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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모를 어미라 부른 도깨비, 한겨울 눈보라를 녹인 국밥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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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매서운 눈보라가 치는 겨울밤, 주막 문을 두드리는 소리
하늘의 노여움이라도 산 것일까요. 금방이라도 하늘이 무너져 내릴 듯, 시커먼 먹구름이 온 산을 집어삼킨 칠흑 같은 겨울밤이었습니다. 굵은 소금 같은 눈발이 사나운 삭풍을 타고 회오리치며, 앙상하게 마른 겨울나무들의 가지를 사정없이 꺾어대고 있었지요. 사람의 발길이 닿기 힘든 깊고 험한 고갯길 어귀, 짐승들마저 추위를 피해 깊은 굴속으로 숨어버린 그 적막하고도 무서운 산중에 오직 작은 불빛 하나만이 가물가물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바로 마음씨 넉넉하기로 인근 고을에 소문이 자자한 주모가 홀로 꾸려가고 있는 작고 낡은 주막이었습니다.
가마솥이 걸린 부뚜막 앞에서는 장작불이 타닥타닥 타오르며 붉은 온기를 토해내고 있었고, 무쇠솥 안에서는 뽀얀 사골 육수가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설설 끓고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모진 흉년과 돌림병으로 애지중지하던 지아비와 어린 자식을 먼저 하늘로 떠나보내야 했던 주모. 그녀는 눈물로 세월을 지새우다, 이 험한 고갯길에 주막을 차리고 굶주리고 지친 과객들을 거두며 자신의 남은 생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호주머니가 텅 빈 선비에게도, 짚신이 다 해져 발가락에서 피가 나는 보부상에게도 그녀는 늘 어머니 같은 넉넉한 미소와 함께 고기 점이 듬뿍 들어간 펄펄 끓는 국밥을 내어주곤 했지요. 그 따뜻한 밥 한 그릇이 누군가에게는 세상을 살아갈 힘이 된다는 것을 그녀는 자신의 뼈아픈 과거를 통해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고, 바람 끝이 어찌 이리 매섭고 사납단 말인가. 문풍지가 다 찢겨 나갈 듯 울어대는 꼴을 보니, 오늘 같은 날 이 험한 범바위 고개를 넘으려는 사람은 필시 눈구덩이에 빠져 얼어 죽고 말 터인데. 부디 이 험한 산중에 길을 잃고 헤매는 가여운 목숨이 없어야 할 터인데….'
주모는 덜덜 떨리는 문짝을 쳐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날이 날인지라, 초저녁부터 주막 안은 손님 하나 없이 텅 비어 냉기만이 감돌고 있었지요. 그녀는 아궁이의 장작불을 부지깽이로 쑤적거리며 불씨를 살려보려 애썼지만, 이내 체념한 듯 솥뚜껑을 닫고 낡고 해진 앞치마에 거친 손을 닦아냈습니다. 눈이 벌써 무릎을 훌쩍 넘을 만큼 두껍게 쌓였고 밤도 깊었으니, 이제 그만 무거운 빗장을 걸어 잠그고 언 몸이나 녹여야겠다 생각한 참이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바람 소리를 뚫고, 무언가 거대하고 육중한 것이 주막의 낡은 사립문에 쿵, 하고 거칠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 이 한밤중에 대체 뉘신가? 뼈까지 얼어붙는 이 눈보라 속에 거길 넘어온 뉘시란 말인가요!"
주모는 깜짝 놀라 아궁이 앞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다급히 외치며 사립문 쪽으로 귀를 기울였지만, 밖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사나운 바람 소리에 섞여, 짐승이 문짝을 긁어대는 듯한 스스슥거리는 소리와 함께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거칠고 쇳소리가 나는 숨소리만이 문틈을 타고 희미하게 새어 들어올 뿐이었지요. 누군가 문밖에서 쓰러져 죽어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주모는 등골이 오싹해졌지만, 덜덜 떨리는 손으로 굳게 걸어 두었던 나무 빗장을 서둘러 풀고 두 손으로 문을 활짝 열어젖혔습니다.
문이 열리자마자 맹렬한 눈보라가 주막 안으로 매섭게 밀려 들어와 호롱불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주모의 발밑으로 눈더미를 잔뜩 뒤집어쓴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통나무처럼 털썩 쓰러졌습니다.
"아이고, 부처님 맙소사! 천지신명님! 이보시오! 이보시오, 과객 양반! 정신 좀 차려보시구려!"
쓰러진 이는 키가 족히 여덟 척은 넘어 보이는, 일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엄청난 덩치의 사내였습니다. 거친 산짐승의 털가죽을 엮어 만든 듯한 남루하고 기괴한 옷을 걸친 사내는, 온몸이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채 꽁꽁 굳어있었습니다. 드러난 살갗은 핏기 하나 없이 푸르스름하게, 아니 잿빛으로 질려 있었고, 굳게 다문 두꺼운 입술 사이로는 하얀 입김조차 제대로 뿜어져 나오지 않을 만큼 숨결이 위태로웠지요. 평범한 촌부나 아낙이었다면 그 기괴하고 무시무시한 행색과 거대한 덩치에 지레 겁을 먹고 비명을 지르며 문을 닫아걸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아온 마음씨 고운 주모의 눈에는, 그저 눈구덩이 속에서 얼어 죽어가는 불쌍하고 가여운 생명 하나로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아이고, 이러다 정말 큰일 나겠소! 당장 숨이 넘어가게 생겼네! 읏차, 힘을 내어 내 어깨에 기대보시구려! 얼른 방 안으로 들어가야 산단 말이오!"
주모는 자신의 몸집보다 두 배는 더 큰 사내의 양겨드랑이 밑으로 거친 두 팔을 억지로 끼워 넣고, 평생 젖 먹던 힘까지 모두 쥐어 짜냈습니다. 이빨을 꽉 깨물고 땀을 뻘뻘 흘리며 간신히 사내를 질질 끌다시피 하여 주막 안으로 들인 그녀는, 방 안에서 가장 따뜻한 온기가 도는 쩔쩔 끓는 아랫목에 사내를 뉘었습니다. 벽장에 넣어두었던 두꺼운 무명 솜이불을 여러 채 꺼내어 사내의 거대한 몸을 빈틈없이 덮어주고는, 얼음장처럼 차갑게 굳어버린 사내의 두 손을 부여잡고 연신 자신의 숨을 불어넣으며 비비기 시작했지요. 사내의 손은 사람의 것이라기엔 유난히 투박하고 바위처럼 억셌지만, 주모는 그런 사소한 이질감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오직 어미의 마음으로 이 가엾은 목숨 하나를 꼭 살려내야겠다는 일념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녀는 다시 부엌으로 뛰어나가 아궁이에 남은 장작을 몽땅 쑤셔 넣고 맹렬하게 불을 지피며, 기나긴 겨울밤을 지새울 구호의 채비를 서둘렀습니다.
※ 2: 꽁꽁 언 몸을 녹여준 모락모락 김이 나는 국밥 한 그릇
쩔쩔 끓는 아랫목의 훈훈한 온기와, 밤새도록 사내의 언 손발을 주물러준 주모의 지극정성 어린 간호 덕분이었을까요. 자정을 훌쩍 넘겨 새벽으로 향해갈 무렵, 시체처럼 뻣뻣하게 굳어있던 사내의 거대한 몸이 움찔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내 굳게 닫혀있던 무거운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서서히 열렸습니다.
"아이고, 다행입니다요! 천만다행입니다! 정신이 좀 드시는 겐가요? 이보시오, 과객 양반. 내 말이 들리시우?"
주모가 반색하며 다가앉자, 사내는 초점이 없는 멍한 눈으로 낯선 천장과 주모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습니다. 어두침침한 호롱불 밑에서 마주친 사내의 두 눈동자는 기이하게도 짐승처럼 누런빛을 띠고 번쩍였고, 눈이 녹아내린 덥수룩한 수염 사이로는 도깨비처럼 뾰족하고 날카로운 덧니가 언뜻 스쳐 지나갔지요. 보통의 인간과는 몹시도 낯설고 두려움을 자아내는 이질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 주모는 조금도 놀라거나 뒷걸음질 치지 않고, 오히려 제 자식의 병이 나은 것을 보는 것처럼 안도의 깊은 한숨을 내쉬며 세상에서 가장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얼마나 춥고 뱃속이 주렸으면 이 지경이 되도록 이 험한 산길을 헤매셨소. 가만히 누워 계시구려. 내 얼른 부엌으로 나가 죽어가는 사람도 번쩍 일으켜 세운다는 뜨끈한 국밥 한 그릇 말아 올 터이니. 조금만 참으시구려."
주모는 서둘러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부엌 부뚜막으로 향했습니다. 밤새 뭉근하고 은은한 장작불 위에서 정성껏 푹 고아낸 진한 사골 육수가 거대한 가마솥 안에서 뽀얗게 우러나며 진동할 듯 구수한 냄새를 뿜어내고 있었지요. 그녀는 주막에서 가장 큼지막한 투박한 뚝배기를 꺼내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새하얀 흰쌀밥을 수북이 담았습니다. 그리고 그 위로 푹 삶아져 야들야들해진 두툼한 쇠고기를 듬뿍 썰어 산더미처럼 얹었지요. 송송 썬 싱싱한 대파를 한 움큼 올린 뒤, 펄펄 끓는 진한 고기 국물을 여러 번 부었다 따르기를 반복하며 토렴하여 밥알 사이사이에 구수한 맛이 깊게 배어들게 했습니다. 모락모락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뚝배기 위로 고춧가루를 팍팍 풀어 만든 매콤한 다대기와 통깨까지 얹어내니, 천하의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은 주모표 특제 국밥이 완성되었습니다.
"자, 어서 일어나 앉아 드셔보시구려. 속이 얼어붙어 오장육부가 뒤틀렸을 때는 이 뜨끈하고 진한 국물이 최고라오."
주모가 소반에 김이 오르는 국밥 뚝배기와 시원하게 잘 익은 깍두기 한 사발을 얹어 방으로 내오자, 이불을 덮고 있던 사내의 코가 벌름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좁은 방 안을 순식간에 가득 채운 고기 국물의 짙고 구수한 냄새에, 사내는 두 눈이 번쩍 뜨이는 듯 몸을 벌떡 일으켜 앉았지요. 그는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집어 들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솥뚜껑만 한 양손으로 펄펄 끓는 뚝배기를 덥석 집어 들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손가락이 데어서 당장 내동댕이칠 만큼 뜨거운 그릇이었건만, 사내는 마치 한여름에 시원한 우물물을 들이켜듯 펄펄 끓는 국밥을 자신의 커다란 입안으로 마구 들이붓기 시작했습니다. 우적우적, 꿀꺽꿀꺽. 사내가 고기를 씹고 밥을 삼키는 어마어마한 소리가 조용한 주막 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아이고, 천천히 드시구려. 누가 쫓아오지도 않는데 어찌 그리 급히 드시다 체하면 큰일 납니다요. 모자라면 솥에 끓고 있는 국물과 고기가 죄다 과객 양반 차지이니 아무 걱정 말고 천천히 드시오."
주모는 그 짐승 같은 게걸스러운 먹성에 내심 놀라면서도, 마치 며칠을 굶주린 자식을 먹이는 어미처럼 흐뭇하고 애틋한 표정으로 깍두기 사발을 사내의 입가로 다정하게 밀어주었습니다. 사내는 주모의 다정한 만류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눈 깜짝할 사이에 커다란 뚝배기 바닥을 박박 긁어 설거지하듯 비워냈습니다. 주모는 빙그레 소리 내어 웃으며 빈 뚝배기를 가져가, 다시 밥과 고기를 잔뜩 얹고 끓는 국물을 가득 말아왔지요. 그렇게 사내는 자그마치 일반 사람 몫의 국밥 다섯 그릇을 비우고 나서야 빵빵해진 배를 두드리며 방바닥이 울릴 정도로 길고 긴 숨을 내쉬었습니다.
"후아... 이제야 좀 살 것 같소."
사내의 입에서 처음으로 터져 나온 음성은, 마치 깊은 산속의 거대한 바위가 굴러가는 듯 낮고 울림이 컸습니다. 그는 등잔불 아래서 자신을 살려준 주모의 주름진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습니다. 수백 년을 살아오며 사람들에게 요괴라 손가락질받고 쫓겨나기 일쑤였는데,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흉측한 자신에게 이토록 다정하게 생명의 음식을 내어준 인간은 처음이었으니까요. 사내의 누런 눈동자에 알 수 없는 묘하고도 뜨거운 감정이 일렁였습니다.
"밤이 몹시 깊었고 밖은 아직 눈보라가 매서우니, 아랫목에서 푹 쉬다 아침에 길을 나서시구려. 내일 아침에도 든든하게 국밥을 말아 드릴 터이니."
주모가 다정하게 사내의 너른 등을 토닥이자, 사내는 말없이 자리에서 털고 일어났습니다.
"아니, 이 험한 눈보라 속에 어딜 가시려고 그리 서두르시오!"
주모가 깜짝 놀라 옷소매를 잡고 말릴 틈도 없이, 사내는 묵직하고도 재빠른 걸음으로 사립문을 열어젖혔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을 살려준 주모를 향해 허리를 깊이 숙여 커다란 절을 한 번 올리더니, 매서운 눈바람이 휘몰아치는 캄캄한 어둠 속으로 순식간에 몸을 감추어 버렸습니다. 신기하게도 그가 떠난 눈길 위에는 발자국조차 남아있지 않았지요. 주모는 멍하니 열린 문밖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문을 닫으며 그저 홀연히 떠난 가여운 과객이 무사히 고개를 넘기만을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어주었습니다.
※ 3: 밤마다 몰래 쌓이는 장작과 채워지는 물독의 비밀
이튿날 아침, 거짓말처럼 사나웠던 눈보라가 멎고 티 없이 맑은 햇살이 주막 앞마당의 하얀 눈 위로 눈부시게 부서져 내렸습니다. 주모는 언제나처럼 동이 트기 무섭게 부지런히 일어나 하루 장사 채비를 시작했지요. 나이가 들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바로 이 아침 시간이었습니다. 뼛속까지 시린 겨울 아침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저 멀리 산 아래 깊은 우물까지 걸어가서 무거운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와 커다란 물독 세 개를 가득 채우는 것이었지요. 그다음으로는 꽁꽁 얼어붙은 나무토막들을 뒷마당으로 끌고 와 하루 종일 가마솥을 끓일 장작을 산더미처럼 패어놓는 고된 일과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릎이 시큰거리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와, 아침마다 우물에 다녀오고 무거운 도끼질을 하는 것이 늙어가는 주모에게는 가장 힘에 부치고 서러운 일이었습니다.
"아이고, 허리야. 간밤에 추위에 떨며 그 무거운 양반을 끌어당기고 용을 썼더니, 온몸의 뼈마디가 모조리 두드려 맞은 것 같네그려. 그래도 얼른 맑은 물을 길어와야 육수를 끓이고 밥을 안칠 터인데…."
허리를 콩콩 두드리며 우물가로 챙겨갈 빈 물동이를 가지러 부엌으로 들어선 주모는, 그 자리에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못 박힌 듯 멈춰 서고 말았습니다.
"어… 어라? 이게 대체 어찌 된 영문인가? 내가 아직 잠이 덜 깨어 헛것을 보는 겐가?"
주모는 두 눈을 마구 비비며 가마솥 옆을 쳐다보았습니다.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밤새 텅 비어있어야 할 커다란 물독 세 개에, 금방이라도 넘쳐흐를 듯 찰랑찰랑할 정도로 맑고 시원한 우물물이 가득 채워져 있었던 것입니다.
'혹시 내가 어젯밤 초저녁에 미리 물을 길어다 놓고 깜빡 잊어버린 것일까? 내 정신이 어찌 이리 오락가락한단 말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리둥절해하던 그녀는, 장작을 가지러 부엌 뒷문을 열고 뒷마당으로 나갔다가 그만 기절할 듯 너무 놀라 하마터면 뒤로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습니다.
"부, 부처님 맙소사! 천지신명님! 저게 다 무어란 말인가!"
넓은 뒷마당에는 어른 키를 훌쩍 넘는 어마어마한 양의 장작 더미가 마당 한가득, 그것도 아주 가지런하고 보기 좋게 쌓여 있었습니다. 게다가 나무들은 하나같이 불이 잘 붙고 화력이 좋은 굵고 단단한 참나무들뿐이었고, 도끼로 벤 자국이 어찌나 반듯하고 깔끔한지 이 마을의 힘 좋은 장정 열 명이 꼬박 하루 밤낮을 패어도 다 못해낼 엄청난 양이었지요.
'이 외진 산골짜기 고갯길에 늙은 나를 도와줄 사람이 뉘 있다고 이런 기이한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혹시… 간밤에 다녀간 그 덩치 큰 과객 양반이 밥 한 그릇 얻어먹은 은혜를 갚으려다 이 엄청난 일을 해놓고 사라진 것일까?'
주모는 어리둥절하여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사람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든든하게 쌓인 장작과 가득 찬 맑은 물독 덕분에 주모는 앓던 허리 통증도 잊은 채 콧노래를 부르며 몹시 수월하게 주막 문을 열고 장사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신기하고 기이한 일은 그날 하루의 우연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장작 더미가 장사로 인해 조금 줄어들 만하면, 다음 날 아침 뒷마당에는 어김없이 새 장작이 다시 산더미처럼 보충되어 쌓여 있었고, 부엌의 물독은 단 하루도 바닥을 보일 새 없이 늘 맑고 차가운 우물물로 찰랑거렸습니다. 폭설이 내리나 찬 비가 오나, 밤사이에 누군가 다녀가 주모의 가장 고된 일거리를 마법처럼 해치워놓고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이었지요. 고된 노동을 덜게 된 주모는 온전히 음식의 맛을 내는 데에만 모든 정성을 쏟을 수 있었고, 정성이 곱절로 들어간 주막의 국밥 맛은 나날이 깊어져 고갯길을 넘는 보부상들과 과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문전성시를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대체 어느 마음씨 고운 양반이 밤마다 잠도 자지 않고 이 늙은이의 뼈 깎는 수고를 이리 덜어주시는 걸까. 내 밥이라도 한 그릇 따뜻하게 고기 듬뿍 얹어 먹여 보내야 사람 된 도리일 터인데…."
그렇게 열흘 남짓 신비로운 보은이 계속되던 어느 날, 주모는 굳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오늘 밤에는 뜬눈으로 밤을 새우더라도 그 고마운 은인의 정체를 기필코 확인하고야 말리라 결심했지요.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주막 안의 호롱불을 모두 끄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뒷마당이 바로 내다보이는 부엌 뒷문 틈에 숨어 숨을 죽인 채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자정이 훌쩍 넘은 가장 야심하고 고요한 시각. 어디선가 산짐승의 울음소리도 아닌 기묘하게 스산한 바람이 훅 불어오더니, 밝은 달빛을 거대하게 가리며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뒷담장을 훌쩍 넘어 마당으로 새의 깃털처럼 사뿐히 내려앉았습니다. 그림자의 억센 손에는 집채만 한 거대한 통나무 여러 개가 마치 가벼운 지푸라기처럼 들려 있었지요. 주모는 숨을 죽이고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찢어진 문풍지 틈으로 난 작은 구멍으로 조심스레 눈을 갖다 대었습니다.
구름 사이로 눈부시게 밝은 달빛이 마당 위로 쏟아져 내리자, 묵묵히 일을 하러 온 그림자의 형체가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여덟 척이 훌쩍 넘는 거대한 덩치, 짐승의 털가죽을 대충 엮어 만든 듯한 기괴한 옷차림, 그리고 무엇보다 달빛에 하얗게 번뜩이는 덥수룩한 머리 위의 뭉툭하고 작은 뿔 하나.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옛날부터 어르신들의 무서운 옛이야기 속에서나 등장하며, 산을 호령하고 기괴한 조화를 부린다는 그 무시무시한 도깨비였던 것입니다!
'아, 아이고 맙소사! 도, 도깨비라니! 사람도 짐승도 아닌 도깨비라니!'
주모는 너무 놀라 뒤로 넘어갈 뻔한 것을 간신히 참으며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도깨비는 흥얼흥얼 알 수 없는 콧노래를 부르더니, 허리춤에서 커다란 가시몽둥이를 꺼내 들고 바닥에 놓인 통나무를 향해 휙휙 휘두르기 시작했습니다. 몽둥이가 닿을 때마다 육중한 통나무는 마치 두부를 써는 것처럼 반듯하고 깔끔한 장작이 되어 쩍쩍 갈라지며 차곡차곡 쌓여갔지요. 무시무시하고 흉측한 요괴인 줄만 알았던 전설 속의 도깨비가, 가난하고 늙은 자신을 돕기 위해 이토록 한밤중에 땀 흘리며 장작을 패고 있는 모습을 숨죽여 지켜보던 주모의 가슴 속에는, 요괴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대신 형언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따스함과 눈물겨운 먹먹함이 봄눈 녹듯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 4: 문풍지 틈으로 마주친 도깨비의 정체와 정겨운 대화
달빛 아래서 번개 같은 솜씨로 집채만 한 통나무들을 장작으로 만들어버린 도깨비는,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거친 털가죽 옷소매로 쓱스윽 훔쳐내더니 이내 부엌 옆에 놓여있던 커다란 물동이 두 개를 양손에 번쩍 집어 들었습니다. 물동이를 든 채로 껑충 뛰어 제 키보다 높은 담장을 가볍게 넘어선 도깨비는, 순식간에 저 멀리 산기슭 우물로 날아가 맑고 차가운 물을 찰랑거릴 정도로 가득 길어 왔지요. 일반 장정 둘이 달라붙어도 낑낑대며 들어야 할 그 무거운 물동이를 마치 새끼손가락에 걸고 오듯 사뿐하게 들고 온 도깨비가 다시 담장을 넘어 부엌 쪽으로 다가오자, 문풍지 틈으로 그 믿기 힘든 광경을 숨죽여 지켜보던 주모는 순간 당황하고 말았습니다. 뒷걸음질을 치다 그만 부뚜막 밑에 놓여있던 낡은 놋그릇을 '쨍그랑!' 하고 세차게 발로 차버린 것입니다.
"이런, 쯧쯧! 방 안에 웬 쥐새끼가 있는 겐가? 아니면 삵쾡이라도 들어온 것이야?"
부엌 밖에서 들려온 도깨비의 걸걸하고도 거친 목소리에 주모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숨이 멎을 뻔했습니다. 도망칠 곳도, 몸을 숨길 곳도 마땅치 않아 부뚜막 구석의 어두운 곳에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사시나무처럼 오들오들 떨고 있는데, 덜컹하는 쇳소리와 함께 굳게 닫혀있던 부엌 뒷문이 훌쩍 열렸습니다. 그리고 거대한 도깨비의 험상궂은 얼굴이 달빛을 등진 채 부엌 안으로 쑥 들이밀어졌지요. 짐승처럼 누렇게 빛나는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번뜩이며 웅크리고 있는 주모를 향해 정확히 고정되었습니다.
"아, 아이고! 도, 도깨비 대감마님! 제, 제발 저를 잡아먹지 마시구려! 저는 보시다시피 살가죽이 쭈글쭈글하고 뼈가 억세어 고기가 몹시 질기고 맛이 없사옵니다! 살려주십시오!"
주모가 바닥에 납작 엎드려 두 손을 싹싹 빌며 벌벌 떨자, 도깨비는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던 얼굴을 씰룩거리더니 이내 '푸하하하!' 하고 깊은 밤의 산이 통째로 떠나갈 듯 호탕하고 커다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 웃음소리에 부엌 천장의 거미줄이 후두둑 떨어질 지경이었지요.
"잡아먹다니! 이보시오, 아주머니. 내가 아무리 거칠게 산을 타며 짐승들과 뒹구는 도깨비라 한들, 은혜를 입은 은인의 피살을 탐하는 그런 배은망덕하고 삿된 요괴는 아니오. 내 얼굴이 그리 무섭고 흉측하단 말이오?"
그 정겹고도 사람 냄새 나는 목소리와 억양에 주모는 슬그머니 웅크렸던 몸을 펴고 고개를 들어 도깨비를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밝은 달빛에 비친 도깨비의 우락부락한 얼굴과 누런 눈동자는 며칠 전 눈보라 치던 끔찍한 밤, 자신이 거두어 살려주었던 바로 그 거구의 낯선 과객과 판박이로 닮아 있었습니다. 아니, 수염이나 뿔만 빼면 영락없이 그날의 불쌍한 과객 양반이 분명했지요. 그제야 주모는 죽음의 두려움을 거두고 치맛자락을 툴툴 털며 앓는 소리를 내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아이고, 세상에나! 간밤에 눈구덩이 속에서 쓰러져 죽어가던 그 불쌍한 과객 양반이 바로 전설 속에나 나오는 산 도깨비님이셨군요! 어쩐지 덩치가 산만하고 손아귀 힘이 바위 같더라니. 그래, 그날 드신 국밥이 도깨비님 입에는 좀 맞으셨소? 얼어붙었던 속은 좀 편안해지셨는지요?"
눈앞에 무시무시한 요괴를 보고도 자신의 안위보다 국밥 타령부터 하며 건강을 챙기는 주모의 남다른 넉살에, 도깨비는 몹시 머쓱해진 듯 제 덥수룩한 머리에 난 작은 뿔을 벅벅 긁적였습니다.
"아주머니의 그 정성스럽고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날 밤 호랑이 산 눈구덩이 속에서 꼼짝없이 꽁꽁 얼어붙어 수백 년 동안 갈고닦은 수련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 산귀신이 될 뻔했소. 내 평생을 살며 사람의 따뜻한 밥을 대접받아 얻어먹은 것도 처음이요, 그토록 감칠맛 나고 고기가 듬뿍 든 진한 국물은 백 년 만에 처음 맛보는 최고의 진수성찬이었지. 은혜를 갚고자 밤마다 조금 수고를 덜어드린 것뿐인데, 외려 아주머니를 놀라게 한 모양이구려. 미안하오."
"아이고, 미안하다니 당치도 않습니다요! 도깨비님 덕분에 이 병든 늙은이가 요새 삭아가는 뼈 아픈 줄도 모르고 장사를 어찌나 편히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아침마다 무거운 장작 팰 일 없고 그 먼 우물까지 허리 굽혀가며 물 길어 올 일이 없으니, 저는 그저 솥단지 앞에 편히 앉아 고기 삶고 육수만 우리면 되니 이리 편할 수가 있소. 이토록 큰 은혜를 내 어찌 다 갚아야 할지 모르겠소이다."
"은혜라니 당치도 않소. 목숨을 살려준 그 어마어마한 생명의 값에 비하면 이깟 썩은 나무토막 몇 개 패는 것은 내게 그저 숨쉬기보다 쉬운 장난 같은 일이지. 만약 아주머니가 원하신다면, 저 뒤의 큰 산을 통째로 쑥 뽑아다 이 주막 마당 한가운데에 예쁘게 심어줄 수도 있소이다! 말씀만 하시오!"
도깨비의 어마어마한 허풍 섞인 호언장담에 주모는 까르르 소녀처럼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무섭고 사람을 해친다고만 생각했던 전설 속 요괴가 이토록 싹싹하고 은혜를 깊이 알 줄 아는 듬직한 사내라니, 참으로 기이하고도 유쾌한 인연이 아닐 수 없었지요. 주모의 가슴 속에는 두려움 대신 훈훈한 정이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산은 뽑아와도 이 비좁은 마당에 놓을 자리가 없으니 치우시고, 기왕 땀 흘리며 여기까지 오셨으니 저기 따뜻한 아랫목에 좀 앉으시구려. 무거운 장작 패느라 힘을 그리 쓰셨으니 뱃속이 몹시 출출하실 터인데, 내 얼른 솥에 불을 지펴 부들부들한 고기 듬뿍 얹은 국밥 한 그릇 말아 올 터이니 조금만 기다리시구려."
"오호! 그 냄새만 맡아도 뱃속에서 천둥이 치고 침이 고이는 기가 막힌 국밥을 나에게 또 주신단 말이오?"
도깨비의 큰 눈이 반달 모양으로 기분 좋게 휘어지며 입꼬리가 귀에 걸리도록 올라갔습니다. 주모는 신이 나서 콧노래를 부르며 아궁이에 재빠르게 불을 지피고, 가장 큰 뚝배기에 밥과 고기를 산더미처럼 얹어 펄펄 끓는 국물을 토렴했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진한 국밥을 소반에 얹어 정성스레 내어주자, 도깨비는 눈물을 글썽이며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숟가락을 집어 들었지요.
"크으... 역시 천하 일미요! 아주머니의 국밥에는 사람과 요괴의 마음을 단숨에 녹이는 신비한 요술이 들어있는 게 분명하오!"
후루룩후루룩 엄청난 소리를 내며 뚝배기에 코를 박고 게눈 감추듯 밥을 비워내는 도깨비의 모습을 바라보며, 주모는 마치 타지에서 굶주리다 돌아온 친자식을 바라보듯 흐뭇하고 따뜻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깊은 겨울밤, 낡고 외딴 주막의 부엌에는 사람과 도깨비가 마주 앉아 그 어떤 혈육보다 더 정겨운 웃음꽃을 피워내고 있었습니다.
※ 5: 주모를 돕는 도깨비, 문전성시를 이루는 주막
그날 밤 부엌에서의 기막힌 만남 이후, 도깨비와 주모 사이에는 세상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기이하고도 각별한 우정과 정이 피어났습니다. 도깨비는 여전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밤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각에 나타나 주막의 가장 힘들고 궂은일을 군말 없이 도맡아 해치웠습니다. 산더미 같은 장작을 패고 우물물을 긷는 것은 이제 기본이었고, 비바람에 허물어진 주막의 돌담을 반듯하고 튼튼하게 고쳐 쌓기도 하고, 비가 새던 지붕의 낡은 볏짚을 엮어 하룻밤 새에 윤기가 흐르는 새것으로 싹 갈아입혀 놓기도 했지요. 주모는 그런 우직하고 고마운 도깨비를 위해 늘 가마솥 가득 뼈를 고아 낸 진한 사골 육수를 끓여두고, 가장 부드럽고 맛있는 부위의 고기를 두툼하게 썰어 고봉으로 쌓은 도깨비 전용 특제 국밥을 준비해 두고 그를 기다렸습니다.
밤마다 이어지는 도깨비의 든든한 노동과 아낌없는 지원 덕분에, 주모는 오롯이 음식 장만에만 자신의 온 정성을 다할 수 있었습니다. 장터에서 가장 질 좋은 고기를 고르고, 이른 아침 밭에서 신선한 푸성귀를 다듬어 아삭한 깍두기를 담그는 그녀의 손맛은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훌륭한 맛을 냈지요.
"이보게, 저 범바위 고개 너머 주막 국밥 맛이 그리 기가 막히고 용하다면서? 한 번 먹으면 그 맛을 잊을 수 없다던데?"
"말도 마소. 고기가 어찌나 실하고 두툼한지, 게다가 국물은 또 어찌나 깊고 진한지,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나면 열흘 길을 쉬지 않고 걸어도 지치지 않는다네. 게다가 주모 인심이 태평양 같고 자애로워서, 배고프고 돈 없는 봇짐장수들에게는 밥을 더 얹어준다고 인근 팔도에 입소문이 자자해! 그 주막 앞을 그냥 지나치는 건 바보 짓이야!"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발에서 발로 소문이 널리 퍼지면서, 주모의 주막은 늘 발 디딜 틈 없이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먼 길을 굳이 굽이굽이 돌아가더라도 무조건 주모의 국밥을 맛보려는 과객들이 줄을 이었고, 호랑이 울음소리만 들리던 한적하고 무서웠던 산골짜기 고갯길은 어느새 활기찬 장터처럼 북적이기 시작했지요. 주머니 사정이 몹시 넉넉해지자 주모는 낡고 허름했던 주막을 헐어내고 튼튼한 나무 기둥과 기와를 얹은 넓은 기와 주막으로 번듯하게 새로 단장했습니다. 하지만 겉모습이 화려해졌다고 해서 그녀의 넉넉하고 따뜻한 인심만큼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돈이 없는 가난한 이들에게는 여전히 미소와 함께 국밥을 거저 내어주었고, 삭풍이 부는 겨울이면 밖에서 얼어 죽는 과객이 없도록 아랫목을 온종일 뜨끈하게 데워두었지요.
"아주머니, 요즘 주막에 손님이 너무 밀려들어 육수 끓이랴 밥 지으랴 병이 나진 않으실까 내가 밤마다 걱정이오. 내 오늘 밤에는 저기 호랑이 산 깊은 골짜기에서 백 년 묵은 신령한 산삼을 뿌리째 캐다 올 터이니, 그 귀한 것을 국물에 푹 달여 드릴 테니 한 뚝배기 드시고 기운 좀 차리시구려."
어느 달 밝은 봄밤, 평소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장작을 패고 맛나게 국밥을 먹던 도깨비가 주모의 굽은 등을 보며 몹시 안쓰러운 듯 말했습니다. 주모는 빙그레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도깨비의 크고 거친 털북숭이 손을 토닥였지요.
"이 사람아, 산삼은 무슨 놈의 산삼인가. 자네가 밤마다 이리 무거운 짐을 다 져주고 궂은일을 다 해주니 내가 앓아누워 병날 일이 대체 어디 있겠나. 자네가 내 둘도 없는 보약이고 백 년 묵은 산삼이네. 내 평생 가뭄에 남편 잃고 돌림병에 자식 잃고 헛헛하고 외롭게 살아온 인생인데, 이렇게 다 늙어서 자네 같은 든든하고 고마운 도깨비 아들을 얻었으니 이 늙은이에게 이보다 더한 큰 복이 세상천지 어디 있겠는가."
"아… 아들 말이오? 내가 아주머니의 아들이란 말이오?"
도깨비의 커다란 누런 눈망울이 심하게 흔들리며 투박한 눈동자에 맑은 이슬이 맺혔습니다. 수백 년을 홀로 춥고 어두운 산속을 떠돌며 사람들에게 흉측한 요괴 취급을 받고 돌팔매질을 당하던 자신에게, 이 따뜻하고 자애로운 인간은 처음으로 '아들'이라는 너무나도 뭉클하고 정겨운 이름을 붙여준 것입니다. 도깨비는 왈칵 쏟아지려는 뜨거운 눈물을 감추려 커다란 뚝배기에 얼굴을 푹 묻고 국물을 연신 들이켰습니다.
"그래, 내 비록 미천한 인간 어미지만 널 내 배 아파 낳은 친자식처럼 애틋하게 여길 터이니, 너도 밖에서 요괴 취급받으며 춥게 떠돌지 말고, 배가 고프고 마음이 외로울 땐 언제든 이 어미를 찾아오너라. 알겠느냐?"
"예… 예, 어머니! 제가 평생 어머니 주막의 장작과 궂은일은 모조리 책임질 터이니, 어머니는 오래오래 건강하게 이 솥단지를 지켜 주셔야 합니다요! 절대 아프시면 안 됩니다!"
도깨비가 코를 훌쩍이며 씩씩하게 대답하자 주모는 그 모습이 귀여워 크게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사람과 도깨비, 겉모습도 몹시 다르고 사는 세계도 완전히 달랐지만 두 사람은 세상 어느 평범한 모자(母子)보다 더 깊고 끈끈한 천륜 같은 정으로 서로를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도깨비의 우직한 보은과 주모의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이 만들어낸 참으로 훈훈하고 눈물겨운 기적이었지요.
※ 6: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국밥 한 그릇의 평생 인연
흐르는 강물처럼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러 어느덧 십여 년의 긴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주모의 검었던 머리에는 하얀 서리가 내려앉아 은발이 되었고, 튼튼했던 허리는 예전보다 조금 더 굽어 지팡이를 짚어야 했지만, 가마솥 앞에서 펄펄 끓는 국밥을 푸는 그녀의 야무진 손놀림만큼은 여전히 쇠하지 않고 정갈했습니다. 고갯길의 으리으리한 기와 주막은 이제 팔도에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하고 인심 좋은 명소가 되어, 날마다 나그네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지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도깨비는 밤마다 어김없이 나타나 산더미 같은 장작을 패고 맑은 물을 길었습니다. 이따금 깊은 산속 인적이 드문 곳에서 캐온 진귀한 약초나, 사냥해 온 귀한 산짐승 고기를 부뚜막 한켠에 몰래 올려두고 가기도 했지요. 주모는 아침마다 부엌에 놓인 덩치 큰 도깨비 아들의 귀여운 선물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밤이면 그를 위해 가마솥에서 가장 푹 고아진 맛있는 국밥을 한 상 가득 차려놓고 아들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어느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던 매서운 겨울밤이었습니다. 마치 십여 년 전, 두 사람이 운명처럼 처음 만났던 바로 그날처럼 거센 삭풍이 미친 듯이 몰아치는 무서운 날이었지요. 주막의 손님들이 모두 깊은 잠자리에 든 야심한 시각,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부엌 뒷문이 열리고 익숙한 거대한 그림자가 성큼 들어섰습니다.
"어머니, 오늘은 산에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고갯길의 나무들이 죄다 꽁꽁 얼어붙었소. 장작으로 쓸 만한 굵고 좋은 참나무를 구하느라 저기 십 리 밖 골짜기까지 뛰다 왔더니, 배가 등가죽에 딱 달라붙을 지경이오. 얼어 죽겠소!"
머리에 하얗게 눈을 잔뜩 뒤집어쓴 도깨비가 어린아이처럼 어리광을 부리며 부뚜막 앞에 털썩 주저앉자, 주모는 빙그레 웃으며 따뜻하게 데워둔 수건으로 도깨비의 꽁꽁 언 얼굴을 다정하게 닦아주었습니다.
"아이고, 우리 듬직한 아들 밖에서 고생이 참 많았네. 내 오늘 눈보라 치는 것을 보고 자네 주려고 특별히 귀한 멧돼지 고기를 푹 고아 진하게 육수를 내었지. 어서 이 뜨끈하고 매콤한 국물부터 한 모금 마시게. 속이 쫙 풀릴 게야."
도깨비는 모락모락 하얀 김이 나는 커다란 뚝배기를 받아들고, 언제나처럼 단숨에 들이켰습니다.
"크으... 역시 우리 어머니 국밥은 백 년, 아니 천 년을 먹어도 절대 질리지 않을 천하제일의 맛이오! 이 기가 막힌 맛을 보지 않고 어찌 험한 세상을 산다 하겠소!"
게걸스럽게, 그리고 너무나도 행복한 표정으로 국밥을 먹는 덩치 큰 도깨비를 바라보며 주모는 가만히 과거의 회상에 잠겼습니다. 눈보라 치던 끔찍한 밤, 죽어가던 낯선 이를 불쌍히 여겨 내어준 따뜻한 국밥 한 그릇. 그것이 요괴의 차갑고 굳은 마음을 솜사탕처럼 녹이고, 자신의 외롭고 헛헛했던 노년을 이토록 든든하고 행복하게 가득 채워줄 줄은 그때는 꿈에도 몰랐지요.
"자네가 내 곁에 매일 밤 이리 함께 있어 주어 참으로 든든하고 고맙네. 이 늙은 어미가 숨이 멎어 눈을 감는 날까지, 자네 뱃속을 채워줄 든든한 국밥만큼은 내 뼈를 깎는 정성을 다해 끓여줄 터이니, 부디 병나지 말고 건강하게 산을 지키며 살아가시게."
"어머니, 무슨 그런 섭섭하고 무서운 말씀 마시구려. 제가 불로장생하는 산삼을 천 뿌리, 만 뿌리라도 캐다 다려 드릴 터이니 어머니는 저 가마솥 솥단지 앞을 백 년은 더 튼튼하게 지키셔야 하오! 알겠습니까!"
도깨비의 재치 있는 너스레와 당부에 주모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깊고 매서운 겨울밤의 주막을 따뜻하게 채웠습니다. 사람들은 험한 고갯길의 넉넉한 인심을 자랑하는 주막을 칭송했지만, 그 주막이 그토록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진정한 비결이 솥단지 뒤에서 밤마다 땀 흘려 장작을 패는 우직한 도깨비 아들과, 그 아들을 위해 매일 밤 정성껏 국밥을 끓이는 주모의 변치 않는 애틋한 정에 있다는 것은 아무도 몰랐지요.
지금도 어느 깊고 험한 산골짜기 고개를 넘다 보면, 구수한 사골 냄새가 진동하는 작고 따뜻한 주막을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주막 뒷마당에는 어김없이 그날 쓸 산더미 같은 장작이 아주 가지런히 쌓여 있겠지요. 따뜻한 마음 한 조각, 국밥 한 그릇이 만들어낸 사람과 도깨비의 정겨운 인연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결코 변치 않고 우리네 팍팍한 마음속에 훈훈한 전설로 영원히 남아있습니다.
유튜브 엔딩 멘트
오늘 들려드린 『주모의 국밥 한 그릇에 평생 은혜 갚은 도깨비』 이야기, 다들 어떻게 들으셨나요? 사람을 해치는 무서운 요괴인 줄만 알았던 도깨비가 따뜻한 밥 한 끼의 정에 깊이 감동하여 주모의 든든한 아들이 되어준, 참으로 정겹고 가슴 훈훈해지는 이야기였습니다. 유난히 춥고 팍팍한 요즘이지만, 우리 주변에도 이 주모처럼 따뜻한 밥 한 그릇의 온기를 나누는 작은 마음들이 모여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이야기가 여러분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부탁드리며, 저희는 다음에도 구수하고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