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임금 앞에서 재채기한 신하, 벌 대신 웃음을 주다
엄숙한 조회에서 참을 수 없는 재채기를 터뜨린 신하가 임금의 노여움을 재치 있는 한마디로 폭소로 바꾼 이야기 (어우야담)
태그 (15개)
#고전야담, #어우야담, #조선야담, #조선시대이야기, #야담모음, #해학, #조선유머, #풍자, #선비이야기, #임금과신하, #조선관직, #재치문답, #옛날이야기, #오디오드라마, #1004야담
#고전야담 #어우야담 #조선야담 #조선시대이야기 #야담모음 #해학 #조선유머 #풍자 #선비이야기 #임금과신하 #조선관직 #재치문답 #옛날이야기 #오디오드라마 #1004야담


후킹멘트
조선의 궁궐, 그 가장 엄숙한 공간인 근정전에서 조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임금의 한마디가 곧 법이 되고, 신하의 숨소리 하나까지도 예법에 맞아야 했던 그 자리. 수백 명의 관리가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채,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하던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느닷없이 터져 나온 재채기 한 방.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참으려 할수록 더 크게, 더 길게, 근정전의 천장이 울릴 만큼 요란하게 터져 버린 것입니다. 조정은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임금의 얼굴은 차갑게 굳었습니다. 조회를 모독한 죄, 임금 앞에서의 불경, 어떤 벌이 내려져도 할 말이 없는 상황. 누구든 그 자리에 있었다면 두 다리에 힘이 풀리고 눈앞이 캄캄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내, 벌벌 떨기는커녕 무릎을 꿇고 입을 열더니 단 한마디를 올렸습니다. 그 한마디에 근정전이 뒤집어졌습니다. 노한 임금의 입꼬리가 올라가고, 참고 있던 신하들의 어깨가 들썩이고, 마침내 궁궐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대체 그가 무슨 말을 했기에?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 임금 앞에서 재채기한 신하의 기막힌 한마디입니다.
※ 1: 근정전의 숨막히는 아침
아직 해가 뜨기 전, 한양의 하늘은 먹빛에서 겨우 쪽빛으로 물들기 시작할 무렵이었습니다. 사대문 안 크고 작은 기와집마다 불이 켜지고, 관복을 차려입은 이들이 하나둘 집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정기 조회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조선의 모든 관리가 근정전에 모여 임금을 뵙고, 나랏일을 아뢰는 날. 그 자리에 서는 것 자체가 영광이요, 동시에 한 치의 실수도 허락되지 않는 긴장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무렵, 홍문관에 적을 두고 있던 한 관리가 있었습니다. 벼슬은 높지 않았으나, 학문이 깊고 글을 잘 짓기로 이름이 나 있던 사내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재주는 넘치되 운이 따르지 않는 선비라 했습니다. 과거에 급제한 지 십여 년이 넘도록 한직만 돌았고, 임금을 가까이에서 뵌 적도 손에 꼽을 만큼 드물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어떤 상황에서도 굽히지 않는 담력과 혀끝에서 번개처럼 튀어나오는 재치였습니다.
이 사내, 전날 밤부터 몸이 영 개운치 않았습니다. 환절기라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코끝을 스치더니, 코가 간질간질하고 목이 칼칼했던 것입니다. 아내가 생강차를 끓여 내밀며 조회에 빠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조심스레 말했으나, 사내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오늘 조회는 반드시 참석해야 할 자리였습니다. 조정에 올릴 건의가 있었고, 오래 기다려온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사내는 생강차를 들이켜고, 관복을 단정히 여미고, 사모를 바로잡은 뒤 집을 나섰습니다.
새벽 거리에는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관리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모두 표정이 굳어 있었습니다. 조회날 아침은 늘 그랬습니다. 잘못 내딛는 발걸음 하나, 어긋나는 인사 하나에도 탄핵의 빌미가 될 수 있는 자리. 사간원과 사헌부의 날카로운 눈이 전방위로 번뜩이는 그 자리에 서려면, 아무리 담이 큰 사람이라도 몸가짐을 추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광화문을 지나 근정문 앞에 이르자, 이미 수백 명의 관리가 품계별로 줄을 서 있었습니다. 정일품 영의정부터 종구품 말직 관리까지, 붉은 관복과 푸른 관복이 번갈아 도열한 모습은 장관이었습니다. 사내는 자신의 자리를 찾아 줄 끝자락 가까이에 섰습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공기가 차가웠고, 그 찬 기운이 코끝을 톡톡 건드릴 때마다 사내는 소매로 코를 슬쩍 눌러야 했습니다.
이윽고 북이 울리고, 근정전의 문이 열렸습니다. 신하들이 일제히 걸음을 옮겨 전각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근정전은 넓고 높았습니다. 천장의 용 조각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기둥마다 금빛 문양이 은은하게 빛나고, 돌바닥은 발걸음 하나하나를 또렷이 울려 보냈습니다. 정면 높은 곳에 놓인 옥좌, 그 위에 앉은 임금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모든 신하가 일제히 부복했습니다. 이마가 차가운 돌바닥에 닿고, 숨소리마저 죽이는 정적이 근정전을 가득 채웠습니다.
사내도 이마를 바닥에 대고 엎드렸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코끝에서 미세한 간지러움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차가운 돌바닥의 한기가 코를 타고 올라온 것인지, 아침부터 심상치 않던 기운이 본격적으로 깨어난 것인지, 코 안쪽이 근질근질, 간질간질, 참을 수 없는 자극이 밀려왔습니다. 사내는 입술을 꽉 깨물었습니다. 지금은 안 된다. 이 자리에서만큼은 절대로 안 된다고, 온 정신을 코끝에 집중하며 버텼습니다.
※ 2: 코끝에서 시작된 재앙
임금이 자리에 앉고, 신하들이 부복에서 일어나 제 자리에 선 뒤에도, 사내의 코는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몸을 일으키며 들이마신 공기가 코 안을 한 번 더 휘저은 탓에, 간지러움은 더욱 극성을 부렸습니다. 사내는 두 손을 홀 위에 가지런히 올린 채 꿈쩍도 하지 않았지만, 콧속에서는 폭풍이 일고 있었습니다.
재채기라는 것이 사람의 의지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코 안의 점막이 자극을 받으면 뇌가 신호를 보내고, 온몸의 근육이 한꺼번에 수축하며 공기를 밀어내는 것이니, 이는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몸의 이치입니다. 사내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이 근정전 안에서 재채기를 터뜨린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임금 앞에서의 예법은 철저했습니다. 기침 한 번, 헛기침 한 번도 불경으로 다스릴 수 있었고, 하물며 재채기라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조선의 조정에서 임금 면전에서 재채기를 했다가 곤장을 맞거나 파직당한 사례가 없지 않았습니다. 사내는 그런 이야기를 여러 번 들어 알고 있었기에, 온 힘을 다해 참고 있었습니다.
사내는 혀를 입천장에 딱 붙이고 숨을 멈추었습니다. 옛 어른들이 재채기를 참는 방법이라 알려준 것이었습니다. 잠시 간지러움이 수그러드는 듯했습니다. 사내는 속으로 안도했습니다. 됐다, 이대로만 넘기면 된다. 그렇게 한 순간을 버텼습니다.
그런데 조정의 일이 길어졌습니다. 호조판서가 나서서 올해 세수에 관한 보고를 올리기 시작했고, 이어 병조판서가 북방 국경의 정세를 아뢰었습니다. 임금은 하나하나 꼼꼼히 물었고, 신하들은 땀을 흘리며 답했습니다. 조회는 반 시진이 넘도록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내는 줄곧 서 있어야 했습니다. 움직일 수도, 코를 만질 수도, 고개를 돌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저 홀을 든 채 미동도 없이 서 있는 것, 그것만이 허락된 전부였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코의 상태는 악화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코끝이 간질간질한 정도였는데, 이제는 콧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코 안에 개미 수백 마리가 들어가 동시에 기어 다니는 것 같기도 했고, 깃털로 콧속을 간지럽히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사내의 눈가가 촉촉해졌습니다. 재채기를 참을 때 눈물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내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습니다.
바로 앞에 서 있던 동료가 사내의 이상한 기색을 눈치챘습니다. 동료는 눈만 살짝 옆으로 돌려 사내를 보았습니다. 사내의 콧방울이 미세하게 벌렁거리고, 입술이 꾹 다물어져 있고, 미간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동료의 얼굴에도 긴장이 스쳤습니다. 설마, 이 자리에서. 동료는 고개를 아주 살짝, 거의 느낄 수 없을 만큼 가로저었습니다. 참아라. 제발 참아라. 그 무언의 신호를 사내도 느꼈습니다. 사내는 이를 악물었습니다.
그때 형조판서가 새로운 안건을 꺼내 들었습니다. 올해 들어 도성 안 도적이 늘었다는 보고였습니다. 임금이 묵직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그래서 포도청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 그 물음에 포도대장이 앞으로 나서며 바닥에 부복했습니다. 그 순간, 포도대장의 관복 자락이 바닥을 스치며 미세한 먼지가 일었습니다. 그 먼지가, 하필이면 사내의 코를 향해 날아들었습니다.
사내의 콧구멍이 벌름거렸습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이건 안 된다. 이건 도저히 안 된다. 사내는 숨을 완전히 멈추고, 혀를 입천장에 붙이고, 윗입술을 코 밑에 세게 눌렀습니다. 옛사람이 알려준 모든 방법을 동시에 총동원했습니다. 일 초, 이 초, 삼 초. 간지러움의 파도가 밀려왔다 물러났다를 반복했습니다. 사내는 버텼습니다. 사 초, 오 초, 육 초. 파도가 잦아드는 것 같았습니다. 사내는 속으로 외쳤습니다. 이겼다, 이번에도 참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임금이 말씀을 마치고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근정전 안이 완벽한 적막에 휩싸인 바로 그 찰나, 코끝의 간지러움이 최후의 일격처럼 치솟아 올랐습니다. 사내의 온몸이 경련하듯 떨렸습니다.
※ 3: 근정전을 뒤흔든 재채기 한 방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습니다.
사내의 가슴이 크게 부풀어 올랐습니다. 숨이 저절로 깊게 빨려 들어가더니, 온몸의 근육이 한꺼번에 수축했습니다. 그리고 터졌습니다.
에에에, 엣취이이이!
근정전의 높은 천장 아래로 재채기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것도 보통 재채기가 아니었습니다. 반 시진 넘게 참고 참았던 것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니, 그 위력이 어찌 보통이었겠습니까. 소리는 돌기둥에 부딪혀 메아리치고, 천장의 용 조각 사이로 울려 퍼지고, 근정전 구석구석까지 남김없이 가 닿았습니다.
첫 번째 재채기가 끝나기도 전에 두 번째가 이어졌습니다.
에엣취!
참았던 것이 터진 뒤에는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코가 완전히 폭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내는 두 손으로 입과 코를 막았지만, 세 번째 재채기가 그 손가락 사이를 뚫고 터져 나왔습니다.
엣, 엣취이이!
수백 명의 신하가 일제히 몸을 굳혔습니다. 눈알만 굴려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시선 끝에 사내가 있었습니다. 두 손으로 코를 틀어막고, 어깨를 움츠리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서 있는 사내의 모습이 수백 쌍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근정전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습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방금 전까지 안건을 보고하던 신하도, 그 보고를 듣던 임금도, 양옆에 도열한 내시들도, 모두가 숨을 멈춘 것처럼 정지해 있었습니다.
조선의 조정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되는지는 누구나 알고 있었습니다. 임금 앞에서의 실례는 불경죄에 해당할 수 있었습니다. 가벼우면 파직, 무거우면 곤장이었고, 임금의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면 유배까지도 갈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조회 중이었습니다. 나라의 중대사를 논하는 엄숙한 자리에서 재채기를 터뜨리다니, 이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조정의 체통을 무너뜨린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사내의 옆에 서 있던 동료가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사내 자신은 어떠했겠습니까. 온몸에서 식은땀이 쏟아졌습니다. 손끝이 차갑게 식었고,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간신히 버텼습니다. 그러나 이미 터진 것을 되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재채기 소리는 이미 근정전의 모든 귀에 도달했고, 모든 눈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사내는 두 손을 내리고 고개를 들었습니다. 정면, 높은 곳에 앉아 계신 임금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임금의 표정은 읽을 수 없었습니다. 놀란 것인지, 노한 것인지, 아직 판단 중인 것인지. 다만 임금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한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었습니다.
근정전 앞쪽에 서 있던 사헌부 관리 하나가 몸을 움직이려 했습니다. 탄핵을 올리려는 것이었습니다. 임금 앞에서의 불경을 즉석에서 탄핵하는 것은 사헌부의 권한이자 의무였습니다. 그 관리의 입이 열리려는 순간, 임금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거기 그 자, 어느 관아의 누구냐.
임금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습니다. 노기가 서려 있다기보다는, 마치 심문하듯 차가운 어조였습니다. 근정전의 정적 속에서 그 목소리가 또렷이 울렸습니다. 사내는 한 발 앞으로 나섰습니다. 다리가 떨렸지만, 목소리만은 떨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홍문관 수찬 아무개, 엎드려 아뢰옵니다.
사내가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바닥에 대었습니다. 차가운 돌바닥이 이마에 닿는 순간, 기이하게도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미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후회해도 소용없고, 두려워해도 소용없었습니다. 사내는 바닥에 엎드린 채 다음 말을 기다렸습니다.
※ 4: 얼어붙은 조정, 노한 임금
임금이 말을 이었습니다.
지금 이 자리가 어디인 줄 알고 그런 행동을 하였느냐.
임금의 목소리에 비로소 노기가 실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차분했으나, 말을 하면 할수록 어조가 날카로워졌습니다. 신하들의 어깨가 절로 움츠러들었습니다. 임금의 노여움이 자신에게 향한 것이 아닌데도,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조회는 과인이 신하들과 나랏일을 의논하는 자리이다. 이 자리의 엄숙함은 곧 나라의 체통이니라. 그런 자리에서 감히 그따위 소리를 내다니, 이는 과인을 모독함이요, 조정을 업신여김이 아니고 무엇이냐.
임금의 질책이 이어졌습니다. 한마디 한마디가 돌처럼 무거웠습니다. 근정전의 적막 속에서 임금의 목소리만이 울렸고, 그 울림은 사내의 등을 내리치는 매와도 같았습니다.
사내는 여전히 이마를 바닥에 댄 채 엎드려 있었습니다. 등 뒤로 수백 쌍의 시선이 꽂히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 시선 속에는 동정도 있었을 것이고, 고소함도 있었을 것이며, 안도감도 있었을 것입니다. 저 자리에 선 것이 내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안도. 사내는 그 모든 시선을 등으로 느끼며 바닥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사헌부의 관리가 이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나서며 아뢰었습니다. 전하, 임금 면전에서의 불경은 마땅히 엄히 다스려야 하옵니다. 청컨대 해당 관리를 파직하시고, 그 죄를 물어 조정의 기강을 바로잡으시옵소서.
사헌부 관리의 목소리는 단호했습니다. 조정의 기강을 잡는 것이 자신들의 소임이니,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었습니다. 사내의 처지는 점점 더 궁지에 몰리고 있었습니다.
임금이 잠시 침묵했습니다. 그 침묵이 사내에게는 한 시진처럼 길게 느껴졌습니다. 임금이 사헌부의 청을 받아들이면, 사내는 이 자리에서 관복을 벗어야 했습니다. 십여 년간 쌓아온 벼슬길이 재채기 한 번에 끊기는 것이었습니다. 가족의 얼굴이 스쳤습니다. 아내의 걱정스러운 눈, 아직 어린 아이들, 늙은 어머니. 사내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이 돌바닥 위로 떨어졌습니다.
임금이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그대, 할 말이 있느냐.
이 한마디가 사내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여기서 그저 용서를 빌며 살려 달라고 애원하면, 임금은 사헌부의 청을 받아들일 것이 분명했습니다. 참을 수 없어 그랬사옵니다, 몸이 불편하여 그랬사옵니다. 그런 변명은 임금의 노여움을 풀기에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아무리 사정이 있었다 한들, 결과적으로 조회를 어지럽힌 것은 사실이었으니까요.
사내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바닥에 엎드린 채, 이마의 차가움을 느끼며, 사내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어떤 말을 해야 하는가. 어떤 말이 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가. 용서를 구하되, 비굴하지 않아야 했습니다. 변명을 하되, 궁색하지 않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임금의 마음을 움직여야 했습니다.
사내는 눈을 감았습니다. 수천 권의 책을 읽으며 쌓아온 학문, 수만 번의 대화를 나누며 갈고닦은 입담, 어떤 궁지에서도 길을 찾아낸 재치. 그 모든 것이 이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습니다. 바닥에 엎드린 사내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습니다.
눈을 뜬 사내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습니다. 무릎을 꿇은 채 허리를 펴고, 정면을 바라보았습니다. 임금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사내의 눈에는 더 이상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그 대신 묘한 빛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근정전의 모든 시선이 사내의 입에 쏠렸습니다. 지금 이 자가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살려 달라 빌 것인가, 아니면 무언가 다른 것을 꺼낼 것인가.
사내가 입을 열었습니다.
※ 5: 무릎 꿇은 사내의 한마디
전하, 황공하여 아뢰옵니다.
사내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또렷하고 차분했습니다. 근정전의 정적 속에서 그 목소리가 맑게 울렸습니다.
신이 감히 여쭙겠사옵니다. 전하께서는 재채기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이까.
느닷없는 물음이었습니다. 임금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습니다. 신하들 사이에서도 의아한 기색이 흘렀습니다. 자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어야 할 자가, 도리어 임금에게 질문을 던지다니. 이것은 불경 위에 불경을 더하는 것이 아닌가. 사헌부 관리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습니다.
그러나 임금은 즉각 벌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사내의 태도에 무언가가 있다고 느낀 것인지, 혹은 순간적으로 호기심이 인 것인지, 임금이 되물었습니다. 그래, 재채기가 무엇이냐.
사내가 다시 이마를 바닥에 대며 아뢰었습니다.
전하, 옛 어른들이 이르기를, 재채기란 누군가가 나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뜻이라 하였사옵니다. 먼 곳에서 누군가가 나를 생각하면 코가 간지러워 재채기가 나온다 하였사옵니다.
사내가 잠시 말을 멈추었습니다. 근정전 안이 고요했습니다. 모두가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내가 상체를 일으키며 말을 이었습니다.
전하, 신이 오늘 이 자리에서 재채기를 참으려 반 시진을 버텼사옵니다. 혀를 입천장에 붙이고, 숨을 멈추고, 온 힘을 다해 참았사옵니다. 그러하온데도 끝내 참지 못한 것은, 필시 온 백성이 전하를 한꺼번에 그리워한 까닭이 아니겠사옵니까.
근정전이 한순간 멈추었습니다. 사내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 뜻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스며드는 데 한두 숨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신의 미천한 코가 전하를 향한 백성의 그리움을 이기지 못한 것이옵니다. 신이 불경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온 나라의 백성이 전하를 사모하는 마음이 하도 커서 신의 작은 코로는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옵니다. 만백성의 그리움이 한꺼번에 몰려드니, 어찌 미관말직의 코 하나가 이를 막을 수 있겠사옵니까.
사내의 말에는 진지함과 익살이 절묘하게 섞여 있었습니다. 표정은 지극히 공손하되, 말의 내용은 기발하고도 대담했습니다. 재채기라는 불경을 백성의 충성으로 둔갑시킨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코를 만백성의 충심을 전달하는 통로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조정의 신하들 사이에서 미세한 파동이 일었습니다. 누군가의 어깨가 한 번 들먹였습니다. 누군가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렸습니다. 웃음을 참는 것이었습니다. 이 엄숙한 자리에서 웃음을 터뜨리면 자신도 사내와 같은 처지가 될 것이 뻔했으니, 모두가 필사적으로 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참을수록 웃음이란 더 터지고 싶어지는 법. 여기저기서 킥, 크흠, 하는 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사헌부 관리마저 입술을 깨물고 있었습니다. 탄핵을 올려야 하는 자리인데, 입꼬리가 제멋대로 올라가려 하니 난감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 자의 말이 궤변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았습니다. 재채기가 백성의 그리움이라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궤변이 어찌나 기발하고 절묘한지, 화를 내려다가도 웃음이 먼저 나오는 것을 어찌하지 못했습니다.
※ 6: 웃음이 터진 근정전
모든 시선이 임금에게로 향했습니다. 임금의 반응이 이 상황의 모든 것을 결정할 터였습니다. 임금이 노하면 벌이 내려질 것이고, 임금이 웃으면 모든 것이 용서될 것이었습니다.
임금의 표정은 여전히 읽기 어려웠습니다. 입을 꾹 다물고, 눈을 가늘게 뜨고, 사내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신하들은 숨을 죽였습니다. 사내도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긴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임금의 입에서 소리가 새어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코를 통해 새어 나오는 작은 소리. 흐흥. 임금이 웃음을 참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미세한 소리에 신하들의 귀가 쫑긋 섰습니다.
임금이 한 손으로 입을 가렸습니다. 어좌 위에서 임금이 입을 가리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임금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임금이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하하하하!
근정전의 높은 천장 아래로 임금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그것은 마치 둑이 터진 것과 같았습니다. 참고 참던 신하들의 웃음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습니다. 영의정이 고개를 돌리며 웃었고, 좌의정이 소매로 입을 가리며 웃었고, 병조판서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습니다. 줄지어 서 있던 관리들 사이에서 파도처럼 웃음이 번져 나갔습니다. 앞줄에서 시작된 웃음이 뒷줄로, 좌측에서 우측으로, 근정전 전체가 웃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탄핵을 올리려 벼르고 있던 사헌부 관리도 결국 버티지 못했습니다. 임금이 먼저 웃었는데 자기만 엄숙한 표정을 유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도 결국 고개를 숙이며 어깨를 떨었습니다.
임금의 웃음이 한참 이어졌습니다. 임금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만백성의 그리움을 코로 받았다. 하하, 이놈의 코가 충신이로다!
그 한마디에 웃음이 한 번 더 커졌습니다. 누군가가 박장대소했고, 누군가는 눈물까지 흘리며 웃었습니다. 엄숙하기 이를 데 없던 근정전이 한순간에 웃음바다로 변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사내는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내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지고 있었습니다. 안도의 미소이기도 했고, 자신의 재치가 통했다는 쾌감의 미소이기도 했습니다.
임금이 웃음을 거두고 사내를 바라보았습니다. 여전히 입가에는 미소가 남아 있었습니다. 임금이 말했습니다.
그대 이름이 무엇이라 하였느냐.
사내가 다시 이마를 바닥에 대며 아뢰었습니다.
홍문관 수찬 아무개, 전하의 하문에 감읍하옵니다.
임금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홍문관 수찬이라. 학문을 하는 자가 입담까지 이리 좋으니, 과인이 오늘 조회에서 가장 큰 수확을 얻은 셈이로다.
임금이 좌우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습니다. 오늘 조회가 내내 무거운 안건뿐이었는데, 이 사람 덕에 분위기가 한결 풀렸구나. 나랏일을 논하는 데 웃음이 없어서야 되겠느냐. 딱딱한 조정에 웃음 한 번 퍼뜨린 것도 공이면 공이지, 어찌 죄가 되겠느냐.
신하들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방금 전까지 탄핵을 외치려던 사헌부 관리도 더 이상 나서지 않았습니다. 임금이 직접 공이라 했는데, 어찌 죄를 물을 수 있겠습니까.
사내는 깊이 부복하여 전하의 성은에 감사하옵니다, 라고 아뢰었습니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습니다. 이번에는 두려움이 아니라, 감격 때문이었습니다.
※ 7: 벌 대신 상을 받은 신하
조회가 끝난 뒤, 근정전을 나서는 신하들의 표정은 아까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새벽에 들어올 때는 모두 굳은 얼굴이었으나, 나올 때는 여기저기서 웃음이 새어 나오고,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재채기 한 방에 조정이 뒤집어진 이 황당한 사건은, 이미 모든 신하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
사내가 근정전 계단을 내려오자, 동료들이 다가왔습니다. 자네 간이 배 밖에 있구먼, 하며 등을 두드리는 이도 있었고, 만백성의 그리움을 코로 받다니 어찌 그런 말이 나오느냐며 감탄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사내는 멋쩍게 웃으며 겸손히 받았지만, 속으로는 다리가 아직도 후들거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호랑이굴에서 살아 돌아온 기분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며칠 뒤, 사내에게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임금이 사내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가, 홍문관의 인사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사내의 이름을 직접 거론한 것이었습니다. 임금이 말하기를, 그 재채기한 수찬 말이다, 그자의 문장이 어떠하냐고 물었다 합니다. 홍문관 제학이 아뢰기를, 학문이 깊고 문장이 빼어나며, 성품이 곧아 동료들의 신망이 두텁다고 하였습니다.
임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합니다. 위기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한마디로 상황을 뒤집는 재주가 있다면 그것은 큰 재목이 될 그릇이니라. 학문과 재치를 겸비한 자를 어찌 한직에만 둘 수 있겠느냐.
얼마 지나지 않아 사내는 승진 발령을 받았습니다. 홍문관 수찬에서 부응교로, 한 단계가 아니라 파격적인 승진이었습니다. 조정에서는 재채기로 출세한 사내라며 또 한 번 웃음이 번졌습니다.
소식을 전해 들은 사내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합니다. 아내가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사내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재채기가 나를 살리더니, 이제는 나를 높여 주기까지 하는구려. 앞으로는 코를 함부로 대하면 안 되겠소.
아내도 웃었습니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그러게요, 그날 아침 제가 조회에 가지 말라고 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터인데, 아프면서도 고집을 부린 것이 오히려 복이 되었군요.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사람 일이란 모르는 법이오. 화인 줄 알았던 것이 복이 되고, 끝인 줄 알았던 곳에서 길이 열리는 것이니, 무엇이든 미리 걱정하거나 포기할 일이 아니오.
이 일은 곧 한양 장안에 퍼졌습니다. 저잣거리에서도, 주막에서도, 양반의 사랑방에서도 이 이야기가 회자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사내의 재치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재치를 알아보고 웃음으로 받아 넘긴 임금의 도량에도 감탄했습니다. 벌을 줄 수 있었는데 웃음을 택한 임금, 도망칠 수 있었는데 재치를 택한 신하. 그 둘이 만들어낸 한 장면이 두고두고 이야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훗날 사내는 벼슬이 더 올라 임금 가까이에서 일하는 측근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임금이 답답하거나 울적한 날이면 사내를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고, 사내는 그때마다 기발한 말 한마디로 임금의 근심을 덜어 주었다 합니다.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저 사내는 칼이 아니라 혀로 출세한 사람이라고. 무력도 권세도 아닌, 오직 재치와 입담 하나로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간 사람이라고.
이 이야기는 어우야담에 전하는 기록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조선의 조정이 얼마나 엄격한 곳이었는지, 그리고 그런 엄격한 곳에서도 사람의 재치와 유머가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재채기 한 번이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 위기 속에서도 머리를 굴릴 줄 아는 사람에게는 어떤 상황도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 수백 년 전 조선의 근정전에서 터진 그 재채기 한 방이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것은, 그 안에 사람들의 웃음과 지혜와 삶의 진실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재채기 한 번에 벼슬길이 열리고, 한마디 재치에 임금마저 웃음을 터뜨린 이 이야기, 재미있게 들으셨나요? 조선의 옛이야기 속에는 이처럼 기막히고도 유쾌한 사연들이 수없이 숨어 있습니다. 1004야담 채널에서는 앞으로도 웃기고, 놀랍고, 때로는 가슴 뭉클한 고전 야담들을 계속해서 들려드리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 그리고 알림 설정까지 눌러 주시면 새로운 이야기를 가장 먼저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밤도 1004야담과 함께 편안한 시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