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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을 구한 신부 — 호랑이 앞에서 빛난 사랑 『청구야담』
혼례를 올린 첫날밤, 호랑이에 물려간 신랑을 목숨 걸고 구해낸 용감한 신부의 이야기로, 부부의 사랑이 맹수마저 물리치는 감동적인 순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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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일화도입형 / 291자)
청구야담 한 권을 펼쳐 보면 가운데 한 대목에 강원도 영월의 새색시 이야기가 짤막하게 적혀 있습니다. 혼례 첫날밤 호랑이에게 물려간 신랑을 두고, 활옷도 채 벗지 못한 새색시가 등불 하나와 활 한 자루를 들고 그 길로 산속으로 뛰어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대부 양반가의 처녀가 어찌 한밤중 호랑이 굴까지 찾아 들어갔으며, 그 끝에서 어떻게 신랑을 살려 데리고 내려왔는지요. 부부의 정이 사람의 두려움을 어디까지 이길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영월 산골에 오래도록 전해 내려온 이 한 편의 사연을 지금부터 들려드리겠습니다.
※ 1: 영월의 양반가 혼사
조선 숙종 무렵, 강원도 영월 깊은 산골 마을에 한 양반가가 있었다. 가세가 그리 넉넉하지는 않았으나 대대로 글 읽는 집안으로 마을에서는 제법 이름이 알려진 김씨 댁이었다. 그 집의 외아들 이름은 홍규(弘奎)라 하였으니, 나이는 갓 스물을 넘긴 청년이었다.
그해 가을, 홍규의 혼사가 정해졌다. 신붓감은 같은 영월 땅 옆 골짜기에 사는 박씨 댁의 큰딸 매월(梅月)이었다. 매월은 어릴 적부터 몸이 야무지고 손끝이 매워 박씨 댁 안방마님이 가장 아끼던 딸이었다. 더구나 활쏘기와 말타기를 좋아해 사내아이들 사이에서도 기세가 꺾이지 않던 처녀로 알려져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매월이 양반가 처녀답지 않게 활을 쥔다 하여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박씨 댁 어른들은 이를 나무라지 않았다.
"우리 매월이는 사내로 태어나지 못한 게 한일 뿐이지, 그 기개와 손재간은 이 산골에서 따를 자가 없네."
『청구야담』의 옛 기록에 이르기를, 영월 산골은 호랑이가 자주 나타나는 험한 땅이라 부녀자들도 활 한 자루쯤 다룰 줄 아는 것이 흉이 아니었다 하였다. 매월이 활을 잡은 것도 본디 그 산자락의 인심이 그러하였기 때문이다.
혼례 날이 잡힌 것은 늦가을 어느 청명한 날이었다. 박씨 댁 마당에는 멀리서 온 친척들과 마을 어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신부는 연지곤지를 곱게 찍고 활옷을 입은 채 가만히 안방에 앉아 있었다. 신랑 홍규는 사모관대 차림으로 말을 타고 박씨 댁 마당으로 들어섰다. 두 사람이 서로의 얼굴을 처음 마주한 것은 그날 마당 한가운데 차려진 초례상 앞에서였다.
홍규는 매월을 한번 슬쩍 본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매월은 듣던 대로 야무진 얼굴이었으나, 그 가운데 어딘가 단단하고 맑은 기운이 어려 있어 양반가 처녀의 얌전함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듣기로는 활을 쏘는 처녀라 하여 사내처럼 사납지 않을까 걱정하였는데, 이리 보니 단아하고 야무진 얼굴이 오히려 마음에 든다. 부부가 되어 한평생 함께할 사람이 이런 사람이라면 다행이로구나.'
매월도 가만히 고개를 들어 신랑 홍규의 얼굴을 한번 살폈다. 키가 훤칠하고 눈매가 선한 청년이었다.
'…어머님께서 이르시기를 글공부에 매진하는 점잖은 분이라 하셨는데, 과연 그러한 듯하구나. 평생 모실 분이니 부디 이 사람과 한 가정을 잘 이루어 가야 할 것이다.'
혼례는 큰 차질 없이 끝이 났다. 마당 한쪽에서는 풍악이 울렸고 마을 어른들은 막걸리를 나누며 신랑 신부를 축복했다. 박씨 댁 안방마님은 딸의 손을 한 번 더 꼭 쥐어 주며 눈물을 글썽였다.
"매월아, 시댁에 가거든 시부모님 잘 모시고, 신랑 잘 받들거라. 다만 한 가지, 네가 어릴 적부터 익힌 그 활 솜씨와 담대함은 평생 잊지 말거라. 사람의 인생은 어디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니, 너의 그 기개가 너를 살릴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매월은 어머니의 그 말씀을 가만히 가슴에 새겼다. 그러나 그날만큼은 어머니의 그 말이 그저 평범한 당부 정도로만 들렸다. 한 가지 그녀가 미처 알지 못한 것은, 그 당부가 채 하루도 가기 전에 자기 인생을 송두리째 가르게 될 가르침이 되리라는 사실이었다.
※ 2: 신방의 첫 약조와 변고
신랑 홍규가 신부 매월을 데리고 김씨 댁으로 돌아온 것은 해가 막 서산에 걸칠 무렵이었다. 김씨 댁 마당은 손님을 맞느라 등불이 환히 켜져 있었고, 시부모님과 친척들이 두 사람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잔치 음식이 한 차례 돌고 손님들이 하나둘 자리를 뜬 후, 마당에는 신방을 위한 등잔불 하나만 곱게 켜졌다.
매월은 시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신방으로 들어갔다. 좁은 방 안에는 새로 지은 이부자리가 곱게 펴져 있었고, 한쪽에는 작은 호롱불이 잔잔히 흔들리고 있었다. 매월은 다소곳이 자리에 앉아 신랑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한편으로 묘하게 마음이 무거웠다. 어머니께서 마지막으로 들려주신 그 한 말씀이 어쩐 일인지 자꾸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었다.
'…활 솜씨와 담대함을 평생 잊지 말라 하셨지. 어머님께서 어찌하여 오늘따라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신부가 시댁에 들어가는 첫날 어머니 마음이 그저 애틋하셨던 게지.'
매월은 그 생각을 떨치며 천천히 자세를 바로 하였다.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신랑 홍규가 사모를 벗고 한 손에 술 한 병을 든 채 신방 문을 열었다. 두 사람은 그제야 단둘이 마주 앉게 되었다.
"…먼 길 오시느라 고단하셨겠소. 한 잔 권하리다."
홍규는 떨리는 손으로 잔에 술을 따랐다. 매월은 다소곳이 두 손으로 잔을 받아 입에 살짝 대었다.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으나 그 침묵은 결코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안에 새로 시작되는 한 부부의 정이 가만히 차오르고 있었다.
홍규는 매월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매월의 손이 작고 따스했다. 홍규는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매월이라 하셨지요. 매화 매(梅) 자에 달 월(月) 자라. 참으로 고운 이름이외다. 평생 한 사람만 보고 살자는 약조를 이 자리에서 드리리다."
매월은 가만히 두 눈을 들어 신랑을 바라보았다. 두 볼이 발갛게 물들었다.
"…서방님의 그 말씀, 평생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저도 한 가지 약조를 드리리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서방님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약조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며 가만히 미소 지었다. 그러나 그 약조가 채 한 시진도 지나지 않아 그토록 무서운 시험에 들리라고는 그 누구도 짐작하지 못하였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마당 쪽에서 무언가 묵직한 것이 담장을 넘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아주 짧은 순간 쾅, 하고 신방 문이 안쪽으로 부서지듯 열리는 것이었다. 매월은 본능적으로 호롱불을 손에 쥐어 올렸다. 호롱불의 흔들리는 빛 아래로 거대한 형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누런 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선명한 거대한 산짐승이었다. 두 눈에서는 푸른 인광(燐光)이 번뜩였고, 입에서는 더운 김이 뿜어져 나왔다. 호랑이였다. 그것도 영월 산자락에서 사람을 여럿 잡아갔다는 늙은 백수(百獸)의 왕이었다.
"이게 무슨…!"
홍규가 비명을 지를 사이도 없었다. 호랑이는 한 번의 도약으로 신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더니 거대한 앞발로 홍규의 옆구리를 후려쳐 그를 자기 입에 단단히 물어 올렸다. 매월의 눈앞에서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여보! 서방님!"
매월의 비명이 신방을 가득 채웠다. 호랑이는 신랑을 입에 문 채 그대로 몸을 돌려 마당 담장을 한 번에 뛰어넘어 산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매월의 손에 들린 호롱불이 떨리며 신방 바닥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 3: 활을 메고 산으로
매월은 한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러나 그 자리에 주저앉을 시간조차 없었다. 어머니의 마지막 그 한 말씀이 머릿속에 번개처럼 떠올랐기 때문이다.
'…담대함을 평생 잊지 말거라. 너의 그 기개가 너를 살릴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매월은 활옷을 거칠게 벗어 던졌다. 두꺼운 활옷을 입고는 산을 뛸 수 없었다. 속저고리 차림으로 신방에 걸어 두었던 신랑의 여벌 옷을 잡아채어 위에 걸쳤다. 그러고는 시댁 사랑채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아버님! 어머님! 빨리 일어나 보십시오! 호랑이가, 호랑이가 서방님을 물고 갔습니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잠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이 변고 소식을 들었다. 시어머니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통곡하기 시작했고, 시아버지는 두 다리에 힘이 풀려 마루 끝에 겨우 매달렸다.
"아아, 우리 외아들이… 우리 홍규가… 첫날밤에 호랑이 입에 들어가다니, 이 무슨 변고란 말이냐…"
집안은 일순간에 통곡 소리로 가득 찼다. 마을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모여들었으나 누구 하나 산속으로 들어가 신랑을 찾자고 나서는 이가 없었다. 영월 산자락의 그 늙은 호랑이를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월은 시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다급히 청하였다.
"아버님, 저에게 활 한 자루와 화살통을 빌려 주십시오. 그리고 등불 하나도 함께 빌려 주십시오. 제가 직접 산으로 들어가 서방님을 찾아 오겠습니다."
시아버지는 눈물에 흐려진 두 눈을 떴다. 갓 시집 온 새색시가 산속으로 들어가겠다는 말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가야, 너 무슨 말을 하는 게냐. 이 야심한 밤에 산속에 들어간들 호랑이를 어찌 당해낸단 말이냐. 너마저 잃을 수는 없다. 그저 날이 밝거든 마을 장정들을 모아 시신이라도 찾아 오자꾸나."
"아버님, 저는 어릴 적부터 활을 잡아 온 사람입니다. 산짐승의 발자국도 더러 좇아 본 적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서방님께서 아직 살아 계실지도 모릅니다. 호랑이가 사람을 무는 즉시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굴까지 끌고 가서 잡는 법이라 들었습니다. 늦기 전에 가야 합니다."
시어머니가 매월의 두 손을 와락 잡았다.
"…아가야, 정녕 갈 수 있겠느냐. 호랑이 굴이 어디인 줄 알고 가겠다는 게냐."
"어머님, 호랑이가 담장을 넘어 산으로 들어간 방향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영월 산자락의 호랑이 굴이라면 마을 노인들도 그 자리를 대강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가는 길을 어림잡을 수 있습니다."
매월의 두 눈에는 두려움 대신 단단한 빛이 어려 있었다. 시아버지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사랑채 벽에 걸어 두었던 활과 화살통을 내려 매월에게 건넸다. 매월은 활을 받아 한 번 시위를 당겨 보았다. 손에 익은 무게였다. 화살 다섯 대가 화살통에 단단히 꽂혀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등에 걸쳐 메었다.
"…아버님, 어머님. 다녀오겠습니다. 살아서 서방님과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매월은 등불 하나를 손에 들고 마당을 가로질렀다. 시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며 마당 끝까지 따라 나왔다.
"아가야, 부디 무사하거라. 우리 집안의 명운이 너에게 달렸다."
매월은 한 번 깊이 절을 올린 후 곧장 산자락으로 향했다. 호랑이가 사라진 방향이 그쪽이었다. 등 뒤에서는 시어머니의 통곡 소리가 점점 멀어졌고, 앞으로는 검은 산이 거대한 짐승의 등처럼 길게 누워 있었다. 매월은 등불을 단단히 쥐고 첫발을 내디뎠다.
※ 4: 호랑이 굴 앞의 한 발
산자락 초입은 마을 횃불의 빛이 아직 닿는 거리였다. 그러나 매월이 한 굽이를 돌아 깊은 골짜기로 들어서자 그 빛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사방이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매월의 손에 든 등불 하나만이 발 앞 너댓 걸음의 길을 겨우 비춰 줄 따름이었다.
매월은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걸음을 옮겼다. 호랑이가 사람을 입에 물고 지나간 자리에는 분명 흔적이 남기 마련이었다. 매월은 등불을 낮게 들어 길섶을 살폈다. 과연 풀잎이 한쪽으로 길게 눕혀져 있고, 군데군데 핏방울이 검붉게 떨어져 있었다.
'…피가 아직 마르지 않았구나. 서방님이 여기 이 길로 끌려가신 게다. 호랑이의 이빨이 깊이 박혔다면 이 정도 피는 흘리실 게야. 그러나 핏자국이 끊어지지 않은 것을 보니 아직 살아 계신 게 분명하다.'
매월은 그 핏자국을 따라 천천히 산속 깊이 들어갔다. 부엉이가 길게 울고, 어디선가 산짐승이 풀숲을 가르며 달아나는 소리가 들렸다. 매월은 그때마다 활을 단단히 쥐고 한 번씩 멈춰 섰다. 가슴이 두근거렸으나 뒤돌아갈 생각은 한순간도 없었다.
한 시진쯤 산을 오르자 핏자국이 한 바위 굴 입구 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매월은 등불을 입으로 가만히 불어 끄고는 그 자리에 엎드렸다. 굴 안에서 무언가 묵직한 짐승의 숨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매월은 살금살금 굴 입구로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았다.
거대한 호랑이가 굴 안쪽에서 등을 둥글게 말고 누워 있었다. 그 옆에 신랑 홍규가 사모관대 차림 그대로 흙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옷이 군데군데 찢어졌고 어깨와 옆구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으나, 자세히 보니 가슴이 가늘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살아 있었던 것이다.
'…살아 계시구나. 살아 계셔.'
매월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그러나 울 시간이 없었다. 매월은 등을 돌려 굴 입구에서 십여 걸음 떨어진 큰 바위 뒤에 자리를 잡았다. 활을 꺼내 시위에 화살 한 대를 가만히 메겼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어릴 적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시던 그 자세 그대로였다.
'…호랑이의 두 눈 사이, 그 한 점만 노리면 된다. 한 발에 끝내야 한다. 한 발에 실수하면 서방님까지 잃는다.'
매월은 깊이 숨을 들이쉰 후, 굴 입구를 향해 작은 돌멩이 하나를 던졌다. 돌이 굴 입구 바위에 부딪쳐 톡, 하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호랑이가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거대한 짐승의 두 눈이 어둠 속에서 푸르게 빛나며 굴 입구 쪽을 향했다. 그 두 눈 사이가 매월의 시야에 정확히 들어왔다.
매월은 그 짧은 순간 시위를 한껏 당겼다. 활대가 활 줌을 누르며 팽팽히 울었다. 매월은 마지막 숨을 천천히 내쉬며 손가락을 놓았다. 휙 — 화살이 어둠을 가르며 날았다.
쾅, 하는 둔탁한 소리가 굴 안에서 울렸다. 호랑이의 거대한 몸이 한 번 크게 들썩이더니, 곧 풀썩 무너져 내렸다. 화살은 정확히 그 두 눈 사이 미간 한복판에 깊이 박혀 있었다. 영월 산자락에서 사람을 여럿 잡아갔다는 그 늙은 호랑이가 새색시 매월의 한 발에 그 자리에 무너진 것이었다.
매월은 활을 떨어뜨리고 굴 안으로 한달음에 뛰어들었다. 신랑 홍규의 곁에 무릎을 꿇고 그를 가만히 품에 끌어안았다. 신랑의 얼굴은 창백했으나 숨은 여전히 고르게 이어지고 있었다. 매월의 두 눈에서 그제야 굵은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 5: 신랑을 업고 내려오는 새벽길
매월은 신랑의 얼굴을 가만히 어루만지며 그를 깨워 보았다. 신랑은 깊은 혼절에 빠져 있었으나 한 번 가는 신음 소리를 흘렸다. 매월은 그 소리에 한 번 더 가슴이 미어졌다.
"…서방님, 정신 차리십시오. 이 매월이가 왔습니다. 어떻게든 산을 내려갈 터이니 부디 한 번만 더 견뎌 주십시오."
매월은 신랑의 옆구리와 어깨에서 흐르는 피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입고 있던 신랑의 여벌 옷자락을 칼로 자르듯 길게 찢어 상처 자리를 단단히 묶었다. 다행히 호랑이의 이빨이 깊이 박혔으나 큰 핏줄을 비껴간 듯 출혈이 점점 줄어들었다.
매월은 신랑을 등에 업기 위해 자세를 낮추었다. 그러나 다 자란 사내의 몸을 한 새색시가 등에 지고 산을 내려간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매월은 두 번이나 휘청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그러다가 세 번째에야 겨우 신랑의 두 팔을 자기 어깨에 단단히 둘러매고 일어섰다.
'…내려가야 한다. 살아서 내려가야 한다. 어머님이 이르신 그 담대함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위해 가르쳐 주신 것이로구나.'
매월은 한 걸음, 또 한 걸음 굴 밖으로 나섰다. 등불은 불을 다시 붙일 새가 없어 그저 가슴께에 매달아 두고, 두 손은 신랑의 두 다리를 단단히 잡고 있었다. 다행히 동이 트기 시작한 새벽하늘이 산길을 흐릿하게 비춰 주었다.
산을 내려가는 길은 올라올 때보다 두 배는 더 멀게 느껴졌다. 매월의 다리는 이미 천 근처럼 무거웠고, 등에 진 신랑의 무게에 어깨가 한 번씩 빠질 듯 아팠다. 그러나 매월은 한 번도 쉴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 번 주저앉으면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청구야담』에 전하기를, 영월 산자락은 본디 고려 적부터 사람과 호랑이가 함께 살아 온 땅이라 산짐승의 기세가 어느 곳보다 셌다 하였다. 그러한 산을 한 새색시가 신랑을 등에 업고 두 시진 가까이 걸어 내려왔다는 일은, 그 야담의 기록자도 한 줄 덧붙여 '하늘이 도왔거나 이 사람의 정성이 산신을 움직였거나'라 적었을 정도였다.
산허리쯤 내려왔을 무렵이었다. 신랑이 등 위에서 작은 신음을 내며 가만히 눈을 떴다. 매월은 그 자리에 천천히 무릎을 꿇어 신랑을 풀밭 위에 부드럽게 내려놓았다.
"서방님, 정신이 드십니까. 이 매월이가 보이십니까."
신랑은 흐릿한 두 눈으로 한참 매월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더니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매월이… 매월이… 그대가 어찌 산속에…"
"…서방님, 호랑이는 제가 잡았습니다. 한 발에 그 짐승을 쓰러뜨렸으니 더는 두려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제 마을이 코앞입니다. 조금만 더 견디시면 살아서 댁에 도착하실 수 있습니다."
신랑은 한참 동안 말없이 매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그 까만 눈에서 굵은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내가 못난 사내요. 새색시를 신방에 두고 호랑이에 물려간 것도 모자라, 이렇게 그대 등에 업혀 산을 내려오게 만들다니. 한평생 그대에게 갚아도 갚지 못할 빚을 졌소이다."
"…서방님, 그런 말씀 마십시오. 부부의 인연이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한 사람이 위태로울 때 다른 한 사람이 일어서서 그를 지키는 것 말입니다. 오늘 제가 했던 일을 서방님께서도 살아가면서 한 번은 저를 위해 해 주실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우리는 이미 갚은 것이지요."
신랑은 매월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두 사람은 새벽안개 자욱한 산길에서 한참을 그렇게 마주 앉아 있었다. 멀리서 첫 닭이 길게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 6: 마을의 환호와 시부모의 절
매월은 신랑을 다시 등에 업고 산을 내려갔다. 잠시 정신이 돌아왔던 신랑은 다시 혼절에 빠졌으나, 매월의 발걸음에는 어쩐 일인지 다시 힘이 솟아 있었다. 신랑이 살아 있다는 한 가지 사실이 그녀의 모든 피로를 잠시나마 잊게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산자락 끝이 가까워졌을 무렵이었다. 마을 어귀 쪽에서 횃불 여러 개가 어른거리는 것이 보였다. 마을 사람들이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김씨 댁 마당에 모여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매월의 모습이 산자락에 어슴푸레 비치자 누군가 횃불을 높이 들며 큰 소리로 외쳤다.
"매월이다! 매월이가 내려온다! 그것도 신랑을 업고 내려온다!"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산자락 쪽으로 뛰어왔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도 머릿수건을 풀어헤친 채 그 무리에 섞여 한달음에 달려왔다. 매월이 마지막 비탈을 다 내려서자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두 손을 와락 잡고 그 자리에 함께 주저앉았다.
"…아가야! 아가야! 정녕 살아 돌아왔구나! 우리 홍규도 살아 있단 말이냐!"
"예, 어머님. 서방님은 살아 계십니다. 다만 호랑이의 이빨에 어깨와 옆구리를 물리셨으니, 어서 의원을 부르셔야 합니다."
마을 장정들이 신랑을 받아 들어 김씨 댁 마당으로 옮겼다. 시아버지는 매월의 두 손을 잡고 한참을 흐느꼈다.
"…아가야. 내 평생 며느리 본 일은 처음이다만, 사람이 사람을 이리 살릴 수 있는 줄은 정녕 몰랐다. 우리 집안이 너에게 무엇으로 갚을지 모르겠구나."
"아버님, 갚으실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부부의 인연이 그러한 것이고, 자식의 도리가 그러한 것이지요. 다만 한 가지만 부탁드리리다. 제가 활을 잡고 산에 다녀온 일을 부끄러이 여기지 말아 주십시오. 양반가의 며느리답지 않은 일이라 하실 분도 계실 줄 압니다."
시아버지는 매월의 손을 한 번 더 꼭 쥐었다.
"…아가야, 그 무슨 말이냐. 오늘 너의 그 활 솜씨와 담대함이 우리 집안을 살렸으니, 이는 네가 평생 양반가의 며느리로 모자람이 없다는 증표가 아니겠느냐. 내 오늘부터 너를 그저 며느리로 보지 않고 우리 집안의 은인으로 받들겠다."
말을 마친 시아버지는 새벽 마당에서 며느리에게 깊이 절을 올렸다. 시어머니도 곁에서 함께 절을 올렸다. 새벽안개에 둘러싸인 김씨 댁 마당에서 시부모가 갓 들어온 며느리에게 절을 올리는 그 광경에 마을 사람들도 자기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았다. 매월은 황급히 마주 절을 올렸다. 두 볼이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아버님, 어머님. 이러시면 제가 어찌 감당하옵니까. 부디 일어나 주십시오."
마을에서 가장 솜씨 좋은 의원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신랑 홍규는 사랑채 깊숙한 방에 눕혀졌다. 의원은 신랑의 상처를 한참 동안 살피더니 시아버지를 향해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어르신, 천행입니다. 호랑이의 이빨이 큰 핏줄을 비껴간 데다, 누군가 상처를 곧바로 단단히 동여 주신 덕분에 출혈이 거의 멈추었습니다. 약 한 달이면 거동에 큰 무리가 없을 것이옵고, 두 달이면 평소의 기력을 모두 회복하실 것입니다."
마당에 있던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누군가는 두 손을 모아 하늘에 절을 올렸고, 누군가는 매월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눈물을 글썽였다.
"매월이, 자네야말로 김씨 댁의 진정한 안주인일세. 우리 영월 땅에 이런 신부가 시집 온 것은 백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로세."
해가 산머리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김씨 댁 마당의 등불은 어느새 모두 꺼져 있었다.
※ 7: 백년해로의 약조
한 달이 지났다. 의원의 말대로 신랑 홍규는 점차 기력을 되찾았다. 어깨와 옆구리의 상처도 깊이 아물어 가고 있었다. 그동안 매월은 시어머니와 함께 손수 약을 달였고, 새벽이면 신랑의 머리맡에서 그가 깰 때까지 부채질을 멈추지 않았다. 시댁 어른들도 마을 사람들도 그 정성을 보고 한 번씩 혀를 내둘렀다.
어느 밝은 봄날 아침이었다. 신랑 홍규가 처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사랑채 마루까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매월이 그 곁에서 가만히 부축했다. 마당에 햇살이 따스하게 비쳤다. 신랑은 한참 동안 그 햇살을 두 눈으로 가만히 바라보더니, 매월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매월이, 한 가지 약조를 다시 드리고 싶소. 신방에서 드린 그 약조가 너무 어렸기 때문이오."
"…서방님, 그 약조는 이미 평생 가슴에 새겼습니다. 무슨 약조를 또 더하시려는지요."
신랑은 매월의 두 손을 가만히 잡았다. 그러더니 마당의 봄 햇살을 한 번 더 깊이 들이마시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신방에서 드린 약조는 평생 한 사람만 보고 살자는 것이었소. 그러나 그것은 한 사내의 막연한 다짐에 지나지 않았소이다. 오늘 다시 드리는 약조는 이러하오. 그대가 내게 주신 그 한평생을, 내 어떤 일이 있어도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약조이외다. 그대가 산에서 나를 등에 업고 내려온 그 두 시진의 무게를, 내 평생 단 하루도 잊지 않겠다는 약조이외다."
매월의 두 눈에 봄 햇살이 어른거렸다. 두 볼이 다시 발갛게 물들었다.
"…서방님, 그 약조 평생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만 더해 주십시오. 우리가 자라 자식을 보거든, 그 아이에게 오늘 이 일을 두고두고 들려주는 부부가 되자는 것입니다. 사람의 정이 사람의 두려움보다 강하다는 것, 그 한 가지만 우리 자식들에게 가르치며 살자는 것입니다."
신랑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그 봄 햇살 아래에서 한참을 그렇게 마주 앉아 있었다.
세월이 흘러 두 사람 사이에 아들 셋이 태어났다. 첫째 아들 이름은 호산(虎山)이라 지었다. 호랑이가 나타났던 그 산을 평생 잊지 말자는 뜻이었다. 둘째 아들은 매은(梅恩)이라, 매월의 은혜를 잊지 말자는 뜻이었다. 셋째 아들은 홍복(弘福)이라, 두 사람이 받은 큰 복을 누리며 살자는 뜻이었다.
매월의 활 솜씨와 그날 새벽의 일은 영월 산골에 두고두고 전해졌다. 마을의 어머니들은 시집 가는 딸에게 매월의 이야기를 한 번씩 들려주며 가르쳤다.
"부부의 정이라는 것이 본디 그러하다. 한 사람이 위태로울 때 다른 한 사람이 자기 목숨도 잊고 일어서는 것, 그것이 부부의 도리라더라. 우리 영월의 매월이가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갔느니라."
『청구야담』의 기록자도 이 사연을 적으면서 마지막 한 줄에 이렇게 덧붙였다 한다. 사람의 정이 산짐승의 어금니보다 단단하고, 부부의 약조가 한밤중 호랑이 굴보다 무서운 어둠도 비추는 등불이 되더라, 라는 한 줄이었다.
매월과 홍규는 백년해로하였다. 두 사람은 자식들이 다 자라 가정을 이룬 후에도 한 번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자주 두 사람을 보러 오면, 매월은 가끔 옷장 깊숙이 보관해 둔 그 활 한 자루를 꺼내 보여 주곤 했다. 그 활은 신랑을 살린 그 활이자, 두 사람의 정이 시작된 자리를 영원히 가리키는 한 자루의 기념물이었다.
봄 햇살이 김씨 댁 마당에 따스하게 비치는 어느 날, 매월은 그 활을 가만히 어루만지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활아, 너도 나처럼 한평생 누군가를 지키고 살았구나. 그 한평생이 참 다행이고 따스했단다.'
유튜브 엔딩멘트 (예고형 / 267자)
오늘 들려드린 영월 매월의 이야기는 이렇게 따스한 백년해로로 매듭지어졌습니다. 다음 한 편으로는 청구야담에 함께 전해지는 또 한 가지 부부의 사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밤중 폭우 속에 길을 잃은 남편을 찾아 험한 강물을 세 번이나 건넌 한 충청도 아낙의 이야기인데, 매월의 활 솜씨에 못지않은 한 여인의 곡진한 정성이 담긴 사연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그 강물 한가운데서 부부의 인연이 어떻게 다시 이어졌는지를 함께 만나 보시지요. 다음 천사야담 한 편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썸네일 프롬프트 (영문 / 16:9 / 실사 / 광각·낮·유쾌 / no text)
A photorealistic cinematic 16:9 ultra-wide-angle bright daylight shot of a sunlit Joseon Dynasty Korean countryside courtyard in spring, vibrant blue sky with soft white clouds. In the foreground, a young Joseon Korean noble bride in her early twenties stands proudly holding a traditional Korean wooden bow upright in one hand, wearing a beautifully embroidered red and green hwarot wedding robe with golden ornaments, her hair in a high traditional bridal updo with a binyeo hairpin, a confident warm smile on her glowing face. Beside her stands her young Korean noble groom in a sky-blue silk dopo robe and traditional sa-mo black gauze hat, looking at her with deep loving admiration and a gentle joyful smile, one of his hands resting tenderly on hers. Behind them, an elderly Joseon couple — the parents-in-law in dignified hanbok — bow respectfully toward the bride with grateful smiling faces. Mountain ridges of Yeongwol gently roll in the bright spring background, cherry blossom petals drifting through the air, an old Korean thatched-roof house and a wooden gate visible behind them. Warm golden midday sunlight, joyful uplifting heroic atmosphere, hyperrealistic textures on silk hanbok and embroidery, shallow depth of field, no text, no logos, no watermar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