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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깨비와 씨름해서 쌀독을 얻은 머슴

    부제: 밤길을 가다 도깨비를 만난 머슴이 겁먹기는커녕 꾀와 배짱으로 맞서고, 끝내 쌀과 돈이 든 항아리까지 얻어 집안 살림을 일으키는 황당한 행운담.

    태그 (1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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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영상 도입부용)

    옛날에, 머슴 하나가 있었습니다. 가진 것이라곤 맨몸뚱이 하나뿐인, 남의 집 밭이나 갈아주고 쌀 몇 되 받아 연명하는 가난한 머슴이었지요. 그런 머슴이 어느 날 밤, 술 한 사발 걸치고 캄캄한 산길을 걷다가 이상한 놈을 만납니다. 키가 한 길은 되어 보이고, 온몸에서 퀴퀴한 냄새가 나는데, 눈알이 등잔불처럼 벌겋게 빛나는 놈. 도깨비였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혼비백산하여 도망쳤을 텐데, 이 머슴은 달랐습니다. 겁을 먹기는커녕 도깨비를 똑바로 쳐다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야, 너 씨름 한판 할래?" 도깨비가 싫어하는 게 셋이 있다지요. 붉은 팥, 말피, 그리고 씨름에서 지는 것. 오늘 밤, 머슴과 도깨비 사이에 벌어진 이 기상천외한 한판 승부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가난뱅이 머슴이 도깨비를 상대로 쌀독을 따내는, 기막히고 황당한 이 이야기. 끝까지 들어보시면, 옛사람들이 왜 도깨비를 무서워하면서도 은근히 좋아했는지 아시게 될 겁니다.

    ※ 1: 가난하지만 배짱 좋은 머슴 돌쇠의 일상과 캐릭터 소개

    옛날, 충청도 어느 산골 마을에 돌쇠라는 머슴이 살고 있었다.

    머슴이란, 남의 집에 얹혀살며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사내를 이르는 말이다. 논을 갈고, 밭을 매고, 소에게 여물을 주고, 장작을 패고, 지게에 나무를 지고, 주인집 마님이 부르면 달려가고, 주인 영감이 호통치면 고개를 숙이는 것이 머슴의 하루였다. 한 해를 꼬박 일해봐야 받는 것이라곤 쌀 몇 섬과 해진 옷가지 서너 벌. 자기 이름으로 된 땅 한 뙈기 없이, 남의 밥을 먹고 남의 지붕 아래서 잠을 자는 것이 머슴의 팔자였다.

    그런데 이 돌쇠라는 머슴은 좀 달랐다. 가진 것은 없었으되, 기죽는 법이 없었다. 덩치가 황소만큼 크고, 팔뚝이 장작개비만큼 굵었는데, 거기에 입까지 걸었다. 주인 영감이 호통을 쳐도 고개를 반만 숙이고, 마을 양반이 행차를 해도 길 한복판에 떡하니 서서 비키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돌쇠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놈은 머슴 주제에 배짱이 두둑하다니까."

    "배짱이 아니라 간이 배 밖에 나온 거지. 무서운 게 없는 놈이야."

    "무서운 게 없는 게 아니라, 겁이 뭔지를 모르는 거야."

    사실이 그랬다. 돌쇠는 태어나서 무서운 것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때 호랑이가 마을 어귀까지 내려온 적이 있었는데, 다른 아이들이 울며 집 안으로 숨을 때 돌쇠만 돌멩이를 들고 나갔다. 여섯 살 때의 일이다. 물론 어머니에게 뒤통수를 한 대 맞고 끌려 들어오긴 했지만, 겁을 먹지 않은 것만은 확실했다. 열다섯에 머슴살이를 시작한 뒤로도, 돌쇠의 이 배짱은 변하지 않았다. 밤에 혼자 산길을 걸어도 휘파람을 불었고, 공동묘지 옆을 지나가면서도 코노래를 불렀다. 마을 사람들이 귀신이 나온다며 무서워하는 당산나무 아래에서 태평하게 낮잠을 잔 적도 있었다.

    그런 돌쇠에게도 한 가지 소원이 있었다. 자기 집. 자기 이름으로 된 방 한 칸, 부엌 하나, 마당에 장독대 몇 개 놓을 수 있는 조그만 집. 거기에 쌀독 하나만 있으면 원이 없겠다고, 돌쇠는 늘 생각했다.

    '아, 이놈의 머슴살이. 올해도 내년도 남의 집에서 밥 얻어먹고, 남의 집 마루에서 잠자고, 죽을 때까지 이 꼴인 건가. 내 이름으로 된 쌀독 하나 없이 사는 게 사는 거냐.'

    그날도 돌쇠는 하루 종일 일을 했다. 아침부터 논에 나가 김을 매고, 점심때는 주인집 소를 몰고 들판을 오갔고, 오후에는 뒷산에 올라 나무를 해왔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주인 영감이 돌쇠를 불렀다.

    "돌쇠야, 오늘 장에서 술이 한 사발 남았다. 가져가서 마시거라."

    "아이고, 주인 영감님. 이렇게 좋은 날이 다 있습니까."

    돌쇠는 눈을 반달처럼 휘며 막걸리 사발을 받아 들었다. 한 사발이 두 사발이 되고, 두 사발이 석 사발이 되었다. 머슴방 처마 밑에 걸터앉아 별을 보며 마시는 막걸리는, 가난한 머슴의 유일한 호사였다.

    밤이 깊었다. 돌쇠는 문득 생각이 났다. 옆 마을 칠복이네 집에 빌려준 낫을 내일 아침까지 돌려받아야 한다. 내일 주인 영감이 산에 가서 풀을 베어오라 할 것이 뻔한데, 낫이 없으면 또 호통을 들을 것이다.

    "에이, 지금 가서 가져오지 뭐."

    취기가 얼근하게 오른 돌쇠는 벌떡 일어나 짚신을 신었다. 옆 마을까지는 산길로 삼십 리. 캄캄한 밤에 산길 삼십 리를 걷겠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내일 아침에 가겠다 하겠지만, 돌쇠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겁이 없는 것이 반, 술기운이 반이었다.

    돌쇠는 산길로 접어들었다. 달도 구름에 가린 캄캄한 밤이었다.

    ※ 2: 술 한 사발 걸치고 돌아가는 밤길에서 도깨비와 조우

    산길은 어두웠다. 구름이 달을 삼켜버린 탓에, 손을 내밀면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만큼 칠흑 같은 밤이었다. 바람이 소나무 사이를 지나며 쏴아 하는 소리를 내고, 어디선가 부엉이가 울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 정도에서 벌써 오금이 저렸을 것이다. 밤에 산길을 걷는다는 것은 조선 시대 사람들에게 목숨을 거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호랑이가 나올 수도 있고, 산적이 나올 수도 있고, 무엇보다 귀신이 나올 수 있었다. 그래서 웬만한 사람은 해가 지면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부득이 밤길을 걸어야 할 때는 반드시 횃불을 들고, 여럿이 어울려 다녔다.

    그런데 돌쇠는 혼자였다. 횃불도 없었다. 있는 거라곤 술기운과 배짱뿐이었다. 돌쇠는 어둠 속을 걸으며 노래를 불렀다. 흥에 겨운 노래가 아니라, 어둠을 씹어먹겠다는 듯이 뻗치는 목청이었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노래가 소나무 사이로 퍼져나갔다. 부엉이가 놀란 듯 울음을 뚝 그쳤다. 돌쇠는 아랑곳하지 않고 걸었다. 산길을 반쯤 넘어 고갯마루에 이르렀을 때였다.

    발이 무엇인가를 밟았다. 물컹하고 미끈한 것이 짚신 밑에서 느껴졌다. 돌쇠가 멈추었다.

    "뭐여, 이거."

    발밑을 더듬어 보았다. 손에 잡히는 것은 길고 딱딱한 막대 같은 것이었다. 나뭇가지치고는 묘하게 매끄러웠다. 더듬어 올라가니 끝에 뭉툭한 덩어리가 달려 있었다. 돌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거 빗자루 아녀? 아니, 뭔가 싶네."

    그 순간, 뭉툭한 덩어리가 움직였다.

    돌쇠의 손이 멈추었다. 분명히 움직였다. 손 안에서 꿈틀꿈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나뭇가지가 움직일 리 없고, 빗자루가 움직일 리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뭔가 살아 있는 것이다.

    돌쇠가 손을 빼려는 순간, 그것이 벌떡 일어섰다. 아니, 솟아올랐다. 돌쇠의 키보다 한 뼘은 더 큰 무엇인가가 어둠 속에서 우뚝 솟아올랐다. 그리고 두 개의 빛이 켜졌다. 등잔불처럼 벌건 빛 두 개가 돌쇠의 얼굴 위에서 번뜩였다. 눈이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두 눈이었다.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오래된 빗자루에서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장독 뒤에서 썩은 된장에서 나는 것 같기도 한, 설명하기 어려운 퀴퀴한 냄새. 그리고 낮고 걸걸한 숨소리가 들렸다. 크르르, 크르르, 짐승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것이 내는 소리가 돌쇠의 귓전을 때렸다.

    도깨비였다.

    옛사람들이 말하던 바로 그 도깨비.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되 사람이 아닌 것. 귀신과는 다르다. 귀신은 죽은 사람의 넋이지만, 도깨비는 오래된 물건에 깃든 기운이 사람의 형상을 빌려 나타나는 것이라 했다. 낡은 빗자루, 헌 부지깽이, 피 묻은 방망이 같은 것들에서 도깨비가 태어난다 하였다. 장난을 좋아하고, 씨름을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고, 예쁜 여자를 좋아하되, 성질이 불같아서 화가 나면 사람을 낭떠러지에서 밀어버리기도 하고, 밤새 길을 헤매게 하기도 하고, 집 안에 돌을 던지기도 한다 하였다.

    돌쇠는 벌건 두 눈을 올려다보았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러나 돌쇠는 돌쇠였다. 심장이 내려앉은 것은 찰나였다. 이내 두 발을 땅에 단단히 딛고, 허리를 펴고, 도깨비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이놈이 도깨비구나. 사람들이 그렇게 무서워하던 도깨비가 이렇게 생겼단 말이여. 크기는 크네. 근데 냄새는 왜 이렇게 지독해.'

    도깨비가 돌쇠를 내려다보았다. 벌건 눈이 깜빡였다. 도깨비도 의아한 모양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쯤에서 비명을 지르고 도망치는 것이 순서인데, 이 사내는 도망치기는커녕 자기를 빤히 올려다보고 서 있으니 말이다.

    도깨비가 입을 열었다. 걸걸하고 굵은, 항아리 속에서 울리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너, 안 무섭냐?"

    돌쇠가 대답했다. 술기운이 반, 배짱이 반인 목소리였다.

    "무섭긴 뭐가 무서워. 너나 무섭냐?"

    ※ 3: 돌쇠가 도깨비에게 씨름을 제안하고, 도깨비가 흥을 내며 응하다

    도깨비가 멈칫했다. 벌건 눈이 두어 번 깜빡이더니, 이내 입이 찢어지게 벌어졌다. 웃고 있었다. 도깨비가 웃으면 어떤 모양이 되는지, 본 사람이 거의 없으니 설명하기 어렵지만, 상상해보자면 호박에 칼로 금을 그은 것 같다고 하면 될 것이다. 크고 넓적한 얼굴에 귀밑까지 찢어진 입이 벌어지며, 들쭉날쭉한 이빨 사이로 걸걸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크하하하! 이놈 봐라. 간이 배 밖에 나온 놈이구나!"

    돌쇠도 지지 않았다.

    "간이 배 밖에 나왔으면 어때. 네 간은 어디 있는데?"

    "크하하! 재밌는 놈이다. 이 밤중에 산길을 혼자 걸으면서 노래까지 부르더니, 진짜 겁이 없는 놈이구나."

    도깨비가 한 발 다가섰다. 땅이 쿵 하고 울렸다. 가까이서 보니 도깨비의 덩치는 더 컸다. 돌쇠의 머리통이 도깨비의 가슴팍에 닿을 정도였다. 팔은 통나무만큼 굵었고, 다리는 절구통 같았다. 온몸에 시커먼 털이 덥수룩하게 나 있었는데, 그 사이사이로 울퉁불퉁한 근육이 보였다. 사람과 비슷하되, 사람보다 한 배 반은 큰 덩치. 이것이 도깨비의 생김새였다.

    돌쇠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어릴 때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도깨비는 씨름을 좋아한다. 사람을 만나면 씨름을 하자고 덤빈다. 그리고 도깨비는 씨름에서 지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지면 분해서 어쩔 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도깨비에게는 약점이 있다. 도깨비와 씨름을 할 때는 오른쪽으로 밀면 진다. 반드시 왼쪽으로 밀어야 이긴다. 할머니가 그랬다. 이유는 모른다. 그냥 옛날부터 그렇게 전해 내려온 것이다.

    '그래, 씨름이다. 이놈한테 씨름을 걸어볼까. 어차피 도망친다고 도망칠 수 있는 놈도 아니고, 싸운다고 주먹으로 이길 수 있는 덩치도 아니다. 그렇다면 꾀를 써야지.'

    돌쇠가 입을 열었다.

    "야, 너 씨름 할 줄 아냐?"

    도깨비의 벌건 눈이 번뜩 빛났다. 온몸이 달뜬 것처럼 움찔거렸다. 씨름이라는 말 한마디에 도깨비의 기가 확 달라진 것이다.

    "씨름? 씨름이라고 했냐?"

    "그래, 씨름. 너 할 줄 모르냐?"

    "모르다니! 내가 이 산에서 씨름으로 안 진 지가 백 년이 넘었다! 곰한테도 이기고, 멧돼지한테도 이기고, 저쪽 골짜기 도깨비한테도 이겼다!"

    "그래? 그럼 나한테도 이겨봐라."

    도깨비가 돌쇠를 위에서 아래로 훑어보았다. 사람치고는 덩치가 있지만, 도깨비에 비하면 어린아이나 마찬가지였다. 도깨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크하하! 네가? 이 조그만 게?"

    "조그맣긴 뭐가 조그매. 씨름은 덩치로 하는 게 아니야. 한판 붙어보면 알지."

    돌쇠는 여기서 한술 더 떴다.

    "다만,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까 내기를 하자."

    "내기?"

    도깨비의 눈이 더 밝아졌다. 도깨비는 내기를 좋아한다. 아니,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환장한다. 내기가 붙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빠지지 못하는 것이 도깨비의 성미였다.

    "그래, 내기. 내가 이기면 네가 나한테 쌀독을 하나 가져다줘라."

    "쌀독?"

    "그래, 쌀이 가득 담긴 독 하나. 할 수 있지?"

    도깨비가 콧방귀를 뀌었다.

    "쌀독이 뭐 대수냐. 좋다, 그 대신 네가 지면 나한테 뭘 줄 거냐?"

    돌쇠가 씩 웃었다.

    "내가 지면, 내일 밤에도 너한테 씨름을 해주지."

    "뭐?"

    "네가 씨름을 좋아한다며. 나 같은 배짱 좋은 상대를 어디서 구하겠어. 매일 밤 씨름 상대가 되어줄게."

    도깨비가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벌건 눈이 이리저리 굴러갔다. 그러더니 이내 무릎을 탁 쳤다.

    "좋다! 어차피 내가 이길 테니까! 자, 덤벼라!"

    도깨비가 자세를 잡았다. 두 다리를 떡 벌리고, 허리를 낮추고, 두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땅이 다시 한번 울렸다. 돌쇠도 자세를 잡았다. 머슴살이 이십 년에 다져진 다리로 땅을 딛고, 어깨를 낮추고, 두 손을 내밀었다. 달이 구름 사이로 잠깐 얼굴을 내밀었다. 은빛 달빛 아래, 머슴과 도깨비가 마주 서 있었다. 기막힌 광경이었다.

    ※ 4: 도깨비 씨름의 비법, 돌쇠의 꾀가 빛을 발하다

    아니, 왼쪽으로 밀어라.

    돌쇠는 할머니의 말을 되새겼다. 도깨비와 씨름을 할 때는 오른쪽으로 밀면 진다. 왼쪽으로 밀어야 이긴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그저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이다. 도깨비의 힘은 오른쪽에 모여 있으니, 오른쪽으로 붙으면 사람이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러나 왼쪽은 다르다. 도깨비의 왼쪽은 허하다. 그쪽으로 밀면 아무리 센 도깨비도 맥없이 넘어간다.

    '왼쪽이다. 무조건 왼쪽으로 밀어야 한다.'

    돌쇠는 이것만 되뇌었다. 도깨비의 덩치가 아무리 크고, 힘이 아무리 세도, 왼쪽으로만 밀면 이길 수 있다. 할머니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지금 이 상황에서 믿을 것이라곤 할머니의 말밖에 없었다.

    도깨비가 먼저 달려들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도깨비의 거대한 몸이 돌쇠에게 부딪쳤다. 돌쇠의 몸이 뒤로 밀렸다. 짚신이 흙바닥을 긁으며 한 뼘, 두 뼘 밀려났다. 도깨비의 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소 두 마리가 한꺼번에 들이받는 것 같았다. 돌쇠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이, 이놈이 진짜 세긴 세구나.'

    도깨비가 돌쇠의 허리를 움켜쥐었다. 통나무 같은 팔이 돌쇠의 허리를 감았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갈비뼈가 으드득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도깨비가 돌쇠를 오른쪽으로 들어 올리려 했다.

    그 순간, 돌쇠가 움직였다. 오른쪽으로 들리는 힘을 거스르지 않고, 몸을 비틀어 왼쪽으로 파고들었다. 도깨비의 왼쪽 겨드랑이 밑으로 어깨를 집어넣고, 있는 힘을 다해 왼쪽으로 밀었다.

    도깨비의 몸이 흔들렸다.

    '된다!'

    돌쇠는 확신했다. 할머니의 말이 맞았다. 도깨비의 왼쪽은 허했다. 오른쪽에서는 바위처럼 꿈쩍도 않던 놈이, 왼쪽으로 밀자 갈대처럼 휘청거렸다. 돌쇠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왼발로 도깨비의 왼쪽 발목을 걸고, 어깨로 도깨비의 왼쪽 가슴팍을 들이받았다.

    쿠당탕!

    도깨비가 넘어졌다. 산이 흔들렸다. 나무에서 새가 푸드덕 날아올랐다. 먼지가 피어올랐다. 돌쇠 자신도 함께 넘어졌지만, 도깨비 위에 올라탄 꼴이었다. 돌쇠가 이긴 것이다.

    "하하! 내가 이겼다!"

    도깨비가 벌렁 드러누운 채 눈을 껌뻑였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벌건 눈이 더 커지더니, 이내 입이 삐죽 나왔다.

    "이, 이상하다. 내가 졌다고? 이 산에서 백 년 동안 안 졌는데? 이상하다, 이상해."

    돌쇠가 도깨비 위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상할 것 없어. 네가 약한 거지."

    "약하다니! 나는 약하지 않다! 다시 하자!"

    "다시?"

    "그래, 다시! 한 판 더!"

    돌쇠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도깨비가 스스로 한 판 더 하자고 덤비는 것이다. 도깨비의 성미가 이런 것이다. 지면 분해서 못 견디고, 반드시 다시 붙으려 한다. 그리고 씨름에 미쳐 있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한다. 내기를 걸었으면 반드시 지키는 것도 도깨비의 법도이다. 도깨비는 사람보다 약속에 엄격하다. 지면 지는 대로, 걸었으면 걸은 대로 치른다.

    "좋다, 한 판 더 하지. 다만, 이번에 또 내가 이기면 쌀독 말고 돈이 든 항아리를 하나 더 가져와야 한다."

    "돈이 든 항아리?"

    "그래. 엽전이 가득 든 항아리. 할 수 있지?"

    도깨비가 코를 씰룩거렸다.

    "흥, 이번에는 절대 안 진다! 좋다!"

    두 번째 판이 시작되었다. 도깨비가 더 거세게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돌쇠의 다리를 잡으려 했다. 그러나 돌쇠는 이미 요령을 터득한 뒤였다. 도깨비가 오른쪽으로 힘을 줄 때, 그 힘을 타고 왼쪽으로 돌아 들어갔다. 도깨비의 왼쪽 무릎 뒤를 발로 걸고, 왼쪽 어깨를 잡아 비틀었다.

    쿠궁!

    두 번째도 돌쇠가 이겼다.

    "이, 이럴 수가! 두 번이나!"

    도깨비가 땅을 치며 분해했다. 두 주먹으로 땅을 내리치자 흙이 파이고 돌이 튀었다. 돌쇠는 한 발 물러나 지켜보았다. 도깨비의 분노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도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분해하는 것은 내버려두되, 놀리면 안 된다. 놀리면 화가 나서 씨름고 내기고 다 잊어버리고 해코지를 한다. 돌쇠는 기다렸다.

    한참을 분해하던 도깨비가 고개를 들었다. 벌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도깨비도 우는 것이다.

    "네놈, 대체 뭐냐. 어떻게 나를 이긴 거냐."

    "실력이지, 뭐."

    돌쇠는 시치미를 뚝 뗐다.

    "약속대로 쌀독 하나, 그리고 돈 항아리 하나. 내일 밤까지 가져다놔라."

    도깨비가 입을 삐죽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도깨비는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 내일 밤, 네 집 앞에 가져다놓겠다. 그러나 기억해라. 나는 반드시 다시 온다. 다음에는 절대 지지 않는다."

    도깨비가 일어섰다. 먼지를 탁탁 털더니, 몸이 스르르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순식간이었다. 있던 자리에 퀴퀴한 냄새만 남기고, 도깨비는 사라졌다.

    돌쇠가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달이 다시 구름 사이로 나왔다. 은빛 달빛이 고갯마루를 비추었다. 바닥에는 씨름을 한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파인 흙, 밀린 돌, 찍힌 발자국. 꿈이 아니었다.

    '야, 이게 진짜야?'

    돌쇠는 한참을 서 있다가, 이내 입이 귀밑까지 찢어지게 벌어졌다.

    "하하하! 쌀독이다! 돈 항아리다! 하하하하!"

    돌쇠의 웃음소리가 캄캄한 산길에 울려 퍼졌다. 칠복이네 집에 맡긴 낫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였다.

    ※ 5: 씨름에서 진 도깨비가 약속대로 보물을 내놓다

    다음 날, 돌쇠는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논에 나가서 호미질을 하는데 호미가 땅이 아니라 허공을 긁었고, 소에게 여물을 주는데 여물통이 아니라 빈 바닥에 여물을 쏟았다. 주인 영감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돌쇠야, 오늘 어디 아프냐? 왜 그리 멍하니."

    "아, 아닙니다 영감님.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다. 돌쇠의 머릿속은 온통 쌀독과 항아리 생각뿐이었다. 도깨비가 약속을 지킬까. 지킨다면 진짜 쌀이 가득 든 독을 가져올까. 돈 항아리에는 엽전이 얼마나 들어 있을까. 혹시 꿈이었던 것은 아닐까. 아침에 일어나서 산길에 가보니 바닥에 씨름 자국이 분명히 남아 있었으니 꿈은 아니다. 그렇다면 진짜다. 진짜라면 오늘 밤 쌀독이 온다. 쌀독이 오면 나는 더 이상 빈털터리가 아니다.

    '아, 해가 왜 이리 안 지는 거여.'

    돌쇠는 하늘만 쳐다보았다. 해는 머슴의 사정을 알 리 없으니, 느긋하게 하늘을 가로질러 갈 뿐이었다. 해가 서산에 걸리고, 노을이 붉게 타오르고, 어둠이 마을을 덮기 시작하자 돌쇠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머슴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앉았으나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일어났다 앉았다, 문을 열었다 닫았다, 마당을 서성이다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밤이 깊어갔다. 이경이 지나고 삼경이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마을이 고요해지고, 개 짖는 소리마저 잦아든 시각. 돌쇠는 머슴방 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역시 꿈이었나.'

    실망이 밀려오려는 그 순간이었다. 마당 한쪽에서 퀴퀴한 냄새가 스멀스멀 퍼져왔다. 돌쇠의 코가 씰룩거렸다. 이 냄새. 어젯밤 맡았던 바로 그 냄새였다. 오래된 빗자루에서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썩은 된장에서 나는 것 같기도 한 그 퀴퀴한 냄새.

    쿵.

    무거운 것이 땅에 내려놓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쿵.

    하나 더.

    돌쇠가 마당으로 뛰어나갔다. 달빛 아래, 마당 한쪽에 커다란 항아리 두 개가 놓여 있었다. 하나는 뚜껑이 덮인 큰 독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보다 조금 작은 항아리였다. 그리고 그 옆에, 어둠 속에서 벌건 눈 두 개가 빛나고 있었다.

    "약속대로 가져왔다."

    도깨비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렸다. 돌쇠가 독의 뚜껑을 열었다. 하얀 쌀이 가득 차 있었다. 달빛에 비친 쌀알이 은빛으로 빛났다. 돌쇠가 떨리는 손으로 쌀을 한 움큼 쥐었다. 손가락 사이로 쌀알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진짜 쌀이었다. 꿈이 아니었다. 모래가 아니고, 돌멩이가 아니고, 쌀이었다.

    작은 항아리도 열어보았다. 엽전이 가득 들어 있었다. 얼마나 들어 있는지 셀 수도 없었다. 항아리를 기울이자 엽전끼리 부딪히며 쨍그랑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어찌나 맑고 아름답던지, 돌쇠는 평생 이보다 좋은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 이게 진짜야? 이게 다 내 거야?"

    "도깨비는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 내가 졌으니, 이것은 네 것이다."

    돌쇠가 쌀독을 끌어안았다. 차가운 항아리의 감촉이 두 팔에 전해졌다. 이것이 바로 자신이 평생 꿈꿔왔던 것이다. 내 이름으로 된 쌀독. 그 안에 가득 찬 하얀 쌀. 그 꿈이 이렇게 허무하게, 아니 이렇게 기막히게 이루어지다니.

    돌쇠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머슴살이 이십 년에 처음으로 흘리는 눈물이었다. 호랑이 앞에서도 울지 않고, 주인 영감에게 매를 맞아도 울지 않던 돌쇠가, 쌀독 하나에 눈물을 흘렸다.

    도깨비가 그 모습을 지켜보더니, 어색하게 코를 킁킁거렸다.

    "흥, 울긴. 사내가 쌀독 하나에 우는 거냐."

    "울면 안 돼?"

    "안 된다는 게 아니라, 보기 안 좋다는 거다."

    돌쇠가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웃었다.

    "고맙다, 이놈아."

    도깨비의 벌건 눈이 잠깐 흔들렸다. 고맙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모양이었다.

    ※ 6: 다음 날 밤, 도깨비가 다시 찾아와 벌어지는 소동

    그 다음 날 밤이었다.

    돌쇠는 쌀독과 항아리를 머슴방 구석에 숨겨두고, 이제 어떻게 할지를 궁리하고 있었다. 이 쌀과 돈이면 작은 집 한 채를 마련하고도 남는다. 주인 영감에게 머슴살이를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옆 마을에 빈 땅을 사서 집을 지으면 된다. 평생 남의 지붕 아래에서 살았으니, 이제는 내 지붕 아래에서 살 차례다.

    '어허, 이게 꿈이면 깨지 말아라.'

    돌쇠가 혼자 흐뭇하게 웃고 있을 때였다. 밖에서 퀴퀴한 냄새가 또 풍겨왔다. 그리고 머슴방 문이 덜컹거렸다.

    "야, 돌쇠! 나 왔다!"

    도깨비였다. 어젯밤 씨름을 한 바로 그 도깨비가, 머슴방 앞에 떡하니 서 있었다. 벌건 눈이 달빛에 번들거리고, 입이 귀밑까지 벌어져 있었다. 웃고 있는 것이다.

    돌쇠가 문을 열며 당황했다.

    "아니, 네가 왜 또 왔어?"

    "씨름하러 왔지!"

    "씨름? 내기는 어제 끝났잖아."

    "내기는 끝났어도 씨름은 안 끝났다! 나는 아직 네놈한테 진 것을 인정 못 한다! 다시 붙자!"

    돌쇠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도깨비가 매일 밤 찾아오면 곤란하다. 지금은 좋지만, 이 소문이 퍼지면 마을이 발칵 뒤집어질 것이다. 도깨비가 드나드는 집에 누가 살려 하겠는가. 그렇다고 도깨비를 문전박대하면 화가 나서 해코지를 할 수도 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한 판 더 해주되, 오늘을 마지막으로 안 오게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좋을꼬.'

    돌쇠가 꾀를 짜냈다.

    "좋다, 한 판 더 하지. 그런데 이번에는 내기 조건을 바꾸자."

    "어떻게?"

    "내가 이기면, 너는 다시는 이 마을에 오지 않는다. 어떠냐."

    도깨비의 눈이 동그래졌다. 다시는 오지 않는다니. 도깨비에게 이것은 꽤 큰 내기였다. 이 마을은 도깨비가 아끼는 놀이터였을 것이다. 밤마다 산길을 돌아다니고, 지나가는 사람을 놀래키고, 개울가에서 도깨비불을 피우며 놀던 곳. 그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러나 도깨비는 자존심의 동물이었다. 져놓고 그냥 물러날 수 없다는 것이 도깨비의 고집이었다.

    "좋다! 그 대신, 네가 지면 매일 밤 나한테 술 한 사발씩 내놓는다!"

    "좋지, 뭐."

    돌쇠는 흔쾌히 응했다. 어차피 질 생각이 없었으니까.

    머슴방 앞마당에서 세 번째 씨름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돌쇠는 같은 방법을 썼다. 도깨비가 오른쪽으로 힘을 줄 때 왼쪽으로 파고들어 밀어붙이는 것. 도깨비가 아무리 힘이 세도, 왼쪽으로 밀면 맥없이 넘어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할머니의 지혜는 세 번째에도 틀리지 않았다.

    쿠궁!

    도깨비가 또 넘어졌다. 머슴방 앞마당에 먼지가 폴폴 일었다. 주인집 개가 놀라서 컹컹 짖었다. 돌쇠가 재빨리 도깨비의 입을 막았다.

    "쉬! 소리 내지 마! 사람들 깨겠어!"

    도깨비가 눈을 껌뻑이며 돌쇠를 올려다보았다. 세 번 연속으로 졌다. 백 년 만에 세 번 연속으로 진 것이다. 도깨비의 눈에 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이번에는 분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서러운 모양이었다.

    "내가 세 번이나 졌다. 세 번이나. 네놈이 대체 뭐냐.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사람 맞아. 그냥 좀 센 사람이지."

    도깨비가 일어나 먼지를 털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한참을 서 있더니, 나직이 말했다.

    "약속대로, 이 마을에는 다시 오지 않겠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처량하던지, 돌쇠의 마음이 살짝 찔렸다.

    "야."

    "뭐냐."

    "너, 다른 마을에 가서 놀면 되잖아."

    "다른 마을에는 너 같은 놈이 없잖아."

    돌쇠가 잠시 말을 잃었다. 도깨비는 외로운 것이구나. 밤마다 산길을 떠돌고, 사람을 만나면 겁에 질려 도망가 버리니, 같이 놀아줄 상대가 없는 것이다. 백 년을 이 산에서 살면서, 도망가지 않고 씨름을 해준 사람은 돌쇠가 처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야, 도깨비."

    "뭐."

    "고맙다. 쌀독도, 돈 항아리도. 네 덕분에 나 이제 사람 구실 좀 하며 살 수 있겠다."

    도깨비가 코를 킁킁거렸다. 그러더니 돌아서며 중얼거렸다.

    "다음 생에는 너 같은 놈이 있는 마을로 가야겠다."

    도깨비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퀴퀴한 냄새가 서서히 옅어지더니, 밤바람에 실려 흩어졌다. 돌쇠는 한참 동안 도깨비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았다. 별이 촘촘히 박힌 밤하늘 아래, 산자락의 검은 능선이 고요했다.

    '잘 가라, 이 냄새나는 놈아.'

    ※ 7: 돌쇠의 삶이 바뀌고, 도깨비 이야기가 마을에 전해지다

    그 뒤의 이야기는 단출하다.

    돌쇠는 주인 영감에게 머슴살이를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주인 영감은 의아했다. 갈 곳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머슴이 갑자기 나가겠다니,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돌쇠야, 네가 나가서 뭘 하고 산다고 그러냐. 밭뙈기 하나 없는 놈이."

    "영감님, 이제 밭뙈기 하나는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뭐? 네가 돈이 어디 있다고?"

    돌쇠는 웃기만 하고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도깨비 이야기를 했다가는 미친 놈 소리를 들을 것이 뻔했다. 돌쇠는 쌀독과 항아리를 지게에 지고, 이십 년을 살았던 주인집을 떠났다.

    옆 마을에 빈 땅을 샀다. 산 아래 양지바른 자리였다. 동네 목수를 불러 작은 집을 지었다. 방 한 칸, 부엌 하나, 마루 하나. 크지 않으되 단단한 집이었다. 마당 한쪽에는 장독대를 놓았고, 그 옆에 도깨비에게 받은 쌀독을 올려놓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쌀독의 쌀이 줄지 않는 것이었다. 돌쇠가 아침저녁으로 밥을 해 먹어도, 이웃에 나누어 주어도, 다음 날 아침이면 쌀독은 다시 가득 차 있었다. 도깨비가 준 쌀독은 보통 쌀독이 아니었던 것이다. 퍼내도 퍼내도 줄지 않는,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쌀독이었다.

    돈 항아리도 마찬가지였다. 엽전을 꺼내 쓰면 다음 날 아침이면 다시 차 있었다. 돌쇠는 처음에 눈을 의심했다. 분명 어제 엽전을 한 줌 꺼내 장에서 쓰고 왔는데, 아침에 보니 항아리는 가득했다. 하루 이틀은 우연이려니 했으나, 열흘이 지나도 보름이 지나도 항아리의 엽전은 줄지 않았다.

    '이거, 도깨비 놈이 보통 물건을 준 게 아니구나.'

    돌쇠는 무릎을 쳤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 복을 혼자 누리면 안 된다. 혼자 잘살면 그것은 복이 아니라 화가 된다. 옛말에 그랬다. 도깨비에게 받은 것을 혼자 움켜쥐면, 도깨비가 다시 와서 빼앗아 간다고.

    돌쇠는 마을 사람들과 나누기 시작했다. 배고픈 집에 쌀을 갖다 주고, 병든 사람에게 약값을 보태주고, 아이들에게 엿을 사주고, 늙은이에게 고기를 대접했다. 가난한 머슴이었을 때는 줄 것이 없어서 줄 수 없었으나, 이제는 줄 수 있었다. 줄 수 있다는 것이 이토록 기쁜 일인 줄, 돌쇠는 미처 몰랐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이토록 배를 든든하게 해줄 줄, 머슴살이 이십 년 동안은 알 수 없었던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돌쇠를 두고 수군거렸다.

    "돌쇠가 대체 어디서 저 쌀과 돈을 구한 거냐?"

    "글쎄, 산에서 금을 캤다는 말도 있고, 보물을 찾았다는 말도 있고."

    "내가 듣기로는 도깨비한테 받았다더라."

    "도깨비? 허허,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믿거나 말거나, 돌쇠의 살림은 날로 일어섰다. 밭을 사서 콩을 심고, 소를 사서 밭을 갈고, 아낙을 얻어 가정을 꾸렸다. 머슴살이를 할 때는 꿈도 꾸지 못한 일이었다. 남의 집 소를 몰던 손으로 내 집 소를 몰고, 남의 집 밭을 매던 호미로 내 밭을 맸다. 같은 일이되 다른 기분이었다. 내 것이 있다는 것, 그것이 사람을 이토록 당당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돌쇠는 그제야 알았다.

    그리고 돌쇠는 절대 잊지 않았다. 매년 가을, 추수가 끝나면 마당에 막걸리 한 사발과 메밀묵 한 접시를 놓아두었다. 도깨비에게 주는 것이었다. 다시는 이 마을에 오지 않겠다고 약속한 도깨비였으니 올 리가 없었지만, 그래도 돌쇠는 놓아두었다. 혹시 지나가다 들를지 모르니까. 혹시 멀리서 냄새를 맡을지 모르니까.

    아침이 되면 사발은 비어 있었다. 메밀묵도 사라져 있었다. 그 자리에 퀴퀴한 냄새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돌쇠는 빈 사발을 들고 씩 웃었다.

    "이 냄새나는 놈. 약속은 안 지키는구나."

    그러나 그 말에는 원망이 없었다. 오히려 반가움이 묻어 있었다.

    세월이 흘렀다. 돌쇠는 마을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었고, 마을에서 제일 인심 좋은 사람이 되었다. 사람들은 돌쇠의 이야기를 자식에게 전했고, 자식은 또 자식에게 전했다. 도깨비와 씨름해서 쌀독을 얻은 머슴 이야기. 겁 없는 배짱과 할머니의 지혜, 그리고 약속을 지키는 도깨비의 이야기가, 마을에서 마을로, 대에서 대로 전해졌다.

    이야기가 전해지는 동안, 사람들은 하나를 더 보탰다.

    "도깨비를 만나거든 무서워하지 마라. 도깨비는 겁먹는 놈 위에 올라타고, 배짱 좋은 놈에게는 보물을 준다."

    진짜 그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돌쇠는 그랬다. 캄캄한 밤길에서 도깨비를 만나 겁먹기는커녕 씨름을 걸었던, 그 뚱뚱하고 우직한 머슴은 그렇게 살았다.

    오늘 밤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돌쇠 이야기에서 하나 건져볼 것이 있다면, 옛사람들이 생각한 복이란 결국 배짱과 나눔에서 온다는 것이지요. 겁을 먹었다면 도깨비에게 쫓겼을 것이고, 혼자 움켜쥐었다면 복은 금세 사라졌을 것입니다. 무서운 것 앞에서 한 발 버티는 배짱, 그리고 얻은 것을 이웃과 나누는 마음. 옛이야기는 늘 그 두 가지를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오늘 이야기가 재미있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부탁드립니다. 도깨비 이야기, 다음 편에서 또 만나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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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dramatic nighttime scene on a moonlit Korean mountain path in the Joseon era. A stocky, muscular Korean farmhand (meoseum) in worn traditional hemp clothing is locked in an intense wrestling match with a towering dokkaebi (Korean goblin). The dokkaebi is one and a half times taller than the man, with a wild bushy dark mane, glowing red eyes, rugged skin with a bluish-grey tone, and a wide grinning mouth showing jagged teeth. They are grappling each other in a traditional ssireum wrestling stance, the farmhand pushing hard against the dokkaebi's left side. Dust kicks up from the dirt path beneath their feet. The full moon breaks through dark clouds, casting silver light across the scene and creating dramatic shadows through the pine trees. In the background, the silhouette of Korean mountain ridges stretches across the horizon. The atmosphere is tense yet strangely playful, capturing the moment right before the dokkaebi is about to topple. Photorealistic, ultra-detailed, cinematic composition, 16:9 aspect ratio, dramatic moonlight chiaroscuro lighting, Korean folklore mood, no t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