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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으며 도깨비를 만난 사내  , 웃음으로 운명을 바꾸다 (출처: 패관잡기)

    태그 (2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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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300자 내외):

    가진 것 하나 없어도 웃음을 잃지 않던 사내. 칠흑 같은 밤, 길을 잃고 만난 것이 하필이면 도깨비였습니다. "네놈의 간을 빼먹으러 왔다!" 서슬 퍼런 도깨비의 협박에, 사내는 울거나 비는 대신 박장대소를 터뜨립니다. 『패관잡기』에 실린 이 기묘한 만남이, 사내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었을까요?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패관잡기』에 기록된 '도깨비와 사내' 이야기를 '전설의 고향' 스타일로 각색한 오디오 드라마입니다. 시니어 분들의 편안한 청취를 위해 나레이션 80% 이상으로 구성했습니다. 무서운 도깨비를 만나고도, 절망적인 상황에서 터뜨린 웃음 한 번으로 인생을 바꾼 한 사내의 유쾌하고도 교훈적인 이야기.

    ※ 가난하지만 낙천적인 사내

    예로부터 이 땅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존재가 인간과 더불어 살아간다 하였습니다. 그중에서도 낡은 빗자루나 부지깽이, 혹은 오래된 짚신에 깃들어, 사람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거나 생각지도 못한 복을 주기도 한다는 '도깨비' 이야기는, 우리네 서민들의 고단한 삶과 가장 가까이에 있었지요. 이야기는, 조선 중기, 경상도 땅 어느 산골 마을에 살던 '박 서방'이라는 사내로부터 시작됩니다.

    박 서방이라 하면,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혀를 끌끌 차면서도, 이내 피식하고 씁쓸한 웃음을 짓곤 했습니다. 그는 마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지독히도 가난했습니다. 삼대가 한방에 살던 낡은 초가집은, 비가 오면 방 안에서도 삿갓을 써야 할 정도로 지붕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고, 가을 추수가 끝나도 쌀독에 쌀알 구경하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그 흔한 닭 한 마리 키우지 못해, 이웃집에서 새벽닭 우는 소리가 들리면,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아이고, 저놈 참 목청 한번 좋네" 하며 입맛만 다실 뿐이었지요.

    그런데 참으로 기이한 것은, 이토록 곤궁하고 절망적인 삶 속에서도 박 서방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밭에서 김을 매다가도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허허, 이놈의 돌멩이가 나랑 씨름 한번 하자는 게로구나" 하며 웃었고,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잠자리에 들면서도 "허허, 오늘 밤은 배가 가벼워 잠이 잘 오겠구먼" 하며 웃었습니다. 아내가 "당신은 뭐가 그리 좋아서 실실 웃기만 하시오! 당장 내일모레 늙으신 어머님 생신인데, 쌀 한 톨 없는 거 안 보이시오!" 하고 눈물지으며 바가지를 긁으면, 그는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허허, 그래도 어쩌겠소. 마누라. 인상 쓴다고 쌀이 나오나, 금이 나오나. 우리가 울상 짓고 있으면 복도 '에이, 저 집은 재수 없어' 하고 피해 가지 않겠소. 이렇게 웃다 보면, 언젠가 복도 '저 집은 참 재미있는 집이네' 하고 웃으면서 찾아오지 않겠소" 하고 대꾸할 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보고 '굶더니 실성했다'고 손가락질하기도 했고,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박 서방의 그 웃음은, 실성한 것도, 도가 튼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피할 수 없는 절망적인 삶을 버텨내는 그만의 방식이요, 가난에 찌들어 꺾이지 않으려는, 그가 가진 마지막 자존심이었습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늦가을, 쌀은 이미 바닥난 지 오래고, 당장 며칠 뒤에 있을 늙은 노모의 생일상을 차릴 길이 막막했습니다. 박 서방은 이른 새벽부터 지게를 지고 산에 올라, 마른 나무를 한가득 해가지고 닷새 만에 열리는 장터로 나갔습니다. 하지만 웬일인지 장터는 썰렁하기만 했고, 그의 나무는 해가 저물도록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허허, 이놈의 나무가 오늘따라 꽤나 무겁구먼. 장터 구경 잘 시켜줬으니, 이젠 내가 업고 가야지. 내일은 더 가벼운 놈으로 해 와야겠네." 그는 결국 팔지 못한 나무를 그대로 지고, 빈손으로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야 했습니다. 텅 빈 뱃속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고, 집에서 기다릴 아내와 노모의 얼굴이 떠올라 가슴 한구석이 아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 으스스한 달밤의 귀갓길

    장터에서 마을까지는 족히 스무 리가 넘는, 꽤나 먼 길이었습니다. 특히 길 중간에는 '여우고개'라 불리는 험한 고개가 하나 있었는데, 이곳은 예로부터 온갖 기묘한 일들이 벌어지는 곳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낮에도 으스스한 기운이 감돌아, 웬만한 장정들도 혼자 넘기를 꺼리는 곳이었지요. 전해지는 말로는, 길 가던 나그네가 홀연히 사라지기도 하고, 멀쩡하던 사람이 고개만 넘고 오면 넋이 나가 바보가 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물며 둥근 달이 휘영청 떠오른 이 늦은 밤에 그곳을 넘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간이 배 밖에 나온 짓이었습니다.

    박 서방이 여우고개 초입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사방이 칠흑 같은 어둠에 잠기고, 오직 스산한 달빛만이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땅바닥에 기괴한 그림자를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허허 오늘따라 달이 참 밝구먼. 길동무 해주는 이가 달님뿐이니, 이 또한 복이라 해야 하나." 박 서방은 애써 태연한 척 중얼거렸지만,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귓가에는 멀리서 부엉이가 "부엉 부엉" 하고 우는 소리가, 마치 "돌아가 돌아가" 하고 속삭이는 듯했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 스치는 소리가, 마치 수백 명의 원혼이 흙바닥을 기어 다니는 소리처럼 오싹하게 들려왔습니다.

    박 서방은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이 고개만 넘으면 집이다. 어서 가서, 마누라가 끓여줄 뜨끈한 숭늉이라도 마셔야겠다." 그가 한참 고개를 오르고 있을 때였습니다. 분명 십 년 넘게 나무하러 다니며 눈 감고도 다닌 익숙한 길인데, 어찌 된 일인지 풍경이 낯설게만 느껴졌습니다. 길가에 으레 있어야 할 큰 바위가 보이지 않았고, 분명 왼쪽으로 굽어야 할 길이 느닷없이 오른쪽으로 뻗어 있었습니다. "허 이것 참. 내가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길을 잘못 들었나" 그는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하지만 사방은 온통 비슷한 모양의 소나무뿐, 도무지 방향을 가늠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한참을 걸어도, 그는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이게 그 말로만 듣던 '도깨비 장난'인가!"

    박 서방의 등골이 오싹해졌습니다. 그는 어릴 적 할머니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이 여우고개에는, 버려진 낡은 짚신에 깃든 도깨비가 사는데, 그 도깨비가 심술이 나면 이렇게 길을 잃게 만들다가,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다고 했습니다. 박 서방은 덜컥 겁이 났습니다. "허허, 도깨비님, 혹시 계시면 제발 소인, 집에 늙은 노모와 처자식이 굶주리고 있습니다. 가진 것이라곤 이 지게 위의 나무뿐인데, 이것도 오늘 팔지 못했소이다. 가난한 놈 놀려봐야, 도깨비님 명성에 흠집만 날 뿐입니다. 그러니 제발 길 좀 열어주시오"

    그가 애처롭게 빌고 있던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저 멀리, 어둠 속에서 푸르스름한 불빛 두 개가 일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불빛은 마치 살아서 춤을 추듯, 박 서방의 주위를 맴돌았습니다. 도깨비불이었습니다. "아이고 아이고, 맙소사!" 박 서방은 공포에 질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그의 앞길을 무언가 거대한 것이 가로막았습니다. 달빛을 등지고 서 있어 형체는 분명치 않았으나, 적어도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 거구였고, 온몸에서 젖은 흙냄새와 짐승의 털 냄새, 그리고 곰팡내가 진동했습니다.

    ※ 길을 가로막은 도깨비

    박 서방은 감히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고, 이가 딱딱 부딪혀 "딱딱" 소리가 났습니다. "아이고 살려주십 살려주십시오 소인은 그저" 그는 본능적으로 엎드려 빌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앞에 선 존재는, 그저 묵묵히 그를 내려다볼 뿐이었습니다. '후우' 하고 짐승이 숨을 내쉬는 듯한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습니다. 정적이 흘렀습니다. 스산한 바람 소리, 나뭇가지가 긁히는 소리, 그리고 박 서방의 거친 숨소리만이 고갯마루를 채웠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박 서방은 이대로 얼어 죽거나, 심장이 터져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는 용기를 내어, 실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았습니다.

    달빛이 마침 구름을 벗어나자, 그 존재의 모습이 어렴풋이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키는 장정 둘을 합친 것보다 컸고, 온몸은 헝클어진 털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머리에는 뿔이 돋아 있었는지, 갓을 쓴 듯 뾰족한 것이 솟아 있었고, 두 눈은 캄캄한 밤에도 숯불처럼 이글거리고 있었습니다. 얼굴은 털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으나, 삐죽 튀어나온 송곳니가 달빛에 하얗게 번뜩였습니다. 손에는 사람의 팔뚝만 한, 울퉁불퉁한 옹이가 박힌 방망이 하나를 들고 있었습니다. "네 네놈은 그 소문으로만 듣던 여우고개 도 도깨비로구나!" 박 서방이 외쳤습니다.

    그러자 그 거대한 도깨비가, 수백 년 묵은 고목이 갈라지는 듯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크크크 이제야 알아보았느냐. 그래, 내가 이 여우고개를 지키는 도깨비다. 네놈, 감히 이 늦은 밤에, 내 허락도 없이 이 고개를 넘으려 했더냐?" 도깨비의 목소리는 산 전체를 울리는 듯했습니다. 박 서방은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필사적으로 빌었습니다. "도 도깨비님 소인이 소인이 정녕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굶주린 처자식 생각에, 밤길을 재촉하다 보니 그만" "시끄럽다!" 도깨비가 들고 있던 방망이로 바닥을 '쿵' 하고 내리치자, 땅이 흔들리고 바위가 굴러떨어졌습니다. "나는 네놈의 사정 따위는 관심 없다! 이 고개를 넘는 자, 나와 씨름을 한판 벌여야 하는 것이 이 고개의 법도이니라!"

    씨름. 도깨비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이자, 인간을 시험하는 그들의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박 서방은 뼈만 앙상한, 바람 불면 날아갈 듯한 사내였습니다. "도깨비님! 제발 소인은 소인은 씨름을 할 줄 모릅니다. 보시다시피 힘이라곤 쌀 한 가마니 제대로 들어본 적 없는 약골입니다. 저 같은 놈과 씨름해봐야 도깨비님 손만 더러워질 뿐입니다." "흥! 씨름이 싫다면 좋다. 네놈이 가진 것 중에 가장 귀한 것을 내놓아라. 만약 내 마음에 든다면, 이 길을 열어주겠다." 도깨비가 음흉하게 웃었습니다. 박 서방은 절망했습니다. 가장 귀한 것. 그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도깨비님 보시다시피 소인은 빈털터리입니다. 오늘 장에 가져간 나무도 팔지 못하고 가진 것이라곤 이 지게와 나무뿐입니다." "빈털터리라고?" 도깨비는 박 서방의 남루한 행색을 위아래로 훑어보았습니다. 냄새나는 짚신, 구멍 난 바지, 앙상한 뺨. 그리고는 이내 역정을 냈습니다. "이런 쓸모없는 놈! 재물도 없고, 힘도 없고 그럼 네놈은 대체 가진 것이 무엇이냐! 에잇, 괘씸하다! 내 시간을 낭비하게 하다니, 재미없다! 재물도 없고, 힘도 없으면 네놈의 '간'이라도 빼먹어야겠다! 이리 오너라!" 도깨비가 거대한 손을 뻗어 박 서방의 멱살을 움켜쥐려 했습니다.

    ※ 절망 속의 박장대소

    모든 것이 끝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박 서방의 눈앞으로, 그의 곤궁하고 서러웠던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울던 아이들의 얼굴, 자신 때문에 평생 고생만 한 아내의 핼쑥한 얼굴, 그리고 내일모레, 쌀밥 한 그릇 못 받고 눈을 감을지도 모를 늙은 노모의 얼굴. 그는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아 이대로 죽는구나. 평생 남에게 해코지 한번 안 하고, 그저 웃으며 살려 애썼건만 내 팔자는 결국 이 으스스한 여우고개에서 도깨비에게 간을 빼먹히고 죽을 팔자였구나.'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습니다.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서러움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던 그 순간, 박 서방의 머릿속에 아주 기묘하고도 생뚱맞은 생각이 하나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잠깐 내 간이라고? 도깨비가 내 간을? 내 간 맛이 어떨까? 평생 좋은 음식 한번 못 먹고, 쓴물만 삼키며,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살아왔는데 내 간이 과연 맛이나 있을까? 아니, 그전에 나같이 재수 없고 박복한 놈의 간을 먹으면, 저 도깨비도 재수가 없어져서 배탈이 나는 것 아닐까?'

    이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박 서방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하고 실소가 터져 나왔습니다. 도깨비가 그를 움켜쥐려던 거대한 손을 멈칫했습니다. "네놈 지금 웃었느냐?" 박 서방은 고개를 들었습니다. 자신을 죽이려 하는 도깨비의 험상궂은 얼굴과, 자신의 이 기가 막힌 처지가 너무나도 어처구니없게 어우러져, 그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푸 푸하하하! 아이고, 배야! 크하하하하하!" 박 서방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배를 잡고 구르며 웃기 시작했습니다. 공포도 잊고, 서러움도 잊고, 그저 웃었습니다. 눈물이 쏙 빠지도록, 숨이 넘어가도록 웃었습니다.

    도깨비는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당황하여 뒷걸음질 쳤습니다. "네 네 이놈! 미 미쳤느냐! 내가 지금 네놈의 간을 빼먹겠다는데, 웃음이 나와? 정녕 실성을 했구나!" 수천 년간 수많은 인간을 만나봤지만, 이런 반응은 처음이었습니다. 인간들은 보통 울고불고 빌거나, 오줌을 지리며 기절하거나, 혹은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것이 정상이었습니다. "아이고 도깨비님 미안합니다 푸하하 아, 그게 아니라" 박 서방은 겨우 웃음을 참고, 웃다가 나온 눈물을 닦으며 말했습니다. "아이고, 도깨비님. 저야말로 여쭙고 싶습니다. 제 간이 제 간이 그렇게 탐이 나십니까? 장담하건대, 제 간은 이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간일 텐데요?" "뭐 뭐라고?"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소인은 이 마을에서 제일 가는 빈털터리요, 제일 가는 박복한 놈입니다. 평생 술 한 잔, 고기 한 점 배불리 먹어본 적이 없소이다. 맨날 굶거나, 굶지 못하면 쓴 뿌리나 캐어 먹고 살았지요. 그런 놈의 간이 쓰디쓴 쓸개 물만 가득한 제 간이, 과연 도깨비님의 귀한 입맛에 맞으시겠습니까? 푸하하! 아마 제 간을 드시면, 도깨비님 분명히 배탈 나실 겁니다. 아이고, 배야" 박 서방은 다시 한번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 당황한 도깨비와 뜻밖의 대화

    도깨비는 완전히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의 커다란 숯불 같은 눈이 당혹감으로 이리저리 흔들렸습니다. 인간의 공포와 절망을 먹고사는 것이 도깨비의 낙이거늘, 이 사내는 그 어떤 공포도, 절망도 내어놓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모든 것을 '웃음'이라는 기묘한 것으로 되돌려주고 있었습니다. "네 네 이놈 어찌 어찌 죽음 앞에서 이리도 태연할 수 있느냐! 정녕 정녕 두렵지 않단 말이냐?" 도깨비의 목소리는 아까의 위엄은 간데없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박 서방은 흙바닥에 주저앉은 채, 자신을 내려다보는 도깨비를 올려다보며, 너털웃음을 멈추지 않고 말했습니다. "두렵지요. 어찌 안 두렵겠습니까. 지금도 다리가 후들거려 일어설 수도 없고, 당장이라도 오금이 저려 오줌을 쌀 것만 같습니다. 허허. 하지만 도깨비님.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금 제 꼴이 너무 우스워서 웃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네 꼴이 우습다고?" 도깨비는 처음으로 인간의 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보십시오. 소인은 오늘 며칠 뒤 늙으신 노모 생일상에 올릴 미역 한 가닥이라도 사 보려고, 이른 새벽부터 나무를 해다 장에 갔습니다. 허나, 단 한 줌의 나무도 팔지 못하고, 이 무거운 지게를 지고 빈손으로 이 험한 고개를 넘고 있었습니다. 뱃속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난 지 오래고, 집에 가면 굶주린 처자식이 제 얼굴만 쳐다볼 텐데 눈앞이 캄캄했지요." 박 서방은 한숨 대신, 또 한 번 '허허' 하고 멋쩍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길까지 잃어버리고, 이 고개의 주인이라는 도깨비님까지 만났지 뭡니까. 그것도 모자라, 씨름을 하자시질 않나 가진 게 없다 하니 세상에서 제일 맛도 없는 내 간을 빼먹겠다 하시질 않나 아이고! 이거야말로 엎친 데 덮치고, 자빠진 놈 주저앉히는 격이 아닙니까! 크하하! 제 팔자가 제 팔자가 이토록 기구하고 재수가 없으니 이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박 서방은 서러움인지, 즐거움인지 모를 뜨거운 눈물을 훔쳤습니다. 도깨비는 방망이를 든 채, 그 기묘한 사내를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본래 짓궂기는 해도, 사악한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밤길 가는 인간들을 놀라게 하고, 그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는, 심심한 장난꾸러기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내는, 자신의 그 어떤 협박보다도 더 강력한 '웃음'으로 자신을 무장 해제시키고 있었습니다. 도깨비는 슬슬 이 사내가 무섭기는커녕,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허 참으로 참으로 별난 놈이로구나. 굶주리고, 빈털터리고, 곧 죽을지도 모르는데 웃다니. 네 이놈, 네놈은 '복'이라는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도깨비가 뜬금없이 철학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박 서방은 머리를 긁적였습니다. "복이라 글쎄요. 소인 같은 놈이 어찌 복을 알겠습니까. 남들은 자식 잘되고, 돈 많이 버는 게 복이라 하더이다만" 박 서방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다시 '허허' 웃었습니다. "소인이 생각하는 복은 별거 아닙니다. 오늘 이렇게 팔지도 못할 나무 지고 집에 가다가, 길을 잃었는데 덕분에 이렇게 달 구경 실컷 했지요. 또, 평생 만나볼 일 없는 도깨비님 만나서 제 신세 한탄이라도 실컷 하고 이렇게 배를 잡고 웃어본 것이 이것도 복이라면 복이 아니겠습니까? 허허."

    그 대답은, 도깨비가 수천 년간 그 어떤 인간에게서도 들어보지 못한, 가장 기이하고도 순박한 대답이었습니다. 도깨비는 그만 자신도 모르게 '큭큭' 하고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웃음소리는 마치 녹슨 쇠문이 열리는 듯, 삐걱거리고 기괴했습니다. "큭 크크큭 네 이놈 네놈의 그 웃음이 수천 년 묵은 나를 나를 웃게 만들었구나!"

    ※ 도깨비의 선물

    한바탕 기괴한 웃음을 터뜨린 도깨비는, 기분이 퍽이나 좋아진 듯했습니다. 그의 숯불 같던 눈도, 아까의 살기 대신 장난기 어린 빛으로 반짝였습니다. "좋다! 네놈. 박 서방이라고 했더냐. 마음에 들었다. 아주, 아주 마음에 들었어! 평생 울상만 짓고, 남 탓만 하며, 복을 달라고 비는 놈들은 수없이 보았으나 네놈처럼 제 팔자를 안주 삼아 웃어젖히는 놈은 네가 처음이다. 그래, 네놈의 말대로 네 간은 아주 맛이 없을 것 같구나. 크크크."

    도깨비는 들고 있던 울퉁불퉁한 방망이를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무언가를 결심한 듯했습니다. "씨름도 싫다 재물도 없다 간도 맛없어 보인다 에잇, 이 고개를 넘으려면 무언가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 허나, 오늘은 내 기분이 좋으니 거꾸로 내가 네놈에게 선물을 하나 주어야겠다." "예? 서 선물을 주신다고요?" 박 서방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도깨비에게 홀린 것도 모자라, 이제 헛것이 들리나 싶었습니다.

    "그래. 네놈의 그 값비싼 웃음에 대한 보답이다. 네놈은 나를 웃게 만들었으니 나도 네놈을 한번 웃게 만들어 주어야지. 자, 받아라!" 도깨비는 자신이 들고 있던 그 낡고 울퉁불퉁한 방망이를 박 서방의 발치에 '툭' 하고 던졌습니다. 박 서방은 멀뚱히 그 방망이를 바라보았습니다. 그것은 방망이라기보다는, 그저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옹이가 잔뜩 박히고 벌레가 파먹은, 볼품없는 나뭇가지 토막처럼 보였습니다. "저 도깨비님 이것은?" "그것 말이냐? 크크 그냥 낡은 방망이다." 도깨비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쓸모가 있을지 없을지는 네놈의 복에 달렸지. 어떤 놈은 이걸로 쌀을 내기도 하고, 어떤 놈은 이걸로 금을 내기도 한다더구나. 뭐, 네놈은 이걸로 기껏해야 밭에 말뚝이나 박을지도 모르지! 크하하!"

    도깨비는 박 서방에게서 눈을 뗐습니다. "어서 줍거라! 그리고 다시는 이 밤에 내 고개를 넘지 마라. 나는 네놈처럼 웃기는 놈보다는, 울고불고 비는 놈이 더 재미있단 말이다. 다음번에 만나면 네 간이 아무리 맛없어 보여도, 정말로 맛을 볼지도 모르니! 훠이, 어서 가거라!" 도깨비는 그렇게 말하며, 바람처럼, 연기처럼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가 사라지자, 박 서방을 맴돌던 도깨비불도, 그를 가로막았던 보이지 않던 벽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박 서방의 눈앞에는, 그가 늘 다니던 달빛 환한 익숙한 고갯길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박 서방은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룻밤의 꿈처럼 느껴졌습니다. 땀으로 젖은 옷이 차가운 밤바람에 식어갔습니다. 하지만 그의 발치에는, 도깨비가 던져준 것이 분명한 그 낡고 옹이 박힌 방망이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허허 이것 참 기묘한 밤이로구나. 도깨비에게 간을 빼앗길 뻔했다가 웬 몽둥이 하나를 얻었으니 이걸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그는 팔지 못한 나무 지게 위에, 그 낡은 방망이를 덤으로 얹었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집에 땔감이 하나 더 늘었으니, 이것도 복이라면 복이겠지." 그리고는 다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왠지 아까보다 훨씬 가벼워진 걸음으로 집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 웃음이 가져다준 복

    박 서방이 집에 도착했을 때는, 닭이 첫울음을 울기 직전이었습니다. 아내는 밤새 한숨도 못 자고, 눈이 퉁퉁 부어 대문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영감! 이제야 오는 거요! 밤새 무슨 일이 있었나 싶어 호랑이라도 만난 줄 알고" 아내는 박 서방의 무사한 모습에 안도했지만, 이내 그의 지게에 웬 쓸모없어 보이는 낡은 방망이가 하나 얹혀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울화가 터졌습니다. "아니 나무는 그대로지고 이 쓸모없는 몽둥이는 또 뭐요! 정말 당신은 평생 그렇게 웃고만 다닐 거요! 늙으신 어머님은!"

    박 서방은 아내를 달래며, 헛기침을 했습니다. "허허, 마누라 진정하시오. 오늘 밤 내가 아주 기묘한 일을 겪었소. 아마 우리 팔자가 이제야 좀 피려나 보오." 그는 아내를 방 안에 앉히고, 밤새 겪었던 도깨비 이야기를 간이 빼먹힐 뻔했던 아찔한 순간과, 그 와중에 터져 나온 웃음, 그리고 도깨비가 선물이라며 던져준 방망이 이야기까지 모든 것을 낱낱이 들려주었습니다. 아내는 처음에는 "당신이 굶더니 드디어 실성을 했구려! 헛것을 봤어!" 하며 믿지 않았지만, 박 서방의 진지한 눈빛과, 그가 내민 옹이 박힌 방망이를 보고는 이내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박 서방은 그 낡은 방망이를 들었습니다. "글쎄 이게 정말 복을 주는 물건일까 도깨비가 나 같은 놈을 놀린 게 아닐까" 그는 반신반의하며, 텅 비어 바닥만 남은 쌀독을 향해 방망이를 들고 중얼거렸습니다. "도깨비님이 주신 방망이라 밑져야 본전이니 쌀 쌀이나 한 됫박 나왔으면 좋겠구먼! 쌀 나와라, 뚝딱!" 그리고는 방망이로 쌀독 바닥을 '딱!' 하고 내리쳤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내의 얼굴이 실망으로 일그러졌습니다. "그것 보시오. 도깨비가 당신을" 박 서방은 머리를 긁적였습니다. "허허, 이상하다. 내가 너무 조용히 말했나" 그는 도깨비를 만났을 때처럼, 크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푸하하! 에라, 모르겠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이번에는 신명 나게 방망이로 쌀독을 '땅!' 하고 내리쳤습니다. "쌀 나와라, 뚝딱!"

    그러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텅 비어 있던 쌀독 안으로, 하얀 쌀알이 '쏴아아' 소리를 내며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아 아니!" 박 서방과 아내는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쌀은 순식간에 독을 가득 채우고도 넘쳐흘러, 방바닥을 하얗게 덮었습니다. "여 여보! 금 금은보화! 돈! 돈이라고 해보시오!" 아내가 다급하게 외쳤습니다. 박 서방은 떨리는 손으로 방망이를 다시 들고, 이번에는 엽전을 떠올리며 외쳤습니다. "그 그럼 돈 나와라, 뚝딱!" 방망이로 바닥을 내리치자, 이번에는 번쩍번쩍 빛나는 엽전이 방바닥에 '와르르' 쏟아졌습니다. "아이고! 세상에! 이게 꿈이냐, 생시냐!" 박 서방과 아내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날 이후, 박 서방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는 도깨비 방망이로, 가장 먼저 늙은 노모를 위해 비바람 새지 않는 따뜻한 새 집을 내었습니다. 그리고 굶주린 아이들을 위해 기름진 쌀밥과 고깃국을 내었습니다. 아내에게는 고운 비단옷을 지어주었지요. 하지만 박 서방은 결코 탐욕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딱, '남들만큼만' 춥지 않고, 굶지 않고 살 수 있을 정도의 재물만을 구했습니다. 아내가 "이왕이면 저 김 대감 댁 같은 큰 기와집을" 하고 말할 때면, 박 서방은 "허허, 마누라. 도깨비님이 나에게 이걸 준 것은, 내 웃음 값이오. 탐욕 값이 아니오. 만약 우리가 탐욕을 부리면 그땐 도깨비님이 정말로 내 간을 가지러 올지도 모르오. 큭큭." 하며 웃어넘겼습니다. 그는 남은 재물로, 자신보다 더 가난한 이웃들에게 쌀을 나누어주고, 장마철마다 끊어지던 마을 다리를 새로 놓고, 가뭄을 대비해 우물을 파주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예전처럼 "허허" 하고 웃었고, 마을 사람들은 그를 '웃음 부자', '박 부자'라고 부르며 존경했습니다. 박 서방은 깨달았습니다. 도깨비가 그에게 준 것은 재물이 아니라, 그의 '웃음'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준, 기회였다는 것을 말입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의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패관잡기』에 실린, 절망의 순간에 터뜨린 웃음으로 운명을 바꾼 박 서방의 이야기였습니다. 도깨비는 어쩌면, 우리의 약한 마음을 시험하는 '시련'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박 서방은 그 시련 앞에서 울거나 절망하는 대신, 자신의 처지를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웃음'을 택했습니다. 그 웃음이, 무서운 도깨비마저 감복시키고, 뜻밖의 복을 가져다준 것이지요.

    어르신들의 삶에도, 박 서방처럼 뜻밖의 시련이 닥쳐올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쓴웃음이라도 한번 "허허" 웃어넘기셨던 그 지혜가, 어쩌면 우리를 지켜준 도깨비 방망이는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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