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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깨비와 염라대왕의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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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전설, #도깨비이야기, #염라대왕, #한국민담, #오디오드라마, #야담, #저승이야기, #조선괴담, #귀신이야기, #한국전통, #구미호, #저승사자

    디스크립션

    한양의 가난한 선비와 그의 아내가 목숨을 건 거래에 휘말립니다. 인간의 영혼을 놓고 도깨비와 염라대왕이 벌이는 치열한 흥정, 그 끝에서 선비 부부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운명의 선택을 해야 합니다. 조선 최고의 야담을 현대적 감성으로 재해석한 오디오 드라마, 여러분의 가슴을 울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후킹멘트

    "당신의 목숨을 3년 더 연장해주마. 대신 3년 후, 네 아내의 영혼을 나에게 바치는 거다." 도깨비의 속삭임에 선비의 손이 떨렸습니다.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내의 목숨과 맞바꾸는 거래... 선비는 결국 그 계약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몰랐습니다. 그 계약서가 저승에서 큰 파문을 일으키게 될 줄은. 염라대왕이 직접 나서게 될 줄은...

    조선 후기, 정조 임금이 다스리던 시절. 한양 성곽 바깥, 북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한 초라한 초가집 한 채가 있었습니다. 뜰에는 먹을 가난한 선비가 사용하는 벼루와 붓이 하나 놓여 있고, 마당에는 허름한 빨래가 바람에 너울거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난하지만 학식 높은 선비 윤이섭과 그의 아내 정씨의 보금자리였습니다.

    "콜록, 콜록..."

    방 안에서 들려오는 기침 소리는 날이 갈수록 더 깊고 무거워졌습니다. 윤이섭은 한 달 전부터 병석에 누워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감기인 줄 알았던 병이 점점 심각해지더니, 이제는 피를 토하기까지 했습니다. 마을의 의원을 불러도 별다른 차도가 없었고, 약값은 나날이 불어나 이제 정씨는 살림살이를 모두 내다 팔아야 했습니다.

    "여보, 괜찮으십니까? 물 한 모금 더 드시겠습니까?"

    정씨는 남편의 이마에 손을 얹으며 물었습니다. 이섭의 이마는 뜨거웠고, 숨소리는 거칠었습니다. 간신히 눈을 뜬 이섭은 아내를 바라보았습니다. 말 한마디 꺼내기도 힘겨운 상태였습니다.

    "미안... 하오... 내가... 이리... 무능하여..."

    "그런 말씀 마십시오. 곧 경성에서 명의가 올 것입니다. 조금만 더 견디세요."

    정씨는 강한 척했지만, 그녀의 심장은 무겁게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남편의 상태가 나날이 악화되었고, 어제는 이웃집 할머니가 "염라대왕이 곧 데려갈 사람"이라며 한숨을 내쉬었기 때문입니다. 정씨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보았습니다.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고, 무당을 찾아가 굿을 해보고, 이름난 의원들을 찾아다녔지만, 모두 소용없었습니다.

    그날 저녁, 경성에서 온 명의라는 사람은 윤이섭의 맥을 짚어보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폐가 많이 상했소이다. 삼일을 넘기기 어려울 듯합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시지요."

    의원의 말은 정씨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날 밤, 그녀는 방 안에서 흐느끼다가 문득 결심했습니다. 저잣거리에서 들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북악산 깊은 곳에 산신령이 있어, 간절한 기도를 들어준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정씨는 마음을 다잡고 남편이 잠든 틈을 타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초승달이 희미하게 빛나는 밤. 정씨는 산길을 따라 깊숙이 들어갔습니다. 발밑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가시나무에 옷이 찢기기도 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오직 남편을 살리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산을 오르고 또 올랐습니다.

    마침내 산 정상 부근의 커다란 바위 앞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는 오래된 돌 제단이 있었고, 이끼가 끼어 있었지만 누군가 정성스레 관리한 흔적이 보였습니다. 정씨는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습니다.

    "산신령님, 저는 윤이섭의 아내 정씨라고 합니다. 제발 저의 남편을 살려주십시오. 남편은 아직 젊고, 많은 꿈이 있습니다. 글을 가르치고, 세상을 바꾸고 싶어했습니다. 제발... 무엇이든 해드리겠습니다. 제 수명이라도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누구라도 좋으니, 제 남편을 살려주신다면... 무엇이든 바치겠습니다..."

    정씨의 간절한 기도가 이어지는 동안, 숲은 점점 더 깊은 고요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바람 소리조차 멈추고, 달빛만이 그녀의 눈물에 젖은 얼굴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요? 갑자기 숲 속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희미한 불빛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반딧불처럼 작고 빛나는 그 불빛은 점점 커지더니, 이내 여럿으로 불어났습니다. 도깨비불이 하나, 둘, 셋... 점점 많아지더니 어느새 열 개가 넘는 불빛이 정씨의 주변을 감싸고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그리고 그 불빛들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형체를 이루었습니다.

    키가 훌쩍 큰, 사람처럼 보이지만 확실히 사람이 아닌 존재. 머리에는 두 개의 뿔이 솟아 있고, 얼굴은 붉은 빛을 띠었으며, 입에는 기이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도깨비였습니다.

    "흥미로운 제안이군. 네 남편을 살려달라... 무엇이든 바치겠다고?"

    도깨비의 목소리는 깊고 울림이 있었습니다. 마치 여러 개의 목소리가 함께 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정씨는 놀랐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네, 무엇이든지요. 제 목숨이라도 바치겠습니다."

    도깨비는 낄낄 웃었습니다. 그 웃음소리에 산새들이 놀라 날아올랐습니다.

    "재미있는 인간이로군. 그래, 나도 오랜만에 흥미로운 일을 만났어. 하지만 그대가 알아야 할 것이 있어. 지금 네 남편의 목숨을 가져가려는 건 저승사자가 아니라 병마일 뿐이야. 내가 그 병을 낫게 해줄 수는 있지. 대신 조건이 있어."

    정씨는 희망에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물었습니다.

    "무슨 조건이든 들어드리겠습니다. 제 남편만 살려주신다면..."

    도깨비는 천천히 정씨 주위를 돌며 그녀를 관찰했습니다. 그의 커다란 그림자가 달빛 아래 길게 늘어졌습니다.

    "좋아. 내가 네 남편에게 정확히 3년의 시간을 더 주마. 그는 내일 아침이면 병에서 회복될 것이고, 3년 동안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거야. 대신 3년 후, 네 영혼을 가져가겠다."

    정씨의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자신의 목숨과 남편의 목숨을 맞바꾸는 거래. 그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무서운 제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결심한 바가 있었습니다. 남편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좋습니다. 제 남편만 살려주신다면..."

    도깨비의 눈이 붉게 빛났습니다. 그는 소매 속에서 붉은 종이를 꺼냈습니다. 그것은 계약서처럼 보였지만, 글자들은 일반적인 한문이 아닌 이상한 문양들이었습니다.

    "이건 계약서다. 네 피가 필요해."

    도깨비는 갑자기 정씨의 손가락을 찔렀습니다. 놀라서 손을 빼려 했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손가락에서 피가 한 방울 떨어져 계약서에 스며들었고, 그 피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종이 위를 움직이며 이상한 문양을 그렸습니다.

    "계약 성립이다. 이제 돌아가 보렴. 네 남편은 내일 아침이면 깨어날 거야. 그리고 3년 후, 나는 네 영혼을 가지러 올 것이다. 정확히 3년 후 오늘 밤, 이 산에서 기다리고 있어라."

    도깨비는 갑자기 거대한 불꽃으로 변했다가 순식간에 작은 도깨비불들로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불빛들은 숲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정씨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방금 일어난 일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손가락의 상처와 그 상처에서 여전히 맺혀 있는 피방울이 이것이 현실임을 증명했습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정씨는 산을 내려왔습니다. 이제 그녀에게는 정확히 3년의 시간이 남아있었습니다. 3년 후면 영혼을 도깨비에게 넘겨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지만, 남편이 살아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녀는 미소 지었습니다.

    [음악 전환, 희망과 기적을 나타내는 밝은 멜로디]

    다음 날 아침,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죽음의 문턱에 있던 이섭은 마치 악몽에서 깨어난 것처럼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의 안색은 훨씬 좋아졌고, 열은 완전히 내렸으며, 기침도 멈췄습니다. 그는 심지어 배고픔을 느낄 정도로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정씨는 놀라움과 기쁨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도깨비와의 계약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마을 의원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숨이 넘어갈 것 같던 사람이 오늘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어나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이건 하늘이 내린 기적입니다. 윤 선생께서는 복이 많으신 분이지요."

    의원의 말에 이섭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정씨는 자신이 지불해야 할 대가를 생각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사실을 남편에게 말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단지 남편이 건강하게 3년을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몇 주가 지나자 이섭은 완전히 예전의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그는 다시 글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가끔은 젊은 선비들과 모여 시를 짓고 토론을 하기도 했습니다. 정씨는 남편의 활기찬 모습을 보며 행복했습니다. 비록 자신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지만, 남편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 계절이 바뀌고, 1년이 지나고, 2년이 흘렀습니다. 정씨는 매일 밤 남편이 잠든 후 몰래 날짜를 세며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계산했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날이 갈수록 무거워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이섭은 악몽에 시달리다 깨어났습니다. 식은땀을 흘리며 그는 정씨를 불렀습니다.

    "여보, 이상한 꿈을 꾸었소. 당신이 큰 불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꿈이었소. 내가 아무리 불러도 돌아보지 않고..."

    정씨는 남편을 안심시키려 했지만, 이섭의 직감은 예리했습니다. 그는 아내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당신, 요즘 무슨 일 있소? 날이 갈수록 얼굴이 창백해지고, 밤에 잠을 설치는 것 같소."

    정씨는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아무 일도 없어요. 그저 계절이 바뀌어서 그런 거예요."

    그러나 그날 밤, 정씨는 잠결에 중요한 실수를 했습니다. 그녀는 꿈속에서 도깨비와 다시 만나는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3년... 이제 1년밖에 남지 않았어... 도깨비와의 약속... 내 영혼을..."

    이섭은 아내의 잠꼬대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아내를 부드럽게 흔들어 깨웠습니다.

    "여보, 무슨 말을 하는 거요? 도깨비? 약속? 당신의 영혼이라니?"

    정씨는 놀라서 눈을 떴습니다. 남편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그녀는 더 이상 비밀을 숨길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는 모든 진실을 털어놓았습니다. 3년 전 그날 밤의 일, 도깨비와의 계약, 그리고 1년 후면 자신의 영혼을 넘겨야 한다는 사실까지.

    이섭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아내의 손을 꽉 잡았습니다.

    "이 바보 같은 여인아! 나를 위해 네 목숨을 내놓다니... 내가 어찌 그대 없이 살 수 있단 말이오! 차라리 그날 나를 보내주었어야 했소."

    "그럴 수 없었어요. 당신을 잃을 수 없었어요... 제게는 당신이 세상의 전부인걸요."

    이섭은 굳은 결심을 했습니다. 그는 아내를 구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걱정 마시오. 내가 반드시 방법을 찾겠소. 도깨비와의 계약을 파기할 방법이 있을 거요."

    이섭은 그날부터 도깨비를 찾아 나섰습니다. 매일 밤 북악산을 헤매며 도깨비를 불렀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는 점쟁이를 찾아가고, 무당을 만나보고, 심지어 먼 지방의 도사까지 찾아갔지만, 누구도 뚜렷한 해결책을 주지 못했습니다.

    절망 속에서 이섭은 마지막 희망을 찾아 한양의 가장 오래된 도서관을 찾았습니다. 그곳에는 수백 년 된 고서들이 보관되어 있었고, 그중에는 도깨비와 염라대왕에 관한 책도 있었습니다. 이섭은 밤낮으로 책을 읽었고, 마침내 중요한 단서를 발견했습니다.

    "도깨비는 인간의 영혼을 가져갈 권한이 없다... 오직 염라대왕의 명으로 저승사자만이 그 권한을 갖는다... 도깨비가 영혼을 취하려 할 경우, 염라대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이섭의 눈에 희망의 빛이 보였습니다. 도깨비와의 계약이 유효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생긴 것입니다. 그는 더 많은 정보를 찾기 위해 더 깊이 공부했고, 마침내 도깨비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음악 변화, 시간 경과를 나타내는 소리]

    어느덧 3년의 시간이 거의 다 흘렀습니다. 약속된 날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정씨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졌고, 이섭은 날이 갈수록 초조해졌습니다. 그는 아내에게 자신이 찾아낸 방법을 말했지만, 정씨는 반신반의했습니다.

    "여보, 계약은 계약이에요. 제가 피로 서명했어요. 도깨비는 약속을 지켰고, 이제 제 차례예요."

    "아니오! 나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도깨비가 영혼을 가져갈 권한이 없다면, 그 계약은 무효요. 우리는 염라대왕에게 직접 호소할 것이오."

    그리고 마침내 약속된 그날 밤이 왔습니다. 정씨와 이섭은 함께 북악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이섭은 도깨비를 맞설 준비를 하고 있었고, 정씨는 남편의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지 않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들이 3년 전 정씨가 도깨비를 만났던 그 바위 앞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갑자기 어두워졌습니다. 구름이 달을 가리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습니다. 그리고 멀리서 붉은 불빛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도깨비불이 하나둘 모여들더니, 마침내 도깨비의 형체가 나타났습니다. 3년 전보다 더 크고 위협적으로 보였습니다.

    "약속을 지키러 왔구나, 정씨. 그런데 남편까지 데려왔네? 감동적이군. 작별 인사를 하러 온 거야?"

    이섭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습니다.

    "도깨비, 내 아내를 데려갈 수 없소. 당신은 인간의 영혼을 가져갈 권한이 없소."

    도깨비의 눈이 위험하게 빛났습니다.

    "뭐라고? 우리는 계약을 맺었다. 그녀는 피로 서명했다. 계약은 계약이야!"

    도깨비는 붉은 계약서를 공중에 펼쳐 보였습니다. 그 위에는 확실히 정씨의 피로 그려진 문양이 있었습니다.

    "이 계약에 따라, 나는 네 목숨을 3년 연장해주었다. 이제 그녀의 영혼은 내 것이다."

    이섭은 두려웠지만 굳건히 서 있었습니다.

    "도깨비, 내가 알기로 인간의 영혼은 오직 염라대왕의 명령에 따라 저승사자만이 가져갈 수 있소. 당신은 그 권한이 없소."

    도깨비의 얼굴이 일그러졌습니다. 분노로 인해 그의 주변 공기가 뜨거워졌습니다.

    "어리석은 인간! 네가 무슨 책을 읽었던 간에, 계약은 계약이다! 그녀는 자발적으로 동의했고, 나는 내 몫을 다했다!"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숲 속이 싸늘하게 변했고, 바람이 멈췄습니다. 달빛마저 사라지고, 온 세상이 고요해졌습니다. 그리고 멀리서 검은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검은 갓을 쓰고, 붉은 명부를 든 저승사자가 천천히 그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의 얼굴은 하얀 천으로 가려져 있었고, 오직 두 눈만이 차갑게 빛났습니다.

    "정씨 부인, 시간이 되었소."

    저승사자의 목소리는 바람처럼 고요했지만, 모두의 귓가에 또렷이 들렸습니다. 이섭은 저승사자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잠깐, 저승사자님. 제 아내를 데려갈 수 없습니다. 그녀의 영혼은 도깨비와 계약된 것이지, 염라대왕의 명령이 아닙니다."

    저승사자가 당황한 기색을 보였습니다. 그는 붉은 명부를 펼쳐보더니 곧 얼굴이 굳어졌습니다.

    "이상하군. 분명 오늘 정씨의 수명이 다하는 날로 기록되어 있는데... 도깨비와의 계약이라고?"

    저승사자는 도깨비를 향해 돌아섰습니다. 그의 눈빛만으로도 주변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도깨비, 설명해보거라. 네가 어찌하여 인간의 영혼에 개입한 것이냐?"

    도깨비는 저승사자 앞에서도 기를 쓰고 맞섰습니다.

    "나는 그저 거래를 한 것뿐이야. 이 여인의 남편이 병으로 죽어가고 있었고, 그녀는 그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내게 바치기로 했어. 나는 그저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뿐이야."

    저승사자는 차갑게 웃었습니다.

    "도깨비 녀석, 네가 어찌 감히 인간의 수명에 개입하느냐! 이는 명백히 염라대왕님의 권한을 침해한 것이다!"

    "흥, 나는 그저 거래를 한 것뿐이야. 이 여인이 자발적으로 동의했어. 계약은 신성한 것이야."

    저승사자와 도깨비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두 초자연적 존재 사이의 대립은 산 전체를 뒤흔드는 듯했습니다. 나무들이 흔들리고, 바위가 진동했습니다. 이섭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두 분, 이 일은 반드시 염라대왕님께서 직접 판결하셔야 할 문제가 아닙니까? 인간의 수명과 영혼에 관한 일이니..."

    저승사자와 도깨비는 동시에 이섭을 바라보았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저승사자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네 말이 옳다. 이 일은 염라대왕님께 상정해야겠다. 평범한 인간이 아니로구나, 윤 선비."

    도깨비는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저승사자의 결정에 반대할 수 없었습니다.

    "좋아, 염라대왕에게 가자. 하지만 계약은 계약이야. 염라대왕도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거야."

    저승사자는 손을 들어 공간을 가르자, 그 사이로 어둡고 깊은 통로가 열렸습니다. 그것은 마치 밤하늘의 별들이 가득한 심연처럼 보였습니다.

    "따라오너라. 저승으로 가는 길이다."

    이섭은 망설임 없이 정씨의 손을 잡고 그 통로로 걸어갔습니다. 도깨비도 그들 뒤를 따랐습니다. 통로 속으로 들어서자, 그들은 이상한 감각을 느꼈습니다. 몸이 가벼워지고, 공기가 희박해지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주변으로 모호한 형체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것은 저승으로 향하는 영혼들이었습니다.

    "눈을 감고 걸어라. 너희는 아직 살아있는 몸이니, 저승의 모습을 직접 보면 위험하다."

    저승사자의 말에 따라 이섭과 정씨는 눈을 감았습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걸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 곳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인간 세계와 달랐습니다.

    "이제 눈을 떠도 좋다."

    눈을 떴을 때, 그들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거대한 궁전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 궁전은 붉은 기와로 덮여 있었고, 문은 용과 봉황으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주변에는 수많은 저승사자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고, 명부를 들고 다니는 관리들도 보였습니다.

    "이곳이 염라대왕의 심판대이다. 들어가라."

    저승사자의 인도로 그들은 커다란 문을 통과했습니다. 안으로 들어서자, 길고 넓은 홀이 나타났습니다. 홀 끝에는 높은 단상이 있었고, 그 위에 웅장한 옥좌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옥좌에 앉아있는 존재가 바로 염라대왕이었습니다.

    염라대왕은 인간보다 훨씬 컸습니다. 키가 세 길은 되어 보였고, 얼굴은 푸르스름했으며, 머리에는 왕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의 눈은 마치 깊은 연못처럼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했습니다. 그의 앞에는 거대한 책이 펼쳐져 있었는데, 그것은 모든 인간의 생사가 기록된 생사부였습니다.

    "어찌된 일인가? 왜 살아있는 인간들이 저승에 왔느냐?"

    염라대왕의 목소리는 천둥처럼 홀 안에 울려 퍼졌습니다. 이섭과 정씨는 그 위엄에 압도되어 몸을 떨었습니다.

    저승사자가 한 걸음 나서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도깨비의 계약, 정씨의 희생, 그리고 이섭의 항변까지. 염라대왕은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서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도깨비, 네가 먼저 말해보아라. 어찌하여 내 허락도 없이 인간의 수명에 개입했느냐?"

    도깨비는 당당하게 대답했습니다.

    "대왕님, 저는 그저 거래를 제안했을 뿐입니다. 이 여인이 자발적으로 동의했고요. 게다가 저는 그녀의 남편에게 3년의 시간을 더 주었습니다. 이는 제 능력으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염라대왕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러나 네게는 인간의 영혼을 가져갈 권한이 없다. 그것은 오직 나와 저승사자들의 권한이다."

    도깨비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계약은 계약입니다! 그녀는 피로 서명했습니다!"

    염라대왕은 손짓을 하여 도깨비를 제지했습니다.

    "인간 여인 정씨, 이제 네가 말해보아라. 어찌하여 그런 위험한 계약을 맺었느냐?"

    정씨는 떨리는 다리로 앞으로 나섰습니다. 그녀는 염라대왕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존귀하신 염라대왕님, 제가 그런 계약을 맺은 것은 오직 제 남편을 살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날 운명이었고, 저는 그를 잃을 수 없었습니다.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를 살리고 싶었습니다."

    염라대왕은 그녀의 말을 진지하게 들었습니다.

    "네 마음은 이해한다. 사랑은 때로 인간을 무모하게 만든다. 그러나 인간의 수명은 하늘이 정한 것이니, 그것을 바꾸려는 시도는 천도를 거스르는 일이다."

    이번에는 이섭이 앞으로 나섰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염라대왕을 향해 깊이 절했습니다.

    "대왕님, 제발 제 아내를 살려주십시오. 모든 잘못은 제게 있습니다. 제가 아프지 않았다면, 아내는 그런 위험한 계약을 맺지 않았을 것입니다. 차라리 저를 대신 데려가십시오. 제가 아내 대신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염라대왕은 이섭을 유심히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눈에 이상한 빛이 어렸습니다.

    "흥미롭군. 너희 둘 다 서로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겠다고 하는구나."

    염라대왕은 옆에 있던 커다란 생사부를 펼쳐 보았습니다. 그는 이섭과 정씨의 이름을 찾아 오랫동안 살펴보았습니다. 페이지를 넘기고 또 넘기며, 그들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운명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홀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습니다. 도깨비는 초조한 듯 발을 구르고 있었고, 저승사자는 차분히 염라대왕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섭과 정씨는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마지막 심판을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염라대왕이 생사부를 덮고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표정이 어려 있었습니다.

    "내가 많은 세월 동안 수많은 영혼을 심판해왔지만, 이토록 서로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 부부는 처음 보는구나."

    염라대왕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의 키는 더욱 크게 느껴졌고, 그의 목소리는 더욱 깊어졌습니다.

    "들으라, 나의 판결이니. 도깨비, 네가 이미 이 남자에게 3년의 시간을 주었으니 그것은 인정하겠다. 그러나 이 여인의 영혼은 네가 가져갈 수 없다."

    도깨비의 얼굴이 일그러졌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녀의 피로 서명한 계약이!"

    염라대왕이 손을 들어 도깨비를 제지했습니다.

    "계약은 무효다. 너에게는 그런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영혼을 다루는 권한은 오직 나와 저승사자들에게만 있다."

    염라대왕은 붉은 계약서를 손에 들고 찢었습니다. 그 순간, 계약서에서 붉은 연기가 피어올랐고, 그것은 곧 사라졌습니다.

    "더구나, 이 여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이를 위해 희생하려 했다. 그런 순수한 마음은 귀하니, 나는 그것을 존중한다."

    그리고 염라대왕은 이섭과 정씨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너희 둘, 서로를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은 매우 드물다. 내가 특별히 너희 두 사람 모두에게 40년을 더 살 수 있는 시간을 주겠다."

    이섭과 정씨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기쁨의 눈물이 고였습니다.

    "단, 조건이 있다. 너희가 받은 이 선물을 다른 이들과 나누어야 한다. 40년 동안 너희는 어려운 이들을 돕고, 사랑을 나누며 살아야 한다. 그것이 이 선물의 대가다."

    부부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왕님. 반드시 그렇게 살겠습니다."

    도깨비는 분노했지만, 염라대왕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섭에게 속삭였습니다.

    "운이 좋았군, 인간. 하지만 기억해라. 나와 맺은 계약은 언젠가는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염라대왕이 도깨비를 날카롭게 노려보았습니다.

    "충분하다, 도깨비. 네가 더 이상 이 인간들을 괴롭힌다면, 내가 직접 너를 심판할 것이다. 이제 가라!"

    도깨비는 마지못해 물러났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부부에게 증오의 눈길을 던지고는 붉은 불꽃으로 변해 사라졌습니다.

    염라대왕은 다시 이섭과 정씨를 향해 말했습니다.

    "이제 너희는 인간 세계로 돌아가라. 저승사자가 너희를 안내할 것이다. 그리고 기억하거라. 삶은 귀중한 선물이니,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다른 이들과 나누어라."

    이섭과 정씨는 깊이 고개를 숙여 염라대왕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리고 저승사자의 인도로 다시 저승의 문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음악 전환, 희망찬 멜로디]

    저승에서 인간 세계로 돌아오는 길은 생각보다 짧았습니다. 마치 꿈을 꾸었던 것처럼, 그들은 어느새 북악산의 그 바위 앞에 서 있었습니다. 달빛이 밝게 비추고 있었고, 바람은 산들거렸습니다. 모든 것이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여보, 우리... 정말 살아 돌아온 거예요?"

    정씨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그녀의 손은 따뜻했고, 심장은 힘차게 뛰고 있었습니다.

    "그런 것 같소. 염라대왕님이 우리에게 40년을 더 주셨으니... 우리는 그 약속을 지켜야 할 것이오."

    이섭은 아내의 손을 잡고 미소 지었습니다. 그들은 천천히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가슴 속에는 새로운 결심이 자리 잡았습니다.

    다음 날부터 이섭과 정씨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작은 초가집을 가난한 이들의 쉼터로 개방했습니다. 이섭은 글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무료로 글을 가르쳤고, 정씨는 병든 이들을 위해 약초를 구해 약을 지어주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들의 이야기는 마을 전체로 퍼져 나갔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도깨비 부부'라고 불렀습니다. 위기에 처한 사람들 앞에 갑자기 나타나 도움을 주고는 사라진다는 의미에서였지요.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바뀌고,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섭과 정씨의 머리카락은 하얗게 변했고, 얼굴에는 주름이 깊게 패었지만, 그들의 눈빛은 여전히 젊은 시절과 같이 맑고 따뜻했습니다.

    그들은 아이를 갖지 못했지만, 마을의 모든 아이들이 그들의 자식과 같았습니다. 그들이 가르치고 돌보았던 아이들은 모두 자라서 훌륭한 어른이 되었고, 그들 역시 이섭과 정씨의 가르침을 따라 어려운 이들을 도우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40년이 지난 어느 봄날 아침, 매화꽃이 만발한 날이었습니다. 이섭과 정씨는 작은 마당에 앉아 차를 마시며 꽃을 감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습니다.

    "여보, 40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갈 줄 몰랐소."

    "네, 염라대왕님의 선물 덕분에 우리는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요."

    그들은 손을 맞잡고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마당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습니다. 저승사자가 그들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저승으로 갈 준비가 되셨습니까?"

    이섭과 정씨는 서로를 바라보고 미소 지었습니다. 그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염라대왕님께서 직접 영접하실 것입니다."

    저승사자의 말에 부부는 안심했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부드럽게, 마치 잠이 들듯이, 그들의 영혼은 육신을 떠났습니다.

    저승에 도착한 이섭과 정씨는 염라대왕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염라대왕은 그들을 향해 미소 지었습니다.

    "약속을 지켰구나. 너희의 삶을 지켜보았다. 너희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사랑을 나누어주었다. 이제 너희는 저승에서도 함께할 것이다. 그리고 특별히 상급 저승 조력자의 직위를 주겠다. 이제부터 너희는 인간 세계와 저승 사이를 오가며, 선한 영혼들을 인도하는 일을 맡게 될 것이다."

    이섭과 정씨는 깊이 감사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역할을 기쁘게 받아들였고, 저승에서도 서로 함께하며 영혼들을 돕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날 밤부터 북악산 주변에는 두 개의 도깨비불이 나타나 길 잃은 나그네들을 안전한 곳으로 인도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이섭과 정씨의 영혼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죽은 후에도 여전히 사람들을 돕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그들의 이야기는 전설이 되었습니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그리고 진정한 희생은 어떤 계약보다도 값진 것임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대대로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북악산 깊은 곳에서 누군가 위험에 처하면, 두 개의 푸른 불빛이 나타나 그들을 안전한 곳으로 인도한다고 합니다. 도깨비와 염라대왕의 거래,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영원한 사랑의 이야기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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