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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북채 하나가 광대를 다시 무대로 올려세웠다
버려진 북채에 깃든 도깨비가 리듬을 살려주고 관객을 모아주며, 한물간 광대가 다시 장터의 인기꾼이 되는 이야기 — 『북채 도깨비 놀이패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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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평생 북채 하나에 인생을 걸었던 광대가, 어느 날 갑자기 박자를 잃고 손이 굳어버렸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것도 모자라, 장터 한복판에서 사람들의 비웃음까지 받게 되었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어느 비 내리던 밤, 길가에 버려진 깨진 북채 한 자루가 그 사내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았답니다. 도깨비가 깃든 북채라니, 그게 정말 있을 법한 일이겠습니까? 자, 오늘은 충청도 어느 장터에 떠돌던 『북채 도깨비 놀이패 설화』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지요. 들으시면서 한번 가늠해 보십시오. 이게 복인지, 화인지를 말입니다.
※ 1. 한물간 광대 막손이, 장터에서 쫓겨나다
자,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 봅시다. 때는 정조 임금 시절, 충청도 공주 땅에 막손이라는 사내가 살고 있었답니다. 이 사람이 본디 무엇을 하던 자였느냐 하면, 장터 놀이패의 북잡이였지요. 북잡이라는 게 요즘 말로 풀면 풍물 놀이패에서 북을 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막손이가 그저 그런 북잡이가 아니었어요. 한창때는 충청도 일대에서 막손이 북소리 한 번 듣자고, 십 리 밖에서도 보따리를 싸 들고 달려왔다고 할 정도로 이름이 자자했답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람의 운수라는 게 참 야속한 것입니다. 어느 해 겨울, 막손이가 그만 큰 병을 앓았어요. 그 병이 무어냐 하면, 손마디가 굳어버리는 풍병 같은 것이었지요. 한 달을 자리에 누웠다가 가까스로 일어났는데, 손이 예전 같지를 않더란 말입니다. 북채를 잡으면 손가락이 덜덜 떨리고, 박자를 짚으려 하면 한 박씩 늦게 떨어지고. 그러니 신명이 날 리가 있겠습니까.
처음에는 동료들이 막손이를 감싸 줬지요.
"형님, 천천히 회복하세요. 우리가 옆에서 받쳐드릴 테니."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오래가지를 못합니다. 놀이패라는 것이 본디 한 사람이라도 박자가 어그러지면 판 전체가 무너지는 법이거든요. 두어 달이 지나자 패거리 우두머리, 수석 상쇠 칠복이가 막손이를 따로 불러 앉히더랍니다.
"막손이 형님, 이런 말씀 드리기 송구하오만, 이번 추석 장날부터는 잠깐 쉬셔야겠소. 손님들이 자꾸 우리 북소리가 어지럽다고 수군대니, 어쩌겠소."
막손이가 그 말을 듣고 어떤 마음이었겠습니까. 평생 북 하나로 처자식을 먹여 살린 사내가, 동료들에게 짐짝 취급을 받게 된 거지요. 그날 밤 막손이는 장터 뒷골목에서 술을 들이켜고는, 자기 북채를 땅바닥에 패대기를 쳤답니다.
"이깟 북채가 무어라고! 이깟 박자가 무어라고 사람을 이렇게 능멸한단 말이냐!"
그런데 말이지요,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어요. 다음 장날, 막손이가 미련을 못 버리고 장터를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새로 들어온 젊은 북잡이가 자기 자리에서 신나게 북을 두드리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이들이 손뼉을 치고, 노인들이 어깨춤을 추고, 전에 막손이를 보러 오던 그 사람들이 모두 그 젊은 놈한테 모여 있더란 말입니다.
막손이가 그 광경을 보고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그만 눈이 뒤집혀 버린 거예요. 술기운에 휘청대며 판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가지고, 젊은 북잡이의 북채를 빼앗으려 했지요.
"그 자리는 내 자리다! 비켜라, 이놈아!"
장터 한복판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칠복이가 달려 나와 막손이의 멱살을 잡고 끌어내면서 호통을 쳤어요.
"막손이! 정신 차리시오! 이러면 우리 패거리 전부가 망신이오! 다시는 우리 판에 얼씬도 마시오!"
그렇게 막손이는 장터 한복판에서 동료들 손에 끌려 나왔답니다. 사람들이 모두 손가락질을 하고, 아이들이 따라오면서 "한물간 막손이, 한물간 막손이" 하고 놀려 댔지요. 그날 막손이가 흘린 눈물이, 한강 한 줄기는 됐을 겁니다.
※ 2. 비 내리는 밤길에서 만난 깨진 북채
자, 그렇게 장터에서 쫓겨난 막손이가 어떻게 됐겠습니까. 집에 돌아갈 면목도 없었지요. 처자식 얼굴 볼 낯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날 밤 막손이는 공주 외곽, 인적 드문 산길을 휘청휘청 걸었답니다. 마침 하늘에서는 늦가을 찬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어요. 빗물에 옷이 흠뻑 젖었는데도, 막손이는 그게 빗물인지 눈물인지도 모를 지경이었지요.
산모퉁이 하나를 돌아드는데, 그 길가에 다 쓰러져가는 옛 서낭당이 하나 있었답니다. 서낭당이라는 게 무어냐 하면, 마을 어귀에 돌무더기 쌓아 놓고 색색 천 조각을 매달아 놓은, 마을 지키는 신령님 모시는 자리지요. 그런데 그 서낭당이 오래도록 사람의 발길이 끊긴 듯, 색천은 다 삭아 너덜거리고 돌무더기도 절반쯤 무너져 있더랍니다.
막손이가 그 앞에 털썩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어요. 술 냄새, 빗물 냄새, 진흙 냄새가 뒤섞여 그 몰골이 참 처량했지요. 그런데 그렇게 한참을 흐느끼다가, 문득 무엇이 막손이의 손끝에 닿더란 말입니다. 손을 더듬어 보니, 진흙 속에 무언가 길쭉한 막대가 박혀 있었어요. 끄집어내 빗물에 씻어 보니, 이게 무엇이었겠습니까.
깨진 북채 한 자루였답니다.
여러분, 이 북채가 보통 북채가 아니었어요. 한쪽 끝이 댕강 부러져 있고, 손잡이 부분에는 검붉은 무엇이 발려 있는데, 빗물에 씻어도 좀체 지워지지를 않더랍니다. 옻칠을 한 듯 단단하고, 박달나무로 깎은 듯 묵직하고, 그런데 어딘가 이 세상 물건 같지가 않은 거예요. 막손이가 손에 쥐어 보니, 손바닥에 착 감기는 것이 마치 평생 자기 손에 익은 물건 같았답니다.
'허, 이게 무슨 인연인고. 내가 오늘 북채 하나 패대기친 죄로, 이런 흉물을 만나는 건가.'
막손이가 그 깨진 북채를 한참 들여다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서낭당 안쪽에서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 마는 듯 하더랍니다.
"가져가게."
막손이가 흠칫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지요. 비 내리는 산길에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데, 분명 누군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거든요.
"가져가게, 막손이. 자네 이름값을 다시 살려줄 물건이야."
막손이가 등골이 오싹해져서 북채를 던지려는데, 또 그 목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단, 한 가지만 약조하시게. 욕심을 부리지 마시게. 분수를 알고 멈출 줄을 알아야 하네. 그러지 않으면, 이 북채가 자네를 데려갈 거야."
막손이는 그게 무슨 소린지도 모르고, 그저 술기운에 헛것을 들었나 싶었지요. 그런데 손에 쥔 북채는 점점 따뜻해지는 것이, 마치 살아있는 짐승이 손바닥 안에서 숨을 쉬는 것 같더랍니다. 막손이가 그만 정신이 혼미해져서, 그 깨진 북채를 품 안에 꼭 끌어안고는 비틀비틀 집으로 돌아갔답니다.
이게 막손이 인생에 두 번째 갈림길이었던 거지요. 그날 밤 그 북채를 그냥 두고 왔더라면, 어쩌면 막손이의 운명은 또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사람 일이라는 게 참, 한 발짝 차이로 갈리는 법이지요.
※ 3. 첫 장단에 모여든 사람들, 수상한 신명
자, 이제 그 다음 날 이야기로 넘어가 봅시다. 막손이가 새벽녘에 눈을 떠 보니, 자기가 지난밤에 어떻게 집에 들어왔는지도 가물가물하더랍니다. 그런데 손에는 그 깨진 북채가 여전히 꼭 쥐어져 있는 거예요. 부인이 옆에서 한숨을 푹푹 쉬면서, 식은 죽 한 그릇을 밀어 놓고는 한마디 하지요.
"오늘은 또 어디서 무슨 망신을 당하고 오시려고요. 차라리 그 북채 갖다 버리시고 농사일이나 거드세요."
막손이는 부인 말도 들리지 않았어요. 그저 그 깨진 북채를 손에 쥔 채, 마당으로 나가 한쪽 구석에 처박아 둔 낡은 소리북을 끌어냈답니다. 그러고는 시험 삼아, 가만히 한 박을 쳐 본 거예요.
"둥-"
여러분, 그 북소리가 어땠을 것 같습니까. 막손이 자신도 깜짝 놀랐답니다. 분명 자기 손은 풍병으로 굳어 있었는데, 북채가 마치 살아있는 듯 저절로 손목을 끌어 박자를 잡아 주더란 말이지요. 한 번 치면 둥, 두 번 치면 둥-둥, 세 번째 가락이 들어가니 둥다당-쿵따당, 그 신명이 어찌나 좋은지 마당의 닭들까지 푸드덕거리며 모여들었답니다.
막손이가 자기 손을 들여다보면서 중얼거렸어요.
'아니, 내 손이 이렇게 가벼웠던가? 이놈의 풍병이 하룻밤 새 다 나았단 말인가?'
그런데 가만 들어 보니, 손이 나은 게 아니더랍니다. 북채가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던 거예요. 막손이는 그저 손목만 따라가면 되는 거였지요. 막손이가 가만히 멈추려 해도, 북채가 손바닥 안에서 까딱까딱 박자를 보채는 겁니다.
"어디 가시는가, 더 쳐 보시게."
또 그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더랍니다. 막손이는 이제 무섭지도 않았어요. 그저 신기하고 황홀해서, 얼른 북을 들쳐 메고 장터로 달려갔지요.
장날이라 사람들이 북적거리는데, 막손이가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북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첫 장단이 둥-하고 떨어지는 순간, 장터 안 사람들의 발걸음이 일제히 멈추더란 말입니다. 마치 누가 줄을 잡아당기듯이, 사람들이 막손이 쪽으로 슬금슬금 모여드는 거예요. 떡장수도, 엿장수도, 비단 사러 온 안방마님들도, 글방 다녀오는 도령들도, 모두 다 막손이 북소리에 홀린 듯 모여들었답니다.
막손이는 흥에 겨워 더 신명나게 두드렸지요. 둥다당 쿵따당, 둥다당 쿵따당. 사람들 어깨가 절로 들썩이고, 노인들이 지팡이를 짚고도 발장단을 맞추고, 아이들이 손뼉을 치며 빙빙 돌더란 말입니다.
저쪽에서 칠복이 패거리가 풍물을 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다 막손이 쪽으로 가버리니까 칠복이가 무어라 하겠습니까.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막손이 쪽을 보고는 입이 떡 벌어졌지요.
"아니, 저 사람이 막손이 형님 아니신가? 저 신명은... 예전 한창때보다도 더 좋은데?"
막손이가 그날 장에서 받은 엽전이, 자루가 두 개나 되었답니다. 한물간 광대가 하루아침에 장터 제일가는 인기꾼이 된 거지요. 그런데 막손이는 그게 자기 실력으로 된 줄 알고, 의기양양해서 집으로 돌아갔답니다. 깨진 북채가 품 안에서 따뜻하게 꿈틀거리는 것을, 그땐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거예요.
※ 4. 충청도 제일가는 놀이패가 되다
여러분, 사람의 명성이라는 게 한 번 오르기 시작하면 정말 무서운 속도로 퍼져 나갑니다. 막손이가 깨진 북채로 첫 장을 흔들어 놓은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충청도 일대에 그 소문이 짜하게 퍼졌어요.
"공주 막손이라는 광대가 다시 살아났다더라."
"그 사람 북소리 한번 들으면 발이 안 떨어진다더라."
"그 북소리에 죽을 병 든 사람도 벌떡 일어났다더라."
물론 죽을 병 든 사람이 일어났다는 건 헛소문이지요.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옮겨 다니다 보면 이야기가 자꾸 부풀어지는 법이니까요. 어쨌든 그 소문 덕에, 청주, 천안, 홍성, 멀게는 부여, 논산까지 막손이를 부르러 사람이 줄을 잇더랍니다.
그뿐이겠습니까. 한때 막손이를 내쳤던 칠복이 패거리가 슬그머니 찾아왔어요. 칠복이가 막손이 집 마루 끝에 걸터앉아서, 멋쩍은 얼굴로 이러는 겁니다.
"막손이 형님, 지난 일은 다 잊어주시오. 우리 다시 한 패가 됩시다. 형님이 우두머리 노릇 하시면, 우리는 그 밑에서 손발이라도 맞추겠소."
막손이가 그 말을 듣고 어떤 기분이었겠습니까. 한때 자기를 끌어내던 자들이 이제는 자기 발밑에서 머리를 조아리니, 사람 마음이 슬금슬금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거지요. 막손이가 한참 뜸을 들이다가, 거드름을 부리며 이러더랍니다.
"좋소. 다만 이제부터 이 패의 이름은 '막손이 놀이패'로 하고, 내 말이 곧 법이오. 알겠소?"
칠복이를 비롯한 패거리들이 모두 머리를 조아렸지요. 그렇게 해서 '막손이 놀이패'가 출범을 했는데, 이게 두어 달 만에 충청도 제일가는 놀이패가 되어 버렸답니다. 가는 곳마다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양반 댁 잔치며, 환갑잔치며, 절집 큰 행사며, 부르는 곳마다 막손이를 모셔가려 안달이 났지요.
엽전이 자루로 들어오기 시작하니, 막손이 살림이 어찌 됐겠습니까. 초가삼간이 기와집으로 변하고, 누더기 옷이 비단 두루마기로 바뀌고, 막손이 부인 손가락에 금가락지가 끼워졌답니다. 처음에 부인이 그 가락지를 받고 한참을 울었어요.
"여보, 이게 정말 우리 살림이 맞아요? 꿈만 같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사람이 가난할 때는 오순도순 정이 깊다가, 살림이 펴기 시작하면 묘하게 어그러지는 법입니다. 막손이가 점점 거만해지기 시작했어요. 술자리에서 동료들에게 호통을 치고, 부인에게도 짜증을 부리고, 자기 어린 자식에게도 "이 못난 놈, 너는 아비 발끝도 못 따라온다" 그런 소리를 함부로 하더랍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어요. 막손이가 잠자리에 들려는데, 머리맡에 놓아둔 그 깨진 북채가 갑자기 따뜻하게 빛을 내는 듯하더랍니다. 그러더니 그 어디선가 들렸던 그 목소리가, 이번에는 또렷하게 막손이 귓전에 들리는 거예요.
"막손이, 약조를 잊지 마시게. 욕심을 부리지 말라 했지 않은가. 분수를 알고 멈출 줄 알라 했지 않은가."
막손이가 깜짝 놀라 일어나 앉았지요. 그러고는 북채를 노려보며 콧방귀를 뀌었답니다.
"흥, 이깟 북채가 무얼 안다고 나한테 잔소리를 하는가. 이게 다 내 실력이지, 너 같은 막대기 덕인 줄 아는가?"
여러분, 보십시오. 사람이 잘 나갈 때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도깨비의 경고를 가벼이 여긴 그 한마디가, 막손이의 운명을 또 한 번 뒤집어 놓는 첫 단추가 되었지요. 이 다음 이야기가 진짜 기가 막힌 대목입니다만, 잠시 숨을 고르고 이어가 봅시다.
※ 5. 욕심에 눈먼 막손, 도깨비의 경고를 듣지 않다
자, 이제부터가 진짜 기막힌 대목입니다. 막손이가 도깨비의 경고를 콧방귀로 흘려버린 그날 이후로, 사람이 점점 더 변해가더란 말이지요. 사람이 한번 욕심에 눈이 멀기 시작하면, 그 끝이 어디인지를 본인이 몰라요. 그게 무서운 겁니다.
그 무렵 한양에서 큰 소식이 하나 내려왔습니다. 마침 임금님 환후 회복을 축하하는 큰 잔치가 한양 운종가에서 열린다는 거예요. 전국 팔도에서 내로라하는 놀이패들이 다 올라와 솜씨를 겨루고, 일등을 한 패에게는 임금님께서 직접 비단 한 필과 황금 백 냥을 내리신다는 어마어마한 소식이었지요. 막손이가 그 소식을 듣고 어찌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눈이 번쩍 뜨여서, 그날부터 잠도 안 자고 한양 갈 채비를 하더랍니다.
부인이 옆에서 조심스럽게 말렸어요.
"여보, 우리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충청도 제일이면 됐지, 굳이 한양까지 가서 무엇 하시려고요. 사람이 분수를 알아야지요."
그런데 막손이가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그 좋던 부인의 손등을 매몰차게 뿌리치며 호통을 쳤답니다.
"이 사람아, 분수가 무어요! 나는 이제 충청도 막손이가 아니라 조선 팔도 제일가는 막손이가 될 사람이야! 임금님 앞에서 북을 두드리고, 황금 백 냥을 받아 올 텐데, 자네는 사내의 큰 뜻을 모르고 어찌 그런 좁은 소리를 하는가!"
부인이 그 말을 듣고 얼마나 서러웠겠습니까. 가만히 돌아앉아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어 내더랍니다. 그날 밤이었어요. 막손이가 잠자리에 들었는데, 또 그 목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이번에는 아주 또렷하게, 그리고 이번에는 어딘가 슬프게 말이지요.
"막손이, 마지막 경고일세. 한양으로는 가지 마시게. 자네가 그 무대에 오르는 순간, 이 북채는 자네 손을 떠나네. 그날이 자네 인생의 끝이야."
막손이가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지요. 그런데 이 사람이 어떻게 반응했을 것 같습니까. 두려워하기는커녕, 도리어 그 깨진 북채를 손에 쥐고 흔들면서 호통을 치더랍니다.
"이 요망한 막대기야! 네깟 게 무어라고 자꾸 내 앞길을 막느냐! 너 없으면 내가 북을 못 칠 줄 아느냐? 한양에 가서 일등을 따 오면, 그땐 너를 아궁이에 처넣어 버릴 테다!"
여러분, 이 말을 들으셨지요? 한때 자기 인생을 살려준 은인에게, 사람이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제가 이 대목을 이야기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사람이 잘 됐으면 그 받은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하는 법인데, 막손이는 그 은혜를 자기 실력으로 착각한 거지요.
그 순간이었어요. 깨진 북채가 막손이 손바닥 안에서 부르르 떨더니, 따뜻하던 기운이 한순간에 싸늘하게 식어버리더랍니다. 마치 살아있던 짐승이 숨을 거두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러고는 어디선가 길고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어요.
"허어... 사람의 욕심이라는 게 끝이 없구나. 알았네. 그럼 자네 뜻대로 해보시게. 다만 후회는 자네 몫일세."
그러고는 그 목소리가 영영 들리지 않게 되었답니다. 막손이는 그제야 잠시 가슴이 서늘해졌지만, 이미 한양 갈 마음이 굳어버린 뒤였지요. 다음 날 아침, 막손이는 패거리들을 거느리고 의기양양하게 한양 길에 올랐답니다. 부인이 대문 앞까지 따라 나와 옷자락을 붙들고 매달렸지만, 막손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더랍니다. 그게 부인이 막손이의 멀쩡한 뒷모습을 본 마지막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 6. 깨어진 북채와 무너진 무대
자, 이제 한양 운종가 이야기로 넘어가 봅시다. 한양이라는 곳이 어디입니까. 조선 팔도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다 모이는 곳이지요. 운종가 한복판에 거대한 가설무대가 차려졌는데, 그 둘레로 사람이 어찌나 많이 모였던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답니다. 임금님께서는 환후 중이라 친히 납시지는 못하셨지만, 도승지 영감을 비롯해 내로라하는 대신들이 모두 자리를 잡고 있었어요.
전국 팔도에서 올라온 놀이패가 모두 일곱이었답니다. 평안도, 함경도, 강원도, 경기도, 전라도, 경상도, 그리고 우리 충청도. 평안도 패거리는 대금 가락이 하늘을 찌르고, 전라도 패거리는 판소리가 일품이었지요. 막손이의 차례가 왔을 때는 이미 해가 서산에 걸려 있었답니다.
막손이가 무대에 올랐을 때, 사람들이 모두 수군거렸어요.
"저 사람이 그 충청도 막손이라네."
"한물갔다가 도로 살아났다는 그 광대 말인가?"
"북소리 한 번 듣자."
막손이가 어깨에 북을 들쳐 메고, 품속에서 깨진 북채를 꺼냈지요. 그런데 말이지요, 북채를 손에 쥔 그 순간, 막손이는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으로 느꼈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손바닥에 짝 달라붙던 그 따뜻한 기운이, 오늘은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던 거예요. 북채는 그저 차갑고 무거운 나뭇조각일 뿐이었지요.
막손이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수천 명의 눈이 자기를 보고 있는데, 이제 와서 도망갈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막손이는 입술을 깨물고 첫 박을 쳐 보았습니다.
"둥-"
여러분, 그 소리가 어땠을 것 같습니까. 둥, 하고 떨어진 그 박자가, 어찌나 어설프고 비틀거리던지, 듣는 사람들이 다 어리둥절해 했답니다. 한번 박자가 어그러지니, 그 다음 박자도 우수수 다 흘러내리더란 말이지요. 둥-쿵, 둥다당, 그런데 손이 자꾸 한 박씩 늦게 떨어지고, 손가락이 도로 굳어 가는 게 느껴졌어요. 풍병이 다시 도진 듯, 손목이 덜덜덜 떨리기 시작했답니다.
객석에서 누군가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이게 충청도 제일이라는 막손이라고? 어디 술 취한 늙은이 같구만."
"내 평생 이런 어지러운 북소리는 처음 듣소."
막손이가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더 빠르게, 더 세게 북을 두드려 보려 했지요. 그런데 그 순간이었어요. 손바닥에 쥔 그 깨진 북채가, 빠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두 동강이 나 버리더랍니다. 멀쩡하던 박달나무 북채가, 사람들 보는 앞에서 그렇게 갈라져 버린 거예요.
장내가 일순 조용해졌다가, 곧이어 와르르 웃음이 터져 나왔답니다. 부서진 북채 토막이 무대 위에 데구르르 굴러떨어지고, 막손이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어요. 칠복이를 비롯한 패거리들이 어쩔 줄을 모르고 발을 동동 굴렀지요. 결국 그날 막손이 놀이패는 일곱 패 중에 꼴찌가 되었답니다. 황금 백 냥은 평안도 패거리에게 돌아갔고, 막손이는 한양 시정잡배들의 비웃음을 한 몸에 받으며 무대에서 끌려 내려왔지요.
집으로 돌아오는 천 리 길, 막손이는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답니다. 부서진 북채 토막을 품에 꼭 끌어안고, 그저 터덜터덜 걷기만 했어요. 충청도 땅에 도착하니, 이미 소문이 먼저 와 있더란 말입니다. "막손이가 한양에서 망신을 당했다네." "그 사람 북채가 무대 위에서 부러졌다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했고, 패거리들도 하나둘 떠나 버렸지요. 막손이가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부인이 마당에 우두커니 서서 막손이를 보더랍니다. 그런데 그 눈빛에 원망이 아니라, 그저 깊은 슬픔만이 가득했어요. 막손이가 그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었답니다.
※ 7. 다시 빈손으로 돌아온 자리, 그리고 진짜 북채
자, 이제 마지막 대목입니다. 한양에서 돌아온 막손이는 그 길로 자리에 누웠답니다. 한 달을 꼬박 앓았어요. 풍병이 다시 도졌는지, 손가락은 더 굳어 버렸고, 가슴 한복판에는 시뻘건 한이 멍울처럼 박혔지요. 기와집은 다시 팔려 초가삼간으로 돌아갔고, 부인의 금가락지도 약값으로 다 사라졌습니다. 살림이 다시 예전처럼 가난해졌는데, 그래도 부인은 단 한 마디 원망이 없었답니다. 그저 막손이 머리맡에 죽 한 그릇을 떠다 놓고, 가만히 손을 잡아 주더란 말이지요.
막손이가 어느 날 새벽, 부인의 손을 잡고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답니다.
"임자, 내가 미안하오. 내가 사람이 아니었소. 그놈의 욕심이 나를 이리 만들었구려."
부인이 빙그레 웃으면서 그러더랍니다.
"여보, 사람이 한 번 잘못은 할 수 있지요. 다시 일어나시면 됩니다. 당신 손이 굳었어도, 당신 마음만 살아있으면 저는 됐어요."
막손이가 그 말에 또 한 번 목 놓아 울었답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서진 북채 토막을 품에 안고 그 옛날의 산길을 다시 찾아갔어요. 비 내리던 날 처음 북채를 만났던 그 서낭당 자리지요. 막손이가 그 무너진 돌무더기 앞에 무릎을 꿇고, 부서진 북채 토막을 가만히 내려놓았답니다.
"도깨비 어르신,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어르신 덕에 살아난 줄도 모르고, 그것을 제 잘난 줄로 알고 함부로 굴었습니다. 이 부서진 북채, 어르신 자리에 도로 돌려드립니다. 다시는 욕심 부리지 않겠습니다."
막손이가 그렇게 한참을 엎드려 빌었어요. 빗물에 진흙이 옷에 다 묻고, 무릎이 시리도록 꿇고 있었지요. 그런데 한 식경쯤 지났을까, 어디선가 그 옛날의 그 목소리가 또 들리는 듯하더랍니다. 이번에는 호통이 아니라, 따뜻한 웃음 섞인 목소리였어요.
"허허, 이제야 사람이 됐구먼. 막손이 자네, 진짜 북채는 그 깨진 막대기가 아니었네."
막손이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지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르신?"
"진짜 북채는 자네 가슴 안에 들어 있어. 평생 자네가 흘린 땀과, 자네 부인이 자네를 믿고 기다려 준 그 마음과, 자네가 오늘 흘린 그 눈물 말일세. 그게 진짜 북채야. 이제 가서 다시 두드려 보시게. 욕심을 버린 손은, 도깨비 힘 없이도 사람을 모을 수 있는 법이라네."
목소리가 그렇게 사라졌답니다. 막손이가 그날 집으로 돌아와, 헛간에 처박아 두었던 자기 옛날 북채를 다시 꺼냈어요. 한때 술김에 패대기를 쳤던 그 북채 말입니다. 손에 쥐어 보니, 익숙하면서도 어쩐지 처음 잡아 보는 듯 새롭더랍니다. 막손이가 마당에 북을 놓고, 가만히 한 박을 쳐 보았어요.
"둥-"
여러분, 그 북소리가 어땠을 것 같습니까. 도깨비가 들어 있을 때처럼 황홀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그런 소리는 아니었답니다. 그저 평범하고, 더듬더듬하고, 한 박씩 늦게 떨어지는 어설픈 소리였어요. 그런데 그 소리에 무엇이 담겨 있었느냐. 막손이가 평생 흘린 땀과, 한양에서 무너진 자존심과, 부인의 묵묵한 사랑과, 자기를 용서한 도깨비의 자비가 다 담겨 있었던 겁니다.
이상한 일이지요. 그 어설픈 북소리에,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답니다. 옛날 막손이가 한창때 잘 나갈 때처럼 떼로 몰려드는 게 아니라, 그저 이웃들이 마실 나오듯, 어깨를 두드리며 모이는 거예요. 칠복이도 슬그머니 찾아왔고, 동네 늙은이들도 막걸리 한 사발 들고 와서 옆에 앉았지요.
"막손이, 그 소리 참 좋네. 옛날보다 더 사람 마음에 닿는구먼."
막손이가 그날 처음으로, 진짜 자기 손으로 북을 친 거지요. 그 후로 막손이는 한양을 다시는 넘보지 않았답니다. 그저 충청도 작은 장터를 돌면서, 자기 손으로 자기 박자를 두드리며, 부인과 자식들 거두며 평생을 살았답니다. 사람들이 막손이를 찾을 때마다, 막손이는 늘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지요. "내 북채는 내 가슴 안에 있소이다." 자, 이렇게 깨진 북채 한 자루가 한물간 광대 하나를 살리고, 다시 무너뜨리고, 또 다시 살린, 충청도 공주 땅의 오래된 이야기였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여러분, 오늘 이 막손이 이야기 들으시며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요. 한 번쯤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해 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내가 지금 누리는 이 자리가, 정말 온전히 내 힘으로 얻은 자리인가? 혹시 누군가의 고마운 손길을, 내 잘난 줄로 착각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사람이 잘 나갈 때 분수를 알고, 받은 은혜를 잊지 않으면, 그 끝이 곱다는 것. 이것이 우리 조상님들이 깨진 북채 하나에 담아 두고두고 전해주신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이야기 좋게 들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리며, 다음 다음 도깨비 야담에서 또 뵙겠습니다.
썸네일 프롬프트 (English, 16:9, photorealistic, no text)
A hauntingly atmospheric photorealistic 16:9 cinematic scene set on a misty rainy night at an old abandoned Korean village shrine (seonangdang) with a crumbling stone cairn and tattered colorful prayer cloths hanging from twisted branches. In the foreground, a weathered middle-aged Korean male performer in worn traditional Joseon-era hanbok with a tattered straw raincoat kneels in the muddy ground, his face streaked with rain and tears, holding up a broken wooden drumstick split in two with a faint mysterious blue-green glow emanating from the cracked end. Behind him, partially obscured by mist and rain, a faint translucent silhouette of a Korean dokkaebi goblin spirit with glowing eyes watches silently from the shadows of the shrine. A traditional Korean barrel drum (buk) lies tipped over beside him in the mud. The scene is lit by a single flickering paper lantern hanging from a branch, casting warm amber light against the cold blue moonlit rain. Cinematic moody lighting, dramatic chiaroscuro contrast, ultra-detailed photorealistic style, shallow depth of field, traditional Korean folktale atmosphere, eerie and emotional m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