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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을 꿰뚫어 보는 도깨비

    ※ 태그 (2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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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킹멘트 (200자 이내)

    만약 당신의 마음속 생각이 다른 이에게 그대로 들린다면 어떨까요? 겉으로는 존경받지만 속은 탐욕으로 가득 찬 부자와, 가난하지만 진솔한 마음을 가진 농부. 두 사람이 마음을 꿰뚫어 보는 기묘한 도깨비를 만났을 때,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뒤바뀔까요?

    ※ 디스크립션 (300자 이내)

    존경받는 최 진사와 정직한 농부 박 서방이 험준한 '여우고개'에서 사람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기묘한 도깨비를 만납니다. 말과 행동 뒤에 숨겨진 진짜 마음을 심판하는 도깨비 앞에서 두 사람의 운명은 극적으로 엇갈립니다. 진정한 부와 가난은 어디에 있는지,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는 이야기.

    ※ 여우고개를 넘는 두 나그네

    살다 보면 겉으로는 번지르르하지만 속은 비어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행색은 초라해도 그 마음만은 황금 같은 사람을 만나보신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바로 그 '마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기에 더 중요하고,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더 무서운 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때는 조선 중엽, 충청도의 어느 큰 고을에 최 진사라 불리는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드넓은 토지를 소유하고 수많은 소작농을 거느린 지역의 유지였지요. 사람들 앞에서는 언제나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 나를 찾게나"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그를 '살아있는 보살'이라 칭송하며 우러러보았습니다.

    같은 마을 한쪽 구석에는, 박 서방이라 불리는 가난한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가진 것이라곤 비가 새는 초가삼간과 작은 텃밭이 전부였지만, 그는 늘 성실했고 마음이 비단결같이 고왔습니다. 길가에 쓰러진 나무를 보면 조용히 일으켜 세워주고, 굶주린 강아지를 보면 자신의 밥을 덜어주는 그런 사람이었지요. 하지만 세상인심이란 얄궂어서, 사람들은 그의 선한 마음보다는 남루한 행색을 보며 혀를 차기 일쑤였습니다.

    어느 늦가을, 최 진사는 이웃 고을 사돈댁의 환갑잔치에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값비싼 비단옷을 차려입고 기름진 음식을 잔뜩 먹어 기분이 좋았지요. 하인을 앞세워 돌아오는 길,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따라 길이 막히는 일이 생겨, 악명 높은 '여우고개'를 넘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여우고개는 낮에도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험한 고갯길로, 밤에는 사람을 홀리는 도깨비가 나타난다는 흉흉한 소문이 파다한 곳이었습니다.

    "아니, 이놈아! 다른 길은 없단 말이냐! 이 밤에 여우고개를 넘으라니!"

    최 진사가 호통을 치자 하인이 싹싹 빌며 말했습니다. "진사 어르신, 외나무다리가 홍수에 떠내려가 이 길밖에는 당도할 길이 없사옵니다." 최 진사는 잔뜩 인상을 찌푸렸습니다. ‘젠장, 재수 없는 놈 같으니라고. 이런 험한 길을 가게 만들다니. 내일 단단히 값을 치르게 해주마.’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음, 어쩔 수 없지. 어서 앞장서거라."

    바로 그때, 그들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저, 진사 어르신. 저도 이 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괜찮으시다면 동행해도 되겠습니까?" 돌아보니, 나무 지게를 진 박 서방이 땀을 뻘뻘 흘리며 서 있었습니다. 그는 장에 내다 팔 나무를 해오다 그만 날이 저물어 버린 것이었죠. 최 진사는 속으로 '에잇, 저런 상놈과 길동무를 해야 하다니. 내 격이 떨어지는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입으로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오, 박 서방 아닌가. 암, 되고말고. 이 험한 길을 어찌 혼자 가려고 했나. 어서 이리 오게. 함께 가면 덜 무서울 게야."
    "아이고, 감사합니다, 어르신!"

    박 서방은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역시 최 진사 어르신은 마음이 넓으신 분이야. 나 같은 사람에게도 이리 따뜻하게 대해주시니. 어두운 길에 어르신께서 놀라시지 않도록 내가 앞장서서 길을 잘 살펴야겠다.' 그의 마음속에는 오직 감사함과 걱정뿐이었습니다. 그렇게 겉과 속이 다른 부자와, 마음이 투명한 가난한 농부, 그리고 겁에 질린 하인까지 세 사람은 짙어지는 어둠 속으로, 여우고개의 깊은 품으로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 "네 속마음이 다 들리는구나"

    해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자, 여우고개는 순식간에 다른 세상으로 변했습니다. 낮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고 서늘한 어둠이 내려앉았고,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가지들이 마치 기괴한 손가락처럼 흔들리며 그림자를 만들었습니다. 겁에 질린 하인이 든 등불만이 겨우 한 치 앞을 비출 뿐이었습니다.

    최 진사는 헛기침을 하며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에이, 재수 옴 붙었네. 이런 곳에서 진짜 도깨비라도 나오면 어쩌지? 내게는 값나가는 물건도 많은데. 저 하인 놈이랑 박 서방 놈을 앞에 세워서 방패로 삼아야겠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자신의 안위와 재물에 대한 걱정뿐이었습니다. 반면 박 서방은 묵묵히 최 진사의 반 발짝 앞에서 걸으며, 길바닥에 튀어나온 돌부리나 나무뿌리가 없는지 살폈습니다. ‘어르신께서 행여나 발을 헛디디시면 큰일이지. 불빛이 약하니 내가 눈이 되어 드려야겠다. 그리고 저 하인 녀석은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구나. 괜찮다고 말이라도 한번 걸어줘야겠다.’ 그의 마음은 온통 타인에 대한 염려로 가득 차 있었지요.

    그렇게 한참을 걸었을까, 갑자기 주변의 모든 소리가 뚝 그쳤습니다. 바람 소리도, 풀벌레 소리도, 심지어는 자신들의 발소리마저 먹먹하게 사라졌습니다. 그 자리를 대신해, 어디선가 스멀스멀 피어오른 짙은 안개가 순식간에 그들을 감쌌습니다. 등불 빛도 희미해져 서로의 얼굴조차 분간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그들의 바로 앞, 길 한가운데에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를 한 노인이 삿갓을 푹 눌러쓴 채 앉아 있었습니다.

    최 진사는 깜짝 놀라 소리쳤습니다. "뉘, 뉘시오! 이 밤중에 길을 막고!" 속으로는 '혹시 저놈이 말로만 듣던 도깨비인가? 아니면 삿갓으로 얼굴을 가린 산적 놈인가?' 하며 잔뜩 경계했습니다. 그런데 그 노인이 삿갓 아래서 껄껄 웃으며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허허, 산적이 길을 막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가? 아니면 혹, 도깨비로 보이는가?"

    최 진사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자신의 속마음을 그대로 꿰뚫어 본 것이었습니다. "아, 아니… 그럴 리가… 내, 내가 언제 그런 생각을… " 그가 말을 더듬자, 노인은 이번에는 박 서방을 향해 고개를 돌렸습니다. 박 서방은 '웬 어르신이 이 깊은 산중에 홀로 계실까. 혹시 길을 잃으셨나. 도움이 필요하신 건 아닐까?' 하고 걱정하고 있었지요. 그러자 노인이 또다시 껄껄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 늙은이가 도움이 필요해 보이나? 마음 씀씀이가 참으로 가상하구나."

    박 서방 역시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최 진사는 공포에 질려 벌벌 떨기 시작했고, 하인은 이미 그 자리에 주저앉아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노인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달빛이 안개 사이로 스며들자, 그의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그는 평범한 노인이 아니었습니다. 키가 장대처럼 컸고, 삿갓 아래로 보이는 눈은 숯불처럼 이글거리며 빛나고 있었습니다. 영락없는 도깨비였습니다.

    도깨비가 기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이 고개를 지키는 자. 이곳을 지나는 자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이 나의 소일거리이지. 겉으로 내뱉는 말과 행동이 아닌, 그 안에 숨겨진 진짜 마음 말이다. 보아하니, 너희 둘은 참으로 재미있는 구경거리로구나."

    도깨비는 최 진사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말했습니다. "네놈의 속은 참으로 시끄럽구나. '저 도깨비가 내 재물을 탐내는 것은 아닐까', '저 두 놈을 방패 삼아 도망갈까' 하는 생각들로 가득해! 허나 네 입은 '어르신, 괜찮으십니까' 하고 걱정하는 척하는구나!"
    그리고는 박 서방을 보며 말했습니다. "헌데 이 자의 속은 참으로 맑고 조용하구나. '어르신이 놀라셨을 텐데', '내가 앞을 막아 지켜드려야지' 하는 생각뿐이니. 행색은 네놈이 부자이고 이 자가 가난뱅이인데, 마음의 그릇은 어찌 이리도 다른가!"

    도깨비는 두 사람의 정수리 위에 손을 올릴 듯한 시늉을 하며 선언했습니다. "재미있는 구경을 시켜준 값은 해야지. 지금부터 너희 둘의 그 마음에 값을 매겨, 상을 줄 자에겐 상을 내리고, 벌을 받을 자에겐 벌을 내리겠다. 어디, 누구부터 그 마음의 값을 치러볼까?" 도깨비의 이글거리는 눈이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을 번갈아 훑기 시작했습니다.

    ※ 위선자의 속내, 그 심판

    도깨비의 이글거리는 두 눈이 먼저 향한 곳은,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최 진사였습니다. 공포에 질린 그의 눈에는, 평소의 인자하고 위엄 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비굴한 겁쟁이의 모습만이 남아있었지요. 도깨비는 마치 즐거운 놀잇감을 찾았다는 듯, 입꼬리를 기괴하게 끌어올리며 최 진사의 마음속을 파고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디 보자… 네놈의 마음속은 참으로 볼 만하구나. 작년 이맘때, 극심한 가뭄으로 소작농들이 다 굶어 죽게 생겼다고 네놈을 찾아와 눈물로 호소했을 때, 네놈의 입은 무어라 말했더냐?" 도깨비는 최 진사의 목소리를 그대로 흉내 내며 말했습니다. "'아아, 얼마나 상심이 크신가. 내 일처럼 마음이 아프구려. 힘을 내시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지 않나.' 허허, 참으로 인자한 지주 나리 납셨지."

    도깨비의 조롱에 최 진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아, 아니다! 나는 진심으로 그들을 걱정했…." 하지만 그의 변명은 도깨비의 서슬 퍼런 외침에 막히고 말았습니다.

    "진심? 네놈의 속마음은 이렇게 외치고 있었지! '잘 됐구나, 잘 됐어! 저놈들이 쫄쫄 굶어 죽기 직전에 땅 문서를 헐값에 넘기라고 하면 안 넘기고는 못 배길 테지. 이 가뭄이 바로 나에게는 기회로구나!' 크하하하! 어떠냐, 이게 네놈의 진짜 마음 아니더냐!"

    도깨비의 목소리는 천둥처럼 여우고개 전체를 울렸습니다. 최 진사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가장 추악하고 비밀스러운 속내를, 이 기괴한 요물 앞에서 남김없이 발가벗겨진 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도깨비의 심판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또 어디 보자. 올봄, 마을 절간에 큰 시주를 하여 주지 스님과 마을 사람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했었지? 네놈은 부처님께 절을 하며 두 손 모아 빌었지. '부디 우리 마을이 평안하게 하소서.' 하고 말이야. 허나 네놈의 진짜 소원은 무엇이었더냐?"

    도깨비는 최 진사의 귓가에 악마처럼 속삭였습니다. "'부처님, 보셨습니까? 이 최 진사가 이만큼이나 시주를 했습니다. 이 일이 고을 사또의 귀에 들어가, 다음번 관아의 공사를 제게 맡겨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이 시주한 돈의 열 배, 스무 배를 남겨 먹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랬지, 안 그런가? 네놈에게 부처는 그저 더 큰 이문을 남기기 위한 거래 대상일 뿐이었지!"

    "으으… 으아아악!" 최 진사는 두 귀를 막으며 비명을 질렀습니다. 평생을 공들여 쌓아 올린 위선과 명예의 탑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소리였습니다. 그는 완전히 이성을 잃고 도깨비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빌기 시작했습니다. "잘못했소! 내가 다 잘못했소! 제발 목숨만… 가진 재물의 반을 주겠네! 아니, 전부 다 줄 테니 제발!"

    그 비굴한 모습을 내려다보던 도깨비의 눈이 경멸의 빛으로 가득 찼습니다. "재물? 네놈의 그 더러운 재물은 내가 탐하지 않는다. 허나, 네놈이 그토록 아끼는 것이니만큼, 그에 합당한 벌을 내려주마." 도깨비가 손가락을 들어 최 진사를 가리키자,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최 진사가 입고 있던 값비싼 비단 도포가 눈앞에서 순식간에 누더기처럼 해지고, 색이 바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수백 년의 세월을 한꺼번에 맞은 듯, 옷은 너덜너덜한 삼베 조각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네놈의 위선으로 감싼 옷은 이리 누더기가 될 것이며," 이어서 도깨비가 그의 허리춤을 가리키자, 최 진사가 애지중지하던 묵직한 돈주머니에서 금화와 은화가 돌멩이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금은보화가 아니었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것은 그저 차갑고 쓸모없는 자갈과 조약돌뿐이었습니다. "네놈의 탐욕으로 채운 재물은 한낱 돌멩이로 변할 것이다!"

    최 진사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자신의 누더기 옷과 발밑에 흩어진 돌멩이들을 번갈아 보며 허망한 신음을 내뱉었습니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도깨비는 그를 향해 마지막으로 선언했습니다. "돌아가라. 그리고 네놈의 진짜 모습을 세상에 드러낸 채 살아가거라. 그것이 네 겉과 속에 대한 나의 심판이다!"

    ※ 진솔한 마음, 그 축복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 최 진사는 실성한 사람처럼 바닥에 주저앉아 넋 놓고 울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박 서방과, 공포에 질려 어찌할 바를 모르던 하인 앞으로, 도깨비가 천천히 다가왔습니다. 박 서방은 두려웠지만, 자신의 뒤에 있는 하인을 보호하려는 듯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굳건히 서 있었습니다.

    도깨비의 이글거리던 눈은 어느새 깊은 연못처럼 차분하고 맑게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박 서방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최 진사 때와는 달리, 그의 얼굴에는 조롱이나 경멸 대신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허허. 이 자의 마음속은 참으로 조용하고 따뜻하구나. 가난에 찌들어 힘들 법도 한데, 원망이나 시기심 한 점이 없으니 신기한 일이로다." 도깨비는 박 서방의 지난 기억들을 나직이 읊기 시작했습니다. "어디 보자. 지난여름, 땡볕 아래서 밭을 갈다가 쓰러진 이웃집 늙은이를 보고, 자신의 일을 제쳐두고 그를 업어다 그늘에 눕히고는 마지막 남은 물 한 모금을 먹여주었구나. 그때 네 속마음은 어떠했더냐?"

    도깨비는 박 서방의 순박한 목소리를 흉내 냈습니다. "'아이고, 영감님 큰일 날 뻔했네. 나야 젊으니 괜찮지만, 영감님은 더 쉬셔야 할 텐데. 집에 죽이라도 한 그릇 쑤어다 드려야겠다.' 자신의 배고픔보다 남의 건강을 먼저 걱정했구나."

    박 서방은 얼굴이 붉어지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아, 아닙니다. 그건… 그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내세울 만한 일이 못 됩니다." 그의 말에는 한 치의 꾸밈도 없었습니다.

    도깨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습니다. "또 있다. 며칠 전에는 장에 가서 겨우 번 푼돈으로 아내에게 줄 비녀를 하나 샀지.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다리가 아파 끙끙 앓는 노파를 보고는 그 비녀를 팔아 약을 사주었더구나. 아내에게는 비녀를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하고 말이야. 그때 네 마음은 이랬지. '아내가 서운해하겠지만, 사람 목숨보다 중한 것이 어디 있나. 나중에 내가 더 열심히 일해서 더 좋은 비녀를 사주면 되지.' 라고."

    박 서방은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자신의 소박한 생각들이 전부 드러나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저… 마음이 쓰여 그랬을 뿐입니다. 대단한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겸손한 대답에 도깨비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습니다. "옳거니. 너는 네가 한 선행을 자랑하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여기는구나. 너의 그 마음이야말로 진짜 보물이니, 내 어찌 상을 내리지 않을 수 있겠느냐."

    도깨비는 박 서방이 지고 있던 낡고 닳은 나무 지게를 가리켰습니다. "네 평생의 정직한 땀이 스며있는 그 지게를 내려놓아 보아라." 박 서방이 어리둥절하며 지게를 내려놓자, 도깨비가 그 지게를 향해 손을 한번 휘저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지게의 한쪽 다리 끝에서 아름다운 황금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빛은 점점 커져, 이내 지게 다리 하나가 통째로 순금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세상에!" 박 서방과 하인은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도깨비가 말했습니다. "네 맑은 마음의 무게만큼이다. 이 황금은 네가 흘린 정직한 땀의 대가이니, 너와 네 가족을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해 줄 것이다. 탐욕으로 얻은 재물은 돌멩이로 변하지만, 선한 마음으로 얻은 재물은 대대손손 복을 불러올 것이다."

    그리고 도깨비는 박 서방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했습니다. "허나 이 복을 받고 네 마음이 저 위선자처럼 변한다면, 이 황금은 다시 썩은 나무토막으로 돌아갈 것이니, 부디 지금의 그 맑은 마음을 잃지 말거라. 진정한 부는 곳간에 쌓인 쌀이 아니라, 마음에 쌓인 덕(德)에 있음을 명심하거라."

    그 말을 끝으로, 도깨비는 짙은 안개 속으로 스르르 사라져 버렸습니다. 마치 한바탕 꿈을 꾼 것처럼, 고갯길에는 다시 바람 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돌아왔습니다. 남은 것은 누더기를 걸치고 망연자실해 있는 최 진사와, 눈부신 황금 지게 다리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박 서방뿐이었습니다.

    ※ 뒤바뀐 운명

    도깨비가 사라진 여우고개에는 어색하고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습니다. 칠흑 같던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 동쪽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오기 시작했습니다. 한바탕 꿈을 꾼 것만 같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냉혹한 현실이었습니다. 최 진사는 값비싼 비단옷 대신 남루한 누더기를 걸친 채, 제 발밑에 널브러진 쓸모없는 돌멩이들을 망연히 내려다보며 넋 나간 사람처럼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반면, 박 서방의 낡은 지게 한쪽 다리는 새벽 여명 속에서도 영롱한 황금빛을 발하며 신비로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지요.

    기절했던 하인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이 모든 광경을 본 뒤, 더 이상 최 진사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용히 박 서방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박 서방님… 이제 날이 밝았으니 어서 고개를 내려가시지요." 어느새 하인의 말투는 최 진사를 대할 때보다 더 공손해져 있었습니다. 박 서방은 어찌할 바를 몰라 끙끙 앓고 있는 최 진사를 안쓰럽게 바라보았습니다.

    '저 어르신을 어찌하나… 아무리 큰 벌을 받으셨다지만, 저리 혼자 두면 산짐승에게 해코지라도 당할 텐데.' 그의 착한 마음은 차마 최 진사를 외면하지 못했습니다. 박 서방은 최 진사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어깨를 부축했습니다. "어르신, 기운 내십시오. 우선 마을로 내려가셔야지요." 하지만 최 진사는 그 손길을 뿌리치며 패악을 부렸습니다. "네 이놈! 네놈이 저 요물과 한패가 되어 내 재물을 빼앗은 것이렷다! 당장 내 옷과 돈을 돌려놓지 못할까!"

    그의 적반하장에 박 서방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한숨을 내쉴 뿐이었습니다. 하인이 보다 못해 나섰습니다. "진사 어르신! 정신 차리십시오! 저희가 다 보고 들었습니다. 그건 다 어르신의 마음이 불러온 재앙이지 않습니까!" 이제 아무도 최 진사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최 진사는 박 서방과 하인의 부축을 반강제로 받으며,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올라갈 때는 위풍당당한 주인이었으나, 내려올 때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죄인의 모습이었습니다.

    마을 어귀에 다다르자, 이 기묘한 행차를 본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모두 눈을 비비며 믿지 못했습니다. 고을 최고의 부자인 최 진사가 거지 행색으로 나타나고, 가장 가난한 박 서방이 번쩍이는 황금 지게를 메고 나타났으니 말입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자, 하인이 용기를 내어 지난밤 여우고개에서 있었던 일을 전부 털어놓았습니다. 사람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도깨비를 만난 이야기, 최 진사의 위선이 전부 드러나 벌을 받은 이야기, 그리고 박 서방의 착한 마음이 복을 받은 이야기까지.

    이야기가 끝나자,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최 진사를 향하던 존경의 눈빛은 싸늘한 경멸로 변했고, 박 서방을 향하던 동정의 눈빛은 놀라움과 존경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최 진사를 '어르신'이라 부르지 않았고, 박 서방을 '박 서방님'이라 부르며 길을 터주었습니다. 한평생 쌓아 올린 명성과 위신이 하룻밤 사이에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평생 받아온 무시와 멸시가 하룻밤 사이에 존경으로 뒤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최 진사는 그 차가운 시선들을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떨군 채 자신의 기와집으로 도망치듯 사라졌고, 박 서방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이 어색한 듯, 황금 지게를 단단히 고쳐 메고 자신의 초가집을 향해 묵묵히 걸어갔습니다.

    ※ 진정한 부(富)란 무엇인가

    그날 이후, 마을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최 진사는 두문불출했습니다.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모두 등을 돌렸고, 그의 재산은 도깨비의 저주 때문인지 나날이 줄어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그의 인자한 미소 뒤에 숨겨진 탐욕스러운 마음을 알았기에, 누구도 그와 거래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거대한 기와집에 홀로 갇혀, 밤마다 여우고개에서 잃어버린 자신의 부와 명예를 떠올리며 후회와 원망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요, 떠나간 인심이었습니다.

    반면, 박 서방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는 황금 지게 다리를 팔아 작지만 기름진 논과 밭을 사고, 비가 새던 초가집을 튼튼한 기와집으로 고쳤습니다. 더 이상 굶주림을 걱정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는 결코 거만해지거나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이웃의 어려운 일을 자신의 일처럼 도왔고, 흉년이 들면 자신의 곳간을 열어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곡식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황금 부자'가 아닌 '마음 부자'라 불렀습니다. 그의 집에는 언제나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그가 베푼 선행은 온 마을을 더욱 풍요롭고 따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도깨비가 "이 복을 받고 네 마음이 변하면, 황금은 다시 썩은 나무토막으로 돌아갈 것"이라 했던 말을 평생 가슴에 새기고 살았습니다. 그는 자식들에게 늘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재물이란 있다가도 없는 것이고, 없다가도 생기는 것이다. 허나 사람의 마음 한번 잃으면 다시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 법이니, 늘 진솔하고 바른 마음을 갖는 것을 재물보다 귀히 여겨야 한다."

    세월이 흘러, 박 서방은 마을에서 가장 존경받는 어른이 되어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었고, 그의 자손들 또한 대대로 그 가르침을 이어받아 복을 누리며 살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여우고개를 넘을 때마다 그 도깨비 이야기를 떠올리며, 자신의 마음속을 한번 되돌아보곤 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진정한 부는 곳간에 얼마나 많은 쌀가마니를 쌓아두었느냐가 아니라, 마음에 얼마나 많은 덕(德)과 진심을 쌓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하늘의 눈, 마음의 눈은 속일 수 없다는 평범하지만 가장 중요한 진리를, 여우고개의 도깨비는 그렇게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 들려드린 '마음을 꿰뚫어 보는 도깨비' 이야기, 어르신들의 마음에는 어떤 여운을 남겼습니까? 진정한 부와 복은 결국 맑고 진솔한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옛 어른들의 지혜를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이처럼 올곧은 마음으로 복을 받는 것이 정답이겠으나, 간혹 얄팍한 꾀로 저승의 법칙마저 어겨보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시간에는 아주 흥미로운 주제, 바로 조선 야담 속 '저승사자에게 뇌물 주는 법'을 다뤄볼까 합니다. 과연 저승사자에게 뇌물이 통했을까요? 그 기상천외한 결과가 궁금하시다면, 구독과 좋아요 잊지 마시고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편안한 시간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