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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돌뱅이와 도깨비의 선물

    태그:

    #조선시대야담 #전통설화 #도깨비이야기 #장돌뱅이 #인생역전 #오디오드라마 #시니어이야기 #권선징악 #민담 #한국전설 #대객주 #결혼이야기 #교훈적인이야기 #잠잘오는이야기 #추억의옛날이야기

     

    인트로: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옛 조상님들의 지혜와 따뜻한 정이 흐르는 구수한 옛날이야기 한 자락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예로부터 장터를 떠돌며 등짐을 지고 물건을 파는 장돌뱅이들의 삶은 고달프기 그지없었지만, 그 속에서도 정직과 신용을 생명처럼 지킨 이들은 하늘이 돕고 도깨비가 복을 내렸다고 합니다.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눈앞의 황금에 눈이 멀지 않고 도깨비의 깐깐한 시험을 통과한 착한 장돌뱅이 강쇠가, 도깨비가 준 보잘것없는 선물 하나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아리따운 규수와 백년가약을 맺어 마침내 조선 팔도를 호령하는 대객주가 되기까지의 통쾌한 역전 드라마입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착한 장돌뱅이와 도깨비의 선물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씬표:

    씬 1: 비 내리는 고갯마루의 폐가와 도깨비의 황금 시험 – 장터에서 번 돈을 불쌍한 노파에게 다 털어준 착한 장돌뱅이 강쇠가 산속 폐가에서 도깨비들을 만나 황금 덩어리의 유혹을 뿌리치고 낡은 목각 오리와 구슬을 선물로 받습니다.
    씬 2: 개성 행수 황 영감의 모함과 도깨비 구슬이 막아낸 화살 – 강쇠의 성실함을 시기한 악독한 황 행수가 산적을 매수해 강쇠를 죽이려 하지만, 도깨비가 준 푸른 구슬이 기적처럼 목숨을 구해주고 절벽 아래에서 귀인을 구하게 됩니다.
    씬 3: 흉가라고 소문난 별당의 귀신 소동과 목각 오리의 신통력 – 목숨을 구해준 박 객주의 집에 머물게 된 강쇠가 외동딸 서연 아씨를 괴롭히는 별당의 천년 묵은 지네 요괴를 도깨비 목각 오리의 힘으로 퇴치합니다.
    씬 4: 달빛 아래 피어난 연정과 눈물의 첫날밤 합궁(合宮) – 요괴를 물리치고 병석에서 일어난 절세가인 서연 아씨와 강쇠 사이에 애틋한 사랑이 싹트고, 박 객주의 승낙 아래 마침내 두 사람이 뜨거운 부부의 연을 맺습니다.
    씬 5: 가짜 인삼의 함정과 도깨비 선물이 일으킨 극적인 대반전 – 사위가 된 강쇠를 파멸시키기 위해 황 행수가 썩은 인삼을 바꿔치기하는 사기극을 벌이지만, 도깨비의 선물이 숨겨진 진짜 힘을 발휘하며 판세를 완전히 뒤집습니다.
    씬 6: 조선 팔도를 품은 대객주 강쇠와 도깨비와의 마지막 술잔 – 악인을 물리치고 조선 최고의 거상 대객주로 우뚝 선 강쇠가 아내 서연과 함께 평생 나눔을 실천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감동적인 해피엔딩입니다.

    ※ 1: 비 내리는 고갯마루의 폐가와 도깨비의 황금 시험

    조선 후기, 삼남 지방과 강원도를 잇는 험준한 산골 장터들을 오가며 바늘과 실, 거울, 참빗 따위의 방물(여성용 잡화)을 파는 스물다섯 살의 젊은 장돌뱅이 '강쇠'가 살고 있었습니다.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천애 고아가 된 강쇠는 가진 것이라고는 등 뒤에 짊어진 지게와 걸음 빠른 두 다리뿐이었지만, 성품이 어찌나 곧고 착한지 장터 사람들 사이에서는 '법 없이도 살 총각'으로 통했습니다. 다른 장사꾼들은 어떻게든 저울 눈금을 속이거나 흠집 난 물건을 비싸게 팔아 이문을 남기려 애썼지만, 강쇠는 실 한 타래를 팔더라도 넉넉히 얹어주었고 사정이 딱한 할머니들을 만나면 아예 밑지고 건네주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늦가을 날이었습니다. 원주 장터에서 사흘 동안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모처럼 닷 냥이라는 쏠쏠한 돈을 손에 쥔 강쇠가, 다음 날 열리는 여주 장터로 넘어가기 위해 해 질 무렵 고갯마루를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개 초입의 찬 바람 부는 길가에 웬 백발 노파가 어린 손주를 안고 굶주림과 추위에 떨며 울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이고, 할머니! 이 찬 바람 부는 길가에서 왜 이리 울고 계십니까?"

    강쇠가 지게를 내려놓고 다가가 묻자, 노파는 눈물을 훔치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젊은 총각... 내 아들이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다리가 부러져 자리에 누웠는데, 당장 약 지어 먹을 돈은커녕 사흘째 미음 한 모금 못 먹여 이 어린 손주까지 굶어 죽게 생겼구먼..."

    그 딱한 사정을 들은 강쇠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허리춤 전대를 풀어, 자신이 사흘 동안 목이 쉬어라 외치며 번 돈 닷 냥 전부를 노파의 주름진 손에 꼭 쥐여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도시락으로 싸 온 주먹밥 두 덩이까지 손주의 품에 안겨 주었습니다.

    "할머니, 비록 큰돈은 아니지만 이것으로 아드님 약도 짓고 따뜻한 흰쌀밥도 지어 드십시오!"

    노파가 땅에 엎드려 고마움의 눈물을 흘리는 것을 뒤로하고 다시 고개를 오르기 시작한 강쇠는, 비록 주머니는 빈털터리가 되었지만 마음만은 구름 위를 걷는 듯 가볍고 뿌듯했습니다.

    '허허, 내일 장터에서 물건 떼어 올 밑천이 다 날아갔으니 큰일이긴 한데, 그래도 죽어가는 사람 목숨 살리는 것보다 귀한 장사가 어디 있겠는가.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그런데 강쇠가 고개 중턱에 이르렀을 무렵, 갑자기 하늘에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천둥 번개와 함께 양동이로 퍼붓듯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순식간에 홑겹 옷이 흠뻑 젖어들고 앞이 보이지 않자, 강쇠는 비를 피할 곳을 찾아 헤매다가 숲속 공터에 버려진 낡은 폐가(빈집) 한 채를 발견하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휴우, 하마터면 비에 쓸려 내려갈 뻔했네. 오늘 밤은 이 빈집 마루에서 눈 좀 붙여야겠구나."

    강쇠가 젖은 옷을 짜 입으며 안방 쪽을 들여다보던 순간이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방 한가운데에, 웬 시퍼런 보자기에 싸인 묵직한 궤짝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호기심에 다가가 보자기를 들춰본 강쇠는 그만 숨이 턱 막힐 듯 놀라 뒤로 자빠질 뻔했습니다. 궤짝 안에는 어둠 속에서도 눈이 부실 만큼 찬란한 빛을 뿜어내는 굵직한 황금 덩어리들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장돌뱅이에게는 평생을 놀고먹고도 남을 어마어마한 재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강쇠는 침을 한 번 꿀꺽 삼키더니, 이내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으며 보자기를 다시 덮어놓았습니다.

    '어허, 이 강쇠가 잠깐 눈에 귀신이 씌었구나! 내 땀 흘려 번 돈이 아닌데 어찌 남의 재물에 손가락 하나를 댄단 말인가. 이 깊은 산속에 이토록 큰 황금을 두고 간 주인도 분명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잠시 숨겨둔 것일 터, 내가오히려 밤새 산적이나 도둑이 못 가져가게 잘 지켜주어야겠다.'

    강쇠는 황금 궤짝을 방 안쪽 안전한 구석으로 밀어 넣고는, 자신은 차가운 마루 구석에 지게를 베고 누워 배고픔을 참으며 눈을 감았습니다.

    밤이 깊어 삼경(자정)이 되었을 무렵이었습니다. 갑자기 폐가 마당에서 시끌벅적한 웃음소리와 함께 수십 개의 푸르고 붉은 불빛들이 춤을 추듯 날아들더니, 방문이 벌컥 열리며 머리에 뿔이 돋고 쇠방망이를 든 건장한 도깨비 대여섯 마리가 우르르 몰려 들어왔습니다!

    "어라? 우리 아지트에 웬 인간 냄새가 난다 했더니 저기 마루에 장돌뱅이 하나가 자고 있네!"

    "이봐, 김 서방! 내가 아까 시험 삼아 방 한가운데에 황금 궤짝을 일부러 놔두었는데, 저 인간이 보나 마나 황금 보따리 챙겨서 줄행랑을 쳤거나 품에 숨겼을 거야!"

    도깨비들의 소란스러운 목소리에 잠에서 깬 강쇠는 처음에는 깜짝 놀랐으나, 도깨비들이 황금 주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차분하게 일어나 공손히 허리를 숙여 인사했습니다.

    "도깨비 나리들, 밤길에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소인은 비를 피해 잠시 처마 밑을 빌린 장돌뱅이 강쇠라 하옵니다. 방 안에 두신 귀한 황금 궤짝은 혹여 밤짐승이나 도둑이 건드릴까 봐 제가 저 구석에 잘 모셔 두었으니 안심하십시오."

    강쇠의 태연하고도 정직한 말에 도깨비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방 안의 황금 궤짝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과연 황금은 단 한 톨도 비지 않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때, 무리 뒤편에서 붉은 비단 도포를 입은 우두머리 도깨비가 앞으로 나서며 껄껄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하하하! 세상에, 눈앞에 굴러들어온 천금 같은 황금을 보고도 욕심을 내지 않고 오히려 지켜주다니! 사실 아까 고개 아래 길가에서 손주를 안고 울던 그 늙은 할미가 바로 내가 둔갑했던 모습이란다. 네가 사흘 동안 피땀 흘려 번 돈 닷 냥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것을 보고도 설마 싶어 황금으로 한 번 더 시험해 보았더니, 너는 과연 하늘이 내린 진짜배기 선인(善人)이로구나!"

    강쇠는 그제야 낮에 만났던 노파가 도깨비였다는 사실을 알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우두머리 도깨비는 기특하다는 듯 강쇠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방구석에 굴러다니던 볼품없는 물건 두 개를 집어 강쇠에게 내밀었습니다. 하나는 칠이 다 벗겨지고 한쪽 날개가 삐딱한 낡은 '나무 오리(목각 오리)'였고, 다른 하나는 구멍이 뚫린 평범해 보이는 '푸른 유리구슬'이었습니다.

    "강쇠야, 너 같은 착한 사람에게 당장 황금을 주면 오히려 도둑들의 표적이 되어 화를 입을 것이다. 대신 내가 우리 도깨비들의 신통력이 깃든 이 목각 오리와 푸른 구슬을 선물로 주마. 당장은 쓰레기처럼 보일지 몰라도, 네가 죽을 고비에 처하거나 누군가를 진심으로 구하려 할 때 이 물건들이 천금보다 귀한 기적을 일으킬 것이다!"

    강쇠는 비록 보잘것없는 나무 조각과 유리구슬이었지만, 도깨비의 따뜻한 마음이 고마워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 품속 깊이 간직했습니다. 이튿날 아침, 강쇠가 눈을 떴을 때 도깨비들과 황금 궤짝은 간데없고, 품속에 든 차가운 구슬과 나무 오리만이 간밤의 일이 꿈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 2: 개성 행수 황 영감의 모함과 도깨비 구슬이 막아낸 화살

    도깨비의 선물을 품에 안고 산을 내려온 강쇠는, 여주와 이천을 거쳐 마침내 조선 팔도의 모든 보부상과 상인들이 모여든다는 상업의 중심지, 송도(개성) 장터에 발을 들였습니다. 가진 밑천은 다 털렸지만, 강쇠는 특유의 성실함과 정직함으로 큰 객주(상단)의 짐을 날라주는 허드렛일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당시 개성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인망이 두터운 상단은 '박만석 대객주'가 이끄는 백운상단이었습니다. 박 객주는 비단과 인삼 무역으로 만석의 부를 이룬 거상이었는데, 남의 물건을 자기 목숨처럼 소중히 다루고 계산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청년 강쇠를 눈여겨보더니 몇 달 만에 상단의 정식 패랭이꾼(보부상)으로 발탁해 주었습니다.

    "강쇠야, 내가 평생 수많은 장사꾼을 보았지만 너처럼 눈빛이 맑고 사심이 없는 젊은이는 처음 보았다. 이번 달부터는 허드렛일 그만하고 내 밑에서 직접 인삼과 비단 거래 장부를 배우도록 해라!"

    박 객주의 각별한 총애를 받게 된 강쇠는 밤낮으로 글을 익히고 상술을 배우며 일취월장했습니다. 그런데 강쇠가 박 객주의 신임을 얻을수록 뒤에서 시퍼런 질투의 칼날을 가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백운상단의 이인자이자 늙은 행수(지배인)인 '황 영감'이었습니다.

    황 행수는 겉으로는 박 객주에게 충성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상단의 인삼을 몰래 빼돌려 사리사욕을 채우고 있던 욕심 많고 교활한 인물이었습니다. 더욱이 황 행수는 박 객주에게 아들이 없고 오직 금지옥엽 같은 열아홉 살 외동딸 '서연 아씨' 하나만 있다는 점을 노려, 자신의 망나니 조카를 서연 아씨와 혼인시켜 장차 백운상단을 통째로 집어삼키려는 검은 야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굴러먹다 온 근본도 없는 장돌뱅이 강쇠가 나타나 박 객주의 총애를 독차지하고 심지어 자신이 몰래 빼돌린 장부의 빈틈까지 눈치채려 하자, 황 행수는 강쇠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며 제거할 음모를 꾸몄습니다.

    '흥, 저 천한 장돌뱅이 놈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내 비리가 들통나는 것은 물론이요, 박 객주가 저놈을 데릴사위로 삼겠다고 나설지도 모른다. 싹이 더 자라기 전에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려야겠다!'

    어느 날, 황 행수는 강쇠를 조용히 불러 거짓 미소를 지으며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어이, 강쇠. 내일 아침 일찍 황해도 평산 고개를 넘어 저 건너 고을 부잣집에 비단 대금으로 받은 어음 오백 냥을 찾아오게나. 시간이 급하니 큰길로 돌아가지 말고 산속 지름길로 다녀오도록 해!"

    황 행수는 강쇠를 평산 고개로 보낸 뒤, 그 길목을 지키는 흉악한 산적 두목에게 은자 백 냥을 미리 건네주며 '내일 아침 지게를 지고 고개를 넘는 강쇠라는 젊은 놈을 화살로 쏘아 죽이고 시체를 절벽 아래로 던져버리라'고 사주해 놓았습니다.

    이튿날 아침, 아무런 의심 없이 산속 지름길을 따라 평산 고개를 오르던 강쇠는 숲이 우거진 좁은 협곡에 들어서자마자 등골이 오싹해지는 살기를 느꼈습니다. 바로 그때, 바위 위 수풀 속에서 매복하고 있던 산적 다섯 명이 시퍼런 칼과 활을 들고 불쑥 튀어나와 앞길을 가로막았습니다!

    "거기 서라! 네놈이 백운상단의 강쇠라는 놈이렷다! 황 행수 영감님의 특별 부탁이니 저승길 노잣돈이나 챙겨서 얌전히 죽어라!"

    산적 두목이 비열하게 웃으며 시위를 잔뜩 당긴 쇠화살을 강쇠의 심장을 향해 핑 하고 쏘아 날렸습니다. 너무나 가까운 거리라 미처 피할 틈조차 없었습니다!

    '아아, 내가 여기서 이렇게 허망하게 죽는구나!'

    강쇠가 눈을 질끈 감은 바로 그 순간, 강쇠의 왼쪽 가슴 품속에 넣어두었던 도깨비의 선물, 그 '푸른 유리구슬'에서 갑자기 번개 같은 푸른 섬광이 번쩍 터져 나왔습니다!

    "쨍그랑!"

    강쇠의 심장을 꿰뚫었어야 할 굵은 쇠화살이 품속의 도깨비 구슬에 부딪히자마자, 마치 강철 바위에 부딪힌 수수깡처럼 두 동강이 나며 튕겨 나간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구슬에서 뿜어져 나온 눈부신 푸른 빛줄기가 협곡 안을 가득 채우더니, 도깨비들의 우렁찬 호통 소리가 천둥처럼 메아리치며 바위 위의 산적들을 덮쳤습니다.

    "으아악! 내 눈! 앞이 안 보인다! 이놈 몸에 산신령이나 도깨비가 붙었나 보다! 도망쳐라!"

    혼비백산한 산적들은 무기를 내던지고 비명을 지르며 산 너머로 뿔뿔이 달아났습니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강쇠는 떨리는 손으로 품속의 푸른 구슬을 꺼내 보았습니다. 화살을 막아낸 구슬은 흠집 하나 없이 영롱한 빛을 내뿜고 있었습니다.

    "아아... 고맙습니다, 도깨비 나리! 정말로 죽을 고비에서 제 목숨을 살려주셨군요!"

    그런데 가슴을 쓸어내리던 강쇠의 귓가에, 바로 옆 천 길 낭떠러지 아래 나뭇가지 사이에서 누군가 가늘게 신음하며 살려달라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사... 살려주세요... 거기 위에 누구 없소..."

    깜짝 놀란 강쇠가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니, 웬 비단옷을 입은 백발의 노인이 절벽 중간의 아슬아슬한 소나무 가지에 걸린 채 매달려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다름 아닌 백운상단의 주인, '박만석 대객주'였습니다! 박 객주는 아침 일찍 산 너머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가다가, 아까 그 산적들에게 습격을 당해 수행원들을 잃고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졌던 것입니다.

    강쇠는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 것도 잊은 채, 지게에 묶여 있던 굵은 밧줄을 풀어 허리에 동여매고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로 거침없이 내려가 박 객주를 등에 업고 무사히 구해 올렸습니다.

    "강쇠야... 네가... 네가 내 목숨을 구했구나!"

    자신을 죽이려 한 황 행수의 음모를 모른 채 오히려 주인의 목숨까지 구해낸 강쇠는, 다리를 다친 박 객주를 지게에 소중히 업고 개성의 본가로 한달음에 달려 내려갔습니다.

    ※ 3: 흉가라고 소문난 별당의 귀신 소동과 목각 오리의 신통력

    강쇠의 등에 업혀 구사일생으로 저택에 돌아온 박 객주는, 그날로 강쇠를 친아들처럼 여기며 상단의 외채가 아닌 자신의 안채 사랑방 옆에 머물게 했습니다. 한편, 강쇠가 산적의 화살을 맞고 죽었을 줄로만 알았던 황 행수는 강쇠가 멀쩡히 살아 돌아온 것도 모자라 주인의 목숨까지 구해 영웅이 되자, 속으로 피를 토하며 이를 갈았습니다.

    그런데 박 객주의 저택에 머물게 된 강쇠는, 이 거대한 부잣집 안에 말 못 할 깊은 슬픔과 공포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박 객주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외동딸, 열아홉 살 '서연 아씨' 때문이었습니다.

    서연 아씨는 개성 일대에서 미모와 현숙함이 으뜸으로 꼽히던 절세가인이었는데, 반년 전부터 후원 깊숙한 곳에 자리한 별당에 거처하기 시작한 뒤로 원인 모를 괴질에 걸려 밤마다 무서운 가위에 눌리고 피가 마르듯 야위어가고 있었습니다. 용하다는 의원과 무당을 수없이 불러들였으나, 별당에 들어간 무당들조차 밤사이에 거품을 물고 기절해 실려 나오는 바람에 집안 하인들 사이에서는 '별당에 사람 잡아먹는 악귀가 붙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딸의 방에 다녀와 툇마루에 앉아 눈물을 훔치는 박 객주를 본 강쇠가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고 아뢰었습니다.

    "어르신, 소인이 비록 배운 것 없는 미천한 몸이오나, 어르신의 크나큰 은혜를 입었으니 오늘 밤 제가 별당 마루를 지키며 서연 아씨를 괴롭히는 그 사악한 기운의 정체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사옵니다!"

    그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황 행수가 이때다 싶어 코웃음을 치며 끼어들었습니다.

    "허허, 주인 어른! 저 강쇠 놈이 기고만장하여 제 분수도 모르고 나서는군요. 법력 높은 무당들도 혼이 나가 실려 나온 마당에, 일개 장돌뱅이가 별당에 들어갔다가는 내일 아침 시체로 나올 것이 뻔합니다. 하지만 저놈이 저리도 우기니 한번 들여보내 보시지요!"

    강쇠가 귀신에게 물려 죽기를 바라는 황 행수의 검은 속셈이었습니다. 박 객주는 만류했으나 강쇠의 눈빛이 워낙 단호하자 결국 고개를 끄덕여 허락했습니다.

    그날 밤, 보름달이 구름에 가려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별당 마루에 홀로 앉은 강쇠는, 방 안에서 들려오는 서연 아씨의 가녀리고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문창호지 너머로 어렴풋이 비치는 아씨의 모습은 병색이 짙었음에도 마치 달나라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저리도 곱고 착한 아씨가 무슨 죄가 있어 저런 고통을 겪는단 말인가. 오늘 밤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아씨를 지켜내리라!'

    밤이 깊어 삼경이 되자, 갑자기 별당 주변의 온도가 얼음장처럼 뚝 떨어지더니 마당의 고목나무 뒤편 바위틈에서 시커먼 독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독안개가 별당 마루를 덮치자 강쇠조차 머리가 어지럽고 숨이 막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소리가 나지 않게 스르르 열린 별당 천장 서까래 위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귀신이 아니라 길이가 사람 키만 하고 몸통이 기둥처럼 굵은 '천년 묵은 붉은 왕지네 요괴'였습니다! 그 지네 요괴는 밤마다 바위틈에서 기어 나와 독안개로 서연 아씨를 마비시키고, 아씨의 젊은 생기와 피를 조금씩 빨아먹으며 도력을 키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네 요괴가 시뻘건 독니를 드러내며 잠든 서연 아씨의 하얀 목덜미를 향해 스르르 내려오던 바로 그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습니다! 강쇠가 안간힘을 다해 품속에 손을 넣어 도깨비가 주었던 두 번째 선물, 그 볼품없던 '낡은 목각 오리'를 꺼내어 방 안으로 힘껏 던졌습니다!

    "도깨비 나리, 제발 아씨를 살려주십시오!"

    목각 오리가 방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믿을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칠이 벗겨진 작은 나무 오리에서 황금빛 광채가 번쩍 터져 나오더니, 나무 오리가 갑자기 살아 움직이며 황소만 한 크기의 거대한 '황금 수리부엉이 겸 천둥오리'로 변신한 것입니다! 예로부터 지네의 천적은 오리와 닭이라 했던가요. 도깨비의 신통력이 깃든 거대한 황금 오리는 쩌렁쩌렁한 울음소리를 내며 날아올라, 단숨에 천년 묵은 왕지네 요괴의 목덜미를 무쇠 같은 부리로 콰직 물어뜯었습니다!

    "끼야아악!"

    왕지네 요괴는 귀청이 터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을 쳤지만, 도깨비 목각 오리가 날개를 한 번 퍼덕일 때마다 신성한 바람이 일어 독안개를 싹 걷어냈고, 세 번 부리로 쪼아대자 지네 요괴는 시커먼 재로 변해 흔적도 없이 소멸해 버렸습니다!

    임무를 마친 황금 오리는 다시 원래의 작은 나무 오리로 돌아왔고, 그와 동시에 그 안에 깃들어 있던 도깨비의 신통력도 다했는지 나무 오리는 하얀 꽃가루처럼 부서져 서연 아씨의 머리맡에 향기로운 약초 가루가 되어 내려앉았습니다. 그 신비한 향기를 들이마신 서연 아씨는, 지난 반년 동안 몸속에 쌓여 있던 지네의 독기가 씻은 듯이 빠져나가며 두 뺨에 발그레한 홍조를 되찾고 스르르 눈을 떴습니다!

    ※ 4: 달빛 아래 피어난 연정과 눈물의 첫날밤 합궁(合宮)

    "아... 아씨! 정신이 드십니까?!"

    방문을 열고 들어간 강쇠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묻자, 반년 만에 악몽에서 깨어난 서연 아씨는 맑고 깊은 눈망울을 깜빡이며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훤칠하고 듬직한 청년 강쇠를 올려다보았습니다. 비록 옷차림은 소박했으나, 자신을 구하기 위해 이마에 구슬땀을 흘리며 걱정해 주는 강쇠의 선량하고 뜨거운 눈빛을 본 순간, 서연 아씨의 가슴속에는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설렘과 연모의 정이 봄눈 녹듯 번져 나갔습니다.

    "당신이... 밤마다 제 목을 조르던 그 무서운 어둠을 물리쳐 주신 분이시군요... 소녀의 목숨을 구해주셔서 참으로 고맙습니다."

    아씨의 옥구슬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에 강쇠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져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다음 날 아침, 별당에 들어갔던 강쇠가 시체로 나오기는커녕 서연 아씨가 완쾌되어 직접 걸어 나왔다는 소식에 백운상단 전체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딸을 부둥켜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린 박 객주는, 자신의 목숨에 이어 외동딸의 목숨까지 구해준 강쇠의 손을 덥석 잡고 선언했습니다.

    "강쇠야! 너는 하늘이 우리 백운상단과 내 딸을 위해 내려보내 주신 귀인이 분명하다! 네가 비록 지금은 가진 것 없는 장돌뱅이 신분이라 하나, 그 인품과 지혜, 그리고 용기는 천하의 어느 정승 판서 자제보다 훌륭하다. 내 딸 서연이의 마음도 이미 너에게 가 있는 듯하니, 네가 내 사위가 되어 평생 내 딸을 지켜주고 이 상단을 물려받아 다오!"

    박 객주의 파격적인 선언에 황 행수는 벼락을 맞은 듯 뒤로 넘어갈 뻔했지만, 강쇠와 서연 아씨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수줍고도 행복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로부터 보름 뒤, 길일을 택해 백운상단 안채 마당에서는 천하일색 부잣집 규수 서연 아씨와 착한 장돌뱅이 강쇠의 성대한 혼례식이 올려졌습니다. 사모관대를 차려입은 강쇠의 모습은 그 어떤 양반 도령보다 늠름하고 기품이 넘쳤으며, 연지곤지를 찍은 신부 서연의 자태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그 자체였습니다.

    하객들이 모두 돌아가고 깊어가는 첫날밤, 붉은 원앙 금침이 깔린 신방 안에는 은은한 밀랍 초의 불빛만이 두 사람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신부의 족두리를 벗겨주고 저고리 고름을 풀어준 강쇠는, 눈부시게 하얗고 고운 서연의 어깨를 바라보며 감격에 겨워 속삭였습니다.

    "아씨... 아니, 내 아내 서연이오. 나처럼 부모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천한 장돌뱅이가 당신처럼 귀하고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다니, 오늘 밤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소."

    서연은 수줍게 고개를 들어 자신의 고운 손으로 강쇠의 거칠고 굳은살 박인 손을 따뜻하게 감싸 안으며 자신의 볼에 가져다 대었습니다.

    "서방님... 다시는 스스로를 천하다 말씀하지 마시옵소서. 이 세상 그 어떤 금은보화나 높은 벼슬보다, 위험을 무릅쓰고 제 목숨을 구해주신 서방님의 이 거칠고 따뜻한 손이 저에게는 천하에서 가장 귀한 보물이옵니다. 오늘 밤부터 제 몸과 마음은 오직 서방님 한 분의 것이옵니다."

    아내의 진심 어린 고백에 강쇠의 가슴속에서 뜨거운 불길이 치솟아 올랐습니다. 강쇠가 조심스럽게 촛불을 불어 끄고 신부를 비단 이불 속으로 품어 안자, 방 안에는 은은한 난초 향기와 함께 두 젊은 남녀의 거칠고도 달콤한 숨소리가 가득 차올랐습니다.

    병마에서 벗어나 생기를 되찾은 서연의 살결은 비단보다 매끄럽고 불덩이처럼 뜨거웠으며, 평생 외롭게 살아온 강쇠의 품은 대지처럼 넓고 단단했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아낌없이 사랑을 나누고 마침내 빈틈없이 하나로 합궁(合宮)을 이루자, 창밖의 보름달도 부끄러운 듯 구름 뒤로 얼굴을 감추었고, 신방의 밤은 끊이지 않는 애틋한 정담과 사랑의 유희 속에서 깊어만 갔습니다.

    ※ 5: 가짜 인삼의 함정과 도깨비 선물이 일으킨 극적인 대반전

    강쇠가 박 객주의 데릴사위가 되어 부부 금슬 좋게 상단 일을 도맡아 하자, 백운상단의 기세는 날이 갈수록 번창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희망이 물거품이 된 행수 황 영감의 마음속에는 악마 같은 복수심이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 박 객주가 늙어 모든 도장을 저 강쇠 놈에게 넘기기 전에, 상단이 완전히 파산할 만한 거대한 사고를 쳐서 강쇠 놈을 감옥에 처넣고 내가 상단을 헐값에 집어삼켜야겠다!'

    그해 겨울, 백운상단에는 상단의 명운이 걸린 사상 최대의 거래가 잡혀 있었습니다. 바로 한양에 들어온 청나라 황실 사신단에게 최고급 개성 홍삼 오천 근을 납품하고, 그 대가로 은자 오만 냥을 받기로 한 세기의 계약이었습니다. 만약 기한 내에 홍삼을 납품하지 못하거나 품질에 문제가 생기면, 위약금으로 백운상단의 전 재산을 몰수당하는 것은 물론이요 책임자인 강쇠는 사신단을 기만한 죄로 목이 달아날 수도 있는 중대한 거래였습니다.

    박 객주는 사위 강쇠를 믿고 이 거대한 거래의 전권을 맡겼습니다. 출발 전날 밤, 강쇠가 꼼꼼하게 최상품 홍삼 오천 근을 확인하여 마차 스무 대에 싣고 창고 문을 잠가 두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잠든 한밤중, 황 행수가 미리 매수해 둔 창고지기를 시켜 창고 뒷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황 행수는 마차에 실려 있던 진짜 최상품 개성 홍삼 상자들을 전부 빼돌려 자신의 비밀 창고에 숨기고, 그 자리에 겉모양만 그럴듯하게 진흙을 발라 색을 낸 '속이 다 썩어 문드러진 싸구려 가짜 인삼(도라지와 썩은 삼)' 상자들을 감쪽같이 바꿔치기해 놓았습니다!

    "크흐흐... 강쇠 이 멍청한 놈! 내일 한양 사신단 앞에서 저 썩은 인삼 상자가 열리는 날이 바로 네놈의 제삿날이 될 것이다!"

    다음 날 새벽,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 강쇠는 마차 행렬을 이끌고 한양의 사신단 숙소인 태평관으로 향했습니다. 황 행수도 결과를 두 눈으로 확인하겠다며 일행의 뒤를 따라붙었습니다. 마침내 태평관 마당에 도착하여 청나라 사신단의 수석 통역관과 관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인삼 상자를 열어 품질을 검수하는 긴장된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뒤에 서 있던 황 행수가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오며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대인 나리들! 검수하시기 전에 소인이 양심선언을 할 것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 상단의 젊은 사위인 저 강쇠라는 자가 욕심이 과하여, 오늘 가져온 홍삼 상자 속에 썩은 가짜 인삼을 섞어 넣었다는 소문을 들었사옵니다! 저 상자들을 당장 열어보십시오!"

    황 행수의 갑작스러운 폭로에 강쇠는 물론이고 주변 상인들이 모두 경악했습니다. 청나라 관리가 노기등등한 얼굴로 칼을 뽑아 상자 다섯 개의 봉인을 뜯고 뚜껑을 확 제쳤습니다!

    상자 안을 들여다본 강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향기롭던 최상품 홍삼이 있어야 할 자리에, 시커멓게 썩어 곰팡이가 슬고 악취가 진동하는 가짜 인삼 뿌리들이 가득 들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이럴 수가! 어제 분명히 내가 직접 확인했는데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인가!"

    청나라 수석 관리가 노발대발하며 탁자를 내리쳤습니다.

    "네 이놈! 감히 대국 황실에 바칠 진상품에 썩은 쓰레기를 가져와 우리를 우롱하다니! 여봐라, 당장 저 강쇠라는 놈을 포박하여 의금부로 넘기고 백운상단의 전 재산을 압수하라!"

    황 행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강쇠가 억울함에 피눈물을 삼키며 포졸들에게 끌려가려던 바로 그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습니다!

    강쇠가 마지막으로 하늘에 호소하듯 가슴을 치자, 그의 옷깃 안주머니에 들어 있던 도깨비의 첫 번째 선물, 지난번 화살을 막아주었던 그 '푸른 유리구슬'이 옷 밖으로 툭 튀어나와 열린 인삼 상자 한가운데로 데구루루 굴러떨어졌습니다!

    "번쩍!"

    구슬이 가짜 인삼 더미에 닿는 그 찰나, 대낮의 태양보다 더 강렬한 오색 무지갯빛 광채가 상자 속에서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눈앞에서 사람의 머리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도깨비의 조화(造化)가 펼쳐졌습니다. 푸른 구슬이 스스로 잘게 부서져 반짝이는 은빛 이슬비처럼 마차 스무 대의 상자 위로 흩뿌려지더니, 시커멓게 썩어 있던 가짜 인삼과 도라지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황금빛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천 년 묵은 산삼의 영험한 향기를 내뿜는 '천하제일의 황금 산삼(山蔘)'으로 모조리 변해버린 것입니다!

    "어, 어라?! 방금 전까지 썩은 냄새가 나던 것이... 세상에! 이 향기를 맡아보라! 이것은 일반 홍삼이 아니라 전설로만 듣던 백 년, 천 년 묵은 조선의 황금 산삼이 아니더냐!"

    청나라 수석 관리가 상자 속의 산삼 한 뿌리를 집어 들고는 황홀경에 빠져 손을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향기만 맡아도 백병이 낫는다는 전설의 영약이 스무 마차에 가득 차 있었으니, 청나라 사신단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습니다!

    "하하하! 백운상단의 강쇠 행수!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려고 처음에 눈속임 장난을 쳤던 것이로군! 이 정도 품질의 산삼이라면 처음 약속한 오만 냥이 아니라 그 두 배인 은자 십만 냥을 당장 내어주겠소!"

    판세가 순식간에 뒤집히자, 가장 당황한 것은 바로 황 행수였습니다. 귀신에 홀린 듯 눈이 뒤집힌 황 행수가 마차로 달려들며 미친 사람처럼 고함을 질렀습니다.

    "아, 아니야! 이럴 리가 없다! 분명 어젯밤에 내가 직접 진짜 홍삼을 내 비밀 창고로 빼돌리고 여기에 썩은 도라지를 채워 넣었단 말이다! 왜 이게 산삼으로 변했단 말이냐!"

    너무 당황한 나머지 황 행수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범죄 사실을 스스로 다 불어버린 것이었습니다! 뒤늦게 달려온 박 객주와 포졸들이 황 행수의 자백을 듣고 즉시 그의 비밀 창고를 수색하자, 과연 그곳에는 황 행수가 그동안 빼돌린 진짜 홍삼 오천 근과 수만 냥의 장물이 고스란히 쌓여 있었습니다. 결국 제 꾀에 제가 넘어간 황 행수는 그 자리에서 오라에 묶여 평생 감옥에서 썩는 신세가 되었고, 강쇠는 원래의 홍삼 오천 근은 고스란히 보존한 채 도깨비 구슬이 만들어 준 산삼으로 은자 십만 냥이라는 천문학적인 거금을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 6: 조선 팔도를 품은 대객주 강쇠와 도깨비와의 마지막 술잔

    가짜 인삼이 천하제일의 산삼으로 변하는 기적 같은 대반전 끝에, 백운상단은 단숨에 기존 재산의 세 배가 넘는 막대한 부를 축적하며 개성을 넘어 조선 팔도에서 가장 거대한 대상단으로 우뚝 섰습니다. 박만석 객주는 이제 자신이 물러날 때가 되었음을 알고, 모든 상인들과 행수들을 모아 놓은 자리에서 사위 강쇠에게 상단의 대행수 직함과 모든 재산권을 정식으로 물려주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지게 하나에 의지해 비 내리는 고갯길을 떠돌던 가난한 장돌뱅이 강쇠가, 마침내 수천 명의 보부상과 수십 척의 상선을 지휘하는 조선 최고의 '대객주(大客主)'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만석의 부귀영화를 손에 쥔 뒤에도 강쇠와 아내 서연의 마음씨는 처음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강쇠는 도깨비들이 왜 자신에게 그런 기적 같은 선물을 주었는지를 한순간도 잊지 않았습니다.

    "부인,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 모든 복록은 원래 내 것이 아니라, 산속의 도깨비 나리들이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우라고 잠시 내 손에 맡겨주신 하늘의 재물이오."

    "서방님의 말씀이 백번 옳사옵니다. 재물이란 고여 있으면 썩는 물과 같으니, 넓게 흘려보내어 세상의 마른 땅을 적시는 데 써야 마땅하옵니다."

    부창부수(夫唱婦隨)라 했던가요. 강쇠와 서연 부부는 상단에서 벌어들이는 막대한 이문의 절반을 뚝 떼어내어, 전국 팔도의 장터마다 부모 잃은 고아들과 병든 노인들을 돌보는 무료 구휼소를 세웠습니다. 또한 옛날 자신의 시절을 떠올리며, 밑천이 없어 장사를 시작하지 못하는 가난하고 정직한 젊은 장돌뱅이들에게는 이자 한 푼 받지 않고 장사 밑천을 빌려주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흘러, 강쇠가 서른 살이 되던 해 늦가을이었습니다. 상단 일로 오랜만에 강원도 원주 장터에 들른 강쇠는, 문득 옛날 자신이 비를 피해 들어갔다가 도깨비들을 만났던 그 고갯마루의 폐가가 그리워졌습니다. 강쇠는 나귀 한 필에 도깨비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구수한 메밀묵과 붉은 수수팥떡, 그리고 최고급 청주 세 항아리를 가득 싣고 홀로 산길을 올라 그 옛날의 폐가 마당을 찾았습니다.

    "도깨비 나리들! 그 옛날 나리들께 목각 오리와 푸른 구슬을 선물 받았던 장돌뱅이 강쇠가 은혜를 갚으러 술과 안주를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어디 계시거든 나와서 저와 술 한잔 나누시지요!"

    강쇠가 마당에 푸짐하게 술상을 차려놓고 정중히 절을 올리자, 잠시 후 고요하던 숲속에서 시원한 밤바람이 불어오더니 그 옛날의 푸르고 붉은 도깨비불들이 하나둘 반짝이며 날아들었습니다! 그리고 빛 속에서 붉은 도포를 입은 우두머리 도깨비와 부하 도깨비들이 환하게 웃으며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하하하! 어이구, 이게 누구신가! 이제는 장돌뱅이 강쇠가 아니라 조선 팔도를 호령하는 강 대객주 어른이 오셨구먼!"

    우두머리 도깨비가 반갑게 어깨를 두드리자, 강쇠는 아이처럼 기뻐하며 도깨비들에게 큰 사발로 술을 가득 따라 올렸습니다.

    "나리들께서 주신 그 귀한 선물 두 개가 제 목숨을 살리고, 어여쁜 아내를 만나게 해주었으며, 가짜 인삼을 산삼으로 바꾸어 저를 이 자리에 있게 해주었습니다. 평생 이 은혜를 어찌 다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술 한 사발을 시원하게 들이켠 우두머리 도깨비는 메밀묵 한 점을 집어 먹으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어허, 이 사람 강쇠야! 아직도 모르는 소리 하는구먼. 우리가 준 나무 오리와 유리구슬은 그저 평범한 나무와 돌멩이에 아주 작은 요술 한 방울을 묻힌 것뿐이었단다. 진짜 기적을 일으킨 것은 그 물건이 아니라, 사흘 동안 번 돈 닷 냥을 굶주린 노파에게 아낌없이 내어주었던 네 따뜻한 마음이었고, 눈앞의 황금 궤짝을 보고도 훔치지 않았던 네 정직함이었으며, 내 목숨이 위험한 순간에도 절벽 아래의 노인과 병든 처녀를 먼저 구하려 했던 네 용기였단다! 하늘과 도깨비는 언제나 스스로 복을 짓는 착한 사람의 손을 빌려 기적을 행하는 법이지!"

    도깨비 우두머리의 깊은 울림이 있는 말에 강쇠는 고개를 깊이 숙이며 뜨거운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날 밤, 산속의 작은 폐가 마당에서는 인간 대객주 강쇠와 산속 도깨비들이 밤이 새도록 술잔을 기울이며 덩실덩실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날이 밝아올 무렵 도깨비들은 "앞으로도 지금처럼 가난한 이웃들의 든든한 우산이 되어주거라!"라는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아침 안개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 후로도 강쇠는 아름다운 아내 서연과 함께 아들딸을 낳고 평생토록 정직과 나눔의 상도(商道)를 실천하며, 자손 대대로 마르지 않는 부귀영화와 만인의 존경을 받으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지금까지 눈앞의 황금보다 정직과 자비를 선택했던 청년의 통쾌한 성공담, '착한 장돌뱅이와 도깨비의 선물'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셨습니다. 당장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나무 조각과 유리구슬이었지만, 선량한 사람의 손에 들렸을 때 그 어떤 황금보다도 큰 기적을 만들어냈다는 이야기가 우리들의 마음을 참 따뜻하게 해줍니다. 만약 여러분 앞에 도깨비가 나타나 당장 쓸 수 있는 황금 궤짝과, 언제 쓰일지 모르는 신비한 구슬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오늘 이야기에 대한 여러분의 재미있는 생각과 소감을 아래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을 눌러주시면 다음 시간에도 더욱 흥미진진하고 교훈이 담긴 옛날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시청해 주신 여러분, 늘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십시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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