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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벼락 맞아보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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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일확천금! 여기 찢어지게 가난하여 처자식을 굶기다 못해, 목숨을 걸고 도깨비 소굴로 제 발로 찾아간 간 큰 선비가 있습니다. "내 목숨을 걸 테니, 이기면 금은보화를 다오!" 기상천외한 내기 끝에 얻어낸 엄청난 돈벼락. 그런데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했던가요? 도깨비가 요구한 기가 막힌 대가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배꼽 빠지게 재미있는 김 선비의 도깨비 내기 한판,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 1: 처자식의 굶주림 앞에 선비의 체면을 버리고 도깨비 산으로 향하는 김 선비
조선 팔도에서 가난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곳이 바로 김 선비의 집이었습니다. 대문은 비바람에 삭아 문짝이 떨어져 나간 지 오래였고,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하여 발 디딜 틈조차 없었습니다. 지붕의 이엉은 다 썩어문드러져 비가 오는 날이면 방 안으로 빗물이 줄줄 새어 들어와 방구석에 물이 고일 지경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김 선비의 가슴을 후벼 파는 것은 바로 부엌 사정이었습니다. 쌀독에 거미줄을 친 지는 벌써 달포가 넘었고, 끼니때마다 이웃집에서 간신히 얻어온 시래기로 죽을 쑤어 먹는 것도 이제는 바닥이 나버렸습니다. 평생을 공자 왈 맹자 왈, 꼿꼿하게 선비의 체면만을 중시하며 책만 파고들었던 김 선비였지만, 굶주림 앞에서는 그 알량한 체면도 아무짝에 쓸모없는 휴지 조각에 불과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저녁, 며칠째 맹물로만 배를 채우던 어린 자식들이 결국 굶주림에 지쳐 방구석에 쓰러져 울다 지쳐 잠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다 해진 무명 치맛자락으로 연신 눈물을 훔치며 텅 빈 부엌 아궁이 앞을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그 처참한 광경을 지켜보던 김 선비는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습니다.
'아아, 내 이리도 무능한 사내였단 말인가. 알량한 글공부가 내 처자식 입에 쌀알 하나 넣어주지 못하는데, 선비라는 허울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대로 가다가는 올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내 가족이 모두 굶어 죽고 말 것이다. 무슨 수를 내서라도, 내 목숨을 팔아서라도 처자식 배는 불려야 하지 않겠는가.'
김 선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의 뇌리에 번뜩하고 스쳐 지나간 것은, 마을 뒤편에 병풍처럼 솟아 있는 음산하고 거대한 검은 산이었습니다. 그 산 깊은 골짜기에는 오래전부터 수백 년 묵은 도깨비들이 떼를 지어 살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밤마다 시퍼런 도깨비불이 산등성이를 춤추듯 날아다니고, 사람고기를 잡아먹는다는 흉흉한 소문 때문에 대낮에도 나무꾼들조차 얼씬하지 않는 저주받은 금기의 구역이었습니다. 하지만 김 선비의 눈에는 굶어 죽어가는 자식들의 창백한 얼굴만이 아른거렸기에, 도깨비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부인, 내 잠시 산에 다녀오리다. 오늘 밤이 지나기 전에는 반드시 쌀 한 가마니라도 구해서 내려올 테니, 아이들을 품고 몸을 녹이고 있으시오."
"아니, 영감! 이 야심한 밤에 그 무서운 뒷산에는 어찌 가신단 말씀입니까! 행여나 산짐승이라도 만나면 어쩌시려고요. 차라리 제가 내일 아랫마을 부잣집에 가서 삯바느질이라도 하겠사오니 제발 가지 마십시오!"
아내가 혼비백산하여 김 선비의 소맷자락을 붙잡고 매달렸지만, 김 선비는 단호하게 아내의 손을 떼어냈습니다.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쌀을 구해올 것이오. 날 말리지 마시오."
김 선비는 그 길로 곧장 낡은 짚신을 고쳐 신고, 손에는 산길을 헤칠 굵은 물푸레나무 지팡이 하나만을 덜렁 쥔 채 칠흑같이 어두운 밤길을 나섰습니다. 칼바람이 매섭게 뺨을 때리고, 이름 모를 산짐승들의 기괴한 울음소리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지만,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산의 중턱을 넘어설 무렵부터는 짙은 안개가 사방을 뒤덮었고, 발밑으로는 썩은 낙엽과 짐승의 뼈다귀들이 부서지는 소리가 불길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그럴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듯 요동쳤지만, 김 선비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내 자식들이 굶어 죽어간다. 도깨비가 무서우랴, 가난이 무서우랴. 도깨비에게 잡아먹히는 한이 있더라도, 그놈들 소굴에 쌓여있다는 금은보화를 한 줌이라도 쥐고 죽을 것이다.'
한참을 헉헉거리며 가파른 산길을 오르던 김 선비의 눈앞에, 마침내 짙은 안개를 뚫고 섬뜩할 정도로 시퍼런 빛줄기들이 아른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소문으로만 듣던 도깨비불이었습니다. 그 불빛들을 따라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자, 거대한 바위산 아래에 뻥 뚫린 거대한 동굴 입구가 나타났습니다. 동굴 안에서는 시끌벅적한 잔치가 열린 듯, 기괴한 북소리와 쇳소리, 그리고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듯한 끔찍한 웃음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김 선비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도깨비 소굴을 향해 무거운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 2: 음산한 도깨비 소굴로의 잠입과 기괴한 도깨비 두목과의 대면
김 선비가 조심스레 발을 들여놓은 도깨비 동굴 안은 그야말로 이승의 풍경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기괴하고도 압도적인 지옥도 그 자체였습니다. 천장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동굴 내부에는 수백 개의 시퍼런 도깨비불들이 허공을 빙빙 맴돌며 섬뜩한 빛을 뿌리고 있었고, 바닥에는 은빛으로 번쩍이는 사람의 해골과 온갖 짐승의 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는 눈이 하나 달린 놈, 다리가 셋인 놈, 온몸이 붉은 털로 뒤덮인 놈 등 기상천외하고 흉측한 몰골을 한 도깨비 수십 마리가 독한 수수술을 퍼마시며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엿보던 김 선비는 온몸의 털이 쭈뼛 서고 오금이 저려 당장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았지만, 간신히 지팡이에 체중을 의지하며 버텼습니다. 동굴의 가장 깊숙한 상석에는 다른 도깨비들보다 몸집이 세 배는 거대하고, 머리에 뿔이 두 개나 솟아있으며, 한 손에는 뾰족한 무쇠 방망이를 든 도깨비 두목이 호랑이 가죽을 깔고 앉아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부하들을 호령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목의 발밑에는, 세상의 모든 부를 끌어모은 듯 번쩍이는 황금괴와 영롱한 빛을 발하는 진주, 산호초 등 온갖 금은보화가 산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그 금은보화를 본 순간, 김 선비의 흐려지던 눈동자에 번쩍하고 생기가 돌았습니다.
'저것이다! 저 황금 덩어리 하나만 있으면 우리 가족이 평생 쌀밥에 고깃국을 먹으며 떵떵거리고 살 수 있다! 어차피 굶어 죽으나 도깨비에게 먹혀 죽으나 매한가지. 사내대장부로 태어나 이판사판 공사판이다!'
김 선비는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크게 심호흡을 한 뒤,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당당한 걸음걸이로 도깨비들이 춤추는 동굴 한가운데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습니다. 살아있는 인간의 냄새를 맡은 도깨비들이 일제히 춤을 멈추고 흉측한 눈을 번뜩이며 김 선비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습니다. 순식간에 동굴 안은 쥐 죽은 듯한 적막과 함께 팽팽한 살기로 가득 찼습니다.
"크하하하하! 이게 무슨 냄새냐! 야심한 밤에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싱싱한 인간 고기가 아니냐!"
"얼씨구? 저 비쩍 마른 꼴 좀 보소! 뼈밖에 없어서 씹어먹을 살점이나 있겠느냐!"
도깨비들이 입맛을 다시며 김 선비를 겹겹이 에워쌌습니다. 하지만 김 선비는 조금도 기죽지 않고 헛기침을 흠흠 하며 도깨비 두목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습니다. 도깨비 두목이 무쇠 방망이를 바닥에 쿵! 내리치며 호통을 쳤습니다.
"네 이놈!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감히 인간의 몸으로 이 신성한 도깨비 소굴에 발을 들이단 말이냐! 당장 내 부하들의 야식거리로 씹어먹히기 전에 네놈의 정체를 밝혀라!"
김 선비는 턱을 치켜들고 태연하게 대꾸했습니다.
"나는 아랫마을에 사는 김 선비라는 사람이다. 밤낮으로 책만 파느라 세상 돌아가는 꼴은 몰라도, 머리에 든 지혜만큼은 조선 팔도에서 날 따라올 자가 없지. 내 듣자 하니 너희 도깨비들이 힘은 장사여도 머리는 텅텅 비어 내기를 좋아한다고 하기에, 내 특별히 너희 두목과 기막힌 내기를 한판 벌이러 친히 찾아왔다!"
도깨비 두목의 눈이 호기심으로 커다랗게 뜨였습니다.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인간을 잡아먹었지만, 이렇게 겁 없이 당당하게 내기를 제안하는 인간은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내기라? 크하하하! 좋다, 인간 놈아. 네놈이 목숨이 두 개인 모양이로구나. 내 기꺼이 네놈의 내기를 받아주마. 허나, 우리 도깨비들과의 내기에서는 반드시 무언가를 걸어야 하는 법. 네놈은 무엇을 걸 테냐?"
김 선비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가슴을 팡팡 치며 소리쳤습니다.
"나는 내 하나뿐인 귀한 목숨을 걸겠다! 내가 만약 내기에서 진다면, 너희들이 나를 끓여 먹든 구워 먹든 마음대로 하여라! 하지만, 만약 내가 이긴다면…"
김 선비는 손을 뻗어 두목의 발밑에 쌓인 엄청난 보물 더미를 정확히 가리켰습니다.
"내가 이긴다면, 저기 쌓여있는 금은보화를 내가 가져온 자루에 가득 채워 집으로 가져가게 해다오! 어떠냐, 천하의 도깨비 두목이 인간과의 내기가 두려워 피할 셈이냐?"
두목은 김 선비의 도발에 자존심이 상한 듯 콧김을 씩씩 뿜어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건방진 인간 놈! 좋아, 네놈의 그 알량한 목숨과 내 금은보화를 걸고 당장 내기를 시작하자! 어떤 내기를 원하느냐! 힘겨루기냐, 술 마시기냐!"
"나는 무식하게 힘이나 쓰는 내기는 하지 않는다. 지혜를 겨루는 수수께끼 내기를 하자꾸나. 내가 문제를 낼 테니 네가 맞혀 보거라. 만약 네가 세 번 안에 맞히지 못하면 나의 승리다!"
동굴 안의 도깨비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지혜를 우습게 여긴 두목은 호탕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목숨과 벼락부자의 운명이 걸린, 조선 팔도 역사상 가장 기상천외하고 위험천만한 도깨비와의 수수께끼 내기 한판이 막을 올리려는 순간이었습니다.
※ 3: 목숨과 금은보화를 건 기상천외한 수수께끼 내기 한판
동굴 안을 채우고 있던 기괴한 악기 소리들이 일제히 멈추고, 수십 마리의 도깨비들이 숨을 죽인 채 두목과 김 선비의 수수께끼 대결을 지켜보기 위해 빙 둘러앉았습니다. 시퍼런 도깨비불들이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모여들어 팽팽한 긴장감을 한층 더 끌어올렸습니다. 김 선비의 등줄기로는 식은땀이 한 줄기 주르륵 흘러내렸지만, 겉으로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평온한 선비의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두목 도깨비가 육중한 몸을 흔들며 방망이를 어깨에 걸치고 거드름을 피웠습니다.
"자, 인간 놈아! 어서 문제를 내보거라! 내가 이 산에서만 수백 년을 살며 온갖 세상 이치를 다 깨우친 몸이다. 네놈의 그 얄팍한 수수께끼 따위는 단숨에 맞혀주고 뼈째로 씹어먹어 주마!"
김 선비는 잠시 눈을 감고 머리를 굴렸습니다. 어설픈 수수께끼를 냈다가는 단박에 목이 달아날 것이 뻔했습니다. 도깨비들이 산속에 갇혀 살아 이승의 인간들 삶을 깊이 알지 못한다는 점을 이용해야만 했습니다. 김 선비는 눈을 번쩍 뜨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첫 번째 수수께끼를 냈습니다.
"좋다, 잘 들어라. 아침에는 네 발로 걷고, 점심에는 두 발로 걷고,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짐승이 있다. 이 짐승의 이름이 무엇인지 맞혀 보거라!"
두목 도깨비는 문제를 듣자마자 눈을 끔벅이며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옆에 있던 부하 도깨비들도 머리를 긁적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네 발? 저녁에 세 발? 이 산속에 그런 괴상한 짐승이 살았던가?"
"두목님, 아마도 머리가 두 개 달린 멧돼지가 아닐런지요?"
두목은 부하들을 조용히 시키고는 한참을 끙끙대며 고민했습니다. 도깨비들은 힘은 장사였지만 복잡한 비유나 인간의 생로병사를 이해하는 지혜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한참 뜸을 들이던 두목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으음… 혹시 다리가 다쳐서 쩔뚝거리는 곰탱이가 아니냐?"
김 선비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껄껄 웃었습니다.
"틀렸다! 정답은 바로 '사람'이다! 아침, 즉 어릴 때는 네 발로 기어 다니고, 점심인 청년기에는 두 발로 꼿꼿이 걸으며, 저녁인 노년기에는 지팡이를 짚고 세 발로 걷지 않느냐. 천하의 도깨비 두목이 사람에 대한 것도 모르다니 참으로 우습구나!"
도깨비들은 그 기막힌 해석에 무릎을 탁 치며 놀라워했고, 자존심이 상한 두목은 씩씩거리며 콧김을 뿜었습니다.
"크으으! 요망한 인간 놈! 말장난에 불과하다! 어서 두 번째 문제를 내어라! 이번에는 기필코 맞혀 네놈의 목통을 물어뜯을 것이다!"
김 선비는 속으로 한숨을 돌리며 다시 두뇌를 풀가동했습니다. 이번에는 시각적이고도 엉뚱한 문제를 내어 헷갈리게 만들 작정이었습니다.
"좋다, 두 번째 문제다. 살아서는 입이 없어서 말을 못 하다가, 죽어서야 비로소 입이 생겨 말을 하는 것이 있다. 이것은 무엇이냐!"
두목은 이번에는 팔짱을 끼고 눈을 부릅뜬 채 고민에 빠졌습니다. 살아서 입이 없는데 죽어서 입이 생긴다니, 도깨비의 단순한 논리로는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살아서 입이 없다? 죽어서 말을 한다? 혹시 말라 죽은 지렁이냐? 아니면 불에 타 죽은 나무토막이냐?"
두목이 아무리 엉뚱한 정답을 대며 발악을 해도, 김 선비는 여유롭게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틀렸다, 또 틀렸어! 정답은 바로 '항아리'다! 흙으로 빚어 가마에 굽기 전, 즉 흙이 살아있을 때는 입구가 없지만, 불에 구워져 딱딱하게 죽은 뒤에는 아가리(입)가 생겨 속이 텅 비었다고 웅웅 소리를 내지 않느냐!"
연거푸 두 번이나 수수께끼를 틀리자 도깨비 무리 사이에서 실망스러운 탄식이 흘러나왔고, 두목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이런 젠장할! 인간 놈이 자꾸 요상한 말장난만 치는구나! 좋다, 마지막 한 번의 기회가 남았다. 이번에도 틀린다면 내 패배를 인정하고 저기 쌓인 보물을 다 주마. 자, 어서 마지막 문제를 내보아라!"
목숨과 금은보화가 걸린 마지막 한 판. 김 선비는 심호흡을 크게 한 뒤, 굶주린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가장 어렵고도 직관적인 마지막 수수께끼를 던졌습니다.
"마지막 문제다. 눈은 눈인데 볼 수 없는 눈이 있고, 비는 비인데 맞지 않는 비가 있다. 이것은 무엇이냐!"
두목 도깨비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방방 뛰기 시작했습니다. 눈인데 볼 수 없고 비인데 맞지 않는다니. 동굴 안의 모든 도깨비가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했지만, 아무도 정답을 유추해내지 못했습니다. 결국 두목은 분통을 터뜨리며 방망이를 바닥에 집어 던졌습니다.
"크아아악! 도저히 모르겠다! 눈인데 어찌 못 보고, 비인데 어찌 맞지 않는단 말이냐! 내가 졌다! 정답이 대체 무엇이냐!"
김 선비는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진정시키며 승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정답은 바로 목재에 난 '옹이눈'과, 바닥을 쓰는 '빗자루'다! 천하의 도깨비 두목이 인간의 지혜 앞에 결국 무릎을 꿇었구나!"
※ 4: 내기에서 승리하여 돈벼락을 맞고 금의환향한 김 선비
"으아아악! 분하다, 분해! 내가 저렇게 비쩍 마르고 알량한 인간 놈의 간교한 말장난에 완벽하게 속아 넘어가 내기에서 지다니!"
도깨비 두목은 자신이 수수께끼 내기에서 무참하게 패배했다는 사실에 극도의 분통을 터뜨리며, 짐승처럼 바닥을 뒹굴고 귀가 찢어질 듯한 소리를 꽥꽥 질러댔습니다. 거대한 동굴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그 압도적인 고함소리에, 바닥에 산처럼 쌓여있던 뼈와 해골 무더기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동굴 천장에서 돌가루가 떨어져 내릴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겉모습이 흉측하고 장난기가 심할망정, 신성한 산도깨비들은 본디 이승의 인간들처럼 비겁하게 거짓말을 하지 못하고 자신이 입 밖으로 뱉은 약속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끝까지 지키는 기이하고도 순진한 구석이 있는 족속들이었습니다. 두목은 한참을 씩씩거리며 뿔로 벽을 들이박는 등 분풀이를 하다가, 이내 자신의 패배를 깨끗이 포기한 듯 아주 깊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쿵 소리가 나게 주저앉았습니다.
"크흠! 알겠다, 머리 좋은 인간 놈아. 우리 산도깨비는 너희 교활한 인간들처럼 비겁하게 약조를 어기거나 야비하게 뒤통수를 치는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 내가 내기에서 완벽히 졌으니, 약속대로 저기 내 발밑에 쌓인 귀한 보물들을 네가 직접 가져온 저 커다란 자루에 마음껏 꽉꽉 채워 무사히 돌아가거라. 내 오늘 밤, 네놈의 그 건방진 목을 베어 피를 마시지 않고 살려 보내주는 것만으로도 평생 감사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
도깨비 두목의 그 허락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꼿꼿하게 양반의 체면을 지키며 서 있던 김 선비는 마치 며칠을 굶주린 들짐승처럼 선비의 알량한 체면이고 양반의 자존심이고 다 내팽개친 채 눈이 번쩍 뒤집혀 보물 더미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갔습니다. 그는 품속 깊은 곳에 꼬깃꼬깃 접어 비장하게 숨겨왔던 거대한 무명 자루를 홱 꺼내어 바닥에 쫙 펼쳤습니다. 그리고는 허겁지겁, 숨을 헐떡이며 손에 잡히는 대로 어른 주먹보다 큰 시퍼런 황금 덩어리와 어둠 속에서도 영롱하게 빛나는 진주, 그리고 눈이 부신 무거운 은괴들을 자루 속으로 정신없이 마구 쑤셔 넣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고, 참으로 감사합니다! 대대손손 잊지 않고 감사합니다, 두목님! 이 귀한 황금 덩어리들이면 며칠째 굶고 있는 우리 불쌍한 처자식이 배 터지게 하얀 쌀밥을 먹고도 남겠습니다요!"
김 선비는 감격에 겨워 뚝뚝 흐르는 눈물을 질금질금 흘리며, 무명 자루가 터질 정도로 발로 꾹꾹 밟아가며 금은보화를 악착같이 채워 넣었습니다. 더 이상 들어갈 틈조차 없이 묵직해진 자루를 끙끙거리며 어깨에 힘겹게 짊어진 김 선비는, 마지막으로 자신을 살려준 두목 도깨비와 험상궂은 부하들을 향해 마룻바닥에 엎드려 넙죽 큰절을 올렸습니다. 도깨비들은 입맛을 쩝쩝 다시며 몹시도 아쉬운 듯 굶주린 눈빛으로 그를 살벌하게 노려보았지만, 내기의 엄격한 규칙 때문에 아무도 감히 그를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럼 소인은 이만 춥고 배고픈 처자식이 기다리는 집으로 물러가겠습니다! 내기에서 호탕하게 져 주셔서 진심으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김 선비는 등 뒤통수에 날카롭게 꽂히는 도깨비들의 따가운 살기를 뒤로한 채, 무거운 보물 자루를 짊어지고 마치 깃털처럼 날아갈 듯한 가벼운 발걸음으로 도깨비 소굴을 부리나케 빠져나왔습니다. 칠흑 같은 산을 내려오는 길, 여전히 살을 에이는 칼바람이 불고 눈발이 매섭게 날렸지만 그의 마음속은 이미 춘삼월의 따뜻한 봄날이었습니다. 등 뒤에서 어깨를 짓누르는 그 황금의 묵직한 무게감이 그의 찢어지게 가난했던 세상을 완벽하고도 눈부시게 뒤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새벽동이 푸르스름하게 틀 무렵, 다 썩어서 쓰러져가는 낡은 사립문을 열고 비틀거리며 들어선 김 선비의 모습에, 뜬눈으로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남편이 짐승에게 물려갔을까 걱정하던 아내는 버선발로 마당으로 뛰어나왔습니다.
"아이고, 영감! 하늘이 도우셨습니다! 무사히, 사지 멀쩡하게 살아 돌아오셨군요! 저는 영감이 그 무서운 산짐승이나 도깨비 요물에게 잡아먹힌 줄 알고 밤새 가슴을 치며 피눈물을 흘렸사옵니다!"
"허허, 부인! 이제 그만 눈물을 거두고 울지 마시오. 내가 어젯밤 그 무시무시한 도깨비 소굴에 제 발로 들어가 그 무식하고 거대한 놈들과 피 말리는 수수께끼 내기를 벌여 당당히 이기고, 내 이 엄청나고 눈부신 보물들을 싹쓸이해 왔소이다! 자, 이 자루 안을 두 눈 크게 뜨고 똑똑히 보시오!"
김 선비가 쿵! 소리와 함께 낡고 삐걱거리는 대청마루 위에 무거운 보물 자루를 내려놓고 입구를 훌렁 열어젖혔습니다. 아침의 찬란한 햇살을 받아 영롱하고 눈부시게 번쩍이는 산더미 같은 황금괴와 값비싼 진주들을 본 아내는, 너무 놀라 헉 소리를 내며 입을 쩍 벌린 채 마루 뒤로 벌렁 나자빠지고 말았습니다.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꾀죄죄하고 비쩍 마른 아이들도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와, 번쩍이는 황금들을 신기한 듯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만져보았습니다.
"여, 영감… 이것이 정녕, 정녕 모두 우리 것입니까? 이제 우리 식구들 맹물 안 마시고 안 굶어도 됩니까?"
"그렇고말고! 당장 눈물 닦으시오! 내가 오늘 당장 이 커다란 황금 한 덩어리를 들고 읍내 장터로 나가 제일 좋은 이천 쌀 열 가마니와 기름진 소고기, 그리고 당신과 아이들이 입을 최고급 비단옷을 사 오겠소. 이제부터 우리 김 선비 가족은 조선 팔도에서 제일가는 만석꾼으로 떵떵거리며 호의호식하며 살 것이오!"
김 선비의 호기로운 장담대로, 찢어지게 가난하여 굶기를 밥 먹듯 하던 그의 집안은 하루아침에 천지개벽할 엄청난 벼락부자가 되었습니다. 다 쓰러져가던 낡은 초가집은 당장 허물어버리고, 그 너른 자리에 고래등같이 으리으리하고 화려한 아흔아홉 칸짜리 큰 기와집을 보란 듯이 새로 지었습니다. 휑하던 마당에는 굽신거리는 수십 명의 하인과 노비들이 북적거렸고, 거대한 곳간에는 매년 쌀과 진귀한 재물이 썩어날 정도로 가득가득 쌓였습니다. 김 선비는 매일 최고급 비단옷을 겹겹이 껴입고 기름진 고기를 배 터지게 먹으며, 과거 자신을 무시하고 박대하던 양반들 앞에서 거드름을 피우고 호통을 치는 남부러울 것 없는 여유롭고 탐욕스러운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마치 자신이 목숨을 걸고 무서운 도깨비 산에 갔던 아찔한 일조차 까맣게 잊어버린 듯, 달콤하고 화려한 일확천금의 삶에 푹 빠져 지냈습니다.
※ 5: 만석꾼이 된 김 선비에게 찾아온 도깨비, 그리고 기가 막힌 청구서
그렇게 김 선비가 기적 같은 돈벼락을 맞아 세상 부러울 것 없이 떵떵거리며 호의호식하며 삼 년이라는 세월이 쏜살같이 무심하게 흘렀습니다. 삼 년 전 그 춥고 처절했던 눈보라 치던 겨울밤, 도깨비와 목숨을 걸고 살 떨리는 내기를 했던 끔찍한 기억은 이미 돈맛에 취해버린 그의 머릿속에서 아스라이 지워진 지 오래였습니다. 김 선비는 이제 선비의 덕목인 학문은 내팽개치고, 싼값에 아랫마을 땅까지 모조리 사들여 수백 명의 소작농을 거느리며 고혈을 짜내는 몹시도 탐욕스러운 대지주가 되어 있었습니다.
달이 유난히 밝고 기괴하게 빛나던 어느 늦은 가을밤이었습니다. 산해진미로 배불리 저녁을 먹고 따뜻하게 불을 지핀 온돌방에 누워 편안하게 코를 골며 단잠을 청하던 김 선비는, 갑자기 밖에서 들려오는 쿵! 쾅! 쿵! 하는 거대한 바위가 부서지는 듯한 엄청난 땅울림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습니다.
"아니, 이 야심하고 고요한 밤에 대체 밖에서 무슨 난리 치는 소란이란 말이냐! 여봐라! 마당에 게 아무도 없느냐! 문간방 하인 놈들은 다 어디 갔느냐!"
김 선비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호통을 치며 따뜻한 방의 문풍지 방문을 활짝 열어젖힌 순간, 그의 뛰던 심장이 발밑으로 쿵 하고 시퍼렇게 떨어지는 듯한 끔찍한 공포가 온몸을 엄습했습니다. 넓고 화려한 기와집 안마당에는 집을 지키던 수십 명의 하인들이 거품을 물고 모두 기절하여 널브러져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는 삼 년 전 산속 깊은 동굴에서 목숨을 걸고 만났던 바로 그 거대하고 흉측한 뿔 달린 도깨비 두목이, 시퍼런 도깨비불을 두른 채 끔찍한 무쇠 방망이를 어깨에 멘 채 서슬 퍼런 눈빛으로 그를 굽어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크하하하하! 참으로 오랜만이로구나, 요망하고 간교한 인간 놈아! 그동안 아주 팔자가 고무줄처럼 늘어져 세상 부러울 것 없이 떵떵거리며 배에 기름칠을 하고 살고 있었구나. 내 보물로, 내 돈으로 지어 올린 이 으리으리한 대궐 같은 집이 네놈 마음에 썩 들더냐?"
김 선비는 그 압도적인 공포와 살기에 다리에 힘이 완전히 풀려 그 자리에서 마룻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졌고, 혀가 돌처럼 굳어 말조차 제대로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도, 도, 도깨비 두목님… 어찌, 어찌 이리 누추한 제 집까지 친히 밤이슬을 맞고 왕림하셨나이까. 설마… 설마하니 삼 년 전 저와의 신성한 내기에서 진 것을 이제 와서 억지로 무르려고 뺏으러 오신 겁니까? 도, 도깨비는 약조를 반드시 지킨다고 명세하시지 않았습니까요!"
도깨비 두목은 기분 나쁘고 비릿한 웃음을 질질 흘리며 무거운 방망이로 마당 한구석에 놓인 커다란 장식용 바위를 단숨에 산산조각 내버렸습니다.
"내가 아무렴 너희 비겁하고 교활한 인간들처럼 뱉은 약조를 깰까 보냐. 내가 내기에서 완벽하게 져서 그 엄청난 보물을 내어준 것은 온전한 사실이다. 허나! 내가 네놈에게 그 보물들을 '영원히 거저 준다'고 내 입으로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그저 삼 년 전 그 밤, 네놈이 가져온 자루에 보물을 '잠시 담아가게 해 주었을 뿐'이다. 이 세상천지에, 하물며 우리 요물들 세계에도 공짜가 어디 있느냐! 네가 장장 삼 년 동안 내 귀한 황금으로 이자까지 두둑하게 불려가며 호의호식했으니, 이제 그 막대한 보물에 대한 정당하고도 피 말리는 '대가'를 치러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김 선비의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새하얘졌습니다. 보물을 거저 준 것이 아니라 잠시 빌려준 것이고, 이제 와서 무서운 대가를 치러야 한다니!
"대, 대가라굽쇼? 두목님께서 대체 무엇을 원하시는지 제게 말씀만 하십시오. 제가 당장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최고급 이천 쌀이든 살진 소고기든 당신이 원하는 만큼 수레에 수십 대를 가득 실어 산으로 올려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제 목숨만은 살려만 주십시오!"
도깨비 두목은 무섭고 시뻘건 눈을 번뜩이며 김 선비의 코앞까지 짐승처럼 다가와 낮고 섬뜩한 목소리로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어리석고 미련한 놈. 우리 고귀한 산도깨비들은 너희 미천한 인간들이나 먹는 쌀이나 소고기 따위는 쓰레기 취급도 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 당장 원하는 대가는 바로… 네놈과 피가 섞인 가장 가까운 피붙이의 '따뜻하고 달콤한 숨결'이다. 내 귀한 황금으로 가장 많이 배를 불리고 호사를 누린 자, 바로 방 안에서 자고 있는 네놈의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어린 아들의 영혼'을 데려가겠다! 내일 밤 자정이 되기 전까지 네 아들의 손을 잡고 산속 동굴로 올려보내라. 만약 이 무거운 약조를 어기거나 도망을 친다면, 이 집구석을 통째로 시뻘건 불바다로 만들고 네놈들의 뼈와 살을 씹어먹을 것이다!"
청천벽력보다 더 끔찍한 도깨비의 영혼 청구서에 김 선비는 심장이 멎을 듯한 엄청난 충격에 휩싸여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도깨비 두목은 거친 쇳소리와 끔찍한 비웃음을 남기며, 한 줄기 시퍼런 연기와 함께 칠흑 같은 밤하늘로 스르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남겨진 김 선비는 마당 한가운데서 가슴을 치며, 잃어버린 삼 년 전의 찢어지게 가난했던 밤을 떠올리며 처절하게 통곡했습니다.
'아아, 그 달콤했던 일확천금의 대가가 결국 내 귀한 자식의 피 묻은 목숨이었다니! 내가 미쳤지, 내가 단단히 미쳤었지! 무슨 부귀영화를 영원히 누리겠다고 감히 도깨비의 물건에 겁 없이 손을 대었단 말인가. 차라리 내 배가 터져 죽는 것이 낫지, 내 소중한 아들을 요물의 먹이로 바칠 수는 없다!'
다음 날, 김 선비의 집안은 하루아침에 곡소리가 진동하는 초상집처럼 처참한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아내는 그 자리에서 혼절을 거듭했고, 어린 아들은 영문도 모른 채 부모를 붙잡고 울기만 했습니다. 김 선비는 창고에 쌓인 금은보화와 쌀가마니를 모두 마당으로 끌어내어 바닥에 팽개쳤지만, 이미 엎질러진 독이 든 물이었습니다. 죽음의 카운트다운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고, 김 선비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어떻게든 아들을 살려낼 마지막 기막힌 묘수를 짜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방구석에서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습니다.
※ 6: 도깨비의 황당한 대가를 지혜롭게 갚으며 얻은 진짜 인생의 보물
피 말리는 운명의 자정이 서서히 가까워져 오자, 밖에는 하늘이 노한 듯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며 당장이라도 도깨비 무리가 들이닥쳐 집을 집어삼킬 듯 흉흉하고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김 선비는 공포에 벌벌 떠는 아내와 아들을 안방 가장 깊숙한 다락방에 꽁꽁 숨겨두고, 혼자서 칼바람을 맞으며 툇마루에 꼿꼿이 앉아 결연하고 비장한 표정으로 도깨비를 기다렸습니다. 그의 앞에는 삼 년 전 가져온 황금이 가득 담긴 커다란 자루와, 무언가가 덮인 커다란 항아리 하나가 마당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자정을 알리는 닭 울음소리가 마을 어귀에서 희미하게 들려오자마자, 어김없이 쾅! 하는 굉음과 함께 굳게 잠긴 대문이 박살 나며, 푸른 도깨비불을 섬뜩하게 앞세운 두목이 마당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습니다.
"시간이 다 되었다, 멍청한 인간 놈아! 약조한 대가인 네 어린 아들을 당장 내 앞으로 내놓아라! 내 오늘 밤 아주 배불리 영혼의 포식을 해야겠다!"
도깨비 두목이 끔찍한 방망이를 치켜들며 짐승처럼 으르렁거리자, 김 선비는 주저하지 않고 벌떡 일어나 두목을 향해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당당하게 소리쳤습니다.
"도깨비 두목! 내 비록 삼 년 전 가난에 눈이 멀어 네 보물에 탐을 내는 크나큰 실수를 저질렀으나, 아비 된 자로서 내 새끼의 목숨을 요물의 먹이로 내어줄 수는 결단코 없다! 정녕 네가 내 아들의 목숨을 원한다면 나를 먼저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가라!"
"크하하하! 가소롭고 어리석은 놈! 네깟 비쩍 마른 놈 하나 죽이는 게 무어 그리 내게 어렵겠느냐! 좋다, 원한다면 네놈부터 뼈와 살을 완벽하게 분리해 주마!"
두목이 무서운 기세로 방망이를 김 선비의 머리를 향해 내리치려던 찰나, 김 선비가 재빨리 품에서 시퍼렇게 날이 선 날카로운 단도를 꺼내어 자신의 목동맥에 겨누며 절박하게 외쳤습니다.
"잠깐 멈추어라! 너희 도깨비들은 본디 공정한 내기를 좋아하고 정당한 승부를 즐기는 고결한 족속이 아니더냐! 비겁하게 압도적인 힘으로 약한 인간을 짓밟고 빼앗는 것이 진정한 도깨비의 자존심이란 말이냐! 내 너에게 삼 년 전처럼 마지막으로 가장 공평한 '내기'를 하나 제안하겠다! 만약 내가 지면 나와 내 아들의 목숨을 모두 저항 없이 순순히 바치겠다. 허나, 만약 내가 또다시 너를 이긴다면, 우리는 깔끔하게 빚을 청산한 것으로 하고 영원히 우리 가족 앞에 나타나지 마라! 어떠냐, 이 공평한 승부를 피할 텐가!"
도깨비 두목은 허공에 멈춘 방망이를 든 채 씩씩거리며 콧김을 뿜다가, 이내 호기심과 짐승의 승부욕이 동한 듯 콧방귀를 세게 꼈습니다.
"흥, 건방진 놈! 두 번 다시 네놈의 그 얄팍한 말장난 속임수에 넘어갈 줄 아느냐. 좋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 내 마지막 자비를 베풀어 주마. 어떤 내기를 원하느냐! 이번에야말로 네놈의 콧대를 완벽하게 납작하게 꺾어주고 목을 쳐주마!"
김 선비는 씨익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마루에 놓아두었던 커다란 항아리의 무명 덮개를 훌렁 벗겨냈습니다. 그리고는 텅 빈 항아리 안을 가리키며 당당하고 쩌렁쩌렁하게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지난번처럼 잔머리 쓰는 수수께끼가 아니다. 오직 행동으로 보여주는 승부다! 이 텅 빈 항아리 안에, 너와 나 중 누구든 먼저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가치 있는 것'을 채워 넣는 자가 이기는 내기다! 도깨비의 둔갑술을 쓰든 마법을 부리든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 먼저 항아리를 가득 채워 그 완벽한 가치를 나에게 증명해 보거라!"
두목은 김 선비의 제안이 너무도 쉽고 하찮아 배를 잡고 껄껄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크하하! 겨우 그런 하찮고 시시한 내기라니! 내 도깨비의 요술로 눈 깜짝할 새에 저 빈 항아리를 꽉꽉 채워주마!"
두목 도깨비는 입으로 시퍼런 불꽃을 훅 불어내더니, 마당에 굴러다니는 하찮은 흙과 돌멩이들을 순식간에 어마어마하게 크고 번쩍이는 황금괴와 영롱한 옥구슬들로 둔갑시켰습니다. 그리고는 와르르 거친 소리를 내며 항아리 안으로 그 묵직한 보물들을 산더미처럼 쏟아부었습니다. 항아리는 단숨에 황금으로 가득 차올랐습니다.
"자, 똑똑히 두 눈 뜨고 보아라!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가치 있는 것은 사람의 목숨도 살 수 있는 바로 이 황금이다! 순식간에 항아리를 채웠으니 나의 완벽한 승리다! 이제 당장 네놈과 네 아들의 목을 뜯어먹겠다!"
하지만 김 선비는 조금도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헛기침을 크게 하며 도깨비 두목의 말을 가로막았습니다.
"어리석고 미련한 도깨비야, 너는 완벽하게 졌다! 황금이 아무리 무겁고 가치 있다 한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갉아먹는 독약일 뿐,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 결코 아니다! 내 이제 진짜로 무겁고 가치 있는 것으로 이 빈 공간을 채워주마!"
김 선비는 항아리 안에 가득 찬 황금괴 하나를 덥석 집어 들고는, 도깨비 두목의 면전에 대고 온 힘을 다해 피를 토하듯 소리쳤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가치 있는 것은 바로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가족의 목숨을 지키려는 아비의 숭고한 사랑'이다! 네가 내게 엄청난 황금을 주었으나, 그것은 결국 내 소중한 가족을 파멸과 죽음으로 이끄는 저주받은 독약에 불과했다. 나는 이제 이 황금이라는 헛되고 썩어빠진 욕망을 내 손으로 버리고,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한 아비의 무거운 책임감과 사랑으로 이 항아리를, 아니 내 심장과 가슴을 가득 채우겠다!"
김 선비는 들고 있던 무거운 황금을 바닥에 힘껏, 산산조각이 나도록 내동댕이쳤습니다. 그리고는 마루에 놓아둔 거대한 황금 자루를 번쩍 들어 올려 마당 흙바닥에 가차 없이 쏟아버리고, 텅 빈 자루를 홱 뒤집어쓰고는 꼿꼿하게 당당하게 섰습니다.
"나는 비록 내일 아침이면 다시 찢어지게 가난하고 비참한 선비로 돌아가겠지만, 내 목숨보다 귀한 가족을 지켜낸 이 아비의 엄청난 책임감과 사랑의 무게는 네가 요술로 만든 저깟 황금 천 개, 만 개보다 훨씬 더 무겁고 숭고하며 가치 있는 것이다! 감히 반박할 수 있거든 어디 한번 반박해 보아라!"
오직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가치에만 얽매여 있던 도깨비 두목은, 김 선비의 철학적이고도 자신의 목숨을 건 당당한 기백 앞에 순간 쇠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멍해졌습니다. 한평생 황금만 밝히며 짐승처럼 살아온 도깨비로서는, 인간의 그 눈에 보이지 않는 숭고하고 무거운 사랑과 책임을 도무지 반박할 논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참을 입을 떡 벌리고 서 있던 도깨비 두목은 이내 쥐고 있던 방망이를 툭 떨어뜨리며 호탕하게, 그러나 몹시 씁쓸한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크하하… 졌다, 완벽히 졌어! 네놈의 그 말장난 같은 궤변에 이번에도 꼼짝없이 당했구나. 하지만 목숨을 걸고 헛된 황금을 버리며 자식을 지키려는 네놈의 그 꼿꼿한 기백과 아비의 사랑만큼은 진정 내가 인정해 주마. 좋다! 내기에서 졌으니 처음 약조대로 네놈과 아들의 목숨은 깨끗이 살려주겠다. 허나, 네가 황금을 스스로 버렸으니, 내일 아침 해가 뜨면 이 집과 모든 재물은 신기루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잘 먹고 잘살아라, 미련한 놈아!"
도깨비 두목은 씩씩거리며 홱 돌아서서 짙은 어둠 속으로 연기처럼 스르륵 사라져 버렸습니다. 마당을 채우던 살기도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김 선비와 가족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으리으리했던 대궐 같은 기와집은 온데간데없고, 그들은 삼 년 전 굶주림에 떨며 살았던 다 썩어가는 초가집 마루에 낡은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습니다. 곳간에 가득했던 쌀과 비단, 그리고 마당에 쏟아부었던 황금도 모두 일장춘몽의 꿈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내는 다시 가난해진 비참한 현실에 털썩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지만, 김 선비는 환하게 웃으며 잠에서 깬 아들을 덥석 부서져라 끌어안았습니다.
"여보, 울지 마시오. 우리가 비록 일확천금의 돈벼락을 잃고 다시 찢어지게 가난해졌으나, 내 귀한 자식의 목숨을 요물로부터 건졌고 우리 가족이 이렇게 무사히 한자리에 모여 웃을 수 있지 않소. 헛된 요물의 재물이 아니라, 내가 직접 땀 흘려 일하고 당당하게 글을 읽어 번 정직한 돈으로 당신들 입에 풀칠을 해 주겠소. 진짜 인생의 가치 있는 보물은 번쩍이는 황금이 아니라, 바로 내 품에 있는 우리 가족이었소!"
그날 이후, 김 선비는 헛된 일확천금의 꿈을 머릿속에서 완전히 버렸습니다. 그는 양반과 선비의 알량한 체면을 훌훌 내려놓고, 아침 일찍부터 남의 들에 나가 비 오듯 땀 흘려 농사를 지었고, 밤에는 마을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정직하고 성실하게 돈을 벌었습니다. 비록 큰 부자는 되지 못했지만, 부정한 대가를 바라지 않고 땀 흘려 일군 작은 재물로 가족들은 오순도순 서로를 깊이 사랑하며 평생을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김 선비의 그 간 큰 내기와 목숨을 건 깨달음은, 헛된 재물에 눈먼 아랫마을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회자되는 배꼽 잡고도 뼈 있는 깊은 교훈이 되었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구독자 여러분, 김 선비의 아찔한 도깨비 내기 한판 어떠셨나요? 굶주림에 눈이 멀어 덥석 물었던 일확천금이 결국 사랑하는 자식의 목숨을 앗아갈 뻔한 무서운 독약이었다니! 벼락부자가 되는 꿈, 참으로 달콤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고 부정한 재물에는 반드시 기가 막힌 대가가 따른다는 뼈 때리는 진리를 김 선비가 온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래도 지혜와 가족을 향한 사랑으로 위기를 넘긴 김 선비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네요. 오늘 이야기가 쫄깃하고 통쾌하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꾹 눌러주시고, 다음에도 빵 터지는 기상천외한 야담으로 찾아뵙겠습니다. 행복한 밤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