫어지게 노려보았습니다. 사람의 몸통만 한 커다란 외눈박이 눈동자 속에서, 핏빛이 진하게 섞인 시퍼런 안광이 마치 지옥의 횃불처럼 이글거리며 뿜어져 나와 김 서방의 파리한 얼굴을 붉게 물들였습니다. 보통의 나약한 인간 같았으면 그 살기가 뚝뚝 떨어지는 무시무시한 눈빛만 마주쳐도 혼비백산하여 거품을 물고 쓰러졌겠지만, 마음속에 한 여인의 사랑을 품고 죽음을 불사하기로 결심한 김 서방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애써 태연한 척, 마치 투전판에서 오랜만에 절친한 옛 벗을 마주한 양 몹시도 자연스럽고 능청스럽게 헛기침을 큼큼 내뱉으며 도깨비의 거대한 코앞에 당당히 멈춰 섰습니다.
"허허, 이 야심하고 적막한 밤중에 하늘에서 떨어진 귀물이신지 땅에서 솟아난 요물이신지는 내 도무지 모르겠으나, 안색과 내뿜는 거친 숨결을 보아하니 당신도 나처럼 몹시 춥고 배가 고프며 속이 타들어 가는 모양이구려. 덩치 큰 사내들끼리 우두커니 이 차가운 흙바닥 한가운데서 실없는 밤바람이나 맞으며 서로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기엔, 오늘 이 달 밝은 밤이 너무 길고 아깝지 않소? 내 비록 지금은 가세가 꺾여 신세가 빈천하고 입은 꼴이 이리 초라하지만, 한때는 천하의 기가 막힌 술맛은 다 보았고 돈의 무서움도 뼈저리게 겪어본 사내요. 당신이 귀물이든 사람을 찢어 죽이는 악귀든 내 알 바 아니나, 마침 내 손에 몹시도 귀하고 눈물겨운 사연이 담긴 술과 고기가 있으니, 나와 저기 평상에 마주 앉아 대작이나 한 번 진하게 해보시겠소?"
도깨비는 김 서방의 이 엉뚱하고도 당돌하기 짝이 없는 제안에 벼락이라도 맞은 듯 크게 당황하여, 흉측하게 튀어나온 커다란 외눈을 끔벅끔벅거리며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굳어버렸습니다. 나약한 인간이라는 존재는 본디 자신과 같은 무서운 귀물을 마주치자마자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거나, 혼비백산하여 뒤도 돌아보지 않고 쥐구멍으로 도망치는 것이 이 세상의 변치 않는 이치이거늘. 도리어 피골이 상접하여 깡마르고 볼품없는 빈털터리 사내가 자신에게 두려움 하나 없이 술을 대접하겠다며 이리 호탕하게 큰소리를 치고 있으니, 도깨비의 입장에서는 몹시도 황당하면서도 동시에 강렬한 호기심이 불일 듯 일어난 것입니다. 도깨비가 어리둥절하면서도 묘하게 적의가 누그러진 표정으로 쿵덕쿵덕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자, 김 서방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평상 위에 소반을 내려놓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자, 이쪽으로 와서 편히 앉으시오. 비록 쟁반에 놓인 것이 고기 한 덩이와 술 한 항아리뿐이라 당신의 그 거대한 배를 다 채우지는 못하겠으나, 이 음식은 예사 음식이 아니오. 세상이 다 돈만 보고 나를 버렸을 때, 유일하게 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을 각오를 하고 지독한 감시를 뚫고 찾아온, 한 맑고 고운 여인의 피눈물과 사랑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진정으로 값비싼 성찬이란 말이오. 게다가 이 항아리에 담긴 술만큼은 한양에서 제일가는 명기가 직접 정성을 다해 빚어낸 방문주라, 목구멍으로 불을 삼키는 듯 독하면서도 그 향기가 뼈를 울릴 만큼 깊고 향기로운 놈이지요."
김 서방이 큼지막한 사기 사발을 꺼내어 그 맑고 독한 방문주를 찰랑거리도록 콸콸 부어 도깨비에게 건네자, 도깨비는 그 솥뚜껑같이 커다랗고 검은 털이 숭숭 난 거친 두 손으로 사기 사발을 몹시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코를 깊숙이 박고 냄새를 킁킁 맡았습니다. 코끝을 강렬하게 찌르는 진한 누룩 향과 신비로운 약재의 냄새에 도깨비의 흉측한 입가에 미세하고도 황홀한 미소가 번지더니, 이내 그 커다란 사발을 통째로 입에 털어 넣고는 계곡물을 들이켜듯 단숨에 바닥까지 비워버렸습니다. 뜨거운 불길 같은 독주가 굵은 식도를 타고 뱃속으로 찌르르 내려가자, 도깨비의 외눈박이 눈이 번쩍 뜨이며 밤하늘을 갈기갈기 찢을 듯한 짐승 같은 탄성을 길게 내질렀습니다.
"크아아아! 세상에! 어찌 이런 맛이 있단 말이냐! 인간들이 아등바등 살아가는 이 좁은 속세에, 이토록 기가 막히고 수백 년 묵은 귀물의 혼을 통째로 쏙 빼놓을 만큼 달콤하고 독한 명주가 숨겨져 있었단 말이냐!"
도깨비가 우레와 같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크게 감탄하며 기뻐하자, 김 서방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며 속으로 통쾌한 쾌재를 불렀습니다. 김 서방은 옆에 놓인 식칼을 들어 기름진 돼지고기를 큼직큼직하게 뭉텅뭉텅 썰어 도깨비의 무시무시하게 벌어진 입 앞까지 손수 밀어 넣어 주었고, 자신도 술 한 사발을 시원하게 들이켰습니다.
"자, 사양하지 말고 마음껏 배불리 드시오. 비록 오늘 밤이 지나고 내일 아침 해가 뜨면 나에게 남은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겠지만, 여인의 지독한 사랑을 맛보았고 귀물 형님과 이리 마주 앉아 호탕하게 술을 나누었으니 내 비루한 인생에 더 이상 후회는 없소이다. 사내가 모름지기 뜻이 맞는 벗과 귀한 술을 마실 때는, 다가올 내일의 죽음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오늘 밤의 취기에 몸을 맡기는 법이지요!"
도깨비는 김 서방의 그 두려움 없는 당당한 말과, 여인의 지독한 순애보가 담긴 특별한 호의에 깊게 감복하였습니다. 도깨비는 내어주는 돼지고기를 뼈째로 와그작와그작 호쾌하게 씹어 삼키고는 연거푸 따라주는 독주를 마셔댔습니다. 찰랑거리던 술항아리가 어느새 텅 비어 바닥을 긁는 소리를 낼 즈음, 도깨비의 창백했던 흉측한 얼굴에는 어느새 벌겋게 짙은 취기가 잔뜩 올라와 있었고, 입가에는 인간을 향한 경계심이 완전히 허물어진 기분 좋은 너털웃음이 가시질 않았습니다.
"이보게, 인간. 네놈 참으로 뱃속이 태산만큼 두둑하고 간덩이가 하늘을 찌르는, 내 마음에 쏙 드는 진짜배기 사내로구나! 내 억겁의 세월 동안 이 답답한 조선의 산천을 홀로 쓸쓸히 떠돌며 간악하고 이기적인 수만 명의 인간 무리를 보아왔으나, 이토록 끔찍한 나를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더군다나 그 어여쁜 여인이 목숨 걸고 바친 귀한 사랑의 증표를 나 같은 귀물에게 아낌없이 진심을 다해 대접해 준 인간은 네놈이 처음이다. 네가 오늘 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나에게 베푼 이 뜨거운 술 한 상과 여인의 은혜, 내 비록 미물인 도깨비일망정 하늘이 두 쪽 나도 결코 잊지 않고 천 배, 만 배로 갚아주마!"
도깨비는 천지가 찌렁찌렁하게 흔들리도록 호탕하게 파안대소하며 앉아있던 평상에서 우뚝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바위통만 한 커다란 손으로 김 서방의 어깨를 뼈가 울릴 정도로 기분 좋게 툭툭 치며 깊은 고마움을 표하고는, 이내 한 줄기 거대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아침 햇살에 녹아내리는 짙은 물안개처럼 스르르 밤공기 속으로 흩어지더니 씻은 듯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텅 빈 헛간 앞마당에는 김 서방만이 홀로 남아, 방금 전 자신이 겪은 이 믿을 수 없는 폭풍 같은 밤이 만들어낼 엄청난 기적을 향한 묘한 기대감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습니다.
※ 4: 방물지게로 쏟아진 횡재, 기방의 코를 납작하게 누르고 사랑을 쟁취하다
다음 날 아침, 밤새 굳게 닫혀 있던 낡고 삐걱거리는 헛간 문틈 사이로 눈부신 아침 햇살이 창창하게 쏟아져 들어오며 김 서방의 파리하고 지친 얼굴을 따스하게 간지럽혔습니다. 간밤에 텅 빈 마당 한가운데서 집채만 한 외눈박이 도깨비와 마주 앉아, 매향이가 목숨 걸고 가져온 그 독한 방문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대작을 벌였던 일이 마치 아득하고 기묘한 꿈결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눈을 뜨고 몽롱한 정신을 차리자마자, 뼛속까지 스며드는 서늘한 현실의 두려움이 목덜미를 휘감으며 엄습해 왔습니다. 비록 매향이가 몰래 가져온 것이라 하나, 기방 부엌에서 그 귀하디귀한 방문주 한 항아리와 잔치용으로 푹 삶아둔 통돼지 고기가 감쪽같이 사라졌으니, 날이 밝아 기방의 독사 같은 안주인과 억센 부엌 어멈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당장 관아에 도둑으로 고발하거나 하인들을 시켜 자신과 매향이를 멍석말이해 반죽음으로 만들어 놓을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입니다.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굶어 죽으나 흠씬 두들겨 맞아 죽으나 매한가지 아니더냐.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비참하게 죽어가느니, 어젯밤 그 괴물과 호탕하게 술 한잔 잘 마시고 매향이의 눈물겨운 사랑을 가슴에 품었으니 내 사내로서 그것으로 족하다. 죽이려면 죽여 보라지!'
김 서방은 체념한 듯 깊고 묵직한 한숨을 내쉬며, 밤새 찬 흙바닥에서 굳어버린 뻐근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려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무심코 고개를 돌리던 김 서방의 두 눈에, 헛간 저 안쪽 가장 어두운 구석에서 무언가 묵직하고 거대한 물건의 형체가 들어왔습니다. 어젯밤 자신이 밖으로 나갈 때까지만 해도 거미줄과 먼지만 뒹굴며 텅 비어있던 짚더미 위에, 성인 장정 세 명이 달라붙어도 다 안지 못할 만큼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방물지게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등골에 오싹한 소름이 돋으며 심상치 않은 낌새를 느낀 김 서방이 조심스레, 아주 천천히 숨을 죽이고 다가가 지게 위에 덮인 낡은 거적때기를 휙 들추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하마터면 고막이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질 뻔했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도무지 인간 세상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경이롭고 찬란했습니다. 낡은 지게 안에는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임금님 수라상에나 오를 법한 최고급 햅쌀이 가득 담긴 쌀섬이 켜켜이 쌓여 있었고, 그 쌀섬 위로는 아침 햇살을 받아 눈이 부시도록 찬란하게 오색 빛을 뿜어내는 금괴와 엽전 꾸러미, 그리고 어른 주먹만 한 영롱한 은덩이들이 그야말로 거대한 산더미처럼 수북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사이사이에는 중국 황실에서나 쓴다는 최고급 비단들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조화란 말이냐! 정녕 어젯밤 그 흉측한 외눈박이 도깨비가 내가 베푼 술 한 상의 은혜, 아니 매향이의 그 고귀한 정성에 감복하여 이 엄청난 보물로 은혜를 갚았단 말인가!"
김 서방은 사시나무 떨리듯 바들바들 떨리는 두 손으로 차갑고 묵직한 황금 덩어리를 집어 들고는 넋이 나간 듯 바라보다가, 이내 자신의 허벅지를 힘껏 꼬집어 보았습니다. 앗 따가워! 비명이 절로 나올 만큼 생생한 고통이 밀려왔습니다. 분명 꿈이 아닌 생시가 맞았습니다. 어젯밤, 죽음을 뻔히 각오하고 자신의 처지도 잊은 채 배짱 좋게 내어준 그 독한 술 한 상과 돼지고기에 깊이 감동한 도깨비가, 김 서방이 잠든 사이 밤새도록 깊은 산천과 숨겨진 보물창고를 이 잡듯 뒤져 이 엄청난 재물을 지게로 실어다 놓은 것이 분명했습니다. 순간 김 서방의 두 눈시울이 붉게 달아오르며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쉴 새 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세상인심이라는 것은 자신이 돈이 떨어지고 가난해지자마자 그토록 냉정하고 잔인하게 등을 돌렸건만, 오히려 흉측한 귀물인 도깨비가 얄팍한 사람보다 낫게 은혜를 잊지 않고 이토록 눈부신 보답을 해준 것입니다.
그는 벅차오르는 감동과 환희를 간신히 억누르며, 서둘러 헛간 바닥의 흙을 파내어 금은보화의 대부분을 깊숙이 묻고 볏짚으로 꼼꼼하게 위장해 숨겼습니다. 그리고는 엽전 수십 꾸러미와 은덩이 십여 개, 그리고 빛나는 금괴 하나를 자신의 낡은 두루마기 품속에 단단히 챙겨 넣고는, 헛간 문을 활짝 걷어차고 당당한 걸음걸이로 기방 안채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 나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기방 안채 마당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행수 기생이 매향이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마당 바닥에 내동댕이친 채, 독기 품은 눈으로 모진 매타작을 퍼붓고 있었습니다. 간밤에 방문주와 돼지고기가 사라진 것을 눈치챈 행수 기생이, 평소 김 서방을 연모하던 매향이를 도둑으로 지목하고 추궁하던 참이었습니다.
"이 요망한 년! 네년이 훔쳐서 그 알거지 거지새끼 헛간에다 가져다 바친 것을 내가 모를 줄 아느냐! 오늘 네년의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려 다시는 사내질을 못 하게 만들어 주마!"
매향이는 피멍이 든 얼굴로 눈물을 쏟으면서도 끝끝내 입을 꾹 다물고 김 서방을 보호하려 모진 매를 견디고 있었습니다. 그 참담하고 가슴 아픈 광경을 목격한 김 서방의 두 눈에서 시퍼런 불꽃이 튀었습니다. 그는 벼락같은 호통을 치며 마당 한가운데로 뛰어들었습니다.
"당장 그 더러운 손을 치우지 못할까! 간밤에 허기가 져서 부엌에 들어가 술과 고기를 훔쳐먹은 것은 바로 나다! 죗값을 치르려거든 나에게 치르거라!"
행수 기생과 하인들이 거지꼴을 한 김 서방의 당돌한 등장에 코웃음을 치며 몽둥이를 치켜드는 순간이었습니다. 김 서방은 품속에 숨겨두었던 엽전 꾸러미와 은덩이, 그리고 찬란하게 빛나는 금괴를 마당 바닥에 와르르 쏟아부으며 호탕하고 매섭게 껄껄 웃었습니다. 쨍그랑거리는 경쾌한 마찰음과 함께 쏟아진, 평생 만져보기도 힘든 엄청난 양의 돈다발과 영롱한 금은보화에 기방 안주인과 하인들은 턱이 빠질 듯 입을 떡 벌리고는 도무지 다물지를 못했습니다.
"자, 이 바닥에 널린 금덩이와 은덩이면 그깟 술값과 고깃값의 백 배, 아니 천 배는 족히 될 터이니 당장 잔말 말고 땅바닥에 기어 다니며 주는 돈이나 주워 담으시오! 그리고 여기 이 금괴는, 당장 우리 매향이의 기생 문서를 파기하고 속량시키는 몸값이니 지금 당장 문서를 가져와 내 눈앞에서 불태우시오! 엊그제까지 내 돈을 파먹고 기생충처럼 살던 것들이, 감히 내 여인에게 손을 대다니 용서치 않을 것이다!"
방금 전까지 살기를 띠며 몽둥이를 휘두르던 행수 기생은, 눈앞에 쏟아진 금괴의 영롱한 빛에 완전히 넋이 나간 채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에 간사한 웃음을 띠며 바닥에 납작 엎드려 돈을 주워 담기 바빴습니다. 김 서방은 피투성이가 된 매향이를 조심스럽게 품에 안아 일으켰습니다. 매향이는 김 서방의 품에 안겨 믿을 수 없는 이 기적 같은 현실에 하염없이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김 서방은 행수 기생이 벌벌 떨며 내어온 노비 문서를 직접 불태워버린 뒤, 그토록 자신을 멸시했던 기방 무리들을 향해 차가운 코웃음을 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랑하는 매향의 손을 굳게 잡은 채 기방 대문을 늠름하게 박차고 나섰습니다.
※ 5: 도깨비와의 은밀한 동업, 한양 상권을 장악한 부부의 찬란한 탄생
기방을 당당하게 빠져나온 김 서방과 매향이는 도깨비가 준 엄청난 재물을 밑천 삼아 한양 변두리에 작고 허름하지만 마당이 아주 널찍하고 고즈넉한 초가집 한 채를 구하여 소박한 살림을 꾸렸습니다. 으리으리한 기와집을 살 돈이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자신들에게 기적을 베풀어준 도깨비가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언제든 편히 찾아올 수 있도록 인적이 드문 한적한 곳을 택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부터 이 작은 초가집 마당에서는 매일같이 세상에서 가장 기적 같고 은밀하며 따뜻한 연회가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어김없이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리고 달이 중천에 떠오를 즈음이면, 초가집 뒷마당 한구석에서 쿵쿵거리는 육중하고 둔탁한 발소리와 함께 짙고 서늘한 안개가 스르르 피어오르며 그 거대한 외눈박이 도깨비가 찾아왔습니다. 도깨비의 어마어마하게 넓은 등에는 매일 밤 거대한 방물지게가 매달려 있었고, 그 안에는 어제보다 더 진귀하고 화려한 산호초와 호박, 눈이 시리도록 반짝이는 황금 두꺼비, 그리고 조선 팔도에서 긁어모은 최고급 산삼과 녹용들이 산더미처럼 실려 있었습니다.
김 서방과 매향 부부는 도깨비가 올 때마다 한양 바닥에서 구할 수 있는 제일가는 명주와, 매향이가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고 정성을 다해 요리한 산해진미를 마당 평상 위에 한 상 가득 차려놓았습니다. 부부는 두려움은커녕 마치 오랜만에 먼 길을 찾아온 친형제를 대하듯 반갑고 따뜻하게 그 흉측한 귀물을 맞이했습니다.
"어서 오시게, 우리의 평생 은인이자 가장 소중한 벗이여! 자, 오늘은 안사람이 자네를 위해 특별히 천 년 묵은 산삼을 달여 넣은 귀한 약주와, 입에서 살살 녹는 소갈비 찜을 준비했네. 먼 길 오느라 수고가 많았으니 어서 이리 편히 앉아 목부터 축이시게."
"서방님 말씀이 맞사옵니다. 도깨비 형님 덕분에 저희가 이리 부부의 연을 맺고 사람 구실을 하며 살게 되었으니, 이깟 음식 차리는 수고가 대수겠습니까. 많이 드시옵소서."
"크하하하! 역시 김 서방과 형수님밖에 없네그려! 내가 수백 년을 이 산 저 산 떠돌며 외롭게 살았으나, 인간 세상에 자네들 부부처럼 배짱 좋고 의리가 바위처럼 굳건하며 심성이 비단결 같은 자들은 머리털 나고 처음 보았어. 형수님의 이 음식 냄새만 맡아도 십 년 묵은 체증이 다 씻겨 내려가고 귀물의 한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로구나!"
세 사람은 인간이라는 신분과 귀물이라는 흉측한 껍데기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어버린 채, 밤이 새도록 잔을 부딪치며 호탕하게 웃고 떠들었습니다. 도깨비가 지게로 퍼다 나르는 재물은 날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거대하게 불어났고, 김 서방은 과거의 방탕했던 삶을 뼈저리게 반성하며 현명한 매향의 내조에 힘입어 이 막대한 밑천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상단을 꾸려 거대한 무역과 장사에 뛰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훗날 조선 팔도의 상권을 완전히 쥐락펴락하게 될 거대한 부의 서막이자 신화의 탄생이었습니다.
김 서방의 상단은 그가 손을 대는 족족 무서운 속도로 번창해 나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 그 어느 뛰어난 상인도 가질 수 없는 절대적이고 완벽한 정보통이자 조력자가 바로 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깨비는 전국 방방곡곡의 험한 산천과 바다를 눈 깜짝할 새에 축지법으로 넘나들며, 내년 봄에 어느 지방에 극심한 가뭄이 들어 쌀이 금값이 될 것인지, 혹은 어느 해안가에 폭풍우가 닥쳐 건어물이 귀해질 것인지, 심지어 어느 고을에 역병이 도는지 그 징조를 인간의 지혜로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통찰력으로 알아내어 매일 밤 김 서방의 귓가에 남몰래 속삭여 주었습니다.
"김 서방, 내 말을 잘 새겨들으시게. 올여름에는 저 남도 지방에 유례없는 거대한 장맛비가 한 달 내내 쏟아져 염전이 모두 뻘물에 잠기고 소금이 금보다 백 배는 더 귀해질 것이야. 그러니 지금 당장 자네의 모든 자금을 동원하여 서해안 일대의 소금을 모조리 싹쓸이하여 거대한 창고에 비축해 두게나."
도깨비의 기가 막힌 예언은 단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었습니다. 김 서방은 도깨비의 말을 맹신하고 상단의 자금을 총동원하여 서해안의 소금을 매점매석했고, 불과 석 달 뒤 남도 지방에 끔찍한 물난리가 닥쳐 소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어마어마한 시세 차익을 거둬들이며 단숨에 조선 최고의 거부 반열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김 서방과 매향 부부의 진가는 단순히 돈을 긁어모으는 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북쪽 평안도 지방에 최악의 흉년과 냉해가 들어 수만 명의 백성이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할 것을 도깨비를 통해 미리 알게 된 부부는, 전국에서 곡식을 대량으로 사들여 산더미처럼 비축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막상 기근이 닥쳐 쌀값이 폭등하자, 이익을 남기기는커녕 굶주리는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수십 개의 구휼소를 세우고 창고를 활짝 열어 시세보다 절반 이하의 헐값에, 때로는 굶어 죽어가는 빈민들에게 아예 공짜로 곡식을 무제한으로 풀어버렸습니다. 이 놀라운 선행과 자비 덕분에 부부는 엄청난 돈을 번 것은 물론이고, 온 나라 백성들의 찬사와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가장 의롭고 거룩한 상인 부부로 역사에 이름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과거 어리석게 주색잡기에 빠져 부모의 유산을 탕진했던 철없고 오만방자한 풍류객의 모습은 이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습니다. 한 번 뼛속 깊이 가난의 처절한 고통과 인간 세상의 냉혹한 인심을 뼈저리게 겪었던 김 서방과, 밑바닥 기생의 신분으로 눈물을 흘려야 했던 매향이는 귀물이 가져다준 이 기적 같은 횡재를 결코 자신들의 배만 불리는 데 헛되이 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과거에 진 빚을 모두 갚아주었고, 한양 바닥에서 오갈 데 없이 버려진 고아와 병든 노인들을 위한 거대한 요양소를 세워 매일 따뜻한 밥과 약을 내어주었습니다. 낮에는 수천 명의 상단 일꾼을 호령하며 대륙을 넘나드는 무역을 지휘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대행수 부부였지만, 밤이 되면 어김없이 조그만 초가집 앞마당에 옹기종기 쭈그려 앉아 흉측한 외눈박이 도깨비와 소박하게 막걸릿잔을 부딪치며 파안대소하는, 참으로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의리 있는 인간들이었습니다.
※ 6: 억겁의 인연으로 남은 귀물과의 작별, 그리고 대대손손 누린 부귀영화
어느새 강산이 변한다는 십 년이라는 긴 세월이 화살처럼 훌쩍 흘러갔습니다. 김 서방과 매향 부부는 이제 한양 한복판에 대궐처럼 으리으리한 기와집 수십 채와 끝이 보이지 않는 기름진 논밭을 거느린, 자타가 공인하는 조선 제일의 만석꾼 거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부부의 금슬이 어찌나 좋은지, 두 사람을 쏙 빼닮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영특하고 고운 자식들도 여럿 두며 세상 부러울 것 하나 없는 완벽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아무리 엄청난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어도 예전 도깨비와 처음 만났던 그 허름하고 낡은 변두리의 초가집만은 절대 허물거나 팔지 않고 고스란히 남겨두었으며, 밤이 이슥해지면 어김없이 일꾼들을 물리고 부부 단둘이 그곳 마당으로 발걸음을 옮겨 변함없이 도깨비를 위한 정성스러운 술상과 고기반찬을 차려놓고 그를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형님 덕분에 이 못난 놈이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하고, 사랑하는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을 안고 세상에 베풀며 살고 있네. 만약 그 끔찍하고 춥던 밤에 형님이 내 앞에 기적처럼 나타나 주지 않았다면, 난 진작에 그 차갑고 냄새나는 기방 헛간에서 뼈가 얼어붙어 비참하게 굶어 죽고 우리 매향이도 평생 기생년의 굴레를 벗지 못했을 터인데. 이 큰 은혜를 어찌 다 갚는단 말인가."
김 서방과 매향이가 마음 한구석에서 우러나오는 진심 어린 고마움을 표할 때마다, 덩치 큰 외눈박이 도깨비는 몹시 쑥스러운 듯 거친 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커다란 사발에 담긴 독주를 단숨에 비워내곤 했습니다.
"무슨 섭섭한 소리를 그리하는가! 나야말로 자네들 부부 덕분에 지난 십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승에서 그 어떤 하늘의 신선도 부럽지 않은 최고의 대접을 받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술맛을 보며 원 없이 즐겁게 지냈다네. 흉측하고 무서운 나를 보고도 피하지 않은 아우의 그 두둑한 배포와, 나 같은 미물에게조차 정성을 다해 따뜻한 밥을 지어준 형수님의 그 한결같이 변치 않는 의리가 나를 이 초가집으로 매일 밤 이끌었을 뿐이다. 내 장담하건대, 인간 중에는 자네들 부부가 제일가는 훌륭한 자들일세!"
도깨비는 김 서방 부부의 한없이 선하고 이타적인 심성을 곁에서 지켜보며 누구보다 깊이 꿰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밤새 땀 흘려 산천을 뒤져 가져다준 그 산더미 같은 엄청난 재물을, 두 사람은 단 한 번도 혼자서 탐욕스럽게 독식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보다 더 불쌍하고 가난한 헐벗은 인간들을 위해 조건 없이 창고를 열고 아낌없이 베푸는 그들의 거룩한 모습에서, 도깨비는 단순한 이물 간의 우정을 넘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벅찬 존경과 감동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 사이의 이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동업과 끈끈한 우정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절대 부서지지 않고 영원토록 계속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늦은 가을밤, 찬 서리가 마당 가득 하얗게 내려앉고 풀벌레 소리조차 얼어붙은 스산한 날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초가집 마당에 푸짐한 소갈비와 방문주 술상을 차려놓고 화로에 불을 쬐며 기다리던 부부의 눈앞에, 짙고 무거운 안개와 함께 도깨비가 스르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늘 멀리서부터 지축을 울리며 호탕하게 웃어젖히며 걸어오던 평소의 활기찬 모습과는 달리, 도깨비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무겁고 처져 있었으며, 거대한 외눈박이 눈동자에는 깊은 슬픔과 형언할 수 없는 쓸쓸함이 가득 배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매일같이 금은보화를 가득 싣고 부부에게 안겨주던 그 커다란 방물지게도 오늘따라 도깨비의 등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디 몸이라도 크게 상한 겐가? 아니면 오는 길에 몹쓸 산짐승이나 요물에게 무슨 험한 일이라도 당했는가? 자네 안색이 영 흙빛이라 내 마음이 다 덜컥 내려앉고 불안하네그려. 여보, 어서 따뜻한 술을 한 잔 따라 올리시오."
김 서방이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튕기듯 일어나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급하게 묻고 매향이가 황급히 술을 따르자, 도깨비는 가슴이 쿵 하고 무너지는 듯한 무겁고 깊은 한숨을 땅이 꺼지라 내쉬며 평상 위에 힘없이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김 서방, 그리고 매향 형수... 참으로 야속하고 가슴이 찢어지지만, 오늘 이 밤이 내가 자네들과 마주 앉아 부딪치는 생애 마지막 술잔이 될 것 같네. 오늘 아침, 하늘을 다스리는 옥황상제의 엄중한 명을 받아, 나는 이제 이 속세의 땅을 영영 떠나 저 멀리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구름 위 깊은 산속, 신선들의 세계로 들어가 수행을 해야만 한다는 어명을 받았다네. 오늘 밤의 달이 지고 내일 해가 뜨면, 나는 다시는 이 냄새나고 정든 인간 세상의 흙을 밟을 수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네들의 따뜻한 얼굴을 두 번 다시 볼 수도 없는 몸이 되어버린다네."
너무도 갑작스럽고 청천벽력 같은 이별 통보에, 김 서방과 매향이는 묵직한 무쇠 망치로 정수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 그 자리에 멍하니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지난 십 년 동안 자신들의 캄캄했던 인생을 찬란하게 구원해 준 가장 든든한 은인이자 조력자, 그리고 세상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깊은 속마음까지 모두 나눌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진정한 벗을 영원히 잃는다는 생각에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 먹먹해졌습니다. 김 서방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고, 매향이는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오열하며 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이보게, 귀물 형님... 아니, 나의 영원한 핏줄이자 벗이여! 자네가 이리 훌쩍 먼 곳으로 떠나버리면 난 이제 이 적적한 밤에 대체 누구와 마주 앉아 이 좋은 술의 향기를 나누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한단 말인가! 그동안 자네에게 받은 이 바다보다 넓고 태산보다 높은 은혜의 만 분의 일도 채 갚지를 못했는데, 어찌 이리 매정하고 홀연히 우리 부부의 곁을 떠난단 말인가! 옥황상제께 내 재산을 다 바쳐서라도 자네를 붙잡고 싶네!"
김 서방의 처절한 오열과 매향이의 눈물에, 그 거칠고 무뚝뚝하던 외눈박이 도깨비 역시 커다란 핏발 선 눈에서 닭똥보다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거대한 두 팔로 두 사람의 가냘픈 어깨를 으스러져라 꽉 감싸 안았습니다. 도깨비의 뜨거운 눈물이 부부의 어깨를 적셨습니다.
"울지 말게, 나의 사랑하는 아우 김 서방, 그리고 형수님. 자네들은 이미 나에게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주보다 큰 충분한 은혜를 다 갚아주었네. 본래 귀물이란 이승을 떠도는 악업이 쌓인 존재이거늘, 내가 자네들에게 가져다준 그 재물에 욕심을 내지 않고 수만 명의 백성을 배불리 먹이고 하늘에 닿을 만큼 거룩한 덕을 쌓았으니, 그것이 곧 귀물인 나의 더러운 업보를 깨끗이 씻어주고 나를 영광스러운 신선계로 이끌어준 가장 큰 보답이자 기적이었어. 비록 이제 몸은 서로 멀리 떨어져 죽는 날까지 다시는 볼 수 없게 되겠지만, 형수님이 정성껏 지어주신 고기반찬과 자네가 밤마다 정성껏 따라주던 그 지독하게 달콤했던 방문주의 맛, 그리고 나를 대하던 그 따뜻하고 편견 없던 두 사람의 마음씨는 내 억겁의 세월을 영원히 살아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네."
도깨비는 마지막으로 매향이가 떨리는 손으로 가득 따라주는 독주를 눈물과 함께 단숨에 들이켜고는, 거칠고 커다란 손으로 김 서방과 매향 부부의 두 손을 꼭 쥐어주며 간절한 축복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앞으로도 부디 지금처럼 서로 사랑하고, 정직하게 땀 흘리며, 헐벗고 굶주린 이웃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의로운 삶을 살아가게나. 너희들의 그 착한 심성에 하늘이 기뻐하여 돕고 땅의 맑은 기운이 항상 보살필 것이니, 자네 부부와 자네들의 후손들은 대대손손 흉년의 고통을 모르고 만세토록 부귀영화를 떵떵거리며 누릴 것이야. 내 비록 몸은 구름 위 신선계에 있으나, 매일 밤 부디 멀리서라도 자네 가문의 영원한 안녕과 평안을 빌어주겠네. 나의 진정한 벗들이여, 부디 안녕히 계시게!"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도깨비의 거대한 형체는 밤바람에 흩날리는 짙은 가을 안개 속으로 스르르 투명하게 부서지며 서서히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습니다. 김 서방과 매향이는 멀어져 가는, 아니 영원히 사라져 신선이 되어 올라가는 도깨비의 흔적을 향해 차가운 마당 흙바닥에 엎드려 목을 놓아 엉엉 울며 수없이 큰절을 올렸습니다.
"고맙네! 정말 고마웠네, 나의 형님이자 벗이여! 부디 그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평안하시게! 형님의 은혜, 죽어서도 잊지 않겠소이다!"
텅 빈 초가집 마당에는 스산한 가을바람과 함께 귀뚜라미 소리만 처량하게 울려 퍼졌지만, 부부의 가슴속에는 흉측한 외눈박이 도깨비와 함께 울고 웃으며 진심을 나누었던 지난 십 년의 그 눈부시고 따뜻했던 추억이, 이 세상 그 어떤 찬란한 금은보화보다 값진 영원한 노다지가 되어 핏속 깊이 새겨졌습니다. 이후 김 서방과 매향 부부는 도깨비가 남긴 마지막 당부대로 평생을 변함없이 가난한 이웃을 친자식처럼 보살피고 나라에 헌신하며 베푸는 삶을 살았고, 그들의 가문은 조선 팔도에서 가장 덕망 높고 존경받는 위대한 명문가로 수백 년간 끊임없이 번창했다고 전해집니다. 삶의 가장 어두운 절망의 끝에서 용기 내어 지켜낸 한 여인의 사랑과, 귀물에게 베푼 따뜻한 술 한 잔이 사람과 요괴의 경계를 허물고 기적 같은 인연을 만들어낸, 참으로 가슴 벅차고 통쾌한 횡재의 기록이었습니다.
엔딩 멘트
오늘 밤 여러분 곁으로 찾아간 김 서방 부부와 외눈박이 도깨비의 기막히고도 가슴 뭉클한 동업 이야기, 어떠셨나요? 벼랑 끝에 몰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비참한 순간에도, 서로를 향한 사랑을 지켜내고 흉측한 귀물에게조차 선뜻 베푼 작은 온정이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나아가 세상을 구원하는 엄청난 노다지가 되었습니다. 우리 옛이야기 속 조상들이 늘 강조하던 이 따뜻한 깨달음처럼, 결국 편견 없이 베푸는 여러분의 고운 심성과 넉넉한 마음 씀씀이가 훗날 상상할 수 없는 가장 큰 행운으로 되돌아올 것입니다. 오늘 밤도 방물지게 가득 금은보화가 쏟아지는 기분 좋은 길몽 꾸시길 바라며, 내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우리 구독자님들의 일상에도 도깨비의 선물 같은 눈부신 행운이 넝쿨째 굴러들어오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편안하고 포근한 밤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