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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뿔 도깨비를 길들인 처녀, 마을에 숨겨진 기적 같은 사랑 (출처-전설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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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 멘트 (250자 내외)

    해만 지면 온 마을을 공포에 떨게 만든 붉은 뿔 도깨비! 그 누구도 감히 산에 오르지 못하고 숨죽여 지내던 어느 날, 겁 없는 한 처녀가 홀로 도깨비의 소굴로 향합니다. 모두가 미쳤다 손가락질했지만, 처녀는 마침내 도깨비의 누구에게도 말 못 할 비밀과 마주하게 되는데…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깊은 산속, 붉은 뿔이 달린 무시무시한 도깨비가 산다는 소문에 마을 사람들은 두려움에 떱니다. 하지만 남다른 용기와 따뜻한 마음을 지닌 처녀 '연희'는 소문 너머의 진실을 보고자 합니다. 마침내 마주하게 된 도깨비의 진짜 모습과 눈물겨운 사연. 두려움을 넘어선 교감이 만들어내는 기적 같은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 공포의 그림자, 붉은 뿔 도깨비

    조선 팔도의 수많은 고을 중에서도 유독 깊은 산세에 둘러싸여, 마치 세상과 단절된 듯한 작은 마을이 있었습니다. 산이 병풍처럼 마을을 감싸고 있어 풍경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지만, 해가 서쪽 능선 너머로 그 모습을 감추기 시작하면, 이 평화는 거대한 공포의 그림자 아래 잠식당하고 말았습니다.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하면 마을의 모든 생기는 거짓말처럼 잦아들었습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육중한 빗장을 걸어 잠갔고, 혹여 갓난아이라도 울음을 터뜨릴세라 어머니는 아이의 입을 막고 가슴을 졸여야만 했습니다. 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을을 이토록 질식할 듯한 공포로 몰아넣은 것은, 바로 마을 뒤편에 검은 그림자처럼 웅크리고 있는 거대한 '먹산' 때문이었습니다. 숲이 워낙 깊고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한낮에도 햇빛이 땅에 닿지 못하고 늘 어두컴컴했기에 붙여진 이름이었지요. 대대로 마을 사람들에게 풍성한 땔감과 산나물을 내어주던 고마운 산이, 언제부턴가 죽음의 산, 금기의 땅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그 산 깊은 곳에 이마 한가운데 붉은 뿔이 달린 무시무시한 도깨비가 살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돌면서부터였습니다. 처음 마을 사람들은 그 소문을 코웃음 쳤습니다. 늙은이들이 아이들 버릇 잡으려고 지어낸 이야기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소문은 곧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 마을 사람들의 일상을 파고들었습니다. 달빛마저 구름에 가려진 그믐밤이면, 산짐승의 울음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하늘과 땅이 통째로 울리는 듯한 기이하고 구슬픈 울음소리가 음산한 바람을 타고 마을까지 내려왔습니다. 그 울음소리가 들린 다음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흉흉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박 서방네 외양간에서 가장 튼실하던 황소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김 영감네 뒤뜰에 잘 말려두었던 옥수수 더미가 하룻밤 사이에 통째로 없어져 버렸습니다. 한 번은 객기로 가득 찬 젊은 포수가 자신의 활솜씨를 믿고 도깨비의 정체를 밝혀내겠다며 마을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호기롭게 산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흘 뒤, 산 아랫자락에서 실성한 사람처럼 발견되었습니다. 옷은 갈기갈기 찢겨 있었고, 눈은 공포로 풀려 초점이 없었으며, 그는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부들부들 떨 뿐이었습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그는 산 중턱의 바위 뒤에 숨어있다가, 집채만 한 검은 그림자가 시뻘건 외눈을 번뜩이며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그 눈과 마주치는 순간 온몸이 얼어붙어 죽는 줄 알았다고 되뇌었습니다. 그 끔찍한 사건 이후, 먹산은 그 이름처럼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낮에 잠시 산나물을 캐러 갔던 아낙들도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비명을 지르며 허둥지둥 내려왔고, 아이들은 산 쪽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제 그저 해가 지면 문을 걸어 잠그고, 붉은 뿔 도깨비가 오늘 밤은 부디 자신의 집을 그냥 지나쳐주기만을 간절히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도깨비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을 거치며 살이 붙고 부풀려져, 이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흉악한 괴물로 변해있었습니다. 사람의 간을 날로 빼먹는다더라, 그 눈을 마주치면 영혼을 빼앗긴다더라 하는 끔찍한 이야기들이 더해져, 공포는 실체 없는 역병처럼 마을 전체에 퍼져나갔습니다.

    ※ 겁 없는 처녀, 연희의 결심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붉은 뿔 도깨비라는 거대한 공포의 그림자 아래 떨며 숨죽이고 있을 때, 유독 그 소문을 다른 시선으로, 다른 마음으로 바라보는 한 처녀가 있었습니다. 처녀의 이름은 연희였습니다. 어려서 병으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가난한 처녀였지만, 그녀의 눈빛은 늘 맑았고, 그 마음은 웬만한 사내대장부보다 곧고 단단했습니다. 연희는 다른 마을 사람들처럼 도깨비 소문에 마냥 겁을 먹고 움츠러들기보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풀리지 않는 의문을 품곤 했습니다. '소문대로라면 도깨비는 그토록 흉악하고 잔인한 존재라는데, 어째서 지금까지 다친 사람은 포수 아저씨 한 명뿐이고, 그마저도 목숨에는 지장이 없지 않은가? 정말로 사람을 해치려 했다면 벌써 마을에 피바람이 불었을 텐데. 왜 힘없는 가축이나 곡식만 가져가는 걸까? 그리고 무엇보다, 밤마다 산을 울리는 그 울음소리는 어째서 분노나 위협이 아닌, 듣는 사람의 마음까지 아려오는 깊은 슬픔을 담고 있는 것일까?' 연희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공포의 허상 너머에, 분명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애달픈 사연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런 그녀의 남다른 생각과 용기를 시험이라도 하듯, 피할 수 없는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한평생 고생만 하신 연희의 홀어머니가 그만 자리에 눕고 만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환절기 감기려니 했지만, 어머니의 병세는 날이 갈수록 깊어져만 갔습니다. 좋다는 약은 백방으로 구해다 드리고, 밤낮으로 정성껏 간호했지만, 어머니는 이제 죽 한 그릇조차 제대로 넘기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마을의 늙은 의원은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어머니의 병은 몸이 아니라 마음에서 비롯된 깊은 울화병이라, 여간한 약으로는 고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오직 먹산 깎아지른 절벽 끝에, 하늘의 정기를 받고 자란다는 '하늘뿌리'라는 귀한 약초를 달여 먹여야만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걸어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늘뿌리. 그 이름은 연희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들었습니다. 그 약초가 자라는 곳은 맹수와 독사가 우글거리는 것은 물론, 발 한번 헛디디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먹산에서도 가장 험하고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곳은, 바로 붉은 뿔 도깨비의 소굴이라 불리는 금단의 영역이기도 했습니다. 연희의 결심을 눈치챈 마을 사람들은 모두 기겁하며 그녀를 뜯어말렸습니다. "연희야, 네 효심은 갸륵하다만, 이건 무모한 짓이다! 그곳에 들어가는 것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야!" "어미를 살리려다 네 목숨까지 잃으면, 저승에서 네 어미가 마음 편히 눈을 감을 수 있겠느냐!" 이웃들은 진심으로 그녀를 걱정하며 눈물까지 글썽였지만, 연희의 결심은 바위처럼 단단했습니다. 그녀에게 어머니는 이 세상의 전부였고, 단 하나의 희망이 있다면 그것이 설령 도깨비의 굴이라 할지라도 가야만 했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이것이 운명이라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를 살릴 약초를 구하는 동시에, 마을 전체를 옥죄고 있는 공포의 실체를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라는 하늘의 계시라고 말입니다. 며칠 후, 닭의 첫 울음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깨뜨릴 무렵, 연희는 조용히 채비를 마쳤습니다. 잠든 어머니의 머리맡에 정성껏 끓인 미음을 놓아두고, ‘어머니, 꼭 살아서 돌아와 약초를 달여드리겠습니다’라는 짧은 서찰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허리춤에는 튼튼한 동아줄과 작은 호미를 차고, 품에는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작은 복주머니를 소중히 품은 채, 조용히 사립문을 나섰습니다. 마을 어귀를 지날 때, 이른 새벽부터 밭으로 향하던 몇몇 어른들이 그녀의 행색을 보고는 혀를 차며 미친 처녀라고, 곧 도깨비밥이 될 것이라고 수군거렸지만, 연희는 그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갈 뿐이었습니다. 마침내 사람의 발길이 끊겨 잡초만 무성한 먹산의 입구에 다다랐습니다.

    ※ 운명적인 첫 만남

    먹산의 숲은 연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고 음산했습니다. 하늘을 빈틈없이 가려버린 나뭇가지들 때문에 대낮인데도 사방은 해 질 녘처럼 어둑했고, 발밑에서는 몇십 년은 묵었을 법한 축축한 부엽토 썩는 냄새가 훅 올라와 코를 찔렀습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름 모를 새의 기괴한 울음소리와, 덤불 속에서 무언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연희는 의원이 그려준 하늘뿌리 약초 그림과, 절벽은 산의 가장 높은 곳에 있다는 막연한 정보에만 의지한 채, 무작정 위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길은 더욱 험준해졌고, 사방이 비슷한 모양의 나무와 바위뿐이라 방향 감각마저 흐릿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나절을 꼬박 헤매던 중, 맑던 하늘이 갑자기 시커먼 먹구름으로 뒤덮이더니, 이내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장대 같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는 비에 순식간에 계곡물은 거대한 흙탕물로 변해 무서운 기세로 불어났고, 연희는 금방이라도 급류에 휩쓸릴 듯한 위기 속에서 간신히 높은 바위 위로 기어올라 나무를 부둥켜안고 버텼습니다. 천지를 뒤흔드는 천둥과 번개, 그리고 살을 에는 듯한 비바람 속에서 연희의 몸은 점차 차갑게 식어갔고, 의식은 아득해져 갔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눈앞에서 번개가 번쩍 하고 밤하늘을 가르는 순간, 저 멀리 산 중턱에 있는 거대한 동굴의 검은 입구가 찰나처럼 연희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연희는 저곳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에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짰습니다. 미끄러운 바위를 타고, 거친 나뭇가지에 살이 긁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필사적으로 동굴을 향해 기어갔습니다. 마침내 동굴 안으로 비틀거리며 들어서는 순간, 바깥세상의 폭풍우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만큼 고요하고 아늑한 정적이 그녀를 감쌌습니다. 안도감에 긴장이 탁 풀린 연희는 그대로 동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한숨을 돌리고 흠뻑 젖은 옷의 물기를 짜내던 연희는, 동굴 저 깊은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소리에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 그것은 바람 소리도, 물 떨어지는 소리도 아니었습니다. 마치 거대한 짐승이 고통스럽게 숨을 몰아쉬는 듯한 거친 숨소리와, 바닥을 손톱으로 긁는 듯한 기이한 소음이었습니다. 연희의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듯했습니다. '설마… 이곳이…' 그녀의 끔찍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동굴 안쪽, 한 줌의 빛도 닿지 않는 심연의 어둠 속에서부터 두 개의 시뻘건 불빛이 서서히, 그리고 묵직하게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반딧불 따위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생명체의, 분노와 고통으로 가득 찬 눈빛이었습니다. 이윽고 희미한 달빛이 동굴 입구로 스며들어 오자, 마침내 그 거대한 실체가 모습을 온전히 드러냈습니다. 덥수룩하게 헝클어진 머리카락, 다부진 장정 서넛은 합쳐놓은 듯한 거대한 몸집, 그리고 이마 한가운데에 기괴하게 솟아난 흉측하고 커다란 붉은 뿔. 마을 전체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전설 속의 붉은 뿔 도깨비였습니다. 도깨비는 금방이라도 연희의 목을 물어뜯을 듯,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낮은 신음과 함께 위협적인 자세를 취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 자리에서 비명을 지르며 혼절하거나 정신없이 도망쳤겠지만, 연희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도망치거나 소리치는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떨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도깨비를 똑바로 마주 보았습니다. 연희의 맑은 눈에 비친 것은 흉측하고 잔인한 괴물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본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극한의 고통과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에 잠겨 온몸을 경련하듯 떨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존재의 모습이었습니다. 도깨비의 붉은 두 눈에서는 분노나 살의가 아닌, 짙은 슬픔과 고통의 그림자가 넘실거리고 있었고, 간간이 터져 나오는 신음 소리는 위협이라기보다는 고통에 찬 처절한 울부짖음에 가까웠습니다. 연희는 자신도 모르게 홀린 듯, 도깨비를 향해 천천히 한 걸음 다가갔습니다. 그러자 도깨비는 더욱 거칠게 으르렁거리며 뒷걸음질 쳤습니다. 마치 다가오지 말라는 듯, 덫에 걸린 상처 입은 짐승처럼 필사적으로 자신을 방어하고 있었습니다. 연희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로, 마치 아픈 아이를 달래듯 말했습니다. "괜찮아요. 저는 당신을 해치러 온 것이 아니에요. 많이… 아파 보이는군요. 제가… 도와줄 수 있을까요?"

    ※ 상처와 교감, 비밀의 시작

    칠흑 같은 동굴 안, 오직 폭우 소리만이 가득한 정적 속에서 서로를 마주 보던 연희와 도깨비. 연희는 도깨비가 더 이상 위협적인 포효를 하지 않자, 그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다시 한번 입을 열었습니다. "무서워하지 말아요. 저는 그저 비를 피하러 들어왔을 뿐이에요. 날이 밝고 비가 그치면, 곧 떠날 겁니다. 당신을 방해하지 않을게요." 그녀는 도깨비를 안심시키려는 듯, 천천히 바닥에 주저앉아 동굴 입구 쪽 벽에 등을 기댔습니다. 더 이상 다가가지 않겠다는 무언의 표시였습니다. 연희의 침착하고 진심 어린 태도에, 도깨비의 극심했던 경계심도 아주 조금씩 누그러지는 듯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지 않고, 동굴 가장 깊고 어두운 구석에 거대한 몸을 웅크린 채, 그저 붉은 눈으로 조용히 연희를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동굴 안의 희미한 빛에 눈이 익숙해진 연희는 도깨비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뜯어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경악을 금치 못할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며 '붉은 뿔'이라고 부르던 것은, 사실 뿔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끝이 날카롭게 부러진 거대한 나무 파편이 이마에 깊숙이 박혀 있는,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상처였습니다. 나무 파편 주변의 살갗은 시커멓게 썩어 들어가고 있었고, 상처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그 주변이 딱딱하게 굳어 뿔처럼 튀어나와 보였던 것입니다. 상처에서는 계속해서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피고름이 흘러내려 한쪽 눈을 가리고 있었고, 도깨비는 그 참을 수 없는 고통 때문에 간간이 머리를 흔들며 벽에 머리를 찧는 등,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고 있었습니다. 연희는 그제야 모든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밤마다 마을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그 구슬픈 울음소리는 바로 이 상처의 고통 때문에 지르는 신음이었고, 외양간의 소나 옥수수를 가져간 것은,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와중에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한 최소한의 생존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사람을 해치는 흉악무도한 괴물이 아니라, 그저 깊은 상처를 입고 아무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이 어둡고 축축한 동굴 속에서 홀로 죽음과 같은 고통을 견디고 있던 불쌍한 존재였습니다. 연희의 마음속에서 뜨거운 연민이 끓어올랐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습니다.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품속에서 마른 약초 주머니와 깨끗한 천 조각을 꺼내 들고 도깨비에게 천천히 다가갔습니다. 도깨비는 또다시 경계하며 몸을 뒤로 뺐지만, 연희는 멈추지 않고 그의 바로 앞까지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치마폭을 길게 찢어, 허리춤에 차고 있던 물통의 깨끗한 물을 적셨습니다. "많이 아팠겠군요. 움직이지 말아요, 제가 치료해줄게요. 덧나면 큰일 나요. 가만히 있어봐요." 그녀는 마치 아픈 동생을 달래는 누이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도깨비를 달래며,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의 이마에 있는 끔찍한 상처 주변을 닦아주기 시작했습니다. 도깨비는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손길에 거대한 몸을 움찔 떨었습니다. 인간이란 늘 자신을 향해 돌을 던지거나 날카로운 쇠붙이를 겨누며 소리를 지르는, 두렵고 잔인한 존재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눈앞의 이 작고 연약해 보이는 인간은, 자신의 가장 흉측하고 고통스러운 상처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어루만져주고 있었습니다. 연희의 정성스러운 간호는 칠흑 같은 밤이 새도록 계속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약초 지식을 총동원해, 가져온 약초 주머니에서 지혈과 염증에 좋은 풀들을 골라 짓이겨 상처에 발라주고, 깨끗한 천으로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단단히 동여매 주었습니다. 연희의 진심 어린 보살핌과 따스한 온기 속에서, 도깨비의 마음을 수십 겹으로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던 불신과 외로움의 벽이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날이 밝아오자, 거세던 비바람도 거짓말처럼 멎고 찬란한 아침 햇살이 동굴 안을 비추었습니다. 연희가 떠날 채비를 하자, 밤새 얌전히 치료를 받던 도깨비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겉모습과는 달리, 깊은 동굴처럼 낮고 슬픈 울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맙다, 인간." 그 짧은 한마디에는 미안함과 놀라움, 그리고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감사함이라는 수만 가지 감정이 담겨 있었습니다. 연희는 따뜻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천만에요. 저는 연희라고 해요. 어머니 약초를 구하러 다시 와야 하니, 그때 또 들를게요. 그때까지 몸조리 잘하고 있어요." 연희는 동굴을 나서기 전, 도깨비의 거칠고 커다란 손에 자신이 먹으려고 품에 품고 왔던 따뜻한 주먹밥 덩이를 쥐여주었습니다.

    ※ 마을에 닥친 위기

    그날 이후, 연희에게 먹산은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어머니께 드릴 하늘뿌리를 캔다는 핑계로 매일같이 산을 올랐습니다. 물론 하늘뿌리를 찾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발걸음은 언제나 동굴을 향해 있었습니다. 연희는 매일같이 도깨비의 상처를 살피고 새 약초로 갈아주며 정성껏 보살폈습니다. 그녀의 지극한 간호 덕분이었을까, 끔찍하게 덧나 있던 도깨비의 상처는 눈에 띄게 아물기 시작했고, 더 이상 피고름이 흐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고통이 줄어들자 도깨비의 표정도 한결 부드러워졌습니다. 연희는 산처럼 크고 든든하며, 마음 또한 산처럼 깊고 넓어지라는 의미를 담아, 도깨비에게 '큰산'이라는 다정한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미르는 처음에는 자신의 이름을 듣고 어색해했지만, 이내 연희가 다정하게 "큰산아" 하고 불러줄 때마다 빙그레 미소 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연희는 매일 미르에게 소박하지만 정성껏 만든 음식을 가져다주고, 마을에서 있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습니다. 미르는 말수는 적었지만, 연희가 이야기할 때면 늘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묵묵히 들어주었습니다. 그는 연희 덕분에 태어나 처음으로 외로움이 아닌 함께라는 충만함을, 끔찍한 고통이 아닌 따스한 온기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미르 또한 조금씩 연희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본래 이 산의 정기가 뭉쳐 태어난 마음씨 착한 도깨비였지만, 몇 해 전 산의 기운을 노리고 쳐들어온 사악한 요괴들과 큰 싸움을 벌이다가 이마에 깊은 상처를 입고 기억의 일부와 본래의 힘 대부분을 잃었다고 했습니다. 그 후 극심한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인간들을 경계하며 홀로 지내왔던 것이지요. 연희는 그의 슬프고 외로웠을 과거에 함께 눈물 흘리며, 그의 상처 입은 마음을 진심으로 위로해주었습니다. 둘만의 비밀스러운 우정이 깊어갈 무렵, 평화롭던 산골 마을에 피비린내 나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습니다. 인근에서 온갖 악행을 일삼으며 악명이 높던 산적 떼가 관아의 대대적인 토벌 작전을 피해 이 깊은 산골 마을까지 숨어 들어온 것입니다. 수십 명에 달하는 산적들은 흉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마을을 순식간에 점령하고는, 집집마다 문을 부수고 들어가 얼마 되지도 않는 곡식과 재물을 모조리 빼앗고, 반항하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등 온갖 행패를 부렸습니다. 마을의 몇 안 되는 혈기왕성한 장정들이 낫과 괭이를 들고 맞서 싸워보았지만, 사람을 해치는 데 이골이 난 전문적인 산적들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관아에 급히 사람을 보내 도움을 청했지만, 워낙 외지고 험한 곳이라 지원 병력이 도착하려면 며칠이 걸릴지 기약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마을은 순식간에 공포와 절망, 그리고 피와 눈물이 뒤섞인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산적들은 마지막 남은 식량까지 모조리 빼앗고는, 그것도 모자라 마을의 젊은 처녀들을 자신들의 노리개로 삼겠다며 내놓으라고 윽박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그저 땅을 치고 통곡할 뿐이었습니다. 이 끔찍한 소식을 전해 들은 연희의 마음은 분노와 슬픔으로 불타는 듯했습니다. 자신의 소중한 이웃과 친구들이 눈앞에서 고통받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한 사람, 아니 한 존재가 떠올랐습니다. 산처럼 든든하고, 바위처럼 단단한 미르었습니다. 하지만 연희는 깊은 고뇌에 빠졌습니다. 인간에게 그토록 깊은 상처를 받았던 미르에게, 또다시 인간들의 추악한 싸움에 끼어들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너무나 이기적이고 염치없는 일이었습니다. 그가 또다시 상처받을 수도 있는, 너무나 위험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산적들의 칼에 쓰러져 신음하는 이웃 아저씨의 모습과, 겁에 질려 부모의 옷자락 뒤에 숨어 우는 아이들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리자 연희는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결심을 굳히고, 산적들의 눈을 피해 뒷산으로 미친 듯이 내달렸습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채 동굴에 도착한 연희는, 자신을 보고 평소처럼 반갑게 맞이하는 미르를 보자마자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쏟아내며 애원했습니다. "큰산아… 제발 부탁이야.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야. 우리 마을 모든 사람들의 목숨이 달렸어. 네가 또다시 상처받을까 봐 너무나 두렵지만, 너 말고는 우리를 도와줄 이가 아무도 없어. 제발… 우리 마을을 구해줘!" 미르는 겁에 질려 덜덜 떨며 우는 연희의 모습과, 그녀가 들려주는 마을의 참혹한 상황에 말없이 거대한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 산의 수호신이 된 도깨비

    그날 밤, 마을 광장에서는 산적들의 광란의 잔치가 한창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서 빼앗은 술과 고기를 먹고 마시며, 공포에 질려 떨고 있는 부녀자들을 희롱하고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굴욕과 공포에 질려 고개를 숙인 채, 이 지옥 같은 시간이 제발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었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어디선가 땅 전체가 낮게 울리는 듯한 거대한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쿵, 쿵, 쿵… 단순한 발소리가 아니었습니다. 거대한 산사태가 마을을 향해 다가오는 듯한, 위압적이고 무시무시한 소리였습니다. 술에 취해 있던 산적들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소란을 멈춘 채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마을 어귀의 짙은 어둠 속에서, 집채만 한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성큼성큼 걸어 나왔습니다. 이윽고 광장의 모닥불 빛 아래 드러난 그 장엄한 모습에, 산적들은 물론이고 겁에 질려 있던 마을 사람들까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마에는 오래된 상처 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전설 속에서나 듣던 바로 그 붉은 뿔 도깨비가 그들 앞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네 이놈들! 감히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선량한 사람들을 괴롭히다니, 단 한 놈도 살려두지 않겠다!" 미르의 포효는 천지를 뒤흔드는 천둥과도 같았고, 광장의 모닥불이 그의 음성에 맞춰 세차게 흔들릴 정도였습니다. 겁에 질린 산적 몇몇이 객기를 부리며 칼을 휘두르고 창을 던지며 달려들었지만, 미르는 마치 성가신 날벌레를 쫓듯 육중한 팔을 가볍게 휘둘러 그들을 멀리 담장 너머로 날려버렸습니다. 그는 분노에 차, 길가에 있던 거대한 아름드리나무를 마치 무를 뽑듯 가볍게 뿌리째 뽑아 몽둥이처럼 휘둘렀고, 그의 발길질 한 번에 산적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나갔습니다. 그 모습은 마을 사람들이 상상했던 흉악하고 잔인한 괴물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마을을 지키기 위해 강림한 분노한 산신령처럼 위풍당당하고 용맹했으며, 그 어떤 불의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굳건한 기세가 넘쳐흘렀습니다. 미르의 압도적인 힘과 신과 같은 위용 앞에, 수십 명에 달하던 산적들은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고 혼비백산하여 무기를 버리고 앞다투어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미르는 도망치는 산적들을 끝까지 쫓아가 다시는 이 마을은 물론, 그 어떤 곳에서도 악행을 저지를 생각조차 못 하도록 단단히 혼을 내주었습니다. 순식간에 마을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을 구해준 것이, 그토록 오랫동안 두려워하고 저주했던 붉은 뿔 도깨비라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해,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때, 연희가 미르의 곁으로 달려가 그의 상처투성이 거대한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꼭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아직도 두려움과 혼란 속에서 떨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향해, 온 힘을 다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여러분, 이분은 우리를 해치는 괴물이 아닙니다! 그동안 말 못 할 깊은 상처를 안고 이 깊은 산속에서 홀로 고통받아왔을 뿐이에요. 오늘, 우리 모두의 목숨을 구해준 우리의 소중한 은인입니다!" 연희의 용기 있고 진심 어린 외침에,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씩 고개를 들고 미르를 제대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두려움과 편견이라는 장막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그의 슬픈 눈과, 마을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던진 용맹한 모습을 비로소 보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빛에서 두려움이 서서히 사라지고, 그 자리를 감사함과 깊은 미안함이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마을의 가장 연장자인 촌장 어른이 지팡이를 짚고 앞으로 나서, 미르를 향해 허리를 깊이 숙여 큰절을 올렸습니다. "저희의 눈이 어둡고 마음이 어리석어, 당신의 깊은 고통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부디 저희의 무례와 무지를 용서하시고, 앞으로 저희 마을의 든든한 수호신이 되어주시길 간청드립니다." 촌장의 말이 끝나자, 모든 마을 사람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일제히 미르를 향해 땅에 엎드려 절을 올렸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보는 진심 어린 감사와 존경에, 미르의 붉은 눈에서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굵게 흘러내렸습니다. 그 눈물은 수년간 그를 괴롭혔던 외로움과 슬픔, 그리고 인간에 대한 불신의 상처를 깨끗이 씻어내리는 듯했습니다. 그날 이후, 미르는 더 이상 어둡고 축축한 동굴 속에 숨어 지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을의 든든한 수호신이 되어, 가뭄이 들면 먼 산의 물줄기를 끌어다 주고, 흉년이 들면 산의 귀한 열매들을 가져다주며 마을 사람들을 살뜰히 보살폈습니다. 아이들은 더 이상 그를 무서워하지 않고, 그의 커다란 무릎에 올라앉아 재롱을 부리는 가장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연희와 미르의 아름다운 우정은 더욱 깊어졌고, 그들의 이야기는 마을의 가장 소중한 전설이 되어 대대손손 이어졌습니다.

    유튜브 엔딩 멘트

    재미있게 들으셨나요? 모두가 두려워하던 존재의 아픔을 알아보고,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간 처녀 연희의 용기가 마을 전체를 구하는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우리가 가진 편견과 두리움이 어쩌면 소중한 진실을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겉모습 너머의 마음을 볼 수 있는 지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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