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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와 게으른 농부의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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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250자 내외)
세상 둘도 없는 게으름뱅이 농부, 그의 낮잠 자는 나무 아래에 나타난 힘세고 일 잘하는 도깨비! "내가 네놈의 농사일을 다 해줄 테니, 대신 매일 저녁 진수성찬을 차려다오!" 게으른 농부와 일하고 싶은 도깨비의 기상천외한 동업, 과연 그 결말은?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일하기 싫어하는 게으른 농부와, 힘자랑하며 일하고 싶은 도깨비의 유쾌하고 따뜻한 우정 이야기. 서로의 다름을 채워주며 시작된 이 특별한 동업은, 마을에 놀라운 풍년을 가져옵니다. 웃음과 감동이 함께하는, 우리네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정겨운 옛이야기 한 편을 만나보세요. #도깨비 #우정 #옛날이야기
※ 온 동네에 소문난 게으름뱅이 김 서방.
조선 어느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 온 동네 사람들이 혀를 내두르는 소문난 게으름뱅이가 한 명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성(姓) 대신 ‘김 서방’이라 불렀지요. 그의 게으름은 실로 경지에 이른 것이어서, 아침에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이불 속에서 뭉그적거리는 것은 예사요, 마지못해 일어나서는 밥 한술 뜨고는 곧장 마을 어귀의 커다란 정자나무 그늘을 찾아가 다시 드러눕는 것이 그의 하루 일과였습니다. 다른 농부들이 땀 흘려 밭을 갈고 김을 매는 동안, 그는 정자나무 아래 가장 시원한 명당자리에 누워 세상 태평한 낮잠을 즐겼습니다. 코를 어찌나 요란하게 고는지, 나무 위의 새들이 놀라 푸드덕 날아갈 정도였지요. 그의 아내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속이 터졌습니다. "아이고, 이 양반아! 남들은 밭에 나가 씨앗이라도 하나 더 심으려고 애를 쓰는데, 당신은 어찌하여 온종일 잠만 자는 것이오! 저기 저 밭 꼴 좀 보소! 저게 콩밭인지 쑥대밭인지, 풀이 사람 키보다 더 자랐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이오!" 아내의 잔소리에도 김 서방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졸린 눈을 비비며,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을 뿐이었습니다. "에이, 마누라. 뭘 그리 야단이야. 풀도 생명인데, 좀 자라면 어떻단 말인가. 그리고 저 풀들이 해를 가려주니, 밭의 흙이 마르지 않고 얼마나 좋아. 다 자연의 섭리라는 게 있는 법이야." 말도 안 되는 궤변을 천연덕스럽게 늘어놓는 남편의 모습에, 아내는 기가 막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습니다. 실제로 그의 밭은 그야말로 가관이었습니다. 밭두렁은 무너져 내린 지 오래였고, 밭에는 곡식보다 잡초가 더 무성하여, 가을이 되어도 거둘 것이라고는 시원찮은 콩 몇 줌이 전부였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그의 집은 늘 가난을 면치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김 서방은 조금도 걱정하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밥만 먹고 사나. 잠도 자고, 바람도 쐬고, 구름 흘러가는 것도 봐야지. 일은 내일 해도 늦지 않아.’ 이것이 그의 인생 철학이었습니다. 그날도 김 서방은 어김없이 정자나무 아래 가장 편안한 자리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매미 소리는 자장가처럼 들려왔습니다. "아, 좋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구나." 그는 팔베개를 하고 스르르 잠이 들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습니다. 갑자기 바람이 멎고, 시끄럽던 매미 소리가 일제히 뚝 그쳤습니다. 주위에 섬뜩한 정적이 감돌더니, 어디선가 쿰쿰한 흙냄새와 함께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김 서방은 잠결에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눈을 뜨는 것조차 너무나도 귀찮았습니다. '웬만하면 그냥 지나가려무나. 내 지금 아주 중요한 낮잠에 들려던 참이니….'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잠을 청하려 했습니다. 바로 그때, 그의 귓가에 굵고 낮은 목소리가 쿵, 하고 울렸습니다. "이봐, 거기 누워있는 게으름뱅이!"
※ 김 서방의 유일한 낙인 낮잠 시간.
"허허, 이놈 봐라. 내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못 들은 척하는구나." 김 서방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굵은 목소리의 주인은 더욱 큰 소리로 그를 불렀습니다. 하지만 김 서방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 바로 꿀 같은 낮잠에 막 빠져들려던 찰나였습니다. 그는 너무나도 귀찮은 나머지, 눈도 뜨지 않은 채 손만 휘휘 내저으며 잠꼬대처럼 중얼거렸습니다. "아, 누군지 모르겠지만… 나 바쁜 사람이니, 이따가 다시 오시오… 지금 아주 중요한 꿈을 꾸려던 참이란 말이오…." 그러자 목소리의 주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뭐어? 바빠? 네놈이 온종일 하는 일이라곤 코를 골며 잠자는 것뿐인데, 뭐가 바쁘단 말이냐! 당장 일어나지 못할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김 서방이 누워있던 정자나무가 통째로 흔들렸습니다. 그제야 김 서방은 더 이상 잠을 잘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지못해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존재를 보고는, 잠이 확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의 앞에는 집채만 한 덩치의 사내가 서 있었습니다. 머리에는 뿔이 돋아 있었고, 온몸은 덥수룩한 털로 뒤덮여 있었으며, 두 눈은 붉은 등불처럼 이글거리고 있었습니다. 영락없는 도깨비였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 자리에서 기절초풍을 하거나, 줄행랑을 쳤을 터였습니다. 그러나 김 서방은 달랐습니다. 그의 첫 반응은 공포가 아닌, 짜증이었습니다. "아니, 당신 누구요? 사람이 모처럼 낮잠 좀 자려는데, 왜 이리 소란을 피우는 것이오? 나무는 또 왜 흔들고 난리요?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잖소." 그의 너무나도 태연하고 불만 가득한 태도에, 도깨비는 오히려 당황했습니다. "네, 네 이놈! 내가 무섭지도 않으냐! 나는 이 산을 지키는 도깨비다!" "도깨비든 뭐든, 남의 잠을 깨우는 건 아주 무례한 행동이란 걸 모르시오? 용건이 있으면 빨리 말하고 가시오. 나 지금 아주 피곤하단 말이오." 김 서방은 하품까지 쩍 하며 말했습니다. 도깨비는 수백 년을 살면서 이런 인간은 처음 보았습니다. 그는 신기한 동물을 구경하듯 김 서방을 위아래로 훑어보았습니다. "허허, 참으로 배짱이 두둑한 건지, 아니면 그냥 멍청한 건지 알 수가 없구나. 좋다, 내 너의 그 배짱이 마음에 들었다. 사실 나는 요즘 너무 심심해서 몸이 근질거리던 참이었다. 저기 저 너의 밭을 보니, 일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더구나." 도깨비는 김 서방의 쑥대밭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내가 보아하니, 너는 일하기를 아주 싫어하는 것 같고, 나는 힘쓰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성미다. 그러니, 우리 거래를 하나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거래라니? 무슨 거래 말이오?" 김 서방의 눈이 조금 커졌습니다. "내가 밤마다 너의 밭에 가서, 밭도 갈고 김도 매고 씨앗도 심어주마! 내 힘이라면, 저깟 밭일쯤은 하룻밤이면 충분하지! 그 대신, 너는 나에게 매일 저녁 아주 맛있는 저녁밥을 차려주는 것이다. 어떻으냐, 아주 공평한 거래가 아니냐?" 도깨비의 제안에, 김 서방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일은 자기가 다 해줄 테니, 밥만 차려달라니. 세상에 이렇게 좋은 조건의 거래가 또 어디 있단 말입니까. 게으름뱅이인 그에게는, 그야말로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온 격이었습니다. 그는 조금 전까지의 짜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아이고, 도깨비 어르신! 그런 좋은 제안을 해주시다니요! 좋고말고요! 당연히 좋지요! 진수성찬으로다가 매일 저녁 차려드리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농부와, 세상에서 가장 일하고 싶은 도깨비의 기상천외한 동업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 도깨비는 하룻밤 만에 김 서방의 황무지를 옥토로 바꾸어 놓는다.
김 서방과 도깨비의 황당한 거래가 성사된 그날 밤, 김 서방은 평소와 달리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설렘과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정말로 도깨비가 내 밭일을 다 해줄까? 혹시 나를 골탕 먹이려고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닐까?’ 그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한밤중이 되자 살금살금 집을 빠져나와 자신의 밭이 있는 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평생에 결코 잊을 수 없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달빛이 환하게 비추는 그의 밭 한가운데서, 어제 낮에 보았던 그 도깨비가 정말로 밭일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실로 장관이었습니다. 도깨비는 쟁기나 호미 같은 도구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집채만 한 바윗덩어리를 맨손으로 번쩍 들어 밭 한쪽으로 던져버리고, 사람 허리까지 자라나 있던 억센 잡초들을 마치 무를 뽑듯이 쑥쑥 뽑아내고 있었습니다. 딱딱하게 굳어있던 밭은, 그가 발로 몇 번 쿵쿵 구르자 부드러운 흙으로 변했습니다. 그는 거대한 손으로 밭고랑을 만들고, 어깨에 메고 온 커다란 자루에서 씨앗을 꺼내 척척 뿌려댔습니다. 그 손놀림은 어찌나 빠르고 힘이 넘치는지, 수십 명의 장정들이 며칠은 꼬박 해야 할 일이, 단 하룻밤 사이에 기적처럼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김 서방은 넋을 잃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자신이 평생을 미루고 외면했던 그 지긋지긋한 밭일이, 도깨비에게는 그저 재미있는 놀이처럼 보였습니다. 도깨비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신나게 일을 했습니다. 그의 이마에는 구슬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고단함이 아닌, 순수한 즐거움과 만족감이 가득했습니다. 김 서방은 난생 처음으로, 일하는 것의 즐거움에 대해 어렴풋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땀 흘려 일하는 도깨비의 모습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고마움과 함께 묘한 우정 같은 것이 싹트는 것을 느꼈습니다. 날이 밝아올 무렵, 도깨비는 모든 일을 마치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방망이를 툭툭 털며 산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다음 날 아침, 마을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평생을 쑥대밭이었던 김 서방의 밭이, 하룻밤 사이에 그 마을에서 가장 잘 가꿔진 옥토(沃土)로 변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눈을 의심했습니다. "아니, 저게 대체 어찌 된 일인가! 김 서방이 드디어 미쳤거나, 아니면 하늘이 도운 게 틀림없어!" 마을 사람들은 모두 김 서방의 집으로 몰려가 대체 어찌 된 영문이냐고 물었지만, 김 서방은 그저 "내가 어젯밤에 마음먹고 열심히 일했지!" 하고 너스레를 떨 뿐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김 서방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난생처음으로 부엌에 들어섰습니다. 그는 아내가 아껴두었던 가장 좋은 쌀을 꺼내 밥을 짓고, 장터에 가서 가장 실한 돼지고기를 끊어와 삶았습니다. 그리고는 직접 빚은 막걸리까지 푸짐하게 차려, 커다란 밥상을 들고 정자나무 아래로 향했습니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어둠 속에서 어김없이 도깨비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김 서방이 차려놓은 진수성찬을 보고는, 아이처럼 기뻐하며 허겁지겁 음식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허허, 맛있다! 정말 맛있구나! 역시 땀 흘려 일하고 나서 먹는 밥이 최고야!" 도깨비는 김 서방의 등을 툭툭 치며 말했습니다. 그렇게 게으른 농부와 부지런한 도깨비의 기묘한 동거, 그리고 특별한 우정은 깊은 밤과 함께 무르익어 가고 있었습니다.
※ 도깨비의 활약으로 김 서방의 밭은 유례없는 풍년을 맞는다.
도깨비와 김 서방의 기묘한 동업은 그 후로도 계속되었습니다. 밤이 되면 도깨비는 신이 나서 밭으로 향했고, 김 서방은 정성껏 저녁상을 차려 그를 맞았습니다. 계절이 바뀌고, 봄이 지나 여름이 되자, 김 서방의 밭에는 실로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도깨비의 신묘한 농사 실력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심은 벼는 다른 밭의 벼보다 한 뼘은 더 자라 줄기마다 튼실한 낱알을 빼곡히 매달았고, 콩밭의 콩들은 주인의 게으름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이 주먹만 한 콩깍지를 터질 듯이 매달고 있었습니다. 도깨비는 밤마다 밭에 나와, 벌레란 벌레는 모조리 잡아먹고, 가뭄이 들 때면 깊은 산속의 약수를 길어다 뿌려주고, 심지어는 우박이라도 내릴 것 같은 날이면 구름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쫓아버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니 곡식들이 무럭무럭 자라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마침내 황금빛으로 물든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온 마을이 수확의 기쁨으로 들썩였고, 그중에서도 가장 큰 화젯거리는 단연 김 서방네 집이었습니다. 평생 놀고먹던 그의 밭에서, 마을 전체의 수확량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곡식이 쏟아져 나온 것입니다. 김 서방은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집 곳간이 넘쳐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창고에 더 이상 쌓을 곳이 없어, 마당에 가마니를 산처럼 쌓아두어야 할 지경이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밤마다 찾아올 특별한 손님, 도깨비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는 남편을 기특하게 도울 뿐이었습니다. 김 서방 역시 팔자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는 여전히 낮에는 정자나무 아래에서 낮잠을 잤지만, 이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배부른 게으름뱅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변화가 생겼으니, 바로 밤마다 친구를 위해 저녁상을 차리는 일에 온 마음을 다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더 이상 거래의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위해 땀 흘려주는 유일한 친구, 도깨비를 위한 진심 어린 감사의 표시이자,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사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 이 믿을 수 없는 풍년 소문은, 마을에서 가장 악독하고 탐욕스럽기로 소문난 최 부자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최 부자는 가난한 농부들의 눈물로 자신의 배를 채우는 것을 낙으로 삼는 자였습니다. 그는 평생을 뒹굴거리며 놀던 김 서방이 하루아침에 자신보다 더한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도, 용납할 수도 없었습니다. "필시 무슨 요사스러운 비밀이 있을 것이다. 그 비밀을 알아내어, 그놈의 재산을 모조리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 그는 당장 자신의 하인 중 가장 교활하고 눈치가 빠른 녀석을 불러, 밤마다 김 서방의 밭을 염탐하라는 비밀스러운 명을 내렸습니다. 며칠을 밭둑에 숨어 잠복하던 하인은, 마침내 달빛 아래에서 바위를 번쩍번쩍 들어 옮기며 밭일을 하는 도깨비의 모습을 목격하고는, 혼이 빠져 달아나 주인에게 고했습니다. "대, 대감 나리! 큰일 났습니다! 김 서방의 밭에는… 요, 요물이…! 머리에 뿔이 달리고 몸에는 털이 가득한 도깨비가 나타나 농사를 짓고 있사옵니다!" 하인의 보고에 최 부자는 잠시 섬뜩함을 느꼈지만, 그의 탐욕은 이내 공포를 집어삼켰습니다. 그의 음흉한 눈이 번뜩였습니다. '도깨비라… 그렇다면 이야기는 더 쉬워지지. 그 도깨비를 내쫓고, 저 기름진 밭을 통째로 집어삼킬 묘안이 떠올랐다!' 그는 도깨비를 쫓아낼 방법을 수소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가, 거금을 주고 도깨비를 쫓아내는 비방을 얻어냈습니다. 그의 손에는 이제, 김 서방과 도깨비의 우정을 파괴할 시커먼 계략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 최 부자는 도깨비가 무서워하는 말 피를 밭에 뿌려, 도깨비가 나타나지 못하게 한다.
최 부자가 무당에게서 얻어온 비방은, 바로 ‘말 피’였습니다. 도깨비는 부정한 피, 특히 영물인 말의 피를 지독히도 무서워하여, 그 냄새만 맡아도 기운이 쇠하고 얼씬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최 부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는 당장 마구간으로 달려가, 가장 늙고 병든 말 한 마리를 잡아 그 피를 통에 가득 담았습니다. 그리고는 달빛조차 구름에 가려진 캄캄한 밤을 틈타, 자신의 하수인 몇몇을 이끌고 김 서방의 밭으로 숨어들었습니다. 그들은 낄낄거리며, 역한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말 피를 밭의 사방 경계에 흥건하게 뿌려댔습니다. 마치 독을 뿌리듯, 그들의 악의는 풍요로웠던 땅을 순식간에 부정하고 흉측한 기운으로 오염시켰습니다. 그날 밤도, 어김없이 도깨비는 신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김 서방의 밭으로 향했습니다. 빨리 일을 끝내고, 친구 김 서방이 차려줄 맛있는 저녁을 먹을 생각에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그런데 밭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그의 코끝에 아주 역하고 불길한 냄새가 훅 끼쳐왔습니다. 말 피 냄새였습니다. 그 순간, 도깨비는 마치 불에 덴 듯 온몸에 끔찍한 통증을 느끼며 주저앉았습니다. "크윽…!" 냄새만으로도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가고,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습니다. 밭 전체가 보이지 않는 독기의 장벽에 둘러싸여 있는 듯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단 한 걸음도 밭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어찌하여 이곳에 이런 부정한 것이… 김 서방이 나를 배신한 것인가?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어.’ 그는 상처 입은 짐승처럼 괴로워하며, 결국 어둠 속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시각, 김 서방은 정자나무 아래에서 모락모락 김이 나는 돼지고기 수육과 따끈한 막걸리를 차려놓고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약속한 시간이 지나고, 밤이 깊어 이슬이 내릴 때까지 도깨비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음식은 차갑게 식어갔고, 김 서방의 마음은 점점 불안해졌습니다. "이상하다… 단 한 번도 약속을 어긴 적이 없는 친구인데.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어." 다음 날 밤에도, 그다음 날 밤에도 도깨비는 오지 않았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밤, 김 서방은 더 이상 기다릴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는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일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깊은 밤에 집을 나섰습니다. 그는 횃불을 들고, 혹시나 친구가 다치기라도 한 것은 아닌지 걱정하며 자신의 밭으로 향했습니다. 밭에 가까워지자, 그의 코에도 역한 냄새가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횃불 아래, 밭두렁 곳곳에 뿌려진 검붉은 핏자국들을 발견했습니다. 순간, 김 서방의 머릿속에 모든 퍼즐이 맞춰졌습니다. 이것은 필시 최 부자의 짓이었습니다. 그 욕심쟁이가 자신의 풍년을 시기하여, 친구인 도깨비를 쫓아내려 한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도깨비가 며칠 밤이나 나타나지 못한 것은, 바로 이 부정한 피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김 서방의 마음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폭발했습니다. 그것은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의분(義憤)이었습니다. 평생을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남과 다투기 싫어 손해만 보고 살아온 그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습니다. 자신의 유일한 친구, 자신을 믿고 밤새 땀 흘려주었던 그 순진한 친구가, 자신 때문에 위험에 빠진 것입니다. "이런, 천하에 몹쓸 인간 같으니라고! 내 가만두지 않겠다!" 그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그의 게으르고 태평하던 영혼이, 친구를 위한 뜨거운 의리와 책임감으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결심했습니다. 친구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악한 최 부자를 통쾌하게 골탕 먹여줘야 한다. 그는 힘도, 돈도 없었지만, 그에게는 평생을 갈고닦아 온 비장의 무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어떻게 하면 힘들이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발달시켜 온, 게으름뱅이 특유의 빛나는 잔꾀였습니다. 그는 씩 웃으며, 최 부자의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의 발걸음은, 난생 처음으로 사명감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 게으름뱅이 특유의 잔꾀와 지혜를 이용해 최 부자를 보기 좋게 골탕 먹이고 친구를 구해낸다.
다음 날 동이 트자마자, 김 서방은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허둥지둥 최 부자의 대문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는 문이 부서져라 두드리며, 거의 울부짖다시피 외쳤습니다. "아이고, 나리! 큰일 났습니다! 어서 문 좀 열어주십시오! 우리 마을 이제 다 망하게 생겼습니다!" 그의 심상치 않은 모습에, 잠이 덜 깬 최 부자가 하인들을 시켜 대문을 열었습니다. 김 서방은 최 부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실감 나는 연기를 시작했습니다. "나리! 어젯밤에… 어젯밤에 제 밭에서 일하던 그 도깨비의 대장이라는, 하늘을 찌를 듯이 커다란 도깨비 대장군이 나타나셨지 뭡니까!" "뭐, 뭣이? 도깨비 대장군?" 최 부자는 자기가 꾸민 일이 성공했다고 생각하던 차에, 예상치 못한 말에 당황했습니다. 김 서방은 눈물 콧물을 쏟아내며 말을 이었습니다. "그 도깨비 대장군께서 말씀하시기를, 자신의 가장 아끼는 부하가 고작 미천한 인간 놈의 밭일을 해주는 것도 못마땅한데, 어떤 천하에 몹쓸 놈이 감히 부정한 말 피까지 뿌려 자신의 부하를 괴롭혔다며, 당장 그놈을 찾아내어 집안은 물론이고, 이 마을 전체를 지도에서 지워버리겠다고 노발대발하셨습니다! 아이고, 무서워라!" 김 서방의 연기는 실로 혼신이 담겨 있었습니다. 최 부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습니다. 그는 본래 욕심은 많았지만, 간은 쥐꼬리만 한 겁쟁이였습니다. "그, 그래서… 그래서 어찌 되었느냐!" "제가 나리께서 시키신 일이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 잘못했다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더니, 그 도깨비 대장군께서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밤 자시까지, 말 피를 뿌린 놈이 직접, 자신의 집에서 가장 귀한 금은보화와, 살진 돼지 스무 마리, 그리고 최고급 술 스무 동이를 산 어귀의 큰 바위 앞에 제물로 바치고, 그림자도 보이지 않게 멀리 도망가면, 특별히 마을 전체를 멸하는 것만은 용서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그리하지 않으면, 정말로 온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겠다고… 아이고, 나리! 우리 이제 어떡합니까!" 김 서방은 그 길로 자신의 집으로 달려가, 아내와 함께 일부러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들으라는 듯이 통곡하며 짐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고, 여보! 우리 이제 다 죽었네! 최 부자 영감 때문에 온 마을이 망하게 생겼으니, 어서 피난이라도 가야지!" 이 소문은 들불처럼 순식간에 온 마을에 퍼졌습니다. 겁에 질린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생각에, 떼를 지어 최 부자의 집으로 몰려갔습니다. "이놈의 영감탱이야! 네놈의 욕심 때문에 우리까지 다 죽게 생겼다! 당장 도깨비 장군의 노여움을 풀어라!" 마을 사람들의 맹렬한 기세에, 최 부자는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자신의 곳간을 열었습니다. 그는 김 서방이 말한 것보다 두 배는 더 많은 재물과 음식을 챙겨, 하인들을 시켜 산 어귀의 바위 앞에 산더미처럼 쌓아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식솔들을 이끌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른 고을로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날 밤, 김 서방은 조용히 자신의 밭으로 향했습니다. 그는 깨끗한 물을 길어와, 최 부자가 뿌렸던 말 피의 흔적을 정성껏 씻어내고, 새 흙으로 덮어주었습니다. 그러자 얼마 후, 어둠 속에서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친구, 도깨비가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아직도 경계심과 슬픔이 남아 있었습니다. "김 서방… 대체 어찌 된 일인가. 며칠 동안 그 고약한 냄새 때문에…." 김 서방은 환하게 웃으며 친구를 맞았습니다. "이제 괜찮네, 내 친구! 내가 다 해결했으니, 아무 걱정 말게!" 그는 친구를 이끌고, 최 부자가 바쳐놓은 산해진미가 가득한 제단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이건, 자네를 위해 내가 특별히 준비한 아주 큰~ 저녁상일세! 그동안 고생했으니, 오늘 밤은 배가 터지도록 먹어보세!" 도깨비는 어리둥절했지만, 산더미처럼 쌓인 음식과 반짝이는 보물, 그리고 자신을 보며 활짝 웃는 김 서방의 얼굴을 보고는 모든 상황을 이해했습니다. 그의 커다란 얼굴에, 함박꽃 같은 웃음이 피어올랐습니다. 그날 밤, 두 친구는 산 어귀에서 밤이 새도록, 이제껏 먹어본 그 어떤 저녁상보다도 더 즐겁고 행복한 잔치를 벌였습니다. 도깨비는 김 서방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습니다. "김 서방, 너는 힘은 약하지만, 머리는 세상 누구보다 좋고, 마음은 세상 누구보다 따뜻한 내 최고의 친구로구나!" 김 서방은 막걸리 한잔을 쭉 들이켜며 웃었습니다. "자네야말로, 힘은 천하장사지만, 마음은 비단결같이 고운 내 유일한 친구일세." 그렇게 게으름뱅이 농부와 힘센 도깨비의 우정은 더욱 깊어졌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서로를 위하며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게으른 농부와 일하고 싶은 도깨비의 유쾌한 우정 이야기, 재미있게 들으셨나요?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며 시작된 이 특별한 관계는, 위기의 순간에 서로를 위하는 진정한 우정으로 거듭났습니다. 진정한 친구란, 나와 같은 모습이 아니라,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다음 시간에는 착한 나무꾼에게 찾아온 도깨비의 특별한 선물, '도깨비의 3가지 선물: 선한 나무꾼의 인생역전'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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