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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은 사람 반은 귀신인 비형랑 (삼국유사) / 귀신을 부려 하룻밤 만에 거대한 다리를 놓은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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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깊은 밤, 사람들이 모두 잠든 틈을 타 어둠 속으로 스며드는 기묘한 사내가 있습니다. 낮에는 평범한 관리이지만, 밤이 되면 수많은 귀신과 도깨비를 호령하는 반인반귀의 사나이, 비형랑! 어느 날, 임금은 그를 불러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어명을 내립니다. "네가 정녕 귀신을 부린다면, 백성들을 위해 하룻밤 새에 거친 강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돌다리를 놓아 보거라!" 과연 비형랑은 수많은 귀신들을 부려 이 엄청난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까요? 귀신마저 벌벌 떨게 한 비형랑의 기상천외한 다리 건설기, 지금 시작합니다.

    ※ 1: 낮에는 과묵한 사내, 밤에는 귀신들의 왕으로 군림하는 비형랑

    해가 서산 너머로 자취를 감추고 짙은 어둠이 온 세상을 무겁게 짓누르는 깊은 밤. 도성의 백성들이 하루의 고단함을 잊은 채 깊은 잠에 빠져들 무렵이면, 텅 빈 거리에 기묘하고도 스산한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합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이 시간,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긴 으슥하고 적막한 산기슭이나 버려진 폐가 근처에서는 바람 소리인지 짐승의 울음소리인지 모를 기괴한 소리들이 이따금씩 밤공기를 가르고 들려왔습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귀를 틀어막을 이 소름 끼치는 시간 속을, 마치 자기 집 앞마당을 거닐 듯 유유자적하게 걸어 다니는 한 사내가 있었습니다. 큰 키에 서늘하고도 깊은 눈매를 지닌 그는, 다름 아닌 반은 사람이고 반은 귀신인 '비형랑'이었습니다.

    낮의 비형랑은 그저 도성에서 일하는 과묵하고 평범한 관리 중 한 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남들보다 말이 적었고, 언제나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만을 묵묵히 처리할 뿐이었습니다. 사람들과 굳이 섞여 왁자지껄하게 웃고 떠드는 일도 없었으며, 화려한 옷을 탐하거나 높은 벼슬을 좇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조용히, 마치 그림자처럼 사람들 틈에 섞여 이승의 태양 아래를 걷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고 태양이 자취를 감추는 순간, 그의 내면에 잠들어 있던 또 다른 반쪽의 핏줄이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몸속에는 오래전 억울하게 폐위되어 귀신으로 구천을 떠돌던 옛 임금의 피와, 이승의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기이한 기운이 뒤섞여 흐르고 있었습니다.

    밤이 이슥해지면 비형랑은 자신의 방을 몰래 빠져나와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 그가 향하는 곳은 사람들이 결코 범접할 수 없는 깊고 깊은 산골짜기이거나, 원귀들이 득시글거린다는 버려진 황무지였습니다. 비형랑이 달빛조차 닿지 않는 어두운 공터에 우뚝 서서 알 수 없는 기괴한 언어로 낮게 주술을 읊조리면, 땅 밑에서부터 스멀스멀 푸른 도깨비불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의 이름 없는 혼백들과, 산천을 떠도는 도깨비 무리들은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의 낮고 서늘한 한마디가 바람을 타고 흩어지면, 사방에서 소름 끼치는 기척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머리를 풀어 헤치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원귀들, 뿔이 달리고 커다란 방망이를 든 우락부락한 도깨비들, 그리고 형체조차 짐작할 수 없는 기괴한 잡귀들까지. 이승의 사람이라면 그 모습만 보아도 그 자리에서 기절해 버릴 무시무시한 존재들이, 마치 절대적인 군주를 알현하듯 비형랑의 발밑에 납작 엎드려 조아렸습니다. 비형랑은 결코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과 함께 밤새도록 기이한 잔치를 벌이고,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불가사의한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지새웠습니다. 때로는 억울하게 죽은 귀신의 한을 풀어주기도 했고, 때로는 악한 도깨비를 호통쳐 산 깊은 곳으로 쫓아버리기도 하며 밤의 세계를 다스리는 진정한 지배자로 군림했습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도성 안에는 점차 비형랑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마치 역병처럼 은밀하고도 빠르게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보게, 그 소문 들었는가? 그 과묵한 사내 비형랑 말일세. 밤마다 그림자도 없이 산속으로 사라진다는구먼.'
    '암, 듣고말고. 밤이 되면 눈동자가 시퍼렇게 변하고, 등 뒤로 수천 마리의 귀신 떼를 몰고 다닌다지 않은가! 어찌 사람이 귀신들과 어울려 놀 수 있단 말인가. 필시 그 자는 온전한 사람이 아닐세!'
    '쉿, 목소리 낮추게! 행여나 귀신이 듣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는가. 무서워서 원, 밤에 오줌도 마음대로 누러 나가지 못하겠네 그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렸고, 밤거리에 나서는 것조차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낮에는 평범한 인간의 탈을 쓰고 밤에는 귀신들과 어울려 기괴한 짓을 벌이는 자. 도성 백성들의 두려움은 날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커져갔고, 결국 그 기이한 소문은 담장을 넘고 궁궐의 깊은 곳에 자리한 임금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조용히 자신의 본성을 달래며 살아가고자 했던 비형랑의 비밀스러운 이중생활은, 이제 온 천하가 주목하는 거대한 폭풍의 눈 한가운데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 2: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비형랑을 부른 임금

    궁궐의 깊숙하고 은밀한 전각 안, 밤낮으로 들려오는 흉흉한 소문들로 인해 임금의 심기는 몹시 불편해져 있었습니다.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평안하게 하는 것이 임금의 도리이거늘, 도성 한복판에서 한낱 관리가 귀신과 도깨비를 부린다는 허무맹랑하고도 소름 끼치는 소문이 퍼져 민심을 뒤흔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임금의 골머리를 썩이는 일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도성 외곽을 가로지르는 거친 강물, 바로 '문천' 때문이었습니다. 이 강은 평소에는 잔잔하다가도 비만 오면 성난 용처럼 물살이 거세어져, 툭하면 나룻배가 뒤집히고 백성들이 목숨을 잃는 일이 부지기수였습니다. 나라의 예산을 들여 튼튼한 다리를 놓으려 수없이 시도해 보았으나, 워낙 강바닥이 깊고 물살이 거세어 돌을 쌓아 올리기도 전에 번번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백성들의 원성은 하늘을 찔렀고, 임금은 뾰족한 수가 없어 밤마다 깊은 한숨만 내쉬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거친 강물이라. 거기에 귀신을 부린다는 자의 소문까지... 가만 있자, 어쩌면 이 두 가지 골칫거리를 한 번에 해결할 방도가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임금의 뇌리에 번뜩이는 생각 하나가 스쳐 지나갔습니다. 만약 그 기이한 소문이 사실이라면, 사람의 힘으로 불가능한 일을 귀신의 힘을 빌려 해낼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임금은 지체 없이 사람을 보내 비형랑을 궁궐로 불러들였습니다.

    화려한 용상에 근엄하게 앉은 임금 앞에서도 비형랑은 조금도 주눅 들거나 긴장하는 기색 없이, 그저 무표정하고 차분한 얼굴로 예의를 갖추어 엎드렸습니다. 임금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비형랑의 서늘한 기운을 살피며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네가 바로 그 소문의 비형랑이더냐. 요즈음 도성에 너를 두고 흉흉한 소문이 파다하더구나. 낮에는 과묵하게 일하면서도, 밤만 되면 눈빛이 변하여 수많은 귀신과 도깨비 무리를 거느리고 산천을 쏘다닌다지. 네가 정녕 귀신들을 마음대로 부린다는 그 소문이 한 치의 거짓 없는 사실이냐?"

    비형랑은 고개를 조아린 채 한 치의 떨림도 없는 낭랑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전하, 소문이란 본디 사람의 입을 거치며 과장되기 마련이옵니다. 하오나 소신이 밤의 장막이 내린 뒤 이승을 떠도는 혼백들과 산중의 도깨비들을 만나 그들의 억울함을 달래고 장단을 맞추어 주는 것은 사실이옵니다. 그들은 그저 갈 곳 없는 가여운 기운들일 뿐, 소신이 그들을 억지로 부리거나 세상을 어지럽히는 일은 결단코 없사옵니다."

    '과연, 들은 대로 보통 사내는 아니로구나. 두려움조차 없는 저 서늘한 눈빛하며, 당당한 태도까지.'

    임금은 속으로 감탄하며 무릎을 탁 쳤습니다. 그리고는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이며 단호하고도 엄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습니다.

    "네가 그리 당당하게 말하니 내 너의 능력을 한 번 시험해 보아야겠다. 너도 알다시피 도성 밖의 문천은 물살이 사나워 매년 숱한 백성들이 물에 빠져 목숨을 잃고 있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바위를 세우고 다리를 놓을 수가 없어 나라의 큰 골칫거리가 된 지 오래다. 네가 진실로 수많은 귀신과 도깨비들을 부릴 수 있는 비범한 능력을 지녔다면, 그 힘을 백성을 위해 써야 마땅하지 않겠느냐."

    임금은 잠시 말을 멈추고 비형랑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습니다.

    "나의 어명을 받들라! 오늘 해가 진 후부터 내일 동이 트기 전까지, 단 하룻밤 새에 그 거친 문천 강물 위에 백성들이 안심하고 건널 수 있는 거대한 돌다리를 놓아 보거라! 만약 네가 이 불가능해 보이는 어명을 무사히 완수한다면 네 능력을 인정하고 큰 상을 내릴 것이나, 만약 실패한다면 세상을 미혹하고 요망한 소문을 퍼뜨린 죄를 물어 네 목을 베고 말 것이다. 할 수 있겠느냐?"

    하룻밤 새에 거친 강물 위에 커다란 돌다리를 놓으라는 것. 그것은 수백, 수천 명의 장정들이 몇 달을 매달려도 이뤄낼까 말까 한 엄청난 대공사였습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그 불가능한 어명 앞에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 애원했을 터이나, 비형랑의 표정에는 작은 동요조차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입가에 옅은 미소마저 띠며 천천히 고개를 숙였습니다.

    "전하의 깊은 뜻을 받들겠사옵니다. 소신이 비록 미천한 몸이오나, 오늘 밤 저승의 무리들을 모두 불러 모아 백성들을 징검다리 삼아 괴롭히는 저 거친 강물 위에, 천 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을 튼튼하고 거대한 돌다리를 세워 보이겠사옵니다. 내일 아침 해가 떠오르면, 전하께서 직접 그 다리를 밟고 건너보시옵소서."

    임금 앞을 물러 나온 비형랑의 등 뒤로, 석양의 붉은빛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이승과 저승을 잇는 거대한 역사가 시작될 길고 긴 밤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 3: 비형랑의 기괴한 부름에 사방에서 몰려드는 귀신과 도깨비 무리

    그날 밤, 하늘에는 별빛 하나 보이지 않을 만큼 두꺼운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습니다. 달빛조차 자취를 감춘 칠흑 같은 그믐밤, 뼛속까지 스며드는 차갑고 스산한 바람만이 윙윙거리며 텅 빈 들판을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도성의 백성들은 행여나 귀신이 잡아가기라도 할까 두려워 일찌감치 대문을 걸어 잠그고 숨을 죽인 채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습니다. 이 지독한 어둠 속에서 오직 한 사람, 비형랑만이 검은 도포 자락을 펄럭이며 거친 물살이 소용돌이치는 문천의 강둑 위에 우뚝 서 있었습니다.

    강물은 마치 성난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무서운 속도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콰르릉, 솨아아악!'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바위에 부딪히는 물소리는 사람의 넋을 쏙 빼놓을 만큼 위협적이었습니다. 이토록 거칠고 깊은 강 한가운데에 돌을 쌓고 기둥을 세운다는 것은 이승의 잣대로는 명백한 불가능이었습니다. 하지만 강물을 굽어보는 비형랑의 서늘한 두 눈동자에는 흔들림 없는 강한 확신만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는 천천히 눈을 감고, 몸속에 흐르는 또 다른 세계의 기운을 서서히 끌어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비형랑이 두 눈을 번쩍 뜨자, 그의 눈동자에서 푸르스름하고도 섬뜩한 안광이 번뜩였습니다. 그는 두 팔을 하늘을 향해 넓게 벌리고, 폐부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올린 기괴하고도 우렁찬 목소리로 텅 빈 밤하늘을 향해 주술을 토해냈습니다.

    "이승의 껍데기를 벗고 저승의 장막에 숨어든 자들아! 산천을 떠돌며 밤을 지배하는 도깨비와 혼백들은 모두 내 목소리를 들으라! 오늘 밤, 나 비형랑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방에 흩어진 모든 무리들은 단 하나도 빠짐없이 이곳 문천의 강둑으로 모여들어 나의 명을 받들라!"

    그의 목소리는 단순한 인간의 외침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승의 공기를 찢고 저승의 문을 두드리는 무시무시한 파동이 되어, 깊은 산속, 버려진 폐가, 깊은 우물 속, 그리고 오래된 고분들 속으로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거짓말 같은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것도 없던 어두운 허공에서 수십, 수백 개의 시퍼런 도깨비불들이 '푸르륵' 소리를 내며 하나둘씩 피어오르더니, 순식간에 강둑 전체를 대낮처럼 환하게 밝히기 시작했습니다. 그 기괴한 푸른 불빛 아래로, 산천초목을 뒤흔드는 소름 끼치는 소리들이 사방에서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우히히힛! 비형랑 님이 부르신다!"
    "어기야 디야! 어서 가자, 대왕님의 부름이다!"

    바람을 타고 날아온 듯 형체 없이 일렁이는 허연 원귀들, 머리에 커다란 뿔이 돋아나고 철퇴를 쥔 흉측한 도깨비들, 덩치가 산만 한 외눈박이 요괴들까지. 이승에서는 그 이름조차 다 알 수 없는 수천, 수만의 기괴한 무리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어 비형랑의 발아래에 엎드렸습니다. 사방은 온통 귀신들이 내뿜는 차갑고 비릿한 냉기와, 그들이 지껄이는 기괴한 소음으로 가득 차 흡사 지옥의 한 장면을 방불케 했습니다.

    비형랑은 엎드린 귀신과 도깨비 무리를 향해 준엄하고도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로 호통을 쳤습니다.

    "잘 듣거라! 오늘 해가 뜨기 전까지, 저 미쳐 날뛰는 강물 한가운데에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거대하고 튼튼한 돌다리를 놓아야 한다! 저 멀리 첩첩산중의 커다란 바위들을 깨어 옮겨오고, 가장 단단한 나무들을 뿌리째 뽑아와 기둥을 세워라! 만약 날이 밝을 때까지 이 역사를 끝마치지 못하거나 농땡이를 부리는 자가 있다면, 내 놈들의 혼백을 갈기갈기 찢어 영원히 구천을 떠돌지도 못하게 만들어버릴 것이다! 알겠느냐!"

    "존명! 으하하핫! 바위를 깨자! 산을 허물자!"

    비형랑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수만 마리의 귀신과 도깨비들은 일제히 괴성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어떤 무리들은 쏜살같이 깊은 산속으로 날아가 거대한 집채만 한 바위들을 두 손으로 번쩍번쩍 들어 올렸고, 또 어떤 무리들은 아름드리나무들을 단숨에 뽑아 어깨에 짊어지고 날아왔습니다. 인간 장정 수십 명이 밧줄을 묶고 끙끙대야 겨우 굴릴 수 있는 거대한 바윗덩어리들이, 귀신들의 손에 이끌려 마치 가벼운 깃털처럼 둥둥 허공을 날아 강물 위로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콰콰쾅! 쩌엉! 우지끈!'

    거친 강물 소리는 어느새 바위가 부딪히고 산이 허물어지는 거대한 굉음에 묻혀버렸습니다. 도깨비들은 무시무시한 철퇴로 바위를 다듬었고, 형체 없는 귀신들은 차가운 기운으로 거센 물살을 얼어붙게 만들어 돌기둥을 세울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이승의 법칙을 완전히 무시한 기괴하고도 장엄한 귀신들의 건축 역사가 맹렬하게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비형랑은 펄럭이는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강둑에 서서, 이 아수라장 같은 현장을 지휘하며 매섭게 눈을 빛내고 있었습니다.

    ※ 4: 어둠 속에서 펼쳐지는 장엄하고도 기괴한 노동

    칠흑 같은 어둠이 짙게 깔린 문천의 강둑은 그야말로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져 내린, 기괴하고도 장엄한 수라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늘을 두껍게 뒤덮은 먹구름 사이로 이따금씩 시퍼런 천둥 번개가 내리칠 때마다, 그 번쩍이는 섬광 아래로 수만 마리의 귀신과 도깨비들이 얽히고설켜 거대한 돌덩이를 나르는 끔찍하고도 경이로운 광경이 찰나처럼 환하게 드러나곤 했습니다. 바람을 가르는 귀신들의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도깨비들의 거친 숨소리, 그리고 그들이 내지르는 기괴한 노동요가 한데 뒤섞여 산천을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인간의 귀로 듣는다면 단숨에 고막이 찢어지고 넋을 잃어버릴 만큼 끔찍한 굉음이었으나, 이 압도적인 혼돈의 한가운데서 비형랑만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바위산처럼 우뚝 서서 이 거대한 역사를 진두지휘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나선 것은 물의 기운을 다스리는 서늘한 빙의귀들과 억울하게 강물에 빠져 죽은 물귀신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수백, 수천 마리씩 기괴한 무리를 지어 미친 듯이 소용돌이치는 강물 한가운데로 거침없이 뛰어들었습니다. 강물에 닿자마자 그들이 뿜어내는 저승의 지독하고도 차가운 음기가 맹렬하게 퍼져나갔고, 방금 전까지 산이라도 집어삼킬 듯 으르렁대던 거친 강물은 순식간에 하얀 성에를 내뿜으며 꽁꽁 얼어붙기 시작했습니다. 얼음이 갈라지고 솟아오르며 거대한 빙벽이 형성되자, 물길이 막힌 강바닥이 훤히 그 속살을 드러냈습니다.

    "지금이다! 물길이 열렸으니 어서 바위를 날라 교각의 뼈대를 세워라!"

    비형랑의 호통이 벼락처럼 밤하늘을 가르자, 이번에는 덩치가 산만 하고 머리에 굽은 뿔이 달린 거대한 산도깨비들이 움직일 차례였습니다. 그들은 저 멀리 수백 리 떨어진 첩첩산중으로 날아가, 웬만한 초가집보다 훨씬 거대한 화강암 바위들을 두 손으로 번쩍번쩍 들어 어깨에 짊어지고 날아왔습니다. 도깨비들이 얼어붙은 강바닥 위로 쿵, 쿵 소리를 내며 무거운 바위들을 거침없이 내던질 때마다, 대지가 마치 대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미친 듯이 요동쳤고 하늘로 솟구친 거대한 흙먼지와 얼음 조각들이 주변을 온통 희뿌옇게 물들였습니다.

    "우라차차! 조금만 더! 바위를 저쪽으로 밀어붙여라!"

    수십 마리의 외눈박이 도깨비들이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커다란 쇠망치를 휘둘러 바위의 거친 모서리를 무자비하게 깎아냈습니다. 메질 한 번에 불꽃이 사방으로 튀며 굉음이 진동했습니다. 바위가 어느 정도 다듬어지자, 이번에는 손톱이 칼날처럼 날카롭고 몸집이 날랜 원귀들이 개미 떼처럼 달라붙어 돌과 돌 사이의 틈새를 찰흙을 이겨 붙이듯 정교하게 맞추어 나갔습니다. 인간 세상의 그 어떤 뛰어난 석공이나 접착제를 쓰지 않았건만, 귀신들의 강력한 요력으로 짜맞춰진 거대한 돌덩이들은 마치 태초부터 하나의 거대한 바위였던 것처럼 단 1촌의 빈틈도 없이 완벽하게 맞물려 거대한 기둥으로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이 끔찍하고도 위대한 역사의 한가운데, 깎아지른 듯한 강둑 제일 높은 곳에 선 비형랑의 펄럭이는 검은 도포 자락 사이로는 수만 마리의 요괴들을 압도하고도 남을 만큼 서늘하고 강렬한 기백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그의 두 눈에서는 시퍼런 안광이 쉴 새 없이 번뜩였고, 갈라진 입술 사이로는 귀신들을 통제하는 기괴하고도 복잡한 주술이 끊임없이 흘러나왔습니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겉보기와 달리 타는 듯한 조바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고 있다. 인간 세상의 법도와 한계를 뛰어넘어 이 거대한 역사를 이루려면, 오직 이 밤의 어둠이 다하기 전에 저들을 이끌어 상판을 모두 덮어야만 한다. 양기가 솟아오르면 저들은 모조리 재가 되어 흩어질 것이니,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다.'

    비형랑은 짙은 먹구름 사이로 살짝 엿보이는 별자리의 위치를 매섭게 올려다보았습니다. 북두칠성의 꼬리가 이미 자정을 훌쩍 넘겨 새벽의 문턱을 향해 빠르게 기울어가고 있었습니다. 귀신들은 음기가 가득한 밤에는 산을 뽑을 듯한 천하무적의 힘을 발휘하지만, 생명을 잉태하는 아침의 붉은 해가 뜨는 순간 그 요력을 잃고 파멸할 운명이었습니다.

    "이놈들! 꾸물거리지 마라! 북망산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교각이 완성되었으니 어서 다리의 상판을 덮을 거대한 평석을 대령하라! 해가 뜨기 전에 이 다리를 완성하지 못하는 놈들은 내 손에 혼백이 찢길 줄 알아라!"

    비형랑의 살기 어린 호통이 내리꽂히자, 공포에 질린 도깨비들은 입에서 단내를 풍기며 더욱 다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쿵! 쾅! 쩌어엉! 엄청난 굉음과 함께 산허리에서 통째로 뜯겨 나온 평평하고 거대한 암석들이 밤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으며 날아와 교각 위로 무지막지하게 얹혀지기 시작했습니다. 다리의 형태가 비로소 웅장한 무지개 모양을 갖춰가던 바로 그 찰나였습니다.

    교각의 정중앙을 연결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앉던, 무게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가장 거대한 덮개돌 하나가 갑자기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아래에서 돌의 수평을 맞추기 위해 받치고 있던 수백 마리의 잡귀들이 거대한 바위의 무게에 짓눌려 터져나갈 위기에 처했습니다. 만약 저 거대한 덮개돌이 강물로 추락하여 교각을 강타한다면, 다리의 중심축이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려 그동안의 끔찍한 수고가 완벽한 물거품이 될 절체절명의 위기였습니다.

    "아이고, 바위가 무너진다! 피하라!"
    "으아아악! 대왕님 살려주십시오!"

    짓눌린 귀신들이 혼비백산하여 괴성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지려는 찰나, 비형랑이 강둑에서 허공을 향해 몸을 맹렬하게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는 허리춤에서 푸른빛이 감도는 부적 세 장을 번개처럼 꺼내어 허공에 흩뿌리며 벼락같이 소리쳤습니다.

    "멈추어라! 만물의 무게와 세상의 이치는 오직 나의 명을 따를지니!"

    비형랑의 두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강력하고도 파괴적인 요력이 허공에서 붉은빛의 거대한 사슬 수십 개로 변하더니, 추락하며 기울어지던 거대한 덮개돌을 꽁꽁 옭아매어 허공에 옴짝달싹 못 하게 고정시켜 버렸습니다. 비형랑의 이마에는 굵은 핏줄이 돋아났고, 그의 턱선을 타고 검붉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렸습니다. 인간의 몸으로 그 엄청난 무게를 요력만으로 버텨내는 것은 뼈가 깎이는 고통이었습니다.

    "지금이다, 이 멍청한 것들아! 내가 버티고 있을 때 어서 빈틈에 가장 단단한 쐐기돌을 박아 넣어라! 단 1촌의 오차도 허용치 않겠다! 어서!"

    비형랑의 초인적인 힘과 목숨을 건 카리스마에 압도된 도깨비들은 재빨리 정신을 다잡았습니다. 그들은 거대한 쐐기돌을 들고 날아가 평석의 기울어진 틈새로 미친 듯이 달라붙어 무자비한 망치질을 퍼부어댔습니다. '쾅! 쾅! 쾅쾅쾅!' 산이 무너지는 듯한 메질 소리가 수십 번 이어지고, 마침내 평석은 완벽한 수평을 되찾으며 교각 위에 흔들림 없이 단단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비형랑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붉은 사슬을 거두어들이자, 짓눌릴 뻔했던 귀신들 사이로 안도의 한숨이 기괴한 바람 소리처럼 강물을 타고 퍼져나갔습니다.

    시간은 인간의 사정이나 요괴의 절박함을 봐주지 않고 무심하게 흘러갔습니다. 어느덧 먹물처럼 짙었던 동쪽 하늘 끝자락이 희끄무레하게 탈색되며, 스산한 새벽안개가 물안개와 섞여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밤새 거센 강물 소리를 압도하며 이어졌던 귀신들의 끔찍한 망치질 소리와 괴성도 작업이 막바지에 다다르며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습니다. 비형랑의 온몸은 이미 한계를 까마득히 뛰어넘은 요력 소모로 인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덜덜 떨리고 있었지만, 그의 창백한 입가에는 마침내 길고 긴 안도의 옅은 미소가 번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시선 끝에는, 어젯밤까지만 해도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건널 수 없을 것 같았던 미쳐 날뛰던 문천 강물 위로, 거대한 산맥이 누운 듯 웅장하게 뻗어 나간 돌다리가 완벽한 자태를 뽐내며 완성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5: 아침 햇살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돌다리 '귀교'

    "꼬끼오! 꼬꼬꼬꼬!"

    저 멀리 인가에서 밤의 장막을 찢고 새벽의 도래를 알리는 수탉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정적을 깨고 울려 퍼졌습니다. 그 소리는 이승의 사람들에게는 그저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일상적인 소리에 불과했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역사를 벌이던 요괴들에게는 밤의 세계를 거두어들이는 절대적이고도 파멸적인 신호탄과도 같았습니다. 아침 이슬을 가득 머금은 첫 햇살이 붉고 찬란한 띠를 두르며 동쪽 산등성이 너머로 위풍당당하게 고개를 내밀자, 밤새도록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강둑을 새까맣게 덮고 있던 수만 마리의 귀신과 도깨비 무리들이 일제히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으아아악! 해가 뜬다! 붉은 양기가 몰려온다!"
    "내 몸이 타들어 간다! 어서 어둠 속으로 숨어라! 흩어져라!"

    시퍼런 도깨비불들은 뜨거운 불판에 물이 닿은 듯 '치이익' 소리를 내며 하얀 연기로 변해 허공으로 스러져 갔고, 산처럼 거대했던 요괴들의 흉측한 형체는 아침안개 속으로 스며들듯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귀신들이 밤새 뿜어내던 지독한 음기와 비릿한 흙냄새, 그리고 죽음의 냄새가 썰물처럼 가시고, 그 자리에는 상쾌하고 맑은 아침의 공기만이 가득 채워졌습니다. 그리고 그 맑게 갠 새벽안개 속에서, 마침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거대한 기적의 실체가 이승의 태양 아래 그 압도적이고도 웅장한 모습을 온전히 드러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얄팍한 솜씨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기괴하면서도 숭고한 아름다움을 지닌 거대한 돌다리였습니다. 수십 톤에 달하는 거대한 화강암과 시퍼런 청석들이 아무런 이음새나 회반죽의 흔적도 없이 그 자체로 완벽하게 맞물려, 거칠게 소용돌이치는 문천 강물을 굳건하게 가로지르고 있었습니다. 다리를 떠받치고 있는 육중한 교각들은 마치 승천하려는 성난 용이 강바닥을 굳세게 움켜쥔 발톱처럼 위압적이었고, 둥글게 굽어진 다리의 거대한 상판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전설 속 봉황의 날개처럼 유려하고도 아찔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의 목숨을 수없이 앗아갔던 그 무시무시하고 포악한 강물도, 귀신들이 하룻밤 새에 쌓아 올린 이 압도적인 다리 아래에서는 그저 다리의 위용에 짓눌린 듯 얌전한 시냇물처럼 조용히 소리를 죽여 흘러갈 뿐이었습니다.

    다리 한가운데에 홀로 우뚝 서 있던 비형랑은, 밤새 자신의 뼈와 살을 깎아내는 듯한 요력 소모에 지친 듯 거친 숨을 고르며 방금 떠오른 붉은 태양을 고요히 바라보았습니다. 밤의 세계를 지배하던 그 서늘하고 공포스럽던 요괴의 왕은 온데간데없고, 그의 창백했던 얼굴에 아침 햇살이 따스하게 스며들자 언제 그랬냐는 듯 그는 다시 과묵하고 평범한 이승의 관리로 되돌아와 있었습니다. 그의 옷자락만이 아침 바람에 가볍게 흩날릴 뿐이었습니다.

    이윽고 날이 완전히 밝아 도성이 활기를 띠기 시작할 무렵, 어젯밤 내린 그 불가능한 어명의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임금의 거대한 행차가 문천 강둑으로 당도했습니다. 수십 명의 호위 무사와 대신들을 거느리고 화려한 어가에서 내린 임금은,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마주하고는 벼락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그 자리에 돌처럼 굳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임금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뒤따르던 콧대 높은 대신들도 체면을 잊은 채 입을 떡 벌리고, 두 눈을 거칠게 비비고 또 비비며 자신들이 단체로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습니다.

    "이, 이럴 수가... 천지신명이시여, 이것이 정녕 현실이란 말인가? 내가 아직도 깊은 밤 침소에서 꿈속을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니더냐!"

    임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홀린 듯 천천히 다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단 하룻밤이었습니다. 수천 명의 장정을 동원하여 나라의 창고를 비워가며 십 년을 매달려도 이룩할 수 없을 거라 확신했던 그 거대한 돌다리가, 한 치의 오차나 흔들림도 없이 강물 위에 버젓이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 임금은 조심스럽게 떨리는 발을 내디뎌 다리 위로 올라섰습니다. 바닥을 덮은 거대한 평석들은 수백 대의 무거운 마차가 동시에 전속력으로 내달려도 끄떡없을 만큼 바위산처럼 단단하고 견고했습니다.

    다리 한가운데서 먼 곳을 응시하다 임금의 행차를 보고 조용히 엎드려 있는 비형랑을 발견한 임금은, 놀라움과 경외감이 뒤섞인 상기된 얼굴로 체통도 잊은 채 급히 다가가 그의 두 손을 덥석 맞잡았습니다.

    "비형랑! 네가 정녕, 네가 정녕 해내었구나!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이 거대한 역사를 네가 저승의 귀신들을 부려 단 하룻밤 만에 완성하다니! 이는 필시 하늘이 내린 거대한 기적이요, 짐과 이 나라 백성들에게 내린 크나큰 축복이로다! 내 어찌 너의 그 신이하고 위대한 능력을 한낱 요망한 소문으로 치부하고 의심했단 말이냐. 내 너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마!"

    임금의 눈가에는 벅차오르는 감격의 눈물이 맺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형랑은 임금의 극찬 앞에서도 교만하지 않고, 한없이 차분하고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습니다.

    "전하, 소신은 그저 백성을 어여삐 여기시는 전하의 숭고한 어명을 받들어 밤의 무리들을 잠시 움직였을 뿐이옵니다. 이 다리를 엮은 것은 저승을 떠도는 요괴들의 차가운 요력이지만, 이 다리를 세운 진짜 힘은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전하의 뜨겁고 어진 마음이옵니다. 부디 이 다리를 밟고 지나갈 가여운 백성들이 더 이상 거친 물살 속에서 물귀신의 원혼에 희생되지 않고, 평안히 강을 건너기를 바랄 뿐이옵니다."

    도성에 기적이 일어났다는 소문은 발 없는 말처럼 순식간에 골목골목으로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잠에서 깨어 소문을 들은 백성들은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너도나도 문천 강둑으로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습니다. 거대한 돌다리의 믿기 힘든 위용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백성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제히 땅을 치며 환호성을 터뜨렸습니다.

    "만세! 천지신명 만세! 전하 만세! 비형랑 나으리 만세!"
    "아이고, 이제 장마가 져도 목숨을 걸고 위태로운 나룻배를 타지 않아도 되겠구나! 우리를 살리셨다! 이것이 바로 귀신이 백성을 위해 지은 다리, '귀교(鬼橋)'로구나!"

    백성들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다리 위로 올라가 덩실덩실 춤을 추며 강을 건넜고, 멀찌감치 서 있는 비형랑을 향해 땅에 엎드려 수없이 절을 하며 감사의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귀신과 어울리는 흉측한 자라며 비형랑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워하고 피했던 사람들은, 이제 그를 끔찍한 재난에서 백성을 구한 위대한 영웅이자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구원자로 우러러보게 되었습니다. 임금은 비형랑의 거대한 공을 크게 치하하며 도성의 중요한 관직을 하사했고, 이로써 비형랑은 이승의 인간 세상과 저승의 귀신 세계, 양쪽 모두에서 절대적인 권위와 존경을 한 몸에 쥐게 되었습니다.

    ※ 6: 비형랑의 이름 석 자가 잡귀를 쫓는 절대적인 부적이 된 사연

    문천에 거대한 돌다리를 세운 그 역사적인 사건 이후, 비형랑의 명성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 높아졌습니다. 임금은 비형랑의 신이한 능력을 깊이 신임하여 그를 항상 측근에 두고, 국정의 크고 작은 일에 그의 비범한 통찰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눈 내리는 고요한 겨울날, 임금이 비형랑을 은밀히 처소로 불러 조용히 물었습니다.

    "비형랑아, 네가 거느리고 부리는 그 수많은 밤의 무리들 중에, 혹시 이승의 율법을 따르며 인간의 정사에 참여하여 나랏일을 도울 만큼 뛰어나고 지혜로운 자가 있느냐? 내 이 나라를 더욱 부강하게 만들고자 하나, 곁에 쓸 만하고 충직한 인재가 부족하여 늘 마음이 무겁구나."

    비형랑은 임금의 물음에 잠시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습니다.

    "예, 전하. 소신이 거느린 저승의 무리 중 '길달(吉達)'이라 불리는 요괴가 한 놈 있사옵니다. 그는 본디 무예가 하늘을 찌를 듯 출중하고 온갖 둔갑술에 능통하며, 웬만한 인간의 학자들보다 셈이 빠르고 지혜로우니 도성의 굳건한 방어나 건축의 대업을 맡기신다면 필시 나라에 큰 보탬이 될 것이옵니다. 허나 그는 짐승의 본성이 남아있어 다스리기가 까다로우니, 소신이 엄히 일러두겠사옵니다."

    임금은 비형랑의 말을 듣고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그날 밤, 비형랑은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길달을 불러내었습니다. 그리고 강력한 주술을 걸어 길달의 기괴한 본모습을 감추고, 아주 훤칠하고 기골이 장대한 이승의 훌륭한 사내 형상으로 완벽하게 둔갑시킨 뒤 다음 날 아침 임금에게 천거했습니다. 길달은 과연 비형랑이 보증한 대로 인간의 범주를 뛰어넘는 비범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임금은 길달의 출중한 무예와 뛰어난 식견에 크게 감탄하며 도성의 성곽 방어를 책임지는 막중한 벼슬을 내렸습니다. 길달은 초인적인 힘과 지혜로 충실하게 임무를 수행하여, 도성의 낡은 성문을 크고 튼튼하게 다시 짓는 등 눈부신 공을 세웠습니다. 사람들은 잘생기고 능력 있는 그가 지은 성문을 '길달문'이라 부르며 그의 솜씨에 감탄해 마지않았습니다.

    하지만 짐승은 짐승의 피비린내 나는 숲이 그립고, 귀신은 뼛속까지 시린 어둠의 그림자를 갈망하는 법이었습니다. 길달이 아무리 사람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높은 벼슬자리에 올랐다 한들, 그의 핏속에 흐르는 요괴의 본능마저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낮에는 답답한 관복을 입고 간사한 인간들의 규율과 예법에 얽매여 벼슬아치 노릇을 하고, 매일같이 이승의 뜨겁고 맑은 양기를 온몸으로 쐬는 일은 음기로 똘똘 뭉친 귀신 길달에게 점차 피부가 타들어 가고 숨이 턱턱 막히는 지독한 고통으로 다가왔습니다. 처음에는 비형랑의 끔찍한 분노가 두려워 억지로 참아 넘겼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길달의 시꺼먼 마음속에는 인간 세상에 대한 환멸과, 밤의 산천을 자유롭게 누비며 피를 탐하던 과거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갈망이 독버섯처럼 피어올랐습니다.

    '아아, 지긋지긋하고 역겹구나. 이 좁디좁고 위선적인 인간들의 세상에서 숨을 죽이고 광대 노릇을 하며 살아야 하다니! 내가 왜 저 약해빠지고 어리석은 인간들의 법도에 얽매여 굽실거려야 한단 말인가! 비형랑 그 반쪽짜리 귀신 놈이 두렵기는 하나, 더 이상은 이 빛이 내리쬐는 지옥 같은 이승에서 단 하루, 아니 단 한 시진도 버틸 수가 없다! 나는 짐승이다! 나는 밤의 지배자다!'

    결국 요괴의 본능을 억누르지 못한 길달은 이성을 완전히 상실하고, 비형랑과의 맹세를 깨는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배신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보름달이 유난히 밝게 떠오른 어느 밤, 길달은 입고 있던 화려한 관복을 갈기갈기 찢어 내팽개치고, 뼈가 뒤틀리는 기괴한 소리와 함께 본래의 모습인 소름 끼치게 거대한 여우의 모습으로 둔갑했습니다. 꼬리가 아홉 개나 달린, 집채만 한 흉측한 요호로 변한 길달은 인간의 도성을 뒤로한 채 담장을 훌쩍 뛰어넘어 자유를 찾아 첩첩산중을 향해 미친 듯이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소식은 바람을 타고 이내 비형랑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자신의 절대적인 명령을 거역하고 인간 세상을 기만한 길달의 배신 소식을 들은 비형랑의 두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끔찍하게 얼어붙었습니다. 방 안의 공기가 일순간에 얼어붙을 만큼 무시무시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감히 나의 명을 어기고 짐승의 저열한 길을 택하다니. 요괴의 헛되고 썩어빠진 본성을 끝내 버리지 못한 미물에게 더 이상의 자비란 없다. 이승과 저승의 엄격한 질서를 어지럽힌 그 죄, 영혼을 찢어 목숨으로 갚게 하리라!"

    비형랑은 즉시 텅 빈 방 한가운데 앉아, 천지가 진동할 무시무시한 요력을 뿜어내며 파멸의 주술을 외웠습니다.

    "어둠의 장막에 숨은 나의 충실한 군사들은 들으라! 지금 당장 도망친 짐승, 배신자 길달의 비린내 나는 흔적을 쫓아라! 산을 뒤집고 강을 말려서라도 그놈의 숨통을 끊어 내 앞에 그 찢겨진 혼백을 대령하라! 단 한 조각의 살점도 남기지 마라!"

    비형랑의 살기 어린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고요하던 밤의 장막을 뚫고 수만 마리의 귀신과 도깨비 정예 군단이 괴성을 지르며 하늘로 솟아올라 길달의 뒤를 맹렬하게 쫓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요력과 둔갑술이 뛰어난 길달이라 한들, 하늘과 땅을 빈틈없이 뒤덮으며 포위망을 좁혀오는 비형랑의 거대한 귀신 군단을 끝까지 따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며칠 밤낮을 쉬지 않고 산등성이를 넘나드는 끔찍하고도 처절한 추격전 끝에, 결국 기력이 다한 길달은 험준한 산봉우리 끝자락, 발아래로 시퍼런 강물이 굽이치는 깎아지른 벼랑 끝에 몰리고 말았습니다.

    "살려주시오! 아이고, 내 잘못했소! 내 다시는 인간 세상은 물론이고 비형랑 님의 구역 근처에는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을 테니,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시오! 내가 짐승의 본성을 이기지 못해 미쳤었소!"

    아홉 개의 꼬리를 늘어뜨린 거대한 여우의 모습으로 바닥에 엎드려 흙바닥에 피눈물을 흘리며 처절하게 애원했지만, 비형랑의 절대적인 명을 받고 분노에 찬 귀신들에게 요괴를 향한 동정이나 자비 따위는 없었습니다.

    "비형랑 님의 지엄한 명을 거역한 배신자에게 내일의 어둠은 없다!"

    선봉에 선 우락부락한 도깨비들이 가시 돋친 쇳덩어리 철퇴를 자비 없이 내리쳐 길달의 육신을 무참히 박살 내었고, 뒤이어 형체 없는 원귀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어 피투성이가 된 길달의 혼백을 수만 갈래로 갈기갈기 찢어 발겼습니다. 길달은 마지막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구천을 영원히 떠돌지조차 못하게 완벽하게 소멸되어 버렸습니다. 이승의 따뜻한 삶을 갈망하다 끝내 어두운 짐승의 본성을 이기지 못한 요괴의 참혹하고도 처절한 최후였습니다.

    이 끔찍하고도 잔혹한 처형의 소문은 밤바람을 타고 곧바로 온 도성과 산천을 떠도는 귀신들의 세계에 파다하게 퍼져나갔습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그 강한 길달조차 비형랑의 분노 앞에서는 하루살이처럼 비참하게 찢겨 죽었다는 사실에, 이승과 저승을 떠도는 모든 잡귀와 도깨비들은 극심한 공포에 질려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비형랑의 검은 그림자만 스쳐도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기 바빴고, 심지어 '비형'이라는 이름 두 글자만 바람에 실려와도 오금을 저리며 십 리 밖으로 줄행랑을 쳤습니다.

    이 속 시원한 사실을 알게 된 도성의 백성들은 무릎을 탁 치며 환호했습니다.

    "옳거니! 그 무시무시한 귀신과 도깨비 놈들이 비형랑 나으리를 이토록 뼛속 깊이 두려워한다니, 세상에 이보다 더 강력하고 든든한 액막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날부터 백성들은 커다란 백지에 비형랑의 이름 석 자를 정성껏, 그리고 큼지막하게 써서 각자의 집 대문과 기둥에 단단히 붙여두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악독하고 독한 전염병을 옮기는 악귀나 사람의 정신을 홀리는 사악한 요괴라 할지라도, 어느 집 문앞에 붙은 '비형랑'이라는 검은 글자만 보면 찢겨 죽은 길달의 처참한 최후가 떠올라 비명을 지르며 도망을 쳤습니다. 그렇게 한때는 귀신과 어울린다며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비형랑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귀신을 다스리는 절대적인 군주이자, 이승의 나약한 백성들을 온갖 질병과 잡귀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는 든든하고 신성한 수호신으로 천년만년 사람들의 가슴과 역사 속에 깊이 뿌리내리게 되었습니다. 밤이 깊어질수록 그의 이름은 인간의 문 앞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부적이 되어 빛나고 있었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사람의 몸과 귀신의 기운을 동시에 지닌 사나이, 비형랑의 신비로운 이야기 어떻게 들으셨나요? 하룻밤 새에 거대한 다리 '귀교'를 놓아 백성을 이롭게 하고, 끝까지 귀신들을 통제하여 세상을 지켜낸 그의 카리스마가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악귀들마저 두려움에 떨게 만들어 우리 조상들의 든든한 부적이 되어주었던 비형랑. 오늘 밤 여러분의 방문 앞에도 비형랑의 이름 석 자가 나쁜 꿈과 근심을 모두 막아주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야기가 흥미로우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부탁드리며, 다음에도 더 기묘하고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평안한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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