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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깨비가 내민 산삼 세 뿌리, 약초꾼이 끝내 받지 않자 삼 년 뒤 벌어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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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300자 미만)

    세상에 공짜 싫어하는 사람 없다지만, 으슥한 산속에서 만난 뿔 달린 도깨비가 불쑥 내민 산삼이라면 어떠신가요? 덥석 받으시겠습니까, 아니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시겠습니까? 여기, 눈앞에 놓인 어마어마한 산삼 세 뿌리를 끝내 거절한 미련하고도 정직한 약초꾼이 있습니다. 바보 같다고요? 하지만 이 선택이 3년 뒤, 상상도 못 할 기막힌 반전으로 돌아옵니다! 웃음 빵빵 터지는 약초꾼과 도깨비의 기상천외한 밀당,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 1: 도깨비와의 기상천외한 첫 만남과 거절

    옛날 옛적, 호랑이가 담배 피우고 도깨비가 메밀묵 쑤어 먹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첩첩산중 어느 작은 마을에는 심성이 비단결 같이 곱고 정직하기로 소문난 약초꾼 최덕배가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시지, 정직함과 재물운은 비례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덕배의 집안 꼴은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하여, 매일 산을 타도 입에 풀칠하기조차 버거운 형편이었습니다.

    어느 늦은 가을날, 덕배는 어김없이 낡은 지게를 짊어지고 마을 뒤편에 있는 험하기로 소문난 십리골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침 이슬을 맞으며 산에 오른 지 꼬박 반나절이 지났건만, 그의 망태기 안에는 흔해 빠진 칡뿌리 몇 개와 시들시들한 더덕 몇 뿌리가 전부였습니다.

    덕배는 이마에 흐르는 굵은 땀방울을 낡은 소매로 훔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아이고, 내 팔자야. 산신령님도 참 무심하시지. 며칠째 제대로 된 약초 하나를 안 내어주시다니. 집에 계신 홀어머니 약값은 어찌 마련한단 말인가.'

    스스로 신세를 한탄하며 발걸음을 옮기던 찰나, 갑자기 산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방금 전까지 눈부시게 내리쬐던 가을 햇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짙은 안개가 덕배의 주변을 에워쌌습니다. 산새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기괴한 정적이 흐르자, 덕배의 등골을 타고 오싹한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이거 영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서둘러 하산해야겠습니다.'

    덕배가 서둘러 발길을 돌리려던 그때였습니다. 짙은 안개 너머로 푸르스름한 불빛 하나가 둥둥 떠다니는 것이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반딧불이인가 싶었지만, 그 크기가 수박통만 한 것이 이리저리 춤을 추듯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도, 도, 도깨비불?"

    덕배는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덜덜 떨리는 입술을 부여잡고 애써 침착하려 했지만, 눈앞에 나타난 형상을 보고는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 되었습니다. 머리에는 뭉툭한 뿔이 솟아 있고, 몸집은 집채만 하며, 눈은 부리부리한 것이 영락없는 도깨비였습니다. 도깨비는 씩 웃으며 덕배에게 다가왔습니다. 입을 벌릴 때마다 시큼한 막걸리 냄새와 메밀묵 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흐흐흐, 이보시오, 약초꾼 양반. 산속에서 길을 잃었소? 아니면 쓸만한 약초를 찾지 못해 울상이오?"

    우렁찬 목소리에 산천이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덕배는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대답했습니다.

    "아, 아이고! 도, 도깨비 대감마님! 살려주십시오! 저는 그저 병든 노모의 약값을 구하려 이 산에 오른 가난한 약초꾼일 뿐입니다요! 맛도 없고 뼈만 앙상하니 부디 저를 잡아먹지 말아 주십시오!"

    덕배의 호들갑에 도깨비는 배를 잡고 껄껄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 웃음소리에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질 지경이었습니다.

    "크하하하! 내가 사람 고기 맛없어서 안 먹은 지가 언젠데 그런 섭섭한 소리를 하오? 나는 그저 자네가 하도 성실하게 산을 타기에, 기특해서 선물을 하나 주려 나타난 것뿐이오."

    도깨비는 허리춤에서 커다란 보따리 하나를 척 꺼내어 덕배 앞에 풀었습니다. 보따리가 스르르 열리자, 그 안에서 영롱한 빛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덕배가 실눈을 뜨고 슬며시 살펴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어른 팔뚝만 한 산삼 세 뿌리였습니다. 평생 약초를 캐며 살아온 덕배의 눈에도 저런 크기와 자태를 가진 산삼은 난생처음이었습니다. 잔뿌리 하나하나가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고, 그 향기만 맡아도 십 년은 젊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자, 이것은 천 년 묵은 옥동 산삼이오.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명약 중의 명약이지. 내 특별히 약초꾼 양반에게 공짜로 주는 것이니, 어서 거두어 가시오."

    눈이 휘둥그레진 덕배는 잠시 멍하니 산삼을 바라보았습니다. 이것만 내다 팔면 어머니의 약값은 물론이고, 평생 떵떵거리며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서 살 수 있을 것이 뻔했습니다. 떨리는 손을 뻗어 산삼을 집어 들려던 찰나, 덕배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 하나가 있었습니다.

    '가만있어 보자. 옛말에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했습니다. 하물며 변덕 심하고 장난기 많은 도깨비가 주는 물건이라니! 이것을 덥석 받았다가는 나중에 내 혼을 내놓으라거나, 내 다리 한 짝을 내놓으라며 무슨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할지 모를 일 아닙니까!'

    덕배는 황급히 뻗었던 손을 거두고, 뒤로 엉금엉금 물러났습니다. 그리고는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간곡히 외쳤습니다.

    "도, 도깨비 대감님! 성은이 망극하오나, 이 귀한 물건을 저는 도저히 받을 수가 없습니다요!"

    도깨비는 의아하다는 듯 눈을 끔벅거렸습니다.

    "아니, 이보시오. 이 천하의 명약을 안 받겠다니, 제정신이오? 이거 세 뿌리면 정승 판서도 부럽지 않을 재물을 얻을 터인데!"

    "아무리 재물이 탐나도, 제 땀 흘려 얻은 정당한 대가가 아니면 결코 제 것이 아니라고 늙으신 어머니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배웠습니다요! 게다가 이렇게 엄청난 물건을 공짜로 받았다가는 제명이 짧아질까 두렵습니다! 부디 이 산삼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도깨비는 처음에는 화를 내는 듯 씩씩거리더니, 이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덕배를 빤히 내려다보았습니다.

    "허허, 참으로 별종이로군. 눈앞에 금은보화가 굴러와도 걷어차는 멍청한 인간이라니. 좋아, 정 싫다면 억지로 주진 않겠소. 하지만 약초꾼 양반, 이 선택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오!"

    도깨비가 말을 마치자마자, 다시 한번 짙은 안개가 확 밀려들었고, 안개가 걷혔을 때 도깨비와 빛나던 산삼 세 뿌리는 연기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덩그러니 남겨진 덕배는 다리에 힘이 풀려 한참을 바닥에 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이 아주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웬지 모르게 등 뒤에 붙어있던 무거운 혹을 떼어낸 것처럼 마음 한구석은 홀가분했습니다.

    ※ 2: 굴러온 복을 걷어찬 약초꾼

    도깨비와의 기상천외한 만남 이후, 덕배는 도망치듯 산을 내려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빈 망태기를 짊어지고 돌아온 아들의 모습에 늙은 어머니는 말없이 따뜻한 숭늉 한 사발을 내어주었습니다. 덕배는 차마 산에서 도깨비를 만나 천 년 묵은 산삼 세 뿌리를 거절하고 왔다는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들으시면 뒷목을 잡고 쓰러지실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요.

    '그래, 잘한 일입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요행을 바라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땀 흘려 번 돈만이 진짜 내 돈입니다.'

    덕배는 스스로를 위로하며 더욱 부지런히 산을 탔습니다. 남들이 자는 새벽에 일어나 가장 험한 산길을 올랐고, 해가 질 때까지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않고 약초를 캐러 다녔습니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참으로 야속하여, 정직하게 땀 흘린다고 해서 늘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춥고 길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듬해에는 극심한 가뭄이 들어 산에 약초들의 씨가 말라버렸습니다. 덕배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캐올 수 있는 약초의 양은 턱없이 부족했고, 살림살이는 점점 더 쪼들려만 갔습니다.

    어느 날 저녁, 부엌에서 맹물로 끓인 묽은 죽을 휘젓고 있던 덕배는 참다못해 깊은 한숨을 토해냈습니다.

    '아휴, 쌀독에 쌀은 진작에 바닥이 났고, 당장 내일 끼니조차 막막하구나. 어머니 기력은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시는데...'

    그때마다 덕배의 머릿속에는 십리골에서 도깨비가 불쑥 내밀었던 그 황금빛 산삼 세 뿌리가 어른거렸습니다.

    '아... 그때 눈 딱 감고 그 산삼을 받았어야 했나? 그거 한 뿌리만 있었어도 우리 어머니 이팝나무에 쌀밥 얹어 고기반찬과 함께 배불리 모실 수 있었을 텐데. 도깨비 장난이면 어떻고 저주면 어때서 그 복을 걷어찼단 말인가. 내가 참으로 미련하고 바보 같지.'

    배가 고파 잠 못 이루는 밤이면 덕배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남몰래 후회의 눈물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요, 지나간 버스였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근근이 버티며 살아온 지 어느덧 삼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삼 년 동안 덕배의 형편은 나아지기는커녕 빚만 산더미처럼 불어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의 약값을 대기 위해 마을에서 제일가는 부자이자 고리대금업자인 황부자에게 돈을 꾸어 쓴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황부자는 겉으로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인자한 척하지만, 속은 시커먼 탐욕으로 가득 찬 인간이었습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높은 이자로 돈을 빌려주고, 제때 갚지 못하면 집과 땅은 물론이고 자식들까지 종으로 끌고 가는 악독한 자로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가을 추수가 끝난 어느 날, 덕배의 초가집 마당에 불길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리 오너라! 최덕배 이놈, 당장 나오지 못할까!"

    우렁찬 호통 소리와 함께 황부자의 집에서 일하는 우락부락한 머슴 두 명이 사립문을 거칠게 걷어차며 들어왔습니다. 마루에서 짚신을 삼고 있던 덕배는 기겁하며 마당으로 뛰어내려갔습니다.

    "아이고, 형님들! 이 누추한 곳까지 어쩐 일이십니까요?"

    "어쩐 일은 무슨 어쩐 일이야! 황부자 어르신께서 빚을 독촉하러 보내서 왔지! 벌써 이자 기한이 석 달이나 밀렸는데, 언제까지 배짱을 부릴 셈이냐!"

    덕배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 두 손을 싹싹 빌었습니다.

    "아이고, 형님들! 제발 며칠만, 아니 딱 보름만 기한을 늦춰주십시오! 이번에 영실봉에 올라가 기가 막힌 약초를 캐올 테니, 그것만 팔면 원금에 이자까지 싹 다 갚겠습니다요! 제발 한 번만 눈감아 주십시오!"

    머슴들은 콧방귀를 뀌며 덕배의 어깨를 툭툭 쳤습니다.

    "흥, 그 소리를 벌써 몇 달째 듣는지 모르겠다. 어르신께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하셨다. 내일 모레 닷새장 날까지 빌려 간 돈 백 냥과 이자 오십 냥을 합쳐 백오십 냥을 마련해 오지 않으면, 네놈이 살고 있는 이 오두막은 물론이고 네놈 목숨줄까지 압류하겠다 하셨으니 그리 알아라!"

    머슴들은 험악한 으름장을 놓고는 흙먼지를 일으키며 사라졌습니다. 덕배는 다리에 힘이 풀려 차가운 흙바닥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백오십 냥이라니... 당장 동전 한 닢도 없는데 단 이틀 만에 백오십 냥을 무슨 수로 구한단 말인가. 하늘이시여, 어찌 저에게 이토록 가혹한 시련을 주시나이까!'

    덕배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서럽게 통곡했습니다. 방 안에서 아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던 병든 노모의 기침 소리가 유난히 더 슬프게 들려오는 밤이었습니다.

    ※ 3: 탐관오리 뺨치는 황부자의 횡포

    다음 날 아침,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 때문에 벼랑 끝에 몰린 덕배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아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사정을 해보았지만, 모두들 황부자의 눈치를 보느라 덕배의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했습니다. 인심 좋던 이웃들도 돈 앞에서는 남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아이고, 덕배야. 미안해서 어쩌누. 우리 집도 지금 보릿고개라 입에 풀칠하기도 바쁘다네."

    "황부자 영감 돈을 쓰다니, 자네도 참 미련하구먼. 나도 도와주고 싶지만 엮이기 싫어서 안 되겠네."

    이틀 꼬박 마을을 돌아다녔지만, 덕배가 구한 돈은 푼돈 몇 닢이 전부였습니다. 백오십 냥은커녕 단 십 냥도 구하지 못한 덕배는 절망감에 휩싸인 채 닷새장 날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약속한 기한이 되자마자, 황부자가 직접 가마를 타고 덕배의 집 앞마당에 나타났습니다. 번쩍이는 비단옷을 입고 기름진 배를 내민 황부자는 거만한 표정으로 덕배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래, 덕배야. 약속한 돈은 다 마련했느냐? 설마 빈손으로 나를 맞이하는 것은 아니겠지?"

    덕배는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어르신!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요!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도저히 큰돈을 구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제발 석 달... 아니 딱 한 달만 더 말미를 주시면, 뼈가 부서지도록 일해서 반드시 갚겠습니다요! 제발 늙으신 어머니를 봐서라도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덕배의 애절한 호소에도 황부자의 얼굴에는 싸늘한 냉기만 흘렀습니다. 그는 품에서 부채를 꺼내 여유롭게 부치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쯧쯧쯧, 불쌍한 놈. 내가 자선 사업가도 아니고, 기한을 넘겼으면 당연히 대가를 치러야지. 여봐라! 저기 저 병든 노인네는 내쫓고, 이 집터는 당장 헐어버려라! 그리고 최덕배 저놈은 포승줄로 꽁꽁 묶어 우리 집 노비 문서에 지장을 찍게 하여라! 평생 소처럼 부려먹으며 빚을 받아내야겠다!"

    황부자의 호령이 떨어지자마자 덩치 큰 머슴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방 안에서 떨고 있던 늙은 어머니를 마당으로 내동댕이쳤습니다.

    "아이고, 어머니!"

    덕배가 비명을 지르며 어머니에게 달려가려 했지만, 머슴 둘이 양팔을 강하게 붙잡아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눈앞에서 평생 고생만 하신 어머니가 흙바닥에 쓰러져 기침을 토해내는 모습을 보자, 덕배의 가슴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는 듯했습니다.

    '이대로 끝이구나. 내 알량한 정직함이 결국 어머니마저 길거리에 나앉게 만들었어. 내가 도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깟 산삼을 거절했단 말인가! 아, 원통하고 분하도다!'

    덕배는 피눈물을 흘리며 황부자를 향해 발악하듯 소리쳤습니다.

    "이 악독한 양반아! 벼락이 무섭지도 않으냐! 가난한 자들의 피눈물을 쥐어짜서 얼마나 잘 사는지 두고 보자!"

    황부자는 코웃음을 치며 덕배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습니다.

    "네 이놈! 빚진 놈이 어디서 감히 큰소리냐! 주둥이를 틀어막고 당장 끌고 가라!"

    그때, 바닥에 쓰러져 있던 덕배의 어머니가 젖 먹던 힘을 다해 황부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렸습니다.

    "나으리, 나으리! 우리 아들은 아무 죄가 없습니다요! 늙고 병든 에미 약값 대느라 빚을 진 것뿐이니, 차라리 제 목숨을 거두어 가시고 우리 불쌍한 아들은 제발 놓아주십시오!"

    노모의 절절한 외침에 동네 사람들도 하나둘 모여들어 수군거리기 시작했지만, 황부자의 위세에 눌려 감히 나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황부자는 더러운 벌레를 보듯 노모를 거칠게 발로 걷어차 버렸습니다.

    "에잇, 재수 없게시리! 치워라, 당장!"

    어머니가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모습을 본 덕배의 눈이 홱 돌아갔습니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머슴들을 뿌리치고 낫을 집어 들려던 순간, 누군가 등 뒤에서 덕배의 뒤통수를 몽둥이로 강하게 내리쳤습니다.

    번쩍, 하는 통증과 함께 덕배의 시야가 새카맣게 점멸했습니다. 바닥으로 힘없이 쓰러지며 서서히 의식을 잃어가는 덕배의 귓가에는 황부자의 악랄한 웃음소리와 어머니의 오열만이 아득하게 맴돌고 있었습니다.

    '도깨비 대감님... 당신 말이 맞았습니다. 눈앞에 굴러온 복을 걷어찬 저는 참으로 천하의 멍청이였습니다. 만약, 만약에 저에게 한 번만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덕배는 눈꺼풀 위로 쏟아지는 뜨거운 눈물을 느끼며 까무러치듯 깊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 4: 도깨비와의 얄궂은 재회

    뒤통수가 산산조각 나는 듯한 끔찍한 통증과 함께 덕배가 간신히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을 때, 뺨 위로 얼음장처럼 차가운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초점이 맞지 않는 몽롱한 시야가 점차 또렷해지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비가 줄줄 새는 낡고 허름한 폐서낭당의 썩은 서까래였습니다. 황부자의 무자비한 몽둥이찜질에 정신을 잃었던 덕배를 보다 못한 이웃집 박 노인이, 혹여나 황부자의 눈에 띌까 두려워 남몰래 쓰러진 덕배와 그의 노모를 리어카에 싣고 와 마을 어귀에 버려진 폐서낭당 바닥에 눕혀놓은 것이었습니다.

    가까스로 부서질 듯한 몸을 일으킨 덕배는 옆자리에서 가랑잎처럼 파르르 떨며 희미하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어머니를 발견했습니다. 흙투성이가 된 채 군데군데 찢겨나간 낡은 무명치마와 핏기가 싹 가시다 못해 푸르스름하게 질려버린 어머니의 창백한 얼굴을 마주한 순간, 덕배의 억장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서둘러 어머니의 거칠고 앙상한 손을 부여잡았지만, 어머니의 손끝은 이미 한겨울 고드름처럼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고, 옅은 숨결마저 금방이라도 툭 끊어질 듯 위태롭기 짝이 없었습니다.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안고 덕배는 짐승처럼 서럽게 울부짖었습니다.

    '어머니! 눈 좀 떠보십시오! 이 불효자 놈이 천하에 몹쓸 죽일 놈입니다! 제 그 알량한 자존심과 고집 때문에 평생 고생만 하신 어머니를 이 험한 꼴을 당하게 만들다니요! 차라리 제 눈알을 뽑고 제 팔다리를 분지르시지, 하늘이시여! 어찌 저에게 이토록 가혹한 형벌을 내리시나이까! 차라리 제 목숨을 거두어 가시고 우리 불쌍한 어머니 좀 살려주십시오!'

    끝없는 자책과 절망의 눈물을 짐승처럼 쏟아내던 덕배의 머릿속에, 벼락이 치듯 번뜩 하고 스쳐 지나가는 선명한 기억 하나가 있었습니다. 삼 년 전, 안개가 자욱하게 낀 십리골 깊은 산속에서 불쑥 나타나 자신에게 황금빛 산삼 세 뿌리를 들이밀었던 그 뿔 달린 도깨비! 눈앞에 굴러온 그 엄청난 복을 제 발로 뻥 차버린 자신의 미련함이 뼈에 사무치도록 후회스러웠습니다.

    '그래! 도깨비 대감님! 그분이라면, 그 기상천외한 조화를 부리시던 분이라면 어쩌면 우리 어머니를 살려주실 방도를 알고 계실지도 모른다! 아니, 나를 그 자리에서 씹어 먹는다 해도 좋다. 내 심장을 파먹고 내 간을 빼먹는다 해도 기꺼이 내어주리라. 어머니의 목숨을 단 며칠이라도 연장할 수만 있다면 내 영혼이라도 당장 팔겠다!'

    덕배는 지체할 틈이 없었습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쏟아지는 무자비한 폭우를 뚫고, 그는 미친 사람처럼 산을 향해 냅다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삼 년 전 도깨비를 만났던 그 십리골을 향해 가는 길은 평소에도 험하기로 소문난 곳이었지만, 비바람이 몰아치는 한밤중의 산길은 그야말로 지옥문이 열린 것과 같았습니다. 진흙탕에 미끄러져 날카로운 바위에 무릎을 찧고 수십 번을 흙탕물 속에 나뒹굴었습니다. 앞을 가로막는 억센 가시덤불에 얼굴과 팔다리가 갈기갈기 찢겨 붉은 피가 빗물과 함께 뚝뚝 떨어졌지만, 덕배는 그 어떠한 고통조차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직 어머니를 살려야 한다는 처절한 일념 하나가 그의 마비된 다리를 움직이게 만들었습니다. 깎아지른 듯한 비탈길을 손톱이 빠지도록 흙을 움켜쥐며 짐승처럼 기어올랐습니다.

    숨통이 턱턱 막히고 심장이 터져버릴 듯 헐떡이며, 장장 세 시간을 기어오른 끝에 마침내 삼 년 전 그 커다란 바위 앞에 도착했을 때, 산속은 칠흑 같은 어둠과 귀를 찢는 듯한 거센 빗소리뿐이었습니다. 덕배는 피투성이가 된 무릎을 진흙 바닥에 꿇고, 먹구름 낀 하늘을 향해 목이 터져라 피를 토하듯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도깨비 대감님! 계십니까! 저 덕배입니다! 제발 한 번만, 단 한 번만 더 이 비천한 놈 앞에 나타나 주십시오! 제가 천하의 미련한 놈이었습니다! 눈앞에 주신 천금 같은 복을 걷어찬 바보 천치 멍청이였습니다요! 제발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한 번만 그 존안을 보여주십시오!"

    목이 쉬어 쇳소리가 나고 피가 섞인 기침이 나오도록 외치고 또 외쳤지만, 돌아오는 것은 을씨년스러운 산울림과 메아리뿐이었습니다. 비바람은 덕배를 비웃기라도 하듯 더욱 거세게 몰아쳤고, 덕배의 앙상한 몸은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려왔습니다. 서서히 체온은 떨어져 가고, 마지막 남은 희망의 불씨마저 빗물에 꺼져가며 덕배가 쓰러지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마치 누군가 시간을 멈춘 것처럼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덕배의 정수리를 매섭게 때리던 굵은 빗방울들이 허공에 딱 멈춰 서더니, 이내 빗소리가 싹 사라지고 주변의 공기가 기묘하고 묵직하게 뒤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짙은 먹구름이 낀 어둠 사이로 스멀스멀, 으스스하면서도 신비로운 푸르스름한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덕배의 코끝으로 아주 익숙하고도 시큼하게 익은 막걸리 냄새와, 갓 쑤어낸 참기름 냄새 진동하는 고소한 메밀묵 냄새가 훅 끼쳐왔습니다.

    '이, 이 냄새는! 틀림없다!'

    덕배가 감격에 겨워 퉁퉁 부은 고개를 번쩍 들자, 짙은 안개 한가운데서 수박통만 한 시퍼런 도깨비불 두 개가 둥둥 떠오르더니 이내 집채만 한 거대한 형상으로 뭉쳐지기 시작했습니다. 머리에는 불뚝 솟은 뭉툭한 뿔이 위협적으로 솟아 있고, 산 하나를 가릴 듯한 어마어마한 덩치, 그리고 밤하늘의 샛별처럼 부리부리하고 무시무시한 눈깔! 삼 년 전 보았던 바로 그 도깨비 대감이 틀림없었습니다. 도깨비는 팔짱을 떡 하니 낀 채, 커다란 콧구멍에서 씩씩거리는 콧김을 뿜으며 혀를 끌쯧쯧 차고는 덕배를 매섭게 내려다보았습니다.

    "허허, 이것 참 기가 막혀서. 이 야심한 밤에 웬 미친놈이 산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나 했더니, 이게 누군가. 세상에 공짜는 싫다며 내다 팔면 정승 판서도 부럽지 않을 그 천 년 묵은 옥동 산삼을 단번에 뻥 걷어차던 그 콧대 높고 고고하신 약초꾼 양반 아니신가? 그래, 꼴을 보아하니 그 알량한 정직함으로 삼 년 동안 아주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어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서 떵떵거리고 사시는 모양이군? 그런데 어찌 꼴이 빗물에 빠진 생쥐 마냥 그 모양 그 꼴이오?"

    도깨비의 날카로운 빈정거림에 덕배는 왈칵 눈물을 쏟으며 진흙 바닥에 머리를 쿵쿵 찧기 시작했습니다. 이마가 돌부리에 부딪혀 찢어지고 피가 흘러내려 눈앞을 가렸지만, 덕배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이고, 대감마님!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요! 저의 그 미련하고 오만한 성정 때문에, 제 한 몸 고생하는 것은 상관없으나 평생 뼈 빠지게 고생만 하신 늙고 병든 어머니가 당장 길바닥에서 숨을 거두게 생겼습니다요! 악독하기 짝이 없는 황부자 놈에게 빚을 져서 집도 땅도 다 뺏기고, 흠씬 두들겨 맞아 비 새는 폐서낭당에 쫓겨나 다 죽어갑니다! 제발, 제발 저를 굽어살피시어 우리 불쌍한 어머니를 살릴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대감님께서 지금 당장 제 목숨을 내놓으라 하시면 이 혀를 깨물고 죽을 것이요, 제 간을 빼달라 하시면 제 손으로 배를 가르겠습니다요!"

    덕배의 처절하고도 애끓는 통곡 소리가 십리골 골짜기를 애달프게 울렸습니다. 피가 철철 흐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빌고 또 비는 덕배의 처참한 모습에, 장난기 가득하고 매섭던 도깨비의 얼굴에서 서서히 험악한 웃음기가 사라졌습니다.

    도깨비는 거대한 무릎을 굽혀 덕배의 엎드린 눈높이에 맞춰 쭈그려 앉더니, 커다랗고 뭉툭한 손가락으로 덕배의 핏기 잃은 뺨을 툭툭 쳤습니다.

    "쯧쯧, 미련하고도 불쌍한 인간 같으니. 그래, 내가 장장 삼 년을 꼬박 기다렸다. 네놈이 제 발로 다시 이 산을 기어올라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할 그날을 말이지."

    도깨비의 목소리에는 방금 전의 조롱 섞인 가벼움 대신, 뼛속까지 울리는 낮고 묵직한 위엄이 서려 있었습니다. 덕배는 숨을 죽인 채, 심장이 요동치는 것을 느끼며 도깨비의 다음 말을 기다렸습니다. 과연 도깨비는 이 처절한 기도를 듣고 덕배를 도와줄 것인지, 아니면 감히 요행을 바라는 괘씸죄를 물어 단숨에 입에 넣고 씹어 먹어버릴 것인지, 십리골의 차가운 안개는 더욱 짙게 두 사람을 감싸 안고 소용돌이치고 있었습니다.

    ※ 5: 거절했던 산삼의 무시무시한 비밀

    숨 막히는 무거운 침묵이 흐르던 십리골에, 갑자기 벼락이 치듯 도깨비의 우렁찬 웃음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며 쾅쾅 터져 나왔습니다.

    "크하하하하! 으하하하! 이 바보 같고 미련 곰탱이 같은 약초꾼 놈아! 어서 고개를 번쩍 들거라!"

    산짐승들이 기절할 만큼 쩌렁쩌렁한 웃음소리에 덕배가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며 고개를 쳐들자, 도깨비는 허리춤에 양손을 얹은 채 아주 만족스럽고 통쾌하다는 표정으로 씩 웃고 있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덕배의 혼을 쏙 빼놓을 듯 험악하게 짓누르던 무시무시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눈 녹듯 사라지고, 도깨비의 크고 부리부리한 눈빛에는 난로 불처럼 따뜻하고 깊은 온기가 감돌고 있었습니다.

    "네 이놈, 똑바로 대답해 보거라. 삼 년 전 내가 너에게 불쑥 내밀었던 그 황금빛 찬란한 천 년 묵은 옥동 산삼 세 뿌리가 지금 생각하니 그리도 아깝더냐? 그것만 냉큼 받았어도 네 어미를 비단옷 입혀 호강시키고 매일 고기반찬 먹으며 떵떵거리고 살았을 텐데, 이제 와 뒤늦은 후회가 되어 땅을 치고 가슴을 쥐어뜯는 게지?"

    덕배는 체면을 차릴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코를 훌쩍이며 쉰 목소리로 정직하게 대답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요. 부끄럽지만 천 번 만 번 후회했습니다. 제 분수를 모르고 복을 걷어찬 벌을 이제야 뼈저리게 달게 받고 있습니다. 어찌 제 고집과 알량한 신념만 내세우다 늙은 어머니를 저리 험한 꼴을 당하게 했는지, 하루에도 열두 번씩 가슴을 치고 후회하며 밤잠을 설쳤습니다요."

    덕배의 꾸밈없이 솔직한 대답에 도깨비는 다시 한번 껄껄 웃으며 덕배의 좁은 어깨를 커다란 손으로 퍽 쳤습니다. 그 바람에 덕배는 깃털처럼 뒤로 발라당 나자빠져 진흙탕에 한 바퀴를 굴렀지만, 이어진 도깨비의 충격적인 다음 말에 맞은 곳이 아픈 줄도 모르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 천치 바보 멍청이야! 네가 만약 그때 그 산삼을 덥석 탐내어 넙죽 받거나 먹었더라면, 넌 지금쯤 저 첩첩산중을 꿀꿀거리며 기어 다니는 털복숭이 멧돼지가 되어 산도토리를 씹고 있었을 것이다!"

    "예, 예엑?! 메, 멧돼지요?!"

    덕배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두 눈이 튀어나올 듯 휘둥그레졌습니다. 엉겁결에 자신의 납작한 코를 만지작거리며 돼지코가 되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덕배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며 도깨비는 진지한 목소리로 삿대질을 하며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그렇고말고! 삼 년 전 내가 너를 시험하고자 들이밀었던 그 번쩍거리던 황금빛 산삼은 사실 진짜 산삼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도깨비들이 헛된 요행을 바라는 인간들의 시커먼 탐욕을 시험하기 위해 도술로 빚어낸 아주 무시무시한 맹독성 '환각 뿌리'였지! 만약 네가 분수에 넘치는 공짜를 바라고 헤벌쭉 웃으며 그걸 씹어 먹었거나 저잣거리에 내다 팔아 이득을 취하려 했다면, 네놈은 평생 사람의 말을 잃고 짐승의 탈을 쓴 채 사냥꾼의 화살을 피해 도망 다니는 끔찍한 멧돼지의 저주에 걸렸을 게야!"

    덕배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오싹한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만약 그때, 단 한 번의 순간적인 탐욕에 눈이 멀어 그 가짜 산삼에 손을 뻗었더라면? 어머니를 봉양하기는커녕 짐승이 되어 어머니의 가슴에 영원한 대못을 박았을 상상만 해도 끔찍하고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생 최대의, 목숨을 건 끔찍한 시험을 무사히 통과했다는 사실에 덕배는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우리 도깨비들은 본디 심술도 많고 사람 놀려먹는 장난도 좋아하지만, 거짓 없이 땀 흘리며 자기 분수껏 정직하게 사는 인간은 끔찍이 아끼고 좋아하는 법이지. 넌 그 지독하게 가난하고 궁핍한 형편 속에서도 끝까지 정당하지 않은 횡재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게다가 방금 전, 폭우를 뚫고 올라와 네 목숨을 기꺼이 내놓고라도 병든 어미를 살리겠다는 그 지극정성 효심까지 낱낱이 보여주었으니, 내 어찌 천지신명을 대신하여 너에게 상을 내리지 않을 수 있겠느냐!"

    도깨비는 품속을 뒤적이더니 주먹만 한 영롱한 은빛 자루 하나와,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 눈부시게 하얀 빛을 내뿜으며 잔뿌리가 빽빽하게 돋아난 진짜 산삼 한 뿌리, 그리고 겉보기엔 빨랫방망이처럼 생겼지만 군데군데 시커먼 혹이 달린 묵직한 방망이 하나를 꺼내어 덕배 앞에 조심스레 내려놓았습니다.

    "자, 똑똑히 새겨들어라! 이 은빛 자루는 '마르지 않는 엽전 주머니'다. 네가 원하는 만큼 주머니에서 엽전을 꺼내어도 결코 바닥이 나지 않는 신통방통한 물건이지. 단, 헐벗고 굶주린 남을 돕는 데 쓰면 엽전이 영원히 나오지만, 네 혼자 배불리 잘 먹고 잘살겠다고 사치와 욕심을 부리는 순간 주머니 속의 엽전이 전부 냄새나는 똥통으로 변할 것이니 명심해라! 그리고 이 눈부신 하얀 산삼은 죽어 저승사자 손을 잡고 가는 사람도 벌떡 일어나 춤을 추게 한다는 진짜 중의 진짜 '태을 신선 삼'이다. 어서 가져가 숨넘어가는 네 어미의 입에 물려라."

    덕배는 뜨거운 감격의 눈물을 펑펑 흘리며 도깨비의 거대한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연신 큰절을 올렸습니다.

    "대감님! 도깨비 대감님! 이 하해와 같은 은혜를 백골이 진토 되어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요! 평생 남을 돕고 베풀며 정직하게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흐흐흐, 눈물 콧물 빼는 인사는 다 끝나고 천천히 하거라. 아직 이 시커먼 혹부리 방망이의 무시무시한 쓰임새를 말해주지 않았느냐."

    도깨비가 씨익, 아주 장난스럽고도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시커먼 방망이를 번쩍 집어 들었습니다.

    "이것은 썩어빠진 악인들을 응징하는 '참교육 방망이'니라! 겉으로는 아궁이에 쑤셔 넣을 평범한 나무토막 같지만, 남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하고 고혈을 쥐어짜는 악당을 향해 '에잇, 나쁜 놈아!' 하고 냅다 소리치며 던지면, 아주 기가 막히고 배꼽 빠지는 구경을 하게 될 것이다. 너의 늙은 어미를 길바닥에 내쫓고 모질게 매질을 한 그 탐관오리 뺨치는 황부자 놈의 버르장머리를 단단히 고쳐주는 데 아주 제격일 테지. 자, 이제 곧 동이 트려 하니 어서 서둘러 내려가 보거라!"

    도깨비는 십리골이 떠나가라 호탕한 웃음을 남기고는, 짙은 안개와 함께 순식간에 연기처럼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거센 비는 언제 내렸냐는 듯 뚝 그쳐 있었고, 덩그러니 남겨진 덕배의 품 안에는 묵직한 은빛 주머니와 눈부신 하얀 산삼, 그리고 시커먼 참교육 방망이만이 현실임을 증명하듯 남아 있었습니다. 덕배의 두 눈빛에 타오르는 횃불 같은 굳은 결의가 차올랐습니다. 이제 더 이상 가난에 짓눌려 당하고만 살던 미련하고 나약한 약초꾼 덕배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를 살리고, 악독한 황부자에게 뼈저린 참교육을 선사할 복수의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 6: 황부자의 참교육과 약초꾼의 대박 인생

    산에서 내려온 덕배는 단숨에 젖은 발을 끌고 어머니가 누워 계신 폐서낭당으로 날개 돋친 듯 달려갔습니다. 숨을 헐떡이며 도착하자마자 도깨비가 준 하얀 '태을 신선 삼'을 꺼내어 그 영롱한 뿌리를 조금 떼어냈습니다. 그리고는 아직도 사경을 헤매고 있는 어머니의 파리한 입술을 벌려 입안에 정성껏 밀어 넣었습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믿을 수 없는 기적이 눈앞에서 벌어졌습니다. 어머니가 채 씹어 삼키기도 전에, 입안에서 눈꽃처럼 스르르 녹아내린 신선 삼은 어머니의 쇠약해진 몸속 혈관 구석구석으로 따뜻하고 강력한 기운을 폭포수처럼 퍼뜨렸습니다. 핏기가 싹 가셔 시체처럼 창백했던 뺨에 순식간에 복숭아꽃 같은 발그스레한 생기가 돌기 시작했고, 얼음장 같던 손발이 온돌방 아랫목처럼 따뜻해졌습니다.

    "으음... 어이구, 내가 잠이 깊게 들었었나 보구나... 덕배야..."

    "어, 어머니! 눈을 뜨셨군요! 제가 누군지 알아보시겠습니까!"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던 어머니가 두 눈을 번쩍 뜨더니, 평생을 달고 살던 해소천식과 관절염이 씻은 듯이 나아버렸습니다. 심지어 눈처럼 새하얗던 백발머리 군데군데가 까마귀처럼 검게 변하며 족히 이삼십 년은 훌쩍 젊어진 듯한 기운찬 모습으로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덕배는 어머니의 품에 와락 안겨 어린아이처럼 엉엉 기쁨의 통곡을 터뜨렸습니다.

    어머니를 이웃 박 노인의 집에 안전하게 모신 덕배는, 도깨비 방망이를 허리춤에 꽂고 은빛 엽전 주머니를 단단히 챙겨 들고는 악독한 황부자의 집으로 성큼성큼 향했습니다.

    그 시각, 황부자의 고래등 같이 으리으리한 기와집 앞마당에서는 아침부터 소를 잡고 돼지를 굽는 노린내가 진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제 덕배를 쫓아내고 남의 피눈물을 짜내어 뺏은 그 오두막 집터에, 전망 좋은 새 정자를 짓겠다며 아침 댓바람부터 동네 사람들을 강제로 끌어다 매질을 하며 일을 시키고 있었습니다. 황부자 자신은 화려한 비단 방석이 깔린 평상에 늘어지게 누워, 기생들이 입에 넣어주는 산해진미를 씹어 먹으며 껄껄거리고 호의호식하던 참이었습니다.

    "이리 오너라!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악독한 구두쇠 황부자 놈아! 당장 그 기름진 배구레를 내밀고 나오지 못할까!"

    덕배가 굳게 닫힌 대문을 발로 쾅 차서 부수며 벼락같이 호통을 치고 들어오자, 마당에서 고기를 뜯고 바닥을 쓸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대문 쪽으로 집중되었습니다. 어제 흠씬 두들겨 맞아 거적때기에 말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덕배가, 눈에서 안광을 뿜어내며 두 눈을 부릅뜨고 나타나자 황부자는 먹던 고기 한 점을 뱉어내며 기가 막히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허허, 이것 참 아침부터 재수가 없으려니. 저놈이 어제 몽둥이를 덜 맞아서 기어이 실성하여 미친 게로구나. 네놈이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썩은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느냐! 여봐라, 저 더러운 놈을 당장 멍석에 둘둘 말아 동구 밖 똥통에 던져버려라!"

    우락부락한 머슴 다섯 명이 몽둥이를 치켜들고 사나운 개처럼 달려들려던 찰나, 덕배가 품에서 은빛 주머니를 척 꺼내어 번쩍 치켜들었습니다.

    "가까이 오지 마라! 내 오늘 네놈에게 빚진 백오십 냥을 한 푼도 빠짐없이 갚으러 왔다! 이 돈벌레 같은 놈아, 네놈이 그토록 환장하는 돈, 옛다! 원 없이 실컷 먹고 배 터져 죽어봐라!"

    덕배가 주머니 끈을 풀고 거꾸로 들어 탈탈 털기 시작하자, 그 작은 주머니 안에서 번쩍이는 새 엽전들이 폭포수 쏟아지듯 우르르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챙그랑! 챙그랑! 촤르르르륵!

    끝도 없이 쏟아지는 엽전은 백오십 냥은커녕 천 냥, 만 냥을 넘어 순식간에 마당 한가운데에 어른 키를 훌쩍 넘는 거대한 엽전 동산 하나를 뚝딱 만들어 버렸습니다. 눈이 부실 정도로 번쩍이는 그 엄청난 재물 폭포에, 황부자와 몽둥이를 들고 뛰던 머슴들은 입을 떡 벌리고 눈알이 튀어나올 듯 경악했습니다.

    "아, 아니, 저, 저게 다 대체 얼마냐! 내 평생 저리 많은 돈은 처음 본다! 저 찢어지게 가난한 거지 같은 놈이 대체 어디서 저런 어마어마한 금은보화를 숨겨두었단 말이냐!"

    황부자가 평상에서 굴러떨어지듯 내려와 탐욕에 눈이 멀어 침을 질질 흘리며 엽전 더미를 향해 네 발로 짐승처럼 기어가려던 바로 그때였습니다. 덕배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도깨비가 준 시커먼 '참교육 방망이'를 하늘 높이 치켜들며 목청껏 소리쳤습니다.

    "에잇! 이 가난한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고 남의 피눈물 빨아먹는 천하의 몹쓸 나쁜 놈아!"

    덕배가 방망이를 황부자를 향해 허공으로 휙 던지자, 신기하게도 방망이가 땅에 떨어지지 않고 부웅 하고 살아있는 참매처럼 날아올랐습니다. 그리고는 마치 눈이 달린 생물처럼 황부자의 번쩍이는 비단 모자를 쓴 머리통을 향해 무자비하게 돌진했습니다.

    퍽! 퍽! 퍽! 퍼버벅!

    "아이고! 으악! 이게 대체 무슨 해괴한 조화냐! 내 머리통 깨진다! 사람 살려!"

    방망이는 공중을 휙휙 날아다니며 황부자의 기름진 엉덩이와 뒤통수, 그리고 불룩 튀어나온 뱃살을 인정사정없이 퍽퍽 두들겨 패기 시작했습니다. 놀란 머슴들이 황부자를 구하려 몽둥이를 휘두르며 뛰어들었지만, 방망이는 도술을 부리듯 순식간에 열 개, 스무 개로 분신술을 쓰며 늘어나더니 악독한 머슴들의 정강이와 콧대를 사정없이 후려갈겼습니다.

    "아이고 내 코! 억! 내 다리야!"

    넓은 기와집 마당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방망이를 피해 달아나려던 황부자는 자신이 만든 엽전 동산에 걸려 넘어져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질러댔고, 급기야 덕배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콧물 눈물을 쏙 빼며 싹싹 빌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고, 덕배 아니 최 대감님! 천인공노할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요! 제발 저 미친 방망이 좀 멈춰 주십시오! 온몸의 뼈마디가 다 부서져 가루가 되겠습니다요! 살려주십시오!"

    "네 이놈! 그동안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의 목을 조르고 고혈을 짠 극악무도한 죄를 다 어찌할 작정이냐! 아직 멀었다, 방망이야 더 세게 쳐라!"

    "아이고 다 갚겠습니다요! 제가 이자를 쳐서 뺏은 집과 땅의 문서를 모두 당장 돌려주고, 창고를 활짝 열어 마을 사람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겠습니다! 여기 제 품에 있는 고리대금 장부도 당장 이 마당에서 불태우겠습니다요!"

    황부자가 피떡이 된 얼굴로 엉금엉금 기어가 화로를 엎어 불을 피운 뒤, 품에서 곱게 간직하던 노비 문서와 빚 장부를 모조리 꺼내어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 던져 넣고 나서야, 쉴 새 없이 날아다니던 참교육 방망이는 거짓말처럼 딱 멈추더니 허공에서 투둑 떨어져 원래의 볼품없는 시커먼 나무토막으로 돌아갔습니다.

    억지로 끌려와 일을 하던 동네 사람들은 평생 자신들을 괴롭히던 황부자의 그 통쾌하고도 꼴좋은 참교육 현장을 보며,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 박장대소하며 만세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이후 황부자는 도깨비 방망이의 공포에 질려 약속대로 전 재산을 마을 사람들에게 몽땅 나누어주고는, 그날 밤 짐도 챙기지 못한 채 쫓기듯 야반도주를 해버려 두 번 다시 마을에 발을 들이지 못했습니다.

    덕배는 황부자의 으리으리한 집을 헐어 억울하게 집을 잃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도깨비가 준 마르지 않는 은빛 엽전 주머니를 사용하여 흉년이 들 때마다 가난하고 병든 이웃들에게 아낌없이 곡식과 약을 베풀며 보살폈습니다.

    정당하지 않은 헛된 공짜 횡재를 단호히 거절했던 미련해 보이던 약초꾼의 올곧은 선택은, 훗날 끔찍한 저주를 피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온 마을 사람들을 구하고 병든 어머니를 살려내는 진짜 대박 복으로 돌아왔답니다. 요행을 바라지 않고 정직하게 땀 흘린 최덕배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선행을 베풀며 어머니와 함께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행복하고 유쾌하게 아주 잘 먹고 잘 살았다고 합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여러분,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 눈앞에 굴러온 공짜 산삼을 걷어찬 덕배의 정직함이 결국 진짜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 앞에도 달콤한 공짜의 유혹이 있다면, 한 번쯤 멈춰서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통쾌하고 유쾌한 덕배의 복수극에 속이 뻥 뚫리셨다면, 잊지 말고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꾹 눌러주세요! 다음에도 더 배꼽 빠지고 감동적인 옛날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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