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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깨비가 돌봐준 약초꾼 총각 [청구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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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깊고 험한 산속을 누비며 약초를 캐는 가난한 총각. 그는 굶주리는 와중에도 돈 없는 이웃들에게 대가 없이 약초를 나누어주는 착한 심성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런 총각의 따뜻한 마음을 남몰래 지켜보던 기이한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장난기 많고 의리 넘치는 도깨비였습니다! 가난한 두 남녀의 애틋한 사랑을 이루어주기 위한 도깨비의 은밀하고도 기상천외한 대작전, 지금 시작합니다.

    ※ 1: 험한 산을 누비며 캔 약초를 가난한 이웃에게 대가 없이 나누는 착한 약초꾼 총각

    아직 여명이 완전히 밝지 않아 푸르스름한 새벽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태백산맥의 깊고 험준한 산자락. 햇살조차 두꺼운 나뭇잎을 뚫고 들어오기 힘든 이 울창한 원시림 속에서, 차가운 아침 이슬을 흠뻑 머금은 수풀 사이로 바스락거리는 묵직한 발소리가 고요한 산의 정적을 깨우고 있었습니다. 낡고 해져서 곳곳을 기워 입은 거친 삼베옷에, 어깨에는 제 몸통만 한 커다란 망태기를 짊어진 젊은 약초꾼 총각은 깎아지른 듯한 아찔한 벼랑 끝을 거침없이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 억센 칡넝쿨에 긁히고 뾰족한 바위틈에 찔려 총각의 거친 손등과 맨발은 온통 붉은 생채기투성이였지만, 그의 맑고 깊은 두 눈동자만큼은 진귀한 약초를 반드시 찾아내겠다는 굳은 의지로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일찍이 역병으로 부모를 여의고 물려받은 뙈기밭 한 뼘 없이 홀로 세상에 남겨진 총각에게, 이 깊고 거대하며 때로는 무서운 산은 어머니의 품이자 하나뿐인 가족이었고,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는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매일같이 밧줄 하나에 의지해 목숨을 걸고 절벽을 타며 산삼과 영지버섯, 하수오 같은 귀한 약초를 캐냈지만, 그의 삶은 언제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지독한 가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오늘은 이 험하고 깊은 범골 골짜기를 끝까지 뒤져서라도 기필코 천남성과 당귀, 그리고 산작약을 넉넉히 캐야만 한다. 아랫마을 끄트머리에 사시는 김 영감님의 해수 기침병이 날이 갈수록 심해져 밤새 피를 토하시니, 이 약초들을 뿌리째 캐어 푹 달여 드시게 해야 그나마 다가오는 모진 겨울을 무사히 넘기실 수 있을 터인데. 게다가 뒷집 칠성이네 어린 막내도 며칠째 열이 내리지 않아 사경을 헤맨다 하였으니 칡뿌리와 잔대도 넉넉히 챙겨야겠구나.'

    보통의 약초꾼들이라면 천신만고 끝에 캔 그 귀한 약초들을 번듯한 한양 도성이나 큰 고을의 약방에 내다 팔아 비싼 값의 은자와 엽전을 두둑이 챙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총각은 세상의 이치와는 조금 다른, 바보스러울 만치 착한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목숨 걸고 캔 약초의 절반 이상을 장터에 내다 파는 대신, 가난하고 병들어 고통받는 산 아래 마을 이웃들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거저 나누어주곤 했습니다. 가난한 살림에 약값 한 푼 없어 의원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멍석에 누워 앓아눕는 촌부들을 볼 때면, 총각은 자신의 주린 배를 찬물로 채우면서도 망태기에서 가장 좋고 굵은 약초만을 골라내어 그들의 아궁이에 직접 불을 지피고 밤새 약을 달여 먹였습니다.

    산 중턱에서 한가득 약초를 캐어 무거운 망태기를 메고 마을로 내려온 총각은, 다 쓰러져가는 칠성이네 오두막집 사립문을 삐걱 열고 들어섰습니다. 냉기가 도는 마루에는 며칠째 지독한 열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는 어린아이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아이의 어머니는 마른 수건으로 아이의 얼굴을 닦으며 눈물만 뚝뚝 흘리며 발을 구르고 있었습니다.

    "아주머니, 너무 상심하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오늘 새벽 산 가장 깊은 곳을 헤매어 찬 기운을 몰아내고 열을 내리는 데 탁월한 귀한 약초들을 듬뿍 캐왔습니다. 제가 당장 부엌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탕약을 진하게 달일 터이니, 아주머니께서는 맑은 물을 떠 와 아이의 이마에 찬 물수건을 계속 대어 주십시오. 금방 열이 꺾일 것입니다."

    총각은 흙 묻은 망태기를 마루 밑에 내려놓기가 무섭게 부엌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말라붙은 솔가지를 모아 불을 피우고, 약탕기에 정성껏 씻은 약초를 넣어 끓이기 시작했습니다. 덜 마른 땔감 탓에 매캐한 연기가 부엌을 가득 채워 눈을 찌르고 기침이 났으며,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비 오듯 맺혔지만 그의 표정에는 오직 어린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간절함만이 가득했습니다. 장작불 앞을 떠나지 않고 부채질을 하며 정성을 들인 지 두어 시간. 마침내 짙은 갈색빛이 도는 탕약이 완성되었고, 총각은 뜨거운 약사발을 직접 손으로 받쳐 들고 입으로 호호 불어 식혀가며 앓고 있는 아이의 굳게 닫힌 입술 틈새로 조금씩 흘려 넣었습니다. 쓴 탕약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자 거짓말처럼 아이의 얕고 가쁘던 숨소리가 점차 고르고 편안하게 변하며, 불덩이 같던 이마의 펄펄 끓던 열이 기적처럼 서서히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고, 총각... 정녕 고맙네. 우리 가여운 아이를 살려주어 정말 고마워. 내 이 크고 깊은 은혜를 평생 어찌 다 갚아야 할지 모르겠네... 하지만 우리 집에는 지금 당장 쥐가 파먹을 쌀 한 줌조차 남아있지 않아 이 귀한 약값을 치를 길이 없으니, 이를 어쩌면 좋은가. 내 머리카락이라도 잘라 팔아 갚겠네."

    아이의 어머니가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통곡하며 감사를 표하자, 총각은 황급히 바닥에 주저앉아 따뜻하고 너른 손으로 그녀의 거친 손을 맞잡아 일으켜 세웠습니다.

    "약값이라니요, 당치도 않은 말씀이십니다. 산에서 자라나는 풀들은 본디 하늘이 아프고 병든 사람을 살리라고 아무런 대가 없이 거저 내어주신 것인데, 인간인 제가 어찌 중간에서 그 얄팍한 대가를 바라며 이문을 챙기겠습니까. 아이가 훌훌 툭툭 털고 일어나 저 마당을 건강하게 뛰어놀 수만 있다면, 그 환한 웃음소리가 제게는 천만금보다 더 귀하고 값진 약값입니다. 부디 그런 부담일랑 지우시고 아이 간호에만 전념하십시오."

    자신 역시 오늘 저녁거리가 없어 집으로 돌아가 맹물로 배를 채워야 하는 처지였지만, 뒤돌아 나서는 총각의 마음속에는 돈이나 은자로는 절대 살 수 없는 깊고도 다뜻한 온기가 가득 차오르고 있었습니다. 험하고 모진 세상을 홀로 살아가면서도 타인의 고통을 결코 외면하지 않는 그의 거룩하고 고운 심성은, 뼛속까지 시린 가난 속에서도 절대 빛을 잃지 않는 한 자루의 맑은 촛불처럼 산골 마을 전체를 언제나 환하고 따뜻하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 2: 깊은 산속에서 상처 입고 쓰러진 낯선 이를 지극정성으로 치료해주고 곁을 지키다

    어느덧 산천이 붉게 물들고 찬 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늦은 가을날이었습니다. 산의 붉은 단풍이 짙게 깔리고 해가 유난히 짧아져 금세 서늘한 어스름이 내려앉기 시작할 무렵, 총각은 평소보다 훨씬 더 험준하고 인적이 드문 산골짜기 깊은 곳까지 약초를 찾아 헤매고 있었습니다. 장터에 내다 팔아 겨울 양식을 조금이라도 마련하려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에서 자라는 귀한 산삼을 찾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주위는 이미 어둑어둑해지고 산짐승들의 스산한 울음소리가 메아리치며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기괴하게 뒤틀려 자라난 수백 년 묵은 커다란 고목나무 아래에서, 짐승이 고통에 겨워 앓는 소리 같기도 하고 덩치 큰 사내의 처절한 신음 같기도 한 미세하고 기분 나쁜 소리가 바람을 타고 총각의 귓가를 스쳤습니다.

    "으으으... 다리가... 으윽... 내 다리가 찢어지는구나..."

    총각이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참으며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다가가 보니, 그곳에는 평범한 보통 사람보다 덩치가 두 배는 족히 되어 보이고, 덥수룩한 붉은 수염에 기이할 정도로 험상궂은 이목구비를 한 낯선 사내가 피투성이가 된 채 흙바닥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사내의 두꺼운 장딴지는 산 위에서 굴러떨어진 듯한 집채만 한 커다란 바위에 무참히 짓눌려 뼈가 허옇게 보일 정도로 깊게 찢어져 있었고, 검붉은 피가 마른 낙엽을 흠뻑 적시며 끊임없이 콸콸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총각은 사내의 유난히 큰 덩치와 기이한 생김새에 잠시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으나, 두 눈앞에서 끔찍한 고통 속에 생명이 죽어가는 것을 그대로 두고 도망칠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재빨리 어깨의 무거운 망태기를 팽개치듯 내려놓고 사내의 곁으로 바짝 다가가 다급히 상처 부위를 살폈습니다.

    "이보시오, 이보시오! 정신을 잃으면 아니 됩니다, 당장 눈을 번쩍 떠보십시오! 다리의 상처가 너무 깊고 피를 많이 흘려 이대로 두면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하고 목숨을 잃을 것입니다. 제가 당장 피를 멎게 할 터이니 조금 고통스럽더라도 이를 악물고 참으셔야 합니다."

    총각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자신이 입고 있던 낡고 해진 삼베 저고리의 긴 소매를 북욱 찢어, 솟구치는 피를 막기 위해 사내의 상처 윗부분을 단단히 옥죄어 동여맸습니다. 그리고 오늘 장터에 내다 팔아 기나긴 겨울 양식을 마련하려 했던, 깎아지른 절벽에서 애지중지 목숨 걸고 캐낸 가장 귀한 백 년 묵은 산삼과 지혈에 특효가 있는 약초들을 망태기에서 모조리 끄집어내었습니다. 그는 주변의 납작한 돌로 약초를 짓이겨 사내의 끔찍한 상처 부위에 아낌없이 듬뿍 발라주고, 마지막 남은 굵은 산삼 뿌리의 흙을 대충 털어내어 사내의 입에 강제로 물리며 씹어 삼키게 하여 기력을 회복하게 했습니다.

    "으음... 네 이놈... 너는 대체 누구이기에, 알지도 못하는 낯선 흉측한 이의 상처를 이리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것이냐? 윽... 게다가 네 놈이 방금 내 입에 쑤셔 넣은 이 귀한 산삼은, 네 놈 같은 가난한 약초꾼이 장터에 내다 팔면 한겨울 내내 따뜻한 방에서 배불리 날 수 있는 값비싼 보물이 아니더냐. 어찌하여 처음 보는 낯선 자에게 이리 미련하게 아낌없이 내어주는 것이냐."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사내가 의아하고 믿을 수 없다는 듯 거칠고 쇳소리가 나는 목소리로 묻자, 총각은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며 환하고 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그런 귀한 약초와 재물이 생명 앞에서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천하를 다 준다 한들 사람의 목숨보다 귀한 것은 이 세상에 결코 없습니다. 값비싼 산삼이야 제가 내일 다시 절벽을 타고 골짜기를 뒤지며 땀 흘려 찾으면 그만이지만, 한 번 허무하게 잃어버린 생명은 수만 금을 주어도 다시 되돌릴 수 없지 않습니까. 밤이 깊어 산바람이 무척 차갑습니다. 제 남은 저고리를 벗어 덮어드릴 터이니, 상처의 피가 멎고 새살이 돋아날 때까지 조금만 꾹 참고 견디십시오."

    총각은 살을 에는 듯한 산속의 매서운 밤공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하나뿐인 겉옷마저 벗어 사내의 커다란 몸통에 덮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얇디얇은 속적삼 하나만 걸친 채 추위에 덜덜 떨면서도 밤새도록 사내의 곁을 지키며 부지런히 마른 가지를 주워 모닥불을 피우고, 밤새 얼어붙어 가는 사내의 굳은 몸을 마찰하며 녹여주었습니다. 길고 고통스러웠던 밤이 지나고 숲속에 아침 해가 밝아올 무렵, 짐승처럼 험상궂던 사내의 끔찍했던 상처는 놀랍게도 기적처럼 흉터 하나 없이 아물어 있었고, 거칠었던 기력도 완전히 회복된 듯 보였습니다.

    그런데 사내가 자리에서 번쩍 일어나 기지개를 켜자마자, 총각의 눈앞에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험상궂은 사내의 거대한 몸이 순식간에 매캐하고 짙은 푸른 연기에 휩싸이더니,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이마에 뾰족한 뿔이 솟고 두 눈이 화로처럼 부리부리한, 털이 덥수룩한 거대한 도깨비의 본모습으로 둔갑한 것입니다!

    '허억... 이, 이럴 수가! 이 분이 사람이 아니라, 전설로만 듣던 이 거대한 산을 지키는 무서운 도깨비였다니!'

    총각은 턱이 빠질 듯한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뒤로 물러서다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도깨비는 무섭게 위협하는 표정 대신 산을 뒤흔들 듯 껄껄껄 호탕하고 우렁찬 웃음을 터뜨리며 바닥에 주저앉은 총각을 내려다보았습니다.

    "하하하! 참으로 기이하고 맹랑한 인간 놈이로다! 내 수백 년 동안 이 깊은 산속에 살면서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서로를 죽이고 빼앗는 수많은 인간들의 더러운 탐욕을 똑똑히 보아왔건만, 너처럼 제 것을 모조리 다 내어주고 목숨을 구해주고도 얄팍한 대가 하나 바라지 않는 미련하리만치 착해 빠진 인간은 머리털 나고 처음 본다. 네 놈의 그 천금 같은 귀한 약초와 따뜻하고 바보 같은 마음 덕분에 내 다리가 멀쩡히 나아 목숨을 건졌으니, 이 산의 주인인 도깨비가 네 놈의 은혜를 결코 잊지 않고 뼈에 새기마!"

    도깨비는 의미심장한 윙크와 함께 호탕한 말을 남긴 채, 커다란 굉음과 함께 짙은 아침 안개 속으로 바람처럼 홀연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총각은 눈앞에서 벌어진 믿기 힘든 비현실적인 광경에 한참을 멍하니 흙바닥에 앉아 있었지만, 이내 빙그레 순박한 미소를 지으며 빈 망태기를 주워 짊어지고 씩씩하게 산을 내려왔습니다. 자신이 목숨 걸고 구해준 이가 인간이든 무서운 도깨비이든 간에, 죽어가던 한 생명을 온전히 살려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의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볍고 가슴속은 뿌듯함으로 가득했습니다.

    ※ 3: 심성 고운 아가씨와 사랑에 빠지나, 혼례를 치를 돈이 없어 남몰래 눈물짓는 두 사람

    그렇게 놀라운 밤이 지나고 세월이 물 흐르듯 흘러, 앙상했던 나뭇가지에 연둣빛 새순이 돋아나는 화창한 이듬해 봄이 찾아왔습니다. 총각은 여전히 험하고 깎아지른 산을 누비며 약초를 캐고, 굶주리고 병든 가난한 이웃들을 묵묵히 돌보는 고단하지만 따뜻한 삶을 변함없이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봄날, 총각은 이웃 마을에 몸져누운 노파에게 다린 약초를 전해주러 갔다가 우물가에서 무거운 물동이를 긷고 있는 한 아가씨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가씨는 빛바래고 낡아 수십 번 기운 무명 치마를 입고 있었지만, 자태가 흐트러짐 없이 단아하고 얼굴에는 봄날에 핀 매화꽃처럼 고운 미소가 맑게 서려 있었습니다. 그녀 역시 어릴 적 역병으로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밤낮없이 남의 옷을 지어주는 삯바느질을 하며 눈이 멀고 병든 할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하늘이 내린 효녀로 이웃 마을에 소문이 자자한 착한 처녀였습니다.

    총각은 무거운 물동이를 이고 힘겹게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아가씨를 차마 지나치지 못하고 짐을 대신 들어주게 되었고, 아가씨는 고마움의 표시로 가시덤불에 찢겨 너덜너덜해진 총각의 해진 옷소매를 자신의 고운 솜씨로 꼼꼼하게 꿰매주었습니다. 그 따뜻하고 작은 호의를 시작으로 두 사람은 산을 오가며, 또 우물가를 지나며 자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가난하지만 비뚤어지지 않은 서로의 맑고 순수한 심성에 깊이 끌린 두 사람은, 어느새 봄눈이 녹아내리듯 애틋하고도 깊은 사랑에 푹 빠지게 되었습니다.

    "낭자, 내 비록 집 한 채 번듯하게 없고 보잘것없는 가난한 약초꾼에 불과하지만, 낭자를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는 이 마음만큼은 이 세상 그 어느 고관대작보다 크고 깊소이다. 내가 평생 낭자의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게 하겠다는 거짓 약속은 할 수 없으나, 낭자가 흘리는 눈물은 내 소매로 닦아주고 평생을 낭자만을 위해 살겠소. 나와 평생을 함께하며 백년가약을 맺어주겠소?"

    총각이 떨리는 목소리로 용기를 내어 산 깊은 곳에서 정성껏 꺾어온 붉은 진달래꽃 한 묶음을 건네며 청혼하자, 아가씨의 고운 두 뺨이 수줍은 홍시처럼 붉게 달아올랐습니다. 아가씨 역시 총각의 거칠지만 따뜻한 손을 마주 잡으며 눈물을 글썽인 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도련님의 그 착하고 든든한 심성을 제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비록 남들처럼 고깃국은커녕 매일 거친 조밥에 찬물만 마시며 고단하게 산다 해도, 저를 진심으로 아껴주시는 도련님과 함께 손잡고 살아간다면 그곳이 제게는 궐보다 더 따뜻하고 행복한 궁전일 것입니다. 평생 도련님의 아내로 살겠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가슴 시리고 아름다운 사랑 앞에는 '가난'이라는 너무도 거대하고 잔인한 현실의 절벽이 굳건하게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붉은 진달래꽃으로 백년가약을 약조하기는 하였으나, 막상 혼례를 치르기 위해서는 마을 사람들을 불러 조촐하게 대접할 국수 한 그릇 끓일 쌀이 필요했고, 새신부에게 입힐 가장 싼 다홍치마 한 벌과 낡은 꽃신 한 켤레 지을 돈조차 두 사람의 수중에는 전혀 없었습니다.

    총각은 어떻게든 혼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밤을 새워가며 더욱 험한 벼랑을 오르내리며 약초를 캤지만, 병들어 기침하는 이웃들을 차마 지나치지 못하고 또다시 약초를 대가 없이 전부 나누어주다 보니, 수중에 모이는 돈은 기껏해야 엽전 몇 뢴이 고작이었습니다. 아가씨 역시 등잔불 밑에서 눈이 짓무르도록 밤을 새워 삯바느질을 했지만, 할머니의 약값을 대기에도 벅차 혼수를 장만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처참한 실정이었습니다.

    혼례를 올리기로 약조한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온 어느 깊고 서늘한 밤, 총각은 자신의 초라하고 텅 빈 단칸방에 주저앉아 굵고 서러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습니다.

    '내 한평생 내 것을 탐하지 않고 불쌍한 남들을 돕고 살아왔건만, 정작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인에게 남들 다 입는 흔한 혼례복 한 벌 지어 입힐 능력이 없단 말인가. 낭자의 고운 손에 평생 흙물만 묻히고 가난의 굴레를 씌우게 할 바에야... 차라리 내 가슴이 찢어지더라도 이 인연을 내 손으로 끊어내는 것이, 불쌍한 낭자를 위하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같은 시각, 아가씨 역시 불 꺼진 차가운 방구석에서 낡은 베갯잇을 부여잡고 숨죽여 오열하고 있었습니다. 사랑만으로 서로의 어깨에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깊은 슬픔과 가혹한 현실의 좌절감이, 착하디착한 두 사람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난하고 애틋한 두 남녀의 이 눈물겹고 가슴 아픈 사연을 깊은 어둠 속에서 남몰래 빤히 지켜보고 있는 기이한 존재가 있었습니다. 총각의 낡은 집 앞마당 커다란 감나무 가지 위에 털썩 걸터앉아, 밤하늘의 보름달만큼이나 커다란 눈망울을 끔뻑거리며 총각의 깊은 한숨 소리와 훌쩍이는 울음소리를 귀 기울여 엿듣고 있던 거대한 형체. 그는 바로 지난가을, 총각이 피투성이가 된 다리를 지극정성으로 치료해주었던, 은혜를 결코 잊지 않겠다던 그 산중의 도깨비였습니다!

    도깨비는 잎이 무성한 나무에서 쿵 소리가 나게 훌쩍 뛰어내리며, 솥뚜껑만 한 커다란 주먹으로 자신의 무릎을 탁 쳤습니다.

    "쯧쯧쯧! 이 미련하고 답답하리만치 바보같이 착한 놈아! 남들 죽어가는 병은 제 목숨을 걸고 그리 잘 고쳐주면서, 정작 제 놈의 가슴이 찢어지는 상사병 하나 고칠 엽전 몇 푼이 없어 그리 청승맞게 구석에서 울고 있단 말이냐! 내 이놈의 깊은 은혜를 벼락같이 어찌 갚을까 매일같이 벼르고 있었건만, 참으로 기가 막히게 재미있는 기회가 찾아왔구나!"

    도깨비의 커다란 입가에 장난기 가득하면서도 무언가 결연하고 거대한 꿍꿍이가 담긴 흥미진진한 미소가 씩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약초꾼 총각 부부의 애틋한 사랑을 지켜주기 위한 도깨비의 기상천외하고도 스케일이 거대한 은혜 갚기 대작전이, 마침내 칠흑 같은 밤하늘 아래 그 화려한 막을 올리려는 폭풍전야의 순간이었습니다.

    ※ 4: 총각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도깨비, 은혜를 갚기 위해 기상천외한 혼례 대작전을 꾸미다

    가난한 총각의 가슴 찢어지는 눈물겨운 사정과 그 깊은 절망을 감나무 위에서 몰래 엿듣게 된 도깨비는, 번개처럼 산을 내달려 도깨비들의 은밀한 소굴인 칠흑같이 어둡고 거대한 지하 동굴로 쏜살같이 향했습니다. 동굴 깊숙한 곳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벼락을 품은 듯한 커다란 무쇠 가시 도깨비방망이를 바닥에 쿵쿵 내리치며, 깊은 산속 곳곳에 흩어져 인간들에게 장난을 치거나 잠을 자고 있던 수십 명의 도깨비 무리를 단숨에 불러 모았습니다. 천지를 진동시키는 우두머리의 부름에 크고 작은 도깨비들이 푸른 연기를 뿜어내며 동굴 광장으로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습니다.

    "이놈들, 하던 짓거리를 모두 멈추고 내 말 똑똑히 잘 들어라! 지난 늦가을, 골짜기에서 집채만 한 바위가 무너져 내려 내 다리가 두 동강이 나 꼼짝없이 죽을 뻔했을 때, 살이 에이는 뼈 시린 추위 속에서도 망설임 없이 제 겉옷을 훌렁 벗어 덮어주며 밤새 나를 간호해 살려준 그 착해 빠진 약초꾼 총각 놈을 다들 똑똑히 기억하겠지! 그 미련하고 바보 같은 놈이, 지금 당장 쌀 한 줌 살 엽전 몇 푼이 없어서 평생을 약조한 참한 낭자와 내일 혼례도 올리지 못하고 방구석에 처박혀 짐승처럼 질질 짜고 있다지 뭐냐. 우리가 대체 누구냐! 산을 다스리고 만물을 부리며 인간들에게 심술도 부리지만, 한 번 입은 은혜는 반드시 하늘이 놀랄 만큼 열 배, 백 배로 갚아주는 의리의 도깨비들 아니더냐! 당장 내일 밤이 그놈이 눈물로 포기하려던 혼례 전날이니, 오늘 밤 우리 도깨비들이 총출동하여 그 바보 같은 놈의 혼례를 천하에서 가장 으리으리하고 기가 막히게 치러줄 것이다!"

    우두머리 도깨비의 우렁차고 결연한 호령에, 심심하던 차에 잘되었다며 다른 도깨비들도 덩달아 신이 나서 방망이를 휘두르며 입에서 불을 뿜고 낄낄거렸습니다.

    "옳소, 대장! 인간들 산길 잃게 만드는 뻔한 장난도 이젠 지루하던 참이었는데, 오랜만에 제대로 한 번 신나고 화끈하게 놀아봅시다! 당장 무엇부터 준비할까요? 읍내에서 백성들 고혈을 쥐어짜는 제일가는 탐관오리나 악덕 부자의 곳간을 통째로 털어다 그 총각 마당에 산처럼 쌓아 안겨줄까요?"

    "아니다, 이 멍청한 놈아! 우선 부자들 집이나 남의 관아 창고의 물건은 단 하나도 훔쳐 오진 마라! 그 총각 놈의 대쪽 같고 올곧은 성격에, 장물인 걸 알면 당장 관아에 다 돌려준다고 길길이 날뛸 게 불 보듯 뻔하다. 우리가 수백, 수천 년 동안 산속 땅속 깊은 곳에 아무도 모르게 묻혀있던 진짜 임자 없는 숨겨진 옛 보물들을 직접 캐내고, 숲속의 영물들과 만물의 정령들을 총동원해서 인간 세상에서는 감히 구경조차 하기 힘든 가장 귀하고 진기한 혼수품들을 오늘 밤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내자꾸나!"

    그날 밤부터 깊고 험한 산속의 거대한 동굴은, 수십 마리 도깨비들의 기상천외하고도 왁자지껄한 거대한 혼수품 제작 공방으로 변모했습니다. 산처럼 힘이 센 거인 도깨비들은 깊은 땅속이나 계곡 밑바닥에 수백 년간 잠들어 있던 낡고 거친 황금 덩어리와 은맥을 맨손으로 부수어 캐내고, 커다란 망치로 뚝딱뚝딱 섬세하게 두들겨 눈부시게 빛나는 화려한 금비녀와 은가락지, 옥패물을 순식간에 만들어냈습니다. 손재주가 기가 막히게 좋은 날쌘 꼬마 도깨비들은, 달빛 아래 은은하게 빛나는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빛과 새벽 이슬을 머금은 거미줄을 모아 잣아서 세상에서 가장 질기고 고운 빛깔의 비단실을 뽑아내었고, 그 실로 천상의 선녀가 입을 법한 세상에서 가장 붉고 고운 혼례복인 활옷을 한 땀 한 땀 지어 올렸습니다. 숲속을 지배하는 호랑이와 반달가슴곰들은 도깨비들의 명을 받고 깎아지른 절벽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백 년 묵은 천종산삼과 최상급 녹용, 꿀보다 달콤한 희귀한 산과일들을 한가득 조심스레 캐어와 바쳤고, 둔갑에 능한 영리한 여우들은 그것들을 정성껏 화려한 바구니에 담아 붉고 푸른 보자기로 예쁘게 포장했습니다.

    도깨비들의 신비한 마법과 엄청난 정성이 한가득 듬뿍 담긴, 세상의 그 어떤 왕실이나 황제도 감히 부럽지 않을 진귀하고 값비싼 혼수품들이 동굴 안에 집채만 한 산더미처럼 차곡차곡 쌓여갔습니다.

    "흐흐흐, 이 정도면 한양의 콧대 높은 정승 판서 집안의 거창한 혼례도 감히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고 땅을 치며 부러워할 것이다. 자, 이제 해가 지고 저 미련한 총각 놈이 지쳐 곯아떨어지기만을 기다리자꾸나!"

    혼례를 하루 앞둔 전날 밤. 총각은 뼛속까지 시린 어둠 속에서 내일 입을,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물려받아 곳곳이 해지고 기워진 낡은 도포 자락을 쓸쓸하게 어루만지며 뜬눈으로 가슴 아픈 밤을 지새우고 있었습니다.

    '내일이 당장 손꼽아 기다리던 나의 혼례일인데, 평생을 험한 세상 함께하기로 굳게 약조한 나의 고운 낭자에게 어여쁜 꽃신 한 켤레, 은비녀 하나 머리에 꽂아주지 못하는 내 지독히도 무능한 처지가 참으로 뼈저리게 원망스럽구나. 멀리서 축하해주러 올 마을 사람들에게 대접할 조촐한 멸치 국수 몇 그릇 끓일 묵은쌀 한 줌이 내 재산의 전부라니... 이 지독한 미안함과 빚을 어찌 평생 갚으며 고개를 들고 아비 노릇, 지아비 노릇을 할 수 있을지 참으로 참담하구나.'

    깊고 서러운 한숨을 땅이 꺼지라 푹푹 내쉬며 까무라치듯 지쳐 잠이 든 총각의 오두막집 앞마당. 달빛조차 두꺼운 구름에 가려 숨을 죽인 고요하고 적막한 새벽녘에, 기이하고도 거대한 그림자 수십 개가 소리 하나 없이 마당으로 짙은 안개처럼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혼수품을 짊어진 도깨비 무리들이었습니다!

    "쉿, 조용조용! 발소리 죽여라! 저 바보같이 미련한 놈이 깨어 놀라 자빠지지 않게, 마당에 소리 내지 말고 조심해서 얌전히 내려놓아라!"

    도깨비들은 자신들의 산만한 덩치보다 더 거대한 지게에 잔뜩 싣고 온 엄청난 양의 혼수품들을 마당 한가운데 산처럼 조심스레 쌓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햇빛을 받으면 눈이 멀 듯 눈부신 비단과 금은보화가 가득 담긴 수십 개의 옻칠 궤짝들, 흙냄새가 진동하는 산삼과 녹용이 삐져나온 거대한 대바구니들, 그리고 온 마을 잔치를 열고도 일 년은 족히 남을 윤기 나는 최고급 햅쌀이 담긴 가마니들이 비좁고 초라한 흙마당을 단 한 치의 빈틈도 없이 꽉 채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두머리 도깨비가 총각의 허름한 방문 앞 낡은 댓돌 위에, 도깨비들의 마법으로 지어내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붉은 활옷과 별빛으로 수놓아 반짝이는 꽃신을 가지런하고 다소곳하게 놓아두었습니다.

    "흐흐흐... 내일 아침 해가 뜨고 이놈이 뻑뻑한 문을 열고 일어나서 기절초풍하며 턱이 빠질 꼴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배가 아프고 웃음이 새어 나오는구나. 자, 우리의 거룩한 은혜 갚기 임무는 완벽하게 끝났다! 이제 날이 밝아 닭이 울기 전에 우리는 서둘러 숲으로 물러가자!"

    거대한 임무를 완수한 도깨비들은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낄낄 흘리며, 새벽의 짙고 차가운 밤안개 속으로 다시 홀연히 스며들어 바람처럼 사라졌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처량했던 약초꾼 총각의 비루한 흙마당에는, 하늘이 직접 내린 듯한 어마어마한 마법의 선물이 찬란하고 눈부신 아침 햇살을 기다리며 고요하고도 영롱하게 오색찬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 5: 혼례 전날 밤, 마당 한가득 쏟아진 산더미 같은 혼수품과 금은보화의 기적

    산등성이를 힘차게 넘어온 붉은 아침 해가 낡은 오두막집 지붕을 넘어 마당을 눈부시게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밤새 찢어지는 마음으로 뒤척이다 동이 틀 무렵에야 겨우 깜빡 눈을 붙였던 총각이 부스스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 올리고 뻑뻑한 방문을 열어젖힌 순간, 그는 자신의 두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지 못하고 넋을 잃은 채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허, 허억! 이, 이게 대체 무슨 귀신이 곡할 조화란 말인가! 내가 아직 깊은 잠에서 덜 깨어 말도 안 되는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인가!"

    평소 잡초만 무성하고 휑한 바람만 불던 초라한 앞마당의 흙바닥이 온데간데없이 완전히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고 진귀한 물건들이 집채만 한 거대한 산더미처럼 겹겹이 쌓여 있었습니다. 맑은 아침 햇살을 정면으로 받아 영롱하고 눈부시게 빛나는 주먹만 한 금덩이와 은괴가 가득 담긴 커다란 옻칠 궤짝들, 청나라 황실에서나 수입해 쓸 법한 오색찬란하고 구름처럼 부드러운 최고급 비단 더미, 총각이 평생 밧줄을 타고 산을 뒤져도 보지 못했던 족히 백 년은 훌쩍 묵어 사람의 형상을 띤 거대한 산삼과 굵은 녹용들, 그리고 마을 사람 전체를 한 달 내내 매일같이 배불리 먹이고도 남을 수십 가마니의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햅쌀까지!

    무엇보다 바닥에 주저앉은 총각의 시선을 단번에 강렬하게 사로잡은 것은, 방금 전 자신이 문을 열고 나온 방문 앞 낡은 댓돌 위에 너무도 얌전하고 다소곳이 놓여 있는, 고운 붉은빛이 맴도는 너무도 아름답고 섬세한 신부의 활옷과 앙증맞고 반짝이는 꽃신이었습니다. 총각은 덜덜 떨리는 두 손을 조심스레 뻗어 그 아름답고 고운 꽃신을 벅찬 마음으로 집어 들었습니다.

    "이, 이건 정녕 꿈이 아니야... 부드러운 비단의 감촉이 내 손끝에 이리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어찌 이런 엄청난 나라님도 부러워할 재물과 혼수품들이 하룻밤 새에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내 초라한 마당에 쏟아졌단 말인가? 혹시 평생 헐벗은 이웃을 도우며 살아온 나를 불쌍하고 어여삐 여기시어, 태백산의 산신령님께서 내 딱한 사정을 알고 도우신 건가..."

    총각이 혼란스러운 머리를 감싸 쥐고 멍하니 마당에 주저앉아 옴짝달싹 못하고 있을 때, 그의 시야에 궤짝 맨 위에 덩그러니 놓인 커다란 푸른 나뭇잎 편지 하나가 뚜렷하게 들어왔습니다. 삐뚤빼뚤하고 큼지막한 글씨로 검은 숯을 이용해 거칠고 투박하게 휘갈겨 쓴 편지였습니다.

    [이 미련하고 답답하리만치 바보같이 착한 놈아! 장가가는 놈이 엽전 한 푼 없어 방구석에서 궁상맞게 울고 있는 꼴을 도저히 봐줄 수가 없어, 우리 도깨비들이 좀 나섰다! 네 놈이 지난 늦가을, 살이 에이는 추위 속에서 덜덜 떨며 내 찢어진 다리를 고쳐준 그 크나큰 은혜를 갚는 것이니, 혹여 훔쳐 온 장물인가 의심하며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이 진귀한 물건들로 당장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화려한 혼례를 올리거라! 네 놈의 그 변치 않는 맑고 착한 심성에 내리는 우리들의 축복이니 오늘만큼은 마음껏 누려라! - 네 놈이 준 귀한 약초 덕에 지금도 산속을 펄펄 날아다니는 도깨비 대장이]

    투박하지만 진심과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도깨비의 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총각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둑이 터진 폭포수처럼 쉴 새 없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지난가을, 험하고 추운 산속에서 자신의 유일한 겉옷마저 벗어주며 밤을 새워 목숨을 걸고 치료해주었던 그 기이하고 무서웠던 덩치 큰 사내, 한 번 입은 은혜는 반드시 목숨을 걸고서라도 갚는다는 전설 속 의리의 도깨비가, 자신의 애틋하고 처절한 사연을 어찌 알고 이토록 엄청난 기적을 밤새 선물해 준 것입니다.

    총각은 소매로 벅벅 눈물을 닦아내고 당장 눈부시게 아름다운 활옷과 꽃신을 소중히 제 품에 꽉 안은 채,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쏜살같이 산을 내려와 아가씨의 집으로 미친 듯이 달려갔습니다. 아침 일찍 마당 평상에 앉아 신랑이 신을 찢어진 버선을 서러운 얼굴로 깁고 있던 아가씨는, 땀범벅이 된 총각이 숨을 헐떡이며 내미는 붉게 빛나는 눈부신 혼례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쥐고 있던 바늘을 바닥에 떨어뜨렸습니다.

    "도련님! 이, 이토록 천금같이 귀하고 고운 옷을 대체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혹여 다가온 혼례에 눈이 멀고 이성을 잃어 저를 위해 부잣집을 털거나 몹쓸 짓이라도 하신 건 아니시지요? 제발 아니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낭자, 그리 놀라지 말고 내 말을 똑똑히 들어보시오! 하늘이, 아니 나의 착하고 의리 넘치는 도깨비 친구들이 우리 두 사람의 애틋한 사랑을 어여삐 여기어 듬뿍 축복하며 내려준 기적의 선물이오! 장물이 아니니 추호도 걱정하지 마시오! 어서 이 고운 옷을 눈부시게 차려입고, 나와 함께 마을 사람들이 기다리는 혼례청으로 세상에서 가장 당당하게 갑시다!"

    아가씨 역시 총각의 눈물 어린, 믿기 힘들지만 진심이 담긴 설명을 모두 듣고는 벅찬 감격과 놀라움에 목이 메어 한참 동안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가난에 짓눌려 숨죽여 눈물짓던 두 남녀의 애틋하고 순수한 사랑이, 마침내 도깨비의 따뜻하고도 기상천외한 거대한 마법을 만나, 험난하고 거친 가시밭길을 지나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꽃길로 화려하게 피어오르는 찬란하고 벅찬 순간이었습니다.

    ※ 6: 도깨비의 축복 속에 부부의 연을 맺고 평생 가난한 이를 구휼하며 덕을 베풀다

    그날 오후, 언제나 조용하고 적막했던 산골 마을은 그야말로 잔칫집을 넘어 발칵 뒤집히고 말았습니다. 돈이 없어 냉수 한 사발 떠놓고 처량하게 식을 올릴 뻔했던 가난뱅이 약초꾼 총각과 삯바느질 아가씨의 조촐한 혼례가 열릴 줄 알았던 마을 넓은 공터 잔치판에, 한양의 으리으리한 정승 판서 집안에서도 감히 구경하기 힘든 엄청난 산해진미 진수성찬과 눈이 부시도록 화려한 혼수품들이 끝도 없이 수레로 실려 나왔기 때문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마당을 가득 채운 산더미 같은 기름진 고기와 오색찬란한 떡, 그리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하얀 햅쌀 고봉밥을 배가 터지도록 든든하게 먹으며 덩실덩실 신명 나게 춤을 추고 환호했습니다. 몇 년 만에 고깃국을 맛본 노인들과 아이들의 입가에는 기름기가 번지르르하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세상에 내 평생 살다 살다 두 눈으로 이런 엄청나고 호화로운 잔치는 난생처음 보네! 평생 불쌍하고 아픈 이들을 돕고 산 우리 착한 약초꾼 총각과 고운 낭자의 맑은 심성을 하늘이 어여삐 굽어살피고, 그동안 못 받은 복을 오늘 창고째로 와르르 쏟아부어 주셨구먼! 참으로 잘된 일이야, 암 잘되고말고!"

    밤하늘의 은하수를 수놓은 듯 정교하고 아름다운 붉은 활옷을 곱게 차려입고 반짝이는 마법의 꽃신을 신은 새신부의 자태는, 방금 전 천상에서 강림한 선녀인 듯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모처럼 의관을 깔끔하게 정제하고 늠름한 새신랑이 된 총각의 얼굴에는 험한 세상을 모두 다 가진 듯한 벅차고 행복한 미소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마을 사람들의 뜨거운 환호와 축복 속에 서로의 두 손을 굳게 꼭 잡고 백년가약을 맺으며, 잔치가 끝난 첫날밤 고요한 방 안에서 서로를 향해 깊고 숭고한 다짐을 나누었습니다.

    "여보, 깊은 숲속의 도깨비 친구들이 우리에게 이토록 감당하기 힘들 만큼 크나큰 은혜를 베풀어 준 것은, 결코 우리 둘이서 떵떵거리며 이 많은 재물을 껴안고 사치스럽게 살라는 뜻이 아닐 것이오. 아마도 우리가 평생 가난하고 아픈 이웃들을 외면하지 말고, 더 큰 마음으로 넉넉하게 이웃에게 베풀며 이 삭막한 세상을 따뜻하게 구휼하라는 거룩한 뜻일 거요."

    "당연하고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서방님. 마당에 산처럼 쌓인 이 넘치는 막대한 재물은 결코 우리 두 사람만의 소유가 아닙니다. 다가오는 겨울, 굶주리는 이웃들에게 조건 없이 쌀을 넉넉히 나누어 먹이고, 돈이 없어 약 한 첩 못 쓰고 죽어가는 아픈 이들을 치료하는 데 이 모든 재물을 우리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아낌없이 베풀며 쓰겠습니다."

    부부는 그날 밤의 굳은 다짐대로, 도깨비가 마법처럼 선물해 준 막대한 금은보화를 결코 자신들의 헛된 사치나 권력을 탐하는 데 단 한 푼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읍내로 내려가 마을 한가운데 커다란 기와집을 지어 오갈 데 없이 거리를 떠도는 고아들을 친자식처럼 거두어 따뜻한 밥을 먹이고 글을 가르쳐 보살폈고, 거대한 쌀창고의 문을 일 년 내내 활짝 열어두어 모진 흉년이 들어도 마을 사람들이 굶주림에 허덕이지 않도록 넉넉하게 구휼했습니다. 남편은 넉넉해진 형편에도 결코 안주하지 않고 예전처럼 여전히 험하고 가파른 산을 땀 흘려 누비며 귀한 약초를 캐어, 돈 없는 가난한 병자들을 무료로 정성껏 치료해 주었고, 아내는 아픈 이들의 고름을 닦아내며 극진히 간호하여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있는 관세음보살 부부'로 칭송받으며 깊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어느 화창하고 따스한 봄날 밤, 부부가 마루에 다정하게 어깨를 맞대고 앉아 마당을 밝게 비추는 둥근 보름달빛을 감상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 멀리 깊은 숲속 어귀에서 집채만 한 덩치 큰 그림자 하나가 번쩍 나타나더니, 달빛을 향해 커다란 손을 휙휙 기분 좋게 흔들고는 산 전체를 울리는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안개 속으로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허허허! 참으로 바보같이 착하고 멍청한 놈들! 산처럼 쌓아준 재물을 다 남 퍼주고 빈털터리로 살다니! 하지만 역시 내 보는 눈은 틀리지 않았어! 더러운 재물에 욕심내지 말고, 평생 그렇게 베풀면서 서로 아끼며 둥글게 둥글게 살아라! 행복해라, 착한 놈아!"

    부부는 숲을 향해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정갈하게 모으고 깊숙이 허리를 숙여 진심 어린 감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험한 산을 누비던 가난한 약초꾼의 대가 없는 헌신적인 선행, 그리고 그 착하고 순수한 심성에 감동하여 엄청난 기적으로 은혜를 갚은 장난기 많고 의리 넘치는 산속의 도깨비.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과 정령을 깊이 감동시킨 이들의 따뜻하고 눈부신 인연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척박한 산골 마을의 가장 아름다운 전설이 되어, 이기적이고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 절대 꺼지지 않는 따뜻한 등불로 영원히 찬란하게 빛나게 되었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가난한 이웃을 위해 약초를 나누던 착한 총각의 선행, 그리고 그 마음을 알아보고 기상천외한 혼례를 선물해 준 의리파 도깨비의 이야기, 어떻게 들으셨나요?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푼 작은 친절이 결국 거대한 기적으로 돌아온다는 이 이야기가 우리 마음을 참 훈훈하게 합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마음 한 조각도 언젠가 듬직한 도깨비의 마법처럼 큰 축복으로 돌아올지 모릅니다. 오늘 이야기가 즐거우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부탁드리며, 다음에도 마음 넉넉해지는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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