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도깨비가 감동한 농부의 땀 , 네 땀 한 방울이 황금이 되리 『동국여지승람』
태그 (20개)
#조선시대, #야담, #도깨비, #해피엔딩, #권선징악, #동국여지승람, #전설의고향, #오디오드라마, #시니어, #스르륵잠드는이야기, #착한농부, #황금논, #복, #도깨비터, #지혜, #교훈, #민담, #설화, #우정, #행운
조선시대, 야담, 도깨비, 해피엔딩, 권선징악, 동국여지승람, 전설의고향, 오디오드라마, 시니어, 스르륵잠드는이야기, 착한농부, 황금논, 복, 도깨비터, 지혜, 교훈, 민담, 설화, 우정, 행운


후킹멘트 (300자 내외)
"저주받은 땅이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그 뻘밭 가난하지만 착한 농부 박 서방은, 그곳이 '도깨비 터'인 줄 알면서도 쟁기를 잡았습니다. '도깨비님, 저와 이 땅을 함께 농사짓지 않으시렵니까?' 그날 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농부의 진심에 응답한 도깨비. 과연 박 서방은 황금 논을 선물 받을 수 있었을까요?"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동국여지승람』에 실린 한 고을의 기이한 전설. 척박한 땅을 일구던 착한 농부의 진심에 감동한 도깨비 이야기입니다. "네 땀 한 방울, 네 쌀 한 톨이 헛되지 않게 하마." 도깨비가 선물한 것은 금은보화가 아닌, 땀의 가치를 아는 '황금 논'이었습니다. 선한 마음이 불러온 기적. 오늘 밤, 스르륵 잠들게 해 줄 따뜻한 이야기 한 편 들려드립니다.
※ 가난 속의 선행
옛날, 조선 어느 산골 마을에 박 서방이라 불리는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박 서방은 성실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웠지만, 어찌 된 일인지 지지리 복도 없었습니다. 물려받은 땅 한 뼘 없었고, 남의 땅을 빌려 근근이 입에 풀칠하며 늙은 노모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그해따라 가뭄은 어찌나 지독한지, 봄부터 타들어 가기 시작한 논바닥은 거북이 등껍질처럼 쩍쩍 갈라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도 그늘이 깊어졌고, 인심은 날로 흉흉해졌습니다.
박 서방의 사정은 더욱 말이 아니었습니다. 며칠을 굶다시피 한 노모는 기침 소리마저 잦아들었고, 쌀독 바닥을 긁어모은 마지막 한 줌의 쌀알이 오늘 그의 전 재산이었습니다. 그는 그 쌀을 씻어, 노모를 위해 묽은 죽을 쑤려 했습니다. 쌀알보다 물이 더 많은 죽이었지만, 그것이라도 드셔야 노모가 기력을 차릴 터였습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려는데, 사립문 밖에서 웬 아이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흐흐흑... 엄마... 배고파... 밥 줘..."
돌아보니, 이웃집 과부댁의 어린 아들이었습니다. 과부댁은 남편을 일찍 여의고 삯바느질로 연명했는데, 가뭄에 일감마저 끊겨 사흘을 굶었다고 했습니다. 아이는 깡마른 손으로 제 배를 움켜쥐고, 흙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습니다. 박 서방은 차마 그 모습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잠시 망설였습니다. 이 죽을 내어주면, 오늘 밤 노모와 자신은 물로 배를 채워야 합니다. 하지만 저 어린것이 굶주려 우는 소리를 들으며, 어찌 목구멍으로 죽을 넘길 수 있단 말입니까.
박 서방은 조용히, 솥에 끓고 있던 그 마지막 쌀죽을 그릇에 퍼 담았습니다. 그리고는 아이의 곁으로 다가가, 그 작은 손에 그릇을 쥐여주었습니다. "얘야, 이거라도... 어서... 네 어미와 나눠 먹거라. ...뜨거우니 조심하고." 아이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이 흉년에, 누가 선뜻 먹을 것을 내어준단 말입니까. "어서... 어서 가거라." 박 서방의 재촉에, 아이는 고맙다는 말도 잊은 채, 그릇을 품에 안고 제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박 서방은 그 뒷모습을 보며, 텅 빈 제 배를 움켜쥐고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래... 내 한 끼 굶는다고 죽기야 하겠나. 하지만... 내일은... 내일은 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그의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는 늙은 노모에게는 "이웃집에서 밥을 얻어먹어 배가 부르다"고 둘러대고, 맹물 한 사발을 들이켰습니다. 하지만 노모는 아들의 속을 빤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 못난... 어미... 때문에... 네가... 흑..." 노모의 눈물에, 박 서방의 마음은 더욱 찢어졌습니다. '안 된다. 이대로 굶어 죽을 수는 없다. 뭐라도... 뭐라도 해야 한다.' 그는 낡은 지게를 짊어지고 밖으로 나섰습니다. 땔감이라도 해다 장에 내다 팔아, 쌀 한 톨이라도 사 올 심산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마을 뒷산은 헐벗어, 땔감조차 구하기 힘들었습니다. 그가 망연자실하게 산 중턱에 서 있을 때, 그의 눈에... 마을에서 유일하게,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그 땅'이 들어왔습니다.
※ 저주받은 땅, '도깨비 뻘밭'
그 땅은 마을 어귀, 산비탈 아래쪽에 넓게 펼쳐진 뻘밭이었습니다. 겉보기에는 물기도 촉촉하고, 흙도 검붉은 것이 제법 기름져 보였습니다. 다른 밭은 모두 말라붙었는데, 유독 그곳만은 늘 축축했습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 중 그 누구도, 아니, 이 고을에 수백 년을 살아온 그 어떤 가문도 그 땅에 쟁기질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곳은 대대로 '도깨비 터' 혹은 '도깨비 뻘'이라 불리는 곳이었습니다.
"거기 잘못 건드리면 큰일 나네!" "밤마다 도깨비불(鬼火)이 수십 개씩 날아다니고, 덩치 큰 놈들이 씨름을 하느라 쿵쿵 땅이 울린다지." "욕심 많은 김 영감이 거기다 밭을 갈겠다고, 장정들을 사서 쟁기질을 시켰다가 그 장정 셋이 다음 날 다리몽둥이가 부러진 채 발견되지 않았나. 김 영감은 그 길로 시름시름 앓다 죽었지." "그뿐인가? 3년 전에는 외지 상인이 그 땅이 기름져 보인다고, 멋모르고 콩을 심었다가 밤새 콩알이 모조리 돌멩이로 변했더라는 게야."
마을 사람들은 그 땅을 쉬쉬하며, 낮에도 그 곁을 지날 때는 침을 뱉고 빠른 걸음으로 지나쳤습니다. 그 땅에서 자라는 억센 갈대조차 베어 가는 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박 서방에게는 그런 괴담(怪談)을 따질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는 '도깨비 뻘'을 내려다보며, 마른침을 삼켰습니다. '굶어 죽으나, 도깨비에게 홀려 죽으나 죽는 것은 매한가지다. 차라리 저 기름진 땅에 땀이라도 쏟아보고 죽으리라. 죽더라도, 쟁기 한번 잡아보고 죽으리라.'
그는 결심했습니다. 다음 날 새벽, 박 서방은 집에서 유일하게 값나가는 물건이었던,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찌그러진 놋그릇 하나를 들고 장터로 나갔습니다. 노모가 시집올 때 가져온, 마지막 남은 가보였습니다. 그는 그것을 눈물을 머금고 팔아, 거친 메밀로 빚은 떡 한 덩이와, 탁주(濁酒) 중에서도 가장 독하다는 막걸리 한 병을 샀습니다. 그는 곧장 도깨비 뻘로 향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노모를 굶겨 죽일 셈이냐고 혀를 찼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뻘밭이 시작되는 가장 큰 너럭바위 위에, 정갈하게 짚을 깔고, 막걸리를 따르고 떡을 올렸습니다. 그리고는, 넙죽 큰절을 올렸습니다. "도깨비님이시든, 산신령님이시든 혹은 이름 모를 이 땅의 주인이시든 가난한 농부 박 서방이, 감히 고하나이다." 그는 흙바닥에 이마를 댄 채, 진심을 다해 말했습니다. "저는 늙으신 어머님을 모시고 있으나, 쌀 한 톨이 없어 곧 굶어 죽을 지경이옵니다. 이 땅이 도깨비님의 터전인 줄은 아오나 부디 저의 이 딱한 사정을 헤아려 주시옵소서. 저에게 이 땅을 경작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그는 다시 한번 절을 올렸습니다. "허나, 공짜로 빌려달라는 것이 아니옵니다. 저는 도깨비님과 '동업(同業)'을 하고자 합니다. 제가 이 뻘밭을 제 피와 땀으로 옥토(沃土)로 만들겠사옵니다. 그리하여 가을에 수확을 거두거든, 그 수확의 7할은 도깨비님께 기꺼이 바치고, 저는 저와 제 어미의 목숨을 이을 3할만 가져가겠나이다. 부디 저의 이 제안을 받아주시옵소서!"
그는 진심이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기에, 오히려 담대했습니다. 그저 땀 흘릴 기회라도 얻고 싶었습니다. 그는 한참을 엎드려 있다가, 조용히 일어나 낡고 무뎌진 쟁기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조선 팔도에서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던 그 저주받은 뻘밭에 '이-익!'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첫 쟁기질을 시작했습니다.
※ 도깨비의 등장과 동업 제안
쟁기질은 생각보다 아니, 상상했던 것보다 수십 배는 더 힘들었습니다. 겉보기와는 달리, 뻘밭의 흙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차지고 무거워, 쟁기날이 깊게 박히지 않고 겉돌았습니다. 흙 속에는 수백, 수천 년간 엉긴 억센 갈대 뿌리가 쇠심줄처럼 얽혀 있어,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이 마치 천근만근 바위를 끌고 가는 듯했습니다. 며칠을 굶은 박 서방의 뱃가죽은 등에 붙었고, 등줄기에서는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가 차가운 바람에 식어 한기(寒氣)가 돌았습니다. '이러다 정말 쟁기를 잡은 채로 쓰러지는 게 아닌가.' 하지만 그는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가 쓰러지면 늙은 노모도 함께 쓰러지는 것이었습니다.
해는 이미 서산 너머로 지고,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벌써 저녁밥을 짓고 늙은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전에 문을 걸어 잠그고 잠자리에 들 시간. 하지만 박 서방은 쟁기를 놓지 않았습니다. 희미한 달빛에 의지해, 그는 묵묵히 밭을 갈았습니다. 그의 거친 숨소리만이 적막한 뻘밭을 울렸습니다. '한 뼘만 더 한 뼘만 더 이 땀 한 방울이 쌀 한 톨이 되리라.'
그때였습니다.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어디선가 퀴퀴하고 비릿한 냄새가 훅 끼쳐 왔습니다. 안개가 자욱하게 뻘밭을 감쌌습니다. 요란하게 울어대던 풀벌레 소리와 개구리 울음소리가 일순간 '뚝' 그치고, 사방이 기묘한 정적에 휩싸였습니다. 박 서방은 쟁기를 쥔 채 숨을 죽였습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왔구나.' 그는 직감했습니다. 이 땅의 '주인'이 자신을 찾아왔음을.
"쿵 쿵 쿵" 땅이 울리는 듯한 거대한 발소리가 안개 속에서 들려왔습니다.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이윽고, 그의 바로 앞에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났습니다. 달빛을 등지고 서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그 키가 장정 둘을 합친 것보다 컸고, 떡 벌어진 어깨는 황소 두 마리를 합친 듯 우람했습니다. 그리고 머리에는 영락없는 '뿔'이 두 개 솟아 있었습니다. 도깨비였습니다.
"네 이놈 박 서방!" 도깨비의 목소리는 수백 년 묵은 바위가 갈라지는 듯 낮고 무거웠습니다. "네가 정녕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내 아늑한 놀이터에 이 흉측한 쇳덩이를 들이 미느냐!" 도깨비는 당장이라도 박 서방을 한 손에 움켜쥐어 찢어 죽일 듯이 노려보았습니다. 그의 두 눈에서는 푸른 도깨비불이 이글거렸습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거나 오줌을 지리고 정신을 잃었을 터. 하지만 박 서방은 며칠 굶은 탓에 공포를 느낄 기력조차 없었습니다. 아니, 그는 이미 죽음을 각오한 터였습니다. 그는 조용히 쟁기를 놓고, 땀과 흙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도깨비를 향해 다시 큰절을 올렸습니다.
"훔치러 온 것이 아니옵니다, 도깨비님." "뭐라고?" 도깨비는 의외의 반응에 멈칫했습니다. 보통 인간들은 비명을 지르기 마련인데, 이놈은 절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분명 오늘 새벽, 도깨비님께 '동업'을 제안 드렸습니다. 이 놀고 있는 뻘밭을 옥토로 만들어 수확의 7할을 바치겠다고 말입니다. 제 정성이 부족하여 제안을 거절하시는 것이라면 차라리 이 목숨을 거두어 가십시오. 어차피 이대로 돌아가도 저와 제 어머니는 굶어 죽을 목숨입니다."
도깨비는 가만히 박 서방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수백 년을 이 땅에서 살았지만, 이런 인간은 처음 보았습니다. 자신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신기한데, 감히 '동업'을 이야기하다니. 게다가 그 눈빛 공포나 탐욕이 아닌, 그저 땀 흘릴 기회를 갈망하는 절박함과 '진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도깨비는 오늘 새벽, 바위 앞에서 진심을 다해 절을 하던 박 서방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그 막걸리 맛이 꽤 좋았던 것도 생각났습니다. 장난기가 발동했습니다.
"허허 동업이라 이놈 참으로 재미있는 놈이로구나." 도깨비가 무릎을 굽혀 박 서방과 눈을 맞췄습니다. "좋다. 그 당돌한 제안, 내 받아들일지 말지는 네가 나의 '시험'을 통과한 뒤에 결정하겠다. 네가 그 삐쩍 마른 몸뚱이로 나의 '동업자'가 될 자격이 있는지 어디 한번 보자꾸나."
※ 하룻밤의 씨름
박 서방은 축축한 흙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들었습니다. "시험이라니 무슨 시험이 말씀이십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도깨비가 그의 앙상한 모습을 보고 커다란 입을 열어 껄껄 웃었습니다. 그 웃음소리에 뻘밭의 갈대들이 파르르 떨렸고, 멀리 산 너머에서 메아리가 쳐 돌아왔습니다.
"다른 것이 아니다. 이 도깨비가 낮에는 낮잠을 자고 밤에는 노는 것이 일인데, 그중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로 '씨름'이거든. 네놈이 나와 씨름을 하여, 이 하룻밤 동안 나를 넘어뜨리거나, 혹은 넘어지지 않고 버텨낸다면 네놈을 내 동업자로 인정해 주마. 허나, 네가 만약 동이 트기 전에 내 손아귀에서 나가떨어진다면 그땐 네놈의 목숨은 물론이고, 이 뻘밭은 영원히 쌀 한 톨 나지 않는 저주받은 땅이 될 것이다. 어떠냐, 하겠느냐?"
박 서방은 제 다리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며칠을 굶고, 하루 종일 지옥 같은 쟁기질에 다리는 이미 사시나무처럼 후들거려 서 있기조차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저 산만 한 도깨비와 씨름이라니 결과는 보나 마나 뻔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었습니까?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섰습니다. 쟁기를 잡던 굳은살 박인 손을 앞으로 내밀어, 흙을 한 줌 쥐었다 털어냈습니다.
"하겠습니다. 도깨비님. 다만 제가 며칠을 굶어 힘이 없으니, 살살 다뤄 주시지요." "허허, 요 당돌한 놈 보게나. 죽기 직전에도 농을 던질 줄 알고! 좋다! 덤벼라!" 도깨비가 팔을 벌리자, 박 서방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그에게 달려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달걀로 저 너럭바위를 치는 격이었습니다. 박 서방이 도깨비의 허리춤, 즉 샅바 대신 두른 듯한 질긴 칡덩굴을 잡는 순간, 그것이 사람의 살이 아니라 수백 년 묵은 고목(古木)을 껴안은 것처럼 단단하고 차가웠습니다.
"이 잇!" 도깨비가 팔에 힘을 주자, 박 서방의 몸은 마치 지푸라기처럼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뻘밭에 내동댕이쳐졌습니다. "쿵!" 온몸의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습니다. 진흙이 입과 코로 들어가 숨이 막혔습니다. '아 안 된다' 도깨비가 비웃으며 다가왔습니다. "겨우 이 정도였느냐. 네놈의 진심이란 것이 고작 이 정도냐! 일어나라!"
박 서방은 피 맛이 나는 침을 뱉고, 다시 비틀거리며 일어섰습니다. 그는 이번에는 정면으로 부딪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소(牛)에게 배운 것을 떠올렸습니다. '이기려 하지 말자. 버티는 거다. 닭이 울 때까지만 버티는 거다!' 그는 도깨비가 햇빛에 약하며, 닭 울음소리를 들으면 힘이 빠진다는 옛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그는 이번에 낮게 포복(匍匐)하여, 도깨비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어, 그의 왼쪽 다리 한쪽을 있는 힘껏 움켜쥐고 늘어졌습니다. 마치 나무뿌리가 바위를 감싸듯 필사적으로 매달렸습니다. "이 벌레 같은 놈이! 어딜 감히!" 도깨비가 다리를 흔들며 그를 떼어내려 했습니다. 하지만 박 서방은 필사적이었습니다. 그것은 더 이상 씨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삶'에 대한 박 서방의 처절한 '의지'였고, 노모에 대한 '효심'이었습니다.
그는 도깨비의 다리에 매달려 뻘밭을 뒹굴었습니다. 진흙이 입과 코로 들어가도 그는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도깨비가 그를 떼어내려 바닥에 내리치면, 그는 신음 한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다시 기어와 붙었습니다. 달이 중천을 지나 서쪽으로 기울 때까지 그들의 기이한 씨름은 계속되었습니다. 도깨비는 점점 지쳐갔습니다. 힘이 딸려서가 아니라, 이 지독한 인간의 '진심'에 질려가고 있었습니다. "이 이 독한 놈 좀 떨어져 나가라 제발!" 박 서방은 이미 갈비뼈 몇 대가 나간 듯 했지만, 오히려 그 고통이 그를 깨어있게 했습니다.
※ 진심의 승리
밤새 뻘밭을 뒹군 두 '사내'는 이제 누가 도깨비고 누가 사람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진흙투성이가 되었습니다. 박 서방은 이미 정신이 혼미했습니다. 온몸의 근육이 찢어지는 듯 아팠고, 며칠 굶은 뱃속은 뒤틀렸습니다. 그는 그저 마지막 남은 본능 하나로 도깨비의 다리를 붙들고 있었을 뿐입니다. '어머니 쌀 밥 어머니' 그의 입에서는 그런 가냘픈 헛소리만 새어 나왔습니다.
도깨비는 수백 년 만에 최고로 진땀을 뺐습니다. 힘으로는 당연히 자신이 압도적이었지만, 저 인간은 쓰러뜨리면 다시 일어나 먼지 같은 주먹을 쥐고 달려들었고, 내동댕이쳐도 어느새 다시 기어와 바짓가랑이를 붙잡았습니다. 그것은 씨름의 기술도 힘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버티는' 것. 죽음 앞에서 삶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지독하고도 순수한 '의지' 그 자체였습니다. 도깨비는 점점 저 미련한 인간이 무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경이롭게 느껴졌습니다. 저 작고 하찮은 몸뚱이 안에 자신도 꺾지 못할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저 멀리, 마을 초입의 상수리나무 꼭대기에서 "꼬끼오!" 목이 쉰 닭 한 마리가 간신히 첫 울음을 토해냈습니다. 어둠을 밀어내고, 동쪽 하늘이 희미하게 푸르스름한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아!" 도깨비의 몸에서 순간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햇빛은 그에게 독(毒)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가 주춤하는 사이, 박 서방은 그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마지막 남은 젖 먹던 힘을 쥐어짜 도깨비의 다리를 잡아당겼습니다.
"쿵!" 거대한 고목이 뿌리째 뽑히듯, 도깨비가 그 거대한 몸집으로 뻘밭 위에 그대로 나동그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박 서방 역시 그 위로 쓰러졌습니다. 승패가 갈린 것인지, 함께 무너진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한참의 정적이 흘렀습니다. 오직 두 '사내'의 거친 숨소리만이 새벽 공기를 갈랐습니다.
"크 크하 하하하하!" 먼저 소리를 낸 것은 도깨비였습니다. 그는 뻘밭에 드러누운 채, 밝아오는 하늘을 보고 미친 듯이 웃었습니다. 그 웃음소리에 잠자던 새들이 푸드덕 날아올랐습니다. "졌다 졌어! 내가 수백 년을 살면서 장정 백 명 천 명을 넘어뜨렸거늘 오늘 네놈 하나에게 졌다! 하하하!"
도깨비는 박 서방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네놈의 힘에 진 것이 아니다. 네놈의 그 지독한 진심과 죽음도 마다않는 그 끈기에 졌다! 하하하!" 박 서방은 그 요란한 웃음소리를 자장가 삼아, 안도감과 탈진으로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의 진흙 묻은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습니다. '어머니 저 이겼 습니다 쌀 밥' 그렇게 그는 저주받은 땅 위에서 가장 평화로운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 황금 논의 선물
박 서방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따사롭고 뜨거운 햇살이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내리쬐고 있었습니다. 밤새 그를 괴롭히던 뻘밭의 지독한 한기(寒氣)는 온데간데 없었고, 온몸이 맞은 듯 쑤셨지만 이상하게도 솜처럼 노곤했습니다. "내가 살았 나?" 그는 자신이 축축한 진흙탕이 아니라, 따뜻한 볕이 드는 양지바른 잔디 위에 누워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밤새 벌인 사투(死鬪)가 마치 기나긴 악몽이었던 것처럼 몸도 이상하게 가뿐했습니다.
"꿈 이었나 그럼 어머니 쌀은" 그가 벌떡 일어나 앉아, 자신이 밤새 쟁기질하고 뒹굴었던 '도깨비 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어 어 이 이럴 수가!" 그 거칠고 척박했던 뻘밭은 간밤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억센 갈대와 잡초로 뒤덮였던 그 저주의 땅이 마치 하늘의 신선(神仙)이 거대한 붓으로 선을 그은 듯, 반듯하게 구획이 정리된, 검고 기름진 '논'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물길이 없던 곳에 맑은 물이 졸졸 흐르는 수로(水路)가 생겨났고, 그 물이 논두렁 가득 넘실거리고 있었습니다. 흙은 윤기가 자르르 흘러, 아침 햇살을 받아 마치 '황금'처럼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가 밤새 씨름했던 그 진득한 진흙탕이 아니라, 손만 대면 무엇이든 자라날 것 같은 '생명의 땅'이었습니다. 그는 홀린 듯 일어나 논두렁으로 걸어가 흙을 한 줌 쥐어보았습니다. 차가운 뻘이 아니라 보드랍고 따뜻한 기운이 손바닥을 감쌌습니다.
그가 놀라 일어서자, 어디선가 도깨비의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습니다. "박 서방! 아니, 이제 박 동업자! 껄껄껄! 잠은 잘 잤느냐!" "도 도깨비님! 이 이 땅이 어찌 !" "네 진심이 이겼다. 네가 밤새 흘린 그 뜨거운 땀과 눈물이 이 저주받은 뻘밭의 독기(毒氣)를 모두 씻어낸 게야. 이 땅은 이제 '우리' 것이다. 어디 심어보거라. 이 땅은 이제 오직 너의 진심에만 응답할 것이니. 네가 흘린 땀 한 방울 한 방울이 황금 낟알이 되어 너에게 돌아올 것이다!"
박 서방은 꿈이 아님을 알고, 그 '황금 논'을 향해 다시 한번 큰절을 올렸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도깨비 동업자님 !" 그는 당장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노모는 아들이 밤새 돌아오지 않아 기절초풍할 뻔했다가, 흙투성이지만 살아 돌아온 아들을 보고 안도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박 서방은 자초지종을 설명할 틈도 없이, 남은 힘을 다해, 마을 부잣집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겨우 볍씨 한 줌을 빌렸습니다. 부자는 '도깨비 뻘'에 심겠다는 그를 보고 미쳤다고 손가락질했지만, 마지막 적선이라 생각하고 던져주었습니다.
그리고 박 서방은 그 기적의 땅에 정성껏 모를 심었습니다. 신기한 일은 그때부터였습니다. 온 마을의 논은 여전한 가뭄에 타들어 가는데, 유독 그 '도깨비 논'만은 마르지 않고 항상 촉촉하게 젖어 있었습니다. 도깨비가 밤마다 이슬이라도 모아다 뿌려주는 것처럼. 병충해 하나 없이, 벼는 다른 논의 모가 겨우 자리를 잡을 때 이미 파랗게 자라나 무섭게 키가 컸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엔 비웃다가, 나중에는 두려움에 떨며 그 논을 멀리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가을. 온 마을이 흉년으로 울상을 지을 때, 오직 박 서방의 논만이 이름 그대로 '황금빛'으로 물결쳤습니다. 벼 이삭은 쌀알이 얼마나 무겁게 달렸는지, 모두 땅에 닿을 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그해 가을, 박 서방은 남의 논 열 마지기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쌀을 수확했습니다. 그것은 수확이 아니라 기적이었습니다.
※ 베푸는 부자
박 서방은 하루아침에 고을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작은 초가집 곁에는 새로운 곳간이 지어졌고, 그 곳간에는 황금 낟알이 산더미처럼 쌓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벼락부자가 되자, 분명 예전의 착한 심성을 잃고 인색하고 욕심 많은 김 영감처럼 변할 것이라 수군거렸습니다. "흥, 도깨비 힘을 빌렸으니 오래 못 갈 게야." "분명 저 쌀을 걸어 잠그고 우리를 업신여기겠지." 어쩌면, 그것이 도깨비가 박 서방에게 낸 마지막 '시험'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가난 속에서 선을 지키는 것과, 부(富) 속에서 선을 지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었으니까요. 그 쌀더미의 무게는 그가 밤새 씨름했던 도깨비의 무게보다 더 무거웠습니다.
그러나 박 서방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수확한 쌀로 가장 먼저 흰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따뜻한 쌀밥을 지어, 늙은 노모에게 올렸습니다. 노모는 평생 처음 받아보는 그 밥상 앞에서 말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박 서방 역시 어머니와 함께 눈물 젖은 밥을 삼켰습니다. 이 한 그릇의 밥을 위해 그는 죽음과 씨름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마지막 죽을 얻어 갔던 그 과부댁 모자(母子)에게 쌀 두 가마니를 짊어지고 갔습니다. "이 아이 다시는 배 곯지 않게 해주시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도깨비와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수확의 7할. 그는 그 엄청난 양의 쌀을 모두 밖으로 내어, 마을 가운데 가장 넓은 마당에 산처럼 쌓아 두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쌀가마니 위에 올라가 외쳤습니다.
"마을 사람들이여! 이 쌀은 제 것이 아닙니다! 이 땅의 주인이신 '도깨비 동업자'께서 여러분께 내리신 선물이니, 누구든 굶주린 이는 와서 가져가시오! 이 흉년에 다 함께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을 사람들은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박 서방은 곳간을 열어, 흉년에 굶주린 모든 이웃에게 공평하게 쌀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의 선행(善行)은 가뭄으로 메말랐던 마을 인심을 다시 촉촉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쌀을 안고 울었고, 자신들의 의심을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날 밤. 박 서방은 자신의 몫인 3할의 쌀로 정성껏 빚은 따끈한 메밀떡과 가장 맑은 부분만 떠낸 막걸리를 들고 다시 '황금 논'을 찾았습니다. 추수가 끝난 논은 텅 비었지만, 달빛 아래 여전히 기름진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도깨비 동업자님. 약속을 지켰습니다. 부디 나와서 이 술 한 잔 받으시지요." 그러자 어둠 속에서 도깨비가 껄껄 웃으며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는 무서운 뿔 대신, 이웃집 아저씨처럼 푸근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허허 이놈. 정말 그럴 줄 알았다. 내가 수백 년을 살며 인간들을 시험해 보았지만, 너처럼 '부(富)'를 이기고도 변치 않는 놈은 처음이다. 너는 정녕 바보냐, 아니면 성인(聖人)이냐." "바보도, 성인도 아닙니다. 그저 굶주림이 얼마나 서러운지 아는 농부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씨름 한 판에 깨달았습니다. 저 혼자 버틴 것이 아니라, 저를 걱정하는 어머니와 굶주린 이웃들의 마음이 함께 버텨준 것임을. 이 쌀은 당연히 그들의 몫이기도 합니다." 박 서방이 술잔을 올렸습니다.
도깨비는 그 술을 단숨에 들이켜고는, 박 서방의 어깨를 툭 쳤습니다. "역시, 내 동업자답다. 나는 오늘 너에게 또 하나 배웠다. 땅이 황금인 것이 아니다. 그 땅에 땀을 흘리고, 그 수확을 함께 나눌 줄 아는 네 마음이 진짜 황금인 게지. 네 마음이 황금으로 있는 한, 이 땅도 영원히 황금 논일 것이다."
그 후로 박 서방은 '황금 논'에서 나온 쌀로 매년 이웃을 도우며, '착한 부자'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을 수확 철이 되면, 마을 사람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그 논에 모여 떡과 술을 나누며, 착한 농부를 도운 마음씨 좋은 '도깨비 동업자'를 기렸다고 합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착한 농부를 도운 도깨비의 '황금 논' 이야기, 어떠셨나요?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처럼, 어쩌면 우리네 땅 곳곳에는 이렇게 선조들의 진심과, 그에 감동한 신비한 존재들의 따뜻한 이야기가 숨어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도깨비가 선물한 것은 그저 쌀이 아니었습니다. '진심'은 '기적'을 낳고, 그 기적을 '나눌' 줄 아는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황금'이라는 교훈이었지요. 오늘 이야기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아요'와 '구독' 버튼 꼭 눌러주시고요. 여러분의 따뜻한 '댓글'은 저희에게 큰 힘이 됩니다. 편안한 밤, 스르륵 잠드는 야담과 함께 포근한 꿈 꾸시길 바랍니다. 다음에도 더욱 흥미롭고 교훈적인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