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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죽었는데 아이를 낳았다 , 문중이 멍석말이를 하려던 날 『흠흠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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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남편이 죽은 지 열 달이 훌쩍 넘었는데 핏덩이를 낳다니! 이 부정한 계집을 당장 멍석에 말아 흠씬 두들겨 내쫓아라!" 가문의 수치라며 분노하는 문중 어른들, 그리고 과부의 재산을 차지하려 비열한 미소를 짓는 시동생.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남편의 핏줄이라 피를 토하듯 울부짖는 가련한 청상과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그녀는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 있을까요? 정약용의 『흠흠신서』에 기록된 기막힌 명판결이 지금 시작됩니다.
※ 1: 불행의 서막과 남겨진 씨앗
봄꽃이 만발하여 온 동네에 짙은 매화 향기가 흩날리던 어느 따스한 봄날, 이 고을에서 가장 금슬이 좋기로 소문난 젊은 부부의 안방에는 묘하고도 애틋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지역에서 제법 이름난 명문가의 장손이었던 남편 명환과, 그가 십 리 밖 이웃 마을에서 첫눈에 반해 데려온 아름다운 아내 연희였습니다. 두 사람은 혼인한 지 삼 년이 다 되어가도록 아직 슬하에 아이가 없었으나,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만큼은 갓 혼례를 올린 새신랑 새신부처럼 언제나 뜨겁고 애틋했습니다.
유난히도 달빛이 밝았던 그날 밤, 명환은 한양으로 며칠간 먼 길을 떠나야 하는 일정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안방의 촛불이 일렁이는 가운데, 연희는 남편의 먼 길을 걱정하며 정성스레 그의 짐을 꾸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내의 고운 뒷모습을 한참이나 말없이 바라보던 명환이 조용히 다가가 연희의 가는 허리를 뒤에서 부드럽게 끌어안았습니다.
"부인, 내 며칠 집을 비울 생각에 벌써부터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소. 꽃다운 부인을 홀로 두고 어찌 먼 길을 가란 말이오."
"서방님도 참, 고작 며칠이옵니다. 제가 이리 곁에 있는데 어찌 그리 아쉬운 소리를 하십니까. 부디 몸성히 다녀오시옵소서."
연희가 수줍게 웃으며 남편의 품에 기대자, 명환은 그녀의 하얀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으며 깊은 숨을 들이마셨습니다. 두 사람의 체온이 겹쳐지며 방 안의 공기는 순식간에 농밀하고 뜨거워졌습니다. 명환의 크고 따뜻한 손이 연희의 저고리 고름을 조심스럽게 풀어내렸고, 비단옷이 사르르 흘러내리며 달빛 아래 뽀얀 속살이 드러났습니다.
"오늘 밤은 내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마시오. 내 부인의 향기를 뼛속까지 새겨두고 갈 터이니."
명환의 다정하면서도 맹렬한 입맞춤이 연희의 이마에서부터 붉은 입술로, 그리고 가녀린 어깨선으로 이어졌습니다. 연희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남편의 넓은 등에 팔을 두르고, 터질 듯한 심장 박동을 느끼며 그가 이끄는 사랑의 열기에 온몸을 맡겼습니다. 두 사람의 뜨거운 숨결과 애달픈 신음이 깊은 밤의 적막을 채우며, 그렇게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아름답고도 치명적인 밤이 깊어갔습니다. 그것이 두 사람이 이승에서 나눈 마지막 사랑이 될 줄은, 꿈에도 알지 못한 채 말입니다.
다음 날 아침, 짐을 꾸려 집을 나섰던 명환은 고개를 넘기도 전에 갑작스러운 고열과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급성 괴질이었습니다. 연락을 받고 연희가 맨발로 뛰어나갔을 때, 명환은 이미 숨을 헐떡이며 피를 토하고 있었습니다.
"서방님! 서방님, 눈을 떠보시옵소서! 어찌, 어찌 이러십니까!"
연희가 피 묻은 남편의 저고리를 부여잡고 오열했지만, 명환은 힘겹게 연희의 손을 한 번 움켜쥐고는 그대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너무나도 허망하고 기구한 이별이었습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뜨겁게 자신을 품에 안았던 지아비가 차디찬 시신이 되어 돌아오자, 연희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에 그 자리에서 혼절하고 말았습니다. 붉은 연지를 바르던 아름다운 새댁은 하루아침에 하얀 소복을 입은 청상과부가 되어버렸고, 넓은 기와집에는 그녀의 처절한 곡소리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식음을 전폐하던 연희에게, 한 줄기 실낱같은 희망이자 충격적인 변화가 찾아온 것은 그로부터 두어 달이 지난 후였습니다. 달거리가 끊기고 자꾸만 헛구역질이 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의원을 불러 진맥을 해본 결과, 연희의 뱃속에는 새 생명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죽기 전날 밤, 그토록 뜨겁게 나누었던 사랑이 남긴 소중한 핏줄이었습니다.
"아아... 서방님, 우리에게 아이가 생겼습니다. 서방님께서 제게 마지막으로 남겨주신 귀한 씨앗입니다.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 아이를 무사히 세상에 내놓겠습니다."
연희는 남편의 위패 앞에서 배를 감싸 안으며 굵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슬픔 속에서도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강한 모성애가 그녀를 다시 살아가게 했습니다. 하지만 하늘은 가련한 과부에게 평탄한 길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열 달이 다 되어가는데도 연희의 배는 부풀어 오를 줄만 알았지, 도무지 아이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죽은 지 어느덧 열 달을 꽉 채우고, 열한 달째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동네 우물가에서는 슬슬 여인들의 흉흉한 입방아가 오르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문 들었어? 최 진사 댁 젊은 과부 말이야. 남편 상을 치른 지가 언젠데 아직도 배가 산 만해서 아이를 안 낳았단다."
"어머나, 세상에! 그럼 그게 명환 도령의 핏줄이 아닐 수도 있단 말이야?"
"내 말이! 아무리 늦어도 열 달이면 애가 나오는 법인데, 열한 달이 넘도록 소식이 없다는 건 남편 죽고 나서 딴 사내와 눈이 맞아 생긴 애가 틀림없지! 얼굴이 반반할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근거 없는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눈덩이처럼 불어나, 마침내 명환의 집안과 문중 어른들의 귀에까지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고요하던 명문가에 거대한 파멸의 먹구름이 서서히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 2: 탐욕스러운 시동생과 문중의 심판
남편 명환이 세상을 떠난 지 정확히 열한 달하고도 보름이 지나던 늦은 밤. 연희는 마침내 살이 찢어지는 듯한 끔찍한 산통 끝에 건강한 사내아이를 출산했습니다. 방 안을 가득 채우는 우렁찬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땀범벅이 된 연희는 기쁨과 안도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남편을 꼭 빼닮은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아이였습니다.
'서방님, 보십니까. 우리의 아이입니다. 제가 드디어 아이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핏덩이를 안고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시, 바깥의 분위기는 얼음장처럼 차갑고 험악했습니다. 아기가 태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지기가 무섭게, 시동생인 명호가 앞장서서 문중의 어르신들을 모조리 이끌고 연희의 집 마당으로 들이닥친 것입니다.
시동생 명호는 평소 형 명환에게 가려져 늘 찬밥 신세였고, 형이 죽은 후에는 형수 연희가 가문의 방대한 재산을 관리하는 것에 대해 깊은 불만과 탐욕을 품고 있던 자였습니다. 형이 자식 없이 죽었으니 당연히 그 재산이 자신의 차지가 될 것이라 믿었는데, 형수가 임신을 하는 바람에 다 잡은 고기를 놓칠 위기에 처했던 것이지요. 그러던 차에 형수가 열 달을 훌쩍 넘겨 아이를 낳았으니, 명호에게는 형수를 집안에서 내쫓고 재산을 독차지할 완벽한 구실이 생긴 셈이었습니다.
"당장 저 부정한 계집을 끌어내라!"
명호의 앙칼진 호령에 억센 하인들이 산후조리도 제대로 하지 못해 피를 흘리는 연희의 방으로 들이닥쳤습니다. 하인들은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벌벌 떠는 연희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무자비하게 마당으로 질질 끌어냈습니다.
"아아악! 이 무슨 짓입니까! 갓 태어난 아이가 깹니다! 제발 놔주세요!"
마당에는 수십 명의 문중 어르신들이 횃불을 들고 험악한 표정으로 서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는 섬뜩하게도 두껍고 거친 멍석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 간통을 저지른 부녀자를 멍석에 말아 죽을 때까지 두들겨 패는 사적 제재, 이른바 '멍석말이'를 준비한 것입니다.
시동생 명호가 뒷짐을 지고 비릿한 조소를 흘리며 연희 앞에 섰습니다.
"가문의 먹칠을 한 요망한 계집! 네 년이 형님이 돌아가신 후 밤마다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웬 잡놈과 배를 맞추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감히 그 부정한 핏덩이를 우리 형님의 자식이라 속이려 들다니! 뻔뻔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도련님! 그게 무슨 억울한 말씀이십니까! 이 아이는 틀림없는 서방님의 핏줄입니다!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생긴 귀한 자식이란 말입니다!"
연희가 흙바닥에 엎드려 눈물로 호소했지만, 명호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거짓말 마라! 세상 천지에 열한 달하고도 보름이 지나서 태어나는 유복자가 어디 있단 말이냐! 보통은 아홉 달, 늦어도 열 달이면 나오는 것이 순리거늘! 넌 형님이 돌아가시고 두 달쯤 지났을 때간부를 끌어들여 사생아를 밴 것이 틀림없다!"
가장 나이가 많은 문중 어르신이 지팡이로 바닥을 내리치며 호통을 쳤습니다.
"명호의 말이 맞다. 가문의 법도를 어기고 외간 남자와 놀아난 더러운 계집을 당장 저 멍석에 말아 뼈가 부러지도록 쳐라! 그리고 저 근본도 모르는 핏덩이는 당장 강물에 내다 버려라!"
"안 됩니다! 차라리 저를 죽이십시오! 이 아이는 제 목숨과도 같은 서방님의 씨앗입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진실입니다!"
연희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갓난아이를 온몸으로 감싸 안았습니다. 하인들이 연희의 등에서 아이를 강제로 뺏으려 하자, 그녀는 손톱에 피가 나도록 흙을 파고들며 처절하게 저항했습니다. 그 모습을 차갑게 지켜보던 명호의 머릿속에 더 악랄한 계산이 섰습니다.
'지금 이대로 멍석말이로 저 계집을 쳐죽이면, 자칫 관아에 살인죄로 꼬투리가 잡혀 내게 화가 미칠 수도 있다. 차라리 관아에 고발하여 사또의 입으로 저 계집을 간통죄로 다스리게 하면, 형님의 재산은 완벽하게 내 것이 되고 내 손에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게 되지.'
명호는 다급히 손을 들어 하인들을 말렸습니다.
"어르신들, 잠시 고정하시지요. 우리가 사사로이 벌을 내리면 뒷말이 나올 수 있습니다. 차라리 저 부정한 계집을 관아로 끌고 가, 사또 나리 앞에서 죄를 명백히 밝히고 관법으로 엄히 다스리는 것이 우리 가문의 명예를 흠집 없이 지키는 길일 것입니다."
어르신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명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갓 해산을 마쳐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연희는 거친 포승줄에 꽁꽁 묶인 채, 아이를 안고 눈물범벅이 되어 관아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밤하늘의 달조차 구름 뒤로 숨어버린, 처절하고도 잔혹한 밤이었습니다.
※ 3: 관아로 끌려간 과부와 숨겨진 의도
다음 날 아침, 고을 관아의 동헌 마당은 이른 아침부터 모여든 구경꾼들로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명문가의 청상과부가 간통을 저질러 사생아를 낳았다는 자극적인 소문은 온 고을을 들썩이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헝클어진 머리에 피가 묻은 소복을 입은 연희가 갓난아이를 품에 꽉 안은 채 무릎을 꿇고 있었고, 그 옆에는 시동생 명호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동헌 마루에는 이 고을에 새로 부임한 명관, 사또가 위엄 있는 자태로 앉아 있었습니다. 사또는 평소 백성들의 억울함을 귀신같이 풀어내고, 권세가들의 횡포를 엄히 다스리기로 소문난 지혜롭고 공정한 인물이었습니다. 사또의 날카로운 시선이 마당에 엎드린 연희와 시동생 명호를 번갈아 살폈습니다.
"그래, 고발인 명호는 들으라. 네 형수가 외간 남자와 간통하여 사생아를 낳았다고 고발하였는데, 그 증거가 대체 무엇이냐?"
명호가 과장되게 슬픈 표정을 지으며 엎드려 절을 올렸습니다.
"사또 나리! 가문의 수치를 제 입으로 고하려니 피눈물이 납니다. 제 형님이 급살을 맞아 돌아가신 날짜가 작년 3월 초사흗날이옵니다. 하오나 저 부정한 형수가 아이를 낳은 것은 어제 밤인 2월 열여드레입니다. 무려 열한 달하고도 보름이 넘는 시간이옵니다! 옛 성현의 의서에도 여인이 열 달을 넘어 아이를 품는 법은 없다고 하였거늘, 어찌 저 핏덩이가 제 형님의 씨앗일 수 있겠습니까! 필시 형님이 돌아가신 후 두어 달이 지났을 무렵, 외로움을 타다 이름 모를 사내놈과 눈이 맞아 밴 사생아가 틀림없사옵니다! 부디 저 음탕한 계집을 엄히 벌하시어 가문의 기강을 바로잡아 주시옵소서!"
명호의 목소리에는 승리를 확신하는 오만함이 묻어 있었습니다. 구경꾼들 사이에서도 "열한 달이 넘었다니, 말도 안 되지", "틀림없는 간통이다"라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커졌습니다.
사또는 턱수염을 쓸어내리며 연희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과부는 들으라. 시동생의 말이 사실이냐? 네가 정녕 지아비의 상을 치르는 와중에 외간 사내를 끌어들여 부정한 짓을 저질렀단 말이냐?"
연희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땅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피 끓는 목소리로 절규했습니다.
"억울하옵니다, 사또 나리! 천지신명께 맹세코 소인은 지아비 외에 단 한 번도 다른 사내의 손길을 탄 적이 없사옵니다! 이 아이는 틀림없이 작년 봄, 서방님이 한양으로 떠나시기 전날 밤에 제 몸에 깃든 귀한 핏줄이옵니다. 어찌하여 제 뱃속의 아이가 남들보다 이리도 늦게 세상에 나왔는지는 저도 알 길이 없사오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사옵니다! 부디 이 가련한 어미와 갓난아이의 목숨을 살려주시옵소서!"
연희의 절절한 눈물과 한 맺힌 절규는 듣는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할 정도로 진실해 보였습니다. 사또는 눈을 가늘게 뜨고 시동생 명호를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명호는 입으로는 가문의 명예와 슬픔을 운운하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 속에는 형수를 내쫓고 재산을 차지하려는 탐욕과 초조함이 뱀처럼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또한, 통상적인 산모라면 죄를 지었더라도 해산한 지 하루도 안 된 몸으로 이토록 강하게 아이를 지키려 하는 모성애가 심상치 않다고 여겼습니다.
'달수가 길다고 하여 무조건 간통이라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옛 의서나 기이한 판례들을 보면 드물게 열한 달, 심지어 열두 달 만에 아이를 낳았다는 기록도 심심치 않게 존재하지. 게다가 저 시동생 놈의 눈빛이 지나치게 탁하고 탐욕스럽구나. 이 사건의 이면에는 필시 끔찍한 음모가 숨어 있을 것이다.'
사또는 이내 엄숙한 목소리로 명을 내렸습니다.
"이방은 들으라! 당장 고을에서 가장 경험이 많고 입이 무거운 늙은 산파와, 의술에 통달한 관아의 의녀를 은밀히 대령하라! 내가 직접 저 과부의 몸 상태와 아이의 달수를 면밀히 검증할 것이다. 검증이 끝날 때까지 판결을 보류할 것이니, 과부를 당장 안채의 따뜻한 방으로 모시고 미역국을 먹여 산후조리를 돕도록 하라!"
"사, 사또 나리! 이리 명백한 간통 사건을 어찌 미루신단 말씀이십니까!"
명호가 당황하여 소리를 쳤지만, 사또는 벼락같이 호통을 쳤습니다.
"시끄럽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을 어찌 섣부른 짐작만으로 심판한단 말이냐! 만약 네 고발이 거짓이고 재산을 노린 음모라면, 네 놈의 목숨 또한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사또의 서슬 퍼런 호통에 명호는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처럼 한숨을 돌린 연희는 사또를 향해 눈물을 흘리며 거듭 절을 올렸습니다. 관아의 안채로 향하는 연희의 품 안에서, 갓난아이는 새근새근 평온한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었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벗기 위한 명탐정 사또의 치밀하고도 은밀한 조사가 막 막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 4: 노련한 산파와 의녀가 밝혀낸 신체의 비밀
관아 안채의 가장 깊숙하고 외진 곳에 자리한 온돌방. 갓 해산한 산모를 배려하여 아궁이에 장작을 넉넉히 때어둔 덕분에 방 안은 후끈한 열기가 감돌았고, 소반 위에 놓인 따뜻한 미역국에서는 구수하고 은은한 냄새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멍석말이의 공포에 떨었던 연희는, 사또의 배려 덕분에 비로소 깨끗한 이불을 덮고 지친 몸을 뉘일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곁에는 험난한 고비를 넘기고 세상의 빛을 본 갓난아이가 새근새근 평온한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연희의 마음은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는 듯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시동생 명호가 짜놓은 간통이라는 무서운 그물에서 과연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지, 혹여라도 사또가 명호의 달변에 넘어가 자신과 아이를 죽음으로 내몰지는 않을지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그때, 굳게 닫혀 있던 방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며 두 명의 여인이 방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한 명은 고을에서 사십 년이 넘도록 수천 명의 아이를 받아온 백발이 성성한 노련한 산파였고, 다른 한 명은 의술에 정통하여 관아의 크고 작은 병을 도맡아 보는 중년의 의녀였습니다. 사또의 엄중한 밀명을 받고 연희의 몸 상태와 아이의 달수를 정확히 검증하기 위해 은밀히 파견된 참이었습니다.
"과부댁, 사또 나리의 어명으로 산모와 아이의 상태를 세밀히 살피러 왔으니 너무 두려워 마시고 마음을 편히 가지시지요. 진실은 반드시 몸에 흔적을 남기는 법이니, 우리가 억울함을 풀어줄 실마리를 찾아보겠습니다."
의녀의 다정하고 따뜻한 목소리에 연희는 왈칵 눈물을 쏟으며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산파와 의녀는 혹여라도 바깥에 새어나갈 소음을 막기 위해 문단속을 철저히 하고, 방 안을 밝히던 촛불을 환하게 끌어당긴 뒤 본격적인 진찰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의녀가 연희의 가녀린 손목을 잡아 세밀하게 진맥을 짚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동안 눈을 감고 맥의 흐름을 읽던 의녀의 미간에 옅은 주름이 잡혔습니다. 이어서 산파가 능숙하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연희의 복부를 만져보고, 산도와 골반의 이완 상태, 그리고 해산 후 배출되는 하혈(오로)의 색과 양을 꼼꼼하게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방 안에는 산파의 거친 숨소리와 옷자락 스치는 소리만이 가득할 뿐, 무거운 정적이 흘렀습니다. 진찰이 길어질수록 산파와 의녀는 수시로 의미심장한 시선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갸웃거렸습니다.
"의녀님, 이것 참으로 기이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제 평생 온갖 산모의 몸을 들여다보고 숱한 핏덩이들을 받아보았지만, 이 과부댁의 몸은 일반적인 갓 해산한 산모들의 상태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산파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혀를 내두르자, 의녀 역시 무겁게 동의하며 말을 이었습니다.
"제 소견도 산파님의 생각과 다르지 않습니다. 통상적으로 열 달을 채우고 해산한 산모들은 자궁이 급격히 수축하면서 붉고 탁한 오로를 다량 배출하기 마련입니다. 허나 이 과부댁은 그 양이 턱없이 적을뿐더러 색이 맑고 연합니다. 게다가 복부의 탄력 저하 상태나 뼈마디가 벌어진 정도를 보아하니, 뱃속에 아이를 품고 그 무게를 지탱했던 기간이 일반적인 산모들보다 훨씬 길고 고통스러웠던 것이 분명합니다. 이는 결코 평범한 열 달 산모의 몸이 아닙니다."
진맥과 산모의 상태 확인을 마친 두 사람은 이내 갓난아이가 누워있는 푹신한 포대기 쪽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잠든 아이를 조심스럽게 안아 든 산파가 묵직한 무게감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의녀는 아이의 작고 붉은 얼굴부터 탯줄이 잘린 배꼽, 굳게 쥔 주먹과 발가락의 주름까지 돋보기를 들이대듯 세밀하게 들여다보았습니다.
"세상에... 산파님, 이 아이의 정수리와 골격을 보십시오. 갓 세상에 나온 핏덩이라고 하기에는 머리뼈가 지나치게 단단하게 여물어 있고, 배냇머리라고 하기엔 머리털의 숱이 빽빽하고 숯처럼 검습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갓난아이의 피부를 덮고 있어야 할 끈적한 태지가 거의 남아있지 않고 피부가 건조하게 벗겨져 있습니다. 손톱과 발톱도 손가락 끝을 넘어설 정도로 길게 자라나 있지요. 이는 아이가 모태 안에서 통상적인 기한을 훨씬 넘겨 아주 오랫동안 웅크린 채 자랐다는, 의학적으로 거부할 수 없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의녀의 확고한 설명에 산파도 무릎을 치며 맞장구를 쳤습니다.
"맞습니다, 맞고요! 제가 아까 이 아이를 씻길 때부터 그 범상치 않은 묵직함과 또렷한 이목구비에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더랬지요. 사또 나리께서 예리하게 짐작하신 대로, 이 과부댁은 결코 열 달 만에 사생아를 낳은 부정한 계집이 아닙니다. 이 아이의 발육 상태와 산모의 흔적을 종합해 볼 때, 족히 열한 달, 아니 열두 달 가까이 아이를 몸속에 품고 지켜냈던 것이 확실합니다. 옛 의서에 이르기를 산모가 극심한 슬픔과 충격에 빠지면 기혈이 뭉쳐 태아의 성장이 멈추고 출산이 늦어진다 하였거늘, 이 과부댁은 지아비를 잃은 참담한 슬픔 탓에 아이가 세상에 나오는 것이 그토록 늦어졌던 것입니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던 끔찍한 의심의 눈초리를 의학적인 근거로 완벽하게 씻어내 주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연희는 참았던 울음을 짐승처럼 터뜨리며 이불보에 얼굴을 묻었습니다.
"흐흑...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 아이는 한 점 부끄럼 없는 맑고 귀한 서방님의 핏줄입니다. 서방님이 그토록 허망하게 돌아가시던 날, 제 심장도 함께 멎어버렸고 뱃속의 아이도 세상으로 나오기를 두려워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매일 밤낮으로 뱃속의 아이에게 아비의 억울한 죽음을 이야기하며 눈물로 밤을 지새웠으니, 아이인들 어찌 제때 빛을 보고 싶었겠습니까. 부디, 부디 사또 나리께 가련한 이 어미의 결백을, 이 기적 같은 진실을 낱낱이 전해주시옵소서!"
연희의 애끓는 모정과 억울한 절규에 산파와 의녀 역시 코끝이 붉어지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의녀는 연희의 떨리는 두 손을 따뜻하게 맞잡아 주며 굳은 목소리로 위로했습니다.
"염려 마시오. 우리 두 사람 모두 의술을 다루는 자의 막중한 양심과 명예를 걸고, 사또 나리께 우리가 보고 만지고 느낀 진실을 단 한 치의 거짓이나 보탬 없이 낱낱이 고할 것입니다. 당신은 천벌을 받을 부정한 계집이 아니라, 하늘이 내린 핏줄을 그 모진 고통 속에서도 꿋꿋하게 지켜낸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위대한 어미요."
산파와 의녀는 연희를 안심시킨 뒤 관아의 동헌으로 돌아가, 사또에게 자신들이 확인한 모든 사실을 아주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보고했습니다. 아이의 골격, 태지의 유무, 산모의 오로 상태 등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증거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두 사람의 확고부동한 증언을 묵묵히 듣고 있던 사또는 번쩍이는 눈빛으로 무릎을 탁 쳤습니다.
"과연... 내 예리한 짐작이 한 치도 틀리지 않았구나! 하늘이 무심치 아니하여 가련한 과부의 억울함을 완벽하게 풀어줄 명백한 단서를 우리에게 주셨다. 열한 달이 넘는 인고의 시간 동안 아이를 지켜낸 어미를 멍석에 말아 죽이려 하다니, 천인공노할 짓이다! 이제 남은 것은 저 가증스럽고 탐욕스러운 시동생 놈의 두꺼운 가면을 백성들 앞에서 철저히 벗겨내고, 그 끔찍한 죗값을 뼈저리게 치르게 하는 일뿐이다."
사또의 얼굴에 벼락같은 위엄과 번뜩이는 지혜가 스쳤습니다. 그는 즉시 충직한 이방을 가까이 불러들여, 은밀하고도 치밀한 다음 수사 계획을 하달했습니다. 탐욕에 눈이 멀어 짐승의 길을 선택한 자가 스스로 제 무덤을 파고 파멸하게 만들 기막힌 함정이, 고요한 밤의 관아 동헌 마당에 서서히, 그러나 아주 견고하게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 5: 거짓을 낱낱이 파헤치는 사또의 함정
다음 날 아침, 밤새 고을을 휘감았던 스산한 바람이 걷히고 맑은 해가 떠올랐지만, 관아의 동헌 마당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고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명문가의 청상과부가 시동생에게 간통죄로 고발당해 멍석말이를 당할 뻔했다는 자극적인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가, 판결을 지켜보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몰려든 구경꾼들로 관아 마당은 발 디딜 틈조차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과부의 부도덕함을 욕하거나 시동생의 잔인함을 비난하며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여전히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서 있는 시동생 명호가 있었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이미 승리를 확신하는 듯한 오만하고 비열한 미소가 만연했고, 형수의 재산이 모두 자신의 차지가 될 것이라는 달콤한 상상에 취해 연신 헛기침을 해대고 있었습니다. 반면 연희는 여전히 창백하고 파리한 얼굴로 갓난아이를 품에 꽉 안은 채,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불안한 눈빛으로 땅만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관아의 무거운 북소리가 세 번 울려 퍼지고, 근엄하고 위압적인 발걸음으로 사또가 동헌 마루에 올랐습니다. 사또가 호랑이 같은 형형한 눈빛으로 마당을 한 번 훑어보자, 왁자지껄 떠들던 수백 명의 백성들은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쥐죽은 듯 고요해졌습니다.
"고발인 명호는 똑똑히 들으라! 네가 어제 너의 형수를 외간 남자와 간통한 더러운 죄인으로 고발하였는데, 그 유일한 근거와 증거는 오직 아이가 지아비 사후 열 달을 넘겨 태어났다는 달수 하나뿐이었다. 허나, 본관이 어제 밤 관아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의녀와 경험 많은 산파를 시켜 과부의 몸과 아이의 발육 상태를 세밀하고 철저하게 진찰하도록 명하였다. 그 결과!"
사또는 일부러 말을 멈추고 명호의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했습니다. 명호의 눈가에 미세한 경련이 일어났습니다.
"아이의 골격과 피부 상태, 그리고 산모의 산후 흔적들을 종합해 본바, 저 과부가 아이를 열 달 이상, 족히 열한 달이 넘도록 복중에 품고 있었음이 의학적이고 객관적인 증거로 명백히 입증되었다! 즉, 저 아이는 지아비가 떠나기 전 잉태된 혈육이 분명하며, 과부는 결백하다는 뜻이다!"
사또의 벼락같은 선언이 떨어지자, 명호의 거만했던 얼굴은 순식간에 핏기가 가시며 흙빛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는 다급히 바닥에 엎드리며 침을 튀기며 악을 썼습니다.
"사, 사또 나리! 그게 대체 무슨 해괴망측한 말씀이십니까! 세상 천지에, 아니 수천 년 역사상 어찌 여인이 열 달을 넘어 열한 달씩이나 복중에 아이를 가질 수 있단 말입니까! 그것은 필시 저 요망한 계집이 은밀히 재물을 먹여 관아의 돌팔이 의녀와 늙다리 산파의 입을 막은 것입니다! 그들의 새빨간 거짓말에 부디 속지 마시옵소서!"
"입을 다물지 못할까! 네 놈이 어찌 목숨을 다루는 관아의 의녀를 모욕하고 본관의 판결에 토를 단단 말이냐! 네 놈이 정녕 그리 발뺌을 하겠다면 좋다. 너의 그 가증스러운 주장과 추악한 음모를 완벽하게 뒤집어엎을, 아주 결정적이고도 생생한 증인이 방금 전 관아에 자진 출두하여 대기하고 있다."
사또의 폭탄 같은 말에 명호뿐만 아니라 연희와 마당의 수많은 구경꾼들조차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웅성거렸습니다. 사또가 굵은 부채를 들어 손짓을 하자, 관아의 무거운 솟을대문을 통해 한 사내가 포졸들의 삼엄한 호위를 받으며 비틀비틀 걸어 들어왔습니다.
사내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명호는 마치 백주대낮에 끔찍한 악귀라도 본 것처럼 사색이 되어 다리의 힘이 쫙 풀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다름 아닌 명호의 집안에서 수십 년간 궂은일을 도맡아 하던 마당쇠이자 늙은 하인 '칠복'이었습니다. 칠복은 형 명환이 죽은 직후부터 명호가 저지른 온갖 추악한 악행과 비밀스러운 음모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고 심부름을 했던, 명호의 완벽한 수족이자 유일한 목격자였던 것입니다.
칠복은 두려움에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면서도, 사또 앞의 멍석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습니다.
"미천한 종놈 칠복, 사또 나리께 감히 엎드려 아뢰옵니다."
사또가 동헌 마루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엄숙하고도 날카롭게 물었습니다.
"네가 칠복이냐. 너는 고발인 명호의 집에서 오랜 세월 종노릇을 한 자이니, 이 참담한 사건의 더러운 내막을 누구보다 낱낱이 알고 있을 터. 저 가련한 과부가 낳은 아이가, 진정 명호의 주장대로 간통으로 낳은 더러운 사생아더냐? 목숨을 걸고 한 치의 거짓 없이 바른대로 고하라!"
칠복은 덜덜 떨리는 눈동자로 자신을 노려보는 명호의 살기 어린 시선을 힐끗 살피더니, 이내 두 눈을 질끈 감고 결심한 듯 고개를 번쩍 치켜들고 온 마당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사또 나리! 소인 비록 미천한 종놈이오나 더 이상 하늘이 무서워 천지신명을 속일 수는 없사옵니다! 저기 서 계신 명호 도련님께서 큰마님(연희)을 간통으로 몰아붙여 멍석말이를 하려 하신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철저하게 꾸며진 천하의 몹쓸 거짓말이자 음모이옵니다!"
"무, 무엇이라! 이 미친 노망난 늙은이 새끼! 감히 네 놈이 은혜도 모르고 뉘 안전이라고 하늘 같은 주인을 모함하려 드느냐! 내 당장 저놈의 아가리를 찢어버릴 것이다!"
이성을 잃은 명호가 짐승처럼 길길이 날뛰며 칠복을 발로 걷어차려 달려들었지만, 대기하고 있던 건장한 포졸들이 재빨리 육모방망이로 명호의 무릎을 쳐서 바닥에 강제로 꿇리고 그의 두 팔을 뒤로 꺾어 완벽하게 제압했습니다.
"계속 고하라! 만약 네 놈의 증언에 단 한 글자의 거짓이나 꾸밈이 있다면, 네 놈의 목을 그 자리에서 뎅겅 칠 것이다!"
사또의 쩌렁쩌렁한 불호령에 칠복은 바닥에 쾅쾅 머리를 찧으며 피를 토하듯 울먹이며 그동안의 끔찍한 진실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작년 봄, 하늘 같던 큰도련님(명환)께서 급살을 맞아 허망하게 돌아가신 직후였습니다. 명호 도련님께서는 큰마님께서 진맥을 통해 회임을 하셨다는 소식을 의원에게 몰래 돈을 주고 전해 들으셨사옵니다. 형님이 남기신 그 어마어마한 문중의 재산을 홀로 독차지할 꿈에 부풀어 있던 도련님께서는, 그 귀한 핏줄을 기어코 없애버리려 혈안이 되셨지요. 그래서 소인에게 은밀히 돈을 쥐여주며, 깊은 산속의 야매 의원을 찾아가 낙태에 직효라는 맹독성 약초와 홍화씨를 다량으로 구해오라 명하셨사옵니다! 그리고는 매일 밤, 마님이 드시는 밥상과 산모용 탕약에 몰래 그 독한 낙태약을 타게 하셨사옵니다!"
"뭐... 무엇이라! 시동생이 형수의 밥에 독을 타?"
"아이고 세상에, 저런 인면수심의 짐승 같은 놈이 다 있나!"
칠복의 폭탄 같은 발언에 동헌 마당은 문자 그대로 벌집을 쑤신 듯 발칵 뒤집혀버렸습니다. 연희는 너무나도 큰 충격과 공포에 숨이 턱 막혀 말을 잇지 못하고,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부들부들 떨며 명호를 경악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자신이 원인 모를 복통에 시달리며 하혈의 위기를 겪었던 것이, 바로 시동생이 매일 밤 음식에 독을 탔기 때문이라니, 모골이 송연해지고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끔찍한 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하늘이 도우셨는지, 마님 뱃속의 아이는 그 지독하고 끔찍한 맹독을 견뎌냈고, 마님께서는 밤마다 피를 토할 듯한 지독한 복통을 겪으시면서도 끝끝내 꿋꿋이 아이를 지켜내셨습니다. 산달이 다가오고 배가 남산만 해지자 초조해진 명호 도련님께서는, 며칠 전 소인을 불러놓고 아주 기막힌 계획을 자랑스레 떠벌리셨사옵니다. 마님이 열 달을 넘겨 아이를 낳는 즉시, 그 달수가 길다는 것을 유일한 핑계 삼아 간통죄를 완벽하게 뒤집어씌우겠다고 말입니다! 문중 어른들을 선동하여 멍석말이로 마님을 반 죽여놓은 뒤 관아에 고발하면, 자신은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형님의 재산을 온전히 차지할 수 있다며 악마처럼 웃으셨사옵니다! 이 모든 끔찍한 일은, 오직 형님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도련님께서 아주 치밀하게 짜놓으신 무서운 흉계이옵니다!"
칠복의 너무나도 생생하고 구체적이며 앞뒤가 완벽하게 들어맞는 폭로에, 명호는 더 이상 발뺌할 그 어떤 구실이나 변명조차 찾지 못하고 완전히 넋이 나간 채 무릎이 꺾이고 말았습니다. 사또는 탐욕과 질투에 눈이 멀어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짐승의 길을 걸은 자를 향해, 참을 수 없는 경멸과 불같은 분노가 가득 찬 서슬 퍼런 시선을 내리꽂았습니다. 통쾌하고도 준엄한 심판의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 6: 통쾌한 사이다 판결과 죗값
"명호, 이 천하의 몹쓸 짐승만도 못한 악귀 같은 놈아! 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이리도 잔혹하고 악랄할 수 있단 말이냐! 네 놈이 가문의 핏줄을 이어갈 어린 조카를 죽이려 맹독을 쓰고, 끝내 형수를 부정한 계집으로 몰아세워 무고한 생명을 멍석에 말아 쳐 죽이려 했단 말이냐! 네 놈의 그 흉악하고 끝없는 탐욕이, 남편 잃은 가련한 과부의 목숨과 태중의 아이를 두 번, 세 번 참혹하게 죽일 뻔하였구나!"
사또의 벼락같고 추상같은 호통이 동헌 마루를 넘어 온 고을 하늘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사또의 분노 섞인 외침을 들은 동헌 마당의 수백 명의 백성들 역시, 명호의 상상을 초월하는 끔찍한 악행에 치를 떨며 주먹을 쥐고 격멸의 욕설을 마구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저런 쳐죽일 놈! 형수의 재산을 노리고 혈육에게 독을 타다니!"
"벼락을 맞아 시커멓게 타 죽을 놈! 저런 놈은 당장 사지를 찢어 길거리에 내걸어야 한다!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구경꾼들 사이에서 날아온 흙과 돌멩이가 명호의 얼굴과 몸에 퍽퍽 날아와 꽂혔지만, 명호는 이미 영혼이 빠져나간 듯 초점 없는 눈으로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고만 있었습니다. 사또는 더 이상 자비 없는 단호한 표정으로 곁에 선 이방과 포졸들을 향해 형틀을 대령하라는 엄명을 내렸습니다.
"여봐라! 당장 저 인면수심의 극악무도한 짐승, 명호 놈을 마당 한가운데 형틀에 꽁꽁 묶고 곤장 육십 대를 뼈가 부서지도록 매우 쳐라! 또한, 네 놈이 그토록 탐내고 갈구하던 가문의 재산 중 네 몫으로 돌아갈 재산은 단 한 푼도 남김없이 모조리 몰수하여 굶주린 백성들을 위한 관아의 구휼미로 쓸 것이며, 너는 곤장을 다 맞는 즉시 이 고을에서 영구히 추방하여 평생을 다리 저는 거지로 타향을 떠돌며 비참하게 살게 할 것이다! 그리고 듣거라! 오늘 이 자리에 불려 온 문중의 늙은 어른들 역시 명확한 사실 관계의 확인조차 없이 오직 헛소문과 탐욕에 선동되어 가엾은 며느리를 멍석에 말려 죽이려 한 그 어리석은 죄가 결코 가볍지 아니하다! 당장 문중의 공용 재산을 크게 헐어 과부에게 막대한 위자료를 바치고, 과부의 발밑에 엎드려 진심으로 사죄하지 않는다면 너희들 또한 엄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사, 사또 나리! 아이고, 제발 한 번만, 딱 한 번만 목숨을 살려주시옵소서! 제가 재물에 눈이 멀어 잠시 미쳤었나 봅니다!"
명호가 바닥에 엎드려 흙을 주워 먹으며 피를 토하듯 애원했지만, 건장하고 험악한 포졸들이 거칠게 달려들어 그를 무자비하게 형틀에 눕히고 굵고 단단한 물푸레나무 곤장으로 사정없이 내리치기 시작했습니다.
"퍼억! 억! 퍼억! 으아아아악!"
살점이 터져 허공으로 튀고 뼈가 으스러지는 처절하고도 끔찍한 비명소리가 동헌 마당을 섬뜩하게 채웠지만, 그 광경을 지켜보는 백성들의 얼굴에는 일말의 동정심도 없이 오직 정의가 실현되었다는 통쾌함과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안도감만이 교차하고 있었습니다.
사또는 동헌 마루에서 천천히 계단을 밟고 내려와, 여전히 믿기지 않는 듯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연희의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사또의 얼굴은 방금 전 악인을 심판하던 무섭고 서늘한 명관의 모습이 아닌, 고통받는 백성을 품어 안는 한없이 자애롭고 인자한 목민관의 따뜻한 모습이었습니다.
"과부는 고개를 들라. 젊은 나이에 사랑하는 남편을 허망하게 잃은 그 참담한 슬픔 속에서도, 지독한 낙태약의 고통을 온몸으로 견뎌내며 살아남았구나. 그리고 간통이라는 그 모진 누명과 죽음의 공포를 뒤집어쓰면서까지 열한 달이 넘도록 묵묵히 지아비의 귀한 핏줄을 지켜낸 네 어미로서의 강인함과 여인으로서의 굳은 정절은, 참으로 하늘과 땅을 감동시킬 만한 위대한 일이다. 내 관아의 창고를 열어 쌀 스무 가마니와 최고급 비단을 넉넉히 내릴 것이니, 부디 상한 몸을 건강하게 추스르고 네 품에 안긴 저 기적 같은 핏덩이를 아비 못지않은 훌륭하고 반듯한 아이로 키워내거라."
연희는 사또의 진심 어린 따뜻한 위로와 파격적인 하사품에, 그동안 억눌러왔던 모든 참담한 설움과 깊은 감사의 눈물을 폭포수처럼 쏟아내며 차가운 땅에 이마가 닿도록 큰 절을 올리고 또 올렸습니다.
"사또 나리... 사또 나리의 하해와 같은 은혜, 소인 죽어서 백골이 되어서도 평생토록 잊지 않겠사옵니다! 억울하게 눈을 감지 못하셨을 우리 서방님의 원혼이, 명철하신 나리의 판결 덕분에 비로소 구천에서 편히 눈을 감으실 것입니다! 이 아이를 목숨 바쳐 반듯하게 키우겠습니다!"
연희의 따뜻한 품 안에서 세상모르고 깊이 잠들어 있던 갓난아이가 기지개를 켜며 '응애' 하고 아주 맑고 경쾌하게 울음소리를 냈습니다. 마치 길고도 끔찍했던 지옥 같았던 고통의 밤이 완전히 끝나고, 따스하고 눈부신 봄날의 희망찬 햇살이 가문의 앞날에 다시 찾아왔음을 알리는 눈물겨운 생명의 소리였습니다.
이후 명호는 곤장의 독과 찢어진 상처를 이기지 못하고 고을에서 비참하게 쫓겨난 뒤, 이름 모를 타향의 다리 밑에서 병들어 쓸쓸하고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반면 연희는 사또의 든든한 비호와 온전히 되찾은 시댁의 막대한 재산을 바탕으로, 아들을 글공부에 매진하는 훌륭한 선비로 키워냈습니다. 그 기적의 아들은 훗날 장성하여 당당히 과거에 급제하였고, 어머니의 억울함을 풀어주었던 사또처럼 불쌍한 백성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진실을 밝히는 어질고 지혜로운 관리로 이름을 널리 떨쳤다고 전해집니다.
다산 정약용의 명저 『흠흠신서』에 생생하게 기록된 이 기막히고도 쫄깃한 판례는, 겉으로 보이는 단순한 현상에 얽매이지 않고 세심한 통찰력과 치밀한 과학적 수사를 통해 완벽하게 진실을 밝혀낸 조선시대 최고의 명판결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오늘날까지도 권선징악의 묘미를 보여주며 억울한 백성들의 한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사이다 같은 야담으로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널리 전해지고 있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 들려드린 정약용의 흠흠신서 속 <남편 죽은 지 열 달 만에 아이를 낳은 과부> 이야기, 어떠셨나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멍석말이까지 당할 뻔했던 가련한 청상과부가, 명탐정 사또의 치밀한 수사와 지혜 덕분에 완벽하게 결백을 증명하고 탐욕스러운 시동생을 단죄하는 과정이 정말 통쾌하고 짜릿하지 않으셨나요? 아무리 치밀한 거짓이라도 진실은 언젠가 반드시 밝혀진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감동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재미있으셨다면 잊지 마시고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꾹 눌러주시고요, 다음 시간에도 더 쫄깃하고 흥미진진한 옛날이야기와 명판결 야담으로 여러분을 찾아오겠습니다. 편안하고 행복한 밤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