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도깨비와의 약속을 지킨 선비 , 하늘이 내린 복이 쏟아졌다 『청구야담』

    태그 (20개)

    #조선시대, #야담, #전설, #청구야담, #도깨비, #도깨비 #방망이, #해피엔딩, #권선징악, #오디오북, #ASMR, #수면유도, #잠오는이야기, #스르륵, #전설의고향, #오디오드라마, #시니어, #낭독, #교훈, #약속, #신의
    조선시대, 야담, 전설, 청구야담, 도깨비, 도깨비 방망이, 해피엔딩, 권선징악, 오디오북, ASMR, 수면유도, 잠오는이야기, 스르륵, 전설의고향, 오디오드라마, 시니어, 낭독, 교훈, 약속, 신의

     

     

    후킹 멘트 (300자 내외)

    "가난한 선비 박 서방, 폐가에서 만난 도깨비와 하룻밤 씨름을?! "날 이기면 부자로 만들어주마!" 도깨비가 내민 위험한 거래. "대신, 약속 하나만 지키게." 과연 그 약속은 무엇이었을까? 천금보다 무거운 도깨비와의 약속을 지키고, 일생일대의 복을 받은 한 사내의 기이하고도 따뜻한 이야기!"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청구야담』에 실린, 신의(信義)에 관한 이야기. 찢어지게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정직했던 박 서방. 그는 우연히 만난 도깨비에게 상다리가 부러지게 메밀묵을 차려주겠다는 약속 하나로 거부가 된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그 약속을 잊을 위기에 처하는데 도깨비와의 약속을 지킨 사내의 복(福)에 관한 이야기."

    ※ 찢어지게 가난한 선비, 박 서방

    조선 어느 깊은 산골. 바람이 유난히 차가웠던 늦가을.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마치 죽은 이의 손가락처럼 하늘을 할퀴는 듯한 그런 날이었습니다. 이 마을에서도 가장 후미진 곳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볏짚 이엉 지붕의 초가삼간이 위태롭게 버티고 있었습니다. 바로 가난한 선비 박 서방 박 진사도 아닌 그저 박 서방이라 불리던 이의 집이었지요.

    박 서방은 비록 양반의 후예였으나, 물려받은 것이라곤 먼지 쌓인 서책 몇 권과 청렴한 이름뿐. 그의 집 쌀독은 바닥을 보인 지 이미 오래. 사흘 전 얻어온 보리 한 줌으로 묽디 묽은 죽을 쑤어, 늙고 병든 노모의 입에 겨우 밀어 넣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어머니 조금만 더 드시지요" 노모는 그마저도 아들의 입에 넣어주려 고개를 저었습니다. "됐다 됐어 나는 기력이 없으니 입맛도 없구나. 너라도 먹어야 내일 나무라도 한 짐 해 오지"

    그의 아내는 부엌 아궁이 앞에서 멍하니 불 꺼진 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고왔던 두 손은 물일과 나무껍질을 벗겨내느라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져 피가 맺혀 있었지요. 박 서방은 차마 아내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없었습니다. 선비로서의 체면도 자존심도 이 지독한 가난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내가 내일은 꼭 쌀 한 줌이라도 구해 오겠소" 아내는 대답 대신 그저 마른 한숨만 내쉴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박 서방은 심성이 비단결같이 고운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사흘을 굶어 겨우 얻은 밥 한 덩이를 들고 집에 오던 길에, 길가에 쓰러져 굶어 죽어가는 거지 아이를 보았습니다. 그는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그 밥 덩이를 쪼개어 아이의 입에 넣어주었지요. "먹거라 먹고 기운 차려야지" 결국 그날 밤, 박 서방과 그의 가족은 멀건 물로 배를 채워야 했습니다. 노모는 그런 아들을 보며 탄식했습니다. "이 미련한 놈아 네 식솔도 못 챙기면서 누굴 돌본단 말이냐" "어머니 저 아이도 누군가의 귀한 자식일 터인데 어찌 그냥 지나칩니까"

    그 착하디 착한 마음씨가 그의 가난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박 서방은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이대로 늙으신 노모와 아내를 굶겨 죽일 수는 없다. 양반 체면이 다 무엇인가. 내일은 장터에 나가 짚신이라도 엮어 팔아야겠다. 아니 당장 땔감이라도 해 와야 쌀 한 톨이라도 구할 수 있지' 그는 더 이상 책상 앞에 앉아 있기를 포기했습니다. 다음 날 새벽, 동이 트기도 전에 그는 지게와 낡은 도끼 하나를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아내의 갈라진 손 노모의 기침 소리가 그의 발걸음을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 '도깨비 터' 폐가

    박 서방은 꼬박 반나절을 깊은 산 속을 헤맸습니다. 하지만 가뭄 끝이라 그런지 마른 나뭇가지 하나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이 이럴 수가 이대로 빈 지게로 돌아갈 수는 없는데' 그가 낙담하여 주저앉으려던 찰나, 하늘이 갑자기 시커멓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쏴아아아" 산 전체가 울릴 만큼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순식간에 옷이 흠뻑 젖고 뼈 속까지 한기가 스며들었습니다. "아이고 맙소사 비까지!"

    그는 비를 피할 곳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습니다. 저 멀리 숲 속에 기와지붕 하나가 보였습니다. '저 저긴!' 마을 사람들이 입에 올리기조차 꺼려하는 '도깨비 터'였습니다. 십 년 전 역병으로 일가족이 몰살한 뒤,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廢家). 그 집에 밤에 들어갔다가 혼이 빠져 나온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흉흉한 소문이 도는 곳이었지요. "허나 이 비를 맞고 얼어 죽는 것보다는 낫다." 박 서방은 이판사판 심정으로 그 폐가를 향해 달렸습니다.

    '끼이이익' 썩은 대문은 힘없이 열렸습니다. 집 안은 칠흑 같이 어두웠고, 코를 찌르는 곰팡내와 짐승의 배설물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쿠르르릉!' 천둥 번개가 칠 때마다, 찢어진 창호지 틈으로 비치는 방 안의 모습은 처참했습니다. "콜록 콜록" 그는 비에 젖은 몸을 웅크리고 마루 한구석에 주저앉았습니다. '도깨비 터라니 다 굶주린 사람들이 만들어낸 헛소문일 게야.'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깜빡 잠이 들었을까요. "허 참 이런 궂은 날에 반가운 손님이 다 오셨네." '!' 박 서방은 화들짝 놀라 눈을 떴습니다. 어느새 비는 그쳐 있었고, 방 안에는 웬 거구의 사내가 자신을 내려다보며 껄껄 웃고 있었습니다. 사내는 키가 장대처럼 컸고 얼굴은 숯검정처럼 시커멓고 붉은 수염이 구불구불하게 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상한 것은 그의 몸에서 오래된 나무 냄새와 함께 구수한 메밀 냄새가 났다는 것입니다.

    "누 누구시오!" "나? 나는 이 집 주인이네." "거 거짓말! 이 집은 십 년!" "십 년 묵은 건 나도 마찬가지지. 허허허." 사내가 웃자 집 전체가 울리는 듯했습니다. 도깨비였습니다. 박 서방은 너무 놀라 도망치려 했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아 아이고 살려주십시오 도 도깨비 나으리 저는 그저 비를 피하러"

    도깨비가 손을 내저었습니다. "나는 사람 해치는 그런 못된 놈이 아닐세. 다만 심심해서 그렇지. 아주 심심해 죽겠어. 마침 자네 꼴을 보니 배짱이 두둑해 보이는데 나와 씨름 한 판 하지 않겠나?" "예? 씨 씨름이라니요!" "이기면 내가 자네 소원 하나를 들어주지. 부자가 되고 싶다 했나? 저 산 만한 금은보화를 줄 수도 있네. 지면 어떻게 되냐고? 뭐 내 심심풀이 말동무나 되어줘야지. 어떠한가?"

    박 서방은 절박했습니다. 늙은 노모와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부자?' 여기서 도망친다 한들 달라질 것은 없었습니다. "좋습니다! 하겠나이다!" 박 서방이 굳은 결심으로 일어섰습니다. 굶주려 비틀거리는 선비와 산 만한 도깨비. "허허 좋다! 덤벼라!"

    그렇게 폐가 마당에서 기이한 씨름이 시작되었습니다. 박 서방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도깨비의 샅바를 잡았지만, 도깨비는 마치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끙" 도깨비가 힘을 주자 박 서방은 짚단처럼 날아가 나뒹굴었습니다. "아이고" "허허 이것 봐라 벌써 지친 겐가?"

    하지만 박 서방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아내' 그는 다시 일어나 달려들었습니다. 넘어지면 일어나고, 또 넘어져도 다시 일어났습니다. 도깨비는 처음에는 재미있다는 듯 그를 가지고 놀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쳐갔습니다. 박 서방의 '끈기' 때문이 아니라 동쪽 하늘이 밝아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꼬끼오!' 첫 닭이 울었습니다. "아차!" 도깨비의 힘이 순간 빠졌습니다. 박 서방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마지막 힘을 다해 도깨비를 밀어붙였습니다. '쿵!' 도깨비가 마당에 나뒹굴었습니다.

    ※ 나와 약속을 하세

    동쪽 하늘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멀리 닭 홰 치는 소리가 '꼬끼오!' 하고 어둠을 갈랐습니다. 그 첫 닭 울음소리와 함께 산 만하던 도깨비의 몸이 순간 '휘청' 하는 듯했습니다. "아차!" 하는 도깨비의 당황한 목소리. 그의 눈에 깃들어 있던 장난기와 살기(殺氣)가 아침 햇살에 눈 녹듯 스러지고, 그 틈을 타 박 서방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굶주린 몸 마지막 남은 기력까지 짜내어 도깨비의 중심을 밀어붙였습니다. "끙" 박 서방의 사력을 다한 밀치기에, 천하의 도깨비가 그만 뒤로 '쿵!' 하고 나뒹굴어 버렸습니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었습니다. 박 서방은 숨을 헐떡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이 이겼다 내가 도깨비를 이겼다!' 온몸이 땀과 흙으로 범벅이 되어 뼈 마디마디가 으스러지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마당에 나뒹군 도깨비는 분해하는 기색 없이, 오히려 제 배를 잡고 껄껄 웃기 시작했습니다. "하하하! 져 졌다! 내가 졌어! 이야 이 백 년 만에 인간 녀석한테 씨름으로 져 보기는 처음이로구나! 허허허." 그 웃음소리가 어찌나 우렁찬지 썩은 기왓장이 '우수수' 떨어질 정도였습니다.
    도깨비는 박 서방이 괘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그를 빤히 바라보았습니다. "자네 이름이 뭔가?" "박 박 서방이라 하옵니다." "박 서방 마음에 들었네. 그 끈기 그 미련할 정도의 우직함이 아주 마음에 들어." 도깨비가 몸을 일으키자, 그의 모습이 새벽 안개처럼 조금씩 희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 이제 약속대로 소원을 들어줘야지. 부자가 되고 싶다고 했겠다?"

    "예 예! 나으리!" 박 서방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넙죽 엎드렸습니다. "부자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 허나 제가 탐욕스러워 금은보화를 탐하는 것이 아니오라, 아흔이 다 되신 늙으신 노모 돌아가시기 전에 따뜻한 쌀밥 한 끼 배불리 드시게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 하나 믿고 고생하는 제 아내의 저 갈라진 손 호강시켜 주고 싶을 뿐이옵니다"
    도깨비는 붉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허허 소원 한번 소박하구나. 제 배만 채우려는 욕심쟁이 놈들과는 그 근본이 달라. 좋다. 이 집 네가 잠들었던 그 마루 밑을 파보거라. 거기에 내 심심풀이로 모아둔 것이 좀 있느니라." "예?" "하지만 공짜는 없지." 도깨비의 눈이 번뜩였습니다. "나와 약속을 하나 해야겠다." "무 무슨 약속이시옵니까? 제 목숨이라도 원하십니까?"
    도깨비가 손을 내저었습니다. "아니 아니. 그런 무서운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집에 오래 묵어 심심하기도 하지만 늘 배가 고프다. 특히 그 인간들이 먹는 구수한 메밀묵과 톡 쏘는 막걸리를 아주 좋아하지." "메밀묵과 막걸리 말이옵니까?" "그렇다. 약속은 간단하다. 매달 그믐날 밤." 도깨비의 목소리가 낮아졌습니다. "달빛이 완전히 사라지는 그 그믐날 밤에 이곳 마루 위에 가장 맛있는 메밀묵 한 사발과 가장 잘 익은 막걸리 한 동이를 가져다 놓거라. 그 정성만 보여준다면, 자네는 평생 부자로 살 수 있을 것이다."

    박 서방은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 그것뿐이옵니까? 매달 그믐날 밤 메밀묵과 막걸리?" "그것뿐이다." 도깨비가 엄숙하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명심하게. 도깨비와의 약속은 천금보다 무거운 법. 만약 자네가 부자가 되었다고 이 약속을 하찮게 여기거나 단 한 번이라도 이 약속을 어긴다면 자네가 가진 모든 것은 연기처럼 사라질 것이다. 쌀독에 쌀이 갑자기 돌멩이로 변하고, 자네가 입은 비단옷이 짚단으로 변하는 그런 끔찍한 벌을 내릴 게야. 알겠는가?"
    도깨비의 웃음소리가 스산하게 울렸습니다. "명심 또 명심하겠나이다!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부자가 되더라도 이 약속만큼은 제 목숨처럼 지키겠나이다!" 박 서방이 땅에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그래 그럼 다음 그믐에 맛있는 메밀묵 기대하겠네" 도깨비의 모습은 아침 햇살과 함께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폐가에는 다시 정적이 찾아왔고, 오직 박 서방의 거친 숨소리와 '꼬끼오' 하고 우는 닭 소리만 남았습니다.

    ※ 쏟아지는 금은보화

    박 서방은 한참을 멍하니 마당에 앉아 있었습니다. '꿈 꿈을 꾼 것이로구나. 사흘을 굶었더니 헛것이 보였어'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지게를 짊어지고 일어섰습니다. 밤새 씨름을 하느라 나무 한 짐 못했으니, 오늘은 정말 빈손으로 돌아가게 생겼습니다. "아이고 삭신이야" 씨름 하느라 쑤시는 어깨를 두드리던 그의 손이 멈칫했습니다. '아프다 분명 헛것이 아니었는데 이 고통은' 그가 무거운 발걸음을 떼어 폐가를 나서려던 순간.
    '마루 밑을 파보거라'
    도깨비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밑져야 본전이다. 어차피 빈손인데 마지막으로 한 번만' 그는 홀린 듯 다시 마루로 돌아갔습니다. 자신이 밤새 웅크리고 앉아있던 그 자리. 그는 도끼로 썩은 마루 널빤지를 뜯어냈습니다. '퍽! 퍽!' 널빤지가 부서지고, 축축한 흙이 드러났습니다. 그는 도끼날로 흙을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퉁!' 무언가 둔탁한 것이 도끼날에 부딪혔습니다. '바 바위인가?' 하지만 소리가 달랐습니다. 흙 속에 묻힌 단단한 항아리 소리였습니다.

    박 서방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도끼를 내던지고 손으로 미친 듯이 흙을 파헤쳤습니다. 손톱이 부러지고 흙 속에 묻힌 사금파리(사기그릇 조각)에 손이 베어 피가 났지만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흙 속에서 시커먼 항아리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 이게 뭐지?'
    그는 침을 꿀꺽 삼키고 항아리를 덮고 있던 짚 뚜껑을 열었습니다.
    '촤르르르'
    항아리 속에서 눈이 부실 만큼 노란 빛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금은보화. 엽전과 금덩어리, 은덩어리가 항아리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아 아 아" 박 서방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꿈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 여보 이제 굶지 않아도 됩니다!"

    그는 정신없이 금덩이 몇 개를 품 속에 깊이 쑤셔 넣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산을 내려오는 발걸음은 날아갈 듯 가벼웠습니다. 그리고 장터에서 가장 좋은 흰 쌀 한 섬과 기름진 쇠고기 한 근을 샀습니다. 아내는 어안이 벙벙하여 남편이 내민 쌀자루를 보고도 믿지 못했습니다. "이 이게 다 어디서 난 겁니까 서방님 혹시 못 볼 짓이라도!" "아니오! 아니오! 다 사연이 있소 됐소 어서 밥부터 지으시오. 그리고 어머니 약도 지어야 하오." 그날 밤 박 서방의 집에서는 수년 만에 처음으로 흰 쌀밥 짓는 냄새가 피어올랐습니다.
    하지만 박 서방은 잊지 않았습니다. 쌀을 사면서, 그는 가장 좋은 메밀과 가장 잘 익은 막걸리도 함께 샀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그믐날 밤. 그는 아내가 정성껏 쑨 뜨끈한 메밀묵과 막걸리 한 동이를 들고 그 무섭던 폐가에 제 발로 다시 갔습니다. "나으리 박 서방입니다. 약속대로 가져왔나이다." 그는 마루 위에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올렸습니다. 아무 대답도 없었습니다. 그는 머뭇거리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 날 아침, 궁금한 마음에 다시 폐가에 가 보니 그릇과 술병은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습니다.
    그 후로 박 서방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는 항아리의 재물로 폐가 근처의 땅을 사들여 기와집을 짓고, 늙은 노모와 아내에게 비단옷을 입혔습니다. 하지만 그는 잊지 않았습니다. 매달 그믐날 밤이 되면,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가장 좋은 메밀묵과 막걸리를 들고 폐가를 찾았습니다.

    ※ 부자가 된 박 서방, 잊혀가는 약속

    십 년(十年)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강산이 족히 한 번은 변한다는 그 긴 시간이었습니다. 박 서방의 삶은 천지가 개벽할 만큼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박 서방'이 아니었습니다.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산을 헤매던 그 초라한 선비는 이제 없었습니다.
    도깨비가 준 그 밑천, 그 항아리 속 재물로 넉넉해진 그는, 젊은 시절 미처 다 끝내지 못했던 공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본디 머리가 총명했던 그는, 배가 부르고 등이 따뜻해지자 글이 눈에 들어오는 속도가 달랐습니다. 밤낮으로 글을 읽고 또 읽어 마침내 과거에 급제하여 진사(進士) 벼슬까지 올랐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그를 '박 진사'라 부르며 존경했습니다. 그의 집은 한양에서도 손꼽히는 거부가 되었습니다. 십 년 전 그 쓰러져가던 초가삼간은 간데없고, 아흔아홉 칸 기와집이 위풍당당하게 들어섰습니다. 흉년이 들면 그는 가장 먼저 자신의 곳간을 열어 굶주린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누어주는 '구곡취(救穀取)'를 열었고, 가난한 선비들의 공부를 도왔습니다.

    본래 심성이 착했던 그는, 부자가 되어서도 그 마음을 잃지 않으려 애썼지요. 늙은 노모는 아들의 효도 덕에 온갖 약재와 고기반찬을 입에 달고 살다가, 몇 해 전 "내 아들 덕에 원 없이 잘 먹고 간다" 그 한 마디를 남기고 편안히 눈을 감았습니다. 짚신 엮던 아내는 더 이상 손에 물을 묻히지 않는 고운 비단 치마를 입은 마님이 되었습니다. 자식들도 여럿 두어 집안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월은 기억을 무디게 만드는 법입니다. 배가 부르면 절박함이 사라지는 법이지요. 십 년 전, 비바람 치던 밤 폐가에서 겪었던 그 기이하고도 절박했던 하룻밤의 씨름. 그 기억은 너무나도 바쁘고 풍족한 삶 속에 파묻혀 희미한 옛 꿈처럼 변해갔습니다. '그래 그땐 내가 사흘을 굶었었지 헛것을 본 게 틀림없어 허허'
    물론 박 진사는 약속을 어기지는 않았습니다. 매달 그믐날 밤이 되면, 그는 어김없이 하인들을 시켜 메밀묵과 막걸리를 그 폐가로 보냈습니다.
    "마님, 오늘은 또 그 헛간 같은 폐가에 음식을 보내시는 날입니까?" 새로 들어온 젊은 청지기(廳直)가 투덜거렸습니다. "아니 세상에 어느 양반 댁에서 귀신한테 밥을 차려줍니까. 그 좋은 메밀이면 하인들 배 채우는 게 낫지요." 아내 역시 남편의 그 기이한 행동이 불만이었습니다. "여보, 진사 어른. 이제 그만 하실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십 년입니다. 십 년. 그 폐가는 이제 곧 쓰러질 지경이고, 도깨비라니요 다 옛날 꿈 이야기일 뿐입니다. 사람들이 알면 진사 어른을 미신이나 믿는 어리석은 자라 흉볼 것입니다."

    박 진사의 마음도 흔들렸습니다. '그래 십 년이다. 아내의 말이 맞다. 그 도깨비가 아직도 있으려나. 어쩌면 그냥 떠돌이 거지가 와서 먹는 것일지도 모르지. 나는 이제 나라의 녹을 먹는 진사인데 언제까지 이런 허황된' 그는 이제 너무나 바쁜 몸이 되었습니다. 나라 일로 관아에 드나들어야 했고, 다른 양반들과의 교류도 잦아졌습니다. 그믐날 밤은 이제 '도깨비와의 약속'이 아닌, '중요한 모임'이 있는 날이 되어버렸습니다.
    처음 일 년은 꼬박꼬박 자신이 직접 갔습니다. 그 다음 해는 바쁘다는 핑계로 하인 편에 보냈지만, 메밀묵은 가장 좋은 것으로, 막걸리도 가장 잘 익은 것으로 직접 골랐습니다. 그러나 오 년이 지나고 칠 년이 지나자 처음의 그 절박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그저 '습관'만 남았습니다. "어멈아 오늘 그믐이다. 알아서 챙겨 보내거라." 하인들은 귀찮다는 듯 부엌에서 먹다 남은 식은 묵이나 김 빠진 막걸리를 챙겨 보내기 일쑤였습니다. 그 절박했던 약속은 어느새 귀찮고 성가신 '습관'처럼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 마지막 시험의 밤

    그러던 십 년째 마지막 그믐날 밤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날따라 십 년 만에 찾아온 가장 거센 폭풍우가 몰아쳤습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장대비가 쏟아졌고, 바람은 기와지붕을 통째로 날려버릴 듯 집 전체를 흔들며 울부짖었습니다. '쿠르르르릉! 쾅!' 번개가 집 앞마당 소나무를 내리쳐 쪼개 버릴 정도였습니다.
    박 진사는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뜨끈한 탕약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날씨 고약하다. 이 궂은 날에 누가 감히 밖에 나갈 수 있겠는가."
    바로 그때였습니다. '아!' 박 진사의 머릿속을 무언가 '탁!' 하고 쳤습니다. "오늘 그믐이구나."
    "예? 그믐이면 어쩌시려고요?" 아내가 걱정스레 물었습니다. "설마 이 밤에 그 폐가에 가실 셈은 아니시지요? 미쳤습니까! 이 비바람에 나갔다가는 목숨을 잃습니다!" 청지기도 빗물을 뚝뚝 흘리며 방으로 뛰어 들어왔습니다. "진사 어른! 큰일 났습니다! 산 아래 냇물이 불어나 이미 다리가 끊겼다 하옵니다! 절대 못 가십니다! 하인을 보내는 것도 살인이나 마찬가지옵니다!"

    박 진사는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나무가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래 오늘 하루 거른다고 무슨 일이 생기겠는가. 하인을 보낼 수도 없지 않은가. 도깨비도 이 날씨에는 이해해 주겠지. 아니 애초에 정말 있기는 한 걸까' 그의 마음이 나태함과 안일함으로 완전히 기울어지던 그 순간.
    그의 뇌리에 십 년 전 그날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사흘을 굶어 비틀거리던 자신. 늙은 노모의 그 힘없는 기침 소리. 아내의 피 맺힌 갈라진 손. 그리고 폐가에서 만난 도깨비의 그 서늘한 경고. '도깨비와의 약속은 천금보다 무거운 법. 만약 단 한 번이라도 이 약속을 어긴다면'
    박 진사는 들고 있던 찻잔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고 벌떡 일어섰습니다. "아니다. 가야 한다."
    "여보! 제정신이 아니시군요!"

    "가야 하오. 이것은 밥 한 끼 문제가 아니오. 나의 '신의(信義)'에 관한 문제요. 내가 지금 누리는 이 모든 것이 어디서 왔는가. 바로 그 약속 덕분이거늘 내가 어찌 비바람이 무섭다 하여 그 약속을 저버릴 수 있겠소." 그는 하인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정성'을 시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직접 부엌으로 가 아내가 미리 쑤어놓았던 (다행히도 오늘은 아내가 정성껏 쑤어놓았습니다) 가장 좋은 메밀묵을 보자기에 쌌습니다. 그리고 창고에서 가장 잘 익은 막걸리 한 동이를 직접 챙겼습니다. 그리고는 도롱이(비옷)를 걸치고 삿갓을 눌러썼습니다. "다녀오겠소. 내가 만약 날이 밝아도 돌아오지 않거든 그리 아시오."
    "진사 어른! 위험합니다!" 하인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그는 폭풍우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길은 지옥 같았습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고, 진흙탕에 발이 빠져 넘어지기를 수십 번. 말씀대로 냇물은 미친 듯이 불어나 다리가 끊겨 있었습니다. 그는 허리까지 차오르는 거센 물살을 헤치고 냇물을 건넜습니다. '아!' 물살에 휩쓸려 하마터면 막걸리 동이를 놓칠 뻔했지만, 그는 사력을 다해 동이를 붙잡았습니다. 그렇게 사투를 벌인 끝에 그는 마침내 동이 틀 무렵, 십 년 만에 제 발로 그 폐가 앞에 섰습니다. 온몸은 땀과 비와 흙으로 범벅이 되어 십 년 전 그 가난한 박 서방의 꼴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 천금보다 무거운 약속

    폐가는 십 년 전보다 더욱 흉물스럽게 변해 있었습니다. 지붕은 반쯤 무너져 내렸고, 대문은 뜯겨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폭풍우가 몰아치던 바깥과는 달리, 폐가 마당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습니다. 비바람이 이 곳만 비껴가는 듯 나뭇잎 하나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박 진사는 흠뻑 젖은 몸을 이끌고 마루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보았습니다. 십 년 전 그날 밤과 똑같은 모습의 도깨비를. 도깨비는 마루 대청에 떡 하니 앉아 그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박 진사는 아무 말 없이 젖은 메밀묵 보자기를 풀고, 막걸리 동이를 마루 위에 내려놓았습니다. "나으리 박 진사 인사 올립니다. 날이 궂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십 년 전, 가난했던 박 서방의 모습 그대로 넙죽 엎드려 절을 올렸습니다.

    도깨비는 음식을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묵묵히 박 진사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그 목소리는 십 년 전처럼 쩌렁쩌렁하지 않았지만, 더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나는 네가 오늘 오지 않을 줄 알았다."
    "예?"
    "십 년이다. 인간에게 십 년은 모든 것을 잊기에 충분한 시간이지. 부자가 되었고, 벼슬도 얻었으니 이 늙은 도깨비와의 약속 따위는 잊어버린 줄 알았지." 도깨비가 천천히 일어섰습니다. "오늘 밤은 비바람이 거세더구나." "예, 나으리."

    "나는 네가 하인을 보낼 줄 알았다. 아니 지난 몇 년간 너는 하인을 보냈지. 나는 그 메밀묵이 맛이 없더구나. 네 놈의 정성이 빠져 있었으니 흙 씹는 것과 같았다."
    박 진사는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오늘 만약 네가 하인을 보냈다면, 나는 그 하인의 목을 비틀어 네 집 대문 앞에 걸어두었을 것이다. 만약 네가 이 비바람을 핑계로 오지 않았다면, 나는 너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갔을 것이다."
    "허나 너는 왔다. 이 폭풍우를 뚫고 네 놈이 직접 왔어. 흠뻑 젖은 꼴을 보니 고생도 꽤나 한 모양이구나." 도깨비가 비로소 껄껄 웃었습니다. "됐다. 합격이다."
    "예? 무엇이"

    "네 녀석의 마음 씀씀이를 시험한 것이다." 도깨비가 붉은 수염을 쓰다듬었습니다. "나는 메밀묵이 먹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나는 '약속을 지키는 그 마음'이 먹고 싶었던 게지. 가난할 때의 그 절박함, 부자가 되어서도 변치 않는 그 '신의(信義)' 그것이 궁금했던 게다."
    도깨비가 일어섰습니다. "박 진사. 너는 내 시험에 통과했다. 너는 천금보다 무거운 것이 '약속'임을 아는 자다." 도깨비는 박 진사가 파냈던 마루 밑을 가리켰습니다. "그 항아리 말이냐? 그 항아리는 본래 금은보화가 담겨 있던 것이 아니다. 그저 평범한 쌀 항아리였지."
    "예? 하오나 그 안의 금은보화는"

    "내가 그곳에 복(福)을 불어넣어 금은보화가 마르지 않게 했던 것이다. 허나 네가 약속을 어겼다면 그 항아리는 그 순간 깨진 독이 되었을 게다. 너는 지난 십 년간 아슬아슬하게 그 복을 이어온 게야. 하인들이 가져온 성의 없는 음식으로 말이다."
    도깨비가 박 진사의 어깨를 툭 쳤습니다. "이제 다시는 이 흉가에 오지 말거라. 약속은 끝났다. 너는 네 마음속에 '신의'가 있음을 증명했으니, 그 항아리는 네 자손 대대로 마르지 않는 복 주머니가 될 것이다. 가서 네가 그러했듯 평생 덕을 베풀며 살거라."
    "아 아 나으리! 은혜 VOD 잊지 않겠습니다!" 박 진사가 다시 절을 하려 고개를 들었을 때, 도깨비는 이미 폐가의 아침 안개 속으로 사라진 뒤였습니다.

    박 진사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그는 더 큰 부자가 되었지만, 단 하루도 '신의'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더 많은 백성들에게 덕을 베풀었고, 그의 가문은 조선 팔도에서 가장 존경받는 가문이 되어 대대손손 천수(天壽)를 누렸다고 전해집니다.

    유튜브 엔딩 멘트 (400자 내외)

    오늘 밤, 스르륵 잠드는 조선 야담 '도깨비와의 약속' 이야기, 어떠셨나요?
    가난한 선비 박 서방. 그는 부자가 되어서도 도깨비와의 약속 그 '신의'를 잊지 않았기에 더 큰 복을 누릴 수 있었네요.

    어쩌면 우리 삶의 복(福)이라는 것도 이와 같을지 모릅니다.
    눈앞의 금은보화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약속과 믿음을 지키는 그 마음 속에 진정한 복이 숨어있는 것이겠지요.
    이야기가 마음에 드셨다면, '구독'과 '좋아요'로 응원 부탁드립니다.
    저희는 다음에도, 더욱 흥미롭고 따뜻한 옛이야기를 가지고 작가님들의 편안한 밤을 찾아오겠습니다.
    그럼, 편안한 밤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