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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비한 샘물과 도깨비의 마지막 선물!

    도깨비가 지켜준 샘물, 결국 마을 사람 모두 건강해지다: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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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트로:

    "세상에나, 마시면 백병이 낫고 굽은 허리까지 펴진다는 신비한 약수샘을 한 바가지에 쌀 한 되씩이나 받고 파는 지독한 구두쇠가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강원도 깊은 산골 마을에서 벌어진 유쾌하고도 가슴 뭉클한 소동극입니다. 하늘이 내린 귀한 샘물을 독차지하려는 얄미운 욕심쟁이 최 진사와, 어느 날 밤 우당탕탕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나타나 샘물을 지켜낸 엉뚱하고도 정 많은 도깨비의 한판 승부가 펼쳐집니다. 배꼽 잡는 웃음 뒤에 숨겨진 도깨비의 눈물겨운 사연까지,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 1: 신비한 샘물의 전설

    옛날 옛적 조선시대에 강원도 깊은 두메산골에 구름도 쉬어 간다는 작은 마을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마을이 얼마나 외진 곳이냐 하면, 장을 보러 읍내에 나가려면 험한 고개를 세 개나 넘어야 했고, 의원이라도 찾아가려면 짚신이 다 닳도록 하루 종일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첩첩산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산골 마을 사람들이 큰 병치레 없이 웃으며 살아갈 수 있었던 데에는 특별한 비밀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마을 어귀의 수백 년 된 느티나무 아래에서 사시사철 맑고 차갑게 솟아오르는 작은 샘물 때문이었습니다.

    이 샘물은 평범한 우물이 아니었습니다. 물빛이 어찌나 맑은지 바닥의 조약돌이 선명하게 보였고, 한 모금 들이켜면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우면서도 끝맛은 꿀을 탄 듯 달콤했습니다. 게다가 이 물을 마시면 온갖 잔병치레가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배를 움켜쥐며 구르던 사람도 이 샘물 한 바가지를 마시면 배앓이가 가라앉았고, 밤새 열이 올라 불덩이 같던 아이에게 이 물을 먹이면 이튿날 아침에는 멀쩡하게 마당을 뛰어다녔습니다. 심지어 노인들의 해수 기침이나 허리 통증도 이 물을 꾸준히 마시면 차도가 있었으니, 마을 사람들은 이 샘을 하늘이 내린 보물이라 여기며 약수샘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느 따스한 봄날이었습니다. 마을 어귀의 초가집에 사는 효자 막동이네 집에 큰 우환이 닥쳤습니다. 평생 홀로 막동이를 키우시느라 고생만 하신 예순 넘은 노모가 그만 자리보전을 하고 쓰러지신 것이었습니다. 봄나물을 캐러 다녀오신 뒤로 갑자기 기운이 빠지시더니, 사흘 내내 미음 한 숟가락도 넘기지 못하시고 가쁜 숨만 몰아쉬셨습니다.

    '아이고, 어쩌면 좋단 말인가. 읍내 의원님을 모셔 오기에는 어머니 기력이 너무 쇠하셔서 그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찌하나. 그래, 우리 마을의 약수샘이 있지 않은가!'

    마음이 타들어 가던 막동이는 지체할 새도 없이 어머니를 등에 업고 느티나무 아래 약수샘으로 내달렸습니다. 거친 산길을 내려오면서 발이 꼬여 넘어질 뻔하면서도 정신없이 뛰었습니다. 마침내 샘가에 도착한 막동이는 느티나무 그늘의 바위 위에 어머니를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정갈한 바가지로 갓 솟아오른 샘물을 가득 떠서 어머니의 메마른 입술에 가져다 대었습니다.

    "어머니, 정신 좀 차려 보세요. 우리 마을 약수샘 물입니다. 제발 한 모금만이라도 드셔 보세요. 네?"

    막동이의 애타는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아들의 효심이 하늘에 닿았는지, 미동도 없던 어머니가 힘겹게 눈꺼풀을 떴습니다. 그리고는 막동이가 기울여 주는 바가지에서 흐르는 물줄기를 한 모금, 또 한 모금 천천히 넘기셨습니다. 시원한 약수가 목을 타고 넘어가자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창백하던 어머니의 얼굴에 조금씩 화색이 돌기 시작하더니, 거칠던 숨소리도 한결 편안해진 것이었습니다.

    "아가, 고맙구나. 속이 타들어 가는 것 같더니만, 이 물이 들어가니 가슴이 뻥 뚫리는 듯이 시원하구나. 물맛이 참으로 달고 좋네."

    가느다란 어머니의 말씀에 막동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마을 사람들이 막돌이라 부르던 막동이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약수샘을 찾았습니다. 새벽닭이 울기도 전에 일어나 첫물을 길어다 어머니께 올렸고, 저녁에 밭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도 물동이를 이고 와 대접했습니다. 아들의 지극정성과 샘물의 기운이 더해지니, 닷새가 지나자 어머니는 죽을 잡수시고 일어나 앉으셨고, 보름이 지나자 텃밭의 잡초까지 뽑으실 만큼 건강을 되찾으셨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마을 사람들은 약수샘 주위에 모여 감탄을 쏟아냈습니다.

    "세상에나, 다 돌아가시던 막돌이네 어멈이 저리 정정하게 걸어 다니는 걸 보니, 우리 약수샘은 하늘이 내려주신 선약이 틀림없구먼유!"

    "아, 그럼요! 우리 집 영감님도 지난겨울에 무릎이 시려서 꼼짝을 못 하더니, 저 물을 마시고 나서는 요즘 나무하러 뒷산을 날아다닌다니까요!"

    마을 사람들은 샘물이 고마워서 당번을 정해 주변의 낙엽을 쓸고, 산짐승이 물을 더럽히지 못하도록 나지막한 나무 울타리도 새로 둘러주었습니다. 먼저 온 사람이 물을 뜨면 뒤에 온 사람은 웃으며 기다려 주는 인정이 샘터에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온 마을이 화목하게 샘물을 나누어 마시는 꼴을 배가 아파서 못 봐주겠다는 사람이 하나 나타났으니, 바로 마을에서 가장 큰 기와집에 사는 부자 최 진사였습니다. 최 진사는 마을의 기름진 논밭 절반을 가지고 있고 곳간마다 쌀가마니가 가득 쌓인 갑부였지만, 자기 집 굴뚝에서 나는 연기도 아깝다며 한숨을 쉬는 지독한 구두쇠였습니다. 어느 날 마루에 앉아 부채질을 하던 최 진사는 마을 사람들이 약수샘 덕분에 병이 나았다는 소리를 듣고는 수염을 배배 꼬며 속으로 주판알을 튕겼습니다.

    '아니, 저 놈의 샘물이 그렇게나 영험하단 말이지? 의원한테 가면 은자 몇 냥은 주어야 고칠 병을 공짜 물 한 바가지로 고친다? 저 샘이 내 땅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이 마을의 유일한 진사 어른이니 관리를 한다는 명목으로 틀어쥐면... 물 한 바가지에 곡식을 조금씩만 받아도 일 년이면 내 곳간이 하나 더 늘어나겠구나!'

    돈 냄새를 맡은 최 진사의 눈이 가늘어졌습니다. 다음 날 아침, 최 진사는 갓을 차려입고 하인들을 거느린 채 약수샘 앞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물을 길으러 모인 마을 사람들 앞에서 헛기침을 크게 하더니 거드름을 피우며 선언했습니다.

    "에헴, 여보게들! 이 약수샘이 보통 귀한 물이 아닌데, 자네들처럼 마구잡이로 퍼다 마시다가는 샘이 말라버릴 것이 분명하네. 그러니 오늘부터는 학식 높은 이 최 진사가 직접 이 샘을 관리하겠네. 앞으로 이 물을 마시려는 자는 나에게 관리비로 곡식을 내고 허락을 받아야 할 것이야!"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물동이를 이고 있던 아낙네들과 노인들이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수백 년 동안 마을 사람 모두의 생명을 지켜주던 샘물을 하루아침에 돈 주고 사 먹으라니, 평화롭던 산골 마을에 거센 풍파가 예고되는 순간이었습니다.

    ※ 2: 욕심쟁이 부자 최 진사

    최 진사의 어처구니없는 선언에 약수터는 순식간에 술렁거렸습니다. 참다못한 마을 이장 영감이 대나무 지팡이로 땅바닥을 쿵 찍으며 앞으로 나서서 항의했습니다.

    "아니, 진사 어른! 그게 무슨 당치도 않은 말씀이십니까요? 이 약수샘은 옛날부터 하늘이 이 산골 백성들 불쌍히 여기시어 내려주신 공동의 보물입니다. 땅 주인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어찌 진사 어른께서 마음대로 독차지하고 돈을 받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이장 영감의 말에 뒤이어 마을 사람들도 저마다 억울함을 호소하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옳습니다요! 당장 병들어 누운 노인네와 어린것들이 이 물을 마셔야 사는데, 가난한 화전민들이 무슨 수로 곡식을 내고 물을 마신단 말입니까!"

    "맞아요! 저희 어머니도 이 물 아니었으면 지난봄에 큰일 날 뻔하셨단 말입니다. 진사님, 제발 거두어 주십시오!"

    사람들이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지만, 눈앞에 쌀가마니가 아른거리는 최 진사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최 진사는 코웃음을 치며 부채를 탁 접더니 건장한 하인들에게 눈짓을 보냈습니다.

    "시끄럽다, 이 무지한 것들아! 내가 샘물이 마르지 않게 관리해 주겠다는 것인데 고맙다고 절은 못 할망정 토를 달아? 여봐라, 이놈들아! 당장 시작해라!"

    최 진사의 불호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하인들이 낫과 망치, 그리고 수레 가득 실어 온 굵은 대나무와 가시 덩굴을 내려놓았습니다. 하인들은 약수샘 주변의 낮은 울타리를 발로 차서 부숴버리고는, 어른 키를 훌쩍 넘는 높은 대나무 울타리를 박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울타리 틈새마다 날카로운 가시나무를 감아올렸고, 맨 위에는 뾰족하게 깎은 나무 창까지 꽂아 넣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울타리 문에 어른 주먹보다 큰 무쇠 자물쇠를 철컥 채우고 열쇠를 바치자, 최 진사는 배를 내밀며 너털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으하하하! 이렇게 튼튼하게 잠가 놓아야 샘물이 귀한 줄 알지! 똑똑히들 들어라. 앞으로 물 한 바가지 값은 흰쌀 한 되다! 쌀 한 되를 내 집 마당으로 가져오는 놈에게만 이 자물쇠를 열어 줄 것이니, 억울하면 부자가 되든가 개울물이나 떠다 마시거라!"

    물 한 바가지에 온 식구가 이틀은 먹을 쌀 한 되를 내라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은 그냥 병들어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었습니다. 최 진사가 하인들을 거느리고 돌아가 버리자, 가시 울타리 앞에 남겨진 마을 사람들은 한숨만 내쉬었습니다.

    그로부터 나흘이 지났습니다. 최 진사는 낮에는 하인들에게 몽둥이를 들려 샘 앞을 지키게 했고 밤에는 사나운 개까지 풀어 놓았습니다. 그러던 그날 밤, 효자 막돌이네 집에 탈이 났습니다. 매일 드시던 약수를 나흘 동안 드시지 못하자, 어머니의 옛 병이 다시 도져서 안방에서 거친 기침 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쿨룩, 쿨룩... 아이고, 가슴이야. 막돌아, 내 걱정은 말고 어서 자거라..."

    어머니의 기침 소리를 듣는 막돌이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했습니다. 막돌이는 부엌으로 달려가 쌀독을 뒤졌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살림에 쌀독 바닥을 박박 긁어모아 봐야 나온 것은 고작 쌀 반 되 남짓한 분량이었습니다.

    '반 되밖에 안 되지만, 가서 무릎 꿇고 사정하면 진사 어른도 사람인데 설마 병든 노모 마실 물 한 바가지 안 주시려고.'

    막돌이는 작은 보자기에 쌀 반 되를 싸 들고 빈 물병을 옆구리에 찬 채 최 진사네 대문 앞으로 달려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계십니까요, 진사 어른! 아랫마을 사는 막돌이옵니다. 염치없지만 한 말씀만 올리겠습니다요!"

    한참 만에 쪽문이 열리더니, 비단 잠옷 차림의 최 진사가 등불을 들고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이 밤중에 어떤 놈이 남의 단잠을 깨우느냐!"

    "진사 어른, 밤늦게 죄송합니다요. 저희 노모께서 다시 기침병이 도지셔서 그러는데, 약수 한 바가지만 떠 갈 수 있게 자물쇠 좀 열어 주십시오. 집안을 다 털어도 쌀이 반 되밖에 없지만, 내일 제가 진사 어른 댁 장작을 백 단이라도 패 드릴 테니 제발 이것이라도 받아 주십시오!"

    막돌이가 돌바닥에 무릎을 꿇고 쌀 보자기를 바쳐 올렸습니다. 그러자 최 진사는 쌀 보자기를 손가락 끝으로 툭 건드려 보더니 코웃음을 쳤습니다.

    "뭐야? 쌀 반 되? 내가 분명히 한 바가지에 쌀 한 되라고 정했거늘, 어디서 반 토막짜리 쌀을 들고 와서 흥정을 하려 드느냐! 정량대로 채워 오기 전에는 물 한 방울도 못 준다!"

    "진사 어른, 제발 살려주십시오! 어머니가 지금 숨도 제대로 못 쉬십니다. 반 바가지만이라도 주십시오!"

    "시끄럽다! 네 어미가 아프든 말든, 가난한 건 네놈 팔자지 내 알 바냐! 당장 내 집 앞에서 꺼지지 못할까!"

    최 진사는 막돌이의 손을 발로 차서 쌀 보자기를 나뒹굴게 하더니 대문을 쾅 닫아버렸습니다. 흙바닥에 쏟아진 쌀알들을 쓸어 담는 막돌이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바로 그 시각, 마을 회관 마당에는 잠을 이루지 못한 마을 사람들이 모여 대책 회의를 열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흙투성이 쌀 보자기를 안고 돌아온 막돌이의 사연이 전해지자 사람들의 분노와 슬픔은 극에 달했습니다.

    "세상에, 피도 눈물도 없는 영감쟁이 같으니라고! 사람 목숨보다 쌀 반 되가 더 중하단 말인가!"

    "최 진사한테 대들 수도 없고... 아아, 하늘도 무심하시지, 우리보고 그냥 죽으라는 말인가!"

    모두가 고개를 떨구고 한숨을 내쉬던 그때였습니다. 고요하던 적막을 깨뜨리고 마을 어귀 약수샘 쪽에서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기이한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북을 두드리는 것 같기도 하고 벼락이 내리꽂히는 것 같기도 한 굉음에 사람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그때 이장 영감이 떨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섰습니다.

    "가만있어 보시오들! 저 소리가 약수샘 쪽에서 나는 것 같은데, 내가 한번 가보겠소. 막돌이랑 장정 몇 명은 횃불을 들고 따라오시오!"

    이장 영감을 필두로 막돌이와 장정들이 횃불을 들고 조심스럽게 약수샘 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샘터가 가까워지자 횃불 너머로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드러났습니다. 최 진사의 하인들이 박아 놓았던 그 단단하던 대나무 가시 울타리가 수수깡 부러지듯 산산조각이 나서 나뒹굴고 있었고, 무쇠 자물쇠는 엿가락처럼 휘어진 채 처박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약수샘 바위 위에는 키가 구 척은 되어 보이고 머리에는 뿔이 달리고 손에는 무쇠 방망이를 든 시퍼런 도깨비가 도끼눈을 부라리며 서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도깨비가 방망이를 바닥에 쾅 찍더니 천둥 같은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네 이놈들! 어느 간 큰 놈이 감히 하늘이 내린 이 귀한 약수샘에 가시 줄을 치고 자물쇠를 채웠느냐! 당장 내 앞으로 나오지 못할까!"

    ※ 3: 도깨비 등장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도깨비의 모습과 귀청이 떨어질 듯한 고함 소리에, 횃불을 들고 갔던 장정들은 다리에 힘이 풀려 뒤로 나자빠졌습니다. 이장 영감조차 지팡이를 떨어뜨리고 떨고 있었는데, 방금 전까지 무섭게 인상을 쓰던 도깨비가 바닥에 주저앉은 사람들의 초라한 행색을 내려다보더니 갑자기 표정을 바꾸어 동네 아저씨처럼 빙그레 웃는 것이었습니다.

    "허허허, 여보게들! 그렇게 겁내지들 마시게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나쁜 놈들만 골라서 혼쭐을 내주고, 자네들처럼 마음씨 착하고 불쌍한 사람들은 털끝 하나 안 건드리는 의리파 도깨비라네! 자, 어서 일어나서 말해 보시게. 대체 이 좋은 샘물에 흉측한 울타리를 쳐 놓은 고약한 놈이 누구란 말인가?"

    도깨비가 방망이를 어깨에 걸치며 구수한 말투로 물어보자 마을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때 맨 앞에 앉아 있던 막돌이가 흙 묻은 쌀 보자기를 쥐고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도, 도깨비 어르신... 저기 윗마을 기와집에 사는 최 진사라는 양반이 그랬습니다요. 이제부터는 물 한 바가지에 쌀 한 되씩 내야만 물을 마실 수 있다면서 자물쇠를 채워 버렸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물 한 모금이 급한데도 쌀이 모자란다고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요..."

    막돌이의 하소연을 듣던 도깨비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오르더니 방망이를 허공에 휙휙 휘둘렀습니다.

    "뭐라? 하늘이 불쌍한 백성들 병 고치라고 내려준 약수를 가지고 돈장사를 해? 그것도 병든 노모 마실 물 한 바가지를 안 주고 쫓아냈단 말이지? 여보게들, 앞장서시게! 내 오늘 밤 그 최 진사라는 놈의 버르장머리를 단단히 고쳐 놓을 테니까!"

    도깨비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자 신이 난 마을 사람들도 횃불을 들고 뒤를 따라갔습니다. 최 진사네 기와집 앞에 도착한 도깨비는 손가락 하나로 솟을대문을 툭 건드렸습니다. 그러자 두꺼운 대문이 빗장이 부러지며 우당탕탕 마당 한가운데로 날아가 자빠졌습니다.

    "아이고,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도둑이냐, 산적이냐! 밖에 아무도 없느냐!"

    소리에 놀라 잠옷 바람으로 마루에 뛰어나온 최 진사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최 진사가 눈을 비비며 마당을 내려다보니, 횃불을 든 마을 사람들 한가운데에 기왓장보다 높은 거대한 그림자가 걸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시퍼런 피부와 머리에 돋아난 두 개의 뿔을 본 최 진사는 숨이 턱 막혔습니다.

    "히이익! 도, 도, 도깨비다! 도깨비가 나타났다아!"

    최 진사는 다리가 풀려 마루에서 굴러떨어지더니, 마당을 기어서 도망치려다 잠옷 자락에 발이 걸려 코가 깨지도록 엎어졌습니다. 도깨비는 순식간에 최 진사의 코앞까지 다가와 발을 쾅 굴렀습니다.

    "네 이놈이 최 진사냐! 네놈이 곳간에 쌀이 썩어 나가는데도 마을 사람들의 생명줄인 약수샘을 틀어막았단 말이지!"

    우레 같은 호통 소리에 최 진사는 무릎을 꿇고 파리가 앞발을 비비듯 두 손을 싹싹 비벼 댔습니다.

    "아이고, 도깨비 대감님! 소인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소인은 그저 샘물이 더러워질까 봐 관리를 조금 하려고 했던 것뿐이옵니다!"

    "관리는 무슨! 가시나무로 담을 치고 물 한 바가지에 쌀 한 되를 뜯어내려 한 것이 관리더냐! 어디 이 방망이로 네놈의 욕심보가 얼마나 단단한지 한번 두드려 볼까?"

    도깨비가 무쇠 방망이를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리자, 최 진사는 이마를 땅바닥에 찧으며 통곡을 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대감님,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다시는 약수샘 근처에는 그림자도 얼씬거리지 않겠습니다! 쌀도 안 받고 자물쇠도 다 치우겠습니다요!"

    비굴하게 땅바닥을 기며 비는 최 진사의 꼬락서니가 어찌나 우스꽝스러웠던지, 구경하던 마을 사람들은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들썩였습니다. 도깨비는 방망이를 내리며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흥! 이번 한 번은 봐주겠다만, 만약 또다시 약수샘에 욕심을 내거나 마을 사람들을 괴롭혔다가는 네놈의 기와집을 통째로 뽑아서 동해 바다에 거꾸로 처박아 버릴 줄 알아라!"

    최 진사의 다짐을 받아낸 도깨비는 마을 사람들을 향해 돌아서더니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자, 여러분! 오늘부터는 이 도깨비가 밤마다 약수샘 옆에서 보초를 서겠소. 그러니 누구든지 마음껏 오셔서 물을 떠다 드시구려. 특히 병들고 가난한 어르신들이 먼저 드실 수 있도록 서로 양보하며 지내시라요!"

    "고맙습니다, 도깨비님! 정말로 고맙습니다요!"

    마을 사람들은 도깨비에게 큰절을 올렸고, 막돌이는 약수샘으로 달려가 신선한 물을 떠서 어머니께 대접해 기침을 멎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해가 지면 도깨비가 나타나 약수샘 옆 바위에 앉아 밤새도록 샘을 지켰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덩치 큰 도깨비를 조금 무서워했지만, 막돌이가 가장 먼저 용기를 내어 다가갔습니다. 어느 밤, 어머니께 드릴 약수를 길으러 간 막돌이에게 도깨비가 직접 바가지로 물을 떠 주었습니다. 막돌이는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도깨비 어르신, 어찌하여 아무 대가도 없이 매일 밤 저희 마을의 샘물을 지켜주시는 겁니까요?"

    막돌이의 질문에 도깨비는 밤하늘의 달을 올려다보더니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실은 말이지, 나도 옛날에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다네. 내게는 착한 아내가 있었는데, 어느 해 겨울 아내가 모진 병에 걸려 자리에 눕고 말았어. 약초라도 캐어 먹이겠다고 눈보라 치는 산속을 헤집고 다녔건만 결국 구하지 못했네. 내가 빈손으로 돌아왔을 때 아내는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지... 만약 그때 내가 이 약수샘을 알았더라면 아내를 살릴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도깨비의 왕방울만 한 눈가에 굵은 눈물방울이 맺혔습니다.

    "그래서 결심했다네. 나처럼 돈 없고 힘없어서 가족을 잃는 불쌍한 사람이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이 약수샘만큼은 꼭 지켜내겠다고 말일세."

    도깨비의 애틋한 사연을 들은 막돌이는 눈물을 훔쳤습니다. 다음 날 막돌이가 마을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자 온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녹아내렸습니다. 그날 밤부터 할머니들은 도깨비가 좋아하는 수수팥떡과 주먹밥을 싸 들고 와 바위 위에 놓아주었고, 아이들은 도깨비 그림을 선물했습니다. 도깨비도 모닥불을 피워 놓고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하며 한 가족처럼 평화로운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윗마을 기와집에서는 이 광경을 보며 이를 바득바득 가는 최 진사가 있었습니다.

    ※ 4: 부자와 도깨비의 대결

    도깨비에게 한밤중에 망신을 당하고 돈줄까지 놓쳐 버린 최 진사는 분통이 터져서 밥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습니다. 밤마다 약수터 쪽에서 도깨비와 마을 사람들이 웃으며 주먹밥을 나누어 먹는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최 진사는 베개를 주먹으로 치며 독기를 품었습니다.

    '이놈의 도깨비 자식! 감히 양반인 나를 무릎 꿇게 만들고 내 돈벌이를 망쳐 놓아? 내 기어코 이놈을 쫓아내고 다시 샘물에 자물쇠를 채우지 못하면 성을 갈아 버리겠다!'

    복수심에 불타오른 최 진사는 날이 밝자마자 조랑말을 타고 읍내에서 가장 용하기로 소문난 무당을 찾아갔습니다. 최 진사는 품속에서 묵직한 은자 한 주머니를 꺼내 던지며 은밀하게 입을 열었습니다.

    "무당 양반, 우리 마을 약수샘에 도깨비 한 놈이 진을 치고 앉아서 내 샘물을 가로채고 있는데, 이 도깨비 놈을 감쪽같이 쫓아낼 비방이 없겠는가?"

    은자 주머니를 본 무당은 방울을 흔들며 주문을 외우는 척하더니,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비책을 알려주었습니다.

    "진사 어른께서 제대로 찾아오셨구먼요. 원래 도깨비라는 족속들이 힘은 장사여도 기이한 약점이 하나 있답니다. 바로 하얀 메밀가루와 붉은 팥알이지요. 산골 도깨비들은 눈앞에 자잘한 곡식 알갱이나 가루가 흩어져 있으면, 그걸 다 세어 보기 전에는 발이 땅에 붙어서 꼼짝도 못 하는 성미가 있답니다. 게다가 붉은 팥은 귀신들이 제일 싫어하는 곡식이라, 도깨비가 팥알과 메밀가루를 세면서 진땀을 흘리다 보면 도깨비 기운이 쭉쭉 빠져나가게 됩니다. 그렇게 밤새도록 숫자만 세게 만들어 놓고 해가 뜰 때까지 붙잡아 두면, 기력을 완전히 잃고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무당의 말에 무릎을 탁 친 최 진사는 장터로 나가 메밀가루 한 가마니와 붉은 팥 한 가마니를 사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구름이 달을 가려 어두운 그믐날 밤이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밤이 깊어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고 도깨비 홀로 바위에 앉아 있을 무렵, 최 진사는 하인들에게 메밀가루와 팥 자루를 지우고 살금살금 약수샘 뒤편 수풀로 숨어들었습니다. 최 진사가 신호를 보내자 하인들이 일제히 달려 나와 도깨비와 약수샘 주변에 메밀가루와 팥을 사정없이 흩뿌렸습니다. 순식간에 약수터 주변은 하얀 메밀가루가 뒤덮였고 수만 개의 붉은 팥알이 굴러다녔습니다.

    "으악! 이게 무슨 짓이냐! 에취! 에취!"

    기습에 놀란 도깨비가 일어섰지만 코에 들어간 메밀가루 때문에 재채기를 연발했습니다. 그리고 바닥에 깔린 붉은 팥알과 메밀가루를 본 순간, 도깨비의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몸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팥알에서 나오는 기운에 어지러움을 느낀 도깨비는 자신도 모르게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떨리는 손가락으로 알갱이를 하나씩 짚어가며 숫자를 세기 시작했습니다.

    "어라... 안 세면 안 되는데... 하나, 둘, 셋, 넷... 아이고 어지러워라, 다섯, 여섯... 아니지, 방금 셌던가? 다시 하나, 둘..."

    도깨비가 땀을 뻘뻘 흘리며 정신없이 숫자를 세느라 꼼짝도 못 하는 모습을 본 최 진사는 손뼉을 치며 쾌재를 불렀습니다.

    "크하하하! 저 멍청한 도깨비 놈 보아라! 여봐라, 이놈들아! 도깨비가 팥알 세느라 정신 못 차리는 사이에 통나무로 약수샘을 다시 막아라! 이번에는 더 높고 튼튼한 기둥을 박고 무쇠 사슬로 칭칭 감아 버려라! 해 뜨기 전에 끝내야 한다!"

    최 진사의 독촉에 하인들이 달려들어 약수샘 주위에 이전보다 훨씬 더 굵고 단단한 통나무 울타리를 박고 쇠사슬을 둘러쳤습니다. 망치질 소리가 울렸지만, 팥의 기운에 눌려 기력이 빠져나간 도깨비는 흐려지는 눈으로 바닥만 더듬으며 가쁜 숨을 몰아쉴 뿐이었습니다. 이윽고 동쪽 하늘이 밝아 오며 아침 햇살이 약수터를 비추는 순간, 밤새 기력을 소진한 도깨비의 몸집이 안개처럼 투명하게 흐려지더니 힘없는 탄식과 함께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크하하! 됐다, 됐어! 도깨비가 사라졌다!"

    잠시 후, 아침 물을 길으러 나온 마을 사람들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얼어붙었습니다. 약수샘 주위에는 다시 흉측한 통나무 울타리가 쳐져 있었고, 그 앞에는 최 진사가 팔짱을 끼고 서서 거드름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도깨비는 내가 쫓아냈소! 이제 다시 내 말을 들어야 물을 마실 수 있을 거요!"

    그날 밤, 어둠이 내리자 마을 사람들이 통나무 울타리 밖에 모여 목이 쉬어라 도깨비를 불렀습니다.

    "도깨비 어르신! 어디 계십니까요! 우리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하신 거여, 도깨비님!"

    막돌이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먹였습니다. 밤이 깊어가던 그때, 울타리 너머 약수샘 수면 위에서 희미한 불빛이 피어오르더니 물 위에 도깨비의 모습이 그림자처럼 흐릿하게 비쳤습니다. 그리고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여러분... 걱정 마시라우... 내가 힘이 많이 약해졌소. 근디 포기하지 않겠소..."

    "도깨비님! 우리가 뭘 도와드릴까요! 뭐든 할게요!"

    "여러분 마음만 감사하오..."

    그 말을 끝으로 도깨비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밤새도록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 눈물을 닦고 일어선 막돌이가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습니다.

    "안 돼! 우리가 도깨비님을 도와드려야 해! 우리 모두 힘을 합쳐서 저 울타리를 부숴버립시다!"

    막돌이의 외침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습니다.

    ※ 5: 도깨비의 진짜 정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회의를 열었습니다. 젊은 사람, 늙은 사람,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막돌이가 앞에 나서서 힘주어 말했습니다.

    "여러분, 도깨비님이 아무 대가 없이 우릴 지켜주셨는데, 이제는 우리가 도깨비님을 지켜드릴 차례 아니겠소?"

    "맞소! 막돌이 말이 백번 옳소!"

    마을 이장 영감이 지팡이를 땅에 짚으며 호기롭게 외쳤습니다.

    "내일 새벽, 해 뜨기 전에 모두 연장들을 챙겨서 샘으로 모입시다. 그라고 저 지긋지긋한 울타리를 다 뜯어버립시다!"

    다음 날 새벽, 아직 동도 트기 전에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약수샘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손에는 호미도 들고, 낫도 들고, 도끼와 빗자루도 들고 온 마을 사람이 한 명도 빠짐없이 집결했습니다.

    "자, 날이 밝기 전에 시작합시다!"

    구령과 함께 사람들이 일제히 울타리를 향해 달려들었습니다. 장정들이 도끼로 참나무 기둥을 찍어 넘기고 무쇠 사슬을 끊어냈으며, 모두가 밧줄을 걸고 영차 구령을 맞추어 당기자 그 튼튼하던 통나무 울타리가 와르르 쾅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습니다. 울타리가 무너지자마자 아낙네들과 아이들, 노인들이 샘터 안으로 뛰어들어 바닥에 흩어진 붉은 팥알을 일일이 주워 담고 하얀 메밀가루를 빗자루로 쓸어낸 뒤 개울물로 돌 틈새까지 깨끗하게 씻어냈습니다.

    바로 그때, 소리를 듣고 최 진사가 하인들을 앞세워 헐레벌떡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이미 울타리는 반쯤 무너진 후였습니다.

    "이놈들이! 감히 누구 허락을 받고 내 재산을 부순단 말이냐!"

    "이게 무슨 당신 재산이요! 하늘이 내린 샘물을 누가 마음대로 차지한다는 거요!"

    이장 영감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다른 마을 사람들도 도끼와 낫을 들고 일제히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래요! 우리 샘물을 돌려주시오! 한 번만 더 샘물에 손대면 우리가 가만두지 않을 것이오!"

    최 진사가 뭐라 말하려다가, 백여 명이나 되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눈에 불을 켜고 노려보는 서슬 퍼런 기세에 눌려 결국 꼬리를 내리고 도망치듯 자기 집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남은 울타리를 완전히 철거하고 샘물 주변을 말끔히 청소했습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자, 마을 사람들은 깨끗해진 샘물 앞에 둘러앉아 도깨비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막돌이가 샘물 가까이 다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조용히 불렀습니다.

    "도깨비 어르신... 이제 무서운 팥도 다 치웠고 울타리도 걷어냈습니다. 이제 괜찮으니 편히 나오세요..."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맑은 샘물에서 은은하고 따뜻한 빛이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빛이 점점 강해지면서 도깨비의 모습이 천천히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예전처럼 씩씩한 모습이 아니라 많이 약해진 모습이었고, 신기하게도 머리 위의 뿔과 시퍼런 빛깔이 사라지고 인자한 조선 사내의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정말 고맙소..."

    사내가 힘없이 웃으며 말하자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습니다. 막돌이가 달려가서 사내의 손을 잡으려 하며 물었습니다.

    "도깨비님! 괜찮으세요? 어떻게 하면 다시 건강해지실 수 있어요?"

    할머니 하나가 눈물을 흘리며 묻자, 사내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사실 진짜 도깨비가 아니라오. 나는 옛날에 이 마을에 살던 평범한 사람이었소. 이름은 박서방이라고 했지. 내 아내가 병들었을 때 약을 구하지 못해서 아내를 잃었소. 그때 내가 얼마나 후회했는지... 만약 이 샘물을 알았더라면 아내를 살릴 수 있었을 텐데..."

    박서방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아내가 떠난 후 나도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소. 근디 이승에 미련이 남아서 혼령이 되어 떠돌다가, 하늘이 나한테 기회를 준 거라오. 도깨비가 되어서 이 샘물을 욕심 많은 자들로부터 지키면, 내 죄를 씻고 다시 아내를 만날 수 있다고 말이오."

    "아아, 그럼 도깨비 어르신은..."

    "나는 여러분을 지키면서 내가 아내를 지키지 못한 죄를 씻고 있었던 거요. 아내 대신 병들고 가난한 여러분을 지키면서 속죄하고 있었소. 이제 여러분이 스스로 힘을 합쳐 샘물을 지켜냈으니 내 역할은 끝났구려."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무서운 도깨비의 모습 뒤에 그토록 아픈 사연이 숨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막돌이가 박서방의 손을 잡으려 하며 목메어 말했습니다.

    "박서방님... 그동안 저희들을 위해 애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아내분을 만나러 편히 가세요. 우리가 이 샘을 지킬게요. 약속드립니다!"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래요, 이제 편히 쉬세요. 당신이 지킨 이 샘물, 우리가 대대손손 지키겠습니다!"

    ※ 6: 도깨비의 작별

    박서방이 마을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고마움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눈물이 약수샘에 똑 떨어지자, 신기하게도 샘물 깊은 곳에서부터 이전보다 훨씬 더 밝고 찬란한 오색 빛이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박서방은 두 손을 샘물 위에 가만히 올리더니 몸에 남아 있던 마지막 기운을 불어넣었습니다.

    "여러분, 내 마지막 힘을 이 샘물에 담겠소. 앞으로 이 물을 마시는 사람들은 누구나 건강해질 것이며 어떤 가뭄에도 마르지 않을 거요. 그것이 내가 여러분께 남기는 마지막 선물이오."

    박서방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샘물 속으로 스며들면서 수면이 영롱하게 반짝였습니다.

    "이제 나는 아내한테로 갑니다. 여러분, 부디 건강하게 사세요."

    박서방의 모습이 점점 희미해지면서 밤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던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땅에 엎드려 큰절을 올렸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부디 아내분과 행복하세요!"

    박서방이 마지막으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순간, 밤하늘 구름 사이에서 또 다른 고운 빛이 내려왔습니다. 단아한 여인의 모습을 한 영혼이 박서방을 맞이하러 마중 나온 것이었습니다.

    "여보... 오래 기다렸어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미안하오, 부인. 그동안 당신 몫까지 아픈 사람들을 지켜야 했소."

    두 영혼이 다정하게 손을 맞잡고 하늘로 올라가 밤하늘의 밝은 두 개의 별로 반짝이며 사라졌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마을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두 영혼이 사라진 후 샘물을 들여다보니 전보다 훨씬 더 맑고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마을 이장 영감이 조심스럽게 물을 떠서 한 모금 마셔 보았습니다.

    "오오! 이게 무슨 맛이여! 예전보다 훨씬 더 달고 시원한 것이 온몸에 기운이 확 도는구먼!"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씩 물을 마셔 보더니 모두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아이고, 내 굽은 허리가 저절로 펴지네!"

    "어머, 내 무릎이 하나도 안 아파! 기침도 싹 멎었어요!"

    그날 이후로 마을에는 신기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오랫동안 앓던 병이 낫고 기운 없던 노인들이 정정해졌으며, 막돌이네 어머니도 완전히 건강을 회복하셔서 밭일도 하시고 빨래도 하실 만큼 활기를 되찾으셨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박서방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샘물 옆에 작은 비석을 세우고, 이 샘을 지킨 박서방과 그의 아내를 기억하며라는 글을 새겨 매년 봄마다 정성껏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렇다면 욕심쟁이 최 진사는 어찌 되었을까요? 그날 밤 나무 뒤에 숨어 박서방 부부가 하늘로 올라가는 경이로운 광경을 모두 지켜본 최 진사는 자신의 탐욕을 뼈저리게 뉘우치고 마을 사람들 앞에 나와 무릎을 꿇고 사과했습니다.

    "제가 돈에 눈이 멀어 정말 잘못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시오!"

    최 진사는 자기 재산 일부를 내놓아서 약수샘 주변에 비바람을 피할 멋진 정자도 짓고 쉼터도 만들어 주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박서방이 가르쳐 준 대로 미움 대신 사랑으로 최 진사를 따뜻하게 용서해 주었습니다. 소문이 사방으로 퍼지자 먼 곳에서 병든 사람들이 지팡이를 짚고 찾아왔고, 마을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구별하지 않고 모두 반갑게 맞이하며 물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청년이던 막돌이도 어느덧 중년이 되었고, 어머니는 여든이 넘으셨는데도 여전히 건강하게 장수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봄, 온 나라에 큰 가뭄이 들었습니다. 다른 고을의 우물과 샘들은 다 말라버렸지만, 박서방의 축복이 담긴 이 마을 샘물만은 여전히 콸콸 솟아났습니다. 물을 얻으러 수백 명의 타지 사람들이 줄을 서자, 마을 사람들이 걱정하며 회의를 열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한테 물을 다 나눠주다간 우리 마실 물이 모자라지 않을까요?"

    그러자 막돌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박서방님은 누구한테나 조건 없이 물을 나눠주셨습니다. 우리도 마땅히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옳소! 막돌이 말이 맞소! 모두에게 아낌없이 나눠줍시다!"

    마을 사람들은 밤낮없이 물을 길어다 찾아온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주먹밥도 해 먹였습니다. 그랬더니 참으로 신기하게도 아무리 많은 사람이 물을 퍼 가도 샘물은 마르기는커녕 오히려 더 굵게 솟아나는 것이었습니다. 그해 여름 비가 내려 가뭄이 끝났을 때, 목숨을 건진 다른 마을 사람들이 감사의 인사를 하러 찾아왔고 샘물 앞에서는 큰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잔치가 한창인 밤, 막돌이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유난히 밝은 두 개의 별이 나란히 빛나고 있었습니다.

    "박서방님, 잘 보고 계시지요? 우리 마을이 이렇게 건강하고 행복합니다. 모두 당신 덕분입니다."

    그 순간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나뭇잎을 흔들고 샘물에 잔물결을 일으켰는데, 그것이 마치 하늘에서 박서방 부부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자, 여러분! 도깨비 박서방과 신비한 약수샘 이야기, 가슴 뭉클하게 들으셨습니까? 사랑하는 아내를 지키지 못한 아픔을 안고 백 년 동안 다른 사람들을 지키며 속죄했던 박서방의 깊은 마음과, 은혜를 잊지 않고 하나로 뭉친 마을 사람들의 인정이 참으로 따뜻한 감동을 줍니다. 결국 진정한 만병통치약은 욕심을 버리고 서로 아픔을 나누는 따뜻한 마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다면 좋아요 꾹 눌러주시고, 구독과 알림 설정도 부탁드립니다! 다음에 또 재미난 옛날이야기 가지고 찾아뵙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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