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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깨비의 마지막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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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스크립션

    탐욕스러운 도사가 도깨비에게 배운 도술로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다 마지막 가르침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이야기

    1

    백운산 깊은 골짜기, 인적 하나 없는 밤길을 한 도사가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달빛이 구름에 가려 희미해질 때마다 그의 발걸음은 더욱 조심스러워졌지요.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3년 만에 찾아오는 도술의 마지막 날이었으니까요. 도사의 손에는 도깨비를 부르기 위한 제물이 들려있었습니다. 붉은 약밥과 정화수, 그리고 도깨비가 특히 좋아한다는 볏짚으로 엮은 새끼줄까지.

    도사의 눈빛이 달빛에 번쩍였습니다. 저 멀리 바위 틈 사이로 푸르스름한 도깨비불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3년 전, 바로 이 자리에서 그는 우연히 도깨비를 만났지요. 아니, 어쩌면 우연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날도 이런 달밤이었고, 그는 욕심에 눈이 멀어 산신령의 제단에서 제물을 훔치려다 길을 잃고 말았으니까요.

    "스승님..." 도사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수년간 도깨비에게 배운 비술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물을 술로 바꾸는 술법, 돌멩이를 은돈으로 바꾸는 술법, 그리고 남의 꿈속에 들어가는 술법까지.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습니다. 도사의 마음속 욕망은 끝이 없었지요.

    커다란 바위 앞에 도착한 도사는 제물을 차렸습니다. 달빛이 바위의 이끼를 비추자 그 아래로 숨어있던 동굴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동굴 입구에는 수백 년 된 듯한 등나무 덩굴이 드리워져 있었고, 이슬을 머금은 덩굴 잎사귀들이 달빛에 반짝였습니다.

    도사는 촛불을 켜고 향을 피웠습니다. 향연이 달빛 속으로 흩어질 때마다 주변의 공기가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이제 곧 도깨비가 나타날 것입니다. 도사의 눈앞에서 푸른 도깨비불이 춤추기 시작했고, 동굴 안쪽에서는 기이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2

    동굴 안쪽에서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도사의 등골이 오싹해졌지요. 아무리 많은 비술을 배웠다 한들, 도깨비 앞에서는 여전히 한낱 범부에 지나지 않았으니까요. 도깨비불이 점점 커지더니, 그 불빛 속에서 키 큰 도깨비의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스승님, 이제 마지막 비술을 가르쳐 주시옵소서." 도사는 공손히 절을 올렸지만, 그의 눈빛에는 감출 수 없는 탐욕이 서려있었습니다. 수년간 배운 도술들로도 성이 차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는 밤마다 돌멩이로 은돈을 만들어 재물을 모았고, 물을 술로 바꾸어 장사꾼들을 속였으며, 남의 꿈속에 들어가 비밀을 캐내곤 했습니다.

    도깨비는 도사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습니다. 달빛이 도깨비의 얼굴을 비추자 그의 표정이 더욱 기괴하게 일그러졌습니다. 눈썹은 흐트러진 빗자루 같았고, 눈동자는 깊은 못처럼 푸르렀으며, 입가에는 기묘한 미소가 걸려있었지요.

    "스승님, 제발..." 도사가 다시 한 번 간청했습니다.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비술만 배우면 더 이상 도깨비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을 터. 그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요. 이미 마을에서는 그를 신비한 도사로 추앙하고 있었고, 덕분에 적지 않은 재물도 모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습니다. 더 큰 힘, 더 큰 부와 명예를 원했던 것이지요.

    도깨비는 천천히 도사에게 다가왔습니다. 그의 발자국 소리는 마치 천둥처럼 울렸고, 지나간 자리마다 도깨비불이 피어올랐습니다. 달빛은 점점 희미해지고, 주변은 도깨비불의 푸른빛으로 가득 찼습니다. 이제 도사의 운명이 결정될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3

    도깨비는 한동안 말없이 도사를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눈동자에는 수백 년의 세월이 깃들어 있었지요. 도깨비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가르친 도술로 도사가 마을 사람들을 어떻게 괴롭혀 왔는지를.

    지난 보름날, 과부 김씨의 집에서 들려온 통곡 소리. 도사가 꿈속으로 들어가 죽은 남편의 모습으로 나타나 묻어둔 재물의 위치를 속삭였다지요. 과부는 그 돈을 꺼내 도사에게 바쳤고, 그날 이후 실성한 사람처럼 달빛만 보면 울부짖는다고 합니다.

    장터의 주막에서는 도사가 만든 술로 취한 상인들이 재물을 잃었습니다. 그 술에는 이상한 힘이 있어, 마시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도사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들었다고 하지요. 상인들은 스스로 돈을 내놓고도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어린 아이들의 이야기였습니다. 도사는 돌멩이로 만든 은돈을 아이들에게 건네며 어른들의 비밀을 캐내게 했지요. 순진한 아이들은 그 돈으로 과자를 사려다 관아에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도사는 어디에도 없었지요.

    도깨비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습니다. 산속 바위에 스며든 이끼처럼, 도사의 마음속에도 욕심이라는 이끼가 켜켜이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가난을 벗어나고 싶다던 도사가, 이제는 남의 불행을 즐기기까지 하다니.

    달빛이 구름에 가려지자 도깨비의 모습이 점점 커져갔습니다. 그의 그림자는 이제 산등성이를 덮을 만큼 거대해졌고, 주변의 도깨비불들은 마치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도사는 그제서야 자신이 지난 3년간 저지른 일들이 모두 도깨비의 눈에 비쳤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지요.

    4

    동굴 안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점점 더 거세졌습니다. 도깨비의 눈빛이 푸른 불꽃처럼 타오르더니,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습니다. "좋소. 하지만 이번엔 약속을 하나 해야 하오. 이 술법은 오직 선한 일에만 쓰겠다고 맹세하시오."

    도깨비의 목소리는 마치 천 개의 종소리가 울리는 것처럼 동굴 안을 울렸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주변의 도깨비불들이 일제히 흔들렸고, 달빛은 더욱 차갑게 빛났지요. 이것은 단순한 제안이 아니었습니다. 도깨비는 마지막 기회를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도사의 귓가에 마을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과부 김씨의 흐느낌, 속은 상인들의 한숨, 그리고 겁에 질린 아이들의 울음소리까지. 하지만 그는 이미 양심이란 것을 저 깊은 산속 어딘가에 묻어두었지요. 그의 마음속에는 오직 더 큰 힘을 얻고자 하는 욕망만이 가득했습니다.

    도깨비는 도사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습니다. 그의 발걸음 소리는 마치 둥둥 울리는 북소리 같았고, 땅을 밟을 때마다 이상한 푸른 꽃들이 피어올랐다가 사라졌습니다. 달빛은 마치 도깨비의 편이라도 되는 양, 그의 위용을 더욱 기이하게 비추고 있었지요.

    "맹세하시오." 도깨비가 다시 한 번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그의 목소리에 어떤 슬픔이 묻어있는 듯했습니다. 수백 년을 살아온 도깨비는 이미 도사의 선택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욕심이란 것이, 한번 자라기 시작하면 그 끝을 알 수 없다는 것도 말입니다.

    주변의 도깨비불들이 마치 촛불처럼 일제히 흔들렸고, 달빛은 점점 더 차가워졌습니다. 이제 도사의 선택만이 남았습니다.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것인가, 아니면 끝없는 탐욕의 길을 걸을 것인가. 그 순간, 도사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5

    도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혔고, 떨리는 손으로 도포자락을 움켜쥐었지요. "물론이지요, 스승님. 제가 어찌 악한 일에 쓰겠습니까?" 거짓말이 그의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습니다.

    도사의 마음속에는 이미 어둠이 가득했습니다. 마지막 비술을 배우기만 하면, 더 이상 이렇게 구차하게 도깨비 앞에서 굽신거리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도깨비의 힘마저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의 눈앞에는 이미 화려한 미래가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양반들의 재물은 물론이요, 관아의 곡식창고며, 심지어는 그 높고 높은 임금님의 보물창고까지... 이 비술이 있다면 무엇인들 못 훔치겠습니까. 도사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가 사라졌습니다.

    "스승님의 은혜, 평생 잊지 않겠나이다." 도사가 공손히 절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간교한 기운이 서려있었지요. 마치 독사가 먹이를 노리듯, 그의 눈빛은 날카로웠습니다.

    도깨비불이 흔들릴 때마다 도사의 그림자도 일그러졌습니다. 달빛은 그의 진짜 모습을 비추려는 듯 차갑게 빛났지만, 도사는 이미 자신의 욕망이라는 동굴 속 깊숙이 숨어들어가 있었지요.

    주변의 나무들이 한숨 쉬듯 흔들렸고, 밤바람은 쓸쓸하게 울었습니다. 도깨비는 도사의 마음속 거짓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마치 운명처럼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의 업보를 깨닫게 하는 또 다른 방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6

    도깨비는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습니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푸른빛이 피어올랐고, 그 빛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춤을 추기 시작했지요. "이제 마지막 비술을 전하겠소." 도깨비의 목소리가 깊은 산속을 울렸습니다.

    도깨비는 도사의 앞으로 다가와 그의 이마에 손가락을 댔습니다. 순간 도사의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고, 머릿속으로 수천 개의 형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새가 되어 하늘을 나는 모습, 물고기가 되어 강을 헤엄치는 모습, 그리고 나비가 되어 꽃밭을 날아다니는 모습까지.

    "이 술법을 써서 자신의 모습을 바꿀 수 있지만, 진정한 본모습은 달빛에 비치면 드러나게 되지요." 도깨비가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달은 거짓을 비추는 거울이요. 아무리 뛰어난 술법이라도 달의 눈을 속일 순 없다오."

    도사의 몸 안으로 기이한 기운이 흘러들어왔습니다. 마치 천 개의 바늘로 온몸을 찌르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가 사라졌고, 이어서 달콤한 황홀감이 전신을 감쌌습니다. 도깨비의 비술이 그의 피와 살 속으로 스며드는 순간이었지요.

    주변의 도깨비불들이 일제히 춤을 추기 시작했고, 달빛은 더욱 차갑게 빛났습니다. 바위 틈에서는 이상한 바람이 불어나왔고, 풀잎들은 한숨 쉬듯 흔들렸습니다. 도깨비의 눈빛이 슬픔으로 가득 찼지만, 도사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가르침을 주었소." 도깨비가 천천히 물러섰습니다. 그의 모습이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고, 주변의 도깨비불들도 하나둘 사그라들었습니다. 하지만 도사의 귓가에는 도깨비의 마지막 말이 여전히 맴돌고 있었습니다. '달빛에 비치면 드러나게 되지요...'

    7

    이튿날부터 도사의 악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움직였지요. 가난한 선비로 변신해 마을 부잣집 곳간을 둘러보고, 과부의 모습으로 변해 아낙네들의 수다 속에서 비밀을 캐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점점 그의 욕심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습니다.

    어느 날, 도사는 마침내 큰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먼 고을에서 온다는 암행어사로 변신한 것입니다. 검은 갓을 쓰고 붉은 옷자락을 휘날리며 관아로 들어서는 그의 모습은 위엄이 넘쳤지요. "암행어사 출두요!" 그가 외치자 관아 마당이 순식간에 술렁였습니다.

    현감은 얼굴이 창백해져서 엎드렸고, 아전들은 부리나케 뛰어다니며 장부를 챙겼습니다. 도사는 위엄 있는 목소리로 명령했지요. "백성들의 재물을 횡령했다는 소문이 있어 조사하러 왔소. 곡식창고와 은둔을 모두 열어보시오."

    아전들이 떨리는 손으로 창고 문을 열자, 도사의 눈이 번쩍였습니다. 쌓여있는 곡식들과 은돈자루들... 그의 마음속 탐욕은 더욱 깊어져만 갔습니다. "이 모든 것을 조사하여 임금님께 직접 보고하겠소. 나머지는 모두 물러가시오!"

    홀로 남은 도사는 재빨리 보따리에 은돈을 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손놀림이 날렵했지요. 하지만 그때, 구름 사이로 달빛이 새어 들어왔습니다. 도사는 흠칫 놀라 하늘을 올려다보았지만, 이내 코웃음을 쳤습니다. '이까짓 달빛 따위가 무슨 상관이랴.'

    이렇게 도사는 고을마다 돌아다니며 재물을 긁어모았습니다. 때로는 암행어사로, 때로는 도둑맞은 상인으로, 또 때로는 멀리서 온 양반으로 변신하며 사람들을 속였지요. 그의 주머니는 점점 불러갔고, 그의 마음속 욕심도 함께 부풀어 올랐습니다.

    8

    보름달이 뜨는 밤이었습니다. 도사는 이번에도 암행어사로 변신하여 한양으로 가는 길이었지요. 그동안 모은 재물로는 부족했던 걸까요? 이제는 임금님의 보물창고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달빛은 유난히 밝았고, 그의 발걸음은 의기양양했습니다.

    한양으로 가는 길목에는 장터가 있었습니다. 보름날이라 장이 늦게까지 열렸고, 달빛 아래서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지요. 도사는 위엄 있는 걸음걸이로 장터를 지나갔습니다. 검은 갓과 붉은 관복, 그리고 위풍당당한 모습에 사람들은 저절로 길을 비켜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때였습니다. 달빛이 구름 사이로 쏟아져 내리자, 도사의 그림자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요. 하지만 점점 그의 그림자는 기이하게 일그러지더니, 마침내 추악한 도깨비의 모습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뿔이 달린 머리, 날카로운 이빨, 길게 늘어진 팔다리... 그의 그림자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렸습니다. 달빛이 그림자를 더욱 선명하게 비추었고, 이제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볼 수 있었지요.

    "저기 좀 보시오! 저 그림자가 이상하지 않소?" 한 상인이 손가락질하며 외쳤습니다. 순식간에 모든 시선이 도사의 그림자로 쏠렸습니다. 누군가가 "도깨비다!" 하고 소리치자, 장터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지요.

    도사는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아무리 몸을 움직여도, 그림자는 여전히 도깨비의 모습이었습니다. 도깨비의 마지막 경고가 귓가에 울렸습니다. '진정한 본모습은 달빛에 비치면 드러나게 되지요...'

    9

    "저것 봐라! 저자는 도깨비로구나!" 장터 한가운데서 터진 외침에 순식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몇몇이 수군거리다가, 이내 수십 명이 달빛 아래 선 도사를 둘러쌌지요. 그의 그림자는 여전히 도깨비의 모습으로 달빛 아래 춤추듯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장사꾼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커져갔습니다. "저번 달에 우리 마을에 왔던 양반이... 그자와 똑같이 생기지 않았소?" 한 곡물장수가 말했습니다. "맞다! 우리 고을에선 암행어사로 나타나 곡식창고를 털어갔지!" 다른 상인이 외쳤지요.

    사람들의 기억이 하나둘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한 노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제 보니 한 달 전, 우리 마을에 찾아온 과객도 저자였구나. 귀한 먹을거리를 내어주었더니 밤새 온 마을 창고를 텅텅 비워갔지..."

    분노한 사람들이 도사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섰습니다. "저놈을 잡아라!" 누군가가 외치자, 장터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지요. 등불과 횃불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고, 달빛은 더욱 차갑게 빛났습니다.

    도사는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사방이 꽉 막혀있었습니다. 누군가 던진 돌이 그의 갓을 맞췄고, 붉은 관복이 흙먼지를 뒤집어썼습니다. "이 도깨비 같은 놈! 우리 재산을 모조리 돌려내라!"

    달빛은 점점 더 밝아졌고, 도사의 그림자는 이제 완연한 도깨비의 모습이었습니다. 뿔이 달린 머리, 길게 늘어진 팔다리,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채 씩씩거리는 괴물 같은 그림자... 그것은 마치 도사의 탐욕스러운 내면이 그대로 드러난 것만 같았습니다.

    10

    도사는 달빛을 피해 도망치려 했습니다. 장터 사람들의 분노한 고함 소리를 등지고, 그는 좁은 골목길로 몸을 숨겼습니다. 붉은 관복자락이 허공을 갈랐고, 검은 갓은 어느새 땅에 떨어져 굴러갔지요.

    하지만 달빛은 집요했습니다. 골목길 모퉁이를 돌 때마다 달빛이 그를 따라왔고, 담벼락에 비친 그림자는 여전히 도깨비의 모습이었습니다. 도사는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렸습니다. "제발... 제발 그만!" 그가 절규했지만, 달빛은 더욱 밝아질 뿐이었지요.

    도사는 민가의 처마 밑으로 숨어들었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에 보름달이 당당하게 걸려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처마 끝을 타고 흐르는 달빛이 그의 발끝에 닿았고, 도깨비 그림자가 벽에 드리워졌습니다.

    "여기 있다!" 누군가가 외치자 다시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숲으로 달렸지요. '나무 그늘이라면... 나무 그늘이라면 달빛을 피할 수 있을 거야...' 도사의 발걸음은 점점 더 거칠어졌습니다.

    하지만 달빛은 나뭇잎 사이로 스며들었고, 그의 그림자는 나무 여러 개에 걸쳐 더욱 크게 비췄습니다. 이제는 마치 거대한 도깨비가 숲 전체를 덮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도사는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왜... 왜 이러는 것이냐!" 도사가 하늘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그때 도깨비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울렸습니다. '진정한 본모습은 달빛에 비치면 드러나게 되지요...' 그제서야 도사는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탐욕이 만들어낸 괴물 같은 모습을, 달빛은 그저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는 것을.

    11

    결국 도사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더 이상 도망칠 곳도, 숨을 곳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지요. 그가 처음 도깨비를 만났던 그 바위 앞에 다시 무릎을 꿇었습니다.

    달빛은 여전히 그를 비추고 있었지만, 이제 도사는 더 이상 달빛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달빛 아래 자신의 그림자를 똑바로 바라보았지요. 그림자 속 도깨비의 모습은 그의 탐욕과 어리석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도사는 자신이 훔친 모든 재물을 지고 마을로 돌아갔습니다. 한 보따리, 한 보따리를 주인을 찾아 돌려주었지요. 처음에는 사람들이 그를 경계했지만, 진심 어린 사과와 뉘우침을 보며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과부 김씨의 집 앞에서는 사흘을 꼬박 무릎 꿇고 앉아있었고, 관아의 곡식창고 앞에서는 일주일을 땅바닥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달이 차고 기울기를 반복하는 동안, 그의 모습은 점점 초라해졌지만 마음만은 맑아져 갔지요.

    마지막 재물을 돌려주고 난 뒤, 도사는 백운산 깊은 곳에 작은 암자를 짓고 수행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비술을 부리지 않았고, 오직 참회의 기도만을 올렸지요. 달이 뜨면 바위 앞에 앉아 자신의 그림자와 대화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세월이 흘러 도사의 머리가 하얗게 센 어느 날, 그의 그림자는 더 이상 도깨비의 모습이 아니었답니다. 달빛 아래 비친 그림자는 평범한 수행자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지요. 그제서야 도사는 진정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12

    그 후로 백운산 근처 마을에서는 달이 밝은 밤이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산속 깊은 곳에서 도깨비가 나타나 춤을 춘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도깨비는 사람들을 해치거나 홀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달빛 아래서 "진정한 모습은 숨길 수 없다"는 말을 되뇌며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마치 누군가에게 깨달음을 전하려는 듯이 말입니다. 춤추는 도깨비의 모습은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즐거워 보였다고 하지요.

    이상한 것은 그 도깨비가 나타나는 날이면 마을 사람들의 잃어버린 물건들이 저절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과부의 잃어버린 반지가 문턱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아이들이 잃어버린 장난감이 마당에 놓여있기도 했지요.

    더욱 신기한 것은, 그 도깨비가 나타나는 날이면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 욕심도 조금씩 사라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싸움별이던 형제가 웃으며 화해하고, 돈 때문에 다투던 이웃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지요.

    마을 사람들은 이제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일부러 달빛 아래 나와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본다고 합니다. 그림자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마음속 탐욕과 이기심을 돌아보는 것이지요.

    어떤 이는 그 도깨비가 바로 도사의 영혼이라 말합니다.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영원히 전하기 위해 이 세상에 남은 것이라고. 그래서일까요? 달이 밝은 밤이면 지금도 백운산에서는 "진정한 모습은 숨길 수 없다..."는 도깨비의 노랫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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