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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도깨비와 엮였더니 인생 꼬인 줄 알았는데... 풀렸다
태그(20개)
조선시대, 전설, 야담, 도깨비, 설화, 민담, 옛날이야기, 오디오드라마, 코믹, 반전, 우정, 행운, 기묘한이야기, 한국전통, 요괴, 신비, 판타지, 힐링, 가난, 인생역전
후킹멘트 (200자 내외)
"어이, 거기 양반! 밤길에 웬 콧물 훌쩍이는 놈이랑 엮여서 인생 단단히 꼬여본 이야기 한번 들어보시겠소? 울다가 웃다가 정신 차려보니, 글쎄…! 팔자에도 없던 일들이 벌어지지 않겠소?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한 사내와 엉뚱한 도깨비의 기적 같은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가난하지만 성실한 나무꾼 돌쇠의 앞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엉뚱한 도깨비 '뭉치'. 돌쇠의 인생은 뭉치의 황당한 장난 때문에 단단히 꼬이는 듯했지만, 그 어설픈 행동들이 오히려 예상치 못한 행운을 불러오기 시작한다. 과연 이 기묘한 동행의 끝은 어디일까? 효심과 의리가 만들어낸 좌충우돌 코믹 판타지! 우리 조상들의 해학과 정이 담긴 진짜 옛날이야기를 만나보세요.
※ 씬 1
달빛마저 구름 뒤에 숨어버린 칠흑 같은 밤이었습니다.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깊은 산길을, 한 사내가 무거운 걸음으로 터벅터벅 걷고 있었지요. 등에 진 지게에는 성긴 나뭇단이 위태롭게 얹혀 있었고, 남루한 행색만 봐도 그 고단한 삶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 가난한 나무꾼 돌쇠였습니다. 온종일 땀 흘려 구한 나무를 장에 내다 팔았건만, 손에 쥔 것은 고작 엽전 두어 푼. 당장 내일 홀어머니의 약값과 끼니를 걱정하니, 젊은 사내의 어깨는 천근만근 무겁기만 했습니다. 땅이 꺼져라 새어 나오는 한숨 소리가 메마른 산의 공기를 더욱 스산하게 만들었지요. 바로 그때였습니다. 저쪽 덤불이 바스락, 하고 마른 가지 스치는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잠잠해졌습니다. 돌쇠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며 주변을 두리번거렸습니다. 이 깊은 밤, 산길을 헤매는 짐승이라도 만난 것일까. 흉포한 맹수라도 나타나면 그야말로 끝장이었습니다. 손에 쥔 도끼 자루를 꽉 움켜쥐는데, 덤불 속에서 무언가 꿈틀, 하고 움직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 연신 코를 훌쩍이며 무언가 들이마시는 소리가 났습니다. "흐흥… 심심해… 너무 심심해애…" 겁에 질려있던 돌쇠는 순간 귀를 의심했습니다. 맹수의 울음소리가 아니라, 어린아이 칭얼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아니겠습니까. 혹시 길 잃은 아이인가 싶어 경계를 풀고 다가서려는데, 덤불 속에서 쑤욱, 하고 나타난 것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라기엔 키가 반 토막만 하고, 머리에는 염소 뿔 같은 것이 비뚤게 하나 돋아나 있었지요. 헝클어진 머리, 툭 튀어나온 눈에 뾰족한 송곳니까지. 영락없는 도깨비였습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그 험상궂은 얼굴로 연신 콧물을 훌쩍이며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이었죠. 돌쇠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지게도 내팽개친 채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달려봤자 거기서 거기. 얼마 못 가 그 괴상한 것이 껑충, 하고 뛰어와 돌쇠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야! 왜 도망가! 같이 놀자니까!" 그제야 정신이 든 돌쇠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싹싹 빌기 시작했습니다. "도깨비님,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가진 것이라고는 이 몸뚱이와 낡은 도끼뿐입니다. 제발…!" 그러자 도깨비는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습니다. "목숨? 네 목숨은 왜? 난 그냥 너랑 놀고 싶어서 그런 건데. 너 아까부터 계속 한숨만 푹푹 쉬는 게 꼭 나처럼 심심해 보였단 말이야." 돌쇠는 기가 막혔습니다. 지금 자기가 목숨을 구걸하는 이 와중에 심심해 보였다니. "제가요? 저는 지금 죽을 것 같이 무서워서 이러는 겁니다!" 도깨비는 입을 삐죽 내밀더니 보란 듯이 손을 휘휘 저었습니다. 그러자 주변의 낙엽들이 회오리바람처럼 솟구쳐 올라 돌쇠의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보던 돌쇠에게, 도깨비는 의기양양하게 말했지요. "어때? 신기하지? 나 좀 멋진 도깨비 같지 않아?" 돌쇠는 어이가 없어 퉁명스럽게 대꾸했습니다. "멋지긴요! 사람 놀라게 하는 게 뭐가 멋있습니까!" 풀이 죽은 도깨비는 콧물을 한 번 더 훌쩍이더니, 화제를 돌렸습니다. "흥! 재미없는 녀석. 혹시 너, 맛있는 거라도 가지고 있냐? 배고픈데." 돌쇠는 품속을 뒤져 딱딱하게 식어버린 주먹밥 하나를 꺼내 보였습니다. "이거라도… 드시겠습니까?" 도깨비는 처음 보는 음식인 양 신기하게 받아들고는 한입 크게 베어 물었습니다. 그리고는 눈이 동그래졌지요. "으음! 딱딱한데 묘하게 맛있네! 너 이런 거 매일 먹냐?" 돌쇠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주먹밥을 허겁지겁 삼키던 도깨비가 갑자기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며 목을 부여잡았습니다. 컥, 컥, 하고 숨 막히는 소리를 내며 발을 동동 굴렀지요. "물! 물 좀 줘! 목 막혀!" 돌쇠가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하자, 도깨비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소리쳤습니다. "네가 준 밥 먹다 이렇게 됐으니 네가 책임져! 당장 시원하고 맑은 물을 찾아내란 말이야! 그때까지 네 옆에 딱 붙어 있을 테다!" 그렇게 엉뚱한 도깨비 뭉치와 가난한 나무꾼 돌쇠의 기묘한 인연은, 어처구니없는 주먹밥 소동으로 시작되고야 말았습니다.
※ 씬 2
다음 날 아침, 창호지를 환히 비추는 햇살에 돌쇠가 눈을 떴지만 기분은 전혀 상쾌하지 않았습니다. 밤새 잿물이라도 뒤집어쓴 듯 낯빛이 퀭했지요.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좁아터진 방 한구석에 어젯밤의 그 도깨비, 뭉치가 떡하니 웅크리고 앉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낯선 잠자리가 불편했는지 연신 하품을 해대며 투덜거렸지요. "으아함… 인간 세상은 왜 이렇게 아침부터 시끄러워? 저놈의 닭은 왜 저리 목청껏 울어대는 거야?" 돌쇠는 이마를 짚으며 대꾸했습니다. "시끄러우시면 그만 돌아가시지요. 약속대로 물은 제가 어떻게든 구해다 드릴 테니… 제발 좀." 그러나 뭉치는 들은 척도 않고 코웃음을 쳤습니다. "흥! 밤새 네 집 주변을 다 뒤져봤는데, 마실 만한 물 한 방울 없더라. 역시 인간 세상은 불편해. 그러니 네가 책임지고 날 데리고 다니면서 물을 찾아야지. 내 목이 얼마나 타들어 가는지 너는 모를 거다!" 뭉치는 과장되게 목을 부여잡고 콜록거렸지만, 돌쇠의 눈에는 그저 꾀병으로만 보였습니다. "참나… 어제 주먹밥 몇 입에 아직도 목이 마르십니까? 저는 그런 밥을 매일 먹고 삽니다!" "인간이랑 도깨비를 같이 보면 쓰나! 내 몸은 아주 예민해서, 조금만 건조해도 기운이 쭉 빠진단 말이다!" 결국 돌쇠는 뭉치를 떼어놓을 방법이 없어, 한숨을 푹 쉬며 지게를 짊어졌습니다. 오늘은 기필코 나무를 많이 해서 어머니 약값이라도 벌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돌쇠가 지게를 지자, 뭉치가 쪼르르 달려와 그 위에 낼름 올라앉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허! 뭐 하시는 겁니까! 무거워서 못 갑니다, 내려오세요!" "싫어! 너 혼자 가면 또 도망갈 거잖아! 여기서 꼼짝 않고 감시할 테다!" 실랑이를 벌이다 지친 돌쇠는 결국 뭉치를 지게에 태운 채 마을로 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돌쇠에게로 쏠렸습니다. 힐끔힐끔 쳐다보며 저희끼리 수군거리는 소리가 돌쇠의 귀까지 들려왔지요. "저기 돌쇠 좀 보게. 지게에 저건 대체 뭔가?" "아이구 맙소사, 머리에 뿔 달린 것 좀 봐! 필시 요물일세!" 돌쇠는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뭉치는 사람들의 시선이 재미있다는 듯, 지게 위에서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구경하기에 바빴습니다. 장터에 다다르자 소동은 더욱 커졌습니다. 뭉치가 갑자기 생선 가게의 좌판을 가리키며 소리쳤기 때문이지요. "우와! 저기 번쩍거리는 것 좀 봐! 엄청 맛있게 생겼다!" 펄펄 뛰는 은어 몇 마리를 보고 신이 난 뭉치가 손가락을 까딱하자, 생선들이 공중으로 붕 떠올라 헤엄치듯 날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장터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고, 생선 가게 주인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벌벌 떨었지요. 돌쇠는 기겁하여 뭉치의 등을 후려치며 외쳤습니다. "이놈아!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당장 그만두지 못해!" 그제야 뭉치는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는지, 어색하게 웃으며 생선들을 좌판 위로 떨어뜨렸습니다. 돌쇠는 성난 주인에게 머리가 땅에 닿도록 사죄하고, 뭉치의 멱살을 잡아 끌고는 장터 구석으로 도망쳐야 했습니다. 돌쇠가 씩씩거리며 뭉치를 다그쳤습니다. "너 때문에 내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이제 이 마을에서 얼굴 들고 다니긴 글렀어! 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그러자 뭉치는 오히려 억울하다는 듯이 대꾸했습니다. "나는 그냥… 네가 맨날 맛없는 주먹밥만 먹는 게 안쓰러워서… 저 번쩍이는 걸 잡아다 주려고 그랬지…." 그 순진한 대답에 돌쇠는 화를 내려다 그만 맥이 탁 풀리고 말았습니다. 이 엉뚱하고 어설픈 도깨비를, 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돌쇠의 머릿속은 그야말로 뒤죽박죽이 되어버렸습니다.
※ 씬 3
장터 구석으로 끌려온 뭉치는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전혀 모르는 얼굴로 눈만 끔뻑이고 있었습니다. 돌쇠는 터져 나오려는 화를 간신히 억누르며 주저앉았지요. 체면도 체면이지만, 허기진 배에서 꼬르륵, 하고 요란한 소리가 울리니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장터 저편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욕심 많기로 소문난 최 서방네 떡 파는 좌판 앞에서였지요. "이놈의 계집애가! 돈도 없이 어딜 감히! 썩 물러나지 못할까!" 최 서방이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의 팔을 거칠게 밀치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넘어져 울음을 터뜨렸고, 그 손에는 흙 묻은 엽전 한 닢이 꼭 쥐여 있었지요. 떡 하나만 사달라고 조르다 봉변을 당한 모양이었습니다. 그 광경을 본 뭉치의 눈이 가늘어졌습니다. "저 할아버지는 왜 저렇게 화가 났어? 저 꼬마는 울고 있잖아." 돌쇠가 힘없이 대꾸했습니다. "돈이 없어서 떡을 못 사는 거겠지… 세상이 다 그런 거다." 뭉치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무언가 결심한 듯 비죽 튀어나온 송곳니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습니다. 그리고는 최 서방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 하고 움직였지요. 그러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펄펄 김이 오르던 커다란 시루떡 통이 갑자기 들썩들썩, 춤을 추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좌우로 기우뚱거리던 떡 통은 이내 껑충껑충 뛰며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기까지 했습니다. 최 서방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아, 아니, 이게 무슨 조화속이람!" 하며 뒷걸음질 쳤습니다. 구경하던 사람들도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평소 인심 고약하던 최 서방이 당황하는 모습에 하나둘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습니다. "하하하! 최 서방, 자네 떡이 살아서 춤을 추네!" "필시 자네 욕심에 떡 귀신이 붙었나 보네!" 뭉치는 더욱 신이 나서 손가락을 휘저었고, 떡 통은 아예 공중으로 반 뼘쯤 솟아올라 격렬하게 몸을 흔들었습니다. 당황한 최 서방이 떡 통을 잡으려다 제 다리에 걸려 앞으로 크게 고꾸라졌고, 그 바람에 좌판 위에 있던 오색 빛깔의 꿀떡과 인절미들이 사방으로 와르르 쏟아졌습니다. 그야말로 떡 비가 내리는 듯했지요. 아이들은 신이 나서 바닥에 떨어진 떡을 주워 먹었고, 어른들은 박장대소하며 최 서방을 놀려댔습니다. 이 모든 소동의 원흉인 뭉치는 돌쇠 옆에서 배를 잡고 깔깔거리고 있었죠. 돌쇠는 기가 막혔지만, 한편으로는 고약한 최 서방이 골탕을 먹는 모습에 속이 다 시원했습니다. 그때, 소동을 지켜보던 주막의 주모가 빙그레 웃으며 돌쇠에게 다가왔습니다. "총각, 옆에 데리고 있는 동무가 아주 신통한 재주를 가졌구먼. 저 욕심쟁이 최 서방을 혼쭐내는 걸 보니 내 속이 다 후련해. 배고플 텐데, 이리 와서 국밥이라도 한 그릇 들게." 돌쇠는 얼떨결에 주모에게 이끌려 주막의 상석에 앉게 되었습니다. 잠시 후, 그의 앞에는 생전 처음 보는 푸짐한 장터 국밥 한 그릇이 놓였습니다. 뽀얀 국물에 고기가 듬뿍 들어간 국밥이었지요. 돌쇠가 어쩔 줄 몰라 하자 주모는 뭉치를 힐끗 보며 말했습니다. "총각이 아니라 총각 동무에게 주는 걸세. 저런 신통한 친구를 뒀으니, 굶고 다니면 쓰나." 돌쇠는 떨리는 손으로 숟가락을 들었습니다. 따끈한 국물 한 숟갈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온몸에 온기가 퍼지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렇게 허겁지겁 국밥 한 그릇을 비우고 나니, 주모는 떡까지 한 아름 안겨주며 등을 두드렸습니다. 주막을 나서는 돌쇠의 발걸음은 더 이상 무겁지 않았습니다. 한 손에는 떡 봉지를, 다른 한 손에는… 어느새 다가와 자기 옷자락을 꼭 붙잡고 걷는 뭉치의 손이 들려 있었지요. 얄밉기만 했던 이 녀석이 오늘 처음으로, 어쩐지 밉지 않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 씬 4
그날 이후, 돌쇠와 뭉치의 관계에는 미묘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돌쇠는 더 이상 뭉치를 재앙 덩어리로만 보지 않게 되었고, 뭉치는 돌쇠의 곁이 제집인 양 편안하게 굴었지요. 하지만 평화는 길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돌쇠는 홀어머니가 밤새도록 터뜨리는 기침 소리에 잠을 설쳤습니다. 창백한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는 어머니의 모습에 돌쇠의 심장은 철렁 내려앉았지요. 날이 밝자마자 어머니를 등에 업고 부리나케 고갯마루의 의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진맥을 마친 늙은 의원은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습니다. "오래된 해묵은 병이라… 이젠 웬만한 약재로는 어림도 없겠네. 백두산 절벽에서만 자란다는 '천년초'를 달여 먹지 않으면 올겨울을 넘기기 힘들 걸세." 돌쇠의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처, 천년초라니요… 의원님! 그게 대체 어떤 약재입니까?" "하늘의 별따기보다 구하기 어려운 영초일세. 부르는 게 값이라, 웬만한 부잣집에서도 구경하기 힘든 물건이지." 의원을 나서는 돌쇠의 어깨는 완전히 축 처져 있었습니다. 천년초라니.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자신에게는 그야말로 뜬구름 잡는 소리였습니다. 집에 돌아온 돌쇠는 아무 말 없이 부엌 아궁이 앞에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지요. 그런 돌쇠의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뭉치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너… 왜 울어? 아까 그 할아버지가 뭐라고 했어?" 돌쇠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뭉치는 끈질기게 돌쇠의 팔을 잡아끌며 재촉했지요. 결국 돌쇠는 눈물을 훔치며 자초지종을 털어놓았습니다. 천년초라는 약재가 필요하다는 것, 하지만 그것을 살 돈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야기를 다 들은 뭉치는 잠시 제 머리를 긁적이더니, 이내 주먹을 불끈 쥐며 가슴을 툭 쳤습니다. "걱정 마! 그까짓 거, 내가 해결해 줄게!" "네가 어떻게…?" "흥! 나 뭉치를 뭘로 보고! 이 세상에서 제일 비싼 걸 구해오면 되는 거 아냐? 그걸로 약을 사면 되잖아!" 그리고는 바람처럼 밖으로 쌩 하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돌쇠는 뭉치를 말릴 틈도 없었지요.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일말의 기대를 품기도 했습니다. 신통한 재주를 가진 녀석이니, 혹시 정말 무언가 방법을 찾아낼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돌쇠의 그 기대는 곧 끔찍한 공포로 바뀌었습니다. 한밤중이 되어서야 돌아온 뭉치가 의기양양하게 내민 물건 때문이었지요. 그것은 바로 이 고을에서 가장 큰 부자이자 악독하기로 소문난 김 영감의 가보, '자수정 호랑이 문양 갓'이었습니다. 번쩍이는 자수정으로 호랑이 무늬를 수놓은,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갓이었지요. 김 영감이 연회가 있을 때마다 쓰고 나와 자랑하던 바로 그 물건이었습니다. "어때? 내가 이 동네에서 제일 비싸 보이는 걸로 가져왔어! 이거 팔면 약 살 수 있겠지?" 뭉치는 칭찬을 기다리는 강아지 같은 얼굴로 돌쇠를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돌쇠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습니다. "이, 이… 이놈아! 이걸 어찌한 것이냐! 이걸 훔쳐 온 것이야?" "훔치다니? 그냥 잠깐 빌려온 거지! 그 할아버지는 좋은 것도 많으면서 맨날 인상만 쓰고 있길래 내가 하나쯤 없어도 모를 것 같아서…." 돌쇠는 눈앞이 아찔해 그 자리에 쓰러질 뻔했습니다.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에, 이제는 고을 제일의 부잣집 도둑놈 누명까지 쓰게 생긴 것이었습니다. 차라리 뭉치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아니, 장터에서 국밥을 얻어먹고 잠시나마 희망을 가졌던 자신이 더 어리석었습니다. 돌쇠는 김 영감의 화려한 갓을 손에 든 채, 절망적인 눈으로 뭉치를 바라보았습니다. 뭉치는 여전히 상황 파악을 못 한 채, 어서 자기를 칭찬해달라는 듯 꼬리 없는 엉덩이만 흔들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 씬 5
돌쇠의 손에서 번쩍이는 자수정 갓은 마치 그의 절망적인 미래를 비웃는 듯했습니다. 이대로 날이 밝으면 그는 꼼짝없이 고을 제일의 도둑놈이 될 판이었지요. 죽음보다 더한 치욕과 홀로 남겨질 어머니를 생각하니, 차라리 이 자리에서 목숨을 끊는 게 낫겠다 싶었습니다. 돌쇠가 넋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습니다. "끝이다… 이제 모든 게 끝이야…" 그 모습을 보던 뭉치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 자기가 한 행동이 돌쇠를 웃게 하기는커녕, 죽음의 문턱으로 내몰았다는 것을 말입니다. 뭉치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싹 가시고, 파랗게 질리기 시작했습니다. "아… 아니, 내가… 내가 돌려주고 올게! 아무도 모르게!" 하지만 돌쇠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이미 늦었습니다. 김 영감은 자신의 가보가 사라진 것을 진작에 알아챘을 것이고, 곧 관아에 신고하여 온 마을을 뒤지기 시작할 터였습니다. 돌쇠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때, 뭉치가 돌쇠의 옷자락을 필사적으로 붙잡았습니다. "잠깐! 아직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내가… 내가 아까 그 집에서 이상한 걸 봤어!" "이상한 거라니?" "그 영감 말이야, 갓이 없어진 것보다 더 안절부절못하면서 정원 구석의 작은 사당 앞에서 쩔쩔매고 있었어. ‘호랑이 기운이 사라졌으니 이제 큰일 났다’고, ‘내 평생의 보물이 말라죽게 생겼다’고 울부짖더라고." 돌쇠의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평생의 보물? 자수정 갓보다 더 귀한 것이 있다는 말인가? 어쩌면…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는 결심했습니다. 이대로 잡혀 죽느니, 차라리 부딪혀보기라도 하자고. 돌쇠는 자수정 갓을 품에 안고 뭉치와 함께 다시 김 영감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담벼락에 바싹 붙어 안을 살피니, 과연 뭉치의 말대로 김 영감이 작은 사당 앞에서 땅을 치며 통곡하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내 천년초! 호랑이의 영험한 기운이 없어져서 하룻밤 사이에 잎이 시들기 시작하는구나! 내 전 재산을 들여 가꾼 보물인데!" 천년초. 그 이름이 돌쇠의 심장을 날카롭게 찔렀습니다. 바로 어머니를 살릴 수 있는 단 하나의 약초. 저 욕심쟁이 영감이 그것을 비밀리에 키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조각이 맞춰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돌쇠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담장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습니다. 김 영감은 갑자기 나타난 돌쇠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지요. "네, 네 이놈! 네놈이 감히!" 돌쇠는 주눅 들지 않고 품에서 자수정 갓을 꺼내 보였습니다. "영감님의 이 갓, 저희 집 뒷산을 지키는 산군(山君)께서 잠시 빌려 가셨던 것입니다." "뭐, 뭣이? 사, 산군?" 돌쇠의 등 뒤, 어둠 속에서 뭉치가 일부러 제 모습을 슬쩍 드러냈습니다. 희미한 달빛 아래 드러난 뿔과 번뜩이는 눈, 인간과는 다른 기괴한 형체에 김 영감은 숨을 꿀꺽 삼켰습니다. 돌쇠가 말을 이었습니다. "산군께서 말씀하시길, 영감께서 천하의 영초를 사사로이 독점하고 그 욕심을 지키고자 호랑이의 형상을 빌려왔으니, 그 오만함에 잠시 노하셨다 하십니다. 허나, 지금이라도 영초의 잎 하나를 떼어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데 쓴다면, 노여움을 풀고 호랑이의 기운을 돌려주시겠다 하셨습니다." 김 영감의 얼굴이 하얗게, 파랗게 변했습니다. 그는 미신을 맹신하는 위인이었고, 자신의 천년초가 시들기 시작한 것이 정말 산신의 노여움 때문이라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전 재산과도 같은 천년초를 완전히 잃는 것과, 잎사귀 하나를 내어주고 가보와 천년초 모두를 지키는 것. 선택은 자명했습니다. "…알겠네. 알겠으니… 부디 산군의 노여움을 풀어주시게." 결국 김 영감은 떨리는 손으로 천년초의 가장 실한 잎사귀 하나를 떼어 돌쇠에게 건넸습니다. 돌쇠가 자수정 갓을 돌려주자, 마치 기적처럼 시들어가던 천년초의 잎이 다시 생기를 되찾는 듯 보였습니다. 물론 그것은 밤새 내린 이슬 덕이었겠지만, 겁에 질린 김 영감의 눈에는 신의 조화로 보일 뿐이었지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돌쇠는 손에 쥔 천년초 잎사귀를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설픈 장난으로 자신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갔던 뭉치의 행동이, 결국 어머니를 살리는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었습니다. 돌쇠는 곁에서 의기양양하게 걷고 있는 뭉치의 머리를 난생 처음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 씬 6
천년초를 달여 마신 돌쇠의 어머니는 그야말로 기적처럼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해묵은 기침이 멎고, 핏기 없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지요. 이 소문은 마을에 삽시간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돌쇠의 효심에 하늘이 감동한 것이라 수군대던 사람들은, 이내 사건의 전말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욕심쟁이 김 영감이 도깨비에게 단단히 홀려, 꽁꽁 숨겨두었던 영약을 내놓았다는 이야기였지요. 그날 이후, 돌쇠의 삶은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그를 가난하고 볼품없는 나무꾼으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도깨비를 부려 악독한 부자를 혼쭐낸, 신통하고 담대한 청년으로 대우했지요. 마을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돌쇠를 찾아와 조언을 구하기도 했고, 고마움의 표시로 쌀이나 반찬거리를 가져다주어 돌쇠의 집 광주리는 더 이상 비는 날이 없었습니다. 돌쇠는 더 이상 고된 나무꾼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마을의 대소사를 돌보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어머니를 편안히 봉양할 수 있게 되었지요. 물론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도깨비 뭉치가 있었습니다. 뭉치는 이제 돌쇠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마을의 보이지 않는 수호신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밤길을 외롭게 헤매지도, 콧물을 훌쩍이며 심심해하지도 않았습니다. 돌쇠의 집 툇마루에 앉아 따끈한 감자를 나눠 먹고, 돌쇠가 들려주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뭉치의 새로운 낙이 되었지요. 가끔 짓궂은 장난기가 발동하여 마을 처녀의 댕기를 슬쩍 잡아당기거나, 심술궂은 아이의 코에 검댕을 묻히는 소소한 장난을 치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이제 그것을 유쾌한 행운의 징표로 여기며 웃어넘겼습니다. 어느 맑은 날, 돌쇠와 뭉치는 나란히 산에 올랐습니다. 예전처럼 나무를 하러 가는 고된 길이 아니라, 그저 시원한 바람을 쐬러 가는 유쾌한 산책길이었지요. 산 정상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돌쇠가 말했습니다. "뭉치야, 너를 처음 만난 날이 기억나는구나. 그때는 내 인생이 영영 꼬여버린 줄만 알았는데." 뭉치는 어느새 구수한 누룽지 한 조각을 오도독 씹으며 대꾸했습니다. "흥! 나 같은 멋진 도깨비 친구를 만났는데, 그게 꼬인 거냐? 활짝 편 거지!" 두 친구는 서로를 마주 보며 한바탕 크게 웃었습니다. 그 웃음소리는 맑은 하늘 아래, 평화로운 마을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엉뚱한 도깨비와의 만남으로 꼬인 매듭 같던 인생이 풀리고, 오히려 비단처럼 고운 길이 열리게 된 나무꾼 돌쇠의 이야기. 그리고 외로운 장난꾸러기에서 한 인간의 진정한 친구가 된 도깨비 뭉치의 이야기는, 훗날까지도 이 마을에 전설처럼 전해지며, 고된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유쾌한 웃음과 따스한 희망을 안겨주었다고 합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엉뚱한 도깨비 뭉치와 마음 따뜻한 나무꾼 돌쇠의 이야기, 재미있게 들으셨나요? 뒤엉킨 실타래 같던 인생도, 예기치 않은 만남과 따뜻한 마음씨가 더해지면 비단길처럼 풀릴 수 있다는 옛 어른들의 지혜가 담겨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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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시간에는 메밀묵 한 그릇으로 시작된 또 다른 도깨비와의 기묘한 인연,
'메밀묵 한 그릇으로 도깨비와 친구가 된 선비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