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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신랑, 죽은 딸을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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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만석꾼 황부자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외동딸이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처녀 귀신은 면하게 해주려 백방으로 사윗감을 찾았으나 모두 허사였지요. 그때 나타난 늙은 무당의 기막힌 한마디! "아씨의 신랑은 십일 년 전 뒷산 도깨비로 이미 정해져 있소이다." 도깨비가 신랑으로 온다는 소문에 마을 사람들은 저주를 피하려 야반도주를 하고, 텅 빈 달 없는 그믐밤, 기괴한 도깨비 신랑과 죽은 딸이 누운 붉은 관의 맞절이 시작됩니다. 과연 이 기묘하고도 오싹한 혼례의 끝에는 어떤 기적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 1: 황부자의 찢어지는 통곡과 허사로 돌아간 영혼결혼식 사윗감 찾기
조선 팔도에서 남부러울 것 없는 어마어마한 재물을 긁어모아 만석꾼이라 불리던 황부자. 그의 넓고 으리으리한 기와집 앞마당에는 일 년 삼백육십오일 언제나 금빛 낟알을 품은 곡식 가마니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크고 작은 광마다 은수저와 엽전 꾸러미가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황부자가 기침 한 번만 크게 해도 인근 고을의 땅값이 들썩인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그의 권세와 부유함은 하늘을 찌를 듯했습니다. 하지만 천하를 다 살 수 있을 것 같던 그 온갖 금은보화도, 하루아침에 싸늘하게 식은 주검이 되어버린 하나뿐인 핏줄 앞에서는 그저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하찮고 쓸모없는 돌덩이에 불과했습니다. 황부자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하디귀한 외동딸 연화가,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혼례복 한 번 입어보지 못한 채 원인 모를 독한 열병으로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버리고 만 것입니다.
연화는 그 얼굴이 어찌나 곱고 성품이 아침 이슬처럼 비단결 같았던지, 열세 살 무렵부터 온 동네 중매쟁이들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습니다. 하지만 황부자는 늦은 나이에 얻은 하나뿐인 딸을 너무도 애지중지한 나머지, '아직은 내 품에 더 품고 싶다. 내 딸의 손에 물 한 방울 묻히게 할 수는 없다'며 들어오는 족족 혼사를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늦은 나이인 열여덟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짝을 지어주려 인근 명문가의 번듯한 사주단자를 받아두었는데, 청천벽력처럼 이름 모를 몹쓸 열병이 덮치더니 단 사흘 만에 피를 토하고 눈을 감고 만 것입니다.
구슬픈 곡소리가 진동하는 너른 안마당 한가운데, 눈이 시리도록 붉은 옻칠을 한 무겁고 거대한 관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황부자는 딸이 누워있는 그 차가운 붉은 관을 바스라져라 끌어안고 자신의 가슴을 무자비하게 치며 짐승처럼 피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아이고, 연화야! 내 불쌍하고 가여운 딸 연화야! 이 아비가 미련하고 욕심이 많아 너를 여태 품에만 끼고 있다가, 고운 비단옷 한 번 지어 입혀 시집보내지도 못하고 이렇게 차가운 흙바닥으로 허망하게 보내는구나! 천하의 불효막심하고 어리석은 이 아비를 원망하거라. 이 아비의 가슴에 시퍼런 대못을 박고 네가 어찌, 어찌 먼저 간단 말이냐!"
목이 쉬어 피가 나도록 통곡하던 황부자는 문득 뇌리를 스치는 끔찍한 생각에 온몸을 파르르 떨었습니다. 예로부터 혼인하지 못하고 죽은 처녀는 이승에 강한 한을 품어 끔찍한 처녀 귀신, 이른바 '손각시'가 되어 구천을 떠돌며 산 사람들을 괴롭힌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늙어 죽어 저승에 가더라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귀한 딸이 평생 이승에 원한을 품고 춥고 배고프게 구천을 떠돈다면 그 무슨 지옥이란 말입니까. 황부자는 퉁퉁 부어오른 붉은 눈을 번쩍 뜨며 곁에서 엎드려 울고 있던 늙은 마름의 멱살을 덥석 틀어쥐었습니다.
"당장 일어서라! 넋 놓고 울 시간이 없다! 당장 내 곳간을 활짝 열어 번쩍이는 은덩이와 최고급 비단을 수레에 산처럼 가득 싣고 나가거라! 내 귀한 딸이 이대로 외롭고 쓸쓸하게 험난한 저승길을 걷게 할 수는 없다. 인근 다섯 고을, 아니 열 고을을 모두 샅샅이 뒤져서라도 장가를 가지 못하고 죽은 총각의 사주를 당장 내 앞에 구해오너라! 내 전 재산을 다 털어 길바닥에 뿌리는 한이 있더라도 기어이 짝을 찾아주어, 남부럽지 않은 그럴듯한 사후혼이라도 치러주어야만 내 딸의 깊은 한을 달래줄 수 있을 것 아니냐!"
마름은 황급히 눈물을 훔치며 수십 명의 하인들을 이끌고 인근 다섯 고을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혼인하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은 몽달귀신의 사주를 찾아, 돈이라면 당신들이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주겠노라 바닥에 엎드려 사정하고 매달렸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너무나도 참담했습니다. 가난에 찌들어 하루하루 풀뿌리를 캐 먹는 집안이라 할지라도,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찢어지는 슬픔은 부자나 빈자나 매한가지인데, 아무리 은덩이를 눈앞에 산처럼 쌓아준들 죽은 아들의 영혼이 담긴 사주를 돈을 받고 팔아먹겠다는 부모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부잣집 외동딸이 혼례를 앞두고 갑작스러운 열병으로 피를 토하며 죽은 것이 혹여 집안에 낀 끔찍한 악귀의 저주 때문이 아니냐는 흉흉한 소문마저 온 고을에 쫙 퍼져 돌고 있어, 사람들은 수레를 끌고 온 하인들을 향해 굵은소금을 바가지로 팍팍 뿌려대며 매몰차게 문전박대하기 일쑤였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가난에 찌들어 굶어 죽어가는 신세라 할지라도, 죽은 내 불쌍한 자식의 영혼을 돈 몇 푼에 양반집 노리개로 팔아먹는 금수만도 못한 짓은 할 수 없소! 어디서 감히 귀한 영혼을 돈으로 사려 드시오! 당장 그 더러운 은덩이를 수레에 챙겨서 돌아가시오! 퉤퉤! 재수 없게시리!"
사흘 밤낮을 꼬박 뒤지고 신발이 닳아 없어지도록 돌아다녔지만, 죽은 총각의 사주 단자 하나 얻지 못한 채 하인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빈 수레를 질질 끌며 황부자의 대궐 같은 집으로 처참하게 돌아왔습니다. 절망적인 보고를 전해 들은 황부자는 마침내 하늘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듯한 끔찍한 절망감과 자괴감에 휩싸여, 마루에서 그대로 마당 흙바닥으로 털썩 굴러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늘도 정녕 무심하시지! 세상천지 돈으로도 안 되는 일이 있단 말인가. 만석꾼이면 무얼 하고 은덩이가 산처럼 쌓이면 무얼 한단 말인가! 내 귀한 딸 하나 저승길 외롭지 않게 동무 하나 지어주질 못하니! 내 딸이 결국 구천을 떠도는 무서운 원귀가 되어 빗속을 헤매야 한단 말인가! 차라리 날 죽여라, 날 먼저 데려가라 이 무심한 하늘아!"
황부자의 가슴을 쥐어뜯는 처절한 울부짖음이 구슬픈 상여 소리와 뒤섞여, 스산한 가을바람을 타고 온 마을로 처량하게 흩어져 갔습니다. 제 손으로 고운 옷 한 번 입혀 딸을 시집보내지 못했다는 끔찍한 자책감과, 죽어서조차 영혼결혼식 하나 치러줄 수 없는 못난 아비의 무력감에 황부자의 가슴은 시커멓게 숯덩이처럼 타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 마당 한가운데 놓인 붉은 관은 마치 입을 굳게 다문 채 아비의 무능함을 서늘하게 원망하는 듯, 그저 차갑고 섬뜩한 기운만을 사방으로 내뿜고 있었습니다.
※ 2: 눈먼 무당의 방문, 그리고 십일 년 전 뒷산 도깨비와의 피 맺힌 약속
자식을 앞세운 아비의 슬픔이 하늘에 닿았는지, 딸의 붉은 관 앞에서 꼬박 나흘을 식음 전폐하고 밤낮으로 피눈물만 흘리던 황부자의 얼굴은 완전히 반쪽이 되어 있었습니다. 두 눈은 퀭하게 푹 들어가 초점을 잃었고, 피골이 상접한 몰골은 당장 숨이 넘어가는 산송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그믐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굵은 빗줄기가 기와지붕을 무섭게 때리며 스산하게 내리치던 바로 그때였습니다. 적막이 흐르던 대문 밖에서 기괴하고도 뼈를 깎는 듯한 날카로운 쇠방울 소리가 짤랑, 짤랑 울리더니 흠뻑 젖은 낡은 누더기 옷을 걸친 늙은 무당 하나가 지팡이를 짚고 허락도 없이 마당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습니다.
두 눈은 하얗게 멀어 눈동자가 뒤집혀 있었고, 얼굴은 오랜 세월의 모진 풍파를 맞은 듯 쪼글쪼글한 주름으로 기괴하게 덮인 기이하고 음산한 노파였습니다. 무당은 앞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두 눈을 똑똑히 뜨고 있는 사람처럼 마당 한가운데 놓인 붉은 관 앞으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다가가더니, 들고 있던 대나무 지팡이로 흙바닥을 쿵! 쿵! 거칠게 내리찍으며 소름 끼치는 쇳소리로 찢어질 듯 외쳤습니다.
"쯧쯧쯧. 이보시오, 황부자! 천하의 재물을 다 가졌다고 목에 힘을 주고 다니더니, 정작 자신이 내뱉은 무섭고도 중한 약속 하나 기억하지 못하다니 참으로 미련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소이다. 구천을 떠도는 몽달귀신 사주를 구하려 하인들을 풀어 온 고을을 헤집고 다니며 그 난리를 쳤다지? 허튼수작 당장 집어치우시오. 저 차가운 붉은 관 속에 누운 아씨의 사윗감은, 이미 십일 년 전에 아주 단단하고 지독하게 맺어진 정혼자가 따로 있소이다!"
넋을 놓고 툇마루에 쓰러져 있던 황부자는 벼락같은 무당의 호통에 깜짝 놀라 비틀거리며 빗속 마당으로 미친 듯이 뛰쳐나왔습니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게요! 내 귀한 딸에게 정혼자가 있다니! 그것도 십일 년 전에 이미 사윗감이 정해졌다니, 대체 어느 미친놈이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는 게요! 썩 물러가지 못할까!"
비에 젖은 늙은 무당은 하얗게 뒤집힌 기괴한 눈동자를 굴리며 황부자를 향해 비릿하고도 기분 나쁜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기억의 밑바닥을 똑똑히 더듬어 보시오. 십일 년 전, 이 붉은 관 속에 싸늘하게 누운 귀한 딸자식이 고작 일곱 살 나던 해의 무덥던 여름을 말이오. 그때도 아씨가 이름 모를 무서운 열병에 걸려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며 사경을 헤매고 있었지. 온갖 용하다는 의원을 다 부르고 조선 팔도의 귀한 약재를 쏟아부어도 숨이 끊어지려 하니, 당신이 미친 사람처럼 비를 뚫고 뒷산 골짜기 도깨비 터로 달려가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고 빌지 않았소?"
그 순간, 황부자의 머릿속에 시퍼런 벼락이 치듯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십일 년 전의 끔찍하고도 기이했던 그날 밤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습니다.
'맞다… 고작 일곱 살이던 예쁜 내 연화가 불덩이 같은 몸으로 숨을 헐떡이며 새파랗게 질려 죽어가던 그 폭우 쏟아지던 밤.'
당시 황부자는 딸의 목숨을 단 하루라도 살려보겠다는 절박한 심정 하나로, 마을 사람들이 요괴가 나온다며 몹시 꺼리던 뒷산 깊은 골짜기의 오래된 흉가, 즉 도깨비 터로 미친 듯이 뛰어 올라갔습니다. 그는 비바람이 몰아치는 진흙 바닥에 엎드려 이마가 찢어져 피가 철철 나도록 절을 하며 미친 짐승처럼 부르짖었습니다.
'산신령님이든 도깨비님이든 누구든 제발 내 가여운 딸의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제 딸 연화만 살려주신다면, 이 황부자가 평생 모은 전 재산을 다 바치고 제 썩어빠진 목숨까지 기꺼이 내어놓겠나이다! 제발, 제발 불쌍한 제 자식 좀 살려주십시오!'
그때, 시커먼 어둠 속에서 푸른 도깨비불 두 개가 번뜩이더니 짐승의 으르렁거림 같기도 하고, 무거운 쇳덩이가 부딪히는 것 같기도 한 기괴하고 웅장한 목소리가 폭우 소리를 뚫고 귓가를 강하게 때렸습니다.
『네놈의 그 간절한 피눈물이 기특하여 내 이 아이의 목숨을 지금 당장 살려주마. 허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네놈의 하찮은 재물이나 늙은 목숨 따위는 내게 필요 없다. 지금 이 아이의 끊어지는 명줄을 이어주는 대신, 아이가 성인이 되어 붉은 연지를 바르는 열여덟 꽃다운 나이가 되는 해 그믐밤, 내 이 아이를 온전히 데리러 올 것이다. 그때, 이 아이는 나의 영원한 신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약조하겠느냐?』
황부자는 그 압도적인 목소리가 빗소리에 섞인 헛것인지 진짜 산도깨비의 음성인지 분간할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그저 숨이 넘어가는 눈앞의 딸을 살릴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당장 팔 수 있었기에, 진흙 바닥에 엎드린 채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약조하겠노라 피눈물을 흘리며 맹세했습니다. 그리고 기적처럼, 다음 날 아침 연화의 지독했던 열병이 씻은 듯이 나았던 것입니다. 딸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건강하게 자라자, 황부자는 그날 밤의 일은 그저 절박함이 만들어낸 헛것이라 치부하며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았던 것입니다.
"아아… 아아! 정녕 그날 밤의 일이 진짜 맺어진 끔찍한 약조였단 말인가! 그렇다면… 내 가여운 딸을 무참히 죽인 것이 바로 그 산속의 도깨비놈이란 말인가!"
황부자가 절망에 빠져 울부짖자, 무당이 혀를 차며 지팡이로 바닥을 탕! 내리쳤습니다.
"어리석은 소리 마시오! 도깨비가 죽인 것이 아니오! 도깨비라 할지라도 인간의 정해진 수명을 마음대로 끊어낼 수는 없소. 저 관 속의 아씨는 본디 일곱 살을 넘기지 못할 지독히도 짧은 단명(短命)의 사주를 타고났던 것이오. 도깨비는 그저 십일 년 전 죽을 명줄을 자신의 기운으로 잠시 늦춰준 것뿐이지요. 이제 그 약조한 유예의 기한이 다 되어 아씨가 숨을 거둔 것이고, 도깨비 신랑은 십일 년을 기다린 자신의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 오늘 밤, 바로 저 뒷산에서 내려올 것이오."
무당의 기괴하고도 소름 끼치는 폭탄선언에, 마당 구석에 모여 서 있던 하인들은 모두 입을 쩍 벌린 채 공포에 질려 바들바들 사시나무 떨듯 떨기 시작했습니다.
"명심하고 또 명심하시오. 오늘 달이 뜨지 않는 캄캄한 이 그믐밤, 뒷산의 짐승 같은 도깨비가 이 집 앞마당으로 신부를 맞으러 올 것이오. 만약 신부의 혼례상을 번듯하게 차려놓지 않고 그를 문전박대하거나 약조를 깬다면, 끔찍한 분노에 찬 도깨비 무리가 이 집안은 물론이고 온 마을을 시뻘건 불바다로 만들어 잿더미로 만들어버릴 것이오. 서둘러 마당에 초례상을 차리고, 붉은 관을 신부 삼아 얌전히 맞절을 시키시오!"
말을 마친 늙은 무당은 짤랑거리는 기분 나쁜 방울 소리만 허공에 서늘하게 남긴 채, 스르륵 짙은 빗속의 어둠 속으로 연기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남겨진 황부자는 다리에 힘이 완전히 풀려 진흙 바닥에 주저앉은 채, 비를 흠뻑 맞고 있는 딸의 붉은 관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미친 사람처럼 허탈한 웃음과 처절한 눈물을 동시에 토해냈습니다.
※ 3: 도깨비의 저주를 두려워한 마을 사람들의 야반도주와 기괴한 혼례 준비
눈먼 늙은 무당이 남기고 간 끔찍하고 기괴한 예언은, 비바람을 타고 발 없는 말이 되어 밤사이 온 마을을 흉흉하게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황부자네 그 곱던 죽은 딸년의 신랑이 다름 아닌 뒷산에 사는 무시무시한 도깨비란다', '오늘 밤 도깨비불을 앞세운 수십 마리의 도깨비 무리가 신부를 데리러 산에서 내려온단다' 하는 소문은, 가뜩이나 원귀와 요괴를 두려워하며 조심스레 살아가던 순박한 마을 사람들을 극도의 공포와 걷잡을 수 없는 패닉으로 단숨에 몰아넣기에 충분했습니다.
예로부터 마을 어르신들에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전설에 따르면, 무리를 지어 다니는 산도깨비들이 이승의 약조를 어긴 인간에게 한 번 크게 분노하여 저주를 내리는 날에는, 온 마을에 피부가 썩어 들어가는 역병이 돌고 몇 년간 흉년이 들며, 무사했던 가옥들이 하루아침에 원인 모를 시뻘건 불길에 휩싸여 뼈대조차 남지 않는 잿더미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 무시무시한 도깨비가, 무덤으로 가야 마땅할 시체와 혼례를 치르러 폭우를 뚫고 산을 내려온다니, 이것은 필시 마을을 통째로 집어삼킬 끔찍한 저주와 재앙의 전조가 분명하다고 마을 사람들은 확신하며 덜덜 떨었습니다.
"아이고,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게 대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이냐! 황부자 그 미련한 양반이 지 딸년 목숨 하나 살려보겠다고 끔찍한 요물과 몹쓸 계약을 맺는 바람에, 엉뚱하게 우리 동네 사람들까지 죄다 엮여서 불타 죽게 생겼네!"
"여기서 넋 놓고 울고 있을 때가 아니야! 당장 짐을 싸게! 꾸물댈 시간 없어! 그 끔찍한 도깨비불이 산을 타고 마을로 다 내려오기 전에, 이 저주받은 흉흉한 마을을 당장 떠나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어!"
비바람이 잦아들고 세상에 먹물 같은 짙은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굳게 닫혀 있던 마을 사람들의 집 문이 하나둘 다급하게 열어젖혀졌습니다. 사람들은 값나가는 가재도구를 대충 보따리에 마구잡이로 쑤셔 넣고, 울음소리를 내는 소와 돼지의 고삐를 질질 끌며, 공포에 질려 우는 아이들의 손을 꽉 쥔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든 고향 마을을 등지고 야반도주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살기 위해 앞다투어 달아나는 사람들의 거친 흙발 소리와, 영문을 모르고 짖어대는 개들의 음산한 울음소리가 겹쳐지며 마을은 그야말로 지옥도를 방불케 하는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황부자네 대궐 같은 집에서 수십 년간 밥을 얻어먹고 은혜를 입으며 일하던 수백 명의 노비와 하인들조차도, 저주받은 도깨비불에 타 죽기 싫다며 곡괭이와 짐을 내팽개치고 담장을 앞다투어 넘어 뿔뿔이 산속으로 도망쳐 버렸습니다.
순식간에 개미 새끼 한 마리 없이 텅 비어버린 으리으리한 만석꾼 황부자의 대궐 같은 기와집. 그 넓고 휑한 저택 안마당에는 오직 촛불 몇 개만이 거센 바람에 위태롭게 흔들리며 어둠을 간신히 밝히고 있었습니다. 수백 명의 식솔이 도망치는 와중에도 곁을 떠나지 않고 남은 자는, 딸의 끔찍한 죽음과 자신의 어리석은 과거에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넋을 놓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황부자와, 평생을 황부자 곁에서 그림자처럼 모셔 온 백발이 성성한 충직한 늙은 마름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달조차 두꺼운 먹구름에 가려 완벽하게 자취를 감춘 칠흑같이 어두운 그믐밤. 음산하고 끈적끈적한 밤바람이 마당의 모래바람을 거칠게 일으키며 회오리치고 있었습니다.
"나, 나으리… 이를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동네 사람들도, 그 많던 머슴들도 죄다 살겠다고 줄행랑을 쳐버렸습니다요. 정녕 그 무서운 도깨비 무리가 들이닥쳐 이 집을 통째로 불태워버리고 우리 목을 베어버리면 어찌합니까요. 우리도 피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요."
늙은 마름이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황부자의 소맷자락을 부여쥐며 눈물범벅이 되어 울먹였지만, 황부자는 공허한 눈빛으로 마당 한가운데 놓인 붉은 관만을 응시하며 단호하고도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아니다. 도망쳐서는 아니 된다. 내 딸이 일곱 살에 십일 년 전에 이미 죽었어야 할 가여운 운명인데, 내가 부질없는 아비의 욕심을 부려 억지로 시간을 잠시 빌려 쓴 것뿐이라면… 내가 어찌 그 무거운 약조의 대가를 피하기 위해 치사하고 비겁하게 도망을 친단 말이냐. 더군다나, 내 귀한 딸을 신부로 맞이하러 데리러 온다는 사위가 아니더냐. 그것이 평범한 사람이든, 무시무시한 산도깨비든, 내 귀한 딸의 사후혼을 치르러 오는 것이니 예를 다 갖춰 혼례를 올려 맞이하는 것이 죽은 딸을 둔 아비 된 도리일 것이다."
황부자는 주저앉아 있던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힘겹게 일어나 젖은 소매를 걷어붙였습니다.
"마름아, 떨지 말고 어서 안채로 들어가 상을 내어오너라! 비록 마을 사람들의 축복 하나 받지 못하는 기괴한 혼례일지언정, 내 소중한 딸이 도깨비 신부를 자처하여 가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길이니 결코 초라하게 보낼 수는 없다. 집안에서 가장 번쩍이는 그릇을 꺼내어, 제일 크고 화려한 초례상(혼례상)을 떡하니 차려라!"
두 노인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마당 한가운데, 죽은 딸이 누워 있는 무거운 붉은 관을 세로로 반듯하게 세워 신부가 서 있어야 할 자리에 위태롭게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관 앞에 붉은 비단과 푸른 최고급 비단을 길게 깔고, 상다리가 부러질 듯 커다란 혼례상을 떡하니 차렸습니다. 상 위에는 번쩍이는 놋그릇에 산처럼 담긴 풍성한 떡과 과일, 김이 모락모락 나는 삶은 통돼지, 그리고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상징인 수탉과 암탉을 붉은 실로 묶어 정성스레 올렸습니다. 상 양옆으로는 어둠을 밝힐 커다란 청사초롱을 매달았고, 바람에도 쉽게 꺼지지 않을 두꺼운 밀랍 초에 불을 붙여 환하게 밝혔습니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혼례 준비가 모두 끝나고, 숨 막히는 팽팽한 적막이 마당을 맴돌던 자정 무렵. 갑자기 집 뒤편을 병풍처럼 거대하게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뒷산의 능선 쪽에서 기이하고도 소름 끼치는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시커먼 어둠 속에서 시퍼렇고 거대한 불꽃 하나가 허공에서 번쩍! 하고 굉음과 함께 피어오르더니, 이내 그 푸른 불꽃은 둘로, 넷으로, 십여 개로 기하급수적으로 무섭게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짐승이 춤을 추듯 일렁이는 수십 개의 으스스한 푸른 도깨비불 무리가, 기괴하고도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드는 장엄한 북소리와 꽹과리 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며, 황부자의 기와집을 향해 산을 타고 스멀스멀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십일 년을 기다린 도깨비 신랑이 마침내 자신의 죽은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 그 기괴한 행렬을 이끌고 나타난 것입니다.
※ 4: 푸른 도깨비불의 행렬과 붉은 관 앞에 선 훤칠한 도깨비 신랑
적막만이 감돌던 텅 빈 마을을 날카롭게 찢어발길 듯, 거대한 뒷산의 짙은 어둠 속에서부터 울려 퍼지기 시작한 둔탁하고도 기괴한 징소리와 북소리는, 맥박이 뛰는 속도에 맞춰 점점 그 간격을 무섭게 좁혀오며 황부자의 집 앞마당까지 바싹 다가왔습니다. 허공을 둥둥 떠다니며 춤을 추는 수십 개의 시퍼런 도깨비불들은, 한여름 밤의 서늘한 기운보다도 훨씬 더 끔찍하고 뼛속을 시리게 만드는 오싹한 냉기를 뿜어내며 기와집의 높은 담장을 단숨에 훌쩍 넘어 마당 한가운데로 소리 없이 내려앉았습니다. 마치 이승의 공간이 순식간에 저승의 입구로 변해버린 듯, 공기마저 무겁게 짓눌려 숨을 쉬기조차 힘든 팽팽한 긴장감이 마당을 가득 채웠습니다.
'쿵! 쿵! 쿵!'
거대한 바위가 땅을 내리찍는 듯한 무겁고도 일정한 발소리와 함께, 대궐 같던 기와집의 육중한 대문이 부서질 듯 거칠게 활짝 열려 젖혀지더니, 시커먼 어둠 속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불쑥 그 압도적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툇마루 구석에 납작 엎드려 있던 황부자와 늙은 마름은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덜덜 떨리는 두 눈으로 마당으로 들어선 존재를 확인하고는 짐짓 놀라 헛숨을 깊게 들이켰습니다.
소문 속의 끔찍한 산도깨비라 하면, 응당 머리에는 무시무시하고 뾰족한 뿔이 돋아있고, 입에는 짐승의 피가 묻은 날카로운 송곳니가 튀어나온 흉측하고 괴상한 털복숭이 요괴의 모습일 것이라 짐작하며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푸른 도깨비불들의 깍듯하고도 삼엄한 호위를 받으며 화려한 혼례상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온 신랑의 모습은, 그들의 얄팍한 예상을 완전히 비껴가는 충격적이고도 경이로운 자태였습니다.
그는 키가 웬만한 장정 두 명을 위아래로 합친 것만큼이나 훌쩍 컸고 어깨가 태평양처럼 넓어 엄청난 위압감을 주었지만, 그 얼굴만큼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준수하고 훤칠한 사내의 완벽한 이목구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마치 하늘의 조각가가 심혈을 기울여 정성껏 깎아낸 듯 날렵하고 기품 있는 턱선과 베일 듯 오뚝한 콧날, 그리고 별빛처럼 맑으면서도 천하를 호령할 듯한 서늘한 기운을 품고 있는 깊은 눈동자. 그는 인간 세상에서는 감히 구할 수도 없는 최고급 푸른 비단으로 지어진 화려하고 장엄한 혼례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있었으며, 머리에는 영롱한 빛을 뿜어내는 옥으로 만든 관을 반듯하게 쓰고 있었습니다. 짐승의 흉측함이나 요괴의 기괴함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오히려 하늘에서 갓 내려온 고귀하고 거룩한 신장(神將)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위엄 있고 기품이 넘쳐흐르는 압도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다만, 그의 주변을 빈틈없이 감싸고 있는 일렁이는 푸른빛의 도깨비불들과, 사람이 아닌 존재만이 뿜어낼 수 있는 주변의 공기를 얼려버릴 듯한 압도적이고도 차가운 기운만이 그가 이승의 인간이 아님을 묵묵히 증명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도깨비 신랑은 마당 구석에서 바들바들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는 황부자를 단숨에 발견하고는, 큰 보폭으로 뚜벅뚜벅 다가가 그의 앞에 거대한 산처럼 멈춰 섰습니다. 황부자는 그 거대한 그림자와 서늘한 위압감에 완전히 짓눌려,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한 채 진흙 바닥에 이마를 바짝 대고 바짝 엎드렸습니다.
"황… 황공하옵니다… 비루하고 보잘것없는 어리석은 인간이, 감히 이 산의 주인이신 위대하신 도깨비 어르신을 몰라뵙고 십일 년 전의 그 중하고 무서운 약조를 까맣게 잊고 살았습니다요. 내 귀한 딸이 어르신의 신부로 점지된 것도 전혀 모르고, 허망하게 죽어버린 딸을 위해 몽달귀신을 찾으러 다녔으니… 제 아비 된 자의 이 크나큰 죄를 어찌 다 갚겠습니까. 어르신께서 분노하시어 당장 이 자리에서 저를 불태워 죽이신다 해도 그저 달게, 달게 받겠나이다."
황부자가 땅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피눈물을 섞어 처절하게 읍소하자, 도깨비 신랑은 가만히 크고 단단한 손을 뻗어 황부자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쥐며 그를 천천히 일으켜 세웠습니다. 어깨에 닿은 그의 손길은 한겨울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참으로 이상하게도 적의나 분노, 혹은 살기 같은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따뜻한 위로가 배어 있었습니다.
"장인어른, 어찌하여 혼례를 치르러 온 사위에게 그리도 비굴하게 고개를 숙이십니까. 고개를 드십시오. 십일 년 전,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폭우가 쏟아지던 그 밤, 죽어가는 자식을 살리기 위해 이마가 깨지도록 빌던 장인어른의 그 갸륵하고 처절한 눈물과 부성애가, 수백 년간 굳어있던 나의 차가운 마음을 움직여 그 아이의 운명을 연장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나는 그날 맺었던 단단한 약조대로 내게 허락된 세상 유일한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 이렇게 혼례복을 갖춰 입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도깨비 신랑의 목소리는 웅장하고 깊은 동굴에서 울리는 장엄한 메아리처럼 낮고 부드러웠으며, 듣는 이의 마음을 기묘하게 편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는 황부자를 정중하게 일으켜 세운 뒤, 시선을 돌려 마당 한가운데 수직으로 세워진, 자신의 죽은 신부가 누워있는 거대하고 붉은 관을 조용히 응시했습니다.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서늘했던 그의 깊은 눈동자가 붉은 관을 마주하는 순간, 무언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애틋하고도 슬픈 감정으로 잘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도깨비를 그저 까닭 없이 불을 지르고 인간에게 끔찍한 재앙을 내리는 흉측한 요괴로만 알지만, 우리 도깨비들 역시 무겁게 약조를 맺은 인연 앞에서는 영혼과 목숨까지 기꺼이 바치는 고결한 존재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도망치는 와중에도, 장인어른께서 끝까지 도망치지 않고 이리도 훌륭하고 정성스러운 초례상을 차려 나를 사위로 맞아주시니 참으로 고맙고 깊이 감사드립니다. 자, 이제 하늘이 정해준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승과 저승, 인간과 도깨비의 아득한 경계를 넘어 나의 아름다운 신부와 맞절을 올리고 온전한 혼례를 치러야 할 때입니다."
도깨비 신랑은 붉은 관을 향해 천천히, 그리고 엄숙하게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가 발걸음을 뗄 때마다 마당에 흩어져 허공을 맴돌던 수십 개의 푸른 도깨비불들이 일제히 위로 맹렬하게 치솟으며 기괴하고도 신비로운 빛무리를 찬란하게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인간 아비는 숨을 멈춘 채 두 손을 모아 쥐었고, 고귀한 도깨비 사위는 마침내 죽은 신부의 붉은 관 앞에 섰습니다. 달빛 하나 없는 칠흑 같은 그믐밤의 짙은 어둠 속에서, 세상 그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기묘하고도 소름 돋는 영혼결혼식의 맞절이 마침내 장엄하게 시작되려 하고 있었습니다.
※ 5: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허무는 맞절, 그리고 스르르 열리는 관 뚜껑
싸늘하고 끈적한 가을의 밤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며 화려하게 차려진 초례상 위에 위태롭게 타오르던 밀랍 촛불을 거칠게 흔들었고, 마당을 겹겹이 에워싼 푸른 도깨비불들은 마치 살아 숨 쉬며 춤을 추는 생명체처럼 요동치며 기괴하고도 거대한 그림자들을 기와집의 낡은 담벼락에 길게 늘어뜨렸습니다. 훤칠하고 고귀한 기품이 넘쳐흐르는 모습의 도깨비 신랑은, 마당 한가운데 세로로 반듯하게 세워진 육중하고 눈이 시리도록 붉은 옻칠 관을 자신의 신부 삼아 마주 보고 반듯하게 섰습니다.
굳게 대못이 박힌 관 속에는 황부자의 하나뿐인 귀한 외동딸, 꽃다운 열여덟에 지독한 열병으로 숨을 거둔 연화가 싸늘하게 식은 주검이 되어 누워 있었습니다. 비록 차갑고 두꺼운 나무 널빤지가 두 사람의 사이를 무정하게 막고 있었지만, 도깨비 신랑의 애틋하고도 깊은 눈빛은 이미 그 단단한 관을 꿰뚫고 들어가 그 안의 가여운 신부를 향해 고스란히 닿아있는 듯했습니다.
"나의 유일한 신부 연화야. 네가 태어나 처음 울음을 터뜨리던 해부터 줄곧 산꼭대기의 어둠 속에서 너의 어여쁘게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네가 마당을 뛰어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바람을 불어 부드러운 나뭇잎으로 상처를 덮어주었고, 네가 활짝 핀 꽃을 보고 예쁘게 웃을 때면 산에 흐르는 가장 맑은 이슬을 모아 네 발밑에 뿌려주었지. 십일 년 전 내가 너의 끊어지는 숨을 연장해 준 그 순간부터, 나의 멈춰있던 영혼은 이미 온전히 너와 함께 뛰고 있었다."
도깨비 신랑의 낮고 묵직한 울림이 있는 목소리가 적막하고 차가운 마당을 한없이 부드럽게 채워나갔습니다. 툇마루 구석에 엎드린 채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황부자와 늙은 마름은, 처음 요괴를 마주했을 때의 무섭고 두려운 마음도 모두 잊은 채 그 애절하고도 진심 어린 도깨비의 고백에 숨을 죽이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귀를 기울였습니다.
"인간의 수명이란 참으로 부질없고 덧없는 바람과 같아, 너의 찬란해야 할 시간은 안타깝게도 여기 차가운 관 속에서 멈추어 버렸구나. 하지만 도깨비가 한 번 맺은 맹세와 약조는 삶과 죽음의 아득한 경계를 가뿐히 뛰어넘는 법. 비록 네가 지금 숨이 멎고 차가운 나무 관 속에 시체가 되어 누워있을지라도, 오늘 밤 너는 이 도깨비의 영원하고도 유일무이한 완벽한 신부가 될 것이다."
도깨비 신랑은 두 손을 공손하고 단정하게 모아 가슴 앞에 모으고는, 붉은 관을 향해 아주 깊고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혼례의 첫 번째 절을 올렸습니다. 신랑이 예를 갖춰 허리를 푹 숙이자, 마당을 핑핑 빙빙 돌고 있던 수십 개의 푸른 도깨비불들이 일제히 약속이나 한 듯 허공에서 딱 멈춰 섰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기이하고 소름이 쫙 돋는 놀라운 일이 두 사람의 눈앞에서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도깨비불 중 유독 크고 밝은 빛을 내는 불꽃 하나가 휙 하고 빙그르르 돌더니, 혼례상 한구석에 고이 접혀 놓여있던 붉은 신부의 절수건(혼례 때 신부가 두 손을 가리는 천)을 입에 문 듯 허공으로 번쩍 들어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 붉은 천이 마치 보이지 않는 투명한 신부가 양손으로 다소곳이 쥐고 있는 것처럼, 관 바로 앞 허공에서 스르륵 둥글게 접히며 신랑의 절에 정중하게 화답하듯 아래로 푹 숙여지는 모양을 완벽하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관 속에 누운 죽은 자는 결코 살아서 움직일 수 없음에도, 짐승 같은 도깨비들의 영험한 조화로 인해 눈에 보이지 않는 혼령의 맞절이 너무도 완벽하고도 우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형국이었습니다.
황부자는 그 기막히고도 신비로운 광경을 붉어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며, 요물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가슴 벅찬 먹먹함과 경외감에 휩싸여 소리 없이 뜨거운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아아… 내 가엾은 딸 연화가 춥고 배고픈 몽달귀신이나 원귀가 되지 않고, 저리도 훌륭하고 고귀한 기품을 가진 도깨비를 낭군으로 맞이하여 번듯한 혼례를 치르고 있구나. 내 비록 딸의 얼굴을 다시 보지는 못할지라도 이제 당장 죽어 저승에 가도 여한이 없다.'
도깨비 신랑이 정중하게 두 번째 절을 마치고, 마지막 세 번째 절을 올리기 위해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반듯하게 선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끼기기기긱— 콰득!"
팽팽한 긴장감으로 마당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던 정적을 깨고, 무언가 날카롭고 소름 끼치는 굵은 나무판자가 찢어지고 갈라지는 소리가 허공을 예리하게 찢고 울려 퍼졌습니다. 그 끔찍한 소리의 진원지는 바로, 단단하게 쇠 대못이 박혀 굳게 닫혀 있던 연화의 붉은 옻칠 관이었습니다. 놀란 황부자와 마름이 기겁을 하며 고개를 번쩍 드는 순간,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끔찍하고도 경이로운 광경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습니다.
관 뚜껑을 단단히 고정하고 있던 손가락 굵기의 쇠못들이 마치 살아있는 꿈틀거리는 벌레처럼 삐그덕 소리를 내며 스르륵 위로 솟구쳐 빠져나가더니, 이내 흙바닥으로 툭! 투둑! 무겁게 튕겨 나갔습니다. 그리고 육중하고 거대한 붉은 관 뚜껑이, 누군가 안에서 천천히 힘을 주어 밀어내기라도 하듯 조금씩, 조금씩 옆으로 스르르 미끄러지며 소름 끼치는 마찰음과 함께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히… 히익! 과, 관이! 굳게 닫힌 관 뚜껑이 열린다! 시, 시체가 나온다!"
늙은 마름이 그 자리에 거품을 물고 기절할 듯 비명을 질렀지만, 도깨비 신랑은 조금도 놀라거나 동요하지 않은 채 그저 흔들림 없는 맑은 눈빛으로 천천히 열리는 관 속의 칠흑 같은 어둠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육중한 뚜껑이 절반쯤 열리며 관 속의 짙은 어둠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그 안에서 차갑게 식어 뻣뻣하게 굳어 있어야 할 연화의 가녀리고 하얀 손이 불쑥 튀어나와 관통의 가장자리를 꽉 움켜쥐었습니다. 죽은 시체가 제 힘으로 관을 부수고 나오는 전대미문의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광경 앞에서도, 푸른 도깨비불들은 마치 경사스러운 축제라도 벌이듯 더욱 격렬하고 찬란하게 허공을 춤추며 일렁이기 시작했습니다.
※ 6: 생기를 되찾은 딸과 도깨비 사위가 남긴 황금빛 기적의 결말
끼기긱 소리를 내며 스르르 열린 붉은 관 뚜껑의 좁은 틈 사이로, 죽은 지 벌써 나흘이나 지나 싸늘하게 굳어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아야 할 연화가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상체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녀의 가녀린 몸을 감싸고 있던 염을 한 하얀 소복 위로, 마당을 가득 채운 푸른 도깨비불의 신비로운 빛무리가 은은하게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습니다. 놀랍게도 그녀의 얼굴은 시체의 창백하고 흉측한 검푸른 빛이 아니었습니다. 얼음장 같았던 두 뺨에는 봄꽃이 핀 듯 발그레하고 따뜻한 핏기가 가득 돌고 있었고, 굳게 감겨 도무지 열릴 기미가 없던 두 눈은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맑고 생기 넘치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온전히 드러내며 번쩍 뜨였습니다.
"어… 어찌 된 일이지… 아버지… 제가 왜 방이 아니라 이 답답하고 무서운 나무통 속에 누워있는 겝니까…."
지독한 열병으로 숨이 멎기 직전, 밭은숨을 내쉬며 죽어가는 모기 소리 같았던 연화의 목소리가 십일 년 전처럼 거짓말같이 맑고 또랑또랑하게 마당을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죽었던 딸이 굳게 닫힌 관을 뚫고 일어나 멀쩡하게 말을 하다니! 황부자는 자신의 두 눈과 귀를 도무지 믿을 수 없어 그 자리에 돌부처처럼 굳어버린 채, 덜덜 떨리는 입술만 바보처럼 달싹였습니다.
"여, 연화야! 내 딸 연화야! 정녕 네가, 멈췄던 숨을 쉬고 네가 진정으로 살아난 것이냐! 이, 이게 천국의 꿈이냐 이승의 생시냐!"
황부자가 미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허둥지둥 달려가 관 속에서 빠져나온 딸을 부서져라 덥석 끌어안았습니다. 죽은 시체의 서늘한 얼음장 같아야 할 딸의 몸에서는 너무도 따뜻하고 훈훈한 사람의 체온이 느껴졌고, 그녀의 가슴 한가운데서는 생명을 알리는 심장이 콩닥콩닥 힘차게 뛰고 있었습니다. 황부자는 죽었던 딸이 완벽하게 생기를 되찾아 살아 돌아온 기적 같은 이 현실 앞에, 자신의 이마를 마당 흙바닥에 거칠게 찧으며 짐승처럼 오열했습니다.
그 경이롭고도 벅찬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던 도깨비 신랑의 입가에 몹시도 부드럽고 자비로운 미소가 아스라이 번졌습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장인어른. 제가 치르고자 했던 이 혼례의 마지막 관문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영혼이 맺어지는 과정이었습니다. 십일 년 전 폭우 속에서 제가 그녀의 수명을 잠시 늦추며 약조했던 그 무거운 대가는, 그녀의 영혼을 강제로 취하여 제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저의 넘쳐나는 맑은 도깨비의 기운 중 절반을 나의 가여운 신부에게 온전히 나누어주어 인간으로서의 멈춰버린 명줄을 다시 강하게 이어주는 숭고한 의식이었습니다."
황부자는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엉망인 얼굴을 번쩍 들고 도깨비 신랑을 멍하니 올려다보았습니다. 도깨비 신랑은 붉은 관에서 걸어 나온 자신의 신부 연화에게 다가가, 자신의 크고 따뜻한 손으로 그녀의 가녀린 손을 아주 소중하게 꽉 맞잡았습니다. 연화 역시 요물을 마주했다며 무서워하거나 피하지 않고, 마치 태어날 때부터 억겁의 세월을 뛰어넘어 알고 있었던 운명의 낭군을 마주한 듯 수줍고도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훤칠한 신랑의 맑은 눈을 깊게 마주 보았습니다.
"연화야, 나의 단 하나뿐인 영원한 신부야. 비록 나는 사람과 섞일 수 없는 산속의 짙은 어둠에 속한 요물이지만, 내 안의 가장 맑고 순수하며 강력한 도깨비의 생명 기운을 오늘 밤 네게 모두 불어넣어 주었다. 이제 너는 더 이상 열여덟을 넘기지 못할 짧은 단명의 슬픈 사주가 아니다. 인간 세상 이승에서 부디 잔병치레 하나 없이 건강하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눈부신 꽃으로 오래오래 피어나 살아가 다오. 그것이 내가 십일 년을 산속에서 너를 기다려온 진정한 이유이자, 오늘 밤 이승에서의 혼례가 주는 마지막 선물이자 나의 축복이다."
도깨비 신랑이 맞잡았던 손을 아쉽게 놓으며 뒤로 한 걸음 천천히 물러섰습니다. 그와 동시에 마당을 빈틈없이 가득 채우고 있던 수십 개의 푸른 도깨비불들이 일제히 굉음을 내며 하나로 거대하게 뭉쳐지더니, 눈이 멀 것 같이 찬란하고 거대한 황금빛 불기둥으로 변해 칠흑 같은 밤하늘로 장엄하게 솟구쳐 올랐습니다.
"장인어른, 나는 이제 혼례를 무사히 마쳤으니 내 본래의 자리인 산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인간과 도깨비는 본디 서로 섞여 끝내 곁에서 함께 살 수는 없는 법이니 말입니다. 허나, 내 눈부신 신부를 잘 부탁합니다. 부디 이 아이가 두 번 다시 눈물 흘리는 일 없이, 평생 배불리 먹고 환하게 웃을 수 있도록 곁에서 바위처럼 든든하게 지켜주십시오."
"사위… 아니, 자비로우신 산의 주인이신 도깨비 어르신! 이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크나큰 은혜, 제 딸의 죽은 목숨을 되살려주신 이 기적 같은 은혜를 비루한 제가 어찌 다 갚는단 말입니까! 제 목숨이 다하여 저승에 가서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황부자가 땅바닥에 엎드려 뼈가 부서지도록 큰절을 올리자, 도깨비 신랑은 껄껄껄 호탕하고 기분 좋은 웃음을 크게 터뜨렸습니다. 그 맑은 웃음소리는 시원하고 청량한 바람이 되어 황부자의 집 안팎에 맴돌던 모든 흉흉하고 음산한 기운을 거짓말처럼 깨끗이 씻어내 버렸습니다.
"은혜라니요, 장인어른. 제가 오히려 더 크게 감사합니다. 식솔들이 모두 떠나 텅 빈 이 넓은 마당을 지키며, 저를 사위로 깎듯이 맞아주신 그 담대하고 훌륭한 정성에 보답하고자, 약소하지만 제가 사위로서 바치는 혼수 예단을 마당에 두고 가겠습니다. 부디 요긴하게 쓰십시오."
도깨비 신랑은 한 줄기 바람처럼 몸을 돌려 하늘로 솟구친 황금빛 불기둥 속으로 스르륵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산을 뒤흔들던 북소리와 징소리도 거짓말처럼 뚝 끊기고, 구름이 걷힌 그믐밤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침묵만이 마당에 부드럽게 내려앉았습니다.
다음 날 날이 밝아 눈부신 아침 해가 떠오르자, 황부자와 연화는 도깨비 사위가 남기고 간 기막힌 흔적을 보고 다시 한번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텅 비어있던 기와집 넓은 마당 한가운데에는, 세상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최고급 명나라 비단 더미와 눈이 부시게 번쩍이는 순금 덩어리들이 산더미처럼 수북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도깨비의 신비로운 조화로 만들어진 어마어마한 부의 혼수 예단이자 영원한 축복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열병으로 죽었던 황부자의 외동딸이 도깨비 사위의 기적 같은 힘으로 다시 살아났다는 놀라운 이야기가 바람을 타고 퍼지자, 귀신에 홀려 야반도주를 했던 마을 사람들은 짐을 들고 민망함에 머리를 긁적이며 하나둘 마을로 뻘쭘하게 돌아왔습니다. 황부자는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고, 도깨비 사위가 남기고 간 막대한 황금과 비단을 마을 사람들에게 넉넉하게 나누어주며 선행을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한 번 죽었다 살아난 딸 연화는 도깨비의 영험한 기운을 받은 덕분에 평생을 가벼운 병치레 한 번 없이, 마을에서 가장 건강하고 어여쁜 여인으로 백 살이 넘도록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다만, 달이 뜨지 않는 캄캄한 그믐밤이 찾아올 때마다, 연화는 홀로 마당에 나가 거대한 뒷산을 향해 조용히 뺨을 붉히고 미소 지으며 따뜻한 인사를 건넸다고 합니다. 자신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어 주고 떠난, 얼굴도 마음도 눈부시게 잘생겼던 그 훤칠하고 고귀한 도깨비 신랑을 평생 영원히 가슴에 품은 채 말입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구독자 여러분, 오늘 전해드린 기묘한 도깨비 신랑 이야기 어떠셨나요? 끔찍한 저주인 줄 알았던 요물과의 사후혼이, 사실은 십일 년 전의 약속을 지키고 딸을 되살려준 도깨비의 엄청난 축복이었다니! 무서운 겉모습과 흉흉한 소문 뒤에 숨겨진 도깨비의 따뜻한 순정이 참으로 뭉클하고 훈훈하지 않습니까. 두려움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딸의 곁을 지킨 아비의 정성도 기적을 만든 열쇠였겠지요. 오늘 이야기가 재미있고 감동적이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꾹 눌러주시고, 다음에도 여러분의 밤을 신비롭게 채워줄 옛날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편안한 밤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