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악덕 지주의 곳간을 싹쓸이한 도깨비 → 금덩이가 돌멩이로 변했다!
소작농들을 쥐어짜던 양반의 금송아지가 하룻밤 새 돌덩이로 변하고, 마을 빈민촌에 황금비가 내린 사건.
태그 (15)
#도깨비방망이, #악덕지주, #사이다도깨비, #조선전설, #한국야담, #황금송아지, #돌멩이변신, #오디오드라마, #시니어이야기, #한국민담, #구전설화, #권선징악, #도깨비설화, #조선시대
#도깨비방망이 #악덕지주 #사이다도깨비 #조선전설 #한국야담 #황금송아지 #돌멩이변신 #오디오드라마 #시니어이야기 #한국민담 #구전설화 #권선징악 #도깨비설화 #조선시대


후킹멘트
조선 팔도에서 가장 인색하기로 소문난 악덕 지주 조만석. 그의 곳간에는 황금송아지 한 마리가 위풍당당 서 있었고, 소작농들의 피땀이 쌀가마니로 산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밤, 정체 모를 흰 수염 나그네 하나가 마을에 나타나면서 모든 것이 뒤집히기 시작합니다. 하룻밤 새 황금은 돌덩이가 되고, 빈민촌에는 황금비가 쏟아졌다는 기막힌 사연. 도깨비 방망이가 휘두른 통쾌한 심판, 지금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시지요.
※ 1 · 황금송아지를 가진 악덕 지주
전라도 남녘 산자락에 아주 오래된 마을 하나가 있었으니, 사람들은 그곳을 수리골이라 불렀다. 수리골은 위아랫마을로 나뉘어 있었는데, 윗마을에는 기와집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였고, 아랫마을에는 초가집들이 땅바닥에 주저앉은 듯 엎드려 있었다. 그 두 마을의 운명을 한 손에 쥐고 있는 사람이 바로 조만석이라는 지주였다.
조만석은 수리골 제일 높은 언덕에 대궐 같은 기와집을 지어놓고 살았다. 마당 한복판에는 네댓 칸짜리 곳간이 우뚝 서 있었는데, 그 문을 열면 햇빛마저 눈부셔 고개를 돌릴 지경이었다. 쌀가마니가 산처럼 쌓여 있었고, 비단 필목이 벽을 따라 차곡차곡 포개져 있었으며, 금붙이와 은붙이가 놋그릇에 수북이 담겨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조만석의 자랑거리는 단연 황금송아지였다.
"이놈 좀 보게. 온 사방을 통틀어도 이만한 물건이 어디 있겠나."
조만석은 틈만 나면 곳간에 들어가 황금송아지의 등을 쓰다듬었다. 송아지 크기만 한 황금덩어리를 녹여 장인에게 모양을 빚게 한 것으로, 눈은 홍옥이요 뿔 끝은 진주가 박혀 있었다. 햇빛이 들면 사방이 번쩍거려 곳간 안이 한낮처럼 훤해지곤 하였다.
그러나 조만석의 부는 결코 그의 피땀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아랫마을 소작농들이 허리가 휘도록 일구어 바친 곡식과 세, 그 한 톨 한 톨이 모여 황금송아지의 뿔 하나, 눈 하나를 만들어낸 셈이었다.
아랫마을 사람들은 겨울이 깊어갈수록 등이 오그라들었다. 곳간에 쌀이 남아 있는 집이라곤 드물었고, 죽사발조차 묽어 숟가락질에 힘이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조만석의 수하들은 매달 보름마다 내려와 어김없이 세곡을 걷어갔다.
"왜 이리 작은가. 이걸로 윗댁 어르신 심기가 편하시겠느냐."
마름의 으름장에 아낙네들은 고개를 푹 숙였고, 사내들은 주먹을 쥐었다 풀었다 할 뿐이었다.
아랫마을 한 귀퉁이, 흙담 낮은 집에 살던 돌쇠는 바지춤을 추슬러 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황금송아지 한 마리 값이면 이 마을 삼 년 치 양식이 나올 터인데. 어찌 저 혼자만 저리 배부르고, 우리네는 이리 쪼들려야 한단 말인가.'
돌쇠의 눈앞에 언덕 위 기와집이 보이는 듯하였다. 그 높다란 담장 너머에서 조만석의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내려오는 듯도 하였다. 돌쇠는 고개를 저으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해는 벌써 서산에 걸려 있었고, 아랫마을 굴뚝에서는 연기조차 제대로 오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돌쇠는 어머니 앞에 지게를 내려놓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어머니는 아들의 축 처진 어깨를 보고 말없이 부뚜막에 앉혀 뜨뜻한 물 한 사발을 건네주었다. 아들이 무슨 말을 해도 놀라지 않으리라는 눈빛이었지만, 돌쇠는 그저 고개만 숙인 채 물만 훌쩍훌쩍 마실 뿐이었다. 부엌문 틈새로 마지막 햇살이 길게 들이쳤고, 그 빛이 방바닥에 드리운 아들의 그림자가 유난히 왜소해 보였다.
※ 2 · 쥐어짜이는 아랫말 사람들
그날 오후, 마름 최가가 졸개 셋을 앞세우고 아랫마을로 내려왔다. 매달 보름이 되면 어김없이 치러지는 풍경이었으나, 이번만큼은 사람들의 얼굴빛이 유달리 창백하였다. 지난가을 태풍에 논이 쓸려 내려간 집이 한둘이 아니었고, 겨울 내내 죽으로 연명하던 터라 보리가 여물 때까지 버틸 곡식이 모자랐던 것이다.
"이번 달 세곡도 한 톨도 빠짐없이 거두어라. 어르신께서 한 말씀도 덜하지 말라 하셨다."
최가의 목소리가 마을 어귀에서부터 쩌렁쩌렁 울렸다. 사람들은 각자의 집 앞에 쭈뼛쭈뼛 나와 섰고, 아이들은 어미의 치맛자락 뒤로 숨어들었다.
첫 번째 집은 김노인 댁이었다. 일흔이 넘은 노인은 허리를 굽혀 쌀 반 가마니를 내놓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보시오, 마름 나리. 올해는 흉년이라 이만큼이라도 겨우 모았소이다. 지난해만큼은 도저히…"
"지난해가 뭐 어떻다는 게요. 어르신 댁 곳간에 쌀이 쌓인 건 그 해나 올해나 매한가지요. 한 말이 모자라니, 다음 달까지 보태서 갚으시오."
김노인은 마른 입술을 달싹이다가 끝내 아무 말도 못하고 물러섰다. 그 뒤에 섰던 손주 녀석이 할아버지의 한복 자락을 꽉 움켜잡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다음은 과부 쇠네댁 차례였다. 남편을 지난봄 돌림병에 여의고 어린 자식 셋을 혼자 키우는 여인이었다. 쇠네댁은 아예 곳간 문을 활짝 열어 보이며 눈물을 떨구었다.
"보시오. 아이들 먹일 보리쌀 한 됫박이 전부외다. 이것마저 가져가시면 우리 세 모자는 무엇으로 목숨을 부지하라 하시오."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지. 세곡은 세곡이고 사정은 사정이라. 없으면 몸으로라도 갚아야지."
졸개 하나가 능글거리며 쇠네댁을 훑어보았고, 어린 막내아들이 놀라 어미의 다리를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쇠네댁은 그 됫박마저 빼앗기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하였다. 통곡소리가 어찌나 애절하던지, 구경 나왔던 사람들조차 두 눈을 맞대고 고개를 돌리지 못하였다.
돌쇠는 그 광경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다가 울컥 목구멍이 막혔다. 주먹을 꽉 쥐고 한 걸음 내디디려는데, 늙은 어머니가 뒤에서 옷자락을 붙잡았다.
"아들아, 참거라. 저들에게 대들었다간 너 하나 성한 몸으로 집에 돌아오지 못한다."
돌쇠는 어머니의 주름진 손을 내려다보다가, 하는 수 없이 주먹을 풀었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하늘이 저놈들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언젠가가 언제 올 것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마름 일행이 돌아가고 나자 아랫마을에는 곡소리와 한숨이 뒤섞여 공기가 무거웠다. 아이들은 주린 배를 움켜잡고 잠을 청하였고, 어미들은 부엌에서 물만 끓였다. 돌쇠는 쇠네댁의 부엌에 슬그머니 보리 한 줌을 놓고 돌아왔다. 자기 집 곳간이라야 바닥이 보일 만큼 비어 있었으나,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밤, 수리골 아랫마을에는 별빛조차 유난히 차가워 보였다.
※ 3 · 마을에 나타난 수상한 나그네
이튿날 해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 수리골 입구에 낯선 노인 하나가 들어섰다. 흰 수염이 가슴까지 길게 내려온 키 큰 노인으로, 누런 무명 두루마기에 커다란 봇짐을 둘러메고 있었다. 손에는 길쭉한 단풍나무 지팡이를 짚었는데, 그 끝에 달린 조롱박이 바람도 없는데 댕그랑댕그랑 맑은 소리를 내었다.
마을 어귀에서 놀던 아이들이 노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노인은 허허 웃으며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얘들아, 이 마을에 하룻밤 묵어갈 곳이 있겠느냐."
가장 큰 아이가 조심스레 대답하였다.
"윗마을 기와집들은 나그네를 안 받아요. 아랫마을은 집은 남루해도 마음은 따뜻하다고 하던걸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아랫마을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노인이 걸음을 뗄 때마다 지팡이 끝의 조롱박이 묘하게 울렸고, 그 소리를 들은 개들이 컹컹 짖다가도 이내 꼬리를 내리고 조용해지는 것이었다.
노인은 아랫마을 한가운데에 이르러 돌쇠의 집 사립문 앞에 멈춰 섰다. 때마침 돌쇠는 마당에서 지게를 내려놓고 있었고, 그의 늙은 어머니는 부엌에서 멀건 죽을 젓고 있었다.
"지나가는 늙은이인데, 하룻밤만 처마 밑을 빌려줄 수 있겠소이까."
돌쇠는 낯선 노인을 한참 쳐다보았다. 차림은 남루하였으나 눈빛이 보통 사람 같지 않아 이상한 기운이 감돌았다. 돌쇠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말하였다.
"어르신, 누추한 곳이나마 들어오시지요. 저희 집에는 손님상을 차릴 만한 것이 없어 송구스러우나 방 한 칸만큼은 깨끗이 비워드리겠습니다."
노인은 환하게 웃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어머니는 없는 살림을 뒤져 보리 한 줌을 더 풀어 죽을 끓였고, 돌쇠는 마당의 땔감을 들여와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손님상은 볼품없었지만 정성만은 가득하였다.
저녁상 앞에서 노인은 보리죽 한 숟가락을 떠 입에 넣고는 감탄하듯 말하였다.
"허허, 이 마을에서 가장 귀한 밥상이 아닌가 싶소. 따뜻한 마음이 녹아 있으니 산해진미가 부럽지 아니한 법이오."
돌쇠는 쓴웃음을 지었다.
"부끄럽습니다. 저희도 남 주기보다 받기가 익숙한 사람들이오나, 오늘은 제가 마음이 조금 울적하여 누구라도 곁에 있어주었으면 하던 차였습니다."
"그래, 무슨 일이 있었소?"
돌쇠는 주저하다가 어제 있었던 쇠네댁 일을 털어놓았다. 조만석의 황금송아지 이야기, 마름 최가의 횡포, 아이들이 주린 배로 잠드는 밤 이야기. 하나하나 말을 꺼낼 때마다 울분에 찬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어머니는 부엌 쪽에서 고개를 돌린 채 눈물을 찍어냈다. 노인은 수염을 쓸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롱박 달린 지팡이를 툭툭 두드렸다.
"그리 슬퍼 말게. 하늘이 보고 있고, 땅도 듣고 있다네. 때로는 사람이 하지 못하는 일을, 다른 존재가 대신해주기도 하는 법이지."
그 말을 하는 노인의 눈동자가 순간 이상한 빛을 띠며 반짝였다. 돌쇠는 그 눈빛을 보는 순간, 등허리가 오싹하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호롱불이 이유 없이 펄럭였고, 마당의 감나무 가지가 바람도 없이 한 차례 흔들렸다.
※ 4 · 도깨비의 정체와 약속
밤이 깊어 자정이 가까워지자 마을은 고요히 잠들었다. 돌쇠의 어머니도 부엌일을 마치고 건넌방에 누워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사랑방에 들인 노인 나그네만이 홀로 호롱불 앞에 앉아 있었고, 돌쇠도 어쩐 일인지 잠이 오지 않아 노인과 마주 앉아 있었다.
바깥에는 스산한 바람이 한차례 불어 마당의 감나무 가지를 흔들었다. 문풍지가 잠시 떨리는 소리를 내더니, 노인이 돌연 봇짐을 풀었다. 그 안에서 꺼낸 것은 한 자 남짓한 단단해 보이는 방망이 하나였다. 나무인지 쇠붙이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검붉은 빛의 방망이였는데, 끝에는 울퉁불퉁한 혹이 달려 있었다. 호롱불 아래에서도 그 방망이는 제 나름의 빛을 은은히 뿜어내는 듯하였다.
돌쇠는 눈이 휘둥그레져 노인을 쳐다보았다.
"어르신, 그것은 대체…"
노인은 껄껄 웃으며 방망이를 호롱불에 비춰 보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놀라지 말게. 나는 사실 이 근방 두메산골에 오래 깃들어 살고 있는 도깨비라네."
"도깨비라 하셨습니까?"
돌쇠의 입이 반쯤 벌어졌다. 노인, 아니 도깨비는 수염을 쓸며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놀라지 말게. 나는 자네 같은 사람을 해치러 온 것이 아닐세. 우리 같은 존재들은 사람들이 웃으면 덩달아 웃고, 사람들이 억울하면 그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오지. 이 수리골에서 수년간 들려오던 억울한 한숨이 내 귀에 닿은 지 오래일세. 헌데 어제 낮 쇠네댁의 통곡이 하늘에 사무치니 나도 더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더군."
돌쇠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도깨비의 말을 듣고 있었다. 도깨비는 방망이를 한 번 쥐어 보이더니 말을 이었다.
"이것이 바로 도깨비 방망이라네. 이걸로 빈 곳간을 두드리면 쌀이 쏟아져 나오고, 차 있는 곳간을 두드리면 그 안의 것이 돌덩이로 변한다네. 특히 욕심과 피눈물로 쌓은 재물은, 이 방망이 앞에서는 한낱 자갈에 지나지 않게 되지."
돌쇠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쿵쿵 뛰었다.
"그렇다면 어르신께서는…"
"그래. 오늘 밤 조만석의 곳간을 내가 직접 찾아갈 생각이네. 다만 한 가지, 자네에게 부탁이 있네. 이 일은 자네와 나 둘만의 비밀로 해주게. 도깨비의 일은 사람의 입을 타고 자랑이 되면 그 효력을 잃는 법이거든."
돌쇠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어르신의 은혜를 입에 함부로 올리겠습니까. 평생 가슴속에 묻어두겠습니다."
도깨비는 흡족한 듯 수염을 쓸며 빙그레 웃었다.
"자네는 복이 있는 사람이야. 가난한 자가 더 가난한 이웃에게 마지막 보리를 나눠줄 수 있는 마음. 어제 저녁 쇠네댁 부엌에 슬그머니 올려놓은 그 보리 한 줌, 내가 다 보았네. 그 마음이 오늘 밤 도깨비 방망이를 불러낸 진짜 주인일세."
돌쇠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분명 어둠 속에서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놓고 왔거늘, 도깨비는 그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말을 마친 도깨비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호롱불을 후 하고 불어 껐다. 방 안이 어둠에 잠기고, 바람 한 줄기가 문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돌쇠가 눈을 껌뻑이는 사이, 도깨비의 모습은 이미 방 안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다만 방 한가운데에 은은한 향내 같은 기운만이 남아 맴돌 뿐이었다.
※ 5 · 한밤중 도깨비 방망이의 춤
그 시각, 언덕 위 조만석의 기와집은 고요한 달빛 아래 잠들어 있었다. 대문에는 큼지막한 놋자물쇠가 걸려 있었고, 담장 네 귀퉁이에는 횃불이 가물가물 타오르고 있었으며, 곳간 앞에는 졸고 있는 하인 둘이 등을 기대고 앉아 코를 골았다. 조만석은 안방 비단 이불 속에서 두 다리 쭉 뻗고 잠들어 있었는데, 꿈속에서도 곳간의 황금송아지를 어루만지고 있는지 입꼬리가 실룩실룩 올라가 있었다. 머리맡에는 반쯤 비운 약주 주전자가 놓여 있었고, 비단 베개에는 금실로 수놓은 송아지 무늬가 번쩍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담장 위로 흰 수염 노인 하나가 사뿐히 올라섰다. 아까 돌쇠 집에서 호롱불을 껐던 그 도깨비였다. 도깨비는 한 걸음 허공을 디디더니 곳간 지붕 위에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 기왓장 하나 움직이지 않았고, 잠든 하인들은 자기 옆에 무엇이 지나갔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여전히 코를 골았다. 마당에서 번을 서던 덩치 큰 개 누렁이조차 두 귀만 쫑긋 세웠다가, 도깨비가 손가락을 까딱 흔들자 스르르 눈을 감고는 배를 드러낸 채 단잠에 빠져들었다.
도깨비는 봇짐에서 방망이를 꺼내 들더니, 곳간 자물쇠 앞에 내려섰다. 방망이 끝으로 자물쇠를 한 번 톡 두드리자, 쇳덩이가 엿가락처럼 스르르 풀어지면서 조용히 바닥에 떨어졌다. 곳간 문이 삐걱 소리도 없이 열리고, 도깨비는 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곳간 안은 달빛이 스며들어도 황금빛으로 번쩍였다. 한가운데에는 자랑스러운 황금송아지가 떡하니 서 있었고, 그 좌우로 쌀가마니와 비단 필목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도깨비는 허허 웃으며 송아지의 등을 쓰다듬었다.
"허, 참으로 잘도 빚어놓았구나. 허나 이 송아지에 서린 기운이 눈물이요, 뿔에 박힌 진주가 아랫마을 어미들의 한숨이라. 이래서야 어찌 그냥 둘 수 있겠느냐."
도깨비는 방망이를 휘두르며 곳간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낮고 흥겨운 가락을 흥얼거리기 시작하였다.
"나오너라 나오너라, 돌덩이야 나오너라. 들어가라 들어가라, 금덩이야 들어가라."
방망이가 허공을 한 번 휘둘리더니 황금송아지의 등허리를 툭 하고 쳤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번쩍이던 송아지의 몸뚱이가 한순간 거무튀튀해지더니, 뿔 끝에서부터 몸통까지 스르르 돌덩이로 변해가는 것이었다. 홍옥 눈알은 자갈로 떨어졌고, 진주 뿔은 부스러져 모래가 되었다. 잠시 후 곳간 한가운데에는 우락부락한 돌송아지 하나가 볼품없이 서 있게 되었다. 제 위세를 뽐내던 번쩍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시커먼 돌덩이가 볼품사납게 네 다리로 버티고 서 있는 모양이 어찌나 우스운지 도깨비도 참지 못하고 킥킥 웃음을 터뜨렸다.
도깨비는 쌀가마니 앞으로 성큼 다가가 방망이를 탁 내리쳤다. 그러자 가마니 속에서 쌀알이 화르르 돌멩이로 변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자갈은 가마니 배를 찢고 마룻바닥 위로 구르르 굴러 곳간 구석구석까지 퍼져 나갔다. 비단 필목에는 방망이 끝을 슬쩍 대기만 하였는데도 누런 갈대잎으로 삭아 바스러졌다. 금붙이와 은붙이가 담긴 놋그릇은 통째로 자갈더미가 되어 쟁그랑쟁그랑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구석에 세워두었던 은장도 수십 자루는 녹슨 못 뭉치가 되었고, 비단 주머니 속 금가락지와 금비녀들은 한 줌 모래가 되어 스르르 바닥으로 쏟아졌다.
곳간 전체가 한바탕 회오리가 지나간 것처럼 뒤집혔다. 그러나 신통하게도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동안 단 한 톨의 먼지 소리도 바깥으로 새어 나가지 않았다. 졸고 있는 하인들은 여전히 평화롭게 코를 골았고, 조만석은 꿈속에서 여전히 황금송아지를 쓰다듬으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오히려 꿈속에서는 송아지가 쑥쑥 자라나 집채만 해지더니, 온몸이 눈부시게 빛나 조만석의 얼굴을 환히 비추는 것이었다. 그는 꿈속에서 박장대소를 터뜨리며 희희낙락하였다.
돌덩이가 된 재물들 한가운데에서 도깨비는 봇짐을 풀더니, 변해버린 자갈과 모래와 갈대잎 가운데 진짜 알짜배기만 골라 담기 시작하였다. 원래 황금이었던 것들만 다시 도깨비 방망이로 톡톡 두드리자, 자갈이 도로 금싸라기가 되어 봇짐 안으로 차곡차곡 들어갔다. 도깨비의 손놀림은 춤을 추듯 가볍고 경쾌하였고, 그 와중에도 콧노래는 끊이지 않았다.
"받을 자에게로, 받을 자에게로. 흘린 자에게는 자갈을, 눈물 흘린 이에게는 금을."
할 일을 마친 도깨비는 묵직해진 봇짐을 들고 곳간 문을 나섰다. 그러고는 아랫마을 쪽을 향해 눈을 반짝이며 중얼거렸다.
"자, 이제는 빈 곳간들이 부를 차례지."
도깨비가 지붕 위로 훌쩍 뛰어오르자, 그의 봇짐에서 황금 가루 같은 빛이 바람을 타고 흩어져 아랫마을 쪽으로 사라락 날아갔다. 그것은 마치 하늘에서 내리는 황금빛 눈발처럼 반짝이며 수리골 골짜기를 따라 흘러갔다. 황금가루는 바람결에 흩날리며 아랫마을 초가지붕마다, 장독대마다, 감나무 가지마다 고르게 내려앉았다. 새벽닭이 첫 홰를 치기 직전, 도깨비의 모습은 산등성이 너머로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은은한 풀 향기만이 감돌았다.
※ 6 · 아수라장이 된 지주의 아침
해가 동녘 산마루에 걸리자마자 수리골 윗마을은 발칵 뒤집혔다. 새벽에 일어나 곳간 문을 열러 갔던 하인이 그대로 기절하여 마당에 나동그라진 것이다. 다른 하인 하나가 흔들어 깨워 사연을 묻자, 기절했던 하인은 손가락으로 곳간을 가리키며 사시나무 떨듯 떨기만 할 뿐 말을 잇지 못하였다. 입에서는 침이 흘렀고, 눈은 반쯤 뒤집힌 채였다.
소란스런 소리에 조만석이 잠옷 바람으로 뛰쳐나왔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상투는 비뚤어진 채였고, 어젯밤 마신 약주 기운이 아직 얼굴에 불그스름하게 남아 있었다.
"이놈들아, 무슨 일이냐. 이 이른 새벽에 왜들 이리 소란인 게냐."
하인들은 대답 대신 벌벌 떨며 곳간 쪽으로 길을 비켜섰다. 조만석이 고개를 돌려 곳간을 바라본 순간, 그의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하였다. 어제까지 위풍당당하던 황금송아지가 있어야 할 자리에, 우락부락한 돌송아지 하나가 볼품없이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뿔도 비뚤, 몸통도 울퉁불퉁, 눈자리에는 자갈 두 개가 아무렇게나 박혀 있을 뿐이었다.
조만석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르며 곳간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나 안은 더 가관이었다. 산처럼 쌓였던 쌀가마니는 배가 터져서 돌멩이만 그득하였고, 비단 필목은 누렇게 삭은 갈대잎이 되어 바스락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금붙이와 은붙이는 모조리 볼품없는 자갈 무더기로 변해 있었다. 어제 저녁까지 사방으로 번쩍이던 곳간은, 하룻밤 새 허름한 돌무덤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이게 무슨 일이냐. 내 금송아지, 내 쌀, 내 비단이 다 어디로 갔단 말이냐."
조만석은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허나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하인들은 그저 눈만 껌뻑일 뿐이었고, 마름 최가는 뒤늦게 달려와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 뒷걸음질만 치고 있었다.
조만석은 돌송아지의 등을 주먹으로 내리치다가 손등이 까져 피를 보았고, 쌀가마니의 돌멩이를 한 움큼 쥐어 허공에 뿌리다가 끝내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머리를 쥐어뜯었다. 평생을 모아들인 재물이 하룻밤에 돌무더기가 되었으니, 그 속이 오죽하였으랴. 눈에서는 피눈물이 나는 듯하였고, 가슴은 터질 듯이 벌렁거렸다.
"귀, 귀신의 장난이다. 도둑이 아니다. 이는 필시 귀신의 장난이 분명하다."
조만석은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다가 돌송아지의 뒷다리를 붙잡고 일어나려 하였으나, 돌송아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의 힘으로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무게였다. 조만석은 끝내 송아지의 등에 얼굴을 묻고는 흑흑 흐느껴 울기 시작하였다.
그 무렵 아랫마을에서는 또 다른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새벽에 물을 길으러 나갔던 쇠네댁이 우물가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비명을 질렀던 것이다.
"여, 여러분, 이, 이것 좀 보시오!"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보니, 놀랍게도 우물가와 마당 곳곳에 노란 금싸라기가 흩뿌려져 있었다. 감나무 가지에도, 초가지붕 위에도, 장독대 위에도 금알갱이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고사리손으로 주워 어미에게 내밀었다.
"엄마, 노란 별이 떨어졌어요!"
김노인은 떨리는 손으로 금알갱이 하나를 집어 햇빛에 비춰 보다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이, 이것은 진짜 황금이로구나. 누가… 대체 누가 이런 일을…"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아무도 영문을 알지 못하였다. 다만 하늘에서 내린 것이라 하기에는 너무 고르게, 너무 정확하게 아랫마을 집집마다에만 뿌려져 있었다. 윗마을에는 단 한 톨도 떨어지지 않았고, 아랫마을 스무남은 집 마당에만 금싸라기가 골고루 퍼져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집집마다 금싸라기의 양이 식솔의 수에 꼭 맞는 듯하여, 식구 많은 집은 한 됫박이요, 홀로 사는 노인의 집은 딱 한 움큼뿐이었다.
돌쇠도 자기 집 마당에 나와 서서 금싸라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어젯밤 도깨비의 약속을 떠올리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허나 입술을 꾹 깨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깨비의 일은 사람 입을 타면 효력을 잃는다 하지 않았던가. 돌쇠는 말없이 허리를 굽혀 금알갱이 하나를 집어 들고는, 하늘을 향해 깊이 머리를 숙였다. 그의 늙은 어머니도 아들 옆에 나란히 서서, 영문은 모르나 그저 눈시울을 붉히며 합장을 할 따름이었다.
※ 7 · 무너진 지주와 되살아난 마을
그날 이후로 수리골의 풍경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조만석은 곳간 사건 이후로 사흘간 드러누워 앓아 일어나지 못하였다. 의원을 불러 진맥을 짚었으나, 의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하였다.
"이 병은 약으로 고칠 병이 아니외다. 마음에 맺힌 한이 병이 되었으니, 내려놓지 않으면 낫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만석이 그 재물을 어찌 쉽게 내려놓을 수 있으랴. 자리에서 일어난 뒤에도 그는 매일같이 곳간에 들어가 돌송아지 앞에 앉아 한숨만 내쉬었다. 그러고는 뜬금없이 마름 최가를 불러 닦달을 하였다.
"네놈들이 도둑질을 한 것이 아니더냐. 어서 토해내거라."
마름 최가도 죽을상이 되었다. 억울하다고 엎드려 빌어보았으나, 조만석은 도무지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급기야 조만석은 곤장을 치라 호통을 쳤고, 마름 최가는 볼기가 터질 때까지 얻어맞고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하였다. 결국 하인 몇은 견디다 못해 보따리를 싸서 집을 나갔고, 마름 최가도 며칠 뒤 야반도주를 하고 말았다. 그가 남긴 쪽지에는 짤막하게 적혀 있을 뿐이었다.
"저도 억울하나이다. 그 밤의 일은 사람의 소행이 아닙니다."
윗마을 기와집은 하루가 다르게 쓸쓸해져 갔다. 소작료를 걷으러 오는 이도 없었고, 찾아오는 손님도 없었다. 조만석은 점점 병약해져 갔고, 아끼던 비단옷은 좀이 슬어 못 입게 되었으며, 마당에는 잡초가 무릎까지 자라났다. 그 소문이 인근 고을까지 퍼지자 사람들은 이렇게 수군거렸다.
"수리골 조만석의 재물이 하룻밤에 돌이 된 것은 하늘이 노하신 까닭이라네. 피눈물로 쌓은 재물이 어찌 자손만대까지 이어질 수 있겠는가."
그 말은 바람을 타고 팔도로 퍼져, 욕심 많은 지주들의 가슴에 서늘한 두려움을 심어주었다.
반대로 아랫마을은 새 생명을 얻은 듯하였다. 금싸라기를 모은 사람들은 그 어느 한 톨도 서로 다투지 않고 공평하게 나누었다. 김노인 댁에는 손주들이 오랜만에 배불리 먹었고, 쇠네댁은 세 자식에게 따뜻한 쌀밥을 지어 먹이며 남편 영전에 처음으로 웃음을 지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금으로 공동의 곳간을 지었고, 흉년이 들면 서로 돕기로 약조하였다. 어느 한 집도 더 이상 굶는 이가 없게 된 것이다. 약조는 문서로 남겨졌고, 마을 어귀 느티나무 아래 돌비석에 그 내용을 새겨 두었다.
"한 사람이 굶으면, 온 마을이 함께 허리띠를 맨다."
돌쇠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떠주며 조용히 물었다.
"아들아, 너는 그날 밤 무엇을 본 것이냐. 낯빛이 달라졌는데도 아무 말이 없구나."
돌쇠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 그냥 좋은 꿈을 하나 꾸었을 뿐입니다."
'흰 수염 어르신, 그 밤의 은혜는 소자의 가슴속 깊이 묻어두겠나이다.'
어머니는 더 묻지 않았다. 다만 아들의 눈빛이 전보다 한결 밝아진 것을 보고, 그것으로 족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밥상 위로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오랜만에 부엌에 쌀밥 냄새가 가득하였다.
그로부터 몇 해가 흘러, 수리골에는 재미난 이야기 하나가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아랫마을 어느 해진 밤에 하늘에서 황금비가 쏟아졌다는 이야기, 언덕 위 지주의 곳간이 하룻밤 새 돌무덤으로 변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한 흰 수염 노인이 단풍나무 지팡이 하나로 해냈다는 이야기였다. 아이들은 할머니 무릎을 베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잠이 들었고, 어른들은 그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장돌뱅이들도 수리골을 지날 때면 돌송아지 이야기를 한 자락 흥얼거렸고, 그 소문은 먼 고을까지 퍼져 나갔다.
그리고 아랫마을 어귀 감나무 아래에는, 어느 해부터인가 이름 없는 작은 돌탑이 하나 생겼다. 누가 세웠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고, 다만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고개를 한 번씩 숙이고 지나갔다. 돌쇠는 그 돌탑 앞을 지날 때마다, 흰 수염 노인의 환한 웃음을 떠올리며 혼자 빙그레 웃었다. 하늘도 보고 땅도 듣는다던 그 말씀이, 수리골에 따스한 봄바람처럼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세월이 흘러 돌쇠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었을 때에도, 수리골 아랫마을 감나무 아래 돌탑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고 한다.
유튜브 엔딩멘트
사람의 피눈물로 쌓아올린 재물은, 결국 한낱 돌덩이에 불과하다는 옛 조상들의 지혜가 가슴에 와닿는 이야기였습니다. 악덕 지주의 황금송아지는 하룻밤에 돌이 되었고, 가난한 이웃들의 빈 곳간에는 황금비가 내렸습니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 속 도깨비의 심판, 어떻게 보셨는지요. 댓글로 소감 남겨주시고, 좋아요와 구독은 큰 힘이 됩니다. 다음 이야기에서 또 만나요.
썸네일 이미지 프롬프트 (16:9, 실사, no text)
A cinematic 16:9 photorealistic scene set in a Joseon-era Korean nobleman's storehouse at dawn. In the center stands a crude, rough gray stone statue shaped like an ox, where a gleaming golden calf used to be — cracks visible, dull morning light falling on it. Around the stone ox, burst rice sacks spill not rice but ordinary river pebbles across the wooden floor. Faded yellow reed leaves scatter where silk once lay. In the background, a wealthy Korean yangban man in a disheveled white hanbok kneels on the floor with his topknot askew, head in hands, utterly devastated. Through the open storehouse door, faint golden sparkles can be seen drifting in the air toward a distant humble thatched-roof village below the hill. Traditional Korean hanok architecture, wooden beams, tiled roof. Warm amber dawn light streaming through paper windows. Dramatic chiaroscuro lighting, shallow depth of field, ultra-realistic, 8K resolution, film-like color grading, no text, no letters, no watermar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