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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거울 속에 비친 세상 『천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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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벼룩시장 구석에서 주운 먼지 쌓인 낡은 청동 거울. 무심코 소매로 쓱쓱 닦아냈을 뿐인데, 거울 속에서 웬 훤칠한 사내가 불쑥 손을 내밀며 말을 건넵니다. "저와 함께 천하의 보물을 찾으러 가시겠습니까?" 조선시대 야담집 『천예록』에 숨겨진, 배꼽 빠지게 유쾌하고 판타지 같은 진짜 보물찾기 여정이 지금 시작됩니다. 볼륨을 높이세요!
※ 1: 운종가 벼룩시장에서 발견한 수상한 놋거울
따사로운 봄볕이 내리쬐는 한양의 운종가 거리는 언제나처럼 활기가 넘칩니다. 이리저리 오가는 사람들의 경쾌한 발걸음 소리, 갓 구워낸 호떡의 달콤한 냄새, 그리고 온갖 진기한 물건들을 늘어놓고 손님을 부르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한바탕 신나는 잔치라도 열린 듯합니다. 주머니 사정은 여의치 않지만 호기심만큼은 조선 팔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선비가 뒷짐을 지고 느릿느릿 시장 골목을 구경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도 번듯한 서적보다는 기이한 물건들이 굴러다니는 벼룩시장 구석을 기웃거리는 것을 좋아하는 참으로 엉뚱한 성정의 소유자입니다.
"자자, 골라 보십시오! 명나라에서 물건너온 비단부터, 호랑이 발톱으로 만든 부적까지 없는 것 빼고 다 있습니다요!"
상인의 넉살 좋은 외침에 이끌려 허름한 좌판 앞에 멈춰 섭니다. 온갖 잡동사니들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모양새가 어째 영 신통치 않아 보입니다. 부러진 곰방대, 이가 나간 찻잔, 짝 잃은 짚신까지 대체 이런 걸 누가 살까 싶은 물건들 뿐입니다. 발길을 돌리려던 찰나, 구석에 처박혀 있는 둥그스름한 물건 하나가 묘하게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이것은 무엇에 쓰는 물건입니까? 거울 같기도 하고, 냄비 뚜껑 같기도 하고 참으로 오묘하게 생겼습니다.'
조심스레 손을 뻗어 먼지가 뽀얗게 앉은 그 물건을 집어 듭니다. 제법 묵직한 무게감이 손끝에 전해집니다. 테두리에는 알 수 없는 기하학적 문양들이 구불구불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희미하게 한자가 적혀 있지만 세월의 흔적 탓에 도통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앞면은 녹이 슬어 얼굴은커녕 손가락 하나 제대로 비치지 않는, 그야말로 볼품없는 낡은 청동 거울입니다.
"어르신, 이 거울은 대체 어디서 난 물건입니까? 녹이 슬어 쓸모가 없을 듯합니다만."
"아이고, 선비님! 역시 안목이 대단하십니다. 그것이 겉보기엔 저래 봬도, 옛날 옛적 어느 신통방통한 도사가 쓰던 보물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제가 특별히 선비님께만 헐값에 넘기겠습니다. 엽전 석 냥만 주십시오!"
'석 냥이라니요! 국밥이 몇 그릇인데, 이 고철 덩어리에 석 냥을 부르시다니 참으로 맹랑한 상인이십니다.'
속으로는 혀를 찼지만, 왠지 모르게 그 거울에서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마치 거울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며 제발 데려가 달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습니다. 결국 한참의 실랑이 끝에 엽전 한 냥 반으로 가격을 깎는 데 성공하고는, 거울을 소중하게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발걸음이 어찌나 가벼운지 당장이라도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습니다. 방에 돌아오자마자 소맷자락을 걷어붙이고 본격적으로 거울을 닦기 시작합니다.
"어디 보자, 도사가 쓰던 보물이라 하였으니 닦으면 금덩이라도 튀어나올지 모를 일입니다. 영차, 영차!"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힐 정도로 열심히 닦고 또 닦습니다. 시커멓던 녹이 조금씩 벗겨지면서 마침내 맑고 투명한 청동 특유의 빛깔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거울 표면이 매끄러워지자, 신기하게도 방 안의 풍경이 거울 속에 고스란히 비칩니다.
'오호라, 이거 생각보다 제법 쓸만한 물건이 아닙니까? 내 얼굴이 이리도 훤칠하게 잘 비치다니!'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려는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거울 속 풍경이 갑자기 물결치듯 일렁이기 시작합니다. 마치 고요한 연못에 돌을 던진 것처럼 파장이 이더니, 거울 속에 비쳐야 할 자신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웬 낯선 사내의 얼굴이 떡하니 나타납니다.
"아이쿠, 깜짝이야! 귀, 귀신입니까?"
너무 놀라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소리칩니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거울 속의 사내는 오히려 당황한 기색 없이 여유롭게 웃고 있습니다. 머리에는 화려한 비단관을 쓰고, 몸에는 번쩍이는 비단옷을 두른, 무척이나 귀티가 흐르는 젊은 사내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사내가 거울 밖으로 쑥 손을 내밀어 엉덩방아를 찧고 주저앉은 선비의 어깨를 툭툭 치는 것이 아닙니까.
"놀라게 해 드려 송구합니다. 귀신은 아니오니 안심하십시오."
거울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무척이나 낭랑하고 점잖습니다. 하지만 거울 안에서 사람이 튀어나와 손을 뻗는 이 기상천외한 상황 앞에서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이 조선 천지에 과연 몇이나 될까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애써 거울을 밀어내려 하지만, 사내의 손아귀 힘이 어찌나 센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이런 맙소사, 내가 벼룩시장에서 요괴가 씌인 물건을 사 온 것이 틀림없습니다! 어머니, 아버님, 불효자는 이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 2: 거울을 닦자 튀어나온 낯선 사내와의 기막힌 첫 만남
눈을 질끈 감고 다가올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거울 속 사내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웁니다. 그 웃음소리가 어찌나 호탕하고 맑은지, 무섭고 두려웠던 마음이 눈 녹듯 스르르 사라지는 기분입니다. 살그머니 실눈을 뜨고 앞을 보니, 사내는 여전히 거울 반쯤 걸친 채로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눈은 뜨셔도 좋습니다. 제 이름은 '환'이라고 합니다. 이 거울 속에 갇혀 지낸 지 벌써 이백 년이 넘었는데, 드디어 저를 깨워주실 귀인을 만나게 되었군요. 참으로 감읍할 따름입니다."
"이, 이백 년이요? 그렇다면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대체 거울 속에는 어찌하여 들어가신 겝니까?"
여전히 경계심을 늦추지 못한 채 방구석으로 몸을 바짝 붙이며 묻습니다. 이백 년 묵은 요괴라니, 오늘 밤 제삿날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줄기에 식은땀이 주르륵 흐릅니다. 하지만 환이라는 사내는 그저 빙그레 웃으며 한숨을 가볍게 내쉴 뿐입니다.
"사연이 참으로 길고도 기구합니다. 저는 본래 옥황상제를 모시던 선관이었사오나, 천상의 창고에서 아주 귀한 보물을 잃어버리는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 벌로 이 청동 거울 속에 봉인되어, 누군가 거울의 묵은 때를 정성껏 닦아 맑은 영혼을 불어넣어 줄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선비님께서 정성껏 닦아주신 덕분에 이렇게 다시 세상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선관이라니! 천상의 신선이란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면 이 낡은 거울이 진짜로 도사의 물건이었다는 벼룩시장 상인의 말이 사실이었단 말입니까!'
놀라움에 턱이 빠질 지경입니다. 천상의 선관이 자신의 방에, 그것도 단돈 한 냥 반짜리 거울 속에서 나타나다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사내의 위아래를 훑어봅니다. 확실히 평범한 인간의 모습은 아닙니다. 피부는 백옥처럼 투명하고, 옷자락에서는 은은한 연꽃 향기가 피어오릅니다.
"그, 그렇다면 이제 벌을 다 받으셨으니 거울에서 완전히 나오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 왜 아직도 반쯤 갇혀 계시는 겁니까?"
질문을 던지며 조심스레 거울 쪽으로 다가갑니다. 환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합니다.
"그것이 말입니다… 제가 잃어버렸던 그 보물을 다시 찾아 천상으로 가져가야만 이 거울의 봉인이 완전히 풀리게 되어 있습니다. 보물을 찾지 못하면 저는 영영 이 거울과 세상의 경계에 반쯤 걸친 채로 살아가야 합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잘 때도 반만 눕고, 밥을 먹을 때도 반만 먹어야 하는 이 끔찍한 고통을 말입니다!"
환의 과장된 몸짓과 애처로운 표정에 왠지 모르게 웃음이 픽 새어 나옵니다. 무서운 요괴인 줄만 알았는데, 반만 누워서 잠을 잔다며 투덜거리는 모습을 보니 영락없이 허당기 가득한 동네 청년 같습니다.
"참으로 딱한 사정이십니다. 하오나 저는 그저 매일 책이나 읽으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가난한 선비일 뿐입니다. 천상의 보물이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다른 훌륭한 귀인을 찾아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손사래를 치며 정중하게 거절합니다. 보물찾기라니, 그런 위험천만하고 피곤한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습니다. 당장 내일 먹을 쌀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천상의 보물은 사치스러운 이야기일 뿐입니다. 다시 거울을 덮으려 손을 뻗는 순간, 환이 잽싸게 선비의 손목을 덥석 붙잡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선비님, 보물을 찾는다면 그 보물의 절반, 아니 원하신다면 전부를 드리겠습니다. 그 보물은 단순히 금은보화가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부와 명예, 그리고 원하시는 모든 것을 이루어 줄 수 있는 신물입니다. 선비님의 그 가난한 살림살이, 단숨에 청와 기와집으로 바꿀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청와 기와집! 매일 쌀밥에 고깃국! 벼슬자리까지!'
그 달콤한 유혹에 귀가 솔깃해집니다. 가난한 선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얄팍한 욕심이 고개를 듭니다. 보물의 절반만 얻어도 평생 배불리 먹고 책만 읽으며 유유자적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크흠, 그렇다면… 그 보물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며, 어디에 숨겨져 있단 말씀이십니까?"
헛기침을 하며 은근슬쩍 거울 앞쪽에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환의 얼굴에 화색이 돕니다. 그는 품속에서 꼬깃꼬깃 접힌 낡은 종이 한 장을 꺼내어 조심스레 펼칩니다. 그것은 바로 보물이 숨겨진 장소를 가리키는 신비로운 지도였습니다.
※ 3: 보물 지도의 비밀과 좌충우돌 동업 결성
환이 펼친 지도는 평범한 지도가 아니었습니다. 조선의 산천이 그려져 있기는 하였으나, 먹물이 아니라 은은하게 빛나는 황금빛 가루로 그려진 기이한 지도였습니다. 지도의 한가운데에는 붉은 점이 선명하게 반짝이고 있었고, 그 주위로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문장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보십시오, 선비님. 이 지도가 바로 천상의 보물이 숨겨진 곳을 알려주는 길잡이입니다. 제가 이백 년 동안 거울 속에서 연구한 바에 따르면, 이 붉은 점이 가리키는 곳은 다름 아닌 한양의 중심, 바로 우리가 있는 이 근방입니다."
"이 근방이라니요? 한양 땅이 얼마나 넓은데 이 붉은 점 하나만 보고 어찌 찾는단 말씀이십니까? 게다가 이 옆에 적힌 글귀들은 도통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지도를 들여다봅니다.
'날개가 있으나 날지 못하고, 말을 하나 입이 없는 자의 붉은 눈물을 찾아라… 도대체 이것이 무슨 해괴망측한 수수께끼란 말입니까? 차라리 논어를 거꾸로 외우는 것이 빠르겠습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한숨을 푹 내쉽니다.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었던 마음이 금세 쪼그라듭니다. 하지만 환은 전혀 기죽지 않은 얼굴로 쾌활하게 말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선비님의 그 명석한 두뇌와 저의 신통력이 합쳐진다면 이깟 수수께끼쯤은 금세 풀 수 있을 것입니다. 자, 어떻습니까? 저와 함께 동업을 하여 이 천하의 보물을 찾아보시지 않겠습니까? 선비님은 머리를 쓰시고, 저는… 음, 응원을 열심히 하겠습니다!"
'응원을 열심히 하겠다니요! 참으로 뻔뻔하고도 태평한 신선이 십니다. 결국 고생은 제가 다 하라는 뜻 아닙니까.'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옵니다. 반쪽은 거울 속에 박혀서 응원만 하겠다니, 이런 밑지는 장사가 어디 있습니까. 하지만 지도의 황금빛 반짝임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가슴 속에서 뜨거운 모험심이 불타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평생을 비좁은 방구석에서 곰팡내 나는 책장만 넘기며 살아왔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하늘이 내려준 인생 역전의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습니다. 천상의 신선께서 이리도 간곡히 부탁하시니, 이 한 몸 바쳐 돕도록 하겠습니다. 단, 보물을 찾으면 정확히 반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지장이라도 찍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선비님의 은혜는 뼛속 깊이 새기겠습니다. 자, 그럼 당장 첫 번째 수수께끼를 풀러 떠나보시지요!"
환이 환호성을 지르며 거울 밖으로 쑥 내민 손을 뻗어 선비의 손을 굳게 맞잡습니다. 차갑고 딱딱한 청동 거울의 촉감이 아니라, 따뜻하고 생명력 넘치는 온기가 전해집니다. 이리하여 벼룩시장에서 헐값에 산 거울에서 튀어나온 허당 신선과, 속물근성 다분하지만 심성은 착한 조선 선비의 기상천외한 동업이 결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선비님, 밖으로 나가기 전에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겠습니까?"
방문을 나서려던 찰나, 환이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무엇입니까? 혹시 부적이라도 써야 하는 겝니까?"
"그게 아니오라… 제가 지금 반쯤 거울 밖으로 나와 있지 않습니까? 이동할 때는 선비님께서 이 거울을 등짐처럼 메고 다니셔야 할 듯합니다. 제가 걸을 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하하하!"
'이런 맙소사! 내 당장 이 요물 단지를 벼룩시장에 다시 내다 팔아야지!'
무거운 청동 거울을 등에 짊어지고 낑낑대며 문밖을 나서는 선비의 이마에 굵은 주름이 패입니다. 거울 속에 대롱대롱 매달린 환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신이 났습니다. 과연 이 두 사람의 좌충우돌 보물찾기는 무사히 성공할 수 있을까요? 첫 번째 단서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우스꽝스럽고도 위대한 모험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 4: 첫 번째 단서, 수수께끼를 품은 주막의 수다쟁이 앵무새
따가운 봄볕 아래, 묵직한 청동 거울을 등짐처럼 짊어진 선비의 이마에는 어느새 굵은 땀방울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습니다. 벼룩시장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만 해도 새장처럼 가볍게 느껴졌던 거울이건만, 그 속에 반쯤 걸쳐진 천상의 선관 환이라는 사내가 실려서인지 천근만근 무겁기만 합니다. 운종가의 왁자지껄한 인파 속을 헤치고 나아가는 선비의 발걸음은 마치 진흙탕에 빠진 황소처럼 무겁고 둔탁합니다. 등 뒤에서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신기한 듯 쳐다보는 시선이 화살처럼 꽂히건만, 거울 속에 매달린 환은 그저 신선놀음이라도 하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주변 구경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런 맙소사, 내가 전생에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이리도 기구한 팔자를 타고났단 말입니까. 거울에서 나온 신선이라니, 동네 미친개에게 쫓기다 우물에 빠진 것보다 더 황당한 노릇 아닙니까.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거리는 꼴을 보아하니, 십중팔구 나를 실성한 자로 여기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아이고, 내 체면, 내 양반의 알량한 자존심이 오늘 운종가 바닥에 다 내동댕이쳐지는구나!'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애써 발걸음을 재촉하지만, 등 뒤에서 들려오는 환의 해맑은 목소리는 선비의 속을 더욱 뒤집어놓습니다. 저잣거리에 널린 엿장수의 가위질 소리며, 떡 사라는 아주미의 외침이며, 모든 것이 신기하다는 듯 이것저것 묻는 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선비님, 저기 저 달고나처럼 생긴 것은 무엇입니까? 참으로 먹음직스럽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천상에서는 늘 이슬만 먹고살아서 그런지, 인간 세상의 음식 냄새가 이리도 고소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기운도 빠지시는데 우리 저기 주막에 들러 요기라도 하고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지도를 보아하니 첫 번째 단서가 있는 곳도 마침 저 주막 근처인 듯합니다."
주막이라는 단어에 선비의 뱃속에서 요란한 천둥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아침부터 거울을 닦느라 기운을 다 뺀 데다, 무거운 거울까지 짊어지고 걸었으니 오죽하겠습니까. 국밥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스치자 알량한 양반 체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얼른 주막 평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크흠, 신선께서 그리 원하신다면 잠시 쉬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하지만 밥값은 어찌하실 작정입니까? 제 주머니에는 아침에 그 요물… 아니, 이 귀한 거울을 사느라 남은 엽전이 단 한 푼도 없단 말입니다."
"염려 마십시오! 제가 비록 거울에 반쯤 갇힌 몸이나, 선관의 자존심이 있지 않습니까. 주막에 들어가면 제게 다 생각이 있으니 일단 저를 믿고 들어가시지요."
환의 호언장담에 반신반의하며 주막 안으로 들어섭니다. 왁자지껄한 주막 안은 대낮부터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구석진 자리를 겨우 찾아 등짐처럼 멘 거울을 벽에 기대어 놓고, 뻐근한 허리를 두드리며 털썩 주저앉습니다. 그때, 주막 주모가 다가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주문을 받습니다.
"그래, 무얼 내어 드릴까? 짐이 참으로 요상하게 생겼수다. 그 거울인지 솥뚜껑인지 모를 물건은 어디다 쓰는 거요?"
주모의 매서운 눈초리에 선비가 당황하여 어버버하는 사이, 벽에 기대어 있던 거울 속에서 환이 낭랑한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주모, 여기 가장 맛있는 소고기 국밥 두 그릇과 시원한 동동주 한 사발을 내어 주시오. 짐이라니요, 저는 엄연히 이 선비님의 훌륭한 길동무랍니다. 하하하!"
허공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주모는 깜짝 놀라 두리번거리다, 이내 벽에 세워진 거울 속의 환을 발견하고는 기절할 듯 뒤로 넘어집니다.
"아이고, 귀, 귀신이야! 대낮에 귀신이 나타났다!"
주막 안의 사람들이 일제히 시선을 돌리며 소란이 일어납니다. 선비는 너무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입니다. 하지만 환은 아랑곳하지 않고 특유의 능청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사람들을 진정시킵니다.
"진정들 하십시오. 귀신이 아니라 복을 불러오는 신령한 기운입니다. 주모, 제 목소리가 들리는 분들에게는 오늘 밤 재물운이 터진다는 천상의 계시가 있었소이다. 국밥을 넉넉히 내어주시면, 내 특별히 주막의 번창을 비는 주문을 외워드리지요."
천연덕스러운 환의 거짓말에, 놀랐던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재물운'이라는 단어에 혹하여 금세 태도를 바꿉니다. 조선 제일의 수완을 자랑하는 주모 역시,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푸짐한 국밥을 내어오고는 연신 굽신거립니다. 선비는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공짜로 얻어먹는 국밥의 맛이 기가 막히게 좋아 숟가락질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배를 든든히 채운 후, 선비는 다시 지도를 꺼내어 들여다봅니다.
"자, 국밥도 배불리 먹었으니 이제 단서를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날개가 있으나 날지 못하고, 말을 하나 입이 없는 자의 붉은 눈물을 찾아라' 하였는데, 이 좁은 주막 안에 그런 것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그때, 주막 처마 끝에 매달린 조그만 새장 하나가 선비의 눈에 들어옵니다. 그 안에는 형형색색의 깃털을 가진 화려한 나무 조각 앵무새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저 정교하게 깎아 만든 목각 인형인 줄 알았건만, 놀랍게도 그 나무 앵무새가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떠들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까!
"국밥 맛있다! 엽전 내놔라! 찌르르르! 귀신 거울! 귀신 거울!"
선비는 깜짝 놀라 마시던 동동주를 뿜을 뻔했습니다. 날개가 있으나 나무로 만들어져 날지 못하고, 입이 없으나 어떤 신비한 장치나 주술로 인해 말을 하는 앵무새. 이것이야말로 수수께끼가 가리키는 정답이 틀림없었습니다.
'옳거니! 저 녀석이 바로 첫 번째 단서로구나. 그렇다면 붉은 눈물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조심스레 새장 다가가 나무 앵무새를 자세히 살펴봅니다. 앵무새의 두 눈에는 붉은빛이 감도는 영롱한 루비가 박혀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붉은 눈물'이 분명했습니다.
"선비님, 저 앵무새의 눈에 박힌 보석을 보십시오! 저것이 바로 우리가 찾는 단서입니다. 하지만 저 귀한 것을 주모가 순순히 내어줄 리 만무합니다. 어찌해야 좋겠습니까?"
거울 속의 환이 다급하게 속삭입니다. 선비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주모를 부릅니다.
"주모, 저기 매달린 새장 속의 목각 앵무새는 대체 어디서 난 물건이오? 기운이 심상치 않소이다."
"아, 저거요? 며칠 전 지나가던 괴짜 도사가 밥값 대신 주고 간 요물단지라오. 툭하면 손님들 말을 따라 하며 험한 소리를 해대서 골칫거리인데, 신기해서 그냥 걸어두었수다."
선비는 환과 눈빛을 교환한 뒤, 기막힌 꾀를 내어 주모에게 제안을 합니다. 이 요물단지에 씐 흉한 기운을 자신의 신령한 거울로 정화해 줄 터이니, 그 대가로 앵무새의 붉은 눈물 하나를 뽑아가겠다는 엉터리 풍수지리설을 늘어놓은 것입니다. 주모는 거울 속에서 호응하는 환의 바람잡이 덕분에 홀라당 속아 넘어가고 맙니다.
결국 선비는 나무 앵무새의 왼쪽 눈에 박힌 붉은 루비 하나를 무사히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루비는 선비의 손바닥 위에서 태양 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였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보석이 아니라, 다음 목적지를 가리키는 신비한 나침반이었습니다. 보물을 향한 첫 번째 관문을 무사히 통과한 두 사람의 마음은 세상을 다 가진 듯 기쁘기만 합니다.
"자, 선비님! 첫 단추를 아주 훌륭하게 끼우셨습니다. 이제 이 붉은 눈물이 이끄는 곳으로 지체 없이 떠나시지요! 저의 신통력과 선비님의 말재주가 합쳐지니 천하무적이 따로 없습니다. 하하하!"
환의 유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무거운 청동 거울을 다시 등에 짊어진 선비는 주막을 나섭니다. 이번에는 왠지 모르게 거울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진 듯한 기분이 듭니다. 보물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가슴 벅차게 차오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5: 어설픈 산적 떼와의 조우, 그리고 기상천외한 위기 탈출
주막에서 얻은 붉은 눈물은 마치 살아 숨 쉬는 듯, 특정한 방향을 향할 때마다 미세하게 붉은빛을 뿜어내며 길을 안내했습니다. 그 빛이 이끄는 곳은 한양을 벗어나 인왕산 깊은 골짜기로 이어지는 험준한 산길이었습니다. 해는 어느덧 뉘엿뉘엿 서산으로 기울어가고, 숲속에는 이름 모를 산새들의 음산한 울음소리만이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평생 글공부만 하느라 험한 산길은 타본 적도 없는 샌님 선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연신 흐르는 땀을 소맷자락으로 훔쳐냅니다.
'아이고, 다리야. 보물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시조나 읊고 싶구나. 부귀영화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당장 내 다리가 부러지게 생겼는데!'
원망 섞인 한숨을 내쉬며 바위에 걸터앉으려던 찰나, 갑자기 수풀 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험악하게 생긴 사내 셋이 불쑥 튀어나와 길을 가로막습니다. 머리에는 삐딱하게 두건을 쓰고, 손에는 녹슨 낫과 이가 빠진 도끼를 들고 있는 품새가 영락없는 산적 떼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그들의 행색이 참으로 우스꽝스럽습니다. 한 명은 바지춤이 줄줄 흘러내려 연신 추켜올리기 바쁘고, 다른 한 명은 무거운 도끼를 들 힘도 없는지 팔을 바들바들 떨고 있습니다. 가장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 역시 목소리만 컸지, 눈동자는 겁에 질려 쉴 새 없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어흠! 어, 꼼짝 마라! 우, 우리는 이 인왕산을 주름잡는 무시무시한 흑풍파다! 가진 엽전이 있으면 바, 빠짐없이 다 내놓아라! 엉뚱한 짓을 하면 이 도끼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우두머리가 애써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치지만, 떨리는 목소리 탓에 전혀 위협적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벌벌 떨며 목숨만 살려달라 애원했을 선비였지만, 가뜩이나 무거운 거울을 짊어지고 산길을 오르느라 신경이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진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엽전이라고는 아침에 주막에서 다 써버리고 빈털터리 신세이니 두려울 것도 없었습니다.
"어허, 이놈들! 눈이 있으면 똑똑히 보아라! 내 행색이 엽전 한 닢이라도 나올 몰골로 보이느냐? 아침부터 이 무거운 고철 덩어리를 짊어지고 산을 타느라 진이 다 빠진 사람에게 강도질이라니,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았다! 썩 물러가지 못할까!"
선비가 오히려 눈을 부릅뜨고 호통을 치자, 초보 산적들은 당황하여 서로의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봅니다. 자신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반응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눈치입니다. 그때, 선비의 등 뒤에 매달린 거울 속에서 묵묵히 상황을 지켜보던 환이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입니다.
"선비님, 저 어설픈 도적 떼를 제게 맡기십시오. 아주 재미난 구경거리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선비님은 그저 거울을 저들 쪽으로 휙 돌려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재미난 구경거리? 필시 또 무슨 장난을 치려는 속셈이로구나. 하긴, 밑져야 본전이니 한번 믿어보는 수밖에.'
선비는 슬그머니 몸을 돌려 등에 멘 청동 거울을 산적들을 향해 정면으로 보여줍니다. 석양의 붉은 노을빛이 거울 표면에 반사되어 기괴한 붉은빛을 뿜어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붉은빛 속에서, 환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납니다. 평소의 귀티 나는 훤칠한 사내의 모습이 아닙니다. 눈은 부리부리하게 커지고, 입에는 뾰족한 송곳니가 튀어나왔으며, 머리카락은 산발을 한 채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도깨비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으흐흐흐! 네 이놈들! 감히 천상의 보물을 짊어진 귀인을 건드리려 하다니,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구나! 내가 바로 이백 년 동안 인왕산을 지켜온 피에 굶주린 거울 도깨비다! 오늘 밤은 너희들의 간을 빼먹으며 포식해야겠구나! 크아아앙!"
환이 거울 밖으로 상반신을 쑥 내밀며 천지가 떠나갈 듯한 괴성을 지릅니다. 동시에 거울 표면에서 번쩍이는 기이한 빛들이 산적들의 눈을 어지럽힙니다. 환의 신통력으로 만들어낸 완벽한 환영이었습니다. 그 기상천외하고 공포스러운 광경에, 초보 산적들은 넋을 잃고 맙니다.
"아, 아이고오! 도, 도깨비다! 진짜 도깨비가 나타났다!"
"우, 우두머리 형님! 사람 살려! 간을 파먹힌다요!"
들고 있던 녹슨 낫과 이 빠진 도끼를 바닥에 내팽개친 산적들은, 바지춤이 벗겨지는 줄도 모른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산 아래로 줄행랑을 치기 시작합니다. 어찌나 기겁을 하며 뛰는지, 엎어지고 구르고 난리도 아닙니다. 순식간에 숲속은 다시 고요해졌고, 선비는 멍하니 서서 멀어져가는 산적들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입니다.
"푸하하하! 선비님, 보셨습니까? 저 어설픈 도적 놈들이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는 꼴을 말입니다! 제가 이래 봬도 천상의 선관 출신이라, 이 정도 둔갑술은 식은 죽 먹기랍니다. 어떠십니까, 저의 활약이 든든하지 않습니까?"
거울 속의 환은 다시 원래의 훤칠한 사내 모습으로 돌아와 배를 잡고 낄낄대며 웃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귀신인 줄 알고 기겁했던 선비도, 위기의 순간에 기지를 발휘하여 산적들을 쫓아낸 환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뜨립니다.
"참으로 기막힌 재주를 가지셨습니다. 짐 덩어리인 줄만 알았더니, 제법 쓸모가 있는 신선이시군요. 덕분에 목숨도 건지고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리는 기분입니다."
비록 여전히 무거운 거울을 짊어져야 하는 신세이긴 하지만, 묘하게도 환에 대한 신뢰와 동료애가 피어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좌충우돌 어설프기 짝이 없는 두 사람의 콤비는, 위험천만한 산길마저도 유쾌한 희극 무대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다시금 붉은 눈물이 반짝이는 방향을 따라, 마침내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인왕산 깊은 턱을 향해 당찬 발걸음을 옮깁니다.
※ 6: 마침내 발견한 보물의 정체와 거울이 품은 따뜻한 진실
붉은 눈물의 안내를 따라 험난한 인왕산의 수풀을 헤치고 나아간 지 꼬박 반나절.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 덩굴에 가려져 있던 작고 은밀한 동굴 입구가 마침내 두 사람의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동굴 안에서는 오색찬란한 신비로운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고, 알 수 없는 맑고 청아한 기운이 주변을 맴돌고 있었습니다.
"선비님! 다 왔습니다! 이 동굴 안에서 천상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드디어 제가 이백 년의 억울한 봉인에서 풀려날 때가 온 것입니다!"
거울 속 환의 목소리가 흥분으로 가늘게 떨리고 있습니다. 선비 역시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조심스레 동굴 안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좁은 통로를 지나자, 거대한 지하 석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천장에서는 은은하게 빛나는 종유석들이 매달려 있고, 석실 한가운데에는 맑은 영천수가 솟아오르는 작은 연못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연못 한가운데 솟아오른 옥돌 제단 위에는, 눈부신 황금빛을 뿜어내는 조그만 상자 하나가 다소곳이 놓여 있었습니다.
'저것이 바로 그토록 찾아 헤매던 천상의 보물이란 말인가! 저 상자만 열면 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 떵떵거리며 살 수 있겠구나!'
가슴이 쿵쾅거리고 손발이 짜릿해집니다. 침을 꼴깍 삼키며 제단 앞으로 다가간 선비는, 주막에서 얻은 붉은 눈물인 루비를 상자의 뚜껑에 파인 작은 홈에 조심스레 끼워 넣습니다. 찰칵,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상자의 뚜껑이 스르르 열립니다. 순간, 동굴 안을 가득 채우던 눈부신 빛이 잦아들고, 상자 속의 진짜 보물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상자 안에 들어있는 것은 금은보화도 아니었고, 불로장생의 선단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저 작고 평범한 '복숭아 씨앗' 하나였습니다.
"이, 이게 무엇입니까? 천상의 보물이라면서요!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준다면서요! 고작 이 복숭아 씨앗 하나를 얻자고 그 고생을 하며 인왕산을 기어올랐단 말입니까?"
황당함과 분노에 찬 선비가 거울 속의 환을 향해 소리칩니다. 허탈감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싶은 심정입니다. 하지만 환은 옥돌 제단 위에 놓인 씨앗을 보자마자, 눈시울을 붉히며 감격스러운 표정을 짓습니다.
"선비님, 저것은 평범한 씨앗이 아닙니다. 저것은 천상의 정원에서 자라는 '만년 천도복숭아'의 씨앗입니다. 이 씨앗을 척박한 땅에 심고 정성껏 가꾸면, 그 열매를 먹은 자는 병마를 씻어내고 평생 굶주리지 않는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을 얻게 됩니다. 제가 옥황상제 몰래 이 씨앗을 훔쳐 인간 세상에 내려오려 했던 이유는, 전염병과 기근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을 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환의 고백에 선비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해집니다. 이기적인 속물인 줄만 알았던 거울 속의 신선이, 사실은 인간을 긍휼히 여겨 크나큰 벌을 감수하면서까지 보물을 훔쳐 내려왔던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씨앗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봉인되었고, 이제야 선비님의 도움으로 이 씨앗을 세상에 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보물은 금은보화가 아니라,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따뜻한 마음과 그것을 함께 이룰 수 있는 진실한 벗을 얻는 것 아니겠습니까."
환의 진심 어린 말에, 부귀영화에 눈이 멀어 얄팍한 욕심을 부렸던 선비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부끄러움이 밀려옵니다. 가난을 탓하며 세상을 원망하기만 했던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집니다. 선비는 조심스레 복숭아 씨앗을 손에 쥐고는 환을 향해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입니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이 씨앗이야말로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진짜 보물이 맞습니다. 제가 볕이 잘 드는 곳에 심어 정성껏 가꾸어 보겠습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선비가 씨앗을 쥐자, 청동 거울에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옵니다. 쩌저적! 거울 표면에 금이 가는 소리와 함께, 봉인이 완전히 풀리며 환의 몸이 거울 밖으로 튕겨져 나옵니다. 이백 년의 기나긴 속박에서 벗어나, 마침내 완전한 육신을 가지고 인간 세상에 발을 디디게 된 것입니다.
"아아! 드디어 다리가 땅에 닿습니다! 선비님, 해냈습니다! 제가 드디어 완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환은 덩실덩실 춤을 추며 기뻐하고, 선비 역시 환의 손을 맞잡고 함께 뛰어오르며 환호성을 지릅니다. 벼룩시장에서 주운 낡은 청동 거울이 맺어준, 속물 선비와 허당 신선의 기막힌 인연. 두 사람은 만년 천도복숭아 나무를 가꾸며 병든 자를 고치고 가난한 자를 돕는 기상천외한 동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유쾌한 웃음소리와 기적 같은 이야기들이 끊이지 않았다고 하니, 이것이야말로 조선 팔도에 길이 남을 가장 유쾌하고도 따뜻한 야담이 아니겠습니까.
유튜브 엔딩멘트
여러분, 벼룩시장에서 주운 낡은 청동 거울 속에서 시작된 기상천외한 보물찾기, 어떠셨나요? 진짜 보물은 번쩍이는 금덩이가 아니라,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마음과 진실한 웃음이라는 걸 두 사람의 유쾌한 여정이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배꼽 빠지는 조선시대 판타지 모험이 즐거우셨다면, 지금 바로 구독과 좋아요 꾹 눌러주시고 다음에도 재미난 이야기로 만나요! 알림 설정도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