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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수를 은인으로 만든 방망이 『어우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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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철천지원수를 갚을 완벽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피눈물 나는 복수의 칼을 휘두를까요, 아니면 먼저 용서의 손을 내밀까요? 여기, 깊은 산속 도깨비가 남기고 간 방망이 하나로 씻을 수 없는 원한을 커다란 은혜로 뒤바꾼 기막힌 사연이 있습니다. 어우야담 속 놀라운 인생 역전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 1: 억울하게 모든 것을 빼앗긴 사내

    하늘에 커다란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굵은 장대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내리는 칠흑 같은 밤이었습니다. 우르릉 쾅쾅, 고막을 찢을 듯한 천둥소리가 온 산천을 뒤흔들고 번쩍이는 번갯불이 세상을 하얗게 밝힐 때마다, 낡고 찢어진 삿갓 아래로 핏발이 선 사내의 두 눈이 형형하게 번뜩였습니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차가운 빗물의 한기보다, 사내의 앙상한 가슴속에 차오른 분노와 한의 불길이 훨씬 더 뜨겁고 매섭게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사내의 이름은 억수. 한때는 고향 마을에서 제일가는 부농의 장남으로 태어나, 넉넉한 곳간만큼이나 인심 좋고 사람 좋은 청년으로 남부러울 것 없이 살던 이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의 곁에는 그토록 사랑했던 가족들이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비에 젖어 덜덜 떠는 불쌍한 늙은 노모도, 억수를 하늘처럼 믿고 따르며 따뜻하게 반겨주던 어진 아내도 모두 차가운 땅속에 묻혀버렸습니다. 그가 평생을 바쳐 땀 흘려 일군 문전옥답과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따뜻한 기와집 보금자리는 모두 단 한 사람, 어릴 적부터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굳게 믿고 의지했던 죽마고우 칠성의 탐욕스러운 손아귀에 통째로 넘어가 버린 지 오래였습니다.

    '내 놈을... 내 기필코 산 채로 찢어 죽이고 말 테다. 내 부모의 눈에서 피눈물을 짜내고, 내 가엾은 아내를 병들어 길거리에서 죽게 만든 그 악독한 놈... 칠성아, 네놈이 정녕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그런 인면수심의 짓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이냐!'

    억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질척이는 진흙길을 위태롭게 내디뎠습니다. 발가락이 돌부리에 차여 발톱이 빠지고 피가 철철 흐르는 줄도 모른 채, 그저 비틀거리며 걷고 또 걸었습니다. 칠성은 억수의 아버지가 몹쓸 병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시자마자, 그 슬픔을 위로하기는커녕 교묘하게 거짓 문서를 꾸미고 관아의 아전들을 매수하여 억수의 재산을 통째로 자신의 소유로 돌려놓았습니다. 뒤늦게 사실을 알고 관아로 달려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돈과 뇌물로 흠뻑 젖은 사또마저 칠성의 편이었습니다. 오히려 억수는 남의 재산을 탐내어 관아를 기만한 파렴치한 사기꾼으로 몰려 무자비한 매질을 당하고 어두컴컴한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차가운 감옥 바닥에서 억수가 억울함에 피를 토하며 모진 고문을 당하는 동안, 그 충격과 슬픔을 이기지 못한 늙은 어머니는 식음을 전폐하시다 결국 피를 토하며 화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아내마저 옥에 갇힌 남편을 구명해보려 이 집 저 집 문을 두드리며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다가, 결국 겨울비가 내리던 날 차가운 길바닥에 쓰러져 다시는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옥문이 열리고 억수가 세상 밖으로 쫓겨나듯 나왔을 때, 그에게 남은 것은 갈기갈기 찢어져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누더기 옷자락과 지독한 복수심뿐이었습니다. 당장이라도 칠성의 집으로 달려가 낫을 휘두르고 놈의 목숨을 끊어놓고 싶었지만, 오랜 굶주림과 모진 고문으로 망가질 대로 망가진 그의 몸뚱어리는 제 몸 하나 가누기조차 버거웠습니다. 원수 놈의 집 문전에서 고기를 뜯던 하인들의 몽둥이찜질을 당하고 개처럼 쫓겨난 날, 억수는 피투성이가 된 채 다짐했습니다. 이대로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다고, 산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 짐승처럼 살며 호랑이 고기를 씹어 먹어서라도 기력을 회복해 반드시 그놈의 숨통을 내 손으로 끊어놓겠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억수는 사람이 전혀 다니지 않는 험하디험한 심산유곡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낮에는 이것이 사람을 죽이는 독초인지 사람을 살리는 약초인지 분간조차 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대로 풀뿌리를 캐어 씹어 먹었고, 밤에는 소름 끼치는 들짐승들의 울음소리를 자장가 삼아 축축한 바위틈에서 짐승처럼 새우잠을 잤습니다.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며 온 산을 뒤흔드는 오늘 같은 밤이면, 억울하게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 가족들의 환영이 눈앞에 아른거려 가슴을 쥐어뜯으며 짐승처럼 통곡했습니다.

    "어머니! 여보! 이 못난 자식을, 이 못난 지아비를 부디 용서하지 마시오! 내 그놈의 심장에 칼을 꽂아 그 피로 당신들의 무덤을 적시기 전에는, 결단코 저승에 가지도 않을 것이오! 하늘이시여, 신령님이시여! 정녕 저 악독한 칠성이 놈을 그대로 두시려나이까! 차라리 제 목숨을 거두어 가시고 저놈에게 천벌을 내려주시옵소서!"

    짐승의 포효 같기도 하고, 귀신의 곡소리 같기도 한 억수의 처절한 절규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폭우 소리에 묻혀 허공으로 흩어졌습니다. 얼마나 깊은 산속을 헤매고 다녔을까, 그의 몰골은 이미 사람의 것이라기보다 굶주린 들귀신이나 짐승에 가까웠습니다. 덥수룩한 수염은 엉킨 채 가슴까지 내려왔고, 눈동자는 광기와 살기로 붉게 번뜩였으며, 뼈만 남은 앙상한 손가락은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처럼 굽어 있었습니다.

    빗발이 더욱 거세지며 한 치 앞을 분간하기조차 힘들어질 무렵, 꽈르릉 하는 천둥소리와 함께 번개가 번쩍이며 기괴한 모양의 검은 그림자 하나를 산등성이에 비추었습니다. 깎아지른 듯한 산봉우리 중턱에 언제 지어졌는지 알 수 없는, 다 쓰러져가는 흉가 한 채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억수는 얼어붙은 몸을 이끌고 진흙탕을 기어 짐승처럼 네 발로 그 흉가 안으로 숨어들었습니다. 지붕엔 구멍이 숭숭 뚫려 빗물이 새고 있었고 코를 찌르는 썩은 나무 냄새와 곰팡내, 그리고 짐승의 똥 냄새가 진동했지만, 살을 에이는 비바람을 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습니다. 그는 구석에 쌓인 언제 적 것인지 모를 퀴퀴한 마른 볏짚 더미 속에 파묻혀 덜덜 떨리는 몸을 한껏 웅크렸습니다. 극도의 피로와 뱃속을 갉아먹는 듯한 허기가 동시에 밀려오며 까무룩 정신을 잃어가던 찰나였습니다.

    갑자기 산등성이 너머 저 깊은 숲속에서 기괴한 불빛들이 명멸하기 시작했습니다. 파랗고 붉은 불꽃들이 마치 허공에서 춤을 추듯 너울거리며, 이 다 쓰러져가는 흉가를 향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횃불이나 화롯불과는 차원이 다른, 뼛속까지 오싹해지는 스산한 기운을 내뿜는 도깨비불들이었습니다.

    ※ 2: 폐가에서 마주친 기괴한 도깨비들의 잔치

    푸르스름하고 붉은 불빛들이 점점 폐가 쪽으로 가까워지자, 쿵쾅거리는 기괴하고 육중한 발소리와 함께 도저히 사람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왁자지껄한 소리들이 폐가를 에워싸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거대한 바위가 굴러오는 듯한 진동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깬 억수는 헉하고 숨을 들이켰지만, 행여나 소리가 새어 나갈까 봐 재빨리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그는 덜덜 떨리는 몸을 애써 진정시키며, 퀴퀴한 볏짚 더미 틈새로 실눈을 뜨고 밖을 엿보았습니다.

    '저, 저게 대체 무엇이냐... 산귀신이냐, 아니면 사람을 잡아먹는 요괴냐...'

    우당탕탕! 하는 엄청난 굉음과 함께 폐가의 다 썩어가는 문짝이 산산조각이 나며 거칠게 뜯겨 나갔습니다. 그리고 기골이 장대하고 머리에 뿔이 달린, 흉측하고 기괴한 형상의 무리들이 방 안으로 우르르 몰려들어 왔습니다. 어릴 적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옛날이야기로만 듣던 바로 그 도깨비들이었습니다. 어떤 놈은 이마 정중앙에 커다란 눈이 하나뿐이라 끔찍했고, 어떤 놈은 다리가 하나뿐이라 콩콩 뛰어다녔으며, 집채만한 호랑이 가죽을 두르거나 온몸이 시퍼런 비늘로 덮인 놈 등 그 생김새가 실로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기괴하고 무시무시했습니다. 방 안은 순식간에 도깨비들이 내뿜는 비릿한 흙냄새와 누린내로 가득 찼습니다. 억수는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떨며,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공포감에 몸을 한껏 둥글게 말았습니다.

    "아따! 오늘 밤은 비바람이 참말로 징하게도 거세구먼! 애써 잡아놓은 명당자리를 놔두고 이런 비린내 나는 썩은 사당에서 비를 피해야 하다니, 원통하고 분하도다!"
    "어허! 이 사람아, 투덜거리지 좀 말게나. 그나마 이 낡아빠진 지붕이라도 덮여 있으니 우리가 이렇게 오순도순 모여 잔치를 벌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자자, 날도 궂어서 온몸이 쑤시는데 어서 목이나 축이고 신나게 놀아보세!"

    덩치가 산만 하고 얼굴이 불타는 숯덩이처럼 붉은 도깨비가 호탕하게 껄껄 웃으며, 허리춤에서 시커멓고 커다란 나무 방망이를 하나 꺼내더니 바닥에 쿵! 하고 내리쳤습니다.

    "금아 나와라, 뚝딱! 은아 나와라, 뚝딱! 우리 도깨비들 배불리 먹을 맛있는 술과 고기도 왕창 나와라, 뚝딱!"

    그 순간, 볏짚 더미에 숨어 숨죽여 지켜보던 억수는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하며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습니다. 방망이가 바닥을 두드릴 때마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번쩍하는 오색찬란한 빛이 일더니, 먼지와 거미줄만 가득하던 텅 빈 폐가 바닥에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산해진미가 가득 차려진 떡 벌어지는 잔칫상이 생겨난 것입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갓 삶은 멧돼지 고기, 맑은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온갖 산적과 전,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과일들, 그리고 코끝을 찌르는 향긋하고 독한 술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방 한구석에는 커다란 놋항아리가 여러 개 생겨나더니, 그 안에서 금괴와 은덩이, 영롱하게 빛나는 진주와 옥구슬들이 폭포수처럼 가득 담겨 바닥으로 넘쳐흐르고 있었습니다.

    도깨비들은 기괴하고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를 내며 게걸스럽게 상으로 달려들어 맨손으로 고기를 뜯고, 커다란 사발에 술을 가득 부어 쉴 새 없이 들이켰습니다.

    '이런 맙소사... 세상에 이런 일이 있단 말인가. 저것이 말로만 듣던, 무엇이든 두드리면 나온다는 전설 속의 도깨비 방망이란 말인가!'

    억수는 뼛속까지 스며들던 두려움도 잊은 채, 그 황홀하고도 신기한 광경에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굶주림에 허덕이던 그의 뱃속에서는 고기 냄새를 맡고 미친 듯이 요동을 쳤지만, 억수의 시선은 오직 붉은 도깨비가 무심히 옆에 내려놓은 그 시커먼 방망이에 꽂혀 있었습니다. 도깨비들은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자기들끼리 알 수 없는 기괴한 가락에 맞춰 쿵쾅거리며 덩실덩실 춤을 추고 놀았습니다.

    "지난번에 김 서방네 참외 밭에서 서리해 먹은 참외가 참 달더군! 이 방망이로 내일은 그 마을에 쌀가마니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사람들을 놀래켜볼까 하네!"
    "낄낄낄, 어리석은 인간들은 평생을 허리가 휘도록 뼈 빠지게 일해도 엽전 한 닢 모으기 힘들어서 매일 밤 울부짖는데, 우리 도깨비들은 이 요술 방망이 하나면 천하의 부귀영화를 마음대로 누리니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자, 한 잔 더 마시게!"

    그들의 말을 듣는 순간, 억수의 머릿속에 번쩍하고 거대한 번개가 내리쳤습니다. 저 방망이... 저 요술 방망이만 내 손에 들어온다면! 저것만 있다면 억울하게 눈을 감은 불쌍한 내 부모님과 아내의 한을 풀어줄 수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기고만장해진 원수 칠성이 놈을 발밑에 꿇리고, 놈이 앗아간 모든 것을 되찾고 철저하게 앙갚음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억수의 심장은 터질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볏짚 더미 속에서 마른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도깨비들의 이 미친 잔치가 어서 끝나고 날이 밝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렸습니다. 살면서 이토록 간절하게 아침 해를 기다려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 3: 도깨비가 남기고 간 방망이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길고 길었던 폭풍우가 서서히 잦아들고, 멀리 산 아래 마을에서 새벽을 알리는 수탉의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그러나 날카롭게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칠흑 같던 하늘빛이 서서히 어스름하게 밝아오며 동쪽 하늘에 푸른 기운이 돌기 시작하자, 춤을 추며 술통에 코를 박고 있던 붉은 도깨비가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습니다.

    "에구머니나, 큰일 났다! 해가 뜬다, 날이 밝아온다! 이보게들, 어서 어서 서둘러 돌아가자꾸나! 햇빛을 받으면 우리는 모두 재가 되어버릴 것이야!"
    "아이고 맙소사, 독한 술에 취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퍼마셨네그려! 어서 서두르세, 빨리 산속 깊은 동굴로 몸을 숨기세!"

    혼비백산한 도깨비들은 먹다 남은 돼지 뼈다귀와 굴러다니는 은보화들을 챙길 여력도 없이 그대로 내팽개친 채, 허둥지둥 서로의 발을 밟아가며 부서진 문밖으로 빠져나갔습니다. 그런데 어찌나 급하게 서둘렀는지, 술에 가장 많이 취해 비틀거리던 붉은 얼굴의 도깨비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시커먼 요술 방망이를 방구석에 툭 떨어뜨리고 간 것을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우당탕탕 산을 내려가는 소리가 멀어지고, 파란 도깨비불들이 산등성이 너머로 완전히 사라져 사위가 다시 쥐죽은 듯 고요해졌을 때쯤. 억수는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조심스럽게 볏짚 더미를 헤치고 기어 나왔습니다.

    방 안에는 도깨비들이 남기고 간 잔칫상의 음식 냄새가 여전히 진동하고 있었지만, 억수의 시선은 오직 방구석 흙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낡고 거무스름한 나무 방망이에만 꽂혀 있었습니다. 억수는 미친 듯이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떨리는 두 손을 뻗어 그 방망이를 조심스레 집어 들었습니다. 겉보기에는 장작을 팰 때나 쓰는 그저 흔하디흔한 나무 방망이 같았지만, 손에 쥐는 순간 나무의 결을 타고 알 수 없는 묵직하고 뜨거운 기운이 억수의 온몸으로 찌릿하게 전해졌습니다.

    "하늘이... 굽어살피시는 하늘이 드디어 이 불쌍한 놈에게 원수를 갚을 기회를 주시는구나!"

    억수는 낡은 흉가 한가운데 서서 도깨비 방망이를 두 손으로 꽉 움켜쥔 채 짐승처럼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이것이 정녕 꿈인지 생시인지 믿기지 않는 현실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습니다. 그는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는, 간밤에 붉은 도깨비가 했던 시늉을 그대로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방망이를 바닥에 톡톡 두드렸습니다.

    "쌀... 쌀아 나와라, 뚝딱!"

    '펑!'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뽀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억수 눈앞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눈부시게 하얀 햅쌀이 가득 담긴 쌀가마니가 산더미처럼 쌓여 올랐습니다. 억수는 턱이 빠질 듯 입을 떡 벌린 채, 무릎을 꿇고 쌀가마니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습니다. 손끝에 닿는 까슬까슬한 볏짚과 차가운 쌀알의 촉감은 결코 헛것이 아닌 분명한 현실이었습니다.

    "하하... 하하하!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내가 드디어 살 길이 열렸어!"

    반미치광이처럼 웃어대던 억수는 이번에는 두 눈을 붉게 부릅뜨고 핏대를 세우며 방망이를 허공으로 번쩍 치켜들었습니다.

    "금아 나와라 뚝딱! 은아 나와라 뚝딱! 세상에서 제일가는 비단아 나와라 뚝딱!"

    방망이가 바닥을 칠 때마다 폭죽이 터지듯 눈부신 빛이 번쩍였고, 그 자리에는 어른 주먹만 한 황금덩이와 은괴들, 그리고 임금님 용포를 만들 때나 쓴다는 형형색색의 최고급 비단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습니다. 순식간에 다 썩어가던 폐가는 세상 그 어느 왕궁의 보물창고도 부럽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한 금은보화로 가득 차버렸습니다. 억수는 금화 더미 위에 털썩 주저앉아,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엄청난 부를 거머쥔 기쁨에 미친 사람처럼 깔깔대며 웃어젖혔습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이내 처절한 오열로 바뀌었습니다. 그는 차가운 금덩이를 품에 안고 짐승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 여보... 조금만, 아주 조금만 일찍 이 방망이를 얻었더라면... 약 한 첩 못 써보고 당신들이 그렇게 허망하고 비참하게 눈을 감지는 않았을 터인데... 내가 이 금은보화로 밥을 지어 먹인들 당신들이 살아 돌아오겠소!'

    그렇게 며칠 밤낮을 산속 폐가에 머물며 미친 듯이 재물을 불려 낸 억수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깊은 밤을 틈타 수백 대의 달구지와 일꾼들을 돈으로 동원하여 보물들을 산 아래로 실어 날랐습니다. 억수는 자신이 겪은 과거를 완전히 지우기 위해 예전에 살던 고향 마을에서 수백 리 떨어진,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남쪽의 큰 고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는 도깨비 방망이로 얻은 막대한 재물로 수천 마지기의 기름진 땅을 사들이고, 고을에서 제일가는 으리으리한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지었습니다. 가난하고 굶주린 백성들에게는 곳간을 열어 쌀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고, 마을에 홍수가 나 다리가 무너지면 사재를 털어 튼튼한 돌다리를 놓아주었습니다. 고을 사람들은 억수를 향해 하늘이 내린 대자대비한 의인이라며 살아있는 부처님 대하듯 칭송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하루아침에 천하제일의 거부가 된 억수는 겉으로 보기에는 남부러울 것 없는 평온하고 화려한 삶을 사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밤이 깊어 모두가 잠들고 홀로 으슥한 방에 남겨질 때면,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지옥불처럼 시뻘겋게 타올랐습니다. 최고급 비단 이불을 덮고 매일 산해진미를 맛보아도, 가족을 잃고 가슴 한구석에 검게 뚫린 거대한 구멍은 결코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칠성이... 그놈의 숨통을 끊어놓기 전까지, 내 복수는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억수는 자신의 막대한 돈을 이용해 은밀히 심복들을 풀어 예전 고향 마을에 있는 칠성의 동태를 샅샅이 살피게 했습니다. 심복들이 전해오는 소식에 따르면, 칠성은 억수의 재산을 가로챈 뒤로 기고만장하여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덕 지주로 악명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매일 밤 기생들을 끼고 성대한 술판을 벌이며 방탕하고 오만한 생활을 일삼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치가 떨리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억수는 품속에 고이 간직한 시커먼 도깨비 방망이를 쓰다듬으며, 복수의 칼날을 더욱 서늘하고 날카롭게 갈았습니다. 돈으로 뛰어난 자객을 사서 당장 내일 밤이라도 그놈의 목을 단칼에 칠 수도 있었지만, 억수는 그렇게 쉽게 죽여줄 생각이 추호도 없었습니다. 칠성이 가졌던 모든 권세와 재물을 서서히, 아주 천천히 말려 죽이듯 빼앗고, 자신이 감옥과 산속에서 느꼈던 그 철저한 절망과 지옥 같은 고통을 뼈저리게 맛보게 한 뒤에 가장 비참한 모습일 때 발로 짓밟아 주리라 다짐했습니다. 폭풍 전야의 고요함처럼, 억수의 차가운 분노는 거대한 해일이 되어 칠성의 목줄을 덮칠 그날만을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4: 원수의 몰락과 몹쓸 병에 걸린 옛 친구

    복수를 향한 억수의 치밀하고도 무서운 계획은 그가 겪었던 고통의 시간만큼이나 서서히, 그러나 그 어떤 태풍보다도 강력하게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억수는 도깨비 방망이에서 쏟아져 나온 막대한 황금과 비단을 아낌없이 풀어 자신의 심복들을 팔도 사방으로 파견했습니다. 가장 먼저 그의 칼날이 향한 곳은, 과거 칠성에게 거액의 뇌물을 받고 억수를 무고한 죄인으로 몰아 혹독한 고문을 가했던 탐관오리 사또였습니다. 억수는 한양의 힘 있는 권세가들과 암행어사에게 엄청난 양의 금괴를 찔러넣어 사또가 그동안 저질렀던 온갖 비리와 악행들을 낱낱이 고발하게 만들었습니다.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던 사또는 하루아침에 포승줄에 묶여 파직을 당했고, 가산이 적몰된 채 험난한 북방으로 귀양을 떠나는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든든한 뒷배이자 방패막이였던 사또가 한순간에 날아가 버리자, 칠성은 난생처음으로 등골이 서늘해지는 두려움을 느끼며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억수가 준비한 지옥의 서막에 불과했습니다. 억수는 조선 팔도의 거대한 상단들을 전부 자신의 돈으로 은밀히 매수하여, 칠성과의 모든 상거래를 일제히 끊어버리도록 만들었습니다. 칠성의 드넓은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쌀과 곡식들은 하루아침에 판로가 막혀버렸고, 시간이 지나면서 창고 안에서 썩어 문드러지며 쥐 떼들의 먹잇감으로 변해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칠성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여 청나라로 보냈던 인삼 배와 비단 상단들은 억수가 미리 손을 써둔 해적들과 도적 떼의 습격을 받아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바다 밑으로 침몰했다는 절망적인 소문만이 연일 칠성의 귀로 날아들었습니다. 도깨비 방망이가 뿜어내는 무한한 금은보화 앞에서는 그 어떤 권세가도, 이윤을 좇는 장사치도, 심지어 칠성의 곁에서 아부하던 무리조차도 억수의 보이지 않는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불과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아, 영원할 것만 같았던 칠성의 막대한 재산은 봄눈 녹듯이 허망하게 사라져버렸습니다. 화려한 단청을 자랑하던 고래등 같은 기와집은 칠성이 졌던 빚을 대신 사들인 억수의 수하들에게 넘어가 버렸고, 매일 밤 문전성시를 이루며 산해진미를 탐하던 아부꾼들과 웃음소리를 팔던 기생들은 마치 썰물처럼 칠성의 곁을 싸늘하게 떠나갔습니다. 평생 남의 것을 빼앗기만 하던 칠성은 하루아침에 낡은 베적삼 하나만 걸친 채 차가운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습니다. 과거 억수가 그러했듯이, 뼈를 깎는 듯한 가난과 사람들의 멸시를 온몸으로 받아내야만 했습니다. 고을 사람들은 지나가는 칠성에게 침을 뱉고 돌을 던지며, 남의 눈에 피눈물을 내더니 마침내 하늘의 무서운 천벌을 받았다며 조롱하고 손가락질을 해댔습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 억수에게 칠성의 비참한 근황이 전해졌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극심한 충격과 스트레스, 그리고 거리를 떠돌며 얻은 지독한 굶주림과 추위 탓에 칠성이 이름 모를 몹쓸 역병에 걸려 다 쓰러져가는 산비탈의 움막에 버려졌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온몸에 시커멓고 붉은 반점이 돋아나고 시도 때도 없이 검붉은 피를 토하며, 고을의 그 어떤 의원들조차 고개를 내저으며 문전박대하는 지독한 전염병이었습니다. 숨을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워하며 그저 죽을 날만 짐승처럼 기다리고 있다는 심복의 보고를 듣는 순간, 억수의 차가운 입가에 마침내 서늘하고도 잔혹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드디어... 드디어 하늘이 이 억울한 놈의 기도를 들어주셨구나. 네놈이 내 가엾은 부모와 아내에게 주었던 그 끔찍하고 억울한 고통을 이제야 네놈의 살가죽으로 돌려받는구나. 내 반드시 두 눈으로 네놈의 처참하고 비참한 마지막 순간을 똑똑히 지켜보고, 네놈의 뼛가루마저 허공에 흩뿌려 주리라.'

    억수는 옷장에 있는 가장 허름하고 남루한 옷으로 갈아입고, 칠성이 버려져 있다는 산비탈의 외딴 움막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칼바람이 불어오는 산비탈에 위태롭게 서 있는 움막은 문짝조차 다 떨어져 나가 찬바람이 들이치고 있었습니다. 움막 안으로 들어서자, 짐승의 헐떡임 같은 거친 숨소리와 함께 살이 썩어 들어가는 지독한 악취가 코를 찔렀습니다. 억수가 조심스레 안으로 더 깊이 들어서자, 구멍 난 가마니 한 장을 간신히 덮어쓴 채 흙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비루하고 끔찍한 몸뚱어리가 보였습니다. 한때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고 오만함으로 가득 찼던 칠성의 얼굴은 마치 파낸 해골처럼 푹 패여 있었고, 핏기 하나 없는 새파란 입술 사이로는 끊임없이 끈적한 피가 흘러내려 바닥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물... 물 좀 주시오... 제발... 아무나... 춥고 목이 마르오..."

    칠성은 허공을 향해 뼈만 남은 앙상한 손을 허우적거리며 모기만 한 목소리로 애원했습니다. 그 목소리는 과거 억수를 향해 독설을 내뱉고 비웃던 그 당당하고 오만한 목소리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생의 마지막 끈을 붙잡고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발버둥 치는, 한없이 나약하고 불쌍한 한낱 짐승의 울부짖음에 불과했습니다. 억수는 팔짱을 낀 채, 미동도 하지 않고 그 참혹하고 비참한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았습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발길질을 하고, 품속의 단도를 꺼내 숨통을 끊으며 저주를 퍼부어야 마땅할 터인데, 이상하게도 억수의 가슴 한구석이 텅 빈 동굴처럼 스산하고 서늘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내가 그토록 뼈를 깎으며 바랐던 복수의 끝이란 말인가. 고작 저렇게 병들어 고통 속에 죽어가는 가엾고 더러운 고깃덩어리를 보려고, 그 수많은 긴긴밤을 피눈물을 흘리며 뜬눈으로 지새웠단 말인가.'

    억수의 뇌리에 갑자기 과거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서당에서 함께 천자문을 외우다 훈장님께 혼나서 같이 벌을 서던 기억, 여름날 냇가에서 발가벗고 멱을 감으며 티 없이 맑게 웃던 칠성의 환한 얼굴. 그리고 자신이 깊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목숨을 걸고 물살로 뛰어들어 자신을 구해줬던 그 어린 날의 동무. 그 맑고 순수했던 오랜 우정이 어찌하여 이토록 참혹한 탐욕과 씻을 수 없는 원한으로 짐승처럼 얼룩지게 되었는지, 억수는 알 수 없는 거대한 허망함과 슬픔에 휩싸여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누구... 거기 뉘시오? 제발... 타들어 가는 목에 물 한 모금만 적셔주시오..."

    가까스로 무거운 고개를 돌린 칠성의 초점 잃고 흐릿한 시선이 마침내 억수의 낡은 짚신 발끝에 머물렀습니다. 억수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서서히 생명의 불씨가 꺼져가는 자신의 옛 동무이자 철천지원수를 바위처럼 묵묵히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 5: 방망이로 원수의 목숨을 살리다

    "나다. 칠성아."

    감정의 동요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움막 안을 울리자, 바닥을 기던 칠성의 몸이 미세하게 경련하듯 떨렸습니다. 시력을 거의 잃어가던 칠성의 초점 없는 두 눈이 서서히 억수의 낡은 신발에서부터 위로 올라와 마침내 억수의 굳은 얼굴을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칠성의 움푹 패인 두 눈동자가 커다랗게 찢어질 듯 충격과 공포로 물들었습니다.

    "억... 억수? 정녕 네가 억수란 말이냐... 네가... 네가 어찌 살아서 여기에..."

    "그래, 네놈의 그 간악하고 짐승만도 못한 흉계에 부모를 잃고 아내를 잃고, 짐승처럼 산속을 헤매다 진작에 얼어 죽은 줄만 알았던 네 옛 동무 억수다. 내가 어찌 여기에 왔냐고? 네놈이 온몸이 썩어 문드러져 지옥불에 떨어지는 그 꼴을, 내 두 눈으로 직접 똑똑히 지켜보려고 지옥에서 살아 돌아왔다."

    칠성은 극한의 충격과 뼈를 깎는 공포에 덜덜 떨며 뒤로 물러서려 안간힘을 썼지만, 역병에 걸려 썩어가는 몸은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는 왈칵하고 뭉텅이진 핏덩이를 토해내며, 짐승처럼 기어 와 억수의 바짓가랑이를 두 손으로 필사적으로 부여잡았습니다.

    "억수야...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잠시 미쳤었어... 재물에 눈이 뒤집혀서 인간으로서 해선 안 될 몹쓸 짓을 했어... 제발... 제발 나 좀 살려다오... 살이 썩어 들어가는 이 고통이 너무도 무섭고 끔찍하다... 나 좀 살려주게, 억수야..."

    자신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빼앗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던 가족을 처참한 죽음으로 몰아넣은 철천지원수가, 지금 자신의 발밑에서 벌레처럼 기며 비참하게 목숨을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억수의 품속에는 죽어가는 사람의 목숨조차 좌지우지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도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습니다. 당장이라도 방망이를 꺼내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독약아 나와라' 하면 당장 놈의 입에 털어 넣어 이 고통을 끝내며 숨통을 끊어버릴 수도 있었고, 아니면 그냥 이대로 차갑게 뒤돌아서서 그가 피를 토하며 처절하고 외롭게 죽어가도록 내버려 둘 수도 있었습니다.

    억수는 바르르 떨리는 두 주먹을 꽉 쥐었습니다. 참아왔던 분노와 슬픔이 거대한 화산처럼 폭발하며 온몸이 파르르 떨렸습니다.

    '죽여야 한다... 옥중에서 피를 토하며 돌아가신 어머니의 화병을, 길바닥에서 굶어 죽어간 아내의 피눈물을 갚아주려면 이놈의 살점을 천 갈래 만 갈래 갈기갈기 찢어 죽여도 모자라다! 이놈을 죽이는 것만이 내 가족들의 원한을 풀어주는 유일한 길이다!'

    하지만 억수가 품속의 방망이를 강하게 움켜쥐고 막 꺼내려던 찰나였습니다. 텅 빈 움막의 찬바람을 타고, 귓가에 환청처럼 너무나도 그립고 다정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우리 착한 억수야, 남을 뼛속 깊이 미워하는 마음은 결국 그 칼날이 네 속을 가장 먼저 썩게 만드는 무서운 독약이란다. 원한을 품고 스스로를 지옥에 가두며 살지 말거라.' 뒤이어 달빛처럼 환하게 웃던 아내의 자애로운 얼굴도 떠올랐습니다. '서방님, 저는 이제 아프지 않고 괜찮습니다. 부디 원망의 사슬을 끊고 마음 편히, 예전의 넉넉하고 따뜻한 우리 서방님으로 사셔야 합니다.'

    그 따뜻한 환청을 듣는 순간, 복수심으로 차갑게 얼어붙었던 억수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습니다. 복수를 완벽하게 이룬다고 해서, 칠성이를 처참하게 찢어 죽인다고 해서 죽은 가족이 다시 살아서 돌아오는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원수를 제 손으로 죽이고 나면, 자신의 가슴속에는 평생 살인자라는 끔찍한 낙인과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거대한 허무함, 그리고 끝없는 어둠만이 남을 것임을 억수는 그 순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도깨비 방망이로 얻은 그 막대한 천하의 금은보화로도 이미 숨을 거둔 사람을 다시 살려낼 수는 없었지만, 지금 눈앞에서 숨이 끊어져 가는 사람의 목숨은 살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짐승이 아닌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으로서의 도리이자, 하늘에 있는 가족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자랑스러운 자신의 모습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억수는 마침내 결심한 듯, 품속에서 거무스름하고 투박한 나무 방망이를 천천히 꺼내 들었습니다. 칠성은 그것이 자신을 쳐죽일 무자비한 몽둥이인 줄 알고, '이제 죽었구나' 하며 질끈 두 눈을 감고 공포에 찬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습니다.

    "이 불쌍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놈아. 네놈이 지은 그 끔찍한 죄는 하늘이 알고 땅이 알 것이나, 내 오늘 너를 불쌍히 여겨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마지막 기회를 주마."

    억수는 칠성의 썩어가는 몸에 닿을 듯 말 듯 방망이를 가볍게 흔들며, 눈물을 머금은 채 나지막이 외쳤습니다.

    "이 몹쓸 역병을 씻은 듯이 흔적도 없이 낫게 할 신효한 영약아 나와라, 뚝딱!"

    '펑!' 하는 청명한 소리와 함께 움막 안을 가득 채우며 코를 찌르던 죽음의 악취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맑고 청아한 약초의 향기가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억수의 거친 손에는 은은하고 푸른 빛을 뿜어내는 호리병 하나가 들려 있었습니다. 억수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호리병의 마개를 열어, 놀라움과 두려움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칠성의 입안으로 맑은 영약을 아낌없이 털어 넣었습니다.

    "꿀꺽... 꿀꺽... 컥..."

    약을 삼킨 칠성의 몸이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잠시 거칠게 요동치며 바닥을 뒹굴더니, 이내 거짓말 같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썩어가며 진물을 흘리던 피부를 덮고 있던 붉고 시커먼 반점들이 마치 봄볕에 눈이 녹듯이 순식간에 사그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가파르고 거칠게 헐떡이던 숨소리가 평온한 안정을 찾고, 해골처럼 푹 패여 있던 뺨과 핏기 없던 입술에 생생한 붉은 핏기가 확연하게 돌았습니다. 기적,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 반쯤 발을 걸치고 있던 칠성이, 자신의 숨통을 끊으러 온 줄만 알았던 철천지원수의 자비로운 손에 의해 다시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 6: 진정한 보물을 얻은 사내

    완전히 기력을 회복하고 숨을 고르던 칠성은, 이게 정녕 현실인지 믿기지 않는 듯 떨리는 두 손으로 자신의 온몸을 더듬어 보며 넋을 잃고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불과 한 식경 전까지만 해도 온몸의 뼈를 깎아내고 살을 후벼 파는 듯 옥죄던 그 끔찍한 역병의 고통이, 거짓말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새살이 돋아난 자신의 두 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던 칠성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여전히 뜨거운 눈물범벅이 된 채 자신을 내려다보는 억수의 굳건한 얼굴을 마주 보았습니다.

    "억수야... 어찌하여... 대체 어찌하여 나 같은 쓰레기만도 못한 놈을 살려준 것이냐... 나는 네 부모님을 억울하게 돌아가시게 만들고, 네 아내를 죽이고, 네 모든 재산을 통째로 빼앗아 너를 사지로 몰아넣은 철천지원수거늘... 어찌 내게 독약이 아니라 이런 생명수를 먹여 살린 것이냐..."

    그 순간, 칠성은 미친 사람처럼 흙바닥에 자신의 머리를 쾅쾅 소리가 나도록 찧으며 처절하게 오열하기 시작했습니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의 지옥 속에서 자신을 구원해 준 옛 친구의 바다보다 크나큰 은혜 앞에, 그동안 자신이 재물에 눈이 멀어 저질렀던 추악한 탐욕과 끔찍한 죄악들이 비로소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자신의 심장을 무참히 찔러대고 있었습니다.

    "날 죽여다오! 제발 억수야, 이 더러운 목숨을 당장 네 손으로 거두어다오! 이런 말도 안 되는 은혜를 입고, 내 어찌 짐승의 껍데기를 쓰고 다시 뻔뻔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단 말이냐! 차라리 날 죽여 네 부모님 영전에 바쳐다오!"

    이마가 찢어져 붉은 피가 흐르도록 흙바닥을 주먹으로 치며 짐승처럼 통곡하는 칠성. 억수는 그런 칠성의 앞으로 다가가, 그의 가녀린 어깨를 두 손으로 단단히 움켜쥐어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만해라, 칠성아. 네놈의 목숨은 방금 전 그 병마와 함께 이미 한 번 죽어 저승으로 간 것이다. 내가 오늘 살려준 이 새로운 목숨은 더 이상 예전의 재물에 눈이 멀어 사람을 해치던 탐욕스러운 칠성이의 것이 결코 아니다. 이제부터는 네게 남은 평생을, 너처럼 병들고 가난하고 헐벗은 불쌍한 이들을 위해 뼈가 으스러지도록 봉사하고 속죄하며 살아라. 그것이 내 부모님과 아내, 그리고 내게 평생을 바쳐 갚아야 할 진정한 죗값이자 보은일 것이다."

    억수의 묵직하고도 진심 어린 한마디에 칠성은 억수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엎드린 채, 아이처럼 소리 내어 엉엉 울부짖었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잔혹한 복수 대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용서와 거룩한 자비를 선택한 억수의 한없이 넓은 마음 앞에서, 칠성의 가슴속에 시커멓게 똬리를 틀고 있던 악의와 탐욕의 찌꺼기들은 봄눈이 녹아내리듯 완벽하게 씻겨 내려갔습니다.

    그날 이후, 칠성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억수는 도깨비 방망이로 얻었던 막대한 재물의 일부를 칠성에게 조건 없이 내어주었고, 칠성은 그 커다란 돈으로 고을 곳곳에 큰 집을 지어 부모 잃은 고아들을 친자식처럼 거두어 돌보았습니다. 또한, 날마다 가마솥에 밥을 지어 굶주린 노인들과 병든 이웃들에게 따뜻한 국밥을 대접하며, 자신의 과거 죄업을 씻기 위해 하루하루 땀방울을 흘리며 속죄의 삶을 살았습니다. 칠성은 억수를 평생의 생명의 은인이자 스승으로 깍듯이 모셨고, 두 사람은 어린 시절 냇가에서 함께 멱을 감으며 웃고 떠들던 그 순수했던 시절처럼 다시금 세상에 둘도 없는 다정한 죽마고우로 돌아갔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느 맑고 둥근 보름달이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던 밤, 억수는 조용한 안방 마루에 홀로 걸터앉아 품속에 간직해 두었던 낡은 도깨비 방망이를 꺼내어 조용히 쓰다듬어 보았습니다. 만약 그날 움막에서, 이 방망이의 힘을 빌려 칠성을 처참하게 쳐죽였다면 자신의 삶은 과연 어찌 되었을까. 아마도 자신은 평생을 살인자라는 끔찍한 죄책감과 식지 않는 증오 속에서 스스로의 영혼을 갉아먹으며 비참하고 외롭게 늙어갔을 것입니다. 도깨비 방망이가 순식간에 만들어낸 그 수많은 금은보화의 산도 억수에게 진정한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억수에게 있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진정한 보물은, 벼락부자를 만들어준 방망이의 요술이 아니라, 철천지원수마저도 진심으로 뉘우치게 만들고 잃어버렸던 소중한 친구를 다시 되찾게 해 준 '용서'라는 이름의 위대한 마음의 요술이었습니다.

    "이제 네 역할도 여기까지인 듯하구나. 너로 인해 지옥을 보았고, 또한 너로 인해 천국을 보았으니, 이제 그만 자연으로 돌아가거라."

    억수는 달빛 아래서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습니다. 그는 아무도 모르는 깊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수백 년 묵은 아름드리 소나무 아래 커다란 바위 밑에 도깨비 방망이를 고이 묻어 두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허황된 요술과 재물에 기대지 않고, 남은 여생을 사람들과 부대끼며 체온을 나누고 참된 덕을 베풀며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가기로 굳게 결심한 것입니다. 그렇게 철천지원수에서 서로의 목숨을 구원해 준 평생의 은인이 된 두 사내의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는, 훗날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널리 전해지며 각박하고 차가운 세상에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무엇인지 가슴 깊이 일깨워주는 참으로 아름다운 전설이 되었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끝없는 탐욕과 피를 부르는 복수의 굴레를 단번에 끊어낸 것은, 신비한 도깨비 방망이의 요술이 아니라 인간의 따뜻한 용서와 자비였습니다. 우리 인생의 진정한 보물은 반짝이는 금은보화가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을 용서하고 품어주는 넉넉한 마음이 아닐까요? 오늘 들려드린 어우야담 이야기가 시청자 여러분의 마음에 작은 온기와 위로로 남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오늘 이야기가 재미있고 감동적이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꾹 눌러주시고, 다음 시간에도 더 깊은 감동과 재미를 담은 옛날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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