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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의 행복한 결혼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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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200자)
가장 외로운 처녀, 인간이 아닌 신랑을 맞이하다! 투박하지만 누구보다 뜨거운 도깨비 신랑과의 기묘하고도 행복한 나날들. 하지만 이들의 행복을 시기한 인간들의 탐욕이, 결국 비극을 불러오는데...
디스크립션 (300자)
한미한 가문의 외로운 처녀 '소희'. 그녀의 따뜻한 마음에 반한 장난꾸러기 도깨비 '비'가 나타나 청혼한다. 인간 신랑과는 다른, 거칠지만 순수한 도깨비의 사랑에 소희는 점차 마음을 열고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도깨비의 신비한 능력으로 쌓아 올린 부는, 곧 마을 사람들의 의심과 탐욕을 불러일으키고 만다.
※ 몰락한 양반가의 외로운 처녀 소희.
조선 중기, 한적한 시골 마을에 소희라는 이름의 처녀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몰락한 양반가의 후손으로, 부모님마저 일찍 여의고 낡은 초가집에서 홀로 생계를 꾸려가는 외로운 신세였다. 가진 것이라곤 이름뿐인 양반이라는 신분과, 청초한 미모뿐.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밭을 일구고 삯바느질을 하며 꿋꿋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그녀의 집 뒤뜰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쉬쉬하며 가까이 가지 않는, 수백 년은 족히 넘었을 법한 거대한 늙은 참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 나무에 원한 맺힌 귀신이 깃들어 있다며 두려워했지만, 소희는 홀로 그 나무를 보살폈다. 그녀는 나무가 자신의 유일한 친구라도 되는 양, 매일같이 그 앞에 정화수를 떠다 놓고 자신의 속 얘기를 털어놓곤 했다. “나무님, 나무님. 오늘은 밭에서 김을 매는데, 최 생원 댁 아들이 또 저를 희롱했답니다. 저는 그저 제 힘으로 조용히 살고 싶을 뿐인데, 세상은 왜 저를 가만두지 않는 걸까요. 이럴 때면, 저를 굳건히 지켜줄 낭군님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녀는 한탄 섞인 기도를 올리고는, 자신의 고단한 삶에 서러워져 눈물 한 방울을 뚝 떨어뜨렸다. 그날 밤이었다. 소희가 고단한 몸을 뉘고 잠이 들었을 때, 밖에서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야심한 시각에 누구일까. 소희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그곳에는 생전 처음 보는 거구의 사내가 서 있었다. 그는 웬만한 장정 둘은 합쳐놓은 듯한 듬직한 체구에, 투박하지만 남성미 넘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만, 달빛에 비친 그의 눈동자가 기이하게도 푸른빛을 띠고 있었고, 귀 끝이 미세하게 뾰족하다는 점이 보통 사람과는 달라 보였다. 사내는 소희를 보더니, 퉁명스럽지만 어딘가 수줍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가 소희더냐.” “…누구신지요?” “나는 비(
)라고 한다. 네가 매일같이 정성을 들이는 그 늙은 참나무에 깃들어 사는 도깨비지.” 도깨비라니. 소희는 너무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사내의 모습은 흉측하거나 무섭기보다는, 오히려 우직하고 든든해 보였다. 도깨비는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다짜고짜 본론을 꺼냈다. “내가 네 사정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너는 마음씨가 곱고, 또 몹시 외로워 보이는구나.” “…….” “나 또한, 이 나무에 수백 년을 홀로 깃들어 살며 몹시 심심하고 외로웠다. 그러니, 우리 혼인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너무나도 엉뚱하고 당황스러운 청혼이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조금의 장난기도 없이 진지했다. 그는 품에서 울퉁불퉁한 작은 방망이를 하나 꺼내 보였다. “나는 비록 도깨비지만, 너를 굶기거나 고생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이 방망이만 있으면, 금은보화든 맛있는 음식이든 뭐든 만들어 낼 수 있지. 무엇보다… 네가 매일같이 말하던, 너를 굳건히 지켜줄 낭군이 되어주마. 다른 사내들이 다시는 너를 희롱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소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외로운 인생. 무서운 세상에 홀로 맞서는 것도 이제는 지쳐 있었다. 이 사내, 아니 이 도깨비는 비록 정체는 기이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거짓이 없어 보였다. 그의 투박한 청혼에는, 세상 어떤 사내의 달콤한 말보다도 묵직한 진심이 담겨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자신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소희는 마침내 결심하고,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승낙에, 도깨비 비의 얼굴에 난생처음으로 환한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 모습은 마치 천진한 아이와도 같았다. 그렇게 그날 밤, 가장 외로웠던 처녀는 가장 엉뚱한 신랑을 맞이하게 되었다.
※ 소희는 도깨비 신랑과의 첫날밤을 통해
두 사람의 혼례는 조촐하기 그지없었다. 증인도, 하객도 없었다. 오직 밤하늘의 달과 별, 그리고 수백 년 묵은 참나무만이 두 사람의 결합을 지켜볼 뿐이었다. 소희는 자신이 가진 옷 중에 가장 깨끗한 소복으로 갈아입었고, 비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두 사람은 나무 앞에 정화수를 떠놓고, 서로에게 절을 하며 부부의 연을 맺었다. 모든 것이 간소했지만, 소희는 조금도 서운하지 않았다. 자신의 곁에 든든한 사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의 마음은 이미 풍족했다. 예를 마친 두 사람은, 소희의 낡고 작은 초가집으로 돌아왔다. 그곳이 두 사람의 신방이었다. 방 안에는 소희가 미리 켜놓은 작은 등잔불이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좁은 방 안에 거구의 사내와 단둘이 남게 되자, 어색하고도 긴장된 기운이 감돌았다. 소희는 어찌할 바를 몰라,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비가 다가왔다. 그는 그녀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무섭냐?" 그의 물음에, 소희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무서워하지 마라. 나는 너를 해치지 않는다. 이제 너는 내 아내니까.” 그는 손을 뻗어, 소희의 뺨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그의 손은 장작처럼 거칠고 투박했지만, 그 손길은 깃털처럼 부드럽고 따뜻했다. 그는 천천히 그녀의 저고리 옷고름에 손을 가져갔다. 소희의 어깨가 움츠러들었지만, 피하지는 않았다. 이제 그는 그녀의 남편이었다. 옷고름이 풀리고, 그녀의 하얀 목선과 어깨가 드러났다. 비는 감탄한 듯,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 "…아름답구나." 그는 인간 남자들처럼 미사여구를 늘어놓을 줄 몰랐다. 그저 솔직한 감탄사. 그 순수한 반응에, 오히려 소희의 긴장이 조금 풀렸다. 그는 그녀를 안아 일으켜, 삐걱거리는 잠자리에 눕혔다. 그리고는 자신의 커다란 몸으로 그녀의 위를 덮었다. 소희는 자신을 압도하는 그의 거대한 몸과, 강렬한 남자의 체취에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그는 인간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과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덮쳤을 때, 소희는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의 입맞춤은 서툴렀지만, 거칠고 뜨거웠다. 마치 용암과도 같은 열기가 그녀의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듯했다. 그의 단단한 몸이 그녀의 부드러운 몸을 빈틈없이 파고들었다. 인간의 육체를 가진 여인으로서, 도깨비라는 미지의 존재를 받아내는 것은 두려우면서도 기묘한 경험이었다. 그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는 그의 팔은, 마치 강철 띠처럼 단단하여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 그의 몸은 지치는 법이 없었다. 밤이 깊어지고, 또 다른 밤이 오는 것처럼, 그의 정력은 마르지 않는 샘과도 같았다. 소희는 처음에는 그의 압도적인 힘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는 그 안에서 끔찍한 고통이 아닌,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강렬한 쾌감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의 모든 움직임은 오직 그녀를 향한 순수한 욕망과 애정으로 가득했다. 그는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탐하며, 그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어린아이처럼 만족스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그날 밤, 소희는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의 남편은 비록 인간은 아니지만, 그 어떤 인간 남자보다도 자신을 순수하게, 그리고 뜨겁게 사랑해주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겨, 그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난생처음으로 완벽한 안정감과 충만한 희열을 느꼈다. 인간과는 다른, 도깨비 신랑과의 첫날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 도깨비 방망이로 온갖 재물을 만들어내는 비.
도깨비와의 첫날밤 이후, 소희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그녀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간밤에 비가 삐걱거리던 낡은 초가집이, 하룻밤 사이에 번듯한 기와집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텅 비어 있던 뒤주에는 최상급 쌀이 가득 차 있었고, 찬장에는 온갖 귀한 음식 재료들이 그득했다. 이 모든 것이, 남편인 비가 도깨비 방망이를 휘둘러 만들어낸 것들이었다. 소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비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내 아내가 이런 누추한 곳에서 살 수는 없지.” 그의 투박한 배려에, 소희는 웃음을 터뜨렸다. 두 사람의 신혼생활은 그야말로 이상하고도 행복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비는 낮 동안에는 평범한 농부처럼 밭에 나가 일을 했다. 그의 엄청난 힘 앞에, 수십 마지기의 밭을 가는 것은 반나절도 채 걸리지 않는 쉬운 일이었다. 소희는 그런 그를 위해 정성껏 음식을 만들었고, 두 사람은 밭두렁에 앉아 정답게 식사를 나누었다. 비는 소희가 해주는 음식이라면 무엇이든 꿀맛처럼 먹어치웠다. 그는 소희가 “맛있으세요?” 하고 물으면,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밥풀을 묻힌 채 웃곤 했다. 낮의 생활이 평온하고 소박했다면, 밤의 생활은 뜨겁고도 신비로웠다. 비는 매일 밤,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소희를 품었다. 그의 품에 안길 때마다, 소희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여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비는 가끔 도깨비 방망이로 신기한 물건들을 만들어내며 그녀를 기쁘게 했다. 어느 날 밤에는 “네가 보고 싶어 하니, 금강산의 절경을 이 방으로 가져와 보았다.”라며, 방 안에 신비로운 안개와 함께 금강산의 기암괴석이 떠오르는 환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소희는 난생처음 겪는 신비로운 경험과, 남편의 순수한 사랑 속에서 하루하루 생기를 되찾아갔다. 그녀의 얼굴에는 더 이상 외로움과 시름의 그늘이 없었다. 늘 행복한 웃음이 가득했고, 그 모습은 이전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빛났다. 하지만 이 기묘한 부부의 행복은, 그들만의 세상 속에서만 온전할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눈에, 소희의 집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온통 의문투성이였다. 하루아침에 초가집이 기와집으로 바뀌고, 어디서 났는지 모를 돈으로 풍족하게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 소희의 남편이라는 저 거구의 사내. 그는 어디서 굴러 들어온 누구이며, 대체 무슨 수로 저런 부를 쌓았단 말인가. 마을 사람들은 처음에는 수군거리기만 했다. “소희네 집에 복권이라도 터졌다나 봐.” “아니야, 필시 남편이란 자가 도둑질이라도 한 게 틀림없어.” 의심은 곧 시기와 질투로 변해갔다. 특히 마을의 부자인 최 생원은, 예전부터 눈독 들이던 소희가 웬 근본도 모를 놈과 혼인하여 자신보다 더 잘살게 된 것을 보고는 배가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여러분, 저놈은 필시 요사스러운 술법을 부리는 자이거나, 혹은 나라의 녹을 훔치는 큰 도적임이 분명합니다. 저런 자를 우리 마을에 그냥 두었다가는, 우리 모두에게 큰 화가 미칠 것입니다.” 사람들의 의심은 점점 더 커져갔고, 그들의 탐욕스러운 눈길은 소희 부부의 집을 향하기 시작했다. 소희와 비는, 자신들의 행복한 보금자리 주변으로, 인간들의 검고 추악한 탐욕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 마을의 시기와 질투는 극에 달하고.
행복한 시간 속에서도, 소희는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감싸는 공기가 차갑게 변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자신을 동정하거나 혹은 무시하던 그들의 눈빛이, 이제는 노골적인 시기와 질투, 그리고 이해할 수 없다는 의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낙들은 그녀가 우물가에 나타나면, 보란 듯이 대화를 멈추고 힐끔거리며 자리를 피했다. 남자들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도, 그 남편인 비의 정체에 대해 음흉한 소문을 만들어내기 바빴다. “저놈, 필시 밤도둑질로 재물을 모은 게 틀림없어.” “아니면 요사스러운 술법을 부리는 것일지도 모르지. 저 계집을 홀려서 말이야.” 소희는 애써 그런 시선들을 무시하려 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불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이 불안감을 남편인 비에게는 차마 털어놓지 못했다. 모처럼 찾은 그의 행복을, 인간들의 추악한 시기심으로 깨뜨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행복을 향한 탐욕의 손길은,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르고 집요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최 생원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부보다 더 큰 부를 하루아침에 이룬 소희 부부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그는 마을의 장정 몇몇을 돈으로 매수하고 선동했다. “자네들, 저놈의 집 창고에 금은보화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네. 오늘 밤, 저놈의 정체를 밝히고 그 재물을 우리가 나눠 갖는 것이 어떻겠나. 저놈이 요물이라면, 우리가 마을을 위해 큰일을 하는 셈이 아닌가!” 그의 달콤한 말에 넘어간 사내들은, 그날 밤 복면을 하고 몽둥이를 든 채 소희의 집 담벼락으로 향했다. 그들은 소리를 죽여 담을 넘어, 부부의 침실 창호지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침으로 구멍을 뚫어, 안을 엿보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방 안에서는 한창 남녀의 뜨거운 정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보통의 부부와는 전혀 달랐다. 거구의 사내, 비는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몇 번이고 소희를 뜨겁게 안고 있었다. 그의 몸은 마치 강철로 만들어진 듯, 움직일 때마다 단단한 근육들이 꿈틀거렸다. 어둠 속에서도 그의 푸른 눈동자는 기이하게 빛나고 있었고, 땀에 젖어 흥분한 그의 귓바퀴는 인간의 것보다 미세하게 더 뾰족했다. 무엇보다 사내들을 경악하게 한 것은, 정사의 막바지에 다다른 그가 만족감에 겨워 내지른 포효였다. 그것은 사람의 소리가 아닌, 깊은 산속의 맹수가 울부짖는 듯한, 원초적이고도 강력한 울음소리였다. 창호지를 엿보던 사내들은 공포에 질려,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꽁무니를 뺐다. 그들은 마을로 돌아가, 자신들이 본 것을 부풀려 떠들기 시작했다. "봤어! 내가 똑똑히 봤다니까! 그놈은 사람이 아니야! 머리에는 뿔이 나 있고, 눈에서는 불이 나오는, 영락없는 도깨비였어!” “그 계집은 그 요물에게 홀려 밤마다 기를 빨리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소문은 하룻밤 사이에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이제 마을 사람들의 눈에, 소희와 비는 더 이상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마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재물을 빼앗아 가는, 반드시 몰아내야 할 흉측한 ‘요물’일 뿐이었다. 인간들의 공포와 탐욕이 한데 뒤섞여, 거대한 광기의 폭풍이 되어 두 사람을 덮쳐오고 있었다.
※ 마을 사람들은 도깨비를 몰아내고 재물을 빼앗기 위해
다음 날 아침, 소희는 집 밖의 소란스러움에 잠을 깼다. 대문 밖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요물을 내놓아라!” “마을을 어지럽히는 도깨비를 때려잡자!” “저놈들이 훔친 재물을 도로 찾아와야 한다!” 최 생원을 필두로 한 마을 사람들이, 손에 낫과 괭이, 횃불까지 들고 집을 포위한 것이었다. 소희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이다. 옆에서 잠이 깬 비가 상황을 파악하고,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에서는 어젯밤과는 다른, 차가운 분노의 푸른빛이 감돌았다. 그가 밖으로 나가려는 것을, 소희가 다급하게 막아섰다. “안됩니다, 서방님! 나가시면 위험합니다!” “하지만 저들이 너를 해치려 하고 있다. 내가 너를 지켜주겠다 약조하지 않았느냐.” “그래도 안됩니다! 당신이 힘을 쓰는 순간, 저들의 말대로 당신은 정말 요물이 되고 맙니다. 제발… 제가 먼저 나가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소희는 남편을 말리고는, 떨리는 몸을 이끌고 직접 대문으로 향했다. 그녀가 문을 열고 나서자, 성난 군중들의 고함 소리가 일순 멎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최 생원이 그녀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외쳤다. “네 이년! 네가 감히 요사스러운 도깨비 놈과 붙어먹어, 우리 마을을 속이고 재물을 탐했구나! 당장 그 요물을 내놓고, 너도 죄를 받거라!” 소희는 두려웠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군중들을 향해 용기를 내어 외쳤다. “제 남편은 요물이 아닙니다! 그는 그저 저를 아껴주는 착한 분일 뿐입니다! 제발 오해를 푸시고 돌아가 주십시오!” 하지만 탐욕과 공포에 눈이 먼 그들에게, 소희의 애원은 들리지 않았다. 한 사내가 그녀를 밀치고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가려 했다. “비켜라! 네년도 한패렷다!” 사내의 거친 손길에, 연약한 소희의 몸이 마당으로 나뒹굴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집 안에서, 땅이 울리는 듯한 무시무시한 괴성이 터져 나왔다. “네 이놈들! 감히 누구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이냐!” 문이 부서져라 열리며, 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어수룩하고 순박한 농부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의 두 눈에서는 시퍼런 불꽃이 타올랐고, 온몸의 근육은 분노로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는 쓰러진 소희를 발견하고는, 이성을 잃었다. 그의 분노는 오직 하나, 자신의 아내를, 자신의 유일한 가족을 건드린 인간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증오였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도깨비 방망이를 땅에 한번 ‘쿵’하고 내리쳤다. 그러자 맑았던 하늘이 순식간에 시커먼 먹구름으로 뒤덮이고, 번개가 치며 천둥이 울렸다. 성난 군중들은 하늘의 이변에 놀라 겁에 질렸다. 비가 다시 한번 방망이를 휘두르자, 마당의 나뭇잎과 흙먼지가 거대한 회오리가 되어 그들을 덮쳤다. “으아악!” 사람들은 눈을 뜨지 못하고 혼비백산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비의 분노는 그들의 손에 들린 흉기들을 살아 움직이는 뱀으로 변하게 했고, 집의 기왓장들은 수백 마리의 박쥐가 되어 그들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게 만들었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무기를 내던지고,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최 생원 역시 꽁무니를 빼고 달아나다, 넘어져 흙투성이가 되는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순식간에 집 주변은 텅 비어버렸다. 모든 것이 조용해지자, 비의 몸을 감싸던 무서운 기운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는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넘어져 있는 소희에게 달려갔다. 그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안아 일으키며,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얼굴로 그녀의 다친 곳을 살폈다. “괜찮으냐, 소희야… 미안하다. 내가 너를 지켜주지 못했다.” 그의 품에 안긴 소희는, 고개를 저으며 그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녀의 눈에는 두려움이 아닌, 남편을 향한 깊은 사랑과 연민만이 가득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아름다웠던 그들의 보금자리는, 이제 인간들의 탐욕과 광기가 할퀴고 간 상처로 얼룩져 있었다. 두 사람은 이제 이곳을 떠나야만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 마을을 떠나 그들만의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깊은 산속으로
그날의 끔찍한 소동이 끝난 후, 두 사람의 집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마을 사람들은 두 번 다시 그들의 집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인간의 공포와 탐욕은, 언젠가 더 큰 폭력이 되어 그들을 덮쳐올 터였다. 그날 밤, 두 사람은 마루에 나란히 앉아 말없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소희였다. “…떠나야겠지요.” 비는 대답 대신, 묵묵히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 손의 온기만으로도, 그는 그녀의 말에 동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비가 나직이 말했다. “미안하다. 나 때문에, 너까지 인간 세상에서 살 수 없게 되었구나.” 소희는 고개를 저으며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아니에요. 당신이 없었다면, 저는 어차피 저들 속에서 평생을 불행하게 살았을 거예요. 당신을 만난 것을, 단 한 순간도 후회하지 않아요. 당신과 함께라면, 어디라도 좋아요.”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다음 날 동이 트자마자 길을 떠나기로 했다. 그들은 더 이상 이 집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비는 도깨비 방망이로 만들어냈던 온갖 귀한 가구와 세간살이를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번쩍이던 금은보화는 한 줌의 조약돌로 변했고, 화려했던 비단 이불은 낡은 짚 더미로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그는, 두 사람이 함께 살던 기와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방망이로 땅을 한번 툭, 치자, 화려했던 기와집은 하룻밤의 꿈처럼 사라지고, 예전의 낡고 허름한 초가집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인간 세상의 탐욕과 인연을 끊어내는, 그만의 작별 의식이었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처럼, 작은 보따리 하나만을 짊어지고 길을 나섰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혼자가 아니었다. 서로의 손을 굳게 잡은 채, 그들은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깊고 깊은 산속으로 향했다. 며칠 동안의 고된 여정 끝에, 두 사람은 마침내 꿈에서나 볼 법한 아름다운 곳에 다다랐다. 사방이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안에는 수정처럼 맑은 호수와 너른 풀밭이 펼쳐져 있었다. 사계절 내내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고, 온갖 과일나무들이 지천으로 열매를 맺고 있는, 그야말로 그들만을 위한 신천지(新天地)였다. 비는 도깨비 방망이를 이용해, 호숫가에 아담하고 예쁜 오두막집을 뚝딱 지었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더 이상 그들을 의심하거나 위협하는 사람은 없었다. 비는 낮 동안 산속을 뛰어다니며 사냥을 하거나, 신기한 약초를 캐왔다. 소희는 그 재료들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집안을 예쁘게 가꾸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보름달이 환하게 비추는 호숫가에 나란히 앉았다. 은은한 달빛이 수면 위로 쏟아져, 마치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 반짝였다. 비가 말했다. “소희야, 이곳이 마음에 드느냐. 이제 이곳이 우리의 집이다.” 소희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입고 있던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다. 비가 놀라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수줍지만 당당한 눈빛으로 말했다. “서방님, 이 낙원에서… 저를 온전히 당신의 것으로 만들어 주세요.” 달빛 아래 드러난 그녀의 나신은 그 어떤 조각상보다도 아름다웠다. 그녀는 먼저 맑은 호수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차가우면서도 상쾌한 물의 감촉이 그녀의 몸을 감쌌다. 그녀는 뭍에 있는 비를 향해 손짓했다. 비는 빙그레 웃으며, 자신의 옷을 벗어던지고 그녀를 따라 호수로 들어왔다. 그의 단단하고 거대한 몸이 물속으로 들어오자, 잔잔하던 호수가 크게 일렁였다. 두 사람은 물속에서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물속에서 뜨거운 입맞춤을 나누었다. 인간 세상의 모든 더러운 기억과 상처를 씻어내는 듯한, 맑고도 정화되는 시간이었다. 그는 그녀를 안아 들어, 부드러운 이끼가 깔린 호숫가 풀밭 위에 눕혔다. 더 이상 그들을 훔쳐보는 눈도, 그들을 막는 벽도 없었다. 오직 달과 별, 그리고 서로의 사랑만이 존재하는 완전한 둘만의 세상. 그의 강인한 몸이 그녀의 부드러운 몸을 다시 한번 덮쳤다. 이번의 사랑은 첫날밤처럼 거칠거나, 도망자의 그것처럼 애달프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들의 낙원을 찾은 자들의, 기쁨과 환희에 찬 축제였다.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그녀는 온몸으로 화답했다. 두 사람의 신음과 웃음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고, 계곡 전체에 울려 퍼졌다. 밤이 깊도록, 두 사람은 서로의 몸을 탐하고 또 탐하며, 사랑이 줄 수 있는 최고의 희열과 평온함을 만끽했다. 모든 것이 끝나고,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은 채 풀밭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았다. 소희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속삭였다. “이곳에서는, 영원히 행복할 수 있겠지요?” 비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대답했다. “그래. 네가 내 곁에 있고, 내가 네 곁에 있으니. 이곳은 영원히 우리의 낙원일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인간 세상의 모든 탐욕과 갈등을 뒤로한 채, 그들만의 작은 낙원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아갔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나무꾼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전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유튜브 엔딩 멘트
인간의 탐욕을 떠나 자신들만의 낙원을 찾은 도깨비와 인간 신부의 이야기, 재미있으셨나요? 이처럼 어떤 도깨비는 인간과 사랑에 빠져, 막강한 힘으로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또 어떤 도깨비는, 소리 없이 외로운 사람의 곁에 나타나 재물이 아닌 ‘마음의 등불’을 밝혀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더욱 특별하고 가슴 따뜻한 도깨비 이야기, '마음의 등불을 밝힌 도깨비'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