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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웃음 찾아준 도깨비 [청구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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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야담, #도깨비, #전래동화, #오디오드라마, #성우더빙, #마당극, #폭소유발, #조선의타짜, #윷놀이, #태세전환, #우물가수다, #명랑코믹, #마을잔치, #꿀잼보장, #힐링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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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 멘트
"아이고오오! 아이고오오!" 반년째 밤낮없이 이어지는 과부댁의 곡소리에 동네 똥개들마저 불면증에 시달리던 어느 날! 참다못해 지붕을 뚫고 텐션 폭발 관종 도깨비가 난입했다! "아줌마! 적당히 좀 웁시다! 산도깨비 귀청 떨어지겠네!" 눈물 콧물 쏙 빼며 울던 여인이 조선 제일의 윷놀이 타짜로 각성하고, 프로 참견러 동네 아낙들의 태세 전환까지 이어지는 대환장 명랑 촌극이 지금 시작됩니다!
※ 1: 동네 개들도 귀 막고 도망가는 과부댁의 통곡 콘서트
"아이고오오오! 우리 서방니이이임! 날 두고 어딜 가셨소오오!
이 불쌍한 년은 이제 무슨 낙으로 살라고 이리 야속하게 홀로 떠나셨단 말이오오오!"
오늘도 어김없이 서산 너머로 붉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마을 집집마다 저녁 짓는 밥 냄새가 모락모락 피어오를 무렵. 동네 어귀에 위태롭게 자리 잡은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에서는 애가 끊어질 듯 구슬픈, 아니 온 동네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을 만큼 우렁찬 곡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벌써 반년째였다. 내 남편이 뒷산에 땔감을 구하러 갔다가 발을 헛디뎌 허무하게 저승 문턱을 넘은 이후로, 나의 통곡 콘서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심지어 천둥 번개가 치는 날에도 단 하루의 휴일 없이 절찬리에 막을 올렸다.
처음 한두 달은 마을 사람들도 내 처지를 가엾게 여겼다. 갓 지은 쌀밥에 따뜻한 미역국을 끓여다 나르며 내 등을 두드려주었고, 나와 함께 부둥켜안고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하지만 달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어도 내 곡소리의 데시벨은 줄어들기는커녕 나날이 증폭되어만 갔다. 아침 닭이 울 때부터 시작된 곡소리는 한낮의 뙤약볕을 지나 깊은 밤 부엉이가 울 때까지 이어졌다. 급기야 석 달이 넘어가자 동네 사람들은 내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약속이라도 한 듯 귀에 단단히 솜을 틀어막기 시작했고, 이제는 동네를 쏘다니던 똥개들조차 내 집 근처만 오면 꼬리를 가랑이 사이에 쏙 감추고 귀를 축 늘어뜨린 채 낑낑거리며 줄행랑을 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두컴컴한 방구석에 틀어박혀, 남편이 생전에 즐겨 입던 퀴퀴한 땀 냄새가 밴 낡은 바지적삼을 부여잡고 구슬프게 울음을 뽑아내던 나는, 살짝 목이 메어 켁켁거렸다.
'아이고, 목이야… 매일같이 쉼 없이 울어댔더니 이제 침 삼키기도 따갑고 목구멍에서 피 맛이 나는 것 같네. 오늘 저녁엔 도라지 끓인 물이라도 좀 마시고 목청을 가다듬어야 내일 아침 곡소리를 시원하게 뽑아낼 텐데. 그래도 어쩌겠어, 서방 잃은 청상과부 팔자에 할 수 있는 게 하루 종일 우는 것밖에 더 있나. 내가 이렇게라도 울지 않으면 저승에 간 우리 바깥양반이 자기를 잊었다고 섭섭해서 구천을 떠돌지도 모를 일이지.'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잠시 숨을 고르던 그때, 얇은 창호지 문틈 사이로 동네 우물가 쪽에서 아낙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넘어왔다. 평소보다 목소리가 한껏 높아지고 억양이 거세진 걸 보니, 오늘따라 꽤나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아니, 저 놈의 과부댁은 숨통도 안 막힌대? 아이고, 내 귀야! 어젯밤엔 하도 생목을 뽑으며 곡을 해대서, 우리 집 암탉이 알을 다 품다 말고 놀라서 홰를 치며 도망을 쳤다니까! 내일모레면 병아리가 깔 판이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여!"
마을에서 제일가는 정보통이자 목소리가 크기로 소문난 앞집 뺑덕네가 빨래 방망이를 우물가 바위에 쾅쾅 내리치며 열변을 토했다. 그러자 옆에서 묵은 때를 벅벅 문지르던 칠성네가 거품을 튀기며 맞장구를 쳤다.
"말도 마, 말도 마! 우리 댁 바깥양반은 밤마다 저 귀곡 산장 같은 소리 때문에 가위가 눌려서, 아침에 일어나면 다크서클이 턱 밑까지 시커멓게 내려와 있어! 어제는 글쎄, 자다가 벌떡 일어나더니 자기 무덤 파러 간다며 삽을 들고 뛰쳐나가는 걸 내가 겨우 뜯어말렸다니까! 서방 죽은 건 참말로 짠하고 불쌍한 일인디, 그렇다고 동네 사람 다 말라 죽일 작정이여 뭐여! 저러다 우리 마을 사람 전부 홧병으로 초상 치르겄어!"
"그러게 말여! 촌장 어르신이 며칠 전에 엿가락이랑 고기반찬 들고 가서 제발 밤에만이라도 좀 참아달라고 사정을 했는데도, 아주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통곡을 하더라잖아. 이젠 귀신이 씌워도 단단히 씌운 게 틀림없어. 내일 무당이라도 불러서 굿판을 벌이든가 해야지, 원 살 수가 있어야지!"
아낙들의 불평불만이 귓가에 날카로운 화살처럼 꽂혔다. 평소 같았으면 남들에게 민폐를 끼친다는 생각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겠지만, 매일같이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진 나는 오히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오기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밥을 달래, 옷을 달래? 내 서방 내가 불쌍해서 내 집구석에서 내 목청으로 운다는데, 지들이 보태준 거라도 있어? 암탉이 알을 안 품는 것도 내 탓이고, 지 남편이 가위눌리는 것도 내 탓이야? 아주 동네 과부라고 동네북을 치네, 쳐! 좋아, 오늘 밤은 아주 밤새도록 내 슬픔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똑똑히 들려주마!'
나는 독하게 마음을 먹고 방 한가운데에 무릎을 꿇고 각 잡고 앉았다.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아내기 위해 코를 팽 풀고는 데시벨을 한껏 더 높였다.
"아이고오오오오! 세상천지에 나같이 불쌍하고 가여운 년이 또 어딨을까아아아! 산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내 서방님은 안 돌아오는데, 닭이 알 좀 안 품는 게 대수냐아아아! 아이고오오오!"
나의 통곡 콘서트는 그 어느 때보다 우렁차고 처절하게 온 동네의 수면권을 매몰차게 박탈하며 밤하늘을 찢어놓을 듯 울려 퍼졌다. 달빛마저 내 곡소리에 놀라 구름 뒤로 숨어버린 깊고 어두운 밤이었다.
※ 2: 지붕 뚫고 하이킥! 텐션 폭발 관종 도깨비의 난입
"아이고오오오! 흐어어엉! 우리 서방님 묻힌 무덤가에 풀은 누가 뽑아주나아아아! 나는 이제 밥술을 넘겨도 모래알 같고, 물을 마셔도 쓴 약 같소오오!"
그렇게 온 마을 사람들의 귓구멍을 괴롭히며 신명 나게 곡소리를 뽑아내던 자정 무렵이었다. 갑자기 방바닥이 미세하게 덜덜 떨리기 시작하더니, 천장을 받치고 있던 낡은 서까래가 찌지직거리며 불길한 마찰음을 냈다.
'어라? 쥐가 천장을 갉아먹나? 아니면 바람이 너무 세게 부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시 울음을 멈추고 천장을 올려다보던 그 찰나였다. 우지끈! 쾅쾅쾅! 하는 귀청을 찢는 듯한 굉음과 함께 썩은 이엉과 흙먼지가 비 오듯 쏟아지더니, 방 한가운데로 거대한 볏짚 더미와 함께 시커먼 물체가 쿵! 하고 곤두박질쳤다. 엄청난 충격에 방바닥이 움푹 패고, 낡은 초가집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 휘청거렸다.
"꺄아아아아악! 사람 살려! 산도적이 쳐들어왔다!"
나는 너무 놀라 숨이 턱 막힌 채 비명을 지르며 구석으로 기어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뽀얗게 일어난 흙먼지가 가라앉기도 전에, 볏짚 더미 속에서 누군가 켁켁거리며 기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캑캑! 에퉤퉤! 흙먼지 맛 한 번 더럽게 텁텁하네! 아니, 이놈의 집구석은 지붕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요! 지붕 위에서 잠깐 쭈그려 앉아 구경 좀 하려다가 엉덩이 뼈 다 바스러질 뻔했네! 아구구, 내 꼬리뼈야!"
먼지가 서서히 걷히고 달빛이 뻥 뚫린 지붕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자, 그 불청객의 정체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헉… 으, 으아아아악! 귀, 귀신이여, 요괴여!"
그것은 산도적도 뭣도 아니었다. 키는 장승처럼 팔 척은 족히 넘어 보이는데다, 우람한 팔뚝에는 핏줄이 울퉁불퉁 솟아 있었다. 덥수룩하게 산발을 한 머리털 사이로는 혹부리 영감도 울고 갈 만큼 크고 뭉툭한 뿔이 떡하니 하나 솟아 있었고, 부리부리하게 큰 눈망울은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났다. 무엇보다 압권인 것은 그 험악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아슬아슬하게 걸쳐 입은 누런 호피 무늬 팬티 한 장이었다. 어릴 적 할머니가 화로가에 앉아 구워주시던 밤을 까먹으며 듣던 옛날이야기 속, 진짜 산도깨비가 내 방 한가운데 강림한 것이다.
"귀신? 요괴? 허 참, 사람 섭섭하게 험한 소리를 하시네! 나는 저 깊은 태백산맥 정기를 받고 태어난 뼈대 있는 산도깨비올시다!"
도깨비는 엉덩이를 북북 문지르며 투덜거리더니, 이부자리를 뒤집어쓰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 나를 향해 불쑥 삿대질을 해댔다.
"아줌마! 아니, 도대체 적당히를 모르오? 당신이 하도 아이고 아이고 밤낮으로 소리를 꽥꽥 질러대는 통에, 저 뒷산 생태계가 완전 박살이 났소! 겨울잠 자야 할 곰들이 알람 시계 울린 줄 알고 벌써 깨어나서 멍하니 산비탈을 서성이고 있고, 멧돼지 가족들은 하도 불면증에 시달려서 다 같이 썩은 열매 먹고 취해서 쓰러져 자고 있단 말이오! 산짐승들 다 말라 죽는 꼴 보고 싶어 환장했소?"
잡아먹혀도 시원찮을 판에, 무시무시한 도깨비가 밑도 끝도 없이 산짐승들의 수면권 보장을 외치며 환경 운동가처럼 잔소리를 폭격하자 나는 공포심보다 어이가 없는 감정이 먼저 솟구쳤다.
"나, 나도 요 며칠 귀에서 아주 진물이 날 지경이라, 도대체 어떤 대단한 목청을 가진 여편네가 하루 종일 처우나 면상이나 한 번 보려고 지붕에 올라왔다가 이게 무슨 망신이람! 쯧쯧, 방구석 꼬라지 하고는. 눈물바다가 아니라 아주 궁상 바다구먼!"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쯧쯧 혀를 차는 도깨비의 태도에, 나는 억눌렸던 분노가 화산처럼 폭발해버렸다. 이불을 확 걷어차고 벌떡 일어나 도깨비를 향해 삿대질을 맞받아쳤다.
"아니, 남의 집 멀쩡한 지붕을 다 박살 내놓고 어디서 큰소리요! 내가 내 서방 죽어서 억울하고 슬퍼서 내 집에서 운다는데, 산짐승 이사 가는 것까지 내가 책임져야 하오? 그리고 도깨비면 곱게 마당으로 나타날 것이지, 왜 남의 집 지붕을 뚫고 지랄이오, 지랄이! 물어내! 내 지붕 당장 물어내란 말이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핏대를 세우며 앙칼지게 쏘아붙이자, 덩치 큰 도깨비는 내 기세에 눌린 듯 움찔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아, 거참 댁의 입 한번 더럽게 걸구먼! 누가 안 물어준대? 아무튼, 이대로는 내 귀가 아파서 나도 도저히 살 수가 없소. 당신 울음을 뚝 그치게 해줄 테니 나랑 사나이 대 여장부로 내기 한판 합시다. 당신이 이기면 내가 부서진 지붕을 아주 금가루를 떡칠해서 기와집으로 고쳐줄 것이고, 내가 이기면 앞으로 입에 단단한 나무 재갈을 물고 주무시오! 콜?"
도깨비는 찢어진 입을 씨익 벌리더니, 허리춤에서 어린아이 팔뚝만 한 커다란 나무 윷가락 네 개를 척 꺼내 방바닥에 툭 던졌다.
"자, 종목은 조선 사람이라면 밥 먹다가도 달려나온다는 신성한 윷놀이요! 덤비시지!"
※ 3: 눈물 뚝! 승부욕 활활, 조선의 타짜로 거듭난 여인
기가 막혀서 헛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한밤중에 썩은 지붕을 뚫고 떨어진 덩치 산만 한 도깨비 녀석이 대뜸 호피 팬티 차림으로 윷가락을 들이밀며 승부를 겨루자고 하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조차 가지 않았다. 하지만 '금가루를 떡칠한 기와집'이라는 도깨비의 제안이 내 귓가에 맴도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이불을 걷어차고 마루판 한가운데로 바짝 다가앉고 말았다.
'그래, 까짓것 윷판에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내 왕년에 친정 동네 잔치 때마다 윷판을 싹쓸이해서 살림장만하던 전설의 손모가지다, 이놈아! 요괴인지 짐승인지 모를 놈한테 지붕까지 털리고 앉아 있을 순 없지!'
나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눈에 독기를 잔뜩 품은 채 윷가락 네 개를 쓸어 담았다.
"좋소! 그 내기, 당장 수락하겠소! 단, 낙장불입은 기본이고 중간에 꼼수 부리다 걸리면 그 뭉툭한 뿔을 아주 뽑아버릴 테니 각오하시오! 손님이니 먼저 던지시지!"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도깨비는 입에 침을 탁 튀기며 양손에 윷가락을 쥐고 요란하게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마치 굿판의 무당처럼 어깨를 들썩이며 방 안을 빙글빙글 돌던 녀석이 허공을 향해 냅다 윷을 집어 던졌다.
"얍! 받아라, 태백산맥 정기 품은 도깨비 파워! 이건 던졌다 하면 무조건 모 아니면 윷이로다! 나와라, 모오오오!"
촤르륵, 탁!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방바닥에 떨어진 윷가락들. 흙먼지가 가라앉고 모습을 드러낸 결과는 그야말로 처참했다. 거창한 퍼포먼스가 무색하게도, 네 개의 나무토막 중 딱 한 개만 발라당 뒤집어진 앙증맞은 '도'였다. 도깨비의 부리부리한 두 눈이 튀어나올 듯 커지며 흔들렸다.
"아, 아니! 이게 웬 개뼈다귀 핥아먹는 소리람? 분명히 내 손목 스냅은 완벽했는데! 아하, 방금 지붕 뚫린 구멍으로 바람이 훅 들어와서 윷가락이 엎어진 거요! 이건 자연재해니 무효, 무효로 칩시다!"
도깨비가 허둥지둥 윷가락을 주워 담으려 손을 뻗자, 나는 번개처럼 낚아채듯 도깨비의 손등을 찰싹 때렸다.
"어허! 어디서 뚫린 입이라고 핑계를 대? 무효는 무슨 얼어 죽을 무효! 낙장불입도 모르는 초짜 도깨비 같으니라고! 도는 도요! 자, 이제 내 차례니 두 눈 부릅뜨고 똑똑히 보시오!"
나는 두 손에 윷가락을 다소곳이 모아 쥐고 입김을 호호 불었다. 윷가락의 무게 중심을 느끼며, 과거 동네 윷판을 제패하던 그 시절의 감각을 서서히 일깨웠다. 시선은 바닥을 향한 채,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윷을 공중으로 살짝 띄웠다 바닥에 촥 붙이듯 부드럽게 미끄러뜨렸다.
촤르르르륵! 딱!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네 개의 윷가락이 공중에서 우아하게 한 바퀴를 돌더니, 방바닥에 닿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 전부 하얀 배를 훌러덩 뒤집어 보였다.
"윷이오! 윷이요 윷! 아하하하하! 봤느냐, 이 도깨비 녀석아!"
나도 모르게 양손으로 박수를 짝짝 치며 벌떡 일어나 마루를 구르며 웃음보를 터뜨렸다. 반년 만에 처음 터져 나온 청량하고 경쾌한 웃음소리였다. 가슴속에 꽉 막혀있던 시커먼 멍울이 그 웃음 한 방에 뻥 뚫려 날아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도깨비는 입을 떡 벌린 채 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거, 거 보시오! 아주 숨넘어가게 웃네 그려! 방금 전까지 무덤 판다고 엉엉 울던 여편네 맞소? 그래, 일단 방금 그건 초심자의 운이오! 한 번 더, 한 번 더 던지시오!"
"오냐, 오늘 니 그 누런 호피 팬티까지 싹 다 벗겨서 우리 집 걸레로 써주마!"
나는 콧방귀를 뀌며 윷을 다시 한 번 모아 쥐고 냅다 던졌다. 촤르륵! 이번엔 네 개가 모두 엎어지는 완벽한 '모'였다.
"모! 모요! 자, 이거 두 동 엎어서 갑니다! 윷판에 내 말 펄펄 날아다니는 거 안 보이오? 아주 윷판이 내 안방이네, 안방이야!"
그 뒤로 이어진 한밤중의 윷판은 그야말로 나의 잔인한 독무대이자 원맨쇼였다. 던지는 족족 윷, 모, 걸이 연달아 펑펑 터져 나오며 내 말은 윷판 위를 축지법 쓰듯 날아다녔고, 도깨비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기를 쓰고 던졌지만 야속하게도 '도' 아니면 '개'만 줄기차게 나와서 제자리를 맴돌 뿐이었다. 어느새 나는 과부의 체면과 슬픔 따위는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지 오래였다. 걸리적거리는 치맛자락을 훌렁 걷어 올려 허리춤에 찔러 넣고는, 바닥을 탕탕 치며 도깨비를 신명 나게 놀려대기 시작했다.
"아이고 덩치는 남산만 한 양반이 윷가락 하나 제대로 통제를 못 해서 어쩐다? 도깨비 방망이로 윷을 깎았나, 왜 이렇게 윷이 바닥에 철푸덕 엎어지기만 한담? 자, 내가 세 판 내리 이겼으니 빨리 금가루 바른 기와집 내놓으시오! 안 내놓으면 니 그 남은 뿔 하나도 똑 부러뜨려서 시장통에 정력제로 팔아먹을 테니!"
"아, 아줌마! 아니, 누님! 승부욕이 왜 이렇게 무섭소! 알았소, 알았어! 내가 완벽하게 졌소, 졌어! 항복이오!"
결국 윷판에서 완벽하게 빈털터리가 된 도깨비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방바닥에 대자로 뻗어버렸다. 씩씩대며 천장의 뚫린 구멍을 멍하니 쳐다보던 도깨비와, 승리의 기쁨에 취해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던 나는 우연히 허공에서 눈이 딱 마주쳤다. 그리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배를 움켜잡고 껄껄껄, 하하하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그날 밤, 지붕 뚫린 낡은 초가집에서는 지긋지긋했던 과부의 처절한 곡소리 대신, 십 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가는 유쾌하고 숨넘어가는 웃음소리가 밤하늘의 별빛을 향해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 4: "저 집에서 웬 사내놈 목소리가?" 우물가 프로 참견러들의 분노
다음 날 아침, 수탉이 목청껏 아침을 알리는 소리에 번쩍 눈을 뜬 나는 습관처럼 눈가로 손을 가져갔다. 그런데 웬일인가. 늘 뜨거운 눈물방울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 축축하고 소금기 때문에 거칠게 일어났던 뺨이, 마치 가마솥에서 갓 쪄낸 찹쌀떡처럼 뽀송뽀송하고 매끄러웠다. 밤새 얼마나 배가 찢어져라 웃어대며 윷판을 뒹굴었는지, 뱃가죽이 다 얼얼할 지경이었다. 얇은 창호지 문틈 사이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이 이토록 눈부시고 따사롭게 느껴진 것도 남편을 떠나보낸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쭈욱 켜자, 반년 동안 방구석에 웅크리고 있느라 굳어있던 온몸의 뼈마디가 우두둑 소리를 내며 시원하게 풀려나갔다.
'아이고, 어젯밤에 그 덩치 큰 산도깨비 녀석이랑 윷판에서 치고박고 엎치락뒤치락하며 웃어대느라 진을 다 뺐더니, 가슴속에 꽉 막혀있던 십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간 것 같네. 서방님, 제가 어젯밤에는 곡소리 대신 윷놀이 한 판 흐드러지게 했다고 저승에서 노여워하시는 건 아니지요? 저승사자 눈치 보지 마시고 서방님도 제 웃음소리 듣고 맘 편히 쉬시구려. 저도 이제 밥술 좀 넘기고 사람답게 살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읊조린 나는, 오랜만에 곱게 빗질을 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물동이를 이고 마을 우물가로 향했다. 입술 사이로는 나도 모르게 십오 년 전 처녀 시절에나 부르던 콧노래가 흥얼흥얼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경쾌한 콧노래는 우물가에 가까워질수록 귓가를 때려오는 날카롭고 표독스러운 목소리들에 의해 차갑게 식어 들어가고 말았다. 마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프로 참견러이자 온갖 소문의 근원지, 앞집 뺑덕네와 옆집 칠성네가 팔 걷어붙이고 빨래 방망이를 허공에 붕붕 휘두르며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아니, 내 귀로 똑똑히 들었다니까 그러네! 내가 어제 새벽에 오줌이 마려워서 뒷간에 가려고 나왔다가 기절초풍을 했잖여! 글쎄 저기 저 무덤 판다고 곡을 해대던 과부댁에서, 아주 굵직한 사내놈 목소리가 담장을 넘어서 쩌렁쩌렁 울리더라니까! 둘이서 방구석을 구르며 씨름을 하는지 쿵쾅거리고, 아주 좋아서 꺄르르 껄껄 숨넘어가는 소리가 나는데, 내 원 망측해서 얼굴이 다 화끈거리더라고! 내가 헛것을 들은 게 아니여!"
"아이고, 세상에나 마상에나! 서방 죽은 지 반년도 안 된 년이 벌써 딴 사내를 방구석에 들여? 겉으로는 열녀비라도 세울 것처럼 청승을 떨고 온 동네가 떠나가라 곡을 해대더니, 뒤로는 아주 호박씨를 가마니 떼기로 까고 있었구먼! 내 이럴 줄 알았어! 꼬리치는 여우가 따로 없구먼. 어쩐지 요 며칠 저 집구석 위로 시커먼 구름이 끼는 게 동네에 부정이 탈 것 같더라니! 저런 요망한 것 때문에 우리 동네 우물물이 마르고 개들이 짖어대는 거여!"
그녀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들은 그야말로 날 선 작두이자 독화살 같았다. 보지도 않은 일을 어찌 저리 상상력을 보태어 확신에 차서 떠들어댈 수 있는지, 인간의 혓바닥이 도깨비 방망이보다 더 무섭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나는 물동이를 바닥에 쿵 내려놓으며 억울함과 수치심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아니, 사내 놈이라니! 뿔 달리고 호피 무늬 팬티 입은 도깨비랑 윷놀이하면서 내기한 것뿐인데! 그 건전하고 유쾌한 전통 민속놀이가 어쩌다 남녀 간의 뜨거운 밀회로 둔갑해 버렸단 말인가.
내가 당장이라도 나서서 머리채라도 잡고 따지려고 한 발짝 내딛고 입을 떼는 순간, 씩씩거리는 나를 발견한 아낙들이 일제히 빨래 방망이질을 멈췄다. 그리고는 짐짓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헛기침을 해대며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빛에는 멸시와 조롱이 가득 담겨 있었다.
"어머머, 이게 누구신가? 매일 방구석에서 눈물 바람이던 과부댁 아니신가? 요새 아주 한밤중에 야간 운동을 격렬하게 하시는지 얼굴에 핏기가 싹 돌고 피부가 아주 훤하네 그려? 어젯밤에 동네 똥개들이 다 깨서 짖을 정도로 집안이 요란하시던데, 십전대보탕 같은 아주 좋은 약이라도 챙겨 드셨나 봐? 서방 잃은 슬픔은 아주 말끔히 씻어내셨어?"
뺑덕네가 입꼬리를 비죽 올리며 이죽거리자, 칠성네도 지지 않고 맞장구를 치며 코웃음을 쳤다.
"저기요, 형님들! 오해하지 마세요! 그런 게 전혀 아니라, 어젯밤에 낡은 지붕이 갑자기 우지끈 무너져 내리면서 덩치 큰 요괴… 아니, 요괴가 아니라 뿔 달린 산도깨비 하나가 마루로 뚝 떨어지는 바람에 놀라서 실랑이를 하느라 소리가 크게 난 거란 말입니다! 사내라뇨,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세요!"
다급한 마음에 변명이랍시고 내뱉고 나니, 아차 싶었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어이가 없고 황당무계한 핑계였다. 산도깨비라니! 바람난 과부 취급을 피하려다 졸지에 귀신 씌인 미친년 취급받기 딱 좋은 헛소리였다. 아니나 다를까, 내 말을 들은 아낙들은 일순간 정적을 지키더니 이내 배를 움켜잡고 자지러지게 바닥을 구르며 웃어대기 시작했다.
"아이고, 내 배야! 하하하! 도깨비? 이제 하다 하다 궁색하니까 산도깨비 핑계를 대? 그래, 아주 뿔 달리고 기골이 장대한 훤칠한 도깨비 사내랑 살림이라도 떡하니 차리셨나 보지? 내 살다 살다 핑계를 대도 도깨비 타령을 하는 미친년은 처음 보네! 쯧쯧, 저승에 있는 불쌍한 서방만 아주 피눈물을 흘리며 땅을 치겠네!"
그 모진 조롱에 분통이 터져 눈앞이 하얘지고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물 긷는 것도 잊은 채 빈 물동이를 바닥에 팽개치고 냅다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집으로 도망쳐 왔다. 도망치는 내 등 뒤로 아낙들의 꺄르르거리는 비웃음이 뾰족한 바늘처럼 꽂혔다. 사립문을 쾅 닫고 들어와 마루에 털썩 주저앉은 나는 참았던 울음을 엉엉 소리 내어 터뜨리고 말았다. 모처럼 찾아온 한 줄기 웃음이 하루도 채 못 가 동네 사람들의 모진 입방아에 산산조각이 나버린 비참한 기분이었다.
그날 밤, 어김없이 쿵! 하는 지축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도깨비가 마당 한가운데로 뚝 떨어졌다. 어제 지붕을 무너뜨린 게 내심 찔렸는지 오늘은 지붕을 피해 담장을 가뿐히 넘어온 참이었다. 도깨비는 한 손에 산에서 갓 잡아 온 듯한 커다란 멧돼지 뒷다리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들어오다, 처마 밑에 쪼그려 앉아 훌쩍거리는 나를 보고 펄쩍 뛰었다.
"아니! 어제 윷판에서 내 피 같은 전 재산을 다 털어먹고 그렇게 득의양양하게 웃어대더니 오늘은 왜 또 세상 다 산 사람처럼 청승맞게 짜고 있소? 누가 또 당신을 괴롭혔소? 윷놀이해서 졌다고 동네 꼬마 녀석들이 돌팔매질이라도 했소?"
나는 퉁퉁 부은 눈으로 도깨비를 원망스럽게 째려보며 쏘아붙였다.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이 바보 멍청이 도깨비야! 네가 어젯밤에 하도 요란을 떨고 소리를 질러대서 동네 아낙들이 나더러 밤마다 외간 남자 끌어들여서 뒹구는 미친 과부라고 손가락질한단 말이야! 도깨비랑 윷놀이했다고 사실대로 말했더니 이젠 귀신 들린 미친년 취급까지 하잖아! 엉엉, 나 이제 수치스러워서 이 동네에서 고개 들고 어떻게 살아!"
내 사연을 잠자코 듣던 도깨비는 부리부리한 눈을 번쩍 빛내더니, 콧구멍으로 씩씩 짐승 같은 콧김을 뿜어내며 허리춤에 커다란 두 손을 얹었다.
"뭐라? 그 주둥이 싼 인간들이 내 소중한 윷놀이 타짜… 아니, 유일한 인간 친구를 모욕해? 지들은 밤마다 따뜻한 방에서 서방이랑 껴안고 방귀 뀌며 자면서, 남이 모처럼 웃는 꼴은 배가 아파서 못 본다? 이거 아주 심보가 밴댕이 소갈딱지보다 더 고약하구먼! 걱정 마시오! 내가 누구요, 태백산맥의 호랑이 도깨비 아니오! 내가 그 요망한 인간들 코를 아주 납작하게, 콧구멍이 하늘을 솟구치게 찌그러뜨려 줄 기가 막힌 수가 있으니 내일 아침만 딱 기다리시오!"
도깨비는 의미심장한 썩소를 날리며 가슴을 팡팡 치더니, 다시 담장을 껑충 넘어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쏜살같이 사라졌다.
※ 5: 도깨비의 플렉스! 쏟아지는 일거리에 태세 전환하는 아낙들
다음 날 새벽, 동이 트고 수탉이 울기도 전에 마당 쪽에서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번쩍번쩍한 광채가 창호지를 뚫고 새어 들어왔다. 눈을 비비며 방문을 열고 나간 나는 턱이 마루 밑바닥까지 떨어지는 줄 알았다. 다 쓰러져가던 우리 집 마당 한가운데에, 하늘의 구름을 뭉쳐놓은 것보다 하얗고 눈부신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명주실 타래가 마치 거대한 태산처럼 솟아 있었다. 달빛인지 햇빛인지 모를 신비로운 빛을 뿜어내는 그 실타래 주변으로는, 옥황상제의 궁궐에서나 쓸 법한 금테와 자개를 두른 최고급 베틀 열 대가 위풍당당하게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루 한 켠에는 어른 두 명이 들어가 안아도 모자랄 큼지막한 백자 항아리가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갓 주조한 듯 흠집 하나 없이 번쩍이는 엽전이 수북하게, 찰랑찰랑 넘칠 듯이 쌓여 있었다. 마당 구석에서 밤새 수백 명치 이삿짐이라도 나른 듯 이마의 땀을 훔치던 도깨비가 나를 보며 씨익, 찢어진 입으로 호쾌한 웃음을 지었다.
"짜잔! 도깨비표 특급 플렉스 대공개! 저 깊은 심산유곡 천 년 묵은 황금 뽕나무 밭에서 우리 도깨비들이 직접 정성 들여 뽑아낸 전설의 명주실이오! 이걸로 짠 비단은 촉감이 어찌나 부드러운지 한양의 정승 판서들도 돈을 수레로 싸 들고 와서 제발 팔아달라고 줄을 선다는 전설의 레어 아이템이지! 그리고 저 금테 두른 베틀은 이웃 산 도깨비 대장한테 내가 윷놀이로 다 따온 전리품들이오!"
"아, 아니… 이 귀하고 어마어마한 걸 도대체 다 어디서 훔쳐… 아니, 가져온 거야? 게다가 베틀이 열 대라니, 엽전은 또 저게 다 얼마야! 이걸 나 혼자서 언제 다 짜라고 가져온 거야? 죽을 때까지 짜도 다 못 짜겠네!"
내가 거대한 규모에 기겁을 하며 뒷걸음질을 치자, 도깨비는 커다란 솥뚜껑 같은 손바닥으로 마루를 탕탕 치며 온 동네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호탕하게 웃었다.
"누가 당신 혼자 그 고생을 하며 짜랬소? 당장 저 아까운 엽전 무더기를 주머니에 푹푹 쑤셔 넣고 명주실 한 타래를 옆구리에 낀 채 그 잘난 우물가로 달려가시오! 인간들이란 참으로 단순하고 가벼운 존재라, 입으로는 쉴 새 없이 남을 헐뜯어도 눈앞에 금붙이와 돈다발이 흔들리면 그 태세 전환이 굿판의 무당 깃발보다 더 빠른 법이오! 그 주둥이 싼 아낙들을 몽땅 불러모아 아주 거들먹거리며 일거리를 던져 주시오!"
반신반의하면서도 도깨비의 당당한 태도에 나는 엽전 꾸러미를 치마폭에 가득 담아 짤랑거리게 만들고, 가장 윤기가 흐르는 명주실 한 타래를 품에 안은 채 다시 우물가로 나갔다. 역시나 뺑덕네와 칠성네를 비롯한 아낙들은 어제와 똑같이 모여앉아 누군가의 흉을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내가 다가가자 또다시 눈을 치켜뜨고 비아냥거리려던 그들의 시선이, 내 품에서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명주실과 걸음을 옮길 때마다 요란하게 달그락거리는 엽전 소리에 꽂히더니 일순간 숨을 멈춘 듯 얼어붙었다. 나는 도깨비의 조언대로 짐짓 거드름을 한껏 피우며 헛기침을 하고 목소리를 쫙 깔았다.
"에헴, 형님들! 아우님들! 다들 아침부터 입운동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저기… 제가 어제 도깨비 어쩌고 한 건 다 형님들 놀래켜 드리려고 한 농담이었고요. 실은 친척 어르신 중에 한양에서 아주 어마어마하게 큰 상단을 하시는 분이 계신데, 불쌍한 조카딸 굶어 죽지 말라고 저한테 이 귀한 명주실을 산더미처럼 보내셨지 뭡니까? 이걸로 비단을 짜오면 삯을 이 엽전 항아리로 두둑하게, 아주 집 한 채 살 만큼 쳐주신다는데… 쯧쯧, 베틀이 무려 열 대나 돼서 저 혼자 하려니 영 손이 모자라고 벅차서요. 뭐, 동네 인심도 흉흉한데 이웃 동네에 가서 품팔이할 싹싹한 사람이라도 넉넉히 돈 주고 사서 써야겠네요."
나는 아주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일부러 치마폭의 엽전들을 짤랑짤랑 흔들어 보이고는, 뒤로 홱 돌아서서 발걸음을 뗐다. 하나, 둘, 셋! 내 속마음 카운트다운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뒤에서 우당탕탕 빨래통이 뒤집어지고 방망이가 날아가는 소리가 나더니, 뺑덕네가 번개보다 빠른 속도로 달려와 내 치맛자락을 두 손으로 덥석 부여잡으며 바닥에 무릎을 꿇다시피 했다.
"아, 아이고오! 우리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사랑스러운 아우님! 먼 이웃 동네에서 사람을 왜 찾아, 사람을! 여기 이 의리 넘치고 베 짜는 솜씨 기가 막힌 언니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데! 돈 쓸 데가 그렇게 없어?"
"맞여, 맞여! 뺑덕네 말이 천 번 만 번 맞여! 과부댁… 아니, 우리 곱고 예쁜 동생! 내가 어제 한 개똥 같은 말은 요 며칠 뙤약볕에 더위를 먹어서 주둥이가 미쳐 날뛴 거여! 절대 마음에 담아두지 말더라고! 우리가 당장 달려가서 그 베틀 불나게 돌려줄게! 그나저나 삯은 넉넉하게 쳐준다는 게 참말이여?"
옆에 있던 칠성네는 아예 내 품에 있던 명주실을 자기 볼에 연신 부비며 기생처럼 간드러지는 콧소리를 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를 미친 과부라며 벌레 씹은 표정으로 씹어대던 그 매서운 입술들이, 방금 전 꿀단지라도 통째로 삼킨 듯 세상에서 제일 달콤하고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태세 전환의 현장에 나는 헛웃음이 픽 새어 나왔지만,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 참고 어깨에 잔뜩 힘을 줬다.
"뭐… 정 그러시다면, 평소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사이니 특별히 도와주시는 셈 치고 우리 집 마당으로 오시던가요. 삯은 섭섭지 않게 매일 엽전으로 결제해 드릴 테니. 대신 새참은 각자 집에서 제일 맛있는 걸로 푸짐하게 싸 오는 겁니다? 저 입맛 까다로운 거 아시죠?"
"아이고, 당근이지! 암, 그렇고말고! 내가 묵은지에 수육 썰어오고 시원한 동동주까지 아주 거하게 말아올 테니 우리 아우님은 딱 마루에 앉아서 쉬기만 혀! 얘들아, 빨래 걷어차고 당장 과부댁, 아니 과부 마님 댁으로 돌격하자!"
그리하여 우물가의 프로 참견러 군단은 앞다투어 치맛자락을 걷어쥐고 내 초가집 마당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의 달콤함과 어마어마한 일거리 앞에서는 이웃집 과부의 소문 따위는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개나 줘버린 지 오래였다. 마당 구석에서 투명 인간처럼 둔갑하고 숨어 있던 도깨비는 그 일사불란한 광경을 보며 숨이 넘어갈 듯 소리 없는 박장대소를 터뜨리고 있었다.
※ 6: 방구석 과부 탈출기, 마당 꽉 찬 웃음꽃 대환장 파티
그날부터 쥐죽은 듯 고요하고 음산했던 내 집 마당은 그야말로 온 동네 아낙들이 총출동한 북새통 대환장 파티의 현장이자 거대한 방직 공장이 되었다. 열 대의 황금 베틀이 찰칵, 드르륵 소리를 내며 쉴 새 없이 돌아가고, 동네 아낙들의 끝없는 수다 장단이 끊이지 않고 마당을 꽉 채웠다.
"아이고, 이 명주실은 어쩜 이리 질기고 튼튼하대? 우리 집 영감탱이 황소고집보다 더 억세구먼! 짜는 맛이 아주 쫀득쫀득혀!"
"그니까 말여! 이 고운 비단 다 짜서 돈 두둑하게 받으면, 그 돈으로 장터에 나가서 영감탱이 첩년 머리끄덩이나 확 쥐어뜯고 국밥이나 한 그릇 시원하게 말아 먹고 올란다! 하하하!"
베틀을 신명 나게 돌리며 쏟아내는 아낙들의 걸쭉하고 맵짜장한 농담과 호탕한 웃음소리가 적막했던 담장을 넘어 온 마을로 퍼져나갔다. 처음에는 내 눈치를 보며 삯이나 챙기려던 얄팍한 마음으로 모였던 그들도, 매일같이 한 마당에 앉아 같이 땀을 흘리고 밥을 비벼 먹다 보니 어느새 진짜 피를 나눈 친자매처럼 끈끈해져 있었다. 나 역시 방구석에 처박혀 있던 과거를 집어던지고, 그들 사이에 섞여 크게 웃고 맞장구를 쳤다. 남편의 낡은 옷가지나 부여잡고 청승맞게 울던 찌질한 과거의 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동네의 대소사를 아우르는 넉넉한 맏언니처럼 훌쩍 성장해 있었다.
그런데 이 평화롭고 흥겨운 베 짜기 현장에 툭하면 기상천외하고 황당한 사고들이 벌어지곤 했다. 칠성네가 한참 진지하게 쭈그려 앉아 베를 짜는데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통통한 엉덩이를 꼬집는 손길이 느껴지거나, 뺑덕네가 엉덩이를 들썩이는 사이 치맛자락이 대청기둥에 칭칭 묶여 뒤로 발라당 나자빠지는 식이었다.
"앗따가! 악! 아니, 한겨울에 벼룩이 물었나 엉덩이가 왜 이리 불에 덴 듯 따끔혀! 누가 내 궁둥이 꼬집었어!"
"아이고 엄마야, 내 허리! 내 치마가 왜 기둥에 묶였대? 바람도 안 부는데 아주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뉘기야, 장난치는 인간이!"
아낙들이 기겁하며 소리를 지르고 서로를 의심할 때마다, 마루 밑이나 장독대 뒤쪽에서 '큭큭큭, 낄낄낄' 하는 둔탁하고 짓궂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눈에 보이지 않게 둔갑술을 쓴 덩치 큰 도깨비 녀석이 산속의 심심함을 참지 못하고 마당으로 내려와 아낙들 사이를 휘젓고 다니며 짓궂은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었다. 머리 위로 툭툭 도토리를 떨어뜨리거나 치마폭에 개구리를 집어넣는 요상한 소행이 도깨비의 짓인 줄 뻔히 아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나는 모른 척하며 배를 잡고 웃었고, 시기심 많던 아낙들도 짜증을 내기보다는 치마가 홀라당 뒤집어지며 벌러덩 넘어진 서로의 우스꽝스러운 꼴에 눈물이 쏙 빠질 때까지 웃어젖혔다. 적막했던 내 집은 어느새 마을에서 제일가는 명랑하고 시끌벅적한 웃음 공장으로 변해버렸다.
그렇게 두어 달이 훌쩍 지나고, 마침내 도깨비가 물어온 산더미 같던 실은 달빛처럼 영롱한 최고급 비단으로 완벽하게 짜였다. 나는 한양에서 온 큰 상단에게 비단을 엄청난 값에 팔아넘겼고, 약속대로 함께 고생한 아낙들에게 두둑한 엽전 꾸러미를 안겨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돈으로 밀린 빚을 갚고 밭을 갈 소를 사며 활기를 되찾았다. 동네 어귀 커다란 평상에 온 마을 사람들이 둘러앉아 빈대떡을 부치고 동동주를 들이켜는 왁자지껄한 대잔치가 열린 날 밤. 거나하게 취한 사람들이 하나둘 잠자리에 든 후, 텅 빈 마당 평상에 혼자 앉아 남은 막걸리를 홀짝이는 내 곁으로 도깨비가 불쑥 튀어나왔다.
"크으, 막걸리 냄새 한 번 고약하게 구수하네! 이제 당신 얼굴을 보니 그 지독하던 과부의 썩은 내는커녕, 고소한 참기름 냄새와 화사한 웃음꽃 향기가 온 동네에 진동을 하는구먼. 나는 이제 이곳에서의 임무를 다 마쳤으니 짐을 싸서 다른 깊은 산으로 넘어가야겠소."
도깨비는 등에 봇짐장수처럼 커다란 짐보따리를 둘러메고 있었다. 항상 유쾌하던 녀석이 떠난다는 말에 덜컥 섭섭함이 밀려와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가긴 어딜 간다고 그래! 아직 나랑 윷판 승부도 다 안 났잖아! 매일 밤 내 돈 다 잃어놓고 이대로 도망가게? 아직 당신 호피 팬티도 못 벗겼는데 어딜 도망가!"
짐짓 화를 내며 앙탈을 부리듯 쏘아붙이자, 도깨비는 부리부리한 눈을 찡긋거리며 껄껄 웃었다.
"아이고, 그놈의 지독한 조선 타짜! 내가 당신한테 윷놀이로 금은보화 다 털려서 지금 빈털터리라 야반도주하는 거요! 다른 동네 가서 순진한 인간들 돈 좀 털어먹고 다시 금의환향할 테니 딱 기다리시오. 아, 그리고!"
도깨비는 품에서 나와 처음 만난 날 던졌던 그 손때 묻은 낡은 나무 윷가락 네 개를 꺼내 평상 위에 툭 던져놓았다.
"또 방구석에 처박혀서 궁상맞게 남편 바지 부여잡고 아이고 아이고 울어대면, 그땐 지붕이 아니라 방바닥 지반을 뚫고 솟아날 테니 단단히 각오하시오! 우하하하!"
도깨비는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담장을 껑충 뛰어넘어 달빛 가득한 숲속으로 쏜살같이 사라졌다. 멀어지는 그의 거대한 뒷모습을 보며, 나는 평상에 놓인 윷가락을 소중히 집어 들고 환하게 미소 지었다. 차갑게 얼어붙었던 내 가슴속에, 어느새 한밤중의 불청객이 남기고 간 유쾌하고 따뜻한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고 있었다.
유튜브 엔딩멘트
여러분! 방구석 통곡 전문가에서 조선 최고의 윷놀이 타짜로 거듭난 과부댁의 스펙터클 대환장 파티, 어떻게 들으셨나요? 슬픔을 이겨내는 가장 좋은 약은 역시 좋은 사람들과 배꼽 빠지게 웃어젖히는 시간인가 봅니다! 눈치 제로 관종 도깨비의 하드캐리가 여러분의 팍팍한 일상에도 빵 터지는 웃음을 선물했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야기가 꿀잼이었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팍팍 눌러주시는 거 잊지 마시고요! 다음엔 더 골 때리고 재미있는 이야기 보따리 들고 찾아오겠습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