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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깨비와 가난한 선비 - 선한 마음으로 부자되다

    부제: 굶주린 도깨비에게 마지막 주먹밥을 내준 선비는 무엇이든 두 배로 불리는 장독을 얻습니다. 그러나 욕심 많은 부자가 장독을 훔쳐 간 순간, 쌀 대신 무서운 것이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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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가난한 선비는 사흘을 굶고도 마지막 주먹밥을 낯선 사내에게 내주었습니다. 그날 밤 도깨비가 나타나 무엇이든 두 배로 불리는 장독을 선물했습니다. 선비가 쌀을 넣으면 쌀이 쏟아졌지만, 욕심 많은 부자가 금덩이를 넣자 장독 속에서 사람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 1: 마지막 주먹밥을 나눈 선비

    조선 영조 무렵, 충청도 괴산의 산골 마을에 서도윤이라는 가난한 선비가 살았다. 학문은 깊었지만 집안에 논 한 마지기 없었고,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라고는 무너져 가는 초가와 낡은 책궤 하나뿐이었다.

    도윤은 아침이면 이웃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저녁이면 남의 집 문서를 대신 써 주었다. 품삯으로 보리 한 되나 장작 몇 개를 받았지만 아내 연옥과 끼니를 잇기에도 부족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혹독했다. 가을 농사를 망친 데다 첫눈부터 어른 허리까지 쌓였다. 마을 어귀의 개울은 바닥까지 얼었고, 굶주린 산짐승이 밤마다 민가로 내려왔다.

    도윤은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한양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여러 해 동안 모은 노잣돈은 엽전 스무 닢이 전부였다. 연옥은 남은 쌀을 긁어 주먹밥 세 개를 만들었다.

    "이것으로 한양까지 갈 수 있겠어요?"

    "가는 길에 문서라도 써 주면 끼니를 얻을 수 있을 것이오."

    "이번에도 떨어지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도윤은 해진 두루마기의 깃을 여미며 웃었다.

    "또 공부해야지. 넘어졌다고 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잖소."

    연옥은 남편의 웃는 얼굴을 보며 눈물을 감췄다. 사실 집에는 쌀 한 톨 남지 않았다. 도윤에게 싸 준 주먹밥이 부부의 마지막 식량이었다.

    도윤은 새벽에 길을 나섰다. 그러나 눈이 너무 깊어 반나절을 걸어도 고개 하나를 넘지 못했다. 점심 무렵 주먹밥 하나를 먹으려던 순간, 소나무 아래에서 신음이 들렸다.

    누더기를 입은 늙은 나무꾼이 눈 속에 쓰러져 있었다. 얼굴은 잿빛이었고 손발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정신 차리십시오."

    도윤은 노인을 업고 길가의 빈 움막으로 옮겼다. 부싯돌을 쳐 불을 피우고 주먹밥 하나를 잘게 부숴 따뜻한 물에 풀었다.

    노인이 겨우 눈을 떴다.

    "먹을 것을 가지고 있소?"

    "여기 있습니다. 천천히 드십시오."

    노인은 죽을 단숨에 삼켰다. 그러고도 빈 그릇을 핥듯 바라보았다.

    "미안하지만 조금만 더 줄 수 있겠소?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소."

    도윤은 남은 주먹밥 두 개를 바라보았다. 하나는 오늘 저녁에, 다른 하나는 내일 아침에 먹어야 했다. 여기서 모두 내주면 한양에 닿기도 전에 쓰러질 수 있었다.

    '과거를 보러 가는 사람이 굶어 쓰러지면 누가 나를 불쌍히 여기겠는가. 하지만 이 노인은 지금 먹지 못하면 오늘을 넘기지 못한다.'

    도윤은 주먹밥 하나를 더 물에 풀었다.

    "이것도 드십시오."

    노인은 두 번째 그릇까지 비운 뒤 마지막 주먹밥을 빤히 바라보았다.

    "저것도 줄 수 있겠소?"

    도윤은 잠시 말이 없었다. 아무리 굶주린 사람이라도 염치가 있다면 마지막 것까지 달라고 하지는 않을 터였다. 노인의 눈빛에는 미안함보다 이상한 호기심이 어려 있었다.

    "그것은 선비의 마지막 양식이 아니오?"

    "맞습니다."

    "그런데도 내게 줄 수 있소?"

    "어르신께서는 오늘 드시지 못하면 목숨이 위태롭지만, 저는 아직 걸을 힘이 있습니다."

    도윤은 마지막 주먹밥까지 내주었다.

    노인은 천천히 그것을 먹었다. 그런데 음식을 다 삼킨 순간, 잿빛이던 얼굴에 붉은 기운이 돌았다. 구부정했던 허리도 조금 펴졌다.

    "내가 도둑일 수도 있고 자네를 시험한 사기꾼일 수도 있네. 후회하지 않겠나?"

    "속인 사람의 잘못이 크지, 사람을 살리려 한 것이 잘못은 아니지요."

    노인은 껄껄 웃었다. 웃음소리가 움막 벽을 울리는데, 어딘가 사람의 소리와 달랐다. 산속에서 나무가 부러지고 돌이 굴러가는 소리가 한꺼번에 섞인 듯했다.

    "재미있는 선비로구먼."

    그때 움막 밖에서 말방울 소리가 들렸다. 비단 두루마기를 입은 지주 마귀팔이 하인들을 데리고 고개를 지나고 있었다. 귀팔은 도윤이 사는 마을의 논밭 절반을 가진 부자였다.

    그는 움막 안을 들여다보고 코를 막았다.

    "과거를 보러 간다는 자가 거지와 한 그릇을 쓰고 있구나."

    "눈 속에 쓰러진 분을 모른 척할 수 없었습니다."

    "저런 늙은것 하나 살려서 쌀이 나오나, 벼슬이 나오나? 남을 도울 형편이 아닌 자가 적선을 하면 그것은 선행이 아니라 어리석음이다."

    도윤은 조용히 노인의 빈 그릇을 치웠다.

    "쌀도 벼슬도 나오지 않겠지요. 그래도 사람 하나는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귀팔은 비웃으며 엽전 한 닢을 눈 위로 던졌다.

    "배가 고프면 이것으로 죽이나 사 먹게. 대신 나중에 내게 은혜를 입었다고 말하거라."

    도윤은 엽전을 집지 않았다. 귀팔이 떠나자 노인이 물었다.

    "왜 받지 않았는가?"

    "사람을 내려다보며 던진 돈은 은혜가 아니라 목줄입니다."

    노인은 다시 웃었다.

    날이 저물 무렵 도윤은 길을 재촉했다. 하지만 마지막 음식까지 내준 탓에 고개를 넘기 전부터 다리에 힘이 풀렸다. 결국 그는 한양행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자 노인이 사라지고 없었다. 눈밭에는 발자국 하나 남지 않았다. 대신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는 새까맣게 그을린 나무패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나무패에는 붉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오늘 밤 자정, 버드나무 고개 폐가로 오라. 빈손으로 오되 빈 마음으로 오지는 마라.

    도윤은 나무패를 품에 넣었다. 그 순간 멀리 산 위에서 푸른 불빛들이 하나둘 피어올랐다. 불빛은 사람 머리 높이에서 춤추듯 흔들리다가 버드나무 고개 너머로 사라졌다.

    ※ 2: 두 배로 불어나는 도깨비 장독

    도윤이 빈손으로 돌아오자 연옥은 무슨 일이 생겼음을 알아차렸다. 한양에 간다던 남편이 해가 지기도 전에 돌아왔고, 품속의 주먹밥도 모두 사라져 있었다.

    "노잣돈을 잃으셨어요?"

    "돈은 그대로 있소. 다만 길에서 굶주린 노인을 만났소."

    연옥은 빈 보자기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주먹밥 세 개를 모두 드렸군요."

    "미안하오."

    "미안하다는 말로 배가 부르지는 않지요."

    연옥은 차갑게 말했지만 아궁이에서 끓이던 무죽에 물을 더 부었다. 부부가 한 그릇을 나누어 먹은 뒤 도윤은 검게 그을린 나무패를 꺼냈다.

    연옥은 붉은 글씨를 살피다가 고개를 저었다.

    "버드나무 고개 폐가는 도깨비가 나온다는 곳이에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그런데 가시겠다고요?"

    "노인이 사람인지 도깨비인지 확인은 해야 하지 않겠소?"

    "사람이라면 사기꾼이고 도깨비라면 더 위험해요."

    "그래도 약속된 자리에 가지 않는 것은 마음에 걸리오."

    자정이 가까워지자 도윤은 폐가로 향했다. 연옥은 말려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남편의 소매 안에 팥 한 줌과 작은 부싯돌을 넣어 주었다.

    버드나무 고개의 폐가는 지붕 절반이 무너진 오래된 기와집이었다. 도윤이 대문을 밀자 안쪽에서 북과 장구 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당에는 괴상하게 생긴 사내들이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키가 장승만큼 큰 자, 어린아이처럼 작지만 수염이 무릎까지 닿는 자, 얼굴은 멀쩡한데 머리 위로 푸른 불을 이고 있는 자도 있었다.

    모두 조선 사람의 한복과 두루마기를 입었지만 옷자락에서는 흙먼지와 불똥이 피어났다.

    낮에 만났던 노인은 마당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솥 위에 앉아 있었다. 이번에는 허리가 곧았고 눈썹은 불꽃처럼 치솟아 있었다.

    "겁도 없이 정말 왔구나."

    "오라고 하셨으니 왔습니다."

    "내 정체를 보고도 도망치지 않느냐?"

    "도망칠 길이 있다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도깨비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노인은 자신을 박달산 도깨비 두억쇠라고 소개했다.

    "나는 백 년에 한 번씩 인간의 마음을 구경하러 내려온다. 부자에게는 재물을 달라 해 보고, 권세가에게는 자리를 달라 해 보고, 가난한 자에게는 마지막 음식을 달라고 하지."

    "그래서 제 주먹밥을 모두 드셨습니까?"

    "두 개만 먹어도 배는 불렀다. 마지막 하나는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보려고 달라고 했지."

    "도깨비도 남의 마음을 시험합니까?"

    "인간들은 날마다 서로를 시험하면서 도깨비만 그러면 안 되는가?"

    두억쇠가 손뼉을 치자 도깨비 둘이 작은 장독 하나를 들고 왔다. 아이도 들 수 있을 만큼 작고, 표면에는 구름과 벼 이삭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뚜껑에는 금이 길게 가 있었다.

    "이 장독에 물건을 넣고 뚜껑을 덮은 뒤 아침에 열면 두 배가 되어 있을 것이다."

    도윤은 장독을 살펴보다 물었다.

    "금덩이를 넣어도 두 개가 됩니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무슨 뜻입니까?"

    "남에게 주려는 마음으로 넣으면 두 배가 된다. 자신만 가지려고 넣으면 그대로다. 남의 것을 훔쳐 넣거나 거짓말로 장독을 속이면 넣은 것마저 잃게 된다."

    "장독이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말씀입니까?"

    두억쇠가 금이 간 뚜껑을 두드렸다.

    "사람은 입으로 거짓말하지만 손끝의 온기는 속이지 못한다."

    도윤은 장독을 선뜻 받지 않았다.

    "제가 이것으로 쌀을 계속 불려 팔면 부자가 될 수 있겠군요."

    "그것도 자네 마음에 달렸다."

    "하지만 쌀이 끝없이 생기면 농사지은 사람의 곡식은 팔리지 않을 것입니다. 금을 늘리면 돈의 값이 떨어질 테고요."

    마당에 있던 도깨비들이 웃음을 멈췄다. 두억쇠는 흥미롭다는 듯 도윤을 바라보았다.

    "재물을 준다는데 그 뒤의 일을 먼저 걱정하는 인간은 처음 보는구나."

    "공짜 재물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값이 붙는 법입니다."

    "걱정 마라. 이 장독은 하루에 한 번만 불린다. 쌀 한 되를 넣으면 한 되가 더 생기고, 금 한 냥을 넣으면 한 냥이 더 생기지. 세상의 값을 뒤흔들 정도는 아니다."

    도윤은 그제야 장독을 받았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연옥에게 모든 일을 설명했다. 연옥은 장독을 한참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과거를 보러 가다 도깨비 장독을 얻어 오다니, 당신 팔자도 참 기이하군요."

    부부에게 남은 것은 쥐가 갉아먹다 버린 현미 반 되뿐이었다. 연옥은 쌀을 씻어 죽을 끓이려 했지만 도윤이 그릇을 붙잡았다.

    "옆집 칠성이네 아이들이 사흘째 굶었다고 했지?"

    "그 집에 줄 생각으로 장독에 넣으시려고요?"

    "그래야 두 배가 된다지 않소."

    도윤은 현미 반 되를 장독에 넣고 뚜껑을 덮었다.

    다음 날 아침 뚜껑을 열자 장독 안에는 현미 한 되가 가득했다. 연옥은 눈을 비비고 다시 들여다보았다.

    "정말 두 배가 되었어요."

    부부는 처음 넣었던 반 되를 남겨 두고 늘어난 반 되를 칠성이네에 가져다주었다. 굶주린 아이들이 쌀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날 밤에는 콩 한 줌을 넣었다. 병든 박 노파에게 콩죽을 끓여 줄 생각이었다. 다음 날 콩은 두 줌이 되었다.

    사흘째 되는 날, 연옥은 장독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그녀는 남편 몰래 혼수로 가져온 은비녀를 넣었다.

    '비녀가 두 개가 되면 하나를 팔아 쌀을 사야겠다. 우리도 며칠은 배불리 먹을 수 있겠지.'

    다음 날 은비녀는 그대로였다. 연옥은 얼굴을 붉히며 비녀를 꺼냈다.

    "정말 마음까지 보는 모양이에요."

    도윤은 아내를 나무라지 않았다.

    "우리가 먹고살고 싶은 것이 죄는 아니오. 다만 이 장독은 욕심과 필요를 다르게 보는 모양이오."

    그날 밤 도윤은 은비녀를 다시 장독에 넣었다.

    "이번에는 누구에게 주려고 넣는 거예요?"

    "당신에게."

    아침이 되자 은비녀는 두 개가 되어 있었다. 연옥은 하나를 머리에 꽂고 다른 하나를 바라보다 웃었다.

    "도깨비 장독도 부부 사이의 선물은 인정하는군요."

    그러나 부부가 모르는 사이, 열린 창호지 구멍 너머에서 누군가 장독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귀팔의 하인 억만이었다.

    그는 장독에서 은비녀가 두 개가 되는 순간을 보자 소리 없이 뒷걸음질 쳤다.

    ※ 3: 쌀이 넘치는 가난한 초가집

    억만은 곧장 마귀팔의 저택으로 달려갔다. 귀팔은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술상을 받고 있었다.

    "은비녀 하나를 장독에 넣었는데 아침에 두 개가 되었습니다."

    "술을 훔쳐 마시고 헛것을 본 게 아니냐?"

    "제 두 눈으로 분명히 보았습니다. 쌀도 두 배가 되고 콩도 두 배가 되었습니다."

    귀팔은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는 도윤이 과거를 포기하고 돌아온 뒤에도 굶어 죽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있었다. 오히려 도윤의 집을 찾는 가난한 사람들이 늘어났다.

    "장독의 크기는 얼마나 되더냐?"

    "어린아이가 들 수 있을 만큼 작았습니다."

    "그 안에 금덩이 백 냥을 넣으면 이백 냥이 된다는 말이로군."

    귀팔은 억만에게 도윤의 집을 계속 지켜보라고 명했다.

    그사이 도윤과 연옥은 매일 장독을 사용했다. 하지만 장독에는 한 번에 한 되 정도밖에 들어가지 않았다. 하루에 쌀 한 되씩 늘려서는 마을 전체의 굶주림을 해결하기 어려웠다.

    도윤은 고민 끝에 쌀 대신 볍씨를 넣었다. 봄에 가난한 소작농들에게 나누어 줄 씨앗이었다. 다음 날 볍씨는 두 배가 되었다.

    보리씨와 콩, 조, 참깨도 차례로 불렸다. 도윤은 씨앗을 먹지 않고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었다.

    "지금은 이것으로 배를 채울 수 없지만 봄에 심으면 수십 배로 돌아올 것입니다."

    농민 하나가 볍씨를 받아 들고 고개를 숙였다.

    "마귀팔에게 빌린 종자는 가을에 세 배로 갚아야 합니다. 선비님께는 얼마나 드려야 합니까?"

    "수확하면 처음 받은 씨앗만큼만 다른 가난한 집에 나누어 주시오."

    "선비님께는 아무것도 안 드려도 됩니까?"

    "내게 갚으면 한 번으로 끝나지만 다른 집에 나누면 이 씨앗이 계속 늘어나지 않겠소?"

    도윤에게 씨앗을 받은 사람들은 봄이 오자 밭을 갈았다. 소가 없는 집은 서로 쟁기를 끌었고 일손이 부족한 집은 품앗이를 했다.

    도윤은 장독으로 불린 엽전과 은전을 함부로 쓰지 않았다. 의원의 약값이나 공동 우물 수리처럼 여러 사람에게 필요한 일에만 사용했다. 자신이 입을 비단옷이나 기와집을 생각하며 돈을 넣으면 장독은 조금도 불리지 않았다.

    연옥이 웃으며 말했다.

    "도깨비가 우리 집 살림을 아주 엄하게 단속하는군요."

    "당신이 기와집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돈을 넣으면 늘어나지 않겠지?"

    "하지만 비가 오면 지붕이 새서 아이들 글 가르칠 방까지 젖잖아요. 서당을 고친다는 마음으로 넣으면 어떨까요?"

    부부는 시험 삼아 기와 한 장을 장독에 넣었다. 이튿날 기와는 두 장이 되어 있었다. 도윤은 여러 날에 걸쳐 기와를 불려 서당 지붕부터 고쳤다. 남은 기와로 홀로 사는 노인들의 지붕도 수리했다.

    도윤의 초가집에는 날마다 사람들이 찾아왔다. 누군가는 받은 볍씨 대신 장작을 가져왔고, 누군가는 연옥에게 베 짜는 일을 도와주었다. 목수는 서당의 문을 고쳐 주었고 옹기장이는 깨끗한 항아리를 만들어 주었다.

    도윤은 대가를 바라지 않았지만 도움을 받은 이들은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집에는 쌀보다 사람의 발길이 먼저 쌓였다.

    여름이 되자 논마다 벼가 푸르게 자랐다. 마귀팔에게 종자를 빌리지 않은 농민들이 늘면서 귀팔의 장부에는 받을 이자가 줄었다. 품삯을 위해 그의 집을 찾아오는 사람도 줄었다.

    귀팔은 도윤을 불러들였다.

    "자네가 가난한 소작인들에게 종자를 공짜로 나눠 준다지?"

    "공짜는 아닙니다. 수확하면 다른 사람에게 다시 나누게 했습니다."

    "내 땅을 빌려 농사짓는 자들에게 종자를 준 것은 내 장사를 방해한 것이야."

    "굶지 않고 농사짓게 한 것이 어찌 방해입니까?"

    "그들이 내게 종자를 빌렸다면 가을에 세 배를 갚았을 것 아닌가!"

    도윤은 귀팔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제 씨앗을 나누었습니다. 한 해 농사를 짓고도 빚만 늘어나는 일을 막으려고요."

    귀팔은 탁자를 내리쳤다.

    "네놈이 도깨비 장독 하나를 믿고 세상이 모두 제 것인 줄 아는구나!"

    도윤의 얼굴이 굳었다.

    "무슨 장독을 말씀하십니까?"

    "시치미 떼지 마라. 무엇이든 두 배로 만드는 장독이 네 집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귀팔은 그의 침묵을 인정으로 받아들였다.

    그날 밤 억만이 도윤의 집에 숨어들었다. 부부가 잠든 사이 장독을 보자기에 싸 들고 나왔다. 하지만 대문을 넘는 순간 장독이 갑자기 바위처럼 무거워졌다.

    억만이 낑낑거리자 귀팔이 하인 넷을 더 불렀다. 장독을 옮기는 동안 안쪽에서 아이가 우는 듯한 소리와 짐승이 이를 가는 듯한 소리가 번갈아 들렸다.

    장독을 훔친 사실을 알게 된 도윤은 곧장 귀팔의 저택으로 달려갔다.

    "그 장독은 욕심으로 쓰면 화를 부릅니다. 당장 돌려주십시오."

    귀팔은 장독 옆에 금덩이 열 냥을 쌓아 놓고 웃었다.

    "남에게 주려는 마음으로 넣어야 두 배가 된다지?"

    도윤은 억만을 바라보았다. 하인은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귀팔은 마을 사람들을 사랑채 앞으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금덩이를 높이 들어 보였다.

    "이 금을 두 배로 불려 절반은 굶주린 백성에게 나누어 주겠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귀팔은 금을 장독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도윤은 장독 안에서 낮게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둥, 둥, 둥.

    마치 땅속에 묻힌 거대한 심장이 뛰는 소리 같았다.

    '장독은 저 사람의 거짓말을 알고 있다.'

    도윤은 사람들을 물러나게 하려 했지만 귀팔의 하인들이 길을 막았다.

    "아침까지 아무도 이곳을 떠날 수 없다. 금이 두 배가 되는 것을 모두 지켜보아라!"

    자정이 되자 장독의 금 간 뚜껑 사이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마당의 등불이 한꺼번에 꺼지고, 저택 지붕 위에서 도깨비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금이 두 배가 되겠구나."

    "아니지, 욕심이 두 배가 되겠지."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장독 뚜껑이 안쪽에서 크게 들썩였다. 귀팔이 두 손으로 눌렀지만 뚜껑 아래에서 검은 손가락들이 하나둘 비집고 나왔다.

    도윤이 소리쳤다.

    "모두 뒤로 물러나십시오! 장독이 금이 아니라 저 사람의 욕심을 불리고 있습니다!"

    장독이 깨질 듯 흔들리는 가운데, 저택의 대문 밖에서 푸른 도깨비불 수십 개가 피어올랐다.

    그 선두에는 박달나무 몽둥이를 어깨에 멘 두억쇠가 서 있었다.

    ※ 4: 금덩이를 삼킨 장독

    장독 틈에서 나온 검은 손가락들은 연기처럼 길어지며 마귀팔의 손목을 휘감았다. 귀팔은 비명을 지르며 장독 뚜껑을 놓았다.

    뚜껑이 공중으로 솟구치자 금덩이 대신 수백 장의 종이가 쏟아졌다. 귀팔이 소작인들에게 받아 둔 빚문서와 논문서였다. 종이는 마당을 메우고도 남아 기와지붕 위까지 날아올랐다.

    빚문서마다 검은 손가락이 돋아났다. 그것들은 귀팔의 옷자락과 팔, 다리를 붙잡으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세 배로 갚아라."

    "갚지 못하면 논을 내놓아라."

    "논이 없으면 집을 내놓아라."

    귀팔이 평생 가난한 사람들에게 했던 말이었다. 하나였던 목소리는 둘이 되고, 둘은 넷이 되어 저택 전체를 뒤흔들었다.

    "시끄럽다! 나는 법대로 빚을 받은 것뿐이다!"

    귀팔이 소리치자 장독에서 다시 빚문서가 쏟아졌다. 거짓말을 할 때마다 종이가 두 배로 불어났다.

    두억쇠는 박달나무 몽둥이를 어깨에 멘 채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뒤로 푸른 불을 이고 있는 도깨비들이 줄지어 따라왔다.

    "사람의 욕심은 금덩이보다 무거운 법이지. 저 작은 장독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컸구나."

    귀팔이 땅에 엎드렸다.

    "도깨비 어른, 오해입니다. 금이 두 배가 되면 절반을 백성에게 나누려 했습니다."

    장독이 크게 흔들리더니 귀팔의 곳간 열쇠가 튀어나왔다. 뒤이어 쌀가마니와 엽전 궤짝, 비단 꾸러미가 허공에 나타났다.

    사람들이 눈앞의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귀팔의 저택 뒤에 숨겨져 있던 비밀 곳간이 저절로 열리고, 곡식과 재물이 마당으로 굴러 나왔다.

    두억쇠가 귀팔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나누려 했다면 왜 저 많은 쌀을 곰팡이가 피도록 숨겨 두었느냐?"

    "흉년을 대비해 모은 것입니다."

    "마을 사람의 굶주림은 흉년이 아니더냐?"

    귀팔이 입을 열 때마다 장독에서 빚문서가 두 배로 늘었다. 종이들은 검은 새 떼처럼 날아올라 그의 머리와 얼굴을 덮었다.

    도윤은 장독 앞으로 다가갔다. 귀팔이 벌을 받는 모습이 통쾌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장독의 금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저택뿐 아니라 마을 전체가 위험해질 것 같았다.

    "두억쇠 어른, 장독을 멈춰 주십시오."

    "저자가 자네 장독을 훔치고 금을 넣었다. 그런데도 구해 주려느냐?"

    "귀팔 어른의 잘못은 관아에서 벌을 받으면 됩니다. 도깨비의 벌은 사람이 견디기 어려워 보입니다."

    귀팔은 종이 더미 아래에서 간신히 얼굴을 내밀었다.

    "도윤아, 제발 살려 다오! 내가 장독을 돌려주겠다!"

    "장독은 원래 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남에게 줄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쓸 수 있는 물건이었지요."

    도윤은 귀팔의 손에 들린 곳간 열쇠를 바라보았다.

    "저택의 곡식을 마을 사람들에게 돌려주십시오. 빚 때문에 빼앗은 논과 소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셔야 합니다."

    귀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 재산을 모두 내놓으라는 말이냐?"

    장독이 다시 크게 울렸다. 검은 손들이 귀팔의 몸을 장독 안으로 끌어당겼다.

    "알겠다! 돌려주마! 전부 돌려주겠다!"

    귀팔은 울부짖으며 곳간 열쇠를 던졌다. 그러나 검은 손은 멈추지 않았다.

    두억쇠가 코웃음을 쳤다.

    "입으로 한 약속은 장독이 믿지 않는다. 손끝의 온기를 속일 수 없다고 말했지."

    도윤은 마당에 널린 빚문서 가운데 하나를 집었다. 귀팔이 칠성의 논을 빼앗을 때 받은 문서였다.

    "이것을 직접 찢으십시오."

    귀팔은 떨리는 손으로 문서를 잡았다. 처음에는 놓지 못하고 망설였지만 검은 손이 목까지 올라오자 이를 악물고 종이를 찢었다.

    빚문서가 두 조각으로 갈라지는 순간, 장독에서 뻗어 나온 손 하나가 연기로 변해 사라졌다.

    귀팔은 다른 문서도 찢기 시작했다. 논문서 한 장을 찢을 때마다 검은 손이 하나씩 줄어들었다. 오랫동안 빼앗은 소와 집, 밭을 돌려주겠다는 증서를 새로 쓰자 검은 연기도 옅어졌다.

    마지막 문서를 찢은 뒤에야 장독이 조용해졌다. 금덩이 열 냥은 두 배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시커먼 돌멩이 열 개로 변해 있었다.

    귀팔은 돌멩이를 품에 안고 망연히 주저앉았다.

    두억쇠가 장독을 들어 도윤에게 내밀었다.

    "다시 가져가라."

    도윤은 고개를 저었다.

    "저도 언젠가는 귀팔 어른처럼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남을 위해 쓰더라도 내일은 제 욕심을 위해 뚜껑을 열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러면 장독을 없애 버릴 것이냐?"

    도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장독이 있다면 굶주린 사람을 더 많이 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힘 때문에 또 다른 귀팔이 나타날 수도 있었다.

    그때 장독 안에서 쩍 하는 소리가 났다. 표면의 금이 바닥까지 길게 이어졌다. 두억쇠의 표정이 굳었다.

    "욕심을 너무 많이 먹어 장독의 수명이 줄었구나. 앞으로 세 번만 더 뚜껑을 열 수 있겠다."

    "세 번 뒤에는 어떻게 됩니까?"

    "산산이 깨질 것이다."

    두억쇠는 푸른 불길 사이로 물러났다.

    "잘 선택해라. 남은 세 번은 자네가 어떤 부자가 될 것인지 정할 테니까."

    ※ 5: 도깨비가 감춘 진짜 선물

    다음 날 도윤은 귀팔의 곳간을 열었다. 안에는 쌀과 보리, 콩이 천장까지 쌓여 있었다. 귀팔은 곡식을 풀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으려 했지만, 마당에 흩어진 빚문서와 도깨비를 본 사람이 수십 명이나 되었다.

    관아에서도 조사가 나왔다. 거짓 이자를 붙여 빼앗은 논과 소는 원래 주인에게 돌아갔다. 귀팔은 재산의 절반 이상을 잃었고, 남은 땅에서도 예전처럼 많은 소작료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

    도윤은 돌려받은 곡식을 집집마다 똑같이 나누지 않았다. 식구 수와 남은 식량을 확인해 굶주린 집에 먼저 보냈다. 봄에 뿌릴 종자는 따로 보관했다.

    장독은 도윤의 초가집 한가운데 놓였다. 세 번밖에 쓸 수 없다는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것을 넣으라고 했다.

    "볍씨를 넣어 두 배로 만듭시다."

    "금덩이를 넣은 뒤 절반을 마을에서 쓰면 되잖소."

    "소 한 마리는 들어가지 않으니 송아지 값이라도 넣어야지."

    도윤은 밤새 고민했다. 무엇을 넣어야 가장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지 쉽게 정할 수 없었다.

    첫 번째로 선택한 것은 약초 씨앗이었다. 병든 사람은 많았지만 의원이 쓸 약재가 부족했다. 도윤은 산에서 어렵게 구한 귀한 약초 씨앗을 넣었다.

    "이 씨앗을 공동 약초밭에 심어 누구나 치료받게 하겠습니다."

    다음 날 씨앗은 두 배가 되었다. 하지만 장독의 금은 더 넓어졌다.

    두 번째로 도윤은 우물 바닥에서 솟는 맑은 물 한 바가지를 넣었다. 가뭄이 오면 마을 아래쪽 사람들이 먼저 물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물로 높은 언덕에 새 우물을 찾게 해 주십시오."

    아침이 되자 물은 두 바가지로 늘어난 것이 아니라 장독 밖으로 가느다란 물줄기를 흘려보냈다. 물줄기는 마당을 지나 언덕으로 이어지더니 바위 앞에서 멈췄다.

    석수들이 그 자리를 파자 사계절 마르지 않는 샘이 나왔다. 사람들은 돌을 쌓아 공동 우물을 만들었다.

    이제 장독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는 한 번뿐이었다.

    연옥은 남편에게 물었다.

    "마지막에는 무엇을 넣으실 생각이에요?"

    "아무것도 넣지 않을까 하오."

    "장독이 깨질까 두려워서요?"

    "무엇을 넣더라도 넣지 못한 것이 마음에 남을 것 같소. 볍씨를 넣으면 콩이 아쉽고, 돈을 넣으면 씨앗이 아쉬울 테니."

    연옥은 장독 옆에 쌓인 선물들을 가리켰다. 농민이 가져온 쌀, 목수가 준 의자, 옹기장이가 빚은 항아리, 아이들이 캐 온 나물이었다.

    "도깨비 장독은 하루에 한 되밖에 불리지 못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나누어 준 씨앗은 논밭에서 수백 섬으로 늘어났지요."

    그해 가을, 도윤에게 씨앗을 받은 논밭마다 풍년이 들었다. 농민들은 약속대로 처음 받은 씨앗만큼을 다른 가난한 집에 나누었다. 남은 곡식 중 일부는 도윤의 집으로 가져왔다.

    도윤은 받지 않으려 했지만 칠성이 웃으며 가마니를 내려놓았다.

    "선비님께 갚는 것이 아닙니다. 내년 흉년에 굶을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오."

    다른 사람들도 곡식을 가져왔다. 한 가마니를 받은 사람은 한 됫박을, 한 말을 받은 사람은 한 되를 보탰다. 양은 제각각이었지만 수백 집이 모이자 커다란 창고를 채우고도 남았다.

    마을 사람들은 도윤에게 공동 곡간을 맡겼다. 곡식이 필요한 사람에게 낮은 이자로 빌려 주고, 풍년에는 남는 곡식을 다른 고을에 팔았다.

    도윤은 어느 지역에서 쌀이 부족하고 어느 장터에서 콩값이 높은지 조사했다. 마을의 곡식을 제값에 팔아 준 뒤 이익을 농민들에게 돌려주었다.

    몇 해가 지나자 이웃 고을의 농민들도 도윤에게 곡식을 맡겼다. 도윤은 보부상과 수레꾼을 고용해 충청도 곡식을 한양과 개성으로 보냈다. 돌아오는 수레에는 소금과 약재, 종이를 실어 산골에 공급했다.

    도윤의 상단은 점점 커졌다. 그는 기와집과 창고 여러 채를 갖게 되었고, 굶주리던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서당도 크게 지었다.

    연옥이 장부를 보며 말했다.

    "이제 도깨비 장독을 쓰지 않고도 처음보다 훨씬 많은 곡식이 들어오고 있어요."

    "장독은 물건을 두 배로 만들었지만 사람의 마음은 수백 배로 불어났소."

    장독은 여전히 마지막 한 번을 남긴 채 방 한쪽에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며 그 존재를 잊어 갔다.

    오 년 뒤, 괴산 일대에 큰 홍수가 났다. 공동 곡간은 물에 잠기지 않았지만 수백 채의 집이 무너졌다. 도윤은 창고의 곡식을 모두 풀었으나 집을 다시 지을 목재와 기와가 부족했다.

    사람들이 마지막 장독을 떠올렸다.

    도윤은 장독 앞에 앉아 밤새 생각했다. 기와 한 장을 넣어 두 장을 얻는다고 수백 채의 집을 지을 수는 없었다. 금 한 냥을 두 냥으로 만들어도 필요한 재료를 모두 사기에는 부족했다.

    그때 도윤은 자신의 외상장부를 꺼냈다. 장부에는 지금까지 도움을 받은 사람과 도움을 준 사람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는 장부를 장독 안에 넣었다.

    연옥이 놀라 물었다.

    "종이 한 권을 두 권으로 만들어 무엇에 쓰려고요?"

    "이 장부에는 빚이 아니라 약속이 들어 있소. 정말 두 배가 되어야 할 것이 있다면 이것뿐이오."

    도윤이 뚜껑을 덮자 장독이 크게 흔들렸다. 길게 벌어진 금 사이로 눈부신 푸른빛이 새어 나왔다.

    다음 날 아침, 장독은 산산이 깨져 있었다.

    그런데 장부는 두 권이 되지 않았다. 깨진 조각 사이에는 처음 넣었던 장부 한 권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 6: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

    도윤은 깨진 장독 앞에 앉아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마지막 기회를 허무하게 써 버린 것 같았다. 장부가 두 권이 되어도 이상했지만, 아무 변화도 없으니 더욱 허탈했다.

    그때 멀리서 수레바퀴 소리가 들렸다.

    괴산으로 들어오는 산길마다 사람들이 나타났다. 한양에서 온 목수들은 연장과 목재를 실어 왔고, 청주의 기와장이들은 기와 수천 장을 가져왔다. 충주의 곡물상은 쌀과 보리를 보냈으며, 개성에서 온 상인은 집을 잃은 사람에게 나누라며 삼베와 돈을 내놓았다.

    도윤에게 곡식을 받았던 사람, 그의 상단을 통해 제값에 물건을 팔았던 사람, 공동 곡간에서 외상을 얻었던 사람들이었다.

    칠성이 첫 번째 수레를 끌고 마당에 들어왔다.

    "선비님이 어려울 때마다 우리 장부에 이름을 적었지요. 이번에는 우리가 선비님의 이름을 적을 차례입니다."

    "누가 이 소식을 전했습니까?"

    "어젯밤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푸른 불을 든 사내가 나타나 장부 한 장을 보여 주더군요. 괴산 사람들이 집을 잃었으니 받은 것을 돌려줄 때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꿈을 꾸었다고 했다. 장독이 장부를 두 권으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장부에 담긴 약속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두 배, 열 배, 백 배로 퍼뜨린 것이다.

    수백 명의 사람이 집을 다시 세웠다. 목수는 기둥을 깎고 기와장이는 지붕을 이었다. 농민들은 음식을 만들었고 보부상들은 자재를 날랐다. 한 달 만에 무너진 집들이 모두 다시 일어섰다.

    도윤은 그제야 두억쇠가 감춘 진짜 선물을 깨달았다. 장독은 처음부터 그를 부자로 만들어 줄 물건이 아니었다. 무엇을 넣을지 선택하게 하며 그의 마음을 보여 주는 거울이었다.

    홍수가 지나간 뒤 두억쇠가 다시 찾아왔다. 그는 여전히 누더기 두루마기를 입었지만 이번에는 지팡이 대신 박달나무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장독을 깨뜨렸구나."

    "장부를 넣으면 약속이 두 배가 될 줄 알았습니다."

    "두 배가 아니라 수백 배가 되었지."

    "사람들에게 같은 꿈을 보여 주신 분이 어르신입니까?"

    두억쇠는 대답 대신 수염을 쓸어내렸다.

    "내가 길을 알려 주기는 했지만 여기까지 온 것은 그들의 발이다. 빈 수레에 물건을 싣고 온 것도 그들의 손이고."

    도윤은 깨진 장독 조각을 내밀었다.

    "돌려드릴 것이 이것밖에 없습니다."

    두억쇠가 손가락을 튕기자 조각들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다시 장독이 되지 않고 흙가루로 변해 마당에 흩어졌다. 흙이 떨어진 자리에서 어린 벼 싹 하나가 올라왔다.

    "이제 마지막 시험만 남았다."

    두억쇠는 도윤 앞에 세 개의 문을 만들어 냈다. 첫 번째 문 안에는 금과 은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두 번째 문 너머에는 임금이 내리는 벼슬과 비단 관복이 보였다. 세 번째 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나를 고르면 나머지는 사라진다. 금을 고르면 조선에서 가장 부유한 상인이 되고, 벼슬을 고르면 높은 관직에 오른다. 마지막 문은 무엇이 있는지 나도 알려 주지 않겠다."

    도윤은 첫 번째 문을 바라보았다. 금이 있으면 더 큰 곡간을 세우고 굶주린 사람을 많이 도울 수 있었다. 두 번째 문을 택하면 잘못된 세금을 고치고 탐욕스러운 지주를 벌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금과 권세를 얻은 뒤에도 지금과 같은 마음을 지킬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도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세 번째 문을 열었다.

    문 너머에는 눈 덮인 산길과 허름한 움막이 있었다. 처음 두억쇠에게 주먹밥을 나누어 주었던 바로 그날의 풍경이었다.

    과거의 도윤이 마지막 주먹밥을 노인에게 건네고 있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자네가 부자가 된 순간이다."

    "저때 저는 쌀 한 톨 없는 가난뱅이였습니다."

    "가진 것이 없을 때 나눈 사람은 이미 재물보다 큰 것을 가진 부자다. 금과 권세는 그 마음을 따라온 그림자에 불과하지."

    문이 사라지고 도윤의 마당으로 돌아왔다. 금도 관복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도윤은 아쉽지 않았다.

    두억쇠는 산으로 돌아가기 전에 한 가지를 물었다.

    "이제 과거는 보지 않을 셈이냐?"

    "보겠습니다."

    "이미 큰 상단의 주인인데 벼슬이 더 필요한가?"

    "벼슬을 얻어 부자가 되려는 것이 아닙니다. 글을 모르는 사람이 가짜 빚문서에 속지 않고, 가난한 사람이 굶주림 때문에 땅을 빼앗기지 않도록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두억쇠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몇 년 뒤 도윤은 마침내 과거에 급제했다. 높은 벼슬을 탐하지 않고 고을 수령으로 내려가 백성의 세금과 빚문서를 공정하게 살폈다. 흉년이면 공동 곡간을 열었고 풍년이면 종자를 모아 다음 해를 준비했다.

    도윤의 상단과 곡간은 연옥과 마을 사람들이 함께 운영했다. 이문은 공정하게 나누었고, 누구도 곡식 한 되 때문에 논을 빼앗기지 않았다.

    마귀팔은 작은 집 한 채와 밭 한 마지기만 남았다. 처음에는 모든 일을 남의 탓으로 돌렸지만 직접 밭을 갈고 땀을 흘리면서 곡식 한 알의 귀함을 깨달았다.

    어느 가을, 귀팔은 자신이 거둔 쌀 한 말을 공동 곡간에 가져왔다.

    "흉년이 오면 굶는 집에 나누어 주시오."

    도윤은 쌀을 받으며 웃었다.

    "이번에는 정말 남에게 주려는 마음입니까?"

    "도깨비 장독이 없어졌으니 거짓말을 해도 모르지 않겠나?"

    귀팔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쌀자루를 도로 가져가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도윤이 흰 수염을 기를 나이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가 가진 창고와 논, 상단을 세며 조선에서 손꼽히는 부자라고 말했다.

    그러나 도윤은 누군가 부자가 되는 법을 물으면 늘 같은 대답을 했다.

    "내가 가진 것을 두 배로 만들려 하지 말고, 그것을 나눌 사람을 두 배로 늘리시오."

    깊은 밤이면 박달산 위에 푸른 불빛 하나가 떠올랐다. 마을 사람들은 도깨비불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 불빛이 나타나는 날이면 공동 곡간 앞에 이름 없는 쌀자루 하나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도윤은 도깨비 장독으로 부자가 된 것이 아니었다.

    마지막 주먹밥을 나누었던 그 순간, 이미 가장 귀한 재산을 얻었다.

    사람의 마음은 나눌수록 줄어들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불어나는 재물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유튜브 엔딩멘트

    마지막 주먹밥을 나눈 도윤은 물건을 두 배로 만드는 도깨비 장독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를 진짜 부자로 만든 것은 장독이 아니라 도움을 기억하고 다시 나눈 사람들의 마음이었습니다. 재물은 움켜쥐면 한 사람의 곳간에 머물지만, 선한 마음은 이웃을 건너 수백 배로 돌아옵니다. 오늘 이야기가 재미있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로 아우야담의 다음 이야기도 함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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