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반응형

    도깨비 도움으로 활기찬 과부

    태그 (15개)

    #오디오드라마, #도깨비, #전래동화, #감동스토리, #과부의성공기, #힐링오디오, #마음따뜻해지는이야기, #성우연기, #ASMR, #동화책읽어주기, #옛날이야기, #도깨비설화, #나눔의기쁨, #선한영향력, #가족애
    #오디오드라마 #도깨비 #전래동화 #감동스토리 #과부의성공기 #힐링오디오 #마음따뜻해지는이야기 #성우연기 #ASMR #동화책읽어주기 #옛날이야기 #도깨비설화 #나눔의기쁨 #선한영향력 #가족애

     

     

    후킹 멘트

    자식도 친정도 없이 산기슭 낡은 초가집에 홀로 남겨진 여인. 끼니조차 잇기 힘들던 그녀의 고단한 삶에 어느 날 밤, 기이하고도 유쾌한 손님이 찾아옵니다. "아주머니, 어쩌다 그리 슬픈 얼굴을 하고 계시오?" 밤의 장막을 뚫고 나타난 도깨비와의 만남! 숨겨져 있던 그녀의 재주가 깨어나고, 외롭던 초가집에 웃음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도깨비의 도움으로 절망을 딛고 일어나, 이웃과 온기를 나누며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감동적인 이야기.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 1: 산기슭 낡은 초가의 외로운 밤과 기이한 손님의 방문

    첩첩산중, 해가 지면 산짐승의 울음소리만이 유일한 벗이 되는 깊은 산기슭에 허물어져 가는 초가 한 채가 위태롭게 서 있었습니다. 지붕의 이엉은 삭아내려 빗물이 새기 일쑤였고, 문풍지는 구멍이 뚫려 매서운 산바람을 그대로 집 안으로 들이고 있었지요. 그 낡은 초가집의 방구석에는 촛불 하나를 간신히 밝혀둔 채, 굽은 등으로 바느질을 하는 늙은 과부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연희. 십여 년 전, 돌림병으로 남편을 허망하게 잃고, 자식 하나 품어보지 못한 채 시댁에서조차 쫓겨나 이 깊은 산골로 숨어들어온 가엾은 여인이었습니다. 친정마저 오래전 역병으로 무너져 내려 그녀가 세상에서 기댈 곳이라고는 이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 한 채와, 밭뙈기에서 나는 알량한 감자 몇 알이 전부였습니다.

    '오늘도 하루가 저물었구나. 내일은 또 무엇으로 이 모진 목숨을 이어가야 할꼬… 차라리 그 양반이 떠날 때 나도 함께 데려갔더라면, 이리 외롭고 시린 밤을 지새우지는 않았을 것을….'

    여인은 반짇고리를 내려놓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차가운 냉기가 올라오는 방바닥에 거칠고 앙상한 손을 비비며 몸을 웅크렸지요. 배에서는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헛헛하게 울렸지만, 부뚜막의 솥단지는 며칠째 물기 하나 없이 말라 있었습니다. 바깥에서는 스산한 가을바람이 마른 나뭇가지를 흔들며 스쳐 지나가고, 그 소리는 마치 여인의 처지를 비웃는 듯 날카로웠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고요하던 산중에 쿵, 하는 육중한 발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바람 소리라기엔 너무도 둔탁하고 묵직한 소리였지요. 여인은 화들짝 놀라 숨을 죽였습니다.

    쿵, 쿵, 쿵.

    발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더니, 급기야 초가집 마당 한가운데에서 멈춰 섰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여인이 이불자락을 꽉 틀어쥔 채 덜덜 떨고 있을 때, 문풍지 너머로 푸르스름한 불빛이 일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기괴한 불빛은 마치 도깨비불처럼 이리저리 춤을 추며 사그라지지 않았지요. 여인은 차마 문을 열어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방구석으로 몸을 바짝 붙였습니다. 그때, 우레와 같이 크고 쩌렁쩌렁한, 그러나 어딘가 묘하게 장난기가 섞인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습니다.

    "에헴! 이보시오, 방안에 계신 아주머니! 산바람이 이리 찬데, 어찌 그 깊은 한숨으로 산천초목을 다 떨게 하시오? 지나가던 이의 마음이 다 스산해지지 않소!"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동굴 속에서 울려 퍼지는 듯 깊고 기묘한 울림. 여인은 공포에 질려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산도깨비가 사람을 홀려 간다는 옛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목소리의 주인은 여인의 두려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낡은 방문을 조심스레, 그러나 힘차게 드르륵 열어젖혔습니다.

    푸른 불빛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집채만 한 덩치에 머리에는 뭉툭한 뿔이 하나 솟아 있고, 몸에는 호랑이 가죽을 두른 우락부락한 사내였습니다. 아니, 사내가 아니라 전설 속에서나 듣던 도깨비가 분명했습니다. 커다란 눈망울을 끔벅이며 방 안을 기웃거리던 도깨비는, 겁에 질려 파랗게 질린 여인을 발견하고는 혀를 끌쯧 찼습니다.

    "쯧쯧쯧, 방구석이 밖보다 더 춥구려. 도대체 어찌 살아왔길래 몰골이 이리 상했소? 호랑이보다 무서운 게 가난과 외로움이라더니, 아주머니 얼굴에 그 두 놈이 찰싹 달라붙어 있구려."

    "아, 아이고… 도, 도깨비님… 제발 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보시다시피 가진 것 하나 없는 늙고 병든 몸입니다. 잡아먹으셔도 뼈밖에 없어 맛도 없으실 겝니다요…."

    여인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 달달 떨며 애원했습니다. 그러자 도깨비는 허허, 하고 집이 떠나갈 듯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하하하! 걱정 마시오! 나는 사람 고기 같은 건 입에도 대지 않소. 그저 산마루에서 춤을 추다 보니, 이 초가집에서 하도 슬픈 기운이 피어오르길래 궁금해서 내려와 본 것뿐이오. 내 가만 보니, 아주머니는 원래 이리 초라하게 늙어갈 운명이 아닌 듯한데… 도대체 어쩌다 이 산구석에서 홀로 눈물만 훔치고 계신 거요? 이 밤도 길고 하니, 어디 내게 그 사연이나 한번 들려주시오."

    도깨비는 털썩, 마루 끝에 걸터앉더니 커다란 방망이를 옆에 내려놓고 턱을 괴었습니다. 그의 둥글고 커다란 눈에는 악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한 호기심과 묘한 온기가 서려 있었지요. 처음엔 벌벌 떨던 여인도, 도깨비의 그 진득한 눈빛과 뜻밖에 다정한 말투에 조금씩 마음의 빗장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던 자신의 기구한 삶. 남편을 떠나보내고 모진 구박을 받으며 쫓겨나야 했던 서러움, 끼니를 잇지 못해 흙을 파먹다시피 했던 고단한 나날들, 그리고 그 누구의 따뜻한 눈길 한번 받지 못하고 시들어버린 자신의 청춘까지. 여인의 입술을 통해 흘러나온 이야기는 차가운 밤공기를 타고 구슬프게 울려 퍼졌습니다. 도깨비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때로는 억울한 대목에서 방망이로 땅을 쿵쿵 내리치며 함께 분통을 터뜨려주었습니다. 그것은 여인의 평생에 걸쳐, 누군가에게 온전히 위로받은 첫 번째 밤이었습니다.

    ※ 2: 도깨비의 질문, 그리고 먼지 쌓인 솜씨를 다시 꺼내다

    밤이 깊도록 여인의 이야기를 듣고 난 도깨비는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흘리며 콧물을 훌쩍거렸습니다. 험상궂은 외모와는 달리 마음이 여린 도깨비였던 것이지요.

    "크흡… 참으로 기구한 팔자구려.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찌 이리 착하고 순박한 분을 이토록 가혹하게 내버려 두셨단 말이오! 내가 다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소이다!"

    도깨비는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마당을 서성거리더니, 돌연 여인을 향해 몸을 쑥 내밀며 물었습니다.

    "아주머니! 이리 앉아서 한숨만 쉬고 있을 때가 아니오. 내가 아주머니의 억울한 팔자를 조금이나마 펴주고 싶은데, 가만 보자… 아주머니가 이 산골로 쫓겨 오기 전, 젊은 시절에 가장 잘했던 일이 무엇이오? 사람마다 하늘이 내린 재주 하나쯤은 반드시 있는 법인데 말이오."

    여인은 도깨비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여 눈만 끔벅였습니다. 평생을 밭일과 허드렛일에 시달려온 자신이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잘하던 것…? 그저 시어머니 불호령에 맞춰 쉬지 않고 일하던 기억뿐인데… 아, 그러고 보니….'

    여인의 흐릿한 기억 너머로,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시집오기 전, 친정어머니 곁에서 꿀과 찹쌀, 약재를 버무려 조청을 고고 과줄(한과)을 만들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녀가 빚어낸 약과와 다식은 모양도 고왔지만 그 맛이 기가 막혀, 동네 잔치가 열릴 때면 마을 사람들이 앞다투어 그녀에게 상차림을 부탁하곤 했었지요. 남편이 살아있을 적에도 그녀가 해주는 달콤한 강정을 먹으며 참으로 솜씨가 좋다며 빙그레 웃어주던 기억이 아스라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저… 부끄럽지만, 젊은 시절에는 손끝이 야물다는 소리를 더러 듣긴 했습니다요. 약과나 정과, 과줄 같은 달콤한 간식거리를 만들면 다들 맛있다며 칭찬해 주었지요. 하지만… 그건 다 옛날이야기입니다. 지금은 그 흔한 밀가루 한 줌, 꿀 한 방울 살 돈조차 없는걸요. 재주가 있어도 부릴 도리가 없습니다."

    여인이 다시 고개를 푹 숙이자, 도깨비의 입가에 씩, 하고 장난스러운 미소가 번졌습니다.

    "하하! 바로 그거요! 손맛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법이지! 재료 걱정은 하덜덜 마시오. 이 산자락 구석구석이 내 안방인데, 최고로 좋은 재료쯤이야 내가 다 구해다 줄 수 있소이다!"

    그날 밤, 도깨비는 휙 하니 바람처럼 사라졌습니다. 여인은 한바탕 이상한 꿈을 꾼 것이라 생각하며 다시 잠자리에 들었지요.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방문을 열고 나온 여인은 마당 한가운데 쌓여 있는 산더미 같은 자루들을 보고 기절할 뻔했습니다.

    그 자루들 속에는 갓 찧은 새하얀 찹쌀과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잣, 산속 깊은 곳에서 채취해 온 맑고 진한 석청(야생 꿀), 그리고 향긋한 참기름과 귀한 약재들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반들반들한 조청 항아리까지 여러 개 놓여 있었지요. 허공에서 도깨비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환청처럼 귓가에 맴도는 듯했습니다.

    여인의 가슴이 오랜만에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무기력하게 죽을 날만 기다리던 그녀의 눈동자에 생기가 돌았습니다. 여인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오랜만에 부뚜막에 불을 지폈습니다. 찹쌀을 곱게 갈아 반죽을 하고, 맑은 기름에 튀겨내어 산에서 얻은 귀한 꿀과 조청에 버무렸습니다. 잣과 호박씨로 예쁘게 꽃 모양을 내어 장식도 곁들였지요.

    찌르르, 기름 끓는 소리가 적막하던 초가집을 가득 채우고,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온 산기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굳어 있던 여인의 손끝은 반죽을 치대고 모양을 빚을수록 옛 기억을 떠올리며 마법처럼 날렵해졌습니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재료들은 어느새 입안에서 살살 녹는 아름다운 약과와 강정으로 변해갔습니다.

    그날 밤, 어김없이 찾아온 도깨비는 방안 가득 쌓인 한과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아니, 이게 정녕 아주머니 솜씨란 말이오? 냄새만 맡아도 십 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구려!"

    도깨비는 약과 하나를 집어 입에 쏙 넣더니, 두 눈을 번쩍 떴습니다.

    "크아! 달콤하고 바삭한 것이 입안에서 춤을 추는구려! 내 평생 수백 년을 살며 임금님 수라상도 훔쳐 먹어보았지만, 이리 기가 막힌 맛은 처음이오! 아주머니, 당장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이것들을 싸 들고 장터로 나가보시오. 장담하건대, 날개가 돋친 듯 팔려 나갈 것이오!"

    자신의 음식에 감탄하며 연신 과줄을 주워 먹는 도깨비를 보며, 여인은 참으로 오랜만에 소리 내어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것은 절망의 끝에서 다시금 삶의 희망을 움켜쥐는, 찬란하고도 아름다운 웃음이었습니다.

    ※ 3: 장터에 퍼지는 달콤한 냄새,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다

    다음 날 이른 새벽, 여인은 정성껏 만든 약과와 강정을 대나무 광주리에 차곡차곡 담아 머리에 이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새벽안개를 헤치며 걷는 그녀의 발걸음은, 광주리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구름 위를 걷는 듯 가벼웠습니다. 오일장이 열리는 읍내 장터는 이른 아침부터 몰려든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지요. 소금장수, 포목장수, 짚신장수들이 목청 높여 손님을 끄는 소리, 흥정하는 소리로 왁자지껄했습니다.

    여인은 장터 한구석, 국밥집 옆 빈자리에 조심스레 자리를 잡았습니다. 낡고 해진 저고리에 초라한 행색의 여인이 자리를 펴자, 지나가던 사람들은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았습니다.

    '내 몰골이 이리 초라한데, 뉘라서 이 음식을 사 먹으려 들까….'

    덜컥 겁이 난 여인은 광주리를 덮은 하얀 천을 반쯤만 열어둔 채, 고개를 숙이고 주뼛거렸습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어느덧 해가 중천에 떠올랐지요. 다리가 아프고 배가 고파올 무렵, 장터를 뛰어다니며 놀던 꼬마 아이 하나가 여인 앞을 지나가다 우뚝 멈춰 섰습니다. 아이의 코가 벌렁거리더니, 광주리 쪽으로 시선이 고정되었습니다.

    "와아, 아지매! 이거 냄새가 억수로 달콤하네예. 이게 무신 과자라예?"

    아이의 목소리에, 여인은 용기를 내어 광주리를 덮고 있던 천을 활짝 걷어냈습니다. 햇살을 받은 약과와 강정들은 천연 꿀과 조청을 머금고 황금빛으로 반짝였습니다. 그 영롱한 자태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향긋하고 달콤한 냄새에,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하나둘 멈추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빛깔 한번 참 곱네. 어디, 맛보기로 하나만 줘 보시오."

    수염을 길게 기른 점잖은 양반 하나가 엽전 두어 닢을 던지며 잣이 박힌 약과를 베어 물었습니다. 순간, 양반의 두 눈이 화들짝 커졌습니다.

    "허어! 겉은 바삭한데 속은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과하게 달지 않으면서도 깊은 꿀의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우는구나! 이보시오, 여기 있는 이 과줄 한 판, 내가 다 사겠소!"

    양반의 감탄사에 사람들은 벌떼처럼 몰려들었습니다. "나도 주시오!", "나도 한 봉지 싸 주시오!" 앞다투어 엽전을 내미는 통에 여인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의 솜씨는 단연코 장터 최고였습니다. 산에서 나는 최고급 재료와 오랜 세월 숙성된 그녀만의 정성이 만났으니 맛이 없을 수가 없었지요. 준비해 온 세 광주리의 한과는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 동이 나버렸습니다.

    텅 빈 광주리를 쓰다듬으며, 여인은 전대에 두둑하게 채워진 엽전 꾸러미를 품에 꼭 안았습니다. 짤랑거리는 쇳소리가 마치 경쾌한 음악처럼 들렸지요. 그녀는 번 돈으로 가장 먼저 쌀과 고기를 샀습니다. 그리고 도깨비가 좋아할 만한 쫀득한 메밀묵과 시원한 막걸리 두어 병도 잊지 않고 챙겼지요. 오랜만에 새 버선도 한 켤레 사서 품에 넣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는 저녁노을이 여인의 주름진 얼굴을 붉게 물들였습니다. 예전 같으면 서러움에 사무쳤을 그 붉은빛이, 오늘따라 따스한 희망의 빛처럼 느껴졌습니다. 산기슭 초가집에 도착하자마자 여인은 부지런히 상을 차렸습니다. 돼지고기를 굽고, 메밀묵을 썰어 양념장을 얹고, 막걸리를 사발에 가득 따랐습니다.

    어스름이 깔리고 밤이 찾아오자, 어김없이 쿵쿵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도깨비가 나타났습니다.

    "아주머니! 장터에는 다녀오셨소? 냄새를 보아하니 아주 잔칫상이 차려진 것 같구려!"

    "아이고, 도깨비님! 어서 오십시오. 다 도깨비님 덕분입니다. 가져간 과줄이 몽땅 다 팔렸지 뭡니까요. 약소하지만, 감사의 마음을 담아 도깨비님이 좋아하실 만한 음식을 차려보았습니다."

    여인은 활짝 웃으며 도깨비를 방 안으로 모셨습니다. 도깨비는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진 음식과 커다란 막걸리 사발을 보고는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두런두런 마주 앉아 막걸리 잔을 부딪치는 밤. 여인은 엽전 꾸러미를 자랑하며 장터에서 있었던 일들을 신나게 털어놓았고, 도깨비는 무릎을 치며 맞장구를 쳤습니다. 인간과 도깨비, 결코 어울릴 수 없을 것 같던 두 존재는 어느새 세상 둘도 없는 오랜 지기처럼 웃고 떠들었습니다.

    '더 이상 나는 혼자가 아니야. 내 손으로 밥을 벌고, 나를 알아주는 친구가 있으니… 내 남은 생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야.'

    여인의 뺨은 막걸리 기운인지, 아니면 차오르는 행복 때문인지 발그레하게 달아올라 있었습니다. 허물어져 가던 낡은 초가집에는 더 이상 차가운 외로움의 바람이 불지 않았습니다. 대신, 달큰한 막걸리 냄새와 유쾌한 웃음소리가 밤하늘의 별빛을 향해 끊임없이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 4: 곳간에서 인심 난다, 이웃과 나누는 정과 도깨비와의 우정

    산기슭을 에워싸고 있던 앙상한 나뭇가지들에 어느덧 파릇한 새순이 돋아나고, 뻐꾸기 울음소리가 산골짜기를 가득 채우는 화창한 봄날이 찾아왔습니다. 계절의 변화와 함께 여인의 낡고 허름했던 초가집에도 놀라운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쳤습니다. 비바람이 불 때마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 위태롭게 삐걱거리던 기둥은 튼튼한 새 목재로 덧대어졌고, 하늘이 숭숭 뚫려 보이던 낡은 지붕에는 황금빛으로 잘 마른 빳빳한 새 볏짚이 두툼하게 얹혀 있었습니다. 매서운 산바람을 막아내지 못하고 서글프게 울어대던 문풍지 역시 겹겹이 튼튼하게 새로 발라져, 이제는 아무리 궂은 날씨에도 방 안은 훈훈한 온기를 고스란히 품을 수 있게 되었지요.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텅 비어 쥐들조차 외면하던 곳간이었습니다. 그 어둡고 퀴퀴했던 곳간 안에는 도깨비가 깊은 산천을 누비며 구해다 준 최고급 찹쌀 자루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잣, 호두, 그리고 귀하디귀한 야생 석청 항아리가 천장까지 닿을 듯 가지런히 쌓여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읍내 장터에서 사 온 쌀가마니와 콩, 팥, 그리고 다가올 겨울을 거뜬히 날 수 있을 만큼 든든하게 장만해 둔 참나무 땔감들이 곳간을 꽉 채우고 있었지요.

    여인이 빚어내는 달콤하고 바삭한 한과와 약과는 이제 읍내 오일장을 넘어서, 산너머 이웃 마을과 멀리 떨어진 큰 고을에까지 그 소문이 자자하게 퍼져나갔습니다. 부잣집의 성대한 혼례식이나 양반댁 어르신들의 환갑잔치, 심지어는 고을 사또의 생신상에까지 여인의 과줄이 오르지 않으면 잔치 체면이 서지 않는다는 말이 돌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이 앞다투어 산기슭 초가집으로 찾아와 웃돈을 얹어주며 한과를 부탁하는 통에, 여인은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부뚜막 앞을 떠날 새가 없었습니다. 달콤한 조청이 끓어오르는 구수하고 끈적한 냄새가 온종일 초가집 마당을 맴돌았고, 맑은 기름에 찹쌀 반죽이 튀겨지는 찌르르한 소리는 마치 여인의 활기찬 새 삶을 축복하는 경쾌한 음악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하루하루 모진 목숨을 잇지 못해 죽을 날만 기다리던 나였는데, 이제는 내 손끝에서 빚어진 음식이 수많은 사람들의 잔칫상을 빛내고 입을 즐겁게 해주는구나. 가마솥에 끓어오르는 저 조청의 단맛처럼, 내 남은 인생에도 이리 달콤한 시절이 찾아올 줄 그 누가 알았으랴. 이 모든 기적과 축복은 오로지 그 험상궂지만 마음씨만은 비단결 같은 도깨비님 덕분이지.'

    여인은 구슬땀을 흘리며 조청을 젓다가도, 문득문득 열린 방문 너머로 푸른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생활이 넉넉해지고 밥술을 편히 뜨게 되자, 오랜 세월 고된 노동과 굶주림으로 굽어 있던 여인의 허리도 몰라보게 꼿꼿해졌습니다. 거무튀튀하고 푹 패어 있던 두 뺨에는 보기 좋은 살집이 올랐고, 늘 수심이 가득했던 눈가에는 온화하고 여유로운 빛이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과거에 겪었던 그 뼈저린 가난과,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지독한 외로움의 고통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배고픔이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갉아먹고 비참하게 만드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여인은 곳간이 채워질수록 오히려 주변을 돌아보는 눈길을 넓혔습니다.

    장날이 되어 완성된 한과를 이고 읍내로 내려갈 때면, 여인은 늘 자신이 팔아야 할 몫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과줄과 약과를 커다란 광주리 두 개에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그리고 장터 한구석에서 찬 바람을 맞으며 쪼그려 앉아 씁쓸한 산나물을 파는 꼬부랑 할머니들이나, 병들어 일찍 남편을 여의고 어린 자식들을 먹여 살리려 삯바느질을 구하러 다니는 불쌍한 아낙들에게 남은 과줄을 아낌없이 듬뿍듬뿍 쥐여 주었습니다.

    "아이고, 연희댁. 이 귀하고 비싼 과줄을 매번 이리 한 움큼씩 주면 어떡해. 이걸 장에 내다 팔면 엽전이 얼만데, 아까워서 어찌 먹으라고 이러오. 우리 같은 노인네들은 이가 부실해서 단 것도 잘 못 씹어."

    "할매, 그런 소리 마셔요. 옛말에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제가 지금 굶어 죽게 생겼으면 이런 짓도 못 하지요. 다 제가 먹고살 만하니 나누는 겁니다요. 단단한 건 빼고 입에서 살살 녹는 다식하고 부드러운 약과로만 골라 담았으니 걱정 말고 드셔요. 늙고 기운 빠질 때는 이 달달한 걸 입에 물고 오물거려야 굽은 허리에 힘도 좀 붙고 헛헛한 속도 달래지는 법이지요. 저 혼자 배불리 먹고 남은 돈을 방구석에 쌓아둔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손주들 올 때 하나씩 입에 넣어주시고, 할매도 입맛 없을 때 챙겨 드셔요."

    여인의 따뜻하고 다정한 마음 씀씀이에 마을 사람들은 점차 그녀를 피붙이 이상으로 아끼고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과거, 시댁에서 쫓겨나 봇짐 하나 달랑 메고 홀로 이 깊은 산기슭에 기거할 때만 해도 흉흉한 소문이 돈다며 수군거리고 피하던 매정한 이웃들이었지요. 하지만 이제는 갓 캔 굵직한 고구마나 텃밭에서 정성껏 기른 싱싱한 채소들, 항아리 깊은 곳에서 꺼낸 잘 익은 묵은지를 두 손 가득 들고 여인의 초가집 문을 스스럼없이 두드리곤 했습니다. 겹겹이 고립되어 차갑게 얼어붙어 있던 여인의 삶에, 드디어 사람들의 따뜻한 온기와 정이 눈 녹듯 스며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훈훈한 광경을 산마루에서 내려다보며 누구보다 흐뭇하게 미소 짓는 이는 다름 아닌 산도깨비였습니다. 도깨비는 여전히 사방이 칠흑같이 어두워지는 깊은 밤이 되면, 어김없이 지축을 울리는 쿵쿵거리는 둔탁한 발소리와 함께 초가집 마당으로 어슬렁어슬렁 찾아왔습니다. 빈손으로 오는 법은 절대 없었지요. 때로는 사람 팔뚝만 한 어마어마한 크기의 백 년 묵은 산삼을 무 자르듯 쑥덕 잘라 불쑥 내밀어 여인을 기절초풍하게 만들기도 했고, 때로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서만 자라는 진귀한 버섯과 산나물을 앞치마 가득 안고 와 마당에 우수수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여인은 도깨비가 나타날 시간에 맞춰, 그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구수한 돼지고기 수육을 야들야들하게 삶아내고, 뒷마당 우물에 띄워 차갑게 식힌 맑고 시원한 동동주를 큰 사발에 찰랑거리도록 빚어 두었습니다.

    "크하하! 역시 우리 아주머니 솜씨는 삼천리 방방곡곡, 아니 저 구름 위 옥황상제의 주방을 다 뒤져보아도 단연코 으뜸이오! 오늘 장터에 구경을 나갔다가 그 지독하게 못된 쌀집 김 영감쟁이가 굶주린 고아 녀석들이 떨어진 낟알을 주워 먹었다고 몽둥이질하며 호통치는 꼴을 보았소이다. 어찌나 화가 치밀어 오르던지 내가 그 영감탱이 엉덩이를 걷어차 주려다 꾹 참았는데, 아주머니가 푹 삶아낸 이 고기 한 점과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을 단숨에 들이켜니 그 막혔던 체증이 이제야 뻥 뚫리며 싹 다 내려가는구려!"

    "어머나 세상에, 쌀집 김 영감이 또 그 불쌍한 어린것들을 매몰차게 쫓아내었단 말입니까요? 쯧쯧쯧, 불쌍하기도 하지. 그 영감은 곳간에 쌀가마니가 썩어 문드러질 정도로 재물이 넘쳐나면 무얼 합니까.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의 곳간이 텅 비어있으니, 짐승만도 못한 옹졸한 삶을 사는 것이지요. 낼모레 장에 나갈 때는 그 굶주린 아이들을 찾아다가 따뜻한 국밥이라도 한 그릇 든든하게 먹여야겠습니다."

    여인과 도깨비는 둥근 보름달이 환하게 쏟아지는 평상에 마주 앉아, 밤이 이슥해지도록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매정함을 꾸짖으며 함께 혀를 차기도 하고, 가난하지만 서로를 돕는 선한 이웃들의 소박한 이야기에 함께 눈물짓고 웃으며, 두 존재는 종족의 벽을 완전히 뛰어넘어 세상 둘도 없는 절친한 지음(知音)이 되었습니다. 기분이 좋아진 도깨비는 가끔 커다란 가시방망이를 허공에 휙휙 휘둘러 밤하늘에 은하수처럼 반짝이는 형형색색의 도깨비불을 수놓아 여인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고, 여인은 이리저리 산을 누비다 나뭇가지에 걸려 다 해진 도깨비의 거친 호랑이 가죽옷을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바느질로 꿰매어 주었습니다. 산짐승의 스산한 울음소리만 가득해 두려움의 공간이었던 산기슭은, 이제 두 친구의 왁자지껄하고 정겨운 웃음소리로 가득 찬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활기찬 안식처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 5: 버림받은 아이들의 온기가 되어준 초가집

    어느 해 겨울, 유난히도 혹독한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발이 푹푹 빠질 만큼 매서운 폭설이 쏟아지던 섣달그믐 무렵이었습니다. 며칠 뒤면 다가올 큰 설 대목을 앞두고 읍내 장터는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습니다. 제사상에 올릴 생선과 질 좋은 고기를 고르는 사람들, 설빔으로 지어 입힐 고운 비단을 끊는 아낙네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얼어붙은 공기를 갈랐지요. 여인 역시 몰려드는 손님들의 성화에 못 이겨 평소보다 훨씬 많은 양의 한과를 챙겨 와 장터 한구석에서 정신없이 과줄을 팔고 있었습니다. 해가 짧은 겨울이라 금세 어둠이 깔리고, 뼈를 에는 듯한 칼바람과 함께 함박눈이 다시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장터의 사람들은 하나둘 서둘러 짐을 챙겨 따뜻한 아랫목이 있는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고, 여인도 얼어붙은 손을 호호 불어가며 빈 광주리를 챙겨 돌아갈 채비를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세차게 몰아치는 눈보라 사이로, 장터 뒷골목의 빈 가마니와 버려진 지푸라기 더미 밑에서 희미하게 꿈틀거리는 조그만 형체들이 여인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행여 얼어 죽은 들짐승인가 싶어 조심스레 가까이 다가간 여인은 그 자리에서 헉, 하고 숨을 들이켰습니다. 그곳에는 부모를 잃고 이리저리 장터를 떠돌며 구걸을 하던 일곱 살, 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어린 남매가 있었습니다. 살을 에이는 듯한 이 지독한 추위에 얇고 해진 누더기 저고리 하나만 간신히 걸친 채, 아이들은 서로의 체온에 기대어 부둥켜안고 파르르 떨고 있었습니다.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아이들의 입술은 이미 검푸르게 변해 있었고, 눈썹 위로 하얗게 눈송이가 내려앉아 있었지만 그마저도 털어낼 기력조차 없어 보였습니다.

    '아이고, 천지신명도 무심하시지! 맙소사. 이 모진 추위와 눈보라 속에 이 핏덩이 같은 아이들을 길바닥에 내버려 두다니! 이러다간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하고 꽁꽁 얼어 죽고 말 것이야….'

    여인은 앞뒤 잴 것 없이 짐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아이들에게 달려갔습니다. 자신이 입고 있던 두툼하고 따뜻한 솜두루마기를 지체 없이 훌렁 벗어 작은 아이들의 몸뚱이를 둘둘 감싸 덮어주었습니다. 아이들은 낯선 이의 손길에도 놀라지 못할 만큼 얼어붙어 있었고, 그저 밭은기침만 연신 토해낼 뿐 굳게 감긴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했습니다. 품에 안긴 앙상하고 차가운 아이들의 몸집을 느끼는 순간, 여인의 가슴 한구석이 날카로운 칼로 베인 듯 쓰라려왔습니다. 한평생 자신의 배 아파 낳은 자식을 품어보지 못했던 지독한 한과 설움, 그리고 오래전 끼니를 잇지 못해 시린 방구석에서 홀로 죽음만을 기다리며 절망에 빠져 허덕이던 자신의 참담했던 옛 모습이 아이들의 얼굴 위로 선명하게 겹쳐 보였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솟구치는 눈물을 소매로 훔쳐내며 이를 꽉 물었습니다.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두 아이를 양팔로 단단히 안아 올렸습니다. 아무리 기력을 회복했다지만 늙은 여인의 몸으로 두 아이를 동시에 안고, 머리에는 빈 광주리까지 인 채로 눈 덮인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것은 뼈를 깎는 고통이었습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미끄러운 눈길에 수없이 넘어지고 무릎이 깨졌지만, 여인은 품에 안긴 작은 생명들의 꺼져가는 온기를 느끼며 초인적인 힘을 쥐어짜 내 산기슭 초가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여인은 얼어붙은 손을 바들바들 떨며 아궁이에 굵은 참나무 장작을 가득 밀어 넣고 미친 듯이 불을 지폈습니다. 방바닥이 살갗이 델 정도로 절절 끓게 온도를 한껏 높이고, 가마솥에 맑은 물을 데워 꽁꽁 얼어붙어 터진 아이들의 손발과 뺨을 조심스레 닦아내 주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 고아두었던 진한 닭 국물에 부드러운 찹쌀을 곱게 갈아 넣어 속이 편안한 미음을 쑤었습니다. 여인은 아이들을 따뜻한 아랫목에 뉘이고, 숟가락으로 식힌 미음을 떠서 굳어있는 아이들의 입술 새로 조금씩, 아주 조금씩 흘려 넣어주었습니다. 몇 숟가락 미음이 넘어가고 따뜻한 온기가 몸에 돌기 시작하자, 핏기가 가셨던 아이들의 볼에 연한 홍조가 피어올랐고, 그제야 아이들은 새근새근 평온한 숨소리를 내며 깊고 단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여인은 잠든 아이들의 마른 이마를 거친 손으로 쓰다듬으며, 그제야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아냈습니다.

    깊은 밤, 거센 눈보라를 뚫고 어김없이 도깨비가 찾아왔습니다. 평소처럼 호탕하게 웃으며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려던 도깨비는 방 한가운데 낯선 조그만 형체들이 나란히 누워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덩치에 맞지 않게 뒤로 발라당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습니다.

    "아, 아니! 아주머니! 이 조그만 핏덩이들은 대체 어디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오? 설마… 내가 사냥을 나간 사이에 아주머니가 무슨 기묘한 요술이라도 부려서 사람을 만들어 낸 게요?"

    여인은 쉿, 하고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며 눈을 크게 뜨고는 조심스레 도깨비의 소매를 이끌어 마루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장터 구석에서 얼어 죽어가던 아이들을 발견하고 이곳까지 업고 올라오게 된 가슴 아픈 사연을 차분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들려주었지요. 이야기를 듣는 내내 도깨비의 커다랗고 부리부리한 눈에는 그렁그렁 이슬이 맺히더니, 급기야 주먹만 한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짐승처럼 콧물을 팽팽 풀어댔습니다.

    "크허엉… 불쌍하고 가엾은 것들. 인간 세상의 인심이 어찌 이리도 혹독하고 매정하단 말이오! 길가에 쓰러진 들짐승도 거두어주는 법이거늘, 저 어린것들을 길바닥에 내치다니! 잘하셨소, 아주머니. 참으로 백번 천번 잘한 일이오! 행여나 아이들을 키울 쌀이 부족할까, 옷이 없을까 그런 걱정일랑 아예 하덜덜 마시오. 내가 당장 내일부터 온 산을 다 뒤져서라도 이 녀석들 입에 들어갈 쌀 한 톨, 몸에 두를 비단 한 조각까지 이 산도깨비가 모조리 다 책임지고 구해올 테니!"

    다음 날 아침, 긴 잠에서 깬 아이들은 머리맡을 보고 두 눈을 휘둥그레 떴습니다. 낡은 누더기 대신 자신들의 몸집에 꼭 맞는 따뜻하고 포근한 색동 솜옷이 놓여 있었고, 방 한구석에는 잣과 호두가 잔뜩 박힌 달콤한 조청 과자와 깎아놓은 나무 인형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지요. 밖에서 밤새 눈을 맞아가며 뚝딱뚝딱 나무를 깎아 썰매와 장난감을 만들어둔 도깨비의 투박하지만 다정한 솜씨였습니다. 처음에는 도깨비의 우락부락한 덩치와 이마에 솟은 뿔을 보고 지레 겁을 먹어 여인의 치맛자락 뒤로 꽁꽁 숨었던 아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도깨비가 무서운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마당을 뒹굴며 재주를 넘고, 커다란 방망이를 두드려 불에 구운 따끈한 군밤을 한가득 쏟아내자 금세 경계를 풀고 까르르 맑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방안에만 웅크려 있던 아이들은 어느새 마당으로 뛰쳐나와 도깨비의 넓고 단단한 등에 올라타 신나게 말타기를 하고, 도깨비의 뾰족한 뿔에 달콤한 곶감을 꽂아주며 스스럼없이 장난을 쳤습니다. 오랜 세월 적막과 고요만이 맴돌며 산짐승의 울음소리에 숨죽여야 했던 산기슭의 초가집은, 이제 아이들의 티 없이 맑은 웃음소리와 도깨비의 집이 떠나갈 듯 호탕한 너털웃음, 그리고 그 눈부신 풍경을 바라보며 연신 눈물을 훔치는 여인의 다정하고 행복한 미소로 가득 찼습니다. 세상의 모진 풍파에 버림받고 상처 입은 아이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든든하고 따뜻한 안식처가 생겼고, 평생을 외롭게 버텨온 여인에게는 목숨보다 귀한, 결코 놓칠 수 없는 진정한 가족이 생겨난 것입니다.

    ※ 6: 핏줄보다 진한 가족, 도깨비와 함께하는 활기찬 여인의 행복한 여생

    세월은 산골짜기를 흐르는 맑은 계곡물처럼 쉼 없이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초가집 마당 한구석, 가느다란 가지를 파르르 떨던 어린 감나무는 어느덧 어른 두 명이 양팔을 벌려 안아도 모자랄 만큼 굵직하고 든든한 기둥을 자랑하는 거목으로 자라났고, 가을마다 가지가 휘어지도록 붉은 홍시를 탐스럽게 매달았습니다. 그 길고 긴 시간 동안 산기슭 초가집의 풍경도, 죽음을 기다리던 가엾은 과부였던 여인의 삶도 참으로 놀랍도록 아름답게 무르익어 있었습니다. 장터 차가운 길바닥에서 거두어들였던 작고 여린 남매는 여인의 조건 없는 지극한 사랑과, 밤낮으로 이어진 도깨비의 든든한 보살핌 속에서 잔병치레 한 번 없이 건강하고 반듯하게 자라났습니다.

    이제 남매는 훌륭하고 늠름한 청년과, 솜씨 좋고 어여쁜 아가씨로 훌쩍 장성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기력이 쇠해져 가는 늙은 여인을 대신해 읍내 장터와 큰 고을을 오가며 가업이 된 한과 장사를 훌륭하게 이끌어 나갔습니다. 어머니인 여인의 손맛을 귀신같이 똑같이 물려받은 남매의 과줄과 다식은 여전히 그 일대에서 제일가는 명물로 통했습니다. 성품이 싹싹하고 예의 바른 청년이 된 오라비 돌쇠는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무거운 찹쌀을 직접 찧고, 산에서 얻은 재료들을 지게에 져 나르는 궂은일을 묵묵히 도맡아 했습니다. 손끝이 야무지고 미적 감각이 뛰어난 누이 분이는 오색찬란한 천연 고명으로 약과와 강정을 마치 예술 작품처럼 아름답게 장식하여 사람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지요. 마을 사람들은 핏줄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고아들을 거두어 자신의 친자식보다 더 훌륭하게 키워낸 여인의 자애로움을 칭송해 마지않았고, 남매 역시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준 여인을 하늘이 내려준 진짜 친어머니 이상으로 밤낮없이 극진히 모셨습니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리고 얼굴에 깊은 주름이 패인 여인은 이제 무리해서 부뚜막 앞에 서지 않았습니다. 따스한 봄볕이 잘 드는 마루에 편안히 기대앉아, 장성한 두 아이가 다정하게 웃으며 일하는 모습을 그저 흐뭇하게 바라보거나, 도깨비가 가져다준 신기한 옛이야기 책을 돋보기를 너머로 읽어 내려가며 평온하고 한가로운 여생을 온전히 즐기고 있었지요.

    쿵, 쿵, 쿵.

    산 아래쪽에서부터 들려오는 익숙하고 정겨운 육중한 발소리. 그 소리가 들려오면, 백발이 성성한 노파가 된 여인은 마치 어린 소녀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환하고 설레는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수십 년의 긴 세월이 지났지만, 인간의 시간을 비껴간 도깨비의 모습은 여인을 처음 만났던 그 춥고 외롭던 밤과 비교해 털끝 하나 변함이 없었습니다. 여전히 우락부락한 덩치에 호랑이 가죽을 두르고, 툭 튀어나온 뿔을 가진 도깨비는 여인의 곁으로 다가와 커다랗고 거친 손으로 여인의 굽은 어깨와 등을 다정하고 조심스럽게 주물러 주며 특유의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아주머니, 아니 이제는 머리가 하얗게 세었으니 아주 꼬부랑 할머니라고 불러야 쓰겠구려! 하하하! 오늘 내가 심심해서 장터 지붕 위에 숨어 우리 돌쇠랑 분이가 파는 과줄을 몰래 훔쳐 먹어봤는데 말이오. 어찌 된 영문인지 아주머니의 그 기가 막힌 손맛을 소름 돋게 똑같이 닮아서, 맛이 아주 기절할 노릇이더이다! 내 뿔을 걸고 장담하건대, 저 녀석들이 만든 약과는 조만간 한양 땅 임금님 수라상에도 버젓이 오르고도 남을 것이오!"

    "호호호, 다 쓸데없는 소리 마시지요. 이게 어찌 제 솜씨입니까. 다 도깨비님이 밤낮으로 물심양면 구해주신 귀한 재료들과 보살핌 덕분이지요. 가끔 지난날을 돌아보면 모든 것이 한바탕 신기루 같은 꿈만 같습니다. 그 옛날, 희망 하나 없이 차가운 방구석에서 눈물만 흘리던 늙고 초라한 과부에게, 기적처럼 나타나 잊고 있던 재주를 찾아주시고 칭찬해 주지 않으셨다면 제 인생이 어찌 굴러갔겠습니까. 게다가 길가에 버려진 저 불쌍한 아이들을 함께 거두어, 친아버지처럼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지 않으셨다면 제 삶이 이토록 벅차게 행복하고 충만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비록 핏줄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으로 만났으나, 도깨비님과 우리 남매는 제게 하늘이 맺어주신,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진짜 가족입니다."

    여인은 손수 끓인 따뜻하고 향긋한 대추차 한 잔을 도깨비의 커다란 손에 쥐여주며, 깊은 주름이 옅어지도록 환하게 웃으며 진심을 다해 속삭였습니다. 마당 저편에서는 장터에서 모든 물건을 일찍 다 팔고 돌아온 돌쇠와 분이가, 평상에 마주 앉은 노모와 도깨비를 발견하고는 "어머니! 도깨비 아저씨! 저희 장사 다 마치고 일찍 왔어요!" 하고 씩씩하게 손을 흔들며 단숨에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한때 자식도, 기댈 친정도 없이 차가운 산기슭 방구석에서 고독한 죽음만을 기다리던 세상에서 가장 외롭던 여인. 그러나 절망의 끝자락에서 홀연히 찾아온 기이하고 낯선 인연을 두려움으로 내치지 않고 따뜻하고 열린 마음으로 품었을 때, 그녀의 삶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눈부신 기적과 마법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자신의 숨겨진 가치를 깨달아 당당히 세상 밖으로 나섰고, 그로 인해 얻은 넉넉함과 풍요를 자신보다 더 불우한 이웃과 고아들에게 조건 없이 아낌없이 베푸는 선행으로 갚아나갔습니다. 산기슭의 낡고 허름했던 초가집은 더 이상 춥고 서글픈 늙은 과부의 무덤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 향기로운 한과 냄새가 일 년 내내 끊이지 않고, 인간과 요괴라는 종족의 차이를 뛰어넘어 서로를 아끼고 보듬어 안으며 완벽한 한 가족을 이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훈훈한 사랑의 보금자리였습니다. 지난 세월의 모든 고단함을 보상하듯 평온하게 피어난 백발 여인의 미소 위로, 산너머로 지는 붉고 따스한 저녁놀이 눈부시게 평화로운 빛을 내리쬐며 온 집안을 따스하게 감싸 안고 있었습니다.

    유튜브 엔딩 멘트

    여러분, 도깨비와 함께한 여인의 따뜻한 인생 이야기, 어떻게 들으셨나요? 깊은 절망 속에서도 나누고자 하는 고운 마음씨가 있다면, 삶은 언제든 눈부신 기적으로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이야기였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여러분의 마음에도 작은 온기를 전해주었기를 바랍니다. 재미있게 들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꾹 눌러주시고, 따뜻한 댓글도 많이 남겨주세요! 다음 시간에도 더욱 감동적이고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편안한 밤 보내세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