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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깨비와 장돌뱅이, 전국을 누비며 웃음을 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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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 멘트

    "도깨비가 사람을 홀린다고요? 천만에요, 이 도깨비는 사람의 마음을 홀랑 뺏어가 버렸답니다. 짐보다 외로움이 더 무거웠던 장돌뱅이 칠성이와 장난꾸러기 도깨비가 만나 조선 팔도를 웃음바다로 만든 기막힌 사연! 무서운 귀신 이야기가 아닌, 가슴 따뜻해지는 두 친구의 우정 여행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오늘 밤, 여러분의 꿈자리에도 벅찬 감동과 웃음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디스크립션 (영상 설명용, 300자 이내)

    봇짐 하나 달랑 메고 정처 없이 떠돌던 장돌뱅이 칠성이에게 어느 날 밤, 특별한 길동무가 생겼습니다. 씨름 한 판 하자며 덤벼들 줄 알았던 도깨비가 칠성이의 말벗이 되고, 짐꾼이 되고, 때로는 최고의 광대가 되어주는데요.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가난하고 힘든 이들에게 웃음을 선물한 '도깨비 유랑단'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팍팍한 세상살이에 지친 여러분께 전하는 따뜻한 위로와 같은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 외로운 봇짐 장수

    해는 이미 서산 너머로 꼬리를 감춘 지 오래였고, 세상은 먹물이라도 엎지른 듯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강원도 깊은 산골,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잡풀이 무성한 굽이진 고갯길 위로 희미한 달빛 한 줄기가 위태롭게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그 좁고 거친 길을 홀로 걷고 있는 사내, 바로 봇짐장수 칠성이었습니다. 그의 등에는 제 몸집보다 훨씬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광목천 봇짐이 들려 있었고, 그 위에는 유기그릇 몇 벌과 짚신 묶음이 층층이 쌓여 있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달그락, 달그락’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 소리는 마치 칠성의 앙상한 등뼈가 으스러지며 내는 비명처럼 들렸습니다.

    숨은 턱 밑까지 차올라 목구멍에서 쇠 맛이 났고, 다 닳아빠져 뒤꿈치가 훤히 드러난 짚신 사이로 삐져나온 발가락은 차가운 밤이슬에 젖어 이미 감각을 잃은 지 오래였습니다. 칠성이는 땀으로 흥건히 젖은 이마를 훔치며 잠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손에 쥔 낡은 지팡이에 온 체중을 싣고 허리를 펴보려 했지만, 하루 종일 짓눌려 있던 관절은 ‘우두둑’ 소리만 낼 뿐 시원하게 펴지지 않았습니다. 칠성이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 보름달이 오늘따라 유난히 밝고 둥글어, 칠성의 눈에는 그 모습이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내려다보며 비웃는 얼굴처럼 보였습니다.

    "에구, 내 팔자야... 남들은 날이 저물면 처자식 기다리는 따뜻한 아랫목 생각에 발걸음이 날개 돋친 듯 빨라진다는데, 나는 어찌 된 놈의 팔자가 반겨주는 이 하나 없어 이 밤중에도 달님만 벗 삼아 걷고 있단 말이냐."

    칠성의 한숨 섞인 혼잣말이 허공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는 평생을 길 위에서 보냈습니다. 봄이면 꽃이 피는 마을로, 가을이면 추수하는 마을로, 발길 닿는 대로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지만 정작 제 몸 하나 편히 뉘일 집 한 칸이 없었습니다. 낮에는 장터의 왁자지껄한 소음에 섞여 외로움을 잊는 척했지만, 파장 후 모두가 흩어지고 난 뒤 찾아오는 밤의 침묵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돈을 많이 번 날은 기뻐야 마땅하건만, 칠성이는 전대가 묵직해질수록 오히려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린 듯 더 시려왔습니다. '이 돈을 모아 무엇하나, 맛있는 음식을 사도 나누어 먹을 입이 없고, 비단 옷을 사도 입혀줄 사람이 없는 것을.' 칠성이는 씁쓸한 마음에 품속을 뒤적거려 아침에 먹다 남은 식은 주먹밥 한 덩이를 꺼냈습니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밥덩이가 마치 자신의 처지 같아 목이 메었습니다.

    산짐승이라도 튀어나올까 두려운 산길이었지만, 칠성이는 차라리 호랑이라도 만나 이 지긋지긋한 외로움과 싸우는 편이 낫겠다는 엉뚱한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그림자가 마치 귀신이 손짓하는 것처럼 기괴하게 일렁였지만, 칠성이는 그보다 달빛 아래 길게 늘어진 자신의 그림자가 더 쓸쓸하고 처량해 보여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가 오늘따라 구슬프게 들리는 것은 아마도 칠성의 마음이 울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다시금 지팡이를 고쳐 쥐고, 무거운 봇짐을 추스르며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갔습니다.

    ※ 기묘한 만남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깔딱고개를 힘겹게 넘어, 마침내 고갯마루에 있는 성황당 돌무덤 앞에 다다랐을 때였습니다. 칠성이는 다리쉼이라도 할 요량으로 짊어지고 있던 봇짐을 '쿵' 하고 내려놓고 넓은 바위 위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긴장이 풀리자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러댔습니다.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어디선가 쿰쿰한 흙냄새와 함께 물비린내 섞인 묘한 냄새가 칠성의 코끝을 스쳤습니다. 그것은 산짐승의 누린내와는 달랐고, 사람의 땀 냄새와도 확연히 다른, 난생처음 맡아보는 낯선 기운이었습니다.

    "킁킁... 이게 무슨 냄새지? 비가 오려나..."

    칠성이가 코를 킁킁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릴 때, 성황당 뒤편 아름드리 느티나무의 짙은 그림자 속에서 시커먼 형체 하나가 '쑥' 하고 솟아올랐습니다. 바람 한 점 없는 밤이었는데 느티나무 잎사귀들이 요란하게 흔들렸습니다. 칠성이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아 "헉!" 하고 숨을 들이켜며 뒤로 넘어질 뻔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황급히 지팡이를 움켜쥐고 잔뜩 웅크린 채 그 형체를 노려보았습니다.

    달빛이 구름을 벗어나며 그 형체를 환하게 비추자, 칠성의 눈동자가 공포로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산적이나 호랑이가 아니었습니다. 헝클어진 머리칼은 마치 빗자루 몽당이 같았고, 그 사이로 삐죽 솟은 뿔 하나가 달빛을 받아 번들거렸습니다. 숯덩이처럼 검은 피부에 눈은 부리부리하게 뜨고 있었는데, 입은 귀 밑까지 찢어져 험상궂기 짝이 없었습니다. 거적때기 같은 옷을 대충 걸치고 손에는 울퉁불퉁한 방망이를 든 그것은, 할머니의 옛날이야기 속에서나 듣던 '도깨비'가 분명했습니다.

    "히히히... 어이, 칠성이! 이 밤중에 낑낑대며 어딜 그리 급하게 가나?"

    도깨비가 대뜸 칠성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습니다. 목소리는 쇠를 긁는 듯 거칠었지만, 묘하게 장난기가 섞여 있었습니다. 칠성이는 오금이 저려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은 간절했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도깨비는 칠성의 봇짐을 툭툭 건드리더니, 칠성의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었습니다.

    "심심해서 죽을 지경이었는데 마침 잘 만났네. 나랑 씨름이나 한 판 할까? 네가 이기면 고개 넘겨주고, 내가 이기면... 네 놈 간을 좀 봐야겠는데?"

    도깨비가 입맛을 다시며 킬킬거렸습니다. 칠성이는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평생 고생만 하다가 이제 객지에서 도깨비 밥이 되어 죽는구나 싶어 서러움이 북받쳤습니다. 하지만 극한의 공포 속에서 문득 묘한 오기가 생겼습니다. 어차피 죽을 목숨, 배고픔이나 면하고 죽자는 생각이 스친 것입니다. 칠성이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품속 깊숙이 넣었습니다. 도깨비는 칠성이가 무기라도 꺼내는 줄 알고 움찔하며 뒷걸음질 쳤습니다.

    하지만 칠성의 손에 들려 나온 것은 무기가 아니었습니다. 장터 국밥집 할머니가 "가는 길에 출출하면 먹으라"며 싸주신, 묵직하고 차가운 메밀묵 한 모였습니다.

    "아... 아이고, 도깨비님. 씨름은 무슨... 내 놈은 며칠을 굶어 씨름할 힘도 없소. 어차피 죽을 거면 이 묵이나 같이 나눠 먹고 죽읍시다. 혼자 먹다 죽으면 체할 것 같아서 그러오."

    칠성이는 체념한 목소리로 메밀묵을 도깨비 앞으로 쑥 내밀었습니다. 난데없는 묵 대접에 도깨비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수백 년을 살면서 비명을 지르거나 기절하는 인간은 수도 없이 보았지만, 먹을 것을 권하는 인간은 난생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도깨비는 칠성의 얼굴과 메밀묵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침을 '꼴깍' 하고 삼켰습니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도깨비의 코를 자극했습니다.

    "이거... 나 주는 거야? 정말?"

    도깨비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거두지 않으면서도, 손은 이미 메밀묵을 향해 뻗고 있었습니다. 칠성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도깨비는 덥석 묵을 받아 들고는 한 입 크게 베어 물었습니다.

    "우물우물... 쩝쩝..."

    탱글탱글한 메밀묵이 도깨비의 입안에서 으깨지며 넘어가는 소리가 적막한 산속에 요란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묵을 씹을 때마다 도깨비의 표정이 변했습니다. 처음엔 경계심 가득하던 눈매가 점점 풀어지더니, 나중에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황홀한 표정으로 바뀌었습니다. 입가에 묻은 묵가루를 혀로 핥으며 도깨비가 외쳤습니다.

    "크아! 맛있다! 이거 뭔데 이렇게 살살 녹냐? 야, 너 제법인데? 사람 놈이 겁도 없이 도깨비한테 밥을 다 주고!"

    도깨비가 덩실덩실 춤을 추며 좋아하자, 칠성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공포심은 어느새 눈 녹듯 사라지고 기이한 호기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무시무시한 괴물인 줄만 알았던 도깨비가 고작 메밀묵 하나에 저리 좋아하는 꼴을 보니, 왠지 동네의 철없는 바보 형님 같기도 하고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달빛 아래, 봇짐장수와 도깨비가 나란히 앉아 입가에 묵을 묻히고 서로를 바라보는 기묘하고도 운명적인 밤이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습니다.

    ※ 동행의 시작

    어느새 칠성이의 손바닥 위에 놓여 있던 큼지막한 메밀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도깨비는 아쉬운 듯 손가락에 묻은 참기름 향까지 킁킁거리며 맡고는, 만족스러운 트림을 '꺼억' 하고 내뱉었습니다. 배가 부르니 그제야 서로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칠성이는 도깨비의 툭 튀어나온 뿔이 생각보다 둥글둥글하게 생겼다고 생각했고, 도깨비는 칠성이의 주름진 눈가가 제법 선해 보인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바탕 먹자판이 끝나자 다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지만, 이전의 공포 섞인 침묵과는 결이 달랐습니다. 밤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부드럽게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먼저 입을 뗀 건 칠성이었습니다. 그는 밤하늘에 희미해져 가는 별을 올려다보며 툭, 하고 속마음을 던졌습니다.
    "도깨비님, 아니, 거... 그쪽도 참 외로웠나 봅니다. 천하의 도깨비가 고작 묵 한 조각에 그리 좋아 날뛰는 걸 보니 말이오."
    그 말에 도깨비는 무릎을 끌어안으며 뾰로통하게 대꾸했습니다.
    "말도 마라. 사람들은 날 보면 기겁을 하고 도망치거나, 몽둥이 찜질을 하려 든다고. 개중에는 내 방망이를 훔쳐 부자가 되겠다는 고약한 놈들뿐이었지, 너처럼 '같이 먹자'고 말해준 놈은 지난 삼백 년 동안 단 한 놈도 없었다."
    도깨비의 목소리에는 장난기 뒤에 숨겨진 깊은 옹이 같은 외로움이 묻어있었습니다. 삼백 년이라... 칠성이는 그 까마득한 세월 동안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 채 어두운 산속을 배회했을 도깨비의 처지가, 마치 장터를 떠돌며 사람들 틈에 섞이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요. 봇짐 하나 메고 팔도강산을 다 밟아봤지만, 정작 내 마음 뉘일 곳은 없더이다. 좋은 물건을 팔아 돈을 벌면 뭐 하겠소. 저녁이면 주막 뒷방에서 혼자 찬밥이나 말아 먹는 신세인걸. 그래서 나는 가끔 내 그림자한테 말을 건다오. '칠성아, 오늘도 욕봤다' 하면서 말이오."
    칠성의 쓸쓸한 고백에 도깨비가 칠성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인간 세상에서 소외된 장돌뱅이와 영물들의 세상에서 겉돌던 도깨비. 서로 다른 모습의 두 존재는 '고독'이라는 공통된 언어로 통하고 있었습니다. 도깨비가 슬그머니 칠성이 옆으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습니다.

    "야, 칠성아. 너 내 친구 해라."
    도깨비의 뜬금없는 제안에 칠성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친구? 도깨비랑 사람이랑 친구를 한다고?"
    "왜? 싫냐? 내가 친구 해주면 너 심심하지도 않을 거고, 내가 힘도 세니까 짐도 들어줄 수 있잖아. 대신... 묵은 네가 매일 사줘라."
    도깨비가 쑥스러운 듯 코를 비비며 말했습니다. 칠성이는 기가 막혀 '허허' 웃음이 터졌습니다. 하지만 그 웃음은 비웃음이 아니라,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오랜만에 솟아오르는 따뜻한 안도감이었습니다.
    "좋소! 까짓것, 도깨비 친구 한번 사귀어 봅시다. 이름도 없이 '야', '너' 할 순 없으니, 내가 이름 하나 지어주리다. 도깨비니까... '깨비' 어떤가? 깨비!"
    "깨비? 깨비... 흐음, 좀 촌스러운 것 같기도 한데... 뭐, 입에 착 붙긴 하네. 좋다! 나는 이제 깨비다!"

    깨비가 아이처럼 좋아라 하며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습니다. 그때,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며 첫 닭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왔습니다. 깨비가 화들짝 놀라며 칠성의 등 뒤로 숨었습니다.
    "으악! 해 뜬다! 나 햇빛 받으면 힘 빠지는데!"
    칠성이는 급히 봇짐을 열어 놋그릇 사이의 빈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이리 들어오시오! 놋그릇 틈새라 좁긴 하겠지만 햇빛은 피할 수 있을 게요."
    깨비는 칠성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연기처럼 흐물거리더니 봇짐 속 놋그릇 사이로 쏙 빨려 들어갔습니다. 칠성이는 봇짐 뚜껑을 단단히 여미고 다시 지게를 짊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분명 놋그릇에 도깨비까지 들어갔으니 더 무거워야 마땅한데, 봇짐이 마치 솜털처럼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칠성이는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물리적인 무게가 줄어든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지난 수십 년간 어깨를 짓누르던 천근만근 같은 '고독'의 무게가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것을요. 칠성이는 힘차게 지팡이를 내디뎠습니다. "가자, 깨비야!" 봇짐 안에서 "그래, 가자 친구야!" 하는 웅웅거리는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거친 고갯길이 비단길처럼 느껴지는, 눈부신 아침이었습니다.

    ※ 신통방통 도깨비

    칠성이와 깨비가 함께하는 여정은 매일매일이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깨비는 단순히 짐 속에 숨어있는 얌전한 식객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칠성이의 고단한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요술방망이 그 자체였습니다.
    한여름 땡볕이 가마솥처럼 끓어오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져 칠성이가 "아이고, 더워 죽겠네" 하고 혼잣말을 하자, 갑자기 봇짐 속에서 서늘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마치 깊은 산속 얼음골에서 불어오는 듯한 찬 바람이 칠성의 목덜미를 휘감아 돌았습니다. 칠성이가 놀라 뒤를 돌아보자, 투명하게 모습을 감춘 깨비가 커다란 부채를 들고 킬킬거리며 부채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칠성이는 시원하다 못해 오싹한 그 바람에 땀을 식히며 껄껄 웃었습니다.
    또 갑작스런 소나기가 퍼부을 때면, 깨비는 길가에 핀 연잎을 뚝 꺾어다가 집채만큼 크게 불려 칠성의 머리 위를 덮어주었습니다. 빗소리가 '토독토독' 연잎을 두드리는 소리는 그 어떤 악기 소리보다 듣기 좋은 음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대단한 건, 전설로만 듣던 '축지법'이었습니다. 다음 장터까지 가려면 꼬박 사흘을 걸어도 모자랄 험한 산길 앞에서 칠성이가 한숨을 쉬자, 깨비가 봇짐 밖으로 고개를 쑥 내밀었습니다.
    "꽉 잡아라! 혀 깨물라!"
    깨비가 칠성의 짚신 뒤축을 잡고 주문을 외우자, 칠성의 몸이 붕 뜨는가 싶더니 주위 풍경이 휙휙 지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발이 땅에 닿지 않고 구름 위를 걷는 듯한 몽롱한 기분, 산들이 순식간에 뒤로 밀려나고 강물이 눈 깜짝할 새에 발아래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반나절도 안 되어 목적지에 도착한 칠성이는 다리가 후들거려 주저앉으면서도, 벅찬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은 심술궂기로 소문난 주막 주인을 혼쭐낸 일도 있었습니다. 해가 저물어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하는 칠성에게, 주인은 칠성의 행색이 남루하다며 소금을 뿌리고 문전박대를 했습니다.
    "재수 없게 어디 거지가 와서 기웃거려! 썩 꺼져!"
    주인의 고함에 칠성이가 씁쓸하게 돌아서려는데, 봇짐 안에서 깨비의 씩씩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런 못된 놈은 혼구멍을 내줘야 해!"
    그날 밤, 주막 부엌에서는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가마솥 뚜껑이 저절로 솥 안으로 쑥 들어가 버려 밥을 지을 수 없게 되었고, 마당에 있던 빗자루와 몽당연필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으악! 귀신이다! 살려주세요!"
    주막 주인이 혼비백산하여 속옷 바람으로 도망치는 꼴을 보며, 칠성이와 깨비는 배를 잡고 뒹굴었습니다.
    "봤냐? 내 솜씨가 어떠냐?"
    깨비가 으스대며 묻자, 칠성이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답했습니다.
    "천하제일일세! 내 십 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네!"
    단순히 짐을 덜어주는 것을 넘어,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 통쾌한 한 방을 날려주는 깨비. 칠성이는 그런 깨비가 무서운 요물이 아니라, 장난기 많고 의협심 넘치는 든든한 동생처럼 느껴졌습니다. 칠성의 봇짐 속에는 팔 물건뿐만 아니라, 깨비와 나누는 이야기, 그리고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차곡차곡 쌓여갔습니다. 고단했던 장사 길은 이제 세상 구경을 하는 신나는 유람이 되었고, 그들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새로운 전설이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 장터의 명물

    소문은 발 없는 말이 되어 천 리를 간다더니, 칠성이와 깨비에 대한 이야기는 바람을 타고 삽시간에 조선 팔도로 퍼져나갔습니다. ‘봇짐장수 칠성이가 뜨는 곳에는 기이한 복이 넝쿨째 굴러들어온다더라’, ‘우울증 걸린 며느리도 칠성이네 판을 보면 웃다가 턱이 빠진다더라’ 하는 소문에, 칠성이가 마을 어귀에 나타나기만 하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습니다. 어느 화창한 장날, 넓은 마당에는 이미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칠성이는 멍석을 깔고 그 위에 형형색색의 물건들을 진열해 놓은 뒤, 허리춤에서 낡은 소리북을 꺼내 힘차게 두드렸습니다.

    "자, 골라 골라!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칠성이네 만물상이 왔소! 오늘 보여드릴 구경거리는 돈 주고도 못 보는, 도깨비도 울고 갈 신통방통한 요술 쇼!"

    칠성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북소리가 빨라지자,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잦아들고 호기심 어린 눈빛들이 집중되었습니다. 칠성이가 허공을 향해 윙크를 날리자, 투명하게 모습을 감춘 깨비가 드디어 활동을 개시했습니다. 갑자기 칠성이가 바닥에 놓아둔 놋그릇들이 저절로 ‘챙그랑’ 소리를 내며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마치 저글링을 하듯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의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어, 어? 저게 뭐여? 귀신 곡할 노릇이네!"
    놀라움도 잠시, 이번에는 깨비가 장난기가 발동했습니다. 구경하던 깐깐한 김 대감의 갓을 슬쩍 들어 올려 허공에서 춤을 추게 만들고, 엿장수의 가위를 빼앗아 제멋대로 ‘철커덕철커덕’ 리듬을 타게 만들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갓이 춤을 추고 가위가 노래를 부르니, 장터는 순식간에 웃음바다로 변했습니다.

    "깔깔깔! 저기 좀 봐! 김 대감 상투가 다 보이네!"
    "아이고 배야, 내 평생 저런 구경은 처음일세!"

    사람들이 배꼽을 잡고 쓰러질 듯 웃자, 칠성이는 덩달아 신이 나서 어깨춤을 추며 추임새를 넣었습니다.
    "얼쑤! 좋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고, 웃는 집에 복이 들어오는 법! 자, 이 빗으로 머리를 빗으면 근심 걱정이 빗자루질 하듯 싹 쓸려 내려갑니다!"
    사실 그 빗은 평범한 참빗이었지만, 칠성의 입담과 깨비의 신묘한 재주가 더해지니 마치 천하의 보물처럼 보였습니다. 깨비는 사람들 사이를 람쥐처럼 재빠르게 오가며, 울고 있는 아이의 주머니에 몰래 사탕을 넣어주기도 하고, 다리가 아픈 할머니의 지팡이를 살짝 들어 부축해 주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칠성의 도술이라 믿었지만, 사실은 깨비의 따뜻한 장난이었습니다.

    장터의 소란스러움 속에서 칠성이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물건을 사는 것은 단순히 물건이 필요해서가 아니라는 것을요. 팍팍한 삶에 지쳐 웃음을 잃어버린 그들에게, 자신과 깨비는 잠시나마 시름을 잊게 해주는 청량제 같은 존재였던 것입니다. 칠성이가 파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위로'였고, 사람들이 지불하는 돈은 그 '행복'에 대한 값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공연은 계속되었고, 칠성이의 전대는 두둑해졌지만, 그보다 더 가득 찬 것은 사람들의 환한 미소를 바라보는 칠성이와 깨비의 벅찬 마음이었습니다.

    ※ 눈물을 닦아주다

    늦가을, 찬 서리가 내리기 시작할 무렵 도착한 어느 산골 마을은 유난히 분위기가 무겁고 스산했습니다. 며칠 전 칠성이가 들렀던 활기찬 장터와는 딴판이었습니다. 긴 가뭄 끝에 흉년이 들어 마을 사람들의 얼굴은 누렇게 떠 있었고, 곳간은 텅 비어 쥐새끼 한 마리 얼씬하지 않았습니다. 마을 어귀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 앞을 지나는데, 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칠성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엄마... 배고파... 엄마 일어나..."
    열려진 방문 틈으로 보니, 젊은 어미는 병이 깊어 식은땀을 흘리며 누워 있었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이가 어미의 옷자락을 붙잡고 울고 있었습니다. 칠성이는 차마 그 모습을 똑바로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때, 봇짐 속에서 깨비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평소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아닌, 화가 잔뜩 난 목소리였습니다.

    "야, 칠성아. 나 정말 화나서 못 참겠다. 저승사자 놈들은 뭐 하느라 저런 착한 사람들을 안 살피고 내버려 둔대냐?"
    칠성이는 잠시 망설였습니다. 그동안 봇짐 속에 차곡차곡 모아둔 돈은 자신의 노후를 위해, 아니 평생 가져보지 못한 '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피땀 흘려 모은 전 재산이었습니다. 하지만 칠성이는 주먹을 꽉 쥐었다가, 이내 스르르 풀었습니다. 돈은 다시 벌면 되지만, 생명은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 법이니까요.
    "깨비야. 우리 오늘 장사는 접고, 거하게 돈 좀 써보자. 네가 좀 도와다오."

    그날 밤, 마을에는 아무도 모르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칠성이는 읍내로 달려가 쌀가마니와 고기, 그리고 가장 좋은 약재를 사들였습니다. 지게가 부러질 듯 무거웠지만, 깨비가 도술로 무게를 없애준 덕분에 날듯이 나를 수 있었습니다. 칠성이와 깨비는 잠든 마을 사람들의 집집마다 쌀과 고기를 몰래 놓아두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그 초가집. 깨비는 누워있는 어미의 머리맡에 앉아, 산신령 몰래 훔쳐왔다는 귀한 산삼을 달여 놓고, 자신의 손을 어미의 이마에 얹었습니다.
    "에잇! 아프지 마라! 썩 물러가라!"
    깨비의 손끝에서 푸르스름한 기운이 흘러나와 어미의 몸으로 스며들었습니다. 그러자 창백하던 어미의 볼에 서서히 혈색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깨비의 활약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말라버린 마을 우물가로 달려간 깨비는 땅을 발로 쿵쿵 구르며 주문을 외웠습니다. 그러자 깊은 땅속에서부터 '꾸르륵' 소리가 나더니, 맑은 물이 콸콸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또, 잎이 다 떨어진 마을 어귀의 감나무에는 믿을 수 없게도 탐스러운 붉은 홍시들이 주렁주렁 열리게 만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마을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문을 열고 나온 사람들은 자기 집 앞에 놓인 식량과, 물이 넘치는 우물, 붉게 물든 감나무를 보며 꿈을 꾸는 줄 알았습니다.
    "아이고, 하느님 감사합니다! 산신령님이 도우셨나 봅니다!"
    아이의 어미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아이를 꼭 껴안고 우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칠성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깨비는 쑥스러운 듯 코를 훌쩍이며 칠성의 어깨에 기대었습니다.
    "흥, 메밀묵 사 먹는 것보다 기분은 좀 더 좋네."
    두 친구는 빈털터리가 되었지만, 세상 그 어떤 부자보다 마음만은 풍족했습니다.

    ※ 정착과 보름달의 약속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러, 어느덧 강산이 변한다는 십 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검던 칠성의 머리칼에는 하얀 눈이 내려앉았고, 꼿꼿하던 허리는 조금 굽어졌습니다. 더 이상 무거운 봇짐을 지고 전국의 산천을 누비기에는 칠성의 무릎이 '삐걱'거리며 비명을 질렀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깨비는 칠성을 위해 마지막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물 맑고 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언덕, 깨비는 밤새 뚝딱뚝딱 도술을 부려 튼튼한 기와집 한 채를 지어 올렸습니다. 그리고 마을에서 마음씨 곱기로 소문난 과부 댁과 칠성의 인연을 맺어주기 위해, 꿈속에 나타나 점지해 주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야 칠성아, 이제 그만 돌아다니고 여기서 살아라. 나도 이제 너 따라다니기 귀찮다."
    깨비는 짐짓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칠성이는 그 속에 담긴 깊은 우정을 알기에 말없이 깨비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렇게 평생을 떠돌던 장돌뱅이 칠성에게도 드디어 '가정'이라는 따뜻한 울타리가 생겼습니다. 아내와 함께 텃밭을 일구고, 마당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칠성의 얼굴에는 더 이상 예전의 고독한 그림자가 없었습니다.

    칠성이가 정착하던 날, 깨비는 인간과 함께 살 수는 없다며 홀연히 떠났습니다.
    "나는 이제 자유다! 다른 산에 가서 호랑이 꼬리나 잡고 놀아야지!"
    그렇게 씩씩하게 사라졌지만, 그들의 인연이 그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칠성이는 식구들이 잠든 틈을 타 뒷산 정자로 올라갔습니다. 잘 익은 막걸리 한 병과 깨비가 제일 좋아하는 탱글탱글한 메밀묵 한 접시를 차려놓고 기다리면, 어김없이 바람 소리와 함께 익숙한 형체가 나타났습니다.
    "어이, 칠성이! 묵 많이 가져왔냐?"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동안의 깨비와, 주름이 자글자글한 칠성이는 밤새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거, 아래 마을 최 부자 놈 말이다. 곳간에 쌀이 썩어나가는데 소작농들한테는 쌀 한 톨 안 푼다며?"
    깨비가 볼멘소리로 투덜거렸습니다. 칠성이는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며 껄껄 웃었습니다.
    "안 그래도 내 그럴 줄 알고, 최 부자 놈 겁 좀 줄 계획을 세워뒀지. 자네, 다음 보름에 도깨비불 놀이 좀 해야겠네."
    "오호라! 그거 재미있겠는데? 곳간 문을 활짝 열어버릴까?"

    비록 몸은 예전처럼 함께 유랑하지 못하지만, 보름달 아래 두 친구는 여전히 뜨거운 청춘이었습니다. 칠성의 지혜와 깨비의 도술을 합쳐, 세상의 그늘진 곳을 살피고 억울한 이들을 도와줄 계획을 세우는 시간. 칠성이는 깨비가 있어 늙어가는 것이 서글프지 않았고, 깨비는 칠성이가 있어 영원한 삶이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친구야, 다음 달 보름에도 늦지 말고 오게."
    "걱정 마라. 내 도깨비 방망이 챙겨서 올 테니!"
    달빛 아래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하나로 포개지며, 그들의 아름다운 우정은 밤하늘의 별처럼 영원히 빛나고 있었습니다.

    유튜브 엔딩 멘트

    "여러분, 오늘 들려드린 장돌뱅이 칠성이와 도깨비 깨비의 이야기, 어떠셨나요? 외로움이라는 무게를 짊어진 두 존재가 만나,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며 세상을 따뜻하게 밝히는 모습이 참 아름답지 않으셨나요? 칠성이는 비록 봇짐을 내려놓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보름달이 뜨면 어디선가 깨비와 만나 어려운 이웃을 도울 행복한 궁리를 하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혹시 여러분의 삶이 조금 고단하고 외롭다고 느껴지시나요? 그렇다면 오늘 밤, 창문을 열고 밤하늘의 달을 한번 올려다보세요. 어쩌면 칠성이와 깨비가 여러분을 위해 작은 행복을 배달하러 오는 중일지도 모르니까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소소한 기쁨들이 사실은 누군가의 따뜻한 장난일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해봅니다.
    오늘 이야기가 마음에 드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꾹 눌러주시고, 댓글로 여러분에게 힘이 되어주는 '나만의 도깨비' 같은 존재는 누구인지 남겨주세요. 저는 다음에도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 줄 따뜻한 옛날이야기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편안한 밤, 행복한 꿈 꾸세요.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