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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적 도깨비를 무너뜨린 여인
팥죽 한 그릇 뿌렸을 뿐인데 전부 무릎 꿇은 충격적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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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270자)
여러분, 조선시대에 밤길을 걷다가 도깨비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도망간다고요? 빌면 된다고요?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그런 평범한 사람이 아닙니다. 한밤중 산고개에서 길을 막고 통행료를 내놓으라는 도깨비 떼를 만났는데, 이 여인이 뭘 했냐면요. 끓여온 팥죽을 도깨비 대장 얼굴에 확 끼얹어 버렸습니다. 보통 배짱이 아니지요?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 다음입니다. 도깨비들이 이 여인한테 싹싹 빌면서 길을 비켜줬거든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팥죽 한 그릇에 담긴 기막힌 사연을 지금부터 들려드리겠습니다.
※ 1: 시어머니의 약, 산 넘어 삼십 리 — 반드시 오늘 밤 안에
경상도 어느 산골 마을, 가을이 깊어져서 감나무 잎이 다 떨어지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이었습니다. 산자락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초가집 열두 채가 마을의 전부였어요. 그중 제일 끝자리, 대나무 울타리가 반쯤 쓰러진 집에서 기침 소리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기침의 주인은 칠순이 넘은 시어머니 정씨 할머니였어요. 봄부터 기침이 시작되더니 여름을 넘기고 가을이 되자 걷잡을 수 없이 나빠졌습니다. 누워서 숨을 쉬면 가래가 목을 막아 잠을 못 자고, 앉아 있으면 허리가 꺾여 등이 새우처럼 굽었어요. 동네 의원이 와서 진맥을 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고개 너머 장터에 가면 약재를 파는 나씨 영감이 있을 거요. 거기서 도라지 진액과 감초를 구해다 달여 먹이시오. 그게 아니면 이 겨울을 못 넘기실 수도 있소."
며느리 강씨가 의원의 말을 듣고 얼굴이 하얘졌어요. 고개 너머 장터라면 여기서 삼십 리. 문제는 그 사이에 칠봉고개라는 험한 산길이 놓여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강씨. 올해 스물여섯. 키가 여자치고 훤칠했고, 어깨가 딱 벌어진 체격이었어요. 시집오기 전에는 친정아버지 밭일을 도맡아 하던 터라 힘도 셌습니다. 마을 아낙네들이 그랬어요. "강씨네 며느리는 남자보다 힘이 세다"고. 소 여물통을 혼자 들어 옮기고, 지게에 나뭇짐을 가득 지고도 산길을 거뜬히 오르내렸으니까요.
하지만 힘이 세다고 무서운 게 없는 건 아니에요. 강씨에게도 걱정이 있었습니다.
남편 박씨는 석 달 전 한양으로 품을 팔러 갔어요. 가을걷이가 끝나면 돌아온다 했는데 아직 소식이 없었습니다. 집에 남은 식구라곤 병든 시어머니와 다섯 살 된 아들 돌이뿐이었어요. 논밭은 소작이라 거둬들인 것의 반을 지주에게 바치고 나면 남는 게 없었고, 비축한 돈이라곤 쌀 서 되 값이 전부였습니다.
그 쌀 서 되 값으로 약을 사야 했어요. 문제는 시간이었습니다.
의원이 돌아가면서 이런 말을 남겼거든요.
"내일까지 약을 구하지 못하면 위험할 수 있소. 오늘 밤 기침이 더 심해지면..."
말끝을 흐렸지만, 그 뜻은 분명했어요.
강씨가 부엌에 쭈그려 앉아 생각을 했습니다. 고개 너머 장터까지 삼십 리. 걸어서 가면 네 시간, 돌아오면 또 네 시간. 지금이 오후 늦은 시각이니까, 지금 당장 출발해도 장터에 도착하면 한밤중이에요. 장터 약방이 문을 닫았으면? 나씨 영감 집을 찾아가서 문을 두드려야지요. 돌아오면 새벽녘.
그런데 밤길에 칠봉고개를 넘어야 합니다.
강씨의 눈이 잠시 흔들렸어요. 하지만 안방에서 기침하는 시어머니 소리가 들려오자, 이를 꽉 깨물었습니다.
'오늘 밤에 안 가면 어머니가 위험해. 내일은 늦어.'
강씨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부엌 아궁이에 불을 지폈어요. 그리고 선반에서 팥 한 됫박을 꺼내 솥에 쏟아부었습니다.
※ 2: 고갯마루의 흉흉한 소문 — 밤마다 나타나는 것들
강씨가 팥을 불리는 동안, 이웃집 김씨 아주머니가 담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어요.
"강씨, 아궁이에 불 때는 거 보니 어디 갈 모양이구만?"
"예, 고개 너머 장터에 약을 사러 가야 합니다."
"지금? 해가 지고 있는데?"
"시어머니 약을 내일까지 구해야 해서요."
김씨 아주머니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빠졌어요. 허겁지겁 울타리를 돌아서 강씨네 마당으로 들어왔습니다.
"아가, 제발 그 소리 마라. 칠봉고개를 밤에 넘어? 미쳤다고?"
"아주머니, 안 가면 어머니가..."
"듣지 못했어? 요새 칠봉고개에 뭐가 나온다잖아!"
강씨가 손을 멈추고 김씨 아주머니를 바라봤습니다.
김씨 아주머니가 목소리를 확 낮췄어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마치 그것이 들을까 봐 무서운 듯이 속삭였습니다.
"지난달에 장터 다녀오던 이씨네 남편이 칠봉고개에서 혼이 빠져가지고 돌아왔잖아. 고갯마루에서 횃불을 든 자들이 길을 딱 막더래. 얼굴이 사람이 아니었다는 거야. 키가 칠 척은 되는 게 온몸이 시뻘건 놈, 파란 놈, 대가리에 뿔이 달린 놈. 그놈들이 뭐라 했는 줄 알아?"
"이 고개는 우리 땅이다. 지나가려면 통행료를 내놓아라! 이러더래. 이씨네 남편이 가진 거 탈탈 털려가지고 겨우 목숨만 건져서 돌아왔어."
강씨가 아무 말 없이 다시 팥을 불에 올렸어요.
김씨 아주머니가 다급해졌습니다.
"그것만이 아니야. 그 전에도 옆 마을 보부상이 칠봉고개에서 짐을 다 빼앗겼고, 나무꾼 최가네도 지게째 빼앗겼어. 다들 같은 소리를 해. 사람이 아니라 도깨비라고. 횃불이 푸른 불이었다고. 목소리가 동굴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고."
도깨비. 그 말에 강씨의 손이 잠깐 멈추긴 했어요. 조선 팔도 어디를 가나 도깨비 이야기는 있었지만, 대부분은 술 좋아하고 장난치는 장난꾸러기로 알려져 있었거든요. 근데 길을 막고 통행료를 뜯는 도깨비라니. 그건 도깨비라기보다 산적 아닙니까?
강씨가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아주머니, 그거 정말 도깨비가 맞을까요? 산적이 도깨비 행세를 하는 거 아닐까요?"
"이 아가야, 그게 도깨비든 산적이든 중요한 게 아니잖아! 밤에 칠봉고개 넘다가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그래!"
맞는 말이었습니다. 도깨비든 산적이든, 밤에 산고개에서 길을 막는 자들 앞에 여자 혼자 나서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어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절대 가면 안 되는 거였지요.
그 순간 안방에서 시어머니의 기침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가래가 목을 막는 듯 그르렁거리다가, 숨이 끊어질 것처럼 캑캑거리는 소리. 강씨가 달려가서 시어머니의 등을 두드려 주었어요. 시어머니의 등이 앙상했습니다. 갈빗대가 손바닥 아래서 하나하나 만져졌어요.
시어머니가 기침을 간신히 멈추고 며느리의 손을 잡았습니다. 손이 뼈만 남아 있었어요.
"며느리야, 나는 괜찮으니 걱정 마라. 늙은이가 기침 좀 하는 게 별일이냐."
그 말이 강씨의 가슴에 못을 박았어요.
'괜찮긴 뭐가 괜찮아. 숨을 제대로 못 쉬면서.'
강씨가 안방 문을 닫고 나와 다시 부엌으로 갔습니다. 솥 안에서 팥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어요. 붉은 팥물이 솥뚜껑을 들썩일 때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습니다.
강씨가 김씨 아주머니를 똑바로 바라봤어요.
"아주머니, 돌이 좀 봐주세요. 날이 밝기 전에 돌아올게요."
"강씨! 정말 갈 거야?"
"도깨비가 나오든 호랑이가 나오든, 어머니 약은 오늘 밤에 구해야 합니다."
※ 3: 팥죽 한 솥과 작은 보따리 — 여인의 출정
해가 산등성이 너머로 넘어가고, 하늘이 검붉게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강씨가 부엌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어요.
팥이 푹 퍼질 때까지 삶아서, 소금을 한 줌 넣고, 걸쭉하게 팥죽을 쑤었습니다. 잘 끓인 팥죽을 질그릇 단지에 꽉꽉 담고 헝겊으로 입구를 묶었어요. 이걸 보자기에 싸서 보따리로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이 궁금하실 거예요. 약 사러 가는데 왜 팥죽을 쑤어 가느냐.
강씨에게는 계산이 있었습니다. 장터까지 삼십 리를 걸으면 한밤중에 도착하는데, 약방 나씨 영감을 빈손으로 찾아가서 한밤중에 문을 두드리면 문을 안 열어줄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뜨거운 팥죽 한 그릇을 내밀면? 늦은 밤 추위에 따뜻한 팥죽이라면 인심이 동하겠지요. 팥죽은 약값이 아니라 인심값이었던 겁니다. 먹을 것을 나누면 마음이 열린다는 것을 강씨는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팥죽에는 또 하나의 쓸모가 있었습니다. 조선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상식이었지요. 팥은 귀신을 쫓는 힘이 있다는 것.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 대문에 뿌리는 풍습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어요. 붉은 팥의 기운이 잡귀와 도깨비를 물리친다고 예로부터 믿어왔으니까요.
강씨가 도깨비를 진심으로 믿었느냐? 글쎄요. 반신반의했을 겁니다. 하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팥죽을 가져가는 것은 나쁠 게 없잖아요. 사람한테는 인심으로, 도깨비한테는 무기로. 일석이조라는 계산이었어요.
보따리를 어깨에 둘러메고 나서는데, 부엌 구석에 있던 부지깽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궁이에 불을 때 쓰는 기다란 나뭇가지인데, 참나무라 단단했어요. 강씨가 그것을 집어 들고 한 번 휘둘러 봤습니다. 묵직한 게 지팡이로도 되고 몽둥이로도 되겠다 싶었어요.
보따리 하나, 부지깽이 하나. 그것이 강씨의 전 장비였습니다.
자는 돌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김씨 아주머니에게 고개를 숙인 뒤, 강씨가 대문을 나섰어요. 밖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달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숨겼다를 반복하고 있었어요.
마을 어귀를 지나 산길로 접어드니 사방이 깜깜해졌습니다. 소나무 사이로 바람이 불 때마다 스산한 소리가 났고, 어디선가 부엉이가 울었어요. 발밑의 돌멩이를 밟을 때마다 서걱서걱 소리가 나고, 낙엽이 바스락거렸습니다.
강씨가 부지깽이를 지팡이 삼아 짚으며 걸었어요. 보따리 안에서 팥죽 단지가 아직 따뜻한 온기를 내뿜고 있었습니다. 그 온기가 등에 닿을 때마다 조금은 마음이 놓였어요.
산길을 한 시진쯤 걸었을까. 칠봉고개 초입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일곱 개의 봉우리가 줄줄이 이어진 산등성이 사이로 좁은 길 하나가 구불구불 나 있었어요. 낮에 봐도 음침한 길인데, 밤에 보니 마치 짐승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강씨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 입구를 올려다봤어요. 바람이 불자 소나무 가지가 갈퀴손처럼 흔들렸습니다.
'여기가 도깨비가 나온다는 고개구나.'
심장이 쿵쿵 뛰었습니다. 다리가 안으로 말리려 했어요. 돌아갈까? 아침에 다시 올까? 그 생각이 스치는 순간, 시어머니의 캑캑거리는 기침 소리가 귓가에 울렸습니다.
강씨가 부지깽이를 꽉 쥐고 첫발을 내딛었어요. 칠봉고개의 어둠 속으로.
※ 4: 어둠 속에서 길을 막은 자들 — "통행료를 내놓아라"
고개를 오르기 시작한 지 반 시진쯤 지났을까. 산길은 점점 좁아지고 가팔라졌습니다. 양옆으로 바위가 솟아 있어서,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틈새 같은 길이었어요. 달빛도 바위에 가려 들어오지 않아 앞이 거의 안 보였습니다.
강씨가 부지깽이로 앞을 더듬으며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올랐어요.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팥죽 보따리가 어깨를 눌러 힘이 들었지만, 내려놓을 수는 없었어요.
고갯마루가 가까워졌을 때였습니다.
불빛이 보였어요.
처음에는 반딧불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반딧불치고는 너무 컸어요. 그리고 색이 이상했습니다. 보통 횃불은 주황빛이잖아요? 이 불은 퍼렇게 타고 있었습니다. 푸른 불. 인간의 불이 아닌 빛깔이었어요.
강씨의 발이 딱 멈추었습니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어요.
푸른 불빛이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셋으로, 셋에서 다섯으로 늘어났습니다. 고갯마루의 가장 좁은 목 부분을 딱 가로막고 서 있는 것들의 실루엣이 서서히 드러났어요.
키가 보통 사람보다 두어 뼘은 커 보였습니다. 어깨가 떡 벌어지고, 머리 위에 뭔가가 뾰족하게 솟아 있었어요. 뿔인지 상투인지 어둠 속에서는 구분이 안 됐습니다. 얼굴은 더 이상했어요. 달빛에 얼핏 비친 그 얼굴이 사람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하나는 시뻘건 빛깔이었고, 하나는 시퍼런 빛깔이었습니다.
그중 가장 앞에 선 놈이 입을 열었어요. 목소리가 동굴 안에서 울리는 것처럼 웅웅 울렸습니다.
"멈춰라."
강씨가 얼어붙었어요.
"이 고개는 우리 땅이다. 지나가려면 통행료를 내놓아라."
통행료. 이씨네 남편이 당한 것과 똑같았습니다. 강씨의 머릿속에서 김씨 아주머니의 말이 번개처럼 스쳤어요. '가진 거 탈탈 털려가지고 겨우 목숨만 건져서 돌아왔어.'
강씨의 온몸이 벌벌 떨렸습니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부지깽이를 쥔 손이 축 늘어졌어요. 도망쳐야 하나. 뒤로 돌아서 내달리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 뒤를 돌면? 삼십 리를 되돌아가야 합니다. 시어머니의 약은? 내일까지 구하지 못하면? 의원이 했던 말이 귓가에 울렸어요. '이 겨울을 못 넘기실 수도 있소.'
'못 돌아간다. 여기서 돌아서면 어머니가 위험해.'
강씨의 떨리는 다리가 멈추었어요. 떨림이 분노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도깨비든 산적이든, 아픈 시어머니 약 사러 가는 며느리 길을 막아? 이게 사람이 할 짓이야? 귀신이 할 짓이야?'
강씨가 이를 악물었습니다. 부지깽이를 다시 꽉 쥐었어요. 그리고 한 발을 앞으로 내딛었습니다.
도깨비 대장이 갸우뚱했어요. 보통 사람은 이쯤 되면 엎드려 빌거나 도망가거든요. 근데 이 여인이 오히려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뭐야, 이년이 귀가 먹었나? 통행료를 내놓으라고 했다!"
강씨가 걸음을 멈추지 않았어요. 부지깽이를 짚으며 한 발, 한 발, 푸른 불빛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이를 꽉 깨물고 걸었어요.
그리고 도깨비 대장 코앞까지 왔을 때, 강씨가 입을 열었습니다.
※ 5: 팥죽이 얼굴에 쏟아지던 순간 — 도깨비 대장의 비명
강씨가 도깨비 대장의 코앞에서 멈춰 섰어요. 올려다보니 정말 키가 컸습니다. 강씨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것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그 형상이 보통 위압감이 아니었어요. 푸른 횃불에 비친 얼굴은 울퉁불퉁 기괴했고, 눈이 시뻘겋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근데 강씨가 올려다본 그 눈, 그 시뻘건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니까요. 뭐랄까. 무섭기는 한데, 동시에 뭔가 익숙했어요. 사람을 해치려는 눈이라기보다는, 겁을 주려고 일부러 부릅뜨고 있는 눈이었습니다. 허세를 부리는 눈이라고 할까요.
강씨가 입을 열었습니다. 목소리가 떨렸지만, 억지로 또박또박 말했어요.
"통행료? 좋다, 통행료를 주마. 근데 내가 가진 것이라곤 이것밖에 없다."
강씨가 어깨의 보따리를 내려놓고 헝겊을 풀었어요. 질그릇 단지의 뚜껑을 열자, 따끈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습니다. 팥죽의 구수한 냄새가 찬 밤공기에 퍼졌어요.
도깨비 대장의 코가 꿈틀했습니다. 도깨비라는 것들이 원래 먹을 것을 좋아하거든요. 특히 따끈한 음식 냄새에는 약했어요.
"뭐냐, 그게?"
"팥죽이다. 먹어볼래?"
도깨비 대장이 코를 벌름거리며 한 발 다가왔어요. 뒤에 있던 도깨비 넷도 슬금슬금 다가왔습니다. 푸른 횃불의 빛 아래서 팥죽 단지를 둘러싸고 도깨비 다섯이 코를 킁킁거리는 모습이, 무섭다기보다는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그런데 도깨비 대장이 갑자기 표정을 바꿨습니다. 입꼬리를 올리며 비죽 웃더니, 팥죽 단지를 발로 걷어차려고 했어요.
"재미있는 년이군. 팥죽 한 그릇으로 통행료를 때우겠다고? 어림없지. 돈을 내놓아라. 아니면 그 보따리째 두고 꺼져."
보따리째. 그 안에는 약값으로 가져가는 쌀 서 되 값의 돈이 들어 있었어요. 그걸 빼앗기면 약을 살 수가 없습니다. 시어머니의 약을 살 수가 없어요.
강씨의 눈에서 불꽃이 일었습니다.
이 순간, 강씨의 머릿속에 스치는 것들이 있었어요. 봄부터 기침을 하시는 시어머니. 밤마다 캑캑거리며 잠을 못 이루시는 그 모습. 뼈만 남은 손으로 "나는 괜찮다"고 하시던 그 목소리. 이 겨울을 못 넘기실 수도 있다는 의원의 말. 석 달째 소식 없는 남편 대신 이 집을 지키며 이 악물고 살아온 날들.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치밀어 올랐습니다.
강씨가 팥죽 단지를 두 손으로 번쩍 들어 올렸어요. 뜨거운 팥죽이 찰랑거렸습니다.
"싫다고? 그러면 이렇게 먹어라!"
확!
뜨거운 팥죽이 도깨비 대장의 얼굴에 정통으로 쏟아졌습니다.
"끄아아아아악!"
도깨비 대장이 비명을 질렀어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뒤로 나자빠졌습니다. 걸쭉한 팥죽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데, 그 붉은 팥죽이 마치 피처럼 보였어요.
뒤에 있던 도깨비 넷이 기겁을 했습니다. 대장이 쓰러졌으니까요. 근데 더 놀란 건 그 다음이에요. 강씨가 빈 단지를 내동댕이치고, 부지깽이를 양손으로 쥐고 머리 위로 들어 올린 겁니다.
"다음은 누구야! 덤벼!"
스물여섯 살 여인이 부지깽이를 치켜들고 도깨비 다섯을 향해 눈을 부릅뜬 모습. 달빛 아래서 그 형상이, 무서웠습니다. 도깨비한테 무서운 게 아니라 도깨비가 봐도 무서운. 자식 지키는 어미 호랑이 같은, 그런 무서움이었어요.
도깨비들이 한 발 물러섰습니다.
※ 6: 도깨비가 무릎 꿇은 진짜 이유 — 팥죽보다 무서운 것
도깨비 대장이 얼굴의 팥죽을 닦으며 비틀비틀 일어났습니다. 눈이 뒤집혀서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았어요.
"이, 이년이 감히!"
그런데 일어서다 말고 멈추었습니다. 강씨의 얼굴을 보았거든요. 부지깽이를 쥔 손은 떨리고 있었지만, 눈은 떨리지 않았어요. 이를 악물고 코를 벌름거리며, 온몸으로 '한 발이라도 다가오면 죽여버리겠다'는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강씨를 멈추게 한 것은 도깨비가 아니었어요. 자기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이었습니다. 강씨가 울고 있었거든요. 이를 악물고 부지깽이를 치켜들고 있으면서, 눈에서는 주룩주룩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어요.
강씨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도깨비를 향한 것인지, 세상을 향한 것인지 모를 외침이었어요.
"내 시어머니가 죽어가고 있어! 기침을 해서 밤마다 잠을 못 자시고, 숨을 제대로 못 쉬시고, 뼈만 남아서 바람 불면 넘어지실 것 같은 내 시어머니가! 약을 사러 가는 길이야! 밤길이 무서운 줄 몰라서 왔겠어? 도깨비가 나온다는 걸 몰라서 왔겠어?"
도깨비들이 꿈쩍도 못 했어요.
"남편은 석 달째 소식이 없고, 집에는 다섯 살짜리 아들이 이웃집에 맡겨져 있고, 가진 돈이라곤 쌀 서 되 값이 전부야! 그 돈으로 약을 사야 해! 그래야 어머니가 이 겨울을 넘기실 수 있어! 근데 너희가 그걸 빼앗겠다고?"
강씨의 목소리가 갈라졌어요.
"빼앗아 봐. 빼앗으면 나는 빈손으로 약방에 가서 바닥에 엎드려서라도 약을 구해 올 거야. 너희가 내 다리를 꺾어놔도 기어서라도 고개를 넘을 거야. 어머니 살릴 약을 구하기 전에는 안 죽어!"
고갯마루에 강씨의 외침이 메아리쳤습니다. 바위에 부딪히고, 소나무 사이를 타고, 골짜기 아래로 울려 퍼졌어요.
도깨비 대장의 표정이 변했습니다. 시뻘건 눈의 빛이 누그러지더니, 뭔가 복잡한 표정이 얼굴에 떠올랐어요. 도깨비라는 존재가 원래 그렇습니다. 무서운 것은 칼도 창도 아니에요. 도깨비가 진짜 못 당하는 것은 사심 없는 진심이거든요.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목숨을 거는 사람의 기운, 그 당당한 기세 앞에서는 도깨비도 맥을 못 추었어요.
게다가 팥죽이잖아요. 도깨비가 제일 싫어하는 팥. 얼굴에 뒤집어쓴 팥죽의 기운이 온몸에 퍼지니까 힘이 쪽 빠지는 것 같기도 했고요.
하지만 무엇보다, 강씨의 눈물이었습니다. 사나운 눈으로 부지깽이를 치켜들면서도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그 눈물. 시어머니를 살리겠다는 그 절박함. 도깨비가 아무리 심술궂어도, 어미의 정 앞에서 길을 막을 수는 없었어요.
도깨비 대장이 한 발 물러섰습니다. 그리고 옆에 선 도깨비들을 돌아보더니, 고개를 떨구었어요.
"비켜라."
뒤에 있던 도깨비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습니다.
"비키라고 했다. 길을 열어."
도깨비들이 슬금슬금 양쪽으로 물러섰어요. 좁은 고갯마루의 길이 열렸습니다.
도깨비 대장이 강씨를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어요. 팥죽이 묻은 얼굴이 우스꽝스러웠지만, 목소리에는 기가 찬 듯한 웃음이 섞여 있었습니다.
"가시오. 근데 돌아오는 길에도 이 고개를 넘을 거 아니오?"
강씨가 눈물을 소매로 훔치며 대답했어요.
"그렇다. 왜? 돌아올 때도 막을 셈이야?"
"아니, 아니. 돌아올 때는... 우리가 길을 밝혀주겠소."
강씨가 어이가 없어서 한 박자 멈추었다가, 부지깽이를 꽉 쥔 채 고갯마루를 넘어갔습니다. 뒤에서 도깨비 대장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바람에 실려 왔어요.
"아이고, 저런 며느리를 둔 시어머니는 복 받은 거야."
※ 7: 고개를 넘은 여인, 마을의 전설이 되다
고개를 넘은 강씨가 미친 듯이 달렸습니다. 팥죽 단지는 깨졌고 부지깽이 하나만 쥔 채로, 어둠 속을 내달렸어요. 도깨비를 만났다는 공포가 뒤늦게 밀려와 온몸이 후들후들 떨렸지만 다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시어머니의 기침 소리가 발걸음을 재촉했으니까요.
장터에 도착하니 한밤중이었어요. 가게들은 당연히 문을 닫았고, 거리에는 개 한 마리 보이지 않았습니다. 강씨가 약방 나씨 영감의 집을 수소문해서 찾아갔어요.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쿵, 쿵, 쿵.
한참 만에 잠에서 깬 나씨 영감이 문을 열었어요. 한밤중에 웬 행색이 남루한 여인이 부지깽이를 들고 서 있으니 깜짝 놀랐지요.
"누, 누구시오?"
"약을 사러 왔습니다. 시어머니가 위급합니다. 도라지 진액과 감초를 주십시오."
강씨가 돈을 내밀며 사정을 말했어요. 한밤중에 칠봉고개를 넘어왔다는 말에 나씨 영감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칠봉고개를? 밤에? 거기 요새 도깨비가 나온다던데!"
"만났습니다."
"예?"
"만나서 팥죽을 끼얹어 줬습니다."
나씨 영감이 할 말을 잃었어요. 이 여인이 미친 건지 대단한 건지 판단이 안 섰지만, 아픈 시어머니를 위해 이 험한 밤길을 왔다는 것만큼은 진심인 게 분명했습니다. 나씨 영감이 부랴부랴 약재를 꺼내 싸주었어요. 도라지 진액에 감초, 거기다 자기 돈으로 대추와 생강까지 덤으로 넣어주었습니다.
"돌아가는 길도 칠봉고개를 넘으실 거요?"
"다른 길이 없으니까요."
나씨 영감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등불을 하나 건네주었어요.
"대단한 며느리시오. 시어머니 복이 하늘을 찔렀소."
강씨가 약 보따리를 안고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돌아오는 길. 다시 칠봉고개를 넘어야 했어요. 다리가 무거웠지만, 품 안에 약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 힘을 주었습니다.
고갯마루에 다가가니, 또 푸른 불빛이 보였어요. 강씨가 부지깽이를 다시 쥐려는데, 이번에는 불빛의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위협적이지 않았어요. 가만히 보니, 푸른 횃불이 길 양쪽에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마치 길을 안내하듯이.
강씨가 조심스럽게 한 발을 내딛었어요. 아까 그 도깨비 대장이 바위 위에 걸터앉아 있었습니다. 얼굴의 팥죽을 대충 닦긴 했는데, 아직 귀 뒤에 팥알이 붙어 있었어요.
"왔소?"
"길을 비켜."
"비키라니까 비킨다고 했잖소. 오는 길에는 밝혀주겠다고도 했고."
정말로 도깨비들이 양쪽에서 횃불을 들고 길을 밝혀주고 있었습니다. 강씨가 어이가 없었지만, 따질 겨를이 없었어요. 시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강씨가 횃불 사이를 걸어서 고개를 넘었습니다. 뒤에서 도깨비 대장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이봐, 다음에 올 때는 팥죽 말고 술을 좀 가져오시오!"
강씨가 뒤도 안 돌아보고 손을 휘휘 저으며 고개를 내려갔습니다.
동이 트기 직전, 강씨가 마을에 도착했어요. 밤새 걸은 다리가 풀려 대문 앞에서 비틀거렸지만,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부엌에 들어가서 약을 달이기 시작했어요.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도라지와 감초와 대추와 생강을 솥에 넣고 푹 달였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약탕기에서 쓰고 달큰한 약 냄새가 퍼졌어요.
시어머니에게 약을 떠 드렸습니다. 한 숟갈, 두 숟갈. 시어머니가 따뜻한 약을 넘기자 기침이 조금 가라앉았어요.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얼굴을 바라봤습니다. 밤새 걸어서 눈이 퀭하고, 얼굴에 먼지가 묻고, 머리카락이 헝클어진 며느리. 시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고였어요.
"며느리야, 네가... 밤새 갔다 온 거냐?"
"아닙니다, 어머니. 가까운 데서 구해 왔어요."
거짓말이었지만, 시어머니를 걱정시키지 않으려는 거짓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다 알고 있었어요. 늙었지만 귀는 밝았거든요. 밤에 며느리가 대문을 나서는 소리도 들었고, 김씨 아주머니가 말리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손을 잡았어요. 뼈만 남은 손이 며느리의 투박한 손을 꼭 쥐었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말 대신 손의 온기가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마을에 퍼졌습니다. 한밤중에 칠봉고개를 넘어 도깨비를 만나고, 팥죽을 얼굴에 끼얹고, 약을 구해 돌아온 며느리 강씨. 처음에는 마을 사람들이 반신반의했어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강씨가 칠봉고개를 넘은 뒤로, 그 고개에서 도깨비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은 거예요. 이씨네 남편 같은 피해자가 뚝 끊겼습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했어요. "도깨비가 팥죽에 혼이 나서 도망갔다." 또 혹자는 이렇게 말했지요. "도깨비가 아니라 산적이었는데, 여자한테 팥죽 맞고 쪽팔려서 다시 못 온 거다." 진실이 뭔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었어요. 그 뒤로 마을에서 강씨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겁니다.
여러분. 옛말에 이런 말이 있지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게 어미 마음이라고. 시어머니를 살리겠다는 며느리의 마음 앞에서는 도깨비도 길을 비켜주었습니다. 칼이나 창이 아니라, 팥죽 한 그릇과 부지깽이 하나로,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안에 담긴 효심 하나로 어둠의 고개를 넘은 여장부. 그 고개의 이름은 그 뒤로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이렇게 바뀌었다고 합니다.
'팥죽고개.'
강씨의 시어머니는 그 겨울을 무사히 넘겼고, 이듬해 봄에 한양에서 남편이 돌아왔습니다. 남편이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한 말이 걸작이에요.
"당신이 도깨비한테 팥죽을 끼얹었다고? 나는 한양에서 양반한테도 그런 배짱은 못 부렸는데."
강씨가 빨래를 탁탁 털며 대답했어요.
"그건 서방님이 팥죽을 안 가지고 다녀서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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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오늘 이야기 어떠셨습니까? 도깨비한테 팥죽을 끼얹은 강씨 며느리, 속이 다 시원하지 않으셨어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가족을 지키려는 마음 앞에서는 귀신도 비켜갑니다.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드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꼭 부탁드리고요, 다음 천사야담에서는 더 통쾌하고 기막힌 옛이야기 들고 찾아뵙겠습니다. 팥죽 한 그릇 같은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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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ramatic photorealistic nighttime scene on a narrow Korean mountain pass in the Joseon Dynasty era. A fierce-looking young Korean woman in a worn hanbok stands defiantly on the rocky trail, holding a long wooden fire poker raised in one hand and a broken earthenware pot in the other. Thick red porridge drips from the pot. Facing her is a towering menacing figure with wild hair and reddish skin, staggering backward with red porridge splattered all over his face, arms flailing in shock. Behind him, several shadowy figures hold eerie blue-green torches that cast an otherworldly glow across the rocky landscape. Pine trees frame the scene on both sides, and a pale moon breaks through clouds above the mountain ridge. The woman's expression is furious and tearful simultaneously, showing raw maternal determination. Cinematic dramatic lighting, photorealistic, 16:9 aspect ratio, no t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