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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먼 난봉꾼과 도깨비의 선처

    태그 (1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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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트로:

    달 밝은 여름밤, 깊은 산속 계곡에서 목욕하는 여인들의 고운 자태를 남몰래 훔쳐보며 희희낙락하던 철없는 젊은 난봉꾼이 있었습니다. 부모가 물려준 재산만 믿고 일은 안 하면서 밤마다 아낙네들의 치마폭만 쫓아다니던 그에게, 어느 날 밤 평생 잊지 못할 무시무시한 천벌이 내려집니다. 달빛 아래서 목욕하던 절세미녀들의 정체가 사실은 여인으로 둔갑한 산속 도깨비들이었던 것입니다! 시퍼런 도깨비불에 두 눈을 맞고 하루아침에 앞 못 보는 소경 거렁뱅이로 전락한 청년! 그러나 끝없는 어둠 속에서 흘린 삼 년간의 피눈물과 참회가 마침내 도깨비의 마음을 움직여 천금 같은 기적을 불러오는데요. 웃음과 해학, 그리고 가슴 뭉클한 감동이 있는 난봉꾼의 개과천선 이야기,

    ※ 1: 천하의 난봉꾼 강칠의 못된 취미

    무더운 여름 기운이 가시지 않은 강원도 산골의 어느 마을에, 동네 어른들만 보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드는 스물다섯 살 먹은 총각 하나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름은 강칠이었는데, 인물도 훤칠하고 뼈대도 굵직하여 일만 부지런히 하면 일등 신랑감이 될 터였으나, 불행히도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며 남겨준 논밭 몇 마지기를 믿고 손에 흙 한 번 안 묻히는 천하의 한량이었습니다.

    강칠에게는 술과 노름보다도 더 못 고치는 고약하고도 해괴한 병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여색(女色)'을 밝혀도 너무 밝힌다는 것이었습니다. 낮에는 정자나무 그늘 밑에서 낮잠만 자다가도,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어스름한 달빛이 깔리기 시작하면 강칠의 두 눈은 살쾡이처럼 반짝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헤헤헤, 오늘같이 푹푹 찌는 날에는 분명히 아랫마을 과부댁이랑 방앗간 집 딸내미가 산속 폭포수로 땀을 씻으러 갈 것이야. 내 이 좋은 구경을 놓칠 수가 없지!"

    강칠은 남들 눈에 띄지 않게 검은 무명옷을 입고 머리에 칡넝쿨로 만든 위장용 풀잎 화관까지 둘러쓴 채, 고양이 걸음으로 뒷산 깊은 계곡을 향해 기어 올라갔습니다. 강칠이 자주 출몰하는 곳은 마을에서 십 리쯤 떨어진 비선 폭포 위쪽의 너럭바위 틈새였습니다. 그곳은 바위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 마을 아낙네들과 처녀들이 남자들의 눈을 피해 알몸으로 목욕을 하던 비밀스러운 명소였습니다.

    바위틈에 납작 엎드려 숨을 죽이고 있던 강칠의 코끝으로 향긋한 창포물 냄새가 솔솔 풍겨왔습니다. 바위 너머 맑은 물가에서 마을 아낙네 서너 명이 옷고름을 풀고 하얀 속살을 드러낸 채 물장구를 치며 더위를 식히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허, 저 백옥 같은 살결 좀 보게나! 달빛에 비치니 아주 그냥 선녀가 따로 없구먼. 내 눈이 오늘 밤에 호강을 제대로 하는구나!'

    강칠은 입가에 흐르는 침을 손등으로 훔치며 바위 앞으로 목을 길게 뺐습니다. 그런데 너무 흥분하여 엉덩이를 들썩거리다 그만 발밑에 있던 잔돌 하나를 발로 차버리고 말았습니다.

    데구루루, 풍덩!

    "엄마야! 저기 바위 위에 누가 있는 것 같아!"

    "아이고, 망측해라! 웬 도둑고양이 같은 놈이 남의 목욕하는 데를 훔쳐보는 거야! 돌 던져라, 돌!"

    깜짝 놀란 아낙네들이 물속에 몸을 숨기며 자갈돌을 집어 던지자, 강칠은 "아이쿠, 들켰다!" 하며 엉덩이를 빼고 산 아래로 줄행랑을 쳤습니다. 나뭇가지에 얼굴이 긁히고 무릎이 까져도 강칠은 정신을 차리기는커녕 그저 낄낄거리며 웃기만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동네 우물가에서는 아낙네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아니, 어젯밤에 비선 폭포에 나타난 그 시커먼 놈이 또 그 강칠이 녀석 맞지요? 세상에, 사내자식이 장가갈 생각은 안 하고 밤마다 남의 아녀자들 속살이나 훔쳐보러 다니니, 저러다 산신령님 노여움을 사서 두 눈알이 쏙 빠져버릴 것이오!"

    마을 어른인 박 첨지가 지팡이로 땅바닥을 쾅쾅 치며 강칠의 집 마당으로 찾아와 호통을 쳤습니다.

    "이놈 강칠아! 네놈 부모가 지하에서 통곡할 노릇이다! 사지가 멀쩡한 놈이 논밭은 다 묵혀두고 밤마다 산속을 헤매며 부녀자들 목욕이나 훔쳐보다니, 네놈이 사람이고 짐승이냐! 저 깊은 산 넘어 폐암자 근처에는 예로부터 여자로 둔갑한 도깨비들이 출몰한다는 걸 몰라서 그러느냐? 그러다 도깨비한테 홀려 객사할 줄 알아라!"

    하지만 귓등으로도 안 듣는 강칠은 대청마루에서 귀를 후비며 콧방귀만 뀌었습니다.

    "아이고, 영감님도 참! 닳는 것도 아니고 좋은 구경 눈으로 좀 한 게 무슨 큰 죄라고 그러십니까요. 그리고 폐암자 근처에 여자 도깨비가 나온다고요? 허허, 도깨비면 어떻고 여우면 어떻습니까, 이쁘기만 하면 내 양손 들고 환영이지요!"

    박 첨지는 기가 막혀 혀를 끌끌 차며 돌아섰습니다. 오히려 박 첨지의 말을 들은 강칠은 '폐암자 근처의 깊고 맑은 선녀탕'이라는 말에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날 밤에는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어리석은 욕망이 자신의 눈앞에서 영원히 빛을 앗아갈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입니다.

    ※ 2: 시퍼런 도깨비불에 두 눈을 맞다

    그날 밤은 마침 일 년 중 달빛이 가장 교교하고 신비롭다는 칠월 백중날 보름밤이었습니다. 강칠은 부모님이 물려준 마지막 밭뙈기마저 술집 작부에게 술값으로 잡혀 먹고는, 얼큰하게 취기가 오른 채로 마을 사람들이 금기시하는 뒷산 꼭대기 옛 폐암자 골짜기로 향했습니다.

    그 골짜기에는 수백 년 전에 문을 닫은 허물어진 암자 터가 있었고, 그 뒤편에는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작은 폭포와 옥빛 연못인 '선녀탕'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낮에도 나무가 울창해 어두컴컴한 곳이었지만, 그날 밤따라 보름달이 어찌나 밝은지 산길이 대낮처럼 환했습니다.

    선녀탕 근처에 다다른 강칠의 귓가로 어디선가 은방울을 굴리는 듯한 낭랑하고 요염한 여인들의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습니다.

    "깔깔깔! 언니, 오늘 밤 달빛이 참으로 곱지 않아요? 이 맑은 물에 몸을 씻으니 천 년 묵은 피로가 다 가시는 것 같네요."

    "그러게 말이다, 얘야. 어서 등이나 좀 밀어다오. 오늘따라 산 아래서 비릿한 총각 냄새가 바람에 실려 오는 것이 기분이 묘하구나."

    그 간드러진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강칠의 심장이 방망이질치듯 쿵쾅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강칠은 숨소리조차 죽인 채 칡넝쿨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연못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바위턱에 턱을 괴고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바위 아래 선녀탕을 내려다본 강칠은 그만 숨이 턱 막혀버렸습니다.

    달빛이 부서지는 에메랄드빛 연못 안에는, 강칠이 평생 마을이나 장터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천하절색의 미녀 세 명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목욕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칠흑같이 검은 머리카락은 허리까지 흘러내리고, 눈부시게 하얀 살결에서는 복숭아꽃 향기가 진동을 하는 듯했습니다. 바위 위에 벗어놓은 오색 비단옷들은 달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세, 세상에나!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극락에 온 건가! 한양 궁궐의 후궁 마마들이 목욕을 하러 내려왔단 말인가, 아니면 하늘에서 진짜 선녀들이 내려왔단 말인가! 아이고, 저 아찔한 허리선과 젖가슴 좀 보게나!'

    강칠은 두 눈이 바위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부릅뜬 채, 침이 턱밑으로 줄줄 흐르는 줄도 모르고 넋을 잃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그 황홀한 광경을 보고 싶어진 강칠은 바위 끝자락으로 엉금엉금 기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연못 한가운데서 물을 끼얹고 있던 가장 맏언니 격인 미녀가 갑자기 동작을 멈추더니, 고개를 휙 돌려 강칠이 숨어 있는 바위 위를 정확히 노려보았습니다! 미녀의 고혹적이던 검은 눈동자가 달빛 아래서 순간 시퍼런 늑대의 눈빛처럼 번뜩였습니다.

    "어라? 내 아까부터 어디서 구린내 나는 시선이 느껴진다 했더니, 저기 바위 위에 쥐새끼 한 마리가 숨어서 우리 목욕하는 걸 훔쳐보고 있었구나!"

    맏언니 미녀가 손가락으로 바위를 가리키자, 옆에 있던 두 미녀의 얼굴도 순식간에 변했습니다. 백옥 같던 미녀들의 이마에서 갑자기 뭉툭한 금빛 외뿔이 쑥 솟아오르더니, 앵두 같던 입술이 귀밑까지 찢어지며 우렁차고 기괴한 도깨비 웃음소리가 산골짜기를 뒤흔들었습니다!

    "히히히! 이놈이 바로 동네에서 아낙네들 속살이나 훔쳐보러 다닌다는 그 난봉꾼 강칠이 놈이로구나! 감히 백중날 밤에 산신령님께 제사 지내러 목욕재계하는 우리 도깨비 자매들의 알몸을 음탕한 눈깔로 훔쳐봐?"

    그제야 그 미녀들이 박 첨지가 경고했던 '여인으로 둔갑한 산속 참도깨비'들이라는 것을 깨달은 강칠은 혼비백산하여 비명을 질렀습니다.

    "으아악! 도, 도깨비다! 살려주십시오!"

    강칠이 뒤로 돌아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두 다리가 돌처럼 굳어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물속에서 솟구쳐 오른 대장 여도깨비가 허공에서 손바닥을 쫙 펴더니, 강칠의 얼굴을 향해 무시무시한 저주의 외침을 날렸습니다.

    "네 이놈 강칠아! 부모가 물려준 귀한 두 눈을 가지고 세상 아름다운 것이나 불쌍한 이웃은 보지 않고, 오직 음탕하고 더러운 욕심만 채우는 데 썼으니, 그 눈깔을 더 이상 달고 다닐 자격이 없다! 네놈이 마음의 눈을 뜨고 진심으로 참회하기 전까지는 영원히 어둠 속에서 살아라! 켕!"

    기합 소리와 함께 대장 여도깨비의 손끝에서 주먹만 한 시퍼런 '도깨비불' 두 개가 벼락처럼 날아와 강칠의 두 눈을 정통으로 강타했습니다!

    "크아악! 내 눈! 내 눈이 타들어 간다! 앞이 안 보여, 어머님, 살려주세요!"

    시퍼런 불꽃이 눈동자 속으로 파고드는 끔찍한 고통과 함께, 강칠은 비명을 지르며 산비탈 아래로 데구루루 굴러떨어져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 3: 장님 거렁뱅이로 전락한 강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강칠이 신음하며 가까스로 의식을 차렸습니다. 얼굴에는 따뜻한 아침 햇살이 내리쬐는 것이 분명히 느껴졌고, 계곡물 흐르는 소리도 선명하게 들렸습니다. 하지만 강칠이 눈꺼풀을 아무리 깜빡이고 손으로 눈을 비벼보아도, 눈앞은 먹물을 부어 놓은 듯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습니다.

    "아, 아니… 해가 떴는데 왜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야! 내 눈! 정말로 내 눈이 멀어버렸단 말인가! 으아앙, 살려주시오! 누가 나 좀 살려주시오!"

    하루아침에 청맹과니 소경이 되어버린 강칠은 나뭇가지를 더듬거리고 바위에 정강이를 수없이 부딪쳐 피를 흘리면서, 반나절 만에 겨우 산 아래 마을로 기어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어른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밤마다 산속을 헤매다 소경이 되어 돌아온 강칠을 보며, 동네 사람들은 불쌍히 여기기는커녕 손가락질을 하며 수군거렸습니다.

    "쯧쯧쯧, 내 저럴 줄 알았지. 밤마다 아낙네들 목욕하는 거나 훔쳐보러 다니더니, 결국 산신령님과 도깨비한테 천벌을 받아 두 눈이 멀었구먼. 인과응보요, 자업자득이지!"

    더욱 기막힌 것은 강칠과 어울려 다니며 술을 얻어먹던 친구들과 술집 작부의 태도였습니다. 강칠이 앞을 못 보게 되자마자, 그들은 강칠이 술값으로 잡혀 놓았던 마지막 집문서와 밭문서를 들고 와 강칠을 단칸 움막으로 쫓아내고 재산을 싹 가로채 버렸습니다.

    한순간에 두 눈도 잃고 재산도 잃고 거렁뱅이가 된 강칠은, 다 쓰러져가는 마을 어귀 움막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사흘을 내리 굶으며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앞을 못 보니 밥을 지을 수도, 나무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배고픔과 외로움, 그리고 끝없는 어둠의 공포가 뼈를 깎는 듯했습니다.

    '아아, 내가 미쳤었지. 내가 짐승만도 못한 놈이었어! 부모님이 피땀 흘려 일군 땅을 술과 여색으로 다 날려 먹고, 남의 부녀자들 가슴에 대못을 박았으니 나는 굶어 죽어도 싸다. 도깨비님이 내린 벌이 참으로 지당하구나….'

    강칠이 지난날 자신의 방탕하고 어리석었던 삶을 뼈저리게 후회하며 텅 빈 눈자위에서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고 있을 때였습니다. 움막의 삐걱거리는 사립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코끝으로 구수한 보리밥 냄새와 따뜻한 시래기국 냄새가 풍겨왔습니다.

    "저기… 강칠 도령님, 안에 계십니까요? 사흘째 굴뚝에서 연기가 안 나길래, 변변치 않지만 저녁밥을 좀 지어 왔습니다. 식기 전에 어서 드세요."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고운 처자의 목소리였습니다. 깜짝 놀란 강칠이 허공에 손을 더듬거리며 물었습니다.

    "누, 누구시오? 동네 사람들 모두가 나를 천벌 받은 죄인이라고 침을 뱉고 피해 가는데, 어떤 천사 같은 분이 이 못난 소경에게 따뜻한 밥을 가져다주신단 말이오?"

    그러자 처자는 수줍은 듯 나직하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저 아랫마을에서 바느질품을 팔아 병든 노모를 모시고 사는 '소월'이라고 합니다. 옛날에 저희 어머니께서 쓰러지셨을 때, 돌아가신 도령님 아버님께서 쌀 한 가마니를 그냥 내어주신 은혜가 있어 늘 갚고 싶었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누구나 길을 잃고 넘어질 때가 있는 법인데, 도령님께서 지금 흘리시는 눈물이 진심이라면 하늘도 언젠가는 다시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마음 약해지지 마시고 부디 기운 내세요."

    소월이라 밝힌 그 처자는 강칠의 손에 따뜻한 숟가락을 쥐여주고는 조용히 움막을 나갔습니다. 강칠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보리밥 한 술을 떠서 입에 넣었습니다. 밥알과 함께 뜨거운 눈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날부터 강칠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는 더 이상 세상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손끝의 감각을 이용해 밤낮으로 짚신과 멍석을 촘촘하게 삼았습니다.そして 그것을 장터에 내다 팔아 번 푼돈으로 자신은 죽 한 그릇만 먹고, 나머지는 마을의 굶주린 고아들이나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남몰래 나누어 주었습니다.

    특히 매일 저녁 거르지 않고 찾아와 밥을 챙겨주고 움막을 쓸어주는 소월 처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강칠에게 유일한 빛이었습니다. 앞을 볼 수 없었기에 강칠은 소월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몰랐지만, 그녀의 곱고 따뜻한 마음씨를 느끼며 생전 처음으로 껍데기가 아닌 사람의 '진심'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갔습니다.

    그렇게 강칠이 어둠 속에서 참회와 선행을 쌓아 올린 세월이 어느덧 꼬박 삼 년이 흘렀습니다.

    ※ 4: 소월과 아기 도깨비를 구해낸 강칠

    강칠이 시퍼런 도깨비불에 맞아 두 눈이 먼 지 정확히 삼 년째 되던 해의 칠월 백중날이었습니다. 그날은 아침부터 하늘에 먹물을 풀어놓은 듯 시커먼 먹구름이 낮게 깔리더니, 오정이 지나자마자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양동이로 물을 퍼붓는 것 같은 억수 같은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천둥과 번개가 산천을 뒤흔들고 계곡물이 무섭게 불어나며 산허리가 무너져 내릴 지경이었지만, 해가 저물어 저녁 시간이 되자 강칠은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에 움막 문고리를 잡고 안절부절못하며 서성거렸습니다.

    "아이고, 어찌 된 일인가… 오늘 아침에 소월 낭자가 병든 어머님께 달여 드릴 약초를 캐러 뒷산에 올라간다고 했었는데, 이 무서운 폭우가 쏟아지는데도 아직까지 내 움막 앞을 지나가지 않는 걸 보니 산에서 무슨 큰 변고가 생긴 것이 틀림없구나!"

    예전의 이기적이고 방탕하던 시절의 강칠이었다면 밖에서 비가 오든 사람이 죽든 따뜻한 아랫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코를 골았겠지만, 지난 삼 년간 어둠 속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다시 태어난 지금의 강칠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자신 같은 죄인을 버리지 않고 삼 년 세월을 하루같이 보살펴 준 은인 소월이 위험에 처했다는 생각이 들자, 강칠의 가슴은 불이 붙은 듯 타들어 갔습니다.

    강칠은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위험천만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평소에 손발처럼 쓰던 단단한 대나무 지팡이 하나와 자신이 직접 꼰 굵은 삼베 밧줄 한 타래를 허리에 단단히 동여맸습니다. 그리고는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는 사립문을 박차고 나가 뒷산을 향해 거침없이 뛰어 올라갔습니다.

    비록 두 눈은 감겨 있었으나, 강칠은 지난 삼 년 동안 동네 노인들에게 나눠줄 땔감을 구하느라 이 뒷산의 오솔길과 바위 모서리, 심지어 오래된 소나무 뿌리의 위치 하나까지 발바닥의 감각과 귀로 들리는 바람 소리만으로 손금 보듯 훤히 외우고 있었습니다. 진흙탕 산길에 수없이 미끄러져 무릎이 깨지고, 가시덤불에 얼굴과 팔뚝이 찢겨 선혈이 빗물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강칠은 오직 소월을 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입술을 깨물며 산 꼭대기를 향해 기어 올라갔습니다.

    "소월 낭자! 어디 계시오! 내 목소리 들리시오? 소월 낭자!"

    강칠의 목이 터져라 부르는 외침이 천둥소리에 묻혀 흩어졌습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강칠이 삼 년 전 자신이 눈을 잃었던 그 험준한 폐암자 골짜기 절벽 근처에 다다랐을 때였습니다. 세차게 쏟아지는 빗소리를 뚫고, 낭떠러지 아래쪽에서 가냘프고 다급한 여인의 비명 소리와 함께 어린아이 같기도 하고 산짐승 같기도 한 기묘한 울음소리가 동시에 들려왔습니다!

    "살려주세요! 거기 산 위에 누구 없어요? 제발 이 불쌍한 아이 좀 살려주세요!"

    "으아앙! 엄마야, 무서워요! 내 발 미끄러진다! 도깨비 살려!"

    그것은 분명히 강칠이 그토록 애타게 찾던 소월의 목소리였습니다! 약초를 캐다 갑자기 쏟아진 폭우에 길을 잃은 소월이, 급류에 휩쓸려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려던 자그마한 '아기 도깨비'를 발견하고는 차마 그냥 지나치지 못해 그 아이의 손을 붙잡아주다가 함께 절벽 아래 소나무 뿌리에 매달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거센 빗물에 절벽의 흙이 계속해서 무너지면서, 두 생명을 지탱하고 있던 소나무 뿌리가 "우지끈, 투두둑!" 소리를 내며 금방이라도 뽑혀 나갈 듯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강칠은 소리가 나는 절벽 끝을 향해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엉금엉금 기어갔습니다. 그리고는 허리에 묶어 온 굵은 삼베 밧줄의 한쪽 끝을 절벽 위의 아름드리 바위 기둥에 세 번이나 휘감아 단단히 매듭을 지었습니다. 이어 다른 쪽 끝을 자신의 허리에 질끈 동여맨 강칠은, 앞이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과 폭우 속의 낭떠러지 아래로 자신의 몸을 주저 없이 던져 내려갔습니다!

    "소월 낭자! 조금만 버티시오! 강칠이가 왔소! 내 손을 잡으시오, 어서 이 밧줄을 잡으시오!"

    빗줄기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절벽 벽면을 발로 디디며 내려간 강칠은, 오직 소리와 손끝의 감각만을 의지하여 허공을 더듬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소나무 뿌리가 완전히 뽑히며 아래로 추락하려는 소월의 가녀린 손목과, 그 옆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아기 도깨비의 작은 등덜미를 두 손으로 꽉 움켜쥐었습니다!

    "크으윽!"

    성인 여인과 아기 도깨비의 무게가 한꺼번에 실리자, 강칠의 어깨뼈가 빠질 듯한 고통이 밀려왔습니다. 날카로운 절벽의 바위 모서리에 강칠의 가슴팍과 등줄기가 쓸려 무명옷이 갈가리 찢어지고 시뻘건 피가 빗물과 섞여 폭포수처럼 흘러내렸습니다. 하지만 강칠은 이가 부서져라 어금니를 악물고 초인적인 괴력을 발휘하여, 소월과 아기 도깨비를 먼저 절벽 바위 위로 한 치씩 밀어 올렸습니다.

    "도령님! 안 돼요, 도령님 팔에서 피가 너무 많이 나요! 저희 때문에 도령님이 떨어지시겠어요! 어서 먼저 올라오세요!"

    바위 위로 먼저 올라간 소월이 밧줄을 붙잡고 피눈물을 흘리며 절규했습니다. 아기 도깨비도 작은 손으로 강칠의 옷자락을 잡으며 낑낑거렸습니다. 그러나 강칠이 마지막으로 바위 턱을 잡고 몸을 끌어올리려는 순간, 강칠이 발을 딛고 있던 절벽의 바위 덩어리가 "쿠구구궁!" 하는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 충격으로 바위 모서리에 쓸리던 삼베 밧줄마저 절반 이상이 뚝 끊어지며 강칠의 몸이 천 길 낭떠러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리고 말았습니다.

    한 가닥 남은 밧줄 오라기가 팽팽하게 당겨지며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죽음의 문턱 앞이었습니다. 그러나 강칠의 얼굴에는 공포나 원망 대신,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하고 맑은 미소가 번져 나갔습니다. 강칠은 비에 젖은 얼굴을 들어 바위 위를 향해 목청껏 외쳤습니다.

    "소월 낭자, 그대와 그 어린아이가 다치지 않아서 정말로 천만다행이오! 하늘이시여, 그리고 이 산을 지키시는 도깨비 영감님이시여! 이 죄 많고 어리석던 놈이 지난 삼 년간 어둠 속에서 살아오면서 비로소 남을 위해 눈물 흘리고 베풀며 사는 기쁨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오늘 내 하찮은 목숨을 바쳐 내 은인인 저 착한 소월 낭자와 죄 없는 어린 생명을 구했으니, 나는 이제 저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는다 해도 아무런 여한이 없습니다!"

    강칠이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바위 턱을 향해 손을 뻗어 기어 올라온 뒤, 마침내 기력이 다하여 차가운 빗속의 바위 바닥에 정신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억수같이 쏟아지던 폭우와 천둥소리가 누가 칼로 자른 듯 거짓말처럼 멈추더니, 먹구름이 갈라진 밤하늘에서 삼 년 전 그날 밤보다 백 배는 더 밝고 신비로운 푸른 도깨비불 수천 개가 은하수처럼 쏟아져 내려와 산골짜기를 대낮처럼 환하게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 5:약수로 두 눈을 뜨게 해주고

    사납던 비바람 소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자리에, 어디선가 천상의 가야금 소리와 함께 황홀하고 달콤한 복숭아꽃 향기가 산골짜기 가득 퍼져 나갔습니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강칠의 깊은 꿈결 속으로, 우렁차면서도 어머니의 품처럼 한없이 자애로운 여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강칠이 무거운 몸을 일으켜 꿈속에서 눈을 떠보니, 놀랍게도 그곳은 삼 년 전 백중날 밤 자신이 바위틈에 숨어 몰래 훔쳐보았던 그 선녀탕 연못가였습니다. 하지만 삼 년 전과는 풍경이 전혀 달랐습니다. 연못 위에는 무지개빛 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세 명의 도깨비 자매들은 알몸이 아니라 눈부시게 화려한 오색 비단 선녀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가운데 서 있는 맏언니 대장 여도깨비의 품 안에는, 조금 전 강칠이 절벽에서 피를 흘려가며 목숨 걸고 구해낸 그 작은 '아기 도깨비'가 안겨서 강칠을 향해 방긋방긋 웃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삼 년 전 강칠에게 시퍼런 도깨비불을 던지며 불호령을 내렸던 대장 여도깨비의 눈가에는, 사나운 기색 대신 깊고 따뜻한 감동의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습니다.

    "강칠아, 고개를 들거라. 참으로 장하고 고맙구나. 오늘 밤 네가 앞도 보지 못하는 불편한 몸으로 제 목숨을 초개같이 던져 구해낸 이 어린아이는, 바로 내가 백 년 만에 어렵게 얻은 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늦둥이 막내아들이란다."

    대장 여도깨비의 부드러운 말씀에 강칠은 꿈속에서도 황송하여 바닥에 납작 엎드려 절을 올렸습니다.

    "아, 도깨비 마님의 귀한 아드님이었군요! 아이가 무사하다니 그저 하늘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허허, 삼 년 전 오늘 밤, 내가 네놈의 그 음탕하고 버릇없는 눈깔을 도깨비불로 멀게 했을 때만 해도, 나는 네놈이 제 죄는 모르고 세상과 하늘을 원망하다가 객사할 줄로만 알았느니라. 허나 우리 도깨비 자매들이 지난 삼 년간 밤마다 네 움막 지붕 위에 올라가 지켜보니, 너는 매서운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도 단 한 번도 남을 탓하지 않고 피눈물로 지난날의 잘못을 참회하더구나. 게다가 앞도 못 보는 손으로 밤새 짚신을 삼아 자기 입에는 보리죽 한 사발만 넣고, 남은 돈으로 동네의 불쌍한 고아들과 늙은이들을 남몰래 먹여 살리는 것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느니라!"

    강칠은 텅 빈 눈자위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대답했습니다.

    "도깨비 마님, 당치도 않으신 칭찬이십니다. 만약 삼 년 전 마님께서 저에게 따끔한 벌을 내려 두 눈을 멀게 해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평생 여인의 겉모습과 헛된 욕망만 쫓아다니는 금수로 살다가 지옥에 떨어졌을 것입니다. 두 눈을 잃은 어둠 속에서 저는 비로소 사람의 따뜻한 진심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배웠사오니, 마님은 저를 벌하신 것이 아니라 저를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주신 큰 은인이십니다."

    강칠의 티 없이 맑고 겸손한 대답에 도깨비 자매들은 모두 감동하여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대장 여도깨비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손에 들고 있던 황금 표주박으로 선녀탕의 가장 깊은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푸른 빛깔의 신비한 '천년 도깨비 약수'를 한 바가지 가득 떴습니다. 그리고는 강칠의 앞으로 다가와 감겨 있는 두 눈과 상처 입은 몸 위에 그 영험한 약수를 천천히 부어주었습니다.

    "네 육신의 눈은 비록 삼 년간 어두워졌으나, 네 마음의 눈은 천 리 밖의 아픔까지 볼 수 있을 만큼 수정처럼 맑아졌구나! 이제 내가 네 두 눈을 처음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났을 때보다 열 배는 더 밝고 총명하게 되돌려주마. 그리고 내 귀한 자식을 구해준 목숨 값과 네가 지난 삼 년간 어둠 속에서 쌓은 음덕의 보상으로, 우리 도깨비들이 삼백 년 세월 동안 인간의 눈을 피해 남몰래 가꾸어 온 이 산의 가장 큰 보물을 너에게 통째로 넘겨주겠노라!"

    말을 마친 대장 여도깨비가 허리춤에서 황금빛 도깨비방망이를 뽑아 들어 선녀탕 폭포수 뒤편의 거대한 절벽 바위벽을 향해 "수리수리 마하수리, 열려라 뚝딱!" 하고 외치며 내리쳤습니다.

    그러자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와 함께 수십 척 높이의 바위벽이 양옆으로 스르르 갈라지며 비밀스러운 동굴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동굴 안쪽을 들여다본 강칠은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그 동굴 안에는 어른 팔뚝만 한 크기에 영롱한 황금빛 후광을 내뿜는 '천년 묵은 천종산삼' 수백 뿌리가 마치 시골 배추밭처럼 빼곡하게 자라고 있었고, 동굴 한쪽 구석에는 옛 고려 왕실이 전란을 피해 숨겨두었던 순금 불상과 금은보화 상자가 산더미처럼 쌓여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강칠아, 똑똑히 보아두어라. 저 천종산삼과 황금 보물들은 오직 욕심을 버리고 선한 마음을 가진 의인의 눈에만 보이는 하늘의 선물이니라. 날이 밝거든 저 보물들을 모두 거두어, 지난 삼 년간 네 곁을 지킨 세상에서 가장 어질고 아름다운 네 배필과 함께 만석꾼 부자가 되어라. 그리하여 네가 다짐한 대로 평생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구제하며 백 살까지 행복하게 살거라. 자, 이제 어둠의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떠라!"

    "도깨비 마님! 이 망극한 은혜를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장 여도깨비의 따스한 손길이 강칠의 이마를 부드럽게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강칠의 감긴 두 눈꺼풀 사이에서 삼 년 전 박혔던 시퍼런 액운의 연기 한 줄기가 "슈우욱!" 소리를 내며 허공으로 빠져나갔습니다.

    "도령님! 강칠 도령님, 제발 정신 좀 차려보세요! 눈 좀 떠보세요!"

    현실 세계에서 자신의 몸을 흔들며 애타게 부르는 소월의 간절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습니다. 강칠은 파르르 떨리는 무거운 눈꺼풀에 힘을 주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눈을 떠 올렸습니다.

    처음에는 우유를 풀어놓은 듯 뿌연 안개처럼 흐릿하던 시야가, 한 번 두 번 눈을 깜빡이자마자 거짓말처럼 수정처럼 맑고 또렷하게 트이기 시작했습니다! 폭우가 그친 뒤 청명하게 개인 아침 하늘의 푸른빛과, 머리 위 소나무 잎사귀 끝에 맺혀 반짝이는 아침 이슬방울의 영롱한 빛깔까지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보, 보인다…! 아아, 하늘이시여! 내 눈이 다시 보인다! 푸른 하늘도 보이고, 구름도 보이고, 초록빛 나뭇잎도 내 눈에 보인단 말이다!"

    삼 년 만에 되찾은 빛의 세계에 감격하여 목놓아 소리치던 강칠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신의 머리를 무릎 위에 뉘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간호하고 있던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과 눈이 마주친 순간, 강칠은 숨이 멎을 듯한 벅찬 전율에 휩싸여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 6: 눈을 뜨고 마주한 은인 소월의 정체

    강칠의 밝아진 두 눈앞에 앉아 있는 처자, 지난 삼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어둠 속에 갇힌 강칠을 찾아와 따뜻한 밥을 차려주고 손발이 되어주었던 은인 '소월'은, 놀랍게도 강칠이 예전 난봉꾼 시절 꿈에서도 그려보지 못했을 만큼 단아하고 기품 넘치는 천하절색의 미녀였던 것입니다! 비록 빗물에 젖은 수수한 무명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었으나, 사슴처럼 맑고 깊은 눈망울과 백옥처럼 티 없이 하얀 피부, 그리고 온화한 미소는 달빛 아래 보았던 그 어떤 선녀보다도 더 아름답고 성스러웠습니다.

    "소, 소월 낭자…! 지금 내 앞에 있는 그대가 정녕 소월 낭자 맞소? 내 눈이 떠졌소! 삼 년 동안 꿈결에서만 그리던 그대의 고운 얼굴이 마침내 내 두 눈에 보인단 말이오!"

    강칠이 북받쳐 오르는 감격에 겨워 소월의 거칠고 작은 두 손을 덥석 감싸 쥐었습니다. 소월 역시 죽은 줄만 알았던 강칠이 깨어난 것도 모자라, 이전보다 훨씬 더 까맣고 총명하게 빛나는 눈동자로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자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뜨거운 기쁨의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아이고, 하느님, 산신령님 감사합니다! 도령님, 정말로 두 눈을 뜨셨군요! 제가 도령님 눈앞에 보이세요? 도령님의 그 착하고 지극한 마음씨가 마침내 하늘을 감동시켜 기적을 내려주셨나 봅니다!"

    그런데 사실 여기에는 두 사람도 미처 몰랐던 도깨비의 또 다른 따뜻한 선물이 숨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소월은 원래 어릴 적 부엌 아궁이 불에 데어 왼쪽 뺨에 손바닥만 한 큰 화상 흉터가 있던 처자였습니다. 마음씨는 비단결 같았으나 그 흉터 때문에 동네 총각들에게 무시를 당하며 스물이 넘도록 시집을 가지 못하고 홀어머니만 모시고 살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간밤에 소월이 자기 목숨도 돌보지 않고 절벽에서 아기 도깨비의 손을 끝까지 놓지 않고 구해준 것에 깊이 감동한 대장 여도깨비가, 새벽녘 강칠의 눈을 약수로 고쳐줄 때 소월의 뺨에 있던 흉터까지 도깨비 약수로 감쪽같이 씻어내어 달덩이 같은 절세미녀로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강칠이 호수처럼 맑은 자신의 눈동자에 비친 소월의 깨끗한 얼굴을 가리키며 말해주자, 자신의 뺨을 만져본 소월은 또 한 번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간밤에 절벽 바위에 긁혀 피투성이가 되었던 강칠의 팔뚝과 가슴의 상처들도 도깨비 약수 덕분에 흉터 하나 없이 말끔하게 아물어 있었습니다.

    강칠은 소월의 손을 꼭 잡고 꿈속에서 대장 여도깨비가 일러준 선녀탕 폭포수 뒤편으로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쏟아지는 폭포수 물줄기 뒤편의 우거진 칡넝쿨을 두 손으로 힘껏 걷어내자, 놀랍게도 정말 꿈에서 본 것과 똑같이 거대한 바위벽이 갈라져 있었고 그 안으로 비밀 동굴이 나 있었습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간 강칠과 소월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동굴 바닥에는 황금빛 영기를 뿜어내는 천년 묵은 천종산삼 수백 뿌리가 은은한 향기를 풍기며 자라고 있었고, 그 옆에는 황금 불상과 순금 덩어리, 은괴가 가득 찬 보물 상자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상자 위에는 아기 도깨비가 놓고 간 듯한 예쁜 산꽃 한 송이가 놓여 있었습니다.

    "세상에나…! 소월 낭자, 간밤에 도깨비 마님께서 꿈에 나타나 약속하신 천금의 복이 꿈이 아니라 전부 생시였구려! 이 모든 것이 나를 버리지 않고 사람으로 만들어준 낭자의 덕분이오!"

    강칠과 소월은 그 자리에 나란히 무릎을 꿇고 산 정상을 향해 아홉 번 큰절을 올렸습니다.

    그 길로 가장 큰 천종산삼 몇 뿌리와 금괴를 소중히 보자기에 싸서 한양으로 올라간 강칠은, 마침 원인 모를 중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던 한양 최고 권력자 영의정 대감의 어머니에게 산삼을 진상했습니다. 천년 도깨비 산삼을 달여 마신 노마님이 하루 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영의정 대감은 강칠에게 삼만 냥이라는 어마어마한 포상금과 함께 팔도 인삼 무역권을 하사했습니다. 강칠은 단숨에 조선 팔도에서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거상이자 만석꾼 부자로 우뚝 섰습니다.

    비단옷을 입고 수많은 마차에 쌀과 재물을 가득 실은 채 고향 마을로 금의환향한 강칠은, 가장 먼저 삼 년 전 자신이 눈이 멀었을 때 집문서와 밭문서를 사기 쳐서 가로챘던 옛 악우들과 술집 작부를 찾아갔습니다. 눈을 번쩍 뜨고 어마어마한 거부가 되어 관원들과 함께 나타난 강칠을 보자, 악우들은 사시나무 떨듯 떨며 마당에 이마를 찧고 살려달라며 빌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어둠 속에서 큰 그릇의 의인으로 거듭난 강칠은 그들을 감옥에 넣거나 해치는 대신, 너그러운 미소로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고 정당한 값을 치른 뒤 부모님의 유산이었던 옛 집과 논밭을 당당히 되찾았습니다. 악우들은 강칠의 넓은 도량에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고 스스로 마을을 떠나 새사람이 되기로 맹세했습니다.

    그해 가을, 황금빛 벼가 익어가는 길일을 택해 마을에서 가장 크고 웅장하게 새로 지은 아흔아홉 칸 기와집 마당에서 강칠과 소월의 성대한 혼례식이 열렸습니다. 강칠은 사립문 밖 장터까지 수백 석의 햅쌀 가마니와 소 열 마리를 잡아 국밥을 끓여 놓고, 인근 고을의 가난한 소작농들과 홀로 사는 노인들, 심지어 지나가는 각설이들에게까지 사흘 밤낮으로 음식을 대접하고 쌀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예전에 강칠을 천하의 난봉꾼이라고 손가락질하며 욕하던 박 첨지와 마을 어른들도, 이제는 강칠의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칭송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허허, 옛날의 그 철없던 강칠이가 도깨비 영감님한테 회초리 한 번 맞고 눈을 뜨더니, 이제는 우리 고을 백성들을 다 먹여 살리는 살아있는 활불(活佛)이 되었구먼! 강칠이 자네 부모가 하늘에서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

    성대한 혼례식이 끝난 첫날밤, 촛불이 은은하게 타오르는 신방에서 고운 활옷을 입은 아내 소월과 마주 앉은 강칠은, 창문 너머 뒷산 폐암자 쪽 하늘에서 축복하듯 깜빡거리는 푸른 도깨비불 서너 개를 바라보며 가슴 벅찬 미소를 지었습니다.

    "부인, 내가 만약 삼 년 전 그날 밤에 두 눈을 잃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부인처럼 고귀한 여인의 진심은 알아보지도 못한 채 껍데기만 쫓아다니다가 비참하게 죽었을 것이오. 내 눈을 가려 부인의 따뜻한 마음을 먼저 보게 해준 저 산속의 도깨비님들이야말로 우리 부부의 가장 큰 중매쟁이요, 평생의 은인이십니다."

    소월은 강칠의 품에 살포시 안기며 아름다운 미소로 화답했습니다.

    "맞아요, 서방님. 우리 두 사람 평생 오늘의 이 고마움과 어둠 속에서 나눈 눈물을 잊지 말고, 도깨비 마님과 약속한 대로 세상 구석구석 어려운 이웃들의 눈물이 있는 곳마다 가장 먼저 달려가 빛이 되어주는 부부로 살아가요."

    그 후로도 강칠과 소월 부부는 금슬 좋게 아들 삼 형제와 딸 둘, 오 남매를 낳아 모두 훌륭한 인재로 키워냈으며, 평생 재물을 독차지하지 않고 가난한 백성들에게 논밭을 나누어 주는 큰 어른으로 존경받았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칠월 백중날 보름밤이 되면, 부부는 손수 쑨 가장 구수한 메밀묵과 막걸리, 그리고 아이들이 입을 예쁜 비단옷을 바리바리 싸 들고 선녀탕 바위 위에 차려 올리며 도깨비 가족들과의 깊은 의리를 지키며 백 살까지 무병장수하며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한때의 어리석은 잘못을 진심으로 참회하고 선을 행하면, 하늘과 도깨비도 감동하여 어둠을 빛으로 바꾸고 천금의 복을 내려준다는 통쾌하고도 가슴 따뜻한 옛날이야기였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 들려드린 '눈먼 난봉꾼과 도깨비의 기적' 이야기, 재미있게 들으셨나요? 겉모습과 욕망에만 눈이 팔려 살던 청년이 모든 것을 잃은 어둠 속에서 비로소 진짜 소중한 사람의 마음과 나눔의 가치를 깨닫게 되었다는 점이 참으로 깊은 울림을 줍니다. 우리네 인생에서도 때로는 시련과 아픔이 찾아오지만, 그것이 결국 더 큰 복을 담기 위한 하늘의 뜻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이야기가 즐거우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그리고 따뜻한 댓글 한 줄 잊지 말아 주세요. 저는 다음 시간에도 더욱 흥미진진하고 유쾌한 고전 야담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늘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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