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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땅을 빌려 부자가 된 농부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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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조 시대, 가난한 농부 김만식이 우연히 만난 도깨비에게 버려진 땅을 빌려 농사를 짓게 된다. 풍년을 거듭하며 부자가 된 만식은 처음의 약속을 잊고 도깨비 땅을 자신의 것이라 우기다가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인간의 욕심과 약속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이 이야기는 조선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민간설화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은 교훈을 전한다.
※ 가난한 농부의 탄식, 가난한 농부 김만식이 논밭 없이 소작농으로 살아가는 고달픈 삶을 한탄하는 장면.
조선 영조 36년,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평산 마을. 가을 수확이 한창인 때였지만, 서른 살 농부 김만식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그는 양반 최 진사의 땅에서 소작농으로 일하며 겨우 입에 풀칠을 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해가 저물 무렵, 만식은 허리를 펴고 땅거미가 내려앉는 들판을 바라보았다. 넓게 펼쳐진 논밭은 모두 다른 이의 것이었다. 그가 땀 흘려 가꾼 농작물의 절반 이상은 주인에게 소작료로 바쳐야 했다.
"아이고, 이 고생이 언제 끝날꼬..."
만식은 긴 한숨을 내쉬며 어깨에 멘 괭이를 바로 잡았다. 늦가을의 찬바람이 그의 거친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그의 낡은 갓은 이미 한쪽이 찢어져 바람을 막아주지 못했다.
"여보, 집에 일찍 들어오세요. 찬밥이라도 데워놓을게요."
멀리서 그의 아내 순이가 손을 흔들었다. 순이는 아이를 등에 업은 채 만식을 마중 나온 것이었다. 만식은 애써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그래, 다 했으니 곧 가겠네!"
만식의 집은 마을 외곽의 작은 초가였다. 겨우 한 칸짜리 방에 부엌이 딸린 초라한 집이었지만, 그에게는 유일한 재산이었다. 순이가 해놓은 쌀죽에 고추장을 살짝 풀어 저녁을 해결한 만식은 마당에 걸터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보, 왜 한숨만 쉬세요? 몸이 아프신가요?"
순이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만식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네. 그저... 우리도 언젠가 자기 땅에서 농사지으며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네."
"그런 날이 오겠지요. 여보가 부지런하니 언젠가는..."
순이의 다정한 위로에 만식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순이가 등에 업고 있는 두 살배기 아들 돌이를 바라보았다. 자신과 같은 가난한 소작농의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내일은 장날이니 마을에 가서 쌀도 팔고 술 한 잔 하고 오겠네."
만식의 말에 순이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마세요. 지난번에도 술에 취해 길을 잃고 밤새 헤매셨잖아요."
"걱정 말게. 이번엔 일찍 돌아올 테니."
다음 날 아침, 만식은 소작료를 내고 남은 약간의 쌀을 짊어지고 마을로 향했다. 장터는 이미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런저런 물건을 파는 상인들과 구경하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다.
만식은 가져온 쌀을 팔고 남은 얼마 안 되는 동전으로 막걸리 한 사발을 샀다. 한 모금 들이켜자 쌉쓸한 맛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취기가 올라오면서 그의 마음은 조금씩 가벼워졌다.
"여기 한 사발 더 주시게!"
두 사발, 세 사발... 걱정과 한탄을 잊기 위한 만식의 술자리는 해가 저물 때까지 이어졌다. 취기가 오른 그는 오래간만에 흥겨운 기분으로 집으로 향했다.
"아이고, 이렇게 취해서야 집에 어떻게 가나..."
만식은 비틀거리며 마을 어귀를 빠져나왔다. 늦가을의 달빛이 그의 길을 희미하게 비추었지만, 술에 취한 눈으로는 제대로 된 길을 찾기 어려웠다. 그는 평소에 다니던 길을 벗어나 산으로 향하는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이런, 길을 잘못 들었나...?"
주변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키 큰 소나무들이 달빛을 가리고, 바람 소리만 그의 귓가를 맴돌았다. 만식은 겁이 나기 시작했다. 마을에서는 밤에 산길을 가면 도깨비를 만난다는 소문이 있었다.
"헛것이 보이는 건가... 저기 불빛이..."
멀리서 흔들리는 불빛이 보였다. 만식은 사람이 있는 곳이라 생각하고 그 불빛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불빛은 더 커지고 이상한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누, 누구시오...?"
만식의 떨리는 목소리가 밤공기를 가르고 울렸다. 그때 불빛 앞에 키 큰 형체가 나타났다. 붉은 얼굴에 뿔이 나 있고, 눈은 호롱불처럼 반짝였다. 틀림없는 도깨비였다.
만식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다리가 후들거려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아이고, 살려주십시오! 제발!"
만식은 무릎을 꿇고 빌었다. 죽을 만큼 겁에 질린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이대로 도깨비에게 잡혀 죽는구나 싶었다.
※ 도깨비와의 만남, 술에 취해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도깨비를 만나 비어있는 땅을 5년간 빌리는 계약을 맺는 장면.
"이봐, 사람 양반! 왜 그리 놀라는 게야?"
만식의 예상과 달리, 도깨비는 사람의 말을 했다. 그것도 꽤 친근한 어조였다. 만식은 고개를 들어 도깨비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제야 도깨비가 웃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도, 도깨비 나리... 저를 잡아먹지 마십시오..."
도깨비는 껄껄 웃으며 만식 앞에 앉았다. 가까이서 보니 그의 모습은 더 기이했다. 붉은 얼굴에 작은 뿔이 나 있고, 이빨은 날카로웠지만 눈빛은 의외로 따뜻했다.
"하하!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더군. 우리가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라고 말이야. 하지만 난 그저 이 산에 사는 산신령의 심부름꾼일 뿐이라네."
만식은 여전히 겁에 질려 있었지만, 도깨비의 말투가 의외로 인간적이라 조금씩 긴장이 풀렸다.
"그, 그렇습니까... 제가 길을 잃어서..."
"알고 있네. 자네는 마을로 가는 길을 잃은 것 같군. 하지만 운이 좋게도 나를 만났으니,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도깨비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작은 불빛을 손에서 피워냈다. 그 불빛으로 주변이 환하게 밝혀졌다. 만식은 이제 자신이 깊은 산속의 작은 평지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곳은 내가 관리하는 땅이라네. 보다시피 넓고 기름진 땅이지만, 아무도 농사를 짓지 않아 놀고 있지."
만식은 도깨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달빛 아래 보이는 평지는 정말 넓고 좋아 보였다. 그의 농부 본능이 솟아났다.
"정말 좋은 땅 같습니다. 여기서 농사를 지으면 얼마나 많은 곡식이 나올까..."
도깨비는 만식의 말을 듣고 갑자기 눈을 반짝였다.
"오호! 자네는 농부로군. 그렇다면 제안 하나 하지. 이 땅에서 농사를 지어보지 않겠나?"
만식은 놀라 도깨비를 바라보았다. 이런 제안은 예상치 못했다.
"제가... 여기서요? 하지만 이 땅은 도깨비님의 것이고..."
"그래서 빌려주겠다는 거야. 조건이 있어. 이 땅을 5년 동안만 빌려주지. 그 동안 자네가 마음껏 농사를 짓고 수확물은 모두 가져가. 대신 5년 후엔 반드시 이 땅을 돌려줘야 해. 그것이 약속이야."
만식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런 좋은 제안이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의심스러웠다.
"왜... 저같은 사람에게 이런 좋은 제안을..."
도깨비는 다시 웃었다.
"나도 심심하거든. 인간이 농사짓는 모습을 보는 게 재밌어. 그리고 이 땅에 생기가 돌면 산신령께서 좋아하실 테니까."
만식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것이 함정일 수도 있지만, 그에게는 잃을 것이 없었다. 오히려 얻을 것이 많았다.
"좋습니다! 제가 그 조건을 받겠습니다. 5년 동안만 이 땅을 빌리고, 반드시 돌려드리겠습니다."
도깨비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손가락을 튕겨 작은 불꽃을 만들어냈다.
"그럼 계약 성립이네. 이 불꽃을 가지고 가. 내일 아침에 이 불꽃이 사라지는 곳이 자네가 농사지을 땅의 경계야. 그리고 명심해, 5년 후 보름달이 뜨는 밤, 내가 다시 찾아올 테니 땅을 돌려줘야 해."
만식은 떨리는 손으로 불꽃을 받았다. 놀랍게도 불꽃은 뜨겁지 않고 따뜻했다.
"고맙습니다, 도깨비 나리! 약속 꼭 지키겠습니다!"
도깨비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자, 이제 집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지. 저기 소나무 세 그루가 있는 방향으로 가면 마을로 가는 길이 나올 거야. 5년 후에 보자고, 농부 양반!"
만식은 도깨비에게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하고 도깨비가 가리킨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의 손에 든 불꽃이 길을 밝혀주었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만식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도깨비를 만나 땅을 빌렸다니, 너무 황당한 일이었다. 하지만 손에 든 불꽃은 분명 현실이었다.
얼마 걷지 않아 만식은 익숙한 길을 발견했다. 그리고 멀리 마을의 불빛이 보였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 순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마당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보! 어디 갔다 이제 오는 거예요? 얼마나 걱정했는지..."
만식은 그제야 자신이 늦은 것을 깨달았다. 그는 미안한 표정으로 순이를 바라보았다.
"미안하네, 내가... 아, 여보! 우리에게 큰 행운이 찾아왔어!"
순이는 의아한 표정으로 만식을 바라보았다. 만식은 흥분된 목소리로 도깨비와의 만남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순이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여보, 또 술에 취해 헛것을 본 거 아니에요? 도깨비라니..."
"아니야, 진짜야! 봐, 이 불꽃!"
만식이 손을 펴자 작은 불꽃이 춤을 추듯 빛났다. 순이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이, 이게 뭐예요?"
"내일 아침, 이 불꽃이 우리에게 땅을 알려줄 거야. 우리도 이제 소작농이 아닌 자기 땅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됐어!"
순이는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지만, 만식의 손에 든 불꽃은 분명 일반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만식의 손을 잡았다.
"정말... 도깨비를 만난 거예요?"
"그래! 내일 아침이 되면 알게 될 거야. 우리 삶이 완전히 바뀔 거란다!"
그날 밤, 만식은 설렘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의 손에 든 불꽃은 밤새도록 꺼지지 않고 빛났다. 내일은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도깨비의 땅은 과연 얼마나 넓을까? 만식의 마음은 희망으로 가득 찼다.
※ 놀라운 풍작, 도깨비 땅에서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며 풍작을 거두고 부자가 되어가는 만식의 모습.
이튿날 아침, 만식은 동이 트자마자 일어났다. 그의 손에 든 도깨비의 불꽃은 여전히 꺼지지 않고 빛나고 있었다. 그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여보, 정말 가는 거예요?" 순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도깨비가 알려준 땅을 찾아야지. 돌이 좀 돌봐주고 있게."
만식은 불꽃을 따라 산으로 올라갔다. 이상하게도 불꽃은 그가 어젯밤 도깨비를 만났던 곳으로 그를 인도했다. 해가 떠오르자 불꽃은 갑자기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가, 넓은 평지 주위를 빙 둘러 날아다녔다. 그리고는 폭죽처럼 터지며 사라졌다.
"이게 내가 농사지을 땅인가..."
만식은 아연실색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불꽃이 가리킨 땅은 상상 이상으로 넓고 비옥해 보였다. 평평한 땅에 부드러운 흙이 깔려 있고, 맑은 시냇물이 옆으로 흐르고 있었다. 농부의 눈으로 봐도 이보다 좋은 땅은 없을 것 같았다.
"하늘이 내게 복을 내리시는구나!"
만식은 즉시 마을로 내려가 괭이와 쟁기를 가져왔다. 그는 온종일 땅을 갈고 씨를 뿌렸다. 신기하게도 이 땅은 일반 땅보다 훨씬 쉽게 일할 수 있었다. 괭이가 땅에 쉽게 박혔고, 흙은 부드럽게 일어났다.
며칠 동안 만식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깨비 땅에서 농사일을 했다. 그는 쌀과 보리를 심었고, 한쪽에는 콩과 채소도 심었다. 순이도 가끔 도와주러 왔지만, 그녀 역시 도깨비 땅이라는 사실에 여전히 불안해했다.
"여보, 이 땅이 정말 괜찮을까요? 도깨비가 준 땅이라니..."
"걱정 말게. 약속은 지킬 테니 아무 문제 없을 거야. 5년만 잘 농사지으면 우리 삶이 완전히 달라질 거야."
놀랍게도 만식이 심은 작물들은 눈에 띄게 빨리 자랐다. 보통 몇 달이 걸리는 성장 과정이 단 몇 주 만에 이루어졌다. 이웃 농부들은 만식의 땅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만식이 땅에 뭔 조화가 있는 게야? 어제 심은 모가 벌써 이렇게 자랐어!"
"그 산등성이에 좋은 땅이 있었나? 우리는 왜 몰랐던 거지?"
첫 수확철, 만식의 땅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확량이 나왔다. 일반 땅의 세 배, 네 배가 넘는 쌀과 보리가 수확되었다. 채소들도 크고 싱싱했다. 만식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여보, 보게! 이렇게 많은 수확이라니!"
"정말... 이게 다 우리 것인가요?"
만식은 수확한 농작물을 마을 장터에 내다 팔았다. 신선하고 풍부한 그의 작물은 금세 팔려나갔고,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그는 그 돈으로 소와 농기구를 사고, 더 많은 씨앗을 구입했다.
이듬해 봄, 만식은 더 넓은 면적에 농사를 지었다. 도깨비 땅은 여전히 신기한 힘을 발휘했다. 병충해도 없고, 가뭄이나 홍수의 피해도 받지 않았다. 수확량은 더욱 늘어났고, 만식의 살림은 점점 넉넉해졌다.
3년이 지나자, 만식은 마을에서 제법 알려진 부자가 되었다. 초가집은 기와집으로 바뀌었고, 하인도 몇 명 들였다. 그의 아들 돌이는 이제 튼튼하게 자라 아버지의 일을 돕기 시작했다.
하지만 만식의 마음 한구석에는 불안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도깨비와의 5년 약속... 그 기한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 욕심의 시작, 부와 명예를 얻은 만식이 점점 교만해지고 도깨비와의 약속을 잊어가는 과정.
4년차, 만식은 이제 마을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었다. 그의 기와집은 양반들의 집만큼 크고 화려했고, 하인들이 그를 '영감님'이라 부르며 따랐다. 만식은 새로운 옷과 갓을 갖추고, 말도 구입했다. 그는 이제 마을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걸었다.
"만식 영감님, 올해도 수확이 좋으시겠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그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볼 때마다, 만식은 뿌듯함을 느꼈다. 한때 가난한 소작농이었던 그가 이제는 마을의 유력자가 된 것이다.
"그럼! 우리 땅은 좋은 땅이니까."
만식은 이제 도깨비 땅을 '우리 땅'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도깨비에게 빌린 것이란 사실은 점점 그의 기억 속에서 흐려졌다. 대신 자신의 노력으로 찾아낸 비옥한 땅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관아의 사또가 만식을 불렀다. 사또는 그의 농사 기술에 관심을 보였다.
"듣자하니 자네 땅에서는 놀라운 수확이 난다던데, 그 비결이 무엇인가?"
만식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저 제가 찾아낸 좋은 땅에 정성을 다했을 뿐입니다."
'제가 찾아낸'... 만식은 속으로 자신의 말이 거짓임을 알았지만, 도깨비의 도움을 말하면 미신을 믿는 사람으로 취급받을까 두려웠다. 또한 이제는 자신이 그 땅의 진정한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훌륭하네. 앞으로도 좋은 수확을 기대하겠네."
집으로 돌아온 만식은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비단 옷과 갓을 쓴 그의 모습은 예전의 초라한 소작농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 모든 것이 내 능력 덕분이지...'라고 그는 생각했다.
순이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여보, 내년이면 5년이 됩니다. 도깨비와의 약속..."
만식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왜?"
"땅을 돌려줘야 하지 않나요? 약속대로..."
만식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그런 약속 같은 건 없었어. 그건 그저 내가 술에 취해 꾼 꿈이었을 거야."
"하지만 여보, 도깨비의 불꽃이..."
"그만해! 이제 그 땅은 내 땅이야. 내가 4년 동안 피땀 흘려 일군 땅이라고! 누가 감히 그 땅을 가져간단 말인가!"
만식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순이는 놀라 물러섰다. 그녀는 남편의 눈에서 탐욕과 교만을 보았다. 예전의 겸손하고 성실한 만식은 이제 없었다.
"여보, 약속을 어기면 큰 화가 올 거예요. 도깨비는 무섭다고..."
"도깨비고 뭐고! 그런 건 미신이야. 내가 이렇게 부자가 된 것은 내 노력 덕분이지, 무슨 도깨비 때문이 아니란 말이야!"
만식은 방을 나가 마당으로 향했다. 그는 자신의 넓은 마당과 창고를 둘러보며 뿌듯해했다. 창고에는 쌀과 곡식이 가득했고, 마구간에는 건강한 말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도깨비에게 돌려준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이 땅은 내 땅이야. 누구도 가져갈 수 없어...'
만식의 마음속에서 욕심의 그림자가 점점 커져갔다. 약속의 날이 다가올수록, 그는 땅을 지키기 위한 계략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깨비와의 약속은 그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지워져 갔다.
※ 약속의 파기, 5년이 지나 찾아온 도깨비에게 땅을 돌려주지 않고 자신의 것이라 우기는 만식과 벌어지는 갈등.
5년째 되던 해, 보름달이 뜨는 밤이 다가왔다. 만식은 그날이 오기 이틀 전부터 하인들을 불러 땅 주변에 지키게 했다. 그는 도깨비를 만났던 날을 기억했지만, 지금은 그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다.
"영감님, 왜 이렇게 경계를 강화하시나요?" 하인이 물었다.
만식은 거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요즘 도둑이 들었다는 소문이 있어. 우리 창고와 땅을 지켜야지."
순이는 만식의 행동을 지켜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여전히 도깨비와의 약속을 잊지 않고 있었다.
"여보, 제발 약속을 지키세요. 오늘 밤이 바로 그날이에요."
"시끄럽다! 내가 피땀 흘려 일군 땅을 누구에게 그냥 준단 말이냐!"
만식은 더 이상 아내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도끼와 몽둥이를 준비하고, 하인들에게도 무기를 들려 땅 주변을 지키게 했다.
보름달이 하늘 높이 떠오르자, 산에서 이상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뭇잎이 흔들리고, 멀리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만식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았지만, 무시하려 했다.
갑자기 땅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도깨비가 나타났다. 5년 전 만났던 그 도깨비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의 표정이 심각했다.
"인간, 약속을 지키러 왔네. 5년이 지났으니 이제 땅을 돌려줄 때가 됐어."
만식은 도끼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하인들도 그 뒤를 따랐다.
"무슨 소리! 이 땅은 내 땅이다! 감히 누가 빼앗아 가려 하느냐!"
도깨비는 만식을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실망과 분노가 섞여 있었다.
"약속을 잊었나? 5년 전, 네가 이 땅을 빌렸을 때 한 약속을..."
"그런 약속 같은 건 없었어! 네가 무슨 증거가 있다고 내 땅을 달라는 거냐!"
도깨비는 손을 들어 허공을 가리켰다. 그러자 놀랍게도 공중에 5년 전의 장면이 물 위에 비친 것처럼 나타났다. 만식이 도깨비와 계약을 맺는 장면, 땅을 5년만 빌리겠다고 약속하는 장면...
"기억이 나는가, 인간?"
만식은 잠시 당황했지만, 곧 자신을 추스르고 소리쳤다.
"환상을 보여주며 속이려 하다니! 이 땅은 내가 일군 땅이다! 너희 같은 요괴는 썩 꺼져라!"
만식의 명령에 하인들이 도깨비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도깨비는 손을 한번 휘두르자 그들은 모두 땅에 쓰러졌다. 도깨비의 얼굴이 점점 붉게 변했다.
"약속을 어기는 인간이여, 네가 받을 벌을 내리겠다."
도깨비가 손을 들어올리자 하늘에서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만식은 공포에 질려 도망치려 했지만, 그의 발은 땅에 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순이가 달려와 도깨비 앞에 무릎을 꿇었다.
"도깨비님, 제발 용서해주세요! 저희 남편이 잘못했습니다!"
"약속은 약속이다. 인간 세상에서도, 도깨비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지."
도깨비의 손가락이 만식을 가리키자, 만식의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5년간의 교만과 욕심을 후회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늦었다.
"도깨비님, 제발! 다시는 약속을 어기지 않겠습니다!" 만식이 울며 빌었다.
하지만 도깨비의 결정은 바뀌지 않았다. 그의 눈에서 붉은 불꽃이 일었다.
"약속을 어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 인과응보와 교훈, 도깨비의 저주로 모든 것을 잃고 후회하는 만식, 그리고 그가 깨달은 교훈을 통해 얻은 삶의 지혜.
도깨비의 저주가 내려지자, 만식의 땅에서 자라던 모든 작물이 시들기 시작했다. 곡식은 검게 변하고, 채소는 썩어갔다. 창고에 보관해둔 쌀과 보리도 쥐들이 갑자기 몰려와 다 먹어버렸다.
"안돼! 내 재산이! 내 땅이!"
만식은 절망에 빠져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도깨비는 그를 바라보며 마지막 선고를 내렸다.
"네가 가진 모든 것은 이 땅에서 나온 것. 그리고 이 땅은 본래 내 것이었다. 약속을 어긴 벌로,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겠다."
도깨비가 손을 크게 휘두르자, 만식의 집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기와가 하나둘 떨어지더니, 마침내 집 전체가 무너져내렸다. 마구간의 말들은 놀라 도망갔고, 농기구들은 녹슬어 부서졌다.
만식은 무릎을 꿇고 울부짖었다. "제발! 모든 걸 다 잃고 싶지 않아!"
도깨비는 그를 냉정하게 바라보았다. "약속을 어긴 자가 무엇을 원한단 말인가?"
그때 순이가 앞으로 나서서 도깨비에게 간청했다.
"도깨비님, 우리 남편이 크게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어린 아이가 있습니다. 제발 아이만큼은..."
도깨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의 눈빛이 조금 누그러졌다.
"인간 여자여, 네 마음은 순수하구나. 약속을 지키려 했던 건 너였어."
도깨비는 만식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네 아내의 간청으로, 너의 목숨과 가족은 살려주겠다. 하지만 네가 가진 모든 재산은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이 땅에서 농사를 짓지 못할 것이다."
말을 마친 도깨비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 순간, 만식의 집과 재산이 모두 불길에 휩싸였다. 불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그의 소유물만 골라 태워버렸다.
아침이 되자, 만식은 더 이상 부자가 아니었다. 그의 집은 재가 되었고, 오직 가족들이 입은 옷과 작은 보따리만 남았다. 도깨비가 빌려준 땅은 원래대로 돌아가 황무지가 되었다.
"아버지, 우리 이제 어디로 가나요?" 돌이가 울면서 물었다.
만식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후회의 눈물이 고여 있었다.
"이게 다 아버지 잘못이다... 약속을 지켰어야 했는데..."
순이는 만식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여보, 다시 시작해요. 우리에겐 아직 가족이 있잖아요."
만식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는 아내와 아들을 바라보며 결심했다.
"그래, 다시 시작하자. 이번에는 욕심내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가자."
그들은 마을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주했다. 만식은 다시 소작농이 되어 열심히 일했다. 이번에는 정직하게, 약속을 지키며 살았다. 비록 예전처럼 큰 부자는 되지 못했지만, 가족들과 함께 평화롭게 살았다.
세월이 흘러 만식이 노인이 되었을 때, 그는 손자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아무리 작은 약속이라도, 그것을 어기면 큰 화를 부를 수 있단다. 그리고 욕심을 부리면, 가진 것마저 모두 잃게 된다."
만식의 이야기는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전설이 되어 전해졌고, 사람들은 그의 교훈을 마음에 새겼다. 도깨비 땅을 빌린 농부의 이야기는 조선 땅 곳곳에 퍼져나갔고, 약속과 욕심에 대한 교훈으로 오랫동안 기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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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오늘 들으신 "도깨비 땅을 빌려 부자가 된 농부의 교훈"은 어떠셨나요? 우리 조상들이 오랫동안 전해온 이 이야기는 약속의 중요성과 과도한 욕심이 가져오는 결과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귀중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김만식은 도깨비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 과정에서 정직과 약속의 가치를 깨달았습니다. 우리 인생에서도 때로는 눈앞의 이익보다 약속과 신의를 지키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중요한 법이지요.
다음 주 목요일에는 "궁궐에 숨어 살던 도깨비와 어린 공주의 우정"이라는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조선시대 궁궐에 살던 어린 공주가 우연히 발견한 도깨비와 비밀스러운 우정을 나누는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궁궐의 엄격한 규율 속에서 외로움을 달래던 공주와 인간에게 상처받은 도깨비가 서로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 가는지, 따뜻한 감동이 있는 이야기로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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