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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던진 도깨비의 선물 , 그 안에 숨은 도깨비의 비밀 『해동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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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에잉, 이놈의 도깨비" 밤마다 지붕에 돌을 던지는 정체불명 도깨비 괘씸해서 매일 아침 돌을 쓸어 모았는데... 그 돌멩이의 정체를 알게 된 순간 가난한 박 영감은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고 맙니다. 과연 그가 발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디스크립션
'한국 구비문학대계'에 실린 재미있는 도깨비 이야기. 가난하지만 선량한 박 영감. 밤마다 도깨비가 던지는 돌멩이 소리에 잠을 못 이룹니다. 매일 아침 불평하며 쓸어 모은 그 돌멩이 더미. 그 안에 박 영감의 인생을 바꿀 엄청난 비밀이 숨어 있었습니다.
※ 가난하지만 선량한 '박 영감'
옛날 옛적, 경상도 어느 깊은 산골 마을, 그 마을에서도 한참 떨어진 산기슭에 '박 영감'이라 불리는 늙은이가 홀로 살고 있었습니다. 박 영감은 본래 마음씨가 비단결처럼 고왔으나, 팔자가 기구하여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젊어서는 장마에 논밭을 잃고, 중년에는 괴질(怪疾)로 아내를 잃었으며, 그나마 하나 있던 자식은 일찌감치 한양으로 떠난 뒤 감감무소식이었지요.
박 영감의 집이라고 해봐야,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초가집 한 채가 전부였습니다. 지붕의 이엉은 군데군데 썩어 구멍이 숭숭 뚫렸고, 방문은 뼈대만 남아, 겨울이면 황소바람이 늙은 영감의 뼈마디를 사정없이 후벼 팠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박 영감, 그러다 객사하겠소. 어서 집을 고치시오."라고 혀를 찼지만, 박 영감은 그저 허허 웃으며 손사래를 칠 뿐이었습니다. "허허, 이만하면 됐지 뭘. 비 안 새는 방에서 등 붙이고 자는 것만도 복인 것을."
그의 살림살이는 가난했지만, 마음까지 가난하지는 않았습니다. 박 영감은 그 없는 살림에도, 아궁이에 불을 땔 때면, 혹여 굶주린 짐승이 찾아올까 싶어, 마지막 남은 밥 한 숟가락을 누룽지로 만들어 댓돌 위에 올려두곤 했습니다. "에잉, 쯧쯧. 이놈의 팔자야. 내일은 또 뭘 먹고 사나." 한탄을 하면서도, 담벼락 밑에서 '야옹' 하고 우는 길고양이에게 제 저녁거리인 옥수수죽 한 그릇을 선뜻 내어주는, 그런 영감이었지요. "오냐, 오냐. 너도 팔자가 참 기구하구나. 이거라도 먹고 기운 차려라. 나보다는 네가 더 급하지."
그날 저녁도 그랬습니다.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굴뚝에서는 저녁 짓는 연기 대신, 쌀쌀한 한기(寒氣)가 피어올랐습니다. 박 영감은 며칠 전 얻어온 시래기를 삶아, 멀건 죽을 끓여 겨우 허기를 채웠습니다. 그리고는 낡은 등잔불 밑에서, 닳고 닳은 짚신을 몇 번 더 엮어보려 애썼지요. '이놈의 짚신도, 이제는 성한 데가 없구나. 내일 장에 가서 이걸 팔아, 소금이라도 한 줌 사 와야 할 터인데'
적막(寂寞). 박 영감의 초가집을 감싸는 것은, 오직 그 지독한 적막뿐이었습니다. 마을에서 워낙 멀리 떨어진 외딴집이라,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습니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오직, 썩은 서까래를 갉아 먹는 좀벌레 소리와, 박 영감 자신의 한숨 소리뿐이었지요. "아이고, 적적하다. 말동무라도 하나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박 영감은, 이내 사위어가는 등잔불을 '후' 불어 끄고, 차가운 아랫목에 몸을 뉘었습니다. 내일의 고단한 삶을 위해, 억지로 잠을 청해야 했지요. 그때까지만 해도, 박 영감은 몰랐습니다. 그날 밤, 자신의 적적한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 아주 시끄럽고도 요란한 '손님'이 찾아올 줄은 말입니다.
※ 평화로운 밤, 난데없이 지붕에 '돌멩이'가 쏟아짐
밤이 깊어, 자시(子時)가 막 넘었을 무렵이었습니다. 박 영감은 얇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겨우 선잠에 빠져들고 있었지요. 바로 그때였습니다. "타다닥 탁 투둑"
갑자기, 낡은 지붕 위로 누군가 돌멩이를 한 움큼 뿌리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박 영감은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습니다. "뭐, 뭐시냐?"
심장이 쿵쾅거렸습니다. '아니, 이 밤중에 누가' 처음에는, 썩은 지붕이 내려앉기라도 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소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타다다닥 투두둑 탁 탁" 마치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지붕 위에 올라가 일부러 기왓장(혹은 이엉)을 발로 차는 듯한, 아주 괘씸하고도 시끄러운 소리였습니다. "필시, 마을의 그 못된 장난꾸러기 녀석들이로군" 박 영감은 버럭 화가 치밀었습니다. 가뜩이나 얇은 지붕인데, 저러다 구멍이라도 뚫리면 어쩌란 말인가.
박 영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홑적삼 바람으로 마당에 뛰쳐나갔습니다. "이놈의 아해들 당장 내려오지 못할까 늙은이를 놀리는 게 그리도 재밌느냐" 박 영감은 지붕 위를 샅샅이 훑어보았습니다. 하지만, 달빛에 비친 지붕 위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 이상하다." 박 영감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바로 그의 등 뒤, 장독대에서 '와장창' 하고 돌 깨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으악" 박 영감은 기겁하며 마당 한복판에 나자빠졌습니다.
"누, 누구냐 뉘가 거기 있느냐"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지만, 대답은 없었습니다. 그 대신, '키득키득' 하는, 사람의 웃음소리 같기도 하고, 짐승의 울음소리 같기도 한 기묘한 소리가, 담장 너머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박 영감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아 아니다. 애들 장난이 아니야. 그렇다면 고, 고얀 놈의 짐승인가? 너구리? 아니면'
그때, 다시 지붕 위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타다닥 타다닥" 이번에는 더 심했습니다. 마치 누군가, 두 손 가득 돌멩이를 쥐고, 지붕 전체에 비 오듯 흩뿌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아이고, 아이고 귀신이 곡할 노릇이로다" 박 영감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방 안으로 도망쳐 들어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덜덜 떨기 시작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뉘신지는 모르오나, 이 늙은이를 제발"
소리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타다닥 우수수 탁 탁" 마치, 박 영감의 그 공포에 질린 반응이 아주 재미있다는 듯이, 소리는 점점 더 크고, 더 잦아졌습니다. 박 영감은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뜬눈으로 밤을 꼬박 새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새벽닭이 '꼬끼오' 하고 울었을 때, 그 지긋지긋하던 소리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뚝' 하고 멈추었습니다. 박 영감은 날이 완전히 밝을 때까지, 이불 속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 밤새 이어진 소리
밤새 뜬눈으로 지샌 박 영감은, 동창이 환하게 밝아오고 늙은 닭이 '꼬끼오' 하고 첫울음을 우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쭈글쭈글해진 얼굴로 방문을 빼꼼히 열었습니다. "갔나. 날이 샜으니, 이젠 갔겠지." 다행히, 어젯밤의 그 요란하고 괘씸한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습니다. "에잉, 퉤퉤! 간밤에 잠을 통 못 잤더니만, 뼈마디가 두 배는 더 쑤시는구먼!" 박 영감은 짚신을 꿰어 신고, 뻐근한 허리를 '아이고' 소리 나게 두드리며 마당으로 나섰습니다. 밤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을 해봐야 했기 때문이지요.
"아이고, 맙소사! 이게 다 뭐람!" 박 영감은 마당을 보고는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마당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습니다. 마당에는, 그야말로 '난장판'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지붕에서 떨어진 것이 분명한, 어른 손톱만 한 자잘한 돌멩이들이, 마당 곳곳에 수백, 수천 개가 흩뿌려져 있었습니다. 마치 누가 마당 전체에 돌멩이 밭을 갈아놓은 것 같았지요.
"이, 이게 다 뭐시냐! 이 많은 돌멩이가 다 어디서" 박 영감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는 어젯밤, 장독대에서 들렸던 '와장창' 소리가 기억나, 절뚝거리며 장독대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아이고! 내 장독! 내 간장!" 하나밖에 없는 간장 독, 그가 평생을 아껴온, 아내가 시집올 때 가져온 그 유일한 장독이, 돌멩이에 맞아 금이 '쩍' 가 있었습니다. 그나마 간장이 새어 나오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지요.
"이런, 천하에 몹쓸 놈 같으니라고! 이게 어떤 간장인데! 이게!" 박 영감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습니다.
그에게 저 간장은, 단순한 양념이 아니었습니다. 일 년 내내 멀건 죽을 끓여 먹을 때, 유일하게 맛을 내주던, 늙은이의 '피눈물'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귀신? 짐승?' 박 영감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야. 귀신이라면 사람을 홀렸을 것이고, 짐승이라면 닭장이라도 덮쳤겠지. 이토록 짓궂고, 악랄하게, 그저 '장난'만을 치는 놈은' 박 영감은 그제야 무릎을 '탁' 쳤습니다. "도깨비!" 그렇습니다. 예로부터 이 마을 뒷산에는, 심술궂지만 사람은 해치지 않는다는 '도깨비'가 산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에잉! 이놈의 도깨비! 필시, 그 고얀 놈의 짓이로구나! 홀로 사는 늙은이 놀려 먹는 게 그리도 재밌더냐! 이 천벌 받을 놈아!" 박 영감은 허공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지만 소리를 지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지요. 마당에 가득한 돌멩이 때문에, 발 디딜 틈조차 없었습니다. "에잉, 퉤! 똥은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나. 내가 치우고 만다, 이놈아!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박 영감은 헛간에서 낡은 싸리비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슥, 슥' 소리를 내며 마당의 돌멩이들을 쓸어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이놈의 돌멩이는 왜 이리 또 무거운 게야." 겉보기에는 여느 강가에서 볼 수 있는 조약돌과 똑같은데, 묘하게 손에 '착' 감기는 것이, 꽤나 무게가 나갔습니다. "허리가 끊어지겠네!"
박 영감은 땀을 뻘뻘 흘려가며, 반나절 내내 돌멩이를 쓸었습니다. 그리고 그 돌멩이들을, 마당 한쪽 구석, 담벼락 밑에 차곡차곡 쌓아두었지요. "에잉, 벼락 맞을 놈. 오늘 밤에도 오기만 해봐라. 내가 아주, 소금이라도 한 바가지 뿌려줄 테니! 네놈의 장난에 내가 쓰러질 것 같으냐!" 박 영감은 투덜거리며, 금이 간 장독을 새끼줄로 꽁꽁 싸맸습니다. 그는, 그날 밤에도 어김없이, 그 몹쓸 도깨비가 찾아올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 수개월간 이어진 돌 던지기
그날 밤, 박 영감은 늙은 아내가 쓰던 요강단지에서 굵은 소금을 한 사발 가득 퍼, 머리맡에 두고 잠을 청했습니다. '어디, 오기만 해봐라. 이 짠맛을 보면, 혼비백산 도망칠 게다!' 하지만 도깨비는, 박 영감의 생각보다 훨씬 질기고, 장난기 넘치는 놈이었습니다.
"타다닥! 타다다닥! 우수수수!" 자시가 되자, 어김없이 돌멩이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어젯밤보다 더 많고, 더 시끄러웠습니다! "이놈!" 박 영감이 소금을 한 주먹 쥐고 뛰쳐나가 마당에 뿌렸지만, 소금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도깨비는, 박 영감의 그 반응이 아주 재미있다는 듯, 더 신이 나게 돌을 던졌습니다. "키키키" "킥" 어둠 속에서, 이제는 아예 대놓고 웃음소리까지 들려왔습니다.
"아이고! 내가 못 살겠다! 이놈의 도깨비들아! 한 놈이면 족하지, 몇 놈이 몰려온 게야!" 박 영감은 그날 밤도, 뜬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마당은 어제보다 두 배는 더 많은 돌멩이로 뒤덮여 있었지요.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한 달, 두 달이 지났습니다. 봄에 시작된 도깨비의 장난은, 찌는 듯한 여름을 지나, 서늘한 가을 바람이 불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춘삼월, 진달래가 필 때도 돌은 날아왔고, 땀이 비 오듯 흐르는 삼복더위에도 돌은 날아왔으며, 마당에 낙엽이 뒹구는 가을에도 돌은 어김없이 날아왔습니다.
박 영감은 이제, 체념을 넘어 '해탈'의 경지에 이른 듯했습니다. "에잉, 이놈의 자식. 또 왔느냐." 밤에 돌멩이 소리가 나면, 박 영감은 이제 놀라지도 않고, 그저 이불을 뒤집어쓰며 중얼거렸습니다. "오늘은 꽤나 기운이 넘치는구나. 좋은 일이라도 있더냐?" "타다닥!" "허허, 대답은 꼬박꼬박 잘하는구나. 그래, 실컷 던져라. 내일 아침에 내가 다 쓸어줄 테니."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박 영감은 욕을 한 바가지 하면서도, 어김없이 싸리비를 들고 마당을 쓸었습니다. "이놈의 돌멩이, 쓸어도 쓸어도 끝이 없네. 아주, 내 무덤이라도 만들어 줄 셈이냐!" 그는 매일 아침 쓸어 모은 돌멩이들을, 어제 그 자리에, 또 쌓고, 또 쌓았습니다.
그렇게 수개월이 지나자, 마당 한쪽 구석의 돌멩이 더미는, 박 영감의 허리춤을 넘어, 키를 훌쩍 넘더니, 이제는 웬만한 초가집만 한 '돌산(石山)'이 되어버렸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그 돌산에서 묘하게 푸르스름한 빛이 감도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박 영감의 마당에 웬 산이 하나 생겼다며,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여보게들, 박 영감네 마당에 웬 돌무더기 못 봤소?" "봤지, 봤어. 늙은이가 노망이 났는지, 밤마다 헛것을 본다며, 아침마다 돌을 쓸어 모은다더군." "쯧쯧, 필시 그놈의 도깨비한테 홀린 게야. 그러다 객사할 텐데."
박 영감은 그런 수군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밤마다 들려오는 그 돌멩이 소리가, 이제는 적적한 밤의 '말동무'처럼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허허, 이놈아. 내일은 좀 살살 던져라. 늙은이 팔다리가 쑤셔서, 내일 아침에는 못 쓸어주겠다." "타다다닥!" 도깨비는, 마치 '알았다'는 듯이, 더 요란하게 돌을 던졌습니다. 그 누구도 몰랐습니다. 이 지긋지긋하고 몹쓸 장난 속에, 하늘이 내린 '횡재(橫財)'가 숨어있을 줄은 말입니다.
※ 물을 구하던 보부상이 박 영감의 집에 들름
그렇게 도깨비와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 지, 꼬박 일 년이 되어가던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습니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 더워, 장마가 끝난 뒤의 찜통더위는 그야말로 가마솥에 불을 때는 듯했습니다. 늙은 박 영감은 숨이 턱턱 막히는 뙤약볕 아래서, 어젯밤 도깨비가 또 한바탕 어지르고 간 돌멩이들을 쓸어 모으고 있었습니다. "에잉, 웬수 같은 놈. 이 더운 날, 늙은이를 이리 고생시켜야 속이 시원하더냐. 허리가 끊어지겠다, 이놈아."
땀이 비 오듯 흘러 홑적삼이 등에 쩍쩍 달라붙었습니다. 하지만 박 영감의 욕지거리에는, 이제 미움이나 분노보다는, '그래도 네 덕에 심심하지는 않다'는 묘한 체념 섞인 정(情)마저 묻어났습니다. 돌산은 이제, 박 영감의 키를 훌쩍 넘어, 웬만한 초가집의 지붕만큼이나 높아져 있었습니다. 그 거대한 돌산이, 뙤약볕을 가려주는 유일한 그늘이 되었지요. 박 영감이 땀을 훔치며, 자신이 쌓아 올린 그 '돌산' 그늘 밑에 주저앉아 잠시 숨을 고르고 있을 때였습니다.
"허, 어르신! 어르신!" 담장 밖에서, 웬 낯선 사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보시오, 어르신! 목이 말라 죽겠는데, 물 한 바가지만 적선해 주실 수 있으시겠소?" 고개를 들어보니, 온몸이 땀으로 젖고, 먼지를 뒤집어쓴 '보부상(褓負商)' 한 명이, 무거운 지게를 받쳐놓고 혀를 빼문 채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걸었는지, 입술이 바싹 말라 하얗게 터져 있었습니다.
박 영감은 가뜩이나 없는 살림이었지만, 목마른 이에게 물 한 잔 내어주지 않을 만큼 야박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이고, 예. 날은 더운데 고생이 많으십니다. 이 누추한 곳까지 어쩐 일이신지. 변변찮지만, 이리 들어와 목이라도 축이시지요." 박 영감은 보부상을 마당으로 들이고, 이가 빠진 사발 그릇에, 갓 길어 올린 시원한 우물물을 한 바가지 가득 퍼서 건넸습니다.
보부상은 물을 단숨에 들이켜고는, '캬' 하는 소리와 함께, 그제야 살겠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이고, 어르신. 살았습니다. 하마터면 이 더위에 저승 갈 뻔했습니다 그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허허, 뭘요. 빈말이라도 고맙습니다. 어서 더 드시지요." 박 영감이 웃으며 시원한 자리를 권하는데, 보부상은 마당에 들어선 순간부터, 어딘가에 시선이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물을 마시면서도, 마당 한쪽을 가득 메운 거대한 '돌산'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그의 눈이, 처음에는 '저게 뭔가' 하는 호기심에서, 이내 '저게 왜 저기 있나' 하는 의심으로, 그리고 마침내는 '저것은 혹시' 하는 경악으로, 가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르신." "예?"
"저, 저것은 대체 다 무엇이옵니까? 어찌 마당 한복판에 저런 거대한 돌무더기를" 박 영감은 보부상이 가리키는 돌산을 보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혀를 찼습니다. "아, 저거요? 묻지도 마십시오. 이놈의 몹쓸 도깨비가, 밤마다 잠도 못 자게 저런 돌멩이를 지붕에 퍼붓는답니다. 내가 괘씸해서, 매일 아침 쓸어 모아 저기다 쌓아뒀지요. 저게 벌써 일 년 치가 넘습니다 그려. 허허. 웬수 같은 놈이지요."
박 영감은 웃었지만, 보부상은 웃지 않았습니다. 그는 평생을 전국 팔도 안 가본 곳 없이 돌아다니며, 온갖 귀한 물건들을 봐온 장사꾼이었습니다. 그의 눈은, 보통 사람의 눈과는 달랐습니다. 그는 홀린 사람처럼, 그 '돌산'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습니다. "도깨비가 던진, 돌이라고요?" "그렇다니까요. 아주 징글징글한 놈입니다."
보부상은 돌산 앞에 멈춰 섰습니다. 뙤약볕이, 돌산의 표면을 비추며, 그저 '돌'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기묘하고, 둔탁한 빛을 반사하고 있었습니다. 보부상은, 떨리는 손으로, 돌무더기에서 가장 큼지막한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돌멩이'의 정체를 확인하기 시작했습니다.
※ 보부상이 돌멩이의 정체를 확인함
보부상은, 박 영감이 '돌멩이'라고 부른 그것을, 햇볕에 이리저리 비추어 보았습니다. 흙먼지가 묻어있었지만, 그 모양새가 어딘가 부자연스러웠습니다. 자연적으로 깎인 돌멩이라기보다는, 마치 누군가 주물럭거려 만든 듯한, 둥그스름한 형태. 그리고 무엇보다 ""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쥔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을 뿐이었지요.
박 영감은 그런 보부상의 모습이 이상했습니다. "아니, 손님. 뭘 그리 뚫어져라 보시오? 그냥 돌멩이라니까요. 에잉, 더러우니 이리 주시" "어르신! 잠깐만, 가만히 계셔 보십시오!" 보부상이 다급하게 박 영감을 막아 세웠습니다. 그는 자신의 지게에서, 물건의 무게를 잴 때 쓰는 작은 손저울과, 물건을 감정할 때 쓰는 낡은 옹기 조각을 주섬주섬 꺼냈습니다.
"아니, 이 양반이 더위를 먹었나! 왜 남의 집 돌멩이를 가지고" "어르신, 실례하겠습니다." 보부상은 옹기 조각의 거친 면에, 돌멩이를 '슥' 하고 긁어보았습니다. '끼이익' 쇠 긁히는 소리와 함께, 긁힌 자국이 드러났습니다. 회색의 돌가루가 아니었습니다. 긁힌 자국을 본 보부상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아니, 이럴 리가"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이번에는 그 돌멩이를, 자신의 앞니로 '와드득' 하고 깨물었습니다.
"어이쿠! 손님! 그걸 왜 씹으시오! 이 다 나가겠소! 그 돌멩이가 쇠붙이라도 되오?" 박 영감이 기겁하며 말렸지만, 보부상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입에는, 씹다 만 돌멩이가, 시퍼런 이빨 자국과 함께 물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두 눈에서는, 굵은 눈물방울이 '툭, 툭'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허어 허어! 이럴 수가! 이럴 수가! 내 평생 이런 귀물(貴物)은"
보부상은 들고 있던 돌멩이를 '쿵' 하고 마당에 떨어뜨리더니,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흙바닥에 이마가 닿도록, 박 영감에게 큰절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르신! 어르신! 이, 이 귀한 것을 이 귀한 것을, 빗자루로 쓸고 계셨단 말입니까!" "아니, 이 양반이 정말 더위를 먹었나! 왜 이러시오! 이게 무슨 짓이오!" 박 영감이 당황해서 보부상을 일으키려 했습니다. 보부상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어르신! 이것은 이것은 돌멩이가 아니옵니다!" "예? 돌멩이가 아니면, 뭐란 말이오? 돌멩이가 아니면, 쌀이오, 밥이오?" "이것은 '황금(黃金)'이옵니다! 어르신!" "황금이라니! 그게 무슨 벼락 맞을 소리요!" "보십시오!" 보부상은 방금 씹었던 돌멩이를 들어 보였습니다. "돌멩이라면, 제 이가 부러졌을 것이오나, 보십시오! 이가 박힌 자국 그대로, '누런 속살'이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천하의 '금덩이(金塊)'란 말입니다!"
박 영감은 그제야 보부상이 쥔 '돌멩이'를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과연, 흙먼지에 가려져 있던 그 속은, 뙤약볕을 받아, 눈이 부실 정도로 '번쩍'이는, 누런 황금빛을 띠고 있었습니다. "허, 허어" "어르신, 이것뿐만이 아니옵니다!" 보부상이 돌산으로 달려가, 아무거나 몇 개 더 집어 들었습니다. "저기, 저 시커멓게 변한 것은 '은덩이(銀덩이)'요, 저 푸르스름한 것은 '옥(玉) 조각'이옵니다! 세상에, 세상에"
보부상은 돌산을 바라보며, 거의 실신할 듯이 중얼거렸습니다. "이것은 돌산이 아니라, '보물산(寶物山)'이었구려! 도깨비가, 어르신께 복을 주려 한 것을" 박 영감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가 '웬수 같은 놈'이라 욕하며, '쓸모없는 돌멩이'라 폄훼하며, 매일 아침 빗자루로 쓸어 담았던 그것들이 전부, 금은보화였다니. "" 박 영감은, 자신이 일 년 내내 쓸어 모은 그 거대한 '보물산'을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아이고, 내 팔자야"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 털썩, 기절초풍하고 말았습니다. 도깨비가 밤마다 던진 돌멩이의 정체는, 바로 이승의 그 어떤 부자도 가질 수 없는, 어마어마한 '금은보화'였던 것입니다.
※ 도깨비를 위해 몰래 음식을 내어주는 박 영감
그날 이후, 박 영감의 팔자는 그야말로 '천지개벽'을 했습니다. 정신을 차린 박 영감은, 어안이 벙벙한 채로 보부상과 마주 앉았습니다. 보부상은, 박 영감의 선량함에 감복하여, 그를 속일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르신, 이 보물은 하늘이 주신 것입니다. 허나, 이것이 한꺼번에 세상에 알려지면, 관아에서 어르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도리어 화(禍)가 될 수 있습니다." 보부상은 박 영감에게, 이 금은보화를 조금씩, 자신을 통해 '돌멩이' 값으로 팔아, 살림을 늘려갈 것을 제안했습니다.
박 영감은 보부상의 정직함에 고마워하며, 금덩이 몇 개를 후하게 값을 치르고 넘겼습니다. 그 돈으로 박 영감은 우선, 낡아 빠진 초가집부터 허물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아흔아홉 칸은 아니더라도, 온 동네가 떠나가라 으리으리한 기와집을 지었지요. "아이고, 박 영감! 아니, 이제 박 부자(富者)님이라고 불러야겠구먼!" 마을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가난뱅이에서 거부가 된 박 영감을 부러워하며, 그에게 잘 보이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박 영감은, 부자가 되었어도 예전의 그 선량한 마음씨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장 먼저, 흉년에 빚을 진 마을 사람들의 빚 문서를 전부 사들여, 마당 한가운데서 불태워 버렸습니다. "아이고, 영감님! 이 은혜를 어찌" "허허, 뭘요. 다, 그 몹쓸 놈의 도깨비 덕이지, 내 덕이오? 나도 빚지고 산 인생인데, 이젠 빚 좀 갚아야지." 그는 굶주린 이들에게 아낌없이 쌀을 나누어 주었고, 다리가 없어 불편했던 마을 입구에는, 제 사비를 털어 튼튼한 돌다리를 놓았습니다.
박 영감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부처'로 칭송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하나 있었지요. 박 영감이 그토록 으리으리한 기와집을 짓고, '박 부자' 소리를 듣게 된 그날부터. 그 지긋지긋하던 도깨비의 돌멩이 소리가, '뚝' 하고 끊겨버린 것입니다. ""
박 영감은, 비단 이불이 깔린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도, 어쩐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타다닥! 탁! 탁!' 밤마다 귓전을 때리던 그 시끄러운 소리가, 이제는 너무도 그리웠습니다. 그 소리는, 늙은이의 적적한 밤을 채워주던 유일한 '말동무'였던 것입니다. "이놈의 도깨비. 정체가 들통나니, 부끄러워서 도망이라도 친 게냐. 아니면, 이 늙은이가 부자가 되어 배가 부르니, 꼴 보기 싫어 떠난 게냐."
그러던 어느 가을, 달이 유난히 밝은 보름날 밤이었습니다. 박 영감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넓은 대청마루를 거닐었습니다. 금은보화는 창고에 가득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습니다. "허허. 이놈아. 네 덕에 이리 잘 사는데, 인사치레도 못 했구나. 어디서 뭘 하는 게냐." 박 영감은 부엌으로 들어가, 며느리도 아닌 하인들에게 시키지 않고, 직접 갓 찐 뜨끈한 시루떡과, 잘 익은 막걸리 한 사발을 소반에 받쳐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예전 초가집이 있던 자리, 금은보화 돌산을 쌓아두었던 그 마당 한구석에, 소반을 조용히 내려놓았습니다. "이놈아. 벼락 맞을 놈인 줄 알았더니, 복(福)덩어리였구나. 네가 던진 돌멩이 덕에, 늙은이가 호강한다. 이거라도 먹고, 기운 차리거라. 그리고 심심하면, 돌멩이 대신, 나랑 술이나 한잔하러 오너라. 이젠 돌멩이 안 쓸어도 되니, 내 팔다리가 아주 근질근질하다."
박 영감은 방으로 들어와, 방문을 살며시 닫았습니다. 그리고, 잠을 자는 척, 실눈을 뜨고 마당을 훔쳐보았지요. 달빛이 마당을 환히 비추고,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밤. 그때였습니다. 담장 너머에서, '키득키득' 하는, 그 반가운 웃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커다란 그림자 하나가, '슬쩍' 마당으로 들어왔습니다. 털이 숭숭하고, 키가 훌쩍 큰 도깨비였습니다. 도깨비는 소반 앞에 쭈그리고 앉아, 박 영감이 있는 방문을 한번 '쓱' 훑어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막걸리를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시루떡을 입안 가득 물고, '우물우물'거렸습니다.
박 영감은 숨을 죽였습니다. 도깨비는 떡을 다 먹고는, 빈 그릇을 '딸그락' 소리 나게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는, 박 영감이 있는 방문을 향해, 꾸벅, 절이라도 하듯 고개를 숙이더니, 어둠 속으로 '휙'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날 이후, 도깨비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박 영감은, 그날의 도깨비를 잊지 않고, 평생을 이웃과 나누며 복을 누렸다고 합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시니어 시청자 여러분, 도깨비가 던진 돌멩이 이야기, 재미있게 들으셨나요?
밤마다 잠 못 자게 하던 그 웬수 같은 돌멩이가, 알고 보니 금은보화였다니, 참으로 기막힌 반전입니다. 어쩌면 우리 시청자님들의 삶 속에도, 지금 당장은 귀찮고 성가신 '돌멩이'처럼 여겨지는 일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박 영감이 묵묵히 그것을 쓸어 모았듯, 그저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그 '돌멩이'가 언젠가 '황금'이 되어 반짝이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저희 '조선시대 전설/야담'은 앞으로도 시청자님들의 마음에 교훈과 재미를 드리는 쏠쏠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마음에 드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꼭 눌러주시고요, 다음 이야기도 기대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