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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깨비가 알려준 '얼음 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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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디오드라마, #도깨비, #빙수, #조선시대, #창업성공기, #보부상, #여름디저트, #사극판타지, #장사꾼, #빙고, #힐링스토리, #전래동화, #성공신화, #위기극복, #사업아이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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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 멘트

    한여름 땡볕, 전 재산을 털어 산 생선이 몽땅 썩어버렸습니다. 절망에 빠져 목숨을 끊으려던 찰나, 더위 먹고 쓰러진 도깨비를 만났죠. 냅다 계곡물로 살려줬더니, 도깨비가 건넨 건 꽁꽁 언 얼음덩어리와 기막힌 사업 아이템?! 조선 팔도를 시원하고 달달하게 뒤집어놓은 흙수저 보부상의 통쾌한 빙수 프랜차이즈 창업기!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 1: 가혹한 태양, 그리고 더위 먹은 도깨비

    숨이 턱턱 막히는 한여름의 한낮이었습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고, 이글거리는 태양은 당장이라도 온 세상을 불태워버릴 듯 잔인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죠. 매미들은 찢어질 듯한 소리로 울어댔지만, 그 소리조차 무더위에 녹아내려 끈적하게 귓가를 맴돌 뿐이었습니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젊은 보부상의 등에는 제 몸집보다 훨씬 큰 지게가 얹혀 있었습니다. 낡은 짚신을 신은 두 발은 이미 물집이 잡혀 터진 지 오래였고, 거친 무명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 소금꽃이 하얗게 피어올랐습니다. 그의 지게에는 전 재산을 털고 빚까지 끌어모아 장만한 간고등어와 조기 묶음이 가득 실려 있었죠. 이 산만 넘으면 제법 큰 장터가 나오는 고을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이 생선들을 다 팔면, 드디어 병든 홀어머니의 약값을 마련하고 지긋지긋한 빚쟁이들의 그늘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 희망 하나로 보부상은 이를 악물고 타는 듯한 갈증을 참아내며 한 걸음 한 걸음 산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등 뒤에서부터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비릿한 냄새인가 싶었으나, 걸음을 옮길수록 냄새는 점차 역겨운 악취로 변해갔습니다. 코를 찌르는 시큼하고 썩어 문드러지는 냄새. 보부상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지게를 내려놓고 생선을 덮어둔 거적때기를 들추는 순간, 새까만 파리 떼가 왱왱거리며 하늘로 솟구쳐 올랐습니다.

    '아아... 안 돼... 이러면 안 돼... 제발...'

    보부상의 입에서 짐승의 앓는 소리 같은 탄식이 터져 나왔습니다. 소금에 푹 절였으니 며칠은 거뜬히 버틸 거라 믿었던 생선들은, 유례없는 폭염을 견디지 못하고 허옇게 배를 뒤집은 채 녹아내리듯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구더기가 들끓는 생선 더미를 보며 보부상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전 재산이 한순간에 썩은 쓰레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어찌하여... 어찌하여 저에게 이리도 가혹하신 겁니까! 제가 무슨 큰 죄를 지었다고... 어흐흑..."

    짐승처럼 울부짖던 그는 이내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멍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습니다. 빚을 갚지 못하면 어머니와 함께 노비로 팔려 갈 처지였습니다. 차라리 이 깊은 산속에서 목을 매고 죽는 것이 낫겠다 싶었죠. 비틀거리며 절망 속을 헤매던 그의 귓가에, 어디선가 졸졸 흐르는 계곡물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죽기 전에 시원한 물이나 한 모금 마시고 가자며, 그는 터덜터덜 소리가 나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수풀을 헤치고 계곡에 다다른 보부상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습니다. 맑은 물이 흘러야 할 계곡 한가운데, 집채만 한 바위 덩어리 같은 것이 쓰러져 물길을 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심스레 다가가 살펴본 그는 그만 숨을 헉 들이켰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머리에는 뭉툭한 뿔이 솟아 있고, 온몸은 푸르스름한 빛을 띠었으며, 산짐승의 가죽을 두른 기괴한 모습. 전설 속에서나 듣던 도깨비가 틀림없었습니다!

    '도... 도깨비다! 날 잡아먹으려고 길목을 지키고 있었구나!'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서려던 찰나, 보부상은 도깨비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도깨비는 무시무시한 이빨을 드러낸 채 입을 반쯤 벌리고 있었는데, 그 사이로 혀가 길게 늘어져 있었고 온몸은 불덩이처럼 달아올라 헉헉거리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도깨비 역시 이 지독한 폭염을 이기지 못하고 더위를 먹어 쓰러진 것이었습니다.

    잡아먹히기는커녕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헐떡이는 도깨비를 보자, 보부상의 마음에 덜컥 측은함이 일었습니다. 자신의 처지나 도깨비의 처지나 벼랑 끝에 몰린 것은 매한가지였으니까요.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죽을 목숨, 이 녀석 불쌍한 목숨이나 하나 살려놓고 염라대왕을 보러 가자.'

    보부상은 지게에서 나무 바가지를 꺼내 들었습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계곡물 깊은 곳에서 맑은 물을 듬뿍 퍼 올린 그는, 주저 없이 도깨비의 커다란 얼굴에 확 끼얹었습니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도깨비의 얼굴에서 하얀 김이 피어올랐습니다. 보부상은 자신이 입고 있던 낡은 무명 저고리를 박박 찢어 찬물에 적신 뒤, 도깨비의 이마와 목덜미를 정성껏 닦아주기 시작했습니다.

    "이보시오! 정신을 좀 차려보시오! 아무리 도깨비라지만 이 땡볕에 쓰러져 있으면 속수무책으로 죽는 법이오!"

    그는 땀을 비 오듯 쏟으면서도 쉬지 않고 물을 길어 나르고, 젖은 천으로 열을 식히며, 자신이 쓰고 있던 커다란 패랭이 모자를 벗어 미친 듯이 부채질을 해댔습니다.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서서히 산 그림자가 길어지고 무더위가 한풀 꺾일 즈음, 마침내 도깨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뜨거운 열기가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굳게 닫혀 있던 도깨비의 커다란 두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 2: 은혜 갚은 도깨비의 서늘하고 달콤한 비법

    "크으으윽... 푸하아!"

    눈을 뜬 도깨비가 코끼리처럼 거친 숨을 토해내며 상체를 벌떡 일으켰습니다. 그 엄청난 기세에 놀란 보부상은 뒤로 발라당 나자빠지고 말았죠. 도깨비는 부리부리한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고 있는 보부상과 그 옆에 나뒹구는 젖은 헝겊, 그리고 빈 나무 바가지를 번갈아 보았습니다. 상황을 파악한 도깨비의 입가에 씩 하는 호탕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네놈이냐? 불덩이 구덩이에 빠진 나를 건져준 것이?"

    산 전체를 쩌렁쩌렁 울리는 굵은 목소리에 보부상은 땅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더듬더듬 대답했습니다.

    "그, 그저... 지나가던 길에... 어, 얼떨결에..."

    도깨비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키가 족히 아홉 척은 넘어 보였습니다. 그는 툭툭 몸을 털더니 보부상에게 성큼성큼 다가와 덥석 어깨를 잡았습니다.

    "하하하! 내 수백 년을 이 산에서 살았지만, 인간의 손에 목숨을 건진 것은 처음이로다. 나 김서방, 은혜는 반드시 두 배, 세 배로 갚는 놈이지. 그런데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네놈의 몰골이 나보다 더 시체 같구나. 얼굴에는 사색(死色)이 만연한데, 대체 무슨 사연이냐?"

    보부상은 도깨비의 기세에 눌려 엉겁결에 자신의 처지를 술술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병든 어머니, 산더미 같은 빚, 그리고 폭염에 몽땅 썩어 문드러진 생선 지게의 이야기까지. 덤덤하게 말하려 했지만 억울함과 서러움에 이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난 도깨비는 팔짱을 낀 채 혀를 끌쯧 찼습니다.

    "쯧쯧, 미련한 놈. 이 불가마 같은 날씨에 생선을 짊어지고 산을 오르다니. 썩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일 아니냐. 하지만 걱정 말거라! 내 목숨을 살려주었으니, 네놈의 썩은 생선 따위는 잊게 해줄 엄청난 보물을 주마."

    도깨비는 허리춤에서 커다란 방망이를 꺼내더니 허공에 대고 휙휙 휘둘렀습니다.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그러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허공에서 금덩이와 은덩이가 비 오듯 쏟아져 내리며 보부상의 발앞에 순식간에 작은 산을 이룬 것입니다. 보부상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습니다. 평생을 벌어도 만져보지 못할 어마어마한 재물이었습니다.

    "이, 이것이 정녕 저에게 주시는 겁니까?"

    "놀라기는 아직 이르다. 금은보화는 그저 시작일 뿐. 내가 진짜로 줄 보물은 따로 있지."

    도깨비가 다시 한번 방망이를 바닥에 쾅 내리치자, 이번에는 번쩍이는 금덩이 옆으로 어른 몸통만 한 거대한 투명한 덩어리가 나타났습니다. 그 덩어리 주변으로는 하얀 냉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죠.

    '어, 얼음?!'

    보부상은 기절할 뻔했습니다. 지금은 숨만 쉬어도 땀이 흐르는 한여름. 궁궐의 높은 분들이나 빙고에서 꺼내어 겨우 한 조각 맛본다는 그 귀하디귀한 얼음이 이 깊은 산속에 나타나다니요.

    "이것이 내가 너에게 주는 진짜 보물, '얼음 빙수(氷水)'라는 비법이다."

    도깨비는 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얼음을 바라보는 보부상 옆으로 쪼그려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낮고 은밀한 목소리로 속삭이기 시작했습니다.

    "잘 들으라. 이 썩어빠진 생선 장사는 당장 때려치우거라. 네가 번 금덩이로 한겨울에 산비탈 밑에 거대한 돌창고, 즉 '빙고(氷庫)'를 짓는 거다. 돌로 벽을 두르고 볏짚과 톱밥을 두껍게 깔아 땅속 깊은 곳에 찬 기운을 가두는 게지. 강물이 꽁꽁 어는 한겨울에 얼음을 베어다 그곳에 산처럼 쌓아두거라. 그리고 이 지옥 같은 더위가 다시 찾아오는 한여름이 오면..."

    도깨비는 입맛을 쩝 다시며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그 꽁꽁 언 얼음을 꺼내어 무쇠 대패로 눈꽃처럼 곱게 벅벅 갈아내는 거다. 소복하게 쌓인 얼음눈 위에, 푹 삶아 꿀에 버무린 달콤한 붉은 팥을 듬뿍 얹고. 쫄깃한 인절미 떡과 제철을 맞은 복숭아, 참외 같은 과일을 먹기 좋게 썰어 올리는 게지. 마지막으로 달달한 곡물 조청을 휙 둘러서 한 숟갈 크게 떠먹으면!"

    도깨비의 생생한 묘사에 보부상의 입안에 침이 가득 고였습니다. 상상만으로도 온몸의 열기가 싹 가시고 골치 아픈 피로가 날아가는 듯했습니다.

    "생각해 보아라. 이 찜통더위에 지친 백성들과 양반들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그 서늘하고 달콤한 맛을 한 번이라도 본다면 어찌 되겠느냐? 그들은 미친 듯이 지갑을 열 것이다! 넌 금방 조선 팔도에서 가장 거대한 부자가 될 것이야."

    도깨비는 보부상의 손에 빙고를 짓는 비법이 적힌 두루마리와 특별히 고안된 얼음 대패의 설계도를 쥐여주었습니다.

    "명심해라, 얼음은 한겨울에 준비하여 한여름에 파는 것이다. 시간을 지배하는 자가 거상이 되는 법! 자, 나는 더위에 지쳐 이만 서늘한 동굴로 자러 가야겠다. 나중에 성공하면 내 몫의 빙수 한 그릇 잊지 말거라!"

    말을 마친 도깨비는 펑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짙은 푸른 연기를 남기며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산속에는 매미 소리만이 다시 요란하게 울려 퍼졌고, 보부상의 앞에는 산처럼 쌓인 금은보화와, 신기하게도 전혀 녹지 않고 냉기를 뿜어내는 도깨비의 얼음 덩어리만이 꿈이 아니라는 듯 남아있었습니다. 보부상은 두루마리를 가슴에 꽉 품었습니다. 그의 눈빛에는 절망 대신, 뜨거운 열정과 희망의 불꽃이 이글거리고 있었습니다.

    ※ 3: 첫눈이 내리던 날의 준비, 그리고 한여름의 기적

    가을이 지나고 뼈를 깎는 듯한 칼바람이 불어오는 한겨울이 되었습니다. 보부상은 도깨비가 남기고 간 금은보화를 밑천으로 한양 근교의 한적한 산자락에 거대한 땅을 매입했습니다. 그리고는 조선 팔도에서 내로라하는 석공과 목수들을 수십 명이나 불러 모았습니다.

    "이보게 칠성 아비, 그 젊은 보부상 놈이 생선 썩힌 충격으로 단단히 미쳤다지? 땅을 파서 돌로 무덤을 짓는답시고 온 동네 사람들을 다 불러 모으지 않나."
    "내 말이. 그 많은 돈을 어디서 났는지 몰라도, 볏짚과 왕겨를 산더미처럼 사들인다네. 미쳐도 곱게 미쳐야지, 쯧쯧."

    마을 사람들은 수군거렸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공사에만 매진했습니다. 도깨비의 설계도에 따라 산의 경사면을 파고들어가 거대한 아치형의 돌방을 만들었습니다. 돌과 돌 사이는 회반죽으로 단단히 메우고, 바닥과 벽면에는 볏짚과 숯, 왕겨를 겹겹이 쌓아 올려 밖의 열기가 단 한 줌도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공기가 통하도록 천장에 굴뚝 형태의 환기구를 뚫는 것도 잊지 않았죠. 개인의 힘으로 만들어낸, 민간 최대 규모의 '빙고'가 완성된 것입니다.

    가장 추운 대한(大寒) 절기가 되자, 한강의 물이 두껍게 얼어붙었습니다. 그는 일꾼들을 동원해 톱으로 얼음을 네모반듯하게 잘라내어 빙고 안으로 끊임없이 실어 날랐습니다. 얼음 사이사이에도 볏짚을 덮어 얼음끼리 붙거나 녹지 않게 정성껏 보관했습니다. 차가운 돌창고 안에서 입김을 호호 불며 일하면서도, 보부상의 가슴 속은 다가올 여름을 향한 기대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흘러 이듬해 한여름.
    조선 팔도는 작년보다 더 지독한 폭염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길가의 개들도 혀를 빼물고 쓰러졌고, 사람들은 부채질을 하며 그늘을 찾기 바빴습니다. 양반 체면에 윗옷을 벗을 수도 없던 선비들은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헐떡거렸습니다.

    바로 그날, 한양에서 가장 번화한 운종가 네거리에 커다란 천막을 친 전대미문의 가게가 문을 열었습니다. 가게 앞에는 '얼음 빙수(氷水) - 한겨울의 서늘함을 팝니다'라고 적힌 거대한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죠.

    "얼음? 이 한여름에 얼음을 판다고? 저놈이 더위를 먹어 헛소리를 치는구나!"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비웃을 때, 보부상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빙고에서 갓 꺼내온 거대한 얼음덩어리를 꺼내 놓았습니다. 주변의 공기가 순식간에 서늘해지는 것을 느낀 사람들의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진짜 얼음이었습니다!

    보부상은 도깨비의 도면대로 대장장이에게 특별히 의뢰해 만든 거대한 무쇠 대패틀 위에 얼음을 올렸습니다. 그리고는 양손으로 대패를 잡고 힘차게 밀기 시작했습니다.

    사각! 사각! 사르르륵-!

    경쾌하고도 서늘한 마찰음과 함께, 투명한 얼음이 새하얀 눈꽃송이처럼 갈려 곱게 깎여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넓적한 사기그릇 위에 소복하게 쌓인 새하얀 얼음산. 사람들은 홀린 듯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보부상은 그 위에 미리 며칠 밤낮을 푹 고아낸 달콤한 통팥을 듬뿍 얹고, 쫀득하게 쳐낸 인절미 조각을 숭숭 썰어 올렸습니다. 화룡점정으로 우물물에 담가두어 차갑게 식힌 꿀 참외와 붉은 수박을 얹은 뒤, 끈적하고 달달한 쌀 조청을 한 바퀴 빙 둘렀습니다.

    "자, 이것이 바로 조선 제일의 여름 별미, 얼음 빙수올시다!"

    더위에 지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던 뚱뚱한 부자 양반 한 명이 엽전 꾸러미를 던지듯 내밀며 첫 그릇을 받아들었습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놋숟가락을 들어 눈꽃 얼음과 팥, 과일을 크게 한술 떠서 입안에 밀어 넣었습니다.

    그 순간, 양반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습니다.
    입안에 들어오자마자 사르르 녹아내리는 극강의 차가움이 머리끝까지 짜릿하게 찌르고 올라왔습니다. 뒤이어 통팥의 깊은 단맛과 조청의 은은한 향이 혀끝을 감싸고 돌았으며, 아삭하게 씹히는 달콤한 참외와 쫄깃한 인절미가 씹는 재미까지 더해주었습니다. 오장육부에 쌓여 있던 끈적한 열기가 단숨에 씻겨 내려가는 듯한, 그야말로 천상의 맛이었습니다.

    "오오... 오오오! 천하에 이런 맛이 있다니! 살 것 같다! 내가 다시 태어난 것 같아! 여봐라! 여기 이 빙수라는 것 열 그릇... 아니, 백 그릇 더 내어오너라!"

    양반의 격렬한 반응을 본 구경꾼들이 앞다투어 돈을 꺼내 들며 덤벼들었습니다.

    "나도 주시오! 엽전을 두 배로 낼 테니 나부터 주시오!"
    "밀지 마라! 내가 먼저 왔다!"

    그날 운종가의 빙수 가게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아침에 산더미처럼 준비해 온 얼음과 팥이 해가 중천에 뜨기도 전에 동이 나버렸습니다. 돈통에는 엽전이 넘쳐흐르다 못해 바닥에 굴러다녔습니다. 평민들은 물론이고, 체통을 지키려던 양반들조차 종들을 시켜 빙수를 사 오라 난리였으며, 나중에는 아예 양반 부인네들이 가마를 타고 빙수 가게 앞을 서성이는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보부상의 입가에 환한 웃음이 번졌습니다. 도깨비의 은혜를 입어 조선 팔도를 서늘하게 달구는 거대한 빙수 사업의 첫발을 내딛는 눈부신 순간이었습니다.

    ※ 4: 첫 번째 위기, 질투에 눈이 먼 얼음 독점꾼의 횡포

    운종가 네거리에서 시작된 '도깨비 빙수'의 열풍은 한양 도성을 넘어 조선 팔도로 들불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찌는 듯한 가마솥더위가 기승을 부릴수록 보부상의 빙수 가게 앞에는 매일같이 새벽부터 줄을 서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죠. 화려한 가마를 타고 온 정경부인부터, 무거운 지게를 잠시 내려놓고 이마의 땀을 닦아내는 왈패와 봇짐장수들까지,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그 달콤하고 서늘한 얼음의 마력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처음에는 상놈들이나 길거리에서 퍼먹는 천한 음식이라며 코웃음을 치던 깐깐한 선비들조차, 체면을 구겨가며 종들을 시켜 빙수를 사 오게 할 정도였으니 그 인기는 가히 하늘을 찌를 듯했습니다. 밀려드는 손님들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보부상은 한양 곳곳의 목이 좋은 거리에 분점을 내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이제 그를 단순한 장사꾼이 아니라 '얼음 대행수'라는 영광스러운 호칭으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이었습니다. 보부상의 눈부신 성공을 어두운 기와집 안방에서 뱀처럼 차갑고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는 자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한양의 사빙고, 즉 민간 얼음 창고를 독점하고 있던 권세가 최 대인이었습니다. 본래 한여름의 얼음이란 부유한 권문세가 양반들이나 어마어마한 은자를 지불하고 겨우 한 조각 맛볼 수 있는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최 대인은 수십 년간 그 귀한 얼음의 유통을 독점하며 상상을 초월하는 폭리를 취해왔고, 그 돈으로 조정 대신들을 주무르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근본도 없는 젊은 보부상 놈이 혜성처럼 나타나, 산더미 같은 얼음을 기상천외한 대패로 썩썩 갈아내어 헐값에 팔아치우기 시작하니 최 대인의 가장 큰 밥줄이 단숨에 끊어질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감히 천하디천한 생선 장수 출신 보부상 놈이 내 구역에서 얼음 장사로 물을 흐려? 그것도 고귀한 양반들의 전유물인 얼음을 상놈들 입구석에 쑤셔 넣어? 내 이놈을 당장 쳐죽여서 한양 바닥의 상도가 누구의 손에 있는지 똑똑히 보여주겠다! 왈패들을 모조리 풀어서 그 요망한 얼음 가게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려라!"

    최 대인의 표독스러운 불호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독기를 잔뜩 품은 왈패 수십 명이 대낮의 운종가 빙수 가게로 우르르 들이닥쳤습니다. 평화롭게 빙수의 달콤함을 즐기며 더위를 식히던 손님들은 갑작스러운 난동에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몽둥이와 쇠 지렛대로 무장한 왈패들은 닥치는 대로 탁자를 뒤엎고, 갓 구워낸 인절미와 정성껏 쑨 팥이 담긴 항아리를 바닥에 내동댕이쳤습니다. 쨍그랑거리는 굉음과 함께 진귀한 사기그릇들이 산산조각 났고, 가게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이따위 천박한 얼음 장난질로 한양의 상도를 어지럽히다니! 최 대인 어르신의 명이다! 당장 이딴 난장판을 접고 도성을 떠나지 않으면, 다음번엔 네놈의 뼈통을 얼음처럼 갈아버리겠다!"

    왈패들의 두목은 험악한 욕설을 내뱉으며, 보부상이 도깨비의 도면을 보고 애지중지 직접 두드려 만들었던 거대한 무쇠 대패마저 커다란 망치로 무참히 내려쳐 박살 내버렸습니다. 산처럼 쌓여 있던 투명한 얼음 덩어리들은 흙먼지가 뒹구는 뜨거운 길바닥에 내던져졌고, 왈패들의 더러운 발길질에 채여 처참하게 녹아내렸습니다. 소식을 듣고 헐레벌떡 달려온 보부상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린 가게를 보며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분노와 억울함이 목 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상대는 한양 최고의 권세가이자 포도청마저 돈으로 구워삶은 최 대인이었습니다. 주먹을 꽉 쥔 그의 손등에는 시퍼런 핏대가 섰습니다.

    '여기서 무너지면 안 돼. 병드신 어머니의 약값도, 나를 믿고 목숨을 살려준 도깨비님과의 약속도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만다.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그러나 최 대인의 비열하고 악랄한 횡포는 고작 가게 하나를 부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막강한 인맥과 자금력을 동원하여, 한겨울 얼음을 빙고에 보관할 때 필수적으로 필요한 볏짚과 왕겨의 한양 유통을 모조리 막아버렸습니다. 보부상에게 볏짚을 파는 상인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한양 장터에서 쫓아내겠다는 엄포를 놓은 것이죠. 심지어 그해 늦여름, 최 대인은 가장 파렴치한 짓을 저지르고 맙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그믐밤을 틈타, 자객들을 시켜 보부상의 전 재산이자 심장과도 같은 산속 거대 빙고 주변에 불을 지른 것입니다.

    건조한 바람을 타고 번진 불길은 순식간에 산비탈을 붉게 물들이며 타올랐습니다. 빙고 주변의 나무들이 무서운 기세로 타들어가며 뿜어내는 엄청난 열기가 두꺼운 돌창고 안으로 스며들려 하고 있었습니다. 안에서 보관 중인 얼음이 한 번 녹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끝장이었습니다. 산불을 발견하고 허겁지겁 달려온 보부상은 혼자서 물동이를 나르며 발버둥 쳤지만, 거대한 불길 앞에서는 한낱 불나방에 불과했습니다. 절망의 눈물이 시꺼먼 그을음이 묻은 뺨을 타고 흘러내리던 그 절체절명의 순간,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대행수님! 비키시오! 우리가 불을 끄겠소!"
    "우리 얼음은 우리가 지킨다! 저 악랄한 최 대인 놈들에게 우리의 서늘한 피난처를 뺏길 순 없어!"

    어디선가 횃불을 든 수백 명의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산길을 뛰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보부상이 헐값에 내어준 빙수 한 그릇으로 지옥 같은 한여름의 열병을 이겨냈던 촌부들, 시장 잣거리의 영세 상인들, 심지어 낮에 왈패들에게 맞고 쫓겨났던 서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각자 집에서 가져온 물동이, 요강, 젖은 담요, 흙을 담은 가마니를 들고 와 미친 듯이 불길을 향해 몸을 던졌습니다. 어떤 이는 젖은 옷을 벗어 불을 덮었고, 어떤 이는 맨손으로 불붙은 나뭇가지를 꺾어 던졌습니다. 백성들은 밤을 꼬박 새워가며 필사적으로 불길을 잡았고, 거대한 빙고를 여러 겹으로 에워싸며 혹시라도 다시 나타날지 모를 왈패들의 접근을 온몸으로 막아냈습니다.

    아침 해가 떠오르고 불길이 완전히 잡히자, 보부상은 숯덩이처럼 변해버린 백성들의 손을 하나하나 부여잡고 뜨거운 오열을 터뜨렸습니다. 자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이 참혹한 위기는 오히려 빙수라는 것이 조선 백성들에게 단순한 군것질거리가 아니라, 고단한 삶을 달래주는 한여름의 희망이자 치유의 상징이 되었음을 명백히 증명해주었습니다. 보부상은 눈물을 닦아내고 두 동강 난 쇠망치를 집어 들었습니다. 부서진 대패를 더욱 크고 단단하게 다시 벼려내며, 최 대인의 비열한 독점을 완전히 무너뜨리기 위해 한양을 넘어 조선 팔도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체인망을 구축하겠다는 굳건한 반격을 다짐했습니다.

    ※ 5: 조선 팔도 체인점 구축과 탐관오리의 함정

    한양에서의 끔찍했던 위기를 민심의 거대한 힘으로 극복해 낸 보부상은 더욱 대담하고 치밀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최 대인 같은 권세가들이 다시는 함부로 장난을 치지 못하도록, 아예 한양 한 곳에만 머물지 않고 조선 전체의 상권을 장악하기로 결심한 것이죠. 그는 과거의 자신처럼 가진 것 없이 가난하고 고통받으며 짐을 짊어지고 전국을 떠도는 젊은 보부상들을 대거 불러 모았습니다.

    "자네들도 뼈저리게 알다시피, 우리 같은 흙수저 보부상의 길은 평생을 걸어도 고달프고 배고플 뿐이네. 하지만 나를 보게! 이 '도깨비 빙수'의 비법과 꺾이지 않는 의지만 있다면, 썩은 생선을 짊어지고 산속에서 울부짖던 나처럼 자네들도 당당한 거상이 될 수 있네! 내가 사재를 털어 빙고 짓는 법과 개량된 무쇠 대패의 도면, 그리고 달콤한 팥을 쑤는 절대 비급을 모두 내어줄 테니, 자네들은 조선 팔도 요지마다 내려가 우리의 깃발을 꽂고 백성들의 더위를 씻어주게!"

    보부상의 진심 어린 호소와 눈부신 성공 신화에 감화된 수많은 상인들이 눈을 반짝이며 그의 밑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는 단순하게 비법만 전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철저한 규율과 통일성을 강조했습니다. 얼음을 깎아내는 두께와 빙질, 팥을 졸이는 시간과 당도, 위에 올라가는 떡의 찰기까지 모든 점포가 똑같은 맛을 내도록 엄격하게 훈련시키는 '프랜차이즈 체인점'의 개념을 조선 역사상 최초로 도입한 것입니다. 곧이어 평양, 전주, 동래, 개성, 공주 등 전국 주요 거점 고을의 가장 번화한 거리에 펄럭이는 '도깨비 빙수'의 깃발이 우후죽순 솟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각 지역의 특산물을 활용한 기발한 신메뉴들이 개발되면서 빙수의 인기는 폭발적으로 치솟았습니다. 제주에서는 상큼한 귤을 꿀에 절여 올린 감귤 빙수가, 나주에서는 달고 시원한 배를 아삭하게 썰어 올린 배 빙수가, 함흥에서는 잣과 호두를 듬뿍 얹어 고소함을 극대화한 견과 빙수가 불티나게 팔려나갔습니다. 이제 보부상은 한낱 거리의 장사꾼이 아니라, 전국 단위의 거대한 물류망과 수백 명의 점주를 거느린, 그야말로 조선을 뒤흔드는 진정한 '대행수'로 거듭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침없이 뻗어나가며 승승장구하던 그의 앞에, 최 대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교활하고 거대한 두 번째 위기가 독니를 드러내며 다가왔습니다. 빙수 사업의 최대 요충지 중 하나이자 엄청난 부가 모이는 남부 지방, 그곳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관찰사 조 대감이 검은 마수를 뻗쳐온 것입니다. 조 대감은 겉으로는 백성을 위하는 척 기품을 떨었지만, 뒤로는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고 뇌물을 긁어모으는 것으로 악명 높은 조선 최고의 탐관오리였습니다. 그는 매일같이 빙수 가게에서 수레로 실려 나가는 엄청난 양의 엽전과 은자를 보며 탐욕에 눈이 멀어버렸습니다.

    "허허, 기가 막힐 노릇이구나. 길가에 굴러다니는 물을 얼린 저 얼음 덩어리가 모두 황금덩어리로 변한단 말이지? 한낱 천한 장사치 놈들이 내 관할에서 이토록 막대한 부를 쌓고 있는데, 어찌 관아에 바치는 성의가 이리도 형편없단 말이냐. 당장 그 보부상 대행수라는 놈의 목덜미를 끌고 대령해라!"

    조 대감의 서릿발 같은 명에 따라, 보부상은 오랏줄에 묶인 채 남부 관아의 차디찬 뜰로 끌려갔습니다. 최고급 비단옷을 휘감고 누각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기생이 부쳐주는 부채 바람을 쐬던 조 대감은, 거만하고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습니다.

    "네놈이 도깨비 조화라도 부리듯 얼음을 깎아 팔아 산더미처럼 재물을 모은다 들었다. 허나 똑똑히 알거라. 본디 이 조선 땅 산천에 흐르는 물과 차가운 얼음은 모두 임금의 것이요, 곧 나라의 것이거늘! 어찌 네놈 같은 상놈이 사사로이 국부를 도둑질하여 이익을 취하느냐? 내 특별히 너의 죄를 덮어줄 터이니, 오늘부터 네놈이 거느린 모든 상단 수익의 할 푼 칠 리, 즉 백 냥을 벌면 여든일곱 냥을 '특별 빙세(氷稅)'라는 명목으로 관아에 바치거라. 만약 내 호의를 거절한다면, 신분 질서를 어지럽히고 민심을 현혹한 대역죄를 물어 네놈의 모든 빙고를 헐어버리고 수하들을 능지처참할 것이다!"

    그것은 세금이라는 명목을 뒤집어쓴 명백한 강도질이었고, 사실상 빙수 상단을 통째로 빼앗아 자신의 배를 불리겠다는 악랄한 협박이었습니다. 보부상이 상단의 점주들과 백성들의 생계가 달린 일이라며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부당함을 호소하고 거절하자, 조 대감은 즉각 흉악한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수백 명의 관군을 동원해 남부 지방의 모든 빙수 가게를 강제로 폐쇄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빙고에서 애써 모아둔 수십 톤의 귀한 얼음을 대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 길거리에 내동댕이쳐 처참하게 녹여버리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항의하는 지역 점장들을 모조리 옥에 가두고 뼈가 부러지는 모진 고문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 굴복할 수는 없다. 저 더러운 탐관오리의 배를 불리기 위해, 나와 내 동료들이 피땀 흘려 쌓아 올린 서늘한 얼음성을 이대로 내어줄 수는 없어! 칼에는 칼로, 힘에는 더 큰 힘으로 맞서야 한다!'

    보부상은 분노로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등 뒤로 감추고, 겉으로는 머리를 조아리며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물러났습니다. 그리고는 얼음장처럼 차갑고 서늘한 머리로 거대한 반격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가진 가장 큰 무기는 돈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전국 각지의 골목골목까지 뻗어 있는 수백 개의 빙수 가게 점포망, 즉 조선 최고의 '정보망'이었습니다. 더위를 식히러 매일 빙수 가게를 드나드는 관아의 아전들, 술에 취해 떠벌리는 토호들, 기생들, 그리고 조 대감에게 억울하게 땅을 빼앗긴 백성들의 모든 한탄과 소문이 빙수 가게로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보부상은 점주들을 점조직으로 활용하여 조 대감의 뒤를 샅샅이 캐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끈질긴 추적 끝에 마침내, 조 대감이 백성들을 굶주림에서 구제해야 할 구휼미를 몰래 빼돌려 청나라 상인들에게 팔아치우고 사리사욕을 채운 치명적인 범죄 사실과, 그 뇌물 내역이 낱낱이 기록된 비밀 장부의 행방을 알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폭탄 같은 장부를 조선에서 가장 높고 공정하며 조 대감의 권력을 단숨에 베어버릴 수 있는 자의 손에 쥐여주는 것뿐이었습니다.

    ※ 6: 위기를 기회로, 전국구 대행수 빙수왕의 탄생

    찌는 듯한 가마솥더위가 그해의 절정에 달했던 삼복더위의 한가운데.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남부 지방의 굽이진 고갯길에 자리 잡은 한 허름한 주막 평상에, 낡은 갓을 쓰고 땀에 찌든 도포를 입은 초라한 행색의 선비 하나가 숨을 헐떡이며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짚신은 다 해져 있었고, 입술은 바싹 타들어가 갈라져 있었죠. 그는 겉보기엔 그저 낙방을 거듭한 가난한 선비 같았지만, 사실 그의 품속에는 호패 대신 구리로 만든 마패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는 썩어빠진 조 대감의 비리를 조사하기 위해 한양에서부터 비밀리에 남하하던 젊고 강직한 암행어사, 박 어사였습니다. 무더위와 굶주림, 그리고 극도의 여독에 지쳐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혼미해진 그의 시야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습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선비님. 땀방울이 피맺힌 듯 붉게 맺히셨구려."

    얼굴의 절반을 깊게 눌러쓴 패랭이 모자로 가린 한 사내가, 시원한 냉기를 하얗게 뿜어내는 커다란 놋그릇 하나를 탁자 위에 조용히 내려놓았습니다. 사내가 뚜껑을 열자, 곱게 갈린 눈꽃 같은 얼음 위로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붉은 팥과 쫄깃한 떡이 산처럼 쌓인 먹음직스러운 빙수가 자태를 드러냈습니다.

    "이, 이것은... 한양에서 그리도 유명하다는 도깨비 빙수 아니오? 이 외진 시골 주막에 어찌 이런 귀한 것이 있단 말이오..."

    박 어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떨리는 손으로 숟가락을 들자, 변장한 보부상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속삭였습니다.

    "지옥 같은 더위에는 이 차가운 얼음으로 타는 목과 속을 달래시는 것이 최고지요. 그리고... 빙수를 다 드시고 나면, 그 얼음 밑바닥에 차갑게 깔려 있는 진실도 함께 맛보시길 바랍니다. 이 고을 백성들의 피눈물로 빚어낸 진실 말입니다."

    사내가 소리 없이 물러나자, 박 어사는 홀린 듯이 빙수를 크게 한술 떠 입안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머리끝까지 찌릿해지는 극한의 차가움과 팥의 깊은 단맛이 온몸의 피로를 씻어 내리며 정신을 번쩍 들게 했습니다. 허겁지겁 그릇을 비워가던 그의 숟가락 끝에 무언가 딱딱한 것이 걸렸습니다. 얼음 산의 가장 깊숙한 곳, 겹겹이 싼 기름종이 뭉치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기름종이를 펼친 박 어사의 눈빛이 순식간에 매의 눈처럼 매섭게 번뜩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보부상의 정보망이 조 대감의 비밀 금고에서 목숨을 걸고 빼내 온, 구휼미 횡령과 뇌물 수수 내역이 빼곡히 적힌 조 대감의 친필 비밀 장부였습니다. 얼음장보다 차가운 분노가 박 어사의 전신을 휘감았습니다.

    다음 날 정오, 관아의 넓은 마당에서는 끔찍한 처형식이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조 대감은 기어이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빙수 상단의 점장들을 역모죄로 몰아 억지 자백을 받아낸 뒤,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목을 치려 하고 있었습니다. 망나니가 칼에 물을 뿜고 칼춤을 추기 시작하는 순간, 옥살이로 뼈만 남은 점장들은 두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바로 그때, 관아의 육중한 대문을 부술 듯이 걷어차며 천둥 같은 고함소리가 남부 하늘을 갈랐습니다.

    "암행어사 출두야!!! 암행어사 출두야!!!"

    사방에서 역졸들이 몽둥이를 휘두르며 폭풍처럼 들이닥쳤고, 관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마패를 번쩍 높이 치켜들고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는 박 어사의 위엄에, 처형식을 지켜보던 조 대감은 사색이 되어 평상에서 굴러떨어졌습니다. 박 어사는 품에서 기름종이에 싸인 비리 장부를 꺼내 조 대감의 얼굴에 거세게 집어 던졌습니다.

    "네 이놈! 백성의 피눈물을 핥아먹고, 위로는 임금의 눈을 속인 죄! 이 명백한 증거 앞에서도 능구렁이처럼 빠져나갈 셈이냐! 당장 이놈의 목에 칼을 씌우고 한양으로 압송하라!"

    조 대감은 변명 한마디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결박당했고, 옥에 갇혀 있던 빙수 가게 점장들은 족쇄가 풀리자 달려온 보부상과 부둥켜안고 엉엉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억눌렸던 백성들의 환호성이 관아 마당을 가득 채웠습니다. 이 엄청난 사건은 박 어사의 장계를 통해 곧바로 조정과 임금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임금은 극심한 가뭄과 폭염에 지쳐 죽어가던 백성들에게 얼음으로 큰 위안을 주고, 더 나아가 나라의 근간을 흔들던 거물급 탐관오리의 비리까지 완벽하게 밝혀낸 보부상의 뛰어난 지혜와 공로를 크게 치하했습니다. 어명에 따라 보부상에게는 조선 팔도 어디서든 합법적으로 얼음을 보관하고 유통할 수 있는 독점적 권리와 함께, 상인으로서는 최고의 영예인 '조선 제일 빙수장'이라는 어사화가 하사되었습니다.

    마침내 치명적이었던 첫 번째 위기와 두 번째 위기를 모두 완벽하고 통쾌하게 극복해 낸 보부상은, 이제 명실공히 그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조선 팔도를 호령하는 전국구 대행수로 우뚝 섰습니다. 그가 평생에 걸쳐 개발한 수백 가지의 비법 빙수 레시피는 책으로 엮여 후세 상인들에게 귀중히 전해졌고, 그의 점포들은 사계절 내내 웃음꽃이 피는 백성들의 명소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병석에 누워 사경을 헤매시던 홀어머니가 아들이 벌어온 돈으로 지어 올린 조선 최고의 산삼 명약을 드시고 씻은 듯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신 것이었죠.

    처음 무더위와 썩은 생선 앞에서 절망에 빠져 산속에서 목숨을 끊으려 했던 그 끔찍한 여름으로부터, 딱 3년이 지난 어느 늦여름 날이었습니다.
    최고급 비단옷을 차려입은 보부상은, 옛날 생선을 짊어지던 낡은 지게에 값비싼 옻칠과 비단으로 정성껏 감싼 거대한 나무 궤짝 하나를 짊어지고 땀을 흘리며 가파른 산길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무거운 짐이었지만 그의 발걸음은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깃털처럼 가벼웠습니다.

    마침내 졸졸 흐르는 계곡물 앞, 도깨비를 처음 만났던 커다란 바위 앞에 도착한 그는 쿵 소리가 나게 궤짝을 조심스레 내려놓고 뚜껑을 열었습니다. 그 안에는 그가 지금까지 만든 수만 그릇의 빙수 중에서도 가장 크고 화려한, 백 년 묵은 산삼 한 뿌리와 귀한 꿀, 그리고 온갖 진귀한 제철 과일이 보석처럼 듬뿍 올라간 특대형 '도깨비 빙수'가 영롱한 냉기를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김서방 어르신! 저 왔습니다! 3년 전 약속드렸던 대로 제 몫의 가장 귀한 빙수를 깎아 가져왔습니다! 어르신께서 베풀어주신 은혜 덕분에, 제가 이리 사람 구실을 넘어 과분하고 벅찬 삶을 살고 있습니다. 부디 내려오셔서 시원하게 달달하게 드시옵소서!"

    보부상은 빙수를 바위 한가운데 정성스레 올려놓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뒤 깊은 산속을 향해 큰절을 두 번 정중하게 올렸습니다. 그리고 빙수가 녹기 전에 서둘러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산기슭에 다다라 뒤를 돌아보았을 무렵, 깊고 깊은 산속 어딘가에서 바위와 나무를 뒤흔드는 듯한 호탕하고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메아리쳐 들려왔습니다.

    "크하하하! 이놈! 안 그래도 이 찜통더위에 목이 말랐는데, 참으로 기가 막히게 달고 시원하구나! 아주 훌륭하다, 장해!"

    유튜브 엔딩 멘트

    오늘 들려드린 '도깨비 빙수' 이야기, 통쾌하고 시원하게 들으셨나요? 한여름 땡볕 아래 절망에 빠졌던 흙수저 보부상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 조선 제일의 거상으로 우뚝 선 기적 같은 창업기였습니다. 아무리 뜨겁고 힘든 시련이 닥쳐와도, 지혜와 끈기만 있다면 달콤하고 서늘한 눈꽃처럼 이겨낼 수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구독과 좋아요 누르시고, 오늘 하루도 빙수처럼 시원~하고 달달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다음에도 재미있는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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