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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 [청구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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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여러분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무엇입니까? 호랑이? 귀신? 아니면… 샛노란 황금 덩어리와 번쩍이는 비단옷은 어떠신가요? 꾀돌이 바우와 순진한 도깨비의 기상천외한 밀당! 그리고 남의 것을 탐내던 욕심쟁이 지주의 기막힌 최후까지. 듣기만 해도 속이 뻥 뚫리는 통쾌한 조선시대 코믹 야담,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 1: 달밤의 씨름과 은밀한 질문
어스름한 달빛이 기와집 지붕을 유유히 넘어 소박한 초가집 마당에 스며드는, 고즈넉하고도 깊은 밤이었습니다. 풀벌레 소리만이 간간이 정적을 깨우는 가운데, 낮 내내 험한 산속을 누비며 무거운 땔감을 구하고 돌아온 바우는 삐걱거리는 툇마루에 걸터앉아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구슬땀을 훔치고 있었습니다. 비록 물려받은 재산 하나 없이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살이였지만, 심성이 곧고 잔꾀가 많으며 누구에게나 서글서글한 바우는 동네에서도 사람 좋기로 소문이 자자한 청년이었습니다. 고된 하루의 피로를 풀며 밤하늘의 둥근 달을 올려다보던 그 순간, 어디선가 쿰쿰하고 시큼한 흙냄새와 함께 스산한 밤바람이 확 불어오더니, 마당 한가운데로 집채만 한 커다란 그림자가 훌쩍 뛰어내렸습니다.
"헤헤헤, 바우야! 안 자고 있었느냐! 이리 내려와서 나랑 씨름이나 시원하게 한판 하자꾸나!"
달빛 아래 정체를 드러낸 것은 키가 구척장신에 온몸에 거친 털이 덥수룩하게 나 있고, 머리에는 뭉툭한 뿔이 솟아오른 도깨비였습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그 무시무시한 덩치와 기괴한 생김새에 기절초풍하여 까무러칠 노릇이었겠지만, 바우는 이미 이 산중 도깨비와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니라는 듯 여유로웠습니다. 그는 귀찮다는 듯 쯧쯧 혀를 차면서도, 내심 이 심심한 밤에 찾아온 불청객이 밉지만은 않았습니다. 바우는 헐렁한 바지춤을 질끈 동여매고 소맷자락을 걷어붙인 뒤, 성큼성큼 마당으로 내려섰습니다. 도깨비는 신이 나서 씩씩거리며 바우의 허리춤을 덥석 잡고 이리저리 거칠게 흔들어댔습니다. 바우의 몸이 허공에 붕 뜰 정도로 엄청난 괴력이었지만, 바우는 결코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도깨비의 무식한 힘을 교묘하게 역이용하여 몸의 중심을 낮추고, 도깨비가 힘을 주어 밀어붙이는 찰나의 순간을 노려 다리에 잽싸게 발을 걸었습니다. 그리고는 남은 힘을 쥐어짜 내어 엉덩이를 툭 치며 도깨비의 거구 바깥쪽으로 중심을 무너뜨렸습니다.
쿵! 하는 천지를 진동할 듯한 커다란 둔탁한 소리와 함께 희뿌연 흙먼지가 마당 가득 일어났고, 거대한 덩치의 도깨비는 개구리처럼 바닥에 보기 좋게 나자빠지고 말았습니다. 도깨비는 얼얼한 엉덩이를 큰 손으로 쓱쓱 문지르며 흙투성이가 된 얼굴로 껄껄껄 호탕하게 웃어젖혔습니다.
"아따, 우리 바우 녀석! 몸집은 조막만 한 게 뼈대가 아주 통뼈에 힘 장사네, 힘 장사야! 오늘 밤도 내가 졌다, 졌어! 네놈의 그 얄미운 발걸기 기술에는 매번 당하면서도 또 넘어가고 마는구나!"
두 사람은 방금 전까지 치열하게 흙바닥을 뒹굴며 씨름을 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은 듯, 아주 오래된 지기처럼 나란히 툇마루에 걸터앉았습니다. 바우가 부엌 한구석에서 정성껏 빚어 숨겨두었던 시원하고 달콤한 막걸리 한 사발을 가득 담아 내오자, 도깨비는 단숨에 꿀꺽꿀꺽 들이켰습니다. 입가에 묻은 허연 막걸리를 손등으로 쓱 닦아낸 도깨비는 기분이 한껏 좋아졌는지 알 수 없는 옛날 가락을 흥얼거리며 발장단을 쳤습니다. 그러다 문득 무슨 재미난 생각이라도 떠오른 듯, 도깨비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피더니 바우의 귓가로 커다란 얼굴을 쑥 들이밀며 무척이나 은밀하고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속삭였습니다.
"야, 바우야. 내가 인간 세상천지를 다 돌아다녀 보고 별의별 놈들을 다 만나봤지만, 너처럼 겁 없고 배짱 두둑한 놈은 처음 본다. 넌 도대체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뭐냐? 나는 그 무섭다는 산중 호랑이가 으르렁거려도 하품이 나오고, 머리 풀어 헤친 처녀 귀신이 나타나도 콧방귀가 나오는데 말이야. 너같이 당돌한 녀석도 무서워 벌벌 떠는 게 하나쯤은 있을 거 아니냐?"
그 뜬금없는 질문을 듣는 순간, 바우의 비상한 머릿속에서는 번쩍하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스쳐 지나갔습니다. '옳거니, 이 철없고 장난기 많은 녀석이 또 내게 무슨 짓궂은 장난을 치려고 슬쩍 떠보는구나. 평소에 나를 하도 귀찮게 굴었으니, 어디 이번 기회에 내 단단히 꾀를 내어 이 녀석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고 한몫 단단히 챙겨볼까?' 바우는 속으로 통쾌한 쾌재를 부르면서도, 겉으로는 안색을 하얗게 질린 척 바꾸며 짐짓 심각하고 두려움에 떠는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그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미간을 깊게 찌푸리더니,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부르르 떠는 시늉을 하며 한껏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어휴, 도깨비야. 말도 마라. 내가 겉으로는 이렇게 씩씩해 보여도, 사실 속으로는 밤마다 두려움에 떨며 산단다. 나는 이 세상에서 그 어떤 맹수나 귀신보다도... 샛노랗게 빛을 내는 번쩍번쩍한 황금 덩어리와, 눈이 시리도록 화려하고 부드러운 최고급 비단옷이 제일 무섭다! 아이고, 말만 꺼냈는데도 벌써 생각만으로 눈앞이 핑핑 돌고 캄캄해지면서, 숨이 턱턱 막혀와 기절할 것만 같구나! 그 차갑고 번뜩이는 황금의 빛깔이나, 몸을 칭칭 감을 것만 같은 비단의 촉감을 떠올리면 내 명에 제때 죽지도 못할 지경이야. 제발 부탁이니 평생 내 눈앞에 그런 끔찍하고 소름 끼치는 것들이 단 한 번이라도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도깨비는 동그랗게 뜬 커다란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신기한 눈빛으로 바우를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인간들이 목숨보다 귀하게 여긴다는 그 귀한 황금과 비단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니, 단순무식한 도깨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인간들의 복잡하고 나약한 속마음을 도깨비가 어찌 다 알 수 있겠습니까. 덜덜 떠는 바우의 신들린 연기에 깜빡 속아 넘어간 도깨비는, 동정심이 일었는지 고개를 끄덕거리며 진지하게 맞장구를 쳐주었습니다.
"그래? 인간들이란 족속은 참으로 요상하고 해괴한 걸 다 무서워하며 사는구나. 하긴, 사람마다 타고난 약점이란 게 있는 법이지. 사실을 털어놓자면... 천하무적인 나에게도 이 세상에서 딱 하나, 끔찍하게 무서운 게 있긴 하단다."
순간 바우의 눈빛이 어둠 속에서 먹이를 발견한 매처럼 예리하게 반짝였습니다. 그는 여전히 무서워하는 척 연기를 이어가며 귀를 바짝 기울였습니다.
"그래? 너같이 힘세고 커다란 도깨비도 무서워하는 게 있다고? 대체 그게 무엇이관대 그러느냐?"
도깨비는 혹시라도 누가 들을세라 거대한 몸을 잔뜩 움츠리며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는 진저리를 쳤습니다.
"나는... 가마솥에서 펄펄 끓여낸 핏빛처럼 시뻘건 붉은 팥죽이랑, 비릿한 냄새가 진동하는 붉은 개 피가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 으이구, 그것들만 곁에 있어도 온몸의 기운이 쑥 빠져나가고, 피부가 타들어 가는 것처럼 고통스러워서 꼼짝도 할 수가 없어. 어휴, 지금 팥죽 이야기만 입에 올렸는데도 온몸의 털이 쭈뼛쭈뼛 서고 소름이 돋네!"
바우는 도깨비가 무심코 털어놓은 치명적인 약점을 머릿속 가장 깊은 곳에 단단히 새겨두며,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속으로 씨익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은은하게 비추는 달빛 아래, 어딘가 어설픈 도깨비와 영악하고 지혜로운 인간 바우의, 기상천외하고도 치밀한 수싸움의 서막이 화려하게 오르는 순간이었습니다.
※ 2: 바우의 꾀와 쏟아지는 황금 벼락
며칠 뒤, 이른 아침부터 밭에 나가 허리가 끊어지도록 하루 종일 김을 매고 기진맥진하여 집으로 돌아온 바우는, 사립문을 열어젖히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참담한 광경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언제나 정갈하게 쓸어놓았던 마당은 마치 멧돼지 떼가 휩쓸고 지나간 듯 이리저리 파헤쳐져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고, 정성껏 닦아놓은 장독대의 항아리들은 뚜껑이 열린 채 뒤집혀 바닥에 뒹굴고 있었습니다. 가지런히 널어두었던 빨랫줄은 끊어져 흙바닥에 나뒹굴었고, 밥을 짓는 부엌의 아궁이에는 어디서 퍼왔는지 모를 진흙이 잔뜩 발라져 불을 지필 수도 없게 꽉 막혀 있었습니다. 이 모든 만행의 범인은 안 봐도 뻔했습니다. 바우는 솟구치는 화를 누르며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이 망할 놈의 도깨비 녀석이 기어코 앙심을 품고 이런 고약한 장난을 쳐놓았구나! 감히 사람 피곤하게 일하고 온 집안을 이 꼴로 만들어? 오늘 밤에 내 집 마당에 발을 들이기만 해봐라, 아주 단단히 벼르고 있다가 혼쭐을 내줄 테니!"
물론 바우의 이 분노는 반쯤은 계산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도깨비가 자신의 화난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아, 며칠 전 이야기했던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으로 본격적인 복수극을 펼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바우는 일부러 안방의 방문을 활짝 열어둔 채, 마루 한가운데 떡하니 버티고 앉아 도깨비가 나타나기만을 인내심 있게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깊은 밤이 되자, 어둠이 짙게 깔린 사립문 밖에서 낄낄거리는 억눌린 웃음소리와 함께 거대한 도깨비가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바우는 기다렸다는 듯 마당을 쓸던 몽당빗자루를 번쩍 치켜들고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야 이 털북숭이 멍청한 도깨비 놈아! 네놈이 낮에 몰래 숨어들어 내 집 마당을 이 꼴로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걸 내가 모를 줄 아느냐? 동네방네 힘자랑만 할 줄 알지 속은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놈! 당장 원래대로 싹 치워놓고 원상복구 하지 못할까!"
도깨비는 바우가 예상보다 훨씬 더 길길이 날뛰며 진짜로 무섭게 화를 내자 흠칫 놀라 한 발짝 뒤로 물러섰지만, 이내 도깨비 특유의 심술궂은 오기가 활활 타올랐습니다. '흥, 조막만 한 인간 주제에 감히 나한테 큰소리를 치며 빗자루를 휘둘러? 그래, 네가 그렇게 기고만장하다 이거지. 네놈이 세상에서 제일 끔찍하게 무서워한다는 그것들로 오늘 밤 아주 혼비백산하게 만들어주마!' 도깨비는 바우의 기세에 눌려 도망치는 척하며 담장을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그리고는 꿍꿍이를 품은 채 산속 깊은 곳으로 쏜살같이 달려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바우는 도깨비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자마자 빗자루를 내동댕이치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 참으며 재빨리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는 두툼한 솜이불을 머리끝까지 푹 뒤집어쓰고는 숨을 죽인 채 다가올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이제 곧 녀석의 유치하고도 은혜로운 복수가 시작되겠군. 어디 한번 네가 가진 힘을 다 써서 마음껏, 아주 산더미처럼 던져보아라.'
얼마 지나지 않아, 고요하던 초가집 지붕 위에서 우당탕 쿵쾅! 하는 요란하고 무시무시한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곧이어 열려 있는 방문과 낡은 창호지 문을 뚫고 무언가 묵직하고 거대한 것들이 폭우처럼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희미하게 스며드는 달빛에 반사되어 눈이 부시도록 찬란하게 번쩍이는 샛노란 덩어리들, 그리고 손끝에 닿기만 해도 미끄러질 듯 부드럽게 감겨오는 화려하고 기품 있는 천 조각들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도깨비가 바우를 극도로 괴롭히고 기절시키기 위해 온 산맥을 뒤지고 땅속 깊은 곳을 파헤쳐 긁어모아 온, 엄청난 양의 황금 덩어리와 최고급 비단옷들이었습니다.
"으아아악! 사람 살려! 이게 무슨 끔찍한 짓이냐! 당장 저리 치워! 내 눈앞에서 당장 이 소름 끼치는 것들을 치우란 말이야!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아!"
바우는 이불 속에서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떠는 연기를 펼치며,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형벌을 받는 죄수처럼 처절하고 절박한 비명을 질렀습니다. 지붕 위에서 그 비참한 소리를 고스란히 듣고 있던 도깨비는 자신의 복수가 완벽하게 성공했다며 통쾌함에 겨워 배를 잡고 뒹굴며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헤헤헤! 낄낄낄! 거봐라, 이 건방진 녀석아! 나한테 까불더니 꼴 아주 좋다! 어디 밤새도록 네가 제일 무서워하는 황금과 비단 맛 좀 톡톡히 보거라! 뼈저리게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밤이 깊어 새벽닭이 울 때까지, 도깨비의 그 '끔찍하고도 자비로운' 공격은 쉬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방 안은 어느새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번쩍이는 금은보화와 오색찬란한 비단으로 가득 차서, 낡은 초가집이 통째로 보물창고로 변해버렸습니다. 바우는 두꺼운 이불 속에서 새어 나오는 웃음을 들키지 않으려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소리 없는 만세를 수십 번이나 부르며 벅찬 기쁨의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마침내 동녘 하늘이 밝아오고 아침 햇살이 비치자, 도깨비는 자신의 완벽한 승리에 도취된 만족스러운 웃음을 길게 남기고 아지랑이처럼 숲으로 사라졌습니다. 도깨비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바우는, 그제야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 방 안을 가득 메운 눈부신 황금 무더기 위로 벌러덩 드러누웠습니다.
'아이고, 이 바보 같고 착한 도깨비야, 정말 고맙다! 네 녀석의 그 순진한 심술 덕분에 찢어지게 가난했던 내 팔자가 하루아침에 훤하게 피었구나! 이제 평생 배곯을 일은 없겠어!' 찬란한 아침 햇살이 방 안을 비추는 가운데, 가난했던 바우의 낡은 집에서는 태어나 처음으로 근심 걱정 없는 크고 환한 웃음꽃이 만발하며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 3: 벼락부자가 된 바우와 배 아픈 지주
바우가 산속의 신령스러운 기운을 받아 하룻밤 사이에 엄청난 금은보화를 얻어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믿기 힘든 소문은,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가듯 삽시간에 온 마을과 이웃 고을에까지 파다하게 퍼져나갔습니다. 하지만 바우는 재물이 생겼다고 해서 결코 교만해지거나 흥청망청 허튼 곳에 돈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도깨비가 던져주고 간 엄청난 양의 황금 중 일부를 처분하여, 겨울나기가 막막해 헐벗고 굶주리는 마을의 가난한 이웃들에게 고봉으로 담은 쌀가마니를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비바람에 쓰러져 가던 자신의 낡은 초가집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튼튼한 소나무 기둥을 세우고 번듯한 기와를 얹은 크고 웅장한 기와집을 새로 지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처럼 기뻐하며 바우의 넉넉한 인심과 착한 심성을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평화로운 마을에서 단 한 사람, 마을 제일의 탐욕스러운 악덕 지주인 황 영감만은 예외였습니다. 그는 자신보다 가난하고 보잘것없던 바우가 갑자기 더 큰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배가 몹시 아파 며칠 밤낮을 뜬눈으로 지새워야 했습니다.
평소 마을의 가난한 소작농들에게서 터무니없는 고리를 뜯어내고 피눈물을 쥐어짜며 자신의 더러운 재산을 불려 오던 황 영감은, 바우의 갑작스러운 부가 도무지 믿기지 않았고 또 견딜 수 없이 질투가 났습니다. 기름진 음식만 탐하여 배가 남산만 하게 튀어나온 황 영감은, 긴 곰방대를 입에 물고 뻐끔거리며 신경질적으로 연기를 내뿜더니 하인을 시켜 바우를 자신의 안채로 은밀히 불러들였습니다. 마당에 들어서는 바우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황 영감은 탐욕으로 번들거리는 눈빛을 애써 숨긴 채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습니다.
"어흠, 어서 오너라, 바우야. 그래, 네가 요즘 하늘의 돌보심을 받아 운수가 아주 대통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쯧쯧, 하지만 말이여, 사람이라는 게 원래 분수에 맞지 않게 갑자기 엄청난 재물이 굴러들어오면 오히려 큰 화를 입고 명이 짧아지는 법이란다. 내가 마을의 어른으로서 너를 아끼는 마음에 걱정이 되어 부른 것이야. 그래, 도대체 어디서 그런 어마어마한 금은보화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쏟아졌단 말이냐? 행여나 도둑질이라도 한 것은 아닐 테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테니, 이 늙은이에게만 그 신기한 비법을 살짝 털어놓아 보거라."
교활하고 탐욕스러운 황 영감의 눈빛이 뱀처럼 번뜩이는 것을 본 바우는, 겉으로는 공손한 척 고개를 숙였지만 속으로는 차가운 코웃음을 쳤습니다. '흥, 이 지독하게 욕심 많은 영감탱이가 기어코 남의 재물까지 탐을 내어 떡고물이라도 주워 먹으려고 수작을 부리는구나. 그래, 평소에 우리 이웃들을 그렇게 괴롭히더니, 어디 당신도 이번 기회에 내 함정에 푹 빠져서 평생 잊지 못할 끔찍한 혼쭐을 한 번 제대로 나보시지.' 바우는 짐짓 누군가 엿듣기라도 할까 봐 겁에 질린 척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더니, 목소리를 개미 기어가는 소리만큼 낮추고는 엄청난 국가 기밀이라도 되는 양 비밀을 털어놓는 척 뜸을 들였습니다.
"아이고, 영감님. 이건 정말이지 천기누설이라 아무에게도 말씀드리면 안 되는데, 영감님께서 이토록 저를 걱정해 주시니 영감님께만 몰래 말씀드리는 겁니다요. 사실은 말입니다... 저 깊은 산속에 홀로 사는 덩치 큰 도깨비 녀석이 하나 있는데, 그놈이 씨름을 하다가 저한테 진 것에 앙심을 품고는 아주 못된 복수를 하려고 들지 뭡니까요. 제가 평소에 이 세상에서 황금 덩어리와 비단옷을 제일 끔찍하게 무서워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악독한 도깨비 녀석이 저를 놀려 죽이려고 글쎄 밤새도록 그 무서운 황금과 비단을 제 방 안으로 미친 듯이 던져 넣지 뭡니까! 저는 그 차갑고 끔찍한 황금빛이 너무 무서워서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밤새도록 숨도 못 쉬고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요. 그 재물들은 제가 원해서 얻은 게 아니라, 그 도깨비 녀석의 지독한 괴롭힘 때문에 억지로 떠안게 된 끔찍한 골칫거리랍니다."
그 기막힌 이야기를 전해 들은 황 영감의 탁한 두 눈이 순간 탁구공만 하게 커지며 흥분으로 붉게 달아올랐습니다. '아니, 세상천지에 그런 앞뒤 꽉 막히고 멍청한 바보 도깨비가 다 있단 말이냐? 옳거니, 하늘이 이 황 영감을 위해 내려주신 절호의 기회로구나! 바우 그 멍청한 놈도 재물을 얻었는데, 나라고 못 할 게 뭐냐? 나도 오늘 밤 당장 그 산속 도깨비를 찾아가 살살 구슬려서 기분을 맞춰준 뒤에, 내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게 눈부신 금은보화라고 감쪽같이 속여 넘기면 되겠구나! 그러면 내일 아침이면 내 창고에도 바우 녀석보다 열 배, 아니 백 배는 더 많은 황금이 쏟아져 내릴 것이다!' 황 영감은 당장이라도 치맛자락을 걷어붙이고 험한 산속으로 달려 올라가고 싶은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억누르며, 티가 나지 않게 헛기침을 여러 번 내뱉었습니다.
"어험, 에헴! 그래? 참으로 기이하고도 해괴망측한 일이로구나. 도깨비가 그런 짓을 하다니... 알았다, 네가 그리 끔찍한 고초를 겪었다니 내 이 사실은 무덤에 갈 때까지 비밀로 덮어주마. 이제 안심하고 그만 돌아가 보거라."
바우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굽신거리고 물러간 후, 황 영감은 방구석을 이리저리 서성거리며 어서 빨리 날이 저물고 해가 떨어지기만을 오매불망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한편, 발걸음도 가볍게 자신의 새 기와집으로 돌아온 바우는, 그날 밤 어김없이 놀러 와 막걸리를 찾던 도깨비 친구에게 다가가 넌지시 귀띔을 해주었습니다.
"야, 도깨비야. 내 말 좀 잘 들어봐라. 저기 아랫마을에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사는 배불뚝이 황 영감이라고 알지? 그 탐욕스러운 영감이 오늘 낮에 나를 몰래 부르더니, 네가 나한테 황금을 던져준 이야기를 캐묻길래 내가 사실대로 몽땅 다 말해줘 버렸다. 그런데 넌 숲속에만 살아서 잘 모르겠지만, 그 영감이 인간 세상에서는 아주 끔찍하게 피도 눈물도 없는 못된 악당 중의 악당이거든. 가난하고 불쌍한 소작농들 식량까지 모조리 빼앗아서 피눈물을 흘리게 하고, 남의 약점 잡아서 재산을 집어삼키는 아주 인간말종이야. 아마 내 이야기를 듣고 몹시 배가 아팠을 테니, 조만간 너한테도 무슨 시커먼 꿍꿍이를 품고 뻔뻔하게 접근해서 널 이용해 먹으려 들지 모르니까 아주 단단히 조심해야 한다."
바우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도깨비는, 의리 없고 탐욕스러운 인간의 이야기에 분노하여 커다란 두 눈을 부릅뜨고 털북숭이 주먹을 꽉 불끈 쥐었습니다.
"뭐라고? 인간 세상에 그렇게 썩어빠지고 질이 나쁜 놈이 감히 숨 쉬고 살고 있단 말이야? 게다가 감히 나를, 이 산중의 왕인 위대한 도깨비님을 호구로 알고 속여먹으려 들어? 내 이놈을 당장 찾아가 찢어 죽일까 보다! 만약 그 교활한 늙은이가 감히 내 앞에서 알량한 수작을 부리며 얕은 수를 쓴다면, 아주 뼈도 못 추리게 평생 잊지 못할 끔찍한 지옥을 맛보여 줄 테다!"
도깨비의 커다란 눈망울에서 분노의 푸른 불꽃이 무섭게 타오르며 일렁였습니다. 바우를 질투하여 제 발로 지옥 불에 뛰어들 채비를 하는 황 영감의 얄팍하고 어리석은 꼼수가 과연 어떤 참혹하고 엄청난 파국을 불러올지, 평화로워 보이던 마을의 밤하늘에는 폭풍 전야의 팽팽하고 서늘한 긴장감이 소리 없이 무겁게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 4: 악덕 지주의 어설픈 도깨비 유혹
어둠이 짙게 깔려 달빛조차 구름에 가리운 야심한 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마을 어귀를 지나 으슥한 뒷산으로 향하는 은밀하고도 뚱뚱한 그림자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마을에서 악명 높기로 소문난 악덕 지주 황 영감이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귀신이 나올까 무서워 해가 지면 문밖 출입조차 하지 않던 겁쟁이 영감이었지만, 오늘 밤만큼은 그의 머릿속이 온통 샛노란 황금 덩어리와 번쩍이는 은괴로 꽉 차 있어 두려움조차 완전히 잊은 지 오래였습니다. 기름진 산해진미만 탐하여 고목나무 통처럼 굵어진 허리와 남산만 하게 튀어나온 배를 출렁이며, 황 영감은 가파른 산길을 오르느라 턱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헐떡였습니다. 값비싼 비단 두루마기는 나뭇가지에 걸려 올이 나가고 땀에 흠뻑 젖어 축 늘어졌지만, 그는 바우보다 수백 배, 수천 배 더 큰 벼락부자가 될 수 있다는 탐욕스러운 희망 하나로 미친 듯이 산속 깊은 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한참을 헤매며 으슥한 서낭당 앞 공터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어디선가 뼈가 시리도록 차갑고 스산한 바람이 휘몰아치며 낙엽들이 회오리쳤습니다. 그리고 바스락거리는 기괴한 발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푸른 도깨비불처럼 번뜩이는 두 개의 거대한 눈동자가 허공에 스윽 나타났습니다. 짐승의 털가죽을 두르고 머리에 뭉툭한 뿔이 난, 바우가 말했던 바로 그 무시무시한 덩치의 산중 도깨비가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나타난 것입니다. 평소라면 그 자리에서 거품을 물고 기절했을 황 영감이지만, 탐욕에 눈이 먼 그는 속으로 '옳거니, 드디어 내게도 황금 벼락을 내려줄 호구 녀석이 나타났구나!' 하고 쾌재를 불렀습니다. 황 영감은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애써 감추며, 짐짓 옛 친구라도 만난 것처럼 굽신거리고 너스레를 떨며 도깨비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아이고! 이게 도대체 뉘신가? 우리 마을의 평안을 지켜주시는 늠름하고 위대하신 도깨비 대감님 아니신가! 내 평소에 산 아래 엎드려 도깨비 대감님의 태산 같은 용맹함을 흠모하여 꼭 한번 그 존안을 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운치 있는 달밤에 마주치게 되니 참으로 가문의 영광이요, 반갑기 그지없소이다!"
도깨비는 이미 바우에게 황 영감의 더럽고 악독한 실체와 그가 꾸미고 올 얄팍한 수작에 대해 낱낱이 전해 듣고 단단히 벼르고 있던 터라, 황 영감의 그 뻔뻔하고 가식적인 낯짝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자들의 고혈을 빠는 흉측한 늙은이가 제 발로 호랑이 아가리 속으로 걸어 들어온 꼴을 보니 당장이라도 커다란 몽둥이로 납작하게 쥐어박고 싶었지만, 도깨비는 모른 척하며 퉁명스럽고 거친 목소리로 위협하듯 대꾸했습니다.
"넌 또 어디서 굴러먹던 재수 없는 늙은이냐?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헐떡거리는 꼴을 보니 밤마실이나 다닐 군번은 아닌 것 같은데, 내 커다란 방망이에 뼈다귀가 으스러지기 전에 당장 산 아래 네놈 집구석으로 꺼져서 잠이나 자라."
하지만 눈앞에 어른거리는 금괴를 포기할 수 없었던 황 영감은 도저히 물러설 기색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능글맞은 웃음을 흘리며 한 발짝 더 다가가, 감히 도깨비의 털북숭이 팔뚝을 슬쩍 어루만지며 간신배처럼 알랑거렸습니다.
"에이, 대감님. 어찌 그리 야박하게 굴며 사람을 내치려 하십니까요. 이왕 달 밝고 기분 좋은 밤에 이렇게 귀한 인연으로 만났으니, 이 늙은이랑 사내답게 시원한 씨름이나 한판 하는 게 어떻겠소이까! 내가 이래 봬도 젊었을 적엔 단오절마다 온 동네 씨름판을 주름잡으며 황소 열 마리는 족히 타갔던 천하장사 출신이라오. 대감님께서 그리 힘이 장사라니 내 오늘 한번 겨루어보고 싶소이다."
도깨비는 어이가 없어 콧방귀를 뀌었지만, 이 교활하고 역겨운 영감이 도대체 언제까지 발연기를 하며 꼼수를 부리나 보자는 심산으로 마지못해 샅바를 잡는 시늉을 취해주었습니다. 황 영감은 땀을 비 오듯 뻘뻘 흘리며 끙끙대고 안간힘을 썼지만, 바위산처럼 굳건하게 버티고 선 도깨비를 털끝 하나 움직일 수 있을 턱이 없었습니다. 이리저리 밀고 당기며 혼자 생쇼를 하던 황 영감은, 드디어 작전을 실행할 때가 왔다고 판단하고 기막힌 꼼수를 썼습니다. 그는 마치 도깨비의 엄청난 힘에 튕겨 나간 것처럼 허우적거리며 스스로 다리가 픽 풀린 척 연기를 하더니, 바닥의 흙먼지를 온몸에 뒤집어쓰며 뒤로 발러덩 나자빠진 것입니다.
"아이고, 쿵! 내 허리야! 뼈가 다 부서지는 것 같네! 과연 듣던 소문대로 도깨비 대감님의 장사 같은 힘은 인간의 몸으로는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구려. 어이구, 허허허, 내 평생 이렇게 완벽하게 패배해 보긴 처음이오. 내가 대감님의 엄청난 힘 앞에 아주 깔끔하게 졌소이다!"
황 영감은 더러워진 비단옷의 흙먼지를 툭툭 털고 일어나며 도깨비의 무릎 앞까지 바짝 다가앉았습니다. 그리고는 누가 산속에서 엿듣기라도 할까 봐 두리번거리더니, 목소리를 뱀처럼 은밀하게 낮추며 드디어 오랫동안 준비해 온 뻔뻔한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나저나 도깨비 대감님, 댁은 태산 같은 용기를 가지셨으니 이 세상 천지에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으시지요? 참으로 부러운 담력이십니다. 부끄러운 고백입니다만, 사실 천하장사인 나에게도 남들에게 차마 말하지 못할, 이 세상에서 끔찍하게 무서워하는 것이 딱 하나 있다오."
도깨비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무심하게 내려다보자, 황 영감은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두 눈을 질끈 감고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부르르 떠는 혼신의 명연기를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바우가 했다는 이야기를 그대로 흉내 내는 참으로 가소로운 짓이었습니다.
"나는... 어휴, 정말이지 말도 마시오. 나는 세상에서 동그랗고 반짝거려서 짤랑거리는 소리를 내는 엽전 다발들과, 눈이 부시도록 시뻘겋고 번쩍거리는 커다란 금괴와 은괴 덩어리들이 제일 무섭다오! 그리고 내 이름 석 자가 또렷하게 적혀 있는 드넓은 논밭과 기와집의 집문서, 땅문서들! 아이고, 나는 그것들만 보면 덜컥 겁이 나서 숨이 턱턱 막히고 심장이 미친 듯이 벌렁거려 도무지 단 하루도 제정신으로 살 수가 없소이다! 제발 부탁이니, 그 무섭고 소름 끼치는 금은보화와 문서들이 내 안방 안으로는 절대, 단 한 개라도 굴러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소이다. 상상만 해도 기절할 것만 같소!"
속이 너무나도 뻔히 들여다보이는 황 영감의 그 역겨운 발연기에 도깨비는 그만 헛구역질이 쏠려 토악질을 할 뻔했습니다. 평생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피눈물을 흘리게 만든 것도 모자라, 이제는 얄팍한 세치 혀로 산중 신령인 도깨비마저 속여 넘겨 끝없는 재물을 탐하려는 그 더럽고 탐욕스러운 주름진 얼굴을 보니, 당장이라도 거대한 발로 짓밟아 혼쭐을 내주고 싶은 충동이 목끝까지 치밀어 올랐습니다. 하지만 도깨비는 오늘 밤 그에게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지옥을 선물하리라 굳게 다짐하며, 끓어오르는 분노를 꾹 누르고 억지로 입꼬리를 비릿하게 말아 올렸습니다.
"그래? 인간들이란 참으로 별나고 멍청한 것들을 다 무서워하며 사는구먼. 알았다, 네놈이 목숨보다 더 끔찍하게 무서워하는 게 황금 덩어리와 문서라니 내 아주 똑똑히, 뼛속 깊이 기억해 두마. 이제 볼일 끝났으면 썩 꺼져라."
황 영감은 도깨비가 자신의 완벽한 연기에 속아 넘어갔다고 굳게 믿으며 속으로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는 드디어 작전이 성공했다는 벅찬 환희에 차서, 올라올 때의 피곤함도 잊은 채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며 쏜살같이 산을 내려갔습니다. 오늘 밤, 바우가 받았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엄청나게 쏟아져 내릴 금은보화를 온몸으로 맞이할 생각에 그의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웠고, 입가에는 탐욕의 침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 5: 똥물 벼락과 지주의 야반도주
숨을 헐떡이며 집으로 돌아온 황 영감은 하인들을 모두 행랑채로 쫓아버린 뒤, 가장 크고 넓은 안방의 창호지 문을 마당을 향해 활짝 열어젖히고 방 한가운데 경건한 자세로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그는 평소 덮고 자던 최고급 명주 비단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혹시라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무거운 금괴와 은괴 덩어리에 머리를 맞아 다치면 안 된다며 장롱 속에 있던 두꺼운 목화솜 이불까지 꺼내어 겹겹이 꽁꽁 두른 채 땀을 뻘뻘 흘리며 도깨비를 기다렸습니다.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두 눈에는 오직 황금에 대한 미친듯한 집착만이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흐흐흐, 산골에 처박혀 사는 무식하고 바보 같은 도깨비 녀석. 바우 그 멍청한 촌놈이 받았던 조무래기 황금과는 차원이 다르게, 내 방에는 두 배, 아니 열 배 스무 배는 더 꽉꽉 채워서 던져 주겠지? 내일 아침에 해가 떠오르면 나는 이 비좁은 마을을 넘어서 조선 팔도에서 제일가는 으뜸 갑부가 될 것이다! 바우 그놈의 기와집 따위는 코웃음 치며 모조리 사들여 버리고, 평안감사 자리도 돈으로 사서 아주 왕처럼 군림하며 살아주마! 흐흐흐!'
황 영감은 솜이불 속에서 짐승처럼 낄낄거리며 끝없는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었습니다. 자정이 넘어 밤이 깊어지자, 마당의 감나무 가지가 거세게 흔들리며 밖에서 스산하고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이내 지붕 위에서 무언가 육중한 것들이 우르르 덜그럭거리는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황 영감은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나올 것처럼 거세게 요동쳤습니다.
'왔구나!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도깨비의 황금 벼락이 떨어진다! 내 인생 최고의 날이 밝아오는구나!'
이윽고 열린 문틈과 지붕 틈새를 뚫고 하늘에서 무언가가 방 안으로 융단폭격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챙그랑거리며 부딪히는 맑은 쇳소리 대신, 찰박! 철퍼덕! 꿀럭! 퍽! 하는 기분 나쁘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축축하고 질척거리는 물컹한 덩어리들이 황 영감의 이불 위로 마구잡이로 떨어져 내렸습니다.
"아이고, 무서워라! 사람 살려! 대감님, 제발 그 끔찍하고 번쩍거리는 금괴들을 내 방에 던지지 마시오! 제발 살려주시오!"
황 영감은 바우가 무서워하는 척 연기했던 방식을 그대로 흉내 내며, 속으로는 신바람이 나서 입이 찢어지게 웃으면서 겉으로는 비명을 질러댔습니다. 그는 더 많은 황금을 끌어안기 위해 솜이불 밖으로 재빨리 손을 뻗어 방바닥에 툭 떨어진 거대한 덩어리를 덥석 움켜쥐었습니다. 그런데 순간, 황 영감은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습니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습니다. 금괴나 은괴라면 응당 돌덩이처럼 묵직하고 얼음장처럼 차가워야 할 텐데, 지금 그의 손아귀에 꽉 쥐어진 것은 역겨울 정도로 질척하고 끈적거리며, 심지어 정체를 알 수 없는 뜨끈한 열기마저 품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방 안을 순식간에 가득 채우며 코를 찌르는 이 숨 막히도록 지독하고 매스꺼운 구역질 나는 악취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황 영감은 도저히 참다못해 무거운 솜이불을 걷어차고 벌떡 일어나 떨리는 손으로 호롱불을 켰습니다. 그리고 불빛 아래 눈앞에 펼쳐진 처참한 광경에 그만 헛바람을 들이켜며 거품을 물고 그 자리에서 기절할 뻔했습니다. 안방 바닥부터 천장까지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눈이 부시도록 찬란한 금은보화나 비단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동네 뒷간이란 뒷간은 모조리 뒤져서 퍼 온 시퍼렇게 썩은 똥물과 오물들, 소외양간과 돼지우리에서 바닥까지 박박 긁어모은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썩은 배설물들, 그리고 시장 바닥 하수구에서 건져 올린 온갖 썩은 생선 대가리와 짐승의 내장, 시궁창 찌꺼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부글부글 끓고 있는 생지옥이었습니다.
"우웨에에엑! 웩! 이, 이게 도대체 무슨 지옥 같은 냄새야! 살려, 사람 살려! 똥, 똥물이다! 아이고 내 팔자야!"
방금 전까지 손에 꽉 쥐고 있던 뜨끈한 소똥 덩어리를 내팽개치며 황 영감은 미친 듯이 발악했습니다. 숨을 쉴 때마다 썩은 구린내가 폐부 깊숙이 찔러 들어와 쉴 새 없이 토악질이 터져 나왔습니다. 오물 폭탄을 뒤집어쓴 황 영감의 처절한 비명이 고요한 밤하늘을 갈기갈기 찢어놓았습니다. 밖에서 그 비참한 꼴을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던 도깨비는 담장 위에 걸터앉아 통쾌함에 겨워 배를 잡고 바닥을 구르며 집통이 떠나가라 박장대소를 터뜨렸습니다.
"하하하! 낄낄낄! 어떠냐, 이 탐욕스럽고 역겨운 영감탱이야! 가난한 사람들 눈에서 피눈물을 뽑아먹고 살더니 꼴 아주 좋다! 네놈이 그토록 끔찍하게 무서워하는 금은보화 대신, 겉과 속이 시커멓게 썩어 문드러진 네놈의 그 흉측한 뱃속에 들어찬 욕심만큼이나 더럽고 구린내 나는 똥물과 오물들로 방안을 아주 꽉꽉 채워주었다! 네놈의 그 더러운 심보에 딱 어울리는 선물이니, 어디 평생토록 그 구역질 나는 냄새나 맡으며 똥밭에서 뒹굴고 잘 살아 보거라! 하하하!"
도깨비는 쩌렁쩌렁한 호통과 조롱을 한바탕 쏟아내고는 미련 없이 뒤돌아 산으로 훌쩍 사라져 버렸습니다. 똥물과 오물 범벅이 되어 미끄러운 방바닥에서 수십 번을 자빠지고 구르며 발버둥 치던 황 영감은, 위액까지 토해내며 간신히 마당으로 기어 나왔습니다. 천금을 주고 맞춘 최고급 비단옷은 똥물이 시퍼렇게 들어 넝마가 되었고, 번듯했던 기와집 전체에 진동하는 끔찍한 악취는 도저히 물로 씻어낼 길이 없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날이 밝자마자, 황 영감의 집에서 풍겨 나오는 숨 막히는 썩은 냄새에 온 마을 사람들이 코를 틀어쥐고 몰려들어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방 안 가득 찬 똥물 속에서 밤새 허우적거리며 수치심과 공포, 그리고 모든 것을 잃었다는 절망감에 완전히 넋이 나간 황 영감은, 사람들의 멸시 어린 시선과 손가락질, 그리고 평생 지워지지 않을 그 끔찍한 악취를 도저히 견뎌낼 재간이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아무도 보지 않는 칠흑 같은 그날 밤, 짐을 챙길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초라한 봇짐 하나만 달랑 멘 채 도망치듯 마을을 빠져나가 야반도주를 해버렸고, 그 후로 조선 팔도 그 어디에서도 그 탐욕스러운 영감의 얼굴을 다시는 볼 수 없었습니다.
※ 6: 진정한 부자가 된 바우와 달밤의 연회
악독하기 그지없던 황 영감이 도깨비의 똥물 벼락을 맞고 야반도주하여 영영 자취를 감춘 뒤, 마을에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크나큰 평화와 따뜻한 웃음꽃이 찾아왔습니다. 바우는 도깨비 친구에게서 얻었던 황금과 그동안 자신이 땀 흘려 부지런히 모은 재물을 아낌없이 헐어, 황 영감이 버려두고 도망간 어마어마하게 넓은 문전옥답과 산자락의 밭들을 모두 사들여 마을의 새로운 대지주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바우는 예전의 황 영감과는 근본부터가 달랐습니다. 권력을 쥐고 사람들을 괴롭히던 지주가 아니라, 마을 사람 모두를 자신의 식구처럼 품어 안는 진정한 어른이 된 것입니다.
가을 추수가 끝나고 들판이 황금빛으로 물든 풍성한 계절, 가난한 소작농들이 한 해 동안 피땀 흘려 수확한 곡식을 바치러 마당에 들어서면, 바우는 세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이 짊어지고 온 짐지게 위에 자신의 창고에서 꺼낸 윤기가 흐르는 하얀 햅쌀 가마니를 넉넉하게 얹어 돌려보냈습니다. 황 영감 시절에 억울하게 떠안았던 밀린 고리대금 빚의 장부들은 사람들 앞에서 모조리 불태워 탕감해 주었고, 칼바람이 부는 추운 겨울이 다가오면 마을 청년들을 모아 산에서 나무를 해다가 홀로 사는 노인들과 가난한 이웃들의 아궁이에 땔감을 산더미처럼 가득 채워 주었습니다. 밥 굶고 우는 아이가 없고, 추위에 떠는 이가 없는 풍요롭고 따뜻한 마을이 되자, 마을 사람들은 바우를 향해 진정한 대지주이자 하늘이 내린 살아있는 부처님이라며 입이 마르도록 칭송하고 존경했습니다.
유난히 크고 둥근 보름달이 마을을 환하게 비추며 풍년의 기쁨이 절정에 달한 어느 맑은 가을밤, 바우의 널찍하고 반듯한 기와집 마당에는 고소한 참기름 냄새와 구수한 음식 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바우는 커다란 나무 평상 위에, 산중 도깨비가 이 세상에서 팥죽 다음으로 끔찍하게 무서워한다는, 아니 사실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여 환장한다는 야들야들하고 탱글탱글한 메밀묵을 어른 키통만 하게 산더미처럼 쑤어 쌓아놓았습니다. 그 뽀얀 메밀묵 위로는 참깨를 듬뿍 뿌리고 맛있게 푹 익은 매콤한 묵은지 김치를 척척 썰어 맛깔스럽게 얹어두었습니다. 평상 한쪽에는 은은하고 달큰한 향기를 풍기며 뽀얗게 발효된 시원한 동동주 항아리가 열 개도 넘게 줄지어 놓여 있었습니다.
이윽고 쏴아아, 하고 산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오더니 처마 끝의 풍경이 짤랑 울렸고, 기다렸다는 듯 마당 한가운데로 낯익고 커다란 덩치의 털북숭이 그림자가 사뿐히 내려앉았습니다.
"어이, 바우야! 산꼭대기에서부터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진동을 하길래 단숨에 달려왔다! 오늘따라 네가 쑨 묵 냄새가 아주 천하일품이로구나!"
우락부락하고 험악한 생김새와는 어울리지 않게, 도깨비는 입가에 군침을 한가득 고인 채 아이처럼 신이 나서 덥석 평상 앞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바우는 껄껄껄 사람 좋은 웃음을 터뜨리며 팔을 걷어붙이고, 세숫대야만큼이나 커다란 도깨비의 전용 막걸리 사발에 뽀얀 동동주를 폭포수처럼 넘치도록 가득 부어주었습니다.
"어서 와라, 내 둘도 없는 친구야! 네가 그 욕심 많고 악독한 지주 영감탱이를 똥물로 시원하게 쫓아내 준 덕분에, 우리 마을 사람들이 피눈물을 거두고 이렇게 배불리 잘살게 되지 않았니. 이 모든 은혜가 다 네 덕분이다! 오늘은 이 바우가 마을 사람들을 대표해서 아주 거하게 한턱 크게 쏘는 날이니까, 아침 해가 떠올라 수탉이 울 때까지 배가 터지도록 마음껏 마시고 신나게 놀아보자꾸나!"
도깨비는 바우가 건넨 커다란 메밀묵 한 모를 김치로 싸서 통째로 입안에 털어 넣으며,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행복한 함박웃음을 지었습니다.
"크으, 쫀득하고 매콤한 게 역시 우리 바우가 쑤어주는 묵이 조선 팔도, 아니 온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니까! 아따, 술맛도 기가 막힌다! 그나저나 그 뚱뚱하고 욕심 많던 영감탱이가 똥물 폭탄을 뒤집어쓰고 살려달라며 구역질을 해대며 도망가던 꼴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십 년 묵은 체증이 다 싹 내려가는 것 같아. 하하하! 어리석은 인간의 욕심이 부른 당연한 결과지!"
두 사람은 달빛 아래서 서로의 커다란 잔을 쨍 하고 부딪치며, 고즈넉한 밤하늘이 떠나가라 호탕하고 시원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겉모습은 너무나도 다른 연약한 인간과 괴력의 도깨비였지만, 두 사람은 어느새 모든 경계를 넘어 서로의 속마음을 깊이 알아주고 기상천외한 잔꾀와 유머를 공유하며 의리를 지키는, 세상에 둘도 없는 지음(知音)이자 막역지교의 친구가 된 것입니다.
은은하고 부드러운 달빛이 축복처럼 비추는 넉넉한 기와집 마당에는,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제일 무섭고 경계해야 할 것은 차가운 황금도, 시뻘건 팥죽도 아닌, 끝을 모르고 타오르는 사람 뱃속의 시커먼 '탐욕'이라는 참된 이치를 깨달은 지혜로운 바우와 순수한 도깨비의 따뜻한 정담이 밤이 깊도록 이어졌습니다. 꾀돌이 바우는 변함없이 넉넉하고 따뜻한 인심으로 사람들을 보살폈고, 산중 도깨비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을 지켜주는 든든한 수호신이 되어주었으니,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산골 마을의 풍요로운 행복은 세세손손 아주 오래오래 기분 좋게 계속되었답니다.
유튜브 엔딩 멘트
"욕심쟁이 지주의 똥물 벼락 결말, 정말 속 시원하지 않나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귀신도 도깨비도 아닌, 바로 사람의 끝없는 '탐욕'이라는 걸 가르쳐주는 유쾌한 옛이야기였습니다. 바우와 도깨비의 우정처럼 여러분의 하루도 따뜻하고 넉넉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이야기가 즐거우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꼭 부탁드려요! 다음 시간에도 더 오싹하고 재미있는 청구야담으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