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주정뱅이와 도깨비의 우정 , 친구가 되자 벌어진 사건들 『이담 기이집』

    태그 및 정보

    #전설의고향, #야담, #도깨비, #권선징악, #해피엔딩, #시니어동화, #수면동화, #옛날이야기, #오디오드라마, #조선시대, #해학, #막걸리, #부부, #인생역전, #힐링
    전설의고향, 야담, 도깨비, 권선징악, 해피엔딩, 시니어동화, 수면동화, 옛날이야기, 오디오드라마, 조선시대, 해학, 막걸리, 부부, 인생역전, 힐링

    후킹멘트:

    "어이, 자네! 술 한 잔 있으면 나랑 씨름 한 판 하겠나?" 캄캄한 밤, 고개 넘던 주정뱅이 앞에 나타난 푸른 눈의 괴물! 잡아먹혀도 시원찮을 판에, 도깨비와 형님 아우 하며 술판을 벌였다는데... 지지리 복도 없던 박달구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기막힌 하룻밤! 배꼽 잡는 웃음과 뭉클한 감동이 있는 [이담 기이집]으로 초대합니다.

    디스크립션:

    지지리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천하태평인 애주가 박달구. 아내에게 쫓겨난 밤, 산고개에서 '술고래 도깨비'를 만나 친구가 됩니다. 도깨비는 보답으로 낡아빠진 '빗자루' 하나를 던져주는데, 그 빗자루에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었으니... 황당하고 유쾌한 도깨비의 장난과 착한 마음씨가 불러온 기적 같은 이야기입니다.

    ※ 바가지 긁는 밤

    깊은 산골 마을, 초가삼간 오두막 위로 서러운 보름달이 휘영청 떠올랐습니다. 밤벌레 소리조차 숨을 죽인 야심한 시각, 적막을 깨고 "와장창!" 하는 굉음과 함께 낡은 사립문이 덜컹거렸습니다. 곧이어 방 안에서 이불 보따리가 마당으로 휙 내동댕이쳐지고, 찌그러진 갓 하나가 허공을 갈라 툇마루 끝에 처박혔습니다.

    "아이고, 아이고! 내 팔자야! 내가 전생에 무슨 나라를 팔아먹었지, 저런 징글징글한 화상하고 짝이 되어서 이 생고생을 한단 말인가!"

    방 안에서 들려오는 여인의 곡소리는 처량하다 못해 독기가 서려 있었습니다. 이 집의 안주인 춘심이었습니다. 그녀는 방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나와, 마당에 엉거주춤 서 있는 사내를 향해 삿대질을 해댔습니다. 사내는 이 동네에서 술 좋아하기로 으뜸이요, 게으르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박달구였습니다. 그는 쫓겨나는 와중에도 술기운이 올라 불그죽죽한 얼굴로 헤실헤실 웃고 있었습니다.

    "아따, 임자. 밤이 깊었는데 고만 좀 하소. 동네 사람들 다 깨겄네. 남 부끄러운 줄도 알아야지, 목청이 그게 뭔가?"

    달구의 천하태평한 대꾸에 춘심은 기가 막혀 뒷목을 잡았습니다. 그녀는 툇마루를 탕탕 치며 울분을 토해냈습니다.

    "남 부끄러운 줄은 아시오? 오늘 장터에서 김 부자네 하인이 와서 쌀값 외상값 언제 갚을 거냐고 내 멱살 잡고 흔드는데, 당신은 그 시간에 어디 쳐박혀 있었소? 또 주막이지? 그 빌어먹을 막걸리 타령!"

    "허허, 사람이 참. 쌀값이야 내일이라도 갚으면 될 일이고... 내 오늘은 마음이 적적해서 딱 한 사발만 한다는 게 그만..."

    "내일? 그놈의 내일 타령은 십 년째요! 쌀독은 바닥나서 쥐 새끼도 미끄러지겠구먼, 허구한 날 술타령! 당신이 인간이오? 가장이냐 말이오! 에이그! 나가요! 꼴도 보기 싫으니 당장 나가!"

    춘심은 신고 있던 고무신을 벗어 달구에게 집어 던졌습니다. 고무신은 달구의 이마를 '탁' 하고 맞추고 떨어졌습니다. 그제야 달구도 조금은 아픈 시늉을 하며 이마를 문질렀습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춘심의 눈치를 살피느라 바빴습니다.

    "어어? 임자, 왜 이래? 이 밤중에 어딜 가라고! 밖에는 찬바람이 쌩쌩 부는데, 나더러 얼어 죽으란 소리인가?"

    "산에 가서 호랑이한테 잡혀가든, 강물에 빠지든 알아서 하시오! 돈 벌어오기 전엔 문턱 넘을 생각도 마!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절대 문 안 열어줄 테니 그리 아시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닫혔습니다. 문고리 거는 소리가 '철컥' 하고 야박하게 들려왔습니다. 달구는 닫힌 문을 향해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습니다.

    "거 참... 성질하고는. 알았네, 알았어! 내 돈 벌어올 테니 큰소리치지 마소! 나 원 참, 서러워서 살겠나."

    달구는 마당에 널브러진 옷가지 몇 개를 주섬주섬 챙겨 입었습니다. 쌀쌀한 가을밤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었지만, 그의 표정은 쫓겨난 사람치고는 묘하게 밝았습니다. 그는 품속을 더듬거리더니, 찌그러진 호리병 하나를 꺼내 들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휴우, 그래도 다행이지. 부엌 아궁이 속에 숨겨둔 이놈을 챙겨 나왔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이 긴 밤을 맨정신으로 어찌 버티겠나. 에휴, 빈 털털이 주머니에 뭔 돈이 붙겠나. 그나저나 쫓겨날 때 쫓겨나더라도, 갈 데가 있어야지."

    달구는 터덜터덜 사립문을 나섰습니다. 마을 어귀의 개들이 낯선 인기척에 '컹컹' 짖어대자, 달구는 "쉿! 조용히 해라, 이 똥강아지들아. 나도 쫓겨난 신세다." 하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갈 곳 없는 신세, 달구는 발길 닿는 대로 마을 뒤편, 사람들이 가기 꺼리는 '여우 고개'로 향했습니다. 달구의 그림자가 달빛 아래 길게 늘어졌습니다.

    ※ 으스스한 산고개

    마을을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자 공기부터 달라졌습니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찬 기운이 감돌았고, 무성한 나뭇가지들은 바람에 흔들리며 기괴한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부엉~ 부엉~' 우는 부엉이 소리가 마치 귀신의 울음소리처럼 메아리쳤습니다. 가파른 고갯길을 오르던 달구는 숨이 턱까지 차올랐습니다.

    "어휴, 되다, 되. 이놈의 고개는 뭣 하러 이리 높다냐. 옛날에 여기서 여우가 사람 홀려 먹었다는 소문이 있더니만, 분위기가 영 찝찝하구먼."

    달구는 고개 중턱에 있는 넓은 '넙치 바위'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마을의 불빛들이 까마득하게 보였습니다. 하늘에는 쟁반 같은 보름달이 얄밉도록 환하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달빛은 또 왜 이리 처량해. 꼭 내 신세 같구먼. 집에서 쫓겨나 산짐승 우는 이곳에서 청승이라니."

    달구는 품에 안고 있던 호리병의 마개를 '뽕!' 하고 땄습니다. 술 냄새가 확 퍼지자, 달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습니다. 그는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 병 주둥이를 입에 가져갔습니다.

    "그래, 이 놈이라도 있으니 내가 살지. 어디 목 좀 축여볼까."

    꿀꺽, 꿀꺽, 꿀꺽. 목울대를 타고 넘어가는 막걸리의 시원하고 알싸한 맛에 달구는 "캬아!" 하고 탄성을 내질렀습니다. 빈속에 들어간 술기운이 짜릿하게 온몸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달구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해진 마른 멸치 대가리 하나를 꺼내 입에 넣고 오물거렸습니다.

    "달다, 달아. 춘심이 잔소리보다 백 배는 달구나. ...하이고, 그런데 옛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혼자 마시는 술이 제일 맛없다 하셨는데. 이 좋은 술을 나 혼자 마시려니 영 흥이 안 나네."

    취기가 오르자 달구의 간이 배 밖으로 나왔는지, 그는 허공에 대고 술잔을 권하는 시늉을 했습니다.

    "에잉, 귀신이라도 좋으니 누구 하나 있으면 딱 한 잔 권하겠구먼. 고수레~ 고수레~"

    달구는 술을 바위 주변에 조금 뿌렸습니다.

    "산신령님도 한 잔 하시고, 지나가는 처녀 귀신도 한 잔 드시오. 내 말동무나 해주면 더 좋고!"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산 전체를 울리던 바람 소리가 뚝 끊기더니, 사방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습니다. 그리고 등 뒤에서 땅이 울리는 묵직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쿵... 쿵... 쿵...'

    "잉? 이게 뭔 소리여? 멧돼지인가?"

    달구는 놀란 눈으로 두리번거렸습니다. 발자국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고, 나뭇가지들이 우지끈 꺾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윽고 달구의 등 뒤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습니다. 서늘한 냉기와 함께 비릿하면서도 묘하게 달큰한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킁킁... 이게 무슨 냄새냐? 시큼하고 달달하고 구수한 이 냄새..."

    낮고 굵은 목소리가 바위 전체를 웅웅 울렸습니다. 달구는 뻣뻣하게 굳은 채 고개를 천천히 돌렸습니다. 그곳에는 집채만 한 덩치에, 털이 북실북실하고 머리에 뿔이 하나 달린 괴물이 푸른 안광을 번뜩이며 서 있었습니다. 전설 속에서나 듣던 도깨비였습니다.

    "히익! 누, 누구쇼?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덩치가 산만 하시네."

    달구는 놀라서 딸꾹질을 시작했습니다. "딸꾹! 딸꾹!"

    도깨비는 성큼성큼 다가와 달구의 코앞에 얼굴을 들이밀었습니다. 도깨비의 숨결에서 풀냄새와 흙냄새가 확 끼쳐 왔습니다.

    "네 놈이냐? 이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놈이? 내 코가 개 코보다 밝은데, 분명 이 근처에서 기가 막힌 향기가 났단 말이다."

    달구는 달달 떨면서도 품에 안은 술병만은 뺏기지 않으려고 꼭 쥐었습니다. 오줌을 지릴 뻔했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습니다.

    "아, 아니, 저, 저는 그냥 지나가던... 아니 쫓겨난 박가라고 합니다만... 그쪽은 뉘신지? 얼굴에 털이 참 많으시네요..."

    "나? 나는 이 고개 주인 도깨비다! 그나저나 네 품속에 그거! 그 호리병 말이다. 거기서 나는 냄새지?"

    도깨비의 시선이 달구의 가슴팍에 꽂혔습니다. 달구는 본능적으로 술병을 뒤로 감췄습니다.

    "이, 이건 제 생명수입니다요. 건드리지 마십시오!"

    "허허, 그놈 참. 사람 고기보다 그 물이 더 탐나는데, 순순히 내놓지 않으면 뼈도 못 추릴 줄 알아라!"

    도깨비가 솥뚜껑만 한 손을 번쩍 들어 올리자, 달구는 "아이고, 어머니!" 하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과연 달구는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넘길 수 있을까요?

    ※ 술친구 도깨비

    "아이고, 도깨비님!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제 살은 퍽퍽하고 냄새가 나서 맛도 없습니다요. 저기 산 아래 김 부자네 돼지가 아주 포동포동하니 그놈을 잡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요?"

    달구는 사시나무 떨듯 떨며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빌었습니다.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 내복을 적셨습니다. 하지만 도깨비의 관심은 달구의 목숨 따위가 아니었습니다. 놈은 큼지막한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달구의 가슴팍을 가리켰습니다.

    "시끄럽다! 누가 맛없는 네놈 고기를 탐낸다더냐? 내 코를 자극하는 그 향긋한 냄새 말이다. 네 품속에 든 그 호리병! 그거 당장 이리 내놔라."

    "예? 호, 호리병 말씀입니까? 이, 이건 그냥 싸구려 막걸린데요..."

    "잔말 말고 썩 내놓지 못할까! 내 성질이 급해서 셋 세기 전에 안 내놓으면 그 호리병이랑 같이 네놈을 통째로 삼켜버릴 테다! 하나!"

    도깨비의 불호령에 달구는 기겁을 하며 품속에 고이 모셔둔 호리병을 꺼내 바쳤습니다. 도깨비는 솥뚜껑만 한 손으로 조막만 한 호리병을 낚아채더니, 마개를 '뽕!' 하고 따버렸습니다. 병 주둥이에서 구수하고 시큼한 막걸리 냄새가 확 풍겨 나오자, 도깨비의 푸른 눈이 황홀하게 풀어졌습니다.

    "오호라... 냄새 한번 기가 막히구나. 어디 맛 좀 볼까?"

    도깨비는 병째로 입에 털어 넣었습니다. 마치 큰 항아리에 물을 붓듯 '콸콸콸' 넘어가는 소리가 우렁찼습니다. 한 모금을 삼킨 도깨비가 "캬아!" 하고 탄성을 내질렀습니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잠자던 산새들이 놀라 푸드덕거릴 정도였습니다.

    "좋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이 짜릿함! 뱃속이 뜨끈해지는 게 아주 일품이구나! 이게 대체 무슨 물이냐? 산삼 썩은 물도 이것보단 맛이 없던데."

    달구는 도깨비의 반응에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게... 사람이 쌀로 빚은 막걸리라는 술입니다요. 도깨비님 입맛에 맞으신다니 천만다행입니다."

    "막걸리라? 천상에 있는 감로수보다 더 달고 시원하구나! 야, 너 거기 쭈그리고 있지 말고 이리 와서 앉아봐라. 좋은 술은 같이 마셔야 제맛이라지? 너도 한잔해야지?"

    "아, 아닙니다요. 저는 감히 도깨비님과 겸상할 군번이... 저는 그냥 여기서 엎드려 있겠습니다요."

    "어허! 내가 마시라면 마시는 거지 말이 많다! 내 기분 좋게 취했는데 판 깰 셈이냐? 자, 받아라!"

    도깨비는 억지로 달구를 끌어당겨 옆에 앉히고는 남은 술을 달구의 입에 부어주었습니다. 얼결에 술을 받아 마신 달구는 입맛을 다시며 눈을 끔뻑였습니다. 공포심은 온데간데없고 술기운이 돌자 용기가 샘솟기 시작했습니다.

    "크으... 역시 술맛 하나는 기가 막히네요. 죽기 전에 마시는 술이라 그런가 더 답니다요."

    "그래, 그래! 네놈 마시는 폼을 보니 술 좀 마실 줄 아는 놈이구나. 얼굴이 불콰한 게 아주 마음에 들어. 이름이 뭐냐?"

    "박가 달구라고 합니다. 그냥 달구라고 부르십시오."

    "달구? 이름 한번 촌스럽고 구수해서 좋다! 나는 이 여우 고개 주인 도깨비다. 오늘 밤 달도 밝고 술맛도 좋은데, 우리 형님 아우 하며 친구나 맺자꾸나. 어때?"

    달구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천하의 도깨비와 형님 아우라니요.

    "예에? 도, 도깨비님하고 친구를요? 저야 영광입니다만... 제가 감히..."

    "사내대장부가 꽁무니를 빼기는! 자, 오늘부터 네가 형님 해라. 내가 아우 할 테니."

    "아이고, 당치도 않습니다! 제가 어찌 감히... 인간과 도깨비 사이에 위아래가 어디 있겠습니까만은, 덩치로 보나 힘으로 보나 도깨비님이 형님 하셔야지요. 저는 아우로 족합니다."

    "허허, 그놈 참 겸손하기도 하지. 그래, 그럼 내가 형님 하마! 아우야, 잔 비었다. 한 잔 더 따라보거라! 내 평생 이렇게 맛난 물은 처음이다!"

    그렇게 달구와 도깨비의 기묘한 술자리가 무르익어 갔습니다. 달빛 아래 도깨비의 웃음소리와 달구의 너스레가 어우러지며, 두려움은 어느새 우정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좋다! 좋아! 그나저나 아우야, 너는 이 밤중에 왜 이리 궁상맞게 고개를 넘고 있었느냐?"

    "말도 마십시오, 형님. 집사람 등쌀에 못 이겨 쫓겨났지 뭡니까. 돈 못 벌어온다고 구박에, 잔소리에... 에휴, 내 팔자야. 마누라가 호랑이보다 더 무섭습니다요."

    "저런, 쯧쯧. 인간 세상이나 도깨비 세상이나 마누라 무서운 건 매한가지구나. 나도 사실은 우리 할멈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몰래 도망 나온 참이다. 바가지 긁는 소리가 천둥소리보다 더 커!"

    "아이고, 형님도 그러십니까? 동병상련이로고! 자, 건배합시다! 우리의 서러운 팔자를 위하여!"

    둘은 서로의 처지를 비관하며 건배를 외쳤습니다. 술잔이 오갈수록 달구의 마음속 응어리도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 목숨 건(?) 씨름판

    한참을 그렇게 웃고 떠들었는데, 달구가 호리병을 거꾸로 들고 아무리 탈탈 털어도 술 한 방울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라? 형님, 큰일 났습니다요. 술병이 비어버렸습니다. 한 방울도 안 나오는데요?"

    도깨비는 눈을 부릅뜨며 아쉬워했습니다.

    "뭐야? 벌써 바닥이 났단 말이냐? 에잉, 입만 버렸네그려. 한참 흥이 오르던 참인데 아쉽구만, 아쉬워. 더 없느냐? 주머니 뒤져봐라."

    "주머니엔 먼지뿐입니다요. 안주도 다 떨어지고... 이제 슬슬 내려가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누라가 걱정할 시간은 아니지만, 새벽이슬이 차갑습니다요."

    달구가 주섬주섬 일어날 채비를 하자, 도깨비가 벌떡 일어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어허, 벌써 가려고? 술이 떨어졌으면 몸으로라도 놀아야지. 그냥 보내주긴 내가 너무 섭섭해서 안 되겠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우야, 우리 씨름 한 판 하자! 내 몸이 근질근질해서 견딜 수가 없어."

    달구는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습니다. 저 집채만 한 도깨비와 씨름이라니, 계란으로 바위 치기나 다름없었습니다.

    "씨, 씨름이요? 아이고 형님, 제 팔뚝 좀 보십시오. 이 비쩍 마른 몸으로 어찌 형님을 이깁니까요. 저하고 붙었다가는 제 뼈가 가루가 될 겁니다."

    "걱정 마라. 내가 살살 봐줄 테니. 심심해서 좀이 쑤셔 그렇다. 그냥 보내주기 섭섭해서 그러니 딱 한 판만 하자. 응? 네가 이기면 고이 집으로 보내주마."

    "그, 그럼 제가 지면요?"

    "지면... 흐흐흐, 오늘 밤새도록, 아니 내일 밤에도 내 말동무나 계속해야 할 것이다."

    달구는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말동무라니, 이 추운 산꼭대기에서 얼어 죽으란 소리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도깨비는 막무가내로 달구의 허리춤을 잡았습니다.

    "자, 샅바 잡고! 으랏차차!"

    달구는 어쩔 수 없이 도깨비의 굵디굵은 허벅지를 잡았습니다. 마치 천년 묵은 고목나무를 잡은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도깨비가 힘을 살짝 주자 달구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떴다 가라앉았습니다.

    "으으으... 끄응! 아이고, 내 허리야! 바위덩어리가 움직이는 것 같네! 형님, 좀 봐주십시오!"

    "어이쿠, 넘어갈 뻔했네! 하하하! 자, 이번엔 내가 넘긴다!"

    달구는 식은땀을 뻘뻘 흘렸습니다. 힘으로는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밤새도록 씨름판에서 굴러다니다가 탈진해 죽을 판이었습니다. 그때, 달구의 머릿속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해주던 옛날이야기가 번개처럼 스쳤습니다.

    '가만 있자... 옛날이야기에 도깨비는 왼쪽 다리가 부실해서 거기를 걸면 넘어진다고 했지? 그리고 멍석말이나 떡을 좋아한다고... 옳지! 밑져야 본전이다!'

    달구는 갑자기 눈을 크게 뜨며 도깨비의 등 뒤 허공을 가리켰습니다.

    "헉! 형님! 저기 뒤에 저게 뭡니까? 호랑이가 시루떡을 물고 가는데요?"

    "뭐? 호랑이? 떡? 떡이라고? 어디, 어디?"

    '떡'이라는 소리에 도깨비의 귀가 솔깃해져 고개를 확 돌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달구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도깨비의 왼쪽 다리를 걷어찼습니다.

    "지금이다! 에잇! 왼쪽 다리 걸기!"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도깨비가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습니다. 그리고는 '쿠궁!' 하는 굉음을 내며 엉덩방아를 찧었습니다. 산 전체가 울리는 듯했습니다.

    "이, 이겼다! 제가 이겼습니다, 형님! 제 무릎이 땅에 닿기 전에 형님 등이 먼저 닿았습니다요! 만세!"

    도깨비는 누운 채로 끙끙대며 허리를 문질렀습니다.

    "아야야... 내 허리야... 아이고, 엉덩이야. 이 녀석, 꽤 하는구나? 힘이 장사가 아니라 꾀가 장사로고! 내가 방심했다, 방심했어! 호랑이가 떡을 물고 간다는 말에 속다니."

    도깨비는 툴툴거리면서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약속대로 저 보내주시는 겁니다? 사나이 대장부가 두 말 하기 없깁니다요."

    "암, 사나이 일구이언은 이부지자라 했다. 내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마. 그나저나 너, 씨름 솜씨가 제법인데? 술도 잘 마시고, 머리도 잘 굴리고, 아주 마음에 쏙 드는 놈이야."

    "과찬이십니다, 형님. 이제 날도 밝아오고 슬슬 내려가 보겠습니다. 마누라가 대빗자루 들고 기다릴 텐데, 더 늦으면 뼈도 못 추립니다."

    "그래, 잘 가거라 아우야. 내 오늘 즐거웠다. 참, 그냥 보내기 섭섭하니 내 선물 하나 주마."

    도깨비는 씨름판에서의 패배를 흔쾌히 인정했습니다. 그리고는 달구에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습니다.

    ※ 개똥 같은 선물

    산새들이 '짹짹' 거리며 아침을 깨우는 소리에, 달구는 "으어어..." 하고 긴 신음을 토해내며 눈을 떴습니다. 딱딱한 바위 위에서 밤새 웅크리고 잔 탓에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쑤시고 결렸습니다.

    "아함... 잘 잤다. 어우, 입 돌아갈 뻔했네. 여기가 어디... 아! 맞다. 내 어젯밤에 도깨비 형님하고 거하게 술을 마셨지?"

    달구는 부스스 일어나 주변을 두리번거렸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젯밤 그토록 호탕하게 웃어대던 도깨비는 온데간데없고, 적막한 산기운만 감돌았습니다.

    "잉? 형님! 도깨비 형님! 어딜 가셨나?"

    대답 없는 메아리만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달구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거참, 귀신같이 사라졌네. 아니, 도깨비니 귀신같이 사라지는 게 맞나? 허허. 혹시 내가 밤새 바위 위에서 개꿈을 꾼 건가?"

    하지만 꿈이라기엔 입안에 감도는 막걸리 향이 너무나 생생했습니다. 그때, 달구의 시선이 머리맡에 머물렀습니다. 도깨비가 앉아있던 그 자리에 무언가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달구는 내심 기대감에 부풀어 눈을 반짝였습니다.

    "오! 형님이 선물을 주고 가셨나 보네? 금덩이인가? 아니면 산삼?"

    달구는 헐레벌떡 다가가 물건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달구의 입에서 허탈한 탄식이 터져 나왔습니다.

    "뭐여, 이게? 몽당빗자루 아니여? 다 닳아빠져서 마당도 못 쓸게 생긴 이걸 왜 여기다 두고 갔댜?"

    그것은 털이 다 빠져 앙상한 수수 빗자루였습니다. 어디 내다 버려도 아무도 주워가지 않을 고물 중의 고물이었습니다. 달구는 빗자루를 이리저리 뜯어보다가 땅바닥에 내팽개쳤습니다.

    "아이고... 내가 그렇지 뭐. 도깨비랑 형님 아우 맺었다고 금 나와라 뚝딱이라도 바란 내가 미친놈이지. 술값 대신 이 쓰레기나 치우라 이건가? 에라이, 퉤!"

    달구는 툴툴거리며 하산할 채비를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발걸음을 옮기려니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방금 버린 빗자루를 다시 주워 들었습니다.

    "에휴, 지팡이 대신 이놈이라도 짚고 가야겠네. 형님, 선물 참 고맙수다! 덕분에 산 내려가다 넘어지진 않겠네!"

    달구는 빗자루를 지팡이 삼아 절뚝이며 산길을 내려갔습니다.
    무엇보다 빈손으로 돌아가면 호랑이보다 무서운 아내 춘심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달구의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워졌습니다.

    ※ 금 나와라 뚝딱!

    마을 어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었습니다. 달구는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사립문을 밀고 들어갔습니다. 마당에서는 아내 춘심이 성난 얼굴로 마당을 쓸고 있었습니다. 빗자루질 소리가 어찌나 거친지 바닥이 패일 지경이었습니다.

    "끼익..."

    사립문 소리에 춘심이 고개를 획 돌렸습니다. 그녀의 눈에서 불꽃이 튀는 듯했습니다.

    "이 인간이 밤새 어딜 가서 코빼기도 안 비쳐? 나가 죽으라니까 진짜 죽었나 했네! 아이고 내 팔자야!"

    달구는 춘심의 기세에 눌려 움찔하며 뒷걸음질 쳤습니다.

    "임자... 나 왔네. 밤새 별일 없었는가?"

    "왔어?! 빈손으로 잘도 기어들어 왔네! 돈은? 돈 벌어오라니까 그냥 왔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문 안 열어준다고 했소, 안 했소!"

    춘심은 들고 있던 빗자루를 치켜들고 달구에게 달려들 기세였습니다. 달구는 다급하게 손에 든 몽당빗자루를 내밀며 변명했습니다.

    "아, 아니... 밤새 산에서 도깨비를 만나서... 이 빗자루를 선물로 받았는데..."

    "뭐? 도깨비? 빗자루?!"

    춘심은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온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쌀독은 비어서 쥐가 춤을 추는데, 남편이라는 작자가 다 썩은 빗자루 하나 들고 와서 도깨비 타령이라니요.

    "하이고! 아주 가지가지 하십니다 그려! 술이 덜 깼구만! 쌀독은 비었는데 웬 몽당빗자루를 들고 와서 헛소리야!"

    춘심은 달구의 손에서 몽당빗자루를 거칠게 낚아챘습니다.

    "이딴 거 꼴도 보기 싫으니 당장 갖다 버려요!"

    춘심은 홧김에 빗자루를 마당 구석에 있는 깨진 장독대를 향해 힘껏 내동댕이쳤습니다. 빗자루가 허공을 날아가 '휘익~' 소리를 내더니, 장독 파편에 '탁!' 하고 부딪혔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번쩍!"

    빗자루가 닿은 곳에서 눈부신 섬광이 일더니, 믿을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촤르르륵! 짤랑! 짤랑!'

    마치 쇳덩이 수백 개가 쏟아지는 듯한 굉음이었습니다. 달구와 춘심은 동시에 입을 딱 벌리고 그곳을 바라보았습니다.

    "허억! 여보! 저, 저, 저게 뭐여?!"

    "어머나! 여보! 이거... 이거 금 아니에요? 금돈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졌어요!"

    깨진 장독대 위에는 누런 황금 동전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햇빛을 받아 번쩍이는 그것은 분명 순금이었습니다. 달구는 신발도 벗어 던지고 달려가 금돈 하나를 집어 들었습니다.

    "금이다! 진짜 금이야! 깨물어 보자! 아득!"

    이빨이 들어갈 듯 말 듯 한 무른 감촉. 틀림없는 순금이었습니다.

    "으악! 진짜다! 임자! 도깨비 형님이 준 게 진짜 요술 빗자루였어!"

    춘심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달구의 소매를 잡아끌었습니다.

    "여보! 빗자루! 당신이 가져온 그 빗자루가 닿은 자리마다 금돈이 생겨나고 있어요! 한번 더 던져봐요, 얼른!"

    "그, 그래? 형님! 감사합니다요! 자, 간다! 금 나와라 뚝딱!"

    달구는 떨리는 손으로 빗자루를 집어 들고 다시 한번 바닥을 내리쳤습니다.

    "붕! 쾅!"

    그러자 허공에서 또다시 금은보화가 '와르르' 쏟아져 내렸습니다. 마당은 순식간에 황금빛으로 물들었습니다.

    "아이고 여보, 우리 이제 살았소! 우리 이제 부자 됐어! 으하하하!"

    "여보! 내가 잘못했소! 당신이 최고야! 박달구 만세!"

    춘심과 달구는 금더미 위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 행복한 주정뱅이

    그날 이후, 여우 고개 아래 작은 초가집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는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이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달구 부부는 돈을 펑펑 쓰며 사치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곳간 문을 활짝 열어 굶주린 이웃들에게 쌀과 고기를 나누어주며 덕을 쌓았습니다.

    어느 날 저녁, 마을 사람들이 달구네 마당에 모여 잔치를 벌였습니다.

    "박 대감님! 이번에 우리 집 빚 탕감해 주셔서 정말 고맙구만유. 대감님 아니었으면 우리 식구 다 길거리에 나앉을 뻔했슈."

    "아이고, 별말씀을요.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짓인디요. 많이들 드시고 가셔유! 고기는 얼마든지 있으니 배 터지게 드시고!"

    달구는 비단 옷을 입고 양반관을 썼지만, 사람 좋은 웃음만은 예전 그대로였습니다. 춘심 역시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부지런히 음식을 날랐습니다.

    "여보, 술상은 저기 뒷마루에 따로 봐뒀어요.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제일 비싼 막걸리로다가."

    "오, 역시 우리 임자가 최고네! 내 잠시 다녀올 테니 손님들 잘 모시고 있게."

    달구는 조용히 뒷마루로 향했습니다. 그곳에는 정갈하게 차려진 술상과 달빛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달구는 술잔에 막걸리를 가득 채워 허공을 향해 들어 올렸습니다.

    "형님! 도깨비 형님! 저 달구입니다. 보고 계시쥬?"

    서늘한 밤바람이 불어와 달구의 옷자락을 흔들었습니다. 달구는 픽 웃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형님 덕분에 저랑 춘심이랑 팔자 고쳤습니다요.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사실 저 다 압니다."

    달구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습니다.

    "그때 그 씨름 한 판... 제가 진짜로 이긴 게 아니란 거 말입니다. 천하장사 도깨비 형님이 저 같은 약골한테 지실 리가 있겠습니까. 형님이 일부러 넘어가 주신 거, 제가 모를 줄 알았남유?"

    달구는 코끝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날 밤, 외롭고 배고픈 자신에게 술친구가 되어주고, 일부러 져주며 큰 선물까지 안겨준 도깨비의 마음이 사무치게 고마웠습니다.

    "고맙습니다, 형님. 주신 재물, 허투루 쓰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 도우며 착하게 살다 가겠습니다. 자, 한 잔 받으시지요."

    달구는 술을 툇마루 아래 땅에 천천히 뿌렸습니다.

    '졸졸졸...'

    술이 땅으로 스며들자, 어디선가 바람이 '휘잉

    ' 하고 불어와 마루 끝에 달린 풍경을 '댕

    ' 하고 울렸습니다. 마치 "오냐, 잘 먹으마! 잘 살거라!" 하고 호탕하게 웃는 도깨비의 목소리 같았습니다. 달구는 밤하늘에 뜬 둥근 달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유튜브 엔딩 멘트

    여러분, 오늘 들려드린 '술고래 도깨비와 친구 먹은 주정뱅이' 이야기, 재미있게 들으셨나요?
    겉모습은 무시무시한 도깨비였지만, 외로운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고 넉넉한 인심까지 베푼 도깨비 형님. 그리고 벼락부자가 된 후에도 그 행운을 혼자 독차지하지 않고 이웃과 나눈 달구 씨의 모습이 참 흐뭇하고 따뜻했지요?
    '웃으면 복이 온다'는 옛말처럼, 비록 지금은 힘들고 고달프더라도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고 허허실실 웃다 보면, 언젠가 여러분께도 도깨비 형님이 금 빗자루를 들고 불쑥 찾아올지 모릅니다. 오늘 밤, 여러분의 꿈속에도 그런 기분 좋은 행운이 가득하길 바라겠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즐거우셨다면, 힘이 되는 구독과 좋아요, 그리고 알림 설정까지 꾹~ 눌러주세요. 여러분의 따뜻한 응원 댓글은 더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만드는 큰 힘이 된답니다.
    그럼 저는 다음 시간에 더 신기하고 유쾌한 이야기 보따리를 들고 여러분을 찾아오겠습니다. 그때까지 모두 건강하시고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