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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다리 도깨비, 고갯길에 서다. 독각귀의 진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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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

    조선 영조 시절, 충청도 공주 땅 은골재라는 고갯길이 있었습니다. 해가 지면 아무도 그 길을 걷지 않았습니다. 걸으면 죽는다는 소문 때문이 아닙니다. 걸으면 미쳐 돌아온다는 소문 때문이었습니다. 고개를 넘다 실성한 자가 벌써 일곱. 모두 같은 말을 했습니다. "다리 하나짜리 놈이 웃으면서 내 앞을 막았다"고.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어느 날, 그 고갯길을 일부러 찾아간 사내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밤마다. 도대체 왜? 그리고 그 사내가 고갯길에서 마주한 것은, 세상 어떤 야담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도깨비의 진짜 얼굴이었습니다.

    ※ 1.

    공주 고을에 장이 서는 날이었습니다. 한낮의 장터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엿장수의 가위 소리와 떡 파는 아낙네의 외침이 뒤섞여 시끄러웠습니다. 소 팔러 온 농부가 값을 흥정하는 소리, 아이들이 강정을 달라며 어미의 치맛자락을 잡아끄는 소리, 생선 좌판에서 올라오는 비린내와 시루떡 위에 피어나는 김이 함께 뒤엉키는, 그냥 평범한 장날이었습니다.

    그 틈을 비집고 한 사내가 걸어 들어왔습니다.

    사내의 얼굴은 검게 탔는데, 볕에 그을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밤을 너무 많이 새운 사람의 얼굴이었습니다. 눈 밑이 시커멓게 내려앉았고, 광대뼈가 날카롭게 솟아 있었습니다. 광목천으로 무릎 아래를 질끈 동여맨 바지에, 짚신은 한 짝만 신고 있었습니다. 맨발인 왼발에서 피가 말라붙어 있는 것을 본 아낙네 하나가 고개를 돌렸습니다. 사람들이 길을 비켜주는 것이 아니라, 저도 모르게 뒷걸음을 치고 있었습니다.

    사내가 장터 한복판에 섰습니다. 등에 진 지게를 내려놓더니, 그 위에 보자기를 풀어 무언가를 꺼내 펼쳤습니다.

    산삼이었습니다.

    그것도 한두 뿌리가 아니었습니다. 손가락 굵기보다 두꺼운 뿌리가 대여섯 갈래로 뻗어 마치 사람이 팔다리를 벌린 것 같은 놈이 한 뿌리.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잔뿌리가 한 뼘도 넘게 흘러내리는 놈이 두 뿌리. 그보다 작지만 단단하고 묵직한 놈이 네 뿌리. 도합 일곱 뿌리의 산삼이 지게 위에 가지런히 놓였습니다. 장터가 순식간에 조용해졌습니다.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릴 만큼. 약재상 거리에서 오가던 사람들이 하나둘 발걸음을 멈추고 사내 주위로 모여들었습니다.

    "저것이 진짜냐?"

    가장 먼저 다가온 것은 장터 맨 끝에서 약재를 취급하는 노인이었습니다. 오십 년 넘게 약재상을 한 사내로, 산삼을 알아보는 눈이라면 공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이었습니다. 노인이 허리를 굽혀 산삼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코를 가까이 가져가 냄새를 맡았습니다. 손끝으로 뿌리를 건드려 보았습니다. 그러더니 멈칫했습니다. 표정이 변했습니다. 반신반의가 경악으로 바뀌는 얼굴이었습니다.

    "이보시오. 이 삼은 적어도 오십 년은 된 물건이오. 이걸 대체 어디서 캤소?"

    사내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웃었습니다. 이가 훤히 드러나도록 크게. 그런데 그 웃음이 장터 사람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습니다. 기쁨의 웃음이 아니었습니다. 안도도 아니었습니다. 무언가를 체념한 사람이 짓는, 세상과 작별하는 듯한 웃음이었습니다.

    약재상 노인의 눈이 가늘어졌습니다.

    "혹시, 은골재에서 캤소?"

    그 지명이 나오자 장터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일제히 굳었습니다. 은골재. 공주에서 부여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고갯길. 소나무가 하늘을 덮어 한낮에도 어두운 곳. 밤이면 푸른 불빛이 허공에 떠다닌다는 곳. 지난 삼 년 사이 그 고개를 밤에 넘다가 실성하여 돌아온 자가 일곱이나 되는 곳. 모두 같은 말을 했습니다. 다리가 하나뿐인 무언가가 길을 막고 서 있었다고. 키가 한 길은 되었다고. 웃고 있었다고.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한 번, 느리게.

    장터가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미친 놈 아니야?"
    "은골재에 밤에 올라갔다가 멀쩡히 돌아왔다고?"
    "저러다 내일이면 실성해서 거리에 드러누울 걸."

    사내의 이름은 박득수. 나이 서른둘. 공주 읍내 개울가 움막에서 혼자 사는 초군이었습니다. 나무를 해서 장터에 내다 파는 것이 전부인 삶. 장가도 못 간 사내. 석 달 전까지만 해도, 장터에서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그때 장터 입구 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거칠게 울렸습니다. 관아의 포졸 둘이 사람들을 밀치며 다가왔습니다.

    "박득수! 네 이놈, 이 산삼을 어디서 훔쳤느냐!"

    앞선 포졸이 지게를 발로 걷어찼습니다. 산삼이 흙바닥 위에 나뒹굴었습니다. 사람들이 와 하고 탄식하며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났습니다. 득수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훔친 것이 아니라고, 직접 캔 것이라고 했습니다. 포졸이 코웃음을 쳤습니다.

    "네깟 초군이 산삼 일곱 뿌리를? 그것도 은골재에서? 거짓말도 좀 그럴듯하게 해라."

    득수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포졸의 눈을 똑바로 보았습니다. 주눅 든 사람의 눈이 아니었습니다. 무언가를 다 겪고 난 뒤의, 맑고도 단단한 눈이었습니다.

    "거짓이 아닙니다. 도깨비가 알려줬습니다."

    장터가 얼어붙었습니다. 아이의 울음소리마저 뚝 그쳤습니다. 바람 한 줄기 불지 않는데 사람들의 팔뚝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도깨비. 그 말 한마디가 장터의 공기를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몰랐습니다. 이 사내가 도깨비를 만난 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리고 도깨비가 산삼의 위치를 알려준 데에는, 세상 사람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이유가 숨어 있었다는 것을.

    ※ 2.

    석 달 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내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알아야, 이 이야기가 왜 이렇게 흘러갔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박득수. 서른둘. 공주 읍내 변두리, 개울이 휘어지는 지점에 움막 하나를 짓고 혼자 살았습니다. 움막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것이었습니다. 땅을 반 길쯤 파고 그 위에 나뭇가지를 엮어 지붕을 올린 것이 전부였습니다. 비가 오면 물이 새고, 바람이 불면 벽이 흔들렸습니다. 부모는 득수가 열다섯 되던 해에 돌림병으로 함께 세상을 떠났고, 형제는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남겨진 것이라고는 아버지가 쓰던 지게 하나와 도끼 한 자루뿐이었습니다.

    매일이 같았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산에 오르고, 나무를 해서 지게에 지고 내려와 장터에 내다 팝니다. 한 짐에 받는 돈은 쌀 한 되를 겨우 살 수 있는 정도. 그것으로 하루 두 끼를 때우면, 그것이 하루의 전부였습니다. 비가 오면 산에 오르지 못하니 밥을 굶었고, 겨울에 눈이 쌓이면 개울물을 끓여 마시는 것으로 한 끼를 대신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박쇠라고 불렀습니다. 쇠붙이처럼 감정이 없어 보인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었습니다. 장터에서 나무를 내려놓고 값을 받을 때도 웃지 않았고, 장날에 떡이나 엿을 한 입 얻어먹어도 고맙다는 말이 어색한 사내였습니다.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감정을 줄 곳이 없었던 것입니다. 태어나서 서른두 해를 살았는데, 누군가에게 고맙다거나, 보고 싶다거나, 옆에 있어달라는 말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삶. 그것이 박득수의 서른두 해였습니다.

    그해 가을은 유난히 빨리 찾아왔습니다. 구월 초에 벌써 첫서리가 내렸고, 산의 나뭇잎이 마르기도 전에 떨어졌습니다. 가을장마까지 겹쳤습니다. 비가 열흘 넘게 이어졌고, 산길은 진흙탕이 되어 오를 수가 없었습니다. 움막 안에 드러누워 빗소리를 들었습니다. 배에서 나는 소리가 빗소리보다 컸습니다. 사흘째 굶고 있었습니다.

    열한째 되는 날, 비가 그쳤습니다.

    득수는 동이 트기도 전에 산으로 올랐습니다. 평소에 다니던 뒷산의 소나무 숲으로 갔는데, 장마에 산비탈이 무너진 뒤였습니다. 늘 나무를 하던 자리가 통째로 쓸려 내려가 있었습니다. 쓸 만한 나무를 찾아 능선을 따라 걸었습니다. 점점 깊이 들어갔습니다. 해가 중천에 올라 있었는데도, 소나무가 하늘을 가려 숲 안은 어둑했습니다. 발이 익숙하지 않은 땅을 밟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해가 이미 산등성이 너머로 기울고 있었습니다.

    길을 잃은 것이었습니다.

    득수는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사방이 소나무였습니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틈이 없을 만큼 빽빽했고, 가지가 하늘을 촘촘히 덮어 별빛 한 점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발밑에는 솔잎이 두껍게 깔려 자기 발자국조차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어디서 왔는지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런데 소나무가 흔들리는 것치고는 소리가 이상했습니다. 쇠붙이가 맞부딪히는 소리 같기도 하고, 누군가 혀를 차는 소리 같기도 한 것이 숲 안쪽에서 들려왔습니다. 짐승이라면 발소리가 있어야 하고, 바람이라면 방향이 일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소리는 마치 한 곳에 서서 울리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으면서 숲 전체를 울리고 있었습니다.

    '짐승이면 도망가면 되고, 사람이면 길을 물으면 된다.'

    득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두려울 것이 없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잃을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무서울 것도 없습니다.

    소나무 숲이 끝나는 지점이 나왔습니다. 바위가 불쑥 솟아오른 고갯마루였습니다. 그리고 그 고갯마루 한가운데, 무언가가 서 있었습니다.

    사람의 형상이었습니다. 키가 한 길은 족히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리가 하나뿐이었습니다. 왼쪽 다리 하나로 땅을 딛고 서 있는데, 넘어질 기미가 전혀 없었습니다. 마치 소나무가 뿌리를 내린 것처럼 단단히 박혀 있었습니다. 몸에는 누더기인지 이끼인지 모를 것이 걸쳐 있었고, 어깨가 평범한 사내의 두 배는 넓었습니다. 얼굴은 어둠 속에 가려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 주위로 푸른 빛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공기 중에 떠 있는 것처럼 일렁이는 불빛. 도깨비불이라는 것이 진짜로 존재한다면, 바로 이런 것이었을 것입니다.

    득수는 그 자리에 서서, 그것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그것도 득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숲이 고요했습니다. 벌레 소리마저 멈춰 있었습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그것이었습니다.

    "겁이 없구나."

    목소리라고 하기엔 너무 깊었고, 울림이라고 하기엔 너무 또렷했습니다. 가슴팍이 울리는 소리였습니다. 뱃속까지 내려가 장기를 흔드는 것 같은 목소리.

    득수가 대답했습니다.

    "겁먹을 것이 없는 놈이라 그렇습니다."

    그것이 웃었습니다. 입이 보이지 않는데 웃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소나무 둥치가 바람에 삐걱거리듯 낮게 흔들리는 웃음이었습니다.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할 장면입니다. 도깨비를 만난 사람은 미치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라고 했으니까요. 그런데 이 사내에게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 3.

    도깨비가 한 발짝 다가왔습니다. 다리가 하나뿐이니 뛰었다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통나무가 땅을 찍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렸고, 그 충격에 발밑의 솔잎이 사방으로 튀었습니다. 푸른 빛이 한 뼘 더 가까워졌습니다. 그리고 그 빛 아래로 도깨비의 얼굴이 들어왔습니다.

    득수는 눈을 깜빡였습니다.

    무섭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무섭게 생기지 않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뿔이 솟은 것도 아니었고, 송곳니가 튀어나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사람의 얼굴이었습니다. 다만, 보통 사람보다 서너 배는 큰 얼굴이었고, 눈이 유난히 깊었습니다. 마치 수백 년 묵은 느티나무의 옹이가 사람 얼굴로 변한 것 같았습니다. 피부는 나무껍질처럼 갈라져 있었고, 그 갈라진 틈 사이로 푸른 빛이 실핏줄처럼 흘렀습니다. 그리고 그 깊은 눈 속에, 이상하게도 웃음이 있었습니다. 사람을 해치려는 것의 눈이 아니었습니다. 오래 기다린 것의 눈이었습니다.

    "네가 이 고갯길을 넘어온 일곱 번째 사람이다."

    도깨비가 말했습니다.

    "앞의 여섯은 나를 보고 도망쳤다.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다 나뭇가지에 걸려 넘어지고, 바위에 머리를 부딪치고 굴렀다. 스스로 겁에 질려 머릿속이 하얘진 것이지, 내가 미치게 만든 것이 아니다."

    득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 그런 것이었구나. 도깨비가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기 안의 공포에 잡아먹히는 것이었구나. 잃을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두려움도 큰 법입니다. 그리고 박득수는, 이 세상에서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내였습니다.

    "그래서 나한테 뭘 하려고 그러시오?"

    득수가 물었습니다. 존댓말과 반말 사이의 어정쩡한 말투였습니다. 도깨비에게 어떤 말씨를 써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준 적이 없으니,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한 것이었습니다.

    도깨비가 소리를 내어 웃었습니다. 숲 전체가 울리는 웃음이었습니다.

    "재미있는 놈이구나. 좋다. 나와 씨름을 하자."

    씨름이라니. 득수는 고개를 들어 도깨비를 올려다보았습니다. 자기보다 반 길이나 더 큰 것이, 다리가 하나뿐인 것이, 씨름을 하자고 합니다. 황당했지만, 거절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이기면 어떻게 됩니까."
    "이기면 네가 원하는 것을 하나 주마."
    "지면요?"
    "지면 내일 밤 다시 오너라."

    이상한 내기였습니다. 이기면 상을 받고, 지면 다시 오라는 것입니다. 벌이 벌 같지 않았습니다. 득수는 잠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잃을 것이 없는 놈에게 이보다 좋은 거래가 어디 있겠나.'

    허리춤을 고쳐 잡았습니다. 도깨비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그날 밤, 득수는 도깨비와 씨름을 했습니다.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열 판을 붙어 열 판을 졌습니다. 도깨비의 다리는 하나였지만, 그 하나가 마을 어귀 정자나무 둥치만큼 굵고, 바위만큼 단단했습니다. 득수가 허리를 잡으면 도깨비는 그 한 다리로 가볍게 뛰어올라 내리찍었고, 득수가 다리를 걸려 하면 오히려 자기 발목이 꺾일 것 같았습니다. 어깨를 밀어보았지만 바위를 미는 것과 다름이 없었고, 발치를 후렸지만 도깨비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열 번째로 땅바닥에 나뒹군 뒤, 득수는 흙 위에 대자로 드러누웠습니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별이 보였습니다. 가을밤의 별은 유난히 날카로웠습니다. 숨이 턱까지 찬 채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니, 도깨비의 얼굴이 위에서 내려다보았습니다. 푸른 빛이 후광처럼 그 뒤에 걸려 있었습니다.

    "내일 밤 다시 오너라."

    도깨비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푸른 빛이 꺼지듯 사라졌습니다. 소나무 숲 사이로 스며들듯, 소리 없이 없어졌습니다.

    득수는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온몸이 쑤셨습니다. 팔뚝에 멍이 들었고, 등짝은 돌에 찍혀 욱신거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니,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가슴이 뛰고 있었습니다.

    서른두 해를 살면서, 아무에게도 필요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나무를 하고, 저녁에 돌아오면 혼자 밥을 먹고, 밤이 되면 움막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누군가 그를 찾은 적이 없었고,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부른 적도 없었습니다. 내일 그가 죽어도 아는 사람이 없을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누군가 내일 밤 다시 오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도깨비라 해도. 사람이 아니라 해도. 내일 밤 다시 오라는 그 한마디가, 살면서 들어본 어떤 말보다 따뜻했습니다.

    다음 날 밤, 득수는 다시 은골재를 올랐습니다.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이틀이 사흘이 되고, 사흘이 열흘이 되고, 열흘이 한 달이 되었습니다. 매일 밤 씨름을 하고 매일 밤 졌습니다. 스무 번을 붙으면 스무 번을 졌고, 서른 번을 붙으면 서른 번을 졌습니다. 하지만 매일 밤 한 판이라도 더 버텼고, 매일 밤 조금씩 도깨비의 중심을 흔드는 법을 배워갔습니다.

    그리고 씨름이 끝나면, 도깨비는 바위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산의 나무가 몇 살인지, 어느 골짜기에 물이 가장 맑은지, 봄에 어디서 고사리가 가장 먼저 올라오는지. 사람이 들려주지 않는 이야기를 도깨비가 들려주었습니다. 득수도 말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한마디, 두마디. 나중에는 해가 뜰 때까지 멈추지 못하는 밤도 있었습니다. 살면서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들이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진짜 싸움은 도깨비와의 씨름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내를 진짜 시험에 들게 한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 4.

    박득수가 밤마다 은골재를 오른다는 이야기가 공주 읍내에 퍼지는 데는 보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웃음거리였습니다. 장터에서 나무를 사가던 아낙네가 수군거렸습니다. "박쇠가 드디어 맛이 갔나 봐. 밤마다 그 고개를 올라간대." 술청에서 막걸리를 들이켜던 한량이 무릎을 치며 웃었습니다. "귀신한테 장가라도 가려나 보지." 마을 아이들이 득수의 움막 앞을 지나며 돌멩이를 던졌습니다. "도깨비 친구! 도깨비 친구!" 아이들의 놀림에 득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원래 말이 없는 사내였으니까. 하지만 돌멩이는 아이들이 던진 것만 맞은 게 아니었습니다.

    한 달쯤 지났을 때,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공주 고을의 좌수 어른이 관아에 민원을 넣은 것입니다. 은골재에 도깨비가 나온다는 소문이 공주뿐 아니라 부여, 논산까지 퍼져 장사꾼들이 그 길을 피해 돌아가고 있다. 고갯길이 끊기니 물류가 막히고, 물류가 막히니 장사가 안 된다. 그 소문의 근원이 박득수라는 초군이다. 이놈이 밤마다 도깨비를 만나러 간다고 떠들어서 고을 전체가 혼란에 빠졌으니 엄히 다스려달라. 좌수의 말에 관아가 움직였습니다.

    어느 날 새벽, 득수가 은골재에서 내려와 움막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개울을 건너려는데 앞에 포졸 셋이 서 있었습니다. 횃불을 들고 있었고, 그 뒤에 이방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습니다.

    "박득수, 사또께서 부르신다. 따라와라."

    거절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포졸들이 양쪽에서 팔을 잡았고, 득수는 그대로 관아로 끌려갔습니다. 아침 해가 뜨기도 전에 관아 뜰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마당의 돌이 차가웠습니다. 무릎뼈가 시렸습니다.

    사또가 나왔습니다. 공주 목사 이형래. 나이 쉰이 넘은 관리로, 눈이 가늘고 입이 얇은 사람이었습니다. 화가 나 있는 게 아니라 귀찮아하는 표정이었습니다. 그 표정이 오히려 더 무서웠습니다. 화가 난 사람은 설득할 수 있지만, 귀찮아하는 사람은 빨리 끝내려 합니다.

    "네놈이 박득수냐."
    "예."
    "밤마다 은골재에 올라간다는 게 사실이냐."
    "예."
    "도깨비를 만난다는 것도 사실이냐."

    득수가 잠시 입을 다물었습니다. 사실이라고 하면 미친놈 취급을 받을 것이고, 거짓이라고 하면 왜 밤마다 고개를 올랐느냐는 추궁을 받을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좋은 결과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득수는 거짓을 말할 줄 모르는 사내였습니다.

    "사실입니다."

    사또의 눈이 가늘어졌습니다. 옆에 서 있던 이방이 한 발 앞으로 나왔습니다.

    "사또, 이놈이 요언을 퍼뜨려 고을을 어지럽히고 있사옵니다. 엄히 곤장을 쳐 다스리시지요."

    사또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곤장 삼십 대.

    형리가 곤장을 들었습니다. 첫 대가 등짝에 내리꽂혔을 때, 득수의 몸이 활처럼 휘었습니다. 소리를 지르지 않았습니다. 이를 악물었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등짝에서 옷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다섯 번째부터 피가 배어나왔습니다. 열 대를 맞았을 때 등에서 살이 터졌고, 스무 대를 맞았을 때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마당의 돌바닥에 핏물이 고였습니다. 서른 대를 다 맞았을 때, 득수는 엎드린 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다시는 은골재에 올라가지 마라. 도깨비 운운하며 백성을 현혹하면 그때는 곤장이 아니라 칼이다."

    사또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것처럼 울렸습니다. 득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포졸들이 그를 관아 밖으로 내던졌습니다. 문짝처럼. 해가 떠 있었습니다. 밝은 햇살이 등짝의 상처 위에 내리쬐었습니다. 따뜻한 게 아니라 뜨거웠고, 뜨거운 게 아니라 아팠습니다.

    움막까지 기어갔습니다.

    말 그대로 기어갔습니다. 두 무릎과 두 팔을 번갈아 짚으며, 개울가를 따라 한 뼘씩 나아갔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보았지만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도깨비에 미친 놈에게 괜히 가까이 갔다가 재수 없어질까 봐. 아낙네들이 빨래를 하다 말고 쳐다보았고, 아이들이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아무도 물 한 모금 건네지 않았습니다.

    움막에 도착했을 때 해가 기울어 있었습니다. 등을 땅에 댈 수 없어 옆으로 누웠습니다. 상처에 파리가 붙었지만 손을 들어 쫓을 힘도 없었습니다. 천장의 나뭇가지 틈으로 하늘이 보였습니다. 주황빛 노을이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이 사내의 눈에서 물이 흘렀습니다.

    소리 없이 흘렀습니다. 울음소리가 아니었습니다. 눈에서 물이 새는 것처럼 줄줄 흘렀습니다. 서른두 해를 살면서 한 번도 울지 않았던 사내였습니다. 부모가 죽었을 때도, 열다섯에 혼자 남겨졌을 때도, 사흘을 굶었을 때도 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도깨비를 만나지 말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눈물이 나왔습니다.

    슬퍼서가 아니었습니다. 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기다리게 되었는데, 그것을 빼앗기게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매일 밤 고갯마루에서 기다리고 있을 도깨비를 생각했습니다. 오늘 밤 자기가 올라가지 않으면, 그 넓은 어깨의 큰 것이 혼자 서서 기다릴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 해도, 기다림은 기다림입니다. 기다리는 쪽의 마음은 사람이든 도깨비든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득수는 생각했습니다.

    밤이 왔습니다.

    등짝의 상처가 굳어 딱지가 지기 시작했습니다. 몸을 일으키면 딱지가 갈라져 다시 피가 날 것이었습니다. 움직이면 안 됩니다. 누워 있어야 합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몸이 먼저 일어났습니다.

    지게를 짚고 일어섰습니다. 등에서 무언가 흐르는 느낌이 있었지만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움막 문을 열었습니다. 밖은 캄캄했습니다. 은골재 쪽 하늘에, 아주 희미하게, 푸른 빛이 하나 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보이는 것인지, 보고 싶어서 보이는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상관없었습니다.

    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날 밤, 득수는 피가 등을 타고 흘러 바짓가랑이까지 적시는 몸으로, 은골재를 올랐습니다. 고갯마루에 도착했을 때,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습니다. 그 앞에, 도깨비가 서 있었습니다.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처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도깨비가 아무 말 없이 득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득수도 아무 말 없이 도깨비를 올려다보았습니다. 한참 뒤, 도깨비가 입을 열었습니다.

    "왜 왔느냐."

    득수가 대답했습니다.

    "내일 밤 다시 오라고 했잖습니까."

    도깨비가 웃지 않았습니다. 그 깊은 눈이 잠시 흔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등을 돌려라."

    득수가 등을 돌렸습니다. 도깨비의 커다란 손이 등에 닿았습니다. 차가웠습니다. 나무를 만지는 것 같은 감촉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손이 등을 훑고 지나가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타오르듯 아프던 상처가 서늘해졌습니다. 서늘함이 시원함으로 바뀌고, 시원함이 편안함으로 바뀌었습니다. 갈라졌던 살이 붙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통증이 모래가 바람에 날리듯 사라져 갔습니다.

    "오늘은 씨름 없다. 가서 자거라."

    도깨비가 말했습니다. 득수는 등을 만져보았습니다. 딱지도, 피도, 상처도 없었습니다. 매끈했습니다. 마치 곤장을 맞지 않은 것처럼.

    득수는 일어섰습니다. 도깨비를 올려다보았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것은 한마디뿐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살면서 처음 해본 말이었습니다.

    그날 밤, 이 사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고마움이 어떤 무게를 가진 것인지를 진짜로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습니다.

    ※ 5.

    곤장을 맞고도 은골재를 올랐다는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졌습니다. 비웃음이 두려움으로 바뀌었습니다. "저놈은 진짜 미친 놈이다" "도깨비한테 홀린 거야" "가까이 가지 마라, 재수 없다." 장터에서 득수의 나무를 사가던 사람도 줄었습니다. 포졸들이 움막 근처를 어슬렁거렸습니다. 사또의 경고가 아직 유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득수는 밤마다 고개를 올랐습니다.

    낮에는 나무를 했습니다. 아무도 사가지 않아도 나무를 했습니다. 몸을 쓰지 않으면 밤에 씨름을 할 수 없으니까. 저녁이면 움막에서 죽 한 그릇을 끓여 먹고, 날이 어두워지면 은골재를 올랐습니다. 포졸의 눈을 피해 개울 뒤편으로 돌아가는 길을 새로 찾았습니다. 맨발로 물을 건너고, 가시덤불을 헤치며, 어둠 속에서 길을 만들었습니다. 도깨비를 만나기 위해 사람의 길이 아닌 짐승의 길을 걷는 사내가 되었습니다.

    씨름은 계속되었습니다. 한 달이 더 지났습니다. 합하면 두 달. 그 사이 득수의 몸이 달라졌습니다. 나무를 하며 다진 근육이 씨름으로 단단해졌습니다. 매일 밤 한 길이 넘는 도깨비와 맞붙으니, 힘의 방향을 읽는 법이 몸에 배었습니다. 도깨비는 다리가 하나이므로 중심이 언제나 한쪽에 있습니다. 그 중심의 반대쪽을 공략하면, 아무리 무거운 것이라도 흔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순한 번째 밤이었습니다.

    도깨비가 다리를 딛고 섰습니다. 득수가 허리를 낮추었습니다. 달빛이 고갯마루 위에 떨어지고 있었고, 푸른 빛이 두 사람 사이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두 달간 매일 밤 이어진 씨름의 예순한 번째 판이 시작되었습니다.

    득수가 먼저 들어갔습니다. 도깨비의 허리를 잡았습니다. 도깨비가 한 발로 뛰어올라 내리찍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득수는 이번에는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도깨비가 뛰어오르는 그 찰나, 하나뿐인 다리가 땅에서 떨어지는 그 순간을 기다린 것이었습니다. 중심을 잃은 틈. 득수가 왼쪽으로 온 힘을 실어 몸을 틀었습니다. 도깨비의 몸이 기울었습니다. 처음이었습니다. 두 달 만에 처음으로 도깨비의 몸이 기울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도깨비는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공중에서 다리를 뻗어 다시 땅을 딛고 버텼습니다. 득수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이를 악물었습니다. 발가락이 흙 속으로 파고들었습니다. 팔에 핏줄이 솟았습니다. 오른쪽으로 밀고, 왼쪽으로 틀고, 다시 오른쪽으로 당겼습니다. 도깨비의 다리가 한 뼘, 두 뼘 미끄러졌습니다.

    그리고 득수가 마지막 힘을 짜냈습니다. 어깨로 도깨비의 몸통을 들이받으며 다리를 걸었습니다. 도깨비의 몸이 떴습니다.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것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쿵. 고갯마루 전체가 울리는 소리와 함께, 도깨비의 등이 땅에 닿았습니다.

    소나무에서 솔방울이 우수수 떨어졌습니다. 땅이 한 번 크게 흔들리고, 고요해졌습니다.

    득수는 두 손을 무릎에 짚은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눈앞이 흐려졌습니다.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온몸의 힘이 빠져나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웃음이 나왔습니다.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는 것이었습니다.

    도깨비가 땅에 누운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도깨비도 웃고 있었습니다. 숲이 울릴 만큼 크게.

    "이겼구나."

    도깨비가 말했습니다. 일어나 앉더니 득수를 바라보았습니다. 깊은 눈 속에 있던 웃음이 이번에는 조금 달랐습니다. 자랑스러움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진 것이 기쁜 것처럼.

    "약속대로, 원하는 것을 하나 주마. 말해라."

    득수는 숨을 고르며 생각했습니다. 원하는 것. 돈이 필요했습니다. 밥이 필요했습니다. 집이 필요했습니다. 옷이 필요했습니다. 필요한 것은 너무 많았는데,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내일 밤에도 올 수 있습니까?"

    도깨비가 멈칫했습니다.

    "상을 달라는 게 아니라, 다시 오게 해달라는 것이냐?"

    득수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씨름을 더 하고 싶습니다. 이야기도 더 듣고 싶습니다. 그게 제가 원하는 것입니다."

    고갯마루에 바람이 불었습니다. 소나무가 흔들렸습니다. 도깨비가 한참 동안 득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수백 년을 살았을 그 깊은 눈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직하게 말했습니다.

    "알겠다. 하지만 나도 너에게 줄 것은 주마."

    도깨비가 손을 들어 산 아래쪽을 가리켰습니다.

    "이 산의 북쪽 골짜기, 바위가 셋 겹쳐 있는 곳 아래에 삼이 있다. 일곱 뿌리. 네 두 달의 값이다."

    득수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런 걸 바라고 온 것이 아니라고.

    "받아라."

    도깨비의 목소리가 단호했습니다.

    "네가 이 고개를 오르는 것을 사람들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산삼은 너를 지켜줄 방패가 될 것이다. 가진 것이 없으면 사람의 세상에서 말을 할 수가 없다. 나는 그것을 수백 년 동안 보아왔다."

    득수의 손이 떨렸습니다. 도깨비가 자기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아닌 것이, 사람보다 먼저 자기의 앞날을 걱정해주고 있었습니다. 목이 메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올라왔지만 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두 번째 고맙다는 말이었습니다. 첫 번째보다 무거웠습니다.

    이것이, 장터에 산삼 일곱 뿌리를 들고 나타난 사내의 진짜 이야기였습니다. 도깨비에게 홀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도깨비에게 사람 대접을 처음으로 받은 것이었습니다.

    ※ 6.

    장터에서 포졸에게 끌려간 득수는 다시 관아에 섰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약재상 노인이 따라왔습니다. 노인이 사또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이 산삼은 틀림없이 진품이다. 오십 년 이상 묵은 것이 셋, 삼십 년 이상이 넷이다. 합치면 값이 쌀 천 석도 넘는다. 이것을 훔칠 수 있는 사람은 조선 팔도에 없다. 캔 것이 맞다.

    사또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쌀 천 석이면 관아의 일 년 세입에 맞먹는 돈이었습니다. 미친놈이라고 곤장을 때려 쫓아보낼 일이 아니게 된 것입니다. 사또가 득수에게 물었습니다. 정말 도깨비가 알려준 것이냐고.

    득수가 대답했습니다.

    "예. 도깨비가 알려줬습니다. 은골재 북쪽 골짜기, 바위 셋이 겹쳐 있는 곳 아래에 있었습니다."

    사또가 사람을 보내 확인했습니다. 바위 셋이 겹쳐 있는 곳. 그 아래 땅을 파니 산삼을 캔 흔적이 있었고, 아직 남아 있는 잔뿌리가 흙 속에 박혀 있었습니다.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사또는 곤장 삼십 대를 때린 일이 마음에 걸렸는지, 득수에게 산삼 일곱 뿌리의 정당한 소유를 인정해주었습니다. 약재상을 통해 한양의 큰 약재 도가에 팔게 해주었고, 그 값으로 득수는 움막이 아닌 제대로 된 집을 짓고, 논 두 마지기를 살 수 있었습니다. 남은 돈으로 소 한 마리를 사서 끌고 움막이 있던 개울가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새 집에서의 첫날 밤, 득수는 당연히 은골재를 올랐습니다.

    도깨비는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한 다리로, 푸른 빛을 두르고, 고갯마루 한가운데에.

    "집을 샀다고?"

    "예."

    "논도 샀다고?"

    "예."

    "소도?"

    "예."

    도깨비가 웃었습니다. 숲이 흔들릴 만큼 크게.

    "그래, 이제 장가는 언제 갈 셈이냐?"

    득수도 웃었습니다. 그것은 아직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도깨비가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왜? 이제 집도 있고 논도 있고 소도 있는데."

    득수가 고개를 긁적였습니다.

    "장가를 가면, 밤에 여기를 못 올라올 것 같아서요."

    도깨비가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고갯마루 바위에 걸터앉으며 말했습니다.

    "바보 같은 놈."

    그 말투가, 꾸짖는 것이 아니라 아끼는 사람에게 하는 말투라는 것을 득수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득수는 은골재를 올랐습니다. 장가를 갔습니다. 이듬해 봄에 공주 읍내 두부 만드는 집의 딸과 혼례를 올렸습니다. 아내에게 도깨비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내가 처음에는 놀랐지만, 남편의 눈을 보고 믿었습니다.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사내의 눈이었으니까.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들이었습니다. 아이가 말을 배울 나이가 되었을 때, 득수는 아이를 업고 은골재를 올랐습니다. 아이가 도깨비를 보고 울었습니다. 도깨비가 아이를 보고 웃었습니다.

    "닮았구나."

    도깨비가 말했습니다.

    "뭘 닮았습니까?"

    "겁 없는 눈이 닮았다."

    그해 겨울, 득수는 은골재 아래 주막을 하나 차렸습니다. 이름을 독각주막이라 붙였습니다. 밤에 고개를 넘는 나그네에게 잠자리와 밥을 제공했습니다. 더 이상 은골재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줄어들었습니다. 도깨비가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의 두려움에 지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득수의 입을 통해 장터에서, 주막에서, 아이들의 귓가에서 퍼져나갔습니다.

    야담집에는 이렇게 전합니다. 독각귀, 즉 외다리 도깨비는 사람을 해치는 존재가 아니었다고. 오히려 사람보다 의리가 있었고, 사람보다 먼저 걱정해주었고, 사람보다 오래 기다려주었다고. 박득수라는 초군은 도깨비에게 홀린 것이 아니라, 도깨비에게 처음으로 사람 대접을 받은 것이라고.

    그리고 은골재 고갯마루에는 지금도, 소나무 사이로 푸른 빛이 가끔 보인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옵니다.

    엔딩

    누군가 기다려준다는 것. 내일 밤 다시 오라는 한마디.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꿨습니다. 박득수에게 도깨비는 귀신이 아니었습니다. 세상 누구도 해주지 않은 말을 해준 존재였습니다.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던 사내에게, 돌아갈 곳을 만들어준 존재였습니다. 진짜 무서운 것은 도깨비가 아니라 외로움이고, 진짜 기적은 방망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는 데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한국의 길에서 발견하는 지혜, 한국의교훈에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