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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러운 과부, 도깨비 대장이 되어 탐관오리 놈들 싹 다 참교육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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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 멘트
"아이고, 세상에 이런 통쾌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남편 잡아먹은 년이라고 손가락질받던 과부가, 하룻밤 사이에 도깨비들을 거느린 대장님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내 쌀 뺏어가고, 내 등골 빼먹던 저 썩을 탐관오리 놈들, 이제 다 죽었습니다. 몽둥이 찜질보다 더 무서운 옥분네 도깨비 군단의 참교육! 듣기만 해도 십 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가는 그 짜릿한 복수극이 지금 시작됩니다. 오늘 밤, 옥분이와 함께 시원하게 한판 놀아보시지요! 구독과 좋아요 누르시고, 저 놈들 혼쭐나는 꼴 구경하러 갑시다!"
디스크립션
마을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과부 옥분. 가뭄이 들자 탐욕스러운 현감은 그녀를 도깨비 제물로 바쳐버립니다. 하지만 죽으러 들어간 숲에서 옥분은 도깨비들의 마음을 훔치고, 급기야 그들의 방망이까지 손에 쥐게 되는데... 약자가 강자를, 피해자가 가해자를 심판하는 조선판 사이다 복수극!
※ 1 타들어 가는 대지, 말라비틀어진 인심
아이고... 덥다, 더워. 숨이 턱턱 막히는 것이 꼭 가마솥 안에 들어앉은 것 같구먼.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찌 이리도 비 한 방울 안 내려주신다냐. 해가 중천에 뜨면 이글거리는 아지랑이가 뱀처럼 스물스물 기어 올라오고, 땅바닥은 거북이 등가죽마냥 쩍쩍 갈라져서 비명도 못 지르고 입만 떡 벌리고 있네.
내 이름은 옥분이여. 남들 다 누리는 서방복도, 자식복도 지지리도 없는, 이 마을의 천덕꾸러기 과부 옥분이. 올해로 내 나이 마흔이 넘었건만,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은 쭈글쭈글한 늙은 호박 같아서 나도 가끔 내가 낯설어. 먹고살겠다고 남의 집 빨래며, 밭일이며 닥치는 대로 하다 보니 손마디는 옹이 박힌 나무뿌리처럼 굵어졌고, 허리는 굽어지기 시작했지. 그래도 어쩌것어. 목구멍이 포도청인걸.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이 딱 내 꼴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여.
오늘도 새벽같이 일어나서 윗동네 최부자 댁 빨래를 하러 냇가에 나갔더랬어. 아이고, 냇가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더구먼. 물이 다 말라서 바닥이 허옇게 뼈를 드러내고 있는데, 그나마 바위틈에 고여있는 흙탕물이라도 감지덕지하며 빨래를 비볐지. 방망이질을 팡팡 해대는데, 흙탕물이 내 얼굴에 튀어도 닦을 생각도 못 했어. 물 한 방울이 아까운 시절이니까.
그런데 저기 멀리서 아낙들이 물동이를 이고 오면서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겨.
"아이고, 저 재수 없는 년 또 나왔네. 아침부터 과부 꼴을 보면 하루 공친다는데, 퉤퉤!"
"그러게 말이여. 지 서방 잡아먹고도 모자라서, 이제는 마을 우물까지 다 말라 비틀어지게 하는 거 아녀? 독한 년... 저년이 마을에 있는 한 비 오기는 글렀어."
그 소리가 말이여, 내 등짝에 꽂히는 비수 같아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더란 말이여. 내가 서방을 잡아먹고 싶어서 잡아먹었나? 시집온 지 석 달 만에 열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간 걸 나보고 어쩌라고! 약 한 첩 제대로 못 써보고 보낸 내 심정은 오죽했겠어? 그날 이후로 20년을 넘게 수절하며, 죄인 아닌 죄인으로 숨죽여 살았는데... 사람들은 가뭄 탓도, 흉년 탓도 다 만만한 내 탓으로 돌리네. 서러워서 눈물이 핑 도는데, 눈물 흘릴 기운도 없어서 그냥 마른침만 꿀꺽 삼키고 말았지. 그래, 니들이 떠들어봤자 내 귀만 막으면 그만이지 싶어서 더 세게 방망이질만 해댔어. 팡! 팡!
빨래를 다 마치고 젖은 광목천을 이고 최부자 댁으로 향했어. 고래등 같은 기와집 대문 앞에 서니 기가 죽어서 목소리도 기어들어가.
"마님... 빨래 다 해왔구먼유."
한참 만에 대문이 삐끔 열리더니, 집사 놈이 나와서는 코를 쥐며 인상을 팍 쓰는겨.
"아침부터 쉰내 나게 왜 이리 일찍 왔어? 마님께서 재수 없다고 들이지 말라신다. 옛다, 품삯이다."
그러면서 쌀 한 됫박은커녕, 썩어가는 보리쌀 한 줌을 바닥에 툭 던지대. 흙먼지 폴폴 날리는 바닥에 흩어진 보리쌀을 줍는데, 내 신세가 저 보리쌀보다 못한 것 같아서 손이 부들부들 떨리더라니까.
"고... 고맙습니다요..."
입으로는 고맙다는데 속에서는 피눈물이 나. 대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내 가슴을 치는 것 같아서,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못 일어났어.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마을 꼬라지가 정말 말이 아니여. 논에는 타 죽은 모들이 누렇게 떠서 귀신 머리카락처럼 널브러져 있고, 밭에 콩이며 고추며 성한 게 하나도 없어. 지나가는 똥개들도 혀를 쑥 빼물고 헐떡거리는데, 그 눈빛이 살기가 돌아서 무섭더라니까. 사람들은 더해. 얼굴은 흙빛이 되어가지고, 다들 눈만 마주치면 한숨이지.
"이러다 다 굶어 죽겄어. 나라님은 뭐 하시는가 몰라. 기우제를 지내도 소용이 없고..."
"나라님은 무슨, 우리 현감 나으리가 곡간만 풀어도 우리가 이 지경은 안 되지. 저번 달에 세금으로 걷어간 쌀만 풀어도 온 동네가 배불리 먹을 텐데."
"쉿! 이 사람아, 목소리 낮춰!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잡혀가서 곤장 맞을라!"
사람들이 수군거리다가도 관아 쪽만 쳐다보면 눈을 내리깔고 입을 다물어 버려. 그 놈의 현감이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세상이니까.
근디 말이여, 사람들이 쑥덕거리는 소리 중에 아주 기분 나쁘고 심상치 않은 얘기가 들리는겨. 주막 앞을 지나는데, 술 취한 노인네들이 탁배기 잔을 기울이며 하는 말이,
"이게 다 산신이 노해서 그런겨. 저기 귀곡산 도깨비 왕이 단단히 화가 났어. 처녀를 바쳐야 비가 온다는데..."
"처녀가 어디 있어? 이 흉년에 시집 안 간 처녀들은 다 입 하나 줄이겠다고 다른 마을로 도망가거나 팔려갔지. 남은 건 현감 나으리 금지옥엽 딸내미 하나뿐인데, 그 댁에서 내놓겠어?"
"그러게 말일세. 그런데 무당 말로는 꼭 처녀가 아니더라도, 부정이 타지 않고 기운이 쎈 여자를 바치면 된다던데..."
"부정이 안 타고 기운이 쎄? 그게 무슨 소리여?"
"자식 낳은 적 없고, 혼자 살면서 악바리처럼 버티는... 그런 독한 기운 가진 여자 말일세."
그때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이, 꼭 누가 얼음장 같은 손으로 내 목덜미를 낚아채는 것 같더라고. 부정이 타지 않고 기운이 쎈 여자? 자식 없고, 혼자 살며 악바리처럼 버티는 년?
설마... 나? 이 마을에 그런 여자가 나 말고 또 있어?
에이, 설마. 아무리 세상이 미쳐 돌아가도 그렇지,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도 아닌데, 죄 없는 사람을 산 제물로 바치겠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으로 도망치듯 들어왔어.
방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아까 주워 온 보리쌀로 죽을 쑤는데, 솥에서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꼭 내 속이 타는 소리 같아. 자꾸만 아까 들은 얘기가 귓가에 맴도는겨.
현감 놈, 그 욕심 많고 표독스런 놈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지. 작년에 흉년 들었을 때도 세금 못 낸다고 칠순 넘은 박 영감님 곤장 쳐서 죽게 만든 놈 아니여. 자기 딸내미 살리겠다고 엄한 사람 잡는 거, 그놈이라면 충분히 하고도 남지. 게다가 무당년이랑 짝짜꿍이 맞아서 무슨 짓을 꾸밀지 누가 알겠어?
불안한 마음에 문을 걸어 잠그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는데, 잠이 올 리가 있나. 바람 소리만 윙윙 불어도 가슴이 철렁하고, 고양이 울음소리만 들려도 식은땀이 줄줄 흐르대. 창호지 문 밖으로 어둠이 시커멓게 깔리는데, 그 어둠 속에 도깨비보다 더 무서운 사람들의 눈초리가 숨어있는 것만 같아서 숨도 크게 못 쉬겠어.
'옥분아, 정신 차려라. 넌 아무 죄 없다. 하늘이 보고 있는데 설마 벼락 맞을 짓을 하겠냐. 그냥 헛소문일 거다. 내일 날 밝으면 또 빨래하러 가야지...'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겨우 눈을 붙이려는데,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겨. 횃불이 어른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발자국 소리가 쿵쿵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점점 그 소리가 내 집 쪽으로 다가오는데...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어.
설마... 아니겄지. 제발 아니라고 해줘. 제발...
※ 2 탐욕의 제물, 짓밟힌 과부의 절규
그날 밤이었어. 쪽잠이 들었다가 깼는데, 밖이 소란스러운겨. 동네 개들이 미친 듯이 짖어대고, 붉은 횃불 그림자가 창호지 문에 어른어른 비치는데, 그 불빛이 꼭 핏빛 같아서 소름이 돋대. 가슴이 쿵쾅쿵쾅 뛰어서 이불자락을 꽉 쥐고 있는데, 갑자기 사립문이 우지끈 부서지는 소리가 나더니 누군가 고함을 지르는겨.
"이년 옥분아! 관아에서 나오셨다! 썩 나오지 못할까!"
아이고 어머니... 올 것이 왔구나. 내 예감이 틀리지 않았구나.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시커먼 그림자들이 방 안으로 들이닥쳤어. 포졸 놈들이 신발도 안 벗고 흙발로 방을 짓밟으며 들어와 내 머리채를 휘어잡는데, 짐승 다루듯이 질질 끌고 나가는겨.
"아이고, 사람 살려! 내가 무슨 죄를 졌다고 이러요! 나 좀 살려줘요! 사람 살려!"
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을 쳤지만, 장정 셋이 달려들어 팔을 뒤로 꺾고 굵은 밧줄로 꽁꽁 묶으니 당해낼 재간이 있나. 살이 밧줄에 쓸려 쓰라리고 아픈데, 마음 아픈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지.
마당으로 끌려 나와 보니, 기가 막힌 풍경이 펼쳐져 있더란 말이여. 동네 사람들은 담벼락 너머로 고개만 삐죽 내밀고 구경만 하고 있더라니까. 횃불에 비친 그들의 얼굴을 보니, 하나같이 겁에 질려있거나, 아니면 슬그머니 눈을 피하며 '내가 아니라 다행이다' 하는 표정들이여. 내가 울며불며 매달렸지.
"주모! 나 좀 도와줘! 내가 엊그제 주막 설거지 다 해줬잖아! 김 서방! 우리 저번에 콩 타작할 때 내가 거들어줬잖아! 제발 말 좀 해줘! 나 죄 없다고!"
하지만 평소에 언니 동생 하던 주막집 주모는 치마폭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홱 돌려버리고, 김 서방은 헛기침을 하며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며 대문 뒤로 숨어버리대.
그때 뼈저리게 알았지. 아, 가난하고 힘없는 게 죄구나. 이놈의 세상은 약한 놈 고혈 짜서 쎈 놈 배 채우는 게 법이구나.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구나. 철저하게 혼자구나. 그 배신감이 억울함보다 더 깊게 뼈에 사무치더라.
질질 끌려간 관아 마당에는 횃불이 대낮처럼 밝혀져 있었어. 동헌 마당에는 멍석이 깔려있고, 저기 대청마루 위에 기름진 얼굴을 한 현감 놈이 비스듬히 누워 부채질을 하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더구만. 옆에는 눈이 뱀눈 같은 무당년이 하얀 소복을 입고, 한 손에는 딸랑거리는 방울을, 한 손에는 부채를 들고 서 있고. 그 꼴을 보니 억울함보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대.
무당년이 나를 보자마자 과장되게 몸을 떨며 소리쳤어.
"사또! 저년입니다. 사주팔자가 드세서 남편을 잡아먹고도 멀쩡히 살아있는 년! 눈빛 좀 보십시오. 독기가 서린 게 아주 도깨비 왕이 좋아하실 상입니다요! 저년의 기운이라면 비를 내리게 하고도 남습니다!"
무당년의 그 째지는 목소리에 현감 놈이 무릎을 탁 치며 일어나대.
"옳거니! 처녀는 아니지만, 자식이 없으니 부정은 안 탔고... 기운이 쎄니 마을의 액운을 막을 제물로 딱이로구나! 하늘이 내린 제물이여! 여봐라, 당장 저년을 씻겨서 숲으로 보낼 채비를 하라!"
현감 놈의 눈에는 내가 사람으로 안 보이고, 그냥 돼지나 소 같은 제물로만 보이는 게지. 자기 딸은 비단 이불 덮고 자고 있을 시간에, 남의 귀한 딸은 사지로 몰아넣으면서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저 뻔뻔함이라니.
내가 기가 막혀서 묶인 채로 바락바락 대들었지. 죽기 전에 할 말은 해야겠더라고.
"나으리! 이게 무슨 개뼉다귀 같은 소리요! 댁의 딸내미 아까워서 엄한 사람 잡는 거, 삼척동자도 다 아요! 하늘이 무섭지도 않소! 내 남편이 죽은 게 내 탓이오? 나라에서 역병 돌 때 약 한 첩 못 써보고 죽은 거 아니오! 그때 나으리는 뭐 했소? 나라에서 내려온 구호물자 빼돌려서 기생 끼고 술판 벌이지 않았소! 내가 모를 줄 아오?"
내 말에 구경하던 포졸들도 움찔하고, 담장 밖에서 엿듣던 마을 사람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어.
그랬더니 현감 놈이 낯빛이 시뻘게져서는 부들부들 떨며 소리치대. 제 치부가 드러나니 찔렸겠지.
"저, 저년이! 주둥이를 놀리는 꼴을 보니 기운이 펄펄 넘치는구나! 감히 관아에서 고함을 쳐? 네년이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여봐라! 저년 주둥이를 찢어놓기 전에 재갈을 물려라! 시간이 없다! 자시(子時) 전에 도깨비 숲 제단에 올려야 한다!"
포졸 놈들이 달려들어 억지로 입을 벌리고 냄새나는 헝겊 뭉치를 쑤셔 넣는겨. 읍읍거리며 반항했지만, 입안이 찢어지고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대. 그들은 나를 짐짝처럼 들어 올려서 미리 준비된 가마에 처박았어. 가마라고 해봤자 화려한 꽃가마가 아니라, 사방이 꽉 막힌 나무 상자나 다름없는 것이었지. 숨 구멍 몇 개 뚫어놓은 게 전부인 관이나 마찬가지였어.
뚜껑이 닫히고 못 박는 소리가 쾅, 쾅, 쾅 들리는데, 꼭 내 인생의 문이 닫히는 소리 같아서 정신이 아득해지더라고.
가마가 들리고 흔들리기 시작했어. 좁고 캄캄한 가마 안에서 나는 몸을 웅크리고 숨을 헐떡였지. 공포가 내 몸을 휘감아 돌았어. 이제 정말 죽는구나. 아무도 모르게, 숲속에서 도깨비 밥이 되어 뼈도 못 추리고 사라지겠구나.
'어머니... 아버지... 저 이렇게 가요. 억울해서 어째요...'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재갈 물린 입으로 스며드는데, 그 짠맛이 내 인생 맛 같아서 더 서럽더라. 밖에서는 가마꾼들이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
"아이고 무거워라. 산길 험한데 재수 없게 이런 걸 메고 가냐."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어둠 속에서 눈을 감았어. 하지만 내 심장은 멈추지 않고 미친 듯이 뛰고 있었어.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이대로는 못 죽는다.
※ 3 죽음의 숲으로 가는 길, 공포가 독기로 변하다
가마가 덜컹거리며 산길을 오르는데, 내 속이 문드러지는 것 같았어. 죽으러 가는 길이 이렇게 춥고 외로울 줄이야. 차라리 그냥 혀 깨물고 죽어버릴까? 아니면 몸을 날려 가마를 부수고 저 절벽 아래로 떨어질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란 말이여. 가마 안은 찜통처럼 더웠다가, 산바람이 스며들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가를 반복했어.
가마꾼 놈들이 헉헉대는 숨소리와 발 끄는 소리, 그리고 가끔씩 터져 나오는 욕설이 좁은 가마 안까지 생생하게 들려왔어.
"아이고, 되다. 이년은 밥을 얼마나 처먹었길래 이렇게 무거워? 뼈만 남았을 줄 알았더니."
"조용히 해! 도깨비 숲 다 와간단 말야.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부정 탄다."
"에이씨, 빨리 던져버리고 내려가서 술이나 한잔하자고."
그 소리를 듣는데,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어. 내가 무거워? 평생 굶기를 밥 먹듯 해서 뼈만 앙상하게 남은 나를 두고 무겁다니. 니들이 지은 죄의 무게가 무거운 거겠지, 이 천벌 받을 놈들아. 내가 죽어서 귀신 되면 니놈들 다리몽둥이부터 분질러놓을 거다.
점점 산 깊은 곳으로 들어가니 공기가 달라지대. 텁텁한 흙냄새 대신 비릿하고 축축한 안개 냄새가 코를 찌르고, 찬바람이 쌩쌩 불어와 뼈마디를 시리게 해. 부엉이가 우는데 꼭 "너 죽는다, 너 죽는다" 하고 우는 저승사자 곡소리 같아서 소름이 쫙 돋더라니까. 짐승 우는 소리도 들리고, 나뭇가지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꼭 귀신들이 박수치는 소리 같아.
가마꾼 놈들도 무서운지 발걸음이 빨라지더니, 서로 밀치고 난리가 났어.
"야, 그만 가자. 더 들어가면 우리도 못 살아 나와. 여기 귀신 나온다는 귀곡성 입구잖아."
"여기다 내려놔. 현감 나으리도 여기까진 모를 거야. 어차피 도깨비가 알아서 물어가겠지."
"그래, 하나, 둘, 셋!"
그러더니 쿵! 하고 가마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는겨. 내 몸이 안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여기저기 부딪혔지. 으악! 소리도 못 지르고 끙끙대고 있는데, 밖에서 후다닥 뛰어가는 발소리가 멀어지대.
"도망가! 뒤도 돌아보지 마!"
아이고, 나쁜 놈들... 썩을 놈들... 이제 진짜 나 혼자구나.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덩그러니 남겨지니까, 처음엔 무서워서 오줌을 지릴 뻔했어. 재갈 물린 입에선 침이 질질 흐르고, 묶인 팔다리는 저려오고... 이대로 굶어 죽거나 산짐승한테 뜯어 먹히겠구나 싶어서 눈물만 줄줄 흐르대. 가마 틈새로 보이는 거라곤 시커먼 나무 그림자뿐이고, 들리는 건 내 거친 숨소리뿐이니 미칠 노릇이지.
그런데 말이여, 사람이 너무 기가 막히고 억울하면 눈물이 쏙 들어가고 오기가 생기는 법이여. 그래, 니들이 날 여기다 버렸지? 나를 제물로 바치고 니들은 발 뻗고 자겠지? 현감 놈은 비단 이불 덮고 코 골고 자겠지?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져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거야.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평생 남한테 해코지 한 번 안 하고, 죽어라 일만 했는데. 왜 저 배부른 놈들은 등 따습게 자고, 나는 이 밤중에 산속에 버려져서 귀신 밥이 되어야 하냔 말이야. 신이 있다면 이럴 수는 없는 거여.
그때 문득,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말씀이 떠오르대. 어머니도 평생 고생만 하시다 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내 손을 잡고 그러셨지.
'옥분아,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단다. 억울한 일 당하면 참고 살지 마라. 참고 살면 병 된다. 악을 쓰고 대들어라. 그래야 산다. 니 목숨 니가 챙겨야지, 아무도 안 챙겨준다.'
그래, 어머니 말이 맞아. 내가 바보같이 당하고만 살아서 이 꼴이 된 거야. '네, 네' 하고 굽신거리니까 날 볏집인 줄 알고 밟은 거야. 이제라도 악을 써야지. 죽더라도 그냥은 못 죽지. 내가 귀신이 되더라도 저 현감 놈 목덜미는 물어뜯고 간다. 마을 놈들 꿈자리에 나타나서 피눈물을 흘려줄 테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갑자기 뱃속에서 뜨거운 불덩이 같은 게 치밀어 오르대. 공포가 서늘한 독기로 변해서 온몸에 퍼지는 느낌이랄까? 눈앞이 캄캄한데도 눈이 번쩍 뜨이고, 심장이 쿵쿵 뛰는 게 겁이 나서 뛰는 게 아니라 싸우고 싶어서 뛰는 것 같았어. 이빨이 부득부득 갈리고,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도록 주먹을 쥐었지.
'와라, 도깨비든 귀신이든 다 와라. 내가 그냥은 안 죽어준다. 내 한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주마.'
그때였어. 숲속 저 깊은 곳에서 '파스락, 파스락'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차가운 냉기가 가마 안으로 훅 끼쳐오는겨. 그러더니 틈새로 시퍼런 불꽃이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했어. 도깨비불이여. 처음엔 하나더니, 둘이 되고, 셋이 되고... 순식간에 수십 개의 불꽃이 둥둥 떠다니며 가마 주위를 맴돌대. 그 불빛이 춤을 추듯 일렁이는데, 마치 나를 비웃는 것 같았어.
드디어 그놈들이 온 거야. 내 운명을 끝장내러, 아니면 내 한을 풀어줄지도 모를 그 괴물들이.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터질 듯한 심장을 부여잡으며 눈을 부릅떴어.
'어디 한번 해보자. 이놈들아.'
※ 4 도깨비 왕과의 대면, "나는 남편 셋 잡아먹은 여자다!"
눈앞이 번쩍하더니 땅이 쿵쿵 울리대. 마치 산이 걸어오는 것처럼 묵직한 진동이 가마 바닥을 타고 올라오는데, 그게 내 심장 박동하고 박자가 딱 맞더라니까.
"우지끈!"
갑자기 가마 뚜껑이 종잇장처럼 뜯겨나가고, 차가운 밤공기가 훅 들어오는데 숨이 턱 막혀. 고개를 들어보니, 아이고 어머니...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흉측한 꼴은 처음 봤네. 그림책에서나 보던 게 아니여.
집채만한 덩치에 뿔이 우뚝 솟고, 온몸에 털이 숭숭 난 놈들이 떼거지로 몰려와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겨. 눈알은 뻘겋게 충혈돼서 이글거리고, 입에는 누런 송곳니가 삐죽 튀어나왔는데 그 사이로 허연 입김을 뿜어대. 손에는 징이 숭숭 박힌 쇠몽둥이를 하나씩 들고 있더란 말이여. 그 몽둥이 한 방이면 내 머리통은 수박처럼 깨지겠지.
그중에서도 제일 큰 놈, 아마 대장인가 봐. 호랑이 가죽을 두르고 덩치가 남산만한 놈이 썩은 입냄새를 풍기며 내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대. 콧김이 어찌나 뜨거운지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었어. 그놈이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인상을 팍 쓰며 소리치는겨. 목소리가 꼭 쇠 긁는 소리 같아.
"킁킁... 이게 무슨 냄새야? 앙? 싱싱하고 향긋한 처녀 냄새가 아니라, 웬 쉰내 나는 늙은 과부를 데려다 놨어? 인간들이 우리를 아주 물로 보는구나! 비 내려달라고 빌면서 이따위 제물을 바쳐?"
그러자 뒤에 있던 졸개 도깨비들이 낄낄거리며 내 머리카락을 쿡쿡 찌르고,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조롱하대.
"대왕님, 이거 살가죽이 질겨서 씹히지도 않겠습니다요. 이빨 다 나가겠는데요? 킬킬킬."
"국물이나 우려먹어야겠습니다. 푹 고아먹으면 좀 나으려나?"
"아니지, 그냥 밟아 죽이고 마을로 내려가서 싹 다 쓸어버립시다! 인간 놈들 약속도 안 지키는데!"
보통 계집 같으면 그 자리에서 기절하거나 오줌을 지렸겠지. 도깨비가 코앞에서 침을 튀기는데 안 무서울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근데 나 옥분이여,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과부란 말이여. 사람한테 무시당하고 짓밟힌 세월이 얼만데, 고작 뿔 달린 짐승한테 기가 죽겠어? 여기서 겁먹고 벌벌 떨면 진짜 뼈도 못 추리고 개죽음당하겠다 싶어서, 정신을 바짝 차렸지.
'그래, 이판사판이다. 어차피 죽을 목숨, 말이나 시원하게 하고 죽자. 내 속에 천불이 나는데 이놈들한테라도 쏟아붓고 죽자.'
나는 입안에 물려진 재갈을 이빨로 잘근잘근 씹어서 퉤 뱉어버리고, 눈을 딱 부릅뜨고 그 대장 놈 눈깔을 정면으로 쏘아봤어. 그리고 냅다 아랫배 단전에 힘을 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
"야 이 뿔 달린 짐승 놈들아! 니들 눈에는 내가 그냥 힘없는 과부로 보이냐? 엉? 나는 서방을 셋이나 잡아먹고도 성이 안 차서, 니들까지 잡아먹으러 온 저승사자 할미다!"
내 목청이 어찌나 컸던지, 숲속에 메아리가 쩌렁쩌렁 울리대. 도깨비들이 갑자기 멍해져서 서로 쳐다보대? 눈을 껌뻑거리면서. 이게 뭔 소린가 싶은 거지. 제물로 바쳐진 인간이 살려달라고 빌기는커녕 바락바락 대드니까 황당하기도 했을 거고.
내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기세를 몰아서 더 크게 떠들었어. 미친년 널뛰듯이 아주 표독스럽게 나갔지. 머리카락을 쥐어뜯어 산발을 하고, 눈을 까뒤집으며 소리쳤어.
"내 몸에는 양기가 넘쳐흘러서 닿기만 해도 불에 타 죽어! 내 서방 셋도 다 내 기운 못 이겨서 복상사로 저승 갔는데, 니들이라고 별수 있을 줄 아냐? 자신 있으면 덤벼! 오늘 니들 뼈다귀로 곰국을 끓여 먹을 테니까! 내 오늘 니들 뿔을 뽑아서 비녀로 꽂고 갈 테다! 덤벼라 이놈들아!"
그러면서 묶인 몸을 비틀며 벌떡 일어나려니까, 대장 놈이 움찔하면서 뒷걸음질을 치는겨.
"허, 허허... 저년 눈빛 좀 보소. 진짜 독기가 줄줄 흐르네. 보통내기가 아니여.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겠어."
졸개 놈들도 웅성웅성하대.
"대왕님, 진짜 건드리면 부정 타는 거 아닙니까? 냄새부터가 아주 독합니다요. 살기(殺氣)가 장난이 아닙니다."
"맞아, 눈깔 돌아간 꼴을 보니 귀신 들린 게 분명해. 잘못 먹었다가 배탈 나겠습니다."
미친년이 몽둥이보다 무섭다더니, 딱 그 꼴이지 뭐여. 내가 더 미친 척을 했어. 혓바닥을 낼름거리며 "크르르" 소리를 내니까, 그 험상궂은 도깨비들이 슬금슬금 물러나는 꼬라지가 아주 가관이여. 덩치 값도 못 하는 놈들 같으니라고.
대장 놈이 당황해서 헛기침을 하더니 그러대. 자존심은 있는지라 짐짓 엄한 척을 하면서 말이야.
"크흠! 이년 기세 좀 보게. 죽음 앞에서도 쫄지 않는 배짱 하나는 인정해주마. 좋아, 네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내기를 하자. 우리 도깨비들은 내기를 좋아하니까."
"내기? 무슨 내기 말이냐! 씨름이라도 하자는 거냐?" 내가 쏘아붙였지.
"아니, 씨름은 네년이 너무 약해서 재미없고. 우리를 울려봐라. 네가 진짜 한이 많고 독한 년이라면, 네 사연으로 우리 눈에서 눈물을 쏙 빼보란 말이다. 만약 우리를 울리면 네 목숨을 살려주고 술대접까지 해주마. 못 울리면? 그땐 얄짤없이 가마솥으로 들어가는 거야. 어떠냐?"
순간 머릿속이 번쩍하대. 도깨비들이 원래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하고, 감정이 풍부하다는 얘기를 어릴 적 할머니한테 들은 적이 있었어. 그래, 이거다 싶었지. 내가 평생 가슴속에 켜켜이 쌓아둔 게 뭐여? 한(恨) 아니여? 그 시커먼 한을 토해내면 돌부처도 울릴 자신 있었지. 내 인생 자체가 눈물 없이 못 듣는 판소리 마당이니까.
나는 씩 웃으며 대답했어. 내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지.
"좋다! 내 노래 한 가락에 니들 눈물 콧물 다 쏟게 만들어주마. 대신, 내가 이기면 니들 술독 다 내 거다! 그리고 나 묶은 이 밧줄부터 풀어라!"
이것은 살기 위한 도박이 아니라, 내 억울한 인생을 향한 처절한 굿판의 시작이었어.
※ 5 한(恨) 맺힌 노래, 도깨비를 울리다
대장 놈이 밧줄을 풀어주라고 눈짓을 하대. 졸개 하나가 와서 밧줄을 툭 끊어주는데, 오랫동안 묶여 있어서 피가 안 통해 팔다리가 저려오대.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어. 하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지. 여기서 비틀거리거나 약한 모습 보이면 끝장이야. 나는 옷매무새를 대충 고치고,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빗어 넘긴 뒤, 널찍한 바위 위에 털썩 주저앉아 무릎장단을 치기 시작했어.
둥, 둥, 둥...
내 거친 손바닥이 무릎을 치는 소리가 숲속 정적을 깨고 울려 퍼지는데, 도깨비들이 숨을 죽이고 나를 쳐다보대. 수십 개의 붉은 눈동자가 나를 향해 있는데, 이상하게도 하나도 안 무섭더라고. 오히려 내 관객 같았어.
나는 눈을 지그시 감고, 저기 멀리 두고 온 고향 집과 먼저 간 서방님 얼굴을 떠올렸어. 그리고 목구멍 깊은 곳, 단전 밑바닥에서부터 소리를 끌어올렸지. 기교 부릴 것도 없어. 억지로 꾸밀 필요도 없어. 그냥 내 살아온 이야기, 피 토하듯 뱉어내면 그게 노래지 뭐.
"아이고오~ 서러워라. 어이 그리 무정탄 말이냐
. 꽃다운 나이 열일곱에 연지곤지 찍고 가마 타고 시집와서, 족두리 벗기도 전에 서방님은 북망산천 떠나가고
. 빈방에 홀로 앉아 문풍지 우는 소리에 내 설움 섞어 울던 밤이 몇 날이던가
. 서방님아 서방님아, 나를 두고 어찌 그리 급하게 가셨소
."
육자배기 가락에 실어 내 사연을 하나하나 풀어놓기 시작했어. 처음엔 작게 읊조리듯 하다가, 점점 소리를 높여갔지. 내 목소리가 떨리면서 허공을 갈랐어.
"시어머니 구박에 멍든 가슴 부여잡고, 보리밥 한 덩이 눈물에 말아 먹으며 살았네
. 남들은 콩 심어 콩 나고 팥 심어 팥 난다는데, 이내 팔자는 어찌하여 심는 족족 가시밭길이더냐
. 남들은 서방 그늘, 자식 그늘 아래서 웃음꽃 피우는데, 나는 땡볕 아래서 호미 자루만 벗 삼아 피땀 흘렸네
. 손발이 다 터져라 일해도 내 손에 남는 건 흙먼지뿐이고, 돌아오는 건 멸시와 천대뿐이었네
."
내가 노래를 부르는데, 내 눈에서도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는겨. 이게 연기가 아니여. 진짜 내 속이 썩어 문드러진 냄새가 노래에 배어 나오는 거지. 5년 전에 죽은 옆집 할매 생각도 나고, 굶어 죽을 뻔했던 그해 겨울 생각도 나고...
"동네 개도 제 집 지키면 밥을 주는데, 사람들은 과부라고 손가락질하고 재수 없다 침을 뱉네
. 배고파 우는 소리 하늘에 닿을까 봐 입 틀어막고 울었고, 억울해 터지는 속 달래려 찬물만 들이켰네
. 이놈의 세상은 어찌 이리도 모질어서, 죄 없는 나를 산 제물로 바쳐 귀신 밥이 되라 하네~ 아이고오~ 아이고오~ 내 신세야~"
내 목소리가 점점 커져서 숲을 쩌렁쩌렁 울리고 나무를 흔드니까, 처음엔 낄낄대며 구경하던 도깨비들이 하나둘씩 조용해지대. 내 한 맺힌 소리가 쟤네들 가슴을 후벼 팠나 봐.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갔어. 덩치 큰 놈 하나는 훌쩍훌쩍 소리를 내며 털북숭이 손등으로 콧물을 닦고 있고, 뿔 달린 놈 하나는 바닥을 치며 "아이고 불쌍해라, 아이고 짠해라" 하며 곡을 하대.
"우리 엄마 생각나네... 우리 엄마도 인간들한테 쫓겨나서 저렇게 울었는데..."
심지어 그 무섭던 대장 놈도 하늘을 쳐다보며 눈을 껌뻑거리는데, 그 굵은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겨.
"크흡... 끄으읍... 야, 그만해라. 내 가슴이 다 미어지는구나. 네년 팔자가 내 팔자보다 더 사납구나."
내 한 맺힌 소리가, 사실은 외로운 도깨비들 마음하고 닿아버린 거지. 도깨비들도 원래는 인간들 틈에서 살고 싶어 하는데, 무섭다고 쫓겨나서 이 춥고 깊은 산속에 숨어 사는 거 아니여. 내 신세나 쟤네 신세나 다를 게 뭐 있겠어. 다 같은 외톨이들이지.
노래가 끝나고 내가 바닥에 엎드려 통곡을 하니까, 숲속이 쥐 죽은 듯 조용한데 도깨비들 훌쩍이는 소리, 코 먹는 소리만 들려.
잠시 후, 대장 놈이 슥 다가오더니 투박하고 거친 손으로 내 어깨를 툭툭 치는겨.
"야... 너 진짜 독하게, 아니 징하게 살았다. 내가 졌다. 너 같은 년 잡아먹었다간 내 속이 체해서 죽을 것 같다. 아니, 슬퍼서 소화가 안 될 것 같아."
그러더니 허리춤에서 커다란 호리병을 꺼내 내미는겨.
"자, 이거 마셔라. 도깨비 술이다. 이거 한 잔이면 십 년 묵은 체증도 내려간다. 우리랑 같이 술이나 한잔하고 털어버리자. 오늘 밤은 네가 우리 누님이다."
그 험상궂은 얼굴에 묘한 연민이 서려 있더란 말이여. 나는 눈물을 닦고 그 술병을 받아 들었어. 그래, 오늘 밤은 귀신하고라도 친구 먹고 취해보자. 내 팔자에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사양하겠냐.
벌컥벌컥 술을 들이키는데, 뱃속이 뜨끈해지면서 묘한 힘이 솟는 것 같았어. 이 술이, 내 운명을 바꿀 줄은 그때는 꿈에도 몰랐지.
※ 6 방망이를 훔쳐라! 금 나와라 뚝딱, 역전의 순간
술판이 거하게 벌어졌어. 도깨비 술이라 그런지 맛이 아주 기가 막히대? 달큰하면서도 목구멍을 타고 넘어갈 때 불덩이를 삼키는 것처럼 화끈한 것이, 한 잔 마시니까 힘이 불끈 솟고 세상 무서울 게 없어지대. 내 평생 그렇게 맛있는 술은 처음이었어.
"어이구, 누님! 노래 한번 더 뽑아보소! 내 춤을 춰 드릴 테니!"
"그려! 마셔라, 부어라! 오늘 밤은 니들하고 내가 형제여! 에라 모르겠다!"
니들도 짠해라, 나도 짠하다 하면서 서로 어깨동무하고 밤새 마셔댔지. 내가 안주 삼아 현감 놈 욕을 한 바가지 퍼부으니까, 도깨비들이 킬킬대며 맞장구를 치는데 아주 죽이 척척 맞더라니까.
"그 현감 놈, 엉덩이에 뿔이나 나라!"
"아녀! 똥구멍에 털이나 수북하게 나서 똥도 못 싸게 해라!"
"그래, 그거 좋다! 으하하하!"
하면서 낄낄거리다 보니, 이 멍청하고 순진한 놈들이 하나둘씩 곯아떨어지기 시작하는겨. 도깨비들은 술이 약한지, 아니면 안심해서 그런지 금방 취하대.
술기운에 얼굴이 벌게진 놈들이 여기저기 나뒹굴며 코를 골기 시작했어. 숲이 떠나가라 드르렁드르렁 코를 고는데, 아주 천둥 치는 줄 알았네. 대장 놈도 술을 댓병이나 비우더니, 바위 위에 대자로 뻗어서 침을 질질 흘리며 자고 있대.
"크아... 좋다... 누님... 꺽... 노래 좋다..."
그놈이 잠꼬대를 하며 몸을 뒤척이는데, 달빛 아래 번쩍! 하고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지.
대장 놈 허리춤에 매달린, 울퉁불퉁하고 징이 박힌 금색 방망이!
'저, 저게... 그 소원 들어준다는 도깨비 방망이?!'
순간 술이 확 깨면서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어. 저거만 있으면... 저거만 있으면 금 나와라 뚝딱 해서 팔자 고칠 수도 있고, 은 나와라 뚝딱 해서 떵떵거리고 살 수도 있잖아? 내 평생소원이 배불리 밥 먹고 등 따습게 자는 건데, 저게 바로 그 열쇠인겨. 아니, 그보다 더 큰일도 할 수 있겠어.
술김인지 오기인지, 손이 절로 가대. 조심조심... 숨도 안 쉬고 살금살금 다가갔어. 대장 놈이 뒤척일 때마다 간이 콩알만 해졌지만, 에라 모르겠다 하고 방망이 자루를 꽉 쥐었지. 쑥 빼내는데 묵직한 게 아주 손에 착 감기대. 마치 내 물건인 양 딱 맞더라고.
'됐다! 이제 살았다! 이제 옥분이는 폈다!'
이걸 들고 도망갈까 하다가, 문득 발걸음이 멈췄어. 도망가면 뭐 해? 금덩이 들고 마을로 내려가 봤자, 현감 놈이 "이년, 도둑질했구나!" 하고 또 잡아가서 뺏을 게 뻔하잖아. 게다가 나는 이미 죽은 사람 취급받는데, 어디 가서 산단 말이여.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 도망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이참에 판을 뒤집어엎어야지. 내가 당한 만큼 갚아줘야지. 아니, 그보다 더 크게 갚아줘야지. 저 현감 놈, 무당년, 나를 무시했던 마을 사람들... 다 내 발아래 꿇려야지.
나는 방망이를 두 손으로 높이 쳐들고, 잠든 도깨비들을 내려다봤어. 이놈들을 다스려야 내가 산다. 이 군대를 내가 접수한다.
"금 나와라 뚝딱이 아니라... 도깨비 잡는 포승줄 나와라 뚝딱!"
내가 소리치며 방망이를 바닥에 쾅! 하고 내리찍었어. 그랬더니 세상에, 방망이에서 번쩍! 하고 황금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허공에서 굵은 동아줄들이 뱀처럼 튀어나와서 자고 있던 도깨비들을 칭칭 감아버리는겨!
"으악! 뭐야? 이게 뭐야! 몸이 안 움직여!"
도깨비들이 놀라서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지만, 이미 늦었지. 몸은 꽁꽁 묶였고, 술기운에 힘도 못 쓰고 버둥거리기만 하대. 대장 놈도 눈을 홉뜨고 소리쳤어.
"야! 이년아! 은혜를 원수로 갚냐! 내 방망이 내놔! 감히 도깨비 물건에 손을 대?"
내가 방망이를 획 휘두르며 호통을 쳤어. 방망이 끝을 대장 놈 코앞에 들이대면서 말이야.
"시끄럽다! 은혜는 무슨 얼어 죽을 은혜! 니들이 날 잡아먹으려 했던 건 잊었냐? 술 한 잔 줬다고 퉁치려고? 어림없다! 자, 이제부터 이 숲의 대장은 나 옥분이여! 내 말 안 들으면 이 방망이로 니들 뿔다귀를 하나씩 똑똑 분질러버릴 테니 썩 엎드리지 못해?"
내 눈에서 파란 불이 나가는 것 같았나 봐. 방망이의 위력도 무서웠겠지만, 내 기세에 눌린 거지. 천하의 도깨비들이 늙은 과부 앞에 무릎 꿇고 벌벌 떠는 꼴이라니, 아이고 고소해라! 십 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가는 것 같았어.
"살려만 주십쇼, 마님! 아니 대장님! 시키는 건 뭐든지 하겠습니다요! 제발 뿔만은... 뿔 없으면 우린 끝입니다!"
대장 놈이 비굴하게 머리를 조아리대.
"좋다. 내 너희 목숨은 살려주마. 대신 나랑 같이 갈 데가 있다. 내 한을 풀어주러 가야겠다. 니들이 내 군대가 되어줘야겠다."
"어디로 모실까요?"
"어디긴 어디여. 저 아래, 썩어빠진 인간들이 사는 마을이지. 현감 놈 잡으러 가자!"
이제 진짜 복수 시작이다. 현감 놈아, 딱 기다려라. 옥분이가 간다. 도깨비 군단을 이끌고 간다!
※ 7 도깨비 군단, 안개 속을 뚫고 마을로 진격하다
새벽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산길을 내려오는데, 그 행렬이 아주 장관이었어. 으스스한 푸른 안개를 헤치고, 맨 앞에는 내가 섰지. 하얀 소복을 휘날리며 한 손에는 번쩍이는 금방망이를 들고, 마치 개선장군처럼 위풍당당하게 말이야. 그 뒤로는 뿔 달린 도깨비 수십 마리가 내 눈치 보며 줄줄이 따라오는겨. 덩치는 산만 한 놈들이 내가 헛기침이라도 "흠흠!" 하면 움찔움찔 놀라는데, 어찌나 우습던지.
"야 이놈들아, 발소리 죽여! 쿵쿵거리지 말고 살금살금 걸어! 동네 개 짖게 하지 말고!"
"예, 예! 마님! 살살 걷겠습니다요!"
도깨비들이 발뒤꿈치를 들고 고양이처럼 걷느라 엉덩이를 씰룩거리는데, 뒤에서 보면 아주 가관이었지. 하지만 그 눈빛들만은 살기가 등등해서, 지나가던 산짐승들도 기겁을 하고 도망가더라고.
산 아래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어. 캄캄한 어둠 속에 잠겨있는 저 마을. 나를 버리고, 나를 무시하고, 나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그곳. 그동안 내가 흘린 눈물이 밴 땅이고, 내 한숨이 서린 곳이지.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게 아려왔지만,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어. 지금은 약해질 때가 아니여. 눈물 따위는 사치여.
마을 어귀에 서 있는 천하대장군 장승 앞에 도착하니까, 멀리서 첫닭이 울려고 폼을 잡고 있대. 시간이 없어. 해 뜨기 전에 끝내야 해.
내가 도깨비들을 모아놓고 작전 지시를 내렸지.
"잘 들어라. 지금부터 니들은 조를 나눠서 움직인다. 실수하면 국물도 없다. 첫째, 마을 집집마다 대문을 밖에서 걸어 잠가라. 개미 새끼 한 마리 못 나오게! 둘째, 아무도 깨우지 말고 조용히 해라. 쥐도 새도 모르게 가두는 거다. 셋째, 우리는 어디로 간다? 저기 저 으리으리한 기와집, 관아로 간다!"
도깨비 대장이 쇠몽둥이를 어깨에 걸치고 눈을 반짝이며 물어.
"관아 가서 뭐 합니까요? 다 때려 부숩니까? 아니면 불을 지를까요?"
"그래! 아주 박살을 내버려라! 그동안 내가 당한 만큼, 아니 그 백 배, 천 배로 갚아줄 거다! 기둥 뿌리를 뽑아버려도 좋다!"
도깨비들이 신이 나서 킬킬거리며 흩어지대. 이놈들도 맨날 산에만 처박혀 있다가 심심했는데, 대놓고 장난질 칠 판을 깔아주니 얼마나 좋겠어.
"와아! 신난다! 인간들 혼내주자!"
"현감 놈 엉덩이를 걷어차주마!"
그림자처럼 스르륵 마을로 스며드는 도깨비들을 보며 나는 주문을 외듯 중얼거렸어.
"자, 이제 쇼를 시작해볼까. 현감 나으리, 간 밤에 안녕하셨소? 당신이 보낸 제물이 선물을 한 보따리 들고 왔는데, 안 받아주면 섭섭하지."
순식간에 마을은 독 안에 든 쥐 꼴이 됐어. 집집마다 문고리에 빗장이 걸리고, 도깨비들이 지붕 위에 올라가 앉아 망을 보기 시작했지. 우리는 관아의 솟을대문 앞에 섰어. 높고 굳게 닫힌 문, 평소엔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던 그 문을 보며 내가 방망이를 높이 쳐들었어.
"열려라, 참깨... 가 아니라, 박살 나라 대문아 뚝딱!"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두꺼운 대문이 종잇장처럼 찢겨나가고, 나무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어. 우리는 자욱한 먼지를 일으키며 관아 마당으로 보란 듯이 들이닥쳤지.
※ 8 관아 습격! 현감의 곳간을 털어라
관아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아수라장이 펼쳐졌어. 대문 부서지는 소리에 졸고 있던 포졸들이 화들짝 놀라 창을 겨누며 뛰쳐나왔지만, 도깨비들을 보고는 창을 버리고 오줌을 지리며 달아나대.
"도, 도깨비다! 도깨비 떼가 나타났다!"
"사람 살려! 괴물이다!"
내가 방망이를 휘두르며 소리쳤어.
"여봐라! 이 썩어빠진 관아를 뒤집어엎어라! 마구간의 말을 풀고, 옥사의 문을 열어 억울한 죄인들을 풀어줘라! 닥치는 대로 부수고 엎어라!"
도깨비들이 "와!" 하고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어서 마구간 문을 부수니, 갇혀 있던 말들이 히히힝거리며 마당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고 난리가 났지. 포졸들은 도망가다가 자기들끼리 부딪혀 넘어지고, 도깨비들한테 엉덩이를 걷어차여서 데굴데굴 구르고... 아주 난장판이 따로 없었어. 어떤 놈은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고, 어떤 놈은 항아리 속에 머리를 처박고 숨더라고. 꼴좋다, 이놈들. 니들이 나 끌고 갈 때 짓던 그 거만한 표정은 어디 갔냐?
그 소란 통에 안채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현감 놈이 속옷 바람에 상투도 못 튼 채 뛰쳐나왔어. 옆에는 비단 이불을 뒤집어쓴 첩실인지 딸인지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
"이, 이게 무슨 변고냐! 어떤 놈들이 감히 관아에 행패를 부려! 여봐라, 다들 어디 갔느냐!"
현감 놈이 눈을 비비며 상황을 파악하려는데, 마당 한가운데 떡하니 서 있는 나를 보고는 눈이 튀어나올 뻔하대. 입을 떡 벌리고 말을 더듬는데 가관이여.
"너, 너... 넌 죽으러 간 옥분이 아니냐? 귀, 귀신이냐? 어, 어찌 네년이..."
내가 씨익 웃으며 한 발짝 다가갔어. 금방망이를 어깨에 척 걸치고 말이야.
"나으리, 저승길 갔다가 나으리가 너무 보고 싶어서 다시 왔소. 혼자 가기 심심해서 저승 군대를 좀 몰고 왔는데, 반갑소? 왜, 오줌이라도 지리셨소?"
현감 놈이 사색이 돼서 뒷걸음질 치는데, 도깨비 대장이 뒤에서 그놈 멱살을 번쩍 들어 올렸어. 발이 허공에서 버둥거리는 게 꼭 잡힌 개구리 꼴이여.
"어이쿠, 영감탱이. 우리 누님한테 죄지은 게 많다며? 어디 맛 좀 봐라."
대장이 현감을 짐짝처럼 바닥에 패대기치니까, 현감이 "아이고 나 죽네!" 하며 비명을 질러. 흙바닥에 나뒹구는 꼬라지를 보니 속이 다 시원하더구만.
"얘들아, 저놈 곳간 문을 열어라! 숨겨둔 보물들 싹 다 꺼내와!"
내 명령에 도깨비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현감의 보물 창고 문을 몽둥이로 부수니까, 와르르 쏟아져 나오는 것들 좀 보소.
쌀가마니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비단이며 엽전이며 금괴가 줄줄이 흘러나오는데, 끝도 없이 나와. 백성들 고혈 짜낸 게 저렇게 많아? 흉년이라 쌀 한 톨 없다고 징징대더니, 지 곳간은 터져나갈 지경이었네. 심지어 구휼미로 내려온 쌀자루도 그대로 있더라고. 내 눈에서 불이 튀더라. 저 쌀만 풀었어도 내 옆집 박 씨 영감님 안 굶어 죽었어!
"저게 다 우리 피고 살이다! 저놈을 묶어서 마당 한가운데 꿇려라!"
도깨비들이 현감을 꽁꽁 묶어 무릎 꿇리고, 그 앞에 쌀가마니를 벽처럼 쌓아 올렸어.
"나으리, 이거 다 드시고 가셔야지. 백성들은 굶어 죽는데 혼자 배부르니 좋습디까? 아주 배 터지게 먹여줄까?"
내가 방망이로 현감의 배를 툭툭 치며 물었어.
"사, 살려주게 옥분아! 아니 옥분 아씨! 내 재산 다 줄 테니 제발 목숨만은... 내, 내가 잘못했네!"
비굴하게 비는 꼴이라니. 그 위세 등등하던 사또 나으리 체면은 어디다 팔아먹었나.
"시끄럽다! 저 더러운 비단옷은 찢어버리고, 니들이 입던 털가죽이나 입혀줘라! 그리고 얼굴에 먹물로 '탐관오리'라고 써라! 평생 잊지 못하게 해주마!"
도깨비들이 킬킬거리며 현감의 옷을 찢어 발기고, 얼굴에 붓으로 낙서를 하고, 수염을 잡아당기며 조롱하는데, 그동안 맺힌 한이 눈 녹듯 사라지며 어찌나 통쾌하던지! 현감 놈 비명 소리가 내 귀엔 노랫가락처럼 들리더라니까. 십 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가는 것 같았어. 이게 바로 정의 구현이지!
※ 9 엎드려 비는 마을 사람들, 옥분의 호통
날이 완전히 밝았어. 관아가 뒤집어지고 도깨비 난리가 났다는 소리에, 문 걸어 잠그고 떨던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호기심을 못 이기고 모여들대. 대문 밖에서 안을 기웃거리더니 기겁을 하는겨.
마당엔 뿔 달린 도깨비들이 득실대고, 쌀과 금은보화가 산처럼 쌓여있는데, 그 앞에 천하의 현감이 거지꼴을 하고 옥분이 발밑에 엎드려 빌고 있으니, 이게 꿈이냐 생시냐 싶었겠지.
내가 도깨비들한테 대문을 활짝 열라고 했어. 사람들이 들어오지도 못하고 입구에서 쭈뼛거리며 벌벌 떠는데, 내가 큰 소리로 불렀어.
"뭘 그리 서 있나! 다들 들어와! 어서! 구경 났어?"
내 호통에 사람들이 엉거주춤 마당으로 들어와서 눈치를 보대. 다들 내 눈을 피하려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내가 군중 속에서 낯익은 얼굴들을 콕콕 집어 불렀어.
"저기 주막 주모! 윗동네 최부자 댁 마름! 쌀가게 김씨! 다들 이리 와서 내 눈 좀 봐라!"
지목당한 사람들이 사색이 돼서 바닥을 기어 오대. 내가 그들 앞에서 금방망이를 땅에 쿵! 찍었어. 땅이 울리니까 사람들이 "히익!" 하며 머리를 땅에 박아.
"니들, 내가 억울하게 끌려갈 때 뭐했냐? 남 일이라고 구경만 했지? 과부라고 무시하고, 재수 없다고 침 뱉고, 품삯 떼어먹고! 내가 그 서러움을 잊을 줄 아냐?"
내 목소리가 떨리대. 화가 나서가 아니라, 그동안 서러웠던 게 북받쳐 올라와서 눈물이 핑 돌더라고.
"내 오늘 이 방망이로 니들 뚝배기를 다 깨버리고,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도 있다! 내 한마디면 저 도깨비들이 니들 집을 다 부숴버릴 거다! 도깨비들아, 준비해라!"
도깨비들이 "크아앙!" 하고 이빨을 드러내며 겁을 주니까, 사람들이 아이고 옥분아, 아니 옥분 아씨 잘못했습니다, 죽을 죄를 졌습니다 하고 싹싹 빌며 통곡을 하대.
"저희가 눈이 멀었습니다. 제발 용서만 해주십시오!"
"살려주시면 평생 은혜 갚으며 살겠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그 꼴을 보니까 화가 나면서도 한편으론 짠하더라. 그래, 니들도 힘없고 무서워서 그랬겠지. 현감 놈이 무서워서 시키는 대로 했겠지.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저들도 나처럼 약한 사람들일 뿐인데, 서로 물어뜯고 살았던 거지.
내가 한숨을 푹 쉬고 방망이를 거뒀어.
"됐다! 그만해라. 내가 니들처럼 똑같은 놈 되면 쓰것냐. 내 복수는 현감 놈 하나로 족하다."
사람들이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봐. 나는 쌓여있는 재물들을 가리켰어.
"대신! 저기 현감 놈 창고에서 나온 쌀이랑 돈, 다 니들 거다. 뺏긴 세금 돌려주는 거니 가져가라. 그리고 남는 건 가난한 사람들 나눠줘라. 굶는 사람 없게 해라!"
사람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웅성거려.
"그리고 앞으로 나 무시하지 마라. 과부라고 깔보지 말고, 없는 사람끼리 서로 돕고 살아라. 만약 또다시 힘없는 사람 괴롭히면, 그땐 진짜 밤마다 도깨비 풀어놓을 줄 알아! 알겠냐!"
"예! 예! 명심하겠습니다! 옥분 아씨 만세!"
사람들이 감격해서 만세를 부르고, 서로 얼싸안고 춤을 추는데, 그제야 내 가슴속 응어리가 스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어. 눈물이 나대. 서러워서가 아니라, 기뻐서 나는 눈물이었어. 이제야 내가 사람 대접받는구나 싶어서.
※ 10 새로운 수호신 옥분과 도깨비들의 작별
일을 다 마치고 나니 다시 저녁이여. 마을엔 잔치가 벌어졌어. 현감 놈 곳간 턴 걸로 밥 짓고 고기 굽고 난리가 났지. 도깨비들도 사람들 틈에 끼어서 막걸리 얻어마시고 덩실덩실 춤을 추대. 처음엔 무서워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도깨비 형님, 한 잔 받으시오", "안주 좀 드시오" 하며 친구처럼 대하는겨. 참 희한하고 아름다운 풍경이지.
나는 내 집 마루에 걸터앉아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어. 그때 도깨비 대장이 쭈뼛거리며 다가오대.
"마님... 아니 누님. 이제 우리 가도 되오? 너무 오래 나와 있었어. 산 기운이 그리워. 인간 세상은 너무 시끄러워."
얼굴을 보니 술기운인지 피곤한 건지 눈이 풀려있어. 하긴, 하룻밤 사이에 난리를 쳤으니 힘들기도 하겠지.
내가 손에 쥐고 있던 금방망이를 슥 내미니까 대장이 깜짝 놀라.
"이, 이거... 돌려주는 거요? 그냥 가지지 그러시오? 그거 있으면 누님 떵떵거리고 살 텐데."
"아니다. 이거 가지고 있으면 욕심만 생기지. 나한테는 이제 필요 없다. 이거 없어도 이제 나 무시할 사람 없다. 그리고 힘이란 건 필요할 때만 쓰는 거다."
나는 웃으며 방망이를 대장 손에 쥐여줬어. 묵직했던 무게가 사라지니 홀가분하더라.
"그리고 니들도 이제 비 안 온다고 처녀 내놓으라고 행패 부리지 마라. 심심하면 우리 집에 와서 조용히 막걸리나 한 잔 하고 가든지. 안주는 내가 끝내주게 만들어줄 테니까."
대장이 감동해서 그 큰 눈망울이 촉촉해지대.
"알았소, 누님. 우리 도깨비들은 은혜는 꼭 갚소. 누님이 살아있는 동안, 아니 누님 자손들 대대로 이 마을엔 가뭄도, 역병도 없을 거요. 우리가 지켜줄라니까. 누님은 우리의 영원한 대장이오."
"고맙다. 잘 가라, 내 징그러운 친구들아."
도깨비들이 하나둘씩 푸른 안개 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했어. 그 뒷모습이 어쩐지 쓸쓸하면서도 든든해 보이대.
도깨비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니, 하늘에서 우르릉 쾅쾅 천둥이 치더니 거짓말처럼 비가 쏟아지대. 쏴아아...
쩍쩍 갈라진 땅을 적시고, 타들어 가던 내 마음까지 적시는 시원한 단비였어. 빗줄기가 굵어질수록 내 마음은 더 맑아지는 것 같았어.
나는 마루에 앉아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어. 지나가던 마을 사람들이 내 집 쪽을 보고 허리를 굽혀 깍듯이 인사를 하고 가대.
'과부 옥분'이 아니라, 마을을 구한 '옥분 대장'으로, '큰어른'으로 봐주는 거지.
이제 춥고 외롭던 내 방 구석구석에도 따뜻한 볕이 들 것 같구먼. 세상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지?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더니, 오늘이 딱 그날인가벼.
나는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오랜만에 두 다리 쭉 뻗고 깊은 잠에 들 수 있었어. 꿈속에서도 도깨비들과 춤을 추면서 말이야. 내 인생, 이제부터 시작이여.
엔딩 & 마무리 멘트
그 뒤로 어떻게 됐냐고? 옥분이네 집엔 밤마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렸대요. 도깨비들이 놀러 와서 밤새 떡 먹고 춤추는 소리라나 뭐라나. 쫓겨난 현감은 거지가 돼서 동냥하러 다녔고, 마을 사람들은 옥분이를 수호신처럼 모시며 평화롭게 살았답니다.
여러분, 힘없고 빽 없다고 서러워 마세요. 옥분이처럼 깡다구 있게 버티고, 억울한 거 참지 말고 소리치다 보면, 언젠가 도깨비 방망이 같은 기회가 뚝딱! 하고 떨어질지 누가 압니까? 세상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요. 오늘 밤, 여러분 꿈에도 금 나와라 뚝딱 하는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SCENE 1 이미지 1:
Joseon dynasty severe drought scene, cracked dry earth like turtle shell, a 40-year-old widow woman in worn grey hanbok with jjokjin-meori hairstyle doing laundry by dried riverbed, her weathered hands wringing cloth in muddy water, harsh sunlight creating long shadows, villagers in background whispering and pointing fingers at her, atmosphere of despair and discrimination, photorealistic, cinematic lighting, 16:9
SCENE 1 이미지 2:
Joseon era village at dusk, wealthy yangban house with tile roof, house servant throwing barley grains on dusty ground dismissively, poor widow woman in patched hanbok kneeling to pick up scattered grains with trembling hands, her face showing humiliation and suppressed anger, torchlight casting cruel shadows, photorealistic, dramatic composition, 16:9
SCENE 2 이미지 1:
Dark night Joseon village, torch-lit scene, rough guards bursting into poor widow's shabby house, grabbing her hair and dragging her out, ropes binding her wrists behind back, blood on her lips, villagers hiding behind walls peeking with guilty expressions refusing to help, chaotic atmosphere with barking dogs, photorealistic, 16:9
SCENE 2 이미지 2:
Joseon government office courtyard at night, torches illuminating the scene, corrupt magistrate in expensive silk hanbok sitting arrogantly on elevated platform fanning himself, female shaman in white hanbok with bells and fan standing beside him with snake-like eyes, bound widow kneeling on straw mat in center being accused, menacing atmosphere, photorealistic, 16:9
SCENE 3 이미지 1:
Eerie mountain path at midnight, wooden palanquin carried by bearers through dense forest, blue-green mist swirling around ancient twisted trees, owl hooting in darkness, inside narrow dark palanquin bound widow's terrified eyes visible through small gaps, oppressive claustrophobic atmosphere, photorealistic, horror movie lighting, 16:9
SCENE 3 이미지 2:
Abandoned in cursed forest, broken palanquin lying on ground surrounded by thick mysterious fog, widow bound inside visible through torn cover, eerie blue ghost fires (dokkaebi-bul) starting to appear one by one in darkness, gnarled tree branches like reaching hands, her expression changing from fear to fierce determination, photorealistic, supernatural atmosphere, 16:9
SCENE 4 이미지 1:
Shocking confrontation scene, massive dokkaebi king with three horns wearing tiger skin towering over widow, his breath creating hot mist, yellow glowing eyes, sharp fangs dripping saliva, iron studded club in hand, surrounded by smaller dokkaebi with various horns, widow bound but glaring defiantly with wild disheveled hair, photorealistic, 16:9
SCENE 4 이미지 2:
Dramatic moment of defiance, widow standing with torn restraints, wild hair flying, eyes blazing with fury, pointing finger accusingly at shocked dokkaebi, her mouth open shouting "I devoured three husbands!", dokkaebi backing away looking confused and intimidated by her insane fierce energy, blue mystical fog surrounding, photorealistic, 16:9
SCENE 5 이미지 1:
Emotional folk song performance scene, widow sitting on moonlit rock with eyes closed, hands clapping on knees creating rhythm, singing her tragic life story with tears streaming down face, surrounding dokkaebi sitting in circle listening intently with gradually softening expressions, mystical forest atmosphere, photorealistic, 16:9
SCENE 5 이미지 2:
Touching moment of shared sorrow, massive dokkaebi king crying with large tears rolling down his furry face, wiping eyes with hairy hand, other dokkaebi sobbing and comforting each other, widow collapsed forward weeping, moonlight breaking through clouds illuminating the scene, emotional connection between human and monsters, photorealistic, 16:9
SCENE 6 이미지 1:
Secret theft in moonlight, widow carefully reaching for golden magic club (dokkaebi bangmangi) hanging from sleeping dokkaebi king's waist, he lies sprawled drunk on ground snoring with drool, empty liquor bottles scattered around, her face showing intense concentration and determination, critical moment of destiny, photorealistic, 16:9
SCENE 6 이미지 2:
Triumphant moment of power reversal, widow standing tall holding glowing golden club above head with both hands, magical light bursting from club creating ropes that bind all dokkaebi, dokkaebi struggling on ground looking shocked and defeated, her expression transformed to fierce authority, dawn light breaking, photorealistic, dramatic lighting, 16:9
SCENE 7 이미지 1:
Epic march through fog, widow leading at front in white mourning hanbok with jjokjin-meori flowing, holding golden club, followed by dozens of horned dokkaebi walking in formation like army through thick blue-green mist, approaching sleeping village at dawn, majestic and eerie procession, photorealistic, cinematic wide shot, 16:9
SCENE 7 이미지 2:
Village entrance at dawn, dokkaebi army silently surrounding houses, some climbing on roofs, others barring doors from outside with wooden beams, sleeping village completely unaware, widow pointing commanding finger toward government office building with tile roof in distance, strategic military operation atmosphere, photorealistic, 16:9
SCENE 8 이미지 1:
Explosive government office raid, massive wooden gate exploding into splinters, widow striding through dust and debris wielding glowing club, dokkaebi army charging behind her roaring, terrified guards dropping spears and fleeing, horses running wild from broken stable, complete chaos and destruction, photorealistic, action movie style, 16:9
SCENE 8 이미지 2:
Ultimate humiliation scene, corrupt magistrate in torn undergarments with face painted in black ink saying "corrupt official", kneeling bound in courtyard, widow standing over him victoriously with club, dokkaebi pouring out mountains of rice bags and gold from storehouse behind them, villagers gathering to witness justice, photorealistic, 16:9
SCENE 9 이미지 1:
Public judgment scene in daylight, widow standing elevated position pointing accusing finger at kneeling guilty villagers, her face showing righteous anger mixed with tears, dokkaebi army flanking her showing teeth menacingly, villagers prostrating themselves begging forgiveness, treasure piles in background, photorealistic, dramatic lighting, 16:9
SCENE 9 이미지 2:
Forgiveness and distribution, widow gesturing magnanimously toward piles of recovered rice and treasures, smiling villagers rushing forward gratefully, some villagers bowing deeply in respect, dokkaebi helping carry grain bags, atmosphere changed from fear to joy and gratitude, warm sunlight breaking through clouds, photorealistic, 16:9
SCENE 10 이미지 1:
Bittersweet farewell at evening, widow sitting on wooden porch, dokkaebi king returning golden club to her but she gently pushing it back, their hands meeting in gesture of eternal friendship, other dokkaebi gathering around looking touched, village festival with lanterns in background, photorealistic, emotional atmosphere, 16:9
SCENE 10 이미지 2:
Magical ending with blessing rain, widow sitting peacefully on porch watching dokkaebi disappearing into blue mist, sudden rain beginning to fall on parched earth creating steam, villagers dancing joyfully in rain bowing toward widow's house in gratitude, rainbow appearing in sky, she smiles contentedly finally at peace, photorealistic, beautiful lighting, 16:9
썸네일 이미지 프롬프트 (16:9, 실사, no text):
Powerful dramatic scene, fierce middle-aged widow in white mourning hanbok standing triumphantly holding glowing golden dokkaebi club above head, surrounded by dozens of horned Korean dokkaebi monsters bowing to her, explosive action with government building burning in background, corrupt magistrate kneeling defeated, mystical blue fog and firelight, her expression showing justice and righteous fury, epic cinematic composition, photorealistic, 16:9 aspect rat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