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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종을 자유롭게 한 도깨비 『동패기문』

    어린 나이에 팔려 와서 매질 속에 살던 아이의 처지를, 도깨비가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태그 (1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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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252자)

    아홉 살 어린 나이에 쌀 몇 말에 팔려 와, 날마다 매를 맞고 굶주리며 종살이하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의 서러운 눈물을, 늙은 고목에 사는 도깨비가 밤마다 지켜보고 있었지요. 어느 날, 아이가 반쯤 죽도록 매를 맞자 도깨비는 더 이상 참지 못했습니다. 도깨비는 모진 주인을 깨우쳐 아이를 풀어 주고, 나아가 따뜻한 양부모의 품까지 이어 주려 하는데요. 마음씨 고운 도깨비와 가여운 종아이의, 눈물 나고도 훈훈한 이야기가 지금 시작됩니다.

    ※ 이 이야기는 도깨비 설화를 바탕으로 각색한 창작 오디오 드라마입니다.

    ※ 1: 매 맞는 종 아이 덕이

    여러분, 세상에 도깨비가 정말 있을까요? 오늘은 마음씨 고운 도깨비가, 매 맞고 살던 가여운 종아이 하나를 자유롭게 해 준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끝까지 들으시면 가슴이 훈훈해지실 겝니다.

    옛날 옛적, 경상도 어느 고을에 곽 부자라는 사람이 살았더랍니다. 논밭이 끝도 없이 넓어 고을에서 제일가는 부자였지요. 그런데 이 곽 부자로 말할 것 같으면, 재물은 산더미같이 쌓아 놓고도 인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아주 모진 사람이었더랍니다. 아랫사람 부리기를 마소 부리듯 하고,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매질부터 하니, 그 집 종살이하는 사람들이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지요.

    곽 부자의 인색함으로 말하자면, 온 고을에 소문이 자자했더랍니다. 흉년이 들어 이웃들이 굶어 죽어 갈 때도, 그 넓은 곳간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쌀 한 톨 내주는 법이 없었지요. 오히려 굶주린 이웃에게 곡식을 비싸게 꾸어 주고는, 이듬해 그 곱절을 받아 내어 남의 논밭을 야금야금 제 것으로 만들었더랍니다. 그러니 고을 사람들이 곽 부자를 두고 뒤에서 수군거리기를, "저 사람은 죽어서 지옥 불에 떨어질 게야" 하며 손가락질을 했지요. 허나 곽 부자는 그런 말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더랍니다. 재물만 쌓이면 그만이라 여겼으니까요.

    그 집에 덕이라는 어린 종아이가 하나 있었더랍니다. 나이 이제 겨우 아홉 살. 흉년에 부모를 잃고 오갈 데가 없어, 쌀 몇 말에 그 집으로 팔려 온 가여운 아이였지요. 그 어린것이 새벽부터 밤까지 물을 긷고, 마당을 쓸고, 소죽을 쑤고, 잠시도 쉴 틈이 없었더랍니다. 그러고도 조금만 굼뜨면 곽 부자의 불호령과 매질이 떨어지니, 덕이의 등에는 성한 날이 없었지요.

    덕이의 하루는 참으로 고달팠더랍니다. 아직 동도 트기 전인 새벽에 일어나, 우물에서 물을 길어 큰 독을 가득 채워야 했지요. 그 무거운 물동이가 아홉 살 어린것의 몸집에는 얼마나 버거웠겠습니까. 물을 긷다 미끄러져 물동이를 깨뜨리기라도 하면, 그날은 밥도 굶고 매를 맞아야 했더랍니다. 물을 다 긷고 나면 마당을 쓸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소죽을 쑤고, 잔심부름을 하느라 종일 발이 땅에 붙어 있을 새가 없었지요. 그러고도 밤이 되면, 다른 종들이 먹다 남긴 찬밥 한 덩이가 그 어린것의 하루 끼니 전부였더랍니다.

    "이놈, 물 길어 오라 한 지가 언젠데 여태 꾸물대느냐! 이 게으른 놈 같으니!"

    곽 부자가 회초리를 휘두르면, 덕이는 그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웅크릴 뿐이었더랍니다. 아파도 소리 내어 울지도 못했지요. 울면 시끄럽다고 또 매를 맞으니까요.

    그래도 이 덕이라는 아이는, 심성이 어찌나 곱던지요. 제 처지가 그리 딱한데도 남을 미워할 줄을 몰랐더랍니다. 부엌에서 눌은밥 한 덩이가 생기면, 제가 먹지 않고 마당의 늙은 개한테 나눠 주고, 다친 참새가 마당에 떨어지면 몰래 품어다 살려 보내곤 했지요. 어린것이 매를 맞고 굶주리면서도, 그 여린 마음만은 조금도 모질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더랍니다. 곽 부자가 장에 내다 팔려고 곳간에 쌓아 둔 곶감 꾸러미를 세어 보니, 하나가 모자라지 뭡니까. 곽 부자는 대뜸 덕이를 불러다 놓고 다그쳤지요.

    "이놈, 네가 곶감을 훔쳐 먹었지? 바른대로 대지 못할까!"

    "아니에요, 나리. 저는 손도 안 댔어요. 정말이에요."

    덕이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곽 부자는 믿어 주질 않았더랍니다. 알고 보면 그 곶감은 곳간을 드나들던 쥐가 물어 간 것이었는데 말이지요. 곽 부자는 애먼 덕이를 마당에 꿇어앉히고, 사정없이 매를 때렸더랍니다. 그날 밤, 덕이는 얻어맞은 종아리가 퉁퉁 부은 채로, 차디찬 헛간 구석에 홀로 웅크리고 앉아 있었지요.

    '엄마, 아버지... 보고 싶어요. 저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요.'

    덕이는 부모님 생각에 소리 죽여 흐느꼈더랍니다. 어린것이 얼마나 서럽고 외로웠겠습니까. 달빛만이 헛간 문틈으로 스며들어, 그 작은 어깨를 어루만질 뿐이었지요.

    덕이가 그리 서럽게 우는 밤이 어디 하루 이틀이었겠습니까. 그래도 이 아이는 아침이 밝으면 눈물을 닦고, 또 묵묵히 그 고된 일을 해냈더랍니다. 언젠가는 이 지긋지긋한 종살이가 끝날 날이 오겠지, 그 작은 소망 하나를 가슴에 품고서 말이지요. 하지만 어린 종의 신세로, 대체 그런 날이 오기나 하겠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바로 그 가여운 덕이에게, 참으로 뜻밖의 인연이 찾아오려 하고 있었더랍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더랍니다. 어디선가 부스럭부스럭,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지 뭡니까. 덕이가 놀라 고개를 드니, 헛간 한구석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지요. 그러더니 그 어둠 속에서, 커다랗고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스윽 일어서는 게 아니겠습니까. 덕이는 그만 겁에 질려 숨도 못 쉬고 얼어붙고 말았더랍니다.

    과연 그 헛간 어둠 속에서 나타난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 2: 고목 도깨비와의 만남

    헛간 어둠 속에서 스윽 일어선 그 커다란 그림자의 정체는, 바로 도깨비였더랍니다.

    덕이가 놀라 바라보니, 그 도깨비는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생김새였지요. 키는 장정 둘을 합친 것만큼이나 크고, 머리는 산발한 더벅머리에, 눈은 화등잔만 하게 부리부리했더랍니다. 손에는 울퉁불퉁한 도깨비방망이를 하나 척 들고 있었지요. 무섭게 생기기는 했다만, 어딘가 모르게 순박하고 정겨운 구석이 있는 그런 얼굴이었더랍니다.

    덕이는 그만 겁에 질려 뒷걸음질을 쳤더랍니다.

    "도, 도깨비다! 살려 주세요!"

    그런데 그 도깨비가, 뜻밖에도 껄껄 웃으며 이러는 게 아니겠습니까.

    "허허, 이 녀석아. 그리 겁먹을 것 없다. 내가 이 헛간 뒤 늙은 고목나무에 산 지가 어언 백 년인데, 여태 이 집 사람들은 나를 본 적도 없느니라. 그런데 이상하게도 네 눈에는 내가 보이는구나. 그건 네 마음이 그만큼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야. 마음이 흐린 자에게는 이 도깨비가 보이지도 않는 법이거든."

    덕이는 그 말에 조금 마음이 놓였더랍니다. 목소리가 어찌나 구수하고 다정하던지, 무섭던 마음이 스르르 녹는 것 같았지요.

    "도깨비님도... 저를 때리러 오신 건 아니지요?"

    그 말에 도깨비가 그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더랍니다. 어린것이 오죽 매를 맞고 살았으면, 낯선 이를 보고 대뜸 때리러 왔느냐 묻는단 말입니까. 도깨비는 덕이 곁에 슬며시 다가와 앉으며, 부드럽게 말했더랍니다.

    "아니란다, 이 녀석아. 나는 너를 때리러 온 게 아니야. 실은 내가 이 헛간에서 여러 날 밤, 네가 홀로 우는 것을 다 지켜보았단다. 그 어린것이 매를 맞고 굶주리며 서럽게 우는 걸 보고 있자니, 이 도깨비 가슴이 다 미어지더구나. 그래서 오늘은 도저히 못 참고 이렇게 나온 게야."

    덕이는 그 말에 눈물이 핑 돌았더랍니다. 이 세상에 저를 가엾게 여겨 주는 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오랜만에 느껴 보는 따뜻함이었겠습니까. 도깨비는 커다란 손으로 덕이의 부은 종아리를 가만히 어루만졌더랍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퉁퉁 부었던 상처가 씻은 듯이 아물지 뭡니까.

    "어, 안 아파요! 하나도 안 아파요!"

    덕이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자, 도깨비가 흐뭇하게 웃었더랍니다.

    "허허, 그것 봐라. 이 도깨비가 이래 봬도 재주가 좀 있느니라. 자, 배도 고프지? 이것 좀 먹어 보렴."

    덕이가 조심스레 물었더랍니다.

    "도깨비님은 왜 이 고목나무에 혼자 사세요? 무섭지 않으세요?"

    "허허, 도깨비가 무섭긴 뭐가 무섭겠느냐. 다만 혼자라 심심하긴 하지. 이 늙은 고목이 내 집인데, 백 년을 여기 살면서 나랑 벗해 줄 사람 하나 없었단다. 사람들은 나를 보면 놀라 달아나기 바쁘거나, 아예 나를 보지도 못하니 말이야. 그러니 오늘 너를 만난 게, 이 도깨비한테는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모른단다."

    그 말에 덕이는 어쩐지 도깨비가 딱하게 여겨졌더랍니다. 저도 외롭고, 도깨비도 외롭고. 외로운 둘이 이렇게 만났으니,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귀한 벗이 되겠습니까.

    도깨비가 도깨비방망이를 한 번 툭 치자, 어디선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 한 그릇과 따끈한 메밀묵이 뚝딱 나타났더랍니다. 덕이는 그런 흰 쌀밥은 이 집에 팔려 온 뒤로 구경도 못 해 본 터였지요. 덕이가 허겁지겁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며, 도깨비는 흐뭇하면서도 어쩐지 콧등이 시큰해지더랍니다.

    "천천히 먹으렴, 천천히. 체하겠구나. 앞으로는 이 도깨비가 밤마다 이렇게 맛난 걸 가져다주마."

    그날 밤 이후로, 도깨비는 정말로 밤마다 덕이를 찾아왔더랍니다. 낮에 곽 부자에게 시달리며 매를 맞고 굶주린 덕이가, 밤이 되어 헛간에 홀로 들면, 도깨비가 슬며시 나타나 맛난 음식을 가져다주고 다친 곳을 어루만져 주었지요. 때로는 재미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고, 때로는 도깨비방망이로 이런저런 신기한 재주를 부려 덕이를 웃게 해 주었더랍니다.

    "도깨비님, 그 옛날이야기 또 해 주세요. 호랑이가 곶감 무서워 도망친 이야기요!"

    "허허, 그 이야기가 그리 좋으냐? 그래, 그럼 오늘도 해 주마. 옛날 옛적 깊은 산골에 호랑이 한 마리가 살았는데 말이다..."

    도깨비가 구성진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면, 덕이는 눈을 반짝이며 까르르 웃었더랍니다. 낮 동안 매를 맞고 주눅 들어 있던 아이가, 밤이 되어 도깨비 앞에서만은 제 나이답게 천진하게 웃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도깨비는 그렇게 웃는 덕이의 얼굴을 볼 때마다, 이 아이를 어떻게든 저 지긋지긋한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자꾸만 커져 갔더랍니다.

    어린 덕이에게, 그 도깨비는 어느새 세상 하나뿐인 벗이자 든든한 어른이 되어 갔더랍니다. 도깨비 또한, 그 맑고 착한 아이를 볼 때마다 정이 깊어만 갔지요. 백 년을 고목에서 홀로 지내며 무료하던 도깨비에게, 덕이는 참으로 어여쁘고 소중한 존재가 되어 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더랍니다. 도깨비가 그 착한 아이의 처지를 도저히 더는 두고 볼 수 없게 되는,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지요.

    ※ 3: 참을 수 없는 매질

    과연 그 끔찍한 일이란 무엇이었을까요.

    여느 때처럼 덕이가 곽 부자의 심부름으로 사랑채에 귀한 청자 항아리를 옮기던 날이었더랍니다. 그런데 어린것의 힘이 부쳤던지, 그만 그 항아리를 놓쳐 마당에 떨어뜨리고 말았지 뭡니까. 쨍그랑, 소리와 함께 항아리가 산산조각이 나자, 곽 부자가 버선발로 뛰쳐나왔더랍니다.

    "이 천하에 몹쓸 놈! 그 항아리가 얼마짜린 줄 알기나 하느냐! 네놈을 오늘 아주 반쯤 죽여 놓겠다!"

    곽 부자는 눈이 뒤집혀, 몽둥이를 집어 들고 덕이를 사정없이 내리쳤더랍니다. 어린것이 아무리 잘못했다 빌어도, 곽 부자는 도무지 멈추질 않았지요. 덕이는 온몸을 두들겨 맞고, 그예 마당에 쓰러져 정신을 잃고 말았더랍니다. 곽 부자는 그런 아이를 헛간에 내던지듯 처넣고는, "밥도 주지 말고 그냥 둬라!" 하고 소리치며 들어가 버렸지요.

    그날 밤, 도깨비가 여느 때처럼 헛간을 찾았다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덕이를 발견하고는 그만 눈이 뒤집히고 말았더랍니다.

    "아이고, 이게 웬일이냐! 우리 덕이가, 우리 착한 덕이가 이 지경이 되다니!"

    도깨비는 황급히 커다란 손으로 덕이의 상처를 어루만졌더랍니다. 도깨비의 신통한 재주로 겉의 상처는 이내 아물었지만, 이번만은 도깨비의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부글부글 끓어올랐지요. 백 년을 살며 웬만한 일에는 껄껄 웃어넘기던 도깨비였지만, 이 어린것이 이토록 참혹하게 매를 맞은 것을 보고는,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윽고 덕이가 희미하게 눈을 떴더랍니다. 곁에서 걱정스레 지켜보던 도깨비가 반가워 어쩔 줄을 몰라 했지요.

    "덕아, 정신이 드느냐? 아이고, 이 가여운 것. 얼마나 아팠을꼬."

    "도깨비님... 저 안 죽었어요?"

    그 한마디에 도깨비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 떨어지고 말았더랍니다. 어린것이 오죽 무섭고 아팠으면, 정신을 차리자마자 제가 죽지 않았느냐 묻는단 말입니까.

    "안 죽었다, 안 죽었어. 이 도깨비가 있는 한, 다시는 너를 그리 아프게 두지 않으마. 내 반드시 저 모진 곽 부자를 혼쭐내어, 너를 저 지긋지긋한 종살이에서 풀어 주고 말겠다. 이 도깨비가 약속하마."

    덕이는 도깨비의 그 따뜻한 말에, 아픈 것도 잊고 스르르 잠이 들었더랍니다. 도깨비는 잠든 아이의 얼굴을 오래도록 내려다보며,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을 했지요.

    '아무리 종이라 한들, 아홉 살배기 어린것을 이 지경이 되도록 때리다니. 저 곽 부자라는 자는 사람의 탈을 쓴 짐승이로구나. 안 되겠다. 이 도깨비가 저 모진 인간을 단단히 혼내 주어, 다시는 이 아이한테 손찌검을 못 하게 만들어야겠다.'

    도깨비는 그렇게 굳게 결심했더랍니다. 그런데 도깨비가 누구입니까. 그저 힘으로 우악스럽게 밀어붙이는 법이 없지요. 도깨비란 원래 사람을 골탕 먹이고 홀리는 데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도깨비는 곽 부자의 모진 마음을 뿌리부터 뒤흔들어 놓을, 아주 기막힌 꾀를 하나 떠올렸더랍니다.

    곽 부자는 그날 밤 잠자리에 들 때까지도, 제가 저지른 일을 조금도 뉘우치지 않았더랍니다. 그저 부서진 항아리 값이 아깝다며 혀를 끌끌 찰 뿐이었지요. 그런 곽 부자의 모습을 고목나무 위에서 지켜보던 도깨비는, 이제 때가 되었다 싶어 스르르 몸을 일으켰더랍니다.

    이튿날 밤이었더랍니다. 곽 부자가 사랑방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데, 어디선가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방 안의 등잔불이 저절로 확 꺼지지 뭡니까. 곽 부자가 놀라 눈을 뜨니, 방 한가운데에 커다랗고 시커먼 도깨비가 두 눈을 부리부리하게 부릅뜨고 서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으아악! 이, 이게 뭐냐! 귀신이냐 도깨비냐!"

    곽 부자가 혼비백산하여 이불을 뒤집어쓰자, 도깨비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더랍니다.

    "곽 부자야! 나는 이 고을을 다스리는 도깨비 대왕이니라. 네 이놈, 네가 어린 종아이를 그토록 모질게 때리고 굶긴 죄, 하늘이 다 내려다보고 계신 것을 몰랐더냐! 오늘 내가 그 죄를 물으러 왔노라!"

    곽 부자는 이불 속에서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었더랍니다. 재물만 알고 겁이라고는 없던 자였지만,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도깨비 앞에서는 그만 오금이 저려 옴짝달싹도 못 했지요.

    "사, 살려 주십시오, 도깨비 대왕님! 제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으니, 제발 목숨만은..."

    도깨비의 호통에 온 방 안이 쩌렁쩌렁 울렸더랍니다. 곽 부자는 이불 속에서 이가 딱딱 부딪치도록 떨며, 그저 손이 발이 되도록 빌 뿐이었지요. 재물로 뭐든 할 수 있다 믿었던 곽 부자였지만, 이 도깨비 앞에서는 그 재물이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모르겠다고? 이런 뻔뻔한 놈을 보았나! 정녕 네 죄를 모른다면, 내 오늘 밤 네게 그 죄가 어떤 것인지 똑똑히 보여 주마. 네가 그 어린것한테 저지른 일을, 네가 직접 당해 보아야 정신을 차릴 터인즉!"

    도깨비가 도깨비방망이를 번쩍 치켜드는 순간, 곽 부자의 눈앞이 아득해지며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더랍니다. 과연 도깨비는 곽 부자에게 어떤 조화를 부리려는 것이었을까요.

    ※ 4: 종 아이가 되어 본 곽 부자

    도깨비방망이가 번쩍 빛나는 순간, 곽 부자는 그만 정신이 아득해지고 말았더랍니다.

    한참 만에 눈을 떠 보니, 이게 웬일입니까. 곽 부자는 어느새 자기 몸이 아니라, 작고 야윈 어린아이의 몸이 되어 있지 뭡니까. 헐벗은 무명옷을 걸치고, 손발은 트고 갈라진, 영락없는 종아이의 몰골이었지요. 게다가 눈앞에는 웬 험상궂은 부잣집 주인이 회초리를 든 채 자기를 노려보고 있었더랍니다.

    "이놈, 물 길어 오라 한 지가 언젠데 여태 꾸물대느냐!"

    그 주인이 사정없이 회초리를 휘두르니, 곽 부자의 종아리에 불이 나는 듯한 통증이 확 밀려왔더랍니다. 곽 부자는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지요.

    "아이고, 아파라! 왜 나를 때리는 게요! 나는 곽 부자란 말이오!"

    허나 아무리 소리쳐도 소용이 없었더랍니다. 도깨비의 조화로, 곽 부자는 어느새 어린 종아이가 되어 그 모진 종살이를 고스란히 겪게 된 것이지요. 새벽부터 무거운 물동이를 이고 나르니 어깨가 빠질 듯 아프고, 종일 쉴 새 없이 부림을 당하니 온몸이 천근만근이었더랍니다. 조금만 굼떠도 매가 날아들고, 배가 고파 쓰러질 지경인데도 주는 것이라곤 식은 찬밥 한 덩이뿐이었지요.

    곽 부자가 종아이의 몸으로 겪은 하루는, 참으로 길고도 고달팠더랍니다. 무거운 물동이를 나르다 발을 헛디뎌 물을 쏟으면 어김없이 매가 날아들고, 소죽을 쑤다 불을 잘못 지피면 또 불호령이 떨어졌지요. 손이 얼어 터지도록 찬물에 걸레를 빨고, 종일 이 심부름 저 심부름에 시달리니, 잠시도 허리를 펼 틈이 없었더랍니다. 그러다 잠깐 손을 놓고 숨이라도 돌릴라치면, "이 게으른 놈!" 하는 호통과 함께 회초리가 등짝을 후려쳤지요. 곽 부자는 그 회초리가 떨어질 때마다, 아 이것이 바로 내가 덕이한테 하던 짓이구나, 하는 생각에 살이 떨렸더랍니다.

    곽 부자는 그제야 뼈저리게 깨닫기 시작했더랍니다. 이 고통이, 이 서러움이, 바로 자기가 어린 덕이에게 날마다 안겨 주던 것이었음을 말입니다.

    '아이고... 이렇게 아프고 서러운 것이었구나. 내가 그 어린것한테 이 짓을 매일같이 했단 말인가. 그 여린 것이 이 고통을 어찌 다 견뎠단 말인가.'

    밤이 되자, 종아이가 된 곽 부자는 차디찬 헛간 구석에 홀로 웅크리고 앉았더랍니다. 얻어맞은 자리가 쑤셔 잠도 오지 않고, 배는 고프고, 그리운 이는 아무도 없으니, 그 외로움과 서러움이 사무쳐 눈물이 절로 흐르더랍니다. 그렇게 소리 죽여 우는데, 문득 부모 생각이 간절해지지 뭡니까.

    '엄마, 아버지... 보고 싶어요. 저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요.'

    그 순간, 곽 부자는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더랍니다. 그것은 바로, 덕이가 밤마다 헛간에서 흐느끼며 되뇌던 그 말이 아니겠습니까. 곽 부자는 그제야 그 어린것의 외로움과 그리움이 어떤 것이었는지, 가슴이 찢어질 듯 사무치게 느낀 것이지요.

    "아이고, 내가... 내가 죽일 놈이로구나! 그 가여운 것을 이토록 모질게 대하다니. 사람이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곽 부자가 헛간 바닥을 치며 통곡을 하는 순간, 눈앞이 다시 아득해지더랍니다. 그러고는 번쩍 정신을 차려 보니, 곽 부자는 어느새 제 사랑방으로 돌아와 있었지요. 온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고, 두 뺨에는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더랍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여전히 그 커다란 도깨비가 팔짱을 낀 채 곽 부자를 내려다보고 있었지요.

    "이제 좀 알겠느냐, 곽 부자야. 네가 그 어린것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곽 부자는 도깨비 앞에 넙죽 엎드려, 이마를 방바닥에 찧으며 통곡했더랍니다.

    "알겠습니다, 도깨비 대왕님! 이제야 똑똑히 알겠습니다! 제가 그동안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어린 덕이한테 지은 죄를 생각하니,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부디, 부디 제가 그 죄를 갚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곽 부자는 눈물 콧물을 다 쏟으며 거듭거듭 이마를 조아렸더랍니다. 평생 남 앞에 고개 한 번 숙인 적 없던 그 오만하던 사람이, 도깨비 앞에서 저리도 납작 엎드려 뉘우치니, 참으로 딴사람이 다 되었지요.

    도깨비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더랍니다. 그토록 모질던 자가 저리 진심으로 뉘우치니, 그 조화가 헛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지요. 진심으로 뉘우치는 자에게는 반드시 다시 착해질 길이 열리는 법이니까요. 허나 도깨비는 아직 마음을 놓지 않았더랍니다. 말로만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야 진짜가 아니겠습니까.

    "곽 부자야, 뉘우쳤다니 다행이다만, 뉘우침이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니라. 네가 정녕 그 죄를 갚고자 한다면, 날이 밝는 대로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할 것이야. 할 수 있겠느냐?"

    "하다뿐이겠습니까!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과연 도깨비는 곽 부자에게 무엇을 하라 이를 것이며, 어린 덕이의 운명은 이제 어떻게 바뀌게 될까요.

    ※ 5: 불타는 노비 문서

    날이 밝자, 곽 부자는 정말로 딴사람이 되어 있었더랍니다.

    간밤에 도깨비의 조화로 어린 종의 고통을 뼈저리게 겪은 곽 부자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제 지난날을 돌아보았지요. 아침이 밝기가 무섭게, 곽 부자는 종들을 시켜 헛간에 있는 덕이를 사랑방으로 데려오라 했더랍니다. 종들은 어리둥절했지요. 늘 매질하고 호통치던 주인이, 어인 일로 그 어린 종을 사랑방으로 부른단 말입니까.

    곽 부자는 밤새 이런 생각을 하고 또 했더랍니다.

    '내가 그동안 재물만 알고, 사람 귀한 줄을 몰랐구나. 저 어린 덕이가 무슨 죄가 있어 그 고생을 했단 말인가. 그저 가난한 집에 태어나, 부모를 일찍 여읜 것이 죄라면 죄겠지. 헌데 나는 그 딱한 처지를 헤아리기는커녕, 짐승만도 못하게 부려 먹었으니. 오늘부터라도 사람 노릇을 하지 않으면, 나는 정말 죽어서 지옥 불을 면치 못할 것이야.'

    그렇게 밤을 지새운 곽 부자의 얼굴에는, 여태 볼 수 없던 부끄러움과 참회의 빛이 서려 있었더랍니다.

    덕이는 겁에 질려 사랑방으로 들어섰더랍니다. 또 무슨 일로 매를 맞으려나 싶어, 어린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곽 부자가 덕이를 보자마자, 버선발로 달려와 그 작은 손을 덥석 잡는 게 아니겠습니까.

    "덕아, 덕아. 이 못난 주인을 용서해 다오. 내가 그동안 너한테 저지른 일들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낯을 들 수가 없구나. 내가 사람이 아니었다. 이 어린것을 그토록 모질게 대했으니, 내 죄가 하늘에 사무칠 것이야."

    덕이는 그만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더랍니다. 평생 무섭기만 하던 주인이, 눈물까지 글썽이며 제게 용서를 빈다니, 이게 대체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지요. 그런데 곽 부자의 행동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더랍니다. 곽 부자는 벽장 깊숙이 넣어 두었던 문갑을 꺼내더니, 그 안에서 누렇게 바랜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지요. 바로, 덕이를 종으로 사 올 때 작성한 노비 문서였더랍니다.

    "덕아, 이것이 무엇인 줄 아느냐. 이것이 바로 너를 이 집 종으로 묶어 둔 노비 문서란다. 이 종이 한 장 때문에, 너는 그동안 사람 대접도 못 받고 이 고생을 한 것이야. 헌데 오늘, 내가 이것을 이렇게 하마."

    곽 부자는 그 노비 문서를 들고 마당으로 나가더랍니다. 그러고는 아궁이에서 불씨를 가져와, 그 문서에 불을 붙였지요. 화르륵, 노비 문서가 불길에 휩싸여 재가 되어 스러지는 것을, 덕이는 멍하니 바라보았더랍니다.

    "덕아, 이제 너는 종이 아니다. 오늘부로 너는 자유의 몸이야. 그 누구의 종도 아닌, 온전한 너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게란다."

    그 말에 덕이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그만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더랍니다. 자유라는 것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 어린것이 어찌 다 알겠습니까마는, 그저 이제 더 이상 매를 맞지 않아도 된다는 것, 굶주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꿈만 같아 자꾸만 눈물이 흘렀지요.

    곽 부자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더랍니다. 종이 된 어린것을 그냥 빈손으로 내보낼 수는 없다며, 덕이가 앞으로 살아갈 밑천을 마련해 주기로 한 것이지요.

    "덕아, 이 주인이 너한테 진 빚이 하늘 같으니, 이것으로 조금이나마 갚고자 한다. 여기 논 서 마지기와 약간의 재물을 너에게 주마. 이것을 밑천 삼아, 부디 좋은 사람 만나 따뜻하게 살아가거라."

    덕이는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지만, 곽 부자의 뜻이 워낙 굳으니 어쩔 수가 없었더랍니다. 곽 부자는 그날 이후로 아주 딴사람이 되었지요. 그동안 모질게 부려 먹던 다른 종들도 하나둘 자유의 몸으로 풀어 주고, 헐값에 빼앗다시피 한 이웃의 논밭도 본래 주인에게 돌려주었더랍니다. 흉년에 곳간을 열어 굶주린 이웃을 구제하니, 고을 사람들이 입을 모아 곽 부자가 사람이 되었다며 놀라워했지요.

    곽 부자가 그렇게 착한 사람으로 거듭나니, 신기하게도 그 집안에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더랍니다. 늘 주인 눈치만 보며 벌벌 떨던 종들이 이제는 마음 편히 일하고, 곽 부자의 늙은 아내도 남편이 달라진 것을 보며 눈물을 훔쳤지요. 재물이 산더미같이 쌓였을 때도 늘 냉랭하던 그 집이, 인정을 나누기 시작하니 비로소 사람 사는 집다워진 것입니다.

    그날 밤, 도깨비가 흐뭇한 얼굴로 덕이를 찾아왔더랍니다.

    "덕아, 이제 너는 자유의 몸이 되었구나. 이 도깨비가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헌데 덕아,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다 끝난 것이 아니란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야. 너처럼 어린것이 홀로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너를 아끼고 보살펴 줄 따뜻한 부모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덕이는 그 말에 눈이 동그래졌더랍니다. 부모라니, 흉년에 여읜 뒤로는 감히 바라지도 못했던 그 말이 아니겠습니까.

    "덕아, 실은 이 도깨비가 너에게 꼭 맞는 인연을 하나 알고 있단다. 내일 아침, 나를 따라나설 채비를 하거라. 이 도깨비가 너를 참으로 따뜻한 곳으로 데려다주마."

    과연 도깨비가 덕이를 데려가려는 그곳은, 어떤 곳이었을까요.

    ※ 6: 도깨비가 이어 준 인연

    이튿날 아침, 덕이는 도깨비를 따라 길을 나섰더랍니다.

    도깨비는 낮에는 사람들 눈에 띌까 하여, 커다란 몸을 작게 줄여 덕이의 봇짐 속에 슬쩍 숨어 따라나섰지요. 그렇게 산을 하나 넘고 물을 하나 건너, 한나절을 걸어 다다른 곳은, 어느 조용하고 정겨운 산골 마을이었더랍니다. 마을 어귀에 작지만 정갈한 초가집 한 채가 있었는데, 도깨비가 그 집을 가리키며 말했더랍니다.

    "덕아, 저 집이 바로 내가 너를 데려온 곳이란다. 저 집에는 김 서방 내외가 사는데, 참으로 마음씨 곱고 정 많은 사람들이지. 헌데 안타깝게도 슬하에 자식이 없어, 늘 쓸쓸하게 지낸단다. 그동안 자식 하나 점지해 달라고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몰라. 내가 이 근방을 다니며 다 지켜보았거든."

    길을 걷는 동안, 덕이는 봇짐 속 도깨비에게 이런저런 것을 물었더랍니다.

    "도깨비님, 그 김 서방 내외라는 분들은 어떤 분들이세요?"

    "허허, 참으로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이지. 김 서방은 평생 남의 논을 부쳐 먹는 소작농이라 살림은 넉넉지 못하다만, 그 마음씨가 어찌나 곱던지. 길에 굶주린 이가 있으면 제 밥을 덜어 주고, 다친 짐승이 있으면 품어다 돌보는 사람이란다. 그 아내 되는 이도 마찬가지야. 다만 하늘이 어찌 된 셈인지 그 착한 내외에게 자식 복만은 주지 않으셨지. 그래서 늘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던 차였단다. 그러니 덕아, 너와 그 내외는 하늘이 맺어 준 인연인지도 모른다."

    그 말을 들으며 덕이는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렸더랍니다. 착한 사람들이 자식 없어 외롭고, 저는 부모 없어 외로우니, 어쩌면 서로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인연이 아니겠습니까.

    덕이가 그 집을 바라보니, 마당에서 웬 노부부가 정답게 밭일을 하고 있었더랍니다. 쪽진머리에 인자한 얼굴을 한 아낙과, 상투 튼 머리가 희끗희끗한 순박한 사내였지요. 도깨비는 덕이의 등을 살며시 떠밀며 말했더랍니다.

    "자, 어서 저 집으로 가 보렴. 목이 마르니 물 한 그릇만 얻어 마시자고 청해 보아라. 나머지는 이 도깨비가 알아서 하마."

    덕이가 쭈뼛쭈뼛 사립문 앞으로 다가가, 조그만 목소리로 물을 청했더랍니다.

    "저... 지나가는 아이인데요, 목이 말라서 그러는데 물 한 그릇만 얻어 마실 수 있을까요."

    그 말에 김 서방의 아내가 하던 일을 멈추고 돌아보았더랍니다. 그런데 그 어린것의 행색을 보니, 옷은 남루하고 얼굴은 여위었는데, 눈망울만은 어찌나 맑고 착해 보이던지요. 아낙은 얼른 달려와 덕이를 맞으며 이렇게 말했더랍니다.

    "아이고, 이 어린것이 혼자 어딜 가는 길이니. 물이 다 무엇이냐, 어서 들어와 요기부터 하고 가려무나. 마침 밥을 지어 놓았으니."

    아낙은 덕이를 방으로 들여, 따뜻한 밥 한 상을 정성껏 차려 주었더랍니다. 덕이가 허겁지겁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며, 김 서방 내외는 어쩐지 가슴이 짠해지더랍니다. 그러고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덕이가 흉년에 부모를 잃고 종으로 팔려 갔다가 이제 막 자유의 몸이 되어 오갈 데가 없다는 사연을 듣게 되었지요. 그 딱한 이야기에, 아낙은 그만 앞치마로 눈물을 훔치고 말았더랍니다.

    "아이고, 저런. 그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그 고생을 했더란 말이냐. 세상에 이런 가여운 일이 다 있나."

    바로 그때, 봇짐 속에 숨어 있던 도깨비가 슬며시 조화를 부리기 시작했더랍니다. 김 서방 내외의 마음속에, 이 아이를 그냥 보내서는 안 되겠다는 따뜻한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게 만든 것이지요. 사실 그것은 도깨비의 조화이기 이전에, 이미 그 노부부의 마음속에 자리한 진심이기도 했더랍니다. 자식 없어 늘 허전하던 그들에게, 이 맑은 눈망울의 아이가 어찌나 사랑스럽게 보였는지 모릅니다.

    김 서방의 아내는 덕이의 손을 잡고, 트고 갈라진 그 작은 손을 가만히 어루만졌더랍니다.

    "아이고, 이 여린 손으로 그 무거운 물동이를 이고 날랐더란 말이냐. 얼마나 힘들었을꼬. 이제 다 끝났다. 이제 이 어미가 너를 다시는 그리 고생시키지 않으마."

    그 다정한 손길에, 덕이는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더랍니다. 낳아 준 어머니를 여읜 뒤로, 이토록 따뜻한 손길은 처음이었으니까요.

    김 서방이 아내와 눈짓을 주고받더니, 조심스레 덕이에게 말을 건넸더랍니다.

    "얘야, 오갈 데가 없다니 하는 말인데... 혹시 괜찮다면, 이 늙은이들과 함께 살아 보지 않겠느냐. 우리가 비록 가진 것은 넉넉지 못하다만, 너를 친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며 키우고 싶구나. 우리한테는 자식이 없어 늘 적적했는데, 네가 우리 아들이 되어 준다면 그보다 더한 복이 없겠다."

    덕이는 그 말에 밥숟가락을 놓고, 두 눈을 크게 떴더랍니다. 부모라니. 자기를 친자식처럼 키우고 싶다니. 이게 정녕 꿈이 아닌가 싶어, 어린 가슴이 벅차올랐지요. 덕이의 두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더랍니다.

    "저... 정말요? 저 같은 아이도, 아들이 될 수 있어요?"

    "암, 되고말고. 오늘부터 네가 바로 우리 아들이다. 이리 온, 우리 아들."

    김 서방 내외가 두 팔을 벌리자, 덕이는 그 품에 와락 안겨 엉엉 울음을 터뜨렸더랍니다. 그토록 그리던 부모의 품이, 그토록 목말라하던 사랑이, 마침내 이 가여운 아이에게 찾아온 것이지요. 봇짐 속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도깨비도, 커다란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더랍니다.

    ※ 7: 사랑받으며 자란 아이

    그날 밤, 도깨비는 덕이를 조용히 마당 한구석으로 불러냈더랍니다.

    "덕아, 이제 너는 따뜻한 부모를 만났으니, 이 도깨비도 마음이 놓이는구나. 헌데 덕아, 이제 이 도깨비는 너를 떠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그 말에 덕이는 깜짝 놀라 도깨비의 커다란 손을 붙잡았더랍니다.

    "떠나신다고요? 안 돼요, 도깨비님! 도깨비님도 저랑 같이 여기서 살면 안 돼요?"

    도깨비는 그 작은 손을 가만히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웃었더랍니다.

    "이 녀석아, 도깨비가 어찌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 수 있겠느냐. 나는 저 늙은 고목이 내 집이고, 그곳이 내가 있어야 할 자리란다. 게다가 이제 너에게는 너를 아끼고 사랑해 줄 부모가 생겼으니, 이 도깨비가 곁에 없어도 든든하지 않으냐. 사람은 사람끼리 정을 나누며 살아야 하는 법이야."

    덕이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더랍니다. 저 무섭고 외롭던 종살이 시절, 유일한 벗이 되어 준 도깨비가 아니겠습니까. 그 도깨비와 헤어진다니, 어린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지요.

    "도깨비님, 저 도깨비님 은혜 평생 안 잊을게요. 도깨비님이 아니었으면, 저는 아직도 그 집에서 매를 맞고 있었을 거예요. 도깨비님은 저한테 세상에서 제일 고마운 분이에요."

    "허허, 이 녀석. 은혜는 무슨 은혜냐. 나는 그저 네 맑은 마음이 좋아서, 두고 볼 수가 없어 나선 것뿐이란다. 덕아, 이 도깨비가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당부하마. 너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그 맑고 착한 마음을 잃지 말고 살거라. 네가 종살이하며 그 고생을 할 때도, 다친 참새를 품고 늙은 개한테 밥을 나눠 주던 그 마음 말이다. 그 마음이 바로, 이 도깨비가 너를 돕게 만든 힘이었단다. 착한 마음은 언젠가 반드시 복이 되어 돌아오는 법이니, 부디 그 마음을 곱게 간직하거라."

    "덕아, 그리고 혹여 살다가 아주 힘든 일이 생기거든, 저 늙은 고목을 찾아오려무나. 이 도깨비가 늘 그 자리에서 너를 지켜보고 있을 테니. 비록 자주 모습을 보이지는 못해도, 이 도깨비는 언제나 네 편이란다. 그것만은 잊지 말거라."

    "네, 도깨비님. 꼭 기억할게요. 도깨비님도 외로우실 텐데... 저 때문에 이렇게 애써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그 말에 도깨비는 코끝이 찡해졌더랍니다. 백 년을 홀로 지내며 아무도 제 외로움을 헤아려 준 이가 없었는데, 이 어린것만은 헤어지는 순간까지 도깨비의 외로움을 걱정해 주니 말입니다. 도깨비는 그 착한 마음이 새삼 고맙고 대견하여, 덕이를 커다란 품에 한 번 꼭 안아 주었더랍니다.

    덕이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더랍니다. 도깨비는 그런 덕이의 머리를 마지막으로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커다란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랍니다. 그러고는 저 늙은 고목이 있는 쪽으로, 스르르 사라져 갔지요. 덕이는 도깨비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었더랍니다.

    그 뒤로 세월이 흘렀더랍니다. 덕이는 김 서방 내외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참으로 밝고 건강하게 자라났지요. 종살이하며 주눅 들어 있던 아이의 얼굴에는 어느새 환한 웃음이 가득해졌고, 여위었던 몸도 튼튼하게 자랐더랍니다. 양부모는 없는 살림에도 덕이를 서당에 보내 글공부를 시켰는데, 이 아이가 어찌나 총명하고 성실하던지요. 게다가 곽 부자가 마련해 준 논 서 마지기를 알뜰히 일구니, 그 집 살림도 차차 넉넉해졌더랍니다.

    덕이는 제가 받은 사랑을 잊지 않고, 양부모를 지극정성으로 모셨더랍니다. 자라서는 착실한 사람이 되어, 어려운 이웃을 보면 제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먼저 손을 내밀었지요. 특히 저처럼 팔려 와 고생하는 종아이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더랍니다. 제 힘닿는 데까지 그들을 돕고, 때로는 속량을 시켜 자유의 몸으로 만들어 주기도 했지요. 어릴 적 도깨비에게 받은 그 은혜를, 세상에 되갚으며 살아간 것입니다.

    덕이가 자라 어른이 되던 날, 양부모는 이런 말을 했더랍니다. "덕아, 네가 우리 집에 온 그날이, 이 늙은이들 평생에 가장 복된 날이었단다. 하늘이 우리한테 자식 복을 늦게나마 내려 주신 게지." 그 말에 덕이는 양부모의 손을 꼭 잡으며, 저야말로 두 분을 만난 것이 가장 큰 복이라 답했지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어도, 그 세 사람은 세상 어느 가족보다 정이 깊었더랍니다.

    그리고 그 옛날의 곽 부자는 어찌 되었을까요. 곽 부자는 그날 이후로 아주 딴사람이 되어, 남은 평생을 이웃에게 베풀며 살았더랍니다. 죽을 때까지 어린 덕이에게 진 죄를 잊지 않고, 가난한 아이들을 거두어 먹이고 가르치니, 고을 사람들이 그를 두고 '늘그막에 사람 된 곽 부자'라 부르며 오히려 존경했다지요. 모진 마음도 한번 깨달으면 저리 달라질 수 있으니, 참으로 사람의 마음이란 신묘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늙은 고목의 도깨비는, 그 뒤로도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켰더랍니다. 그러고는 이따금 밤이 되면, 훌쩍 자란 덕이가 사는 마을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곤 했다지요. 제가 구해 준 그 어린것이, 사랑받으며 착하게 잘 자란 것이 그리도 대견하고 기꺼웠던 것입니다.

    여러분, 매 맞던 어린 종을 자유롭게 하고, 따뜻한 부모의 품까지 이어 준 마음씨 고운 도깨비 이야기, 어떻게 들으셨는지요.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센 것은 무서운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라, 어쩌면 남을 가엾게 여길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241자)

    매 맞던 어린 종을 자유롭게 하고, 따뜻한 부모의 품까지 이어 준 마음씨 고운 도깨비 이야기, 어떻게 들으셨는지요. 도깨비를 움직인 것은 다름 아닌, 다친 참새를 품고 늙은 개에게 밥을 나누던 덕이의 맑은 마음이었습니다. 착한 마음은 아무리 힘든 처지에서도 결코 헛되지 않으며, 언젠가 반드시 복이 되어 돌아오는 법이지요. 오늘 이야기가 따뜻하게 다가오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다음 천방지축 도깨비 이야기에서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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