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도깨비복이 돌아온 진짜 이유 , 도깨비가 농부에게 남긴 교훈 (출처-청구야담)
"진짜 부자는 따로 있었네" 도깨비가 남기고 간 황금 자루의 충격적 비밀 | 마음이 편안해지는 지혜로운 옛이야기"
태그 (15개)
#도깨비이야기, #청구야담, #권선징악, #오디오드라마, #수면유도, #전설의고향, #옛날이야기, #조선시대, #농부, #황금, #교훈, #나눔, #ASMR, #시니어, #꿀잠
#도깨비이야기 #청구야담 #권선징악 #오디오드라마 #수면유도 #전설의고향 #옛날이야기 #조선시대 #농부 #황금 #교훈 #나눔 #ASMR #시니어 #꿀잠


후킹멘트
평생을 착하게 살았지만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던 농부. 어느 비 오는 밤, 처마 밑에서 떨고 있는 기이한 존재에게 마지막 남은 옥수수를 내어줍니다. 하룻밤의 온정이 가져다준 도깨비방망이와 황금벼락! 하지만 진짜 복은 황금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쓰는 마음에 달린 법이지요. 진정한 부자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지혜로운 옛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 1: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도 빛나는 고운 심성
옛날 옛적, 첩첩산중 산새 소리만 처량하게 울려 퍼지는 충청도의 어느 깊은 산골 마을. 그곳에는 찢어지게 가난한 박 서방이라는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찌나 가난했던지, 그 집 굴뚝에서 사흘에 한 번 밥 짓는 연기라도 피어오르는 날이면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어 신기한 구경거리라도 난 듯 수군거렸습니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재산이라고는 한숨이 절로 나오는 비탈진 돌밭 한 뙈기와, 비바람이 불면 금방이라도 폭싹 주저앉을 것만 같은 낡고 허름한 초가삼간이 전부였지요. 방구석에는 영양실조로 앓아누운 아내가 힘없이 기침을 해댔고, 마당에서는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어린 자식들이 툭하면 배가 고프다며 칭얼거렸습니다. 박 서방은 이른 새벽이슬을 맞으며 집을 나서, 해가 서산 너머로 꼴딱 넘어갈 때까지 남의 밭에서 허리가 끊어지도록 일했습니다. 그렇게 뼛골이 빠지게 일하고 품삯으로 겨우 얻어오는 보리 한 줌, 찌그러진 감자 몇 알이 온 가족의 하루를 연명하게 하는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끔찍한 가난 속에서도 박 서방의 심성 하나만큼은 갓 짜낸 비단결처럼 곱고 따뜻했습니다. 뙤약볕 아래서 남들이 꺼리는 궂은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그의 얼굴에는 찡그린 기색 하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땀방울을 훔치며 넉넉한 미소를 지어 보였지요. 무엇보다 그는 자기 입에 풀칠하기도 벅찬 형편이면서도, 길을 가다 자기보다 더 딱한 처지의 사람을 보면 결코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습니다. 언젠가 길가에 쓰러진 남루한 병자를 보았을 때는 자신의 앙상한 등에 그를 업고 십 리 밖 주막까지 데려다주었고, 살을 에이는 듯한 한겨울 삭풍 속에서는 헐벗고 언 발로 걷는 나그네에게 자신이 신고 있던 낡은 짚신마저 기꺼이 벗어주었습니다. 가뭄이 극심하여 마을 우물이 말라붙고 모두가 물 한 방울을 황금처럼 아낄 때조차, 박 서방은 집 앞 낡은 샘터에 혹시라도 목마른 산짐승이나 길 잃은 나그네가 찾아올까 보아 매일 아침 맑은 물을 한 바가지 가득 떠다 놓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박 서방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혀를 끌쯧 찼습니다.
"쯧쯧, 저리 착해 빠지기만 했으니 평생 저 모양 저 꼴로 가난을 면치 못하는 게지. 제 코가 석 자인데 대체 누굴 돕고 자빠졌단 말인가."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려와도 박 서방은 그저 사람 좋은 미소만 빙그레 지을 뿐이었습니다.
"가진 게 없어도 정을 나누면 언젠가 복이 되어 돌아온다고들 하지 않소. 당장은 배가 고프고 고단하여도, 이 착한 마음 씀씀이 하나만큼은 하늘이 다 굽어살펴 주실 겝니다."
그의 집 뒤란 깊숙한 곳에는 언제 지어졌는지 모를, 수십 년은 훌쩍 넘은 낡고 스산한 사당이 하나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곳에 심술궂고 무서운 도깨비가 터를 잡고 산다며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고, 아이들에게도 그쪽으로는 눈길조차 주지 말라고 엄히 일렀습니다. 그러나 박 서방의 태도는 달랐습니다. 그는 이른 아침 밭으로 나갈 때나 저녁 늦게 돌아올 때면, 으레 그 낡은 사당 앞을 지나며 두 손을 모으고 깊이 허리를 굽혀 정중히 인사를 올렸습니다. 명절이 돌아와도 제 가족 입에 들어갈 떡 한 조각조차 귀한 형편이었지만, 그는 산에서 캔 나물 한 접시나 거친 떡 한 조각이라도 조심스레 사당 앞에 가져다 놓으며 간절한 목소리로 속삭였습니다.
"도깨비님, 올릴 것은 이리도 변변치 않고 초라하오나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흠향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부디 저를 비롯하여 우리 마을 사람들 모두 아무 탈 없이 평안하게 한 해를 넘길 수 있도록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박 서방은 사람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미물 하나, 영적인 존재 하나까지도 가벼이 여기지 않고 진심을 다해 소중히 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그의 일상은 굶주림과 뼛골 빠지는 노동의 연속이었지만, 그의 흉중 깊은 곳에 자리한 마음밭만큼은 천하의 그 어떤 갑부보다도 풍요롭고 넉넉했습니다.
※ 2: 궂은 비 내리는 밤, 굶주린 도깨비와의 만남
유난히도 장마가 길고 질척거리던 어느 여름밤이었습니다. 며칠째 쉬지 않고 쏟아지는 폭우는 마치 성난 하늘이 구멍이라도 뚫린 듯 땅을 집어삼킬 기세였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몰아치는 비바람 소리는 흡사 원통한 귀신이 곡을 하는 것처럼 스산하게 귀청을 때렸습니다. 그날 밤 역시 박 서방네 부엌 솥단지는 바닥을 긁는 소리조차 나지 않을 만큼 텅 비어 있었습니다. 낮에 이웃집에서 간신히 얻어온 비쩍 마른 옥수수 두 개로 온 가족이 멀건 죽을 끓여 나누어 먹고는 간신히 허기만 면한 참이었지요. 천장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눅눅하고 비좁은 방 안에 누워, 빗소리에 묻힌 자식들의 칭얼거림을 들으며 억지로 잠을 청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때, 밖에서 무언가 이상하고 기척이 들려왔습니다. 세찬 빗소리 사이로 섞여 들어오는 그 소리는 마치 상처 입은 들짐승이 낑낑대는 소리 같기도 했고, 길 잃은 어린아이가 추위에 떨며 내뱉는 훌쩍거림 같기도 했습니다. 박 서방이 자리에서 부스럭거리며 일어나려 하자, 옆에 누워있던 아내가 불안한 얼굴로 남편의 거친 소매를 다급히 붙잡았습니다.
"여보, 밖으로 나가지 마셔요. 이리도 비바람이 사나운 궂은 밤에 짐승 소리인지 사람 소리인지 모를 것이 들리다니, 필시 예사롭지 않고 불길한 일일 겝니다."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박 서방은 밖에서 들려오는 저 가엾은 소리를 차마 모른 척 등돌리고 누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리 애타게 떠는 소리가 나는데, 혹여라도 동네 아이가 길을 잃었거나 가여운 생명이 죽어가고 있다면 내 평생 죄책감을 어찌 감당한단 말인가.'
그는 마음을 굳게 먹고 삐걱거리는 사립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번개 불빛 아래로 드러난 광경에 박 서방은 하마터면 뒤로 넘어갈 뻔했습니다. 마당 건너편, 비가 들이치는 낡은 처마 밑에 무언가가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키는 어린아이만 한데, 온몸에는 붉고 거친 털이 숭숭 돋아나 있었고, 산발한 머리 위로는 작고 날카로운 뿔 하나가 불쑥 솟아 있었습니다. 한눈에 보아도 인간의 형상이 아니었습니다. 마을 어르신들이 입을 모아 두려워하며 이야기하던, 바로 그 사당의 도깨비가 틀림없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기절초풍을 하며 문을 걸어 잠그고 이불 속으로 숨었겠지만, 박 서방의 눈에 비친 도깨비의 모습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쏟아지는 차가운 빗줄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고 있는 그 기이한 생명체의 모습이 박 서방의 가슴 깊은 곳에서 진한 측은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처마 밑으로 다가갔습니다.
"이런, 비를 쫄딱 맞으셨구려. 이리 차가운 밤에 밖에서 비를 맞다가는 큰 병을 얻어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오."
박 서방은 서둘러 자신이 덮고 있던 너덜너덜한 낡은 멍석을 벗어 도깨비의 어깨 위로 따뜻하게 덮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얼어붙은 도깨비를 조심스럽게 부축하여 집 안 부엌으로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그는 빗물에 젖은 장작을 힘겹게 지펴 아궁이에 남은 작은 불씨를 크게 살려내었고, 도깨비가 언 몸을 녹일 수 있게 자리를 내어주었습니다. 도깨비는 처음에는 크고 부리부리한 눈을 부릅뜨고 박 서방을 잔뜩 경계하는 듯하더니, 불기운이 퍼지고 박 서방의 다정한 손길이 닿자 조금씩 경계를 풀고 마음을 여는 듯 보였습니다.
바로 그때, 도깨비의 납작한 배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가 마치 천둥이 치듯 부엌 안을 크게 울렸습니다. 박 서방은 그 소리에 무릎을 탁 쳤습니다.
"아이고, 배가 이리 고프셨던 게로구려. 잠시만 여기서 몸을 녹이고 계시지요."
그는 서둘러 찬장 구석으로 다가갔습니다. 그곳에는 내일 아침 자식들의 주린 배를 채워줄 마지막 남은 옥수수 한 알이 천 조각에 싸여 있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의 식량이 눈앞에 아른거렸지만, 박 서방은 당장 눈앞에서 굶주림에 허덕이는 불쌍한 생명을 도저히 외면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옥수수를 집어 들어 도깨비 앞으로 내밀었습니다.
"정말 변변치 않은 것이오나, 당장 허기라도 달래기 위해 이거라도 어서 드시구려."
도깨비는 박 서방이 내민 옥수수를 두 손으로 받아 들더니, 체면도 잊은 채 짐승처럼 허겁지겁 뜯어먹기 시작했습니다. 그 간절하고 처절한 모습이 어찌나 가엾고 짠하던지, 박 서방은 지켜보는 내내 자신도 모르게 뜨거운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옥수수 한 알을 순식간에 다 먹어 치운 도깨비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박 서방을 빤히 쳐다보며, 우렁차면서도 어딘가 신비로운 사람의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정말 고맙다, 인간아. 네 따뜻한 온정 덕분에 오늘 밤 끔찍한 굶주림과 뼛속까지 시린 추위를 면할 수 있었다. 나는 저 뒤란 낡은 사당에 수백 년을 살아온 도깨비다. 세상 모든 인간들은 내 모습만 보고도 비명을 지르며 피하기 바빴는데, 이리도 따뜻하게 나를 거두어주고 귀한 음식을 내어준 이는 내 긴 생애에 네가 처음이다."
박 서방은 그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어쩔 줄 몰라 손사래를 쳤습니다.
"아이고, 당치 않은 말씀이십니다. 눈앞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떠는 생명을 어찌 두고 봅니까. 사람의 도리라면 누구라도 저처럼 그리했을 것이옵니다."
도깨비는 박 서방의 겸손한 대답에 껄껄껄 호탕하게 웃더니, 이내 제 품속에서 무언가를 스르륵 꺼내어 박 서방의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그것은 겉보기에는 아궁이 불쏘시개로나 쓸 법한 낡고 옹이 진 볼품없는 나무 방망이였습니다.
"이것은 도깨비들의 물건, 요술 방망이다. 조건 없이 나에게 베풀어준 네 그 아름답고 착한 마음에 대한 나의 작은 보답이니라. 살아가다 간절히 필요한 것이 생기거든, 이 방망이를 단단히 거머쥐고 '금 나와라 뚝딱' 하고 크게 외쳐 보거라. 단, 내 말을 뼛속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 방망이로 얻게 된 재물은 반드시 세상의 이로운 곳, 올바른 곳에 베풀어 써야만 너에게 진정한 복으로 남을 것이다. 만약 네 마음속 한구석에라도 검은 탐욕이 싹트는 날엔, 이 방망이는 복이 아니라 네 모든 것을 앗아갈 끔찍한 재앙을 불러오고야 말 것이다."
엄중한 경고의 말을 마친 도깨비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짙은 연기 속으로 스며들듯 허공으로 스르르 사라져 버렸습니다. 텅 빈 부엌 한가운데 홀로 남겨진 박 서방은 손에 묵직하게 들린 낡은 방망이를 내려다보며, 지금 겪은 이 모든 믿기지 않는 일들이 꿈인지 생시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어 한참을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 3: 금 나와라 뚝딱! 황금 자루와 따뜻한 나눔
밤새 몰아치던 비바람이 거짓말처럼 멎고 눈부신 아침 햇살이 문틈으로 스며들자, 박 서방은 잠에서 깨어 어젯밤의 일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방 한구석에 덩그러니 놓인 낡은 나무 방망이는 지난밤 도깨비가 쥐여 주며 뿜어내던 그 신비로운 기운은 온데간데없이 흔적도 없었고, 그저 산에서 주워 온 평범한 땔나무 몽둥이처럼 초라해 보일 뿐이었지요.
'허허,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로구나. 며칠을 배를 곯았더니 기어이 헛것을 보고 헛소리까지 환청으로 듣게 된 모양이네. 지독한 가난이란 것이 결국 사람의 정신마저 이리 미치게 만드는구나.'
그는 허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쓴웃음을 지으며 방망이를 발로 툭 차 아궁이 옆으로 치워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시 남의 집 머슴살이라도 사정해 볼 요량으로 채비를 서둘렀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어제저녁부터 굶주린 채 밤새 뒤척이던 막내아이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칭얼대기 시작하더니, 이내 배를 움켜쥐고 세상이 떠나가라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처절한 울음소리에 박 서방의 가슴은 날카로운 비수에 찔린 듯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는 혹시나 하는,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절박한 심정으로 아궁이 옆에 버려두었던 방망이를 다시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울며 보채는 아이를 달래려는 듯 쓴웃음을 지으며, 반쯤은 체념 섞인 장난으로, 그리고 반쯤은 하늘에 비는 간절함을 담아 허공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그래 그래, 우리 아가. 배가 많이 고프지. 어젯밤 도깨비가 주고 간 이놈의 방망이야, 내 말이 들리느냐. 나는 큰 부귀영화 같은 건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우리 가엾은 식구들 따뜻한 죽이라도 한 그릇 끓여 먹일 수 있게, 제발 쌀 한 줌만 내어 다오! 쌀 나와라 뚝딱!"
그러자, 도무지 인간의 상식으로는 믿을 수 없는 엄청난 조화가 일어났습니다. 박 서방의 간절한 외침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볼품없던 방망이 끝에서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눈부시고 환한 빛줄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동시에, 오랫동안 텅 비어 거미줄만 쳐져 있던 부엌 한쪽의 낡은 뒤주 위로 새하얀 쌀알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쏴아아- 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쌀이 산더미처럼 수북하게 쌓아 올려졌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목도한 박 서방과 아내는 숨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마네킹처럼 굳어버렸습니다. 한참을 멍하니 서 있던 두 부부는 꿈이 아닐까 싶어 서로의 볼을 꼬집어 보았습니다. "아얏!" 얼얼한 통증이 밀려왔습니다. 꿈이 아니었습니다. 도깨비는 환상이 아니었고, 이 기적 같은 방망이의 힘은 분명한 현실이었습니다.
흥분으로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려오는 것을 간신히 억누르며, 박 서방은 침을 꿀깍 삼키고 두 손으로 방망이를 고쳐 쥐었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더 크고 단호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금 나와라 뚝딱!"
그 순간이었습니다. 쌀이 쏟아질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요란한 쇳소리를 내며, 앞마당에 둥그런 궤짝들이 떨어져 내리더니 그 안에서 태양 빛을 반사하며 눈을 찌를 듯 번쩍이는 눈부신 황금 덩어리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와 작은 동산을 이루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평생을 가난 속에 살아오며 구경은커녕 상상 속에서조차 그려보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양의 재물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그날 저녁, 박 서방의 집 굴뚝에서는 실로 몇 년 만에 처음으로 고기 굽는 고소한 냄새가 온 동네로 퍼져 나갔습니다. 아이들은 난생처음 맛보는 따끈따끈한 고봉밥과 기름이 둥둥 뜬 고깃국을 배가 터지도록 먹어치우며 꺄르르 행복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박 서방 부부도 해진 무명옷을 벗어 던지고 마을 어귀 장터에서 산 질 좋은 비단옷으로 갈아입었으며, 며칠 뒤에는 비바람을 막지 못하던 쓰러져가던 초가집을 헐어내고 동네에서 가장 크고 번듯한 기와집을 새로 지어 올렸습니다.
그러나 가난을 벗어난 꿈같은 기쁨의 시간도 잠시, 며칠이 지나자 박 서방의 마음 한구석에는 무거운 돌덩이를 얹은 듯한 고민이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귓가에는 도깨비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엄중한 목소리가 끊임없이 메아리치고 있었습니다.
'이 방망이로 얻은 재물은 반드시 세상의 이로운 곳에, 올바른 곳에 베풀어 써야만 너에게 진정한 복으로 남을 것이다.'
그는 배불리 먹고 따뜻한 방에서 잘 수 있게 되자, 자연스레 자신의 과거 모습처럼 헐벗고 굶주리는 마을의 이웃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행동에 나섰습니다. 어둠이 짙게 깔린 한밤중이 되면, 박 서방은 커다란 쌀가마니를 지게에 짊어지고 아무도 모르게 발소리를 죽여가며 가난한 이웃집의 뒤주 앞에 조용히 쌀을 놓아두고 돌아왔습니다. 홀로 쓸쓸히 늙어가며 깊은 병환에 시달리는 이웃 마을 김 노인의 소식을 전해 듣고는, 값비싸고 귀한 약재를 한가득 사들여 보자기에 싼 뒤 몰래 그의 집 문 앞에 두고 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온 고을을 덮친 지독한 흉년으로 인해 마을 사람들 전체가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박 서방은 더 이상 밤에 숨어서 도울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넓은 기와집 마당 한가운데에 성인 몇 명이 들어갈 만큼 커다란 가마솥을 여러 개 걸고 장작을 떼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엄청난 양의 쌀을 쏟아부어 하얀 쌀죽을 끓여 냈고, 마을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을 불러 모아 따뜻한 죽을 배불리 나누어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된 박 서방을 두고 온갖 질투 어린 소문과 억측이 돌았지만, 그의 변함없는 겸손함과 아낌없이 내어주는 선행을 직접 겪게 된 사람들은 이내 마음을 열고 그를 깊이 칭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참으로 박 서방은 하늘이 점지하여 낸 분이 틀림없어. 저렇게 고운 심성을 가졌으니 하늘도 감동하여 큰 복을 내려주신 게지."
박 서방은 넘쳐나는 재물의 바다 속에서도 결코 교만해지거나 나태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전과 다름없이 매일 새벽 가장 먼저 일어나 흙 묻은 옷을 입고 밭을 살폈으며, 이웃에게 궂은일이 생기면 언제나 가장 먼저 달려가 자신의 일처럼 팔을 걷어붙이고 도왔습니다. 도깨비방망이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오직 남을 돕기 위해 무언가가 간절히 필요할 때만 조심스레 사용했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좋은 옷을 입고 따뜻한 방에 눕는 것도 좋았지만, 자신의 손으로 이웃의 굶주림을 덜어주고 그들의 얼굴에 웃음을 찾아주는 그 순간순간이 그에게는 살아생전 느껴보지 못한 가장 크고 위대한 행복이었습니다.
※ 4: 시기심에 불타오르는 욕심쟁이 최 부자의 꿍꿍이
박 서방이 알 수 없는 방법으로 큰 부자가 되어 마을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다닌다는 소문은 춘풍을 타고 순식간에 온 마을과 이웃 고을에까지 쫙 퍼져나갔습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의 선행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우러러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을에서 땅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고, 그만큼 성질도 가장 지독하기로 소문난 구두쇠 중의 구두쇠 최 부자는 이 소식을 전해 듣고는 시기심과 질투심에 속이 뒤집어져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최 부자로 말할 것 같으면, 가난한 소작농들이 피땀 흘려 지은 농산물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걷어가는 것은 기본이요, 당장 끼니가 없어 굶어 죽어가는 이들에게 살인적인 이자를 붙여 돈을 빌려준 뒤 기어이 그들의 마지막 남은 땅문서마저 빼앗아버리는 악독한 자였습니다. 그의 거대한 창고에는 다 먹지도 못할 쌀가마니가 산더미처럼 쌓여 쥐 떼와 벌레들이 득실거리며 썩어문드러지고 있었지만, 그는 제 집 대문 밖에서 뼈만 남은 아이가 밥 한 술을 구걸하며 쓰러져 가도 몽둥이를 들고 내쫓는 피도 눈물도 없는 위인이었지요.
그런 최 부자의 뱀 같은 눈에,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마당에서 굽신거리며 썩은 감자라도 줏어 가려던 거지꼴의 박 서방이 하루아침에 엄청난 부자가 된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온 동네 사람들이 이제 자신은 피하면서 박 서방만을 칭송하며 따르니 그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했습니다.
'아니, 저렇게 미련하고 무지렁이 같은 놈이 대체 어느 날 무슨 수로 저런 엄청난 돈벼락을 맞았단 말인가? 필시 밤중에 몰래 도둑질을 했거나, 아니면 삿된 주술을 부려 남의 재물을 빼앗은 것이 분명하다. 내 기필코 그 비밀을 알아내어 그 재물들을 모조리 내 것으로 빼앗아 오고야 말겠다!'
배배 꼬인 시커먼 꿍꿍이를 품은 최 부자는 어느 날 오후, 자신의 본래 성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바구니에 기름진 닭고기와 값비싼 명주, 그리고 냄새만 맡아도 취할 듯한 좋은 술을 잔뜩 챙겨 들고 박 서방의 기와집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는 평소 소작농들을 벌레 보듯 내려다보던 거만하고 오만한 표정은 싹 지워버리고, 마치 아주 오랜 세월을 함께한 죽마고우를 만난 것처럼 입이 귀에 걸리도록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박 서방의 두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허허허! 아유, 박 서방. 그간 내가 사는 게 바빠 너무 무심했네 그려. 이리도 으리으리하고 번듯한 기와집을 지어 놓고 사는데, 같은 이웃사촌으로서 축하 인사가 이리 늦어서야 쓰나. 내 자네를 위해 아주 맛난 고기와 술을 가져왔으니 우리 회포나 한번 시원하게 풀어보세. 자자, 내 술 한잔 시원하게 받게나!"
본디 심성이 눈꽃처럼 순박하기 그지없고 남을 의심할 줄 모르는 박 서방은 최 부자의 시커먼 속셈은 꿈에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저 마을의 가장 큰 어른이자 유지인 그가 천한 자신을 먼저 찾아와 주었다는 사실에 감격하여 몸 둘 바를 모르며 그를 극진히 맞이했습니다. 산해진미가 차려진 상 위로 좋은 술이 몇 잔 오가고, 넉넉한 인심 탓에 술을 거절하지 못한 박 서방의 얼굴에 얼큰하게 취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최 부자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뱀의 혀를 낼름거리듯 슬쩍 본론을 꺼냈습니다.
"크흠, 그런데 박 서방. 이제 우리 사이에 허물이나 숨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나에게만 속 시원히 솔직하게 털어놓아 보게나. 대체 무슨 신통한 수로 이리 단숨에 온 고을이 부러워하는 큰 부자가 되었는가? 조상님 무덤이라도 명당으로 이장을 했는가, 아니면 깊은 산속에서 천년 묵은 산삼이라도 무더기로 캔 것인가. 에이, 나한테만 몰래 말해보게나."
박 서방은 도깨비와의 엄중했던 약속을 떠올리며 애써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지만, 이미 독한 술기운이 이성을 마비시킨 데다 워낙 사람이 허술하고 남의 구슬림에 약한 탓에, 최 부자의 집요한 질문 세례와 기름칠한 듯한 아첨에 넘어가 결국 조금씩 말문이 열리고 말았습니다.
"그게... 사실은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비밀인데 말입니다... 얼마 전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던 밤에 맺게 된 아주 기이하고 특별한 인연 덕분입니다. 그분이 제게 주신 아주 신비로운 요술 방망이가 하나 있는데... 그것을 들고 외치면..."
'요술 방망이?!'
최 부자의 귀가 산토끼처럼 번쩍 위로 치솟았습니다. 그는 쾌재를 부르며 더 이상 박 서방을 캐묻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껄껄 웃으며 계속해서 그의 잔에 술을 들이부어 박 서방을 정신조차 차리지 못할 정도로 완전히 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날 밤, 최 부자는 겉으로는 사람 좋은 얼굴을 하며 집을 나섰지만, 발걸음은 자신의 집이 아닌 박 서방네 담장 밑으로 향했습니다. 그는 그날부터 매일 밤 은밀한 그림자처럼 박 서방의 집 담벼락에 몸을 숨긴 채 구멍 난 문풍지 사이로 방 안을 엿보기 시작했습니다.
독한 산모기 떼에게 온몸을 뜯기며 밤을 지새우기를 며칠째, 마침내 운명의 밤이 찾아왔습니다. 최 부자는 박 서방이 늦은 밤 홀로 마루에 나와, 아궁이 한구석에 숨겨두었던 시커멓고 볼품없는 방망이를 꺼내 들고는 허공을 향해 조심스레 '금 나와라 뚝딱' 하고 외치는 광경을 자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고 말았습니다. 방망이 끝에서 눈부신 빛과 함께 묵직한 황금 덩어리들이 툭툭 떨어지는 것을 본 최 부자의 두 눈은 탐욕과 광기로 시뻘겋게 타올랐습니다.
'옳거니! 저것이구나! 저것이 바로 옛이야기에서나 말로만 듣던 그 요술 방망이, 도깨비방망이로구나! 천하의 귀한 보물을 저런 미련하고 멍청한 놈이 가지고 썩히고 있다니, 그야말로 돼지 목에 걸린 진주 목걸이가 따로 없구나. 저 방망이만 어떻게든 내 손에 들어오게 된다면, 이 시골 구석의 부자를 넘어 조선 팔도 최고의 거부가 되는 것은 그저 시간문제다!'
최 부자는 주먹을 꽉 쥐며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그는 그날 밤부터 박 서방이 술김에 말했던 그 '특별한 인연'이 누구인지, 어디서 방망이를 얻었는지 그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미친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머릿속은 오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망이를 빼앗아 무한한 재물을 탐하겠다는 생각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의 끝없는 탐욕이 이미 그를 집어삼키고, 그 등 뒤로 피비린내 나는 끔찍한 재앙의 검은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고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른 채 말입니다.
※ 5: 탐욕이 부른 끔찍한 재앙, 도깨비의 심판
최 부자는 그날부터 일손을 모두 놓고 오로지 박 서방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데에만 온 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 며칠 밤낮을 마치 굶주린 들개처럼 그의 뒤를 그림자 삼아 밟던 중, 마침내 보름달이 대낮처럼 휘영청 밝게 떠오른 어느 맑은 밤이었습니다. 최 부자는 박 서방이 늦은 밤중에 소박하지만 정갈하게 차린 제사상을 들고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집 뒤편의 낡은 사당을 향해 걸어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최 부자는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풀숲의 가시덤불 뒤에 몸을 납작하게 엎드린 채, 그 광경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았습니다. 밤공기는 차가웠지만 그의 온몸은 탐욕의 열기로 펄펄 끓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밤에 사당의 낡은 문이 삐걱거리는 기괴한 소리를 내며 스르르 열리더니, 어둠 속에서 거대한 실루엣이 나타났습니다. 붉은 털이 숭숭 나고 머리에 작은 뿔이 돋은, 험상궂으면서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도깨비가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도깨비는 박 서방이 가져온 제사 음식을 맛나게 먹으며 그와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옳거니! 저 흉측하고 괴상하게 생긴 놈이 바로 박 서방이 말한 그 특별한 인연의 정체로구나! 필부에게나 영험한 존재지, 나처럼 천하의 재물을 다스리는 큰 부자에게는 그저 재물을 바치는 멍청한 종놈에 불과할 터! 내 당장 저놈을 구워삶아 그 방망이를 빼앗고야 말 테다!'
최 부자는 그들이 막걸리를 나누어 마시고 헤어지기를 숨죽여 기다렸다가, 박 서방이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자신도 부리나케 자신의 으리으리한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는 비단옷을 훌렁 벗어 던지고, 노비들이 입다 버린 허름하기 짝이 없는 냄새나는 헌 옷으로 주워 입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아궁이의 시커먼 검댕을 두 손에 묻혀 얼굴과 목에 잔뜩 덕지덕지 발랐고, 머리도 산발을 하여 누가 보아도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굶주린 거지 행색을 꾸몄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그는 헐떡이는 숨을 고르며 다시 사당으로 향했습니다. 그는 사당 앞에 다다르자 일부러 다리를 심하게 절뚝거리며, 금방이라도 숨이 꼴깍 넘어갈 듯한 불쌍한 표정으로 도깨비 앞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아이고, 도깨비님! 영험하신 도깨비 할아버지! 제발 저 좀 살려주십시오. 저는 이 넓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박복하여 뒈지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놈입니다. 사흘 밤낮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해 굶는 것은 예사요, 어린 자식들은 배가 고파 산의 흙을 파먹고 있으며, 가여운 제 아내는 이름 모를 병에 걸려 피를 토하며 죽어가고 있습니다. 제발 저에게도 그 요술 방망이인지 뭔지 하는 것을 내려주시어 한 줌의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최 부자는 침까지 질질 흘려가며, 없는 눈물까지 억지로 짜내어 땅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서럽게 울부짖었습니다. 그 가증스러운 연기는 실로 완벽에 가까워 웬만한 사람이라면 속아 넘어갈 법했습니다. 하지만 도깨비는 그런 최 부자를 위아래로 빤히 훑어보며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도깨비의 그 크고 붉은 눈빛은 한낮의 태양보다도 강렬하게 타올라, 인간이 감추고자 하는 마음속 가장 어둡고 깊은 밑바닥까지 단숨에 꿰뚫어 보는 듯 깊고 오묘했습니다. 도깨비는 최 부자의 겉모습은 비록 냄새나는 남루한 행색이었지만, 그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독사처럼 똬리를 틀고 이글거리는 시커먼 탐욕과 이웃을 짓밟으려는 끔찍한 이기심을 단번에 알아차렸습니다.
하지만 도깨비는 짐짓 그의 거짓 눈물에 속아주는 척하며, 천둥처럼 굵고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흐음, 네 사정이 정녕 그리 딱하고 가엾단 말이지. 좋다. 내 특별히 마음씨 착한 박 서방의 얼굴을 보아, 너에게도 가난을 벗어날 마지막 기회를 한 번 주도록 하겠다."
도깨비는 품속에 손을 넣더니, 박 서방에게 주었던 것과 똑같이 생긴 낡고 시커먼 나무 방망이를 하나 더 꺼내어 최 부자의 발밑에 툭 던져 주었습니다.
"이 방망이를 너에게 주마. 네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내어줄 신물이다. 단, 마지막으로 내 말을 뼛속 깊이 새겨듣고 명심하거라. 이 방망이는 주인의 마음을 그대로 비추는 진실의 거울과도 같으니, 네 마음속에 남을 해치려는 욕심이 크면 클수록, 그 방망이가 불러올 재앙 또한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하고 거대할 것이다."
최 부자는 도깨비의 엄중한 경고 따위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는 흙바닥에 떨어진 방망이를 덥석 집어 들고는 고맙다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미친 사람처럼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집을 향해 부리나케 달려갔습니다. 그는 대궐 같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하인들을 모두 내쫓고 대문을 육중한 빗장으로 이중 삼중 걸어 잠갔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평생을 바쳐 긁어모은 재물이 산더미처럼 쌓인 거대하고 어두운 창고 안으로 홀로 들어갔습니다. 창고 문까지 굳게 잠근 그는 헐떡이는 숨을 내쉬며 방망이를 두 손으로 높이 쳐들었습니다. 그의 입가에는 광기 어린 미소가 번졌고, 거의 악에 받친 듯한 목소리로 온 힘을 다해 소리쳤습니다.
"크하하! 이까짓 좀도둑 같은 쌀가마니와 엽전 닢들은 이제 내 성에 차지 않는다! 이 나라의 임금도 감히 부러워하여 내 발밑에 엎드릴 만큼, 온 세상을 다 사고도 남을 만큼, 이 거대한 창고를 가득 채우고도 넘쳐흐를 만큼의 엄청난 황금을 당장 내놓아라! 황금 나와라 뚝딱! 당장 뚝딱 쏟아져라!"
그의 탐욕스럽고 오만한 외침이 창고 안에 울려 퍼지기가 무섭게, 방망이 끝에서 눈을 뜰 수 없는 빛 대신 시체 썩는 듯한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시커먼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후, 창고 바닥에서 번쩍이는 황금이 쏟아져 나와야 할 자리에는 믿을 수 없는 지옥도가 펼쳐졌습니다. 시뻘건 불길을 입으로 내뿜는 험상궂고 거대한 도깨비 무리들과, 사람의 허벅지보다 굵은 징그럽고 맹독을 품은 구렁이 떼, 그리고 눈알이 하나뿐인 흉측하고 기괴한 잡귀들이 끝도 없이 바닥에서 꾸역꾸역 기어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들은 날카로운 비명 소리와 함께 최 부자에게 일제히 달려들었습니다. 귀신들은 그의 얼굴에 묻은 검댕을 조롱하듯 그의 살점을 꼬집고 날카로운 손톱으로 인정사정없이 할퀴었으며, 구렁이들은 그의 목과 몸통을 칭칭 감아 숨을 조였습니다.
"아아악! 살려주시오! 내 잘못했소! 제발 살려주시오!"
최 부자는 평생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압도적인 공포와 고통에 질려 비명을 질러대며 창고 밖으로 도망치려 발버둥 쳤습니다. 하지만 그가 스스로 굳게 잠가버린 무거운 창고 문은 아무리 밀어도 꿈쩍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괴물들은 최 부자를 흠씬 두들겨 팬 후, 그의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쌀가마니를 모두 날카로운 이빨로 찢어발겨 흙바닥에 흩뿌렸고, 값비싼 비단과 진귀한 보물들이 가득한 곳간을 갈기갈기 부수고 불태웠습니다. 집안은 온통 피와 비명, 그리고 부서진 재물들의 잔해로 뒤덮여 끔찍한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마치 분노한 하늘의 거대한 태풍이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간 듯했습니다. 한바탕 끔찍한 파괴와 심판의 난리가 휩쓸고 지나간 뒤, 잡귀들은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매캐한 연기와 함께 흔적도 없이 스르르 사라졌습니다.
아침 해가 뜰 무렵, 굳게 닫혀 있던 창고 안에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너덜너덜해진 몰골로 넋을 잃은 최 부자만이 텅 비어버린 잿더미 위에 홀로 쓰러져 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그 많던 막대한 재산은 단 하룻밤 사이에 모두 신기루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그의 피 묻은 손에는 끝없는 재앙을 불러온 낡고 시커먼 방망이 하나만이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습니다. 남을 짓밟고 일어선 그의 끝없는 탐욕이, 결국 그 자신을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것이었습니다.
※ 6: 황금의 참된 의미를 깨달은 농부의 위대한 결심
다음 날 아침, 마을의 최고 부자이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최 부자네 대궐 같은 집이 하룻밤 사이에 폭삭 망해 처참한 잿더미로 변해버렸다는 소문은 아침 안개를 타고 온 동네방네 흉흉하게 퍼져나갔습니다. 평소 그에게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피눈물을 흘리며 착취당했던 마을 사람들은 잿더미가 된 최 부자의 집 앞을 지나며 고소함을 감추지 못하고 손가락질을 해댔습니다.
"아이고, 속이 다 시원하네! 그렇게 악착같이 가난한 사람들 고혈을 빨아먹고 눈에 피눈물 나게 하며 재물을 모으더니만, 꼴좋게 쌤통이다. 하늘이 무심치 않으시고 벌을 내리신 게지!"
박 서방 역시 이웃들로부터 그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듣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혹시나 하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여, 그날 밤 주위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 사당의 도깨비를 찾아갔습니다. 자초지종을 묻는 박 서방에게, 도깨비는 씁쓸한 표정으로 막걸리를 한 사발 시원하게 들이켜고는 전날 밤 있었던 일들을 낱낱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최 부자가 어떤 가증스러운 거짓 행색으로 자신을 속이려 했는지, 그가 밀실에서 얼마나 끔찍한 탐욕을 부르짖었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어떤 비참하고 끔찍한 벌을 받게 되었는지 말입니다.
"나는 그 자에게 방망이를 내어주며 분명히 경고하였다. 이 신물은 주인의 마음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라고 말이다. 그의 썩어빠진 마음속에는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향한 끝없는 탐욕과, 자신보다 나은 자를 끌어내리려는 추악한 시기심만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니 방망이에서 번쩍이는 황금 대신 그를 파멸시킬 끔찍한 재앙의 괴물들이 쏟아져 나온 것은 하늘의 이치요, 지극히 당연한 결과니라."
도깨비의 무거운 말을 가슴에 새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박 서방의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웠습니다. 얼굴을 스치는 서늘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그는 밤길을 걸으며 깊고도 무거운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는 최 부자의 그 처참하고 비참한 몰락을 보며 마치 머리를 둔기로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듯한 커다란 깨달음을 얻고 있었습니다.
'그렇구나... 번쩍이는 황금 그 자체가 사람에게 복이나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절대 아니었어. 그 막대한 재물을 어떤 맑은 마음으로, 어떻게 사람을 살리는 데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것이 온 세상을 덮는 따뜻한 복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사람을 미치게 만들어 목숨까지 앗아가는 끔찍한 독과 재앙이 될 수도 있는 것이로구나.'
박 서방은 문득 자신의 번듯하고 화려해진 기와집과 창고에 가득 쌓인 막대한 재물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았습니다. 만약 자신 또한 그 재물에 눈이 멀어 교만한 마음을 품고 이웃을 외면한 채 끝없는 욕심을 부렸다면, 어젯밤 잿더미 속에서 피눈물을 흘리던 최 부자와 똑같은, 아니 어쩌면 더 비참한 신세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지고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이 집에 가득한 부귀영화는 결코 자신의 뛰어난 능력이나 피와 땀으로 정당하게 얻어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궂은 비가 미친 듯이 내리던 그 밤, 굶주린 생명에게 내어준 마지막 옥수수 한 알이라는 작은 나눔의 인연으로 얻게 된, 그야말로 분에 넘치도록 거대하고 우연한 행운이었습니다.
그는 결심했습니다. 이 막대한 재물이 더 이상 자신과 자신의 피붙이만을 배불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것은 하늘이, 그리고 은혜를 아는 마음씨 고운 도깨비가 그저 자신이라는 사람을 통로로 삼아, 가난하고 굶주림에 허덕이는 이 온 마을 사람 모두에게 골고루 내린 축복임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날 밤, 박 서방은 결연한 표정으로 마을의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과 유지들을 모두 자신의 집 넓은 대청마루로 정중히 모셨습니다. 정성껏 빚은 차와 다과를 대접한 뒤, 박 서방은 그동안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고 가슴속에 꽁꽁 숨겨왔던 도깨비방망이의 비밀과 지난밤 최 부자에게 일어난 비극의 진실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어르신들 앞에서, 박 서방은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허리를 굽히며 자신의 굳은 결심을 차분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존경하는 마을 어르신들, 그리고 이웃 여러분. 이 크고 넓은 기와집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저 재물들은 본디 제 것이 아니옵니다. 제 그릇에는 너무도 넘치는 것들입니다. 저는 이제부터 저 황금과 쌀들을 저와 제 가족의 안위만이 아닌, 피를 나눈 형제와도 같은 우리 마을 전체의 백년대계를 위해 아낌없이 내놓고 싶습니다. 해마다 여름 장마철이면 둑이 터져 역병처럼 범람하여 우리네 아까운 밭을 다 휩쓸어버리는 저 거친 강물 위에, 백 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을 튼튼한 돌다리를 놓읍시다. 그리고 아무리 지독한 가뭄이 들어도 우리 아낙네들이 물 걱정 없이 빨래를 하고 아이들을 먹일 수 있도록 깊고 맑은 공동 우물을 마을 한가운데에 파냅시다. 마지막으로 아주 커다란 공동 곳간을 지어, 풍년이 들면 곡식을 함께 모아 저장했다가 흉년이 들어 굶는 이가 생기면 차별 없이 모두가 배불리 나누어 먹을 수 있도록 철저히 대비합시다."
마을 어르신들과 사람들은 박 서방의 그 깊고도 넓은 태평양 같은 씀씀이와 따뜻한 진심에 모두 할 말을 잃고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어떤 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박 서방의 두 손을 덥석 잡으며 목이 메어 고마워했고, 어떤 이는 그동안 자신만이 잘살아 보겠다고 이웃의 아픔을 모른 척했던 지난날의 이기심을 뼈저리게 뉘우치며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박 서방의 숭고한 뜻에 깊이 감복하여, 다 함께 힘을 모아 새롭고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로 굳게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습니다. 그 순간, 대청마루에 선 박 서방의 마음은 깃털처럼 가볍고 고요한 호수처럼 평온했습니다. 도깨비방망이로 처음 황금 자루를 쏟아냈을 때 느꼈던 그 아찔한 기쁨과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훨씬 더 거대하고 영혼을 꽉 채우는 벅찬 행복감이 그의 가슴속 깊은 곳부터 뜨겁게 차오르고 있었습니다.
※ 7: 진짜 부자가 된 농부와 도깨비의 재회
그날 이후, 박 서방의 마을에는 마치 마법처럼 놀랍고도 활기찬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치기 시작했습니다. 박 서방은 자신의 말대로 창고를 활짝 열어 도깨비방망이로 얻은 막대한 재물을 마을을 위해 아낌없이 내어놓았고, 그의 순수한 진심에 깊이 감동한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이를 남의 일 구경하듯 뒷짐 지고 바라만 보지 않았습니다. 남녀노소, 양반과 천민을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이른 아침부터 들고일어나 자신의 집안일처럼 팔을 걷어붙이고 구슬땀을 흘리며 힘을 보탰습니다. 무거운 돌을 나르고 흙을 파내며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검게 그을린 얼굴에는, 과거의 찌든 고단함 대신 내일을 향한 희망과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몇 달에 걸친 모두의 피나는 노력 끝에, 비만 오면 위태롭게 삐걱거리며 떠내려가던 마을 어귀의 낡은 섶다리는 커다란 소달구지가 지나가고 백 년의 거센 물살을 견뎌도 거뜬할 만큼 웅장하고 튼튼한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로 탈바꿈하였습니다. 메말랐던 땅 곳곳에는 장정 수십 명이 매달려 파낸 덕분에 가뭄에도 절대 마르지 않는 깊고 시원한 공동 우물이 생겨나 아낙네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대궐만큼이나 커다란 공동 창고가 늠름하게 지어져, 가을걷이가 끝나고 풍년이 들면 각 집에서 수확한 곡식들을 한데 모아두었다가, 보릿고개나 흉년이 닥치면 누구 하나 굶주리지 않도록 공평하게 나누어 먹는 든든한 생명줄이 되었습니다. 이제 이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변덕스러운 홍수와 가뭄을 두려워하며 하늘만 원망하지 않게 되었고, 추운 겨울에도 배를 곯고 쓰러지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마을 어귀 양지바른 곳에는 가난하여 글을 배우지 못하던 코흘리개 아이들을 위한 작은 서당까지 번듯하게 세워졌습니다. 골목마다 아이들의 낭랑한 글 읽는 소리와 건강한 웃음소리가 메아리쳤고, 사람들 사이에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음식을 나누는 따뜻한 정이 굽이치는 강물처럼 넘실거렸습니다.
이 모든 기적을 이루어낸 박 서방은, 정작 이제 더 이상 방 안에 금은보화를 가득 쌓아두고 비단옷을 휘감은 큰 부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마을의 평화와 안정을 확인한 어느 깊은 밤, 홀로 마을의 공동 우물로 걸어가 그 누구도 다시는 탐욕에 흔들리지 않도록 도깨비방망이를 그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우물물 속으로 영원히 던져버렸습니다. 퐁당,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방망이가 사라진 후, 박 서방은 미련 없이 돌아서서 다시 예전처럼 해진 무명옷을 입고 이른 새벽부터 흙냄새를 맡으며 밭을 가는 평범하고 소박한 농부의 삶으로 되돌아갔습니다.
하지만 그는 창고에 황금이 가득했던 그 어떤 순간보다도 지금이 가장 눈물 나게 행복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길에서 흙투성이인 그를 마주칠 때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진심을 다해 허리 굽혀 존경을 표했고, 그의 따뜻한 이름은 바람을 타고 '복을 부르는 박 영감'이라는 칭호로 수십 리 밖 이웃 마을에까지 널리널리 전설처럼 알려졌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더 이상 운이 좋아 벼락부자가 된 '운 좋은 박 서방'이라 부르지 않고, 세상을 품은 '마음이 진짜 부자인 박 영감'이라 부르며 마음 깊이 따랐습니다.
그로부터 아주 오랜 세월이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 꼿꼿하던 박 서방의 허리도 굽고 머리에는 하얀 서리가 내린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었을 무렵이었습니다. 둥근 보름달이 유난히도 밝고 처연하게 빛나던 어느 가을밤, 박 서방이 늘 정성을 다해 청소하던 집 뒤란의 낡은 사당 앞에 반가운 옛 친구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바로 그 옛날, 비를 맞으며 떨고 있던 붉은 털의 도깨비였습니다. 도깨비 역시 세월을 비껴가지 못한 듯 하얀 수염이 길게 자라 있었습니다. 두 늙은 친구는 마치 어제 헤어졌다 다시 만난 지기처럼 자연스럽게 사당 앞 낡은 평상에 마주 앉아, 달빛을 안주 삼아 정겹게 막걸리 잔을 기울였습니다.
도깨비가 하얀 수염을 기분 좋게 쓰다듬으며 빙그레 미소를 짓고는 툭 던지듯 말했습니다.
"허허, 내가 그 옛날 자네에게 주었던 산더미 같던 황금은 이제 자네 곳간에 단 한 톨의 먼지조차 남지 않았겠구나. 어찌 후회하지는 않는가?"
그러자 박 서방은 주름이 깊게 파인 얼굴에 아이처럼 환하고 평온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네, 내 오랜 친구여. 자네가 주었던 번쩍이는 황금은 내 손에서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지만, 자네가 보시다시피 우리 마을에는 그깟 차가운 황금과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더 귀하고 값진 사람의 정과 따뜻한 복이 산더미처럼 쌓이게 되었다네. 모두가 배부르고 웃을 수 있으니 이 모든 것이 다 자네가 베푼 그 옥수수 한 알의 보답 덕분일세."
도깨비는 박 서방의 말에 크게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깊이 끄덕였습니다.
"아니다, 이 사람아. 이 마을에 깃든 그 거대한 복은 내가 준 요술 방망이가 만든 것이 절대 아니다. 재물을 움켜쥐지 않고 기꺼이 세상을 위해 올바르게 흘려보낼 줄 아는 자네의 그 한없이 착하고 너른 마음밭이 스스로 일구어낸 기적이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많은 금괴를 창고에 쌓아둔들, 결국 너야말로 천하를 다 가진 진짜 제일가는 부자니라."
두 늙은 친구는 더 이상의 긴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낡은 막걸리 잔을 조용히 부딪쳤습니다. "짠" 하는 맑은소리가 고요한 밤공기를 가르고 퍼져나갔습니다. 환하게 쏟아지는 부드러운 달빛 아래, 두 사람의 뒷모습은 세상 그 어떤 풍경보다도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재물이란 것은 손에 쥐었다가도 모래알처럼 빠져나가고, 없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는 한낱 신기루와 같은 법입니다. 하지만 맑고 착한 마음으로 베풀어 쌓아 올린 진정한 덕과 복은 결코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고, 대대손손 마을의 앞날과 사람들의 마음속을 환한 등불처럼 비춘다는 사실을. 욕심 없는 마음씨 고운 도깨비와, 황금보다 사람을 귀하게 여긴 지혜로운 농부의 이 오랜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밤바람을 타고 우리에게 묵직한 가르침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어르신들, 오늘 밤 들려드린 도깨비와 진짜 마음 부자 박 영감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가난의 고통 속에서도 이웃의 아픔을 먼저 살필 줄 알았던 박 서방의 따뜻한 나눔이, 어르신들의 마음에 깊은 위로와 잔잔한 감동을 남겼기를 바랍니다. 진짜 복이란 번쩍이는 황금 자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재물을 어떻게 나누고 베푸느냐 하는 우리 마음의 크기에 달린 것 같습니다. 이웃과 함께 나누는 따뜻한 정 한 조각이 우리네 인생을 진정으로 풍요롭게 만든다는 옛 어른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네요. 이 이야기가 고단했던 하루의 근심을 모두 녹여주고 편안한 잠자리로 안내해주었기를 바랍니다. 구독과 좋아요로 함께해 주시면 더 따뜻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평안하고 좋은 꿈 꾸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