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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깨비의 아이디어로 대박난 서생 [기문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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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밤마다 장터를 뒤집어놓던 심술쟁이 도깨비, 그 녀석을 씨름으로 이겨버린 가난한 서생이 있었습니다. 방망이 대신 엉뚱한 아이디어를 들고 나온 도깨비, 그 아이디어 하나가 서생의 인생을 통째로 바꿔버렸다면? 조선 장터를 뒤흔든 전설적인 창업 신화, 지금부터 들어보시겠습니까?

    ※ 1: 심술쟁이 도깨비와 뒤집어진 장터

    조선 후기, 한양 도성 밖 오일장이 서는 너른 장터. 해가 뜨면 온갖 물건을 파는 상인들의 고함 소리와 손님들의 흥정 소리로 가득 차던 그곳이, 요 며칠 사이 아침마다 이상한 소란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물건들이 밤새 감쪽같이 바꿔치기되는 기이한 일이 연달아 벌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물전 생선이 포목전 비단 위에 얹혀 있고, 옹기전 항아리가 약재상 약초 보자기 한가운데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자기 물건인데 자기 자리에 없고, 분명히 남의 물건인데 자기 자리에 와 있으니 장터 상인들은 아침마다 기가 막혀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래요! 제 명태가 왜 여기 있어요? 이거 비린내가 얼마나 배었는지 아십니까!"

    "저야말로 황당합니다요! 제 비단 필이 어물전에 처박혀 있으니, 이 비린내를 어찌 지우란 말씀이십니까! 이러다 비단 한 필을 다 버리게 생겼소!"

    "어제도 그러더니 오늘 또! 도대체 밤마다 누가 이런 짓을 하는 겁니까? 포졸들은 뭘 한 거요!"

    상인들이 서로 얼굴을 붉히고 목청을 높여보아도, 누가 한 짓인지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포졸들이 나와 밤새 지켜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날이 밝으면 어김없이 물건들은 또 뒤바뀌어 있었습니다. 포졸 대장은 머리를 긁적이며 도포 자락을 여몄습니다.

    "허, 이건 사람 짓이 아닙니다요. 저도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니까요."

    그러자 장터 어귀의 늙은 점쟁이 영감이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칠십은 족히 넘어 보이는 그 영감은, 마치 처음부터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짐짓 태연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허, 이건 사람 짓이 아니여. 도깨비가 심술을 부리는 것이제. 도깨비가."

    "도깨비요?"

    "그렇다니까. 이 장터 터가 원래 도깨비들 노는 자리였어. 장터가 들어서면서 쫓겨난 도깨비가 심술을 부리는 거여. 틀림없어."

    그 말에 상인들이 와락 웅성거렸습니다. 믿는 사람도 있었고 콧방귀를 뀌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쨌든 뾰족한 수가 없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점쟁이 영감의 말을 믿건 안 믿건 간에, 밤마다 벌어지는 이 황당한 사태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해야 했습니다.

    바로 그 장터 어귀를 터덜터덜 걸어가는 청년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 서생 이만복이었습니다. 나이는 스물여섯, 글공부를 한다고는 하지만 과거에는 번번이 낙방하고, 먹고살 길은 막막하여 오늘도 빈속을 달래며 장터 구경이나 하러 나온 참이었습니다. 허름한 도포에 삐딱하게 얹힌 갓, 짚신은 뒤꿈치가 다 닳아 있었지만, 이만복의 눈빛만큼은 총명하고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만복은 상인들이 아우성치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그 자리에 서서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허, 도깨비가 심술을 부린다고? 흥미롭군.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야. 물건을 없애는 것도 아니고, 훔쳐 달아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자리를 바꿔놓기만 한다니. 진짜 악의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재미로 하는 짓 아닐까. 무언가 외로운 녀석이 관심을 끌려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무서워 벌벌 떠는 그 도깨비가, 이만복의 눈에는 왠지 한번쯤 만나볼 만한 상대처럼 느껴졌습니다.

    "총각, 뭘 그렇게 멀뚱히 보고 있소? 이 상황이 구경거리로 보이오?"

    목청 큰 어물전 아주머니가 이만복을 쏘아보며 물었습니다. 이만복은 얼른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닙니다, 어머니. 저는 그저 어찌 된 영문인가 싶어서요. 혹시 밤에 장터를 끝까지 지키는 분은 안 계십니까?"

    "지키긴요! 포졸들도 두 손 들었는데 우리 같은 장사치가 무슨 수로 지킵니까. 귀신도 아니고 도깨비라는데!"

    "그렇군요. 아주머니 생선은 제가 옮겨드리겠습니다."

    이만복은 어물전 명태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으며 속으로 조용히 결심을 굳혔습니다.

    '오늘 밤, 나 혼자 남아보지. 도깨비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겠어. 뭐, 도깨비가 진짜라도 잡아먹기야 하겠어.'

    해가 기울고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했습니다. 상인들이 하나둘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포졸들도 어제처럼 아무것도 못 볼 거라며 일찌감치 자리를 피했습니다. 텅 빈 장터에, 이만복 혼자 빈 지게 뒤에 몸을 숨기고 숨을 죽이며 앉아 있었습니다.

    가을바람이 쓸쓸하게 장터 바닥을 쓸고 지나갔고, 저 멀리 산에서 부엉이 우는 소리가 구슬프게 들려왔습니다. 달이 구름 뒤로 숨자 장터는 갑자기 새까만 어둠에 잠겼습니다. 이만복은 무릎을 끌어안고 숨을 고르게 유지하려 했습니다. 배가 고픈 데다 한기까지 스며드니, 무섭다기보다는 사실 춥고 졸렸습니다.

    '도깨비야, 제발 빨리 나와다오. 나 졸리단 말이야.'

    그리고 그때였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장터 어딘가에서 낄낄낄, 하는 기묘한 웃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발소리도 없이, 그림자도 없이, 그 웃음소리만이 장터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울려 퍼졌습니다. 이만복의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침착하자. 무서운 게 아니야. 그냥 웃음소리잖아. 웃는 도깨비가 사람 잡아먹진 않겠지. 아마도.'

    그 순간이었습니다. 어물전 생선들이 스스로 두둥실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명태며 조기며 북어가 줄줄이 공중에 떠서, 살랑살랑 장터 바닥을 가로질러 포목전 자리로 날아갔습니다. 그 뒤를 이어 비단 필이 두루두루 말린 채 어물전으로 날아들었고, 약재 보따리는 옹기 위에 차곡차곡 내려앉았습니다. 낄낄낄, 낄낄낄. 그 기묘한 웃음소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만복은 숨을 참으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딱 하나의 생각만 했습니다.

    '진짜였구나.'

    ※ 2: 도깨비야, 나와라! 한밤의 씨름 대결

    이만복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습니다. 생선이 날아다니고 비단이 날아다니고 항아리가 두둥실 떠다니는 그 광경은, 꿈도 아니고 환상도 아니었습니다. 낄낄낄 웃음소리는 점점 커졌고, 신이 난 도깨비는 이제 약재 자루까지 공중에 띄워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만복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습니다. 지게 뒤에서 나와 장터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다리가 약간 후들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이를 악물고 허리를 곧게 세웠습니다. 그리고 있는 힘껏 목청을 높여 소리쳤습니다.

    "거기 누구요! 장터에서 이게 무슨 짓이오! 어서 나오시오!"

    순간 모든 것이 멈췄습니다. 날아다니던 물건들이 그 자리에서 뚝 멈춰 허공에 떠 있었고, 웃음소리도 뚝 끊겼습니다. 기묘하고 낯선 침묵이 장터 전체를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이만복 바로 앞, 아무것도 없던 그 자리에서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나타났습니다.

    키가 이만복보다 반쯤 더 크고, 머리는 봉두난발, 눈은 달걀만 하게 크고 노랗게 빛났습니다. 곤봉같이 굵은 팔뚝에, 허리춤에는 울퉁불퉁한 방망이를 차고 있었습니다. 이마에는 커다란 뿔이 하나 삐죽 솟아 있었는데, 그 뿔 끝에 낙엽이 한 장 얌전히 걸려 있는 것이 어쩐지 우스꽝스러워 보였습니다.

    "허억!"

    이만복의 입에서 저절로 소리가 새어 나왔습니다. 그러나 발은 떼어지지 않았습니다.

    "낄낄낄! 사람 새끼가 날 부르다니! 오, 이거 처음 있는 일인데? 다들 나를 보면 엉덩이가 빠져라 도망가기 바빴거든! 근데 너는? 너는 왜 안 도망가냐?"

    도깨비는 이만복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킁킁 냄새를 맡았습니다. 이만복은 그 자리에 서서 눈으로 도깨비를 따라가며, 다리의 떨림을 억지로 누르고 최대한 태연하게 대꾸했습니다.

    "도망을 왜 갑니까. 당신이 저한테 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요. 그런데 말씀 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밤마다 왜 이러시는 겁니까? 장터 상인들이 아침마다 얼마나 고생인지 아십니까?"

    도깨비가 눈을 깜빡였습니다. 그 큰 눈이 깜빡이자 노란 빛이 한 번 출렁였습니다.

    "왜냐고? 심심하니까! 낄낄낄! 물건들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면 아침에 인간들이 바득바득 화내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알아? 그게 나한테는 유일한 낙이거든!"

    이만복은 속으로 잠시 탄식했습니다.

    '아, 이게 진짜 그냥 심심해서 하는 짓이었구나. 이유가 없는 게 이유라니. 이건 말이 통하는 상대이기도 하고, 말이 안 통하는 상대이기도 하겠는걸.'

    그러나 이만복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심심하신 건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저 상인들이 아침마다 얼마나 고생인지 아십니까? 어물 냄새가 밴 비단은 팔 수가 없고, 비단 사이에 끼인 생선은 상해버리지 않습니까. 하루하루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한테는 보통 일이 아닙니다요."

    도깨비는 잠시 멈추더니, 예상 밖으로 머쓱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흠. 그 생각은 못 해봤네. 근데 뭐,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나는 도깨비고 너는 인간이잖아."

    "그러시다면, 한 가지 제안이 있습니다."

    "제안? 인간이 나한테 제안을? 낄낄낄, 재밌는 놈이네. 뭔데?"

    이만복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습니다.

    "씨름입니다. 저와 씨름 한판 하시지요. 제가 이기면 앞으로 이 장터에서 심술은 그만 부리시고, 제가 지면 뭐든 원하시는 걸 드리겠습니다."

    도깨비의 눈이 등잔만 하게 커졌습니다. 그리고 배를 움켜쥐고 몸을 뒤로 젖혀 웃어댔습니다.

    "하하하하! 씨름?! 나한테 씨름을 하자고?! 이 몸집을 보고도?! 낄낄낄! 좋아, 좋아! 받아주지! 오랜만에 진짜 재밌는 인간을 만났군!"

    두 사람은 장터 한가운데에 마주 섰습니다. 달이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며 장터를 환하게 비췄습니다. 허공에 떠 있던 물건들이 스르르 바닥에 내려앉았습니다. 마치 구경을 하겠다는 듯이.

    이만복은 상대의 몸집을 눈으로 재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습니다. 정면으로 힘을 겨뤄서는 이길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만복이 믿을 것은 오직 머리와 빠른 발놀림, 그리고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는 방법뿐이었습니다.

    서로 샅바를 잡았습니다. 도깨비의 손아귀 힘이 어마어마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만복의 허리가 금방이라도 꺾일 것 같았습니다.

    "자, 시작이다!"

    도깨비가 내지르는 힘은 황소 열 마리를 합친 것 같았습니다. 이만복은 버티는 척하면서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계속 방향을 틀었습니다. 도깨비는 힘만 믿고 앞으로만 밀어붙였고, 그 탓에 발이 자꾸 엇갈리며 꼬였습니다. 도깨비가 앞으로 크게 밀어붙이는 순간, 이만복은 오히려 몸을 뒤로 쭉 빼며 힘을 흘려버렸습니다. 도깨비가 중심을 잃고 앞으로 확 기우는 순간, 이만복은 몸을 낮추며 도깨비의 다리를 낚아채듯 번쩍 들어올렸습니다.

    쾅!

    도깨비가 장터 바닥에 등을 대고 내동댕이쳐졌습니다. 흙먼지가 구름처럼 피어올랐습니다. 장터 안의 공기가 잠시 얼어붙는 것 같았습니다. 허공을 올려다보던 도깨비는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더니 뿔 끝에 걸린 낙엽을 떼어내고는 짧게 말했습니다.

    "...졌다."

    도깨비의 목소리에는 분함도, 억울함도 없었습니다. 다만 수백 년 만에 처음 겪어보는 일에 대한 순수한 당혹감 같은 것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만복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허리를 폈습니다. 온몸이 쑤셨지만, 가슴 속에서는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 3: 방망이 대신 아이디어를 주겠다?

    도깨비는 엉덩이를 탁탁 털며 일어나더니 한동안 이만복을 빤히 바라보았습니다. 그 커다란 노란 눈이 이만복의 얼굴을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훑었습니다. 이만복은 시선을 피하지 않고 도깨비를 마주 바라보았습니다.

    잠시 후, 도깨비는 허리춤에서 울퉁불퉁한 방망이를 천천히 풀기 시작했습니다. 이만복의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설마 저게 진짜 요술 방망이인가, 저걸 흔들면 금이 나오고 은이 나온다는 그것인가,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습니다. 그 방망이 하나면 빈털터리 신세를 면할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도깨비는 방망이를 이만복에게 내밀다가, 딱 멈췄습니다.

    "잠깐, 잠깐만."

    "예?"

    "이거 주기가 좀 아깝다. 이게 얼마나 귀한 건지 알아?"

    이만복은 어이가 없어 입을 딱 벌렸습니다.

    "아니, 지셨으면 내놓으셔야지요! 약속을 어기시렵니까?"

    "어기는 게 아니라! 잠깐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거야. 이 방망이 대신에 훨씬 더 좋은 걸 줄 수도 있거든? 사실은 그게 이것보다 훨씬 값지다고."

    이만복은 팔짱을 끼고 도깨비를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도깨비는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있잖아, 나 사실 이 장터에서 아주 오래 살았거든. 수백 년이야, 수백 년. 그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이 물건 사고파는 거 다 봤단 말이야. 뭘 팔면 잘 팔리고, 뭘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어떻게 하면 돈이 팍팍 들어오는지, 나는 그걸 다 알아. 이 방망이로 금 몇 냥 얻는 것보다 그 지식이 훨씬 더 값어치 있을걸?"

    이만복은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수백 년간 장터를 지켜본 도깨비의 눈. 그건 어떤 책에도 없는 이야기일 수 있어. 하지만 방망이를 안 주려고 구라를 치는 건 아닐까? 이 녀석, 꾀가 많아 보이는데.'

    "증거가 있습니까? 당신의 아이디어가 정말 방망이보다 낫다는 증거가요."

    "증거? 낄낄낄, 직접 들어봐. 그러고 나서 네가 판단하면 되잖아."

    도깨비는 그 자리에 쪼그려 앉더니, 장터 바닥에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만복도 맞은편에 쪼그려 앉아 고개를 들이밀었습니다. 한밤중 텅 빈 장터 한가운데서 도깨비와 서생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 그림을 들여다보는 모습은, 누가 봤다면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풍경이었을 것입니다.

    "첫째, 사람들이 장터에 오는 이유가 뭔지 알아? 물건 사러 오는 거 맞아. 근데 그게 다가 아니야. 구경 오는 거야. 신기한 거, 재밌는 거, 처음 보는 거 때문에 발걸음이 당겨지는 거라고. 그러니까 남들 다 파는 거 그냥 팔면 아무 소용없어. 아무도 본 적 없는 방식으로 팔아야 한다고."

    "아무도 본 적 없는 방식이요?"

    "예를 들어, 물건을 팔 때 이야기를 붙이는 거야. 이 항아리는 그냥 항아리가 아니라, 명장 아무개가 사흘 밤낮을 꼬박 불 앞에 앉아 빚은 항아리다, 이 비단은 경상도 어느 산골 할머니가 오십 년 공력을 들여 짠 비단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붙여서 팔면 값을 두 배 세 배 쳐도 손님이 기꺼이 돈을 낸다는 거야. 사람은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사는 거거든."

    이만복의 눈이 반짝였습니다. 그것은 분명 그가 지금까지 읽어온 어떤 책에서도 본 적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과거 시험 공부를 하면서 사서삼경을 달달 외웠지만, 그 안에는 이런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둘째, 빈손으로 온 손님을 그냥 보내면 안 돼. 오늘 당장 돈이 없어도, 일단 이 장터에서 뭔가를 맛보고 가게 만들어야 해. 작은 거 하나라도 공짜로 쥐여줘. 그러면 그 손님은 내일 반드시 돌아온다고. 공짜로 받은 은혜를 갚으려는 게 사람 마음이거든. 그리고 돌아올 때는 빈손으로 오지 않아."

    "공짜를 줘서 더 큰 것을 얻는다는 말씀이시군요."

    "바로 그거야! 역시 총명하네. 그리고 셋째, 물건을 혼자 팔지 말고, 여럿이 함께 팔아라. 어물전, 포목전, 약재상이 따로따로 팔지 말고, 큰 그릇 하나 밑에 다 같이 모이면 각자의 손님이 서로서로의 손님이 되거든. 그 힘이 얼마나 센지 알아? 조선 팔도에서 이름이 알려지는 건 그런 상단이야. 혼자 잘하는 장사가 아니라, 함께 크는 상단."

    이만복은 숨을 천천히 들이쉬었습니다.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맞물려 돌아가는 느낌이었습니다. 가난 때문에, 배경 때문에 번번이 막혔던 길이 조금씩 열리는 것 같은, 그런 기묘한 두근거림이 가슴 속에서 피어올랐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걸 시작하려면 밑천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저는 지금 빈털터리인걸요."

    도깨비는 낄낄 웃으며 방망이를 두어 번 가볍게 두드렸습니다. 장터 귀퉁이 돌 틈에서 엽전 몇 꾸러미가 데굴데굴 굴러나왔습니다.

    "이 정도면 시작하기엔 충분하지. 이건 그냥 주는 거야. 방망이 대신에. 나머지는 네 머리로 해."

    이만복은 엽전 꾸러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도깨비를 올려다보았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해 주시는 겁니까? 지신 것 인정하고 방망이 주시면 그만인데, 이렇게 아이디어에 밑천까지 주시다니요."

    도깨비는 잠깐 눈길을 딴 데로 돌렸습니다. 커다란 눈이 달빛 아래 잠시 흔들렸습니다. 그러다가 아주 조용히, 낄낄거림도 없이 말했습니다.

    "나한테 도망 안 가고, 제대로 눈을 마주치며 말 걸어준 인간이 수백 년 만에 처음이었거든. 그게 마음에 들었다고."

    이만복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예?"

    "베풀어라. 네가 잘되거든 주변에 베풀어라. 그게 진짜 복을 부르는 방법이야. 방망이보다, 아이디어보다, 그게 제일 센 거야."

    그리고 낄낄낄 웃으며 도깨비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바람 한 줄기가 장터를 쓸고 지나갔고, 달빛만이 조용히 남았습니다. 이만복은 엽전 꾸러미를 손에 꼭 쥐고, 텅 빈 장터 한가운데 홀로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별이 유난히 많은 밤이었습니다.

    '좋아. 해보자. 반드시 해보자.'

    ※ 4: 장터를 뒤흔든 조선판 마케팅

    날이 밝았습니다. 이만복은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도깨비에게 받은 엽전 꾸러미를 품에 꼭 안고, 장터가 열리기도 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차가운 새벽 공기 속에서 입김을 호호 불어가며 자리를 펴는 이만복의 눈빛은, 허름한 도포와는 달리 아침 햇살처럼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상인들이 하나둘 나오다가 이만복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어, 어제 장터 어귀에서 서성이던 총각 아니오? 뭘 팔려고요?"

    "네, 오늘부터 장사를 시작해 보려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요."

    "허 참, 뭘 판다는 거요?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왔잖소."

    이만복은 씩 웃었습니다. 그의 손에는 엽전 꾸러미와, 새벽에 가장 먼저 열리는 난전에서 사온 작은 물건들이 있었습니다. 볼품없어 보이는 도자기 찻잔 몇 개, 나무 빗 서너 개, 그리고 작은 꿀단지 하나였습니다. 상인들은 그것을 보더니 피식 웃으며 각자 자기 자리로 흩어졌습니다.

    장터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만복은 물건을 내놓는 대신, 자리 앞에 작은 화로를 피우고 꿀물을 한 솥 끓이기 시작했습니다. 달콤하고 구수한 냄새가 장터 입구를 가득 채우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코를 킁킁거리며 발걸음을 늦췄습니다.

    "무료로 나눠드립니다! 꿀물 한 잔씩, 그냥 드시고 가십시오!"

    사람들은 어리둥절했습니다. 장터에서 공짜로 뭔가를 준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뭔가 수상하지 않나 싶어 망설이던 사람들도, 앞사람이 맛있게 마시는 것을 보고는 하나둘 줄을 서기 시작했습니다.

    "어머, 진짜 그냥 주는 거예요?"

    "네, 그냥 드시고 가십시오. 오늘 장터에 처음 나온 기념으로 드리는 겁니다."

    "아유, 맛있다! 이 총각 장사 잘되겠네요!"

    사람들이 꿀물을 받아 마시며 자연스럽게 이만복의 자리 앞에 머물렀습니다. 발걸음이 멈추니 눈길이 머물렀고, 눈길이 머무니 손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만복은 꿀물을 건네면서 슬며시 말을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손님, 이 찻잔 좀 보시겠습니까? 이게 보통 찻잔이 아닙니다요. 전라도 강진 출신 도공이, 자기 딸 혼례 선물로 손수 빚다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그 딸이 눈물을 머금고 팔러 내놓은 것입니다. 이 잔으로 차를 마시면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절로 난다 하더군요."

    손님이 찻잔을 집어 들었습니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냥 지나쳤을 평범한 찻잔이었는데, 이야기를 듣고 나니 손에서 선뜻 놓기가 어려웠습니다.

    "얼마요?"

    "다섯 냥입니다."

    "좀 비싸긴 한데... 이야기가 있는 물건이니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네요. 주시오."

    이만복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도깨비의 말이 정확히 들어맞았습니다. 이야기가 붙으니 물건의 값어치가 달라졌습니다. 나무 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빗은 경상도 어느 산골 노인 장인이 오십 년 동안 산벚나무만 깎아온 분이 만든 것인데, 이 빗으로 백 번씩 머리를 빗으면 석 달 안에 머릿결이 달라진다는 소문이 있습니다요."

    "정말요? 저 요즘 머릿결 때문에 걱정이 많았는데!"

    "장담은 못 드립니다만, 저한테 들어온 물건이 워낙 적어서, 오늘 다 나가면 다시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요."

    그 말에 손님은 얼른 빗을 품에 넣었습니다. 이만복은 웃음이 나오는 것을 꾹 참았습니다.

    '도깨비 어르신, 정말 대단하십니다.'

    날이 저물 무렵, 이만복이 가지고 온 물건은 하나도 남김없이 팔려나갔습니다. 처음 투자한 엽전의 세 배가 넘는 돈이 손에 들어왔습니다. 이만복은 그 돈을 다시 굴렸습니다. 이튿날에는 더 다양한 물건을 가지고 나왔고, 꿀물 대신 식혜를 끓여 내놓았습니다. 사흘째에는 아예 화로 옆에 작은 찰떡을 구워 나눠주었습니다. 이만복의 자리는 어느새 장터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이만복의 자리에 몰리다 보니, 자연히 주변 상인들의 장사가 예전만 못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신기하게 구경하던 상인들이, 며칠이 지나자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저 총각, 뭔 수작을 부리는 거요? 공짜로 뭔가를 나눠주고 이야기를 지어붙여 물건을 팔다니, 이거 정상적인 장사가 아니잖소!"

    "맞소 맞소! 손님을 꾀어서 파는 거 아니오? 우리 장터 질서를 흐리는 것 아니냐고요!"

    포목전 주인, 떡장수 아주머니, 약재상 영감이 나란히 몰려와 이만복의 자리 앞에 버텼습니다. 이만복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염려하시는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요. 그런데 제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어르신들 장사가 요즘 잘 안 되는 이유가 저 때문입니까, 아니면 장터에 손님 자체가 줄었기 때문입니까?"

    상인들이 서로 눈치를 보았습니다. 사실 장터 손님은 전보다 더 늘어 있었습니다. 이만복의 꿀물과 식혜 소문을 듣고 오는 사람들이 늘면서, 덩달아 다른 가게에도 발길이 이전보다 잦아졌습니다. 포목전 주인이 말끝을 흐렸습니다.

    "그, 그건 그렇지만..."

    "제 생각에는 저 혼자 잘 파는 것보다, 어르신들과 함께 더 크게 파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제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저녁 장이 파하거든 잠깐 자리를 같이 해주시겠습니까?"

    그날 저녁, 이만복은 상인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도깨비에게 들은 세 번째 이야기를 조근조근 꺼냈습니다. 각자 따로 팔지 말고, 함께 하나의 상단을 이루어 힘을 합치자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의심하고 망설이던 상인들도, 이만복이 조목조목 이유를 설명하자 하나둘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완강하던 포목전 주인이 마지막으로 무릎을 탁 치며 말했습니다.

    "좋소! 한번 해봅시다. 잃을 것도 없잖소!"

    "감사합니다, 어르신들.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상인들이 하나둘 악수를 나누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 웃음소리가 텅 빈 장터에 울려 퍼지는 동안, 저 멀리 어둠 속 어딘가에서 낄낄낄, 하는 소리가 아주 작게 들려왔습니다. 이만복만 빼고는 아무도 듣지 못한 소리였습니다.

    장터 한복판에 만복상단의 깃발이 올라가는 데는, 그로부터 보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 5: 대형 상단의 주인이 되다

    만복상단의 소문은 장터를 넘어 한양 도성 안까지 퍼져나갔습니다. 공짜로 먹을 것을 나눠주고, 물건마다 이야기가 담겨 있으며, 포목에서 어물, 약재에서 옹기까지 한자리에서 다 살 수 있다는 소문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인근 고을에서도 사람들이 줄지어 몰려들었고, 만복상단의 자리는 날이 갈수록 넓어졌습니다.

    이만복은 번 돈을 꼬박꼬박 다시 상단에 쏟아부었습니다. 좋은 물건을 더 멀리서 들여왔고, 함께 하는 상인들에게도 넉넉하게 이익을 나눠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며 참여했던 상인들이 이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더 좋은 물건을 떼어오고, 더 정성스럽게 손님을 대했습니다.

    그러나 이만복이 무엇보다 공을 들인 것은 물건도 돈도 아니었습니다. 사람이었습니다.

    장터에서 일하는 짐꾼이며 심부름꾼이며, 누구 하나 함부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밥 한 끼라도 먹이고, 궂은 날에는 처마 밑에서 쉬게 하고, 누가 아프면 약값도 보태주었습니다. 한겨울에는 장터 귀퉁이에 큰 가마솥을 내걸고 죽을 끓여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상단 식구들이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주인장, 좋은 일이긴 한데 이렇게까지 하셔야 합니까? 돈이 너무 많이 나가는 것 아닙니까?"

    이만복은 국자로 죽을 젓다가 씩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이 죽 한 그릇 얻어먹은 사람이 다음 장날에 꼭 돌아옵니다. 빈손으로 오는 법이 없더이다요."

    상단 식구들이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한 것은 그로부터 한 달 뒤였습니다. 겨울 내내 죽을 얻어먹던 사람들이 봄이 오자 너도나도 만복상단의 단골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친척을 데려왔고, 어떤 이는 자기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왔습니다. 베풂이 가장 강한 장사 수단이 된 것이었습니다.

    이만복의 이름 석 자는 이제 더 이상 낙방 서생의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장터 사람들 사이에서 이만복은 어느새 '만복 서방'이 아니라 '만복 대인'으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였습니다. 장터가 한창 북적이는 시각, 만복상단 앞에 작은 소란이 일었습니다. 짐을 가득 실은 수레 하나가 좁은 길목에서 한쪽으로 기울어지면서, 위에 쌓아올린 보자기 꾸러미들이 와르르 쏟아진 것이었습니다. 수레를 끌던 하인이 당황해서 허둥대는 사이,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바쁘다는 듯 비켜서거나 못 본 척 지나쳤습니다.

    이만복은 두말없이 뛰어나갔습니다. 쏟아진 꾸러미들을 하나씩 집어 수레 위에 올리기 시작했고, 이만복의 모습을 본 상단 식구 몇도 따라나서 손을 보탰습니다. 꾸러미를 다시 단단하게 묶어 올려놓고 나서야, 이만복은 수레 뒤에 서 있던 사람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연두색 저고리에 옥색 치마, 단정하게 빗어 올린 머리. 나이는 이만복보다 서너 살 아래로 보였습니다. 수줍은 듯 눈을 살짝 내리깔면서도, 또렷하고 맑은 눈빛으로 이만복을 바라보던 그 처녀가 조용히 고개를 숙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큰 낭패를 면했습니다."

    "별말씀을요. 다치신 데는 없으신지요?"

    "예, 괜찮습니다. 저는 윤 참봉 댁 딸 윤서희라고 합니다."

    이만복은 얼떨결에 자기 이름을 댔습니다.

    "저는 만복상단의 이만복이라 합니다."

    그러자 처녀의 눈이 약간 커졌습니다.

    "아, 요즘 소문 자자한 만복상단의 주인분이시군요. 저도 아버지 심부름으로 약재를 사러 온 참이었는데, 이런 곳에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하인들이 수레를 다시 정렬하는 동안, 이만복과 윤서희는 짧은 말을 몇 마디 더 나눴습니다. 장터의 물건이며 날씨며 하는 것들이었지만, 이만복은 그 짧은 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습니다. 처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또렷하고 조리 있었으며, 웃을 때는 눈가에 주름이 살짝 잡히는 것이 어딘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웃음이었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윤서희가 꾸벅 인사하고 돌아서자, 이만복은 한동안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포목전 주인이 어깨를 툭 치며 낄낄거렸습니다.

    "어이, 만복 서방. 넋이 나갔나?"

    "아,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라... 잠깐 딴 생각을 한 것뿐입니다."

    "윤 참봉 댁이라면 한양에서도 알아주는 양반 집안인데. 됩됩이가 좋다는 소문도 익히 들었고. 이만복, 장사도 이제 됐으니 이쪽으로도 좀 신경 써야겠구만, 응?"

    이만복은 귀 끝이 빨개진 채 헛기침을 두어 번 했습니다. 그날 밤 장부를 정리하다가도, 숫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연두색 저고리가 자꾸만 어른거렸습니다. 계산이 세 번이나 틀렸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정신을 차려야지.'

    그렇게 스스로를 타일렀지만, 붓을 들 때마다 머릿속에서 윤서희의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만복상단은 그 뒤로도 쉬지 않고 성장했습니다. 이듬해 봄에는 한양 도성 안에 분점을 냈고, 여름이 지나기 전에 상단의 이름이 조선 팔도 상인들 사이에서 회자되기 시작했습니다. 함께 시작한 상인들은 모두 예전보다 넉넉한 살림을 꾸리게 되었고, 장터 분위기도 한층 활기를 띠었습니다.

    그러나 이만복 본인은 여전히 허름한 방에 살면서, 번 돈의 대부분을 상단에 다시 쏟아붓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이만복이었습니다. 과거에 낙방하던 가난한 서생의 마음을 잊지 않으려 했고, 그 마음이 만복상단을 단단하게 붙들고 있는 진짜 기둥이었습니다.

    ※ 6: 부를 이웃과 나누는 이만복

    성공이 찾아오자 이만복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돈을 꾸러 오는 사람, 물건을 대주겠다는 사람, 함께 사업을 하자는 사람, 심지어 자기 딸과 혼담을 넣고 싶다는 사람까지 줄을 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이만복이 가장 공을 들이고 신경을 쓴 사람들은, 사실 그 어떤 이익도 가져다주지 않는 이들이었습니다.

    장터 어귀에서 굶주린 채 쪼그려 앉아 있는 아이들, 한겨울에도 홑옷 하나로 버티는 늙은 짐꾼 어르신들, 병이 들어 장사를 쉬어야 하는 작은 가게 주인들, 그리고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다는 소문이 들려오는 인근 마을들. 이만복은 상단 수익의 일정 부분을 따로 떼어 쌀과 약재와 땔감을 꾸준히 나누었습니다. 상단 식구들은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주인장, 저희가 번 돈을 왜 거저 나눠주는 겁니까? 아깝지 않으십니까?"

    이만복은 잠시 먼 곳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저도 얼마 전까지 빈속으로 이 장터를 서성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누군가 꿀물 한 잔을 건네주었다면 얼마나 힘이 되었을까요. 나눠줄수록 상단이 커지는 것, 벌써 못 보셨습니까?"

    상단 식구들은 그 말에 더 이상 반문하지 않았습니다.

    만복상단이 베푼다는 소문은 파도처럼 넓게 퍼졌습니다. 어려울 때 도움받은 상인들이 최고 품질의 물건을 가장 먼저 만복상단에 넣어주었고, 죽 한 그릇을 얻어먹은 이들이 가족과 이웃을 데리고 단골이 되었습니다. 한번 인연을 맺은 손님은 다른 곳을 기웃거리지 않았고, 만복상단의 이름은 그것 자체로 하나의 믿음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가을 저녁이었습니다. 이만복이 장부를 정리하고 막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문 밖에서 낯선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런데 그 발소리가 이상했습니다. 발자국이 두 개인 것 같기도 하고, 네 개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하나도 없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문이 열리기도 전에 익숙한 냄새가 풍겨왔습니다. 축축한 흙 냄새, 묵은 나무 냄새, 그리고 어딘가 비릿한 기운.

    '설마...'

    문이 삐걱 열리며 낄낄낄, 하는 웃음소리가 방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오랜만이다, 이만복."

    봉두난발에 커다란 눈, 뿔 끝에 이번에는 도토리가 하나 달랑달랑 걸려 있었습니다. 분명히 그 도깨비였습니다. 이만복은 자기도 모르게 빵 터졌습니다.

    "어르신, 뿔에 도토리가 걸려 있습니다."

    도깨비가 발끈했습니다.

    "알아! 일부러 달고 다니는 거야! 요즘 유행이라고!"

    "아, 그렇군요. 잘 어울리십니다. 하하."

    도깨비는 방 안을 천천히 빙 둘러보았습니다. 장부 더미, 상단 깃발 모형, 벽에 걸린 조선 팔도 지도. 도깨비가 만족스러운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꽤 됐구만. 내가 준 아이디어, 잘 써먹었어."

    "어르신 덕분입니다. 진심으로요."

    "낄낄낄, 나는 도깨비니까 고맙다는 말은 됐어. 그보다 내가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어서 온 거야."

    이만복이 자세를 고쳐 앉았습니다. 도깨비는 팔짱을 끼고 이만복을 내려다보며 말했습니다.

    "윤 참봉 댁 처녀 말이야."

    이만복의 눈이 커졌습니다.

    "어, 어떻게 아십니까?"

    "나 수백 년째 이 근방에 살았다고. 다 봤지. 그 처녀, 사람 됨됨이가 반듯하고 마음씨가 고와. 어려운 사람 보면 그냥 못 지나치는 성격이고, 영리하기도 하지. 무엇보다 이야기를 잘 들어. 너랑 잘 맞아."

    "그걸 어르신이 어떻게 그리 자세히 아십니까?"

    "모르면 내가 도깨비겠냐! 낄낄낄! 어서 혼담이나 넣어봐. 기회는 오래 기다려주지 않는 법이야."

    이만복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어르신, 저 같은 상인 집안을 윤 참봉 댁에서 받아주실까요?"

    도깨비가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윤 참봉이 어떤 분인지 알아? 가문보다 사람을 보는 분이야. 네가 이 장터에서 해온 것들, 그 어른이 모를 것 같아? 조선 팔도에서 소문이 난 만복상단인데. 걱정 말고 가봐."

    이만복은 깊이 숨을 들이쉬었습니다. 가슴 속 어딘가가 따뜻하게 차오르는 느낌이었습니다.

    도깨비는 그 말을 끝으로 허리춤을 뒤적이더니, 작고 낡은 주머니를 하나 꺼내 내밀었습니다. 안에는 사과씨만 한 돌멩이가 하나 들어 있었습니다.

    "이게 뭡니까?"

    "네 상단 문 앞에 묻어둬. 재물이 달아나지 않고 계속 들어오게 하는 돌이야. 방망이보다는 소박하지만, 네 상단에는 이게 더 어울려."

    "어르신, 이렇게까지 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됐어. 그리고 한 가지만 기억해. 베풀수록 커진다는 거, 절대 잊지 마. 그게 진짜 요술이야. 방망이보다 훨씬 세고, 어떤 도깨비도 흉내 못 내는."

    이만복은 고개를 깊이 숙였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어르신."

    "그래. 잘 살아. 다시는 내 앞에서 씨름 걸지 마. 두 번은 안 진다고."

    그리고 도깨비는 낄낄낄 웃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방문이 저절로 닫혔고, 발소리도, 냄새도, 그 크고 노란 눈빛도 이내 사라졌습니다. 이만복은 작은 돌멩이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일어나 상단 문 앞으로 나갔습니다. 달빛 아래 손으로 땅을 파고, 돌멩이를 정성스럽게 묻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어르신.'

    그로부터 두 달 후, 만복상단의 이만복과 윤 참봉 댁 처녀 윤서희의 혼담이 오갔습니다. 윤 참봉은 이만복의 됩됩이와 상단의 명성을 익히 들어왔던 터라 흔쾌히 허락을 내렸고, 윤서희도 첫 만남에서 꾸러미를 줍던 그 청년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던 터였습니다.

    혼례날, 장터 사람들이 전부 몰려왔습니다. 포목전 주인은 혼수 비단을 직접 골라주었고, 어물전 아저씨는 생선을 한 가득 가져왔으며, 약재상 영감은 부부 건강에 좋다는 약재를 한 보따리 챙겨왔습니다. 장터 꼬마들은 길 양쪽에 줄지어 서서 꽃잎을 뿌려댔고, 떡장수 아주머니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말했습니다.

    "이 총각, 처음 꿀물 나눠줄 때부터 알아봤어요. 뭔가 다르다 싶었다고요."

    "아주머니, 그때 가장 먼저 줄 서주신 분이 아주머니 아니셨습니까?"

    "어머, 내가 그랬나? 낄낄!"

    장터 사람들이 왁자하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늙은 점쟁이 영감도 지팡이를 짚고 나와 수염을 쓰다듬으며 흐뭇하게 말했습니다.

    "거 봐, 내가 도깨비 짓이라고 했잖여. 근데 이런 도깨비라면 우리 장터에 매일 나타나도 좋겠구만."

    그날 밤, 잔치가 한창일 때였습니다. 저 멀리 장터 귀퉁이 어둠 속에서 노란 눈빛 두 개가 번뜩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낄낄낄, 하는 웃음소리가 바람결에 아주 희미하게 실려왔습니다. 이만복은 그쪽을 향해 살며시 술잔을 들어 올렸습니다. 어둠 속에서 뿔 끝에 걸린 도토리가 까딱이며 답례를 했습니다.

    가난한 서생 이만복은 그렇게, 도깨비 한 녀석 덕분에 장터 최고의 상단주가 되었고, 사랑하는 아내를 맞이했으며, 베풀수록 커지는 복의 이치를 온몸으로 살아낸 멋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장터에서는 다시는 물건이 바꿔치기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도깨비도 이제 더 이상 심심하지 않았으니까요.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 이야기, 끝까지 함께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가난한 서생 이만복이 도깨비 덕분에 조선 최고 상단주가 된 이야기, 어떠셨나요? 베풀수록 커지는 복, 이야기가 있는 물건, 함께할 때 더 강해지는 힘. 오늘 이 세 가지가 여러분 삶에도 함께하길 바랍니다. 재미있으셨다면 좋아요와 구독으로 응원해 주시고,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도 들려주세요. 다음 이야기에서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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