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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깨비에게 "나를 웃겨봐라"는 도전을 받은 광대, 도깨비를 웃긴 후 받은 평생의 행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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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여러분, 도깨비를 웃긴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아십니까. 조선 숙종 때 경기도 광주에 만복이라는 광대가 살았습니다. 장터에서 줄타기하고 재담을 늘어놓으며 겨우 입에 풀칠하는 천민이었지요. 그런 만복이가 어느 보름밤 숲속에서 도깨비를 만났습니다. 도깨비가 말합니다. 이 놈아, 네가 사람을 웃기는 재주가 있다며. 나를 웃겨 보아라. 내가 웃으면 네 소원을 들어주마. 그런데 못 웃기면, 네 혼을 빼앗겠다. 목숨을 건 내기였습니다. 도깨비는 수백 년을 살면서 한 번도 웃어본 적이 없다 합니다. 그런 존재를 어떻게 웃기겠습니까. 만복이는 어떤 재주를 부려서 도깨비를 웃겼을까요. 그리고 도깨비에게 받은 행운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끝까지 들어보시면 무릎을 치시게 될 겁니다.

    ※ 1 장터의 광대 만복

    제 이름은 만복입니다. 일만 가지 복이라는 뜻인데, 웃기지요. 이름만 복덩어리지 실제 제 삶에 복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으니까요. 경기도 광주 장터에서 재주를 부리며 살아가는 광대입니다. 올해 서른둘, 천민 중에서도 가장 낮은 축에 드는 광대패 출신이지요.
    아버지도 광대였습니다. 줄타기를 잘하셨는데, 제가 열 살 때 줄에서 떨어져 다리를 크게 다치신 뒤로는 줄을 타지 못하셨습니다. 그 뒤로 아버지는 장터 구석에서 북을 치며 근근이 살다가, 제가 열다섯 때 세상을 떠나셨지요. 돌아가시기 전날 밤, 아버지가 제 손에 나무 딱따기 한 쌍을 쥐여주셨습니다. 만복아, 이것만 있으면 밥은 굶지 않는다. 사람을 웃겨라. 웃음을 주는 놈은 어디서든 밥을 얻어먹을 수 있다. 그것이 아버지가 남기신 마지막 말씀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보다 먼저 돌아가셨으니, 저는 열다섯부터 세상에 혼자였습니다.
    광대의 재주는 어릴 때부터 몸에 배어야 합니다. 저는 줄타기도 하고, 땅재주도 넘고, 탈을 쓰고 춤도 추었습니다만, 가장 자신 있는 것은 재담이었습니다. 입담이라고도 하지요. 사람을 웃기는 말솜씨입니다. 장터에 좌판을 깔고 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 멈춰 서서 듣다가, 어느새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양반 흉내를 내면 양반들까지 무릎을 치며 웃었고, 기생 흉내를 내면 아낙들이 눈물이 나도록 웃었으며, 아이 흉내를 내면 꼬마들이 바닥을 뒹굴며 까르르 웃었습니다. 사람을 울리는 것보다 웃기는 것이 백 배는 어려운 일인데, 저는 그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늘이 제게 준 유일한 재주였지요.
    그러나 재주가 있다고 먹고사는 것이 편한 것은 아닙니다. 장터에서 재담을 해봐야 던져주는 엽전이 서너 닢이고, 양반가 잔치에 불려가도 양반들이 주는 것은 밥 한 끼와 막걸리 한 사발이 전부였습니다. 비 오는 날에는 장이 서지 않으니 굶어야 했고, 겨울에는 움막에서 몸을 웅크리고 입김으로 버텨야 했습니다. 서른둘 먹도록 장가도 못 갔습니다. 누가 광대에게 딸을 주겠습니까. 혼처를 알아봐 줄 사람도 없었고, 설령 있더라도 천민 광대에게 시집보낼 아비는 이 나라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제 재담에 웃을 때, 배를 잡고 눈물까지 흘리며 웃을 때, 그 순간만큼은 저도 행복했으니까요. 웃음이라는 것은 참 신기한 것입니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함께 행복해지니까요. 광대 만복이의 전 재산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딱따기 한 쌍과 웃기는 재주 하나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살 이유는 충분했습니다.
    그런 제 인생이 통째로 뒤바뀐 것은, 그해 팔월 보름날 밤의 일이었습니다. 그날 밤 일을 떠올리면 지금도 온몸에 소름이 돋습니다.

    ※ 2 보름밤의 도깨비

    팔월 보름, 한가위였습니다. 장터에서는 큰 잔치가 벌어졌지요. 저도 불려가서 한바탕 재담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날따라 입담이 잘 풀렸는지,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웃었습니다. 방귀 타령을 하면서 양반 흉내를 내니, 구경꾼들이 배를 움켜쥐고 바닥에 주저앉을 정도였지요. 양반 나리 하나가 흥이 나서 엽전 한 줌을 던져주기까지 했으니, 저로서는 대목이었습니다. 품속에 엽전이 묵직하게 자리 잡으니, 기분이 둥실 하늘을 나는 것 같았습니다.
    잔치가 파한 것은 자정 무렵이었습니다. 보름달이 휘영청 떠 있어서 밤인데도 대낮처럼 밝았습니다. 저는 기분 좋게 막걸리를 몇 사발 걸치고 움막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지요. 장터에서 움막까지는 삼십 리 길인데, 중간에 솔숲을 지나야 했습니다. 평소에는 아무 일 없이 지나다니던 길인데, 그날 밤은 뭔가 달랐습니다.
    솔숲에 들어서자 공기가 변했습니다. 보름달이 소나무 사이로 비치면서 그림자가 기묘하게 일렁거렸고, 바람이 없는데도 솔잎이 사각사각 소리를 냈습니다. 풀벌레 소리도 뚝 그쳤습니다. 숲 전체가 숨을 죽인 것처럼 조용해진 것이지요. 술기운 때문인가 싶어 고개를 흔들었는데, 그때 저 앞에서 빛이 보였습니다. 파란빛이었습니다. 도깨비불이었지요.
    술이 확 깨었습니다. 등에서 식은땀이 쫙 흘렀지요. 도깨비불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였는데, 주먹만 한 것부터 수박만 한 것까지 크기가 제각각이었습니다. 파란빛, 붉은빛, 초록빛이 섞여 숲속을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마치 숲 자체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지요. 그리고 그 빛 속에서 형체가 나타났습니다.
    도깨비였습니다. 키가 저보다 두 뼘은 컸고, 머리에 뿔이 하나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얼굴은 사람과 비슷한데 코가 주먹만 하고, 눈이 방울만 했습니다. 입은 귀 밑까지 찢어져 있었으나 이를 드러내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온몸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나고 있었고, 한 손에 커다란 쇠방망이를 들고 있었습니다. 쇠방망이를 가볍게 톡톡 치는 것만으로도 땅이 쿵쿵 울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도깨비의 표정이었습니다. 웃지도 않고, 화가 난 것도 아니고, 그저 심심하다는 듯 멍한 표정이었습니다. 수백 년을 산 존재의 무료함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지요.
    도깨비가 저를 보더니 입을 열었습니다. 목소리가 땅속에서 울려 나오는 것처럼 낮고 묵직했습니다. 야, 너 광대지. 장터에서 사람들 웃기는 놈. 나도 구경했다. 사람들이 배 잡고 웃더구나. 뒹굴면서 웃더구나. 그런데 말이다, 나는 왜 하나도 재미가 없는지 모르겠단 말이다.
    저는 다리가 후들거렸으나, 웃음으로 먹고사는 놈의 직업병인지 입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근데 도깨비님은 구경만 하시고 엽전은 안 던져주셨네요. 공짜 관람은 곤란합니다.
    도깨비가 눈을 껌뻑였습니다. 그리고 한 발짝 다가서며 말했습니다. 재미있는 놈이구나. 간이 부었어. 좋다, 그래서 하나 물어볼 것이 있다. 나를 웃길 수 있겠느냐. 내가 웃으면 네 소원을 들어주마. 뭐든지 좋다. 금은보화든, 양반 신분이든. 대신 못 웃기면, 네 혼을 빼앗겠다. 세 번의 기회를 주마.

    ※ 3 목숨을 건 내기

    도깨비의 말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나를 웃겨보라니. 세 번 안에 못 웃기면 혼을 빼앗겠다니. 이것은 내기가 아니라 목숨을 건 도박이었습니다. 거절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도깨비가 제안을 하면 받아들이든 거절하든 어차피 도깨비 마음대로인 것을 저도 알고 있었으니까요. 도깨비를 화나게 하면 그 쇠방망이가 제 머리통 위로 내려올 것이 뻔했습니다. 저는 바짝 마른 입술을 핥으며 침을 삼키고 대답했습니다. 좋습니다. 해 보겠습니다.
    도깨비가 쇠방망이를 옆에 내려놓고 바위 위에 턱 걸터앉았습니다. 팔짱을 끼고 저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장터에서 재담을 기다리는 까탈스러운 양반 같기도 하고, 세상 모든 것에 싫증이 난 노인네 같기도 했습니다. 해 봐라. 기대하지는 않겠다.
    첫 번째 시도. 저는 장터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재담을 꺼냈습니다. 양반 흉내였지요. 갓을 쓴 척 머리에 손을 올리고, 허리를 곧게 세우고, 코를 찡긋거리며 양반 말투를 흉내 냈습니다. 이 놈, 저 놈, 감히 양반 앞에서 방귀를 뀌다니, 곤장 열 대를 쳐라. 그리고 방귀 소리를 입으로 우렁차게 흉내 내며 바닥을 뒹굴었습니다. 뿡뿡뿡, 뿌르르르릉. 온갖 방귀 소리를 섞어가며, 양반이 방귀에 놀라 갓이 날아가는 시늉까지 했습니다. 장터에서 이 재담을 하면 백이면 백 배를 잡고 웃었고, 강 건너 고을에서까지 이 방귀 타령을 듣겠다고 찾아오는 손님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도깨비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눈만 껌뻑이며 저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그게 뭐냐. 사람들은 저런 것에 웃느냐. 방귀가 왜 웃긴다는 것이냐. 하나도 재미없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줄줄 흘렀습니다. 두 번째 시도. 이번에는 몸으로 하는 재주를 보여주었습니다. 땅재주를 넘고, 물구나무를 서고, 제 발뒤꿈치로 제 뒷통수를 때리는 흉내를 냈습니다. 그리고 나무에 부딪히는 척 하며 이마를 감싸 쥐고 과장되게 쓰러졌다가, 벌떡 일어나 아무 일 없다는 듯 하늘을 올려다보며 딴청을 부렸습니다. 넘어지고, 일어나고, 다시 넘어지고. 이것도 장터에서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배꼽을 잡고 웃는 재주였습니다.
    도깨비는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습니다. 사람이 넘어지는 것이 왜 재미있다는 것이냐. 이해가 안 된다. 넘어지면 아플 텐데.
    두 번 실패. 남은 기회는 단 한 번. 등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고, 다리가 바들바들 떨렸습니다. 한 번 더 실패하면 혼이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과 영영 이별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딱따기도, 장터의 웃음소리도, 막걸리 한 사발의 기쁨도 다시는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주저앉았습니다. 숲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보름달이 여전히 환하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그 달빛을 바라보는데, 문득 아버지의 마지막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을 웃겨라. 웃음을 주는 놈은 어디서든 밥을 얻어먹을 수 있다. 그런데 아버지, 도깨비는 사람이 아닌데요. 사람을 웃기는 방법으로는 도깨비를 웃길 수가 없습니다.

    ※ 4 도깨비를 웃긴 비결

    마지막 한 번. 저는 주저앉은 채 생각에 잠겼습니다. 재담도 안 통하고, 몸 재주도 안 통했습니다. 도깨비는 사람이 아니니, 사람을 웃기는 방식이 통할 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장터에서 십칠 년간 갈고닦은 재주가 이 도깨비 앞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는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웃음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웃는 것은 왜인가. 저는 광대로 살면서 늘 이 질문을 품고 있었습니다. 우스운 이야기를 들으면 웃는 것은 맞지만, 그것만이 웃음은 아닙니다. 오래 떨어져 있던 가족을 만나도 웃고, 맛있는 것을 먹어도 웃고, 아이가 첫 걸음을 떼어도 웃습니다. 장터에서 쌀 한 되를 싸게 샀을 때도 웃고, 비 온 뒤 무지개를 보았을 때도 웃고, 겨울밤 따뜻한 아랫목에 등을 대었을 때도 웃습니다. 웃음의 뿌리는 우스꽝스러움이 아닙니다. 기쁨입니다. 마음이 기쁠 때 사람은 웃는 것입니다.
    눈을 떴습니다. 도깨비를 바라보았습니다. 이 존재는 수백 년을 살면서 한 번도 웃어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재미있는 것을 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기쁜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도깨비는 외로운 존재입니다.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고, 신도 아니고 짐승도 아니고,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존재. 수백 년을 혼자 살아온 것이지요. 장터에서 사람들이 어울려 웃는 모습을 구경하면서도, 자기는 그 무리에 끼지 못하고 멀찍이 서서 지켜만 보았을 것입니다.
    저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재담을 하는 대신, 도깨비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도깨비님, 한 가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도깨비님은 친구가 있습니까.
    도깨비가 눈을 껌뻑였습니다. 뜻밖의 질문이었던 모양이지요. 친구? 없다. 도깨비끼리 어울리기는 하지만, 친구라고 할 만한 놈은 없다. 같이 있어도 심심하기는 매한가지다.
    그럼 도깨비님한테 웃어보라고, 같이 놀자고 하신 사람이 있었습니까.
    도깨비가 잠시 멈칫했습니다. 없었다. 사람들은 다들 나를 보면 혼비백산 도망치기 바빴으니까. 수백 년 동안 단 한 명도.
    저는 도깨비 앞에 털썩 앉았습니다. 다리를 꼬고 앉아, 마치 오랜 벗에게 이야기하듯 말을 이었습니다. 도깨비님, 저도 친구가 없습니다. 광대니까요. 천민 중에서도 가장 낮은 놈이니, 친구가 될 사람이 없었지요. 장터에서 사람들을 웃기면 그 순간은 좋아하지만, 재담이 끝나면 다들 돌아섭니다. 같이 밥 먹자는 사람도, 같이 술 한잔하자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도깨비님을 만나니 반갑습니다. 도깨비님도 외롭고 저도 외로우니, 우리 친구 하면 안 되겠습니까. 외로운 놈끼리 딱 좋지 않습니까.
    도깨비가 멈칫했습니다. 처음 보는 표정이 얼굴에 스쳤습니다. 당황한 표정이었지요. 수백 년을 살면서 누군가에게 친구가 되자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계속 말했습니다. 도깨비님, 웃음이란 것은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장터에서 사람을 웃기지만, 진짜 웃음은 재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지요. 마음이 따뜻할 때, 외롭지 않을 때,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이 기쁠 때, 사람은 웃습니다. 도깨비님이 수백 년간 한 번도 안 웃은 것은 웃긴 것을 못 봐서가 아니라, 기쁜 적이 없어서일 겁니다. 기쁨을 나눌 사람이 없어서요.
    그리고 저는 품에서 아버지가 물려준 나무 딱따기를 꺼냈습니다. 딱따기를 딱딱 치며, 장터에서 부르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우스운 노래가 아니라, 따뜻한 노래였습니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 숲에도 저 마을에도, 외로운 놈에게도 기쁜 놈에게도, 어디에 있든 외롭지 않게 비춰주는 달아. 오늘 밤은 네가 내 친구다.
    노래가 끝났을 때, 도깨비의 얼굴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입꼬리가 씰룩거렸습니다. 그리고 코에서 킁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어깨가 들썩거렸습니다. 억지로 참으려는 듯 입을 꾹 다물었으나,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이 쩍 벌어지며 웃음이 터졌습니다. 하하하하하. 숲이 울릴 만큼 큰 웃음이었습니다. 소나무 가지에서 솔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도깨비불이 미친 듯이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 5 도깨비의 선물

    도깨비가 한참을 웃었습니다. 하하하, 히히히, 껄껄껄. 웃음 소리가 여러 가지로 바뀌면서 숲 전체를 울렸습니다. 나무에 앉아 있던 새들이 놀라 푸드득 날아갔고, 숲 바닥의 풀잎들이 도깨비의 웃음 바람에 출렁거렸습니다. 도깨비불도 덩달아 신이 났는지, 형형색색으로 빛을 바꾸며 숲속을 돌아다녔습니다.
    한참을 웃더니 도깨비가 눈가를 닦았습니다. 도깨비 눈에서 눈물이 나온 것이었지요. 커다란 눈에서 구슬만 한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이것이 웃음이라는 것이구나. 수백 년 만에 처음이다. 아, 이것이 기쁨이라는 것이구나. 기쁨이란 이런 것이었구나. 배가 부른 것도 아니고, 힘이 센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가슴이 따뜻한 것이냐.
    도깨비가 저를 내려다보며 말했습니다. 만복아, 네가 이겼다. 솔직히 말하면 네 재담이 재미있어서 웃은 것이 아니다. 네가 나한테 친구가 되자고 한 것이, 외로운 놈끼리 딱 좋지 않냐고 한 것이, 그것이 기뻐서 웃은 것이다. 수백 년 만에 누군가가 나를 무서운 존재가 아닌 친구로 봐준 것이 처음이었거든. 그래서 약속대로 소원을 들어주마. 뭐든지 말하여라. 금은보화든, 벼슬이든, 여인이든, 큰 기와집이든.
    저는 잠시 생각했습니다. 금은보화를 달라고 할까. 큰 기와집을 달라고 할까. 양반 신분을 달라고 할까. 밤새도록 생각해도 부족할 만큼 갖고 싶은 것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이 떠오른 것이지요. 사람을 웃겨라. 웃음을 주는 놈은 어디서든 밥을 얻어먹을 수 있다.
    도깨비님, 저는 그냥 사람들을 잘 웃기게 해 주십시오. 제 재주가 더 좋아져서, 더 많은 사람을 웃길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오늘 도깨비님이 웃으신 것처럼, 듣는 사람의 마음에 진짜 기쁨을 줄 수 있는 재주를 주십시오. 그것이 제 소원입니다.
    도깨비가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금은보화도 아니고, 벼슬도 아니고, 사람을 웃기는 재주를 달라고? 정녕 그것이 네 소원이냐. 딱 하나만 들어주는 것인데, 정말로 그것이냐.
    예, 그것이 제 소원입니다. 저는 광대입니다. 사람을 웃기는 것이 제 일이고, 제 기쁨이고,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입니다. 그 재주가 더 좋아지면 그것이 저에게는 가장 큰 복입니다. 금은보화는 쓰면 없어지지만, 재주는 쓸수록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도깨비가 한참 저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습니다. 네 놈 참 이상한 놈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당장 배를 채울 금은보화를 달라 했을 텐데. 좋다, 마음에 든다. 이상한 놈이 마음에 들어.
    도깨비가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꺼냈습니다. 낡은 나무 딱따기 한 쌍이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아버지의 딱따기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나무가 검고 묵직했으며, 표면에 알 수 없는 무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것을 가져라. 이 딱따기를 치며 재담을 하면, 듣는 사람의 마음이 열릴 것이다. 네 말이 사람의 가슴에 바로 닿을 것이다.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듣게 될 것이다. 다만 조건이 있다. 이 딱따기는 진심일 때만 힘을 발한다. 사람을 속이려 하거나, 남을 깎아내리거나, 욕심으로 쓰면 소리가 나지 않을 것이다. 그때는 아무리 쳐도 벙어리 나무토막일 뿐이다.
    저는 두 손으로 딱따기를 받아 들었습니다. 낡고 거칠었으나, 손에 잡는 순간 묘한 온기가 느껴졌습니다. 살아 있는 것처럼 따뜻했지요.
    도깨비가 씩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오늘 네가 나를 웃겨준 것이 고마우니, 덤으로 행운을 하나 붙여주마. 네가 이 딱따기를 들고 다니는 한, 좋은 인연이 네 앞에 나타날 것이다. 네가 평생 찾던 것을 만나게 될 것이다. 무엇인지는 네가 직접 알아보아라.

    ※ 6 행운과 시험

    그 뒤로 제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도깨비에게 받은 딱따기를 들고 장터에서 재담을 하니, 전과는 차원이 다른 반응이 왔습니다. 제가 딱따기를 딱딱 치며 입을 열면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귀가 쫑긋해지고, 몸이 앞으로 기울고, 어느새 제 이야기 속에 풍덩 빠져드는 것이었습니다. 웃길 때는 배를 잡고 웃었고, 슬픈 대목에서는 눈시울이 붉어졌으며, 감동적인 대목에서는 무릎을 치며 그래, 바로 그거야 하고 감탄했습니다. 제 재담이 단순한 웃음을 넘어 사람의 마음 깊은 곳까지 울리게 된 것이지요.
    소문이 퍼졌습니다. 광주 장터에 만복이라는 광대가 있는데, 그놈 재담 한번 들으면 사흘은 기분이 좋다더라. 아니, 보름은 간다더라. 인근 고을에서까지 사람들이 찾아왔고, 양반가 잔치에도 불려가는 일이 부쩍 잦아졌습니다. 전에는 엽전 서너 닢이 전부였는데, 이제는 쌀이며 반찬이며 옷감이며 넉넉하게 돌아왔습니다. 움막을 허물고 작은 초가집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고, 겨울에도 솜이불을 덮고 잘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도깨비가 말한 좋은 인연이 찾아왔습니다. 이웃 마을에 순덕이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나이 스물여덟의 과부였습니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홀로 밭을 일구며 살고 있었지요. 손이 크고 마음이 넓은 여인이었는데, 장터에서 제 재담을 듣고는 한참을 웃더니, 눈물을 닦으며 말했습니다. 참 좋은 이야기였소. 남편이 죽고 나서 이렇게 실컷 웃어본 적이 없소. 고맙소. 저는 순덕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가슴이 뛰었습니다. 이것이 도깨비가 말한 인연이구나 싶었지요. 수줍게 말을 걸었더니, 순덕이도 수줍게 웃어주었습니다.
    순덕이와 혼인을 했습니다. 거창한 잔치는 없었으나, 초가집 마당에서 둘이 마주 보고 웃으며 절을 올린 그 순간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도깨비가 말한 평생 찾던 것이 이것이었구나. 금은보화가 아니라, 함께 웃어줄 사람. 그것이 제가 찾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행운이 계속되니, 마음 한구석에 욕심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간사한 것이어서, 없을 때는 작은 것에도 감사하다가, 있게 되면 더 큰 것을 탐하게 되지요. 더 큰 집을 갖고 싶고, 더 많은 돈을 벌고 싶고, 더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이 슬금슬금 피어났습니다.
    어느 날 부유한 양반이 저를 부르더니, 자기 원수인 이웃 양반을 조롱하는 재담을 만들어달라고 했습니다. 그 양반의 약점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장터에서 떠들어달라는 것이었지요. 값을 후하게 쳐주겠다며 은자 다섯 냥을 내밀었습니다. 은자 다섯 냥이면 반 년은 넉넉하게 먹고살 돈이었습니다.
    저는 잠시 고민하다가, 욕심에 눌려 승낙하고 말았습니다. 그 양반이 시키는 대로 이웃 양반을 조롱하는 재담을 만들어 장터에서 했습니다. 그런데 딱따기를 치려는 순간,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딱딱 하고 경쾌한 소리가 나야 할 딱따기가, 먹먹하게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은 것입니다. 몇 번을 쳤으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무토막 두 개를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만 날 뿐, 그 맑고 경쾌한 울림은 온데간데없었습니다.
    도깨비의 경고가 번개처럼 떠올랐습니다. 진심이 아닐 때, 욕심으로 쓸 때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했지요. 저는 재담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그 양반에게 은자를 돌려주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할 일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양반이 화를 내며 욕을 했으나, 저는 돌아서서 걸었습니다.
    그날 밤, 딱따기를 들고 마당에 앉아 보름달을 올려다보며 오래 생각했습니다. 도깨비가 준 것은 딱따기가 아니라 가르침이었구나. 진심을 잃으면 재주도 잃는다는 가르침. 웃음은 누군가를 깎아내리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데 쓰는 것이라는 가르침. 순덕이가 나와서 왜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순덕이에게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순덕이가 제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습니다. 당신이 돌려준 것이 잘한 거요. 돈보다 당신의 재주가 더 귀하오.

    ※ 7 만복의 결말

    그 뒤로 저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갔습니다. 사람을 웃기되, 진심으로 웃기자. 누군가를 깎아내리는 웃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웃음을 주자. 도깨비가 수백 년 만에 처음 웃었던 그 순간처럼, 외로운 마음에 온기를 전하는 것이 진짜 웃음이라는 것을 다시는 잊지 않기로 했습니다. 딱따기를 칠 때마다 그 밤의 도깨비 웃음소리를 떠올렸고, 그때마다 딱따기는 맑고 경쾌한 소리로 화답해 주었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저는 광주 장터뿐 아니라 한양까지 이름이 알려져, 나라 안에서 가장 유명한 재담꾼이 되었습니다. 양반이든 천민이든, 제 이야기를 듣고 나면 한결같이 말했습니다. 만복이 재담을 들으면 마음이 풀린다고. 세상이 조금 덜 힘들게 느껴진다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가슴이 가벼워진다고. 어떤 이는 부부 싸움을 하다가 제 재담을 듣고 화해했다 하고, 어떤 이는 세상이 싫어 죽으려다가 제 재담에 웃고 나서 살기로 했다 하고, 어떤 이는 원수와 나란히 앉아 제 재담을 듣다가 서로 눈을 마주치고 웃었다 합니다.
    순덕이와의 사이에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았습니다. 아들에게는 딱따기 치는 법을 가르치고, 딸에게는 노래를 가르쳤습니다.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뛰어다니는 초가집 마당이 제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궁궐이었습니다. 순덕이는 제 옆에서 늘 웃고 있었습니다. 당신 재담은 들을수록 좋다며, 매일 밤 저에게 새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곤 했지요. 세상에서 가장 충성스러운 관객이자, 가장 따뜻한 벗이었습니다.
    도깨비를 다시 만난 것은 십 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어느 보름밤, 그 솔숲을 지나가는데 익숙한 빛이 보였습니다. 파란빛. 도깨비가 바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십 년 전 그 모습 그대로였지요. 도깨비는 수백 년을 사니 십 년쯤은 하루와 같겠지요.
    오랜만이다, 만복아. 도깨비가 말했습니다. 장터에서 네 재담 구경 잘 했다. 사람들이 많이 웃더구나. 나도 구석에서 같이 웃었다.
    저는 반가운 마음에 웃으며 다가갔습니다. 도깨비님도 오셨었습니까. 엽전은 이번에도 안 던지셨지요. 도깨비가 껄걸 웃었습니다.
    도깨비가 말했습니다. 네가 딱따기를 잘 쓰고 있는지 보러 왔다. 한번은 소리가 안 나던 때가 있었지.
    저는 머리를 긁으며 대답했습니다. 예, 한번 욕심을 부렸다가 크게 혼났습니다. 그 뒤로는 조심하고 있습니다.
    도깨비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잘했다. 그래서 하나 더 알려주러 왔다. 그 딱따기는 네가 죽으면 사라진다. 다른 사람에게 물려줄 수 없다. 도깨비의 물건은 인연이 있는 자에게만 효험이 있으니까. 네 아들에게 물려줘봐야 그냥 나무토막이 될 것이다.
    그 말에 잠시 아쉬웠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괜찮습니다. 딱따기가 사라져도, 도깨비님이 가르쳐주신 것은 남으니까요. 진심으로 웃기면 사람의 마음이 열린다는 것, 웃음의 뿌리는 기쁨이라는 것, 그것은 딱따기 없이도 말로 가르칠 수 있습니다. 제 아들딸이 그것을 마음에 새긴다면, 딱따기보다 귀한 것을 물려주는 셈이지요.
    도깨비가 웃었습니다. 십 년 전 그 밤처럼 호탕하게. 네 놈은 정말 이상한 놈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딱따기를 물려주게 해달라고 매달렸을 텐데. 좋다, 정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선물을 하나 더 주마.
    도깨비가 제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습니다. 서늘한 기운이 이마를 타고 온몸으로 퍼졌다가, 이내 따뜻해졌습니다. 이것은 도깨비의 축복이다. 네 후손 중에 재주 있는 자가 태어나면, 그 자에게도 도깨비의 인연이 닿을 것이다. 딱따기가 아닌 다른 형태로. 어떤 형태일지는 나도 모른다. 그때 가 봐야 안다. 재미있지 않으냐.
    도깨비가 사라진 뒤, 저는 한참을 솔숲에 서서 보름달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달이 참 밝았습니다. 십 년 전 그 밤에도 이렇게 밝았지요. 제가 도깨비에게 불러준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어디에 있든 외롭지 않게 비춰주는 달아. 그 달이 오늘 밤에도 저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나이가 들도록 장터에서 재담을 했습니다. 머리가 하얗게 셀 때까지, 허리가 구부러질 때까지 사람들을 웃겼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저를 광대라 부르지 않고 만복이 어른이라 불렀습니다. 천민 출신 광대가 마을의 어른이 된 것이지요. 그것은 신분이 올라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제 자리가 생긴 것이었습니다. 금은보화보다, 벼슬보다, 양반 신분보다 더 귀한 것이었습니다.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도깨비에게 웃겨보라는 도전을 받고, 목숨을 건 내기에서 이기고, 평생의 행운을 받은 광대의 이야기. 그런데 여러분, 진짜 행운은 딱따기가 아니었습니다. 도깨비가 저에게 준 진짜 선물은 깨달음이었지요. 웃음이란 재주가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 진심은 사람뿐 아니라 도깨비까지도 웃게 만든다는 것. 그것을 안 뒤로 저는 날마다 복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이름 그대로 만복이, 만 가지 복을 누리며 말입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여러분, 오늘 만복이의 이야기 어떠셨습니까. 도깨비를 웃긴 비결은 재주가 아니라 진심이었습니다. 사람을 웃기는 것도, 도깨비를 웃기는 것도 결국 마음이라는 것, 참 따뜻한 이야기가 아닙니까.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드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부탁드립니다. 다음에도 재미있는 도깨비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