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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를 장가보낸 흙수저 총각, 악덕 사또의 딸과 도깨비의 기막힌 혼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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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장가가고 싶어 안달이 난 수백 살 노총각 도깨비와 찢어지게 가난한 흙수저 나무꾼의 기상천외한 동맹! 평소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던 악덕 사또의 콧대 높은 딸내미 방에 무시무시한 도깨비를 신랑감으로 밀어 넣었다?! 기절초풍하는 사또와 능청스러운 도깨비 사위의 환장할 동거, 그리고 도깨비 중매 한 번 잘 서서 벼락부자가 된 나무꾼의 통쾌한 인생 역전 사이다 야담! 지금 바로 귀를 기울여보세요!
※ 1: 찢어지게 가난한 나무꾼과 고혈을 짜는 악덕 사또
"쩌억, 쩍!"
서늘한 새벽 공기를 가르고 묵직한 도끼 소리가 깊은 산골짜기를 메아리치며 울려 퍼진다. 동이 트기도 전, 희끄무레한 여명만이 산등성이를 간신히 비추는 시각.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소매 끝으로 훔쳐내며 쉴 새 없이 도끼질을 하는 사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칠성. 마을에서 제일가는 부지런쟁이이자, 동시에 마을에서 제일가는 흙수저 가난뱅이 노총각 나무꾼이다.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것이라곤 튼튼한 두 팔과 다리, 그리고 이 빠진 낡은 도끼 한 자루가 전부였으니,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매일같이 험한 산을 오르내리며 땔감을 구해다 장터에 내다 파는 것뿐이었다.
'후유, 오늘따라 도끼질이 영 시원찮구나. 이깟 마른나무 몇 단 팔아봐야 보리쌀 한 되 사기도 빠듯할 텐데. 내 나이 벌써 스물여덟이건만, 번듯한 내 집 한 칸은커녕 장가갈 밑천 한 푼 모으지 못했으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로다. 평생 이렇게 산에서 나무나 베다 늙어 죽을 팔자인가.'
칠성은 바닥에 널브러진 장작들을 지게에 켜켜이 쌓아 올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 몸집보다도 훨씬 큰 지게를 짊어지고 산을 내려오는 그의 발걸음은 오늘따라 유난히 무거웠다. 그가 사는 마을은 본디 산세가 수려하고 물이 맑아 백성들의 인심이 넉넉한 곳이었다. 하지만 몇 해 전, 새로 부임해 온 사또 때문에 마을은 그야말로 생지옥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사또로 말할 것 같으면, 탐욕이 턱밑까지 차올라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는 데 혈안이 된 희대의 악덕 관리였다. 가뭄이 들어 먹을 풀뿌리조차 없는 흉년에도 세금을 두 배, 세 배로 올려 거둬들였고, 조금이라도 항의하는 백성이 있으면 가차 없이 관아로 끌고 가 곤장을 쳐서 반죽음으로 만들어 내쫓기 일쑤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또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무남독녀 외동딸이 하나 있었는데, 이 딸내미의 콧대가 어찌나 높고 성정이 고약한지 온 고을에 소문이 파다했다.
장터에 도착한 칠성은 한쪽 구석에 지게를 내려놓고 거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 장터 한복판이 시끌벅적해지더니 사람들의 비명과 욕설이 뒤섞여 들려왔다.
"아이고, 나리! 제발 이것만은 참아주십시오! 병든 노모에게 드릴 약을 달여야 해서 간신히 모은 땔감입니다요!"
"시끄럽다! 사또 나리의 엄명이시다! 오늘부로 장터에서 물건을 파는 모든 자들은 자릿세로 물건의 절반을 관아에 바쳐야 한다! 순순히 내놓지 않으면 당장 포승줄로 묶어 하옥시킬 테니 그리 알아라!"
사또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포졸들이 장터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가난한 백성들의 물건을 닥치는 대로 빼앗고 있었다. 칠성의 눈앞에서도 어제 갓 잡아 온 생선을 팔던 늙은 어부의 바구니가 포졸의 발길질에 엎어졌고, 은빛 생선들이 흙바닥에 나뒹굴었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지만, 힘없는 나무꾼이 관아의 포졸들을 상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곧이어 포졸 하나가 칠성의 앞까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칠성이 반나절 동안 뼈 빠지게 패온 장작 무더기를 발로 툭툭 걷어찼다.
"어이, 나무꾼 놈. 네놈도 예외는 아니다. 자릿세로 이 장작의 절반을 당장 관아로 실어 날라라. 알겠느냐?"
"나리, 너무하십니다. 이 장작은 제 하루 치 목숨 줄이나 다름없습니다. 이걸 반이나 빼앗아가시면 저는 오늘 하루 종일 물만 마시고 주려야 합니다. 제발 한 번만 선처해 주십시오."
칠성이 허리를 굽히며 애원했지만, 포졸은 코웃음을 치며 칠성의 멱살을 거칠게 틀어쥐었다.
"이놈이 어디서 감히 관의 명령에 토를 달아? 정 억울하면 네놈이 양반으로 태어나든가! 당장 내놓지 못할까!"
결국 칠성은 피눈물을 머금고 자신이 캔 장작의 절반을 포졸들에게 속절없이 빼앗기고 말았다. 남은 장작을 팔아 손에 쥔 돈은 서푼 남짓. 쌀은커녕 싸구려 탁주 한 사발 사 먹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푼돈이었다. 터덜터덜 빈 지게를 짊어지고 텅 빈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저 멀리 산자락 아래 으리으리하게 솟아 있는 사또의 기와집이 유난히 원망스럽게 시야에 들어왔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저런 짐승만도 못한 탐관오리는 매일 고깃국에 비단옷을 입고 떵떵거리며 살고, 선량한 백성들은 굶주림에 허덕여야 하다니. 어디 서슬 퍼런 벼락이라도 쳐서 저 악독한 사또 놈과 그 버르장머리 없는 딸내미 혼쭐을 내줄 수는 없는 것인가! 아아, 원통하고 억울하구나!'
칠성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울분을 토해냈다. 아무런 희망도, 빛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흙수저의 삶.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칠성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이 깊고 서러운 밤,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을, 세상에서 가장 기상천외하고 끔찍하게 든든한 빽(?)이 산 깊은 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 2: 장가 못 가 한 맺힌 노총각 도깨비와의 조우
다음 날 이른 새벽. 어제 장작을 반이나 빼앗겨 하루를 쫄쫄 굶은 칠성은, 오늘이야말로 어떻게든 잃어버린 몫까지 악착같이 보충해야만 했다. 평소에 오르던 동네 뒷산의 야트막한 산등성이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산짐승과 잡귀가 나온다며 꺼리는, 첩첩산중 호랑이 바위 너머의 깊고 깊은 숲속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울창하게 우거진 고목들이 하늘을 완전히 뒤덮어, 대낮인데도 숲속은 마치 초저녁처럼 어둑어둑하고 서늘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조차 기괴하게 울려 퍼지는 음산한 분위기였지만, 굶주림이라는 짐이 더 무거웠던 칠성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연신 훔쳐내며 묵묵히 도끼질에 매진했다. "쩌어억! 쿵!" 품질 좋은 아름드리 참나무들이 칠성의 도끼질 몇 번에 육중한 소리를 내며 속절없이 쓰러졌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무를 패다 보니, 어느새 해가 서산 너머로 완전히 모습을 감추고 숲속에는 칠흑 같은 짙은 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제야 덜컥 겁이 난 칠성은 부랴부랴 지게에 나무를 잔뜩 묶어 짊어지고 산을 내려갈 채비를 서둘렀다.
"이런, 너무 깊이 들어왔구나. 서둘러야겠다. 길을 잃거나 산짐승이라도 만나면 뼈도 못 추릴 텐데."
칠성이 잰걸음으로 하산길을 재촉하던 그때였다.
"끄으으어어엉… 아이고, 내 팔자야… 엉엉!"
어디선가 짐승의 울부짖음 같기도 하고, 집채만 한 바위가 굴러떨어지는 소리 같기도 한 기괴하고 거대한 곡소리가 온 숲을 쩌렁쩌렁 울리며 들려왔다. 등골이 오싹해진 칠성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멈춰 섰다.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떨고 있는데, 소리는 점점 더 커지더니 바로 앞 커다란 바위 너머에서 선명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왜, 도대체 왜! 나만 짝이 없는 것이냐! 옆 산의 몽달 도깨비도 장가를 가고, 앞 냇가의 물 도깨비도 여우 같은 마누라를 얻어 아들딸 낳고 잘만 사는데! 왜 나만 수백 년째 홀아비 신세냔 말이다! 끄어엉!"
사람의 목소리라기엔 너무나도 탁하고 웅장한, 귀청이 떨어질 듯한 커다란 목소리였다. 칠성은 덜덜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진정시키며, 조심스럽게 바위 뒤로 몸을 숨기고 빼꼼히 고개를 내밀어 소리가 나는 쪽을 훔쳐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칠성은 너무 놀라 하마터면 지게를 내동댕이치고 비명을 지를 뻔했다.
구름 사이로 스며든 희미한 달빛 아래, 아름드리나무 기둥보다 두꺼운 허벅지에 온몸이 시뻘건 털로 덮여 있고, 머리에는 뾰족한 뿔이 솟아오른 거대한 괴물 하나가 땅바닥을 쾅쾅 내리치며 서럽게 통곡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옛이야기 속에서나 듣던 무시무시한 산 도깨비가 틀림없었다. 도깨비가 주먹으로 땅을 칠 때마다 지진이 난 것처럼 바닥이 흔들렸고, 그가 내뿜는 숨결에서는 매캐한 유황 냄새가 훅훅 풍겨왔다.
하지만 그 무시무시한 외양과는 다르게, 도깨비가 울부짖는 내용은 참으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다.
"아이고, 서러워라! 나도 따뜻한 밥 지어주는 각시 품에 안겨보고 싶다! 나도 장가가고 싶단 말이다! 은금보화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으면 뭣 하나! 밤마다 쓸쓸히 빈 방바닥을 긁는 이 외로운 신세를 뉘 알아줄꼬! 엉엉!"
도깨비는 제 얼굴만 한 커다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마치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며 훌쩍거리고 있었다. 처음엔 요괴의 등장에 기절할 뻔했던 칠성이었지만, 가만히 그 사연을 듣고 있자니 묘한 동질감과 함께 실소가 터져 나오려 했다.
'아니, 저렇게 무시무시하게 생긴 도깨비가 장가를 못 가서 저리도 서럽게 운단 말인가? 가만, 수백 년째 모태솔로 홀아비라고? 금은보화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음… 이거 어쩌면 하늘이 나에게 내린 기회일지도 모르겠구나!'
평소 영특하고 배짱 하나만큼은 두둑했던 칠성의 머릿속에, 순간 번뜩이는 기막힌 묘안이 스쳐 지나갔다. 찢어지게 가난한 흙수저 나무꾼과, 돈은 썩어 넘치지만 짝이 없어 한 맺힌 노총각 도깨비. 이보다 완벽한 이해관계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칠성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한 뒤, 바위 뒤에서 성큼 걸어 나왔다.
"에헴! 이 깊고 고요한 야심한 밤에, 뉘신데 그리 산천초목이 떠나가라 서럽게 우는 것이오!"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화들짝 놀란 도깨비가 울음을 뚝 그치고 커다란 노란 눈알을 부리부리하게 부릅뜨며 칠성을 노려보았다.
"크르릉! 넌 또 뭐 하는 뼈다귀 같은 놈이냐! 감히 산의 주인이자 무시무시한 도깨비님의 슬픔을 방해하다니, 당장 뼈와 살을 분리해 한입에 꿀꺽 삼켜주마!"
도깨비가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위협했지만, 칠성은 조금도 쫄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가슴을 쫙 펴며 뒷짐을 지었다.
"허허, 산의 주인이시면 뭣합니까! 덩치 값도 못하고 평생 여인네 손목 한 번 못 잡아본 불쌍한 노총각 처지인 것을! 나를 잡아먹으려거든 마음대로 하시오. 하지만 나를 잡아먹는다면, 당신은 평생 각시 얼굴도 못 보고 외롭게 늙어 죽어야 할 것이오. 나는 바로 당신 같은 노총각들을 장가보내는 데 천부적인 재주를 가진, 천하제일의 중매쟁이니까 말이오!"
"뭐, 뭣이라?! 중매… 중매쟁이?!"
그 한마디에 도깨비의 눈빛이 잡아먹을 듯한 살기에서, 순식간에 구세주를 만난 강아지처럼 초롱초롱하고 간절하게 돌변했다. 무시무시한 뿔을 가진 거대한 요괴와 가난한 나무꾼의 기상천외하고도 아슬아슬한 독대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3: 도깨비의 간절한 소원과 흙수저 총각의 기막힌 묘안
"아, 아니… 방금 중매쟁이라고 하였느냐? 네가 참말로 이 늙고 외로운 도깨비를 장가보낼 수 있단 말이냐?!"
도깨비의 커다란 덩치가 순식간에 쪼그라드는 듯하더니, 어느새 칠성의 발밑에 바짝 엎드려 굵은 팔뚝으로 칠성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아까의 그 흉포하고 무시무시한 살기는 온데간데없고, 오직 장가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애절한 열망만이 노란 눈동자 속에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아, 놔, 놓으시오! 바지 찢어지겠소! 에헴, 내가 비록 지금은 산에서 나무를 하며 소일거리를 하고 있지만, 한때 한양 바닥에서 내로라하는 양반집 자제들도 내 손을 거치면 모두 천생연분을 만났단 말이오. 하지만 도깨비님은 사람도 아니고 외양도 이리 거칠고 무서우시니, 웬만한 여인네들은 당신 얼굴만 봐도 기절초풍할 텐데… 이건 아무리 천하제일의 중매쟁이인 나라도 쉽지 않은 일이겠구려. 쯧쯧."
칠성이 짐짓 뒷짐을 지고 난색을 표하며 고개를 젓자, 도깨비는 안달이 나서 펄쩍펄쩍 뛰며 소리쳤다.
"무슨 소리냐! 나비록 겉모습은 우락부락해도, 속마음은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여리고 따뜻하단 말이다! 게다가 내 도깨비 방망이 한 번만 뚝딱 치면, 네놈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금은보화가 산더미처럼 쏟아진다! 제발, 제발 나를 그 잘난 인간 여자와 혼인시켜 다오! 만약 내게 예쁘고 콧대 높은 각시를 짝지어 준다면, 내 네놈을 평생 돈방석에 앉혀주고, 너에게도 조선에서 제일가는 어여쁜 규수를 중매 서주마! 이 도깨비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
'얼씨구나, 덥석 미끼를 물었구나! 금은보화에 어여쁜 양반집 규수라니! 이것이야말로 내 흙수저 인생을 한 방에 역전시킬 절호의 기회다!'
칠성은 쾌재를 불렀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거드름을 피우며 턱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는 어제 장터에서 자신의 피 같은 장작을 빼앗아가던 포졸들과, 그 뒤에서 호의호식하며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는 악덕 사또, 그리고 그 사또만큼이나 오만방자하고 콧대가 하늘을 찌른다는 사또의 외동딸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래, 바로 그년이다!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을 벌레 보듯 무시하고, 제깟 년이 양반이랍시고 사방팔방 갑질이나 해대는 그 사또 딸내미! 그년의 규방에 이 무시무시한 도깨비를 집어넣어 주면, 사또 놈도 기절초풍할 것이고 그 콧대 높은 딸내미도 아주 혼쭐이 나겠지. 마을의 평화도 되찾고 내 인생도 펴는 일석이조의 묘안이로다!'
"흠, 좋습니다. 도깨비님의 그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았는지, 마침 딱 한 명 어울리는 규수가 떠오르는구려. 이 고을을 다스리는 사또 나리의 무남독녀 외동딸인데, 얼굴이 어찌나 곱고 자태가 고귀한지 달빛조차 그녀 앞에서는 부끄러워 숨는다는 절세가인이오. 하지만 콧대가 워낙 높아 평범한 사내들은 쳐다보지도 않지요. 도깨비님처럼 신통력을 가지고 기개가 넘치는 장부라야 간신히 눈길이라도 줄 것이오. 어떻소? 사또의 사위가 될 자신은 있으시오?"
"사, 사또의 외동딸?! 절세가인?! 으하하하! 당연히 자신 있고말고! 나 도깨비가 비록 여자 손은 못 잡아봤어도, 힘과 신통력 하나는 천하제일이다! 당장, 당장 나를 그 처자에게 데려다 다오!"
도깨비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커다란 방망이를 휘두르며 기쁨의 춤을 덩실덩실 추기 시작했다.
"허허, 진정하시오! 사또의 관아는 성벽이 높고 삼엄한 포졸들이 밤낮으로 철통같이 지키고 있어 파리 새끼 한 마리 몰래 들어가기 힘든 곳이오. 무턱대고 쳐들어갔다간 혼인은커녕 군사들의 화살 받이가 될 것이오. 내게 아주 기가 막힌 계략이 있으니, 내 말을 잘 들으시오."
칠성은 도깨비를 가까이 부른 뒤, 목소리를 낮추어 은밀하게 속삭였다.
"오늘 밤은 달도 뜨지 않는 칠흑같이 어두운 그믐밤이오. 당신의 그 신통력으로 관아를 지키는 포졸들을 모두 깊은 잠에 빠뜨리시오. 그런 다음, 나와 함께 담장을 넘어 아무도 모르게 사또 딸의 규방으로 스며드는 거요.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처자가 자고 있을 터이니, 절대 놀라게 하지 말고 부드럽게 다가가 당신의 매력을 뽐내시오. 사또 놈이 아무리 악독한들, 하룻밤을 같이 보낸 사내를 제 사위로 인정하지 않고 어쩌겠소? 일단 일을 저지르고 보는 것이오!"
"오오…! 역시 인간들은 꾀가 많고 영악하구나! 좋아, 아주 마음에 드는 작전이다! 내 그깟 포졸 놈들 재우는 건 눈 감고도 할 수 있지! 어서 가자, 나무꾼아! 내 오늘 기필코 총각 귀신 신세를 면하고 말 테다!"
자신의 앞날에 어떤 거대한 파장이 불어닥칠지 꿈에도 모른 채, 오직 장가를 간다는 설렘에 콧김을 훅훅 내뿜는 노총각 도깨비와, 썩어빠진 권력을 응징하고 인생 역전을 노리는 영특한 흙수저 나무꾼 칠성. 결코 어울리지 않는 두 존재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깊은 밤의 어둠을 틈타 악덕 사또가 머무는 으리으리한 관아를 향해 은밀하고도 발칙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4: 콧대 높은 사또 딸의 규방으로 스며들다
밤이 깊어지자 하늘에는 별빛 하나 보이지 않고, 먹물을 풀어놓은 듯 짙은 어둠만이 고을 전체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오직 마을 정중앙에 위치한 사또의 으리으리한 관아만큼은 예외였다. 담장 곳곳에 환하게 불을 밝힌 횃불이 일렁이고, 창과 칼로 무장한 험악한 포졸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관아 주변을 철통같이 순찰하고 있었다. 평소 원한을 산 일이 많아 늘 암살의 공포에 시달리던 악덕 사또가 밤낮으로 경비를 강화해 둔 탓이었다.
칠성과 도깨비는 관아 뒷담의 커다란 고목나무 뒤에 몸을 숨긴 채, 횃불 아래로 지나가는 포졸들의 동태를 숨죽여 살피고 있었다.
"보시오, 도깨비님. 경비가 저리 삼엄하니 담장을 넘는 순간 벌집이 될 것이오. 지금이야말로 당신의 그 대단하다는 신통력을 발휘할 때요."
칠성이 작게 속삭이자, 도깨비는 커다란 코웃음을 치며 가슴을 팡팡 두드렸다.
"흥! 고깟 인간 병졸들 몇십 명 쯤이야 내 입김 한 번이면 추풍낙엽이다! 잘 보아라!"
도깨비는 양손에 들고 있던 커다란 가시 돋친 방망이를 바닥에 쿵, 쿵, 세 번 내리찍더니, 깊은숨을 들이마시고는 허공을 향해 시퍼런 입김을 훅- 하고 불어냈다. 그러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도깨비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푸르스름한 연기 같은 안개가 순식간에 관아 담장을 타고 넘어가더니, 마당 곳곳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안개를 들이마신 포졸들은 갑자기 픽, 픽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 선 채로 곤두박질치듯 고꾸라졌다. 창을 들고 서 있던 자는 창에 기댄 채 코를 골았고, 마당을 어슬렁거리며 짖어대던 사나운 사냥개들조차 네 다리를 뻗고 기절한 듯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불과 눈 깜짝할 사이에 왁자지껄하던 관아 전체가 죽은 듯한 무덤의 정적 속으로 빠져든 것이다.
"어떠냐? 내 도깨비 수면술이! 한 번 잠들면 내일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북을 치고 꽹과리를 울려도 절대 깨어나지 못한다! 자, 어서 길을 안내해라, 나의 구세주 중매쟁이여!"
도깨비가 우쭐거리며 말하자, 칠성은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과연 헛소문이 아니었구려! 자, 나를 바짝 따라오시오. 사또 딸의 규방은 관아 가장 안쪽, 화려한 연못이 있는 별당에 있소이다."
칠성은 훌쩍 담장을 넘어 기절한 포졸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가로질렀다. 거대한 덩치의 도깨비도 육중한 겉모습과는 달리 깃털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칠성의 뒤를 따랐다.
겹겹이 둘러싸인 문을 지나 마침내 도착한 별당. 그곳은 칠성이 사는 쓰러져가는 초가집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마당에는 희귀한 꽃나무들이 가득했고, 문창호지 밖으로는 은은하고 향긋한 묵향과 분내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방문 앞 댓돌에 선 칠성은 마지막으로 도깨비를 향해 단단히 당부의 말을 전했다.
"자, 다 왔소. 이 문 안쪽이 바로 당신이 그토록 원하던 절세가인, 사또 딸내미의 침소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들어가서 절대 소란을 피우거나 위협을 가하면 아니 되오. 그저 당신의 매력을 뽐내고, 하룻밤을 다정하게 보내란 말이오. 내일 아침 사또가 발칵 뒤집혀 뛰어오면, 그때는 당신의 그 무시무시한 힘과 배짱으로 사또를 꽉 짓눌러 기선을 제압해야 하오. 알겠소?"
"걱정 마라! 내가 이래 봬도 수백 년 동안 갈고닦은 매력이 철철 넘치는 사내다! 으흐흐,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노총각 신세를 청산하는구나!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도깨비는 침을 꼴깍 삼키며 연신 털 난 뺨을 문질러댔다. 칠성은 속으로 킬킬거리며 웃음을 참아냈다. 백성들을 쥐어짜며 호의호식하던 악덕 사또가 내일 아침 눈을 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외동딸의 방에 이 흉측한 털보 괴물이 사위랍시고 대자로 누워있는 꼴을 보았을 때 지을 표정을 상상하니, 십 년 묵은 체증이 뻥 뚫리는 듯한 통쾌함이 밀려왔다.
"그럼, 당신의 빛나는 첫날밤을 위해 나는 이만 물러가겠소. 내일 일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우리 산에서 한 약조를 잊지 마시오!"
칠성이 어둠 속으로 잽싸게 몸을 숨기며 사라지자, 홀로 남은 도깨비는 떨리는 거대한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별당의 방문 고리를 잡았다.
"스르륵-"
문이 열리고, 진한 분내음과 함께 비단 이불을 덮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어여쁜 처자의 실루엣이 도깨비의 노란 눈동자에 가득 들어왔다. 수백 년의 한을 풀기 위해, 무시무시한 도깨비가 마침내 콧대 높은 앙칼진 규수의 방으로 완전히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고요한 관아의 밤이 깊어가며, 내일 아침 온 고을을 발칵 뒤집어 놓을 거대한 폭풍의 전야가 숨 막히게 흐르고 있었다.
※ 5: 기절초풍하는 사또와 불청객
다음 날 아침, 눈 부신 햇살이 관아의 높고 화려한 기와지붕 위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며 온 고을을 환하게 밝혔다. 평소 같았으면 아침 일찍부터 죄 없는 백성들을 잡아들여 주리를 틀며 문초를 하거나, 밀린 세금을 당장 바치라며 핏대를 세우는 사또의 불호령으로 시끌벅적하고 삭막했을 관아 안마당이, 오늘따라 폭풍 전야처럼 쥐죽은 듯 고요하기만 했다. 최고급 명주실로 짠 비단 이부자리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일어난 사또는, 간밤에 마신 고급 청주 탓에 찌뿌둥해진 몸을 힘겹게 일으키며 거드름을 피우듯 헛기침을 크게 내뱉었다.
"에헴! 크흠! 밖을 지키는 이놈들, 밖에 아무도 없느냐! 이 고을의 지엄하신 사또 나리께서 기침하셨는데 어찌 세숫물 하나 대령하는 발 빠른 놈이 없어! 다들 단체로 미치기라도 한 게냐! 당장 뛰어오지 못할까!"
사또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문밖에서는 개미 새끼 한 마리 기어 다니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평소라면 제 목소리 한 번에 엎어지고 자빠지며 달려왔을 하인들과 포졸들이건만, 오늘따라 마당을 쓰는 비질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이 기괴한 적막감에 사또는 등골을 타고 오싹한 기운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사또는 신경질적으로 방문을 팍 열어젖히고 마루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사또는 턱이 빠질 듯 입을 벌린 채 자신의 두 눈을 강하게 의심하며 그 자리에 꽁꽁 얼어붙고 말았다. 관아 마당 곳곳에 창과 칼을 든 채 늠름하게 서 있어야 할 수십 명의 험악한 포졸들이, 마치 마당에 널어놓은 무명빨래처럼 바닥에 이리저리 널브러져 세상모르고 코를 골며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담장 밑에서 사납게 짖어대야 할 덩치 큰 호위견들마저 네 다리를 허공으로 뻗고 혀를 길게 뺀 채 침을 질질 흘리며 기절하듯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해괴망측하고 끔찍한 꼴이란 말인가! 네 이놈들! 당장 그 더러운 몸뚱어리를 일으키지 못할까! 관아를 목숨 바쳐 지키라 했더니, 단체로 어디서 독한 술이라도 퍼마시고 뻗은 게냐! 내 이놈들의 다리몽둥이를 모조리 분질러버릴 테다!"
사또가 씩씩거리며 마당으로 뛰어 내려가 가장 가까이 누워있는 포졸대장의 두꺼운 엉덩이를 가죽신 신은 발로 힘껏 걷어찼지만, 포졸대장은 꿀꿀거리는 돼지 멱따는 소리만 낼 뿐 도무지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뺨을 때리고 찬물을 끼얹어 보아도 사람들은 마치 시체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제야 사또의 등골을 타고 서늘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필시 원한을 품은 도적 떼나 무시무시한 암살자가 밤새 삼엄한 관아에 스며들어 독가스라도 살포한 것이 틀림없다는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날카롭게 스치고 지나갔다. 순간, 사또의 머릿속에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게 아끼는 무남독녀 외동딸의 어여쁜 얼굴이 떠올랐다.
'아뿔싸! 내 금쪽같은 딸아이! 놈들이 재물을 노린 것이 아니라면 필시 내 약점인 딸아이를 노렸을 터! 별당에 무슨 끔찍한 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다! 안 된다, 내 목숨보다 귀한 딸인데!'
사또는 신발이 벗겨지는 것도 모른 채, 맨발로 헐레벌떡 별당을 향해 미친 사람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별당 앞을 지키던 여종들마저 마루에 엎어져 곯아떨어져 있는 것을 본 사또의 심장은 금방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이 요동쳤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른 사또는 떨리는 두 손으로 딸의 방문 고리를 부여잡았다.
"아가! 우리 딸 무사한 것이냐! 아비가 왔다!"
다급하게 별당 방문을 활짝 열어젖힌 사또는, 순간 숨을 들이마신 채 그대로 돌하르방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최고급 화려한 자개장과 값비싼 비단 병풍으로 장식된, 맑고 향기로운 분내음이 가득해야 할 딸의 고귀한 규방 한가운데. 생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기괴하고 거대한 산더미 같은 괴물 하나가 대자로 벌러덩 누워 천장이 무너져라 짐승 같은 코를 골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온몸은 시뻘겋고 뻣뻣한 털로 흉측하게 뒤덮여 있고, 이마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뾰족한 뿔이 불쑥 솟아 있으며, 그 옆에는 성인 남성 몸통만 한 가시 돋친 집채만 한 쇠방망이가 흉기처럼 나뒹굴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또의 억장을 무너지게 하고 경악하게 만든 것은, 그 끔찍한 털보 괴물의 굵디굵은 팔뚝 안에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콧대 높은 자신의 어여쁜 외동딸이 마치 한 마리 가녀린 새처럼 안겨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으, 으아아아아악! 이, 이게 무슨 끔찍한 요괴란 말인가! 내 딸의 방에 괴물이, 괴물이!"
사또의 목이 찢어지는 듯한 처절한 비명에, 간밤의 피로를 풀며 곤히 잠들어 있던 사또의 딸이 화들짝 놀라며 두 눈을 번쩍 떴다. 부스스 눈을 비비며 짜증을 내려던 그녀의 시선이, 묵직하게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붉은 털의 거대한 가슴팍에 머물렀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위로 돌려 산맥처럼 거대한 괴물의 뿔과 삐져나온 날카로운 송곳니를 정면으로 마주한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순식간에 핏기가 가시며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악! 아, 아버지! 살려주세요! 이게 뭐야! 저리 가! 내 몸에서 당장 떨어지란 말이야!"
딸은 사시나무 떨듯 발작을 일으키며 뒤로 물러서려 발버둥을 쳤지만, 바위산처럼 무거운 도깨비의 팔에 단단히 짓눌려 개미 한 마리 옴짝달싹할 수 없는 형국이었다. 그 요란하고 귀를 찢는 비명과 소란에, 마침내 수백 년 만에 처음 맛본 달콤한 첫날밤의 꿀잠에 흠뻑 빠져 있던 도깨비가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거운 눈꺼풀을 번쩍 들어 올렸다. 호랑이의 눈처럼 커다랗고 시뻘건 노란색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가더니, 문가에서 게거품을 물고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사또의 얼굴을 향해 정확히 고정되었다.
"흐아아아암… 쩝쩝, 참으로 달고 깊게 잘 잤다. 오, 장인어른! 벌써 기침하셨습니까? 못난 사위가 먼저 찾아가 아침 문안 인사를 정중히 올려야 하는 것이 도리이거늘, 우리 예쁜 각시의 품이 어찌나 따뜻하고 향기로운지 그만 염치없이 늦잠을 자버리고 말았습니다. 으하하하!"
도깨비가 거대한 덩치를 일으켜 세우며 우렁차게 웃어젖히자, 규방 전체가 진도 8의 지진이라도 난 듯 미친 듯이 흔들리며 먼지가 떨어져 내렸다. 사또는 눈앞이 새카맣게 점멸하고 다리에 힘이 완전히 풀려, 그대로 문지방에 털썩 주저앉아 헐떡거렸다.
'자, 장인어른? 사, 사위?! 저 짐승보다 못한 무시무시한 요괴 놈이 내 고귀한 딸의 방에 무단으로 쳐들어와 감히 사위 행세를 한단 말인가! 하늘도 무심하시지, 온 고을 양반집 자제들을 다 걷어차던 내 딸의 소중한 정조를 저런 근본 없는 산도깨비 놈에게 무참히 빼앗기다니!'
"네, 네 이놈! 네놈이 정녕 살기를 완전히 포기한 것이냐! 어디서 감히 산속을 떠도는 근본 없는 짐승 요괴 놈이 하늘 같은 사또의 귀한 딸을 범하고 뻔뻔하게 장인 행세란 말이냐! 여봐라! 밖에 아무도 없느냐! 당장 이 더러운 요괴 놈의 배를 산채로 가르고 목을 쳐라!"
사또가 눈에 핏발을 세우고 악에 받쳐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자, 밤새 도깨비의 강력한 수면술에 취해 사경을 헤매던 포졸들이 그제야 부스스 눈을 뜨고 몽롱한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별당에서 들려오는 사또의 다급한 비명과 살기 어린 호통에 놀란 수십 명의 포졸들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창과 칼을 빼 들며 우르르 별당 앞마당으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도깨비는 그 살벌한 풍경 앞에서도 전혀 당황하는 기색 없이, 새끼손가락으로 콧구멍을 후비며 여유롭게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가시 돋친 쇠방망이를 어깨에 척 걸쳐 메었다.
※ 6: 악덕 사또를 철저히 길들이다
"아이고, 장인어른도 참으로 성정이 불같으십니다. 이제 갓 피를 나눈 가족이 된 어여쁜 사위에게 첫인사로 시퍼런 칼부림이 웬 말이십니까. 아무리 하나뿐인 딸을 도둑맞은 것 같아 섭섭하고 분통이 터지셔도 그렇지, 이미 물은 완전히 엎질러졌고 이 몸과 예쁜 각시는 하늘이 맺어준 굳건한 부부의 연을 맺었거늘. 이제 그만 체념하시고 좋게좋게 넘어가시지요. 내 평생 각시 호강시켜주며 장인어른 모시고 잘 살 테니 말입니다."
도깨비는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러나 백성들을 쥐어짜며 무소불위의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고 살아왔던 콧대 높은 사또에게, 이런 굴욕과 조롱은 평생 단 한 번도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끔찍한 수치이자 모욕이었다. 사또의 두 눈에서 시뻘건 분노의 불꽃이 튀며 살의가 번득였다.
"닥쳐라, 이 더럽고 냄새나는 요괴 놈아!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지 마라! 내 오늘 기필코 네놈의 두꺼운 가죽을 산 채로 벗겨내어 성문 앞에 효수하고, 뼈는 갈아서 개먹이로 던져줄 것이다! 쳐라! 당장 저 괴물 놈에게 달려들어 다진 고기로 만들어버려라! 한 놈도 뒤로 물러서지 마라!"
사또의 피맺힌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잠에서 깨어나 몽롱하던 포졸들이 고함을 지르며 창과 칼을 앞세워 도깨비를 향해 벌떼처럼 일제히 달려들었다. 규방 한구석으로 밀려난 사또의 딸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살육전에 공포에 질려 비단 이불을 뒤집어쓰고 두 귀를 틀어막은 채 처절하게 오열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십 명의 맹공 앞에서도 도깨비는 그저 귀찮은 가을 모기 떼를 보듯 혀를 쯧쯧 차더니, 어깨에 메고 있던 무거운 쇠방망이를 허공에 대고 가볍게, 아주 가볍게 한 번 휙 휘둘렀다. 그 단순한 손짓 한 번에, 평온했던 관아의 아침 하늘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재앙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아앙-!"
도깨비의 방망이가 허공을 찢는 순간, 맑고 푸르렀던 하늘에 갑자기 시커먼 먹구름이 쓰나미처럼 몰려들더니, 귀청을 갈기갈기 찢는 듯한 시퍼런 벼락이 관아 앞마당 한가운데에 무자비하게 내리꽂혔다. 그와 동시에 뿜어져 나온 엄청난 위력의 돌풍이 회오리치며,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던 수십 명의 무장한 포졸들을 마치 가을날의 마른 낙엽 날리듯 허공으로 훌쩍훌쩍 날려버렸다.
"으아아아악! 사람 살려! 요괴다!"
포졸들은 처참한 비명을 지르며 관아의 높은 담장 너머로 뿔뿔이 흩어져 날아갔고, 그들이 쥐고 있던 날카로운 창과 칼은 거대한 마법의 힘에 눌려 엿가락처럼 흉측하게 휘어진 채 바닥에 힘없이 나뒹굴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도깨비가 방망이를 바닥에 한 번 더 "쿵!" 하고 육중하게 내리찍자, 이번에는 사또가 평생 가난한 백성들의 피와 땀을 쥐어짜 내어 모아두었던 으리으리한 안채의 거대한 기와지붕이 통째로 뜯겨 허공으로 날아갔다. 이어서 금은보화와 비단이 가득 차 있던 육중한 창고의 두꺼운 벽돌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며, 감춰져 있던 번쩍이는 보석들과 엽전 꾸러미들이 흙바닥에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불과 두 번의 가벼운 방망이질에, 온 고을에서 가장 화려하고 견고했던 관아의 절반이 순식간에 뼈대만 남은 처참한 폐허로 변해버린 것이다.
"아, 안 돼! 내 피 같은 재산! 내 관아! 이, 이럴 수가… 어떻게 모은 재물들인데!"
사또는 넋이 완전히 나간 채, 무너져 내린 창고와 허공을 무질서하게 날아다니는 기왓장들을 바라보며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었다. 절대적이고 압도적인 폭력과 신통력 앞에서, 자신이 평생 관복을 입고 휘둘러왔던 알량한 인간의 권력은 한낱 불어오는 바람 앞의 먼지보다도 못한 무기력한 것이었다. 도깨비는 씩씩거리며 뜨거운 유황 냄새가 나는 콧김을 뿜어내더니, 바닥이 쿵쿵 울리는 커다란 발걸음으로 사또의 코앞까지 성큼성큼 다가와, 그의 비단옷 멱살을 한 손으로 번쩍 들어 올렸다. 사또의 짧은 두 발이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허우적거렸다.
"내 웬만하면 사랑하는 각시의 체면을 보아 점잖게 아침 인사만 드리고 평화롭게 넘어가려 했건만, 장인어른의 성정이 불독처럼 아주 고약하시구려. 두 귀를 열고 똑똑히 들으시오! 나 산도깨비는 한 번 마음을 준 여인과 맺은 연은 하늘이 두 쪽 나고 땅이 꺼져도 절대 저버리지 않는 지독한 순정파요! 오늘부터 이 규방의 처자는 내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평생의 반려자요, 나는 당신이 평생 모셔야 할 하나뿐인 사위란 말이오! 만약 오늘 이후로 한 번만 더 내 심기를 거스르거나, 내 각시를 내놓으라 헛소리를 해댄다면, 다음번엔 이깟 기와집 지붕 따위가 아니라 장인어른의 뼈와 살을 맷돌에 갈아 가루로 만들어 버릴 테니 그리 아시오!"
시뻘건 눈을 부릅뜨고 송곳니를 드러내며 짐승처럼 포효하는 도깨비의 무시무시한 기세에, 사또는 극도의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그만 비단 바지에 뜨뜻한 오줌을 질질 지리고 말았다. 죽음의 공포가 온몸의 핏줄을 타고 빠르게 흐르며 마지막 남은 양반의 알량한 이성마저 철저히 마비시켰다.
"사, 살려주게! 아니, 살려주십시오, 사위님! 내, 내가 늙어 노망이 나서 눈이 멀어 천하의 으뜸가는 영웅을 몰라보고 이리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큰 결례를 범했으니 부디 그 넓은 아량으로 노여움을 푸시고, 이 못난 늙은이의 더러운 목숨만은 제발 살려주시오!"
평생을 갑질하며 남의 목숨을 파리 목숨 취급하며 살아온 희대의 악덕 사또가, 흉측한 요괴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눈물 콧물을 흘리며 처절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꼴이라니. 그 참담하고 충격적인 광경을 이불 틈 사이로 지켜보던 딸 역시 충격에 턱을 벌린 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언제나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무서운 존재인 줄만 알았던 아버지가 저리도 철저하게 짓밟히고 굴복하다니. 그녀는 규방 구석에서 덜덜 떨며 도깨비의 다음 행동을 숨죽여 지켜보았다.
사또를 헌신짝처럼 바닥에 내동댕이친 도깨비는, 뒤돌아서는 순간 험악했던 표정을 싹 지우고는 규방 구석에 떨고 있는 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 거대한 몸을 굽혀 공손히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거칠고 커다란 털복숭이 손으로 그녀가 덮고 있는 비단 이불을 조심스럽게 여며주며, 괴물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고 달콤한, 꿀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부드럽게 속삭였다.
"아침부터 피를 보이며 놀라게 해서 참으로 미안하오, 나의 어여쁜 각시. 당신의 아버님이 하도 고집을 피우시고 내 진심을 몰라주시기에 털끝만큼 힘을 써서 시위를 한 것뿐이오. 너무 두려워하지 마시오. 내 비록 타고난 외모는 바위처럼 투박하고 험상궂으나, 당신을 향한 내 마음만큼은 그 어떤 반듯한 인간 사내보다 뜨겁고 진실하오이다. 평생 당신의 곱디고운 손에 물 한 방울, 흙먼지 하나 묻히지 않게 하겠소. 세상 모든 금은보화를 당신 비단 치마폭에 넘치도록 안겨주며, 매일매일 당신을 천하의 여왕처럼 평생 모시고 사랑하며 살 테니, 부디 이 못나고 투박한 사내를 당신의 영원한 서방으로 기꺼이 받아주시오."
도깨비의 거칠고 투박한 손끝에서 미세하게 전해지는, 의외로 조심스럽고 난로처럼 따뜻한 온기. 그리고 수백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홀로 뼛속까지 시리게 외롭게 지내온 탓인지, 처절할 정도로 맹목적이고 순수한 그 헌신적인 순정에 딸의 떨림이 마법처럼 조금씩 잦아들었다. 평소 콧대가 하늘을 찔러 속이 빤히 보이는 잘난 양반집 자제들의 가벼운 청혼을 수도 없이 비웃으며 거절해 온 그녀였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는 압도적인 힘을 가졌으면서도, 오직 자신에게만은 세상을 다 바치겠다며 쩔쩔매며 엎드리는 이 거대한 존재 앞에서는 묘한 안도감마저 느껴지는 듯했다. 게다가 평소 폭군 같던 아버지를 단숨에 굴복시키고 자신을 지켜주려는 그 든든한 등직함은, 오히려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강렬하고 야성적인 묘한 매력으로 다가오기까지 했다.
"가, 감히 저를 평생 눈물 흘리게 하지 않고 여왕처럼 모시겠다는 그 맹세… 필시 하늘에 대고 하신 것이니 꼭 지키셔야 합니다, 서방님."
딸이 아직은 두려움이 섞인 모기 기어가는 목소리로 조심스레, 그러나 확실한 허락의 대답을 건네자, 도깨비는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함박웃음을 지으며 펄쩍펄쩍 뛰기 시작했다.
"으하하하하! 당연하고말고! 내 목숨이 끊어지는 날까지 당신만을 위해 살겠소! 당장 오늘 밤부터 당신이 걷는 길목마다 황금으로 성을 쌓고, 백옥으로 징검다리를 깔아주겠소! 장인어른! 바닥에서 그만 일어나시고 내 말 똑똑히 들으셨소? 이제 우리는 피를 나눈 완벽한 한 가족이오! 앞으로 힘센 사위가 장인어른의 그 못된 버르장머리, 아니, 훌륭하신 국정 운영을 옆에서 매의 눈으로 팍팍 도와드릴 테니 마음 푹 놓으시오!"
도깨비의 뼈 있는 날카로운 한마디에 사또는 흙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연신 고개를 땅에 찧으며 조아렸다. 온 고을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며 공포에 떨게 했던 희대의 악덕 사또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흉측하지만 천하무적인 도깨비 사위 앞에서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완벽하게 길들여지고 굴복하는, 그야말로 역사적이고 통쾌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기막히고 완벽한 소동의 배후에서 판을 짠 단 한 사람, 가난하고 볼품없는 흙수저 나무꾼 칠성은 깊은 산속 초가집에서 이 승전보가 들려오기만을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 7: 나무꾼에게 찾아온 완벽한 인생 역전
관아에서 벌어진 전대미문의 요괴 사위 난동 사건과 사또의 굴욕적인 항복 소동이,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가듯 온 고을 백성들의 입과 입을 타고 소문으로 쫙 퍼져나갈 무렵이었다. 깊은 산속, 찢어지게 가난하여 비바람도 제대로 막지 못하는 칠성의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 앞마당에 "콰아아앙!" 하는 벼락 치는 듯한 굉음과 함께 시커먼 흙먼지가 산더미처럼 일어났다. 햇살을 쬐며 툇마루에 걸터앉아 콧노래를 부르며 여유롭게 낡은 짚신을 삼고 있던 칠성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흙먼지가 서서히 걷힌 그곳에는,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만면의 미소를 띠고 양손에 무언가를 잔뜩 들고 늠름하게 서 있는 거대한 도깨비가 보였다. 장가를 가서 그런지 어제보다 시뻘건 털은 더 기름진 윤기가 좔좔 흐르고 있었고, 이마의 흉측한 뿔마저 사랑의 기쁨에 도취된 듯 반짝반짝 빛나는 것만 같았다.
"으하하하하! 은인! 나의 위대하고 영특한 은인이여! 네 말이 백 번 천 번, 아니 만 번 맞았다! 그 콧대 높고 싸가지 없다던 사또 딸내미가, 내 진심 어린 다정한 눈빛과 방망이질 몇 번의 위력에 푹 빠져서, 지금은 나 없이는 단 하루도 숨을 못 쉬겠다고 내 팔뚝에 매달리는 형국이 되었다! 나만 보면 서방님, 서방님 하며 어찌나 애교를 떠는지 내 뼈가 다 녹아내릴 지경이다! 게다가 그 평소 고약하기로 소문난 악질 장인어른 놈도, 내 앞에서는 쥐구멍에 숨은 쥐새끼처럼 찍소리도 못하고 알아서 기며 설설 기고 있으니, 내 수백 년 동안 홀아비로 지내며 꽉 막혔던 체증이 단숨에 다 뻥 뚫려 내려가는구나!"
도깨비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다가와 칠성의 몸을 번쩍 들어 올리더니, 마당을 빙글빙글 돌며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칠성은 거대한 괴물의 악력에 갈비뼈가 부러질 듯 숨이 막혀 캑캑거리면서도, 자신이 머리를 쥐어짜 내어 만든 완벽한 계략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성공했다는 사실에 통쾌하고 짜릿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켁, 캑! 아, 알겠으니 제발 나 좀 내려, 내려놓으시오! 숨 막혀 죽겠소! 일이 그토록 일사천리로 잘 풀렸다니 나로서도 참으로 다행스럽고 기쁜 일이오이다. 그래, 수백 년 만에 소원하던 장가를 가보니 어찌, 온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이 행복하오?"
"암, 그렇고말고! 내 평생소원을 이뤘으니, 내 어찌 입을 싹 닦겠느냐. 이제 사내대사내로서 네놈과의 약조를 확실하게 지킬 차례다! 내가 어찌 나를 구원해 준 이 깊은 은혜를 모른 척하겠느냐! 자, 다칠지 모르니 저쪽으로 멀찍이 물러서거라!"
도깨비는 칠성을 마루에 안전하게 내려놓더니, 양손으로 커다란 가시 돋친 도깨비 방망이를 꽉 쥐고는 칠성의 초라한 초가집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기합을 넣으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나를 장가보낸 은인의 집이다!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천하에서 제일가는 아흔아홉 칸짜리 으리으리한 기와집과 최고급 비단옷이 당장 쏟아져 나와라, 뚝딱!"
"퍼버어어엉-!" 하는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짙고 시퍼런 연기가 화산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며 칠성의 조그만 초가집 전체를 무섭게 집어삼켰다. 매캐한 연기가 서서히 바람에 걷히자, 기침을 하던 칠성은 눈앞에 펼쳐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너무 놀라 헉 소리를 내며 자신의 뺨을 힘껏, 아주 세게 꼬집었다. 쥐가 들끓고 비가 오면 지붕이 새던 낡고 초라한 흙집은 온데간데없이 흔적도 사라졌고, 바로 그 자리에는 한양의 대감마님 댁도 부럽지 않을 아흔아홉 칸짜리 고래등 같은 웅장한 기와집이 위풍당당하게 솟아올라 있었다.
넓은 마당에는 어른 허리 높이만큼 커다란 금괴와 은괴가 산더미처럼 수북하게 쌓여 아침 햇빛을 받아 눈이 멀 정도로 찬란하게 빛을 뿜어내고 있었고, 활짝 열린 곳간 안에는 평생을 먹고 또 먹어도 다 못 먹을 최고급 기름진 이천 쌀이 가마니째 가득 차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칠성이 평생 입고 있던 땀 냄새나는 누더기 삼베옷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촉감이 비단결 같은 최고급 푸른색 비단 도포로 탈바꿈해 있었다.
"이, 이게 정녕… 이 눈앞에 있는 으리으리한 것들이 전부 내 집이고 내 재산이란 말이오? 내가 죽어 저승의 환상을 보는 꿈이 아니란 말이오!"
"으하하하! 꿈은 무슨 헛소리냐! 내 방망이가 만들어낸 진짜배기 황금과 기와집이다. 하지만 놀라기엔 아직 이르다, 나무꾼아. 이건 내 은혜의 절반인 약과에 불과하다. 내가 너와 도끼 앞에서 또 다른 중요한 약조를 하나 더 하지 않았더냐. 천하의 명중매쟁이인 네놈의 신분에 걸맞은, 조선 팔도에서 제일가는 어여쁜 규수를 아내로 맺어주겠다고 말이다!"
도깨비는 품속 깊은 곳을 뒤적거리더니, 은은한 푸른빛을 내뿜는 최고급 옥가락지 한 쌍을 꺼내어 아직도 멍하게 서 있는 칠성의 두 손에 조심스럽게 쥐여주었다. 그 차가운 옥의 촉감에 칠성은 비로소 이것이 현실임을 자각했다.
"이 고을 험한 고개를 넘어 이웃 마을에 가면, 억울하게 몰락한 뼈대 있는 양반 가문의 딸이 하나 살고 있다. 비록 지금은 가세가 기울어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고 있으나, 심성이 하늘의 천사처럼 곱고 따뜻하며, 얼굴은 이슬 머금은 백합꽃처럼 청초하여 동네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한 훌륭한 처자지. 네가 이 옥가락지를 예물로 들고 가 정중히 청혼한다면, 그녀의 부모도 너의 이 엄청나게 쏟아진 재력과 번듯하고 훤칠해진 인물을 보고 두말없이 엎드려 절을 하며 딸을 내어줄 것이다. 어떠냐? 이 도깨비의 사람 보는 안목과 중매 실력도 네놈 못지않게 제법 쓸만하지 않으냐?"
칠성은 손에 쥐어진 영롱하고 차가운 옥가락지를 내려다보며, 터질 듯이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거라곤 가난뿐이라, 평생 산에서 뼛골이 빠지게 무거운 도끼질을 해도 벗어날 수 없었던 그 잔인한 흙수저의 굴레를, 영특한 머리 회전과 요괴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은 작은 배짱 하나로 완벽하고 깔끔하게 끊어낸 것이다.
"고맙소, 고맙소, 도깨비님! 아니, 이제는 이웃 마을 지엄하신 사또 나리의 사위님이 되셨으니 도깨비 나리라고 높여 불러야겠구려! 내 평생 이 기적 같은 은혜를 절대 잊지 않고, 어려운 자들에게 넉넉히 베풀며 살겠소!"
"허허, 도깨비 나리라니 그 말 참으로 듣기 좋구나! 자, 나는 혼자 두고 온 내 예쁜 각시가 기다리는 관아로 서둘러 돌아가 봐야겠다. 교활한 장인어른이 행여 내 눈을 피해서 백성들에게 딴짓이나 나쁜 짓을 하지 않는지 매의 눈으로 감시도 단단히 해야 하고 말이지. 너도 꾸물거리지 말고 어서 깨끗하게 씻고 옥가락지를 들고 청혼하러 가보거라! 우리 둘 다 평생 각시 품에서 아들딸 낳고 행복하게 살아보자꾸나!"
도깨비는 산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호탕한 웃음을 남긴 채, 시퍼런 연기와 함께 훌쩍 하늘로 거침없이 날아올라 관아 쪽으로 쏜살같이 사라졌다. 칠성은 앞마당에 산더미처럼 쌓여 번쩍이는 금괴와 고래등처럼 뻗은 기와집을 바라보며, 지난 세월의 서러움과 환희가 뒤섞인 감격의 눈물을 왈칵 흘렸다. 가난한 나무꾼의 상징이었던 낡은 도끼는 이제 마당 한쪽 구석에 멀리 던져졌고, 비단옷을 입은 칠성의 앞에는 탄탄대로의 화려하고 찬란한 인생 역전만이 활짝 펼쳐져 있었다.
※ 8: 모두가 행복한 해피엔딩
그 엄청나고 엽기적인 도깨비 사위 소동이 있은 후로부터 몇 달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른 뒤, 고을의 풍경은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가 된 것처럼 몰라보게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과거 가뭄이 들건 흉년이 들건 상관없이 백성들의 피 같은 고혈을 쥐어짜며 악명을 떨치던 잔인한 사또는, 이제 이웃 고을 백성들마저 부러워하는 고을에서 가장 인자하고 자비롭고 청렴결백한 사또로 칭송받고 있었다. 물론 그 훈훈한 칭송의 이면에는, 생존을 위한 사또의 아주 기가 막히고 처절한 눈물겨운 비밀이 꽁꽁 숨겨져 있었지만 말이다.
"사, 사위님… 이번 달 고을 백성들의 세금은 작년의 절반으로 대폭 줄이고, 흉년이 들어 굶주리는 농가 열 곳에는 관아의 최고급 쌀을 조건 없이 무상으로 풀라고 엄히 지시를 내렸습니다요. 이, 이만하면 우리 사랑스러운 각시에게 칭찬을 한마디 받을 수 있겠습니까요?"
사또가 안방 문턱에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앉아 파르르 벌벌 떨며 결재 서류를 두 손으로 공손히 내밀었다. 호화롭게 꾸며진 방 안에서는 거대한 덩치의 도깨비가 비단 방석에 반쯤 누워, 사또의 어여쁜 딸이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껍질을 까주는 달콤한 포도를 넙죽넙죽 받아먹으며 한껏 거드름을 피우고 있었다.
"흠, 장인어른. 아직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한참 멀었습니다. 내가 다 지켜보고 있는데 어찌 눈속임을 하려 하십니까. 저번 장터에서 장인어른이 부리는 포졸 놈들이 힘없고 가난한 장사치들에게 자릿세를 내라며 행패를 부렸다는 몹쓸 소문이 내 큰 귀에 똑똑히 들어왔소이다. 한 번만 더 선량한 백성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게 한다면, 내 장인어른의 그 얄미운 콧수염을 모조리 핀셋으로 뽑아버리고 관아 지붕을 다시 저 하늘 위로 날려버릴 테니 그리 아시오!"
"아, 아이고! 죄송합니다! 다, 당장 쥐도 새도 모르게 그 못된 포졸 놈들을 지하 감옥에 하옥시키고, 피해를 본 백성들에게는 관아의 돈으로 백 배 배상을 하도록 철저히 조치하겠습니다!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요, 위대하신 사위님!"
사또는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소매로 연신 닦아내며 마룻바닥에 머리가 닿도록 고개를 조아렸다. 도깨비 사위의 무시무시하고 압도적인 힘과, 그 사위에게 푹 빠져버려 무슨 일이 있어도 남편 편만 드는 딸내미의 눈치를 보느라, 사또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강제로라도 성군(聖君)이 되어 선정을 베풀어야만 했다. 덕분에 고을 백성들은 무서운 도깨비 사위가 관아에 들어온 이후로 세금 뜯길 걱정, 억울하게 곤장 맞을 걱정 없이 따뜻한 배를 두드리며 전례 없는 태평성대를 누리게 되었다. 처음엔 흉측한 도깨비 요괴가 관아에 떡하니 들어앉았다는 소문에 벌벌 떨며 문을 걸어 잠그던 백성들도, 이제는 장날만 되면 "우리 고을 구세주 도깨비 나리 만세!"를 외치며, 밤마다 도깨비를 향해 정화수를 떠놓고 감사의 기도를 올릴 지경이 되었다.
자신밖에 모르고 콧대 높았던 사또의 딸 역시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 있었다. 처음엔 요괴라며 무식하고 폭력적일 줄만 알았던 거대한 도깨비는, 사실 겉모습만 투박할 뿐 자신의 여인에게는 한없이 다정하고 맹목적으로 순종하는 조선 최고의 애처가이자 로맨티스트였다. 밤마다 하늘의 별을 따다 주겠다며 지붕 위로 올라가고, 산속 가장 깊은 곳에 핀 진귀한 꽃을 꺾어다 매일 아침 바치는 도깨비의 우직하고 순수한 사랑에 그녀의 차가운 얼음 같던 마음도 봄눈 녹듯 완전히 녹아내린 것이다.
"서방님, 오늘은 제가 서방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오동통한 멧돼지 구이를 손수 양념을 재워 준비했답니다. 많이 드시고 든든하게 기력을 보충하셔서, 앞으로도 우리 고을 백성들의 평화를 위해 힘써주세요. 서방님이 곁에 있어 소녀는 참으로 든든하고 행복합니다."
"오오! 나의 천사 같은 아름다운 각시! 당신의 그 고운 손길이 닿은 음식이라면, 이 도깨비는 당장 씹기 힘든 바위라도 오독오독 씹어 먹을 수 있소! 당신은 내 평생의 보물이오! 으하하하!"
악덕 사또가 쫓겨난 관아 별당에서는, 이제 매일같이 사랑이 듬뿍 담긴 닭살스러운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어 퍼져나갔다.
한편, 흙수저 나무꾼에서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어 몰락한 양반집 규수에게 옥가락지를 건네며 당당하게 청혼에 성공했던 칠성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흔아홉 칸 으리으리한 기와집의 당당한 주인이 된 칠성은, 엄청난 부를 손에 쥐었음에도 가난하고 굶주렸던 자신의 뼈아픈 과거를 결코 잊지 않았다. 그는 도깨비가 준 엄청난 금은보화를 헛되이 사치하는 데 쓰지 않고, 흉년이 들면 가난한 이웃들에게 쌀을 수십 가마니씩 나누어주고 병든 자들에게 무상으로 약값을 대주며, 마을을 넘어 조선 팔도에서 제일가는 존경받는 자선가로 이름을 널리 떨쳤다.
몰락한 가문 출신이지만 심성이 비단결같이 곱고 지혜로운 그의 아름다운 아내는, 그런 칠성의 훌륭한 선행을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하고 지지하며 곁에서 든든한 내조를 아끼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며, 이듬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토끼같이 귀여운 아들딸을 연이어 낳고 남부럽지 않은 행복의 절정을 누리며 살았다.
가끔 명절이나 특별한 날이 되면, 으리으리한 관아에 사는 거대한 털보 도깨비 부부가 칠성의 거대한 기와집 마당으로 스스럼없이 놀러 오곤 했다. 그들은 달빛이 쏟아지는 평상에 마주 앉아 밤이 새도록 막걸리를 주거니 받거니 기울이며, 자신들이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그 기막힌 날의 무용담을 웃으며 나누곤 했다.
장가가고 싶어 매일 밤 산이 떠나가라 울부짖으며 안달이 났던 순진한 노총각 도깨비와, 하루하루 나무를 팔아 억울하게 먹고살기 막막했던 흙수저 나무꾼 총각. 어울리지 않는 기상천외한 두 사람의 만남과 발칙한 동맹은, 백성의 피를 빠는 탐관오리를 통쾌하게 벌하고 고을에 영원한 평화와 웃음을 가져다준 가장 유쾌하고 아름다운 전설로 남게 되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수백 년이 지난 후에도 마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흥미진진하게 전해져 내려오며, 가난한 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따뜻한 옛이야기로 영원히 기억되었다.
유튜브 엔딩멘트
여러분, 흙수저 나무꾼과 노총각 도깨비의 기막힌 합동 작전! 어떻게 들으셨나요? 악독한 사또가 도깨비 사위에게 쩔쩔매며 강제로 착해진 모습이 정말 통쾌하지 않으신가요? 때로는 엉뚱한 용기와 기지가 세상을 바꾸고, 인생을 역전시키는 마법이 되기도 한답니다. 오늘 나무꾼의 사이다 같은 인생 역전 스토리가 여러분의 묵은 스트레스를 뻥 뚫어주었다면! 잊지 마시고 구독과 좋아요, 그리고 따뜻한 댓글 한 줄 꼭 부탁드립니다. 그럼 다음 시간에도 더욱 기상천외하고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다들 도깨비 방망이처럼 뚝딱!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