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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밤중 도깨비를 만난 머슴, 도망 대신 씨름을 택하자 인생이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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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배고픔에 눈이 뒤집힌 머슴이 한밤중 산길에서 도깨비를 만났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혼비백산 도망쳤을 텐데, 이 머슴은 달랐습니다. 겁먹기는커녕 도깨비에게 씨름을 걸었고, 온갖 꾀를 부려가며 귀신도 울고 갈 배짱을 보여줬지요. 그 결과는? 쌀과 돈이 가득 든 항아리를 손에 쥐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 벼랑 끝의 간절함이 도깨비마저 감동시킨, 황당하고도 통쾌한 행운담을 지금 들려드립니다.

    ※ 1: 뼈 빠지게 일해도 쥐꼬리 품삯

    첫닭이 울기도 전, 어둠이 마당을 덮고 있을 때부터 삼돌이의 하루는 시작되었다.

    '오늘도 해 뜨기 전에 일어나야지. 늦었다간 또 주인 영감한테 호된 소리 듣는다.'

    삼돌이는 짚이불을 걷어차고 벌떡 일어났다. 광 옆에 딸린 좁은 방, 벽 틈새로 새벽바람이 솔솔 들어와 등골이 서늘했다. 얼른 세수를 하고 외양간으로 달려가 소에게 여물을 주고, 닭장 문을 열고, 마당을 쓸었다. 동이 트자마자 논으로 나가 물꼬를 살폈다.

    "삼돌아! 이놈아, 논둑 저쪽이 허물어졌다고 했잖아! 눈이 있으면 먼저 살필 것이지!"

    주인 영감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왔다. 삼돌이는 후다닥 달려가 무너진 논둑을 흙으로 메우기 시작했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참아야지. 참아야 품삯이라도 받지. 어머니 약값을 마련하려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삼돌이 나이 스물다섯.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병든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어머니는 두 해 전부터 기침이 그치질 않았다. 날이 갈수록 심해져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힘들었다. 한약방 주인이 귀한 약재가 있긴 한데 값이 만만찮다고 했을 때, 삼돌이는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든 벌겠다고.

    해가 중천에 떠올랐다. 점심은 주먹밥 두 개. 식은 보리밥에 된장 조금 발라 쥔 것이 전부였다. 빨리 먹으면 금방 없어지니까, 천천히, 아주 천천히 씹었다.

    해가 기울어도 일은 끝나지 않았다. 밭 김을 매고, 장작을 패고, 물을 길어다 놓고. 달이 떠오를 무렵에야 겨우 일손을 놓을 수 있었다. 삼돌이는 지친 몸을 끌고 주인 영감을 찾아갔다.

    "영감님, 어머니 약값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번 달 품삯만이라도 먼저 좀 쳐주십시오."

    김 좌수는 곰방대를 빨며 귀찮다는 듯 내려다보았다.

    "추수 때 한꺼번에 준다고 했잖아."

    "그때까지 어머니가 버티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기침에 피가 섞여 나옵니다."

    "에이, 기침 좀 한다고 사람이 죽나. 됐다, 내일 아침에 쌀 한 말 줄 테니 그걸로 하거라."

    쌀 한 말. 약값에는 턱없이 모자란 양이었다. 삼돌이는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쌀 한 말로 뭘 한다는 건지. 약 한 첩 짓기에도 모자란 돈인데.'

    방으로 돌아와 거적때기 위에 드러누웠다. 눈 감으면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마른 기침을 하시며 괜찮다고 웃으시던 그 얼굴.

    '어머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반드시 약값을 마련하겠습니다.'

    그때 문 밖에서 같은 머슴 장쇠 목소리가 들렸다.

    "삼돌아! 내일 김 좌수 영감이 너를 안성 장터까지 심부름 보낸다더라. 소금하고 포목 사 오라고."

    "안성 장터라면 사십 리가 넘지 않소."

    "밤길 걸어 돌아와야 할 수도 있으니 단단히 준비해라."

    삼돌이는 이불을 뒤집어쓰며 생각했다.

    '밤길이 뭐 대수랴. 세상에 무서운 건 귀신도 도깨비도 아니다. 진짜 무서운 건 어머니 약 한 첩 못 짓는 이 신세다.'

    그 생각을 안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내일, 그 기나긴 밤길 위에서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까맣게 모른 채.

    ※ 2: 어머니의 약값조차 없는 밤

    다음 날 삼돌이는 닭 울기 전에 일어나 안성 장터로 떠났다. 등에는 빈 지게를 졌고, 허리춤에는 김 좌수가 쥐어준 돈 보따리를 단단히 묶었다.

    사십 리 길. 새벽 공기가 폐 깊숙이 파고들었다. 길가 풀잎에 맺힌 이슬이 버선 끝을 적셨다. 삼돌이는 보폭을 넓혀 성큼성큼 걸었다.

    해가 중천을 넘긴 뒤에야 안성 장터에 도착했다. 장터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소금 두 가마와 포목 열 필을 사서 지게에 단단히 묶었다. 어깨가 묵직했다.

    볼일을 마치고 장터를 빠져나가려는데, 한약방 앞을 지나게 되었다. 삼돌이의 발이 저절로 멈추었다. 안에서 약 냄새가 은은히 풍겨 나왔다.

    '어머니 약을 지을 수 있다면…'

    망설이다 안으로 들어갔다.

    "어르신, 기침이 오래된 환자에게 쓸 약재가 있다 들었는데요."

    "얼마나 됐나?"

    "두 해 넘었습니다. 요즘은 피가 섞여 나옵니다."

    "녹용에 맥문동, 오미자를 써야 하는데, 석 첩에 돈 닷 냥은 잡아야지."

    닷 냥. 삼돌이에게는 하늘의 별 따기 같은 돈이었다. 지금 허리춤에 있는 건 김 좌수의 심부름 돈이지, 자기 돈이 아니었다.

    "꼭 마련해 오겠습니다."

    한약방을 나서며 입술을 깨물었다. 닷 냥이면 반년을 꼬박 모아도 모자랄 돈. 어머니에게 반년이라는 시간이 있기는 한 걸까.

    해가 서산 너머로 기울었다. 삼돌이는 무거운 지게를 지고 왔던 길을 되짚었다. 짐이 무거우니 걸음이 더뎠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해가 완전히 졌다. 달이 구름 사이로 가끔 얼굴을 내밀었지만, 길을 분간하기 힘들었다. 산길에 접어드니 소나무 사이로 바람이 으스스하게 울었다. 부엉이가 울고, 풀벌레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무섭긴 뭐가 무섭다. 밥 한 끼 사줄 돈도 없는 놈한테 귀신이 뭘 빼앗겠다고.'

    고개 중턱쯤 올랐을 때였다. 갑자기 바람이 뚝 그쳤다. 풀벌레 소리도, 부엉이 울음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세상이 너무 고요해서 오히려 소름이 돋았다.

    등 뒤에서 사각, 사각. 낙엽 밟는 소리. 삼돌이가 멈추면 소리도 멈추고, 걸으면 다시 따라왔다. 천천히 뒤를 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앞에서 소리가 났다. 쿵, 쿵, 쿵. 사람 걸음이 아니었다. 너무 느리고, 너무 무거웠다. 고개 너머 어둠 속에서 크고 검은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키가 보통 사람의 곱절은 되어 보였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러나 삼돌이는 도망치지 않았다. 등에는 무거운 지게가 있었고, 이 짐을 잃으면 품삯은커녕 빚까지 지게 될 판이었다.

    '도망쳐 봐야 이 짐 지고는 못 달린다. 잡아먹으면 잡아먹어라. 배곯는 것보다야 낫겠지.'

    삼돌이는 지게를 조심히 내려놓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 검은 그림자를 향해 한 걸음, 또 한 걸음. 바로 그때, 구름이 걷히며 보름달이 산길을 환하게 비추었다.

    소나무 아래 서 있는 것은 — 머리에 뿔이 하나 솟고, 온몸이 시퍼런 빛을 띤 채 히죽히죽 웃고 있는, 도깨비였다.

    ※ 3: 달빛 아래 나타난 수상한 그림자

    도깨비는 우둘투둘한 곤봉을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은 허리에 걸친 채 삼돌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키가 여덟 자는 족히 되었다. 눈은 구슬처럼 둥글고 노란 빛을 내뿜었으며, 입은 귀밑까지 찢어져 하얀 이빨이 두 줄로 늘어서 있었다.

    도깨비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굵고 낮아 땅이 울리는 것 같았다.

    "크크크, 이 밤중에 산길을 혼자 걷는 놈이 있다니. 너, 무섭지 않으냐?"

    삼돌이는 침을 꿀꺽 삼키고 대답했다.

    "무서울 게 뭐가 있소. 나는 귀신보다 무서운 것을 매일 겪는 사람이오."

    "오? 귀신보다 무서운 게 뭔데?"

    "빈 쌀독이오. 아픈 어머니 약 한 첩 못 짓는 이 신세가 귀신보다 백 배는 더 무섭소."

    도깨비가 눈을 껌벅이더니 갑자기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빈 쌀독이 귀신보다 무섭다고? 오랜만에 재미있는 놈을 만났구나!"

    도깨비가 웃을 때마다 주변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낙엽이 휘몰아쳤다. 삼돌이 상투가 흐트러졌지만, 꿋꿋이 서 있었다.

    "재미있는 건 둘째 치고, 길을 비켜줬으면 좋겠소. 집에 아픈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시오."

    "도깨비한테 길을 비키라고? 크크, 네놈 간이 배 밖에 나왔구나."

    도깨비가 한 걸음 다가왔다. 쿵, 하는 발소리에 땅이 진동했다. 노란 눈이 삼돌이 얼굴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코끝에 비릿하면서도 숲 냄새가 섞인 기묘한 숨결이 닿았다.

    삼돌이는 물러서지 않았다. 뒤에는 짐이 있었고, 그 짐을 잃으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간이 배 밖에 나온 게 아니라, 잃을 게 없는 놈이오. 잃을 게 없는 놈이 제일 무서운 법 아니겠소?"

    도깨비가 곤봉을 들어 삼돌이 어깨에 톡톡 대었다. 묵직한 무게감이 어깨를 눌렀다.

    "크크크, 잃을 게 없다? 목숨은 있잖아?"

    "목숨이야 도깨비 당신이 빼앗든, 병이 빼앗든, 가난이 빼앗든 마찬가지요. 어차피 이대로 살면 짧고, 잘 되면 기니까."

    도깨비가 잠시 말을 잃었다. 노란 눈이 삼돌이를 위아래로 훑었다. 이 보잘것없는 인간을 새롭게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흥, 입심은 좋구나. 그런데 입만 센 건지 몸도 센 건지 궁금하군."

    도깨비가 곤봉을 땅에 꽂았다. 쿵! 바위처럼 단단한 땅에 한 뼘이나 박혔다.

    "어떠냐, 인간. 나와 씨름을 한 판 하자. 네가 이기면 네 소원을 들어주마. 내가 이기면…"

    도깨비가 히죽 웃었다.

    "너를 내 심부름꾼으로 삼겠다. 백 년 동안."

    백 년 심부름꾼. 삼돌이 등에 소름이 쫙 돋았다. 김 좌수 밑에서 머슴살이도 지긋지긋한데, 도깨비 밑에서 백 년이라니.

    '하지만…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어. 어머니 약값, 닷 냥. 아니, 그보다 더. 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삼돌이는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좋소. 하겠소."

    도깨비 눈이 휘둥그레졌다. 인간이 승낙할 줄은 정말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크하하! 네놈, 정말 미쳤구나! 좋다, 마음에 든다!"

    달빛 아래, 머슴과 도깨비가 마주 섰다. 바람이 다시 불기 시작했고, 소나무 가지들이 술렁였다. 마치 산 전체가 이 황당한 대결을 구경하려 눈을 뜬 것 같았다.

    ※ 4: 겁 대신 배짱! 머슴, 도깨비에게 씨름을 걸다

    도깨비가 곤봉을 옆으로 치우고 양손을 벌렸다. 손바닥이 솥뚜껑만 했다. 삼돌이는 그 거대한 손을 보며 속으로 계산했다.

    '힘으로는 절대 안 된다. 저 덩치를 정면으로 상대하면 나뭇잎처럼 날아갈 것이다. 머리를 써야 한다.'

    도깨비가 소리쳤다.

    "자, 덤벼라 인간! 세 판 두 선승이다!"

    삼돌이는 도깨비 앞으로 다가갔다. 샅바 대신 서로의 허리춤을 잡았다. 도깨비 허리를 잡는 순간, 삼돌이 손에 이끼 낀 바위 같은 촉감이 전해졌다. 단단하고, 차갑고, 도저히 사람이 움직일 수 있는 덩어리가 아니었다.

    '이걸 어떻게 넘긴다? 힘으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도깨비가 먼저 잡아당겼다. 삼돌이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그대로 내던져질 뻔했으나, 삼돌이는 본능적으로 도깨비 다리를 감아 걸었다. 도깨비가 살짝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 찰나, 삼돌이는 있는 힘껏 옆으로 틀었다.

    그러나 도깨비는 넘어지지 않았다. 비틀거리기만 했을 뿐, 두 발은 굳건히 땅을 딛고 있었다. 오히려 삼돌이가 되튕겨 나와 바닥에 나뒹굴었다.

    "크크크, 이게 네 실력이냐? 실망이로구나."

    삼돌이는 흙을 털고 일어났다. 몸 여기저기가 쑤시고 아팠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때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도깨비는 힘은 세지만 머리는 단순하다고 했어. 옛사람들이 그랬지. 도깨비는 칭찬에 약하고, 놀림에 화를 낸다고.'

    삼돌이가 슬쩍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도깨비 나으리. 역시 힘이 대단하시오. 내 평생 이렇게 힘 센 장사는 처음 보겠소."

    도깨비가 어깨를 으쓱했다.

    "크크, 당연하지. 나는 이 산에서 제일 힘 센 도깨비다."

    "그렇게 힘이 센데, 설마 한 가지는 못 하시겠지?"

    "뭐? 내가 못 하는 게 있다고?"

    "왼발 하나로 서서 씨름하는 건 아무리 힘이 세도 못 하지 않겠소?"

    도깨비 눈이 번뜩였다.

    "왼발 하나로? 그까짓 거야 식은 죽 먹기지!"

    도깨비가 정말로 오른발을 들어 왼발 하나로 섰다. 삼돌이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걸렸다!'

    삼돌이가 번개처럼 달려들어 도깨비의 왼발을 걸었다. 한 발로 서 있던 도깨비는 중심을 크게 잃고 비틀거렸다. 삼돌이는 온몸의 힘을 실어 밀었다.

    쿠르릉 — 콰당!

    도깨비가 뒤로 넘어졌다. 땅이 쿵 하고 울렸고, 먼지가 뿌옇게 피어올랐다. 삼돌이가 재빨리 도깨비 위에 올라탔다.

    "한 판은 내가 이겼소!"

    도깨비가 벌떡 일어나며 눈을 부라렸다.

    "이 꾀쟁이 같은 놈! 속임수를 쓰다니!"

    "속임수가 아니라 꾀요. 씨름에서 머리 쓰는 건 반칙이 아니지 않소?"

    도깨비가 이를 갈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씨름에 머리 쓰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좋다! 두 번째 판이다. 이번엔 꼼수 부려도 소용없을 줄 알아라!"

    도깨비가 으르렁거리며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거세게 밀어붙였다. 삼돌이는 밀려나지 않으려 발을 버텼지만, 힘의 차이가 너무 컸다. 두 발이 땅 위를 질질 끌려갔다.

    '안 되겠다. 다른 수를 써야 해.'

    삼돌이는 도깨비의 힘을 정면으로 버티는 대신, 갑자기 몸을 옆으로 비틀며 빠졌다. 도깨비가 허공을 밀며 앞으로 쏠렸다. 그 틈에 삼돌이가 뒤에서 도깨비 다리를 걸었다.

    하지만 도깨비도 한 번 당한 수에 두 번 당할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쏠리던 몸을 순간 바로잡더니, 거꾸로 삼돌이 팔을 잡아 번쩍 들어올렸다.

    삼돌이 몸이 허공에서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쿵! 등부터 땅에 내려꽂혔다. 등짝이 뜨끈하게 아려왔고, 눈앞에 별이 돌았다.

    "크하하! 한 판 비겼다! 이제 하나씩이야!"

    삼돌이는 비틀비틀 일어났다.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하지만 웃었다. 이를 드러내고, 씩 웃었다.

    '아직 한 판 남았다. 마지막 한 판에 모든 걸 건다.'

    도깨비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네놈, 이 판국에 웃음이 나오느냐?"

    "웃지 않으면 울어야 하는데, 도깨비 앞에서 울면 꼴 사납잖소."

    도깨비가 피식 웃었다. 화가 나면서도 이 인간이 미워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달이 중천에 떠올랐다. 산 위로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머슴과 도깨비, 둘 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마지막 세 번째 판을 준비했다. 이 한 판에 삼돌이의 운명이, 어머니의 목숨이 걸려 있었다.

    ※ 5: 한 판, 두 판, 세 판

    달빛이 소나무 숲을 환하게 물들였다. 삼돌이와 도깨비가 마주 섰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판. 삼돌이의 이마에는 땀이 줄줄 흘렀고, 온몸이 욱신거렸다. 도깨비는 여전히 멀쩡한 얼굴이었지만, 눈빛만은 달라져 있었다. 처음의 장난기 어린 빛이 사라지고, 진지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이번엔 꼼수가 안 통할 것이다. 한 발로 서라는 소리에 또 넘어갈 만큼 바보가 아니야.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삼돌이는 숨을 고르며 주변을 살폈다. 소나무, 바위, 낙엽, 그리고 저 뒤편에 내려놓은 지게. 지게 위에는 소금 가마와 포목이 묶여 있었다. 삼돌이 눈이 반짝였다.

    '소금. 옛사람들이 그랬지. 도깨비는 소금을 싫어한다고. 아니,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소금을 뿌리면 눈을 못 뜬다고.'

    그러나 지금 당장 소금 가마를 풀 수는 없었다. 도깨비가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고 있었다.

    "자, 마지막 판이다. 이번에는 꼼수 없이 정정당당하게 붙자!"

    도깨비가 두 팔을 벌리고 돌진해 왔다. 삼돌이는 정면으로 받아내는 척하다 마지막 순간 옆으로 빠졌다. 도깨비가 허공을 짚으며 비틀거렸지만, 이번에는 금방 몸을 바로잡았다.

    "같은 수를 또 쓰려고? 안 통해!"

    도깨비가 돌아서며 삼돌이를 낚아챘다. 삼돌이 허리가 도깨비 팔에 꽉 조여졌다. 갈비뼈가 으드득 소리를 냈다. 숨이 턱 막혔다.

    '이대로는 죽는다. 뭔가, 뭔가 해야 해!'

    삼돌이는 발버둥 치는 대신 갑자기 온몸에 힘을 빼고 축 늘어졌다.

    "어? 이놈이 기절했나?"

    도깨비가 의아해하며 잠깐 힘을 풀었다. 바로 그 찰나, 삼돌이가 번개처럼 몸을 비틀며 도깨비 팔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지게 쪽으로 미친 듯이 달려갔다.

    "도망치는 거냐? 비겁하게!"

    "도망이 아니오!"

    삼돌이는 지게 위의 소금 가마 끈을 잡아당겼다. 가마 입구가 벌어지며 굵은 소금알이 쏟아졌다. 삼돌이는 두 손 가득 소금을 움켜쥐었다.

    도깨비가 돌진해 왔다. 삼돌이는 도깨비가 팔을 뻗는 순간, 움켜쥔 소금을 도깨비 얼굴에 확 뿌렸다.

    "으아아악!"

    도깨비가 비명을 질렀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비틀거렸다. 노란 눈에 소금이 들어간 것이다. 도깨비 눈에서 시퍼런 불빛이 번쩍번쩍 튀었다.

    "이 놈! 이 더러운 놈! 소금을 쓰다니!"

    삼돌이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전력을 다해 도깨비 다리를 걸고 밀었다. 눈이 안 보이는 도깨비는 균형을 잡지 못했다. 거대한 몸이 앞으로 기울더니, 그대로 꽈당! 땅을 때렸다. 산이 울리고 나뭇잎이 비처럼 쏟아졌다.

    삼돌이는 넘어진 도깨비 등에 올라탔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내가 이겼소! 세 판 두 선승, 내가 이겼소!"

    도깨비가 눈을 비비며 벌떡 일어났다. 삼돌이가 후다닥 내려왔다. 도깨비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다. 소금 때문에 콧물까지 질질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무섭기보다는 우스꽝스러워서 삼돌이는 웃음이 터질 뻔했다. 하지만 꾹 참았다.

    도깨비가 으르렁거렸다.

    "소금을 쓰다니, 이건 반칙이야!"

    "아까 도깨비 나으리께서 그러셨잖소. 씨름에 머리 쓰는 건 반칙이 아니라고. 소금도 머리 쓴 것이오."

    도깨비가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벌렸다가 또 닫았다.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자기가 한 말에 자기가 걸린 셈이었다.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던 도깨비가 코를 훌쩍이더니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모습이 어찌나 풀 죽어 보이던지, 삼돌이는 이번에는 정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도깨비 나으리, 괜찮으시오?"

    "괜찮긴 뭐가 괜찮아. 소금이 눈에 들어가서 따갑단 말이다. 으으, 창피해라. 도깨비가 인간한테 지다니."

    도깨비가 연신 눈을 비비며 투덜거렸다. 그 모습이 꼭 씨름 대회에서 진 아이 같았다. 삼돌이는 나뭇잎에 고인 이슬을 모아 도깨비에게 내밀었다.

    "이걸로 눈을 씻으시오."

    도깨비가 멈칫했다. 이긴 놈이 진 놈에게 도움을 주다니. 쭈뼛쭈뼛 이슬을 받아 눈을 씻었다. 따가움이 좀 가시자 도깨비가 삼돌이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빛이 처음과는 완전히 달랐다.

    ※ 6: "네 간이 마음에 든다"

    도깨비가 한참 동안 삼돌이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노란 눈에 비친 것은 삐쩍 마르고 때 묻은 옷을 입은, 보잘것없는 머슴 하나. 그런데 그 보잘것없는 머슴이 자기를 이겼다.

    "너, 이름이 뭐라 했지?"

    "삼돌이요."

    "삼돌이… 크크, 돌멩이처럼 단단한 놈이로구나. 나한테 덤비다니, 미친 놈이야. 그런데 그 미친 짓이 나는 마음에 들어."

    도깨비가 벌떡 일어나 몸에 묻은 흙을 탈탈 털었다. 이제 노한 기색은 없었다.

    "약속은 약속이지. 네가 이겼으니 소원을 말해라. 뭘 원하느냐?"

    삼돌이 심장이 쿵 하고 뛰었다. 드디어 이 순간이 온 것이다. 하지만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는 것을 삼돌이는 알고 있었다. 옛이야기에서 도깨비한테 욕심을 부린 사람은 하나같이 망했다.

    "소원이라면… 어머니 약값이 필요하오. 돈 닷 냥만 있으면 약을 지어 어머니를 살릴 수 있소."

    "닷 냥? 고작 닷 냥이라고?"

    도깨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도깨비가 보기에 닷 냥은 콧바람에 날아갈 정도의 하찮은 금액이었다.

    "네가 이 도깨비를 이기고서 고작 닷 냥을 달라는 거냐? 금은보화를 달라든지, 천 석 부자가 되게 해달라든지, 좀 크게 말해 봐라!"

    삼돌이는 고개를 저었다.

    "분수에 넘치는 것을 바라면 탈이 나는 법이오. 나는 어머니 약값만 있으면 되오. 그것이면 충분하오."

    도깨비가 팔짱을 끼고 삼돌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더니, 갑자기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래, 바로 그거야. 네가 마음에 드는 이유가 바로 그거야."

    "네?"

    "욕심을 부리지 않는 놈. 힘이 아니라 머리를 쓰는 놈. 그리고 무엇보다, 제 한 몸이 아니라 어미를 위해 목숨을 거는 놈. 이 산에서 천 년을 살았지만, 네 같은 인간은 처음이다."

    도깨비가 곤봉을 집어 들었다. 삼돌이가 순간 움찔했지만, 도깨비는 곤봉으로 땅을 두 번 두드렸다. 쿵! 쿵!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땅이 갈라지더니, 갈라진 틈 사이에서 항아리 하나가 스르르 솟아올랐다. 흙투성이 항아리. 크기는 아이 머리통만 했다. 삼돌이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건…?"

    "열어 봐라."

    삼돌이가 조심스럽게 항아리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쌀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쌀 위에 종이 보따리 하나. 보따리를 풀어 보니 은전과 동전이 수북이 들어 있었다. 삼돌이 눈이 사발만 해졌다.

    "이, 이게 전부 뭐요?"

    "닷 냥이 필요하다며? 그 안에 열 냥은 들어 있을 게다. 닷 냥은 어미 약값으로 쓰고,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라."

    "열 냥이라니, 이건 너무 많소!"

    "너무 많기는. 내가 주겠다는데 안 받을 셈이냐?"

    삼돌이는 항아리를 안고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코끝이 시큰거렸다. 아무리 참으려 해도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고, 고맙소. 정말 고맙소, 도깨비 나으리."

    "울긴 왜 울어. 아까까지 그 배짱은 어디 가고 코를 훌쩍거리냐. 꼴사납게."

    도깨비가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도깨비가 항아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항아리에 쌀은 아무리 퍼내도 절반 이상 줄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건이 있어."

    "조건이라니요?"

    "그 쌀을 네 식구만 먹으면 안 된다. 반드시 어려운 이웃과 나눠야 한다. 네가 욕심을 부려 혼자 차지하려 하는 날, 항아리는 빈 흙덩이로 변할 것이야."

    삼돌이는 고개를 깊이 숙여 절을 올렸다.

    "나누겠소. 어머니가 늘 말씀하셨소. 가난할수록 나눠야 한다고. 반드시 그리하겠소."

    도깨비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곤봉을 어깨에 걸치며 돌아섰다.

    "자, 나는 간다. 다시 만나면 한 판 더 하자꾸나. 그때는 소금 금지다, 알았지?"

    도깨비가 히죽히죽 웃으며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쿵, 쿵, 쿵. 그리고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 7: 쌀과 돈이 가득한 항아리

    도깨비가 사라진 뒤, 삼돌이는 한참이나 제자리에 서 있었다. 바람이 다시 불기 시작했고, 풀벌레 소리가 돌아왔다.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온 것이다. 달빛 아래 삼돌이 품에는 항아리가 안겨 있었다. 따뜻했다. 흙으로 빚은 항아리가 이상하리만치 따뜻했다.

    '꿈인가? 생시인가?'

    삼돌이는 뺨을 한 대 때려 보았다. 찰싹. 아팠다. 꿈이 아니었다.

    항아리 뚜껑을 다시 열어 보았다. 하얗고 윤기 나는 쌀이 달빛에 빛나고 있었다. 쌀 위의 은전은 차갑고 묵직했다. 분명 실재하는 것이었다.

    "진짜다. 진짜로 도깨비한테 쌀과 돈을 받았다."

    삼돌이는 항아리를 소중히 보자기로 싸서 지게 위에 올려놓았다. 소금 가마와 포목 사이에 항아리를 단단히 끼우고, 흐트러진 짐을 다시 동여맸다. 지게를 지니 아까보다 무거웠지만,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어머니, 약을 지을 수 있습니다. 이제 약을 지을 수 있어요.'

    삼돌이는 산길을 내려오며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으스스하던 산길이 이제는 꽃길처럼 느껴졌다. 부엉이 울음소리조차 축하 노래 같았다.

    고개를 넘고 논길을 지나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동이 트고 있었다. 하늘 끝이 붉게 물들었다. 삼돌이는 먼저 김 좌수 댁에 들러 소금과 포목을 내려놓았다. 아직 이른 새벽이라 주인 영감은 일어나지 않았다. 짐을 광에 넣어두고 나오는데, 장쇠가 마당을 쓸다 말고 달려왔다.

    "삼돌아! 밤새 무사했냐? 산길에서 별일 없었고?"

    "별일이라면 별일이 있었지."

    "뭐? 무슨 일인데?"

    삼돌이는 씩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함부로 떠들면 안 될 것 같았다. 도깨비한테 받은 것을 자랑하고 다니면 탈이 날 수도 있다고, 어릴 적 이야기에서 들었으니까.

    삼돌이는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마을 끝자락, 허름한 초가집. 울타리도 변변찮고 지붕에는 잡풀이 무성했다. 삼돌이가 문을 열자 어머니가 누워 계셨다. 이불이 가는 어깨 위로 올라와 있었고, 숨소리가 가늘었다.

    "어머니, 삼돌이 왔습니다."

    어머니가 힘겹게 눈을 떴다.

    "돌아왔느냐. 밤길이 무섭지 않았니?"

    "하나도 안 무서웠습니다. 어머니, 이것 보세요."

    삼돌이가 항아리를 내려놓고 뚜껑을 열었다. 어머니가 고개를 돌려 들여다보더니 눈이 커졌다.

    "이, 이게 뭐냐?"

    "쌀이요. 그리고 돈도 있습니다. 어머니 약을 지을 수 있어요."

    "어디서 이런 걸…"

    삼돌이는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산에서 주웠습니다."

    거짓말이었지만, 도깨비 이야기를 하면 어머니가 놀라실 것 같았다. 어머니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아들의 얼굴에 떠오른 환한 웃음을 보고는 더 묻지 않았다.

    그날 삼돌이는 곧바로 안성 한약방으로 달려갔다. 닷 냥을 내놓고 약재를 받아왔다. 녹용, 맥문동, 오미자. 정성껏 달여 어머니께 올렸다. 어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약사발을 받아 드셨다. 쓴 약이었지만, 어머니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고맙다, 삼돌아. 이 못난 어미 때문에 네가 고생이 많구나."

    "무슨 말씀이세요. 어머니가 나으셔야 저도 사는 것이지요."

    며칠이 지나자 어머니 기침이 눈에 띄게 줄었다. 약이 듣고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을 수 있게 되었다. 열흘이 지나자 마당까지 나와 볕을 쬘 수 있었다. 삼돌이는 매일 어머니가 좋아지시는 모습을 보며 도깨비에게 속으로 감사를 올렸다.

    '도깨비 나으리,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 8: 간절함이 만든 기적

    어머니 약값을 쓰고도 다섯 냥이 남았다. 삼돌이는 그 돈으로 작은 밭떼기를 하나 장만했다. 김 좌수 댁 머슴살이를 그만두고, 제 땅에서 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도깨비가 준 항아리는 신기했다. 쌀을 아무리 퍼내도 절반 이상 줄지 않았다. 어머니와 둘이 먹고도 항상 반은 차 있었다. 삼돌이는 도깨비와의 약속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마을에는 삼돌이네만큼이나 가난한 집이 여럿 있었다. 혼자 아이 셋을 키우는 분이 아낙, 다리를 다쳐 일을 못 하는 노인, 부모 없이 할머니 손에 자라는 아이들. 삼돌이는 그 집들을 찾아다니며 쌀을 나눠 주었다.

    "삼돌이, 이걸 어떻게 갚느냐."

    "갚을 것 없습니다. 저도 받은 것이니까요."

    사람들은 고마워했다. 삼돌이가 밭에 나가면 이웃들이 와서 함께 일손을 거들었다. 혼자서는 벅찬 일도 여럿이 하니 금방이었다. 밭은 해가 갈수록 기름져 갔고, 곡식은 풍성해졌다.

    소문이 퍼졌다. 마을에서 제일 가난하던 머슴 삼돌이가 어느새 자기 땅을 갖고, 어머니 병을 고치고, 이웃까지 돌보는 사람이 되었다고. 사람들은 신기해하며 수군거렸다.

    "삼돌이가 산에서 보물을 주웠다더라."

    "아니야, 도깨비한테 받았다더라."

    "에이, 도깨비는 무슨. 그 애가 억척같이 일해서 벌어들인 거지."

    소문이야 어찌 됐든, 삼돌이는 개의치 않았다. 다만 하나 걱정되는 것이 있었다. 소문을 들은 김 좌수가 찾아온 것이다.

    "삼돌아, 들으니까 네가 쌀이 마르지 않는 항아리를 갖고 있다면서?"

    삼돌이 가슴이 철렁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그저 아끼고 아껴서 쓰는 것뿐입니다."

    "허, 마을 사람들이 다 아는 걸 나한테 숨기려고? 그 항아리 내게 팔아라. 값은 후하게 쳐주마."

    "팔 수 없습니다."

    "뭐? 이놈이 감히 내 말을 거역해?"

    김 좌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삼돌이는 더 이상 고개 숙이는 머슴이 아니었다.

    "영감님, 이건 제가 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항아리는 욕심을 부리면 빈 흙덩이로 변합니다."

    "흥,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를. 내가 가만두지 않겠다!"

    김 좌수는 벼르다가 어느 날 밤, 하인을 시켜 항아리를 훔쳐 오게 했다. 하인이 삼돌이 집 부엌에 몰래 들어가 항아리 뚜껑을 열었다. 그런데 안에는 쌀 대신 시커먼 흙이 가득 차 있었다. 당황한 하인이 항아리를 들고 나왔지만, 김 좌수가 뚜껑을 열어 보니 정말로 흙뿐이었다.

    "이게 뭐야! 쌀은 어디 갔어!"

    다음 날 아침, 삼돌이가 부엌에 가 보니 항아리가 없어져 있었다. 놀랐지만 곧 깨달았다.

    '도깨비 나으리가 말씀하셨지. 욕심을 부리면 빈 흙덩이가 된다고.'

    삼돌이는 항아리를 찾으러 김 좌수 댁으로 갔다. 김 좌수는 멋쩍은 얼굴로 흙투성이 항아리를 내주었다. 삼돌이가 집에 가져와 뚜껑을 열자, 다시 하얗고 윤기 나는 쌀이 반쯤 차올라 있었다.

    삼돌이는 그때 확실히 깨달았다. 이 항아리는 물건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나누는 마음을 담으면 채워지고, 욕심을 담으면 비어버리는 그릇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어머니는 건강을 되찾으셨다. 삼돌이는 착실한 처자를 만나 혼인을 하고, 아이도 낳았다. 밭은 해마다 좋은 수확을 안겨주었고, 항아리는 변함없이 쌀을 내어주었다. 삼돌이는 끝까지 나누기를 멈추지 않았다.

    가끔, 보름달이 환하게 뜬 밤이면 삼돌이는 뒷산 고갯길을 올라가 보았다. 혹시 그 도깨비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도깨비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바람이 솔솔 불어올 때면, 소나무 사이에서 희미하게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크크크.

    삼돌이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혼잣말을 했다.

    "도깨비 나으리, 덕분에 잘 살고 있소. 소금 뿌려서 미안했소. 다음에 만나면 막걸리 한잔 사겠소."

    대답은 없었다. 그저 바람만 솔솔 불었다. 하지만 삼돌이는 알고 있었다. 그 밤, 벼랑 끝의 간절함이 도깨비를 불렀듯이, 진심은 언제나 누군가에게 닿는다는 것을.

    가난한 머슴 삼돌이가 도깨비를 만나 쌀독을 얻은 이 이야기는, 그렇게 마을에서 마을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왔다 한다.

    유튜브 엔딩멘트

    잃을 게 없는 사람이 가장 강하다는 말, 삼돌이가 보여줬습니다. 벼랑 끝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배짱, 힘 대신 머리를 쓰는 꾀, 그리고 받은 것을 나누는 마음. 그것이 도깨비도 감동시킨 삼돌이의 비결이었지요. 재미있게 들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천방지축도깨비, 다음 이야기에서 또 만나요!

    썸네일 이미지 프롬프트 (영어, 16:9, 실사, no text)
    A dramatic cinematic photo of a muscular Korean peasant man in traditional Joseon-era clothing wrestling under bright moonlight on a mountain forest path, facing a towering supernatural blue-skinned goblin creature with a single horn, surrounded by ancient pine trees, fallen leaves swirling in the wind, a mysterious glowing clay jar sitting on the ground nearby, volumetric moonlight rays cutting through the trees, hyper-realistic, epic composition, 16:9 aspect ratio, no t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